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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코로나19, 변화 그리고 여성가족정책 방향

박은미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정책실장전례 없는 코로나19 감염병 사태로 인적·물적 이동 위축이 경제침체로 이어지는 보건 및 경제 동반 위기 하에 수요·공급 위축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국내외 경기침체 심화로 고용상황 악화 장기화 및 신(新)산업분야 투자 활력 저하가 우려되고, 사회적 거리두기는 우리 경제 전반의 비대면화(Untact)와 디지털 전환 등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 되고 있다. 특히 비대면화·디지털화 대응에 중점을 두어 디지털 기반 경제혁신 가속화 및 일자리 창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실정이다.온라인 플랫폼 기반 교육, 비대면 의료, 원격근무 등 비대면 활동 속도와 범위가 급속하게 증가하였다. 비대면 비즈니스와 온라인 서비스 가속화로 인해 개인주의 성향 및 IT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트렌드가 자리잡아 가고 있다. 최근 배달음식과 넷플릭스, 유튜브 등 영상플랫폼, 화상 인프라 구축을 위한 정보기술(IT)·전자산업 등이 위기 상황에서도 성장하고 있다. 금융 부문 역시 스마트뱅킹과 핀테크가 확고한 대세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 비대면 활동의 급속함으로 인해 온라인 유통 매출이 급성장 하였다. 대면 접촉을 꺼리는 소비자의 증가로 O2O(Online-to-Offline)를 기반으로 하는 신선식품 배달 비즈니스는 가속화로 인해 신선식품 새벽배송과 가정간편식 인기가 상당하다.한편, 이 과정에서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충격은 많은 취업자들이 생계곤란에 직면하게 되었다. 고용보험 밖의 취업자(특수고용형태종사자, 영세자영업자 등)는 소득 수준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소득 급감으로 생계유지가 어려운 취약계층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코로나19는 불안과 초조함, 우울감, 불안장애로까지 이어지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였다. 이는 전 지구의 인구가 동시에 공통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최초의 팬데믹으로 볼 수 있으며, 개인의 생활영역에 미칠 영향을 지금도 가늠하기는 어려움이 있다.코로나19로 인한 침체된 경제 불안과 하락하고 있는 소비 성향은 여성가족분야에도 다양한 위협적인 요소를 작용하고 있다. 위협적인 요소를 기회의 요소로 만들려면, 첫째,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고용구조 개선 및 산업구조 변화에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 스마트워크 기반을 활성화하여 사회 전반에 일·생활균형 문화가 일상화 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어린이집 안전 및 긴급돌봄서비스에 대한 불안감 해소를 위해 사각지대가 없는 공적돌봄체계를 구축해야 하며, 안전시설 인프라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한부모가족, 조손가족, 다문화 가족 등 취약가구를 대상으로 한 비대면 시설 인프라 개선 및 프로그램 확대, 정서적 지원 등 틈새를 해소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넷째, 코로나19는 불안이나 우울감을 비롯해 정신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스트레스도 심화되고 있다. 여성가족정책분야별 정서적 회복을 지원하기 위해 적극적인 개입이 있어야 할 것이며, 보다 더 촘촘한 심리방역체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와 우리 모두의 적극적인 참여와 노력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2020-12-14

강박증, 마음의 역설

문가인참마음심리상담센터 원장강박증이라고 들어보았는가?강박증이라는 단어는 평생 정신과 병원이나 심리상담센터를 가보지 않았어도 한 번쯤은 들어본 단어일 것이다. 강박증이라 함은 강박 사고(반복적인 사고)나 강박 행동(반복적인 행동)을 둘 다 지니고 있거나, 하나만 지니고 있어도 부적응이 심하면 진단되게 된다.자신도 괴롭지만, 그 괴로움을 주변 사람에게 호소하면서 주변 사람도 당황하면서 괴로워하게 된다.성인이 강박증을 지닌 경우도 괴롭지만, 성인은 그 증상에 어느 정도 적응되어 있어서, 일할 때는 잊고 있다가 잠을 자기 전이나 휴식할 때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는 강박증을 지닌 아동을 만났을 때이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것도 한 아동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강박증을 지닌 성인이나 강박증을 지닌 아동을 나는 꽤 많이 치료했다.참 헛웃음이 나온다.내가 대학원을 졸업하고 초보 심리학자 시절, 모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님에게 강박증의 치료원리를 진심을 담아 물었다. 그는 대답을 회피했다. 그가 몰라서 회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 나는 그 교수님을 만나면 강박증이 무엇인지, 강박증의 치료원리가 무엇인지 한마디로 말해줄 수 있다.나는 최근에 어떤 방탄소년단 같은 외모를 지닌 소년에 대한 강박증을 최면 상담했다. 그는 공부도 잘했고, 부모를 비롯하여 친구 및 선생님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었다. 부모도 그를 사랑하고 그도 부모를 사랑하며 정말 완벽한 가정이었다. 그 소년은 코로나19가 창궐한 3월 어느 날 잠이 오지 않기 시작했다. 학교에 가서 공부도 하고, 친구와 놀고, 선생님과 대화하지 못하는 날이 지속되자 잠이 오지 않게 된 것이다.그러다가 학교를 다시 나가게 되면 괜찮아지다가 어느 날은 원하지 않는 생각이 머릿속에 반복적으로 떠오르게 되었고, 부모님께 같은 질문을 하게 되는 그날이 왔다. 그 소년을 너무나 사랑하는 그 어머니는 대한민국의 모든 인터넷 사이트를 폭풍처럼 검색하였고,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방에서 나를 찾아왔다.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의 어머니의 상상대로 되었다.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그 비밀을 한가지 알려주겠다.그 비밀은 마음의 역설(paradox of mind)이다. 나는 아동과 볼펜의 스프링을 가지고 실험을 했다. 스프링은 가볍게 누르면 가만히 있지만, 세게 누르면 높게 튀어 올라서 어딘가로 사라져버린다. 그 소년은 아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최면을 진행하였고 그 소년은 환한 미소를 나에게 선물하였다.즉, 마음의 역설을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잠을 자려고 하면 더 잠이 안오고, 어떤 생각을 안하려고 하면 더 생각이 난다는 것이다. 강박사고를 지닌 사람이 가장 괴로워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 침투사고가 계속 떠오르고 그것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다보니 더욱 생각나서 괴로워지게 된다는 것이다.“강박증, 마음의 역설을 기억하라.”“어떤 생각을 안 하려고 하면 더 생각나고, 그냥 내버려 두면 그 생각은 사라진다는 것을.”

2020-12-13

돌아보는 달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달력이 달랑 한 장 남았다. 농협에서 발행하는 12장짜리 달력의 마지막 장이다. 새해 첫날, 새 달력을 벽에 걸어 놓고 바라보면서 하루하루를 담고 있는 큼직큼직한 고딕체 숫자들이 마치 부화를 기다리는 유정란(有精卵)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매년 서른 개나 서른 한 개들이 유정란 열두 판을 선물로 받은 셈이다. 물론 겨우 몇 개나 한두 판밖에 받지 못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받은 것을 중도에 파기하고 가버린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올해 내가 받은 삼백 육십 여섯 개 중에 이제 스물 한 개가 남았다. 나는 지금까지 몇 개나 부화시켜 날려 보낸 것일까. 갓 깨어난 병아리처럼 새롭고 생기로운 날이 며칠이나 되었던가. 현자(賢者)들은 하나같이 지나간 것에 연연하거나 날을 앞당겨 걱정하지 말고 지금, 여기에 충실하라고 한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보통사람들이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이 지금에 충실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기 마련이고.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달마다 저들의 환경과 생활에 관련된 이름들을 붙였다. 가령 크리크족은 12월을‘침묵하는 달’이라 했고, 수우족은 ‘나뭇가지 뚝뚝 부러지는 달’, 샤이엔 족은 ‘늑대가 달리는 달’, 위네바고족은 ‘큰곰의 달’ , 퐁카족은 ‘아무것도 갖지 않은 달’ 등으로 불렀다. 나는 12월을 ‘돌아보는 달’이라고 부르고 싶다. 한 해의 마지막 한 달은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며 성찰하고 정리하는 기간으로 삼는 게 바람직할 거라는 생각이다. 자신의 삶의 궤적을 돌아본다는 것은 곧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본다는 것이다. 그렇게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자기가 누구인 알기 위해서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아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삶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돌아보면 지난 한 해 우리나라 정국(政局)은 한 편의 막장드라마요, 소위 망나니 춤의 난장판이었다. 일 년 내내 숨 가쁘게 이어져온 광기어린 ‘망나니 춤’은 국민들의 뇌리에 한 장의 캐리캐쳐를 또렷하게 각인시켜 놓았다. 검찰총장이란 명패를 단 사내를 결박해놓고 법무장관이란 이름표를 붙인 여자가 봉두난발하고 권력이라는 칼을 휘둘러대는 장면이다. 둘러선 군중들도 두 편으로 갈라져서 서로 핏대를 세우고 삿대질을 하며 싸우고 있는, 이 한 장의 그림이야말로 역사에 길이 남을 풍자화가 아닐 수 없다.철학자 소크라테스는‘반성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했다. 일일삼성(一日三省)이란 말도 있다. 공자의 제자 증자가 하루에 세 번씩 자기성찰을 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자신을 몰각하고 반성할 줄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세상이다. 철면피, 파렴치, 몰지각, 적반하장, 후안무치, 막가파, 내로남불…. 이런 패륜의 말들을 날마다 곱씹어야 하는 한 해였다. 한 나라의 살림을 맡은 위정자들이 도무지 반성할 줄을 모른다면, 그 해악은 얼마 못 가서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절감하는 한 해였다. 누구든 나라의 녹을 먹는 공직에 있는 사람들은 이맘때쯤 제발 자신을 좀 돌아보라고 간청하고 싶다. 그래야 나라가 바로 서고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0-12-10

