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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한 몸 같은 포항과 포스코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 우려했던 산불 발생이 심상찮은 것 같다. 50년만의 최악인 겨울가뭄에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산불로 예기치 못한 피해와 손실을 초래했다. 최근의 영덕 산불은 강풍과 혹한으로 축구장 560개 면적의 산림이 순식간에 소실되고 주민대피령까지 내려져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지만, 대대적인 산불진화 노력으로 조기에 진화됐다. 불은 잘 이용하면 유용함을 주지만, 부주의나 실수로 발화가 되면 화마로 돌변해 위협적이고 가공스러운 혀를 날름거리며 삶의 기반을 흔들어 놓기도 한다.그런데 겨울철의 산불이나 건물 화재가 아닌 전혀 색다른(?) 불이 길거리에서 일어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도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공생협력을 도모하며 호혜발전을 유지해온 관계라면? 미상불 세계적인 철강도시 포항에서는 근 달포 전부터 난데없는 현수막의 물결이 거리 곳곳에 요원의 불길처럼 일고 있다. 그것도 지금의 포항과 대한민국 산업화의 토대를 마련한 국민기업 포스코에 대한 대대적인 규탄과 성토라니, 하루 아침에 돌변한 일도 아닌데 이 무슨 이변인지 씁쓸하기만 하다.이른바 포스코가 창립 54년 만에 지주사 체제 전환을 확정하면서 지주사인 포스코홀딩스를 수도권에 설립한다는 소식에 포항 지역사회와 정치권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음을 대자보로 드러낸 것이다. 지주사 전환으로 지역경제 침체와 지방소멸 위기를 걱정하면서 포스코의 결정에 반대하고 철회를 종용하는 시민·관변단체 등의 현수막이 포항시 전역을 도배하듯이 앞다투어 설치되고, 대선후보들의 현수막도 길목마다 곳곳에 내걸리니, 가히 포항은 작금 ‘대자보 수난시대(?)’를 겪고 있는지도 모른다.어느 시대나 사회이건 사람사는 세상에는 늘 문제와 갈등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복잡다단함에 생각이나 관점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얽혀 유불리와 호불호가 갈리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긴장이나 사회적인 문제를 어디서, 어떻게 풀고 매듭짓는가에 있다. 그러한 해결이나 모색을 통해 사회와 국가는 진보의 걸음을 걷고 성숙의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리라.포항시와 포스코의 유례없는 긴장 고조에 대다수의 시민과 직원들은 어쩌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고민과 딜레마에 빠질런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표리부동(表裏不同)하는 것도, 맞불작전(?)으로 직접 나서기도 곤혹스러운 진퇴양난의 궁지에 몰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어쨌든 관건은 일부 억측되고 곡해된 일방적인 물살타기 같은 논리와 주장보다는, 실체적 진실을 통한 이해와 신뢰로 소모적인 논쟁과 배타적인 대립을 불식시켜 나가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본다. 반 백년 이상 포항에 뿌리를 내린 포스코가 ‘움직이는 마법의 성’이 아닌 이상 절대 포항을 떠나서도, 떠나지도 않을 것이다.우발적인 영덕 산불이지만 총력대응으로 조기진화한 것처럼, 무겁게 드리운 영일만의 전운(?)이 동반적 자세와 합리적인 해법으로 걷혀져 따스한 봄볕이 비치길 기대해본다. 포항과 포스코는 언제까지 한 몸이나 다름없다.

2022-02-21

선거 이후가 걱정이다

김진국 고문 대통령 선거가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는 잔치다. 기간을 정해 미래의 꿈을 설계하고, 새로운 다짐을 하며 나아가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는 아무래도 미래와 꿈이란 단어가 그리 어울리는 것 같지 않다.무속과 신천지, 초밥과 합숙소가 최대 쟁점이다. 워낙에 비호감이 높은 후보들끼리 싸우는 선거였다. 그런데 상대 약점을 파헤치고, 없는 의혹까지 만들어 덮어씌우는 선거전략이다 보니 혐오감이 더 커진다. 이렇게 해서 선출한 대통령을 존경할 수 있을까 걱정이다.후보들 스스로 신뢰를 까먹는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했다가 지지자들이 반발하자 “그렇게 말했더니 진짜인 줄 알더라”라고 조롱했다. 기본소득, 국토보유세, 재난 지원금…. 거듭 말이 오락가락하면서 ‘표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맡는다’는 정치권의 평가가 왜 나왔는지 알게 됐다. 이 후보는 여론이 바뀌면 언제든 의견을 바꿀 수 있는 ‘실용주의’라고 한다. 대단한 장점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는 너무 지나쳐 어떤 약속도 믿을 수 없게 만들었다.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준비가 안 됐다. 그의 대통령 출마는 상황이 만들어줬다. 조국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없었다면 윤석열 후보는 없었다. 생각보다 빨리 학습하고, 적응하고 있다. 그렇지만 단기 속성 과외로 하는 말을 얼마나 믿어야 할지 염려되는 것도 사실이다.그는 ‘적폐 청산’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전력을 보면 그냥 하는 말 같지 않다. 해온 일이 그렇고, 원한도 많다. 지난 정권 5년 내내 지겹도록 정치보복 쇼를 지켜봤다. 또다시 그런 일을 반복하는 것은 두렵다.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그 후유증을 문재인 정부에서는 코로나 속에 감췄다. 유세나 후보 단일화에서 내뱉는 말을 보면 많이 윤 후보도 오만해졌다.지난 5년 워낙 상식이 무너졌으니 공정과 정의를 바로 세운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을 준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윤 후보는 어퍼컷 세리머니로 재미를 보고 있다. 그러자 이 후보는 발차기로 응수했다. 재미있는 퍼포먼스다. 그렇지만 몸싸움 시늉이 앞으로 전개될 우리 정치 상황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걱정이다.선거가 막바지로 갈수록 진영화도 점점 강고해진다. 상대를 공격할 소재가 엿보이면 억지 프레임을 씌운다. 자기편 잘못이 드러나도 사과는커녕 막무가내로 감싼다. 조국 사태에서 드러난 외눈박이 진영논리는 선거판에서 더 심해졌다. 전쟁터가 따로 없다. 누가 되건 다음 정권 초기는 극심한 국론 분열과 갈등이 불을 보듯 하다. 3개월 뒤 지방선거를 향해, 2년 뒤 총선을 겨냥해서, 또 5년 뒤 다음 대통령 선거를 목표로 돌진할 게 뻔하다.지도자는 나라의 운명에 결정적이다. 덩샤오핑(鄧小平) 없이 오늘날의 중국을 생각할 수 있겠나. 대처 영국 총리나 메르켈 독일 총리 대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놓아보라. 한국인은 신이 많다. 마음만 내키면 하루아침에 산이라도 옮길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 독립해 다른 나라를 원조하는 경제 강국으로 성장한 유일한 나라다. 더구나 전쟁으로 폐허가 되는 고통까지 이겨냈다. 그 힘을 진영으로 나눠 싸우는데 탕진하는 건 비극이다.민주당이 선거를 치르는 판에도 날치기했다. 정권을 연장하게 되면 개헌선까지 확보한 국회를 이용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겠다. 우당(友黨)인 정의당의 뒤통수까지 치며 확보한 개헌선이다. 이해찬 전 의원의 ‘20년 집권론’, 그 이상의 변화를 각오해야 한다.윤석열 후보가 당선되면 앞으로 2년간 심각한 여소야대(與小野大) 속에 일해야 한다. 정치보복과 정계 개편 바람이 몰아칠 가능성이 크다. 노태우 정부 때도 여소야대였지만 4당 체제였다. 모범적인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보여줄 수 있었다. 국회 3분의 2 의석을 차지한 제1야당이 버티는 여소야대와는 다르다.소수 정파를 인정할 때 상생의 정치가 가능하다. 다음 정부는 힘의 정치가 아니라 협력의 정치가 돼야 한다. 인위적 정계 개편보다 다양성을 보장하는 제도적인 안정을 이루어야 한다. 기형적 국회와 비호감 대통령이 상생하는 길이다. /본사고문

2022-02-20

대선 판세 좌우할 마지막 변수들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오는 3월 9일 대선 20여일 전이다. 이번 대선은 누구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선두 경쟁이 치열하다.지난주 이재명, 윤석열 후보의 지지율은 오차 범위 내의 접점을 이루고 있다. 아직도 정권 교체론이 약 60%에 이르는 상황에서 윤석열 후보의 지지율은 이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재명 후보 지지율 역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 40%에는 미치지 못하고 30% 중반의 박스 권에 갇혀 있다.윤 후보는 잦은 실언과 원팀을 이루지 못한 당 내분, 부인과 장모의 리스크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이재명 후보 역시 대장동 개발의혹, 형수 욕설과 부인의 과잉의전 논란이라는 악재가 겹쳐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최종 승리자가 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서로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된다는 확신만 있는 이상한 선거판이 전개되고 있을 뿐이다. 선거 전문가들이 이번 대선이 5% 내외로 승패가 갈릴 것으로 전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팽팽한 선거판이지만 표심에 영향을 미칠 변수들을 점검해 보자. 대면 접촉이 제한된 코로나 상황에서 후보들의 TV 토론은 후보의 자질과 능력을 검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이다.지난 두 차례의 토론이 승자도 패자도 없이 공방만 하다 끝나 버렸다는 지적도 있다. 후보들이 실수를 하지 않으려는 지나친 방어적 토론이 초래한 결과다.두 차례의 토론은 후보의 지지율 변동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지만 앞으로의 TV토론은 유권자들의 후보의 지지율 변동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후보들 간의 치열한 토론과정은 가량 비에 옷 젖듯이 유권자들의 후보의 자질 평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특히 양강구도의 대선 판이지만 앞으로의 토론은 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부동(浮動)층의 선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한편 TV 토론은 정치적 무관심층의 관심을 자극해 기권 예방과 투표율 상승에도 기여할 것이다. 앞으로 토론이 후보 공약의 신뢰도, 위기 대응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둘째, 양 강 후보의 중도 확장 전략의 성공여부는 대선 판세를 좌우할 것이다. 현재의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진영에 편입된 약 30%의 고정 지지층은 사실상 표심을 바꾸기 어렵다.그러나 유권자의 약 20% 내외의 중도 부동층의 선택이 대선의 승패를 좌우할 수도 있다. 좌우 특정 진영 정치에 매몰되지 않는 부동층은 언제라도 표심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중엔 이재명과 윤석열 후보의 정치적 스캔들에 염증을 느껴 후보를 선택을 미루는 유권자도 포함된다.최근 보수 야당의 좌 클릭과 진보 여당의 우 클릭 정책은 중도 포섭 전략의 일환이다. 코로나 재난 지원금 확대 지원, 의료 보장 범위의 확대, 군 사병 봉급의 인상, 세금 삭감 등 포풀리즘적 공약을 남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재명 후보가 김종인, 윤여준, 이상돈 등 중도 우파 인사들과 접촉하고, 윤석열 후보가 호남 공략을 적극 펴는 것도 결코 이와 무관치 않다. 앞으로 양진영의 중도 확장 전술이 대선의 결과를 좌우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셋째, 대선 막판의 후보 단일화 변수는 대선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결정적 변수이다.국민의 당 안철수 후보의 위상이 갑자기 부각될 수밖에 없다. 이재명 후보는 이미 안철수 후보의 과학 기술 정책만큼은 국정운영에 반영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윤석열 후보 진영에서도 단일화의 당위성을 역설하고, 보수적 시민 단체들까지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를 압박하고 있다.그러나 당사자인 안철수 후보는 처음부터 ‘대통령에 당선되려고 입후보’했음을 강조하면서 대선의 완주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것이 안철수 후보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술인지 그의 일관된 소신인지 아직 분명치 않다. 여하튼 안철수는 또 다시 자신의 정치적 소신과 단일화 요구라는 현실 사이의 선택적 기로에 서 있다.위의 3개의 변수는 사실상 독립 변수이면서도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종속변수이다. 여기에 한국의 대선 판도에서 느닷없이 등장할 수 있는 돌발 변수를 상정해 볼 수 있다.이제 과거의 북풍 공작이나 병역 비리 등 네거티브는 이제 통하지 않는 선거판이 되었다. 그러나 대선 막판의 전대미문의 대형 정치 스캔들 폭로, 후보 자신 및 가족, 부인 등 핵심 측근의 명백한 비리, 토론과정의 후보의 결정적인 말실수 등은 선거의 판세를 뒤집을 수 있는 변수다.그러나 여야 어느 쪽이던 안철수와의 단일화만 성사된다면 이러한 돌발 변수는 잠재울 수 있다. 후보 간의 단일화가 반드시 1+1=2의 힘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안철수의 단일화 여부에 따라 대선 판도는 또 한 번 요동칠 것이 분명하다. 단일화를 포함한 돌발적인 상황 변수를 예의 주시할 수밖에 없다.

