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잠이 들어서 그런지 새벽 세 시에 잠이 깨어 비몽사몽 중에 휴대폰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안전 안내 문자가 8통이나 와 있었기 때문이다. 뉴스를 찾아보니 서울 이태원에서 인파에 밀린 압사 사고 소식이 포털 첫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잠이 확 달아나서 뉴스만 보았다. 뉴스를 새로 클릭할 때마다 사상자 숫자가 늘어나고 있었다. 30일 오후 5시 현재 사망자는 153명이라고 하지만 사망자는 더 늘어날 수 있다고 한다.
뉴스에서는 사망자 소식과 함께 이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분석이 요란하다. 한국식 할로윈 축제가 얄팍한 상술과 결합하여 변종이 되었다며 이참에 무분별한 외래문화 수용을 점검하자는 비판론도 보인다. 실제로 젊은이들의 할로윈 축제가 무분별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젊은이들의 빈약한 놀이 공간과 놀이 문화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기사도 있다.
나 역시 한때는 영어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이들이 영어 이름을 지어 부르는 것도 걱정스럽게 여긴 적도 있다. 그러나 할로윈 축제가 외래 문화라고 해서, 또는 내가 관심 없다고 해서 그것을 즐기는 청춘을 나무랄 수는 없다. 할로윈 축제가 상술과 결합했다고 비난하거나, 젊은이들의 문화가 빈약하다고 성토하는 것도 공허하다. 축제를 즐기는 데 국적을 운운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기도 하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 문제는, 그 전날 금요일 같은 지역의 세계음식문화거리에서 수천 명이 모였을 때 사람들이 인파에 떠밀려 쓰러진 사고가 발생했는데도 마약과 성범죄만 대비했을 뿐 인파에 떠밀리는 압사 사고 대비는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4m 골목에 10여만 명 인파가 순식간에 몰렸을 리는 없다. 미리 대책 회의를 하지 못했다고 해도 인파가 늘어나는 추이를 살펴보고 용산경찰서는 대책을 마련했어야 한다. 유명 연예인의 콘서트에서도 할 수 있는 사고 예방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 참사가 인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지금 책임만 묻자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사후 수습과 재발 방지가 더 중요하다. 방금 페이스북에 올라온 생명안전시민넷의 성명서를 보니, 모두 당연한 말이지만 간과하기 쉬운 내용이다. 그중에도 피해자들에 대해 함부로 말하거나 불확실한 정보가 확산되지 않도록 힘을 모아달라는 말에는 고개가 더욱 끄덕여진다. 사고의 원인을 파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며,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단시간에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언론의 책임도 중요하다. 이런 재난 상황에도 조회 수를 늘리려고 무리하게 취재를 하거나, 자극적인 장면을 노출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이미 한 지인은 트위터에서 사고 사진을 보고 충격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세월호 사건으로 304명이 죽은 지 8년 만에 서울 한복판에서 또 이런 참사가 일어났다. 무지와 방심이 빚은 참사라는 어른도 있지만, 청춘의 축제를 탓할 수는 없다. 젊은이들이 무지하고 방심해도 이런 대형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예방하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