어느 수능 고사장에서 생긴 일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지난 목요일 포항 어느 고등학교 앞에는 마치 새해 일출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을 연상케 하는 장관이 펼쳐졌다. 16시 전부터 마스크를 한 사람들로 가득 찼다. 말 그대로 인파(人波)였다. 사람들은 수능 한파를 이기고 교문을 지켰다.16시 30분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교문을 중심으로 양옆 인도에 길게 늘어서 있었다. 교문 앞은 경건한 성지가 되었다. 17시가 가까워지자 사람들은 불가침의 공간으로 남겨둔 교문 앞으로 모였다. 여기저기서 탄식 소리가 나왔다. 아이가 들어간 시간이 생각났다. 아이는 7시에 “갔다 올게!”라는 짧은 인사를 남기고 교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10시간이 지났다.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교정 안을 보는데 갑자기 눈이 뜨거웠다. 눈에 힘을 줄수록 벅찬 감정은 더 커졌다. 무너지는 마음을 다잡으려고 교문에서 잠시 눈을 거두다가 필자는 보고야 말았다. 많은 사람이 소리 없이 울고 있는 모습을! 사람들은 눈물로 서로를 응원하고 있었다.“어휴, 대학이 뭐라고, 또 시험이 뭐라고 저것들을 저렇게 고생시키나. 이 죄를 어이 할꼬.”연세 지긋하신 할머니께서 혼잣말처럼 하신 말씀은 천둥소리보다 더 크게 들렸다. 교문 앞은 순식간에 숙연해졌다. 모든 사람이 필자를 보는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누군가가 필자에게 정말 누구를 위한 시험인지, 또 무엇을 위한 시험인지를 따져 물을 것만 같았다.“저기 나 온다.” 어느 아주머니의 외침에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교문 안으로 향했다. 한 학생이 종종걸음으로 나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막 떠오르기 시작한 해를 보는 것처럼 환호성을 질렀다. 그 학생을 필두로 학생들이 강물처럼 나왔다. 여기저기서 아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는 하나같이 물기가 가득했다. 선두에 나온 아이가 부모님 품에서 울음을 터트렸다. 수고했다는 말에 아이는 한동안 울었다. 그리고 분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어떻게 이럴 수 있어! 1교시 시험 치는데 형광등이 깜빡거려서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었어. 지금도 멀미가 나려고 해. 나 이제 어떻게 해!”학생의 울부짖음에 사람들은 위로조차 잊었다. 학생을 꼭 안고 있는 학부모님의 몸이 심하게 떨렸다. 모두 그 말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피해를 호소하는 학생들은 모두 같은 고사장에서 시험을 본 학생들이었다.여기저기서 학생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시험 중간에 깜빡이기 시작한 형광등은 1교시가 끝나도록 고쳐지지 않았다고 한다. 최선을 다해 수능 시험장 준비를 했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아무리 돌발 상황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분명 주최 측의 잘못이다. 학생들은 당연히 피해자이다. 그냥 넘기기에는 학생들이 준비한 시간이 너무 아프다.“수능 4교시 종료로 종 2분 일찍 울려, 단체 소송 고려 중”이라는 뉴스를 보았다. 필자의 마음이 복잡해졌다.물론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또 수능 준비 매뉴얼에 이 내용도 포함돼야 한다. 그 전에 피해 학생들에게 책임성 있는 사과가 꼭 있기를 바란다.

2020-12-09

따로 또 같이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스산함이 더해가는 때, 코로나19의 재확산 일로로 어수선함마저 더해가는 연말이지만 한 줄기 차분한 위무 같은 이색적인 문화행사가 열렸다. 포항예총에서 주관한 ‘2020 포항예술인 한마당’ 송년 예술축제의 일환으로 기획 전시된 ‘화사(畵寫)한 문화(文話)’전이 그것이다. 이번 전시는 종전의 여타 전시회와는 다르게 예총 산하의 문인협회, 미술협회, 사진협회 작가들이 협업과 융합을 통해 독창적인 시서화(詩書畵) 작품을 한자리에 새롭게 선보였다는 것이 주목된다.연초부터 휘몰아친 난마 같은 희대의 전염병에 시달려 가뜩이나 초조하고 침울해진 시민들의 가슴을 조금이나마 어루만진 뉴노멀 시대의 새로운 시도가 아니었나 싶다. 활자로 구성된 시나 수필 등의 문학작품을 주로 책을 통해 접하던 것을 시인들의 육필원고와 화가, 서예가, 사진가들의 독특한 심미안으로 투영된 콜라보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으니 이채롭지 않으랴. 코로나로 인해 다소 낯설어진 일상에 같으면서도 서로 다른 창작품을 선보인다는 것은, 익숙해진 것들과의 ‘낯설게 하기’라는 예술 본연의 신선한 자극과 지향이 아닐 수 없다고 본다.시 속에 그림이 있고(詩中有畵) 그림 속에 시가 있다(畵中有詩)고 한다. 시와 그림의 유기적인 맥락과 상관성을 나타나는 말로 여겨진다. 한 점의 그림이 연상되는 시와 한 편의 시가 드러나는 그림은 시와 그림의 불가분의 관계를 나타내는 말이다. 시적인 정취를 나타내는 시정(詩情)과 그림 속에 나타난 뜻을 일컫는 화의(畵意)는 서로 통하기 때문에 두 정신은 일치한다고 본다. 시인은 시어(詩語)로 그림을 쓰고 화가는 시각언어인 그림으로 시를 그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동양예술은 시서화가 일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시·서·화 등은 각각의 카테고리에서 충분한 예술성을 드러낼 수도 있겠지만, 상호 조화롭게 결합되어 예술의 통일체를 이룰 때 보다 풍부한 미학적 운치가 부여된다고 본다. 그것은 곧 다양한 예술장르가 각기 지닌 특색이 조화롭게 섞여서 또 다른 하나의 장르를 새로이 창출해내는 ‘따로 또 같이’의 예술정신과 진배없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예술의 섬세하고 다채로운 표현양식으로 시의 향기를 귀로 들으면서 어루만진다든가 음악의 선율을 눈으로 보면서 맛을 느낀다든가 하는 식으로 수렴과 확장의 시너지효과를 얼마든지 극대화시킬 수가 있을 것이다.어쩌면 예술은 따로 하면서도 같이 하고 같이 하면서도 또 따로 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따로 하는 작품에서는 개성을 한껏 살릴 수 있고, 같이 하는 예술에서는 공명의 완성도가 한결 커질 수 있다. 따로따로 살아가지만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듯이, 너무나 당연시했던 일상들이 정말 그리운 현실의 삶에서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리고 등한시하며 살아왔는지에 대한 것들을 성찰하게 된다.온 세계가 낯선 환경에 직면하여 저마다의 일상에서 코로나에 대처하고 극복하기 위해 변화하는 와중이지만, 비대면 사회문화 속에서 메말라가는 정서에 따로 또는 같이 느끼며 감성을 움직이고 위안을 받는 예술작품을 통해 믿음과 희망을 가졌으면 한다.