2022-02-20

국민 건강권 위협하는 왜곡된 의료체계

곽재혁대구시의사회 이사·신경과 전문의 얼마 전 아침 출근길에 차 안 라디오에서 가벼운 질환에 대해서는 가까운 동네 의원을 이용하자는 광고가 나왔다.대구시의사회에서 의료전달체계 확립을 위해 광고를 제작하여 캠페인을 하고 있다.의료 전달 체계는 종합병원의 환자집중 현상을 막기 위해 병의원을 거친 다음 종합병원으로 가도록 하는 제도다. 1989년 7월 1일 전국민의료보험과 함께 실시됐다.동네 병원마다 수억원씩 나가는 기계를 들여 놓을 수도 없고, 동네병원에서 얼마든지 치료가 가능한 감기와 같은 가벼운 병증으로 대학병원까지 가서 진료를 받는 낭비를 줄이자는 의도이다. 1989년 7월 1일 전국민의료보험과 함께 실시됐다.하지만,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의료전달체계 대한 규제가 매우 약하다.대학 병원급인 3차 병원의 진료만 진료의뢰서를 요구하며 그나마 이것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실제로 개인 의원을 하다보면 대학병원에 예약이 되어 있으니 진료의뢰서만 해 달라고 요구하는 환자들도 많다.얼마 전 내원한 40대 환자는 한 번씩 신경을 쓰면 두통이 생긴다고 호소하였다. 뇌 MRI을 촬영하고자 수도권에 있는 대학병원에 진료 예약을 해 놓았다면서 진료는 필요 없으니 진료의뢰서만을 요구하였다.환자의 간단한 두통의 경우 뇌 MRI보다는 원인에 따라 약물치료나 운동치료 등으로 좋아 질 수 있고 만약 뇌 MRI가 필요하면 굳이 대학병원보다는 지역 영상의학과에서 MRI를 촬영하면 비용도 저렴하고 빨리 결과를 알 수 있다고 설명을 했으나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서 검사를 해야 믿음이 간다면서 결국 진료의뢰서 발급만을 원했다.이처럼 우리나라에서 의료전달체계가 유명무실화된 것은 의료체계를 단계적으로 이용하도록 도입된 진료권 개념을 의료이용의 불평등으로 보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환자 진료 후 의사의 판단에 의해 진료의뢰서가 발급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요구에 의해 발급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의료기관의 규모나 역할과 관계없이 경쟁적으로 외래환자를 유치하는 환경도 의료전달체계를 무너뜨린 요인이다.시설과 인력, 자본이 의원에 비해 훨씬 우월적인 대형병원이 의원과 환자유치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의료기관도 시장에서의 생존을 위해 환자를 유치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대형 병원으로 가는 것은 환자의 선택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하지만 수도권의 대형병원 쏠림의 피해자는 곧 환자들이다.3차 병원의 진료가 꼭 필요한 환자들이라도 짧게는 1~2개월, 많게는 수개월에서 1년 이상 지나야 예약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대학병원 외래에 경증의 환자들이 이미 예약이 많이 차 있기 때문이다.2020년 신천지 사태로 인해 대구 지역에서 수도권 대형 병원 진료를 보기 어려웠을 때가 있었다. 당시 환자들은 서울에 있는 병원에 갈 수 없는 탓에 처방전을 받기 위해 지역내 의원을 방문하는 경우가 많았다.한 환자는 수년 전 뇌경색으로 진단받고 6개월마다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약을 타러 갔다고 했다. 환자가 가지고 온 약은 아스피린 한알과 고지혈증약 한 알 뿐이였다. 어디서나 쉽게 받을 수 있는 약인데도 불구하고 6개월에 한번씩 수시간이 걸려 기차를 타고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에 방문하여 1시간 넘게 기다리고 1~2분의 짧은 진료를 받고 6개월치의 약을 타고 내려오는 것이다.급성 뇌경색일 경우에는 최대한 빨리 가까운 대학병원을 방문하여 필요시 시술이나 혈전 용해제를 써야 하지만 급성기가 지나서 만성인 상태에서는 가까운 1, 2차 전문 병원에서도 충분히 관리가 가능하다.3차 병원에서는 응급과 중환자 위주로 치료를 하고 1, 2차 병의원에서는 경증과 만성 환자 중심으로 관리를 하는 것이 국민들의 의료접근성이 더 높아지고 국민 건강권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이다.의료전달체계에 의한 의료 이용이 장기적으로 환자의 건강 관리에 유리하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TV에서 이국종 교수는 중증외상환자만 보면 병원이 적자가 나서 힘들다는 말을 많이 했다. 지금처럼 응급환자나 중증환자들의 진료를 저수가로 유지한다면 대학병원에서는 중증환자보다는 많은 외래 환자 유치에 집중할 것이다.따라서, 정부는 중증환자에 대한 저수가를 개편하여 적정 수가로 3차 병원이 중증 환자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하고, 국민들에게는 경증 환자들이 1, 2차 병의원을 이용하는 것이 국민의 선택권의 문제가 아닌 국민의 건강할 권리를 보장한다는 인식 전환 캠페인을 펼쳐서 할 것이다.호미로 충분히 막을 수 있는 건 호미를 사용하면 된다. 그래야만 정말 가래가 필요한 경우 적재적소에 가래를 쓸 수 있게 된다.

2022-02-20

지역민 위해 헌신, 노력하는 단체장 선출해야

심정미대구경북녹색연합 사무처장 2022년 6월 1일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일이다. 동시지방선거일에는 단체장을 비롯하여 그 지역을 대표해서 이끌어나갈 지역 일꾼을 선출하는 날이다. 그만큼 지역의 발전과 미래를 위해 중요한 선거일인 만큼 지역의 올바른 일꾼을 뽑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일은 제 20대 대통령선거의 여파로 관심밖으로 밀려나 있는 실정이다. 대통령을 잘 뽑아야 하는 만큼 지역에서는 지방선거가 중요한 선거이다.지역에서는 광역시장, 구청장, 시의원, 구의원을 비롯하여 우리 집안 살림을 도맡아줄 중요한 일꾼을 선출하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지역에서는 대선후보에 누가 될까 숨죽이고 있는 상황이다. 아니면 대선구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여러 상황을 예측하고 있는 것일까?지역을 위해 노력하고 헌신해온 인사들보다 눈치보기와 특정인의 행보에 따라 달라지는 입장표명들이 지역민의 한사람으로 안타까움이 앞선다. 특히 보수성지로 불리는 TK인 만큼 ‘공천이 곧 당선이다’는 공식으로 지역을 위한 전략이나 비전제시보다는 보수당 내 경선에 더 치중하는 모양새다. 지금까지 공천받으면 당선되는 결과를 안겨준 대구시민이 자처한 일일지도 모른다.중앙당에서 후보를 정해서 내리는 하향식 공천의 경우 지방자치제도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 수 있기에 지역 당원과 주민이 직접 후보를 결정하는 상향식 공천제도 도입을 주장하지만 과연 상향식 공천이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지역에는 유난히 해결해야할 난제가 많다. 그러기에 더욱 유능하고 지역을 위할 단체장 선출이 중요하다. K2대구통합공한이전사업, 낙동강 먹는물 문제, 신청사건립, 인구감소 문제, 청년실업 문제 등 주민의 생존권과 환경권을 모두 고려한 여러 가지 사안들이 즐비하다. 이러한 복합적인 지역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더욱 통합적인 관점과 능력을 가진 단체장 선출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지역에서는 후보자의 비전이나 역량보다는 배경이나 당에 의존하여 선출되는 경우가 많다. 사실상 당에 의해 당선되는 것이 공식화되어 있다.유독 TK정서를 내세우며 우리 지역에는 하향식 공천이 주를 이루고 있다. 말은 지역의 정서를 반영한 유력인사라고 하지만 사실상 중앙당의 필요에 의해, 또는 필요한 사람들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편이다.선거가 끝나면 우리를 바보로 아나, 우리 지역에 일꾼은 우리가 뽑아야지 하는 여론도 형성되지만 결과는 거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단체장의 덕목으로 청렴성, 도덕성, 능력, 열정, 지역에 대한 애착, 지역주민과의 소통 이러한 단어들은 뜬구름 잡는 단어이다. 지역의 현안문제를 고심하고 노력하는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 지역민을 위해 헌신하고 노력하면 ‘여기서 노력해봐야 공천 못 받으면 다 헛일인데’라는 푸념만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지금 우리 지역을 둘러보자. 대선에 총력을 기울이는 당의 모양새와 흡사하게 지방선거는 점점 소멸되고 있다.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 지방자치제도를 실현한다면 지방선거를 제대로 알차게 준비하면서 대선까지 함께 준비하는 모범적인 선거구도를 보여야 한다. 여기저기 눈치 보기, 기웃 거리기, 요리 조리 피해 다니기, 한마디로 정책대결보다는 눈치게임에 가깝다. 연일 터지는 후보 출마설은 이러한 정국을 대변하는 듯하다.또 다른 아쉬운 점은 환경관련 공약이 미약하다는 것이다. 환경권은 헌법에도 보장되어 있는 기본 권리이자 의무이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국민 모두가 노력해야할 부분이지만 지방선거에서는 환경관련 공약을 찾기 힘들다. 특히 환경정책의 특성을 고려한 중장기적인 환경관련 정책들은 더 그러하다. 필(必)환경의 시대에 알맞은, 지역특성에 적합한 환경관련 정책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친환경 단체장을 찾는 일이 시급하다.현재 우리는 펜데믹 시대에 공존하며 더욱 심각해지는 고령사회, 양극화 문제, 실업문제, 환경 문제 등을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나가야 한다. 지금은 우리는 변화된 모습을 보여줄 때이다. 더 이상 이러한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말고, 진정으로 우리 지역을 위해 일할 사람! 능력뿐만 아니라 따뜻하게 주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사람! 여러 난제를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 무엇보다 지역 주민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사람으로 단체장을 선출해야 할 것이다.

