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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호감은 뒤로 숨는 게 후보를 돕는다

선거는 그 자리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고르는 일이다. 그런데 모두 마음에 안 들어, 그나마 덜 미운 이를 고를 때도 있다. 최근 우리는 그런 선거를 많이 했다. 비호감 선거다. 지난 대통령 선거가 그랬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민 주당 이재명 후보 모두 호감도보다 비호감도가 컸다. 이재명 후보는 지난 10일 유세에서 “정치는 우리가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가만히 있으면 상대방이 자빠진다. 그러면 우리가 이긴다”라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말을 인용했다. 국민의힘 당권파가 마음대로 후보를 만들려다 실패한 일을 꼬집었다. 과거에도 이런 사례는 무수하다. 2004년 열린우리당(현 민주당) 정동영 의장 은 “60대 이상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아요…그분들은 집에서 쉬셔도 되 고…”라는 말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전멸 위기였던 한나라당이 121석으로 살아났고, 200석을 넘보던 열린우리당은 152석에 그쳤다. 그 뒤 대통령 선거에서도 정동영 후보는 참패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두 번이나 다 이겼다고 생각한 대선을 망쳤다. 나중에 김대업이라는 사기꾼의 공작으로 결론이 났지만, 아들의 병역 회피 의혹이 만든 ‘비호감’ 탓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 자유한국당은 ‘국정 농단’ 사건에 대한 국민의 분노 속에서 선거를 치렀다. 제대로 끊어내지 못하고, 정권을 갖다 바쳤다. 이재명 후보가 24일 비법조인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 진하는 데 대해 “섣부르다”라며 제동을 걸었다. 자신의 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한 대법원을 공격하던 이 후보도 여론의 반발을 의식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다 잡은 물고기를 놓칠 수 있다. 최근 여론 흐름이 심상찮기 때문이다. 50%를 넘어서던 지지율이 내려앉고, 김문수·이준석 후보가 상승세를 탔다. 이 후보의 방탄복이 테러에 대한 동정심보다 ‘방탄 입법’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만 부각했다. 삼권 장악과 독재 위험을 경고했다. 차기 요직을 둘러싼 입소문이 오만함으로 비쳤다. 그러자 이 후보도 긴장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지난 21일 ‘부정선거, 신의 작품인가’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관람했다. 탄핵 이후 첫 공개 행보다. 그는 비상계엄의 명분 중 하나로 ‘부정선거’를 꼽았다. 이날 행보는 비상계엄이 정당하다는 무언의 시위로 비쳤 다. 그의 옆에 이영돈PD와 비상계엄을 ‘계몽령’이라 주장하던 전한길 전 역사 강사가 앉은 사진을 공개했다. 윤 전 대통령에 대해 엉거주춤한 국민의힘의 대선 전략에 비상계엄이라는 부담을 다시 한번 더해줬다. 그는 지난 11일 SNS에 “이제는 마음을 모아 주시라”면서 지지층 결집을 호소했다. 그가 움직이는 게 김문수 후보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는 탄핵에 반대하던 시위대가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정치적 팬덤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윤 전 대통령이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들이 이재명 후보를 찍을까. 그가 입을 열수록, 대중 앞에 나설수록, 비상계엄의 트라우마만 생생해진다. 민주당 측에 선 방송 패널들이 이재명 후보의 문제가 지적될 때마다 “그래도 비상계엄, 내란 세력만큼 나쁘겠느냐”라고 방어막을 친다. 윤 전 대통령 측의 착각이다. 지난 총선에서도 그랬다. 윤 전 대통령을 찍은 유권자라고 그의 호주머니에 들어 있는 게 아니다. 강서구청장 후보를 마음대로 뒤집어도, 국민의힘 후보를 마음대로 조작해도, 수사받고 있는 피의자를 대 사로 임명해 출국시켜도, 선거 직전에 의정(醫政) 갈등에 기름을 부어도, 자기 표를 얹어준다고 착각했다. 표를 깎아 먹으면서 지원한다고 착각했다. 이재명 후보는 계산이 빠르다. 여론조사를 믿는다. 대법원 선고 직후 분개했던 마음도 스스로 자제할 줄 안다. 당내 충성 경쟁이 오히려 표를 깎아 먹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윤 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여전히 착각 속에 산다. 어차피 보수 후보를 찍을 유권자를 자기 표라 착각한다. 어쩌면 알면서도 선거 이후를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비호감인 사람은 뒤로 숨는 게 후보를 돕는 길이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5-25

자동차 키 실종 사건

이것은 지난주에 벌어진 사건이다. 비공식 사건기록, 일명 ‘차 키 실종 사건’. 출근 시간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고 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자동차 키를 찾아 거실을 헤매는 중이었다. 차 키를 책상 위에 올려둔 사실에 대한 기억은 명확하다. 위증할 이유도 없다. 무릎을 바닥에 대고 기어다니는 모습은 흡사 나의 반려견 보리의 포즈와 비슷했다. 고개를 숙이고 코끝을 들이밀며 테이블 밑, 가방 안, 옷더미 속을 거의 킁킁대다시피 하며 뒤지던 찰나,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네 짓이야?” 나는 기억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보리를 향해 쏘아붙였다. 그러나 보리의 눈빛은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내가 이 집에서 가장 무고한 존재라는 걸 기억하라!’ 그제야 나는 사태의 심각함을 직감했다. 이건 단순한 분실이 아니라 존재론적 혼란에 가깝다. 그 순간 나는 차 키도, 존엄도 잃은 인간이 되어 있었다. 결국 차 키는 이불 밑에서 발견되었다. 도대체 왜 거기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쿨쿨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 차 키를 손에 쥐고 다시 누운 것도 아닐 텐데.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바로 인간이라는 종의 불가사의인 것이다. 비단 차 키만이 아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꽤 중요한 것들을 자주 잊어버리곤 한다. 해야 할 일을 깜빡하고, 약속을 놓치고, 심지어 내가 왜 화가 났는지, 어째서 그러한 말을 했는지조차 잊는다. 기억은 언제나 정교하지 않다. 우리가 스스로 기억을 선택하고 있다고 믿는 건 사실상 착각에 가깝다. 뇌과학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선택적으로 기억하고 망각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뇌 안에는 기억을 지우는 메커니즘이 존재하며 이것은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이를테면 수업 시간에 분명 열심히 들었던 내용이 하루만 지나도 흐릿해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24시간 이내에 학습한 정보의 70%가 사라진다는 망각 곡선은 뇌가 불필요한 정보를 선별적으로 지워버린다는 사실을 잘 알려준다. 그러니 ‘내 머리는 왜 이리 좋지 않은가?’ 하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것은 인간의 뇌가 만든 아주 정교한 생존 전략 중 하나일 뿐이다. 그렇다면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있으면서도 찾는 행위나, 가스레인지를 끄지 않고 외출하는 일, 눈앞의 사람 이름을 떠올리지 못해 민망한 웃음으로 위기를 넘기는 순간 같은 행위를 뇌의 합리적 메커니즘으로 치부하고 넘어가도 괜찮은 걸까? 종종 엉뚱한 일을 벌이는 우리 뇌를 두고 자연스럽다고 여기며 삶의 허점을 덮는 건 어쩐지 위험해 보인다. 마치 사고를 쳐도 당당한 사춘기 자녀를 보는 기분. 형편없는 시험 성적을 보고서 “왜 열심히 암기하지 않았느냐”고 혼내도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쏘아붙이는 것이다. “이건 제 문제가 아닙니다. 저의 뇌가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과정이라고요.” 문제는 이러한 영역이 아니다. ‘실종 사건’의 본질은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다는 것에 있다. 우리는 살면서 정말 소중한 것을 놓칠 때가 잦다. 소중한 사람과의 약속, 미처 전하지 못한 말, 놓치고 나서야 알게 되는 어떤 마음들. 그럴 때 우리는 우리가 인간이라는 동물이라는 사실을 또다시 한탄하게 된다. 도대체 왜 이렇게 중요한 것을 허술하게 다루는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답은 간단하다. 붙잡으려 애쓰지 않으면 모든 것은 아주 쉽게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인간 존재는 기억을 기록하고 감정을 박제하기 위해 애쓴다. 사진을 찍고 부지런히 문장을 쓰는 일도 분투의 과정 중 하나다. 책상 앞에 앉아 문장을 고민하는 나를 보고 보리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어차피 손에 쥐지 못할 것을 붙잡으려 애쓰는군. 참으로 안타까운 존재로다….’ 그렇다. 이토록 애처로운 노력 덕분에 우리는 사라지는 마음을 한순간이라도 더 붙잡을 수 있고 흐릿한 감정에 이름을 붙일 수 있다. 그러니 나는 차 키를 아무 곳에나 두는 나의 뇌를 더는 탓하지 않기로 한다. 어쩌면 이것은 정말 나를 시험에 들게 하려는 보리의 은밀한 소행일지도 모르니. 내가 정말 오래 기억하고 싶은 건 녀석의 쫑긋거리는 귀와 움찔대는 작은 콧구멍,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눈빛 같은 것. 차 키를 어디에 두었는지 아는 것보다 이 장면을 자주 떠올리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안다. 그것이 바로 차 키 실종 사건을 해결하며 내가 내린 결론이다. /문은강(소설가)