2020-12-08

66년생 오진선

최미경동화작가‘2020년 9월 10일자 부동산매매계약서 제 5조에 따라 매도인 오진선은 매수인 최민식에게 부동산매매계약의 해제를 통보합니다. 계약에 따라 계약금의 배액을 상환하고자 하오니 매수인 명의의 계좌번호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오진선씨는 다시 한 번 자신이 보낸 문자를 들여다보았다.B부동산에서 보내준 문자를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넣기를 한 것이니 법적으로 문제시 될 것은 없었다.오진선씨는 자신의 머릿속에 맴도는 ‘법적으로’라는 단어를 혀끝에서 여러 번 굴려보았다. 요 며칠 그 단어가 꽤 근사하고 합리적이다 라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그러다 네이버 검색창에 들어가 ‘법’이라 쳤다.“사람들이 지켜야 할 규칙, 모든 사람들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 진 것” 오진선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난 9월 아파트 계약서를 쓸 때를 떠올렸다.부동산정책이 바뀌면서 골치 아픈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에 가지고 있던 물건 몇 개를 정리해서 갈아타려 했다. 그 중 하나가 S4차 아파트였다. 그런데 계약서를 쓰고 한 달이 채 되기 전에 슬금슬금 전세가가 오르기 시작하더니 11월이 되자 두세 달 전 매매가 보다 웃돌았다. 잔금 날짜까지 10일 정도 남았는데 아침저녁으로 S4차아파트의 매매가는 최고가를 쳤다. 매매계약서에 적힌 잔금날짜와 현재 그곳에 살고 있는 세입자의 이사날짜와 계약 파기 시 물어내야 할 금액까지, 숫자들이 우글우글 머릿속에서 기어 나와 밤새 오진선씨의 온 몸을 기어 다녔다.날이 세자마자 오진선씨는 B부동산에 전화를 했고 중도금이 없는 상황이니 계약을 파기해도 현시점의 아파트 매매가면 물어준 배액의 몇 배 이상까지 거뜬히 당길 수 있다는 확답을 받았다. 침이 꼴깍 넘어갔다. 혹시나 매수인이 중도금을 넣기 전에 세입자부터 내보내야 했다. 잔금일자를 당기자는 기막힌 아이디어를 먼저 떠올렸던 게 B부동산인지 오진선씨인지 중요하지 않았다.오진선씨가 그 날 오후 네일샵에서 빌더젤과 엠버를 섞어 손톱라인을 그리는 동안 잔금일자가 당겨졌다는 통보를 받은 세입자와 매수인의 마음은 바빠졌다.3일 후면 노모가 살던 집을 비워야 하는 50대 아들과 3일 후면 생애 처음 ‘우리 집’을 가지게 된 세 아이와 그 아이들의 엄마 그리고 40대 중반의 가장이 쉽게 잠들지 못한 금요일 밤이었다.그리고 이튿날 아침 계약을 파기한다는 내용을 매수인에게 전했다는 B부동산중개사의 전화를 받았다.오진선씨는 소파에 반쯤 누워 TV채널을 돌리다 살짝 배가 고파졌다. 그때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한 통 왔다. ‘사모님, 저희 다음 주면 이사간다고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이들 데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 오진선씨는 문자를 읽다말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오진선씨는 TV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잔금일자를 하루 남겨둔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이었다.*위 글은 현재 아파트가격이 급등하자 매도자들이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사례가 잇따른데 따른 가상의 글임을 밝혀둡니다.

2020-12-07

납작한 성(性), 입체적인 성(性)

김현욱시인‘10대 성관계’ 관련 통계를 보면 조사에 참여한 10대 청소년 중 약 5퍼센트가 다양한 성적 경험을 했고, 또 그 5퍼센트의 청소년이 성적 경험을 시작한 평균 연령은 13.1세라는 결과가 나왔다.어른들의 생각보다 우리 청소년들의 성적 경험은 빨라지고 다양해지고 있다. 예전에 비해 학교 성교육 시수와 내용은 개선되었지만, 청소년들에게 실제적인 성교육이 되기에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요즘의 성교육은 피임 강조 교육이 되었다며 비판적인 견해도 있지만, 현실에서는 피임을 제대로 하지 않아 원치 않는 임신으로 고통을 겪는 여성도 많다고 한다. 임신을 계획한 게 아니라면 피임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야 한다.심에스더, 최은경의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는 ‘용감하게 성교육, 완벽하지 않아도 아는 것부터 솔직하게, 납작해진 성을 입체적으로, 어른도 아이도 함께 즐거운 Sex Education!’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는 이런 것도 모르고 여태 어떻게 살아왔나?’란 자괴감이 들었다. ‘배란’부터가 그렇다. 대부분의 여성은 몸속에 덜 자란 난자 약 30만 개에서 100만 개를 가지고 태어난다. 이 덜 자란 난자들은 2차 성징이 일어나는 사춘기 이전까지 얇은 주머니 안에 보관되었다가 사춘기가 되면 하나씩 차례대로 성숙해진다. 성숙한 난자가 때가 되면 난소의 벽을 뚫고 나오는 게 바로 배란이라고 한다. 배란은 양쪽 난소에서 번갈아 가며 이뤄진다. 배란 시기는 평균 28일이지만, 여성마다 다르다. 매달 하지 않을 수도 있고, 한 번에 난자 2개를 배란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난자가 난소 옆 나팔관으로 ‘산책’을 하다가 정자를 만나 수정이 되면 ‘임신’, 포궁벽이 허물어질 때 질을 통해 몸 밖으로 나오면 ‘생리’라고 한다.저자는 배빗 콜의 그림책 ‘엄마가 알을 낳았대’라는 그림책을 통해 “엄마 배에 들어간 씨앗들은 달리기 시합을 해요. 일등 한 씨앗이 알을 차지해요. 그러고 나서 아주 조그만 아기가 되는 거예요.”와 같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성교육을 권장한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저자가 10대 청소년과 “섹스(성행위, 성관계)는 뭘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섹스일까?”라는 대화를 나눈 경험이다. 청소년들은 성기 결합 중심, 남성 중심의 대답이 많았다. 그러면서 저자는, “아이들과 섹스에 관해 이야기할 때 ‘성기 결합’뿐만 아니라 사람에 따라 섹스를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을 꼭 알려주세요. 육체적인 행위뿐 아니라 섹스를 대하는 우리의 생각과 자세도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한다.고학년 담임을 주로 맡다 보니 여학생들의 생리, 생리통과 관련된 경험이 많다. 예전에는 여학생들이 생리대를 가방 깊숙이 숨겨 다녔지만, 요즘은 예쁜 꽃무늬 손가방에 넣어 다니며 남의 시선에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본다. 심에스더, 최은경의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는 납작하게 눌린 ‘성’을, 입체적인 ‘성’으로 일으켜 세워 다각적으로 바라볼 것을 권한다. 너무 솔직하고 용감해서 어떤 부분에서는 얼굴이 확 달아오르기도 한다. 그만큼 내 성의식도 납작하다는 반증이 아닐까.

2020-12-06

뉴노멀(New Normal)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지금 활발하게 백신을 개발 중이니,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도 머지않아 퇴치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그러나 그동안 여러 모로 변형이 된 삶이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거라는 진단이다. 그래서 인류 역사에 새로운 전기(轉機)가 될 ‘뉴노멀’에 대한 담론들이 나오고 있다. 뉴노멀이란, 2003년 미국의 벤처투자가인 로저 맥나미가 처음 사용한 말로 2000년대 초반에 형성된 미국의 버블경제 이후 새로운 기준이 일상화된 미래를 일컫는 용어다. 당시 미국은 버블경제의 거품이 빠지면서 급속도로 경기가 악화됐다. 그리고 악화된 경제 상황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경제의 기준을 형성했다. 그간의 경제를 좌우했던 기존의 규칙들이 무너지고 새로운 원칙들이 정립되는 시대를 뜻하는 용어가 뉴노멀이었다.코로나19 바이러스로 팬데믹 상황인 세계는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와 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대혼란을 겪고 있다. 탈세계화의 가속화, 디지털 전환의 촉진, 소비행태의 변화, 언택트(비대면)문화의 확산 등, 지난 일 년 동안 실로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각계의 전문가들이 앞을 다투어 팬데믹 이후의 뉴노멀에 대한 예측과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아직은 모두가 불확실한 상태이다. 하지만 뜻있는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은 이 사태를 인류의 삶에 대한 성찰과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거였다.지금까지 물질적 풍요를 추구해왔던 삶의 기준에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삶의 의미와 가치, 행복의 추구에 생태학적 접근이 요구되는 것은, 코로나19 같은 바이러스의 창궐은 물론 각종 오염과 생태계 파괴로 인한 기상이변 등의 자연재해가 커다란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현생 인류가 지구 생태계에 치명적인 위협이 되는 것은 끝을 모르는 욕망의 과잉 때문이다. 80억에 육박하는 인구폭발에다 문명발전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온갖 자연파괴 행위는 결국 자멸을 초래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진단이다. 전염병 바이러스의 창궐도 생태계 훼손의 임계점을 넘어선 인류에 대한 가이아(Gaia)의 자정작업이 아닐까 하는 시각도 있는 것이고.우리나라의 경우 코로나19의 방역을 위한 통제와 수칙이 그런대로 잘 준수되는 편이다. 공공의 안녕과 질서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그만큼 향상되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방역을 정치적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비난도 팽배해있는 게 현실이다. 정권의 비리와 횡포에 저항하는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원천봉쇄하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헌법도 바꿀 수 있는 국회의석을 확보하였으니, 코로나19 방역을 빌미로 국민들의 집단행동을 막고, 정권에 복종하지 않는 검찰총장까지 몰아내면 그야말로 저들만의 세상이 되어 어떤 비리나 과오도 다 덮을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인 것 같다.하지만 대한민국이 그렇게 허술하지만은 않다는 걸 보여주는 현상들이 속출하고 있다. 법질서를 무시한 법무장관의 횡포에 검사들 전원이 반발을 하는가 하면 변호사협회와 법대 교수들까지 잇달아 규탄하는 성명서를 내고 있으니, 사필귀정의 뉴노멀이 도래하기를 기대해도 될 것 같다.

