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국가나 지역에 대해 정체성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만큼 과거와 현재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압축해야 하며 미래까지 관통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서유럽에 대한 정체성을 얘기할 때 서유럽 안에 살고 있는 자신들보다는 밖에서 보는 시각이 훨씬 의미심장한 경우가 많다. 선진 서유럽국들에 대한 정체성을 논할 때 필자는`자생적 소명정신`과 `수평적 공존정신`을 빠뜨리지 않는다. 봉건제도를 거치지 않은 나라는 선진국이 되기 어렵다는 학설과 청교도적인 기독교의 원리가 선진 자본주의의 동인이라는 막스 베버의 주장과도 관련이 있다.
봉건사회는 봉토에 의해 주군과 종신의 법적인 계약관계가 형성되는 복잡한 제도다. 왕만 주군이 되는 것이 아니라 봉토를 받은 영주가 그 봉토를 다시 기사들에게 나눠주면서 소위 오늘날 3권에 해당하는 행정, 입법, 사법권을 이양하는 체제다. 무신들에 의한 지방자치제도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신분의 이동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지배 계급인 귀족은 대를 이어 귀족으로, 피지배 계급은 영원히 농노나 평민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운명적이긴 해도 평민의 신분은 세습되면서 자연스럽게 기술이 축적되고 장인정신이 싹트게 되었다. 여기에다 청교도적인 기독교 원리가 추가로 작용해 주어진 직업에 최선을 다하는 소명정신까지 가세하게 된다. 제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1970년대 초까지 유례없는 서유럽의 경제성장은 축적된 공업 기술의 활용과 직업에 소명의식이 더해져 성장 동력에 무섭게 불을 지핀 결과다.
시민혁명이후 봉건시대의 신분이나 계급은 오늘날 자신의 능력에 따른 각자의 사회적 지위나 직업 등으로 바뀌며 `자생적 소명정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비교적 완벽하게 기회 균등이 보장되는 직업교육과 각종 사회 시스템에 의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한편 당시 봉건 영주의 성곽 내에서는 영주를 포함해 기사와 대장장이, 하녀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계급이 차별화되면서 상호의존적으로 아슬아슬하게 계층 간의 균형을 이뤄왔다. 의식주에서부터 행동이나 말투까지 모든 것이 계층에 따라 달랐다. 계약이나 계급에 따른 약속을 어기면 가차 없는 잔인한 형벌이 따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역사가 흐르며 문명이 진보하듯이 인권이나 시민의식 같은 개념들이 서서히 형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새로운 의식들은 급기야 성곽을 뛰어넘어 성 밖으로도 광범위하게 퍼져나간다. 억압과 수탈의 봉건제를 타파하고 모두가 동등한 인권과 권리를 가진다는 의식이 싹트기 시작한다. 시민혁명과 투쟁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투쟁과 혁명을 거치며 근·현대적으로 형성된 `평등적 공존정신`은 오늘날 사회 안정망으로 인한 사회적 연대의식이 가미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피의 유럽 혁명사는 그렇게 이뤄진 것이다.
때마침 최근 경북도에서도 개도 700년 및 신도청시대가 시작되는 원년을 맞아 경북의 정체성을 체계적이고 내실 있게 확산해 나가기로 했다. 대내외적인 공감대 형성을 위해 경북의 정체성을 집대성한 이론집을 발간하고, 전 도민이 실천해 나갈 수 있는 경북정체성 헌장을 제정해 올해 하반기에 선포할 예정이라고 한다. 정체성 강화를 위한 뿌리사업, 길을 여는 사업, 글로벌 사업 등을 발굴해 나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고대 화랑정신, 중세의 선비정신, 근대 호국정신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새마을 정신을 경북의 정체성과 혼(魂)으로 압축하고 있다.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경북의 정체성 확립과 관련된 사업들이 장기적으로 성공하려면 돌파해야 할 것들도 남아있다. 실존적인 과거를 압축하며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정체성과 혼은 경북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에 진정하게 대외적인 공감대가 형성 되도록 사려 깊은 해석과 함께 많은 힘을 쏟아야 한다. 해외 등 바깥에서 바라보고 있는 다양한 시각과 유사한 사례들을 비교분석하는 작업도 빠뜨릴 수 없는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