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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런 교사는 제발!

이주형산자연중학교 교감“다른 학생에게 방해하지 말고, 그냥 조용히 잠이나 자!”어느 중학교 수업 시간에 교사가 학생에게 한 말이다. 이 말이 나오게 된 교실 상황이 어떨지는 어느 정도 그려진다. 그리고 오죽했으면 교사가 저런 말까지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서 동시에 ‘무너진 교권 속 교사 명퇴자 증가’라는 기사가 오버랩되어 지나간다.최근 교육계 관련 뉴스 중 많이 나오는 내용 중 하나가 바로 교권(敎權) 이야기이다. 공통점은 교권 실추(붕괴, 추락)다. 안타깝게도 그 유형도 모욕, 명예훼손, 교육활동 부당 간섭, 상해, 폭행, 성추행, 성희롱 등 매우 다양하다. 우리 사회에도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이 불변의 진리처럼 통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그래도 살맛 나는 세상이었다.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모습은 교과서에나 나오는 이상적인 내용이 아니었다. 작은 일에도 서로가 감사했으며, 그 감사함은 서로의 가슴에 더 큰 희망으로 자리했다. 희망은 불가능조차 가능으로 바꿔 놓았다. 신명 나는 세상이었다.하지만 지금은? 임금 자리에는 권력형 대통령이, 스승 자리에는 생계형 교사가 자리했다. 그 결과 교육은 정치의 시녀가 되었으며, 우리 사회에는 희망이 사라졌다. 절망만 남은 교육은 출산 거부 운동을 불러일으켰다. 희망이 꺼지는 것에 비례하여 폐교 수도 늘고 있다.나라가 사라질 판인데도 정치인들은 상대 탓만 하고 있다. 낙하산 정치 교육 수장들은 교육을 더욱 정치에 굴복시키고 있지만, 교육 현장에 있는 그 누구도 교육 독립성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대신 성과금과 교육 유공자 표창 이야기에 열을 올리기 바쁘다.지금 우리나라 교사들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분명 그들의 가슴에도 교사라는 사명감이 불타올랐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교사(敎師)! 비록 기간제 교사였지만, 필자는 필자의 이름에 처음으로 교사라는 호칭이 붙을 때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때의 기분은 법명이나 세례명을 받는 것보다 필자에겐 더 성스러웠다. 종교에서 새로운 이름을 받는 것은 지금까지의 잘못된 삶을 버리고 주어진 새 이름대로 새로운 삶을 살라는 뜻이다. 아직 턱없이 부족하지만, 필자도 필자의 스승께서 보여주시고 열어주신 교사다운 교사의 삶을 살기 위해 끝없이 노력 중이다. 한 나라의 미래를 창조하는 것은 교육이다. 그 교육을 책임질 사람은 바로 교사다. 교사가 바로 서야 교육도 바로 선다. 비록 암기 위주의 시험이지만, 교사라는 이름을 받을 사람을 뽑는 시험일이 다가오고 있다. 이번 시험부터라도 제발 교권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아는 사람을 뽑기를 기원한다. 그런 의미에서 잠시 교권에 대한 의미를 인용한다.“넓은 의미의 교권은 (….) 교육권으로서의 교권에는 학생의 학습권, 학부모의 교육권, 교사의 교육권, 학교 설립자의 교육 관리권, 그리고 국가의 교육 감독권이 모두 포함된다.”그리고 “잠이나 자!”라고 말하는 이런 교사는 제발 뽑히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2020-11-11

예술문화의 새로운 모색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 계절, 코로나19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은 어떻게 물들어 갈까? 사회 전반적으로 위축되고 침체된 나날 속에 몸과 마음의 푸른 멍처럼 여전히 침울의 일상을 허우적대고 있는 걸까? 아니면 환경이나 여건변화에 따른 이른바 ‘뉴노멀 시대’를 맞아 적응과 자구책으로 새로운 삶의 방편을 찾고 있다고나 해야 할까? 언제 끝날지도 모를 희대의 감염병에 노이로제처럼 시달리면서도 사람들은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대응과 처세의 슬기를 발휘하는 듯하다.그 중 필자는 문화와 예술에 주목한다. 몸이 힘들고 지쳐가도 마음이 안정되고 평온해지면 평정심을 가질 수 있다. 불안과 조바심의 나날이지만, 정서적인 위안과 순화를 누릴 수 있는 문화생활을 통해 사람들은 적으나마 치유와 위무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수시로 미술관을 찾거나 온라인 전시장엘 접속해 작품 감상과 해설을 들으며 어수선한 현실을 극복하는지도 모른다. 집중과 몰입의 시간 속에서 나름 잊을 건 잊고 살릴 건 살리는 성찰과 정리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그런 의미에서 지난 10월 말에 열린 다섯번째 ‘2020 포항호텔 아트페어’는 비교적 조용한 가운데 치뤄지면서 미약하나마 뉴노멀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으로 보여진다. 포항작가 뿐 아니라 타 지역 유수의 작가들이 참여해 코로나19 상황으로 종전의 호텔 객실을 갤러리로 활용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온·오프라인을 통해 작품과 시민들을 연결했다. 이러한 시도는 예기치 못한 난국을 마냥 피하고 포기하기 보다는 새로운 방법을 찾고 과정을 만들어 나가는 현실적인 대안과 전환점으로 미술계를 지켜 나가려는 신선한 바람으로 여겨진다.정부의 방역 기준에 맞춰 작품들은 직접 보고 참여할 수 있어서 시민들의 전시, 문화향유 욕구에 숨통 같은 작용을 했다고나 할까? 겉모습만 보여주는 거울에 비해 속마음을 비춰주는 그림은 마음을 치유하는 힘이 있다. 미술을 가까이하고 문화예술을 누릴수록 여유로운 마음으로 윤택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예측불가한 미래와 비대면 시대에 직면해서 미술계도 새로운 변화와 지향점을 모색해야 한다고 본다.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미술작품도 IT기술을 접목해 아카이브적인 콘텐츠로 보급시켜 향수층을 늘리고 미술문화를 활성화시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전시장이나 작업실에서 기다리는 작품이 아닌, 새로운 차원의 콘텐츠를 스스로 기획, 생산하여 유투브나 전자게시판, SNS 등으로 전파, 활용하는 생활미술 작품으로 다변화시켜야 한다. 언택트 시대에 온택트(On Tact) 작품을 선보임으로써 시민들에게 손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시류에 편승하지 않는 긍정적인 관점으로 예술작품의 융·복합을 통한 표현양식의 확장, 공동작업의 방향성, 탈모더니즘에 대한 해석의 다양화 등에 주안점을 두고 함께 느끼며 즐길 때 예술문화가 한결 활성화될 것이다. 예술이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때 보다 친근하고 향기로우며 따스한 사랑과 행복의 메시지가 전해질 것이다.

2020-11-10

체벌과 아동학대

이수원계명대 교수·유아교육과최근 부모의 체벌로 아동이 사망에 이르는 사건이 다수 발생하고 있다.아동복지법에 의하면, 아동학대란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이 아동의 건강 또는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정신적·성적 폭력이나 가혹행위를 하는 것과 아동의 보호자가 아동을 유기하거나 방임하는 것을 말한다.보건복지부의 아동학대 주요통계에 의하면, 2019년 아동학대로 판단된 사건 수는 3만45건이다. 학대행위자로는 부모가 2만2천700건(75.6%)으로 가장 많았으며 이 중 친부가 1만2천371건(41.2%), 친모가 9천342건(31.1%), 계부가 557건(1.9%), 계모가 336건(1.1%)으로 나타났다.학대행위자의 연령은 40대가 1만3천186건(43.9%), 30대가 8천88건(26.9%), 50대가 4천630건(15.4%), 20대가 2천505건(8.3%) 순으로 많았다. 통계로 미루어 보건대, 영아기부터 성장기 자녀를 둔 부모에 의한 학대가 아동학대 대부분을 차지함을 알 수 있다.2019년 아동학대로 인해 사망에 이른 사례는 총 43건이며 이 중 영아기부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의 아동이 35명으로 절반 이상이다. 인간은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지능을 갖고 있으며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출생 직후에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양육자의 보살핌이 절대적일 수 밖에 없다. 성장기 동안 양육자로부터 분리된 자아의식이 생기고 독립에 대한 요구가 있더라도 여전히 양육자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데,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할 때 학대가 발생하는 것이다. 인권 의식의 부재, 훈육 방법에 대한 지식과 기술의 부재, 아동학대의 세대 간 되물림 등 아동학대의 원인을 다양하게 찾을 수 있겠으나 근본적으로 자녀가 부모의 소유물이라는 의식을 개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민법 915조에는 친권자가 자녀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는 규정이 있고 지금까지 대법원에서도 친권자의 징계권을 인정해 왔다. 하지만 훈육을 이유로 아동학대를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친권자의 징계권은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친권자의 징계권을 민법에서 삭제하는 개정안이 지난달 13일 국무회의를 통과했으며 조만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것이다.경북도는 올해 포항과 경주, 구미 등 7개 시군에 아동학대 전담공무원 18명을 우선 배치하고 내년에는 전 시군으로 확대할 방침이라고 한다.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체벌을 경험하며 성장한 세대는 체벌 없이도 자녀훈육이 가능할지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다. 그 의구심에 답하자면, “가능하다”이다(필자의 이전 칼럼 참조).힘에 대한 복종을 가르치는 체벌은 자녀가 책임감 있는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데에 도움 되지 않는다. 학대의 범위는 시대나 문화마다 다양할 수 있지만 아동은 성인의 보살핌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약자라는 관점에서 학대의 범위를 보다 넓게 바라보고 이 문제에 민감할 필요가 있다. 성인이 아동에게 하는 언행이 적절한가는 역지사지해보면 쉽게 답을 얻을 수 있다.