2020-12-03

류영재포항예총 회장자기정체성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당연히 자기 자신이다. 그러나 타인에게 자신의 내면을 사실 그대로 온전히 전달하기는 쉽지 않다.그 까닭은 사람이 완전할 수 없는 존재이므로 누구에게나 부끄러운 과거가 있기 마련이고, 그것을 솔직하게 말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사람들 간의 관계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란 것이 얼마나 복잡다단하던가. 때에 따라서는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 것이 옳은 경우도 있다. 선의의 거짓말이 그렇고, 분위기를 재미있게 이끌어 갈 목적으로 상황을 과장하는 경우도 있으며, 또 대개는 자신의 얘기에만 집중하여 타인의 일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으므로 굳이 바로잡을 이유도, 그럴 기회도 없을 때가 많다.그림 소재로서의 길에 대한 내 생각도 그렇다. 화가로서 나는 주로 소나무를 그린다. 소나무만 그린다는 표현이 오히려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소나무 외에는 거의 그리지 않으니, 이런 나를 두고 어떤 이들은 ‘소나무 화가’라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그리고 싶은 주제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면 언제나 ‘길’을 빼놓지 않고 말해왔다. 그것이 상대방에게는 중요한 얘기도 아닐 것이며, 그다지 궁금해 하지도 않아서 뚜렷이, 힘주어 말하지는 않았으므로 기억하는 이도 별로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길은 언제나 내게는 중요한 예술창작의 화두였다. 길은 보통 교통수단으로서의 도로를 말하지만 의미가 확장되어 방도를 나타내는 말로 쓰이기도 하고, 행위의 규범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내가 그림으로 그리고 싶은 길은 유년을 보낸 고향마을의 구불구불한 시골길에 대한 기억과 엄마 손잡고 외갓집 가던 길에 대한 추억에서 비롯된 것이 대부분이지만 확장된 의미의 길도 늘 명심하고 있다.길은 시골길, 꽃길, 지름길처럼 앞에 관형어를 붙여서 의미를 구체화하는데, 교통기관의 발달로 개념이 확장되어 실체가 없는 관념적인 길인 물 위의 ‘뱃길’이나 비행기가 다니는 ‘하늘길’이란 말도 이미 보편화되어 있다.‘무슨 길이 없을까?’, ‘손쓸 길이 없다.’처럼 어떤 일에 대하여 취해야 할 수단이나 방법의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길은 예로부터 우리의 일상과도 밀접해 ‘길로 가라 하니까 뫼로 간다.’,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고 말이 아니면 하지를 말라.’ 등 속담에도 많이 등장하는 친근한 말이기도 하다.최근 언론에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의 꽃길이 화제가 되어 국민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기도 했다. 검찰총장을 응원하는 화환이 서초구 대검청사 앞길에 가득하더니 이에 맞서 법무부장관을 응원하는 꽃바구니가 장관의 집무실 출근길 복도를 가득 메웠다.‘절대 지지 않는 꽃길’이라는 리본도 달렸다 한다. 화무십일홍이라 했는데 지지 않는 꽃이 어디 있겠는가. 싸워서 지지 않고 반드시 이긴다는 의미인가. 화환과 꽃바구니는 죄가 없는데,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심기는 몹시 불편하다.시인 장순하는 “어디에나 길은 있고 어디에도 길은 없나니”라고 노래했다. 함께 걸으면 길이 된다. 대화와 소통을 통하여 모두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길을 찾을 수는 없을까?

2020-12-02

수능 신화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연습이라는 말이 어느 때보다 가슴 깊이 파고드는 지금이다. 출근길에 우연히 들은 가수 임재현의 ‘사랑에 연습이 있었다면’이라는 노래 제목이 입에서 떠나지 않는다.한때 필자도 모든 순간이 연습이길 바라던 때가 있었다. 특히 큰 시험 이후에는 그 생각이 더 간절했다. 그리고 한 번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훨씬 잘 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아쉬움에서 오래 허우적거렸다. 아쉬움은 언제나 후회와 좌절, 그리고 절망으로 이어졌다.당시를 회상하면 제일 힘들었던 것은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인정하면 정말 모든 것이 끝날 것만 같았다. 그런 마음의 이면에는 늘 주변 사람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다. 그들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하는 말과 응원은 필자에겐 큰 부담이었다. 물론 이 또한 실패에 대한 핑계라는 것을 잘 알지만, 실패의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는 필자에겐 다른 뭔가가 필요했다. 비겁하게도 필자는 그것을 부담감 탓으로 돌렸다.실패를 거듭할수록 탓하기는 더 심해졌다. 그 방향이 필자였다면 실패의 횟수를 훨씬 많이 줄였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탓 앞에는 늘 남이 있었다. 남 탓하기는 문제를 해결책에서 더 멀어지게 만들었다. 시험 불합격 등 어떤 일이 좌절될 때마다 필자는 다른 곳에서 핑곗거리를 찾기 바빴다. 그리고 실패에 대한 격언 속에서 희망 없는 위안을 얻었다.필자를 탓하기의 비겁함에서 구한 것은 책, 특히 신화, 동화, 위인전 등이었다. 성인이 되어서 읽는 이 책들은 느낌부터 달랐다. 이들 이야기에는 명확하면서도 유사한 서사구조가 있다. 그 서사구조는 우리 고전소설에 나오는 영웅의 일대기 구조와 매우 흡사하다.이들 이야기 속 주인공은 늘 시련 속에 산다. 시련 대상은 사람, 사회제도, 운명 등 다양하다. 이들 주인공이 필자와 다른 점은 이들은 자신의 힘으로 시련을 이겨내고 마침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룬다는 것이다. 간혹 시련이 중복되기도 하지만, 승자는 늘 주인공이다. 시련을 겪지 않는 것이 제일 좋지만, 예나 지금이나 시련은 성공을 위한 필수조건이다.수능을 보는 모든 이에게 수능 신화를 소개한다. 신화 속 주인공은 2021학년도 수능에 응시한 모든 수험생이다. 시련은 성적 지상주의 입시제도와 코로나19이다. 어느 해보다 2020년 수능을 치르는 수험생이 겪는 시련은 혹독하다. 하지만 수험생 모두는 신화 속 주인공이자 현실 속 주인공이기에 그 시련을 이겨낼 힘을 충분히 가졌다. 그리고 그 힘으로 최선을 다해 준비를 마쳤다. 그러기에 시련 따위에 절대 굴복하지 않고 자신이 뜻한 것을 꼭 이룰 것이다.수험생들이 만들어낸 수능 신화는 우리 사회는 물론 전 세계에 큰 용기와 희망을 줄 것이다. 그 결과 코로나19도 조기 퇴치될 것이 확실하다. 이런 큰일을 하는 것이 수능 신화의 주인공인 수험생이다. 이 시대의 주인공인 수험생에게 꼭 한 가지만 당부한다. 필자처럼 연습 타령과 남 탓을 하면서 궁상맞게 지내지 않기를! 주인공답게 어떤 결과든 겸허히 받아들이기를!

