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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가치 정점의 安全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날씨 탓일까? 춥다가 풀리기를 반복하면서 간간이 한반도를 뒤덮는 미세먼지가 코로나19로 침울해진 가슴에 갑갑함을 가중하고 있으니, ‘삼한사미’가 괜한 푸념이 아닌 듯하다. 겨울의 불청객 같은 미세먼지의 가림막(?)으로 새해 들어 적잖은 화재와 사고로 무고한 종사자들의 생명을 앗아가 안타깝기만 하다. 어쩌면 무덤덤한 일상 같지만 날씨의 변화에서부터 사회적인 현상이나 개인적인 생활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행위와 움직임 속에는 예기치 못한 일들과 사고로 이어지는 불행이 숱하게 일어나고 있다. 문제는 마르고 닳도록 강조하고 감독과 제재를 가하는데도 고질적인 사고의 연결고리를 끊지 못하는데 있다.안전(安全)이란 단어의 안(安) 자는 ‘집 속에 여자(사람)가 고요히 앉아있는 모양’이라 하여 평안함이라 설명하고, 전(全) 자는 아무 데도 흠이 없는 구슬을 지칭하여 모두 가지런한 일을 나타낸다. 즉 안전이란, 일상이건 직장이건 사회생활이건 모두 집 안에 사람이 편안하게 있는 것처럼 위험이 생기거나 사고가 날 염려가 없을 정도로 여건이 바뀌어 달라지지 아니하고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태나 행위는 모두 사람으로부터 비롯된다. 주위의 여건을 만드는 것도, 대상을 이용하는 주체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안전은 사람으로부터 시작되고 사람으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결국 거의 모든 사고는 사람이 야기하고 인적, 물적인 피해를 스스로 입게 된다. 그러한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왜 자가당착(自家撞着)한 사고나 재해가 집요하게 꼬리를 무는 걸까? 필자의 관점에서는 시스템과 비용적인 측면이 가장 크다고 본다. 모든 것은 일차적으로 자신이 안전해야 하며, 안전해진 개개인이 모이면 부분과 전체의 안전이 확보되어 안전한 상태를 유지하고 안전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안전한 조직’과 ‘안전한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여기에 공기단축이니 비용절감 같은 요소가 대두되고 관행이나 불감증이 파고들면 철통 같은 안전체계에도 구멍이 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학문에 왕도란 없듯이 안전에도 절대 왕도가 없다. 철저하게 시간과 노력으로 쌓아가고 의식과 시스템으로 하나하나씩 이뤄가야 한다. 안전과 건강에 관련된 것은 더 까다롭고 꼼꼼하게 작은 것 하나라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는 ‘엄마 같은 마음’과 자세가 중요하다. 예측할 수 없는 재앙은 없듯이 안전 앞에서는 설마나 예외도, 우연이나 요행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27일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안전은 배워서 같이 알아야 하고 안전 시스템을 철저히 이행하며 최우선 가치로 공감하는 ‘안전 마인드 셋’이 필요하다고 본다. 안전을 지키지 않는 것은 동료와 가족을 지키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내가 지키는 것들이 나를 지켜 주듯이, 안전은 처방이 아닌 예방이 우리 가족 행복의 확실한 보증수표다.

2022-01-24

새로운 끌림, Space Walk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영일만 한 켠의 이색적인 조형물이 최근 핫플레이스로 급부상해 전국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포항 환호공원 등성이에 구름처럼 걸터앉은 이른바 ‘Space Walk’가 개장한지 8주만에 총 관람객이 15만명에 이르고 있으니, 과연 ‘핫플’이 아닐 수 없을 정도다. 코로나19가 집요하게 일상의 발목을 잡아도 곡선형 루프 조형물을 따라 올라 영일만을 조망하다 보면 어느새 탁 트인 가슴 결로 갑갑함과 침울함이 싹 가시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스페이스 워크는 새로운 매력과 끌림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환호해맞이공원은 한낱 야산에 불과하던 환호동의 바닷가 일대를 포스코의 지역협력사업으로 200억원을 기부받아 포항시가 2001년 8월에 준공하여 시민의 건강과 휴양, 정서생활 향상을 위한 휴식공간으로 활용돼 왔다. 거기에 2019년 4월 포스코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포항시와 ‘환호공원 명소화’ 업무협약으로 세계적인 철강도시 포항에 걸맞는 랜드마크 스페이스 워크를 포스코에서 설치, 포항시에 기증해 오픈한지 오늘로 꼭 두 달이 된 것이다.스페이스 워크는 제막하면서부터 세간에 회자돼 크게 주목을 받았다. 입소문을 타거나 언론, 방송에 앞다투어 보도되고, SNS 등에 일제히 소개되면서 일약 국민적인 이목과 호기심을 부추겼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 최초, 최대 규모의 새로운 체험형 조형물로, 333미터 길이의 계단통로를 걷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공간예술 속으로 빠져들고 마치 구름 위나 우주를 유영하는 것 같은 환상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작품 위에서 360도로 펼쳐지는 새로운 풍경을 접할 수 있고, 무한한 루프(고리)가 보여주는 느림과 여유의 미학을 배우며 사람과 기술, 예술로 이어지는 상상의 발걸음 속에 신기한 듯 놀라운 희열과 짜릿함을 느끼게 된다.연오랑세오녀를 연상하며 해와 달을 상징하는 공중의 두 개의 큰 원과 공간, 시간, 사람을 이어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속도와 균형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서 관객의 체험을 통해 완성되는 작품인 스페이스 워크는, 포항시와 포스코가 하나되어 새로운 100년을 함께 할 지속가능한 발전과 상생의 미래를 상징하는 빛과 철의 하모니라 할 수 있다.포항시가 올해 시무식을 바다 건너 포스코가 보이는 스페이스 워크에서 개최한 것도 해양관광 문화도시를 지향하는 공동체 의식의 확고한 표명이 아닐까 싶다.전국 각지에서 스페이스 워크를 걸어 보려는 사람들로 환호공원엔 연일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거기에 왕래부절의 관람객들을 안내하고 체온 체크, 출입 개폐기 관리, 주변 환경정화 등을 자발적으로 역할 분담하는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핫플만큼 뜨겁기만 하다. 개장 이후 한번도 빠짐없이 매주말과 휴일을 반납하고 Space Walk 운영 도우미에 나선 포스코 봉사단과 영일만 서포터즈 등의 적극적인 참여와 활동이 고무적으로 여겨진다. 타지인이 90% 이상인 방문자들에게 개장 초기의 친절하고 편안한 안내로 스페이스 워크가 전국적인 명소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2022-01-17

깨어 있는 바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추울수록 겨울바다의 빛깔은 깊고 진하다. 멀리서 보면 바다는 고요하고 평온해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쉴 새 없이 뒤척거리며 물결이 움직이고 있다. 해변의 모래톱으로 긴 여울 자락을 펼치며 나울거리는 파도는 육지의 안부를 묻는 잔잔한 속삭임 같고, 갯바위에 철썩거리며 흰 포말로 부서지는 너울은 간간이 응축된 힘을 발산시키는 물살의 함성같이 들린다. 혹한의 계절에도 바다는 온갖 생명체와 유기체를 온전하게 품으며 재우고 걸러내고 찰방이고 있다. 은빛 햇살 부서지는 한적한 해변에 갈매기들의 겨울 나들이가 시작됐다. 추위에 떠는듯 깃을 접고 옹기종기 모여 있다가 먹이라도 발견한 걸까? 시퍼런 물살이 일 때마다 조금씩 깃을 터는 갈매기들, 이윽고 몇 마리가 날아오르자 마치 군무라도 펼치는 듯 연이어 날갯짓하며 끼룩끼룩 퍼덕퍼덕 그들만의 어설픈 외침으로 일제히 순식간에 날아오르며 비상의 나래를 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갈매기 날갯짓 따라/파랑(波浪)으로 손짓하며/짙푸른 함성인 듯/근육으로 이는 물살/벅차게 용솟음치는 꿈/깨어 있는 자의 삶//자정(自淨)의 먹을 갈아/뭍의 배설물을 삭히며/트인 가슴으로/넘실대는 사유의 자락/수평선/가뭇한 언저리에/각인되는/올곧음’ -拙시조 ‘깨어 있는 바다’전문(1994)바다는 어쩌면 동경의 대상이었다. 탁 트인 전경에 가슴이 절로 시원해졌고 가물가물 수평선이 자꾸만 마음을 꾀는 듯했다. 한없이 너른 품새로 모든 것을 받아주다가 집어삼킬 듯 요동치는 격정의 몸부림은 사람의 성질이나 삶의 양상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그러면서 바다는 언제나 쉼없이 찰랑이고 삭히고 밀어내면서 평상심으로 더욱 깊어지고 넓어지는 듯했다. 중 2때 기차를 타고 수학여행 가면서 처음 본 동해바다의 설레임과 신기함에, 속내 깊은 바다의 진중함과 유장함이 투영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나 지나서 인 것 같다.바다는 늘 깨어 있기에 파도치는 것이다. 살아있기에 움직이고 열려 있기에 깨어 있는 것이다. 깨어 있고 포용하는 가슴을 열어 바르고 곧은 사유를 일깨우는 것이다. 생각의 물길이 파도로 출렁이고 근육 같은 물살이 일렁이며 꿈을 외치는 것이다. 넘실대는 물의 평정(平靜)이 올곧은 수평선으로 뜨기에 비늘 같은 햇살을 쪼며 갈매기들이 화답하는 것이리라. 그렇기에 늘 깨어 있는 의식으로 자신을 채근하며, 파랑의 몸짓으로 꾸준히 뒤척이고 노력하고 진취해야 하는 것이리라.지구의 2/3 이상을 뒤덮고 있는 어머니 같은 바다는 많은 것을 시사하고 일깨우지만, 문명의 진화에 수반되는 온갖 해악과 해양 쓰레기는 갈수록 바다를 피폐하고 신음하게 만들고 있다. 바다로부터의 일깨움은 소소한 삶의 편린일 수 있지만, 인류와 미래의 생존과 지속에 직결되는 심대한 영향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밤낮없이 읊조리는 바다의 그침 없는 해조음에 귀 기울이며, 바다 살리기와 탄소중립 실천의 시대적 요구와 역할에 늘 깨어 있는 삶을 추구해보자.