2020-11-09

너는 특별하단다

김현욱 시인맥스 루케이도의 그림책 ‘너는 특별하단다’(고슴도치, 2002)를 딸에게 읽어주면서 신영복 선생의 ‘독버섯 이야기’가 떠올랐다.등산을 하던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다. 산길을 오르던 아버지는 버섯을 발견하고는 아들에게 말했다. “잘 봐. 이게 독버섯이야. 먹으면 큰 일 난다.” 아들이 그 얘기를 듣고, “아, 이게 독버섯이구나!”하고 지나갔다. 그 말을 듣고 버섯은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독버섯이구나. 누군가를 해치는 존재였구나!’ 버섯이 슬퍼할 때 옆에 있던 버섯이 친구를 다독이며 말했다. “아니야. 저건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그런 거야. 넌 내게 좋은 친구야. 너는 사람들이 먹으라고 태어난 게 아니고 나와 친구가 되려고 태어난 거야.” 슬퍼하던 버섯은 기운을 차렸다. ‘그래, 나는 독버섯이 아니야. 그냥 있는 그대로 나일뿐이야.’그림책 ‘너는 특별하단다’에는 엘리 아저씨(목수)가 만든 웸믹이라는 나무 인형들이 나온다. 웸믹들은 언제부턴가 황금빛 별표와 잿빛 점표를 들고 다니며 만나는 웸믹들에게 별표나 점표를 붙이기 시작한다. 별표를 더 많이 받기 위해 웸믹들은 끊임없이 경쟁하고 점표를 받지 않으려고 몸부림친다. 주인공 펀치넬로는 잿빛 점표 투성이다. 점표는 점표를 부르고 별표는 별표를 부른다. 그런데, 루시는 별표에도 점표에도 관심이 없다. 누가 딱지를 붙여도 루시의 몸에서는 금방 떨어진다. 루시가 그것에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용기는 어디서 얻었을까? 루시는 펀치넬로에게 엘리 아저씨를 찾아가보라고 한다. 펀치넬로는 용기를 내어 엘리 아저씨를 만나고 별표와 점표의 비밀을 듣게 된다.동화 ‘못난이 옹기’에 나오는 꽃무늬 옹기는 통가마에서 불을 기다리며 특별한 옹기를 꿈꾼다. 하지만 꽃무늬 옹기는 그만 그릇벽이 무너지고 만다. 옹기장 할아버지의 입장에서 꽃무늬 옹기는 쓸모 없는 못난이 옹기가 된 것이다. 못 쓰게 된 옹기는 가마터 뒤편 대숲에 버려진다. 사람의 입장에서 못 쓰게 된 옹기지만 수많은 작은 생명이 어울려 사는 대숲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못난이 옹기가 아니라 꼭 필요한 옹기가 될 수도 있다.주둥이가 떨어져버린 약탕관은 작은 제비꽃을 기르며 행복을 느끼고 있다.행복은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보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다. 남들이 붙이는 딱지를 붙어 있게 하는 건 사실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면 마음에 남아 있게 된다. 주류에 속하고 싶어 나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고 싶은 충동을 ‘커버링’이라고 한다. 주류에 편입되기 위한 ‘커버링’은 진정한 나 자신이 되는 것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그림책의 서문에 ‘너는 단지 너라는 이유만으로 특별하단다’라는 글이 있다. 너는 너인 채로, 나는 나인 채로, 우리 모두는, 있는 그대로,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이다. 꾸미거나 바꾸거나 덧칠할 필요 없이, 본래, 우리는 충만하고 온전하다.

2020-11-08

자유에 대하여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추수가 끝난 들판은 한가롭다. 사람들의 용도를 벗어나 차분한 휴식에 들어간 모습이다. 빈 들길을 걷는 발걸음은 자유롭다. 마주치는 사람도 없고 피하거나 둘러가야 할 방해물도 없는 들길의 자유가 참 정갈하고 소중하다. 사람에게 의식주(衣食住) 다음으로 중요한 게 무어냐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부와 권세와 명예 같은 세속적인 명리를 꼽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신앙이나 사랑, 예술 같은 본질적이고 심미적인 것을 꼽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무엇이든 자유가 없고서야 어찌 제 구실을 하겠는가.‘남에게 구속을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함’이 자유에 대한 사전적 풀이다. 말은 쉽지만 그런 자유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자연환경이나 사회적 조건 등 외적인 제약이 많은 데다 남의 자유와 상충이 되기 일쑤 때문이다. 자유란 말에는 피가 묻어 있다거나, 인류의 역사란 자유의 신장(伸張)을 위한 투쟁의 역사란 말이 있을 정도로 그저 주어지지는 않는 것이 자유다. 자유에는 법률로 규정한 언론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종교의 자유, 재산 처분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거주지선택의 자유 같은 개인의 사회적 권리로서의 자유도 있지만 영혼의 구원이나 해탈과 같은 궁극적인 자유도 있다.고대로부터 자유의 개념이 없었던 건 아니나 개인의 당연한 권리로 실현된 것은 종교개혁과 시민혁명이 성공한 다음부터였다. 오랜 세월 서양의 종교를 독점해온 가톨릭 교단에 반대하여 일어난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백년이 넘은 종교전쟁 끝에야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종교개혁으로 가톨릭의 종교독재를 무너뜨리고 신앙의 자유를 획득한 부르주아들은 네덜란드와 영국에 이어 미국과 프랑스가 시민혁명에 성공하여 전제군주제와 신분차별제도의 구체제를 무너뜨리고 의회민주주의를 이룩하였다.21세기에 들어선 지금은 많은 나라들이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국민 각자의 자유와 권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을 국가성립의 바탕으로 삼는다는 의미다. 분단된 반쪽이긴 하지만 우리나라도 헌법에 명시된 민주공화국이다. 일제의 지배를 벗어나서 대한민국을 수립하면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한 것이다. 하지만 전혀 경험이 없고 준비가 안 된 상태인데다 워낙에 열악하고 피폐한 경제사정으로 시행착오가 많았다. 그런데도 불과 70여 년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하여 오늘에 이른 것은 실로 세계가 놀랄만한 성과였다.경제적 기반이 없는 자유와 민주는 허상이다. 인권의 최우선 과제는 굶지 않는 것이다. 아프리카 빈국들을 보라. 기아로 죽어 가는데 민주가 어디 있고 인권이 다 뭔가. 대한민국은 지금 소위 민주화세력들이 정권을 잡고 있다. 민주주의가 이만큼 신장하기까지 그들의 공로가 적지 않았다는 걸 인정해야겠지만, 산업화를 이룩한 공로는 그 이상이라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민주화든 산업화든 그 과정에는 다 공과가 있을진대, 저들의 공만 내세우고 반대편은 모조리 적폐로 모는 정권에 나라를 맡겨서는 장래가 없다.

