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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생산성의 비밀, 모랄(Morale)

김종찬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세상은 발견의 시대에서 실행의 시대로, 전문가의 시대에서 인공지능의 시대로 바뀌고 있다. 4차산업혁명 이전의 평범의 시대에는 시장지배적 기술 한 두개가 생산성을 주도하였고 모범사례 대로 생산하면 큰 위기없이 성장할 수 있었다.그러나 시대는 그야말로 급변하고 있다. 체류하는 순간 이 시대는 냉정하고 단호하다. 그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으며, 그리하여 기업은 끊임없이 새로운 시대를 향해서 변화해 가고 있다.이토록 빠르게 돌진하는 시대 속에서 변화의 거센 물결이 불가항력일 수 밖에 없어 변화에 적응 하지 못하는 기업은 사라져 가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문제의 발견 보다 실행이 중요해지고 전문가 보다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시대에는 의외로 기본적인 것이 지속 가능한 기업의 경쟁력이 된다.인천 남동공단의 모기업을 컨설팅 할 때의 일화이다. 컨설팅 로드맵에 따라 전 직원 대상으로 ‘변화관리’ 교육을 실시하고 현장 개선활동을 막 시작한 초기에 C조에서 갑자기 생산성이 30%가 향상 되었는데 그 원인을 알 수 없었다.동일한 표준과 설비를 사용하고 조별 근속 연수도 비슷하고 제품의 규격도 특이점이 없었으니 C조 생산성의 비밀은 영원히 묻히나 싶었다.이 때 필자는 생산성 향상의 비밀을 찾아 내고자 생산현장을 관찰하던 중 사소한데서 그 답을 찾아내고 사장과 얘기를 나누었는데 사장은 말없이 웃는 것으로 답이 아님을 세련되게 부인하고 있었다.필자가 찾아낸 답은 C조는 ‘변화관리’ 교육 후 리더인 주임의 솔선으로 사기와 의욕인 ‘모랄(Morale)’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모랄은 실행력을 향상 시키는 열쇠이자 긍정적인 문화를 만드는 에너지다.모랄은 정해진 규칙을 지키게 하고, 정해진 점검을 완벽하게 이행하며 이상은 즉시 조치 하게 하는 마음의 소양이다.무슨 거창한 이유를 제시해야 되는데, 이렇게 평범한 모랄이라는 것을 생산성 향상의 답이라고 내 놨으니 인정하지 않았던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모랄에는 우리가 모르는 아주 중요한 비밀이 숨어있다. 표준은 지식의 영역이며, 지식을 실행하게 하는 힘은 모랄의 영역이다. 모랄이 낮은 조직은 우수한 표준이 있어도, 최고의 기술이 있어도, 실행되지 않은 액자 속의 비전에 지나지 않는다.지식은 근속연수와 함께 쌓이는 특성이 있으나, 모랄은 관리자의 꾸지람이나 공정하지 않은 평가에 쉽게 무너지는 특성이 있다.백과사전 몇 권 분량의 지식이 있어도 실행에 이르게 하는 모랄이 없으면 아무런 변화도 끌어낼 수 없다.양치컵을 사용하면 4.8리터의 물이 절약되고, 샤워 시간을 1분 줄이면 12리터의 물이 절약되며, 비누칠 할 때 수도꼭지를 잠그는 것 만으로 6리터의 물이 절약된다는 것을 아는 것 만으론 결코 물을 절약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부뚜막의 소금도 집어 넣어야 짜다”는 실행을 강조한 속담이 4차산업혁명의 시대를 살아가는 기업에 여전히 유효한 말이 아닐까.

2022-03-14

전임 대통령을 반면교사로 삼으라

김진국 고문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5월 10일 취임한다. 두 달 정도 남았다. 대통령 임기를 통틀어도 이때만큼 희망에 부풀고, 기세가 오를 때가 없다. 후임 대통령이 정해지고, 퇴임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면 아쉬움과 후회가 파도처럼 몰려온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다.윤 당선인의 10일 기자회견은 그런 희망과 의욕이 넘쳤다. 과거 대통령들도 취임할 때는 다 좋은 말만 했다. 취임사만 보면 어떤 대통령이 한 말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좋은 말은 다 가져다 쓰기 때문이다. 자신의 진심보다 국민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했다. 그러고는 잉크보다 빠르게 취임사를 머리에서 지워버렸다.대통령들의 취임사는 국민이 원하지만, 대통령이 하기 싫거나, 할 수 없었던 일들의 집합이다. ‘ABM’(A nything But Moon, 문재인 지우기)은 아니라도 일종의 반면교사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가장 먼저 “(오늘은)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진영 갈등이 어느 때보다 극심했다.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은 소외감을 느꼈다.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나누어 군중 집회를 열었다.윤 당선인도 당선 배경을 “국민을 편 가르지 말고 통합의 정치를 하라는 국민의 간절한 호소”라고 말했다. 또 “오로지 국익만이 국정의 기준이 되면 우리 앞에 보수와 진보의 대한민국도 영호남도 따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말은 쉽다. 실천하려면 힘들고 고통스럽다.윤 당선인이 마주한 정치 환경은 훨씬 열악하다. 진영 갈등에 세대 갈등, 젠더 갈등이 더하고, 사라질 것 같던 지역 갈등도 아직 남았다. 국회는 여소야대(與小野大)다. 국민의당과 합당해도 113석이다. 5분의 3 의석(180석)이면 개헌을 제외하고는 뭐든 할 수 있다. 여기에 대선 득표 차이도 역대 가장 적은 24만7천77표다. 취임하고 한 달도 안 돼 지방선거가 닥친다. 허니문 없이 바로 대결로 치닫는다.윤 당선인은 “여소야대 상황을 통해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정치가 훨씬 성숙해 나갈 기회”라고 했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1988년 여소야대 국회는 4당 체제였다. 야당도 어느 한 당이 독주할 수 없었다. 보수당인 김종필 총재의 신민주공화당이 캐스팅보트 역할도 했다. 지금은 민주당이 독주하는 국회다. 선거 도중 민주당이 약속한 다당제로 갈 수 있다면 협치가 쉬워진다.문 대통령은 “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라며 “대통령이 나서서 직접 대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는 그 반대였다. 거대 야당을 마주한 윤 당선인의 대화는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민주당을 쪼개는 인위적인 정계 개편을 거론하는 사람도 있다. 경선 과정의 갈등으로 민주당이 스스로 갈라설 수는 있다. 권력이 개입하면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든다. 민주당 인사를 발탁하더라도 와해 공작으로 접근하면 곤란하다. 13대 국회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보여준 인내의 협치가 필요하다.“공이 있으면 상을 주고, 능력이 있으면 자리를 주라”고 했다. 문 대통령도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쓰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코드 인사’로 일관했다. 윤 당선인이 정치를 오래 하지 않아 빚이 적다는 건 오히려 장점이다. 과감한 결단이 가능하다.윤 당선인은 “기자 여러분과 간담회를 자주 갖겠다”고 약속했다. “퇴근길 시장에 들러 시민들과 격의 없이 대화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약속은 빈말이 됐다. 기자회견도 10번이 안 된다. 정부의 잘못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정직한 정부가 되겠다는 윤 당선인의 약속도 문 대통령 말과 같다. 말보다 실천이다. ‘내로남불’이 정권교체의 가장 큰 동력이 된 걸 잊어선 안 된다.윤 당선인은 공정의 상징으로 소환됐다. 문 대통령도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좋은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국민이 원하는 말을 하면 박수받는다. 문제는 실천이다. 더 좋은 지도자는 박수받지 못해도 힘든 일을 해내자는 주문을 하는 사람이다./본사 고문

2022-03-13

“기후 대응·탄소중립, 피할 수 없는 국가현안”

위현복(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RE100’은 지난 2월 3일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 거론되면서 갑자기 유명해진 단어다.당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질문했고, 지금은 대통령 당선인 신분인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대답을 하지 못하는 바람에 논란이 됐었다.RE100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 전부(100%)를 신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로 충당하겠다는 캠페인이다. 구체적으로는 2050년까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만 충당하겠다는 다국적 기업들의 자발적인 약속이다. 2월 현재 구글, 애플, GM, 이케아 등 349곳이 참여해있고, 국내에서는 SK그룹 계열사 8곳과 LG에너지솔루션, 한화큐셀, 고려아연 등 14곳이 참여를 선언했다.대선 토론회 당시 윤석열 후보가 RE100에 이어 들어본 적이 없다고 대답한 ‘EU택소노미(EU Taxonomy)’는 원자력발전과 관련된 민감한 문제다. 어떤 에너지원이 친환경·녹색 사업인지 아닌지를 알려주는 기준으로, 유럽연합(EU)의 ‘녹색분류체계’라고 보면 된다.택소노미에 포함된 에너지업종에 대해서는 각종 금융 및 세제 지원을 제공해 투자를 유인한다. EU가 세계최초로 2020년 6월 EU판 그린 택소노미 가이드를 발표했다.확정안에 따르면 신규 원전 투자가 친환경 활동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투자 대상이 될 신규 원전은 2045년 전에 건축 허가를 받아야 한다. 기존 원전의 수명 연장은 2040년까지 승인이 필요하다. 신규 원전을 짓는 EU 회원국은 2050년까지 방사성 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는 세부 계획을 세워야 한다.우리나라는 2020년부터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인 K-택소노미를 준비해왔다. 2021년 5월 초안공개에 이어 2021년 12월 말에는 최종안을 공개했다. 여기에는 원전이 아예 제외되었다.신재생 에너지만으로 100% 전력을 생산하면 더없이 좋으나 2050년까지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벅찬 게 현실이다.그래서 프랑스 등 탈원전을 추진했던 나라들로부터 다시 원전이 각광을 받는데, 문재인 정부는 대선공약이라며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경쟁력 있는 한국의 원전을 5년간 사장시키고 폐기하다시피 했다.이명박 정부 때 UAE에 원전 4기 공사를 수주했으나, 이제는 이집트 원전건설 하청업체로 전락한 걸 자랑할 지경으로 원전 산업도 뒤처지고 말았다.지금까지의 정책적 흐름을 살펴보면, 이명박 정부는 ‘녹색성장(Green Growth)’이라는 이율배반적인 기막힌 용어까지 만들어서 적극적으로 신재생에너지 정책을 펼쳤다.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모든 정책을 거꾸로 갔기 때문에 ‘기후정책이 멈춰 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원전을 폐기하고 동시에 전국 산야를 태양광 투기판으로 변질시켜 기후정책과 탄소중립이 오히려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상황으로 치달았다.이제 탄소중립은 국가도 기업도 피할 수 없는 당면 과제가 됐다.문재인 정부도 지난해 2018년 배출량 대비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40%를 절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세계는 1988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를 설립하여 차근차근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최근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 11년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갈지자 행보를 하여 세계적인 추세에 한참 뒤처지는 엉뚱한 정책을 시행하였다.내년부터 EU에서는 제품 수입 시 탄소세를 부과할 계획이고, 이제 탄소중립은 우리 기업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었다.특히 철강산업, 자동차산업, 조선산업 등 탄소중립에 취약한 제조업이 우리나라의 주력 산업이고 가장 타격을 많이 입을 것을 생각하면 정신이 아찔해진다.새 정부는 모든 선입견과 감상적 판단을 떠나 냉철히 세계적인 추세와 현실을 직시하여 ‘기후변화대응·탄소중립’이라는 도전을 새로운 성장의 기회로 삼고 기업과 국가경쟁력 향상의 계기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문재인 정권이 지난 5년간 하지 말아야 할 정책을 추진하다 나라를 어떤 지경으로 만들었는지를 냉정하게 되돌아보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새 정부는 혁신하고 또 혁신해야 한다.기후변화에 대한 대응과 탄소중립은 정부만의 역할로는 안된다. 당장 피해는 기업으로 오고 부담은 국민 모두에게 돌아간다. 그래서 작든 크든 가릴 것 없이 정부는 정부대로, 기업은 기업들대로, 국민 모두가 각자 적극적으로 역할을 찾아서 감당해야 선진국 추세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항상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만들었던 한민족 DNA를 살려서 지금이라도 정신 바짝 차려 기후변화 선도국으로 나갈 수 있도록 국민 모두가 나서야 할 때다. RE100! 우리 모두가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다.