2022-01-10

새해 첫날의 풋기운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새해 첫날, 찬바람과 미명의 어둠을 헤치며 집을 나섰다. 흑호(黑虎)해인 임인년 새해의 첫날에 떠오르는 아침해를 맞이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인근의 형산으로 향한 것이다. 초승달과 군데군데 새벽별이 빛나고 은륜(銀輪)의 안장을 호랑이등삼아 올라타 연일대교를 건너 국당리 쪽으로 페달을 밟으니, 역풍으로 체감온도는 낮았지만 기분은 약간 고조되는 듯했다. 형산 라이딩은 수 차례 즐긴 적이 있었는데, 새해 첫날의 해맞이로 벽두부터 오르기는 처음이었다. 여명으로 깨어나는 마을을 지나 완만하거나 가파른 오르막길을 거친 숨을 뿜으며 업힐(uphill)하여 단숨에 산마루까지 올랐다. 먼동이 트는 동녘하늘이 주황빛 커튼처럼 드리워져 있고, 밋밋한 등성이와 영일만 바다, 포스코, 시가지 그리고 바로 앞에 보이는 얼어붙은 형산강이 무채색 원근감의 화폭처럼 펼쳐졌다. 도시와 인접한 산에서 강과 바다를 볼 수 있고 도심과 촌락, 공단을 두루 조망할 수 있는 형산(兄山)이 이색적인 해맞이 명소가 된지 십수년이 된 듯하다. 코로나 상황이지만 한 해를 의미있게 맞기 위해 형산갓바위 주변으로는 벌써 많은 해맞이객들이 운집하여 동쪽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었다.이윽고 붉은 광채가 짙어지면서 드디어 동해에서 갓 건져진 쇳물 같은 햇덩이가 산등성이 위로 서서히 떠올랐다. 임인년 새해의 햇살이 누리에 비치면서 2022년의 새날이 마침내 밝은 것이다. 해가 떠오르는 순간 주변의 사람들은 짧은 탄성을 내거나 두 손을 모아 소원과 희망을 빌면서 경건하게 기도하기도 하고, 일출장면을 카메라에 담거나 인증샷을 하며 새해 새출발을 새롭게 다지는 것 같았다. 필자는 ‘호랑이 눈처럼 매섭게 현실을 직시하고, 소의 걸음으로 우직하게 나아간다’는 뜻의 호시우보(虎視牛步) 서예 족자를 펼쳐 마음을 다잡기도 하면서 건강, 웃음, 행복 등의 글귀가 쓰여진 연하장을 주변 해맞이객들에게 나눠주며 새해 덕담을 건네기도 했었다.‘낮과 밤/어지러운 세상/긴 터널, 어둠 속/헤어나지 못할 세계/수 차례 왕복하다/너 자신을 잊어버릴지 모른다//동트는 밝은 아침/아름다운 마음/좋은 생각으로/늘 깨어 너를 지켜라//안식할 수 있는 밤과/희망의 새 아침이 있어 좋다//아침의 생각은 맑고 깨끗하여/네 영혼을 살찌우게 한다’-염정화 시 ‘새 아침’ 전문해마다 새해 첫날의 풋기운으로 새로운 다짐을 하며 보다 밝고 푸른 꿈을 그려본다.그러나 현실은 결코 녹록하지가 않다. 극단적인 기후변화가 뉴노멀이 되고, 미상의 바이러스 출현이 일상을 경고하며 삶과 생존과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물질문명의 치중으로 잠재적인 기후변화를 초래하고, 신종변이 바이러스가 또 어딘가에서 파생하여 불안과 긴장 속을 파고들지도 모를 형국이다.그래도 새해는 따스하고 희망적으로 맞을 일이다. 올해는 국내외적으로 많은 변화와 격랑이 예상되지만, 무엇보다도 코로나19의 종식과 불편부당, 불평등이 해소되고 민생안정과 경제회복으로 모두가 웃음짓는 날이 많아지길 기대해본다.개인적인 꿈과 사회적인 바람이 다운힐(downhill)하는 바이크처럼 방향과 속도 조절로 순조롭게 질주하고 이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2022-01-03

더와 덜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시간의 쳇바퀴 속에 세월은 또 한 겹의 나이테를 감아가고 있다. 시간이야 늘 영구히 쉬지 않고 길을 가는 나그네(百代過客)처럼 가고 오는 것이지만, 해마다 이맘 때가 되면 누구나 담담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주변과 지난날을 돌이켜보게 된다. 과연 지난 한 해 동안 마음먹고 뜻한 바들을 얼마나 이루고 노력했는지에 대한 점검과 정리를 하는, 대체로 회고와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되는 성찰의 시간이 아닐까 싶다.코로나19의 장기화로 2021년은 파란과 질곡의 나날이었던 것 같다. 거침없는 코로나의 신음에 연초부터 시작된 백신 접종으로 한 가닥의 희망과 안도를 주는 듯했으나, 교묘한 변이종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몇 차례 요동치더니 세상은 갈수록 험난해지고 도탄에 빠져가는 듯하다. 거기에 잠재적인 기후변화로 가뭄과 화재, 태풍과 홍수에 휩싸이는가 하면, 내전과 분쟁, 갈등과 경제난민으로 세계는 슬픔과 참혹함이 극한의 상황으로 치달아 공존의 지혜와 가치마저 위협받는 혼돈과 딜레마에 봉착해 가고 있는 형국이다. 어쩌면 자연의 경고(?)같은 수많은 이변과 백신 약화가 인류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건 아닌지 씁쓸해지는 연말이다.한 해의 끝자락에 서면 착잡해지는 마음을 감출 길 없다. 연초의 계획과 목표를 향해 얼마나 열심히 달려왔는지, 그래서 어느 만큼 자신을 꾸준한 각도로 변모시키며 꿈의 현실화에 근접시켜 왔는지 가늠해 본다. 대부분이 달성보다는 미진함이, 만족보다는 아쉬움이 많기에 몸과 마음을 추스려 부족함을 가다듬고 새로워진 각오로 새날에의 꿈을 다시 그려보는 것이 아닐까?‘그때 그 사람이/그때 그 물건이/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더 열심히 파고들고/더 열심히 말을 걸고/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더 열심히 사랑할 걸….//반벙어리처럼/귀머거리처럼/보내지는 않았는가/우두커니처럼…./더 열심히 그 순간을/사랑할 것을….//모든 순간이 다아/꽃봉오리인 것을/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꽃봉오리인 것을!’ - 정현종 시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중사람이 살다 보면 더해서 좋아지는 일들이 많은가 하면 덜해서 좋아지는 일들도 적지 않다. 이를테면 기쁜 일이나 좋은 생각에 ‘더’를 보태면 더 즐거워지고 더 사랑하고 더 행복하고 더 아름답게 더 웃음 지으며 작지만 더 소중하게, 적지만 더 감사하게 더 참고 더 긍정하고 더 노력하다 보면 분명 더 좋은 일들이 더 늘어나게 된다. 반면 꺼리는 일들에 ‘덜’을 붙이면 덜 아프고 덜 슬프고 덜 힘들고 덜 어렵고 덜 실망하고 덜 불안하고 덜 포기하고 덜 욕심내면 필경 고비가 줄어들고 위기가 덜해질 것이다.과연 자신은 한 해 동안 무엇을 더해왔고 어떤 것을 덜해 왔는지 되새겨볼 일이다. 좀 더 나누고 베풀며 더 겸손하고 더 양보를 했는지, 아니면 좀 덜 시기하고 비난하며 덜 차지하고 덜 교만했어야 했는지 곰곰이 파고들어 새날을 기약해볼 일이다. 세월은 무심치 않고 인생은 덧없지 않아 연륜과 지혜를 준다.