2020-12-01

더불어 함께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가을과 겨울 사이, 형산강 둔치를 찾았다. 떠나가는 가을을 아쉬워 함인지, 다가오는 겨울을 반기는 것인지, 스쳐가는 바람 결에 핑크뮬리가 물결처럼 일렁이고 깃털 같은 억새가 긴 목을 뽑아 흔들리고 있었다. 수확의 늦가을은 미련으로 주위를 서성이고 저만치 초겨울은 주춤대며 손짓하니, 아직은 좀 더 누리고 즐기라는(?) 전갈처럼 여겨졌다. 포항운하관에서 송도 끝자락까지 1km 정도에 이르는 형산강 둔치의 풍경이다. 포항제철소와 해도동, 송도동 사이에서 강물인 듯 바다인 듯 유유히 흐르다가 멈추고 멈춘 듯 흐르는 형산강의 종착지, 그 너른 품새의 언저리에는 산책로와 지압로, 운동시설과 쉼터, 파크골프장과 테마 꽃밭, 자전거길 등이 곳곳에 조성돼 있다. 그곳에서 시민들은 강과 바다를 접하며 가벼운 운동과 소요를 즐기며 여유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필자는 주로 강둑으로 이어진 자전거길을 때때로 두 바퀴로 달리며 스치듯 지나가곤 한다. 하지만 근자에는 보다 느긋하게 강변을 거닐다가 색다른 풍경에 사로잡혀 한동안 발길을 멈추게 됐다. 바람의 몸짓으로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풀밭과 하얗게 나부끼는 억새의 손짓을 본 것이다. 육중한 제철소 설비를 배경으로 강물과 억새, 연갈색 풀밭의 조화는 한 폭의 그림 같은 정경이 아닐 수 없었다. 자연스레 발걸음이 닿아 풍경 속에 빠져 들었다.‘자세히 보아야/예쁘다/오래 보아야/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나태주 ‘풀꽃’ 전문세상에 어여쁘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랴. 가까이에서 살피면 보다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맡으며 자세히 느낄 수 있다. 멀리서 보니 억새처럼 여겨졌는데 가까이서 보니 억새도 갈대도 아닌 생소한 외래종 억새였다. 남아메리카가 원산지로 팜파스글라스(Pampas-grass)라 불리우는 멕시코억새는 여러해살이풀로, 팜파스는 중남미 초원지대를 가르킨다고 한다. 거기에 핑크뮬리 그라스라고 불리는 벼과의 외떡잎식물인 하느작거리는 풀과 깃털 같은 억새가 어울려 둔치의 수수하고 이국적인 풍경을 드러내고 있었다. 토종을 위협하는 외래종 식물이 일각에서는 유해하고 심각하다고들 한다. 70, 80년대 수산자원 조성용으로 들여온 베스 물고기나 황소개구리 등이 생태계를 교란하고 파괴한다고 해서 퇴치에 나서기도 했었다. 그러나 세상은 지구촌 한마당이라는 말처럼 소통과 왕래가 활발해진지 한참이나 됐다. 다문화나 다원화가 낯설지 않은 요즘이라 자연환경의 변모도 시류에 따라 조금씩 수반되는 것이리라 본다. 세상은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이다. 자연의 생태계도 자세히 보면 순리와 질서 속에서 대순환 하듯이, 인간사회도 상생과 협력 속에 공존하고 공생하는 것이다. 배타적이고 이기적이기 보다는 이타심과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서로 나누며 살아갈 때 세상은 더욱 밝고 아름다워질 것이다. 점차 추워지는 날씨와 코로나로 인해 난세 같은 연말이 다가오는 때, 이웃과 사회를 위해 나눔과 베풂으로 마음의 온기를 전해주면 어떨까? 주위를 눈여겨 살펴보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아직은 많다. 스산함이 더해가는 계절에 부디 안녕하고 무사하라고 강변의 억새와 핑크뮬리가 온몸으로 흔들어대며 손짓하는 듯했다.

2020-11-29

마음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마음이 없는 사람은 없다. 의식이 전혀 없는 식물인간이라면 몰라도 살아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마음이다. 비정상적인 사람인 미치광이나 사이코패스도 나름의 생각이나 감정, 욕망, 의지 따위가 있을진대 그것이 그들의 마음인 것이다. 그런데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마음이고 너무나 흔하게 쓰는 말이지만 막상 마음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답하기가 막연해진다. ‘사람의 내면에서 성품·감정·의사·의지를 포함하는 주체’ 라는 것이 ‘마음’이란 낱말에 대한 대한민국문화대백과사전의 풀이다. ‘마음은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하여 생각, 인지, 기억, 감정, 의지, 그리고 상상력의 복합체로 드러나는 지능과 의식의 단면을 가리킨다.’는 영국 옥스퍼드사전의 정의도 다르지 않다. 그런 풀이나 정의로 미루어 볼 때 사람의 마음을 형성하는 요소 중 일부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후천적인 교육이나 경험을 통해 갖게 된다는 걸 알 수 있다.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란 말이 있다. 불교 ‘화엄경’의 ‘보살설게품’에 나오는 말로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는 뜻인데, 원효대사의 설화와 함께 널리 알려진 말이다. ‘원효가 불법(佛法)을 공부하기 위해 당(唐)나라로 유학을 가는 길에 날이 저물어 잠자리를 찾던 중 어느 동굴을 발견했다. 그 동굴에서 자다가 목이 말라 잠결에 물을 찾아 마셨는데, 다음날 일어나보니 그곳은 동굴이 아니라 무덤이었고, 잠결에 달게 마셨던 물은 그 무덤의 해골바가지에 고인 물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는 구역질을 했는데, 그 순간 원효는 크게 깨닫고 당나라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렸다’는 이야기다.같은 물이라도 그것을 인식하는 마음에 따라 깨끗하고 시원한 물도 되고 더럽고 구역질나는 물도 된다는 것이다. 그렇듯 생각과 감정과 오감의 작용에 따라 변화무쌍한 것이 마음이지만, 그 내면 깊숙한 곳엔 영구불변의 청정무구한 본성(本性)이 있다는 것이 마음공부 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인 것 같다. 그것을 참나(眞我)라고도 하고 불교에선 불성(佛性)이라고도 하는데, 더럽혀진 마음을 끊어버리고 청정심(淸淨心)으로 돌아가는 것이 해탈이고 열반이라는 것이다.그 ‘참나’에 닿아있는 마음을 양심이라고 한다. 참나는 온 우주와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양심의 소리란 바로 그 참나의 소리요 우주의 소리라는 것이다. 종교인이라면 하느님의 말씀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사람이 몸을 함부로 굴리거나 방치하면 병들고 망가지는 것처럼 마음도 제대로 관리를 안 하면 오염되어 병들거나 왜곡되기 마련이다. 세상을 어지럽히는 온갖 불화와 비리와 참상들은 참나와 단절되고 양심에서 멀어진 마음이 불러오는 것들이다. 가장 비양심적인 집단이 정치집단이라는 말이 있다. 정치도 양심에 근거하지 않아서는 결코 바람직한 결과를 기대할 수가 없다.비록 위정자들이 모두 양심에 털 난 자들일지라도 국민들이 잘 감시하고 감독해 함부로 양심에 어긋난 짓을 못하도록 해야 나라가 바로 선다. 지금 대한민국은 양심과는 옹벽을 쌓은 자들이 장악하고 있다. 그런데도 오히려 그들을 비호하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 개탄스럽다.

