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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코로나 그리고 자녀 양육

이수원계명대 교수·유아교육과코로나가 확산되면서 교육기관이 문을 닫아 아이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고 아이들이 감염병에 대한 공포,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고립감, 가족들과 부대끼면서 겪는 스트레스, 불규칙한 생활 등으로 여러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WHO(세계보건기구)와 UNICEF는 코로나 상황에서 부모역할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는데,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 몇 가지를 뽑아 본 지면에서 소개하고자 한다.먼저, 불안, 공포, 두려움, 걱정은 우리 생존을 위해 필요한 감정이며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감정이다. 혹시 아이들이 감염병을 두려워 하거나 걱정한다면 공감해주자. 스트레스로 인해 아이들이 퇴행 행동을 보이더라도 부정적인 행동보다는 사소하더라도 잘한 행동에 초점을 두어 격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긍정적인 행동에 관심을 두고 칭찬한다면 놀랍게도 더 잘하려는 아이들의 노력을 보게 될 것이다.아이들이 코로나에 대해 질문을 할 때, 섣불리 불확실한 정보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 어른도 모르는 정보가 있음을 인정하고 함께 정보를 찾아보아야 한다. 온라인상에는 부정확한 정보가 많으며 오직 감염병 전문가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함을 아이들에게 알려줘야 한다.집에만 머무는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아이들이 SNS나 화상통화, 게임 등으로 친지와 친구들과 교류하는 것도 스트레스를 경감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규칙적인 하루 일과가 필요하다. 일과를 계획할 때 아이들이 자신이 할 일을 선택하도록 하자. 손 씻기도 놀이처럼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루 동안 손으로 얼굴을 자주 만지는 사람을 찾기나 노래 부르면서 손 씻기 등 방역을 놀이처럼 접근해 아이들 일상의 일부가 되도록 지원할 것을 권한다.코로나는 피부 색, 인종, 성별,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걸릴 수 있는 것이며 코로나 감염환자를 따돌리거나 증오하기 보다는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설명해 주자. 혹시 몸이 아파서 집에 머물거나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면 집에 머물거나 입원하는 것이 자신과 친구를 지킬 수 있는 안전한 방법임을 설명하고 안심시켜야 한다.무엇보다도, 부모가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부모가 스트레스에 잘 대처하고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모습을 아이들이 보고 배울 수 있어야 한다. 부모도 한계를 가진 인간인지라 피곤하거나 예민해진 상황에서는 아이들을 즐겁게 대할 수 없다. 한적한 길에서 산책하거나 친구와 전화로 수다를 나누는 등 부모도 나름의 스트레스 대처법을 찾아야 한다. 아이들에게 소리치거나 화낸다면 아이들은 이야기 내용에 집중하기 보다는 큰 소리와 공포 분위기에 압도된다. 만일 여러분이 예민해진 상태라면 심호흡을 하고 5의 숫자를 세어보자. 마지막으로, 집이 좀 지저분해도, 아이들이 생각보다 게임을 많이 하여도, 하루 일과가 잘 지켜지지 않아도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다고 자신에게 말해 주자.

2020-09-06

계절의 소리

김병래시조시인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는 각 계절마다 대표하는 소리가 다르다. 비나 바람 같은 자연현상에서 나는 소리도 있지만 주로 새나 벌레가 내는 소리가 계절에 대한 청각적 이미지를 이룬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봄에는 종달새소리가 나른하고 몽롱한 봄의 정취를 돋우었다. 아지랑이 아롱거리는 봄날, 보리밭 들길을 걸어가면 노고주리라고도 불리는 종달새가 하늘 높이 떠서 영롱한 방울소리를 내었다.개구리소리 자욱한 초여름 밤의 들판과 뻐꾸기소리 적막한 초여름 낮의 신록도 싱그럽고 그윽한 분위기에 젖게 하고, 한여름이 시작되는 칠월 초순부터는 매미소리가 뒤를 잇는다. 매미소리의 여름은 3악장으로 되어 있다. 1악장의 주선율은 유지매미 소리인데 음정의 높낮이가 없이 찌르르르…. 길게 울린다. 유지매미소리가 좀 단조롭게 들릴 즈음 참매미소리의 2악장이 이어진다. 맴맴맴…. 하고 운다고 매미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바로 이 참매미소리 때문이다. 내 귀에는 미웅미웅미웅…. 으로 들리는데, 몸집은 유지매미보다 작지만 성량은 뒤지지 않는다. 여름이 끝날 무렵은 쓰르라미가 3악장으로 마무리를 한다. 몸집이 가장 작은 쓰르라미는 합주를 하듯 떼로 울어서 마지막 무더위를 쓸어낸다.처서 지나고 가을 기운이 감돌면 풀벌레소리가 귀에 뜨인다. 진작부터 여름 풀숲에서 여치와 베짱이가 울고 있었지만, 그 소리는 아무래도 높푸른 하늘 아래 벼가 익고 코스모스와 쑥부쟁이가 피는 계절과 더 잘 어울린다. 여치와 베짱이는 다 같이 여치과(科) 곤충이고 종류도 많아서 구별이 쉽지 않은데, 베짱이는 ‘쓰이잇! 쩍! 쓰이잇! 쩍!’ 하고 우는 소리가 베를 짜는 소리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다.만추의 가을밤에는 귀뚜라미소리가 심금을 울린다. 귀뚜라미는 흔히 사람의 거쳐 가까이서 운다. 옛날 토담집에는 방안까지 들어와 살기도 했다. 사람의 기척이 나면 뚝, 그쳤다가 조용해지면 다시 소리를 낸다. 잠 못 이루는 밤, 불을 끄고 누워 오랫동안 귀뚜라미소리를 들어본 사람은 쓸쓸함이라든가 적막이라는 말의 의미를 잘 알 것이다.그 밖에도 봄날의 산비둘기소리와 여름밤의 소쩍새소리를 빼놓을 수 없다. 옛날에는 부엉이소리, 뜸부기소리도 한 몫을 했지만 종달새소리와 함께 지금은 거의 사라진 그리운 소리들이다. 텔레비전은 물론 라디오나 자동차도 드물던 시절에는 온종일 들리느니 자연의 소리가 대부분이었다, 초가집 처마의 낙숫물소리, 가을바람에 낙엽 쓸리는 소리, 앙상한 나뭇가지를 스치는 겨울바람소리,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개울물 소리…. 모두가 우리 정서의 바탕이었던 소리들이다.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졌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아름다운 음악소리도 좋지만, 계절에 따라 변하는 신천초목에 어우러지는 자연의 소리들이 더 깊숙이 정서와 감성에 와 닿는다. 대부분의 시간을 인공의 소음에 시달리려야 하는 도시인들일수록 기왕에 도심을 벗어나 나들이를 하는 걸음이면 자연의 경치 속에 깃들어 있는 온갖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면 좋을 것이다. 자연의 미세한 소리까지 놓치지 않는 귀를 가진 사람은 감성과 정서가 늙거나 병들지 않는다.

2020-09-03

온라인 수업 시스템 수준은(下)