2021-12-27

동지(冬至) 무렵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날씨가 제법 추워지니 비로소 겨울이 느껴진다. 세월의 바퀴는 세모로 치닫고 계절의 수레는 한겨울로 굴러간다. 잎새를 떨군 나무들은 당당한 외로움의 가지를 드러내는데, 휑한 들녁은 텅빈 충만으로 깊은 침묵에 빠져들었다. 만고청산은 조곤조곤 동면의 생물들을 품으며 파리한 푸른빛으로 세한(歲寒)의 화폭을 채우는가 하면, 사람들은 복잡다단한 삶의 질곡에 성찰과 침잠의 몸짓으로 또 한 차례의 연륜을 쌓아가고 있다.겨울은 추워야 제맛이다. 세찬 칼바람에 눈보라가 휘날리는, 그야말로 북풍한설에 산하가 꽁꽁 얼어붙을 정도로 추워야 겨울의 제격이 아닐까 싶다. 그런 겨울이라야 추위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필자의 어린시절 겨울은 혹독했지만, 오히려 강추위 속의 겨울놀이로 나름 즐거웠다고나 할까? 매운 바람결에 나목의 신음 같은 전율이 오싹해져도 언덕 위에서 손등이 부르틀 정도로 연날리기를 하고, 얼어붙은 무논에서 얼음지치기를 하다가 엉덩방아를 찧거나 깨어진 얼음장 밑으로 두 발이 빠져도 온종일 한데서 추위와 꼿꼿하게 맞서며 재미난 겨울놀이를 즐겼던 것 같다. 그렇게 보낸 동심의 추억이 있었기에 해마다 맞는 겨울이 가슴 시리게 푸근하기만 하다.‘한겨울 시린 마음 겹겹으로 고이 접어/사랑방 아랫목에 꼬옥 재워두면/눈치는 겨울밤에도/서럽지 않으련만’ - 강성위 시조 ‘겨울밤’ 전문동지가 다가오는 겨울밤은 길기만해 이른 저녁을 먹고 나면 금세 배가 출출해졌다. 그럴 때면 으레 또래들과 뜨뜻한 구들방에 둘러 앉아 시시닥거리며 장난을 치다가 무나 고구마를 깎아서 먹고, 살얼음 낀 식혜를 단지에서 퍼먹으며 요기를 달랬다. 요즘처럼 인스턴트식품이 거의 없던 시절 식혜는 겨울 별미 중의 최고였다. 시원 달콤하고 걸쭉 매콤하며 아삭 새큼한 맛이 우러나는 안동식혜는 낮에 일하다가 새참으로 먹기도 했지만, 겨울밤에 친구들과 어울려 먹는 맛이야 말로 어떤 음식맛과도 견줄 바가 못됐다. 구멍 난 문종이로 황소바람이 들어오고 간혹 떡가루 같은 눈발이 소리없이 날리던 겨울밤, 아늑하고 쿰쿰한 사랑방에서의 먹거리 나눔은 달달하고 정겹기만 했었다.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동지는 아세(亞歲) 또는 작은설이라 하였다. 동지를 기점으로 낮의 길이가 조금씩 길어지면서 양기(陽氣)가 살아나기 때문에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살 더 먹는다’는 동지첨치(冬至添齒)의 풍속으로도 전하고 있다. 나이를 빨리 먹고 싶어 동지팥죽을 손꼽아 기다리던 어릴 적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요즘은 나이 한살 더 먹기가 두렵기만 하니, 연치(年齒)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동지에 즈음하여 팥죽에 대한 의미와 주변을 살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예부터 전염병이 유행할 때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지고 질병이 없어진다고 하며, 경사나 재앙이 있을 때에 팥죽, 팥밥, 팥떡을 해서 먹는 풍습이 있었다. 걷잡을 수 없는 코로나의 난마를 팥죽 한그릇으로 이겨낼 수도 있지 않을까?

2021-12-20

친환경을 꿈꾸는 미술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모처럼의 여유로운 주말 오후,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섰다. 겨울이라고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철길숲길을 따라 서서히 페달을 밟으니, 넌지시 억새가 흰손을 흔들고 차마 떨어지기가 아쉬운 듯 단풍잎새는 팔랑거리며 길손을 반기고 있다.연말이 다가올수록 왠지 모를 다급함으로 일에 채이고 시간에 쫓기다 보니 주말이나 휴일다운 시간을 제대로 못 보냈는데, 이 날만큼은 한동안 세워 둔 자전거를 점검하고 오랫만에 도심을 가로지르는 철길숲길을 달렸다.철길숲길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포항 철길숲은 ‘2020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수상답게 주변에는 수십종의 나무와 화초가 자리잡았고, 특색있는 각종 조형물들이 적절히 배치돼 있다. 여러가지 테마길에 걸맞게 설치된 조형물들은 그 자체가 예술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0여년간 철마가 달리던 선로가 사람과 자연, 문화와 예술이 어우러지는 친환경 복합테마공간으로 거듭난 것이다. 그러한 길을 자전거로 누비며 다다른 곳은 송도해변에 위치한 포항수협 갤러리였다.포항수산업협동조합 문화갤러리에는 (사)환경미술협회 포항지회 창립전이 열리고 있었다. 미술을 통한 환경 사랑운동과 계몽운동에 목적을 둔 순수미술단체인 환경미술협회 포항지회 창립 전시회가 열리는 전시장을 찾은 것은, 필자 나름대로 환경의 중요성을 느끼며 친환경 캠페인에 동참하여 환경의식을 고취해보고자 함이었다. 전시장에는 각종 생활용품이나 자동차, 공구, 도구, 용품 등을 재활용하거나 이색적으로 재해석한 미술품, 설치물 등이 다양하게 반겼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나타내는 이미지와 글귀, 식탁에 올려지는 산해진미의 이면을 암묵적으로 나타내는 올가미 등의 그림이 환경보전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았다.특히 이색적인 것은 전시장 오른쪽 벽면을 가득 메운 ‘길바닥 껌 그림 친환경 캠페인 프로젝트’ 코너였다. 지난 10월 중순 환경미술협회 포항지회 회원들과 포스코 재능봉사단이 참여하여 길바닥에 버려진 껌딱지에 그림을 그려 50여일간 전시 후 11월 말경 껌 그림을 제거, 회수하여 껌 그림으로 ‘그린 리더 배지’를 만들어 봉사활동 참여자들에게 나눠주는 추억나눔 테마로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길거리 행위예술처럼 길바닥에서 껌 그림 친환경 퍼포먼스를 벌이는 모습을 통해 현대인들의 무심코 버려지는 양심과 이기적인 소비문화 행태에 경각심을 주고 환경사랑의 실천을 제시하는 이미지가 선명하게 다가왔다.인간과 환경은 물과 고기의 관계(水魚之交)이다. 자연스러움이 안정과 평온, 편안함을 가져온다. 일체의 생명과 생태변화의 장(場)인 자연을 가까이하는 친환경적인 요소와 시도야말로 우리 스스로를 가꾸고 지키는 최선의 방책이 아닐까 싶다. 자연과 교감하고 소통하는 친환경 미술을 운동으로, 문화로 유지, 발전시켜 환경 친화적인 공존의 삶을 꿈꾸는 작지만 큰 변화의 걸음이 고무적으로 여겨졌다.