2022-02-20

편백나무가 지키는 주상절리

새밭골로 산책을 나갔다. 시댁에서 아버님이 일주일간 혼자 지낸 집 설거지를 끝내고도 아직 해가 남은 오후, 좀 걸을까 했더니 남편이 길을 잡았다. 결혼한 지 30년이 다 되어가도 시댁에 가도 울타리 안에서만 맴돌 뿐 동네에 나간 적이 거의 없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차 타고 한참 거리의 장기읍성은 자주 올랐어도 사부작사부작 걷는 동네 길은 염두에 두지 않았었다.봉산초등학교 뒤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고양이 두 마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내가 아는 척을 하자 자신들만의 길인지 개구멍 속으로 사라진다. 남편이 이 학교 학생일 때 교장 선생님 사택으로 썼던 건물이 사라지고 깔끔한 전원주택이 들어섰다. 그 앞을 지나 신작로를 따라갔다. 동네에 집들도 주인처럼 나이가 들어 허물어지기도 하고, 새로운 주인을 만나 새 단장을 한 집은 전입생처럼 아직 앉은 자리를 낯설어하는 모습이다.도랑을 따라 걷다 산모퉁이를 돌자 갈비뼈를 드러낸 야산이 옆으로 누웠다. 까만 육각형의 뼈가 나란히 붙어선 모습이 켜켜이 장작을 쌓아 깊은 산골에 나무꾼이 겨우살이를 준비해 놓은 형상이다. 가까이 가니 산밑으로 떨어져 나온 검은 돌도 모두 각진 모습을 잃지 않았다. 길옆에 물이 얼어붙어 있는 계곡을 채운 것도 검고 각이 졌다. 모두 주상절리다.시댁 코앞에 주상절리가 있다는 것을 이제야 보다니, 남편에게 이런 귀한 풍경을 왜 이제야 보여주었냐고 따졌다. 달전리 주상절리는 몇 번이나 찾아가 보았으면서 더 가까이 있는 것은 알려주지 않아 이제야 알게 된 것이 속상했다. 2000년에 천연기념물로 등재된 달전리 주상절리는 과거 포스코 및 국가산업 단지를 매립할 때 사용되었으나, 발견된 이후 지질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보호받고 있다. 아직 이곳은 포항 시민 대부분이 모르는 눈치다.주상절리는 주로 현무암과 같은 화산암에서 형성되는 육각기둥 모양의 돌기둥을 의미한다. 주상은 수직으로 세워진 것, 또는 나무 기둥, 그루터기란 뜻이고 절리는 암석에서 볼 수 있는 나란한 결, 갈라진 틈이라는 뜻이다. 뚜렷한 육각기둥이 잘 발달한 이곳에서는 용암이 식어 주상절리가 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한반도와 붙어있던 일본이 잡아당기는 힘으로 벌어진 틈을 따라 땅속 깊은 곳에 있던 마그마가 솟아오르면서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현무암이 만들어진 것이다.포항 일대는 대략 1억3500만 년 전에서 약 6500만 년 전 현무암과 화성암, 그리고 퇴적암이 분포한다. 한반도에서는 보기 드물게 신생대 제3 퇴적분지가 분포해 그 당시 살았던 생물의 화석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이런 포항은 지질공원으로 불러야 마땅하다.달전리와 새밭골 말고도 주상절리가 또 있다. 두 곳이 산에 묻혀 있었다면 구룡포해수욕장 옆에 자리한 주상절리는 바다에 빠진 상태다. 일본 미야자키의 도깨비 빨래판처럼 파도가 까만 돌섬 사이로 쉼 없이 밀려온다. 용암이 나오는 모습 그대로 멈춘 모양이라 화산폭발 때를 상상하게 만든다. 전망대도 있고 바다로 내려가는 나무 계단도 만들었다. 이곳이 주상절리라는 표지판을 세우고 주차장까지 마련해서 제법 관광객이 찾아온다. 주차장 바닥에 돌 모양으로 마무리를 했는데 둥글둥글하다. 주상절리가 각이 진 것처럼 흉내 내어 만들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바닷가에 부서진 돌도 그 수많은 파도에도 아직 둥글어지지 못했다. 근처에 건물 주위에 쌓은 축대에도 그 흔적을 가져다 썼다. 새밭골의 주상절리는 깨뜨려서 냇가에 둑이 무너지지 않도록 철망을 쌓을 때 사용했다. 산으로 내를 막았다. 쑤욱 들어간 산허리가 지나는 사람들 보기에도 민망해서인지 2018년에야 편백나무 285본을 심었다고 표지석을 세워놓았다. 속살이 드러나게 해서 미안하다고 연고 바르고 밴드도 붙였다. 하지만 1억 년이 넘는 역사를 품은 곳을 편백나무에게만 책임을 지라고 하는 것은 무리수이다. 관심의 눈길을 새밭골 주상절리에게도 나눠주길 바란다. /김순희(수필가)

2022-02-20

스마트 시대의 방역 패스

곽지영포스텍 산학협력교수 요즘 식당, 카페, 극장 등 다중이용시설 어디나 입구 풍경은 비슷하다. 길게 줄을 서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폰을 꺼내 들고 흔들고 있는 사람들. 간간이 담당 직원과 같이 폰을 가리키며 옥신각신하는 사람들로 붐비는 모습도 보인다. 다중이용시설의 방역 패스가 의무화되면서 생긴 ‘위드 코로나’ 시대 새로운 풍속도다. 방역기준이 강화되면서부터는 입장하는 손님들의 백신 접종 날짜를 일일이 확인하는 전담 아르바이트생이 등장하기도 했다. 패스 기능을 하는 앱을 각종 포털, 통신사, 질병관리청에서 모두 제공하는데, 간혹 먹통이 되거나 사용자 인증을 새로 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 갑작스런 상황에 진땀을 빼기도 하고, 가게마다 인정되는 기준과 방식이 다를 때도 있어서, 식사하러 간 손님들의 기분이 입구에서부터 상하기도 한다. 직원들도 곤욕스럽기는 매한가지다. 손님이 밀려드는 시간, 주문받고 음료를 준비하기도 바쁠텐데, 일일이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확인해야 하니 말이다. 초기에는 입구에 비치된 노트에 공개적으로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쓰고 들어가야 했던 것에 비하면 그나마 나아진 것인가 싶기도 하다.우리나라 18세 이상 성인의 스마트폰 사용률이 98%에 이른다고는 하지만, 스마트시티를 연구하는 공학자의 입장에서조차, 나이 불문하고 스마트폰 없이는 장을 보고 밥을 먹는 일에도 제약을 받는 세상이 너무 일찍 와버린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들께서 입구에서 쩔쩔매시는 모습을 보면, 나라도 다가가서 좀 도와드려야 하나 고민스러울 때도 있으니까. 그러다보니 식당이나 마트 입구에서는 여러 가지 생각에 골몰하게 된다. 과연 지금의 방법이 최선인지, 이렇게 하면 실제로 감염병의 위협으로부터 우리 자신과 가족을 지킬 수 있을지. 혹시 좀 더 스마트한 방법, 원래의 목적에 충실하면서도 이용자의 불편과 부정적 감성을 줄일 방법은 없을지….예상컨대, 입장하는 사람들에게 QR코드를 직접 찍게 하는 지금의 방역 패스는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듯하다. 방역 패스를 실시하는 목적을 다시 생각해 보면, 첫째, 다중이용시설의 시간대별 방문 기록을 남기는 일, 둘째, 입장객의 백신 접종 이력과 유효기간 만료 여부를 확인하는 일, 셋째, 확진자가 발생했을 경우, 방문 이력을 분석하여 정확한 시간, 장소 등을 특정한 후 밀접 접촉자를 파악하는 일 등의 세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이 세가지가 모두 간단한 센서와 IT기술만으로도 자동화가 가능한 것들이기 때문이다.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방역 패스 도입에 따른 사람들의 불만과 사회적 논란이 심상치 않다고 한다. 방역 패스는 우리 모두를 감염병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도입한, 공익 차원에서 불가피한 안전망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 생기는 불편을 이용자들에게 떠넘기고, 사생활 노출이나 기본권 침해 우려까지 외면해버린다면, 안전망은 제 기능을 할 수 없을지 모른다. 공익을 위한 최후의 보루인 방역 패스가 오명을 벗고 사회적 합의를 얻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2022-02-20

새 노년의 덕

유영희작가 60+책의해 유튜브 채널은 60+ 세대가 나와서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소개하는 채널이다. 우연히 알게 되어 구독하고 있다. 소박하면서도 진정성 있는 출연자들의 소감을 듣다 보면, 젊은 유명 북튜버 채널과는 다른 감동을 느끼게 된다. ‘황혼의 미학’은 그 채널에서 알게 된 책이다. 저자 안셀름 그륀은 노년의 두 가지 과제로 자신 받아들이기와 놓아 버리기를 말한다.많은 사람이 노년에 빠지기 쉬운 어려움 중 하나는 지난날에 대한 후회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책은 과거와 화해하기를 맨 앞에 둔다. 언젠가 다시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다면 다른 선택을 하고 싶다고 하자, 두 딸은 이구동성으로 불가능하다고 한다. 사람은 변하기 어렵고, 그때 선택은 그 나름대로 최선이었을 것이라는 게 이유다. 그러고 보면 그때 왜 그랬는지 이해하고 화해하는 것만이 최선이다. 한계도 받아들여야 하고, 고독도 다룰 수 있어야 한다.무엇보다 노년의 생활 중 가장 혹독한 시련은 홀로 있다는 기분, 쓸모없어졌다는 생각이다. ‘인간에게 열정과 일…. 과제가 없는 상황처럼 견디기 힘든 것은 없다. 인간은 그런 상황에 처하면 자기가 얼마나 무가치하고, 고독하고, 무기력하고, 의존적이고, 무능하고 공허한 존재인지 느낀다. 그런 느낌이 들자마자 영혼 밑바닥에서 지루함, 슬픔, 불만, 절망이 솟아오른다.’고 했던 파스칼의 말은 노년의 감정을 잘 표현해준다. 이런 상황이 가장 감당하기 어려운 과제이니 잘 대처해야 한다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그렇다고 저자의 말에 모두 공감하는 것은 아니다. 놓아 버리기에서 제시하는 재산에 집착하지 않기, 건강에 매달리지 않기, 권력 내려놓기, 자아 버리기 들에는 공감하기 어려웠다. 특히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자식들에게 넘겨주어 재산에서 해방되라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말을 액면 그대로 실천하라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다. 저자의 신분이 사제라서 이렇게 말했을까? 하긴, 부처님의 가르침은 더 극단적이다. ‘맛지마 니까야’라는 초기 불교 경전에는 재산을 자식에게 다 물려주었다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어느 은퇴자에게 부처님은 감각적 욕망까지 내려놓으라고 한다.며칠 전 노후 연금을 계산해보니, 그동안 알고 있던 금액에서 많이 모자랐다. 평생을 계약직과 프리랜서로 살아왔으니 변변찮을 것은 당연하지만 이 정도라니 충격이 왔다. 인문학 공부 경력은 간 곳이 없고 불안이 밀려 왔다.재산을 자신이라고 착각해서도 안 되고, 인색한 것 역시 당연히 악덕이지만, 2020년 현재 한국의 남녀 모두 기대 수명이 80세가 넘고 90세에 육박하는 현대 사회에서 노년에게 어느 정도 재산은 필요하다. 저자는 마지막에 평정, 인내, 온유, 자유, 감사, 사랑이 노년의 덕이라고 말한다. 어느 정도 재산은 이런 품성을 기르는 데도 도움이 된다.초고령 사회의 새 노년에게는 놓아버리기보다 적절하기가 더 필요할 것 같다. 자아를 버리고, 권력을 내려놓으라는 급진적 가르침보다 적절한 자아, 대안적 권력을 제시해야 할 때가 왔다.