이주형산자연중학교 교감데자뷔 세상에 사는 것 같다. 지난 주초 내내 이 나라는 초강력 태풍을 경고하는 언론의 몰이식 방송 때문에 매일 긴장 속에서 보냈다. 다행히 국민 마음을 아는 태풍은 어용 언론의 보도 내용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주말부터 언론은 재방송이라도 하듯 또 태풍으로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다. 언론 보도 내용대로라면 어느 정도의 강도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더군다나 올해 우리나라에 상륙하는 첫 태풍이라고 하니 걱정이 태산이다. 아니래도 힘든 국민을 위해 이번에도 태풍이 꼭 비켜 가길 기원한다.이미 국민은 친정부 언론들이 내보내는 편향성 뉴스에 넌더리를 친지 오래다. 물론 필자도 마찬가지다. 정치가 바른 역할을 못 하는 나라에서 어느 분야인들 제 역할을 하는 곳이 있을까마는 그중에서 제일 심한 곳이 교육과 언론이고, 이와 버금가는 곳이 법 관련 부처이다. 참된 뉴스는 국민의 눈과 귀다. 그런데 어용 언론들은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것은 물론 이 나라 정치인들의 눈과 귀를 완전히 가렸다. 그래서인지 아무리 벌거숭이 임금(정치인)이라고 해도 그들은 알아듣지 못한다. 오히려 자기애에 빠져 헤어나지를 못한다. 그래서 필자는 뉴스는 되도록 보지 않는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는 뉴스 채널을 지워버린다.지난 주말 필자는 무의식적으로 채널을 돌리다가 완전히 TV 화면 안으로 들어간 적이 있다. 필자를 구한 건 아이들이었다. 화면에는 유명 방송인 요리사가 요리를 하고 있었다. 어떤 요리 프로그램이길래 저러나 하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다. 그런데 분명 많은 것이 달랐다. 그중에서 필자의 시선을 오래 잡은 것은 바로 세트장 구성이었다. 마치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를 보는 것 같았다. 많은 화면이 있었고, 화면 속에는 제각기 다른 사람이 열심히 뭔가를 하고 있었다. 더 놀란 것은 스튜디오의 요리사와 화면 속 인물이 실시간으로 대화를 하는 것이었다. 프로그램 내용을 보니 요리에 서툰 일반 시청자들이 쌍방향으로 요리를 배우고 있었다. 생방송이라는 것에 필자는 더 놀랐다. 모두를 너무 즐거워했다.프로그램을 보면서 필자는 실시간 쌍방향 온라인 수업이라는 용어가 떠올랐다. 온라인 수업 시작부터 많은 교육 관료와 교사들은 학교에서는 쌍방향 온라인 수업이 안 된다고만 했다. 왜 안 되느냐고 물으면 오로지 핑계를 대기에 바빴다. 대표적인 핑계가 수업을 할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었다. 해결책을 제시해도 그들은 들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그릇된 신념”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의사들을 몰아세우고 있는 대통령의 표현은 의료계가 아닌 교육계에 더 적합한 말이다. 분명 지금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학교 편의 중심의 원격수업은 학생들에게 도움은커녕 독이 되고 있다. 학생들의 마음이 학교에서 더 떠나기 전에 지금 각 방송사가 진행하는 쌍방향 방송을 교육 관료들과 교사들이 꼭 보길 추천한다. 혹여 온라인 수업 때문에 바빠서 TV 프로그램을 모른다는 어처구니가 없는 핑계를 댈 교육 관계자들을 위해 잠시 프로그램을 안내하니 꼭 챙겨 보시길 바란다.“백파더 요리를 멈추지 마, 트롯신이 떴다, 코미디빅리그”

2020-09-02

혼자만의 시간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수많은 이변 속에 ‘동동팔월’이 지나갔다. 긴 장마에 폭염과 태풍, 코로나19 재확산과 비토 세력 집회 등으로, 되풀이되는 자연 재난의 상흔은 깊어졌고 국민들의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동동거리며 계속되고 있다. 존재하는 그 모든 것들은 다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자연 앞에서는 더욱 겸손한 자세로 지혜를 모으고 인간사회에서는 다양성의 조화 속에 배려와 신뢰의 마음을 재삼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번잡하고 요동치는 가운데서는 무슨 생각을 모으거나 어떤 일들을 도모하기가 만만찮을 것이다. 아전인수격의 우격다짐이나 반대를 위한 반대는 자칫 자중지란(自中之亂)으로 치달을 수 있음을 늘 명심해야 한다.세상이 복잡하고 주위가 시끄러울수록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하루 종일 해야할 일들이 많고 만나야 할 사람들도 수두룩한데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란 좀처럼 쉽지않을 것이다. 그러나 때에 따라선 정말 아무도 만나지 않고 온전히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몰입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마음의 평온함과 함께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거나 해결의 실마리가 풀려지기도 할 것이다. 가령 혼자서 들길을 거닌다거나 산이나 강, 바다나 언덕을 찾아 조용히 사색을 하며 관조(觀照)하듯이 명상에 잠기다 보면 한결 마음이 넉넉해지고 개운해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는 실제로 1년에 두 차례 ‘생각 주간(Think Week)’을 정해 혼자 조용한 곳에 처박혀 아무도 만나지 않고 자신의 생각에만 집중한다고 한다. 그러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깊은 생각에 빠져 앞으로의 나아갈 방향을 잡고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며 중대한 의사결정을 내린다고 한다. 또한 현대미술의 아버지라 칭하는 프랑스의 후기 인상주의화가 폴 세잔은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생각을 정리해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했다. 그가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깊은 사색을 통해 전통적 회화에 대한 생각의 전환을 제시한 곳도 미술의 변두리였던 한적한 프로방스 지방이었다고 한다.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쁘고 일들이 많아선지 스스로에게 혼자 있는 시간을 선뜻 내주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틈만 나면 TV를 본다거나 하루 종일 SNS를 통한 소통을 하며, 세상의 흐름에 자신만이 소외될 것 같은 막연한 불안함과 정보나 화제를 놓칠 것 같은 강박감으로 잠시라도 혼자 가만히 내버려두지를 않는다. 이른바 ‘포모현상’에 찌들어가는 현대인들이 스마트폰을 안보고 버틸 수 있는 시간이 평균 50초라 하니, 혼자만의 시간을 찾아가는 길은 요원하기만 한 듯하다.시대가 각박할수록 무리에서 벗어나 홀로 조용히 앉아 마음을 살피는(獨坐觀心) 일이 중요하다. 오로지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통해 과거의 경험을 진지하게 돌아보며 반성하고, 현재의 일들을 골똘히 생각하면서, 미래에 있을 법한 일들을 심사숙고하다 보면 마음의 고요 속에 뭔가 비춰지고 발견되는 것이 있을 것이다. 마음의 고요는 평정심(平靜心)이며 홀로 조용히 있을 때만이 자신의 중심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020-09-01

옥(玉)이라는 새

김현욱 시인대표적인 우화(寓話)로 ‘이솝이야기’가 있다. 동식물이나 사물을 주인공으로 삶의 의미를 풍자하거나 암시적으로 나타낸다.동양의 철학자들도 우화를 즐겼다. 장자(莊子)가 특히 그렇다. 장자 ‘지락(至樂)’편에 나오는 ‘바닷새 이야기’를 소개한다.“옛날 바닷새가 노나라 서울 밖에 날아와 앉았다. 노나라 임금은 이 새를 친히 종묘 안으로 데리고 와 술을 권하고, 아름다운 궁궐의 음악을 들려주고, 소 돼지 양을 잡아 푸짐하게 대접하였다. 그러나 새는 어리둥절해하고 슬퍼하기만 할 뿐, 고기 한 점 술 한 잔 마시지 않은 채 사흘 만에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렸다. 이것은 사람을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른 것이지, 새를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르지 않은 것이다.”사람의 자리에 ‘나’를, 새의 자리에 ‘너’를 넣으면 이야기는 분명해진다. “나는 나의 방식으로 너를 길들이려 한 것이지, 너의 방식으로 너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이다. 그것이 생명의 모태(母胎)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타적이다.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기(利己)와 이타(利他)의 어디쯤에 서야 우리는 행복해질까?그림책 ‘내 친구 꼬마 벌’(엘리슨 제이, 국민서관)에는 소녀 데이지와 꼬마 벌이 등장한다. 데이지는 갑자기 나타난 꼬마 벌을 무서워하지만, 지친 꼬마 벌을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돌봐준다. 그러면서 데이지가 하는 행동이 의미심장하다. 책을 좋아하는 데이지는 꼬마 벌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기 위해 ‘벌에 관한 책’을 찾아 읽으며 공부한다.나는 이 장면에서 노나라 임금을 떠올렸다. 바닷새가 무엇을 원하고 원하지 않는지 노나라 임금은 알려고 하지 않았다.장자의 ‘바닷새 이야기’에 데이지가 등장했더라면, 아마도, 데이지는 바닷새를 우선 쉬게 하고, 바닷새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공부(대화)했을 것이다. 그러면, ‘바닷새 이야기’는 결말이 달라졌을 것이다. 엉성하지만 나도 우화 한 편을 썼다. 여기서 어떤 의미를 짚어낼 지는 자신의 몫.“옛날에 옥(玉)이라는 새가 살았다. 아름다운 자태와 매혹적인 노래로 뭇 나무들의 사랑을 받았다. 옥(玉)이라는 새는 그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고 여기저기를 떠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 화마(火魔)에 그을린 이팝나무를 보았다. 크고 힘센 나무에만 잠시 내려앉았던 옥(玉)이라는 새는 이팝나무가 가여웠다. 난생 처음으로 지켜주고픈 마음이 들었다. 옥(玉)이라는 새는 이팝나무 곁에 머물며 벌레를 잡아주고 노래를 불러주었다. 기운을 차린 이팝나무는 쌀밥 같은 하얀 꽃송이를 피어 올렸고, 옥(玉)이라는 새는 그 모습을 즐거워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서로는 불안하고 혼란스러웠다. 옥(玉)이라는 새는 정주(定住)하여 둥지를 트는 것이 두려웠다. 이팝나무는 옥(玉)이라는 새가 멀리 날아 가버릴 것 같아 불안했다. 이는 각자의 본성(本性)과 순리(順理)를 따르지 않고, 사랑이라는 미혹(迷惑)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자 했기 때문이다.”

