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의 여름날엔 고무신을 신고 다닐 때가 많았었다. 학교에 가거나 농사일을 돕거나 또래들과 어울려 놀 때면 거의 다 고무신을 신고 나타났다. 지금은 아련해진 신발상표인 말표, 기차표, 왕자표 따위의 검정이나 흰고무신을, 요새처럼 흔한 운동화마저 없었기에 고무신을 질질 끌 수밖에 없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그 당시엔 다들 시골 5일장에서 좋은 옷이나 괜찮은 신발을 장만할 만큼 집안 형편이 넉넉하질 못했기 때문이었다. 먹고 사는 일들이 녹록찮았던 70년대, 대부분 어딜 다니거나 일을 할 때면 최소한의 기본요건(?)만을 갖춘 옷이나 신발이면 그걸로 만족해야 하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절이었다.
고무신을 발에 견주어 신기도 하면서 요긴하게 쓰이기도 했다. 소꿉놀이 할 때면 고무신에 흙을 가득 담아 실어 나르기도 했고, 개울에서 멱을 감다가 붕어나 송사리를 잡아 물을 채워 집으로 갖고 갈 때는 고무신이 딱 좋았다. 또한 심심할 때는 고무신 두 짝을 벗어 짝짝이처럼 마주치게 하여 특유의 소리를 듣기고 했지만, 어떤 때는 고무신이 너무 빨리 닳는 것이 아까워 들길이나 산길, 신작로를 다니면서 신고 있던 고무신 두 짝을 벗어 들고 맨발로 걸어간 적도 흔하게 있었다.
특히나 차가 드물게 지나가며 뽀얀 먼지 일으키던 5번 국도 신작로를 맨발로 걸어갈 때에는 길 가장자리로 밀려나온 모래흙과 자갈을 밟으면서 발바닥의 간지러움 따가움, 간혹 돌부리에 채이기도 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었다. 그처럼 일상생활에서나 논밭에서 김을 매고 들에서 일을 할 때면 으레 고무신을 벗어두고 맨발로 움직일 때가 많았으니, 발바닥을 간지럽히는 어련무던한 자극과 추억이 세월의 저편에서 아직도 꼼지락대고 있음을 느끼곤 한다.
세월이 한참이나 흘러 고무신을 신고 다니는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요즘, 맨발 운동을 하며 건강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흔히들 발은 제2의 심장이라고 하듯이, 심장에서 보낸 혈액이 제일 먼 곳에 있는 발로 갔다가 심장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발의 혈액순환과 발 자체의 관절이나 근육의 기능들이 온전해야 우리 몸의 전체적인 순환과 움직임도 원활해질 것이다. 맨발걷기나 맨발 뛰기로 땅과 바닥의 기운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발 건강을 도모하면 그만큼 심장이 더 건강하고 강해질 것이다.
국민들의 맨발 건강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자체 별로 특색있는 맨발 황토길이나 숲길, 지압 보도, 맨발 마당 등을 조성해 호응이 커지고 있다. 최근 포항지역에서는 맨발 걷기의 선풍이 일어나면서 ‘맨발로(路) 8선’을 선정하고, 코로나19 여파로 외부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민들을 위한 건강 프로젝트로 ‘전국 최초 일일 맨발 10만보 걷기’를 완수하는 등 보행환경 조성과 걷기문화를 확산시켜 상당히 고무적으로 여겨진다.
사람은 땅과 자연에 가까워질 때 병원과 멀어진다고 한다. 오감을 깨우며 삶의 활력을 주는 맨발걷기와 맨발 운동은 발뿐 아니라 온몸을 일깨우기 위한 관심과 노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