2022-02-20

12평 원룸 전세

김규종 경북대 교수 아들과 전화하다가 숨이 턱 막힌다. 정말이냐, 하는 소리가 입에서 튀어 나간다. 서울에 인접한 인구 29만의 소도시 하남의 원룸 전세가 1억6천만원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에 일자리를 얻어 그리로 이주한 아들의 말이었다. 방 하나짜리 콘크리트 구조물에 ‘억’ 소리 나는 세상이다. 이건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세상이다.건축부지에 4∼5층 규모로 올려진 닭장 같은 방을 그 가격에 빌려서 살아야 하는 이 나라 청춘들의 삶은 지극히 피폐하다. 아무리 이자율이 낮기로서니 평당 1천300만 원이 넘는 돈을 주고 전세를 살아야 하니 말이다. 이런 데도 나이 든 축은 젊은이들이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안 낳는다고 나무란다.원룸이 방음이나 방한도 엉성하고, 관리도 그래서 건강한 주거환경을 제공하는 곳은 아니지 않은가?! 남향을 주장할 형편도 아님은 자명(自明)한 이치고. 얼마간의 땅에 몇 달 뚝딱하여 건물 세우고, 거기서 나오는 이득을 몽땅 챙겨가는 자들은 누구인지 궁금하다. 돈이 돈을 벌어도 무지막지하게 긁어가는 세상!지주와 시공업자의 배만 불려주는 이런 행태는 고쳐야 한다. 하기야 몇 년 전에 지인의 딸이 마포에 있는 두 개짜리 방을 2억5천만원에 전세로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기겁한 적도 있으니 금시초문은 아니다.언제부터 이런 지경으로 된 것일까?! 숱한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지만, 번번이 실패를 거듭한 정부의 무능(無能)에 분노가 치민다.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 종부세 걱정하고, 노숙자들이 재벌 상속세에 한숨 짓는 이상한 나라고 보면 그럴 만도 하다. 먹고 입고 자는, 이른바 식주의(食住依) 세 가지는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이런 조건마저 제대로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정부라면 21세기 대명천지에 얼굴 들기 민망할 것이다.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정치적으로 후진국에서 불과 60년 만에 세계 10대 경제 강국과 민주국가로 변신했다. 우리 국민 모두 이 점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런데 그런 허울의 이면에 승자독식과 경쟁만능 그리고 약육강식의 정글 투쟁이 횡행(橫行)하고 있다. 젊은이들의 등골을 훑듯이 빼먹는 나이 든 축들의 탐욕은 식을 줄 모른다.권력욕이든, 물욕이든, 명예욕이든 탐욕은 탐욕으로 잠재워지지 않는다. 갈증이 심하다 해서 바닷물을 마시면 조갈증은 더 심해질 따름이다. 사회적 공론장의 형성과 깊이 있는 논의를 거쳐 생산적인 결론을 도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성세대만을 위한 돈과 권력이 아니라, 미래세대와 그들의 어린것들을 위한 청사진도 함께 그려야 한다.논의의 출발은 ‘나와 내 아내와 내 남편’이라는 편협한 가족주의의 굴레를 벗어던지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 모두 평등하고 자유로운 인간이라는 대전제에서 시작하여 이제는 상실된 공동체와 공동체성을 시급하게 회복해야 하리라 생각한다.

2022-02-20

나라 빚과 대선공약

한국매니페스토 실천본부가 대선후보 각 진영으로부터 제출받은 후보별 대선공약 이행 비용을 보면 가히 놀랍다.더불어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300조원,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266조원, 정의당 심상정 후보 175조원,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201조원 규모다. 과거와 비교하면 더 잘 알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 규모가 각각 178조원, 135조원이었으니 대략 100조가 더 많다.문제는 재원 조달 방법이다. 매니페스토 본부 측은 후보마다 세출예산 절감과 같은 기존 예산을 쥐어짜는 방식으로만 답변했을뿐 구체적 대안 제시는 없었다 했다. 선거를 의식한 무책임한 선심성 공약이다. 포퓰리즘이란 비판에 변명 여지가 없어 보인다.올해 우리나라 국가부채는 1천조원을 돌파했다. 올 국가채무 1천68조원을 인구수로 나누면 1인당 국가채무액이 사상 처음으로 2천만원을 넘는다. 2010년 29.7%이던 국가채무비율이 올해는 50%를 넘는다.나랏빚 증가속도가 OECD 회원국 중 우리가 가장 빠르다. 코로나를 넘어야 하고 저출산, 고령화 등 국가적 리스크가 산적한데도 후보들은 묻지마식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문재인 정부 5년동안 국가채무가 400조원 늘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9년간보다 약 57조원이 더 늘었다. 이유야 어쨌든 차기 정부의 몫이다.우리나라는 경제 3주체인 기업과 가계, 국가가 모두 1천조원 부채를 짊어지고 있다. 이른바 트리플 1천조시대라 부른다.대선후보의 공약이 말로 그칠 순 없는 일이다. 무책임한 선심공약에 국민이 현혹돼서도 안되겠지만 후보들의 포퓰리즘 경쟁도 그만해야 한다. 대선공약을 제대로 살피고 올바른 주권행사를 하는 것도 유권자 몫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2-20

윤-안 단일화 전망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과연 단일화할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초박빙 형세를 이어가고 있어 단일화가 대선 승부를 결정짓는 최대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누구와 어떻게 단일화되느냐에 따라 대선 승부의 결과가 달라진다는 전망이나 진단이 쏟아지고 있다.국민의힘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윤석열 후보가 승리하는 세가지 경우’에 대한 우스갯소리가 떠돈다. 가장 확실한 승리를 보장하는 경우가 이재명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하는 경우란다. 야권 단일화와 정권교체를 주장하며 출마한 안철수 후보의 10% 남짓한 지지층 대다수가 반발하며 윤석열 후보쪽으로 표가 몰려 압승한다는 것이다.두번째가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했을 경우이고, 세번째는 지금처럼 4자구도로 선거가 치러질 경우란다. 윤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는 얘기이니 윤 후보 승리를 염두에 둔, 일방적인 전망이다. 하지만 이런 전망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윤석열 후보가 확실히 승리하려면 반드시 단일화해야 한다는 메시지다.어차피 안철수 후보와 이재명 후보가 단일화하는, 이른바 ‘안일화’는 정치권 일각에서 잠깐 떠올랐던 음모론 수준에 그쳤다. 최근 윤 캠프는 설령 단일화가 안되더라도 4자구도에서 이재명 후보를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그동안 다자대결에서 초박빙 승부를 보이던 형세가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윤석열 후보가 이재명 후보를 오차범위 밖에서 앞선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선거 막판에 터져 나온 이재명 후보의 배우자 김혜경 씨의 ‘과잉 의전’ 논란이 이른바 ‘이재명 옆집’ 의혹으로 번지면서 악재로 작용하고 있고, 어떤 악재에도 상관없이 정권 심판론을 지지하는 여론이 국정 안정론을 훨씬 앞서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니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어느 후보가 당선될 것으로 보느냐는 당선가능성 조사 결과 역시 윤석열 후보가 이재명 후보를 크게 앞지른다. 즉, 대세는 윤 후보에게 유리한 형국이니 박빙 우세의 형국으로 읽힌다.그렇다해도 방심은 금물이다. 정치는 생물이라 언제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른다. 확실한 승리를 위해서는 윤 후보와 안 후보가 단일화하는 것이 정답이라는 게 윤 캠프의 분석이다. 안철수 후보는 지난 13일 ‘국민 경선’ 방식 야권 단일화를 제안했지만 국민의힘은 역선택을 우려하며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실제로 윤 캠프에서는 “안 후보가 국민경선 방식의 야권 단일화를 제안한 것은 국가대표팀과 동네 조기축구회가 경기를 하는데, 관중의 투표로 승부를 짓자는 얘기나 다름없다”는 평가다.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이다.윤 후보도 단일화 제안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도 여론조사 방식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대선이 불과 20여일 남은 마당에 단일화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결국 윤-안 단일화는 윤 후보가 말한 것처럼 야권통합의 명분 아래 두 후보의 담판으로 결정날 가능성이 높다.

2022-02-17

군소 후보들

20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후보는 모두 14명. 19대 때보다 1명이 줄었다. 그러나 19대 때는 두 명의 후보가 중도 사퇴하는 바람에 실제적으로는 13명의 후보가 뛰어 이번에 출마한 14명이 모두 완주한다면 역대 대선에서 가장 많은 후보가 선거에 나서게 되는 셈이다.19대는 1명의 무소속이 있었지만 20대는 모두 정당 후보다. 여성 후보가 2명 있다. 연령별로는 60대가 6명으로 가장 많고 70대도 2명이다. 신자유민주연합의 김경재 후보가 79세로 최고령이며, 진보당 김재연 후보는 41세로 최연소다.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국민의힘 윤석열, 정의당 심상정, 국민의당 안철수 등 네 명의 후보에게 여론이 집중되는 바람에 군소후보들은 홍보가 잘 안돼 속앓이를 많이 한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에도 얼굴을 알리기 위해 각자 선거 현장으로 뛰어들어 고군분투 중이다.그 가운데는 눈에 익은 후보도 있다. 15대와 17대에 이어 세 번째 출사표를 던진 국가혁명당 허경영 후보와 현 정부에서 경제부총리를 지낸 새로운 물결의 김동영 후보, 친박 지지층 기반의 우리공화당 조원진 후보 등은 국민에게 조금은 낯익은 인물이다.그 밖에 통일한국당의 이경희 후보는 안철수 후보 다음으로 많은 1천499억원의 재산을 신고해 눈길을 끌었다. 또 새누리당 옥은호, 노동당 이백윤, 한류연합당 김민찬 등도 열심히 뛰고 있다. 기본소득당 오준호와 조원진, 김재연은 고향이 대구라 눈길이 한번 더 간다.선거는 정당이 크고 작고의 구분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실시된다. 군소후보들이 언젠가 유력후보가 될지도 모른다. 민주주의 정치 실현을 위해 열심히 뛰는 군소정당 후보에게도 격려의 박수를 보내자./우정구(논설위원)