2025-05-25

통통족의 패션, 그리고 스페셜리스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잘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내가 아주 신경 써서 옷을 입는 편이라는 사실. 실제로 옷을 잘 입거나 못 입거나 하는 문제와는 별개로 내 딴에는 나름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항상 뚱뚱한 체형을 유지하고 있어서 옷 태가 안 나서 그렇지, 그리고 추구하는 방향이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여서 그렇지, 나름 옷을 구입하는 과정부터 매칭 하는 과정까지 허투루 하지 않는 편이다. 이십대 때는 패션 매거진도 정기구독해서 꼬박꼬박 챙겨 봤고, 요즘도 여러 쇼핑몰이나 인터넷 사이트들을 살피며 트렌드를 파악하고 그 안에서 내 스타일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패션을 다루는 유튜브 채널을 자주 본다. 그런데 대부분의 채널들은 모델 같은 핏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적어도 표준 정도의 체형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운영하고 있기에 다소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저들에게 어울리는 옷이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기도 하고, 저들이 추천하는 브랜드에 내 사이즈가 없기도 하기 때문에. 그래도 그 중에 나 같은 체형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나마 유용한 채널이 종종 있기는 한데, 그 중에 하나가 어느 배우가 운영하는 채널이다. 통통한 체구를 가진 그는 우리 같은 체형을 가진 이들을 ‘통통족’이라고 칭하며 우리에게 유용한 패션 정보를 제공한다. 얼마 전, 그 채널의 콘텐츠들을 탐독하다가 재미난 기획 하나를 발견했다. 통통하거나 그 이상의 체형을 가진 패셔니스타 두 명을 초대하여 세 남자가 자신들의 패션 노하우를 공유하는 기획이었다. 내용 중에는 다른 유튜버들이 통통족 남성들에게 패션 지식을 설파하는 콘텐츠들에 대해 실제 통통족들이 의견을 내는 코너가 있었다. 나는 여기서 재미난 깨달음 하나를 얻게 되었다. 많은 패션 유튜버들이 통통족들을 위한 패션 조언을 할 때 초점을 맞추는 부분은 바로 ‘뚱뚱하지 않게 보이기’였다. 이를테면 몸을 작아 보이게 하기 위해서 어두운 컬러를 선택한다거나, 세로로 된 줄무늬 옷을 입는다거나, 셔츠의 윗 단추를 몇 개 풀어 목을 길어보이게 하는 것 등. 그런데 이들은 여기에 대해 다른 의견들을 냈다. 꼭 뚱뚱하지 않게 보이는 것만이 멋이 아니라는 것이다. 뚱뚱해 보이건 말건 밝은 색상의 옷을 입어 화사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도 있고, 예쁘지 않으면 세로 줄무늬 옷을 기피하기도 하고, 셔츠의 단추를 끝까지 채워 단정하고 귀여운 분위기를 연출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뚱뚱하지 않게 보이는 것보다 우선해야 하는 것은 예쁜 옷을 예쁘게 입는 것이다. 물론 사람이 안 뚱뚱하면 좋겠지만, 당장 뚱뚱한 것을 어쩌겠나. 단점을 가리는데 급급해서 예쁜 옷을 입지 못하고 칙칙하고 일관된 것들만 선택해야 한다면 센스 있는 패션을 구사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차라리 자신의 단점은 시원하게 인정하고, 새로운 장점을 개발하는 것이 훨씬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옷을 입는 일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빠른 발이 장점인 축구선수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 대신 그는 몸싸움이 약하다. 그래서 체중을 비약적으로 불려서 보통 수준의 몸싸움 능력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그로 인해 빨랐던 발 역시 보통 수준이 된다면 감독이 그를 써야 할 이유가 있을까? 필요한 만큼의 웨이트 트레이닝과 더불어 자신의 빠른 발을 살려 단점을 극복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옳은 길이 아닐까? 반대로 홈런을 펑펑 때리는 거대한 체구의 야구선수가 있다. 그는 발이 느려서 도루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는 처지이다. 그래서 그가 체중을 확 줄이고 리그 평균 수준의 주력을 갖게 된다면? 홈런을 때리던 그 힘을 잃게 되는 결과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없지만 특출난 점도 없는 선수가 된다는 것. 그것이 과연 긍정적인 일일까? 한 때 모두에게 모든 면에서 능력을 갖춘 제네럴리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스페셜리스트도 필요한 시대이다. 부족한 점은 또 새로운 분야의 스페셜리스트와의 협업을 통해 극복하고,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하여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가능한 시대이다. 물론 단점도 극복하고 장점도 개발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 중에 우선순위를 정한다면 무엇을 앞세워야 할 것인가? 나는 당연히 장점을 개발하는 쪽이라고 생각한다. 단점을 가리는데 급급해서 다른 장점들을 챙기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강백수(시인)