2020-08-31

가을이 온다

김병래시조시인처서 지난 들판에 일제히 벼가 팬다. 이곳은 다행히 홍수 비해가 없어 가을 태풍만 무사히 넘기면 풍년이 들 것이다. 작년 가을에는 벼가 익을 때쯤 두 차례나 태풍이 와서 벼가 눕거나 물에 잠겨 상당한 피해가 있었다. 그래도 식량 수급에 큰 지장이 없었던 것은 우리나라엔 그만큼의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옛날에는 가뭄이나 홍수로 농사를 망치게 되면 굶어 죽는 백성들이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풍년이 들면 배불리 먹고 흉년이 들면 굶을 수밖에 없는 것이 농경사회 백성들의 애환이었다. 그러니 하늘을 쳐다보면서 살 수밖에 없었고 행여 하늘이 노할 짓은 삼가는 삶이었을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는 수리시설이 잘 갖추어져서 웬만큼 가뭄이나 홍수가 나도 농사를 아주 망치지는 않는다. 이 들녘만 하더라도 인근에 제법 큰 저수가 있고 들판 곳곳에 관정을 뚫어 놓아 지하수를 퍼 올릴 수도 있다. 그래서 이제는 하늘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고 살게 되었다고나 할까.어린 시절에 보릿고개를 넘어온 사람들은 벼가 패는 들판을 바라보는 감회가 무덤덤할 수 없을 것이다. 배를 곯아본 사람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보다 다행한 일이 없다는 걸 잘 안다. 불치의 병이나 큰 사고를 당한 경우가 아니라면 굶지 않고 살 수 있는 것만으로도 자족할 조건이 된다. 지금도 지구상에는 10억이 넘는 인구가 기아에 허덕이거나 아사하는 실정이고, 우리나라보다 훨씬 자원조건이 나은데도 빈곤을 벗어나지 못한 나라도 많다고 하니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 얼마나 다행하고 자부심 가질 일인가.외국인의 눈에 비친 일제의 식민지가 되기 직전의 조선은 세계에서 가장 더럽고 게으른 나라 중 하나였다고 한다. 민족의 본성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끊임없는 당파싸움에다 탐관오리들의 가렴주구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백성들은 잘 살아 보려는 희망도 의욕도 잃어버린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라를 통째로 남의 손에 넘겨주고 말았다. 식민지가 된 것을 남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도, 지금 와서 새삼스럽게 친일파 타령을 하는 것도 같잖은 정치적 수작일 뿐이다.올해도 북한의 홍수피해가 심각한 것 같다. 가뜩이나 식량난이 극심한데 곡창지대가 침수되어 또다시 굶어죽는 사람들이 속출하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란다. 기아에 허덕이는 북녘 동포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가슴 아프고, 핵폭탄을 끌어안고 백성들을 사지로 몰고 가는 김정은 일당에 대한 분노를 금할 수가 없다. 포악한 독재자는 어떻게든 제거하는 수밖에 달리는 방도가 없을 것이다. 겉으로 드러내놓고 할 수는 없다면, 암암리에 김일성 일가의 마수(魔手)를 종식시키는 일에 모든 지혜와 역량을 다해야 할 것이다.그런데 이 정권은 엉덩이에 뿔난 망아지처럼 거꾸로만 가고 있다. 저들의 이념과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북한 주민들의 생존이나 인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김일성 일족의 체제유지를 돕지 못해 안달을 하는 꼴이다. 머지않아 반드시 역사의 심판을 받겠지만, 그 때까지 기다리기엔 북녘 동포들의 형편이 너무 참담하고 절박하다. 속절없이 또 가을이 오고 있다.

2020-08-27

온라인 수업 시스템 수준은 (上)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절기가 입추를 거쳐 처서를 지났다. 이를 두고 사람들의 마음은 보통 “벌써”와 “아직”으로 갈린다. 그래도 예전에는 “벌써”든 “아직”이든 시간 흐름을 판단하고, 표현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사람들은 시간을 잃어버렸다. 잃어버린 건 시간 자체도 있지만, 더 큰 것은 시간에 대한 느낌이다. 계절감이라는 말이 지금은 사치(奢侈)처럼 들리지만, 사람들은 계절감이 있었기에 그나마 팍팍한 세상을 살아냈다. 지금이 더 힘든 이유는 바로 계절이 마스크에 가려져 우리 마음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코로나19에 계절감을 잃은 사람들과는 달리 자연은 사람들이 망쳐 놓은 절기를 지키느라 부단히 애쓰고 있다. 자연의 노력은 소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분명 소리가 바뀌었다. 매미 소리만 가득하던 자연에 귀뚜라미가 소리를 보태기 시작했다. 밤이면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라는 처서(處暑) 관련 속담을 이해할 수 있다.최근 또 뚜렷하게 바뀐 것이 있다. 그것은 기온이다. 아직 낮에는 햇살이 강하지만, 밤에는 확실히 열의 농도가 달라졌다. 비록 간간이 모기 때문에 잠을 설치지만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라는 관용적 표현을 실감할 정도로 일교차가 크다.처서에 대해 좀 더 알아보다 계절과 생활은 밀접하다는 생각을 확인하는 속담을 찾았다.“처서에 비가 오면 십 리 천석을 감하고, 백로에 비가 오면 십 리 백석을 감한다.”이제 시험에서나 간혹 나올 법한 속담이지만 선조들의 빅데이터 활용 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문장에 저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그런데 언론에서 연일 코로나19 재확산 소식과 함께 전하는 초강력 태풍 바비 소식에 감탄사는 걱정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국난(國難) 상황이다. 지금 시기에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이 교육이면 더 좋을텐데 말이다. 이 나라에 교육에는 다른 것은 다 있다. 엄청난 예산, 국민적 관심, 세상에서 가장 잘난 교사와 교육 관료 등! 그런데 희망은 없다.코로나19 재확산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 3단계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크다. 그러면 교실은 또 문을 닫아야 한다. 이미 수도권 등에서는 고3을 제외한 초중고 모든 학생에 대한 원격 수업을 발표하였다. 과연 지금 하는 온라인 수업을 학교 수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의 원격 수업은 진급과 진학, 그리고 시험을 위한 교육 행정 편의 중심의 전시성 정책밖에 안 된다.그럼 온라인 수업이 과제 중심형 수업으로 굳어진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원인은 온라인 수업 시스템 때문이다. 온라인 수업을 처음 시행한 지난 4월과 비교했을 때 달라진 게 있을까? 없다. 교사들과 학생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쌍방향 온라인 수업 시스템을 개발하자고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정말 요지부동이다. 이럴 거면 정말 학교가 왜 필요하나? 그냥 시험을 위한 문제 은행이나 만들어서 학생들보고 집에서 알아서 공부하라고 하고, 특정일에 학교에 와서 시험만 치라고 하면 되지!학교 소멸 전에 모두가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온라인 수업 시스템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2020-08-26