2022-03-13

슬도

화면 가득 노란색이 손짓한다. 저기가 어딜까 하고 클릭해보니 ‘슬도’라고 했다. 처음 듣는 이름의 섬에 우리 동네에는 아직 고개를 내밀지 못한 유채꽃이 환하게 피었다. 파도 소리 들으며 해풍에 몸을 맡기고 노랑노랑 흔들리고 있었다. 얼른 간식 바구니를 챙겨 집을 나섰다.달려가니 울산 대왕암 근처였다. 소문을 나만 들은 게 아닌지 주차장이 꽉 찼다. 마침 빠지는 차가 있어서 차를 내려놓고 섬을 향해 걸었다. 이제는 섬이라 불러도 되나 싶게 작은 슬도까지 방파제가 연결되어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오갔다.울산 동구 방어진항 끝에 있는 슬도는 바위에 구멍 투성이라고 곰보섬, 또 항으로 들어오는 거센 파도를 막아주는 바위섬에 갯바람과 파도가 부딪칠 때마다 거문고 소리가 난다 하여 슬도(瑟島)라 불려 이름이 여러 개이다. 슬도의 본래 이름은 시루섬이었다.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음이 비슷한 슬도가 됐다. 퇴적된 사암이 켜켜이 층리를 이룬 슬도의 모습은 여지없는 시루떡 모양새다. 떡 찌는 시루에 구멍이 숭숭 난 점을 보면 시루섬이란 이름이 안성맞춤이다.바위가 백 만개가 넘는 구멍으로 뒤덮였다. 모두 돌맛조개가 판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슬도 인근에서 돌맛조개가 발견된 적은 없다고 한다. 구멍들은 표면에만 있는 게 아니다. 수면에 잠긴 부분에서도 수없이 발견된다. 수면 아래로 내려갈수록 둥근 형태가 뚜렷하다. 어떤 구멍에는 따개비나 덩굴 생물이 자리를 잡고 있다. 돌맛조개가 버린 ‘집’을 자신의 집으로 삼은 것이다.지금까지 슬도에 대한 공식적인 학술조사는 없었다. 최근 슬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방파제(150m가량)가 설치된 뒤부터 관심이 늘었다. 사람들도 많이 찾는다. 슬도 인근 주민들은 바위의 구멍이 파도에 의해 뚫렸을 것으로 짐작했단다. 섬 꼭대기에도 구멍이 있는 것을 보면 해저 암반이 융기해 섬이 생성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물속에 잠겨 있을 때 조개가 구멍을 팠을 것이란 얘기다. 슬도의 퇴적암층에 꼬막 화석이 발견된 것이 이를 증명한다.바위에 난 큰 구멍이 하얗다. 파도가 들어와 말라 소금으로 변했다. 섬 위에 우뚝 선 하얀 등대에 푸른 고래가 휘감고 헤엄쳐 오른다. 그 앞에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 한 마리를 등대 높이만큼 세웠다. 슬도의 거문고 소리에 맞춰 푸른 고래들이 유유히 바다로 향할 듯하다.대왕암까지 오솔길이 나 있다. ‘슬도 바다길’이라고 해파랑길의 한 구간이다. 등대에서 걸어 나와 소리박물관을 지나다 보면 말 한 마리 키우는 카페가 있다. 성끝마을이다. 동네 이름이 성끝마을인 이유는 조선 시대 이곳에 말을 키우려고 울타리를 쳤는데 마성이라 불렀고 그 끝자락에 있는 마을이라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마을 담장에 벽화를 감상하며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노랑의 물결이 눈을 환하게 하고, 쐬아아 밀고 들어오는 파도가 귀를 시원하게 만든다. 왼쪽은 유채꽃 바다(키가 유난히 작다 했더니 알고 보니 청경채 꽃이라고 했다), 오른편은 동해다. 두 가지 맛의 아이스크림을 한꺼번에 입에 머금는 순간처럼 몸이 화하다.슬도의 가장 매력은 또 있다. 동해에서 드물게 노을을 볼 수 있다는 것. 말간 하늘보다 수평선 위로 바삐 귀가를 서두르는 듯 자리를 정리하는 해를 뭉싯거리는 구름이 가리기라도 하면 더 멋진 풍경화가 그려진다. 물이 빠져나갈 때면 등대가 물끄러미 바닷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기다렸다는 듯 등대 뒤편으로 붉은 기운이 내려앉기 시작한다. 노을의 부름에 대답하듯 산책로에 불빛이 들어오고 등대도 빛을 쏟아낸다.내항에 불빛이 길게 일렁인다. 밤의 방파제를 산책하노라면 고흐가 그린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다. 낮보다 깊어진 파랑의 하늘에 노란 별이 점점이 박히고, 물 위로 불빛이 흔들리는 그림이 방어진항의 밤 풍경 그대로였다. 낚시를 즐기는 강태공들이 모여든 등대 주위로 슬도가 연주하는 밤의 소나타가 그윽하다./김순희(수필가)

2022-03-13

파랑새를 찾아서

김규종 경북대 교수 벨기에 시인이자 극작가인 모리스 마테를링크(1862∼1949)가 쓴 ‘파랑새’가 떠오르는 시점이다.1908년 출간된 ‘파랑새’를 러시아 연출가 콘스탄틴 스타니슬라프스키가 ‘모스크바 예술극장’ 무대에서 곧바로 상연한다. 외견상 ‘파랑새’는 어린이를 위한 작품 같지만, 그 내면에는 삶의 본질을 찾아가는 기나긴 여로가 자리한다.크리스마스 전날 밤 가난한 남매 치르치르와 미치르는 선물을 받지 못해 의기소침해 있다. 그때 옆집 할머니가 들어와서 앓고 있는 딸을 위해 파랑새를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아이들은 할머니가 건네준 요술 모자를 쓰고 길을 떠난다. 아이들은 ‘추억의 나라’와 ‘밤의 궁전’을 지나 ‘행복의 궁전’과 ‘미래의 나라’를 떠돌다가 돌아온다.아이들이 돌아왔다기보다 엄마가 깨우는 소리에 꿈에서 깨어났다는 말이 더 맞겠다. 아이들이 돌아다닌 세계는 꿈의 환영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옆집 할머니가 들어오자 아이들은 파랑새 대신 비둘기라도 가져가라고 말한다. 아이들의 집에서는 비둘기를 기르고 있었다.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긴다. 아이들의 비둘기 날개가 파란색으로 변하여 그들이 찾아다녔던 파랑새가 집 안에 있음이 밝혀진 것이다. 할머니는 파랑새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고, 딸은 기력을 회복한다. 아이들이 먹이를 주려고 새장 문을 열자 파랑새는 하늘로 날아가 버린다.파랑새는 행복의 상징이다. 요즘 한국인들은 행복의 노예처럼 보인다. 누구나 삶의 가장 큰 원인을 행복에서 찾는다. 행복하지 않으면 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행복 강박증에 중독된 사람들 같다.그런데 그들이 바라는 행복이 무엇이냐고 따져 물어보면 돌아오는 답변이 별로 없다.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한다.행복의 조건을 숙고하지 않은 채 행복을 추구함은 허전하고 이상하다. 왜 부자가 되려는지, 왜 결혼하려는지, 왜 대학에 들어가려는지 생각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남들이 행복을 찾고, 부자가 되려 하고, 결혼과 진학은 누구나 하는 거니까 거기 맞춰 살아가려는 게다. 오랜 세월 독재자들의 병영국가, 군사 국가의 국민으로 살아서 그런지 우리는 전체주의와 획일주의에 익숙하며 그것에 순치(馴致)돼 있는 것도 사실이다.우리가 아침저녁으로 마주하고 보고 듣고 먹고 마시는 온갖 것을 돌이켜보면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다. 이토록 차고 넘치는 물질과 재화와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때로 격절(隔絶)된 작은 섬들을 본다. 난바다에 둥둥 떠서 서로를 목청껏 부르지만, 누구도 그 목소리에 호응하지 않는 차갑고 비정한 세상.3월 9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대선이 끝났다. 홀가분하다. 북새통처럼 시끌벅적하던 사위(四圍)가 고요해지니 이제야 사람 살아가는 세상처럼 보인다. 사람 하나 바뀐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전혀 없다. 그러니 다투고 시비하던 사람들이여, 이제는 제자리로 돌아가 차분하게 일상과 대면하시라. 당신이 기다리던 진정한 파랑새는 거기 있을지 모르니까.

2022-03-13

전면개편 앞둔 K방역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K방역이 머지않아 전면개편될 전망이다. 제20대 대통령선거 투표가 진행된 지난 9일 0시 기준 국내 신규 확진자는 34만2천446명으로 국내 유행 이후 처음으로 30만명을 넘어섰다. 이후 연일 20만∼30만명대 신규 확진자가 쏟아져 누적 확진자 수는 620만6천291명에 이르렀다.이에 따라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국민의힘 윤석열 당선인의 코로나19 방역정책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집권 100일 이내 코로나19 대응체계를 전면 개편하겠다고 공언해왔기 때문이다. 윤 당선인은 문재인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으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 집중된 피해가 장기화하고 있다고 보고, 과학과 빅데이터에 기반한 방역 조치를 시행하기 위해 ‘과학 기반 사회적 거리두기 기구’를 설치하겠다고 했다.또 대통령 직속 코로나 긴급구조 특별본부 설치와 소상공인·자영업자 등 피해 업종 지원 방안 등도 약속했다. 장기적으로는 중증환자를 돌볼 수 있는 의료 자원과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 공공정책수가를 도입하고, 대규모 감염병 사태가 벌어졌을 때는 평소보다 가산된 수가를 적용해 의사나 간호사 등 의료인력의 이탈을 막겠다고 약속했다.이에 더해 윤 당선인은 코로나19 백신 접종 후 이상반응으로 의심되는 사망·중증 사례에 대해서는 정부가 직접 인과관계 증명에 나서고, 충분한 치료와 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피해 회복에 대한 국가 책임제를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방역 컨트롤타워도 대거 교체될 것으로 보인다. 윤 당선인은 전 세계에 자랑한 K방역이 실상 자영업자 희생시키는 주먹구구식 방역, 거리두기라고 비판했다.어떻든 결과적으로 국민을 고통에 빠뜨린 K방역의 폐해가 하루빨리 시정되길 기대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3-13

