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수교 이래 처음으로 스위스를 국빈방문한데 이어 22일부터 시작된 스위스 다보스의 세계경제포럼(WEF)에 참석했다.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세계경제포럼이지만 실상 `다보스포럼(Davos Forum)`으로 더 유명하다. 다보스는 인구 1만여명이 살고 있는 스위스의 한적하고 조용한 시골마을이다. 겨울철 주말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이곳에 몰려들어 스키를 즐기는 휴양도시다.
세계 각국 쟁쟁한 정치인, 정부 인사, 기업인, 학자 등 최고 오피니언리더 2천700여명이 다보스를 찾았다. 박 대통령을 비롯해 국가 정상만 40여명을 넘어섰다.
이번 세계경제포럼 44회 연례총회에서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고 있는 주제는 `세계의 재편(Reshaping of the World)`이다.
독일에서 태어나 스위스 연방공과대학에서 공부했으며 하버드대학교 교수시절 세계경제포럼을 창시한 클라우스 슈바프 회장은 세계경제는 여전히 회복단계라고 하지만 불안한 요소들이 도처에 깔려있다고 진단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양적 완화로 신흥국 시장에서 자금이 이탈할 가능이 있어, 디플레문제 그리고 소득 불균형에 대한 사회적 불안 요인들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질서를 논하는 `세계의 재편!`, 스위스의 조그만 시골마을 다보스에서 울려 퍼지는 정치 경제적 구호는 이처럼 거창하다.
하지만 진작 스위스인들은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정치엔 `까막눈`이다. 정치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관심이 없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세계 최고 부국인 스위스에도 당연히 신문이 있다. 경제 분석기사 만큼은 세계적 권위의 `노이에 취리히 차이퉁`(새 취리히 신문)도 있고 지역마다 유력지들도 수두룩하다. 지구촌 여느 신문이 그러하듯 주요 정치기사는 등장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유럽에서도 스위스 신문 만큼 정치면이 재미없이 편집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물론 스위스도 진보, 보수성향의 단체 그리고 환경 정당들이 있다. 하지만 진보나 보수라는 단어들이 쉽게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기껏해야 어느 당에서 혹은 누가 어떤 사안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는 객관적인 보도와 분석이 대부분이며 내용도 딱딱한 편이다. 이만 저만 재미없는 게 아니다. 재미가 없으니 일반 스위스인들은 어지간해서 좀체 정치면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
대통령 이름을 기억하는데도 한참이 걸린다. 비교적 대통령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은 바로 1998년에 대통령이 된 루트 드리이푸스 정도다. 그것도 탁월한 정치력으로 알려진 것이 아니라 그저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유태인 출신이란 점 때문이었다. 스위스는 연방의회에서 선출된 임기 4년인 7인의 장관이 1년씩 돌아가면서 대통령을 맡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우리나라처럼 막강한 권력을 가지진 못해도 그래도 대통령이다.
그렇다고 스위스인들이 정치에 대해 무관심한 것을 정치적 불신이나 냉소로 봐서는 곤란하다.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일까?
국민이 정치인들을 크게 믿고 있으니 각자 제 할일이나 하자는 식이다. 정치인도 국민의 세금으로 봉급을 받고 업무를 수행하는 직업인이라서 국민이 자기 업무에 충실하듯 정치인도 맡은 일에 충실하리라고 생각하는 스위스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투명한 사회인데다 이런저런 이권에 얽힐 게 없으니 정치인에게 특별히 관심을 두지 않는다.
정치인들은 당연히 본업에 충실해야 하며 또 그렇게 하고 있으니 관심을 끌 이유가 없는 것 또한 당연하다. 웬만한 사안은 국민투표로 직접 해결해 버리니 그럴 만도 하다. 요즘처럼 스위스 정치의 논리적 역설과 국내 정치 현실과 비교하면 영 딴 세상 같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