2020-11-05

교사 취업 시험과 어느 교사의 기도

이주형산자연중학교 교감교사 임용 시즌이다. 이미 공사립 학교 교사 임용후보자 선정 경쟁시험 접수가 마감됐다. 과목별 편차가 있지만, 경북 공립의 경우 역사 과목이 16.13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걸 보면 교사를 하고 싶은 사람이 아직도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여기서 사람들은 왜 교사를 하고 싶어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정말 왜 교사를 하고 싶은 것일까?필자도 교원임용시험을 준비한 적이 있다. 그때 외운 내용 중에 지금도 기억하는 것은 ‘성직, 전문직, 노동직’이라는 교직관이다. 특히 ‘성직관’을 공부하면서 가슴에 피가 끓던 때가 기억난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교직관이 있기나 할까?시대가 변했으니 교직관도 변했지만, 필자가 보기에 지금은 교직관 같은 것은 없어 보인다. 대신 오로지 직업관만 있을 뿐이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교사도 이젠 생계형 근로자다. 교사 임용 시험도 여타 취업 시험과 다르지 않다. 앞으로는 시험 명칭도 “교사 취업 시험”이라고 바꾸어야 할 것이다. 취업자의 첫 번째 목적은 임금이다. 물론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노동을 했으면, 그만큼의 대가를 받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다. 그 대가가 때론 사람을 춤추게 하는 동기가 되기도 한다.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한때 교사에게는 임금보다 더 큰 가치가 있었다.‘교육백년대계(敎育百年大計)’는 그 가치를 입증하는 절대 논거였다. 교육은 곧 그 나라의 미래였다. 그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교육이었고, 교사는 교육의 중심에 있었다. 필자의 은사님이 그러했듯이 그때 교사에게는 사명감이 있었다. 그 사명감 안에는 제자를 위한 무한 사랑과 희생, 그리고 헌신이 있었다. 그 헌신에 사회는 존경으로 답하였다.교사의 헌신은 교육 기적을 낳았다. 그 기적으로 지금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산다. 하지만 지금은? 다음은 어느 젊은 교사와의 대화에서 나온 말이다. “요즘 교사들에게 희생과 헌신을 요구했다가는 아마 신고당할 겁니다.” 교육 현장에서 사명감이 사라진 것은 분명하다.“교육의 질은 교사의 수준을 뛰어넘을 수 없다”라는 말을 잘 알 것이다. 여기서 교사의 수준이란 교사 중심 주입식 교육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의 인성을 포함 교사의 자질 등을 말한다. 교사에 맞는 자질이 결코 따라 있을 수는 없다. 그래도 최소한 성장기에 있는 학생들 앞에 서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필자는 언행불일치의 파렴치범이 되지 않기 위해 다음과 같이 필자에게 약속하였다.“저의 얇은 과거 안에/학생들의 원대한 미래를/가두지 않게 하소서….(중략) 제가 하는 말이/절대라고 생각하는 오만함에/사로잡히지 않게 하소서…. 제가 앞장서서 할 수 없는 일을/학생들에게 강요하는/뻔뻔함의 죄를 짓지 않게 하소서(….)” (졸시 ‘교사의 기도 1’)교사 취업 시험 응시생에게 묻는다. 당신은 왜, 그리고 어떤 교사가 되고자 하는가!

2020-11-04

3AS 포항 공공미술 프로젝트

최미경동화작가지난 7월 8일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총 848억원 규모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밝힌 이후 공공미술프로젝트에 대한 지자체와 미술계, 그리고 일반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문화예술 분야의 지원 중 단일규모로는 최대 수준이기 때문이다.전국 228개 지자체에 총 948억원이 나누어질 예정이기에 각 지자체별로 4억원 정도가 배분된다.이번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코로나19로 침체된 미술계 작가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 및 지역 공간문화 개선 등을 목표로 지자체별로 최소 18명에서 최대 38명까지의 작가들이 참여하며 예술작품 설치, 문화공간 조성, 도시재생, 미디어·온라인 전시, 주민 참여 프로그램 등 다양한 유형으로 진행되고 지역의 여건에 맞게 탄력적으로 운영할 예정이라고 문체부에서는 밝혔다.하지만, 이같이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공공미술 사업에 대한 실효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많다.먼저 짧은 공모기간과 급한 진행이 첫 번째의 문제점으로 드러났다. 사업 공공기간이 짧게는 일주일부터 길게는 이주일, 접수 기간 또한 짧게는 하루 뿐인 곳도 있고 긴 곳은 15일 정도이다. 그래서 공공미술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연구기획기간이 짧기에 조악한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더불어 실행 주체인 문화재단이나 담당공무원들의 이해 부족, 전문성 부족, 지자체별 차별성 부족, 유사 선생사업 모방 등의 우려도 드러났다. 그렇다보니 ‘과거 정권에서 실패한 정책의 우려먹기일 뿐’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또한 작가들의 공평한 참여가 배제된 채 협회와 단체들이 독점하는 양태에 대한 문제점도 드러났다.포항에서도 지난 9월 ‘2020 공공미술프로젝트-우리동네’사업 3AS 포항 공공미술 프로젝트라는 명칭으로 포항문화재단에 공고가 났다. 총 6개의 작가팀이 공모했고 먼저 그 중 1팀이 선정되었고 이후 포항문화재단은 10월 재공모를 거쳤다. 재공모에 선정된 팀은 1차 공모에서 떨어졌던 작가팀의 팀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자신들이 기획했던 프로젝트를 공유하며 수정-보완-반성해서 다시 하나로 만든 팀이었다. 팀원들의 성향과 활동영역은 달랐지만 그들이 하나로 모일 수 있었던 이유는 지역의 작가가 지역의 공간을 지역주민들을 위해 만들어보자는 마음이 하나로 모였기 때문이었다.선정된 2팀 모두 아직 컨설팅 단계와 작품의 창작, 설치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하지만 두 팀 모두 제대로 된 과정을 통해 공공미술이 단지 공공 공간에 미적 가치가 있는 오브제를 들여다 놓는 것만은 아니라는 인식을 가지고 그 장소가 가진 기억과 지역민의 의식을 담아 감성과 가치가 담긴 오브제를 만들 길 기대해 본다.또한 시간에 쫓게 지역의 특성과 여건, 주민을 고려하지 않고 프로젝트 결과물에만 집착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길 바란다.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좋은 취지와 목적으로 시작된 만큼 3AS 포항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대한 포항 시민 모두의 관심이 필요하다.

2020-11-02

詩가 흐르는 뜨락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스치는 바람 결에 풍경소리 맑고 풍금소리 정겹게 들리는 풍경이다. 바람소리 새소리가 간간이 울리는 서옥(書屋)의 뒤뜰에서 잔잔한 배경음을 바탕으로 시 낭송하는 소리와 문학 얘기를 나누며 공감하고 담소하는 시간이 흐르고 있다. 가을이 깊어가는 도심의 한 켠에서 시와 시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둘러앉아 시를 읽고 시 이야기를 나누는 이른바 ‘시가 흐르는 뜨락(詩뜨락)’의 행사 장면이다.‘도심 속 작은 쉼터 아늑한 정원에는/이따금 풀꽃의 속삭임이 들려오고/새들의 지저귐 같은 낭랑함이 퍼진다//시(詩)의 행간에 목소리가 스며들어/그림을 그리듯 날개를 달아주니/비로소 시의 꿈이 피고 맵시마저 곱구나//별빛처럼 타는 운율 영롱함을 더하고/도란도란 엮는 시담(詩談) 달빛에 젖어 드네/뭉클한 감미로움이 새록새록 아리네//꿈결같은 시가 흐르는 뜨락에는/바람의 몸짓으로 시흥(詩興)이 어우러져/새로운 문화의 요람 향기 짙게 울리네’ -拙시조 ‘ 시(詩)가 흐르는 뜨락’ 전문.‘詩뜨락’ 행사는 일종의 시낭송 콘서트다. 경향의 저명한 시인이나 문인을 우거에 초빙해서 시낭송가들의 낭랑한 음성으로 음악을 곁들여 시를 낭송하고 시인의 시작(詩作) 배경과 삶에 대한 얘기를 듣고 나누는 시 누림이다. 즉, 저자와 독자가 같은 공간에서 가까이 만나 소통하고 문학적으로 교감하는 시 나눔 마당이다. 이러한 행사는 포항시낭송협회와 필자가 공동으로 작년부터 열기 시작하여 지난 주말에 네 번째로 열리면서 세간에 회자되어 시 감상과 시 낭송 콘서트의 대중성을 지향하는 새로운 문화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다.한 편의 시에는 소설같은 스토리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시에는 응축된 시간과 함축된 생각, 농축된 경험과 절절한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는 가장 짧은 문장으로 가장 긴 울림을 준다고 했던가. 때로는 연분홍 편지 같고 아스라한 절해고도 같으며 한편으론 뇌성벽력처럼 일갈하는 시를 진지하게 또는 애절하게 낭송하는 것은 시의 행간에 날개를 달아주는 일이 아닐까? 아니 어쩌면 활자화된 시에 어울리는 멋진 옷을 입혀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인에게서 떠난 시는 독자의 몫이라지만, 시에 걸맞는 음색으로 옷을 입혀서 행과 연의 율격에 따라 목소리의 강약과 완급을 조절하며 표정과 몸짓으로 다시 우려냄은 시를 애틋하고 살갑게 가슴에 품는 일이다.표현하는 사랑이 아름답듯이 시낭송은 또 다른 색조의 감동을 전해준다. 저마다의 목소리와 특유의 표정, 몸짓으로 연출해내는 시낭송은, 시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가슴을 열게 하여 손으로 만져질 것만 같은 느낌과 운치를 더해준다. 시의 행간에 목소리가 스며들어 고운 음색과 조화로운 음률로 시를 단풍처럼 물들게 하는 것이다.시의 날(11월 1일)이 있는 계절에 별빛처럼 시가 흐르고 꿈결처럼 시 얘기가 피어나는 뜨락에서 시의 맛과 멋을 음미하며 교감하고 담소하는 아름답고 귀한 자리가 많아지고 계속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이러한 시 울림은 코로나19로 인해 소침해져가는 마음을 위무하고 활기를 더해주는 감성의 활력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2020-11-01