5년간 망가진 나라 바로 세워 주길

정상호경북취재부장 윤석열 후보가 이재명 후보를 누르고 20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의 열망이 윤 후보에게로 모였기 때문이다. 윤 후보의 당선은 문재인 정권 5년간 지치고 실망한 국민이 투표로 준엄한 심판을 한 것이다.지난 5년 간 문재인 정권은 국민과 나라를 위한 정치보다 자신의 지지 세력만 바라보며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로남불로 대변되는 위선과 불공정에 국민들 가슴은 부글부글 끓었다. 국민과 야당이 그토록 반대해도 임기 내내 자기 사람을 정부 곳곳에 심는데 주저하지 않았다.외향적 경제지표와 달리 국민들 입에선 지난 정권보다 살기 어려워졌다는 불만이 터져 나온지 오래다. 내놓는 정책에도 불구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면서 이제 서울은 물론 지방마저 월급 모아 집 사는 꿈은 멀어졌다. 규제를 풀고 공급을 늘려 집값 상승을 억제하는 대신 재건축에 온갖 조건을 갖다 붙이고 대출을 옥죄면서 집값은 그야말로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됐다. 전문가들은 반시장적 정책을 참사의 원인으로 꼽는다.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 있었더라면 나았을 것이라고 한탄한다. 부동산정책만은 자신 있다고 큰 소리 치더니 결국은 국민에 사과하는 것으로 마무리 됐다.생소한 소득주도 성장정책은 선무당 사람 잡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급격한 최저임금인상은 되레 일자리를 줄이고 경제의 주름살만 가중시켰다. 기업들은 각종 규제와 근로시간 단축에 투자의욕이 꺾이고, 그 바람에 젊은이들이 원하는 좋은 일자리는 쪼그라들었다.영화 한편에 감동해 시작된 탈원전은 50년간 쌓아온 원전강국의 위상을 흔들고 수많은 원전 강소기업들이 고사하는 믿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도 이제와선 탈원전 정책을 편적이 없다고 강변하니 뻔뻔함에 말문이 막힌다.국민들이 윤석열 후보에 표를 던진 요인 중 안보 불안이 큰 작용을 했다. 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무수한 도발행위에도 문재인 정권은 북한 김정은 남매의 심기가 더 중요한지 말 한마디라도 단호하게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애초 북한이 주적인지 물어도 대통령은 ‘그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우리 안보의 절대적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는 국민이 보기에 문재인 정부 내내 불안불안해 보였다. 미국과의 군사적 동맹은 우리 생존에 필수적 사항이 아닌가. 그런데 사드 배치를 비롯한 각종 사안마다 문재인 정권은 중국의 눈치를 살피느라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야당의 반미, 친북, 친중, 친러 정권이라는 성토가 국민의 가슴에 더 와닿는 것이다.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먼저 해야 할 일은 문재인 정권이 5년간 망가뜨린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훼손된 정의와 공정을 바로 잡아 비정상적인 나라를 정상화 시키고 튼튼한 국방력을 회복시켜 국민의 안보불안을 잠재우는 일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그 다음은 각종 규제를 타파해 기업의 투자의욕을 북돋워 침제된 경제를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무엇보다 윤석열 당선인은 지방 유세 때 약속했던 사안들을 실천해 대한민국의 균형발전을 이뤄주길 바란다. 지방소외란 말이 윤석열 정권에선 나오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2022-03-10

메르켈처럼

우정구 논설위원 작년 9월 독일 총리직에서 물러난 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에게는 많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독일 사상 첫 여성총리이자 최연소 총리, 유럽 최장수 여성총리 등과 더불어 포브스가 선정한 9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등이 그것이다.그러나 그보다 그녀의 사상과 철학을 반영한 메르켈리즘은 그를 더 유명하게 만들었다. 권력을 과시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포용하면서 힘을 가진 정책을 관철시키는 그의 리더십이다. 엄마 리더십이라고도 부른다. 엄마처럼 상대방의 의견을 듣고 부드럽게 소통해 결과를 이끌어 내는 힘이다.그의 소통력은 EU 단합을 이끌었고, 그의 포용력은 100만 명이 넘는 난민을 수용하게 하는 쉽지않은 일의 원동력이 됐다. 또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반대당이 주장하는 탈원전 정책도 과감히 채택하는 유연성도 보여주었다.독일의 한 작가는 “메르켈은 꿈과 비전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는 실현 가능한 것을 생각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그녀의 생각은 온갖 실용적 가치에 몰두해 있다는 것을 꼬집은 말이다.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많은 기대와 주문이 몰려있다. 새 대통령이니까 많은 기대가 몰리는 것은 당연하나 투표를 통해 확인된 갈라진 민심을 보니 국정 수습이 쉽지 않아 보여 걱정이다. 가시덤불보다 더 험한 길을 헤쳐가야 할지 모른다.메르켈리즘의 가장 큰 특징은 실용주의다. 국가와 국민에게 이익이 있다면 좌우를 가리지 않고 국익을 선택하는 것이다. 양보와 협력, 협치, 통합, 포용 등 국민 신뢰를 얻기 위한 정치적 수단을 동원하는데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메르켈리즘을 타산지석으로 삼는 것도 좋을 것 같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3-10

새 당선인의 반면교사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반면교사(反面敎師)란 말이 있다.‘따르거나 되풀이해서는 안 되는 나쁜 본보기’를 일컫는 말이다. 1960년대 중국 문화혁명 때 마오쩌뚱이 처음 사용한 ‘반면교재(反面敎材)’란 말이 변한 거라 한다. 당시 마오쩌뚱은 제국주의자, 반동파, 수정주의자들을 반면교재로 삼아야 한다고 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가 추진한 문화혁명이 바로 후세의 반면교사가 되었다. 이번 선거의 당선인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반드시 지금의 정권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물론 잘한 것이 있으면 본받고 이어가야 하겠지만 행적의 대부분이 버리고 바꾸어야 할 것들이 때문이다.우선은 종북주사파들이 주축이 되어 철지난 이념과 왜곡된 역사관으로 나라의 근간이자 정체성인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한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사회주의국가인 중국과 인접해 있고 핵무기로 위협하는 북한과 대립하고 있는 처지에서는 자유민주주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신념으로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것이 무엇보다 나라의 안정과 발전의 기반이 된다는 걸 명심하시기 바란다.다음으로는 법치주의에 대한 인식이 확고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편법, 탈법을 당연시 하고 법 위에 군림하는 정권의 폐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무엇보다 민주주의의 기본인 삼권분립이 엄정하게 지켜지기를 바란다. 입법부는 물론 사법부까지 장악한 정권이 하는 일이 독단과 전횡 밖에 더 있는가. 위헌의 소지가 있는 법안들을 힘으로 밀어붙여 통과시킨다거나, 정권의 비리와 부정에 대해서는 수사를 하는 척 늑장을 부리거나 수사팀 자체를 해체해버리는가 하면 편파판정도 마다하지 않는 걸 보아온 터다.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 중의 하나가 용인술, 즉 인재를 적재적소에 등용하는 능력이라는 건 동서고금의 역사가 증명하는 바다. 지도자가 자만심을 가지고 만기친람하려 들어도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지만, 그릇된 이념이나 당파에 매몰되어 편파적인 인사를 하는 것은 나라를 망치는 원인이 된다. 문제인 정권은 능력이나 적절성 등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편이냐 아니냐가 인사의 기준이었다. 각 부처 장차관은 물론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중앙선관위까지 정권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채워놓고 공정과 정의를 말하는 후안무치는 당연히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문재인 정권의 임기 말 지지율은 역대 대통령 중 최고라고 한다. 잘한 것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는데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바로 ‘편 가르기’의 효과라는 걸 아는 사람은 안다. 일단 편을 갈라 상대를 적폐로 몰고 증오와 적개심을 부추기면, 소위 ‘대깨문’ 같은 맹목적 추종자들이 생겨나서 머리가 두 쪽 나도 일편단심 지지철회를 않는 것이다. 이것을 반면교사 삼지 않고는 아무리 통합과 공존을 외쳐봐야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이다.그 밖에도 임기 5년을 고작 몇 차례 기자회견으로 끝낸 불통정치, 이념에 치우친 반미친중 외교와 굴종적 대북정책, 문정권 트레이드마크인 ‘내로남불’과 적반하장도 반드시 반면교사로 삼기 바란다.

2022-03-10

대선, 새로운 정권을 택하다

윤영대수필가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통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었다. 코로나19의 급격한 확산 속에서 치르진 선거 열풍은 사전투표와 본 투표에서 총 유권자의 77.2% 투표라는 기록을 세웠고 광주에서는 81.5%가 참여할 만큼 이번 투표는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린 선거였다. 4강 대결 구도였으나 마지막에 윤석열-안철수 후보의 단일화가 이루어졌고, 각자 ‘위기에 강한 대통령, 국민이 키운 내일을 바꾸는 대통령, 주4일제 복지국가와 일하는 시민 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온갖 비리와 가정사를 뒤적이며 욕설과 폭로로 뒤범벅되어 싸워왔던 선거였다.사전투표에서 드러난 몇 건의 부정투표 흔적을 기억하며 투표장으로 가서 받아든 기다란 투표용지에 조심스럽게 도장 찍고 접어서 투표함에 넣으면서 깨끗한 선거가 되기를 빌었다. 확진자 투표가 종료되고 곧 시작된 개표방송에서 공개된 사전 출구조사는 차이가 1%를 밑도는 박빙의 대결이었고 6일간의 여론 조사에서도 오르락내리락하며 예측 불가의 선거판이 됐었다. 만18세가 처음으로 참여했고 40대는 2~30대, 5~60대와 지지 후보가 다른 세대 차이도 보였고 20대는 이대남, 이대녀로 갈라져 표심도 달랐으며 영남과 호남의 지역 격차가 컸다는 것도 우리 국민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방송사들은 정규방송을 중단한 채 개표방송에 들어갔고 처음에는 2%도 안 되는 작은 차이로 여당 후보가 앞섰으나 자정이 넘어서면서 야당 후보가 그만큼 앞서갔다. 48.6%와 47.8%의 수치는 출구조사 결과와 거의 같아서 놀랍고 변화 없이 차이를 유지하다가 새벽 3시가 지나자 당선 확실이라는 화면이 떴다. 이번 선거결과에 마음이 끌려 밤새워 시청하다가 창밖을 내다보니 많은 아파트의 창문에 불이 켜져 있어 모두가 이번 선거의 결과에 걱정이 많구나 생각했다. 한밤중에 휴대폰이 카톡 대며 지인들이 밤새워 선거결과에 대한 문자를 보내왔다.국내에는 아직도 울진, 강릉 산불이 숲을 태우고 있고 해외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계속되는 우려 속에 우리는 이 나라 5년을 이끌어 나갈 대통령을 뽑는 어려운 일을 해냈다. ‘투표는 총보다 강하다’라는 링컨의 말처럼 국민 모두가 한표 한표 던져서 응원을 보냈고 후보들도 그 힘을 얻어 뛰었을 것이다. 각 후보들은 경제 분야에서는 기본소득, 청년 기회, 손실보상과 좋은 일자리 등을 설파했고 기후위기 과제에서는 에너지 고속도로, 탄소 중립, 탈원전 폐기 등을 내걸었으며 출산과 육아의 복지문제 등에도 각자의 정책을 내세웠다. 이제 당선자는 이들 선거공약을 재검토하고 상대방 의견도 받아들여서 그동안 비뚤어지고 엇길로 새어나간 정책 등을 바로잡고 정치와 정권 교체를 잘 이행하여 새로운 국가 사회를 이루어 주면 좋겠다.당선 확정 새벽에 한 인사말처럼 새 정부를 준비하고 헌법정신과 의회를 존중하며 야당과 협치하여 국민을 잘 모시겠다는 약속대로, 막대한 권한을 휘두르지 않는 대통령이 되어 ‘미래를 바꾸겠다’는 출마 의지를 지켜주기 바란다. 휘두르는 새 권력이 아니라 혼란을 극복하고 통합과 화합의 시대를 여는 새 살림꾼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2022-03-10

금강송

우정구 논설위원 소나무는 우리나라 대표 나무다. 전국 산야 어디서나 쉽게 구경할 수 있는 상록 침엽수다. 푸르다하여 솔나무라 부른다. 한자말 송(松)은 목(木)과 공(公)자가 합쳐진 것으로 나무 중 최고 작위를 가졌다는 뜻이다. 소나무에는 금강송, 반송, 황금송, 여복송, 처진소나무 등 많은 종류가 있다. 수령이 오래된 소나무와 소나무숲은 천연기념물로 당국의 특별한 보호도 받는다.충북 보은군에 있는 정이품 소나무(천연기념물 103호)는 수령이 약 600년이다. 조선 세조가 이곳을 지날 때 밑가지를 열어 가마가 지나갈 수 있게 해 정이품 벼슬이 내려졌다는 얘기가 전해진다.경북에도 청도 운문사의 처진소나무와 예천의 석송령, 영양 만지송, 포항 북송리의 북천수 등이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다.특히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일대에 자생하고 있는 금강송은 소나무의 제왕으로 명성이 자자한 나무다. 곧고 단단한 재질 때문에 궁궐과 천년고찰의 대들보로 주로 사용됐다. 조선 숙종 때는 보호할 가치가 높아 임금의 명으로 산의 출입이 제한되고 벌채도 함부로 못했다. 2008년 화재로 유실된 숭례문을 복원할 때도 금강송이 사용됐다. 금강송은 단단하다고 붙여진 이름이고 속이 노랗다고 하여 황장목(黃腸木)이란 이름도 있다. 또 표피가 붉은색을 띠어 적송이라고도 하며 매끈하게 잘 뻗었다고 하여 미인송이라는 별명도 있다.울진군 소광리 일대 금강송 군락지에는 1천만 그루가 넘는 소중한 소나무가 자생한다. 지난 울진 산불로 이곳이 하마터면 크게 훼손될 위기에 빠졌지만 다행이 큰불로 번지지 않았다. 군락지 보호를 위한 특단 대책이 있어야 한다. 수백년 세월을 이겨온 금강송은 돈으로 가치를 환산할 수 없다. 화마로 잃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3-10