2021-12-13

세 번째 스무살, 살맛나는 멋~!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수묵빛 세월의 흐름도 뉘엿뉘엿 세모(歲暮)의 긴 그림자를 드리워가고 있다. 요동치는 코로나의 난국에 살얼음판 걷듯이 불안하고 조바심을 태우며 앞만 보고 달려온 듯한데, 일월의 바퀴는 또 한 겹의 나이테를 물레처럼 감는듯 굴러가고 있다. 뒤돌아보면 책장같이 빼곡한 한 해 하루하루 일상들이 모이고 쌓여 이제 한 권의 책처럼 편철해야 하는 마무리 시점이라고나 할까?대나 갈대, 나무 따위의 줄기에서 생기는 마디는 세월과 사람에게도 있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무던한 세월은 무심치 않아 시간의 마디 같은 연륜을 쌓고 있고, 사람은 10대나 20대 등 나이대를 통칭해서 세대의 마디 같은 전환의 시기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다른 방향이나 상태로 바뀌거나 바꾸는 것을 뜻하는 전환(轉換)은 상황이나 여건에 따라 상당한 의미를 내포한다. 용기와 도전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낯선 설레임으로 새로움을 추구하는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세번째 스무살’ 프로그램은 삶에 대한 인식전환으로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려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경상북도가 주최하고, 경북문화재단과 경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주관하는 100% 국비 지원의 신중년 생애전환 특화사업이다. 2021년 경북 생애전환 문화예술학교 지원사업 ‘세번째 스무살’은 경북지역 신중년 세대를 대상으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스스로를 관찰하고 발견하며 청년시절 꿈꾸었던 숨은 열정을 다시 일깨워 삶을 전환하고자 기획됐다. 즉, 공모사업 신청자가 하고싶은 사업과 테마를 직접 선정하고 강사 초빙, 운영, 평가, 정산 등 일련의 과정을 참여자들이 자체 기획, 진행, 결과물 정리 등 일반 문화예술교육과는 확연히 차별성이 있는 참여 발굴형 문화예술 진흥사업이다. 이러한 시범사업의 운영으로 생애주기별 문화예술교육 실현의 기반을 마련하고, 경북 내 23개 시·군 지역 간 문화격차 해소와 창의적 문화예술 체험활동의 장려를 권장하고 있다.필자는 포항지역에 거주하는 시낭송가와 동화구연가 등과 함께 ‘살 맛나는 멋’ 팀명으로 ‘나를 노래하고 세상을 노래한다’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데, 갈수록 흥미와 재미가 쏠쏠하다. 투박하지만 나를 닮은 토기를 빚고 20대에 즐겨 외웠던 시를 자연 속에서 낭송하는가 하면, 아무런 생각없이 장작불 불멍을 때리며 심신을 이완시키기도 하면서 별 바라보기와 나에게 편지쓰기 등으로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마련, 몰입과 자각으로 내 마음을 풀며 새로운 나의 발견과 전환의 의미를 되새겨가고 있다. 그렇게 따로 또는 같이 먹고 살고 놀고 즐기면서 붓과 시낭송으로 세상과 소통하며 노래할 수 있으니, 정말 살맛나는 멋이 아닐 수 없다.거의 한 달 내내 축제같고 선물같은 나날을 보내면서 낯선 것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를 좀더 차분하게 넓혀가는 계기가 되는 듯하다. 나를 위한 쓰임에 한땀 한땀 생각과 마음을 담아 있는 그대로의 자기 인생과 마주하며 세번째 스무살을 충만하고 충분하게 정성껏 살기로 다짐해본다.

2021-12-06

변화와 모색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 올해도 이젠 달랑 한 달만 남았다. 코로나19로 인해 조마조마 위태위태 살얼음판 걷듯이 지내온 날들이 어느새 이다지 빨리 지나고 말았는지, 바람결 같은 세월의 흐름이 새삼 느껴진다. 들녘 길섶의 노란 야국(野菊)이 늦가을의 자락을 애써 잡는 듯해도, 서걱이는 몸짓으로 잔추(殘秋)를 배웅한 억새는 희디흰 손을 자꾸만 흔들어대고 있다. 늦은 가을이지만 늦지 않고, 또한 무엇이 거리낌이 있겠는가(晩秋不晩 又何妨)? 늦으면 늦은 대로, 빠르면 빠른 대로 그냥저냥 굴러가고 흘러가는 것이 세상의 시류가 아닐까 싶다.변화하는 일상들에 조금씩 익숙해져가는 나날이다. 낯설고 물설은 일들이나 환경도 시간이 흐르고 하나씩 접하다 보면 조금씩 적응이 되고 달가운 모습으로 다가와, 어쩌면 당연한 듯 새로운 일상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것은 마치 꽃향기나 어물전의 생선냄새를 맡고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다 보면 그 향이 이미 자신의 몸 속에 들어와 잘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환경과 여건에 자신도 모르게 움직이고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며 변화와 모색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리라. 천변만화하고 만상갱신(萬狀更新)하는 세상인데 어찌 변화를 거부할 수 있겠는가?우리는 분명 많이 달라진 세상에 살고 있다. 언제부턴가 물을 사서 마시고 파란 하늘이 그리워지는 미세먼지에 시달리는가 하면, 희대의 감염병으로 온 지구촌이 신음하며 불안과 암울의 안개에 갇힌 채 살아가는 듯하다. 환경은 이렇게 시시때때 변화하기 마련이고 세상만사가 녹록치 않음을 일깨워주기에, 우리는 이런 때일수록 유연하고 능동적으로 변화에 대응하고 이변에 적극적이고 긴요한 자구책을 마련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위협과 위험은 늘 있어왔고 모험과 위기극복은 동변상련의 마음으로 늘 함께 이겨 나가야 한다.점진적이고 단계적인 일상회복을 위한 ‘With 코로나’를 시행한지 한 달, 예견된 일이었지만 일일 신규 확진자가 4천명을 넘어서고 사망자, 위중증자가 역대 최다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생활영역을 조금씩 넓혀가며 방역 전환의 인식과 필요성, 생업 다중시설의 제한 완화, 방역 패스, 재택치료, 사회 경제적인 효과 등 위드 코로나로 가는 여정의 평형점을 찾기에는 아직도 숱한 난항이 있어 보인다. 기대와 우려 속에 출발했지만 두려움과 고민을 떨쳐버릴 수 없는 난국이다. 기본적이고 치밀한 방역의 토대 위에 높은 백신 접종률, 그리고 국민들의 자율적인 참여와 굳건한 의지가 순조로운 위드 코로나 일상의 관건이 될 것이다.위험을 범하고 모험을 시도하면서 도전과 성취의 역사를 쌓아온 인류에게는 코로나19가 크나 큰 시련이고 고비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자신의 변화와 주변의 개인 방역, 안전하고 철저한 방역지침을 지키고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단순히 예전의 일상을 회복하는 차원이 아니라, 더 안전하고 더 나은 일상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패턴을 정립해야 한다. 어쨌든 삶은 계속되고 앞으로 나아가길 원하기 때문이다.