칠석날 생각

윤영대수필가여름의 끝자락 처서(處暑)가 지나면 가을바람이 분다. 그리고 음력 7월7일 즉 칠석(七夕)이 있다. 하늘나라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를 건너서 1년에 한 번 만나 회포를 푸는 날, 우리에게는 익숙한 전설이다.이 견우직녀 설화는 고대 중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우리나라 삼국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다. 옥황상제가 손녀인 직녀와 강 건너 견우를 혼인을 시켜 주었는데 둘이 사랑에 빠져 게으름을 피우기에 화가 나서 은하수 양쪽으로 갈라놓고 1년에 한 번 만 만나게 했단다. 이날 까마귀와 까치들이 하늘로 날아가서 다리를 놓아 서로 만나게 했고, 그래서 이날 까마귀들이 안 보이는데 다음날 보면 머리가 벗겨져있고 그 다리를 오작교(烏鵲橋)라 한다.사실 이날쯤 천문학적으로도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독수리자리에 있는 견우성과 거문고자리에 있는 직녀성이 가장 가까이 접근한다고 하는데, 수 천 년 전에도 은하수와 별자리의 움직임을 상세하게 살피고 그에 맞는 재미있는 설화도 만들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요즈음 도시에 사는 일반인들은 밤하늘을 올려다보아도 1등성 밝기의 견우와 직녀별을 살펴보기도 어렵겠지만 은하수의 흐름도 느끼기 어렵다. 수년 전 몽골여행 때 그 넓은 풀밭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며 까만 하늘에 꽉 차 있는 수많은 별을 보고 감탄을 했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공해로 낮에도 흐린 하늘을 보지만 수천 년 전 그때의 밤하늘은 그야말로 하늘의 끝까지 보였었겠지.여름 밤하늘을 보며 아기자기한 별들의 얘기들을 나눌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가끔 시골집에서 하룻밤을 잘 때면 그나마 은하수를 보며 어릴 때를 기억해 보곤 한다.우리는 기억이 없는 사람들에게 ‘까마귀 고기 먹었나?’ 하고 핀잔을 주는데 기억력이 으뜸인 까마귀를 왜 건망증과 관계를 짓는지 모르겠지만, ‘까마귀는 칠월칠석은 안 잊어버린다.’고 할 만큼 칠석이 중요했던가 보다. 그러니 이번 칠석날에도 까마귀와 까치들이 오작교를 놓으러 올라가겠지. ‘칠석날 까치 대머리 같다.’는 속담도 있으니 다음날 들판의 전깃줄에 까맣게 앉은 까마귀들의 머리가 벗겨진 것을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칠석우(七夕雨) 즉, 칠석날 비가 오면 견우직녀가 만나는 기쁨의 눈물이고 다음날 비가 오면 헤어짐을 슬퍼하는 눈물이라는데, 올해 8호 태풍 바비(BABI)가 올라오고 있다고 하니 걱정이다. 칠석 전후쯤 우리나라 남쪽으로 상륙하여 큰 눈물을 보일지도 모른다니 지난번 물난리를 겪은 지방에는 견우직녀의 이별이 매우 서러울까 염려될 것 같다. 제발 둘이서 즐겁게 놀다가 내년의 만남을 약속하며 웃으며 헤어지기를 갈망해본다.그러나 칠석날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들거나 땀띠나 부스럼 등 병을 쫓는 영험이 있어 옛사람들은 빗물로 목욕하고 물맞이를 하였다고 하니 태풍이 오더라도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조심해서 맞으면서 나라의 안녕을 빌어보자.칠석날에는 옛 풍습대로 오이와 참외 먹으며 더운 마음 씻고 한창 익을 호박으로 부침 만들고 밀국수 한 그릇 말아서 칠성님께 이번 태풍이 무사히 지나가도록 빌어볼까. 그리고 그동안 습기 찼던 옷과 책들을 꺼내어 햇볕에 말려야겠다.

2020-08-24

고무신과 맨발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유년시절의 여름날엔 고무신을 신고 다닐 때가 많았었다. 학교에 가거나 농사일을 돕거나 또래들과 어울려 놀 때면 거의 다 고무신을 신고 나타났다. 지금은 아련해진 신발상표인 말표, 기차표, 왕자표 따위의 검정이나 흰고무신을, 요새처럼 흔한 운동화마저 없었기에 고무신을 질질 끌 수밖에 없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그 당시엔 다들 시골 5일장에서 좋은 옷이나 괜찮은 신발을 장만할 만큼 집안 형편이 넉넉하질 못했기 때문이었다. 먹고 사는 일들이 녹록찮았던 70년대, 대부분 어딜 다니거나 일을 할 때면 최소한의 기본요건(?)만을 갖춘 옷이나 신발이면 그걸로 만족해야 하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절이었다.고무신을 발에 견주어 신기도 하면서 요긴하게 쓰이기도 했다. 소꿉놀이 할 때면 고무신에 흙을 가득 담아 실어 나르기도 했고, 개울에서 멱을 감다가 붕어나 송사리를 잡아 물을 채워 집으로 갖고 갈 때는 고무신이 딱 좋았다. 또한 심심할 때는 고무신 두 짝을 벗어 짝짝이처럼 마주치게 하여 특유의 소리를 듣기고 했지만, 어떤 때는 고무신이 너무 빨리 닳는 것이 아까워 들길이나 산길, 신작로를 다니면서 신고 있던 고무신 두 짝을 벗어 들고 맨발로 걸어간 적도 흔하게 있었다.특히나 차가 드물게 지나가며 뽀얀 먼지 일으키던 5번 국도 신작로를 맨발로 걸어갈 때에는 길 가장자리로 밀려나온 모래흙과 자갈을 밟으면서 발바닥의 간지러움 따가움, 간혹 돌부리에 채이기도 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었다. 그처럼 일상생활에서나 논밭에서 김을 매고 들에서 일을 할 때면 으레 고무신을 벗어두고 맨발로 움직일 때가 많았으니, 발바닥을 간지럽히는 어련무던한 자극과 추억이 세월의 저편에서 아직도 꼼지락대고 있음을 느끼곤 한다.세월이 한참이나 흘러 고무신을 신고 다니는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요즘, 맨발 운동을 하며 건강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흔히들 발은 제2의 심장이라고 하듯이, 심장에서 보낸 혈액이 제일 먼 곳에 있는 발로 갔다가 심장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발의 혈액순환과 발 자체의 관절이나 근육의 기능들이 온전해야 우리 몸의 전체적인 순환과 움직임도 원활해질 것이다. 맨발걷기나 맨발 뛰기로 땅과 바닥의 기운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발 건강을 도모하면 그만큼 심장이 더 건강하고 강해질 것이다.국민들의 맨발 건강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자체 별로 특색있는 맨발 황토길이나 숲길, 지압 보도, 맨발 마당 등을 조성해 호응이 커지고 있다. 최근 포항지역에서는 맨발 걷기의 선풍이 일어나면서 ‘맨발로(路) 8선’을 선정하고, 코로나19 여파로 외부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민들을 위한 건강 프로젝트로 ‘전국 최초 일일 맨발 10만보 걷기’를 완수하는 등 보행환경 조성과 걷기문화를 확산시켜 상당히 고무적으로 여겨진다.사람은 땅과 자연에 가까워질 때 병원과 멀어진다고 한다. 오감을 깨우며 삶의 활력을 주는 맨발걷기와 맨발 운동은 발뿐 아니라 온몸을 일깨우기 위한 관심과 노력이다.

2020-08-23

국민과 정치

김병래시조시인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정치적 동물’이라고 했다. 사람은 생존을 위해 무리를 지어 살 수밖에 없는데, 당시의 아테네와 같은 ‘폴리스’를 최종적이고 이상적인 공동체로 보고 그 속에서 의식주의 자급자족은 물론 토론과 논의를 통해 인간다운 삶을 위한 공동선(共同善)을 이룰 수가 있다고 했다. 물론 오늘날의 자본주의 국가의 정치체제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사람과 정치가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에는 다름이 없을 터이다.우리나라 헌법 제1조에는‘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명시되어있다.그러나 구성원 모두가 직접 정치에 참여하여 의사결정을 하는 직접민주제가 아니라 선거 등의 절차로 대표를 선출해서 간접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대의제를 채택하고 있다. 모든 국민은 범법(犯法) 등의 결격사유가 없는 한 만 18세가 되면 투표를 통해 대통령과 지방단체장, 국회의원과 지방의회의원을 선출하는 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리고 지방단체장과 지방의회의원, 교육감에 대해서는 자질이 불량할 때 투표로 파직할 수 있는 주민소환권도 가진다.하지만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만으로 국민의 정치참여 역할이 끝난 것은 아니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사람들이 맡은 일을 제대로 하는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도 중요한 참여의 하나이다. 그들의 국가경영 성패는 곧 국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정권의 잘잘못에 대한 심판은 선거를 통해서 할 수밖에 없기에, 여러 경로로 감시하고 평가하여 다음 선거 때 재신임 여부를 결정하는 것까지 국민의 역할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훌륭한 인물을 지도자로 선택해서 부강해진 나라가 있는가 하면 잘못된 선택으로 나라를 망친 경우도 적지 않다. 히틀러를 선택한 독일은 전쟁으로 패망했고, 김일성을 선택한 북한과 차베스와 마두로를 선택한 베네수엘라는 결국 거지꼴이 되고 말았다. 대한민국도 정부수립 이후 70여 년간 어느 정권도 유종의 미를 거두지는 못했다. 임기 중에 쫓겨나거나 시해를 당한 대통령도 있었고, 가족이나 본인의 비리로 교도소에 가거나 자살을 한 대통령이 있는가 하면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가 나중에 사형선고를 받은 대통령도 있었다. 누구에게나 공과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중에서 정부를 수립해 나라의 정체성을 확립한 대통령과 혁신적 산업정책으로 경제적 기반을 다진 대통령, 민주화에 기여를 한 대통령들은 역사가 특별히 기억할 것이다.국민들 각자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질 때 나라는 안정되고 부강해질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경우 우선 지양해야 할 것은‘패거리의식’이다. 이념이나 성향으로 편을 갈라 서로 대립하고 반목하는 데서는 올바른 판단을 기대할 수가 없다. 자기편은 무슨 짓을 해도 용인을 하고 상대편이 하는 일은 무조건 폄훼하고 반대하는 것은 국력을 소모하고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요인이다.패거리들과는 거리를 둔 냉철한 이성을 가진 국민이 많을수록 나라의 근간이 튼실해진다. 현 정권이 크게 우려스러운 것도 바로 이 패거리정치 때문이다.