2025-05-25

입양부터 자립까지 … 학대로 고통받는 아이 ‘행복할 권리’ 찾아준다

2020년 수원에서 발생한 ‘정인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입양을 통해 새 가족을 만난 생후 8개월 된 여아가 장기간 학대를 받아 16개월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입양 제도의 허점과 가정 내 아동학대의 참상을 여실히 드러냈다. 사건 이후 정부와 지자체, 민간 단체들은 아동 보호를 위한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고 관련 정책들을 본격적으로 추진해 왔다. 대구시 역시 입양 제도의 문제를 인식하고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다방면의 정책을 펼치고 있다. 정인이 사건이 발생한 지 5년이 지난 지금 대구시는 아동 문제만큼은 진심을 다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따라 대구시가 추진 중인 아동 보호 정책들을 살펴봤다. 단순신고 의존 않고 빅데이터 활용 분기별로 위기 아동 사전조사 나서 위험군 조기발굴 현장 대응력 강화 전국 신고 건수 증가와 대조적으로 2019년 1887건→2023년 1801건↓ 아동학대 조사업무 구·군으로 이관 긴급전화·현장조사 등 24시간 대응 전담 공무원 2인1조 경찰 동행 출동 전담 의료기관인 ‘새싹지킴이병원’‘ 수도권 제외한 전국 최다 30곳 지정 7월 19일부터 입양 절차 ‘공공 전환’ 위탁가정에 양육보조금·심성관리비 대학 입학·등록금 각각 1회씩 지원 보호 종료후 자립정착금·수당 등 제공 교육 등 실질적 자립 역량 강화 도와 △아동 학대, 조기 발견과 예방이 핵심 아동학대는 피해자가 어리기 때문에 스스로 피해 사실을 말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따라서 주위의 지속적인 관심 없이는 학대를 알아채기 어렵다. 정인이 사건 이후 신고 의무자 범위가 확대되고 신고에 대한 교육과 홍보가 강화되면서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크게 늘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전국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2019년 3만8380건에서 2020년 3만8929건, 사건 직후인 2021년에는 5만2083건으로 급증했다. 2022년에도 4만4531건에 달했다. 대구시는 단순 신고에 의존하지 않고 빅데이터를 활용해 분기별로 위기 아동을 사전 조사하고 고위험군 아동을 유관기관과 함께 점검하는 등 조기 발굴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이로 인해 대구시 아동학대 신고 건수도 2019년 1887건에서 2021년 2013건으로 증가했지만, 2022년에는 1800건, 2023년에는 1801건으로 다시 감소했다. 이는 같은 기간 전국적으로 신고 건수가 19.2% 증가한 것과 대조되는 수치로 대구시가 아동학대 대응을 공공 중심으로 전환하고 현장 대응력을 강화한 결과로 분석된다. △대구시의 아동학대 예방 정책 대구시의 아동학대 정책의 가장 큰 특징은 지자체가 직접 개입하는 공공 중심 시스템이다. 시는 그동안 민간기관이 맡아오던 아동학대 조사업무를 구·군 등 공공기관으로 이관했다. 이에 따라 학대 현장 조사와 보호조치는 구·군 아동학대전담공무원과 경찰이 담당하고, 피해 아동의 회복 지원과 사례 관리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이 맡게 됐다. 아동학대 현장 조사 24시간 대응체계도 구축했다. 112와 구·군 긴급전화 운영으로 야간·휴일에도 상시 대기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경찰과 동행 출동 및 아동학대전담공무원 2인 1조로 조사를 진행한다. 대구에 배치된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은 총 47명이다. 학대 피해 아동 보호에도 전력을 다하고 있다. 우선, 재학대가 의심되는 아동은 관계기관(구·군, 경찰, 아동보호전문기관)과 합동점검을 통해 아동 분리 보호와 수사 등 즉각적인 조치를 하고 있다. 시는 구·군에 아동보호전담요원 33명을 배치하고, 비공개시설인 학대 피해 아동 쉼터 운영과 더불어 아동보호전문기관 3개소 운영으로 상담, 치료, 교육 등을 지원하고 있다. △아동학대 전담의료기관 지정 확대 대구시는 학대 피해 아동의 신체적·심리적 회복을 위해 ‘새싹지킴이병원’이라는 아동학대 전담의료기관을 지정·운영하고 있다. 시는 일찍부터 아동학대 전담의료기관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의료기관들의 참여를 독려해 왔다. 아동학대에 있어 심리치료 등이 늦어지게 되면 피해복구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대구시는 서울·경기 등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에서 가장 많은 30개의 아동학대 전담의료기관을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광역 아동학대 전담의료기관으로 칠곡경북대병원을 신규 지정했다. 광역 아동학대 전담의료기관은 29개 지역 전담의료기관과 협력해 학대 피해 아동을 보호하고 전문적인 응급의료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칠곡경북대병원은 이번 선정으로 전문의, 법률, 사회복지 등의 전문가로 구성된 아동보호위원회를 설치·운영하게 된다. △입양 업무, 민간에서 공공으로 전환 오는 7월 19일부터 국내외 입양 관련 법률이 시행됨에 따라 대구시는 입양 절차를 민간 중심에서 공공 중심으로 전환한다. 기존에는 지자체가 입양을 결정하면 민간의 입양기관이 아동보호, 양부모 결연, 입양 완료 및 사후관리를 해 왔으나, 이제는 지자체 입양 결정 후 입양 전까지 지자체에서 보호를 맡게 된다. 또 복지부(입양정책위원회)가 양부모 조사, 결연, 아동 적응 상황 점검 및 사후관리까지 책임을 진다. 대구시는 이러한 입양체계 개편에 맞춰 위탁가정·시설 등 보호 인프라 현황을 파악하고, 구·군, 가정위탁지원센터, 아동 생활시설 등과 연계해 아동 배치를 지원하는 등 종합적인 관리를 준비하고 있다. 특히 공적 입양체계 개편 준비 시도 국장 회의 참석을 시작으로 아동 그룹홈 대표 업무협의, 입양기록물 보존 및 현황조사, 공적 입양체계 개편 대비 유관기관 간담회 개최, 대구권역 아동보호 체계 합동 워크숍 등을 통해 입양 아동보호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보호에서 자립까지, 끊김 없는 지원 대구시는 입양 결정전까지 위탁가정에서 보호받는 아동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세심하게 보살피고 있다. 2025년 4월 말 기준 대구의 위탁가정에서 보호받고 있는 아동은 모두 334명이다. 시는 위탁가정에 양육보조금, 심성관리비, 생활용품 구입비, 대학 입학금과 등록금(각 1회) 등을 지원하고 있다. 또 가정위탁아동과 위탁부(모) 1인에 상해보험 가입, 특수한 가정의 경우 전문아동보호비(월 100만 원) 및 아동용품구입비(신규위탁 월 100만 원, 위탁유형 변경 월 50만 원) 등을 지급하고 있다. 시는 공적 입양체계로 전환되며 위탁가정 수요 증가가 예상되는 만큼 구·군 소식지와 현수막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모집 홍보에 나설 계획이다. 또 일시보호시설, 아동양육시설 등을 통해 아동보호를 강화할 방침이다. 대구시는 보호 종료 이후에도 청년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자립지원전담기관과 자립통합지원센터를 통해 자립정착금(1인당 1000만 원)과 자립수당(월 50만 원, 최대 5년)을 지급하고, 취업·진로 교육, 금융교육, 멘토링 등 맞춤형 지원을 제공한다. 자립통합지원센터는 32실의 자립생활관을 운영하며 연령대에 맞춘 프로그램으로 보호 종료 아동들의 주거, 자립 체험, 교육 등 실질적 역량 강화를 돕고 있다. /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2025-05-25

펜싱 여자 에페 송세라, 우시 월드컵 준우승

한국 펜싱 에페의 간판 송세라(부산광역시청)가 시즌 4번째 국제대회 개인전 메달을 목에 걸었다. 송세라는 24일 중국 우시에서 열린 국제펜싱연맹(FIE) 여자 에페 월드컵 개인전에서 알렉산드라 루이 마리(프랑스)에 이어 준우승했다. 2022년 세계선수권대회 2관왕으로, 현재 여자 에페 세계랭킹 2위를 달리는 송세라는 이번 2024-2025시즌에만 4번째로 국제대회 개인전 시상대에 섰다. 그는 지난해 11월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개인전 정상에 올랐고, 올해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 월드컵 은메달, 3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그랑프리에선 동메달을 획득한 뒤 시즌 마지막 월드컵에서 은메달을 추가했다. 알리스 콩라드(프랑스)와의 64강전에서 15-9 완승한 것을 시작으로 결승까지 승승장구한 송세라는 루이 마리와의 결승전에서 9-10으로 석패하며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남자 사브르 월드컵에선 지난해 파리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 멤버인 박상원(대전광역시청)과 도경동(대구광역시청)이 나란히 동메달을 따냈다. 남자 사브르 세계랭킹 6위 박상원도 지난해 11월 알제리 오랑에서 열린 월드컵 동메달, 올해 1월 튀니지 튀니스 그랑프리 우승, 불가리아 플로브디프 월드컵 동메달에 이어 시즌 4번째 국제대회 개인전 메달을 획득했다. 세계랭킹 82위인 도경동은 국제대회 개인전 첫 입상의 기쁨을 누렸다. 박상원은 8강전에서 세계랭킹 4위 장-필리프 파트리스(프랑스)를 15-12로 물리쳐 입상을 확정한 뒤 준결승전에선 엔베르 일드름(튀르키예)에게 13-15로 져 결승에 오르지 못했다. 도경동은 8강전에서 파리 올림픽 개인전 은메달리스트 파레스 페르자니(튀니지)를 15-10으로 제압했으나 전 세계랭킹 1위 산드로 바자제(조지아)와의 준결승전에서 13-15로 패했다. 바자제가 이 대회 정상에 올랐고, 현 세계랭킹 1위 오상욱(대전광역시청)은 9위로 마쳤다. /연합뉴스

2025-05-25

현정화 이후 32년 만에… 신유빈 세계대회서 ‘멀티 메달’