2020-11-25

부디 시인의 말처럼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다시 한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다시 한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나태주 시인의 ‘멀리서 빈다’라는 시이다. 이 시에서 필자의 마음에 오래, 또 간절히 머물러 있는 말은 “부디 아프지 마라”이다. 특히 “부디”라는 말의 울림이 너무 크게 다가온다. 그 어느 해보다 길고 긴, 그리고 더 힘든 2020년도 이제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정말 부디 마지막 남은 12월만큼이라도 세상 모든 사람이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인의 뜻에 더 간절한 마음을 보탠다. 그래서 “부디 아프지 마세요!”라는 말을 주문처럼 왼다.필자는 평소 간절히 원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말을 진리(眞理)처럼 믿고 있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할 때면 꼭 이 말을 크게 적어 둔다. 하지만 절대 진리가 사라진 지금엔 이 말 또한 경우의 수에 지나지 않는 말이 되어버렸다. 절대 진리가 사라진 자리에는 코로나 19와 같은 불가항력 상황이 자리하였다. 그런 상황에서는 죽을 만큼의 간절함도 소용없다.우리 사회는 오래전부터 기적(奇蹟)조차 바랄 수 없는 상황으로 변했다. 시의 내용처럼 나와 너 한 사람으로 인해 아침과 저녁이 오는 아름다운 세상 이야기는 이제 전설에나 나오는 이야기가 되었다. 희망조차 고문이 된 지금 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바라고 살아야 할까! 암흑천지도 이런 암흑천지는 없다.“노량진 확진자 67명 임용고시 못 봤다” 너무도 가슴 아픈 뉴스 제목이다. 시험 볼 기회조차 빼앗겨 버린 이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이전투구를 멈추고 정부는 이들을 위한 특별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그리고 더이상 이런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선제 대응을 해야 한다. 이제 곧 우리나라의 가장 큰 시험인 대학수학능력 시험이 치러진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수험생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지금 수험생이 느끼는 제일 큰 압박감은 시험이 아니라, 코로나19에 대한 불안감이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정부의 모습은 수험생들에게 큰 위로를 주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하다.우리는 심리적 방역이라는 말을 만들 정도로 방역 시스템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심리적 방역에만 맡길 수는 없다. 그래서 수험생 부모로서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 시험에 응시하는 모든 수험생과 감독관 등을 대상으로 코로나19 검사를 의무적으로 실시할 것을 제안한다. 수능 관계자 모두가 코로나 19로부터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면 수험생들은 불안감을 떨치고 더 최선을 다해 시험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필자는 지난주부터 수능 수험생을 위해 위의 시를 매일 필사하고 있다. 필사할 때마다 “부디 아프지 마라”라는 부문을 더 힘주어 적는다.

2020-11-24

초병렬 독서법

김현욱 시인예전엔 그러지 않았는데 언제부턴가 책 여러 권을 쌓아두고 손닿는 대로 읽는 버릇이 생겼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문학과 비문학이 절묘하게 섞여있다.이장근 시인의 시집 ‘당신은 마술을 보여 달라고 한다’와 홍익출판사에서 나온 고전 ‘시경’을 같이 읽는다. 정혜신 박사의 ‘당신은 옳다’와 손훈영 작가의 ‘그 여자의 자서전’을 번갈아 읽는다. 이화정의 ‘북 코디네이터’와 메리 파이퍼의 ‘나는 심리치료사입니다’를 함께 읽는다. 책 대 여섯 권을 날마다 조금씩 꾸준히 함께 읽어나간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책 읽는 속도가 느리다. 어떤 책은 잘 읽히고 많이 읽히는데, 또 어떤 책은 몇 줄 읽다가 보기 싫은 사람처럼 덮기도 한다. 아무렴 어떠랴. 누구 보라고 책 읽는 게 아니다. 내가 좋으면 그뿐. 서로 다른 장르의 책을 여러 권 번갈아 읽다보니 평소에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사물과 현상들이 서로 ‘융합’되는 기이한 경험을 종종 한다.‘책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의 저자 나루케 마코토는 “한 권씩 감질나게 읽지 말고, 대범하게 동시에 열권을 읽어라. 읽되, 지혜롭게 읽어라. 가급적 서로 연결고리가 거의 없는 극단적으로 다른 책들을 골라 최대한 몰입해서, 읽어야 할 곳과 읽지 말아야 할 곳을 선택해 가며 신속하게 읽어라.”고 주장한다. 일명 ‘초병렬 독서법’이라고 하는데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읽는 것이 아니라 이곳저곳에 쌓아두고 다양한 책을 동시에 섭렵하는 방식을 말한다. 화장실, 거실, 침대, 식탁 곳곳에 여러 권을 책을 놓아두고 동시에 읽는 것이다. 장르가 다른 책을 읽으면 뇌의 다양한 부위가 활성화되고 의욕과 긴장감이 살아나 예기치 않게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생겨나고 때론 혁신적인 생각이 떠오를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한다.손훈영 작가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자주 밑줄을 그었다. 이를테면, “글을 쓰면서 살아가겠다는 것은 결국 재능의 문제가 아니고 의지의 문제.”, “진실로 ‘문학’을 하고 싶지, ‘문학 활동’을 하고 싶지는 않다.”, “행복에는 강렬함이나 활활 타오름이라는 요소가 없다. 내가 원하는 건 행복이 아니라 강렬하게 집중된 삶을 사는 것이다. 지금 내가 불행하다면 그것은 행복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몰입과 집중이 모자라서다. 집중된 시간을 뚫고 흘러나오는 다이아몬드의 광휘가 없기 때문이다.” 작가의 빛나는 문장에 마음을 벼리고, ‘시경’을 펼쳤을 때 지루하기만 하던 ‘시경’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광채로 다가왔다. 거기다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이나 ‘코스모스’같은 책을 펼치면 광활한 우주에 시와 에세이의 무늬가 어른거린다. 인문학과 과학이 어떤 독특한 접점을 이루는 것을 목격하고 때로는 아름다운 시구가 떠올라 가슴이 설레기도 한다.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다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시시한 책은 읽다가 얼른 덮고 다른 책을 찾을 수도 있다. ‘책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라는 제목은 아무래도 선동적이지만, 핵심은 다양한 장르의 책을 자유롭게 오가며 색다른 경험을 해보라는 것이다.

2020-11-22

불확실성시대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작년 말 중국 우한시에서 발생한 신종폐렴이 일 년이 다 되도록 수그러들 줄을 모른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3월 코로나19에 대한 ‘팬데믹’ 선언을 했다. 팬데믹은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대유행 하는 상황을 일컫는 말로, WHO가 나눈 전염병 경보 6단계 중 마지막 등급에 해당한다. 지금까지 세계 191개국에서 5천400여 만 명의 환자가 발생해서 130여 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 된 이번 팬데믹 상황은 앞으로 얼마를 더 지속할지 불확실한 상태다.불확실성(不確實性)이란 미래에 전개될 상황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없거나 어떤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을 명확히 측정할 수 없는 상태를 뜻한다. 엔트로피증가법칙처럼 세상이 복잡다단해질수록 불확실성도 따라서 증가한다. 표준화된 생산을 특징으로 하는 산업화시대에는 미국이 국제정치, 국제금융, 국제무역에서 자유주의 질서를 유지함으로써 정치·경제·사회의 예측 가능성을 어느 정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였다. 그런데 세계화가 신자유주의적으로 진행되고 ICT 혁명이 기술적으로 가세하면서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양극화 현상을 초래했다. 그것은 동시에 불확실성도 가중시켜 미국 버클리대 아이캔그린 교수는 “세계가 초불확실성의 시대로 진입했다”고 선언할 지경에 이르렀다.농경사회에서는 주로 자연현상의 불확실성이 가장 큰 불안의 요소였다. 화산이나 지진 같은 직접적인 재해는 물론 가뭄이나 홍수 등으로 농사를 망치게 되면 생계가 어려워지므로 어떻게든 기후변화를 예측해 보려는 노력을 했다.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은 하늘의 뜻으로 알고 거스르지 않으려는 노력과 정성으로 불안을 덜고자 했다.‘확실한 것은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는 사실뿐이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한민국은 지금 아무것도 확실한 게 없다. 기업을 죽이고 빚과 세금만 늘리는 포퓰리즘 경제정책의 향방도 오리무중이고, ‘내로남불’의 이중 잣대로 법치를 파괴하는 망나니 춤의 전망도 예측을 불허한다. 억지와 거짓말, 적반하장, 후안무치가 정의와 상식을 대신하는 천박한 사회가 가는 곳은 어디인지, 핵폭탄을 머리에 이고 김정은의 눈치 살피기에만 급급한 거짓 평화쇼의 끝은 어디인지도 가늠할 수가 없다. 소위 ‘대깨문’으로 불리는 극렬 친문세력 등 국내 정치에 번진 팬덤문화는 불확실성을 넘어 헤어날 수 없는 늪이라는 생각에 소름이 끼친다.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가 아니라 무엇보다 상식이 통해야 한다. 잘못이 들통 나면 부끄러운 척이라도 해야 하고, 억지나 파렴치도 정도껏 해야 한다. 철면피 후안무치가 오히려 큰소리치는 무법천지가 되어서는 확실성을 보장할 데가 어디에도 없어진다. 합리와 불합리, 정상과 비정상이 구별되지 않는 혼란과 무질서 속에서 어떻게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겠는가. 역사는, 극도의 분열과 혼란을 조장하여 나라를 불확실성의 나락으로 몰고 간 것을 이 정권이 국민들에게 끼친 가장 큰 해악으로 기록할 것이다.

2020-11-19

고등학교에서 대입(大入) 비대면 면접 촬영을!