2020-08-20

8월 학교 운명은?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선생님, 2학기부터는 매일 등교하래요.”오랜만에 만난 지인의 중학교 1학년 자녀가 필자를 보더니 도저히 자신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따지듯이 물었다. 필자의 놀람에 아이는 더 큰 소리로 말했다.“선생님, 만약 우리가 코로나에 걸리면 국가가 책임 져 주나요? 학교에 가면 수행평가밖에 하지 않는데 왜 학교에 오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선생님께서 말씀 좀 해주세요.”아이는 정말 진지하게 말하였다. 그 어조를 그대로 옮길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아이를 만나기 며칠 전 필자는 아이의 놀람이 담긴 공문을 보았다.“현재 감염병 위기 단계인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를 전제로, 지역사회 여건 및 기초학력 보장 등을 위한 대면 수업 확대 요구를 반영하여, 전교생 매일 등교수업을 권장함.”이제는 매일 등교수업이 이상한 시대가 되었다. 또 교육청에서 등교를 권장하는 시대라니 필자는 너무도 낯선 지금의 상황에 코로나 멀미가 날 지경이다. 아이의 말을 들으면서 문득 하 가지 생각이 들었다. 만약 학부모와 학생 중 코로나19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일명 코로나 트라우마로 등교를 거부하는 이들이 늘면 학교는 어떻게 해야 하나?매일 등교가 낯선 것은 분명 학생들만이 아니다. 과제 학습에 익숙해진 교사들은 낯섦을 넘어 짜증이 날 것이다. 걱정보다는 편함을 반납해야 하는 그 심정은 어쩌면 짜증을 넘어 화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 그 화가 부디 학생들에게 미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과연 지금까지 원교 수업이라는 명목으로 낸 그 많은 과제를 교사들은 평가했을까? 물론 학생 개인별로 피드백을 해준 교사도 있다. 그리고 그 과제를 정리하여 책으로 만든 교사도 필자는 안다. 그런데 필자가 아는 아이 중 학교에서 과제에 대해 정확하게 피드백을 받았다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다. 피드백 대신 벌점을 받은 아이들을 필자는 알고 있다.익숙해진다는 것의 방향은 늘 자기 쪽이다. 그 방향은 익숙함의 정도에 정비례한다. 익숙함이 강해질수록 다른 사람의 다른 생각은 안중에도 없게 된다. 혹 누가 뭐라고 하는 순간 그 사람과의 관계 앞에 적대(敵對)라는 말이 붙는다. 그것은 학생도, 교사도 마찬가지이다.이 글을 쓰고 있는데, 지인으로부터 댓글을 잘 읽어보고 답을 좀 해대라는 메시지가 왔다. 지인은 “교육부 2단계에도 교사는 출근 이후 등교·원격수업이 원칙”이라는 기사에 달린 댓글을 말하고 있었다. 필자는 댓글을 모두 읽을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광복절 기념 축사를 다 듣지 못하고 구역질 때문에 채널을 돌린 그때의 느낌과도 같았다. 교사와 일반인으로 편이 나뉘어 싸우는 모습에 얼굴이 화끈거렸다.그리고 직감적으로 이제 이 나라 교육도 문을 닫아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학교가 학교 기능을 하지 못한지가 오래이지만, 그래도 좋든 싫든 학생들과 교사들은 학교에는 갔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학생과 교사 모두 학교를 거부하고 있다. 그런데 무슨 교육이 되겠는가! 자율성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는 8월 학교 교육도 글렀다.

2020-08-19

창백한 푸른 점

김현욱시인보이저(Voyager) 호는 1977년 8월 20일과 9월 5일에 각각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발사한 무인 우주탐사선이다.8월 20일에 발사된 것이 보이저 2호, 9월 5일에 발사된 것은 보이저 1호다. 보이저 2보다 보름 정도 늦게 출발했지만 보이저 1호는 지름길을 이용하여 1979년 3월에 목성을, 1980년 11월에는 토성 가까이 접근했다. 그리고 1990년 2월 14일, 태양에서 61억km 떨어진 지점에서 카메라를 지구 쪽으로 돌려 촬영한 사진을 전송하였다. 그 사진이 바로 칼 세이건(1934~1996·미국의 천문학자)의 유명한 ‘창백한 푸른 점(The Pale Blue Dot)’이다. 당시 보이저 계획의 화상 팀을 맡았던 칼 세이건은 이 사진을 보고 동명의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저서에 이렇게 소감을 적었다.“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보면 지구는 특별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류에게는 다릅니다. 저 점을 다시 생각해보십시오. 저 점이 우리가 있는 이곳입니다. 저 곳이 우리의 집이자, 우리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당신이 아는, 당신이 들어본, 그리고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이 바로 저 작은 점 위에서 일생을 살았습니다.우리의 모든 기쁨과 고통이 저 점 위에서 존재했고, 인류의 역사 속에 존재한 자신만만했던 수 천 개의 종교와 이데올로기, 경제체제가, 수렵과 채집을 했던 모든 사람들, 모든 영웅과 비겁자들이, 문명을 일으킨 사람들과 그런 문명을 파괴한 사람들, 왕과 미천한 농부들이, 사랑에 빠진 젊은 남녀들, 엄마와 아빠들, 그리고 꿈 많던 아이들이, 발명가와 탐험가, 윤리도덕을 가르친 선생님과 부패한 정치인들이, 슈퍼스타나 위대한 영도자로 불리던 사람들이, 성자나 죄인들이 모두 바로 태양빛에 걸려있는 저 먼지 같은 작은 점 위에서 살았습니다. (중략)저 작은 픽셀의 한 쪽 구석에서 온 사람들이 같은 픽셀의 다른 쪽에 있는, 겉모습이 거의 분간도 안 되는 사람들에게 저지른 셀 수 없는 만행을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잦은 오해가 있었는지, 얼마나 서로를 죽이려고 했는지, 그리고 그런 그들의 증오가 얼마나 강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위대한 척하는 우리의 몸짓, 스스로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믿음, 우리가 우주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망상은 저 창백한 파란 불빛 하나만 봐도 그 근거를 잃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우리를 둘러싼 거대한 우주의 암흑 속에 있는 외로운 하나의 점입니다. 그 광대한 우주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안다면, 우리가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해도 우리를 구원해줄 도움이 외부에서 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앨 고어의 다큐멘터리 영화 ‘불편한 진실’의 마지막에 이 사진이 삽입되었는데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라는 칼 세이건의 말을 인용했다. 지구 온난화를 지금 당장 멈추게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앨 고어는 이 사진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상 기후의 징후는 세계 곳곳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창백하게, 두렵다.

2020-08-17

개망초꽃 여름

김병래시조시인여름 들녘에 개망초꽃이 지천이다. 누가 뭐래도 여름은 개망초꽃의 계절이다. 아무도 개망초꽃을 피해서 여름을 건너갈 수는 없다. 이 땅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고 우리의 정서에도 잘 맞는 것 같지만, 개망초는 사실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 귀화식물이라 한다. 그 시기도 구한말쯤으로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마치 서양문물이 그렇듯 지금은 한반도를 거의 점령하다시피 번성한 풀이다.개망초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망초란 풀이 따로 있다. 망초도 개망초 못지않게 흔한 풀지만 좁쌀처럼 자잘한 꽃이 눈에 잘 띄지 않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보통은 이름에 ‘개’자가 들어가면 급이 좀 낮은 걸로 치지만 개망초꽃은 예외다. 망초나 개망초의 이름에 망(亡)자가 들어간 력에는 귀화해서 한반도 전역에 퍼지기 시작한 시기가 일제의 식민통치 시기와 겹쳐서 나라를 망하게 하는 꽃이란 원망이 담겨있다. 하지만 그 후에 우리나라의 부흥과 함께 왕성한 번식력으로 널리 퍼졌으니 이제는 망초가 아니라 흥초로 불러도 되겠다.개망초꽃은 흔하디흔한 꽃이다. 지천(至賤)이란 말이 그렇듯 흔히들 흔한 것은 천한 것이란 인식을 갖고 있다. 도처에 널려 있으니 귀하게 여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터무니없는 착각이고 오류다. 세상에 가장 흔한 것이 공기지만 없으면 단 5분도 살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삶에 가장 소중한 것이듯, 흔한 것이 값나가지 않는 것은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값으로 따질 수 없기 때문이라는 걸 잊고 있는 것이다.흔하다는 것은 그만큼 생명력이 왕성하다는 의미도 된다. 개망초는 옥토든 박토든 가리지 않고 최소한의 조건만 되면 싹을 틔워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다. 기름진 땅에서는 무성하게 자라고 척박한 땅에서는 왜소하게 자라지만 환경이나 조건을 불평을 하거나 비관하는 기색이 없다. 소박한 꽃이지만 결코 초라하지는 않다. 크고 화려한 꽃들에 비교해서 조금도 기가 죽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당당한 모습이다. 흔해빠진 들꽃이라고 자기비하를 하거나 상대적 박탈감 따위로 우울해하는 건 사람들에게나 있는 일이다. 물론 개망초란 불명예스러운 이름 따위도 전혀 개의치를 않는다.우리나라 사람들 모두 개망초꽃을 닮았으면 좋겠다. 저마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생명의 존엄성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탐욕과 위선과 비겁과 사악함이 없이 진실하고 소탈했으면 좋겠다. 세상에 하나라도 무의미한 사물이 있을까마는,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보는 것들에게서 가장 중요하고 확실한 메시지를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삶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는 공부도 좋고 몸의 건강을 위한 노력도 좋지만 시시각각 전개되는 대자연의 현상에서 삶의 에너지와 지혜를 얻는 일이 무엇보다 기본이라는 생각이다.내일이 일제로부터 해방이 된지 75주년이자 대한민국 정부수립 72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동안 우여곡절과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을 이룩한 것은 분명 온 국민이 자부심을 가지고 자축할 일이다.