갓 퍼 올린 물동이처럼

장규열 한동대 교수 미생물학자이며 의사인 소크(Jonas Salk) 박사의 생각을 다시 새긴다. ‘50년 후 벌레들이 없어진다면 지구는 멸망할 것이지만, 사람들이 사라진다면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 될 것이다’지구와 환경을 혼탁하게 만들어 지구가 망가지는 건 둘째 치고라도, 인간들은 서로를 헐뜯는 자중지란 끝에 공동체성이 무너진다는 경고가 아닌가. 그러니, 아름다운 지구를 회복하려면 인간보다 벌레들이 융성하는 게 낫겠다는 충언이 아닌가.대선이 막을 내렸다. 열심히 다투었다. 서로 흠집과 상처를 드러내느라 얼마나 힘들었는가. 등지고 돌아서는 일이 그간의 일상이었다. 이제는 돌아보고 보듬는 열심을 내어야 한다.‘치열하게 싸웠지만 우리는 모두 한 팀이 아니었느냐’며 국민들을 다독였던 미국의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을 기억한다. 민주주의의 작동방식 가운데 선거가 꽃인 까닭은, 선거가 있어 힘을 가진 이들을 주기적으로 비판하고 평가하며 공동체의 나갈 방향을 다시 헤아려보는 데 있지 않을까.돌아보면 부작용도 있고 가짜뉴스와 마타도어도 없지 않았지만 길게 보아 선거가 있어 우리는 늘 새로움을 경험하는 셈이다. 우물에서 갓 퍼올린 물동이처럼 새 정부를 우리는 한마음으로 반겨야 한다. 우리는 어차피 한 팀이었으니까.프랑스의 정치철학자 루소(J.J.Rouseau)는 사람들이 겪는 선거의 경험에 관하여 ‘사람들이 스스로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대단한 착각이다. 그건 선거기간 뿐이다. 선거가 끝나는 순간, 모두 다시 노예가 되어버린다’고 경고하였다.5년을 맡겼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비판적으로 관찰하고 감시해야 한다. 그가 우리에게 던졌던 약속들이 기대만큼 지켜지는지, 그들이 우리에게 다짐하였던 회복과 화합이 실천되는지, 나라의 청년들과 지역에도 꿈과 희망이 이루어지는지 지켜보아야 한다. 그늘지고 어두운 구석이 이제는 사라지고 새 힘이 온 나라에 솟아나는지 살펴야 한다.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나라의 기운이 꺾일라 치면, 언제라도 매서운 채찍을 가할 수 있도록 국민이 깨어있어야 한다. 민주주의가 국민에게 보장하는 ‘견제와 균형’을 끌어 올려야 한다.언어학자 촘스키(Noam Chomsky)는 ‘지성인들은 권력의 이해에만 복무하는 사람들’이라고 비꼬았다. 자신의 이익에만 몰두하며 사회적 부조리에 침묵하는 이기적 행태를 꼬집은 게 아닌가. 변화와 혁신에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목소리를 내고 지속적으로 제언하는 시민의식이 필요하다는 요청으로 들린다.학벌과 지연, 차별과 격차, 혐오와 차단으로 숨이 턱턱 막히는 사회적 지평은 집단적 자폐현상을 부르고 있다. 대통령과 새 정부는 나라와 국민의 선 자리를 분명히 보고 화합과 회복의 길을 찾아야 한다. 세월이 가면 나아져야 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수렁에 처박히는 느낌이 아닌가. 치열했던 동서냉전의 막바지에 미국 대통령 부시(George Bush)는 ‘보다 친절하고 부드러운 나라’가 되자고 당부하였다. 상처투성이로 남는 게 없기보다, 아픔을 딛고라도 국민의 위대함을 증명할 때다.

2022-03-10

골목에 갇힌 고래들

양태순수필가 마을은 공동체의 공간이다. 사람들이 모여 유기체적 조직을 이루고 삶을 공유 또는 정서적 유대를 이루어 나가는 곳이다. 사람들은 생활에 필요한 물질적인 공급을 위해 노력하고 손을 번성시킨다. 그리고 골목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정으로 맺어준다. 각각의 역할이 어우러지면 마을은 살아서 움직인다.날이 좋아 나선 길이 신화마을에 닿았다. 마을은 고요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할머니 세 분을 보았다. 여기저기 고개를 디밀었다. 분홍담 너머로 들여다본 집은 벽이 무너지고 마당에는 잡풀이 무성했다. 그런 집이 여럿이었다. 낮은 처마여서 햇빛이 들어오지 못하여 멀리서 서성이다 돌아선 집들은 곰팡이꽃이 자라고 있었다. 사람이 사는 집도 뒤죽박죽 쌓아둔 물건과 다 닳은 신발, 소쿠리가 보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고래 그림 앞에서 멈췄다. 수영하는 아이가 헤엄치는 고래의 턱을 만지자 고래는 할아버지 같은 웃음으로 반긴다. 금을 넘어 파란 물이 밀려왔다. 내 주위에는 마을에서 본 갖가지 고래들이 꼬리를 휘저으며 유유히 헤엄을 치고 있다. 마음이 포실해지려는 찰나였다. 게시판에 펄럭이던 월세 이십 만 원, 방 하나 부엌 하나 벽보가 잉잉 울었다. 문득 이 마을에는 벽화 속에 갇힌 고래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연약한 고래들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신화마을에는 한때 많은 사람들의 보금자리였다. 공단에는 일손이 필요했고 돈벌이가 필요한 사람이 몰려들었다. 한 지붕 세 가족으로도 집이 모자랐다. 공단에 출근하는 사람이 대다수였으므로 월급날은 온 마을이 흥으로 들썩였고 밤낮없이 발소리, 싸움소리, 웃음소리가 골목골목을 누볐다. 수돗가에서 엉덩이 부딪치며 투덕거려도 미운 정 고운 정을 나누는 사람냄새가 있는 마을이었다.세상은 빠르게 변했다. 도시에는 아파트가 들어서고 번듯한 주택이 늘어났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더 나은 곳으로 이사 가기를 꿈꾸었고 그 꿈을 차근차근 이루어갔다. 자전거를 이용하여 출퇴근하던 사람들이 자동차에 흠뻑 빠졌다. 그동안 정들었던 마을을 떠나기 싫어 뭉그적대던 사람들도 자식 교육을 앞세워 슬금슬금 보따리를 샀다. 그렇게 떠나고 남은 사람들은 생활 전선에서 물러난 퇴역일꾼들 뿐이다.신화마을만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자란 고향마을도 그랬다. 새마을운동의 잘 살아 보자는 구호를 믿고 집집이 아들과 딸을 도시로 떠나보냈다. 처음에는 생활비에 보태라고 꼬박꼬박 보내주던 돈은 객지에 가정을 이루자 끊어졌다. 때마다 찾아오던 고향 나들이 횟수가 줄어들더니 번거롭다며 이사를 재촉했다. 싫다고 보채던 가족들은 편의를 따라 도시를 택했다. 골목이 조용해지고 빈집이 늘었다. 지금은 허리 굽은 어른들만 오종종 모여 옛이야기에 열을 올린다.흐름을 쫓아가지 못한 프리즘에 갇힌 동네가 되었다. 삶의 공간은 생물처럼 움직인다는 것을 망각한 탓이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개발의 바람과 최신 문화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랬더라면 들어온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며 다양한 각도로 투영되어 새빛으로 거듭났을 것이다. 우리의 각성이 한 박자 늦어서 안타깝다.마을이든 사람이든 변화하는 물결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지나온 시간에 얽매여 편한 상태에 천착하면 발전은커녕 안과 밖의 경계를 만들게 된다. 하나 둘 떠나간 마을의 쓸쓸한 마을지기가 될 것이고, 새로운 물결에 탑승한 떠들썩한 이들 옆에서 곁가지로 살게 될 것이다. 그러다 그물에 걸린 고래가 바다를 그리워하듯 프리즘에 갇힌 채 바깥을 기웃거린다.신화마을에는 고래가 많다. 벽화에 담긴 고래, 하늘을 나는 고래, 오래된 골목을 휘휘 돌아다니는 고래들이다. 그 고래를 보러 오는 관광객을 향한 지느러미는 안간힘이다. 더 넓은 세상과 더 푸른 세상을 향한 몸짓은 물꼬를 틔워 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듯하다.하늘은 시리도록 파랗고 구름은 바람의 장난질에 가벼운 춤사위다. 고래벽화를 보고 있는 동안 마을 골목에 갇혀 있는 고래들을 풀어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망치로 벽을 부수면 고래는 지느러미 펄럭이며 바다로 가겠지. 바다로 가는 여정은 설렘이 반짝이는 시간이다. 내 가슴이 쿵쾅댄다.

2022-03-09

정묘(丁卯)