한국 여자탁구 에이스 신유빈(21·대한항공)이 2025 국제탁구연맹(ITTF) 세계선수권대회(개인전)를 동메달 두 개로 마감했다. 신유빈은 25일 오전(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의 루사일 스포츠아레나에서 열린 대회 여자복식 준결승에서 유한나(포스코인터내셔널)와 콤비를 이뤄 베르나데트 쇠츠(루마니아)-소피아 폴카노바(오스트리아) 조와 맞섰지만, 2-3으로 져 공동 3위에게 주는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앞서 임종훈(한국거래소)과 듀오로 나선 혼합복식 동메달에 이어 동메달 2개로 대회를 마친 것. 신유빈의 단일 세계선수권 동메달 2개는 한국 여자 선수로는 '탁구 여왕'으로 불렸던 현정화 대한탁구협회 수석부회장(한국마사회 감독) 이후 32년 만이다. 현정화 부회장은 1993년 예테보리 대회 때 여자단식 금메달 쾌거를 이뤘고, 혼합복식에서 유남규 탁구협회 실무부회장(한국거래소 감독)과 은메달을 합작했다. 남자 선수를 포함하면 신유빈은 이상수(삼성생명) 이후 8년 만에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멀티 메달(한 대회에서 메달 2개 이상)을 수확했다. 이상수는 2017년 뒤셀도르프 대회 때 남자단식 동메달을 땄고, 정영식 세아 감독과 남자복식에서 동메달을 합작했다. 신유빈은 또 전지희(은퇴)와 여자복식 은메달을 획득했던 2023년 더반 대회에 이어 세계선수권 개인전에서 2회 연속 메달을 수집했다. 특히 신유빈은 전지희가 태극마크를 반납하면서 새로운 파트너인 유한나와 복식조로 호흡을 맞춘 지 2개월여 만에 출전한 세계선수권에서 값진 동메달을 따냈다. 신유빈은 "뛰어난 파트너들을 만난 덕분에 이렇게 큰 대회에서 메달을 두 개나 따낼 수 있었다"면서 "과정과 결과가 모두 좋았던 메달들은 유독 기억에 남는다. 이번 메달의 가치도 그에 못지않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여자복식과 혼합복식 4강행이 확정된) 22일 하루에 메달이 2개나 결정돼 너무 기분이 좋았다"면서 "손목 통증에 시달린 적도 있었고, 부진한 기간도 있었다. 그러나 주변 상황보단 내가 해온 노력을 믿었다. 노력의 결과물이 세계선수권 메달로 돌아온 것 같다. 지금처럼 나 자신을 계속 믿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신유빈은 여자단식에선 올림픽, 세계선수권과 3대 메이저 대회로 꼽히는 올해 월드컵에서 대회 2연패를 달성한 세계랭킹 1위 쑨잉사(중국)에게 16강에서 2-4로 패했다. 하지만 2년 전 더반 대회 16강에서 0-4 패배를 안겼던 쑨잉사를 상대로 듀스 접전을 벌이며 두 게임을 따내 중국 벽을 넘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됐다. /연합뉴스

2025-05-25

최치원 흔적이 있는 유산곡수를 찾아서

오늘은 가야산에서 신선이 되어 학을 타고 사라진 인물을 찾아 해인사를 간다. 해인사가 어디인가? 합천에 있는 가야산 자락의 해인사는 법보종찰 아니던가. 해인사는 팔만대장경을 비롯한 많은 보물들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신라시대의 문장가 최치원의 흔적인 학사대와 유상곡수가 남아 있는 곳이다. 흔히들 유상곡수라 하면 경북 경주에 있는 포석정을 떠올린다. 신라의 이궁으로 현재 정자는 없고 유상곡수연을 하던 곡수거만 남아 있다. 곡수거란 중국 정나라(B.C. 816~375)때의 풍속에 기원을 둔 것인데, 둥글게 도랑을 만들어 물을 흐르게 하고 여기에 술잔을 띄우며 노는 것이다. 잔이 자기 앞에 도착할 때까지 시를 지어 잔을 들고 읊은 후 다음 사람에게 잔을 띄워 보내는 풍류놀이다. 우리나라의 최초의 유상곡수연은 안학궁으로 고구려 장수왕(A.D. 413~491)때 평양 인근 대성산 남쪽 기슭에 조성된 후원으로 알려져 있다. 경주에 있는 포석정은 심오한 역사성이 인정돼 일제 때 국가유산 문화재 사적 제1호로 지정된 바 있다. 그럼 해인사에 있는 유상곡수연은 언제, 누가 만들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문헌에는 1625년 허돈이 쓴 ‘유가야산기'에는 “일주문 위에는 석천 임억령이 지은 오언절구가 있어서 지금도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문 밖에는 돌을 깎아 빙 돌아가게 하여 유상곡수를 만들었는데 이것 또한 최치원의 자취라고 한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1725년 정식의 ‘가야산록’에도 “최치원이 손수 심었던 소나무가 있어 비바람을 피할 장소를 마련해 주었다. 대가 갈라져 아래로 향한 것은 최치원이 유상곡수를 하던 곳이다”라고 했다. 해인사를 만나는 첫 지점인 일주문 옆 공터, 둥근 돌로 도랑 같은 구조물이 있는데 개화기 때 분수로 개조돼 쓰였다가 지금은 그대로 방치된 채 흔적만 남아 있다. 유상곡수의 역사를 아는 이들에게는 많은 아쉬움을 남게 하는 대목이다.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읊으며 풍류를 즐기던 문장가 최치원. 궁궐이나 상류계층을 중심으로 풍류 생활을 즐기기 위한 정원시설로 한국정원 문화의 가치를 충분히 알 수 있게 하는 유상곡수의 흔적이 그냥 방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풍류의 삶이야말로 우리 고유의 선풍(仙風)의 원류가 아니던가. /김성두 시민기자

2025-05-25

씨앗을 심으면 마음도 자란다

요즘 도시농업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대구 시내 도심 속 공영텃밭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적게는 70가구에서 많게는 200가구가 공영텃밭을 운영하고 있는 가운데, 특히 수성구 팔현농장의 텃밭은 가장 많은 시민이 참여하고 있다. 아침 일찍 텃밭에 나와 풀을 뽑고 물을 주는 도시농부들의 행복한 모습은 텃밭의 진정한 가치를 보여준다. 도시 농부의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대구시의 통계에 따르면 2022년에는 26만명, 2023년에는 28만명이었고, 2025년에는 30만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이 도시농업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것은 텃밭에 나가 채소를 기르고 이를 수확하는 과정에서 도심에서의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팔현농장에서 텃밭을 가꾸고 있는 배영민 씨(62)는 “도시농부로서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심는 과정은 마치 복권을 사서 결과를 기다리는 것처럼 설렘을 준다. 며칠 후의 변화를 기대하며 매일 아침 텃밭을 찾는 것이 즐겁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수확하는 날에는 동네 이웃들에게 나눠줄 생각을 하면 기쁨과 뿌듯함이 가득합니다. 이 과정에서 오히려 제 마음이 치유되는 기분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최근 대구 수성구는 이런 시민들의 반응에 찾아가는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 3월 공고해 운영자(단체)를 선정했고, 사단법인 한국도시농업진흥연구회(이사장 문병채)가 선정됐다. 문병채 이사장은 “치유농업이란 농업·농촌 자원이나 이를 이용해 국민의 신체, 정서, 심리, 인지, 사회 등의 건강을 도모하는 활동과 산업을 의미한다”고 말하면서 이번에 진행하는 찾아가는 치유농업 프로그램 ‘페트병 채소 기르기’를 통해서 사회 취약계층에 다가가겠다고 했다. 문 이사장은 치유농업의 효과로 △아동청소년에게는 집중력 향상, 정서 조절, 주의력 결핍장애(ADHD) 개선 등을 들 수 있으며 △장애인에게는 직업재활운동, 감각통합 훈련 △노인들에게는 인지능력 유지, 우울증 예방, 고립감 완화에 도움을 준다고 했다. 도시농업이 단순한 재미에 그치지 않고 치유농업과 같은 다양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지역으로의 확산도 예상된다. /이병욱 시민기자

2025-05-25

김광석길, 문화의 중심으로 되살아나다

‘매월 마지막 토요일, 김광석길이 문화의 중심으로 다시 살아나다’. 대구 중구 김광석길 야외콘서트홀에서 지난달 마지막 토요일인 26일, ‘라이브온 언플러그드(LIVE ON UNPLUGGED)’라는 제목의 특별한 무대가 펼쳐졌다. 중구문화원이 주최하고 중구청이 후원한 이번 공연은 김광석길의 관광 활성화와 지역 부흥을 위해 5년째 이어져 오는 ‘매마토(매월 마지막 토요일)’ 시리즈의 첫 번째 행사. □ 평범한 거리가 특별한 공연장으로 변신 이날 공연에는 서울 홍대 앞에서 주목받는 브라스 밴드 ‘더스트릿’ 과 인디 밴드 ‘윈섬’(피아노·기타·첼로 조합의 3인조)이 초청됐다. 평소 지역에서 접하기 어려운 도시적 감성의 공연은 관객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윈섬의 감성 발라드와 더스트릿의 화려한 브라스 연주가 어우러지며, 공연장을 찾은 시민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음악에 빠져들었다. 5월 31일에는 ‘나도 가수다’ 라는 참여형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가족, 연인 등 누구나 무대에 올라 노래 솜씨를 뽐내고, 우승자에게는 소정의 상품이 수여된다. 이는 단순한 공연을 넘어 지역민이 직접 문화 생산자가 되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 “박수 소리가 김광석길을 뒤흔들었다” 이팝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계절 4월 공연에서는 윈섬의 공연 종료 후 젊은 관객들의 기립박수와 함성이 쏟아지며, 김광석길은 일상의 공간에서 예술의 현장으로 재탄생했다. 한 관객은 “서울에서만 누리던 공연을 대구에서 체험하다니, 김광석길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 문화로 재탄생하는 도시, 그 중심에 선 김광석길 2019년 시작된 매마토 행사는 기존의 단발성 행사를 탈피해 ‘월간 문화정기전’으로 자리매김했다. 4월부터 6월, 9월부터 10월까지 총 5~6회 진행되며, 계절적 특성을 고려한 프로그램 구성이 특징이다. 중구문화원 관계자는 “김광석길이 단순히 추억의 공간이 아닌, 살아 숨 쉬는 문화 플랫폼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밝혔다. □ 여름 휴식기 뒤 찾아올 9월의 매마토 더위가 한풀 꺾이는 9월에는 ‘업그레이드, 업템포’라는 주제로 더욱 다채로운 공연이 예고돼 있다. 매월 새로운 콘셉트로 시민들을 사로잡는 이 행사는 김광석길을 대구 문화의 랜드마크로 만드는 원동력이 될 전망이다. “음악이 흐르는 거리, 김광석길에서 만나는 특별한 토요일”. 단순한 공연을 넘어 지역민과 함께 성장하는 매마토 행사. 매달 마지막 토요일, 김광석길은 시민들의 발걸음으로 활기를 되찾을 것이다. /김윤숙 시민기자