들국화 가을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코스모스가 지고나면 들국화가 제철을 맞는다. 여름의 열기가 덜 가신 초가을에 어울리는 꽃이 코스모스라면 들국화는 그보다 더 깊어진 가을에 어울리는 꽃이다. 그런데 들국화란 이름은 흔히 쓰이지만 막상 식물도감에는 나오지 않는다. 가을의 산과 들에 자생하는 쑥부쟁이나 구절초, 산국 같은 국화과 꽃들을 총칭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산야에 자생하는 꽃들을 통틀어 야생화라 하는 것처럼.“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絶交)다!” 안도현 시인의 ‘무식한 놈’이란 시 전문이다. 명색이 시인이면서 그것도 몰랐던 자신을 자책하는 시이다. 사실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지 않고서는 구별이 잘 안 되게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바쁜 세상에 그따위 풀꽃이나 구별한다고 무슨 득이 되겠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시인이 아니라도 그 정도는 아는 것이 교양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세상의 어떤 지식보다도 종요로운 것이 자연에 대한 지식이다. 인류의 문명은 물론 생명까지도 자연에서 비롯된 것일진대, 자연을 모르는 사람은 그야말로 ‘무식한 놈’인 것이다. 하루 세 끼 제 입으로 들어가 목숨을 연장하는 음식의 출처도 모르면서 다른 무슨 대단한 걸 안다고 잘난 체 할 것인가. 그런즉 이 가을에는 들국화에 대한 공부라도 제대로 해서 무식을 면해 보시기 바란다.들국화를 대표하는 꽃으로는 아무래도 쑥부쟁이를 꼽아야 할 것이다, 가을 들녘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기 때문이다. 개화기간도 길어서 초가을부터 늦가을까지 줄곧 피고진다. 비슷하게 생긴 벌개미취나 구절초가 있지만 쑥부쟁이만큼 흔하지는 않다. 그 중에서 쑥부쟁이와 벌개미취는 연한 자주색 꽃만으로는 거의 구별이 되지 않는다. 쑥부쟁이보다 잎이 훨씬 크고 줄기가 튼튼한 것이 벌개미취인데 요즘은 원예용으로 개량해서 화단에 심기도 한다. 구절초는 쑥부쟁이에 비해 흔치가 않은데다 주로 산자락에 핀다. 꽃잎은 희거나 엷은 분홍색인데 쑥부쟁이보다 넓다. 줄기도 곧고 단순한 편이어서 관심과 눈썰미가 있는 사람은 금방 알 수가 있다.가을 야생화로는 산국을 빼놓을 수 없다. 쑥부쟁이만큼이나 흔하지만 꽃이 노랗고 자잘하기 때문에 혼동할 여지는 없다. 들과 산의 경계쯤에 흔하게 피는 꽃인데 향기가 진해서 국화차로도 많이 쓰인다. 요즘은 산국과 꽃의 크기와 모양이 비슷하지만 색깔이 하얀 미국쑥부쟁이가 무서운 속도로 들녘을 잠식하고 있어 생태계 교란을 우려할 정도다. 북미 원산으로 한국전쟁 기간 동안에 미군 군수물자에 섞여 들어온 신귀화식물이라는데, 가을의 정취마저 바꾸어 놓을 것 같은 서슬이 자연스럽게 다가오지는 않는다.산에 들에 들국화가 피어서 이 가을날이 얼마나 향기롭고 정겨운가. 이렇게 고운 꽃들로 장식한 세상에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다행한 일인가. 누가 뭐라 하는가. 우리 모두는 자연이 정성껏 차려놓은 연회장에 초대받은 손님들이다.

2020-10-29

포스트 자유학년제 준비를!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아빠,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가! 학교에서는 1분이 1시간보다 더 길던데 ….!”월요일 아침 일찍 깨워달라고 한 중학교 1학년 아이가 일어나면서 한 첫마디다! 알람 소리를 사이렌 소리로 할 정도로 등교에 대한 의지가 강한 아이지만, 잠에는 장사가 없었다. 그래도 잠시 뒤척이더니 벌떡 일어나서 2주 만의 등교 준비를 하였다.출근 준비를 하다 달력을 보았다. 한 주밖에 남지 않은 10월이 필자를 처연하게 보고 있었다. 달력에서 제일 먼저 마음에 들어온 것은 “상강(霜降)”이었다. 출근길에 상강을 생각했다.상강은 가을의 마지막 절기이다.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덤빈다.”라는 속담처럼 차창 너머 들판에는 가을걷이가 한창이었다. 멀리서도 농부의 콧노래가 들리는 것 같아 손장단을 쳤다. 내년을 위해 숨 고르기에 들어간 추수를 끝낸 들판을 지날 때는 손이 더 경쾌하게 움직였다. 자연과 함께 하는 출근길은 늘 즐겁다. 끝은 시작이라는 명제가 참이라는 것을 행동으로 증명하는 자연이 필자에게 화두를 던졌다. 핵심은 “준비”였다.“아빠, 내년부터 시험 보는 것 때문에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정말 많아.”코로나 19 때문에 모두가 힘들지만, 가장 큰 혼돈을 겪는, 또 겪을 층은 현 중학교 1학년이다. 중학교 1학년은 자유학년제에 해당하는 학년이다. 하지만 등교일 자체가 얼마 되지 않기에 중학교 1학년들은 자유학년제 프로그램은커녕 중학교 생활 자체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 경험 부족은 당연히 이해 부족으로 이어질 것이고, 이해 부족은 부적응을 낳을 것이 뻔하다.자유학년제를 지낸 학생들은 자유학년제 전후 학교생활은 전혀 다르다고 말한다. 자유학년제는 취지만 보면 교육계의 문명(文明)과도 같은 제도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자유학년제 해당 학년은 문명 이후의 삶이라면, 자유학년제가 끝난 학년의 삶은 문명 이전의 혼돈의 삶이다.교육 수요자는 자유학년제 때문에 힘들다고 하는데, 교육 당국은 연계학기(년)제라는 말도 안 되는 제도를 예로 들면서 괜찮다고만 한다. 과연 학교 현장에서 자유학년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시행할 수 있는 교사가 몇이나 될까? 필자는 오래전부터 서열경쟁 중심의 교육과정 속에서는 자유학년제는 절대 불가능한 제도라고 계속해서 외치고 있지만, 씨알도 안 먹힌다.그래도 또 제안한다. 자유학년제를 지속하려면 학생들이 자유학년제 이후의 중학교 생활을 준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자고! 학생들이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가장 어려워하는 것은 바로 학교 정규 시험이다. 그러니 중학교 1학년 11월부터는 자유학년제의 이상을 거둬내고 학생들이 대한민국 학교 현실에 적응할 수 있도록 1학년 정규 시험 기간을 두자. 이런 준비도 없이 그냥 학생들을 중학교 2학년으로 진급시키는 것은 무책임을 넘어 범법 행위이다.사교육 현장에서는 “수학은 대학을 결정하고, 영어는 직업을 결정한다.”라고 학생들을 세뇌하고 있다. 이 말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초등학교 8학년인 내년 중학교 2학년이 걱정이다.

2020-10-28

일·가정 양립하는 길로!