정묘(丁卯)는 60갑자 중 네 번째다. 천간은 정화(丁火)요, 지지는 묘목(卯木)이다. ‘병(丙)’은 태양을, ‘정(丁)’은 촛불로 표현하며, ‘묘(卯)’는 ‘토끼’ 또는 ‘달’로 형상화하기도 한다. 정묘(丁卯)는 달 아래에서 촛불을 켜놓고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비는, 기도하는 여인으로 묘사된다.기도는 자기에게 무언가 부족한 것이 있거나 원하는 것이 있을 경우에 인간보다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절대적 존재에게 비는 행위다. 그 내용은 가족의 건강, 남편의 출세, 자식의 대학합격, 취직 등 다양하다.‘한비자(韓非子)’〔내저설(內儲說) 하편〕에 보면 위(衛)나라의 어떤 부부가 촛불을 켜놓고 향을 사르며 신에게 복을 빌고 있었다. 부인이 빌기를 “그저 우리에게 돈 백 꾸러미만 내려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라고 했다. 남편이 “어째서 그렇게 적은 것을 원하오?”라고 물었다. 부인이 “그보다 더 많으면, 당신이 그것으로 첩(妾)을 사려고 할지도 모르니 그 정도가 알맞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비는 복도 지나치면 화(禍)로 변한다. 적당한 선에서 그치는 것도 현명하다.정묘일주(丁卯日柱)를 가진 사람들은 효자, 효녀가 많다고 한다. 특히 미남, 미녀가 많은데 여성에게 많다고 한다. 여성이 아름다워지려는 욕망은 인간의 본성 중 가장 근원적인 본성이다. 남에게 아름답게 보이고 싶고, 보기 싫은 부분을 성형수술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아름다움을 과시할 수 있다면 그것을 거부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동양에서 미인이라면 중국 사대 미녀로 서시(西施), 왕소군(王昭君), 초선(貂蟬), 양귀비(楊貴妃)를 꼽는다. 네 명 중에서도 서시가 가장 아름답고 그와 관련된 성어(成語)가 많다. 그 가운데 서시빈목(西施9870目)과 빈축(嚬: 찡그릴 빈, 蹙: 닥칠 축)이 있다.서시빈목(西施9870目)은 쓸데없이 남의 흉내를 내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비유하여 월(越)나라 출신으로 오나라 왕 부차의 애첩이 된 절세의 미인 서시가 어느 날 불쾌한 일이 있어 얼굴을 찌푸렸는데(위장병이 있다는 설도 있다), 그 모습이 오히려 더 아름다워 보였다고 한다. 이를 우연히 보게 된 한 추녀가 자신도 그렇게 하면 아름다워 보일 줄로 착각하고 얼굴을 마구 찡그렸더니 동네 사람들이 보기 싫어 모두 도망갔다고 한다. 또한 얼굴을 찡그릴 때 눈썹이 떠는 모양도 아름답다고 칭송하는데, 정말로 아름다운 여자인 모양이다.‘빈축’은 눈살을 찌푸리고 얼굴을 찡그리는 것이다. 여기서 유래된 ‘빈축을 사다’는 자기 주제를 모르고 함부로 행동할 때 남들로부터 받는 비난이나 미움을 받는 경우이다.한시(漢詩)에서도 여인의 자태를 표현한 것이 있다. 여인이 고개 숙임은 부끄러운 것이고, 턱을 괸 것은 한스러움을 나타낸다. 홀로 서 있는 것은 누군가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눈썹을 찌푸림은 근심스러운 것이다. 누군가를 기다림이 있을 때에는 난간 아래 서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바라는 바가 있을 때는 파초 아래 서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만약 서 있는 모습이 제계(齊戒·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행동을 삼가는 것)한 것 같지 않고, 앉아 있는 것이 빚어 놓은 것 같이 않다고 나무란다면, 이것은 양귀비가 이가 아파 ‘찌푸림’을 나무라는 격이다. 이는 양귀비가 이가 아파 손을 뺨에 대고 얼굴을 찌푸리니 그 자태가 더욱 고혹적이었음을 두고 한 말이다. 치통을 앓아 뺨에 한 손을 가볍게 대고서 살짝 찌푸린 양귀비의 표정은 얼마나 사랑스러웠을까?타인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주관대로 사는 사람을 고집이 세다고 한다. 특히 정묘생(丁卯生)들이 고집이 센 편이다. 마치 ‘춘 삼월 논두렁 불’처럼 소리 없이 타지만 잘못 다스리면 환란을 당하기도 한다. 고집이 세다고 말하는 것은 정(丁)이 대단한 기운의 고무래 ‘정(丁)’, 갈구리 ‘정(丁)’이기 때문이다. 정묘(丁卯)의 묘(卯)가 땅의 주인공인 아내라고 보시면 된다. 평강공주가 바보 온달을 키우듯이 잘 키워야 성공할 수가 있다.땅의 담당자는 묘(卯), 토끼다. 토끼는 ‘달 속에서 방아를 찧는 기운’ 즉 ‘무엇인가를 준비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묘(卯)는 토끼로 형상화하고 달로도 표현한다. 옛날 사람들은 달 속에 토끼가 있다고 믿고 살아왔지만, 현대에 와서는 그 환상이 깨져버렸다. 그래도 토끼가 있다고 머릿 속에서 상상을 하며 꿈을 키워 나간다. 류대창명리연구자 중국 신화에는 나오는 항아(姮娥·嫦娥)는 달에 산다는 선녀다. 원래는 하(夏)나라의 명궁(名弓)인 예(7FBF)의 아내로, 예(7FBF)가 서왕모(西王母)에게 청해 얻은 불사약을 항아가 훔쳐 먹고는 달로 도망갔다. 이를 ‘항아분월(姮娥奔月)’이라 한다. ‘회남자(淮南子) 남명훈(南冥訓)’ 이 설화는 서왕모를 신선화(神仙化)하면서 발전하여 달 속에 계수나무가 있고 토끼가 떡방아를 찧는다고 하는 등의 이야기로 확대되었다.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인간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을 믿을 수 있는 독특한 능력이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상상의 질서’와 ‘상상의 공동체’라는 허구를 만들어 협동하며 발전해 왔다고 말한다. 즉 언어를 통해 전설, 종교 설화, 민담 등 ‘가공된 스토리’를 만들어(우리 민족은 환웅과 웅녀가 혼인해 단군을 낳았다. 우리는 곰의 자손이다) 일체감과 협동심을 고양해 왔다.하늘의 이치도 알고, 땅의 이치를 알고, 사람을 대하는 방법도 아는 사람이 되어야 공동체 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2022-03-09

우크라이나의 늪

노승욱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평화의 제전’으로 불리는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지 20일 만이다. 올림픽 정신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푸틴이 전쟁을 서두른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설득력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라스푸티차(rasputitsa)’로 불리는 우크라이나의 늪 현상이다. 우크라이나의 흑토는 봄이 되면 진흙 천지로 변한다. 나폴레옹과 히틀러는 ‘진흙의 계절’을 뜻하는 라스푸티차에 발목을 붙잡혔었다. 러시아를 지켜주던 ‘머드 장군’이 우크라이나 침공 때에는 거꾸로 러시아의 기갑부대를 멈춰세울 수 있다.라스푸티차를 의식한 푸틴의 전략은 속전속결이었을 것이다. 19만여 명에 달하는 군대를 동원한 막대한 전쟁 비용도 고려했을 터다. 전문가들도 개전 후 며칠 이내에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가 함락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푸틴이 예측하지 못했던 의외의 라스푸티차가 존재했다. 바로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결사 항전 의지였다.시민 저항이라는 라스푸티차는 푸틴이 고려하지 못한 변수였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해외 망명을 거부하고 대러시아 항쟁의 중심에 섰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젤렌스키를 향해 “채플린이 처칠로 변했다”고 평했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와 확산되는 반전 여론은 푸틴에게 또 다른 늪이 되고 있다.킹스칼리지 런던의 명예교수인 로렌스 프리드먼은 푸틴의 선택을 ‘무모한 도박’으로 표현했다. 그는 온라인에 게재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전망했다. “군사적 승리가 무엇이든 간에 푸틴에게는 정치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전쟁이 될 것이다.” 프리드먼 명예교수가 자신의 저서 ‘전쟁의 미래’에서 썼듯이, 전쟁은 어떠한 명분을 제시하더라도 희생의 정당성을 결코 보장할 수 없다.이번 전쟁은 강대국의 약소국 침략에 대한 우려를 국제 사회에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영·러가 우크라이나의 핵무기 포기 대가로 영토와 정치적 독립을 보장했던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때 이미 휴지조각이 됐다. 국가 안보를 위해 우크라이나는 나토 가입을 갈망하지만, 러시아는 나토의 확장에 불안함을 느끼고 있다.그동안 서구 문명이 내세우던 자유와 정의, 인간 존엄 등의 가치도 시험대에 올라 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오렌지혁명, 유로마이단 등을 거치면서 서방 세계에 편입되기 위한 행보를 계속해 왔다. 젤린스키는 최근 유럽 의회에서의 화상 연설에서 “유럽의 동등한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 싸우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유럽의 최빈국 우크라이나가 이번에는 유럽연합(EU)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전쟁의 문을 연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유발 하라리 예루살렘히브리대학교 교수의 말처럼 푸틴은 전투에서는 이길 수 있어도 전쟁에서는 이미 졌는지 모른다. 이제 국제 사회가 나서서 전쟁의 문을 닫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늪에 빠진 전쟁으로 인해 소중한 생명이 더이상 희생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2022-03-09

비누

김규인수필가 어릴 적, 비눗방울은 동심을 하늘에 닿게 하는 마법 같은 놀이였다. 큰 비눗방울이 바람을 타고 가면 마음은 달나라의 토끼를 만난 듯 들떴다. 공원에서 한참을 달리고도 집에 돌아와 온종일 비눗방울 놀이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고등학교 미술 시간에 빨랫비누에 말을 조각했다. 조각도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미끄러지듯 비누 조각이 떨어졌다. 돌돌 말리며 떨어질 즈음에 말은 형상을 갖추어 가고 조심스럽게 조각도를 움직였다. 두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말은 비누 냄새를 풍기며 초원을 달렸다. 집 창가에 놓아둔 말은 밤이면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내며 꿈길을 달렸다.어머니는 양잿물을 사서 통닭 기름과 섞어 비누를 만들었다. 두 다랑이 가득 만든 비누는 4형제가 나누어 오랫동안 더러워진 옷을 깨끗하게 빨았다. 집에서도 비누를 만드는 것이 신기해서 나도 거들었다. 집에서 만든 수제 빨랫비누를 쓰면 아무리 더러운 빨래도 감쪽같이 때가 사라졌다.딸아이는 예쁜 모양의 수제비누를 만든다. 비누는 사랑의 하트가 되고 귀여운 강아지가 된다. 함께 만든 향초는 집안의 냄새를 잡고 천연비누는 머리가 빠질까 염려하는 나의 애용품이 된다. 대를 이어 만든 비누 향을 따라 집안에 손으로 직접 만든 사랑이 넘친다.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이 산양 기름에 나무 재를 넣고 끓여서 처음 비누를 만들었다. 이후 비누는 인류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비누의 대중화가 이루어진 후에 50년 만에 사람의 수명은 20년이 늘어난다. 인류 역사에 비누만큼 사람의 삶에 영향을 준 물건은 드물다.물과 기름은 서로 섞이지 않는다. 상극과도 같은 둘을 하나로 만드는 것도 비누다. 물과 기름을 섞이게 해주는 것은 비누가 가진 놀라운 친화력 덕분이다. 비누는 수용성 물질이나 지용성 물질과도 반응한다. 물 위에서 걷는 묘기를 보이는 소금쟁이의 발에 잔뜩 묻은 기름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도 비누다. 비누가 들어가면 물 위의 신사 소금쟁이의 체면이 우습게 된다. 소금쟁이는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신세가 된다.비누를 만드는 잿물은 우리 역사에서 사람을 죽이는 사약으로 쓰였다. 잿물을 마신 죄인은 얼마를 견디지 못하고 피를 토하고 죽는다. 같은 원료를 가지고도 비누는 세상을 깨끗하게 하고 사람은 동족을 죽이는 독으로 사용한다. 어떻게 사는가 하는 방법이 중요한 요즘이다. 인간을 위하느라 비누는 자신을 녹인다.코로나19 바이러스를 막는 데도 비누로 손을 씻는 게 더 효과적이다. 비누의 암피닐이라는 지방질 성분이 바이러스 제거를 돕는다. 존스홉킨스대학교 카렌 플레밍 교수는 “코로나바이러스는 지방질 막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비누와 물이 이 지방을 녹이면서 바이러스를 죽인다”고 말한다. 코로나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안전을 위해 비누는 요긴하다.샤워하고 난 몸에서 향기로운 비누 냄새가 난다. 냄새를 따라 코가 벌렁거린다. 코를 타고 온 냄새로 마음도 덩달아 맑아진다.“친구야. 잘 있지. 덕분에 나도 잘 있어”

2022-03-09

거룩한 테러

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 과거 일본에서 일어난 대지진과 인도네시아, 인도, 태국에 쓰나미가 지나갔을 때에 한국을 대표하는 모 목사가 이들이 우상숭배를 하기 때문에 내린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설교했다.코로나19가 발생했을 때도 일부 종교인들은 하나님이 내린 징벌이라 했다.그렇다면 기독교 국가인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의 지진과 거의 100%가 기독교인인 아이티의 지진은 왜 일어났을까에 대해 합리적인 답변을 내어놓지 못했다.자연재해가 정말 하나님의 징벌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신학자들이 모여 성경을 연구했다.그 결과 가톨릭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자연재앙과 하나님의 징벌은 아무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이 세상을 하나님이 만든 자율적 운동법칙에 위탁하였기에 그 자연법칙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라 발표했다. 그리고 그 중 대부분은 인간이 자연을 파괴함으로 발생되었다고 했다. 개신교에서도 교수연합회를 통해 모든 자연재해가 하나님의 징벌은 아니라고 발표하였다.성경에 징벌이 없지는 않지만 모든 것을 하나님의 징벌로 보는 것을 칼 융은 합리적이고 과학적 설명을 할 수 없었던 시대의 진술 방법인 신화적 교리를 실재화 하는 근본주의 신앙이라 했다.기독교 인문학자 르네 지라르는 예수님이 원수를 징벌하지 않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쳤고, 오른뺨을 때리면 때린 자를 징벌하지 말고 왼뺨도 내어주라고 했다면서 하나님은 징벌하는 분이 아니라 원수까지도 사랑하시는 분이라 했다.처음 하나님을 알기 시작할 때에는 징벌적 하나님으로 인식되었지만 점차 징벌의 하나님이라기 보다 대자대비한 사랑의 하나님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존 티한은 [신의 이름으로]라는 책에서 분별없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말하는 것은 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사람들을 협박하는 언어폭력이라고 지적했다.IS가 테러를 하는 이유는 그들의 신 알라의 명령이라고 한다. 브루스 링컨은 신의 이름을 빙자한 이런 테러를 ‘거룩한 테러’라고 했고 신의 이름으로 징벌 운운하는 것 역시 ‘거룩한 테러’라고 하면서 이는 잘못된 신앙이라 지적했다.예수 당시 실로암에 있는 망대가 무너지는 사고로 열여덟 사람이 죽는 재난이 발생하자 사람들은 예수에게 저들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저런 징벌을 받느냐고 물었다.이에 대해 예수는 저들이 너희보다 죄가 많아 징벌받아 죽은 것이 아니라며 신의 이름을 빙자한 언어의 테러를 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신앙을 가진 종교인들이 흔히 범하기 쉬운 말 중에 하나가 “벌 받았다”는 말이다. 이 말을 생각 없이 하는 것은 신의 이름을 빙자한 언어폭력으로 삼가 조심해야 할 말이다.