이주형산자연중학교 교감입동이 지났다. 겨울을 준비하는 자연의 분주함이 마치 축제와 같다. 나무는 겨울을 나기 위해 잎과의 결별을 선택했다. 잎 또한 그 선택에 기꺼이 동의하고 기쁘게 진다.축제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자연과는 달리 인간은 최악의 겨울 속으로 돌진 중이다. 그 돌진이 무서운 이유는 브레이크가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 가속력에 세계는 이미 공황 상태이다. 멈출 것 같으면서 멈추지 않는 코로나19의 광란 질주에 미국의 의사는 다음처럼 말했다.“미국이 이번 팬데믹의 최악 속으로 향하고 있다. 마치 불에 휘발유를 붓는 것과 같다.”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암흑의 겨울”이라고 했다. 우리도 최근에 전개되는 코로나19 상황을 보면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숫자 단위만 다를 뿐 우리도 암흑의 겨울 앞에 서 있다.그런데 코로나19도 문제지만 진짜 암흑을 맞은 것은 대학교 입시이다. 정말 2021학년도 대학교 입학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은 ‘최악의 대입’에 힘듦을 넘어 너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수시가 끝나자마자 고등학교 3학년의 수업을 온라인으로 돌리는 학교의 작태에 재학생 수험생들은 학교에서 수능 도움을 아예 포기했다.이를 알기라도 하듯 일부 학교 교사들은 수능은 스스로 준비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학교 밖으로 학생들을 등 떠밀고 있다. 학교 밖 고등학교 3학년이 갈 수 있는 곳은 딱히 없다. 학원 아니면 유흥시설이다. 학원을 가는 학생은 그나마 학원에서 학습과 생활 지도의 도움을 받는다. 안타까운 것은 그 수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상당수 고등학교 3학년은 학교 지도의 사각지대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다. 유흥 지역에 가보면 갈 길을 잃고 비틀거리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을 쉽게, 또 많이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또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다른 업무로 학교가 바쁘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코로나19로 혼돈을 겪고 있는 우리 학생들을 위해 고등학교가 먼저 나서서 비대면 면접을 봐야 하는 학생들을 도와주면 어떨까!다음은 어느 대학교의 비대면 면접 방식과 유의사항이다.“(면접 방식) 사전 공개된 면접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을 수험생이 영상으로 직접 녹화하여 본교 시스템에 제출(업로드)한 후 제출된 녹화영상을 통해 (….) 만점과 0점(불합격)으로 평가합니다. (유의사항) 업로드된 동영상의 영상과 음성의 품질이 저조하여 본인 식별 및 정상적인 평가가 어려운 경우 불합격 처리될 수 있습니다.”위에서 보는 것과 같이 비대면 면접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자신이 직접 영상을 찍어야 한다. 과연 학생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영상을 촬영해야 할까? 코로나19 시대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무책임한 처사다. 그래서 비대면 면접을 고등학교에서 촬영할 것을 제안한다. 학교에는 그나마 방송실, 방송시설 등이 갖추어져 있다. 그 방송시설을 이용한다면 학생들은 분명 비대면 면접에 대한 부담을 들고 면접 내용 준비에 더 최선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다.

2020-11-18

자전거로 누비는 세상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자전거에 매료된 지 십수 년이 지났다. 거의 출퇴근으로만 이용하던 자전거를 타면 탈수록 그 묘미에 빠져들어 장거리 주행이나 산악라이딩 등으로 즐기니 그 맛이 쏠쏠하기만 하다. 두 바퀴가 굴러갈수록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 발길 닿고 눈길 가는 곳마다 감흥이 다르고 경이로움을 더해주고 있으니 어찌 즐겨 타지 않으랴?‘은륜(銀輪)에 몸을 싣고/떠나는 국토종주//바람과 악수하며 날아갈 듯 신나게/강줄기를 누비고 산자락을 돌다 보면/초목이 손짓하고 꽃과 새들이 반겨 맞아/달릴수록 설레고 누릴수록 정겨워/보이고 들리고 느끼는 자리마다/새로움이 피어나고 넉넉함이 펼쳐져/눈과 귀가 밝아지고 가슴마저 뿌듯하니//두 바퀴 굴러가는 곳/행복으로 가는 길’ -拙시조 ‘두 바퀴로 가는 행복’ 전문일상에서 자전거 타는 재미를 한껏 느끼다 보니 새로운 욕망과 도전이 생겨났다. 두 바퀴로 우리나라를 찬찬히 둘러보는 것이다. 이른바 국토종주 자전거길을 다니며 우리의 산하와 들, 섬을 손수 누비며 국토의 아름다움과 자전거의 위력을 맘껏 누리고, 자신의 의지를 내보이고 싶어진 것이다. 그러한 마음이 발동하여 2018년 6월말부터 떠난 국토종주 자전거길, 거기에 대학생 아들도 기꺼이 동행했으니 더욱 설레고 기대되는 여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인천~부산까지의 4박5일을 시작으로 지난 10월말, 고성 통일전망대를 끝으로 28개월 동안 12박17일 일정으로 2천㎞에 이르는 국토종주 자전거길 그램드슬램을 달성했다.국토종주 자전거길은 2009년 초 당시 정부의 녹색뉴딜정책의 일환으로 자전거 인프라 조성, 자전거 이용문화 확산 등을 목적으로 2011년부터 현재까지 1천853㎞가 개통돼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또한 지자체별로 호수나 내, 지형의 특성과 역사를 살린 총 10여 개에 이르는 명품 자전거길 등을 만들어 친환경적인 자전거 이용의 편리성과 자전거 문화의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 이러한 자전거길은 아름다운 우리 산과 강을 가까이서 만끽할 수 있고 지역과 지역,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희망과 소통의 길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길과 길로 이어지는 국토종주 자전거길은 체험과 시련의 현장이다. 물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며 새소리와 파도소리에 젖어들고, 꽃향기와 거름냄새를 맡으며 수없이 다가오는 영화 같은 풍경을 접하게 된다. 거기에 그랜드슬램을 인증한다는 것은 험난한 여정을 밟아야 하는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몸의 컨디션과 날씨 변화, 자전거 상태 등이 괜찮아야 하고 간혹 비포장 자갈길과 숨이 턱까지 넘어가는 가파른 고갯길을 묵묵히 인내로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까칠한 아들과 함께 하기란 오죽할까?사람의 공과는 누구나 있기 마련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득과 실이 분명해지고 커지는 경우가 많다.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재구속 수감되기는 했지만, 4대강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자전거길만은 다행스런 치적(?)이 아닐 수 없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면면이 이어지는 자전거길. 그러한 다양한 길을 오가면서 자전거 타는 사람들은 자연과 교감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역경을 딛고 무한한 희열과 추억을 쌓아나가리라.

2020-11-17

패배의 아픔으로 지은 불멸의 건축물

박문하전 포항시의회 의장16세기 초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활동했던 두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가 있다.다빈치는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 등 주로 그림을 그렸고, 미켈란젤로는 ‘피에타’와 ‘다비드’ 같은 조각을 남겼다. 20여 년의 터울을 두고 활동한 이들은 작품의 이름만 들어도 다 알 수 있는 수많은 걸작들을 역사에 남긴 상호 존중과 품격의 모드를 갖춘 선의의 라이벌이었다. 하지만 배경이 조금 다른 라이벌이 있었으니 브루넬레스키와 기베르티로 처음엔 둘 다 조각가였으며 명성은 다소 생소하지만 경쟁과정과 승패의 대립구도는 앞선 라이벌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격렬했다.1401년 유럽인구 3분의 1을 집어삼킨 페스트의 상처가 아물어가고 있을 때 예술의 도시 피렌체는 도시분위기 일신의 차원으로 조반니 세레 당을 치장하는 사업공모를 내걸었다.내로라하는 당대의 미술가들이 공모에 참여했고 결승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22살의 견습 화가 기베르티와 한 살 위인 금 세공사 브루넬레스키 두명 이었고 이들에겐 바로 34kg의 청동판 위에 일년 동안 4엽 장식으로 구약 성서에 나오는 ‘이삭의 희생’을 표현하라는 오더가 내려졌다.이 숙명적인 세기의 대결에서 유실 왁스기법의 작품을 제출한 기베르티가 최후의 승자로 낙점됐고 승자가 된 기베르티는 1403년 피렌체시와 동쪽 문에 28개의 부조를 만드는 계약을 체결하고 21년 후에 완성했다. 그렇다면 패자가 된 브루넬레스키의 행보는 어떠했을지 궁금하다. 세계의 저명한 건축가들은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건축물 중의 하나로 ‘피렌체 대성당’을 선택하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5세기 초에 건립된 작은 교회를 대도시로 성장한 피렌체 시에 걸맞게 웅장한 규모로 개축하기 시작한 해는 1천296년이었고 1천436년에야 완공됐다.140년 동안 쟁쟁한 건축가들이 건설 현장을 수없이 다녀갔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건축가는 단 한 명 브루넬레스키 뿐이다.종전의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55m 높이의 팔각형 건물 위에 직경 45m가 넘는 거대한 돔 지붕을 얹는 대과업이 그의 집념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혼자서 기중기를 개발하여 3만7천여 톤에 달하는 건축자재를 들어올리고 400만개의 붉은 벽돌을 쌓아 올려 스스로 지탱하는 기적과도 같은 돔을 완성했다.그는 죽은 뒤 성인이 아니면 허락하지 않았던 대성당의 지하납골당에 묻혔다. 거친 경쟁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이길 때보다 질 때를 더 많이 경험한다. 그러나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 다음에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다.기베르티에게 패한 다음 그대로 주저앉았다면 피렌체 대성당은 여전히 비가 들이치는 뻥 뚫린 구멍을 간직한 초라한 건축물로 남아있었을 것이다.라이벌 대결에서 패배하여 좌절한 마음을 달래며 로마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고 마침내 피렌체로 다시 돌아와 세계 건축사에 오래도록 기억될 불멸의 명작을 남긴 한 인간의 열정과 가슴 뭉클한 인생역정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결코 적지 않음을 그 흔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2020-11-16