박은미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정책실장일·가정 양립지원정책은 남녀 근로자가 경제활동에 참가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직장 그리고 가정생활의 충돌을 완화하고자 도입된 정책이다. 근로자의 임신, 출산, 자녀 양육기의 모성보호와 경력단절을 방지해 경제활동을 촉진하고 자녀 양육기의 가족생활을 보장하는데 정책의 초점을 두고 있다. 출산전후휴가제도, 육아휴직제도, 근로시간 유연화 관련 제도, 돌봄 정책을 포괄한다. 일·가정 양립지원정책은 2000년대 초반 양성평등, 2000년대 중반 저출산 현상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본격적으로 발전 단계에 접어든다. 제도의 기본 틀은 1953년 근로기준법과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에 반영되어 있었다. 출산전후휴가는 1953년 근로기준법에 유급제로 도입됐고, 육아휴직제도는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에 무급제로 도입됐고, 역시 2001년에 정액 20만원의 고용보험 급여가 신설됐다. 이로 인해 육아휴직제도와 출산전후휴가제도 활용은 증가했다.현재 일·가정 양립지원제도는 크게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으로 대변되는 부모휴가제도와 유연근무제로 구분할 수 있다. 부모휴가제도는 출산(전후)휴가제도, 육아휴직제도, 배우자출산휴가제도, 가족돌봄휴직제도 등이 있는데, 그 영향력과 제도적 개선 가능성을 육아휴직제도를 중심으로 검토되어 왔다. 일·가정양립지원을 위한 다양한 휴가·휴직제도 중 육아휴직이 제도적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것은 그 보편성과 중요성은 물론, 출산휴가와 달리 근로자의 선택에 의하여 제도 활용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한편 최근에는 육아휴직으로 인한 근로관계 단절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유연근무제 활용성이 증가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가정 양립을 위한 유연근무제는 사업장 단위에서 제도 도입과 운영에 있어서 많은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는 여지가 높다. 유연근무제를 규율하는 법률은 크게 ‘근로기준법’과 ‘가족친화 사회환경의 조성 촉진에 관한 법률’이 있다. 이를 기반으로 해 여성경제활동 활성화와 직장맘의 안정적인 고용유지, 경력단절 예방, 나아가 행복한 일과 가정의 균형 있는 삶을 위해서는 불평등하고 열악한 고용구조 개선과, 가사와 양육의 남녀 공동부담, 사회적 책임강화, 일생활 균형의 중요성을 사회적으로 인식하는 종합적 접근이 모색되어야 한다. 공공기관, 기업, 가정 등 사회전반에 걸쳐 일·생활균형이라는 워라밸의 실천을 위한 인식과 실천 아젠다들이 발굴되는 분위기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다양한 근무방식, 장시간 노동을 감축하거나 휴가 사용을 촉진하는 등 제도 도입 및 실천은 기업의 근무방식 개혁을 적극적으로 시도한다. 직장에 국한되지 않고, 자택과 오피스에서도 업무를 볼 수 있는 생산성이 높은 업무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코로나19를 겪으면서 새로운 사회적 변화에 대응하는 신패러다임이 필요하며, 무엇보다도 일·가정양립지원의 활성화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때문에 일·가정양립형 지원 정책의 적극적 활용 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에 걸쳐 일과 삶에 관한 인식 개선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2020-10-26

책 읽어 주기의 힘

김현욱 시인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뇌가 독서를 배우는 방법을 ‘고생스럽게 추가, 조립해야 하는 액세서리’라고 말했다. 소리에 관한 한 아이들의 선(線)운 이미 연결되어있지만, 문자는 고생스럽게 추가, 조립해야 하는 액세서리라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말은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지만 글은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지 않다. 애초에 뇌는 독서를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이다. 책을 읽는 행동은 인간에게 매우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E. B 휴이는 “독서라는 과정은 문자를 단순히 시각적으로 읽는 행위만이 아니다. 독서는 인간의 행위 중에서도 가장 복잡다단한 활동 중의 하나.”라고 거들었고, 멀린 위트록은 “우리는 하나의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 단어의 사전적 의미로 읽는 데만 그치지 않고 그 텍스트를 위해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낸다. 텍스트를 읽으면서 자신의 지식, 경험에 얽힌 기억 글로 쓰인 문장, 절과 단락 사이의 관계를 구축해 가면서 의미를 만들어 낸다. 이처럼 독서는 뇌의 다양한 정보원 특히 시각과 청각 언어와 개념 영역을 기억의 감정 부분들과 연결하고 통합하는 매우 복잡한 과정이다. 그런데 이런 통합을 위해서는 뇌의 각 영역이 최소한의 성숙도를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그렇다면, ‘최소한의 성숙도’를 확보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책 읽어주기다. 1979년 ‘하루 15분, 책 읽어 주기의 힘’을 출간한 짐 트렐리즈에게는 어린 시절 책을 읽어 준 아버지가 있었다. 그때의 느낌과 추억을 아련하게 간직하고 있던 그는 마찬가지로 아버지처럼 자녀에게 매일 밤 책을 읽어 주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많은 아이가 책 읽기를 즐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이유가 부모와 교사에게 있음을 깨달은 트렐리즈는 자비로 이 책을 냈다. 그 후 트렐리즈의 책은 스테디셀러에 올랐고, 전 세계의 교실 풍경까지 바꿔 놓았다. 특히, 일본에서는 지금도 2만여 개가 넘는 학교가 매일 아침을 책 읽기로 시작하고 있다.많은 부모가 자녀교육에 대해 노심초사하지만 어릴 때부터 침대 머리맡에서 책을 읽어주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사실, 읽기는 모든 학습의 기초요 주춧돌이다. 책 읽기와 학업 성취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수많은 통계가 그것을 뒷받침한다. 읽기가 교육의 중심이고, 읽기가 최우선이다. 읽지 못하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아이의 읽기 능력을 키워줄 수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어릴 때부터 소리 내어 책을 꾸준히 읽어 주는 것이다. 트렐리즈는 요람에서 10대 중반까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핀란드 아이들은 여덟 살이 되어 글을 배우지만 읽기 능력과 학업성취도는 세계 최고이다. 왜 그럴까? 무엇보다 핀란드의 많은 가정은 책을 읽는 분위기이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을 매우 강조한다.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학교에서 실천하고 있는 교사들의 역할도 막중하다. 좋은 책을 골라 아이들에게 열심히 읽어주자. 좋은 책과 책 읽어주는 당신의 목소리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게 해줄 것이다.

2020-10-25

인지부조화(認知不調和)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1950년대 초 미국 미시간 주의 한 유사종교 교주가 신의 계시라면서 이런 예언을 했다. “12월 21일 대서양 바닥이 융기해 해안선이 모두 물에 잠길 것이다. 프랑스는 가라앉을 것이며, 러시아는 거대한 바다가 될 것이다. 로키산맥 위로는 엄청난 물살이 밀어닥치리라. 이 모든 것은 세상을 정화하고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기 위함이다.” 그 교주는 오로지 자신을 믿고 따르는 신도들만 UFO가 와서 구출할 것이라고 했다. 물론 그 날이 되어도 그들이 바라는 종말은 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신자들은 종말론을 믿었던 기존의 태도를 전혀 바꾸지 않았다. 오히려 조증 환자처럼 기쁨에 겨워 날뛰기 시작했다. “밤새도록 기도했더니 신께서 세상을 구원하기로 결심하시고 홍수를 내리지 않았다”는 새로운 믿음을 갖게 된 것이다.그로부터 40여 년 후에도‘천국의 문’이라는 종교 단체가 비슷한 종말론을 들고 나왔다. 그 단체의 신도들은 1997년 지구에 가장 근접할 예정이던 ‘헤일밥’이란 혜성의 뒤에 저들을 구원해 우주로 데려가 줄 우주선이 따라온다고 굳게 믿었다. 신도들 중에는 육안으로도 볼 수 있던 혜성을 더 자세히 보려고 값비싼 고해상도 천체 망원경을 산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헤일밥 혜성이 지구를 지나갔지만 천국의 문 신도들이 기다리던 우주선은 오지 않았다. 그러자 예정대로 구원받아 우주로 가려면 세속의 껍질(신체)을 벗어야 한다고 믿은 회원 39명은 집단으로 목숨을 끊었다.이 같은 종말론에 관련한 사건은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ce)의 전형적인 사례로 인용되곤 한다. ‘인지부조화’란 개념은 미국의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가 1950년대에 출간한 책 ‘인지적 부조화 이론’을 통해 제기된 용어이다. 두 가지 이상의 반대되는 믿음, 생각, 가치를 동시에 지닐 때, 또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것과 반대되는 새로운 정보를 접했을 때 개인이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나 심리적 불편함 등을 말한다. 다시 말해 태도와 태도, 태도와 행동이 서로 일관되지 않거나 모순이 존재하는 상태를 인지부조화라고 한다.인지부조화를 해소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자신의 착각이나 오류를 솔직히 인정하고 새로운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이 그와는 반대의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 페스팅거의 주장이다. 가령 담배가 발암물질이며 흡연 때문에 일찍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담배를 끊지 못하는 경우, 담배가 심리적 안정을 준다거나 흡연을 하면서도 장수하는 사람이 많다는 식으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 하려고 애를 쓴다는 것이다.허황된 종말론신앙 못지않게 그릇된 이데올로기의 맹신도 심각한 인지부조화를 낳는다. 고등학교까지 입시공부만 하다가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운동권 선배들에게 포섭되어 오로지 좌경이념에 몰입해온 사람들은, 그들의 이념이 부정되는 인지부조화의 상황에 놓이게 되면 자신의 신념이나 노선을 바꾸기보다는 대부분 자기합리화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쪽을 선택하는 현상을 보인다. 심지어 온갖 궤변과 억지도 서슴지 않는 확증편향의 광기에는 모골이 송연해진다.