2025-05-25

첫 투표, 더 나은 선택을 위한 준비

운전면허 학원에 처음 갔던 날, 강사가 가장 먼저 알려준 것은 “차에 타자마자 안전벨트를 매세요”였다. 그 덕분인지 나는 지금도 차에 타자마자 습관적으로 안전벨트를 맨다. 처음부터 제대로 배운 방식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몸에 익어 오랜 습관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나는 생애 첫 공직선거를 앞둔 고등학생들을 위해 매년 새내기 유권자 연수를 진행하고 있다. 18세가 되면 우리는 매번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교육감, 지방의원과 정당을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막상 투표를 하려 하면 ‘나는 누구를 뽑아야 할까?’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 따라서 나는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점을 강조한다. 내가 바라는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 내가 살면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인가? 정당 정책과 후보자 공약에서 내 가치와 맞닿은 부분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을 바탕으로 정당과 후보자를 선택할 기준을 세워야 한다. 학생들이 처음으로 선거에 참여하는 만큼, 신뢰할 만한 정보를 확인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다. 연수를 진행하며 다음과 같은 실천법을 강조한다. 정당과 후보자의 주요 공약 및 분야별 우선순위를 확인하기, 후보자의 경력·학력·납세·병역·전과와 전문성·공적·사회공헌 등을 점검하기, 우편으로 송달되는 선거공보 속 후보자 정보공개 자료를 꼼꼼히 읽어보기, 다양한 언론을 비교하며 후보자 정보가 어떻게 보도되고 있는지 분석하기. 이러한 습관을 들이면 선거 때마다 신중한 판단을 내리는 유권자로 성장할 수 있다. 연수에서는 선거의 의미뿐만 아니라 절차와 진행 과정 또한 중요한 부분으로 다룬다. 학생들에게 “투표소 및 기표소 안에서는 사진을 찍으면 안 되지만, 투표소 밖에서는 투표 인증샷을 찍어도 괜찮다”는 점도 알려준다. 아마 학생들은 이런 작은 팁만 기억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들이 첫 선거를 무사히 치르며 민주주의의 의미를 깨닫기를 바란다. 지난 총선에서 18번째 생일이 지나지 않아 참여하지 못했던 학생들도 이번 6월 3일 대통령 선거에서는 유권자로서 투표할 수 있게 됐다. 이제 각 가정으로 배달된 선거 공보를 펼쳐놓고, 후보자 공개 자료를 검토하고, 후보자들의 공약을 비교하고, 가족 또는 친구들과 의견을 나누면서 그들의 첫 선거를 멋지게 치르기를 바란다. /한국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연수원 초빙교수

2025-05-25

HS화성 자원봉사단, 사랑의 집수리 봉사

HS화성(회장 이종원) 화성자원봉사단이 지난 24일 경북 경산시 자인면에서 사회적 고립 위험에 놓인 1인 가구를 대상으로 주거환경 개선 봉사활동을 진행했다. 이번 봉사는 HS화성 ·화성장학문화재단이 지난해 9월 경북도, 경북행복재단과 체결한 ‘고독사 및 사회적 고립 예방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 이후 처음으로 경북 지역에서 이뤄진 현장 활동이다. 기존에는 대구시를 중심으로 봉사활동을 전개해 왔으나, 이번 경산 활동을 계기로 경북 전역으로 활동 범위를 넓히며 민·관 협력의 실질적 성과를 만들어 간다. 이날 봉사에는 화성자원봉사단 소속 직원뿐 아니라 경북도청, 경산시, 경북행복재단 관계자 등 총 25명이 함께 참여해 지역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민관 상생 모델을 구현했다. 이번에 활동을 펼친 곳은 주방시설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로 기본적인 생활조차 어려웠던 1인 가구로, 주방 설치는 물론 도배, 마루 시공 등 참여 봉사자의 집수리로 인해 한결 쾌적하고 안전한 주거환경에서 생활하게 됐다. 앞서 체결된 협약에 따라 HS화성은 건축 전문성을 살려 사회적 고립 위험 가구의 주거환경 개선을 지원하고 있으며, 이번 봉사에 참석한 기관들은 대상자 발굴과 사례관리, 사후 모니터링까지 통합적인 복지 체계를 운영 중이다. 이번 봉사활동은 이러한 협력 체계가 실제 현장에서 실행된 첫 사례로, 향후 유사 사례 확대에 중요한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화성자원봉사단 정필재 단장은 “이번 활동은 단순한 집수리를 넘어, 사회와 단절된 이웃에게 다시 삶의 의지를 되찾게 해주는 따뜻한 연결의 과정”이라며 “현장을 직접 마주하며, 우리가 가진 건설 기술과 자원이 단 한 사람의 삶에도 의미 있는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했다”고 밝혔다. 이어 “HS화성은 앞으로도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는 기업으로서, 경북도와의 협력을 더욱 강화하고 사회적 책임을 성실히 실천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김재욱기자 kimjw@kbmaeil.com

2025-05-25

해병대 부사관 410기 86명 ‘빨간명찰’ 가슴에

빨간 명찰을 가슴에 단 86명의 해병이 새롭게 탄생했다. 해병대 교육훈련단은 지난 23일 포항 남구 행사연병장에서 부사관 후보생 410기 86명을 신임 해병대 부사관으로 정식 배출했다고 밝혔다. 이날 임관식에는 해병대 1사단장과 교육훈련단장 등 주요 지휘관과 참모진, 육군 합참·해병대·주한미해병대 주임원사, 수료생 가족과 지인 등 약 400여 명이 참석해 임관을 축하했다. 부사관 410기는 지난 3월 10일 입영해 11주간 강도 높은 교육훈련을 이수했다. 1~5주차 ‘군인화·해병화’ 과정에서는 체력단련과 제식, 개인화기, 해상·공중돌격 훈련을 받았으며, 특히 5주차 ‘극기주’에는 산악훈련, 각개전투, 완전무장 행군, 천자봉 고지정복 훈련을 낙오자 없이 전원 완수했다. 이어 6~11주차 ‘간부화’ 과정에서는 독도법, 분대전투, 전장리더십 등 초급 간부로서의 전투지휘 역량과 리더십을 집중적으로 배양했다. 이번 기수에는 해병대 가족 출신 임관자도 눈에 띄었다. 신현우 하사는 부친 신광재 준위(준65기)를 비롯해 형제자매 모두 해병대 부사관으로 임관한 ‘해병대 DNA’ 가문 출신이며, 박예찬·박혜민 하사 역시 조부와 부친에 이어 해병대에 입대한 가족 전통을 이어 눈길을 끌었다. 신임 하사들은 4박 5일의 휴가를 마친 뒤, 5월 27일부터 2주간 상륙전 초급반 교육에 입교해 작전 개념과 기초 전술을 익힌 후, 각 병과별 보수교육을 거쳐 전·후방 부대에 배치될 예정이다. 주일석 해병대 사령관은 1사단장이 대독한 훈시에서 “창끝부대 리더로서 책임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임무에 임하길 바란다”며 “해병대 전 장병은 여러분의 동반자이자 전우로서 함께할 것”이라고 격려했다. 국방부장관상을 수상한 허민혁 하사는 “해병대 부사관이라는 이름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국가와 해병대에 헌신하겠다”며 “강인함과 따뜻함을 겸비한 전투 리더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김보규기자 kbogyu84@kbmaeil.com