2021-11-29

상생의 고리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바다와 인접한 공원 등성이에 특이한 조형물이 등장했다. 멀리서 보면 야트막한 산 위의 무슨 롤러코스트 같기도 한데, 가까이서 보면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도록 계단으로 이뤄진 공중의 길 같은 철구조물이 지난 주 후반에 공개됐다. 시간과 공간의 마법에 걸리게 한다는 이른바 ‘Space Walk’가 포항시 환호공원 산마루에 은빛 위용을 드러낸 것이다. 포스코가 ‘환호공원 명소화’ 계획에 따라 3여년 전부터 다각적인 검토와 설계, 제작, 시공을 거쳐 지난 주에 완공하고 제막과 함께 시민들에게 오픈한 것이다.스페이스 워크라는 작품명은 마치 우주공간을 유영하는 듯한 이색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는 뜻에서 이름이 붙여졌다. ‘클라우드(Cloud·구름)’라는 애칭처럼 예술 위, 구름 위에서 마치 공간과 우주를 걷는 듯 신비로운 경험을 하며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체험형 조형물이다. 이러한 조형물은 포스코의 기획으로 독일의 세계적인 부부작가 하이케 무터와 울리히 겐츠가 디자인하고 포스코건설이 제작, 설치하여 포항시민에게 기부한 국내 최대 크기의 체험형 작품이다. 주 재료는 포스코에서 생산한 탄소강과 스테인리스강으로, 자연재해의 이슈인 태풍과 지진 대비를 위해 구조설계의 기준을 강화해서 조형물의 안정화와 이용자의 안전성을 확보했다고 한다.조형물이 시민들에게 개방된 ‘Space Walk 시민 Open Day’는 그야말로 축제 같은 분위기였다. 축하비행 에어쇼를 비롯하여 노래와 연주, 댄스 등의 공연이 펼쳐지는가 하면, 한 켠에서는 초청된 시민들에게 조형물을 배경으로 인생샷을 찍어 액자로 만들어주고, 용기와 희망을 담은 글귀를 붓글씨나 캘리그래피로 써서 나눠줬다. 또한 풍선아트로 갖가지 모양을 만들어 흥미로운 즐거움을 주기도 하고 따끈한 붕어빵을 구워 출출한 배를 달래주는 한편, 행사장 입구와 주차장 등지에서는 교통안내와 인원통제를 하며 시민들의 첫 조형물투어가 안전한 가운데 흥미롭고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배려했다.이러한 일련의 나눔활동은 포스코 포항제철소 내 7개 재능봉사단이 참여하여 특유의 재능과 기량을 다양하고 특색 있게 펼친 것이다. 포항의 색다른 랜드마크가 될 조형물을 기부하고 오픈하는 자리에 포스코 직원들이 시민들에게 다채로운 이벤트로 즐거움과 기쁨을 안겨준 것 같아 고무적인 일로 여겨진다. 더욱이 2년째 계속되는 코로나19의 위축 속에 이와 같은 조형물투어는 일상의 돌파구 같은 문화적인 단비(?)가 아닐까 싶다. 포항제철소는 현재 총 41개 재능봉사단을 운영하며 임직원들의 특기와 기술을 이용하여 필요로 하는 곳에 맞춤형 재능봉사를 실시하는 등 사회적 배려계층에 대한 베풂과 나눔, 상생협력을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있다.스페이스 워크를 천천히 걸으며 철로 그려진 우아한 트랙의 곡선처럼 포스코의 제반 사회공헌활동이 지역사회 곳곳에 부드럽게 스며드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착실하고 더불어 함께 걷는 기업시민의 발걸음이 지역과 회사를 연결하는 상생의 가교로 작용해 사회공익가치로 온기를 더해가고 생기를 불어넣는 나눔문화의 고리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2021-11-22

詩낭송으로 피어난 ‘포항 12景’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늦가을의 언저리에 시의 향기가 그윽하게 피어났다. 툇마루 위에 달아 놓은 주홍빛 곶감이 대롱거리고, 기와 담장을 넘어선 담쟁이 넝쿨이 앙증맞게 반기는 작은 뜰에서 시와 가락의 향연이 소담스럽게 펼쳐졌다. 낭랑한 시낭송의 음색이 오후의 햇살 마냥 정갈하게 스며들고 구성진 민요와 시조창이 대금과 어우러져 흥겹게 흐르는가 하면, 피아노의 선율에 가곡이 더해지고 가녀린 듯 신명나는 춤사위까지 곁들여지니, 날아가던 새들도 감나무 가지에 다투어 내려앉고 기웃대던 오죽(烏竹) 잎새마저 서걱거리는 박수로 환호하는 듯했다.최근 포항시 남구 효자동의 한 서옥(書屋) 뒤뜰에서 열린 ‘시가 흐르는 뜨락(詩뜨락)’의 풍경이다. 시인을 초청해서 시낭송과 시 이야기를 나누고 독자와 소통하는 것이 주 테마지만, 때에 따라서는 이처럼 가락을 곁들이거나 연주를 더해 다채로운 감칠맛을 우려내기도 한다. 이러한 ‘시뜨락’은 시와 시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포항시낭송회의 시낭송가들과 함께 경향의 시인을 초대해서 시낭송회를 열고 시와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시낭송 토크이다. 공연장이나 실내가 아닌 뜨락에서 열리는 시낭송 마당이 신선하고, 문인과 독자가 시를 매개로 만나 교류하고 공감하며 문학과 시낭송 예술의 저변확대를 꾀하는 문화사랑방인 셈이다. 2019년부터 시작된 ‘시뜨락’은 이번에 여섯번째를 맞아 기북 출신의 오낙율 시인을 초대해서 시 나눔행사를 벌였다. 마침 11월 1일 오낙율 시인의 네번째 시집 ‘포항 12景’(문학공간시선)이 출간되어 축하를 겸해 펼친 시낭송 마당이 뜻있고 정겹게 여겨졌다. 이 시집에는 오낙율 시인의 서정적 자아를 통한 자아성찰과 존재 해석을 진술하는 76편의 시가 수록돼 있다. 오시인은 사회 현실을 관조하고 그것을 자기 철학과 신념으로 해석하고 진술하는 시를 쓰며 탄탄한 시세계를 구축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특히 이 시집은 제목에서 시사하듯이 포항의 명소 12경을 둘러보고 소박한 소감을 형상화한 것이 주목된다. 필자가 알기로는 지금까지 포항 12경에 대한 단편적인 시가 더러 쓰여지기도 했었지만, 연작시 형태로 ‘포항 12景’을 쓰고 시집명으로까지 내기는 처음이라고 본다. 그만큼 오낙율 시인은 지역을 아끼고 사랑하며 시적 대상이 되는 사물이나 생활현장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참여한 15여 명의 시낭송가들은 저마다 낭송할 시들을 가슴으로 품으며 특유의 음색과 호흡을 가다듬어 멋들어지게 낭송했다. 춘하추동 사계의 테마로 낭송할 시들을 구분해서 3~4명씩 배경음이나 하모니카 멜로디에 맞춰 낭송한 시들은, 하늘하늘 나풀나풀거리며 만추의 뜨락에 결 고운 음률의 수를 놓는 듯했다.이렇게 포항 12경이 시로 읊어지고 시낭송으로 울려 퍼짐은 퍽 고무적인 일이다. 더욱이 일상에서 문화를 향유하여 명실상부한 문화도시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포항시에서, 이와 같이 작은 음악회를 곁들인 시낭송회와 문인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시뜨락’ 행사는 문화로 너울지는 포항 만들기의 작지만 큰 발돋음이 아닐까? 문화는 삶이고 힘이며 지속발전가능한 미래이다.

2021-11-15

함께 한다는 것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 모든 것들이 차츰 제자리로 돌아가는 계절이다. 산자락 어딘가엔 열매가 익어 저절로 떨어지고 땀이 서린 들판엔 농작물을 거둬들이는 손길이 분주해진다. 풀잎이나 잎새는 마르거나 물들어가며 조락(凋落)을 기다리고, 벌레나 짐승들은 제 나름의 몸짓으로 먹이를 모으거나 땅을 파며 동장(冬藏)을 채비하고 있다.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입동이 지나선지 쌀쌀해진 날씨가 옷깃을 여미게 하지만,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길목의 미틈달은 결실과 수확, 정리와 준비로 제자리를 채워가는 시간이다.세상만물은 모두 제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구름이 흘러가다가 비를 내리듯이(雲行雨施), 자연은 만물이 두루 은택을 받아 잘 생장하고 완성된다. 천변만화하는 자연의 이치 속에 온갖 생명체는 생멸을 거듭하고 만남과 헤어짐은 다반사이다.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정체되면 발전이 없듯이, 우리는 환경과 사물과 사람과의 관계 속에 버물리고 제자리를 찾아가며 저마다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작고 변변찮은 미물도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면서 교감과 상호작용으로 자연 생태계가 유지되는 것이다. 미상의 바이러스도 공존할 수밖에 없는 환경과 여건이 세상을 움직여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코로나19라는 희대의 바이러스와 싸우며 버텨온지 꼬박 2년이 다돼 간다. 설마설마하던 바이러스가 공포와 불안의 회오리를 일으켜 지구촌은 신음과 침체의 늪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조마조마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덮친 엄청난 충격과 파장은 수많은 이변과 변화, 생소함과 이질적인 양상으로 나타나 혼돈과 암울의 안개를 여전히 묶어 두고 있다. 신중하고도 조심스러운 모색과 낯선 듯 익숙한 적응으로 난국을 헤쳐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단계적 일상회복’이 11월부터 전면적으로 이행되고 조금씩 삶의 제자리 찾기가 시작된 것 같다.단절과 고립을 걷어내는 포용적 방역관리로 국민들의 피로감을 감소시키고 사회, 경제 등 각 분야의 손실과 피해를 최소화시키며 새로운 일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적절한 시기의 조치로 여겨진다. 다만, 시민의 자율과 책임에 기반한 방역을 통해 모두에게 소중한 일상으로의 회복을 추진하여 ‘더 나은 내일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솔선수범과 배려와 존중, 신뢰와 공감으로 가정과 이웃을 함께 지켜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함께 한다는 것은 보듬고 감싸며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또한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다독이며 뜻을 같이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함께 한다는 것은 동반자적인 입장에서 서로가 어울려 위로하고 격려하며 같은 길을 함께 걸어간다는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가뜩이나 혼미하고 흉흉해진 세상일수록 우리는 자신과 서로를 챙기고 사랑하며 더불어 함께 지켜가는 아량과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피할 수 없다면 당당히 맞서서 받아들여야 한다. 도전과 응전의 역사가 말해주듯이 자연과 인간은 공생해야 공존할 수 있다. 어차피 바이러스와 공존하는 세상이라면, 희망과 행복의 바이러스를 불러들여 일상의 제자리를 되찾고 평온한 미래를 함께 열어 가길 기대해본다.