2020-08-13

2학기 준비는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정말 난리도 이런 난리는 없다. 말 그대로 현대판 삼재(三災)다. 전염병, 장마, 폭염! 더 이상 또 무엇이 있을까? 자연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인간에게 무서운 경고를 보내고 있다. 제발 인간만을 위한 이기적인 개발을 멈추라고! 하지만 인간들은 그럴 생각이 없다.이번 삼재는 분명 인재(人災)다. 코로나19 사태만 보더라도 바이러스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사람이 더 무섭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바이러스가 사람을 전염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바이러스를 오염시키는 것이다. 사람이 오염시키고, 사람이 퍼트리고, 사람이 아파한다. 내 몸 안에서 바이러스를 다스리는 방법은 없을까? 면역(免疫)이라는 말은 대결이라는 사람의 본능에서 나온 사람 중심 용어이다. 사람의 면역력은 어디까지 사람을 지킬 수 있을까? 그래서 생각한다, 바이러스를 정복할 수 없다면 그들과 선의의 공생(共生)을 하면 어떨지! 물론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사람의 허락이 아닌 바이러스의 허락이 먼저다.우리 생각은 우리 몸이 제일 잘 안다. 이는 우리 몸 안에 있는 바이러스들도 우리 생각을 다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들을 괴멸하려고 하는데 생존 본능이 있는 한 그걸 알고도 그냥 당할 생명체는 없다.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 더 발버둥 치는 것이며, 거기서 돌연변이와 같은 변종이 생긴다. 이미 코로나19 바이러스도 변종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몸을 빌려 사는 자연은 우리와 대결할 생각이 없다. 말 그대로 자연주의는 공생주의다. 자연의 공생주의에 몽니를 부리는 것은 사람이다. 자연은 그것을 다 받아준다. 자연의 공생주의를 착각한 인간들만 더 파괴적으로 변하고 있다. 하지만 자가 치료 능력이 있는 자연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다, 사람과의 진정한 공생을! 사람의 모습을 보면 바이러스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자연이 되지 않는 한 우리는 우리가 자연에 한 것처럼 똑같이 당할 수밖에 없다. 맞서려 하면 할수록 저항은 거세진다. 공생의 방법은 자연이 인간을 인정한 것처럼 우리도 바이러스를 인정하는 것이다.2학기 교육 계획을 세우고 있는 지금 학교에서 과연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를 생각한다. 온라인 개학은 더이상 교과 수업을 학교 안에서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온라인에는 학교보다 훨씬 더 알찬 교과 수업들이 많다. 굳이 학교에서 배우지 않아도 되는데, 학교는 왜 있는 걸까? 이젠 학교의 존재 의미를 단순히 교과 수업에 두는 시대는 끝났다. 빅 데이터 시대에 검색만 하면 누구나 자신이 부족한 과목의 내용을 선택해서 들을 수 있다. 이것은 학교의 기능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학교는 앞으로 어떤 기능을 해야 할까?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지금까지 학교가 보여준 오류를 인정하고, 과감히 고쳐야 한다. 하지만 고집불통 학교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곧 시작할 2학기에 학교에는 새로운 것이 뭐가 있을까? 아이들의 순수한 미래를 학교가 오염시켜서는 안 된다. 그것은 분명 죄다. 그러기 위해 2학기 시작 전에 모든 교사를 대상으로 ‘공생과 인정’을 위한 연수를 할 것을 제안한다.

2020-08-12

물난리가 남긴 것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팔팔 끓듯 더워야 할 팔월이 전국 곳곳의 물난리로 동동거리고 있다. 경기, 강원 북부와 대전, 충청지역에 물 폭탄 같은 수마(水魔)가 걷잡을 수 없는 침수와 산사태를 초래하더니, 주말엔 광주와 전남, 남부지역으로 이동해 사정없이 양동이 물을 쏟아내며 범람의 혀를 날름대고 있다. 봄부터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쓸린 가슴인데, 난데없는 물난리로 또 한번 소용돌이치다니 망연자실할 따름이다. 지리멸렬한 장마와 기습 폭우에 여지없이 많은 손실과 인명피해까지 속출해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니다. 실종된 일상에 변덕의 계절을 지나는 것 같아 착잡하기만 하다.물은 세상 만물에 생기를 주고 성장케 하는 자양분인데, 어떻게 물로 인해 갑작스런 변고가 생기고 막대한 수해를 가져오는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마냥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물이 어떻게 그처럼 돌변할 수가 있을까? 그러나 물도 자연의 한 산물이기에 천변만화하는 자연의 이치나 섭리에 따라 변화하고 몸부림침은 그 나름의 속성이 아닐까 싶다. 다만, 이변의 정도나 빈도의 문제는 처해진 자연의 생태나 기후, 환경 등의 여건에 따라 다소 차이날 수도 있을 테지만….사람들은 예로부터 물의 이로움을 알았었기에 물을 통해 배우고 닮아가며 물처럼 살아가고자 했다. 이를테면 깨끗한 물을 보고 내 마음을 맑게 하고(觀水淸心), 흐르는 물은 앞서려고 다투지도 않으니(流水不爭先), 앞서거니 뒤서거니 더불어 함께 흐르고 순리대로 살아가야 함을 추구했다. 또한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上善若水)고 하여, 만물을 이롭게 하는 물의 성질처럼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고 도와주는 것에 아낌이 없으면서 어떠한 상황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삶의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것을 암시하기도 했다.그러나 세상의 이치나 자연의 섭리가 다 그렇듯이, 정도가 심하고 상태가 지나치면 해악과 폐해를 끼치기 마련이다. 지구촌 곳곳에 나타나는 예측불허의 기상이변도 어쩌면 산업화, 문명화의 과정에서 수반되는 자연환경의 파괴와 오염, 난개발 등이 상당 부분 기인한 것임을 부인하진 못하리라. 인간 또한 과욕을 부리고 탐욕에 사로잡힌 나머지 일신의 오욕과 가정이 파탄지경에 이르게 됨을 숱하게 보아왔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을 알면서도 실천하고 경계하지 못하면 결국 자멸의 빌미만 자초할 뿐이다.그렇기에 우리는 기후나 생태변화 등 자연현상을 좀더 예의주시하고 천재와 인재에 대비한 방재시스템을 철저히 갖춰야 한다. 역사나 과학이 말해주듯이 재난 예방은 하루 아침에 이뤄지기는 어렵다. 지혜와 지식이 더해지고 기술과 경험이 쌓여져 안목과 대응력이 길러진다. 정확한 상황판단과 예측,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예방 점검과 선제적인 사전 조치, 신속하고 탄력적인 대응, 효율적인 복구체계 등 그 모든 것이 톱니바퀴 돌아가듯이 정교하게 호흡과 박자가 맞아야 한다. 특히 오판이나 남용에 의한 인재(人災)만큼은 냉철하게 예단하고 근절시켜야 한다.물을 잘 이용하고 산과 내를 잘 돌봐서(治山治水) 가뭄이나 홍수 따위의 재해를 입지 않도록 예방하는 노력을 꾸준히 해나가야 할 것이다.

