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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현재와 우리의 미래

등록일 2014-03-13 02:01 게재일 2014-03-1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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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부환 유럽경제문화연구소장

독일어 가운데 `게셰헨(geschehen)`이라는 단어가 있다. `일어나다. 발생하다`의 뜻을 가진 동사다. 이 동사를 명사화시키면 일어남, 발생함 등이 될 것이며 이것들이 축적되면 역사가 된다. 독일어에서 역사를 뜻을 가진 단어가 바로 `게시히테(Geschichte)`다. 역사를 뜻하는 `게시히테`는 보다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지나간 일 뿐만 아니라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도 이 용어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와 지나간 역사를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그런 점에서 독일어는 논리적이고 철학적인 뉘앙스를 풍기게 한다. 시간의 연속성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미래의 내일이 다가오면 바로 역사가 되기에 현재와 미래 그리고 지나간 역사는 분리할 수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문법에서나 거론될 만한 시제를 생뚱맞게 얘기하고 있는 이유는 분단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가 독일의 과거, 현재와 무관치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염원 때문이다. 우리의 현재는 독일의 과거이며 우리의 미래는 독일의 현재와 닮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는 통일을 이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런데 독일은 이미 지난 과거에 통일을 이루고야 말았다. 베를린 장벽 붕괴는 공식적으로 1989년 11월9일부터 시작됐다. 이날은 동서독 주민들이 망치와 곡괭이 등을 들고 베를린 장벽을 부수기 시작한 상징적인 날이다. 여러가지 과정을 거치면서 독일 통일은 1990년 10월3일 마무리됐다. 분단의 역사를 극복해야 할 우리의 현재는 독일의 과거사에 해당하는 것이다.

독일은 통일만 이룬 것이 아니다. 나치와 관련된 과거사 청산문제 등을 진지하게 정리해 나갔다. 프랑스와 함께 쌍두마차를 이루며 유럽연합을 이끌어 가고 있는 독일의 현재는 통일을 이룬 다음, 언젠가는 동북아의 평화공동체 구축과 함께 중심국으로 부상해야 할 우리의 미래와 무관치 않다는 얘기다.

그러나 우리는 70년 가까이 분단국으로 남아 있는 지구촌의 유일한 나라다. 남북은 여전히 철조망으로 가로막혀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반도다. 반도는 정치, 경제적으로 민감한 지정학적인 운명을 가질 수밖에 없는 지역이다. 최근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둘러싼 분쟁만 봐도 그렇다. 미국과 유럽연합 그리고 러시아의 정치, 경제적 이익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곳이 크림반도다. 강대국 사이에 위치해 모두에게 포기할 수 없는 전략적 가치가 놓은 우크라이나는 우리에게 결코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만은 없는 곳이다. 한국, 미국, 중국 삼각관계의 틀 안에서 과연 우리의 통일은 가능할 것인가. 통일 이후에 우리가 동북아의 중심국으로 자리 잡기 위해 주변 강국과 어떤 관계를 설정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도 깊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반도가 지니는 특성상 주변국가와 능동적인 조화를 이루며 중심국으로 부상하려면 강한 경제력과 국력을 지녀야 함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통일친화적인 분위가 큰 틀에서 형성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남북통일에 대비해 통일준비위원회를 발족하겠다고 밝혔다. 한반도 통일에 대비하면서 통일 한반도의 청사진을 그리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세대별로 극복해야 할 과제는 남아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염원의 노래는 계산적이고 세속적 합리주의에 물들어 예전처럼 흔히 들을 수 없는 노래로 전락하고 있다. 청소년들은 공공연히 남북통일에 거부감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통일친화적인 사회분위기로 사회를 통합하며 흡수시켜야 할 문제들이다.

통일이 싫든 좋든, 통일의 형태가 어떤 것이든, 통일로 가는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하다 해도 우리의 미래인 통일 열차는 달려야 한다. 한반도가 진정한 경제대국으로 솟아나기 위해서도 통일 열차는 달려야 한다.

통일 후 유럽연합의 중심국으로 우뚝 선 독일의 현재를 보면서 마치 우리나라의 미래의 모습처럼 느껴지는 것은 필자만의 착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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