2021-11-08

가을의 선율에 젖어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산과 들의 빛 어림이 나날이 짙어 가고 있다. 산천의 초목이나 들판의 곡식들이 제 나름의 빛과 색으로 형형색색 물들어가며 가을날이 깊어 가고 있다.청록의 잎새들이 누르스름하게 변조되거나 발그스레하게 물들어가는 풍엽(楓葉)은, 어쩌면 내면의 소리와 울림을 조곤조곤 색조와 빛깔로 풀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빨갛게 타는 듯 일어나는 가을산의 단풍물결은 그리움의 밀어가 꽃불처럼 온 산에 울부짖듯이 활활 번져가는 것이 아닐까?정갈한 햇살이 부서지는 알록달록한 단풍숲에 들면 정말이지 어디선가 꼭 무슨 소리가 들리는 듯한 환청에 빠질 때가 있다. 노란 은행나무 숲길에서는 꾀꼬리의 고운 목청이 은행잎 마냥 나풀거리며 우짖는 듯하고, 굴참나무숲에서는 길쭉한 갈잎의 서걱거림이 중저음의 첼로소리로 내려앉는 듯하다. 또한 앙증맞은 단풍나무 숲을 거닐면 오색찬란한 재잘거림이 영롱한 별빛 속삭임으로 다가오는가 하면 낙엽지는 모습은 비올롱의 긴 흐느낌 마냥 처연하기만 하니, 자연은 빛과 색의 조화를 때때로 율(律)과 현(絃)으로 탄주하며 오묘함을 더해주고 있다.그래서일까? 코로나의 와중이지만 다채로운 가을에는 유난히 음악회가 많다. 정기연주회나 음악 발표회, 길거리 음악제, 산사음악회 등의 음악잔치가 지난 10월부터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코로나19에 저당 잡힌 갑갑한 일상의 환기구나 탈출구로 여겨 소리와 가락의 흥취에 빠지다 보면, 잠시나마 음악이 주는 선물 같은 평온과 위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굳이 이름난 음악회가 아니더라도 혼자서 콧노래를 흥얼거린다거나 길거리 버스킹 등에 눈과 귀를 열다 보면, 가볍고 편안하게 멜로디에 젖어 들어 손뼉을 치고 어깨를 들썩이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음악에는 공감의 흥이 있고 치유의 힘이 있다.지난 주말 교외의 한적한 카페 잔디마당에서 열린 작은음악회는 소박하면서도 정겨웠다. 출연자 중심으로 초청, 진행된 소소한 음악회는, 관객이 출연자가 돼서 준비한 레퍼토리를 발표하고 서로 격려와 응원으로 흥을 돋구는 가족 같은 분위기의 음악 나눔 마당이었다. 가요, 국악, 기타, 색소폰, 하모니카의 선율이 폭포수나 실여울처럼 흐르며 강렬하면서도 잔잔하게 지친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했다. 또한 시월의 마지막 날에 열린 산사음악회는 ‘위드 코로나’를 맞이함(?)인지 지역과 중앙의 인기가수와 탤런트, 작곡가, 연주자 등이 출연해 관객들과 함께 깊어 가는 가을의 낭만을 한껏 즐겼다. 특히 오프닝 공연으로 포항시낭송회 낭송가가 우정 출연해서 윤동주의 ‘별 헤는 밤’과 지역의 오낙율 시인의 ‘포항 12경’을 차분하고 멋드러지게 낭송해 음악회의 품격을 더하기도 했다.포항시는 철의 선율로 문화도시 기반 조성을 위한 순수예술 진흥 프로젝트(주제 ‘기억의 시작’)로 11월 5일부터 11일까지 포항음악제를 개최한다. 시민들의 다양한 문화 향유권 조성과 고급화된 문화 수요에 부응하며 화려한 라인업으로 볼거리, 들을거리가 가득할 것으로 보인다. 음악과 함께 코로나의 시름을 털어내며 즐겁고 행복한 가을의 선율에 흠뻑 젖어보면 어떨까?

2021-11-01

소통과 ‘쇼통’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지난 21일, 누리호 발사를 앞둔 나로우주센터 발사통제실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고 한다. 긴장을 하며 발사준비에 신중을 기하고 있던 통제실에 난데없이 이벤트기획사 직원들이 뛰어다니며 방송 중계를 위한 무대를 설치하느라 시장통을 방불케 하는 소란을 피웠다는 것이다. 김정숙 여사를 대동한 문재인 대통령이 현장에 나타나 누리호 발사에 대한 대국민 메시지 발표를 하기 위해 생긴 일이었다. 한 참석자는 “대통령의 성명 발표 뒷배경이 허전하자 기획 책임자가 누리호 발사를 담당해 온 과학기술자들을 뒤에 ‘병풍’으로 동원하기까지 했다”고 볼멘소리를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물론 현장을 지휘한 사람은 이벤트의 달인(?)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이었다고 한다.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천명했다. 주요 사안은 언론에 직접 브리핑하고,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광화문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그러나 임기가 끝나가는 지금 그 약속은 공약(空約)이 되고 말았다. 그 대신 ‘쇼통’이란 신개념의 정책(?)을 펼친 대통령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됐다. 국민들과 직접 토론이나 기자회견 등으로 소통하는 대신 마치 쇼(show)를 하듯 일방적으로 보여주기 이벤트를 연출하는 걸 비꼬는 말이 ‘쇼통’이란 신조어다. 그런 전시행정이란 집권자의 치적이나 이미지를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실을 왜곡하거나 과장하기 마련이다.보여주기 이벤트는 이른바 ‘감성팔이’로 효과를 극대화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판문점 도보다리 이벤트였다. 가설된 나무다리를 남과 북의 정상이 다정하게 걷는 장면은 많은 국민들에게 벅찬 감격을 안겨주었다고 한다. 북한이 당장이라도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으로 나서서 남북통일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될 것 같은 환상을 갖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벤트였다. 당연히 문재인 대통령의 인기는 노벨평화상을 거론할 정도로 고공행진이었다.하지만 김정은의 처지와 속내를 짐작하는 사람들은 ‘4·27 공동선언문’ 따위는 허울 좋은 말잔치에 불과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예상한 대로 핵무장을 더욱 강화하는 근본적인 정책 노선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쇼통의 또 한 가지 전략은 ‘숟가락 얹기’라고 한다. 워낙에 내 놓을 만한 업적이 없을 경우 남이 이룬 성과에 편승해서라도 낯을 내보려는 수작을 말한다. 지난번 굳이 가지 않아도 될 미국 방문을 하면서 요즘 한창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방탄소년단을 대동한 것이 바로 그런 예가 될 것이다. 얼마나 국제무대에서의 존재감에 자신이 없었으면 연예인들을 동원해서 체면을 살려보려는 생각을 했을까.문 정권 초기에는 탁현민이라는 이벤트 전문가를 기용해서 ‘쇼통’의 정책으로 상당한 효과를 누렸다. 하지만 상식이 있는 국민들은 그것이 자화자찬의 홍보 외에는 실익이 없는 쇼에 불과하다는 것을 눈치 채기 시작했다. 쇼는 쇼일 뿐 현실이 아니다. 쇼가 주는 감동의 효과는 현실에 부닥치면 사그라진다. 그리고 그런 이벤트는 거듭할수록 효과가 줄어들기 마련이다.소통 대신 ‘쇼통’으로 대통령 임기를 다한다면 우리는 그를 ‘쇼통령’이라 부르게 될 것이다.

