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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소리

등록일 2020-09-03 20:12 게재일 2020-09-0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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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래<br /><br />시조시인<br /><br />
김병래시조시인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는 각 계절마다 대표하는 소리가 다르다. 비나 바람 같은 자연현상에서 나는 소리도 있지만 주로 새나 벌레가 내는 소리가 계절에 대한 청각적 이미지를 이룬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봄에는 종달새소리가 나른하고 몽롱한 봄의 정취를 돋우었다. 아지랑이 아롱거리는 봄날, 보리밭 들길을 걸어가면 노고주리라고도 불리는 종달새가 하늘 높이 떠서 영롱한 방울소리를 내었다.

개구리소리 자욱한 초여름 밤의 들판과 뻐꾸기소리 적막한 초여름 낮의 신록도 싱그럽고 그윽한 분위기에 젖게 하고, 한여름이 시작되는 칠월 초순부터는 매미소리가 뒤를 잇는다. 매미소리의 여름은 3악장으로 되어 있다. 1악장의 주선율은 유지매미 소리인데 음정의 높낮이가 없이 찌르르르…. 길게 울린다. 유지매미소리가 좀 단조롭게 들릴 즈음 참매미소리의 2악장이 이어진다. 맴맴맴…. 하고 운다고 매미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바로 이 참매미소리 때문이다. 내 귀에는 미웅미웅미웅…. 으로 들리는데, 몸집은 유지매미보다 작지만 성량은 뒤지지 않는다. 여름이 끝날 무렵은 쓰르라미가 3악장으로 마무리를 한다. 몸집이 가장 작은 쓰르라미는 합주를 하듯 떼로 울어서 마지막 무더위를 쓸어낸다.

처서 지나고 가을 기운이 감돌면 풀벌레소리가 귀에 뜨인다. 진작부터 여름 풀숲에서 여치와 베짱이가 울고 있었지만, 그 소리는 아무래도 높푸른 하늘 아래 벼가 익고 코스모스와 쑥부쟁이가 피는 계절과 더 잘 어울린다. 여치와 베짱이는 다 같이 여치과(科) 곤충이고 종류도 많아서 구별이 쉽지 않은데, 베짱이는 ‘쓰이잇! 쩍! 쓰이잇! 쩍!’ 하고 우는 소리가 베를 짜는 소리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만추의 가을밤에는 귀뚜라미소리가 심금을 울린다. 귀뚜라미는 흔히 사람의 거쳐 가까이서 운다. 옛날 토담집에는 방안까지 들어와 살기도 했다. 사람의 기척이 나면 뚝, 그쳤다가 조용해지면 다시 소리를 낸다. 잠 못 이루는 밤, 불을 끄고 누워 오랫동안 귀뚜라미소리를 들어본 사람은 쓸쓸함이라든가 적막이라는 말의 의미를 잘 알 것이다.

그 밖에도 봄날의 산비둘기소리와 여름밤의 소쩍새소리를 빼놓을 수 없다. 옛날에는 부엉이소리, 뜸부기소리도 한 몫을 했지만 종달새소리와 함께 지금은 거의 사라진 그리운 소리들이다. 텔레비전은 물론 라디오나 자동차도 드물던 시절에는 온종일 들리느니 자연의 소리가 대부분이었다, 초가집 처마의 낙숫물소리, 가을바람에 낙엽 쓸리는 소리, 앙상한 나뭇가지를 스치는 겨울바람소리,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개울물 소리…. 모두가 우리 정서의 바탕이었던 소리들이다.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졌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아름다운 음악소리도 좋지만, 계절에 따라 변하는 신천초목에 어우러지는 자연의 소리들이 더 깊숙이 정서와 감성에 와 닿는다. 대부분의 시간을 인공의 소음에 시달리려야 하는 도시인들일수록 기왕에 도심을 벗어나 나들이를 하는 걸음이면 자연의 경치 속에 깃들어 있는 온갖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면 좋을 것이다. 자연의 미세한 소리까지 놓치지 않는 귀를 가진 사람은 감성과 정서가 늙거나 병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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