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브라질월드컵이 우리나라는 물론 지구촌 전체를 달구고 있다. 이 같은 대규모 경기에는 의례히 예선전이지만 결승전을 방불케 하는 게임도 있고 역사 혹은 감정적으로 뒤얽힌 숙명적인 라이벌게임도 있어 흥미를 돋우기 마련이다.
지난 17일 결승전을 연상케 하는 빅 매치답게 독일과 포르투갈 경기에서 독일 메르켈 총리가 직접 현지를 찾아와 관람했다. 매스컴도 메르켈 총리의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독일의 골이 포르투갈 골문을 가를 때마다 환호하는 메르켈 총리의 모습이 TV화면을 통해 세계로 생중계 됐다.
앞서 일본과 코트디브아르 예선전에서 코트디브아르가 골을 넣을 때 내심 우리들은 환호했을 것이다. 둥근 축구공을 통해 잘못된 역사나 감정을 생산적으로 해결해 가며 지구촌이 하나로 뭉쳐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10여년 전 프랑스에서는 토고의 역사 알기 등 토고 열풍이 분 적이 있다. 토고뿐만 아니라 북서아프리카의 웬만한 나라는 프랑스의 식민지 국가들이다. 파리의 대학생들이 토고에 건립할 도서관에 기증하기 위해 다양한 책을 모은 것이다. 프랑스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과서도 있고 소설도 있었다. 근대 시민사회의 주역으로 떠오른 부르주아들의 세속적인 삶을 실감나게 묘사했던 발자크의 소설도 있고 프랑스의 고전극 3대 거장으로 꼽히는 몰리에르의 작품도 있었다.
독일인들은 프랑스의 젊은이들의 이 같은 아프리카 열풍을 두고 블랙골드를 향한 포스트식민주의의 포석이 아니냐며 비판의 눈길을 주기도 했다. 당시의 `아프리카 셀`이 그것을 말해준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셀`이란 프랑스가 아프리카 옛 식민지에 비밀리에 개입해 군 파병부터 내부 쿠데타 조종은 물론 각종 경제적 이권에 관여하는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였다.
그런데 프랑스의 토고 열풍은 바로 영국 때문이었다. 프랑스와 영국은 사이가 안 좋기로 유명하다. 영국 사람들은 13세기부터 미식가 프랑스 사람들을 `개구리 잡아먹는 사람`이라고 조소했으니 양국 간의 그 감정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영국은 남성들이 여성에 비해 책을 멀리하고 있다고 야단법석이었다. 영국 정부가 직접 후원하는 독서 캠페인이 등장했을 정도였다. 영국의 한 교육기관은 초등학교 남학생의 성적이 여학생에 비해 뒤지고 있으며, 그 원인이 독서량의 차이에 있다는 분석을 내놓은 것이다. 영국의 일간지 `옵서버`는 아들이 아버지를 절대적으로 모방하려는 심리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하며 아버지가 먼저 책을 펴주기를 권하기도 했다. 그런데 권장하는 독서 분야가 프랑스인들을 자극했다. 바로 역사 분야였기 때문이었다.
프랑스는 영국의 역사를 생각하며 경쟁심을 불태웠다. 19세기 영국은 망망한 대양을 헤치며 수많은 식민지를 거느렸고 말 그대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다. 프랑스가 영국에게 질 수 있으랴. 식민지 경영의 역사로 따지면 빠질 수 없는 프랑스도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독일과 프랑스는 사소한 일에는 서로 티격태격하지만 중요한 일에는 머리를 맞댄다. 프랑스와 영국은 사소한 일에는 합의하지만 중요한 일에는 대립한다” 는 어느 외교가의 유명한 말이 있다. 유럽연합의 중심국이면서도 단일통화 유로화는 도입하지 않고 손익만을 저울질하고 있는 영국을 독일과 프랑스가 좋아할 리 없다. 게다가`유럽도 똘똘 뭉쳐 미국을 견제하는 유럽 합중국을 건설해야 한다.`고 첫 언급한 사람이 영국 수상 처칠인데, 말만 해놓고 한 발짝 비켜서는 영국이 고울 리 없다.
참으로 재미있는 삼각패스가 아닐 수 없다. 영국의 역사 알기가 프랑스의 아프리카 열풍을 낳았고, 프랑스의 아프리카 열풍은 독일인에게 프랑스의 포스트 식민주의라는 재갈 물리는 구실을 제공했으니 말이다.
이 같은 세 나라의 감정이 브라질 월드컵에서 비록 맞상대로 부닥치지 않더라도 어떻게 표출될 것인지 감상해 보는 것도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