2022-02-17

적폐청산과 정치보복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문재인 정권은 시작부터 소위 ‘적폐청산’에 전력했다. 그들이 말하는 적폐(積弊)란, 이명박·박근혜 두 전임 대통령의 모든 정치행위와 그것에 가담하거나 동조했던 사람들의 행적에 적용되는 말이었다. 그래서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실정과 과오는 적폐에 해당이 되지 않는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적폐청산 부처별 TF(Task Force) 구성현황과 운용계획을 회신하라’는 공문을 발송하자 정부 각 부처들은 조직적으로 과거 정권에 대한 적폐청산 활동에 들어갔다.지난 정권의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주요 인사들과 국정원, 검찰, 국방, 사법, 교육, 언론 등 전 분야에 걸쳐 대대적인 청산작업(?)을 감행했다. 그 결과 1천 여명을 수사해서 그 중 150여 명을 구속하는 실적을 올렸다고 한다. 그래서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들, 정부의 부처장은 물론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까지 좌편향 인사들로 물갈이를 했다. 국회의석 180석을 차지한 여당은 위헌의 소지가 있는 공수처법, 대북전단금지법, 5·18특별법개정안, 언론중재법개정안, 임대차3법 등을 야당의 반대를 무시하고 힘으로 밀어붙였다.며칠 전 문재인 대통령은 ‘강력한 분노’를 표명했다. “집권하면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하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윤석열 대통령 후보가 “해야죠”라고 대답한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윤 후보는 ‘시스템에 의한 법과 원칙에 따른 수사를 할 것이고 대통령이 개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문 대통령은 ‘적폐가 있었으면 검찰총장 자리에 있을 땐 왜 하지 않았느냐. 없는 죄를 만들어 정치보복을 하려는 게 아니냐. 사과하라’고 했다. 그에 따라 청와대와 여당에선 일제히 ‘정치보복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윤 후보를 공격했고, 국민의힘당은 ‘대통령의 선거개입’이라고 맞받았다.그런데 문 대통령의 말에는 분명 어폐가 있었다. 윤 후보는 검찰총장 시절에 현 정권의 적폐를 알고도 모른 척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통해 조국 일가 비리수사나 울산시장선거조작, 월성1호기 경제성 조작 등을 수사하는 수사팀을 해체하는가 하면 윤석열 총장의 지휘권을 박탈하고 총장 자리에서 몰아낸 사실을 모를 수가 없을 터인데도, 시치미를 떼고 이른바 ‘유체이탈 화법’을 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자유민주당 대표 고영주 변호사가 나열한 현 정권의 적폐혐의는 한둘이 아니다. 울산시장 선거개입과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말고도 라임·옵티머스 펀드사기, 태양광사업 비리, 탈북주민 강제북송 등도 결코 가볍지 않은 적폐라는 것이다.노무현을 수사한 것은 정치보복이고, 이명박·박근혜를 감옥에 넣은 것은 적폐청산이라는 논리는 적어도 과반수의 국민들에겐 설득력이 없을 것이다. 임기가 끝나가는 지금 다시 야당대권후보에게 ‘정치보복’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내가 하면 적폐청산, 남이 하면 정치보복’이라는, 문재인 정권이 초지일관 견지해온 ‘내로남불’의 결정판으로 손색이 없겠다. 하지만 그것은 저들만의 일시적인 정신승리일 뿐, 남에게 휘둘렀던 적폐의 잣대가 결국엔 자신들에게도 돌아올 거라는 불안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2022-02-17

포항 장기면 수성사격장 폐쇄 이전 촉구

송영출포항장기수성사격장반대대책위원 수성사격장 문제를 해결하고자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은 지난 2월 7일 포항시 장기면 반대위를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반대위 조현측 수석대표와 김상규 사무국장은 주민 2천346명의 동의를 얻어 장기면 지역개발사업과 마을숙원사업을 전달했다. 하지만 반대위가 권익위에 장기면 지역개발사업이라며 제출한 내용들은 재협의가 필요하다.권익위에 전달한 지역개발사업은 반대위 소수 임원 및 이장 등의 합의에 따라 만들어진 내용이다. 반대위나 장기면 주민 전체의 동의를 전혀 받지 아니한 내용이므로 정당성이 결여됐을 뿐 아니라, 주민 전체가 찬성한 내용으로 볼 수 없다. 하물며 반대위에서 건의한 사업을 보면 일말의 실현 가능성도 없어 보이는 사업이 포함돼 주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장기면 지역개발사업 결정은 민·관·군 협의체가 먼저 구성된 이후 장기면 지역개발사업에 대한 내용을 논의한 후 이뤄져야 한다.또 권익위에서 ‘주민대책위에서 요구한 사업을 관계기관과 협의 후 민·군 상생 조정안을 마련해 협의하겠다’고 견해를 밝혔으나, 장기면 지역개발사업은 애당초 주민뿐만 아니라 국방부와 경북도·포항시가 처음부터 참여해 협의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관(경북도·포항시)을 무시하고 추진하는 의도가 무엇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장기면 지역개발사업은 중앙정부, 경상북도, 포항시의 재원이 투입되는 사업이며, 지역개발사업의 타당성, 실현 가능성 등 사전검토가 당연히 이뤄져야 한다. 이러한 사전검토와 협의없이 제출한 사업은 현실성 없는 내용으로 이뤄져 이후 주민들 사이에 갈등과 반목을 키우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애초 장기면 반대위가 출범한 이유는 당장은 아파치 헬기 사격 금지이며 최종적으로 사격장 폐쇄다. 그러나 권익위와 반대위는 이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고 있으며, 권익위에서는 ‘사격장을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지역개발사업 추진’이라는 반대위 출범 목적과 정반대로 사실상 국방부가 요구하는 중재안을 내세우며 장기면민들을 현혹하고 있다.권익위는 장기면민의 전체 의견을 수렴하고 포항시와 소통해 수성사격장 문제를 해결하라.반대위는 장기면민 전체의 뜻을 받들어 일을 처리하라. 더는 소수의견이 아닌 다수의 뜻을 받들어 행동하라. 협의 내용을 공개하고 독단적으로 중차대한 이 문제를 처리하려 하지말라.

2022-02-16

허물벗기

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 교회 성장학에 있어서 두 이론이 있다. 양적성장이론과 질적성장이론이다. 피터 와그너와 맥거브란과 같은 학자는 양에서 질이 나온다면서 양적성장이론을 내세웠고 반면 독일 신학자 이말테 교수와 같은 분은 양은 질의 저하를 가져온다면서 질적 성장을 강조했다. 초기 한국교회는 양적성장이 필요하였기에 양적성장에 매달렸다. 덩치가 크면 힘도 세다는 물리적 논리를 교회론에 적용하여 교회도 몸집이 크면 힘도 세어진다고 하여 양적성장에 전념했고 성공했다. 그런데 1990년을 정점으로 부작용이 생기기 시작하고 지금은 성장이 멈추거나 마이너스 성장 시대에 접어들었다. 질적 성장학자들이 우려한 대로 양은 질적 저하를 가져와서 교회의 위기를 초래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양적성장이론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양에서 질을 추출해내지 못하여 균형성장을 이루지 못함에 있다.이런 문제는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 많은 분야에서 양적성장에 성공했다. 하지만 양에 질이 따르지 못해 수많은 부작용을 불러왔다. 각종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양적성장에 비해 질적 성장이 따라가지 못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몸은 성장했는데 머리가 따라가지 못함이고 몸은 성인이 되었는데 먹는 것은 아직 젖을 먹고 있다는 것이다. 성장에는 필연적으로 성숙이 따라야 하는데 성장만 있고 성숙이 없는 미성숙의 기형 사회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성경에 예수가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게 살라”고 했다. 뱀은 중동 신화에서 지혜의 신으로 자주 나타난다. 뱀의 지혜는 허물벗음에 있다. 뱀이 허물 벗는 이유는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이다. 몸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라나는데 몸을 감싸고 있는 껍질은 자라나지 않아 그 커진 몸이 껍질에 갇혀 결국 죽게 된다. 뱀이 살려면 몸에 맞지 않은 껍질을 벗고 성장한 몸에 맞는 새로운 껍질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허물벗기이다. 다른 용어로 말하자면 패러다임 쉬프트 즉 인식체계의 전환이다. 껍질은 몸을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하지만 그 껍질이 몸에 맞지 않을 때에는 오히려 몸을 조여 죽게 한다. 그래서 뱀은 성장 속도에 따라 몸에 맞지 않은 껍질을 벗겨내고 새로운 껍질을 입는다. 뱀의 지혜는 바로 허물벗기에 있다.우리는 지난 세월 양적성장론이라는 껍질의 보호를 받으며 몸을 키웠다. 하지만 커져 버린 몸이 양적성장이론의 껍질에 갇혀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고 죽어가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지금은 허물벗음을 통해 커진 몸에 입힐 새로운 껍질이 필요할 때이다.

2022-02-16

약한 자가 지배하는 세상 따위는 없다

오낙률시인·국악인 동네 어귀 느티나무 가지에서는 벌써 까치들이 잔가지를 물어다 나르며 알 낳을 둥지를 마련하느라 여념이 없다. 오늘따라 까치울음이 저렇게 정답고도 경쾌하게 들리는 것은, 오는 봄날에 태어날 새끼까치들을 생각하며 열심히 일하는 저들의 희망의 소리가 아닌가 싶다. 계절의 봄은 또 저렇게 오고 있는데 지난 2년 동안 잃어버린 우리네 인간의 봄은 올해도 종무소식이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을 작년에 이어 또 한 번 절감할 것 같다.새해 벽두부터 우리는 평소보다 더 많은 생각과 판단을 요구받는 시점에 서 있다. 아직도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에 붙들려 마스크를 한 체 군중을 피해서 이리저리 도망 다니며 생활하는 형편이고, 북에서는 연일 미사일을 쏘아 올리며 긴장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경제는 경제대로 물구나무를 서서 하늘이 거꾸로 보이는 실정이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일을 앞두고 국민은 두 갈래 세 갈래로 의견이 찢어져 갈등하고, 다투어 상대 진영의 대통령 후보와 그 가족들을 닥치는 데로 물어뜯는 모습이, 마치 야수의 그것과 다름이 없다.야수와 인간의 닮은 점은 먹이활동이 살생으로 이어져 있다는 점이고, 다른 점은, 인간은 살생한 먹잇감을 품위 있게 먹고, 야수는 살생한 먹잇감을 게걸스럽게 먹는다는 점이다. 대통령에 당선되는 일이 국민의 인기 투표에서 이겨야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다 쳐도 그것이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위라면 어찌 대통령 선거를 국민적 축제라 말할 수 있을까.게임을 하는 데는 언제나 내 편 아닌 남의 편이 있게 마련이다. 선거도 그렇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면 승자나 패자나 다 같이 웃으며 악수를 하고 이전의 모습으로 하루빨리 돌아가서 다시금 화목한 울타리를 꾸려가야 하는 게 우리 사회가 묵시적으로 지켜온 규칙 아닐까. 선거에 있었던 어눌했던 감정을 선거가 끝난 후까지 남겨서 그것이 우리라는 공동체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면 그것은 한 사회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닐까 싶다.세상이 아무리 좋아진다 한들 힘이 약한 자가 지배하는 세상 따위는 없을 것이 분명하다. 제 배 굶주리며 남의 배만 불려주는 그런 사람을 어리석지 않다고 말하는 세상은 결코 아니 올 것이 분명하다. 소위 민주란? 힘센 자가 가진 욕망의 호수에, 먼저 가득히 물을 채우고, 그 호수를 넘치어 흐르는 물이 비로소 넓은 들판에 흘러들어, 풍년을 이루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해서, 참 민주주의를 획득하기 위해선, 눈앞의 작은 이익의 추구에만 정책의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국민을 하나로 화합시켜서 보다 튼실한 국력을 기르는 정책을 우선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지금으로부터 약 일백 년 전(1925), 마하트마 간디가 밝힌 ‘7대 사회악’의 (원칙 없는 정치. 도덕성 없는 상업. 노력 없는 부. 인격 없는 지식. 인간성 없는 과학. 양심 없는 쾌락. 희생 없는 신앙) 각 항목이, 어쩌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을 그대로 나열한 것 같아서 마음이 무겁다.

