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년 새해가 밝았다. 서 유럽인들의 새해맞이는 우리보다 훨씬 요란하다. 비교적 가족과 함께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와는 달리, 그들은 장소를 불문하고 친구 혹은 모르는 사람끼리도 기꺼이 한 몸이 되어 떠들며 그믐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일이 허다하다. 우리는 그런 모습의 근원을 서 유럽인들의 소통능력을 얘기하며 사회적 연대감에서 찾아보기도 한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정확한 분석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따지고 보면 유럽은 실제로 복잡한 곳이기 때문이다.“유럽에 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이미 고대 그리스 역사학자 헤로도토스가 던졌던 말이다.
그러면 지금은 어떨까. 예나 지금이나 유럽의 정체성에 관한 논란은 계속된다. 시인 괴테는 유럽은 함께 모두 노래하지만 똑 같이 노래하지 않는 대륙이라고 노래했다. 90년대에 들어서도`유럽통합에 대한 심리적 관점에서 본 유럽인들의 이데올로기와 실현`이란 책을 저술한 독일학자 카를 슈미트는 다음과 같이 유럽 정체성에 대한 의미 있는 의혹을 제기했다.“유럽인들은 유럽을 대체로 같거나 비슷하게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 각 나라들은 자신들의 사고(思考)나 생활양식이 바로 유럽식이라고 생각해 버린다” 학자들뿐만 아니다. 지금도 많은 유럽인들은 자기들의 정체성에 의문을 가지면서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이 정도니 우리가 유럽대륙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찍어서 이야기한다는 자체가 무리다. 아무리 역사적 사실을 꿰어 유추해 봐도 어차피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서 유럽은 프랑스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유럽국가 중에서도 선진유럽을 일컫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프랑스 정도는 지리적으로 근접하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지만, 독일이나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은 중부유럽으로 불러줘야 한다는 유럽인들이 많다. 지리적으로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그러나 중부유럽이라면 폴란드, 체고, 헝가리, 슬로바키아까지를 포함해야 한다. 하지만 이들 국가들은 구소련과 함께 사회주의체제를 유지했기에 우리에게는 동구권이요 동유럽으로 분류되는 나라들이다. 우리가 말하는 서유럽이니 동유럽이니 분류하는 방식을 유럽의 신세대들은 언뜻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영국을 놓고 과연 유럽국인가에 대해 시비를 거는 유럽인들도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타 유럽 국가사람들 보다도 영국인 자신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1946년 영국인들이 존경하는 영국수상 처칠은 유럽으로부터 영국의 완전한 분리를 원했던 적이 있었다. 영국을 제외하고 프랑스와 독일이 주도가 되어 유럽합중국을 건설해야 된다고 역설하기도 했던 것이다
유럽의 긴 역사를 뒤로하고도 실제 처칠의 말처럼 지금 EU는 독일과 프랑스를 견인차로 하여 통합의 길로 달리고 있다. EU(유럽연합)는 단순한 통합체가 아니라 하나의 국가형태로 나아가고 있다. 국가 아닌 국가의 형태로 달리는 모습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어디까지가 유럽인지 장차 어디까지가 유럽이 될 것인지는 유럽인들도 잘 모른다. 터키는 1963년 지금의 EU가입신청을 해 놓았지만 아직 문턱에서 서성이고 있는 상태다. 작년 크로아티아가 EU회원국으로 가입하면서 28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으며 앞으로 회원국이 늘어가면서 EU의 영토도 새롭게 그려질 것이다. 국가 아닌 국가 EU의 경제동맥으로 혈액(단일 화폐 유로화)도 어디까지 흐를지는 알 수 없다. 2014년, 올해 리트비아가 유로 존에 합류하면서 28개 EU회국 중 18개국에서 유로화가 통용하게 된다. 유럽의 영토도 경제동맥도 어떻게 그려지고 흘러갈지 아무도 모른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들은 앞으로 유럽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