2022-03-09

진보꼰대와 젤렌스키

세계에서 가장 큰 영토를 가진 나라,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샤갈을 배출한 위대한 예술의 나라 러시아가 독재자의 탐욕과 광기로 인해 전범국가로 전락하고 말았다. 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해 푸틴이 몰락하기를 바란다. 우크라이나의 무고한 민간인들, 어린이들, 양국의 청년들이 독재자의 야욕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푸틀러’는 그 죗값을 치러야만 한다.중국과 북한, 러시아의 위성국가나 다름없는 벨라루스만 빼고 전 세계가 러시아를 규탄하고 있다. 러시아 내에서도 반전 시위가 벌어지는 중이다. 합리적 이성과 양심, 인간에 대한 연민을 지닌 세계의 보편 인류가 우크라이나 편에 서 있다. 그 응원에 힘입어 우크라이나는 압도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다. 러시아 군대의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 조국과 가족을 지키려는 우크라이나 군인들과 명분 없는 전쟁에 동원된 러시아 군인들의 차이다.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빼앗기면 되찾을 수 있으나 내어주면 되돌릴 수 없다” 조선의 주권을 침탈한 일본에 맞서 싸운 독립군들의 이야기다. 지금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그렇게 싸우는 중이다. 세계 2위 군사대국 러시아에 맞선 우크라이나는 골리앗 앞의 다윗이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피를 토하며 외치는 중이다. “빼앗길지언정 내어주지는 말자”고. 그는 수도 크이우에 남아 국민들과 함께 결사항전 중이다. 미국의 피신 지원을 거절하며 한 말이 세계를 울렸다. “내게 필요한 건 피신을 위한 승용차가 아니라 탄약이다”현재 젤렌스키의 지지도는 91퍼센트에 달한다. 두 해 전 대선에서 70퍼센트 넘는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다. 그런 젤렌스키 대통령을, 또 침략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가 그런 천박한 짓을 하느냐고? 중국이나 북한? 아니면 벨라루스 사람? 아니다.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낀 채 우크라이나와 비슷한 질곡의 역사를 겪은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이다. 그것도 입만 열면 평화를 늘어놓는, 진보세력을 자처하는 이들이다.이재명 후보는 “대통령을 잘못 뽑아 전쟁의 위기에 내몰렸다”고 말했다가 국제적인 비난을 사고서야 해명했다. 추미애 전 장관은 “지도력이 부족한 코미디언 출신 대통령이 감당하지 못할 위기를 자초했다”, “외교 경험이 없는 코미디언 출신 아마추어 대통령이 미숙한 리더십으로 러시아를 자극했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역사학자 전우용 씨는 “무식하고 무능한 코미디언을 대통령으로 뽑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처지가 안타깝다”고 했고, 음식 칼럼니스트 황교익 씨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대국민 선언을 “바보 선언”이라고 조롱한 데 이어 “멍청한 젤렌스키”라는 원색적 모욕을 했다. 그러고는 “인기를 얻기 위해 자극적인 발언이나 하는 자에게 국가를 맡기면 우크라이나 꼴을 당할 수 있다”며 우크라이나의 비극을 국내 정치로 끌고 와 도구화했다. 황씨는 민주당 경선 당시 “오로지 이낙연의 정치 생명을 끊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자극적인 발언이나 하는 자가 과연 누구인가?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자신들만이 정의롭고 선하며 똑똑하다는 선민의식, 우월의식이 바로 ‘진보꼰대’들의 문제다. 많은 2030세대가 왜 민주당에 등을 돌리게 됐는지 모르는 걸까? 진보의 이름으로, 정의라는 미명으로 자신들만이 옳다는 환각에 취해 피해자와 약자와 소수자를 비하하고 조롱하고 가르치려드는 데 환멸을 느낀 것이다. 설사 그들 논리대로 우크라이나가 친서방 노선으로 러시아를 자극했다한들 전쟁과 인명 살상의 책임을 침략국이 아닌 피해국에게 돌리는 게 말이 되는가? 성폭행 피해자에게 “네가 옷을 야하게 입고 다녔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소년공은 대통령이 될 수 있어도 코미디언은 안 되나? 코미디언은 직업일 뿐이지 우스운 사람이 아니다. 왜 자신들의 정치적 선전을 위해 특정 직업군을 비하하는가? 왜 민주적 절차에 따라 선출된 타국의 대통령을 조롱하는가? 무슨 권리로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이성과 용기를 모욕하는가? 내 눈엔 ‘피해호소인’이니 ‘마이클 잭슨을 닮은 여인’이니 ‘김건희로부터 성상납’이니 하는 망발을 일삼는 이들이나 노욕 덩어리 푸틴이나 다르지 않아 보인다. 김용민 같은 자의 음담패설은 쓰레기가 아닌가. 푸틴에 대해서는 정신이상설마저 돌고 있는 반면 젤렌스키는 처칠에 비견되는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코미디언이든 구두닦이든 배달 라이더든 성소수자든 그게 누구든 젤렌스키 같은 지도자가 대통령이 된다면 나는 기꺼이 그의 충실한 국민이 되겠다. 내년쯤에는 용감한 대통령과 국민들이 지켜낸, 금빛 밀밭과 푸른 하늘이 아름다운 우크라이나로 여행가고 싶다.

2022-03-08

오뚝이처럼 헤엄치기

올해 1월에 야심차게 짜 놓은 여러 계획이 엎어졌다. 뭐 아직 3월밖에 안 되었으니 목표를 재수정하고 다시 시도하면 되지만, 어쩐지 새롭게 수정된 목표 앞에서 또 주저하게 된다. 누구나 시작에 앞서 두려움을 크게 느낀다지만 나는 유독 더 지레 겁을 먹고 만다.사실 난 의문의 완벽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엄친아 캐릭터처럼 모든 일을 프로페셔널하게 착착 해내는 근사한 모습이면 참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건 아니다.게으르고 어설픈 완벽주의 성향이라 아주 사소한 선택이어도 결정하는 데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고, 스스로 완벽하게 해낼 수 없단 생각이 들면 그 일의 시작조차 시도하지 않는다.게으른 완벽주의 성향은 사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해결될 줄 알았지만 성인이 되고 회사를 입사하면서까지 이러한 습관을 벗어나지 못했다. 오히려 심해져선 초조함과 불안감을 폭발할 때까지 쌓아서 일을 처리하곤 했으니까. 과다한 업무량도 있었지만 너무 사소한 것까지 실수하지 않기 위해 시간을 들인 나의 잘못이 컸다.뿐만 아니라 공부도 그랬다. 그냥 책을 펼쳐서 단어를 외우면 되는 일인데도 책상 앞에 앉아 책을 펴는 것조차 너무 많은 걱정으로 에너지를 소비했다. 스스로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만약 책을 폈는데 단 한 문장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오늘 목표량은 단어 30개 외우기지만 10개도 못 외운다면 어쩌지? 그렇게 계획한 것을 지키지 못할 것 같으면 아예 포기해버리기 일쑤였다. 아직 결정 나지도 않은 실패를 홀로 예견하며 씁쓸한 표정을 짓는 동안 무력감이 겹겹이 쌓였다. 그런 감정은 생활의 리듬을 깨버리기도 했다.중요한 일정이 있을 땐 오히려 그 일정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운동을 하면서 에너지를 소비했다. 그러니 정작 중요한 타이밍에 능력치 발휘를 못했고 결국 언제나 부끄러운 결과물을 손에 쥐었다.작가에게 약속과도 같은 원고 마감일은 또 어떤가. 스스로 정해둔 데드라인은 늘 넘어서기 일쑤고 하루 온종일 초조함과 불안감에 스스로를 원망하면서도 평소 잘 하지 않는 집안 청소나 밀린 빨래를 처리하곤 했다.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음에도 일의 적합한 타이밍이 오기까지 무작정 기다렸다,하루하루 데드라인 앞에서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 살아가니 나의 능력과 자기 확신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다.최근엔 은행 앱을 통해 계좌 가입하는 일 조차 너무 버거운 일 같아 대책 없이 미룬다거나, 또는 단순히 오해가 쌓였단 이유만으로 사람과의 관계마저 쉽게 포기해버리는 상황을 마주하고선 심각함을 인지했다.이젠 조금씩 게으른 완벽주의자의 성향을 벗어나기로 했다. 가장 먼저 모든 일을 성공할 수 없다는 나의 한계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애초부터 한 번에 도달 할 수 없는 허무맹랑한 목표는 설정하지 않고, 그저 시도만으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사소한 목표부터 세워 꾸준히 실천하기로 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두 번짼 성공은 여러 번의 실패를 거듭하여 거머쥘 수 있는 걸 꼭 기억해두기로 했다. 단 한 번의 시도로 성공하는 운의 흐름에 기댄다거나, 또는 한 번의 시도로 성공하겠단 오만에서 부디 벗어나기로 다짐했다. 어려움이 없지 않겠지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최근 소소한 취미로 캡슐 뽑기에 빠졌는데 우연히 오뚝이를 뽑았다. 어렸을 때나 보던 오뚝이를 마주하니 전생에서나 보던 물건처럼 묘했지만 그에 비해 큰 감흥이 없었다.막상 책상에 올려두고 보다보니 이상하게 시선이 갔다. 아무리 외부 자극이 있어도 살랑살랑 흔들리고선 제자리를 찾아 우뚝 서는 게 신기하고 대견했다.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자세는 오뚝이의 자세일 것이다. 무엇이든 정해진 답은 없고 완벽도 없으니 불명확한 것에 사사건건 신경 쓰지 말고 유연히 흔들리기. 그리고 아무리 형편없는 결과가 예상되어도 그 일을 끝내기 위해 애쓰기. 수영을 하기 위해선 우선 몸에 힘을 빼야 한다고 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숨을 다시금 골라 본다.