2022-02-16

소못 소랑햄수다

정미영 수필가 “소못 소랑햄수다.”제주도 동백나무 수목원인 카멜리아힐에서 장식용 족자에 쓰인 문구를 본다. 정말 사랑합니다, 라는 뜻의 제주도 방언이란다. 나는 곧장 동백나무 꽃말을 떠올려본다.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역시 필연성 높은 소품이군! 수목원 관리자가 숨겨 놓은 퀴즈문제를 나 혼자 맞힌 것처럼 값싼 자기도취에 빠져 나무 사이를 걷는 내내 뿌듯해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꽃향기를 따라 친구의 애틋했던 첫사랑이 떠올라 내 마음이 어지럽다.친구는 지독한 몸살을 앓았다. 스쳐가는 바람에도 마음이 들뜨는 대학 새내기, 사랑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상대는 누군가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했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 사랑은 사치라고 했다. 그래도 친구는 멈추지 않고 가슴앓이를 했다. 슬픈 시만 골라 읽고 가슴 먹먹해지는 노래만 들었다. 떨어지는 꽃잎에도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사랑을 떠올렸다.어느 날, 가느다란 손가락을 잘근 씹으며 선운사 동백꽃을 봐야겠다고 했다. 발끝을 내려다보는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러더니 무릎을 세우고는 얼굴을 묻고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그냥 그렇게 내버려 두었다. 친구의 작은 몸집 어디에 그토록 많은 눈물이 숨어 있었는지,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이 큰 눈물인 줄 그때 처음 알았다.시나브로 잊히는 듯했다. 동백꽃이 질 때쯤, 친구는 다시 선운사에 가고 싶다고 했다. 저러다 자그만 몸이 형체도 없이 삭아 내릴 것만 같아 지켜보는 내가 조바심이 났다. 어쩌면 선운사에 가서 동백꽃을 실컷 보고 가슴 가득 채우고 나면 힘든 사랑을 완벽하게 잊어버리지 않을까.우리는 기어이 고창 선운사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차 안에서 우리 둘은 침묵했다.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이 오히려 힘들게 할 것 같아 어색해도 참았다. 그 대신 이어폰을 한 쪽씩 나눠 끼고 송창식의 ‘선운사’ 노래에 몰입했다.‘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 거예요.’가던 길에 갑자기 비가 흩뿌렸다. 내리는 빗소리가 내 마음을 착잡하게 했다. 꽃이 또 떨어지겠구나, 괜스레 안타까웠다. 맑은 날 붉게 벙근 꽃봉오리를 보는 것이 훨씬 좋을 텐데. 노랫말처럼 바람 불어 설운 것보다 비가 와서 더 설운 날이 되면 어쩌나 애가 탔다. 내 마음을 모르는 비바람이 속을 휘휘 젓고 다녔다.다행히 도착할 즈음 비가 그쳤다. 멋스러운 선운산의 풍경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심호흡을 했다. 선운사 입구에서 절 뒤쪽 산자락에 빽빽이 들어선 삼천 그루의 동백나무 속에 친구가 부디 아픈 사랑을 묻을 수 있기를 바랐다.친구는 꽃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그토록 간절히 원해 찾아왔지만 막상 보려니 두렵단다. 한 자락 남아 있던 그리움이 낱낱이 바람에 흩날려 사라질까 무섭다고 했다. 친구의 몸 속 깊은 곳에 고여 있던 그리움이 흔들리고 있었다.나뭇가지에서 막 떨어지는 꽃송이가 있었다. 꽃의 추락이었다. 꽃잎이 한 장씩 떨어지지 않고, 꽃봉오리째 툭 떨어져서 슬프게 느껴졌다. 내 눈에는 꽃이 질 때가 되어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가장 화려할 때 떨어지는 것 같아 더욱 애절해 보였다.친구의 사랑도 왠지 동백꽃을 닮은 듯했다. 피었다가 떨어지는 꽃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가 식어간 첫사랑이었다. 그녀의 나이 스물, 빛나게 푸르러야 할 사랑이 금세 이울고 있었다.동백꽃 화가로 유명한 강종열 화백의 그림 속을 노닐 듯 까멜리아힐을 걷다가, 머리 위로 떨어지는 꽃잎에 고개를 든다. 꽃자리를 손끝으로 매만지면서 문득 생각해 본다. 꽃이 져야 열매를 맺듯, 기쁜 사랑이나 아픈 사랑을 경험한 후에 내적 성장을 이루는 것이 우리네 인생사라는 것을. 그러니 친구든, 가족이든,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눠주는 일에 인색하지 않아야겠다. 소.못.소.랑.햄.수.다.

2022-02-16

④ 일상의 소중한 실천, ‘낚시면허’이야기

캐나다에서 취미낚시를 하려면 ‘면허’(fishing licence)를 구입해야 한다. 낚시 방법과 잡을 수 있는 어종, 어종 크기 등 정해진 조건을 지키고 필히 따라야 한다. 몰랐다는 변명은 수십만 원에 달하는 벌금으로 이어진다. 미국과 독일 등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독일은 낚시 면허를 따기 위해 시험까지 친다고 한다. 수산자원과 해양생태계를 보호하려는 이들의 노력에 놀라면서 동시에 ‘낚시면허’ 뒤에 숨은 내막이 궁금해진다.사실 캐나다는 30년 전 ‘대구 어장’으로 유명한 그랜드뱅크스(Grand Banks)의 폐쇄를 경험했다. 대구와 청어가 풍부해 세계적인 어장으로 손꼽히던 뉴펀들랜드의 그랜드뱅크스는 1950년대 트롤어선(trawl)이 등장하면서 고갈되기 시작했다. 바닥을 훑어가며 서식지를 쓸어가는 트롤방식의 어업은 수 백 톤에 달하는 대구를 잡아들이고 새끼와 산란장을 무너뜨렸다. 끝없이 계속될 듯한 만선의 풍요는 1980부터 이상 징후를 보이다 결국 1990년 완전 고갈됐다. 캐나다 정부는 1992년 어장을 폐쇄했고, 4만 명에 달하는 종사자들도 직장을 잃었다. 이는 미국의 조지뱅크까지 여파를 끼쳐 인근 어장이 폐쇄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특정 어종의 고갈은 비단 캐나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도 그 많던 쥐치와 명태가 고갈됐다. 이는 어획량의 감소와도 연관된다. 마구잡이 혼획과 남획이 이어지면서 개체수 자체가 급격히 줄었다. 서식지를 파괴해가면서 치어와 알밴 물고기까지 잡아들였던 과거가 이끌어 낸 현실이기도 하다.여기에 폐어구 등 해양쓰레기와 기후변화까지 더해져 수산자원 고갈 시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해양쓰레기의 30%에 달하는 폐어구는 유령어업(ghost fishing)이라는 이름으로도 유명하다. 버려진 폐그물이 바다 중간층을 떠다니며 물고기를 잡는다. 잡힌 물고기는 살점으로 다른 물고기를 유인하고 또 다른 물고기가 잡히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폐그물은 수산자원의 피해로만 그치지 않는다. 선박의 프로펠러 감김 사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조난 등 해양사고를 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로 매년 증가세다.수산자원이 고갈되고 해양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시그널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원인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 시행하는 과정이 매년 반복되지만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지속가능한 어업에 관한 화두와 낚시 면허제 도입 등 다양한 대안이 제시되지만 현실 적용은 언제나 그렇듯 더디다. 특히 낚시 면허제 도입은 어업인과 취미 낚시인들의 반목과 갈등으로만 치부될 뿐 해양생태계 전체를 바라보는 판단은 유보된다.낚시인구가 700만 명을 넘어서고, 낚시 예능이 인기를 끌면서 취미 낚시는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예능에서 소비되는 낚시의 재미와 경제적 이점만 취할 뿐, 취미낚시로 인한 자원 고갈과 해양오염 문제는 논의되지 않는다. 취미낚시로 잡힌 수산물이 우리나라 전체 어획량의 15%가량을 넘어선다는 게 현장의 주장이다. 공식집계가 되지 않아 어림잡은 수치이지만 전문가 의견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낚시에 사용되는 봉돌(낚싯줄 끝에 매다는 작은 쇳덩이)이나 낚시인들이 버리고 가는 쓰레기양도 결코 적지 않다. 어업인과 취미 낚시인, 관광객 등 누구 하나 무너지는 해양생태계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현미작가 바다는 공유자원이다. 공유자원은 흔히 고전경제학에서 말하는 ‘목초지의 비극’으로 결말이 난다. 누구도 관리하지 않기에, 결국은 버려져 황폐해진다는 논리다. 이에 제3의 대안을 제시, 노벨경제학상을 탄 정치경제학자가 있다. 엘리너 오스트롬(Elinor Ostrom). 그녀는 목초지와 산림, 어장 등 ‘공유의 비극’ 사례를 분석, 해법을 제시했다. 지역 공동체가 나서 공유자원 관리 시스템을 운영하고 동시에 자발적인 감시와 모니터링 기능을 강화하는 것. 합리적인 해법이지만 우리나라 현실 적용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상의 작은 실천들이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씨스피라시-SEASPIRACY’는 여기에 한 발 더 나아가 지속가능한 어업의 이면을 파헤친다. 지속가능한 어업 표준을 획득한 거대 기업들이 실상은 에코라벨만 받을 뿐 불법 현장을 외면한다는 것이다. 태국과 일본, 페루 등 전 세계의 어업현장을 고발하며 상업적인 어업 시스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그리고 되묻는다. 해양생태계를 살리기 위해서는 거대기업들이 판매하는 수산물의 섭취를 줄여야하지 않을까하고 말이다.‘역량과 품격을 갖춘 해양선도국가 실현’, 해양수산부가 발표한 국가비전이다. 역량은 충분한 듯하다. 고출력에 어군탐지기, 위성항법장치 등 첨단화된 어획 역량은 이미 차고 넘친다. 이제는 품격이다. 적어도 금지 어종이나 금어기, 금지체장 정도의 지식을 알고 취미낚시를 즐겼으면 한다. 낚시면허제가 언제쯤 생길지 알 수는 없으나, 제도가 생기 전까지 수산자원이 버텨주길 간절히 바래본다.

2022-02-16

ESG 경영

ESG 경영은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를 중시하는 경영방식을 가리킨다.최근 들어 기업이 투자 의사를 결정할 때 기업의 재무적 성과만을 판단하던 전통적 방식과 달리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 가치와 지속가능성에 영향을 주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의 비재무적 요소를 충분히 반영해 평가한다.기업의 ESG 성과를 활용한 투자 방식은 투자자들의 장기적 수익을 추구하는 한편, 기업 행동이 사회에 이익이 되도록 영향을 줄 수 있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기업과 투자자의 사회적 책임이 중요해지면서 세계적으로 많은 금융기관이 ESG 평가 정보를 활용하고 있다. 영국(2000년)을 시작으로 스웨덴, 독일, 캐나다, 벨기에, 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서 연기금을 중심으로 ESG 정보 공시 의무 제도를 도입했다.UN도 2006년 출범한 유엔책임투자원칙(UNPRI)을 통해 ESG 이슈를 고려한 사회책임투자를 장려하고 있다.우리나라에서는 2021년 1월 금융위원회가 오는 2025년부터 자산 총액 2조원 이상의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ESG 공시 의무화가 도입되며, 2030년부터는 모든 코스피 상장사로 확대된다고 발표했다.최근 한국ESG연구소는 아파트 붕괴사고가 발생한 광주 화정아이파크의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에 대해 ESG통합 등급을 기존 B에서 C로 하향 조정했다. 연구소는 지주사인 HDC에 대해서도 HDC현대산업개발의 평가와 연계해 통합 ESG등급을 B+에서 B로 하향했다.바야흐로 기업이 환경·사회·지배구조 등의 사회·윤리적 가치를 신경써야 살아남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2-16