2020-10-22

따뜻한 경북교육 실현을!

이주형산자연중학교 교감10월의 자연은 보기만 해도 따뜻하다. 10월은 노란색과 궁합이 너무도 잘 맞는 것 같아 10월의 색을 필자는 노란색으로 정하였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풍성해지는 10월의 황금 들판, 도로와 도심을 샛노랗게 물들이는 은행나무, 세상이 결실맺기 딱 좋은 10월의 노란 햇살!10월은 이야기가 풍성한 달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길을 나선다. 10월 길 위에 선 사람들의 걸음 속도는 분명 시인의 속도를 닮았다. 그 속도를 나태주 시인의 시에서 찾을 수 있다.“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 모양까지 알고 나면 인연이 된다 // 아, 이것은 비밀” (나태주 ‘풀꽃 2’)10월을 걷는 사람치고 표정이 어두운 사람은 없다. 모두가 밝은 표정, 그 표정의 색 역시 노란색이다. 시인의 말처럼 사람들은 서로의 색깔을 알기에 기꺼이 길 위에서 친구가 된다. 처음 보는 사람의 눈웃음마저 반가운 인사가 되는 10월은 말 그대로 축제의 장이다.10월 바람은 그늘에서는 살짝 싸늘하게, 하지만 양지에서는 기분 좋은 따뜻함으로 분다. 사람들을 그늘 대신 양지의 길 위에서 서게 하는 10월 바람의 마음에 마스크 안에서 지쳐가던 사람들은 기꺼이 길 위에 선다. 그리고 서로 노란 따뜻함을 나눈다.따뜻함이라는 단어는 필자에겐 추억이자 희망의 단어다. 따뜻함에 대해 지금보다 더 많이 공부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교감 면접시험을 준비할 때다. 그때 공부한 내용 중에 아직도 마음으로 외우고 있는 내용이 있다. 그것은 경상북도 교육청의 교육 비전이다. “삶의 힘을 키우는 따뜻한 경북교육”경상북도 교육청 홈페이지 열린 교육감실에 가면 교육 비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그중에서 “따뜻한”과 “경북교육”에 관한 설명을 잠시 인용한다.“‘따뜻함’이란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보살핌과 배려로 아이들의 행복한 삶을 책임지는 것입니다. 경북교육은 모든 아이들이 자신의 미래를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결과보다는 과정을, 다그침보다는 기다림을 지향하는 교육입니다.”위에 인용한 글을 공부하면 필자는 경북교육 비전이야말로 교육의 본질이자, 우리나라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특히 “행복한 삶을 책임지는”이라는 어구에서는 교육청의 책임 있는 자세를 보았다. 또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모든 아이들이”라는 말에서는 교육청의 결연한 의지까지 느낄 수 있었다.필자의 책상에는 “제2의 교육 기적”이라는 말이 적혀 있다. 우리 교육은 세계가 깜짝 놀랄 경제 성장이라는 교육 기적을 이룬 경험이 있다. 인구절벽이라는 국가적 재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2의 교육 기적이 필요하다. 그 기적의 가능성을 필자는 “따뜻한 경북교육”에서 보았다. 대안학교 학생을 비롯한 모든 아이를 위하는 “따뜻한 경북교육”이 우리나라와 세계 교육을 선도할 것을 직감하는 따뜻한 10월이다.

2020-10-21

채식 웰빙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오곡백과 익어가는 먹거리 풍성한 가을이다. 작물의 뿌리나 잎, 열매 등 어느 것 하나 먹거나 수확하지 않을 것이 없는 계절, 들판에서는 봄이나 여름에 심거나 뿌린 농작물의 온갖 결실을 한창 거둬들이고 있다.지난 주말 텃밭에서 뜯은 손바닥보다 더 넓은 배추잎으로 쌈을 싸먹으니 한결 푸졌다. 집 한 켠의 손바닥만한 텃밭에 몇 포기 심어놓은 배추와 가을상추가 어느새 제법 자라 얼굴을 가릴 정도로 넓고 파릇한 잎을 드리우고 있다. 몇몇 포기에는 배추벌레의 엄습으로 군데군데 구멍이 나있거나 갉아먹은 흔적이 더러 있었다. 그러나 손수 물을 주며 병충해 약 한번 치지 않고 수시로 배추벌레를 잡아내서 인지, 벌레가 해친 배추잎을 함께 따서 쌈으로 싸먹거나 삶아서 무쳐 먹으니 은근히 맛나고 식감마저 좋아짐은 왜일까?어릴 때부터 달리 먹을 것도 없었겠지만 당시엔 거의 나물 위주로 먹고 자라선지 필자는 요즘도 유난히 푸성귀를 즐겨 먹고 있다. 초, 중학교엘 오가면서 땅찔레나 밭둑에 흔한 시큼한 시금치를 숱하게 꺾어서 먹었고 미나리, 씀바귀, 열무, 정구지, 배추 등을 무치거나 부침개로 해서 고픈 배를 채웠었다. 오죽했으면 교수로 있는 친구 시인이 필자 더러 ‘안동 물한리의 나물을 좋아하는 촌사람이다’라고 표현했을까.요즘 들어 대부분의 식습관이 서구화, 간편화 돼선지 채식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이른바 채식과 생식에 가까울수록 건강과 장수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또한 비건(vegan·채식주의자)이 늘어날수록 동물을 보호하고 환경을 보전하는데 보탬을 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채식은 전설적인 록그룹 비틀스의 멤버였던 폴매카트니의 ‘고기 없는 월요일(Meat-free Monday)’ 운동과 맥을 같이한다. 일주일에 한 번 고기를 안 먹는 것만으로 자기 몸도 건강해지고 그만큼 지구온난화 위협 요소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월드워치연구소에 따르면, 육류 생산이 전체 온실기체 방출의 최소 51%를 차지한다고 한다. 세계의 10억 마리 소들이 되새김질을 통해 배출하는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23배 더 지구 온도를 높이고 있다고 한다. 또한 육류의 과다 섭취로 인해 콜레스테롤과 포화지방이 많아져 심장혈관성 질환의 원인이 되고, 각종 항생제를 투여한 동물의 고기를 사람이 먹을 경우 그 약물이 체내에 그대로 흡수돼 인체의 면역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잘 먹어야 건강하고 잘 살 수 있다. 가이아이론에 따르면 지구도 하나의 유기적인 생명체라는 것이다. 사람 몸 속에 있는 다섯 가지의 장기도 땅과, 물, 지구와 관계되듯이 오장(五臟)과 오미(五味)도 자연과 조화되고 연계된다. 채소, 곡물 등 색깔을 살린 칼라푸드, 노벨푸드를 많이 섭취할수록 사람의 몸은 자연과 소통하고 교감이 이뤄진다. 고기 없는 월요일을 실천하고, 채식과 생식의 조화로운 식생활을 개선하면 갑갑한 일상에 새로운 활기와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을 주게 될 것이다.