2025-05-25

중소·자영업자 특례 제도 집중홍보기간 운영

<문> 2025년 5월부터 중소․자영업자 특례 제도 집중홍보기간을 운영한다고 하는데 어떤 내용인가요. <답> 네. 근로복지공단에서는 중소·자영업자의 고용·산재보험 가입률 향상을 위해 2025년 5월 12일(월)부터 6월 11일(수)까지 한 달 동안 중소․자영업자 특례 제도 집중홍보기간을 운영합니다. <문> 주된 홍보 내용은 무엇인가요. <답> 중소·자영업자 고용․산재보험 가입 특례 제도 안내, 소진공 보험료 지원 사업에 대한 안내, 자영업자 고용보험료 지원 신청 절차 간소화 안내 등이 주된 홍보 내용입니다. <문> 중소·자영업자 고용·산재보험 가입 특례 제도란 무엇인가요. <답> 고용·산재보험은 원칙적으로 근로자가 가입 대상이지만 영세 사업주도 가입할 수 있도록 특례를 두었습니다. 자영업자 고용보험은 본인 명의의 사업자등록증을 보유하고 근로자를 고용하지 않거나 50인 미만 근로자를 고용하는 사업주가 가입 특례 대상입니다. 다만 부동산 임대업, 상시 4명 이하의 농업·임업·어업 개인사업, 소규모 공사업 등은 가입대상이 아닙니다. 중소기업사업주 산재보험은 근로자를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는 사업주 또는 명의 사업주의 배우자(법률혼에 한함)인 실제 사업주가 가입 특례 대상인데, 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는 산재보험 보험가입자로서 300명 미만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주이어야 합니다. <문> 소진공 보험료 지원사업 및 자영업자 고용보험료 지원 신청 절차 간소화는 어떤 내용인가요. <답> 자영업자 고용보험 가입(공단)과 고용보험료 지원(소진공) 통합신청 프로세스를 마련하여 소상공인의 사회안전망 편입을 촉진하기 위하여 소상공인이 자영업자 고용보험에 가입 시 보험료 지원신청도 원스톱으로 할 수 있도록 절차가 간소화된다는 내용으로, 자영업자 고용보험료 가입·지원 신청시 공단이 가입신청서 접수, 신청정보를 입력, 행정정보공동이용망을 통해 신청인의 개인정보 동의 여부와 계좌정보 등을 소진공으로 전송하며, 이후 소진공은 전송받은 정보로 자영업자 고용보험료 지원신청 접수를 문자로 안내하고, 처리결과도 문자로 안내합니다. <문> 자영업자 고용보험 가입 및 고용보험료 지원사업 신청은 어떻게 하나요. <답> 2024년 11월 29일부터 고용․산재보험 토탈서비스(total.comwel.or.kr)에서‘자영업자 고용보험 가입’과‘자영업자 고용보험료 지원 신청’을 한번에 할 수 있습니다. 기타 궁금한 사항은 근로복지공단 가입지원부(054-288-5190) 또는 콜센터(1588-0075)로 문의하시면 자세히 안내받을 수 있습니다. /근로복지공단 포항지사

2025-05-25

“그렇지만 좋은 것들은 너무 많고”

오늘은 해가 떴다. 그러니까 오늘은 환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 야구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나는 180도로 다른 얼굴이 되어가지. 모자 속에 눈이 묻히고 총에 맞아도 웃음이 살아남는 인형의 입술이 되고 그리고 진짜 아침을 먹으면 목 밑에 목이 이어지는 것처럼 오래도록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야. 마술사의 손을 가진 것처럼 피아노를 칠 수도 있을 거야. 그다음엔 하얀 장갑을 끼고 열 개의 손가락을 가져야지. 사실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거야. ―신해욱,‘굿모닝’전문 (‘생물성’, 문학과지성사) ‘나’란 과연 누구이며, 무엇일까. 신해욱의 시에는‘얼굴’,‘눈’,‘손’과 같은 신체에 관한 언술이 많다. 일본 애니메이션‘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는‘가오(얼굴)나시(없음)’라는 독특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여기서 가오나시는 온갖 부정성과 이물질이 뒤섞여 과잉이거나 결핍인 현대인의 페르소나를 상징하는 듯하다. “야구모자를 깊숙이 눌러 쓰고/나는 180도로/다른 사람이 되어야지.”라는 화자의 언술처럼 페르소나란 다른‘나’가 되는 것으로 “총에 맞아도 웃음이 살아남는/ 인형의 입술이 되”듯 그것은 자연인이 아니라 서정시의 내적 요구에 따라 배당된 일종의 배역적 존재인 셈이다. 하지만 “동양적 전통에서‘글’과 ‘사람’은 혼연일체를 이루는 한 몸의 결속체로 인지되어왔다. 하지만“글이 곧 사람이다.”라는 선언적 명제는 정작 페르소나를 품은 현대의 서정시에서는 시인과 페르소나가 두 개로 갈라지게 된다.”(유성호, ‘가히’ 2025년 봄호) 신해욱의 시에는 일인칭 화자가 고백하는 페르소나의 언술이 많다. 가령 이 시집에서 인용되지 않은“나에게는 두 개의 눈이 있다/한 눈으로는 왼쪽을/한 눈으로는 오른쪽을 본다”라든지 “너는 좋아 보이는구나/나는 손가락에 붕대를 감고 있어”“쥐에게도 개에게도 얼굴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나는 터무니없이 부끄러워지고 풀이 죽는다.” 는 기표들처럼 화자는 미학적으로 가공된 목소리를 통해 다양한 전언을 들려주고 있다. 말하자면 페르소나는 독자나 청자에게 말을 건네는 존재이다. 이어지는 고백들에서는 시인과 좀 더 멀리 분리되거나 해체된 화자를 대면할 수 있다. 이를테면 “나는 수요일이 아닌 채로 수요일을 대신하며 옷을 벗게 된다/나는 그런 욕망에 사로잡혀 수요일이라 할 수 없는 나를 대신 끌어안고/수치를 견디는데/ 그런데 누군가 나보다 먼저 내 방을 사랑하고 있다/ 키가 크고 있다/사소한 훼손도 없이” 이처럼 화자는 시인과 세계, 시인과 작품, 작품과 대상과의 관계를 암시해 주지만 동시에 그 자신이 되기도 한다. 다시 처음의 얼굴로 돌아와서 이런 질문에 답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문학을 혹은 예술을 하는 이유에 대해, 결국은‘자신을 알아가기 위한 것’이라고 말이다. 일상에서 되도록 멀리 가 보려는 것, 그래야 겨우 알 수 있을 법한‘나’란 존재에 대해 서른다섯의 나이에 자살로 생을 선택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140편의 단편 소설을 썼던 이유 또한 답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실은 이 질문은 나의 질문은 아니었다. 그렇지 않은가. 쓰는 일과 그림을 보는 일이 사람을 섬기고 사랑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런데“그림은 왜 그린 대요?”라는 그 질문의 질문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해서 배턴을 넘겼을 뿐. “하지만, 미안. 좋아하는 것들이 많아져서 너의 그림자를 건드렸다.” /이희정 시인