유권자의 시간

제20대 대통령 선거의 막이 드디어 올랐다. 각 정당 대선후보들은 선관위에 등록을 마치고 어제부터 22일간의 공식 선거운동에 돌입했다. 확성기 유세와 현수막 게재, 신문, TV광고 등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한 합법적 방법이 모두 동원되는 치열한 선거전이 본격화된 것이다.선거는 나의 생각을 잘 반영해 정치를 잘 이끌 대표자를 뽑는 일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선 국민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대표적 방법의 하나로 선거를 꼽는다. 그래서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 부른다.나를 대신해 정치해 줄 대표를 잘 뽑아야 국가나 지역도 발전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능력이 부족하거나 도덕적이지 못한 대표를 뽑게 되면 나라 정치가 엉망이 될지 모른다. 특히 모든 권력이 집중된 대통령 선거는 더 신중하게 생각하면서 후보를 잘 결정을 해야 후회가 없다.대한민국 헌법 1조 2항에는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민의 대표자에게 위임된 권력이 특정인이나 정치인, 권력집단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민주주의를 뜻하는 Democracy는 고대 그리스어 demos(민중)와 kratia(지배)의 합성어다. 곧 민중에 의한 지배를 의미하는 것이다.민주적 절차를 통해 권력을 잡은 자가 잘못된 정치를 하면 그 결과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 된다. 잘못된 정책으로 예산이 낭비되면 그 빚을 국민이 갚아야 한다.국민이 가진 권력을 위임할 대통령을 뽑을 날이 이제 20일 정도 남았다. 어떤 후보가 우리가 사는 세상을 공평하고 국민의 삶을 윤택하게 할 것인지 냉철하고 지성적 판단으로 지켜보아야 한다. 유권자의 시간이 돌아왔으니 정신을 바짝 차려 후회없는 선거를 하여야 할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02-15

호랑이 기운으로, 호랑이 걸음으로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아무도 증명할 수 없지만, 오히려 증명할 수 없어서 / 과연 영험한 짐승은 뭐가 달라도 다른 게로군 / 해마다 번연히 실패할 줄 알면서도 / 가슴속에 호랑이 발자국 본을 떠오는 이들이 / 줄을 잇는다고 치자 눈과 함께 왔다 / 눈과 함께 사라지는, 가령 / 호랑이 발자국 같은 그런 사람이”손택수 시인의 시집 ‘호랑이 발자국’(창비, 2003)에 실린, 같은 제목의 시 ‘호랑이 발자국’의 마지막 일곱 행이다. 현재 한반도 땅에서는 더 이상 야생의 호랑이가 발견되지 않는다. 일제의 조선얼 말살 정책으로 호랑이를 다 잡아 없앴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가 못났던 탓이기도 하겠지만, 일본은 참 몹쓸 짓을 많이도 했다. 존재하지 않는 호랑이의 발자국 본을 어떻게 뜰 수 있을까마는, 시인의 머릿속에는 영험하면서도 용맹한 한국 호랑이가 자리 잡고 있을 것이고, 마음의 산하 한겨울 눈속을 발자국 선명히 남기며 웅자한 자태로 거닐고 있으리라.2022년 1월 1일이 되자마자 호랑이해를 운위하였지만 실은 음력 1월 1일인 설날부터가 임인년의 시작이다. 동양 철학에서 우주만물의 운행과 변화 모습을 설명하려는 이론이 오행(五行)론인데, 오행을 색깔로 나타내면 청(靑) 적(赤) 황(黃) 백(白) 흑(黑)의 다섯이 되고 십간(十干) 중 갑을(甲乙)은 파랑, 병정(丙丁)은 빨강, 무기(戊己)는 노랑, 경신(庚辛)은 하양, 임계(壬癸)는 검정과 짝이 된다. 그러니까 신축년(辛丑年)이었던 작년은 흰 소의 해였고, 임인년(壬寅年) 올해는 검은 호랑이의 해가 되는 것이다. 설이 지나고 지난 밤에는 정월 대보름 달까지 보았으니 호랑이 걸음으로 보름길을 걸어 온 셈이다.음양오행은 동양 사상의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이다. 한국인의 삶에 깊이 뿌리내리고 정신세계의 한 줄기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서, 오랜 세월을 거쳐 온 확률과 통계의 선험적·경험적 이론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한치 앞도 모르는 인간이기에 자신의 미래를 알고 싶어하고 현생이건 내세건 더 나은 삶을 위해 절대자나 그 어떤 초월적 존재에 의지하려는 믿음은 기성종교와 무속을 막론하고 이어져 왔다. 음양과 오행을 사주팔자와 연관 지어 인생사 길흉화복을 점치고 무속적으로 풀이하려는 시도들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문제는 대선 정국 정치권을 중심으로 속 뒤집힐 썩은내를 풍기며 무속 논란이 퍼져가고 있는 것이다. 건강한 정신에 기반을 두고 합리적 이성으로 헤치고 풀어내야 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어려운 문제들을 미신과 무속에 기대어 해결하려고 하는, 어쩌면 고민 없는 안이한 자세는 질타받아 마땅하다. 호랑이 걸음도 좋고 호시우보(虎視牛步)도 좋다. 정치권과 사회 곳곳에서 호랑이 기운과 냉철한 이성으로 앞서가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 혹, 현재가 어둡다 하더라도 절망할 일은 아니다. 칠흑같은 어두움 속에서도 호랑이의 눈은 빛나고 단단한 네 발은 비탈도 골짜기도 마다하지 않음을 우리는 아니까.그리고 우리 각자는 ‘해마다 번연히 실패할’지언정 호랑이 발자국 하나쯤은 마음에 새기며 올해를 살아갈 일이다.

2022-02-15

아름다운 동행

조현태​​​​​​​수필가 영국에 ‘데프 레퍼드’라는 유명한 록 밴드 멤버 중에 ‘릭 앨런’이란 드러머가 있었다. 그는 1984년 12월 31일 자동차 전복사고를 당했다. 병원에서는 최선의 치료를 했지만 왼쪽 팔은 절단할 수밖에 없었다. 드러머란 양쪽 손과 발을 모두 바쁘게 움직여야 드럼 세트를 취급할 수 있는데 한 쪽 팔로 드럼을 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앨런은 퇴원할 날이 가까워지는 만큼 실의와 낙심이 쌓여만 갔다. 그가 지금껏 가장 신나게 할 수 있는 일이 드럼 연주였으니까.그가 퇴원한 후, 데프 레퍼드 멤버들이 찾아왔다. 건강은 회복되었으니 드럼을 계속 연주해야 한다고 독려했다. 릭 앨런은 ‘한 쪽 팔로 어떻게 드럼을 연주할 수 있나’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러나 멤버들은 ‘아직 오른팔이 있으니 괜찮다’고 용기를 주며 계속 같이하자고 했다. 이미 드럼을 연주하는 기술은 익혀진 상태이고 한쪽 팔이 없다는 것만 다를 뿐이라고 했다. 남은 한쪽 팔로도 연주할 수 있는 드럼을 제작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끝내 포기하지 않도록 설득하던 멤버들은 릭 앨런을 위해서 한 팔로도 칠 수 있는 드럼을 만들기로 했다. 왼손으로 치지 못하는 쪽은 페달을 연결해서 밟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도록 했다. 그것은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꾸기에 충분한 작업이었다.멤버들의 배려와 도움에 감동한 릭 앨런은 이를 악물었다. 특별히 주문한 드럼 세트에 앉아 나머지 한 쪽 팔로 드럼을 치기 시작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8시간 이상 눈물겨운 연습을 했다. 멤버들도 외팔이 드러머 릭 앨런을 돌보아 주며 연습에 동참했다. 릭 앨런만의 특수한 드럼을 1년간 맹연습한 결과, 전과 같은 드럼 연주 실력을 갖출 수 있었다.아무도 그가 명 드러머로 재기하리라고 믿지 않았지만 데프 레퍼드는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다시 도전한 4년 후에는 1천200만 장이 넘는 앨범 판매고를 올렸다. 그 엄청난 판매고는 록 밴드의 연주실력 만으로 이룬 결과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이 서로 믿고 격려하며 용기를 북돋워 주는 ‘아름다운 동행’의 결정체가 아닐까 한다. 록 음악을 좋아하는 애호가들도 데프 레퍼드의 재기 사연을 알고 있었을 터이니까.당사자 스스로 용기를 가지기도 하지만 주위 사람들이 함께하며 서로 밀고 당겨주는 참여의식이 더 큰 용기를 만들어낸다. 특히 대한민국 국민이 하나로 뭉쳐 보여주는 협력과 의지력은 세계 어느 국민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필자도 대한민국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우리나라는 반 토막으로 허리를 잘린 채 강대국들의 눈치 보며 설움 받던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보란듯이 극복한 지금의 조국은, 국민은 참으로 자랑스럽다.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도 함께 응원하고 깊은 관심으로 격려해주는 동행의식이 작동하고 있다. 곧 다가올 대통령 선거도 대한민국이 또 한 번 도약할 수 있도록 진정한 사랑과 격려로 아름답게 뭉쳐서 데프 레퍼드의 재기와 같은 성공신화를 이루어야겠다고 기대해 본다.

2022-02-15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지금 우리 학교는’(이하 ‘지우학’)이 화제다. 방영 초기에는 폭력성이 논란이 되었다면, 지금은 이 작품이 ‘오징어 게임’의 위상을 이어받을 K-콘텐츠가 될 수 있을지가 화제다. 어쩌면 이런 저런 논란은 필연적인 것일지도 모른다.논란의 핵심에는 ‘지우학’이 학생들의 모습 재현하는 방식에 대한 논의가 있다. 10대들을 재앙 속에 밀어 넣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전시하며, 그에 대한 윤리적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세월호에 대한 알레고리를 차용하고 있다는 경향신문 위근우의 비판이 대표적이다. 그는 ‘지우학’이 스펙터클을 만들어내는 근본적인 방식을 포르노에 비유하며 강도 높게 비판한다.위근우의 문제제기는 타당하다. 분명 작품은 개연성과 핍진성에 있어 세월호 사건에 대한 윤리적 부채에 상당 부분을 기대고 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우리가 마주한 현실의 문제에 대해 어떠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때문에 위근우가 해당 칼럼의 말미에서 이 작품에 대해 “디스토피아를 향한 무기력의 학습”이라 평가하는 부분은 핵심을 짚어낸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왠지 모를 찜찜함이 남는다. 우리는 과연 ‘지우학’을 잘못된 재현 양상의 예로 이해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일까? 정녕 ‘지우학’은 우리 사회의 트라우마를 건드림으로써 모자란 부분을 보충할 뿐인 재난 포르노에 불과한 것일까?작품에서 ‘미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꼭 살아남으라고, 그래서 고3이 더 힘든가, 좀비가 더 힘든가 어디 한 번 말해보라고. 좀비보다 수능이 중요하고, 좀비에게 죽는 게 대학 못가는 것보다 낫다고 말하는 이 캐릭터를 통해, ‘지우학’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단순하면서도 극명하다. 진짜 재난은 ‘좀비’가 아니라, 이전에도 이후에도 있을 평범한 현실이라는 것. ‘좀비’는 비가시적이었던 구조적 폭력을 가시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좀비가 없을 때에도 이들은 서로를 물어뜯고 반목하며 배제해야만 했으며, 사회는 그들에게 결과로서의 ‘생존’을 강조할 뿐 그 과정은 알려주지 않는다.같은 맥락에서 ‘지우학’이 고통을 재현하는 방식이 지나치다고, 혹은 신파를 위한 소재로 다룰 뿐이라 평하는 것은 타당한 것일까? 자식을 구하기 위한 행동으로 인해 좀비가 되어 도리어 자식을 위협하거나, 혹은 자식을 구하기 위해 희생하는 학부모의 모습은 학교폭력의 당사자인 학생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해 죽음으로 내몰거나, 혹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아이를 구하려 시도하는 현실의 모습과 닮아 있지 않은가.더불어 학생이 같은 또래 학생을 성적 착취의 대상으로 삼으며 자살로 내모는 장면이나, 폭력의 구조를 개인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해 절망하는 모습 역시, 현실에 대한 충실한 재현의 결과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 모든 장면을 신파, 내지는 고통 포르노라 일갈하는 것은, 그와 같은 현실의 일부를 도려내거나 혹은 자신이 논지에 타당한 방식으로 재현하라는 억지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물론 그와 같은 재현의 방식에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우학’이 그러한 사건의 재현에 있어 고심하지 않았다는 비판은 너무 가혹하다. 작품은 분명 그와 같은 피해자의 모습을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비추며 이들의 고통을 다각화하여 재현하고자 노력한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그렇다면, ‘지우학’은 피해자의 고통을 순간의 스펙터클을 위한 소재로 삼는 것이 아니라 이에 대한 담론을 위한 이니시에이션을 시도하고 있다 평가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다음의 이야기로는 나아가지 않은 채, 서둘러 잘못되었다 말하고 단죄하기만을 원하는 것인가. 우리가 사건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길을 막는 것은 그와 같은 재현이 아니라, 그것을 향한 성급한 일갈과 단죄의식인 것은 아닌가.문제는 또 있다. 비록 ‘지우학’이 잘못된 방식으로 누군가의 고통을 재현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렇게라도 우리는 사건을 재현하고 반성하며 계속적인 의미화를 해나가야 한다. 한 작품을 향해 “역해진다” 비난하며 대상을 성역화하여 박제하는 것은 우리가 더욱 경계해야 하는 영역이다.그와 같은 반응 그 어디에 ‘더 나은 현실’을 위한 대안적 상상력이 있는지, 따져보아야 한다. 그는 그 역함에 대한 해답마저도 지금, 우리, 학교에 요구하며 단지 일침을 가하는 논자로 남길 원하는 것일까. 그것이 칼럼리스트에게 요구되는 덕목이기 때문일까? 그와 같은 일침으로 인한 고통에 칼럼리스트는 무엇을 책임질 수 있을까?