2020-10-20

묘비명을 비추면 삶의 길이 보인다

박문하전 포항시의회 의장몇년전 해외연수 차 공무로 미국을 경유한 남미 3개주(브라질, 페루, 아르헨티나)를 다녀온 바 있다. 이국적인 분위기와 함께 무엇보다 이전의 여행에서는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아주 특별한 곳을 볼 수 있었는데 바로 레콜레타 공동묘지였다.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중심가에 자리한 이곳에는 아르헨티나 역대 대통령과 우리에게 에비타로 잘 알려진 에바 페론의 묘가 있는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묘지로 유명한 곳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들이 대도시 한가운데 잠들어 있는 곳이 살아있는 사람들의 산책길이 되고 관광명소가 되어 있는 것은 우리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이기가 생소할 만큼 문화적인 차이가 컸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중국의 대표적인 지성이자 문명비평가였던 임어당 선생의 ‘무덤을 거닐며’라는 시가 있다. “무덤 사이를 거닐면서 하나씩 묘비명을 읽어본다. 한두 구절이지만 주의 깊게 읽으면 많은 얘기가 숨어 있다. 그들이 염려한 것이나 투쟁한 것이나 성취한 모든 것들이 결국에는 태어난 날과 죽은 날짜로 줄어들어 있다. 살아있을 때는 지위나 재물이 그들을 갈라놓았어도 죽고 나니 이곳에 나란히 누웠구나. 죽은 자들이 나의 참된 스승이다. 그들은 영원한 침묵으로 나를 가르친다. ….”생전에 탁월한 용맹성과 출중한 인품으로 영국에서 중세기사의 표상으로 존경 받는 흑태자 에드워드의 묘비에는 “지나가는 이여 나를 기억하라. 지금 그대가 살아있듯이 한때는 나 또한 살아 있었노라. 내가 지금 잠들어 있듯이 그대 또한 반드시 잠들리라”라고 적혀있다.‘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는 말을 너무나도 지당해서 대충 흘려 듣기 일쑤다. 지금 이 시간도 나는 늙어가고 있고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죽음으로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 남들과 다투거나 거짓과 미움으로 살아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양심으로, 정직한 충성으로 불의와 타협을 거부한 삶이었지만 헨리8세가 반역의 누명을 씌워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하고 400년 후 복권된 토마스 모어의 묘비에는 성자의 칭호와 함께 ‘고결한 양심, 불멸의 영혼 여기 잠들다’로 새겨져 있다.한평생 사랑으로 세계의 교육계에 혁신적 영향을 끼친 페스탈로치 묘비명은 ‘가난한 자의 구조자, 고아의 아버지, 새로운 학교의 창시자, 참된 인간, 선량한 시민 모든 것을 남을 위해 바치고 자기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그의 이름에 은혜가 있기를….’로 되어 있다.숭고한 삶을 마감하고 잠들어 있는 위인들의 묘비명이 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날마다 죽음과 만나는 어느 묘지 가이드가 남긴 말이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인생의 길이는 우리가 결정할 수 없지만 인생의 두께나 농도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묘지를 거닐면 현재를 사랑하게 된다.’ 한 문장을 덧붙인다면 그리고 묘비명을 비추면 남은 삶의 길이 보인다.비록 오늘은 삶의 한가운데 있더라도 하나님이 어느 날 문득 죽음의 광주리를 내밀었을 때 나는 과연 그 광주리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고민하면서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 오늘도 허무, 실패, 좌절 같은 단어들이 짓눌러 오는 삶의 무게 때문에 방황하고 있다면 먼저 간 위대한 선현들의 묘비명을 한번쯤 읽어보면 어떨까 권유해 본다.

2020-10-19

불면증 심리상담 이야기

문가인참마음심리상담센터 원장얼마 전 뉴스 기사를 보니 우리나라의 불면증 환자가 50만 명이라고 한다. 이는 정신과 등 의료기관을 이용한 사람만 통계수치로 집계된 것이니, 실제로는 더 많다는 이야기다.포항 인구가 약 50만 명이라고 하니 한 도시의 사람 전체가 불면증으로 잠을 설치고 있다는 것이다.미용실에 가서 노인들이 와서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보는 경우가 있다. 그들의 이야기의 주제는 대부분 잠에 대한 것이다. 그만큼 수면은 우리의 적응과 부적응 더 나아가서 행복과 불행을 좌우하는 중요한 인간의 생리적 기능이라고 볼 수 있다.연예인에 관한 기사를 다루는 미디어에서도 연예인 아무개가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치료받았다는 내용을 흔히 접할 수 있다.그리고 일반인들도 ‘잠이 안 와서 약국에 가서 수면제를 처방받았어’라고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한다. 잠이 안 오면 수면제 정도 먹는 것은 숨길 일도 아닐 정도로 대중화되어 있는 것 같다.잠, 식사, 성, 배설 등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도 심리적 원인에 의하여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심리적 장애로 분류되는데, 잠의 경우는 수면장애라고 DSM-5(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편람 5판)에는 분류되어 있다.여러 가지 인간의 생리적 욕구가 부적응적이면 심리적 장애로 고통받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잠은 그 어느 것보다도 정신건강의 척도로 생각된다.정신과병원이나 한의원에 가면 “잠은 잘 주무십니까?”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게 될 것이다.나 또한 정신과병원에서 임상심리전문가로 근무할 때 조현병 환자들에게 매번 입원 동기에 대해 질문을 하곤 했는데, 거의 수학 공식처럼 그들은 비슷한 응답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임상심리전문가: “당신은 어떻게 해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나요?”환자: “제가 1개월 이상 집에 혼자 있었거든요.”임상심리전문가: “네 그랬군요.”환자: “잠이 안 오기 시작하더니 어떤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부모님이 여기에 데려와서 입원하게 되었습니다.”즉, 잠을 잘 못자면 심각한 심리적 문제인 조현병으로까지 발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초보 심리학자 시절에는 불면증을 심리상담으로 낫게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잠이 안 오면 일단 병원에 가서 수면제를 처방받아서 약으로 치료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리라.그렇지만 수만 명을 심리상담해본 나의 임상적 결론으로는 불면증도 심리적 문제에 기인한 경우는 호전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다. 불면증에 관한 심리상담 성공사례도 많을뿐더러 마음의 이치는 비슷하기 때문이다. 우울증이 호전된다면 불면증도 호전될 수 있는 것이고 조현병도 호전될 수 있는 것이다. 불면증 환자란 ‘잠에 대한 잘못된 생각’, ‘잠에 대한 집착’, ‘잠에 대한 트라우마’로 간단히 정의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불면증은 잘못된 생각을 바꾸는 인지행동치료와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최면치료로 극복될 수 있다.오늘도 잠 못 드는 그대여, 잠의 신은 원할수록 더욱 멀리 달아난다는 것을 잊지 말라.

2020-10-18

코스모스 꽃길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꽃길만 걸으라는 말이 있다. 늘 순탄하고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란다는 덕담이다. 하지만 인생길에는 길흉화복에 희로애락이 있기 마련이다. 가다보면 가시밭길도 있고 진창길도 나오기 때문에 더 간절히 꽃길만 걷기를 바라게 된다. 물론 어떤 길이 꽃길인지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것이다. 보통은 돈이나 지위나 명예가 주어지는 길을 꽃길이라 하지만, 외관상으로 그렇게 보일 뿐이지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만도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상당한 부와 지위와 명예를 누리던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극단적인 선택을 해서 세상을 놀라게 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여기에 꽃길이 있다. 은유나 희망사항이 아닌 진짜 꽃길이다. 코스모스가 활짝 핀 가을 들길이 그것이다. 그 길은 아귀다툼도 없고 가식이나 거품도 없는 말 그대로 꽃길이다. 해맑고 화사한 빛깔이 있고, 그윽한 향기가 있고, 눈부신 햇빛과 시원한 바람이 있을 뿐이다. 하루에도 수십 명이나 자살을 하는 나라에서 죽고 싶도록 자괴감이나 상실감에 빠진 사람들은 와서 코스모스 꽃길을 걸어 보시라. 높푸른 하늘이, 찬란한 태양이, 삽상한 산들바람이, 화사한 꽃들이 그대의 인생을 환영할 것이다.이런 추억도 있다. 전교생이 사백 명쯤 되는 시골 초등학교였다. 학교 정문에서 멀리까지 코스모스를 심어 가을이면 날마다 꽃길로 등하교를 했다. 어느 해인가, 무슨 사연으로 가을 학기 중에 선생님 한 분이 학교를 떠나셨다. 전교생이 코스모스가 곱게 핀 길 양쪽에 늘어서서 선생님을 배웅했다. 선생님이 천천히 걸어가실 때 상급생 여자아이들이 훌쩍거리자 선생님도 눈시울을 붉혔다. 반세기도 더 지난 일인데 코스모스 꽃길을 볼 때마다 문득 생각이 나곤 한다.나는 요즘 날마다 꽃길을 걷는다. 매일 산책을 하는 들길에 코스모스가 한창이다. 인생의 어떤 은유적 꽃길보다 나는 이 코스모스 꽃길이 좋다. 나이를 먹을수록 은유나 상징보다 실재가 더 와 닿는다고나 할까. 우주만상은 무얼 감추거나 비유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명명백백 드러낸다는 것이 내 오랜 경험으로 얻은 깨달음이다. 진짜의 꽃길을 여기에 두고 사람들은 한사코 환상의 꽃길만 찾고 있는 게 아닌가.“길가에 핀 코스모스/ 영접 나온 소녀들 같다// 소들이나 돌보는/ 목부일이 고작인데// 아 글쎄, 나는 날마다/ 귀빈 대접 받는다니까” 야산 자락의 작은 목장에서 목부 일을 할 때 쓴 ‘자족(自足)’이란 제목의 시이다. 길가에 줄지어 피어있는 코스모스는 연도에 나와 국기를 흔들며 국빈으로 오는 손님을 환영하던 여학생들을 연상케 한다. 코스모스 꽃들의 환영이 그보다 못할 게 뭔가.세상에는 꽃길이 얼마든지 있다. 일부러 심고 가꾸지 않아도 철따라 피고 지는 꽃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 가을의 억새와 갈대와 황금 들판도 꽃밭 못지않은 장관이다. 가을이 더 깊어지면 온 산천을 물들이는 단풍은 또 어떤가. 거기다 높푸른 하늘과 찬란한 태양, 산들바람을 더하면 세상에 그보다 좋은 꽃길이 어디 있는가. 그까짓 인생살이 굶지 않을 정도면 족한 줄 알고 도처에 나 있는 꽃길이나 맘껏 걷다 가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2020-10-15