2025-05-25

예천군, 맨발걷기 특화도시 조성

땅은 곧 삶을 지탱하는 수단이었다. 주위에 조금만 터가 있어도 콩을 심고, 고춧대를 세우고, 호박과 옥수수를 기르던 풍경은 우리 세대에게 낯설지 않은 기억이다. 먹고사는 일이 최우선 과제였던 시절에는 아주 작은 터조차도 허투루 두지 않았다. 그만큼 한 평의 땅도 소중했고, 농작물은 생계와 직결된 생활의 일부였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경제적 안정과 생활 수준의 향상은 생활 양식을 크게 바꿔놓았다. 이제는 단순히 ‘무언가를 길러내는 땅’보다는 ‘머무르고 싶은 공간’, ‘눈길이 머무는 곳’, ‘마음을 쉬게 하는 장소’로서의 공간이 주목받고 있다. 조경이라는 개념은 더 이상 일부 고급 주택이나 특수 시설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 삶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전국 각지의 도시들이 생활 환경 개선과 도시 이미지 제고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예천군 또한 공원과 경관 조성, 건강 도시 환경 구축을 통해 ‘힐링 도시’로의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예천군 곳곳에서는 최근 몇 년간 작은 공원 조성과 공공 조경 사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마을 입구, 유휴지, 공공청사 주변, 그리고 개인 주택 앞까지 꽃과 나무로 꾸며진 아름다운 정원은 그 지역의 인상을 한층 부드럽고 따뜻하게 바꾸고 있다. 이러한 공원은 단순한 미관 향상을 넘어서 외부인의 발걸음을 이끄는 명소로 자리 잡고,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공간을 가꾸며, 관광객은 그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사진을 찍으며 자연스럽게 주변 식당이나 카페, 전통시장을 찾게 된다. 잘 조성된 공원 하나가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공원은 개인의 여유를 넘어 마을의 품격, 나아가 지역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자산이다. 도시개발에서 ‘경관’이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공간이 주는 인상은 곧 도시의 정체성과 연결되며, 이는 주민의 자긍심은 물론 방문객의 만족도로 이어진다. 예천군은 최근 ‘맨발 걷기’에 최적화된 도시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본격적인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단순한 산책로 정비를 넘어 도시 전체를 하나의 치유 공간으로 조성하려는 시도는 지역 정책에서 보기 드문 접근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남산공원 정비사업, 예누리길 조성사업, 개심사지 역사공원 조성사업이다. 이 세 개의 거점 사업은 기존 한천 산책길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예천 전역을 하나의 대형 힐링 산책로로 엮고자 하는 구상이다. 도청신도시에서 예천읍으로 오다 보면 시가지 입구에서 맞이하는 개심사지는 고려 현종 2년(1010년)에 건립된 오층석탑이 남아 있는 유서 깊은 장소이다.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이곳은 최근 역사공원으로 새롭게 조성되어 예천의 문화유산과 자연환경을 결합한 대표 치유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예천이 자랑하는 천년고찰 용문사, 명봉사, 장안사와 연계하여 불교 성지순례 코스로의 확대를 준비 중이며, 단순한 관람이 아닌 명상과 산책이 함께하는 정신적·신체적 치유의 장소로 주목받고 있다. 신도시 진입도로 개설로 기능을 잃은 경북선 폐철도(예천읍 구간) 부지도 새로운 도시재생의 무대로 떠오르고 있다. 예천군은 이곳에 길이 1.2km, 면적 2만7천㎡ 규모의 ‘옛기찻길’을 조성했다. 이러한 형태의 공간 조성은 행정 주도가 아닌 주민과 행정이 함께 만드는 공동체적 공간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예천군은 이들 핵심 공간을 중심으로 기존의 한천 산책길과 예누리길 등을 연결해 도시 전체를 하나의 유기적 걷기 코스로 재편할 계획이다. 건강, 역사, 자연, 치유가 어우러진 복합적 산책 환경을 통해 군민에게는 삶의 여유를, 외부 방문객에게는 여행 이상의 경험을 선사하고자 한다. 결국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도시의 대답이다. 예천군이 공원을 가꾸고, 산책로를 잇고, 치유 공간을 조성하는 일은 단순한 공간 정비를 넘어서 주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도시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생계를 위한 땅이 전부였다면 이제는 마음을 쉬게 하는 공간이 필요하다. 작물을 심던 공터가 이제는 사람을 불러 모으고, 머물게 하며, 그 안에서 지역의 정체성과 미래를 함께 길러내고 있다. 예천의 이러한 변화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변화가 도시의 방향성을 바꾸고 있으며, ‘살고 싶은 도시’에서 ‘머물고 싶은 도시’로의 진화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으로의 예천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2025-05-25

세계 뮤지컬과의 특별한 만남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아시아 최대·최고의 뮤지컬축제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축제인 ‘제19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이 오는 6월 20일부터 7월 7일까지 대구 전역에서 개최된다. DIMF는 2006년부터 지금까지 21개국 386개 작품으로 260만여 명의 관객에게 뮤지컬만의 매력과 즐거움을 선사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 브랜드다. 대구시가 주최하고 DIMF가 주관하는 이번 축제에서는 프랑스, 헝가리, 중국, 대만, 일본 등 공식 초청작 8편을 포함해 6개국 30편의 작품이 총 106회 공연으로 관객을 만난다. 올해 축제는 그 어느 때보다 다채롭고 폭넓은 작품 라인업을 자랑하며, 전 연령대의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들로 구성돼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개막작은 DIMF 최초 헝가리 초청작, 유럽 대작 뮤지컬 ‘테슬라’(6월 20~28일 대구오페라하우스)다. 아시아에 최초로 상륙하는 이 작품은 인류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의 생애를 화려하고 장대한 무대로 풀어낸 작품으로 엄청난 스케일을 자랑한다. 폐막작은 대륙을 감동시킨 중국의 대형 뮤지컬 ‘판다’(7월 3~5일 대구오페라하우스)다. ‘판다’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 생명에 대한 성찰을 예술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프랑스의 ‘콩트르-탕’(6월 20~22일 어울아트센터 함지홀)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음악으로 삶을 지켜낸 지휘자의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국내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일본에서 처음 무대화된 뮤지컬 ‘미생’(7월 1~2일 CGV 대구한일)이 DIMF를 통해 국내 관객과 처음 만난다. 일본 호리프로가 제작한 이 작품은 현지에서 큰 공감을 얻은 바 있으며 아시아 콘텐츠 교류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예정이다. 대만의 ‘몰리의 매직 어드벤처’(7월 4~6일 봉산문화회관 가온홀)는 블랙홀 속에 빠진 소녀 몰리가 기억과 마력을 잃은 채 마법 세계에서 신비한 정령들과 함께 떠나는 모험을 그린 성장 판타지다.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구성과 따뜻한 메시지가 툭징이다. 한국 뮤지컬 작품도 다채롭게 준비돼 있다. ‘애프터 라이프’(6월 21~29일 봉산문화회관 가온홀)는 사후세계 ‘파라다이스 빌리지’를 배경으로 천사와 악마, 영생의 존재들이 자신들의 진정한 소망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성재준 연출가, 박현숙 작곡가 등 실력파 창작진이 참여했으며 2030 여성들에게 특히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제18회 DIMF 어워즈’ 3관왕에 빛나는 웰메이드 창작뮤지컬 ‘시지프스’(7월 4~6일 아양아트센터)가 약 3개월간의 대학로 공연을 마치고 업그레이드돼 공식 초청작으로 돌아온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재해석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설공찬’(7월 4~12일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은 조선시대 금서였던 ‘설공찬전’을 원작으로 중종반정, 정치적 격동기 속 저승과 이승을 넘나드는 이야기의 창작 뮤지컬이다. 지역 창작 콘텐츠 개발 역량 강화를 목적으로 의미가 깊다. 추정화 연출에 국내 최정상급 제작진이 합류하며 완성도를 더했다. 이외에도 더 많은 시민이 공연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지역 문화 기반과 연계한 특별공연 무대가 펼쳐진다.   뮤지컬 ‘내 사랑 옥순 씨’(6월 21~22일 대덕문화전당)는 고령화 사회 속 어르신 세대의 삶과 가족애를 다룬 작품이다. 트로트 가수 신유가 특별 출연한다. ‘천년의 불꽃, 김유신’(6월 27~28일 아양아트센터)은 신라 장군 김유신의 일대기와 삼국통일을 그린 작품으로, 화랑정신과 애국 애민의 메시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무대에 담아냈다. 어린이 창작뮤지컬 ‘뚜비와 달빛기사단’(7월 4~6일 수성아트피아)은 수성구의 대표 캐릭터 ‘뚜비’를 중심으로 환경 보호와 우정의 중요성을 전달한다. 또 천재 수학자 윌리엄 시디스의 이야기를 다룬 법정 드라마인 ‘시디스:잊혀질 권리’를 비롯해 단맛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 소녀 단이의 이야기 ‘갱디’, 얼굴 없는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나선 한 인물이 마주한 진실과 반전의 여정을 유쾌하게 풀어낸 ‘셰익스피스’, 부모의 이혼을 겪은 주인공의 사랑과 회복의 여정을 담은 청춘 뮤지컬 ‘히든러브’, 악몽에 시달리는 소녀의 모험 이야기를 담은 감성 가족극 ‘요술이불’ 등 DIMF의 제19회 창작지원사업에서 선정된 다섯 편의 작품이 창작 뮤지컬의 진수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외에도 대학생뮤지컬페스티벌에는 태국 마히톨 대학교의 ‘Exoplanet, the Musical’을 비롯해 연세대학교의 ‘그레텔’, 경성대학교의 ‘스프링 어웨이크닝’, 한세대학교의 ‘셜록홈즈:앤더슨가의 비밀’ 등 국내외 뮤지컬 전공 대학생들의 9개 작품이 공연돼 모두가 함께 즐기는 축제의 분위기로 가득 채울 예정이다. 배성혁 DIMF 위원장은 “올해 DIMF는 글로벌 축제로서 도약을 강화하고,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제공하는 혁신적인 작품들을 선보인다”고 소개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5-25