2022-03-08

칭찬과 인정

조현태수필가 ‘시비스킷’은 영화 제목이기도 하고, 타고난 승부근성이면서도 매우 특별한 경주마 이름이다. 이 경주마의 특징은 자신이 뛰고 싶을 때에만 열심히 달리는데 지독하게 게으르고 고집이 센 말이다.그 독특한 시비스킷의 경주마적 진가를 알아본 인물이 있다. 마주 찰스 하워드와 조련사 톰 스미스, 그리고 기수 레드 폴라드다. 세 사람의 연관을 보면 찰스가 시비스킷을 산 후 톰을 조련사로 고용하고, 톰은 레드가 시비스킷처럼 사고뭉치라는 공통점을 보고 기수로 훈련시키는 관계다.시비스킷의 주인 찰스 하워드는 자전거 수리공으로 출발해서 일약 미국 자동차 산업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러나 어린 아들은 자신이 만든 트럭을 타고 나가 죽은 뒤 이혼까지 당하는 불행한 재벌이었다.조련사 톰 스미스는 한뎃잠을 자며 떠도는 외로운 사나이였다. 사실상 벙어리처럼 여겨졌던 수수께끼의 인물이었다. 그는 개척지에서 흘러 들어온 떠돌이 출신이지만 잃어버린 지혜와 말에 대한 비밀을 간파했다. 야생마를 길들이는 데 신비한 능력이 있었다.레드 폴라드는 시골 경마장 한 구석에 버려진 고아 같은 신세였다. 무거운 안장을 짊어진 채 유랑생활을 했다. 낮에는 마구간에서 일하고 밤에는 복서로 뛰지만 기수로는 너무 몸이 크고 복서라기에는 너무 몸이 작았다. 소도시의 권투장에서 워낙 얻어맞아 한쪽 눈까지 실명했다. 툭하면 피투성이인 채로 마구간 층계에서 잠들곤 했다.이들 역시 별 볼일 없는데 어떻게 시비스킷을 세계적인 명마로 바꿀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은 “칭찬과 인정”이었다. 억지로 달리기 훈련을 시키는 대신, 달리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유도했다. 말을 듣지 않고 저항해도 채찍질하지 않고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기수 레드 폴라드는 “난 너를 혼내지 않아”라면서 말에게 다가갔고, 채찍을 쓰는 대신 늘 목을 토닥거리고 간식을 주었다. 수면 시간에는 마음껏 자게 내버려 두었다. 게으름과 고집을 인정해 주고 승부근성을 칭찬했다. 나쁜 습관은 단 번에 뿌리를 뽑으려하지 않고 조금씩 버리게 했다.일이든 사업이든 탁월한 지식과 정확한 판단력을 기반으로 하되 보이지 않는 것까지 찾아낼 수 있는 혜안이 갖춰진다면 그보다 더한 성공은 없으리라. 동물도 그렇지만 사람 역시 자신을 알아주는 만큼 발휘한다고 한다.칭찬과 인정이 최고의 리더십이다. 그렇다면 리더는 누구인가. 대통령인가? 마주와 조련사와 기수에서 연상되는 우리(국민)가 아니겠는가. 세계 속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주자에게 숨어 있는 최고의 가치성을 발견한 이들이 곧 우리여야 한다. 우리가 뭉치고 주자의 가치를 최대한 살린다면 업적은 엄청날 것이다.‘시비스킷’이라는 영화가 사람들을 매혹하는 것은 등장인물들의 역할 때문은 아니지 싶다. 그게 말이든 사람이든 대상의 장점과 단점을 정확히 알고 그대로 인정하는 것. 자신의 믿음을 초지일관할 수 있는 등장인물들의 용기와 자신감. 자신을 알아봐주는 사람을 위해 온힘을 다하는 시비스킷의 정열. 이것이 관객을 열광시켰다.

2022-03-08

검은 산, 쓰러진 나무 속에도 생명의 봄이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쓰러진 나무를 보면 / 나도 쓰러진다 // 그 이파리와 더불어 우리는 / 숨쉬고 / 그 뿌리와 함께 우리는/ 땅에 뿌리박고 사니- // 산불이 난 걸 보면 / 내 몸도 탄다 // 초목이 살아야 / 우리가 살고 / 온갖 생물이 거기 있어야 / 우리도 살아갈 수 있으니”정현종 시인의 시집 ‘한 꽃송이’(1992, 문학과 지성사)에 실린 시 ‘나무여’의 일부이다. 이 시집을 찬찬히 읽어가다 보면 나무와 꽃과 흙과 산 등 자연을 바라보는 시인의 사랑과 경외의 눈길을 마주치고 깊은 사색과 관조의 세계에 젖어든다. 그리고 어느 샌가 모르게 그 눈길을 따라 그대로 걸어가다가 시인의 사색 숲길 속으로 접어들고 있는 나 자신을 문득 발견하게 된다.시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떠들쳐 보지 않더라도 자연의 일부로 자연 속에 살고 있는 인간은 본능적으로 나무와 숲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안다.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인 도시를 벗어나 나무와 풀들, 온갖 생명으로 어우러진 숲으로 들어서면 숨쉬기가 어쩌면 그렇게 달라지는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듯하다. 반대로 산촌과 농어촌에 살던 사람이 도시에 발을 디뎠을 때의 그 갑갑함 역시 자연의 한 존재인 사람으로서 당연한 느낌일 터.그런데, 인간의 무지와 폭력으로 인해 자연은 몹시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 환경보호라는 거대 담론을 꺼내 놓지 않아도, 현재 경상도와 강원도에서 발생한 산불은 우리의 자연은 말할 것도 없고 이 자연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재앙이 되고 있다.매해 크고 작은 산불이 일어나지만, 지난 3월 4일 경상북도 울진의 한 야산에서 시작된 산불의 피해 상황은 여느 해의 산불과 그 양상이 매우 다르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밝힌 바에 따르면, 3월 7일 오전 11시 현재 1만9천553ha의 산림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숫자만 보면 감이 잘 안 잡히는데, 서울 면적의 1/4 이상, 여의도 면적의 60배, 축구장으로 치면 2만3천여개 넓이에 해당한다고 하니 그 피해 규모를 짐작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것이 이틀 전의 통계이고, 8일 오전까지도 완전히 불길이 잡히지 않았다고 한다. 9일 오늘까지 집계한다면 그 피해 규모는 더욱 늘어날 것이기에 마음이 무겁고 아프다.산불이 빨리 진화되기를 기도한다. 불이 꺼져도 산마다 화마의 자취는 검게 남을 것이고, 산속의 생명들은 다시 삶을 이어나가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할 것이다. 이번 산불로 집이 타서 무너져 내리고, 한평생 삶의 흔적과 추억과 기록들까지 사라져 버린 많은 이들 역시 다시 일어서기에 몸과 마음 모두 힘든 과정을 겪게 될 것이다.쓰러진 나무를 보면 자신도 쓰러진다고 한 시인은 같은 시집에 실린 ‘봄에’라는 제목의 또 다른 시에서 “진달래꽃 불길에 / 나도 / 탄다…. / 숨막히게 피는 꽃들아 새싹들아”라고 하였다. 검은 흙 속에서도 푸른 새싹이 돋고, 진달래 개나리가 검은 산과 그 품 안에 사는 사람들을 보듬고 위무하는 따뜻한 봄을 소망한다.

2022-03-08

‘후보의 안보관’만은 꼭 체크해 보길

심충택 논설위원 재향군인회가 최근 “제20대 대통령은 안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며 차기 대통령의 5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한국 정통성을 부정하지 않을 것, 북한과 대화하면 평화가 올 것이라는 환상이 없을 것, 한미동맹 위축이나 손상을 초래하지 않을 것,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화할 의지가 있을 것, 군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폄훼하지 않을 것 등이다.벌써 2주일째로 접어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사태를 보면서 재향군인회가 제시한 차기 대통령의 조건에 공감하는 국민이 많을 것이다. 당초 우리 국민은 압도적인 전력을 가진 러시아가 단기간에 우크라이나를 점령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우크라이나 국민은 소총과 화염병을 들고 침략군에 맞서고 있다. 그 중심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있다. 그는 러시아의 암살위협에도 조국을 떠나지 않고 “내게는 죽음을 겁낼 권리가 없다”며 ‘대통령 값’을 하고 있다. 외신에서는 그를 두고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질 전 영국총리와 닮았다며 호평을 하고 있다.젤렌스키 대통령과 가장 대비되는 우리나라 최고지도자는 조선시대 선조임금이다. 1592년 임진년 4월 13일 왜군이 부산포에 상륙한지 20일도 채 안된 4월 말 선조는 궁궐을 버리고 피란을 떠난다. 징비록에서는 ‘경복궁 앞을 지나갈 무렵 양쪽 길에는 백성들의 통곡소리가 요란했다. 임진강에 이를 무렵 밭에서 일하던 사람이 왕을 보며 “나라님이 우리를 버리시면 우린 누굴 믿고 살아간단 말입니까”라며 통곡했다. ‘5월 1일 날이 저물어서야 개성을 향해 떠나려고 했는데 경기도의 아전과 병사들이 모두 도망쳐 호위할 사람마저 없었다’고 선조의 피란과정을 기록했다. 징비록은 이어서 ‘왕이 성을 비우자 성안에 남아있는 백성을 보니 살아 있는 사람도 모두 굶주리고, 야위고, 병들고, 피곤하여 얼굴색이 귀신과 같았다’고 했다.선조와 같은 무능한 지도자 때문에 우리 민족은 셀 수 없을 정도로 주변 국가의 침략을 당해왔다. 그때마다 백성들은 살상을 당하고 금수강산은 초토화됐다.그럼 지금 우리는 안전한가. 친북·친중 외교로 일관해온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한국의 유일한 안보시스템인 한미동맹은 뿌리째 흔들려 왔으며 지금도 악화일로에 있다.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정에서도 미국의 동맹국 가운데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대러제재 동참에 우물쭈물하다 미국측으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다. 현재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4국(호주·인도·일본·미국) 안보협력체인 ‘쿼드(Quad)’에도 한국은 쏙 빠져 있다. 위험한 독재정권인 북한·중국·러시아가 바로 옆에 있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는 강한 동맹국 없이 혼자 힘으로 평화를 유지할 수 없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면서 우리 국민은 독재정권의 무자비한 본성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오늘은 20대 대선 선거일이다. 지금 우리 국민 상당수는 진영논리에 갇혀 대통령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조건도 생각해 보지 않은 채 투표를 하는 경향이 있다. 최소한 나와 가족의 생명과 직결된 후보의 ‘국가 안보관’만이라도 체크해 보고 투표장에 가야 한다.

2022-03-08

퍼펙트스톰 공포

우정구 논설위원 선거로 나라가 온통 시끄러운 가운데 시중 물가 오름세가 천정부지다. 국제유가 폭등으로 차량 유지비는 물론 외식비, 소줏값, 커피값 등 오르지 않은 것이 없다. 월급 빼고 다 올랐다는 푸념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치솟기 시작한 국제 곡물가와 유가 등의 영향으로 국내 물가도 이제 본격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이달 소비자 물가가 10여년만에 처음으로 4%대로 올라설 것 같다는 관측도 있다. 국내 소비자 물가는 이미 5개월째 3%대 고공행진중이다.통화량이 팽창하면서 화폐가치는 떨어지고 물가는 계속 올라 일반대중의 실질 소득이 감소하는 현상을 두고 인플레이션이라 한다.지금 우리의 물가는 인플레이션 속에 경기침체를 동반하는 스태그플레이션 단계까지 왔다는 분석이다. 일반적으로 경기불황 상태에서는 수요가 감소하고 불안 심리가 작용해 물가가 내려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스태그플레이션이 왔다는 것은 저성장 고물가의 상태란 의미로 우리경제에 대한 경고등이 켜졌다는 뜻이다.우크라이나 사태로 OECD국가의 물가도 평균 7% 올라 31년만에 가장 높다 한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하면 물가불안도 지속될 수밖에 없어 경제가 초긴장 상태다.기상용어인 퍼펙트스톰은 2008년 미국 글로벌 경제위기 때 경제용어로 사용됐다. 달러가치가 하락하고 유가와 국제곡물가격이 급등한데다 물가상승까지 겹쳐 경제가 폭풍급으로 위태로워졌다는 것이다.물가가 오르면 서민경제가 가장 큰 타격을 입는다. 실물자산 가치가 올라가고 돈 가치가 떨어져 빈익빈 부익부 현상도 더 심화된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빚어진 퍼펙트스톰, 이젠 새 대통령이 극복할 중요 과제의 하나가 됐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03-08