고3 2학기 학교 시험을 차라리!

이주형산자연중학교 교감도로를 따라 가을이 들기 시작한 은행나무를 보면 속절없음이라는 단어만 생각난다. 바람이라도 부는 날에는 속절없이 떨어지는 은행잎을 따라 필자의 마음도 속절없이 흩날린다.자연이 그리는 계절 모습에 필자가 할 수 있는 감탄사는 “벌써”뿐이다. 코로나19 대유행 초기에만 하더라도 더디게 가는 시간에 원망가(怨望歌)만 불렀다. 원망은 허망만 낳았다. 허망의 덫은 생각을 앗아갔다. 코로나19에 멈춘 세계처럼 필자의 생각도 완전히 멈춰버린 요즘이다.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가위눌림에 모든 감각은 기능을 잃었다.무감각의 덫에 갇힌 것은 세상도 마찬가지다. 컨베이어벨트 위에 올려진 물건처럼 지금 사회는 정부가 코딩해 놓은 대로 움직여만 하는 인형 사회다. 정부 지침에서 조금이라도 의문을 가지면 바로 코로나19 전파자로 낙인찍힌다. 그리고 골수 정부 지지자들로부터 무차별 온라인 폭격을 당한다. 반문을 떠나 의문조차 가질 수 없는 사회가 지금 사회다.2020년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 무한 재방송을 하는 인형극 같다. 주제는 코로나19 극복, 제목은 코로나19 공포 정치! 유행어는 “앞으로 2주가 최대 고비입니다.”이다. 인형 조종사는 성급한 일반화 오류의 쾌락에 중독된 정치인! 극의 특징은 조종 대상인 인형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양치기 인형극에 신물 난 대다수 국민은 이제 스스로 자기 일을 한다.세상일의 절대 진리는 완전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많은 국민이 알아서 자기 일을 해도 절대 못 하는 곳이 있다. 그곳은 교육계이다. 지침을 어기면 죽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집단이 교육계이다. 웃기는 것은 교육 목표가 “바른 인성을 갖춘 창의융합 인재 육성”이라는 것이다.코로나19는 지금 우리 교육의 실질 목표가 학생을 시험용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렸다. 아무리 등교 제한 조치를 하더라도 학교 시험만큼은 반드시 봐야 하는 것이 이 나라 교육이다. 배운 것도 없이 시험을 쳐야 하는 학생들의 처지는 교사들이 알 바 아니다. 그들은 당당히 말한다, 위에서 하라고 하니까!안 될 줄 알면서도 제안해 본다,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학교 시험만큼은 제발 없애자고, 아니면 횟수만이라도 줄이자고. 학생들은 그 시험을 “설문조사 시험”이라고 한다.수능도 무의미한 학생들에게 대학교 원서 접수가 끝난 후에 치르는 학교 시험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학생들은 하기 싫은 설문조사를 하듯이 문제도 읽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번호를 찍는다. 과연 이런 시험이 시험으로서 의미가 있을까! 교사들조차 의미를 찾지 못하는 시험 대신 차라리 졸업을 앞둔 학생들을 위한 진로 캠프를 하면 안 될까! 차라리 고등학교 3학년 2학기를 자유학기제로 하면 어떨까!그래도 만약 시험 점수가 필요하다면 모든 학생을 수능에 응시하게 해서 그 점수를 고등학교 마지막 내신 점수로 하면 어떨까! 그러면 최소한 수능에 대한 효용성이라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속절없는 필자의 생각에 찬 이슬만 내리려는 한로(寒露) 아침이다.

2020-10-14

비대면 문화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인간은 어느 생물체보다 자생력과 생존력이 강하다. 인류는 유사 이래 수많은 시련과 역경 속에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고 적응하며 종족 보존과 문명사회를 이뤄왔다. 또한 끊임없는 학습과 반복, 도전과 진화로 지속적이고 비약적인 방향으로의 새로운 발전을 거듭해가고 있다. 변화를 통해 진보하고 창의로 융합하여 이상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은 어쩌면 인류사회의 궁극적인 변화와 발전을 가져오는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그 원동력의 이면에는 정치, 경제, 사회, 관습, 이념, 정서 등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하겠지만, 필자의 견해로는 문화적인 영향력이 상당하다고 여겨진다. 문화는 한 사회의 개인이나 인간집단의 정신적, 물질적 과정의 산물로 우리의 삶과 생활에 밀접하고 다양한 장르와 광범위한 양식을 포괄하고 있다. 문화적인 저력과 부침에 따라 사회나 나라가 성쇠하고 흥망이 좌우됨을 우리는 익히 보아왔다. 문화의 파급력과 지속성이 크기 때문이다.언제 종식될지 모를 코로나19로 인해 새로운 ‘비대면 문화’가 늘어나고 있다. 온라인 수업, 화상 강의, 화상 회의, 온라인 공연, 영상 전시, 무관중 경기, 언택트 여행, 언택트 이코노미 등 교육과 연예, 예술, 체육, 레저, 경제, 의식 등 사회 전반적인 부문에서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대하지 않거나 접촉을 지양하면서 최소한의 활동만 유지하는 비대면 트렌드가 자리잡아가고 있다. 미상불 전염병이 생경한 사회현상과 이색적인 문화를 전이시키는 듯하다.그러나 인간은 이미 문명의 이기에 길들여질수록 서로 얼굴을 마주 보지 않는 비대면성(非對面性)에 익숙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인터넷 매체를 통한 채팅, 통신망에서의 온라인 만남, 인터넷 주문, 비대면 계좌 등은 통용된지 십 수년 전의 일이고, 만능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심지어 비대면이 지나쳐 인간적인 만남과 소통까지 소원하고 단절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현실이다.중요한 것은 시대적인 흐름과 변화의 방향을 읽고 발 빠르게 대처해가는 일이다. 주변 상황에 촉수를 높이고 낯설지만 피할 수 없는 비대면의 움직임에 자구적(自救的)인 방안과 공생적인 가치를 찾아야 한다. 바이러스가 만연하는데 언제까지 대면문화만 고집할 것인가. 때에 따라선 비대면 문화가 훨씬 유용하고 효과적일 수도 있다. 예컨대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화상으로 전시되는 기획전에서는 온라인 큐레이터의 자세한 작품설명과 연관되는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자연의 풍광을 무대로 송출되는 국악이나 클래식 연주는 물과 바람처럼 흐르는 음조의 선율이 향기로 피어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추석전야에 열린 나훈아의 방대한 언택트 공연으로 많은 국민들이 흉흉해진 한가위 분위기에 그나마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또한 지난 주 열린 방탄소년단의 온라인 콘서트는 전세계 100만명에 가까운 시청자들로부터 경이로움과 찬사를 받기도 했다. 첨단기기를 활용한 멀티뷰 기능과 증강현실(AR) 등으로 공연을 관람하는 팬들에게 흥미롭고 만족스런 볼거리를 제공할 만큼 비대면 문화도 충분한 메리트가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2020-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