사람과 정책, 무엇이 중한가

대통령 선거일이 다가온다. 유권자가 대통령 후보의 정책을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은 오늘부터 딱 7일 남았다. 유권자들의 알 권리를 위해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대통령 후보들의 토론회를 주관하고 있고, 이를 지상파 3사에서 분야별로 각 두 시간씩 방송하고 있다. 지난 18일에는 저성장 극복과 민생경제 활성화, 대외 통상 등 경제 분야를 주제로 1차 토론회가 열렸고, 23일에는 사회 갈등 통합 방안, 초고령 사회의 연금 및 의료개혁, 기후위기 대응 등 사회 분야 토론이 진행되었다. 마지막 3차는 27일에 정치개혁, 개헌, 외교안보 등 정치 분야를 토론할 예정이다. 토론회가 끝나면 지지율에 변동이 생기니 각당 후보들은 두 시간 동안 모든 정책을 펼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그러나 대선 토론회가 과연 얼마나 유권자의 기대에 부합했는지는 의문이 많이 남는다. 특히 2차 토론회에서는 인신공격과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가 난무했다. 이 두 가지는 대학에서 토론 수업을 할 때 강조하는 것이다. 인신공격이란 정책과 큰 관련 없는 개인 신상을 공격하는 것인데 토론의 본질을 흐린다. 아무래도 정책 평가는 어렵지만 사람 평가는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허수아비 공격이란 상대방 주장을 왜곡하거나 과장해놓고 비판하는 것인데 이것은 토론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현대의 문제를 분석하면서 고전을 인용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고전의 문장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아니고, 옳다 하더라도 아전인수격으로 적용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중용’에서 가장 중요하게 주장하는 가치가 지극한 정성인데, 말 자체는 흠잡기 어렵지만 지금 여기에서 순수한 진정성인지 무엇인지 판단하기는 자기이해가 반영될 여지가 많다. 그럼에도 고전은 짧은 경구는 갈등을 해소하는 데 중요한 참고가 된다. 공자는 ‘문왕이나 무왕 같은 위대한 정치가들의 정책이 책에 다 있지만, 그것을 실천할 사람이 있어야 제대로 시행된다’고 했는데, 이 말은 정책 자체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여기서 사람이란 추상적이거나 사적인 인격이 아니고 그 정책을 실천할 공적이고 구체적인 역량을 말한다. 정책 실천 역량과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개인 신상을 비판하는 것은 정책토론만으로도 부족한 두 시간을 낭비하고 유권자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도자가 아무리 자신을 선하다고 주장해도 백성에게 실질적인 효과로 나타난 것이 없으면 백성이 따르지 않는다는 대목에서는 무릎을 치게 된다. 대선 후보들이 아무리 자신이 옳다고 주장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국민에게 신뢰를 얻을 수 없다. 그동안 그들이 한 행동이 국민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는가가 대통령 자격을 판단하는 가늠자가 되어야 한다. 대선 후보를 선택하는 것은 이념으로 해서도 아니고 인상 비평으로 해서도 안 된다. 이제 남은 일주일 동안 우리 모두 부수적인 것과 본질적인 것을 구분하고 어떤 정책이 국가와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지, 그 정책을 실천할 능력이 얼마나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보자.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05-25

‘진정성이 있어야’

요란한 선거 홍보 현수막에 질린다. 말끝마다 국민을 위한다는 데 나에게는 왜 와 닿지 않을까. 남을 위한 선행은 요란하지 않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하는데 정치인은 하지도 않는 일을 입만 가지고 말만 한다. 그들에게 무엇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방송에 나오면 말없이 채널을 돌린다. 노점상으로 힘겹게 돈을 벌어 1억 원이라는 거액을 기부한 김정순 여사(80)의 기사가 나를 잡는다.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 편지를 읽고,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는 할머니의 기사를 읽는다. 우연히 본 기사인데도 오랜 시간 마음속에 남아 잊히지 않는다. 힘겨워 휘어진 손으로 장학금을 내밀 때의 마음이 전해진다. 금호타이어 광주공장에서 발생한 불을 끄느라 지친 소방대원과 주변 상황을 정리하는 경찰관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선물한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한 식당이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한다. 온전한 음식 대접을 위해 일반 손님을 받지도 않았다. 경기마저 나쁜 상황에서 선뜻 하기 힘든 일이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주인의 마음을 느낀다. 육군 이규탁 중사는 양평군 양서면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를 운행하던 중 사고가 난 차를 발견했다. 범퍼가 많이 부서지고 에어백이 터진 상태에서 운전자도 피를 흘린다. 이 중사는 가지고 다니던 구급낭을 꺼내 지혈하고 119구급대가 올 때까지 환자를 돌보며, 추가 사고를 막기 위해 교통정리도 하였다. 아이유 씨의 선행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 펜클럽의 이름으로 불우한 이웃을 위해 거액을 기부한다. 돈이 있다고 하여 남을 위해 기부를 하는 건 아니다. 이 세상에 돈을 가진 사람은 많다. 그들은 내어놓기보다 더 모으는 데 힘을 쏟는다. 남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돈을 내고 위로 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여러 번에 걸친 선행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지 않으면 하기 어려운 일이다. 배우 박보영도 그러하다. 2014년부터 물품과 금품을 후원하는 일을 꾸준히 한다.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쩌면 진정성은 평상시 어떤 생각으로 세상을 보고 행동하는가의 문제이다. 행동과 생각이 다르거나 일시적으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건 선행이 아니다. 단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선행한 사람들이 자신을 알리는 현수막을 걸어놓은 걸 본 적이 없다. 그렇듯 남을 위하는 마음은 언제나 가슴 바닥 깊은 곳에서 조용히 뿜어나온다. 정치인들은 왜 모르는가. 말하지 않아도 그들의 밑바닥에 숨은 남을 위한 마음이 뿜어나오게 할 수는 없는가. 선거철만 되면 몸을 비틀어도 없는 진정성을 짜내느라 잠을 설치며 돌아다니기보다 평상시에 국민을 위한 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오늘도 거리를 나서면 나를 보라는 듯 정치인의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낀다. 주인을 닮은 가벼운 몸놀림이 눈을 어지럽힌다. 이 혼잡한 시간이 언제 지나가려나. 국민을 위한 진정성은 없으면서 말끝마다 내뱉는 국민이란 두 글자에 머리가 아프다. 박수를 보낸다. 이 시대를 함께 사는 말 없는 선행자들을 위해. /김규인 수필가

2025-05-25

담배 소송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흡연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공단 재정 누수 방지 등을 목적으로 담배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500억원대의 담배소송이 11년만에 항소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2014년 소송을 시작한 이 사건은 2020년 1심 재판부가 원고 측인 공단 쪽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질병이 흡연 외 다른 요인에 의해서도 발병할 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담배회사 측의 손을 들어 주었다. 공단 측은 즉각 항소하며 흡연과 질병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학술적 자료와 담배 퇴치에 대한 국민적 지지와 의견수렴을 증거 자료로 재판부에 제출했다. 소송이 11년을 끌어오는 과정에서 담배의 유해성에 대한 범국민적 인식이 크게 높아졌고, 시민단체의 호응도 커져 항소심에서의 판결이 1심의 결과를 뒤집을 수 있을 지 여부에 대해 세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1990년대 후반 46개 주 정부가 담배회사를 상대로 의료비용 환수를 위한 소송을 제기해 우리 돈으로 약 280조원에 달하는 배상을 받아낸 바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도 1심과 다른 판결이 나올 수 있다는 견해가 조심스레 나오기도 한다. 미국의 담배 배상 판결 후 캐나다 등 세계 많은 나라에서는 영향을 받아 담배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11년을 끌어온 담배 소송은 재판부의 판결 결과를 떠나 담배판매 기업과 흡연자들에게 주는 사회적 메시지는 분명히 있다. 유해 물질을 파는 기업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따지는 것과 판결이 국민의 건강권, 소비자 보호 등에 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란 점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