2021-10-28

감나무와 새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 무엇을 해도 좋을 가을날이 정갈하게 여물어간다. 억새가 손짓하는 산과 들을 찾아 깊어가는 가을날의 정취에 젖어보는 것도 좋고, 도시의 한적한 공원 벤치에서 책을 읽기에도 좋으며, 풍성한 축제마당에 빠져 코로나 블루의 갑갑증을 떨쳐버리는 것도 좋을 일이다. 풍요로운 계절에 마음마저 넉넉해지는 때가 되면 유난히 먹거리에 대한 추억이 감미로움을 더해 주기도 한다. 그 중의 하나가 가지마다 주황색의 등을 켜는 감에 대한 얘기다.유년시절의 가을, 고향집 뒷밭과 언덕에는 온통 주홍빛 감이 오지게 익어가고 있었다.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상강(霜降)이 지나면 논밭의 모자라는 일손을 거드는 것도 중요했지만, 한편으론 다 익은 감을 따서 껍질을 벗겨내고 곶감으로 말리거나 큰 단지에 감잎과 함께 탱탱한 감을 켜켜이 쟁여놓는 일을 할머니와 수시로 하곤 했었다. 냉장고가 아직 보급되지 않아서 겨울날의 꿀맛 같은 별미와 허기를 달래기 위한 채비를 가을부터 했어야만 했던 시절이었다.감조리개를 이용하거나 큰 감나무에 올라서 감을 따는 일은 결코 만만찮은 일이었다. 긴 대나무 장대 같은 막대기 끝에 V홈을 파서 감이 달린 가지를 끼워 돌리는 방식으로 꺾어서 감을 따는 것은, 장대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팔의 힘과 끝부분을 가지에 정확하게 맞추는 집중력이 있어야 했다. 또한 ‘감나무에서 떨어지면 약도 없다’는 말처럼 약하고 미끄러운 가지를 잡거나 디디고 감을 따는 것은 위태롭기 이를ㅑ 데 없었지만, 공중곡예(?) 하듯이 노련하게 손발을 옮겨가며 몇날 몇일 감을 따야만 했었다. 그렇게 감을 따다 보면 더러 홍시도 나오기 마련인데, 감밭에서 먹는 홍시는 그야말로 꿀보다 더한 맛이랄까! 그러한 꿀맛 같은 감 맛이 어릴 때부터 입에 배어선지 필자는 감나무에 대한 애착이 유난히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좁지만 우거(寓居)의 뜰에는 감나무가 십 수년째 네 그루나 자라고 있다. 해마다 이맘 때면 담장 곁으로 단감이나 대봉감이 익어가는 모습에서 입맛을 돋구며 은근 슬쩍 한 개씩 따먹곤 했었는데, 아뿔싸 올해는 그러한 기대가 무너지고 말았다. 수년째 까치밥을 먹는 재미삼아(?)로 봄날부터 집을 찾아드는 몇 종의 새들이 감이 채 익기도 전에 먹잇감으로 쪼아먹어 거의 모든 감들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새들의 지저귐이 그저 좋고, 때에 따라 새들의 미세한 움직임에서 미묘한 소통의 방식까지 읽게 된 필자로서는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었다. 아마도 새들끼리는 “저 집에 가면 목을 축일 수 있는 물이 항상 있어” “가을이면 맛있는 감들이 우릴 기다려” 라고 짹짹거리며 자주 폴폴 날아와 떫은 대봉감까지 저지레를 한 것으로 보인다.먹이를 가까운 곳에서 쉽게 구하며 재잘대는 새들이 가을의 한자락을 앗아간 것 같아 약간 떨떠름(?)하지만, 새들과의 공생은 마냥 정겹고 아름답지 않을까?

2021-10-25

詩가 흐르는 古宅에서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 시월 초순 저녁답, 고즈넉한 고택마당이 부산해졌다. 한쪽에서는 전(煎)을 부치거나 어묵 끓이는 냄새가 구수하게 진동하고, 다른 편에서는 야외무대에 현수막을 설치하며 음향시설을 준비하는 등 무슨 잔치라도 벌이려는 듯 하나씩 구색을 갖춰가는 모양새가 바쁘기만 하다. 이쪽저쪽 두리번거리며 일손을 돕던 몇몇 사람들은 막걸리를 몇 잔씩 들이켜고는 김이 설설 나는 정구지전을 손으로 쭉쭉 찢어 안주삼아 먹기도 하는 등 벌써부터 분위기에 들뜨는 듯했다.이윽고 어둠이 내리고 풀벌레 합창의 선율 속에 설장고 가락의 들썩임으로 오프닝 되면서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됐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 아슴하게 찾아 들고 마종기의 ‘우화의 강’이 담담하게 흐르는가 하면, 코로나19의 딜레마에 고정희의 ‘상한 영혼을 위하여’가 지친 마음을 어루만지면서 정호승의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는 시의 울림이 역경의 고비(苦悲)를 이겨내는 용기와 희망의 북돋음처럼 전해졌다. 거기에 그윽한 대금소리가 심금을 파고드는 듯 구성진 시조창이 끊어질 듯 이어지며, 들숨과 날숨으로 경쾌하게 여울지는 하모니카 멜로디 ‘숨어 우는 바람 소리’가 고택의 마당을 휘감는 듯했다.이러한 레퍼토리는 경북문화재단 지역문화활성화 지원사업으로 진행된 코로나 극복 기원 힐링 콘서트로, 포항지역의 박기영 시낭송가가 기획·연출한 ‘시(詩)와 음악(音樂)이 흐르는 고택(古宅)을 거닐다’의 부분적인 행사 정경이다. 이 행사에는 (사)시 읽는 문화와 포항시낭송회의 시낭송가와 초청 게스트, 주민 등이 참여해 세계문화유산인 경주시 양동마을 만호고택에서 소박하면서도 다채롭게 열렸다. 넓직한 마당 한 켠에는 국화와 쑥부쟁이가 소담스레 피어 반기고 옛적의 흐릿한 등잔불 마냥 정겨운 불빛이 얼비치는 고택을 배경삼아 시를 읊고 시조창을 하며 대금과 하모니카 소리를 울려 퍼지게 하는 것은, 정말이지 고색창연함 속에 설레임으로 즐기는 이색적인 풍류가 아닐 수 없었다.더욱이 시낭송에 어울리는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맵시나 남·여고생 교복 또는 기타 고상한 차림 등으로 저마다의 표정과 몸짓을 시의 행간에 담아, 흐르는 배경음에 매끄러우면서도 차분하고 애절하고 청순가련하게 읊조리는 목소리는 시의 감칠맛을 한껏 더하며 시 나눔의 마당을 고조시켰다. 그 즈음 툇마루 밑의 아궁이에서 지피는 군불로 몽실몽실 피어나는 연기는 매캐한 냄새와 함께 고택 곳곳에 운무처럼 스며들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까지 했다.그렇게 보낸 두 시간여 시낭송과 음률의 흥취 속에는 별빛도 내려앉고 밤이슬도 내려앉아 모두가 촉촉함에 젖어드는 감미로운 어울림의 마당이었다. 양동마을 이장까지 시종 참관하여 깊은 관심 표명과 문화적인 발전방향의 덕담까지 해줘서 눈길을 끌었다. 이렇듯 문화는 생활 속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함께 즐기고 누리며 만들어갈 때 활성화되는 것이리라.