2022-02-15

시시하고 치사한

최근 친구에게서 “회사는 자아실현을 하는 곳이 아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회사에서 뭔가를 이뤄내겠다는 생각으로 임하게 되면 상처받는 상황에 부딪히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온 힘을 다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 쓸모없는 취급을 받거나 옆자리의 동료가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었을 때의 상실감을 견디기 위해서는 매사에 최선을 다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그렇다면 왜 회사를 다니는 거야?”내 물음에 그는 이토록 한심한 질문을 하는 것도 재주라며 혀를 츳츳 찼다. “돈 벌려고 다니지.” 그렇게 말하는 친구의 얼굴이 조금 구겨졌던 것도 같다.“그렇지만 월급은 진짜 돈이 아니야.” 그가 덧붙였다. 회사를 다니는 이유는 돈 때문이지만 월급은 진정한 돈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며 되묻자 그는 내가 진정한 사회인이 되기에는 아직 멀었다고 답했다.그러니까 그가 설명하는 회사에 다니는 이유는 ‘시드머니’를 벌기 위함이었다. 정당한 노동으로 받는 돈으로는 내 집 마련은커녕 남의 집에 얹혀사는 일조차 쉽지 않다고. 코인이나 주식을 통한 ‘한 방’을 바라는 수밖에 없다고. 그러한 ‘한 방’으로 경제적 자유를 얻고 나서야 비로소 진정한 자아실현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과연 그랬다. 친구는 시 쓰는 일을 사랑하는 청년이었지만 그것을 통해 돈을 벌고 있지 않았다. 시를 쓰는 것보다 사무실로 출퇴근하는 것이 더 돈이 되었다. 회사에서 온종일 일하는 것보다 클릭 몇 번으로 주식을 사고파는 것이 더 돈이 되었다. 그러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나는 돈을 버는 일이 무언가에 굴복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것보다 훨씬 더 대단하고 숭고한 일을 해야만 한다는 마음이었다. 이런저런 일을 제안받으면 ‘고작 이거 벌자고 이런 일을 해?’ 하고 거절하기도 했다.고고한 태도를 유지했지만 행색은 궁색해졌으며 작은 일에도 쉽게 초라해졌다. 수많은 작가들이 예술가이기 전에 생활인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경험했던 오만한 시간이었다.그 누가 돈 버는 일을 편안하게 여길 수 있을까. 타인에게 불편한 이야기를 들어가면서 고개를 숙이는 것.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별 수 없이 타협하고 마는 것. 그보다 더 불편하고 곤란한 상황들이 넘쳐흐르는 것이 다름 아닌 돈 버는 일이다. 그리하여 월급날의 통장을 보면 뿌듯함보다 허망함이 앞선다. 꼭 이렇게 살아야 할까. 더 멋있게 살 수는 없는 걸까. 그런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산다는 게 참 시시하고 치사하게 느껴진다.그럴 때면 문명의 이기가 닿지 않는 어느 깊은 산속에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떠다니는 구름을 바라보며 유유자적 살고 싶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휴식을 만끽하고 싶다.그러나 이러한 욕망은 오션뷰가 펼쳐진 호텔에 놀러 가고 싶다거나 아이폰의 새로운 시리즈를 가지고 싶다는 것과 다름없다. 안빈낙도의 삶이야말로 기득권만이 가질 수 있는 기만적인 태도다. 템플스테이를 체험하기 위해서 드는 돈을 듣고 입이 딱 벌어졌더랬다. 고요와 평화를 만끽하는 것도 이제는 그만큼의 돈을 지불해야 한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나는 벗어날 수 없다. 백화점과 커피숍, 요란한 옷을 파는 상가로부터. 밖을 나서면 가장 먼저 쾌적하고 세련된 곳을 찾게 되고 무가치한 소비를 하면서도 자본주의에 비판의식을 가진다. 매일매일 이중성을 경험하고 계속해서 실패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친구는 나름의 방식으로 이 어지러운 세계를 돌파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현실에 비관하는 대신 돈 버는 일과 자아실현을 위한 일을 완전히 갈라놓는 것을 택했다. 그것은 몇 배나 힘든 싸움이지만 동시에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사회 구조 속에 놓인 가련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그러니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청년 세대는 꿈도 희망도 없는 것이 아니라고. 오히려 희망을 꿈꾸기 때문에 각자의 돌파구를 찾고 있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그들이 찾아낸 해결책이 과연 옳다고 할 수 있는가. 혹은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 어느 쪽도 쉽게 판단 내릴 수 없다.요즘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에는 이런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누가 주식으로 얼마를 벌었대. 코인으로 대박 난 친구는 얼마 전에 퇴사했다더라. 로또 당첨되고 싶다. 돈 많은 백수가 되고 싶다. 아아, 머릿속엔 오직 돈, 돈 생각뿐이야. 그런 이야기에 깔깔대다가도 순식간에 우울해진다. 결국엔 또 돈으로 귀결되는 이야기구나. 그것 참 시시하고 치사하다, 하고 끝내기엔 너무도 찜찜한 기분이다.

2022-02-15

‘ESG경영’

남광현​​​​​​​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난 1월 11일 신축공사 중이던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광주 화정 아이파크 아파트가 붕괴됐다. 이 사고로 공사인력 1명이 사망했고, 5명이 실종됐는데, 아직도 매몰자 1명과 실종자 1명을 구조·수색하고 있다.이 사고 여파로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의 정몽규 회장은 책임을 통감하고 23년간 유지한 최고 경영자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공정률이 약 60% 정도로 투입된 공사비가 1천500억원에 달하는데 전면 철거를 하면 입주 지연 보상금과 재시공 비용 등 손실 액수는 최대 4천억원으로 도급액인 2천557억원을 무려 1천443억원을 초과한다.사고원인 조사 결과에 따라 높은 처벌도 감수해야 하고 소비자로부터 외면받게 되면서 장기적으로 이 기업은 쇠락의 길로 접어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사고 발생 불과 2주 후에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조치 의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본사의 안전보건관리체계 미흡으로 경영진을 바로 처벌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코로나19가 유발한 비대면 사회로의 환경변화로 수많은 취약한 기업들이 문을 닫았다. 또한 날로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고자 전 세계 많은 국가와 지자체 그리고 기업들이 2050탄소중립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지난 4일 대선 후보 간 첫 TV토론회에서 크게 주목받은 ‘RE100’ 즉, 2050년까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한 글로벌 캠페인에도 많은 기업이 자의나 타의로 인해 동참하고 있다. 심지어 이 토론회에서는 노동조합이 추천한 이사가 회사의 경영에 참여하게 되는 노동이사제의 도입에 대한 찬반 토론도 뜨거웠다.유럽연합(EU)은 역내로 수입되는 제품 가운데 역내 제품보다 탄소배출이 많은 제품에 세금을 부과하는 조치인 ‘탄소국경조정제도’를 곧 시행한다고 한다.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다.이제 기업들은 기술개발과 효율화로 이윤 창출을 극대화하던 경영행태에서 친환경제품을 사용하고 산업재해를 예방하며, 투명한 지배구조를 도입해야 하는 대전환기에 직면하게 되었다.즉, ‘기업경영을 안정적으로 지속시키기 위해서는‘환경(Environment)과 사회(Social)를 헤치는 의사결정(Governance)을 해서는 안 된다’라는 것이다. 대전환의 시기에 기업들은 ‘성장중심’ 경영에서 ‘지속가능’ 경영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지속가능 경영이란, 기업의 경제적·사회적·환경적 책임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진하는 경영 패러다임을 가리킨다. 이제 100년 이상 장수기업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세계적으로 열풍이 불고 있는 ESG기반의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한 기업경영체계가 도입되어야 한다.작년 10월말 대구상공회의소가 보름간 대구지역 내 375개 기업에 대하여 ESG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기업 10곳 중 6곳이 ESG경영의 도입 필요성을 체감한다고 응답하였다. 이제 우리 대구와 경북의 기업들에도 ESG경영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것 같다.

2022-02-14

구하라법

구하라법은 양육의무 져버린 나쁜 부모가 사망한 자녀의 재산을 상속받지 못하도록 하는 민법 개정안이다. 이 법은 지난 2019년 11월 25일 사망한 연예인 구하라의 친오빠 구호인 씨가 국민청원으로 추진하고 있는 법안이다.구 씨의 생모는 20여 년간 연락을 끊고 지내다가 구하라가 세상을 떠나자 나타나 유산의 절반을 요구했다. 민법 1004조에 따르면 자식이 사망하면 제1 상속권자는 친부모가 된다. 살해하거나 유언장을 위조하는 등 제한적 경우 상속결격 사유를 인정하지만, 여기에 부양 의무 태만과 관련된 조항은 없다. 20대 국회 법사위에 계류돼 있다.구하라법이 통과되지 못한데는 법무부가 내용은 비슷하지만 ‘구하라법’과는 완전히 반대 개념인 ‘상속권상실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취지의 개정안을 제출했기 때문이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이 대표발의한 ‘구하라법’은 부모가 아이를 키우지 않은 경우, 자녀가 사망했을 때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자연적·원천적으로 없어지게 된다. 하지만 법무부가 주장하는 ‘상속권상실제도’는 본인 사망 전, 양육하지 않은 파렴치한 부모를 상대로 재판을 청구한 후 승소해야 한다. 유가족도 소송할 수 있지만, 사망 후 6개월만 가능하다.대한변협과 서울변호사회 등 법조계와 시민단체들은 서 의원의‘구하라법’에 찬성한다. 법무부안은 자신을 돌보지 않은 부모에게 소송을 걸어야 하는 방식인데다 자녀가 언제 죽을 줄 알고 소송을 제기하며, 아이가 죽기 전에 키우지 않은 부모를 상대로 재판을 청구하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법무부의 탁상공론식 법안이 국민들의 발목을 잡고있다는 지적이 따갑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