국가 주도의 함정

홍택정문명중·고등학교 이사장 류현진과 박찬호, 박세리와 추신수, 손흥민, 아이돌 방탄소년단 등은 스스로 자신의 장점과 재능을 일찍이 파악하고 키워나가 성공한 케이스들이다.손기정과 서윤복 선수와 이봉주나 황영조도 역시 마라토너로서의 자질과 재능을 발견해서 꾸준한 노력의 결과 세계 제패를 이룩했다. 재능의 발견과 꾸준한 맞춤식 훈련은 자발적, 능동적인 결과에서 얻어진 성과이자 열매다.21세기 4차 혁명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급속도의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최전선의 전투는 일선 지휘관과 병사들의 판단으로 진행돼야 한다. 지형지물과 병사들의 사기와 적절한 병참지원과 포병과 항공기의 지원, 적의 전세를 정확히 파악해서 공격의 시점을 결정해야 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의 주도면밀한 판단이 있을 때 승리를 기약할 수 있다.국가가 주도한 일도 있다. 전쟁이나 캠페인 등은 국가가 먼저 주도해 국민 참여의 계기를 제공해야겠지만, 역시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와 공감이 있을 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대표적인 성과는 새마을 운동이나 금 모으기 운동이 선례다. 신바람 나는 자발적 참여만이 예상을 초월하는 목표치를 달성한다.북한에서 일어난 천리마 운동이나 중국의 문화혁명은 실패했다. 목표 설정과 운동의 주도세력이 국민의 호응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이와 같이 국가 주도는 위험한 전체주의나 공산주의의 독재적 발상이며, 국민의 자발적 참여와 적극적인 호응을 얻지 못한다.특히 창의적이고 다양한 아이디어가 분출돼야 하는 교육에 있어서 획일적이고, 경직된 국가 주도는 국제 경쟁에서 뒤처지게 되고 급기야 낙오하게 된다.교육은 살아있는 수많은 인재의 머릿속에 잠재하는 무한 아이디어를 도출해 내는 작업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국가의 몫일지는 모르지만, 방법론의 제시는 금물이다. 손쉬운 국가 주도는 다양성을 말살하고, 참여의식을 저하 시킨다. 앞서의 여러 유능한 스포츠 스타들을 국가가 관리해 훈련했더라면, 보나 마나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것과 다를 바 없다.맞춤식 개인훈련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은 국가주도로는 이뤄질 수 없다. 교육도 일선 학교의 우수한 교사들의 창의력이 발휘되도록 하고, 특히 사학은 고유의 건학이념이 존중될 때 의욕이 넘치는 적극적 투자와 변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2022-03-07

거대한 ‘이미지의 덩어리’로 남는 영화

어느 시점부터인가 ‘한 편의 영화’ 안에서 갖춰야 할 이야기의 완결을 거부하는 영화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영화의 러닝타임이 길어지더니 급기야 드라마처럼 시리즈가 이어지고, 회차를 이어가며 상영되는 영화들이 등장하게 된다. 여기에 개별 영화들이 공동의 세계관을 형성하더니 그 속에서 연관성을 가지고 간섭하면서 동일 세계관의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전작의 영화들을 다시 봐야하는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영화의 제작방식과 더불어 관람이라는 소비 방식에 있어서도 변화가 이어지면서 기존의 질서를 허물고 ‘영화관람은 영화관’에서라는 등식에 균열이 가고 있다. ‘넷플릭스’를 필두로 한 OTT(over-the-top·인터넷을 통해 방송 프로그램, 영화 등의 각종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 서비스가 활발해지면서 제작에 있어서 전통적인 영화 제작사들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각종 플랫폼을 통해 영화관과 동시개봉을 시작하면서 영화를 소비함에 있어서 장소와 시간에 더이상 구애받지 않게 되었다.제한된 상영시간과 영화관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한 편의 영화를 제공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나머지 이야기는 다음에’가 존재할 여지가 적었다. 그래서 영화의 흥행은 얼마나 많은 상영관을 확보하는가가 중요해지고, 그 속에서 치열한 계산이 이루어지곤 했다. 단관극장에서 멀티플렉스관이 등장하면서 더욱 더 촉발된다.하지만 지금은, 가장 작게는 휴대폰에서부터 책상 위 컴퓨터, 거실의 TV까지 다양한 단말기를 통해 영화를 관람하는 시대 속에서 기존의 방식과 새로운 소비형태가 충돌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물론 대형 스크린을 염두에 두고 제작된 영화의 감동은 그에 걸맞는 시스템에서 관람할 때 온전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가정의 TV는 점차적으로 대형화되고, 그에 따른 음향과 각종 기기들도 다 함께 변화하면서 끊임없이 경계를 허물고 있다. 이제 한 편의 영화를 고르는 것에서부터 어떤 환경에서 영화를 볼 것인가의 선택지가 추가된 것이다.드니 빌뇌브 감독의 ‘듄’은 위의 다층적인 변화를 복합적으로 드러내며 상영된 영화다. ‘듄’은 촬영부터 아이맥스(IMAX) 상영을 위해 아이맥스 인증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을 했다. 감독의 창작 의도를 고스란히 느끼기 위해서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관람해야하는 이유다.“‘듄’을 텔레비전에서 보는 것은 마치 욕조에서 스피드 보트를 운전하는 것과 같다. 나에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 영화는 대형 스크린의 경험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라고 영국의 영화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는 사라질지도 모르는 영화관에 대한 우려보다는 다양한 관람방식에 대한 분명한 선택지를 던진다고 봐야 할 것이다.프랭크 허버트의 SF 대하소설 ‘듄’은 전 세계적으로 2천만부가 판매된 베스트셀러로, 영화화를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마침내 1984년에 데이빗 린치 감독의 ‘사구, Dune’이라는 제목으로 우여곡절 끝에 영화화 되었지만 감독조차 잊고 싶어하는 처참한 실패로 남는다.소설 ‘듄’은 방대하고도 낯선 개념들이 가득하다. 국내에서 출판된 책의 경우 총 6권으로 드니 빌뇌브 감독의 ‘듄’은 1권의 절반에 해당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소설의 전반부가 그러하듯 영화는 3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 동안 세계관을 구축하고 등장인물을 설명하는 것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한 편의 영화에 기대할 수 있는 완결된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듄’은 파트1로 다음 이야기를 펼치기 위한 기초를 다지는데 중점을 둔다. 방대한 내용을 느린 속도로 쌓아 올린다. 그 속에서 드니 빌뇌브 감독은 원작을 어떻게 그려나갈 것이라는 단호하고 분명한 이미지에 몰입한다.감독은 빛과 어둠, 색감과 사운드와 풍경 속 질감을 섬세하게 다루고자 한다. 빠른 속도를 담보하는 통쾌함과 박진감보다 장엄하고 우아하며 느슨한 속도를 취한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될 즈음 영화는 끝난다. 그래서 영화 ‘듄’은 관람 후 뚜렷한 이야기가 남기 보다는 거대한 ‘이미지의 덩어리’가 남는다. 이제 ‘듄’ 파트2에서 거대한 ‘이미지의 덩어리’라는 기초에 본격적으로 쏟아 낼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된다. 이것을 알고 있는지 영화는 “이제 시작이다”라는 대사로 끝을 맺는다./(주)Engine42 대표

2022-03-07

노송(老松) 아래 아무것도 없었다 (Ⅲ)

이십이 년 전 필립의 형이 죽었다.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가던 중이었다. 새로 산 패러글라이더를 싣고 달리던 차가 호수에 빠졌다. 필립은 운전석 차창으로 빠져 나왔지만 형은 그러지 못했다. 차는 무거웠고 호수는 깊었다. 필립이 다시 호수 속으로 몸을 던졌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여섯 시간 뒤 형은 차와 함께 올라왔다. 안전벨트를 그대로 매고 있었다. 다른 세상으로 가는 길에서도 안전벨트가 생명줄이라 여긴 듯 보였다. 그날 만식이 변했다. 아니, 원래 그랬는지도 모른다. 필립이 모르고 있었을 뿐. 형의 자리에 서니 만식이 보였다.이후 만식은 영원히 살기로 마음먹은 사람 같았다. 그것도 건강하게. 그는 건강에 관한 모든 것을 직접 챙겼고 수명 연장과 관계된 새로운 것들을 찾아다녔다. 만식이 기댔던 것은 의학 기술이었다. 새로운 기술과 신소재를 앞세운 인공 장기 업체들은 고가의 상품을 사용할 수 있는 돈 많고 절실한 소비자가 필요했고 만식은 자신의 건강을 유지하고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효과적인 기술을 원했다. 새로운 기술과 소재들은 만식이 지불한 금액만큼 효과가 있었다. 만식이 여든이 되었을 때 만식의 심장과 만식의 콩팥 중 하나와 만식의 간, 그리고 관절의 일부는 만식이 태어날 때 가지고 왔던 그것들이 아니었다.큰아들이 죽은 후 만식은 담배를 끊었지만 담배에 대한 두려움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내가 담배 냄새를 맡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 나는 담배가 가장 무서워. 만식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비흡연은 올더앤베러의 채용조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되었다. 여태까지 피웠던 담배가 어디 가겠어? 언젠가는 내 목을 붙잡고 늘어지겠지. 만식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 말했지만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기다리지는 않았다. 유난히 미세먼지 농도가 높았던 올해 봄, 한 달 정도 객담과 기침이 지속되자 만식은 수술을 선택했다. 의사의 만류는 의미가 없었다.성공적인 인공 폐 이식 수술 후, 만식이 퇴원하던 그날 사고가 났다. 닷새 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던 만식이 사라졌다. 만 삼십육 시간 후 동해안의 자그마한 부두에서 만식과 만식의 차가 발견되었다. 필립은 만식이 숨진 채 발견된 그날 만식의 시신을 받지 못했다. 유족의 동의와 관계없이 부검이 진행되었다. 경찰은 만식의 인공 심장과 인공 콩팥, 인공 간, 그리고 새로이 이식받은 인공 폐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만식은 자연 그대로의 인간이 되어 돌아왔다. 이틀 전이었다.-그 참, 그렇지 않아도 형님께 조심하시라 말씀드렸었는데. 인공 장기를 노리는 나쁜 놈들이 있다 하더라고. 형님에게 그런 일이 생길 줄이야.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자고 몸에 단 것들이 아니냐. 그런데 그것들 때문에 죽는 일이 생기다니. 참.-경찰이 조사하고 있으니 기다려봐야지요. 결과를 바꿀 수는 없으니.-그래, 경찰 쪽에서는 아직 연락이 없고?-형사 한 명이 찾아오기는 했습니다. 짧게 이야기만 나누었습니다. 아주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상이 끝나기 전에는 연락하지 말라고 했습니다.필립은 조용히 만식의 상을 치르고 싶었다. 만식이 어떻게 죽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세상의 주목을 받는 것이 싫었다. 만식의 죽음보다 인공 장기에, 사라진 인공 장기들보다 그 인공 장기들이 만식의 몸속에 있었다는 사실에 더 관심을 가질 것이 뻔했다.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 경찰서에 불려 다니는 것, 잊힐만하면 다시 무덤 속에서 불려 나오는 것, 필립은 원하지 않았다. 뭐가 중요해? 죽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지. 사람들의 무관심을 원했다. 어떻게 돌아가셨냐는 조문객들의 질문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모호한 대답을 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사라진 인공 장기들은 필립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어차피 장례를 치르려면 떼어내야 하는 것들, 애초에 달지 말았어야 하는 것들이었다. 김강 작가 2017년 제21회 심훈문학상 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 ‘여행시절’(공저) ‘당신의 가장 중심’(공저) 등을 썼다. 필립은 가족과 친지들에게도 만식의 죽음에 대해 필요 이상의 말을 하지 말라 신신당부를 했다. 한 명의 조문객이 방문하기 전까지는 필립이 뜻하는 대로 흘러갔다.-아이고, 이게 무슨 일입니까? 지난주에 문안 인사를 드렸을 때만 해도 웃는 얼굴로 덕담도 하고 그랬는데.영권. 만식이 후원회장으로 있던 국회의원이다. 정치에 입문할 때부터 만식의 후원을 받았다. 영권의 뒤로 인호가 서 있었다. 필립은 인호와 눈을 맞췄다. 인호는 빙긋이 웃음을 지었고 필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이게 무슨 일입니까? 형님.필립은 영권을 말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영권이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없었다. 무릎을 꿇은 채 영정을 바라보고 있는 영권에게 다가가 어깨를 잡고 일으켜 세웠다. 필립이 영권을 안고 빈소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영권이 몸을 돌렸다. 영권의 일정을 취재하러 온 기자들을 향해 포즈를 취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2022-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