2021-10-11

일상을 축제처럼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한창 가을날이 익어가는 시월은 밝달뫼에 아침의 나라가 열린 달이라 해서 하늘연달이라 하기도 한다. 양떼구름, 새털구름을 띄우는 하늘은 점차 높푸르러 가고 들판엔 황금물결이 일렁이는가 하면, 산에는 조금씩 초록에 지쳐가는 잎새들이 슬며시 물들어가는 듯하다. 멀지 않아 천자만홍, 만산홍엽으로 결실과 단풍을 부를 계절은 저마다의 색과 빛과 몸짓으로 한바탕 신명나는 축제라도 펼칠 참이다. 이 같은 자연의 변조에 어우러져 유난히 축제가 많은 10월은 문화의 달이기도 하다.미증유의 코로나19가 축제의 발목을 잡아온지 벌써 2년째, 그러나 언제까지 코로나만 탓하고 움츠리며 몸만 사릴 것인가? 궁하면 통한다(窮則通)고, 없으면 없는 대로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살아나갈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삶이 아닐까 싶다. 축하와 제전의 의미를 담아 문화, 예술, 체육 따위와 관련하여 성대히 열리는 사회적인 행사인 축제(祝祭)는, 사람 사는 세상의 중요하고 긴밀한 연결과 화합의 요소라 할 수 있다. 축제를 통해 사람들의 유대와 소통은 활발해지고 협력과 일체감은 강화된다. 또한 축제는 밝은 내일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지향하는 문화, 관광, 예술 전분야의 핵심적인 성장동력이 되기도 할 것이다.이러한 순기능적인 측면의 축제가 명맥을 기약할 수 없을 정도로 코로나의 위협을 받고 있으니 고민과 착잡함이 빠져드는 현실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주변 분위기와 처한 여건을 고려한 합리적인 대안과 유효적절한 아이템으로 축제의 다변화된 양식을 선보이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비대면, 비접촉 상황임을 전제한 온라인 축제나 가상공간에서 이뤄지는 이색 테마 등은 한결 축제의 다양성과 흥미로움을 유발할 것이다. 실제 문경찻사발축제 등이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곳도 이미 있다.‘문화의 달’답게 포항에서는 지역과 전국 규모의 굵직한 축제가 풍성하게 열리고 있다. 지역의 고유한 ‘일월 정신문화 전승’ 차원에서 격년으로 열리는 제14회 일월문화제와 ‘생활문화 백신(100 Scene)으로 만나는 새로운 일상’을 주제로 10월 4일부터 일주일 간 개최되는 ‘2021 전국생활문화축제’가 그것이다. 특히 전국생활문화축제는, 지난 2014년부터 매년 가을에 열리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생활문화축제로 전국 시군구 5천여명의 생활문화인들이 비대면으로 접속하여 각 지역의 다양한 생활문화를 공유하고 교류하는 축제의 장이다. 올해는 제8회째로 포항을 메인 스튜디오로 하는 메타 유니버스와 생활문화TV온오프라인 등으로 전국을 연결해 다채롭게 진행되고 있다.이러한 일련의 축제를 통해 지역문화의 고유성과 다양한 생활문화의 가치를 이해하고 문화를 새롭게 발견하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일상을 살고 있는 지역민과 전국의 생활문화인에게 위로와 안부를 전하며, 아울러 문화와 예술을 즐기고 누리면서 용기와 희망을 가져 보길 기대해본다. 일상의 쉼표에서 문화를 느끼며 축제장의 만남을 통해 코로나19의 답답함을 해소하는 기회로 여긴다면, 삶이 한결 여유롭고 향기롭지 않을까? 매일매일 숙제(?)하듯이 살지 말고 일상을 축제처럼 즐기며 살아보면 어떨까?

2021-10-04

나다움을 찾는 길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 바람의 구름밭 쟁기질로 하늘은 점차 높푸르러 가고 있다. 간혹 때아닌 먹장구름이 몇 차례 소나기를 흩뿌리기도 하지만, 이내 뭉실뭉실 피어나는 구름이 한가로이 가없는 하늘을 유영하며 추분(秋分) 지난 가을날을 열어가고 있다. 모처럼 맞이한 긴 추석연휴가 끝나고 가을의 본령에 접어드는 9월이 마무리돼 가는데, 코로나19의 급증세가 여전히 불안과 음울의 사슬을 시퍼렇게 하고 있으니 초조함을 떨쳐버릴 수 없다.초조와 불안에 직면에서는 차분함과 평온함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급급한 현실에 동동거리며 날뛰는 경박함 보다는 침착하고 신중하게 상황을 직시하며 새로운 묘안과 지향점을 모색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싶다.걷잡을 수 없이 장기화되는 ‘코로나 블루’ 속에서도 얼마든지 자신과 주변을 살피며 안정과 위무를 삼을 계기가 많다고 본다. 그에 이르는 길 중의 하나가 ‘나다움’을 찾는 길이다.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나다움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라 할 수 있지만, 결코 하루 아침에 찾아지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좋아하거나 재미있어 하는 것과는 달리 힘들어도 견딜 가치가 있다고 느껴지는 일, 작지만 일상의 만족과 기쁨이 보람으로 연결되는 일, 남들이 외면해도 자신의 주관과 안목으로 가슴이 뿌듯해지고 스스로가 좋아지는 일 속에는 나를 나답게 만드는 나침반이 숨어 있다고 본다.그러한 마음 속의 나침반이 우리를 더욱 생각하고 탐험하게 이끌어 꾸준한 각도로 자신을 변화시키면서 나다움의 궤도에 진입시키지 않을까 싶다. 그것은 곧 부단한 도움닫기로 꿈의 현실화에 근접시키는 일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나다움은 입맛에 잘 맞는 음식이나 몸에 어울리는 옷처럼 자연스럽고 편한 것이다. 주변의 환경이나 숱한 경험 속에, 자신의 취향이나 스타일에 걸맞는 생각과 행동으로 자신만의 색깔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 진정한 나다움의 표상일 것이다. 그러한 바탕에는 학습이든 업무든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을 ‘내가 좋아하고 재미있어 하는 일’로 바꿔 나가는 인식의 전환과 간단없는 노력이 중요하다. 어차피 사람은 남들이 뭐라하든 자신이 좋아하고 의미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從吾所好) 바를 추구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장자는 자신만의 편안한 쾌적함을 넉넉하게 누린다(自適其適)고 했는지도 모른다.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스마트폰과 한몸이 되어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무엇인지 모를 조급함과 고단함 속에 허우적거리며 안정과 균형을 바라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더욱이 2년째 세상을 옥죄이는 괴질의 난맥상에 지칠 듯 무기력해지는 일상에서 그나마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망중한의 여유를 느끼며 마음의 안정을 찾아보면 어떨까?인생은 참다움을 찾는 여행이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하는 방향으로 모험하고 인내하고 도전하는 여정이 행복에 이르는 나다움의 길이라고 본다. 참다운 나다움이 자신의 삶을 풍요롭고 향기롭게 가꿔 주리라.

2021-09-27

기술인의 쾌거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한, 두 차례 비가 오고 나니 하늘은 더욱 높아지고 푸르름을 더해간다. 정갈한 햇살과 선선한 바람 결에 들판의 알곡이 여물어 가듯이, 도처에서는 이러저러한 선행과 희소식이 들려온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죽장면의 수해현장을 근 4주째 빠짐없이 찾아 복구와 지원의 일손을 보태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기술인의 최고 영예라 할 수 있는 ‘대한민국명장’ 선정 등의 기쁜 일들이 잠시나마 코로나의 시름을 잊게 해준다.대한민국명장이란 산업현장에서 최고 수준의 숙련기술을 보유한 기술자로서, ‘숙련기술장려법’에 따라 숙련기술 발전 및 숙련기술자의 지위 향상에 크게 공헌한 사람을 지칭한다.이러한 제도는 1986년부터 시행돼 고용노동부에서 고시한 37개 분야 97개 직종에서 15년 이상의 경력자를 대상으로 기계, 재료, 전기, 통신, 조선, 항공 등의 산업분야와 금속, 도자기, 목칠 등의 공예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숙련기술을 가진 사람을 대상으로 서류, 현장심사를 통해 선정한다.국가가 인정한 최고의 장인(匠人)이기에 선정되기까지는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 보다 어렵고 경쟁이 치열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대한민국명장에 포항지역의 명문사학 출신의 포스코 기술자가 선정돼 화제와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그 뿐만이 아니라 2명의 우수숙련기술자 선정을 비롯하여, 이미 2015년에 대한민국명장에 선정돼 산업과 국가 발전에 공로가 인정되는 자에게 수여하는 ‘산업포장’까지 이번에 함께 받아서 경사를 더했다. 특히 4명 모두 같은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출신의 15회 동기생으로 포항제철소에 재직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이채롭기만 하다.우수숙련기술자와 대한민국명장에 선정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고초가 있었을까? 수 없는 학습과 좌절, 부단한 인내와 의지로 현장에서의 기술력과 활용성의 가치를 드높이며 정성과 최선을 다한 쾌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노력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듯이, 어쩌면 서럽도록 힘겨운 노력과 눈물겨운 정성이 빚은 선물 같은 결실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교육은 백년대계(百年大計)라 했던가. 포철공고는 어느덧 반세기의 역사를 가지고 국가산업정책에 부응하는 고급인력 양성, 전문성과 인성을 겸비한 철강분야의 융, 복합 전문기술교육으로 4차 혁명시대를 이끌 창의적이고 자기 주도적인 인재를 육성, 배출하는 명문사학으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다. 많은 변화와 성장의 50년 역사 속에 전국적으로 1만5천여명의 동문들이 산업현장과 문화예술계 등 각계각층에서 저마다의 재능과 기량을 발휘하며 소임을 다하고 있다. 대한민국명장 선정과 산업포장 수훈은 이러한 맥락에서 포공인(浦工人)의 저력을 만방에 드러낸 명문교육의 소중한 결실이다.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큰 일을 이루기 어렵듯이(人無遠慮 難成大業), 특히 교육이나 인재양성은 먼 장래를 내다보며 원대한 계획과 치밀한 준비로 지속적인 창의와 혁신이 있어야 개인의 성취와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2021-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