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계절,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인생도 가을을 맞으면 생각이 깊어진다. 권력·재산·명예도 모두 한 때일 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삶도 끝없는 세월의 변화 속에 존재하는 찰나(刹那)에 불과하다. 젊은 시절에 외면했던 죽음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이제야 철이 드는 모양이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이 라틴어 격언은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의미다. 고대 로마에서는 개선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메멘토 모리’를 외치게 했고, 중세의 수도사들은 만날 때 마다 서로 나누는 인사말이 ‘메멘토 모리’였다. 승리의 환희 속에서도 죽음을 기억하고, 수행의 성찰 속에서도 죽음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왜 죽음을 기억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실존적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이다.
하이데거(M. Heidegger)는 “죽음이 삶의 본래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들려준다.…. 죽음은 삶과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삶과 동시에 주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살아간다는 것’은 곧 ‘죽어간다는 것’이기도 하다. 죽음은 삶의 가장 절실한 친구이자 삶의 일부이다. 때문에 삶과 죽음은 ‘모순(contradiction)이 아니라 역설(paradox)’로 이해되어야 한다. 메멘토 모리는 ‘죽음이 삶에 말하는 충고’이다. 죽음을 기억할 때 비로소 ‘삶의 본래성’을 회복함으로써 거짓된 삶으로부터 진정한 삶으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메멘토 모리는 우리에게 생명과 능력의 한계를 인식하고 언제나 겸손하라고 가르친다. 절정의 순간을 맞이한 개선장군의 뒤에서 노예가 ‘죽음을 기억하라’고 외친 까닭은 무엇인가? 너도 언젠가 죽음을 맞을 것이니 승리에 우쭐대지 말라는 것이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이다. 그럼에도 정치권력·자본권력·언론권력 등 권력을 가진 자들은 오만과 독선에 빠져있으니 메멘토 모리의 가르침을 잊은 것 같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다. 그러니 모두 목에 힘을 빼고 겸손하라.
메멘토 모리는 ‘삶에 대한 회의’가 아니라 ‘삶에 대한 몰입’을 증대시킨다. 죽음을 외면한 삶은 온전한 삶이라고 할 수 없다. 톨스토이(L. Tolstoy)는 “죽음을 대면하고 살아갈 때 삶의 성장과 초월이 일어난다”고 했다. 우리가 죽음을 일상 속으로 끌어들이면 더욱 의미 있는 삶을 위해 숙고하게 된다. 메멘토 모리가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되면 누구나 추구하는 돈이나 권력이 아니라 내가 추구하고 싶은 것을 찾게 됨으로써 삶의 방향이 달라진다.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오듯이 인생의 겨울도 피할 수 없다. 죽음을 기억하며 사느냐, 죽음을 망각하고 사느냐에 따라 삶의 질은 달라진다.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는 인생은 불행하다. 잘 죽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하며, 잘 산다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정신’의 문제다. 죽음 앞에서도 후회하지 않는 삶의 철학을 갖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