2020-08-11

교육적인 벌(罰), 교육적이지 않은 벌(罰)

이수원계명대 교수·유아교육과연예인의 육아 모습을 담은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 연예인이 자녀를 훈육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강아지를 거칠게 다루는 자녀의 행동을 교정하고자 그 연예인은 자녀의 팔을 아프게 때리면서 “이렇게 하면 좋아?”라고 물었다. 아마도 강아지의 입장을 자녀가 체험해 보도록 하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 예능 프로그램은, 즐기기 위해서 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그 장면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역지사지를 가르친다는 측면에서 내용상 좋았으나 방법이 부적절해 보였기 때문이다.시대가 변했고 가치와 삶의 목표가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자녀를 부모에게 귀속된 존재로 여기던 과거와는 달리 많은 부모는 자녀를 독립된 인격체로 여기고 자녀의 의견을 존중한다. 자녀의 팔을 아프게 하며 훈육했던 그 연예인도 평소에는 자녀를 많이 사랑하고 아낀다.당시 훈육도 자녀가 바르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서 했던 훈육일 것이다. 하지만 사랑에도 지식과 기술이 필요한 만큼 본 지면에서 어떤 벌이 교육적이고 교육적이지 않은가를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우선 교육적이지 않은 벌은, 기준이 없고 일관성 없이 시행되는 벌이다. 부모의 기분에 따라 허용되는 행동의 범위가 달라져서 자녀가 부모의 기분을 살펴야 하는 경우이다. 부모와 자녀가 민주적으로 의견을 모아 벌을 결정하고 일관성 있게 시행할 때 그 벌이 교육적이다. 자녀가 스스로 바람직한 행동을 선택하려면 행동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하며, 예측가능하려면 일관성 있는 훈육이 필요하다. 또한 교육적이지 않은 벌은, 신체에 가해지는 벌이다. 체벌의 문제점은, 첫째 자녀가 체벌로 제압되면 폭력이 남을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어 훗날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둘째, 잘못된 행동의 결과로 체벌을 받는다면, 자녀는 대안이 되는 바람직한 행동을 배울 기회가 없다. 셋째, 신체적인 벌은 고통스럽게 때문에 자녀는 이를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부모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잘못된 행동을 계속할 가능성이 생긴다. 자녀가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바람직한 행동을 하려는 동기를 갖도록 돕기 위해서는 부모가 체벌하기 보다는 행동의 결과를 자녀와 함께 평가하고 자녀 스스로 어떤 행동을 할지 결정하도록 대화로 이끌어야 한다.유치원 급식실에서 아이들끼리 부딪혀 한 아이가 울게 되었다. 충돌을 일으킨 아이가 우는 아이에게 “미안해” 하니 우는 아이는 엉엉 울면서도 “괜찮아”라고 말했다. 어린 아이들도 잘못을 수습하기 위해 사과해야 하며, 사과 받은 상황에서 괜찮다고 말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다. 자녀들은 옳고 그른 행동을 알고 있으니 부모가 하나하나 열거할 필요도 없이 무엇을 해야 할지 질문만 해도 그 대화는 충분할 것이다.자녀 양육의 결과는 하루하루 노력과 인내심이 쌓여 얻어지므로 지금 당장 자녀에게서 변화를 볼 수 없더라도 먼 미래에 성숙한 성인이 될 것에 대한 기대를 놓지 말자.

2020-08-10

고객의 마음을 얻는 비결

곽지영​​​​​​​포스텍 산학협력교수·산업경영공학과제품과 서비스는 사용자가 부여해 주는 ‘가치’를 기준으로 볼 때 몇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첫 번째는 ‘Usable’ 유형으로, 일관성, 심미성 등 디자인 원칙에 잘 맞아 편리하다고 평가받는 제품들을 말하며, 흔히 ‘맥가이버칼’이라 불리는 스위스 군용칼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칼은 칼, 톱, 가위 등 여러 기능을 포함하고 있지만, 막상 요리나 집안일을 할 때는 사용하지 않는다. 비상시 요긴하고 기능적으로 완벽하지만, 실사용 환경에 잘 맞춰져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두 번째는 ‘Useful’ 유형으로, 식후 이쑤시개와 같이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상황에 맞게 도움을 주어 유용하다고 평가받는 제품들이다. 이런 제품은 기능적으로 우수할 뿐 아니라, 실제 이용환경에도 특화되어 있어, 사용자가 의도한 목적을 쉽고 빠르고 정확하게 이루도록 돕는다. 그러나 이런 제품에 매겨지는 가치에도 한계가 있다. 이쑤시개는 다 같은 이쑤시개일 뿐 다른 제품 대비 차별화가 느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난 꼭 이 이쑤시개가 아니면 안돼!’라고 말하는 사용자는 없을 테니 말이다.세 번째는 ‘Desirable’ 유형으로,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차별성을 인정받아 독보적인 선두 위치에 올라간 Market Leader들을 말한다. 경쟁자 대비 월등히 좋은 경험을 제공하여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명품의 반열에 올라선 제품들 말이다.자동차, 패션 등이 대표적이며, 고객들은 가격, 기능 등에서 불리한 조건이라도 선호하는 브랜드나 기업의 제품을 선택한다.마지막, 가장 강력한 유형은 ‘Delightful’ 유형으로, 고객을 기쁘게 함으로써 조건 없는 지지와 사랑을 받게 된 제품들이다. 강력한 브랜드 충성도와 팬덤이 형성되고, 종교나 컬트(Cult)에 가까운 숭배와 추종으로 발전되기도 한다. 이런 유형은 모든 기업의 꿈으로, 고객과의 지속적 관계 형성 노력으로만 달성할 수 있다.그렇다면 고객을 기쁘게 하는 제품, 브랜드, 기업의 비결은 무엇일까?Patrick Jordan 교수는 인류학자인 Lionel Tiger 교수의 이론을 토대로, 고객들이 제품을 통해 Physio, Psycho, Socio, Ideo 등 네 가지의 기쁨을 추구하며, 네 가지 기쁨이 균형 잡혀야 좋은 디자인이라 제안한다.Physio Pleasure는 고객을 유혹하는 카페의 원두 향이나 화려한 색과 같은 감각적 기쁨을 뜻한다. Psycho Pleasure는 직관적인 사용법이나 학습을 통해서 얻어지는 인지적 기쁨을 의미하고, Socio Pleasure는 제품을 통한 순위 경쟁이나 커뮤니티 등과 같은 고객 간의 사회적 교류를 말한다.Ideo Pleasure는 친환경과 같은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개념 있는’ 소비를 예로 들 수 있다.연예인도 이제 수려한 외모나 목소리(Physio Pleasure) 뿐 아니라, ‘뇌섹남녀’(Psycho Pleasure)에 ‘인싸’(Socio Pleasure) ‘개념돌’(Ideo Pleasure)이 대세인 것을 생각해 보면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비결이 쉽게 이해되지 않을까.

2020-08-09

참을 수 없는 가벼움

김병래시조시인나이를 먹으니 단순하고 소박한 것에 마음이 간다. 젊은 시절에는 복잡하고 난해한 것에 더 오묘한 진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차츰 바뀌게 되었다. 물질과 현상의 이면에는 물론 아주 복잡한 물리와 화학과 수학적 법칙이 작용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모두 현미경을 들여다보고 살 필요는 없는 것이다. 자명(自明)하게 드러나서 보이는 것만 보고 사는 것이 순리(順理)라는 생각이다.사람의 성격도 소탈한 것이 좋다. 가진 것이 많고 지위가 높아도 거만하지 않고 털털한 성격이면 한층 돋보인다. 쥐꼬리만 한 권세라도 잡으면 ‘갑질’을 일삼고, 아니면 허세라도 부려야 성이 차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그러나 남이 알아주지 않을까봐 초조해하는 소인배들과는 달리 돈이나 학벌이나 지위가 없어도 소박함으로 오히려 넉넉해 보이는 사람이 있다. 행여 소박함을 천박함과 혼동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천양지차로 다른 말이다.소위 ‘운동권’세력들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이 속출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부정적인 의미를 가졌던 내로남불, 적반하장, 후안무치, 오만방자, 표리부동, 이중인격과 같은 말들이 버젓이 용인되고 일반화되는 전례 없는 세상이 되었다. 이른바 ‘대깨문’이라는 무조건적 지지층들에겐 내편이 하는 짓이면 뭐든지 옳고 정당하다는 ‘막가파’식 인식이 팽배해서 윤리나 법치도 안중에 없는 전대미문의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적폐로 몰아붙인 지난 정권에는 적어도 명백한 잘못에 대해서는 부끄러운 척이라도 하는 일말의 양심이나 양식은 없지 않았다. 지금 우리는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가 무엇인지를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파탄지경인 경제에다 법치가 무너지고 안보가 위태로운 것도 심각한 문제지만 그에 못지않은 것이 국민들의 의식이 거칠고 천박해지는 거라는 생각이다. 편을 가르고 진영논리에 빠져 물불을 안 가리다 보면 뒷골목 불량배들이나 다를 게 없어진다. 한 마디로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천박해지고 지리멸렬해지는 걸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외치고 인권과 도덕성을 앞세우던 사람들의 이율배반과 자가당착적 행태에 무턱대고 동조를 하다보면 어느새 도덕적 해이와 불감증에 빠져들게 마련이다.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권력을 잡다보니 갈수록 부실과 비리가 불거지고 위선과 가식의 민낯도 드러나서 총체적 난국의 양상을 보이는 실정이다. 이 정권의 국정운영이란 것이 그런 무능과 비리와 허구성의 노출을 수습하지 못하고 갈 데까지 가보자는 오기로 무조건 밀어붙이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과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사람을 천박하게 하는 사회는 병든 사회다. 정권을 잡은 자들이 독선적인 이념을 관철시키고자 할 때 가장 쉬운 방법의 하나가 우민화정책이라고 한다. 백성들이 어리석고 천박할수록 프로파간다나 포퓰리즘이 잘 먹혀들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말초적이고 경망스러움이 넘쳐나는 시대에 정치권까지 앞장서서 천박함을 조장하는 형국이니 실로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다.