최면과 강아지풀

문가인참마음심리상담센터 원장우리는 학교 교육을 통해서 최면을 경험하거나 배워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최면과 최면치료만큼 항간의 오해를 받는 심리치료기법도 드물 것이다.그렇지만 시골에서 성장한 사람은 강아지풀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개를 부르듯이 불러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강아지풀을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있다. 강아지풀은 열매의 표면에 작은 털이 많은 식물로 미세한 움직임에도 흔들리게 되어있다. 그 강아지풀을 쳐다보고 집중하면서 “오른쪽으로 움직여”, “왼쪽으로 움직여”라고 말했을 때 실제로 그 강아지풀은 움직인다. 내가 마음속으로 집중하고 움직이라는 언어적 암시를 했으므로 움직이게 되어있는 것이다. 그것이 최면에서 중요시하는 관념운동 반응(ideomotor response)으로 마음의 존재를 알려주는 반응이다.이 강아지풀 놀이와 유사한 것으로 펜듈럼 기법이란 최면기법이 있다. 이것은 종이 위에 커다란 원을 그려놓고 실 끝에 추를 달아놓고 집중하면서 “오른쪽으로 움직여”, “왼쪽으로 움직여”, “돌아라” 하면 의식적으로 손을 움직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움직이는 것이다.이것이 바로 마음 중에서도 잠재의식이며, 이 잠재의식의 힘을 활용한 것이 최면이다.천재적인 최면가인 밀턴 에릭슨은 “환자는 자신의 잠재의식과 라포가 단절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최면, 즉 깊은 이완 상태에서 잠재의식의 메시지를 듣는 것이 최면치료의 궁극적 목적이다.이러한 잠재의식의 힘을 알 수 있는 사례를 하나 더 들어보도록 하겠다. 우리가 어린 시절 배가 아팠을 때 어머니가 “엄마 손은 약손이야. 엄마 손은 약손이야” 하면서 배를 문질렀을 때 실제로 배가 덜 아팠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 방법은 최면의 아버지인 안톤 메즈머가 환자들을 최면 치료할 때 쓰던 방법과 유사한 최면기법이다. 실제로 프랑스 등에서는 현재에도 메즈머의 최면전통을 이어받아서 메즈머리즘이란 기법을 가르치고 배우는 워크숍이 존재하고 있다.합리적 정서치료(REBT)의 창시자인 앨버트 엘리스와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프로이트도 최면가였다. 그런데도 심리학과 의학은 옳고 최면은 사이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은 자신의 마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아주 어리석은 사람이다. 해의 혜택을 누리면서 해를 부정하는 것과도 같다.매일 우리는 자신과 타인에게 말로써 긍정적인 최면이나 부정적인 최면을 유도하고 있다. 이왕이면 자신과 타인에게 긍정적인 최면을 하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또 하나의 지혜로운 방법이다. 즉, 최면은 신비스럽거나 무서운 것이 아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매일 나누는 대화, 그것이 일종의 최면이다. 즉, 당신의 말은 자신의 몸과 마음에 영향을 미치고, 타인의 몸과 마음에도 영향을 미치며 건강하게도 혹은 병들게도 한다는 것이다.강아지풀을 가지고 놀았던 그대, 어머니의 약손을 기억하는 그대, 그대는 이미 최면가이다.

2020-11-15

단풍의 계절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사계절이 뚜렷한 대한민국의 사람들은 크나큰 천혜를 누리고 산다. 봄의 꽃과 신록, 여름의 녹음,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경은 우리나라 국민이면 누구나 무상으로 누릴 수 있는 혜택이고 축복이다. 연중 얼음에 덮인 극지방이나 상하의 열대지방, 불모의 사막지방에서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국토의 70% 이상이 산지로 되어있는 우리나라는 자연경관이 빼어나서 전국 어디나 말 그대로 산자수명한 금수강산이다. 그 중에서도 가을의 청명한 날씨와 단풍은 선계의 비경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가을볕이 심사를 맡고/ 나무들 단풍잎 품평회 열렸다/ 누가 더 이쁜가 다투지 않고서야/ 저토록 고울 까닭이 뭐겠는가//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고/ 열매를 위해서 잎은 있는 거라고/ 아는 체 하는 사람 있을까 몰라도/ 나무들 어디까지나 잎으로 산다// 또 한 해 무사히 잘 살았다고/ 한바탕 벌이는 잔치마당에/ 가을 하늘이 더 푸른 것은/ 울긋불긋 단풍잎 돋보이라고/ 그 배경이 되기 위해서다” - 졸시 ‘단풍잎 품평회’기온이 내려가서 나뭇잎이 광합성 활동을 멈추면 엽록소의 자가분해가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안토시안이 생성되는 종은 붉은색 또는 갈색 계열의 단풍이 들고, 안토시안이 생성되지 않는 종은 엽록소의 녹색에 가려 보이지 않던 잎 자체에 들어 있는 노란색 색소들이 나타나게 되어 노랑 단풍이 든다는 것이 과학적 설명이다. 그렇더라도 단풍이 그토록 고와야 하는 이유는 되지는 못한다. 그래서 가을마다 품평회를 열어 서로 미색을 다투고 자축하는 잔치를 벌인다는 게 내 생각이다. 여름내 광합성으로 뭇 생명의 양식을 생산하는 일에 전력을 다했으니 찬란한 풍악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거라고.“홍시가 있는가 쳐다보는데/ 감나무 이파리 하나 떨어진다/ 초록에서 빨강까지 곱게 채색된/ 윤기 자르르한 감잎 단풍// 감잎 단풍이 이렇게 고운 줄/ 오래 잊고 살았다/ 제각각 색이 다른 감잎이 고와/ 주워 모우기도 하던 시절로부터/ 나는 지금 어디만큼 와 있는가// 마당가에 늘 무심한 듯 서 있던 감나무/ 어디에 이토록 고운 마음이 깃들었을까/ 감나무가 건네주는 그림엽서 한 장/ 받아들고 내 마음이 온통 환하다“ - 졸시 ‘감잎 단풍’곱디고운 감잎 단풍은 이 가을이 나에게 건네는 그림엽서이고, 그것을 받아든 나는 무심한 척 서 있던 감나무에 그토록 고운 마음이 깃들어 있었다는 것에 놀란다. 실로 살아있음을 감격스럽게 하는 단풍이고 가을이다.“이 가을 한바탕 풍악(風樂)입니다/ 산천초목 자진모리로 타오릅니다// 퍼담을 수 없도록 햇살 넘치고/ 단풍도 풀꽃도 독한 주정(酒精)입니다// 고통은 썩으면 독(毒)이 되지만/ 발효하고 숙성하면 술이 됩니다/ 슬픔이란 이름의 술이 됩니다” - 졸시 ‘한잔의 가을’잔치마당에 술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눈부신 가을볕에 풀꽃도 단풍도 어찌 잘 익은 술이 아니랴. 가뭄과 태풍 같은 역경과 고통도 잘 삭이고 숙성하면 깊고 향기로운 술이 된다는 것, 그 술이란 찬란한 슬픔이기도 하다는 것. 인생 또한 그렇다는 것.

2020-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