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가 입추를 거쳐 처서를 지났다. 이를 두고 사람들의 마음은 보통 “벌써”와 “아직”으로 갈린다. 그래도 예전에는 “벌써”든 “아직”이든 시간 흐름을 판단하고, 표현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사람들은 시간을 잃어버렸다. 잃어버린 건 시간 자체도 있지만, 더 큰 것은 시간에 대한 느낌이다. 계절감이라는 말이 지금은 사치(奢侈)처럼 들리지만, 사람들은 계절감이 있었기에 그나마 팍팍한 세상을 살아냈다. 지금이 더 힘든 이유는 바로 계절이 마스크에 가려져 우리 마음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코로나19에 계절감을 잃은 사람들과는 달리 자연은 사람들이 망쳐 놓은 절기를 지키느라 부단히 애쓰고 있다. 자연의 노력은 소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분명 소리가 바뀌었다. 매미 소리만 가득하던 자연에 귀뚜라미가 소리를 보태기 시작했다. 밤이면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라는 처서(處暑) 관련 속담을 이해할 수 있다.
최근 또 뚜렷하게 바뀐 것이 있다. 그것은 기온이다. 아직 낮에는 햇살이 강하지만, 밤에는 확실히 열의 농도가 달라졌다. 비록 간간이 모기 때문에 잠을 설치지만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라는 관용적 표현을 실감할 정도로 일교차가 크다.
처서에 대해 좀 더 알아보다 계절과 생활은 밀접하다는 생각을 확인하는 속담을 찾았다.
“처서에 비가 오면 십 리 천석을 감하고, 백로에 비가 오면 십 리 백석을 감한다.”
이제 시험에서나 간혹 나올 법한 속담이지만 선조들의 빅데이터 활용 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문장에 저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그런데 언론에서 연일 코로나19 재확산 소식과 함께 전하는 초강력 태풍 바비 소식에 감탄사는 걱정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국난(國難) 상황이다. 지금 시기에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이 교육이면 더 좋을텐데 말이다. 이 나라에 교육에는 다른 것은 다 있다. 엄청난 예산, 국민적 관심, 세상에서 가장 잘난 교사와 교육 관료 등! 그런데 희망은 없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 3단계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크다. 그러면 교실은 또 문을 닫아야 한다. 이미 수도권 등에서는 고3을 제외한 초중고 모든 학생에 대한 원격 수업을 발표하였다. 과연 지금 하는 온라인 수업을 학교 수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의 원격 수업은 진급과 진학, 그리고 시험을 위한 교육 행정 편의 중심의 전시성 정책밖에 안 된다.
그럼 온라인 수업이 과제 중심형 수업으로 굳어진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원인은 온라인 수업 시스템 때문이다. 온라인 수업을 처음 시행한 지난 4월과 비교했을 때 달라진 게 있을까? 없다. 교사들과 학생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쌍방향 온라인 수업 시스템을 개발하자고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정말 요지부동이다. 이럴 거면 정말 학교가 왜 필요하나? 그냥 시험을 위한 문제 은행이나 만들어서 학생들보고 집에서 알아서 공부하라고 하고, 특정일에 학교에 와서 시험만 치라고 하면 되지!
학교 소멸 전에 모두가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온라인 수업 시스템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