2020-08-06

사람이 ‘죄’입니다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2020년 참 어렵다. 바이러스 폭탄에 이어 물 폭탄까지 자연은 매몰차게 사람을 몰아세우고 있다. 다음은 어떤 폭탄이 인간 사회를 덮칠지 예측하기조차 두렵다. 많은 전문가가 예측하는 다음 폭탄은 세금 폭탄이다. 지금 정부가 하는 일을 보면 그 폭탄의 피해는 상상 초월이다. 그런데 더 큰 걱정은 각종 폭탄에 좌절하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울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양치기 정부와 안하무인 국회는 과거를 잊고 한풀이하듯 자신들의 생각만을 일방적인 법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그리고 지신들이 하는 일은 국민을 위하는 것이라고 떠들어 댄다. 과연 그들이 그토록 말하는 국민은 누구일까? 국민이라는 단어가 부메랑으로 돌아올 날이 머지않았다.국민은 힘들다고, 지금과 같은 힘듦은 여태껏 겪어보지도 못했다고 이구동성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런데 정부와 국회는 괜찮다고만 한다. 물론 국민 중에 이 말을 믿는 사람은 없다. 소통 없이 위압적 지시만 있는 우리 사회는 이미 오래전에 불신 사회로 접어들었다. 우리 사회에서 불신 지수가 가장 높은 곳은 교육과 정치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두 곳은 소통과 신뢰가 제일 필요한 곳이다. 일부 사람들이 학생을 위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교육이 희망이다.”라고 외치고 있지만, 학교 교육이 죽은 이 사회에는 메아리조차 울리지 않는다.지금처럼 전염병이 창궐할 때에 학교 교육은 어떤 모습인가? 분명한 것은 코로나19 이전과 같은 학교 교육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다음은 코로나19 예방과 관련한 교육 방침이다.“(자율활동) 단체 활동 및 행사를 가급적 지양하고 불가피한 경우 참여 인원 최소화 (동아리 활동) 밀폐된 공간 내 활동 자제 (봉사활동) 외부 기간 봉사활동 가급적 지양 (….)”위 내용을 요약하면 모이지 말라는 것이다. 과연 모이지 않고 교육이 가능할까? 온라인 학습 찬양자들은 4차 산업 시대에 모든 수업을 온라인으로 하자고 한다. 그 말을 비판하는 사람은 시대에 뒤떨어진 아날로그 적폐라고 몰아세운다. 그리고 EBS 강의를 털어주거나, 의미도 없는 과제를 낸 다음 벌점으로 엄포를 놓고 개인 일을 한다. 그리고 성과급을 생각한다.8월 초 많은 학교가 학기말 시험 중이다. 지구가 멸망하는 날에도 대한민국 학생들은 시험을 쳐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를 이 나라 교육은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 그리고 시험이란 오로지 입시를 위한 성적 산출용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만천하에 확인해 주고 있다.지구상의 모든 생명체 중에서 유일하게 쓰레기를 만들어 내는 종이 인간이라고 한다. 의미 없는 시험지 또한 쓰레기에 불과하다. 전국의 학교를 놓고 보면 시험으로 발생하는 쓰레기의 양은 어마하다. 그런데 쓰레기는 치우면 되지만, 오로지 입시를 위한 의미 없는 시험으로 황폐해진 학생들의 마음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교육 또한 인간이 하는 일이라 인간적 실수도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 교육은 실수를 넘어 재난의 일종이 되어버렸다. 코로나19, 폭우 사태 등과 함께 학교 교육 역시 분명한 인재(人災)이다. 사람들은 얼마나 더 아파야 죄를 멈출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는 나라와 교육이다.

2020-08-05

시호감(詩好感)

김현욱 시인목적과 목표를 혼동하는 사람이 많다. 목적이 ‘방향’이라면 목표는 ‘방법’이다. 목적이 ‘왜?’, ‘어디로?’라면 목표는 ‘무엇을’, ‘어떻게’이다. 한 학기 한 권 읽기의 목적은 책을 즐겨 읽는 평생 독자를 기르기 위함이다. 평생 독자 양성이라는 목적을 위해 학부모나 교사는 책 읽어주기, 도서관 방문하기, 독서 행사 참여하기 등의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 실천한다. 목적은 가치 지향적이지만, 목표는 구체적이고 세부적이어야 한다.경상북도교육청에서 추진 중인 시울림학교의 목적은 무엇일까? 2020 경북 주요업무계획(1-3-1 바른 성품을 기르는 인성교육)에는 시울림학교의 목적을 따뜻한 인성과 감수성을 기르기 위해서라고 명시되어 있다. 목적 달성을 위해 시를 즐길 수 있는 교육환경을 조성하고 시낭송과 시 포트폴리오 제작, 시 콘서트 개최 등의 구체적인 실행 목표를 세웠다.나는 시울림학교의 참된 목적은 ‘시호감(詩好感)’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이 시에 호감을 갖는 것, 시를 좋아 하는 것, 눈과 귀를 현혹시키는 게임과 동영상의 시대에도, 올곧게 시를 가까이 하며 살아가는 것. 그리하여, “선생님 덕분에 시를 좋아하게 됐어요.”, “시울림학교 덕분에 시에 관심이 생겼어요.”, “좋아하는 시인이 생겼어요.”라는 얘기를 듣는다면, 시울림학교의 목적을 아주 훌륭하게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내가 아는 동료교사의 자녀는 탁구 신동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10살인데 웬만한 어른도 상대한다. 탁구를 처음 시작한 계기는 엄마가 탁구를 좋아해서이다. 엄마 따라 탁구장에 들락날락하다가 라켓을 잡게 됐고, 탁구에 호감이 생겼다고 한다. 탁구를 쳐보니 재미가 있어, 탁구에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했고, 어느 순간, 탁구를 통해 결정적 경험을 하게 됐다. 결정적 경험이란 몰입과 성취의 카타르시스를 뜻한다. 그 후 아이는 탁구장에 살다시피 하며 엄청난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어떤 대상에 호감을 가지려면 무엇보다 자주 접하는 게 중요하다. 시울림학교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아이들과 시를 자주 만나게 하는 것이다. 매일 또는 매주 1교시 여는 수업을 교사의 시 낭송과 아이들의 시합창으로 시작하면 참 좋다. 학교 방송에서도 자주 시를 들려주고, 교장선생님의 훈화도 시 낭송으로 대체하면 큰 박수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선생님은 시를 좋아해!”라는 느낌을 아이들에게 주는 일이다. “우리 선생님은 시 낭송 할 때 참 행복해 보여!”같은 교사의 태도는 아이들에게 큰 감화를 준다.안타깝지만, 현장에 시를 좋아하고 애호하는 선생님은 그리 많지 않다. 불행하게도 시를 토막 내 배운 탓이다. 교과서나 문제집에 나오는 시 말고는 다른 좋은 시를 만나본 적이 없는 탓이다. 시를 만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 낭송이다. 낭독이 의미전달이 중심이라면 낭송은 감정 전달이 중요하다. 낭독이 이성적이라면 낭송은 주관적이다. 낭독을 반복하면 낭송이 된다. 낭송은 시의 재해석이고 나만의 리메이크이다. 낭송과 암송을 굳이 구분할 필요는 없다. 낭송이 깊어지면 저절로 시의 맨살에 가닿게 될 테니까.

2020-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