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탓일까? 춥다가 풀리기를 반복하면서 간간이 한반도를 뒤덮는 미세먼지가 코로나19로 침울해진 가슴에 갑갑함을 가중하고 있으니, ‘삼한사미’가 괜한 푸념이 아닌 듯하다. 겨울의 불청객 같은 미세먼지의 가림막(?)으로 새해 들어 적잖은 화재와 사고로 무고한 종사자들의 생명을 앗아가 안타깝기만 하다. 어쩌면 무덤덤한 일상 같지만 날씨의 변화에서부터 사회적인 현상이나 개인적인 생활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행위와 움직임 속에는 예기치 못한 일들과 사고로 이어지는 불행이 숱하게 일어나고 있다. 문제는 마르고 닳도록 강조하고 감독과 제재를 가하는데도 고질적인 사고의 연결고리를 끊지 못하는데 있다.
안전(安全)이란 단어의 안(安) 자는 ‘집 속에 여자(사람)가 고요히 앉아있는 모양’이라 하여 평안함이라 설명하고, 전(全) 자는 아무 데도 흠이 없는 구슬을 지칭하여 모두 가지런한 일을 나타낸다. 즉 안전이란, 일상이건 직장이건 사회생활이건 모두 집 안에 사람이 편안하게 있는 것처럼 위험이 생기거나 사고가 날 염려가 없을 정도로 여건이 바뀌어 달라지지 아니하고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태나 행위는 모두 사람으로부터 비롯된다. 주위의 여건을 만드는 것도, 대상을 이용하는 주체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안전은 사람으로부터 시작되고 사람으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거의 모든 사고는 사람이 야기하고 인적, 물적인 피해를 스스로 입게 된다. 그러한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왜 자가당착(自家撞着)한 사고나 재해가 집요하게 꼬리를 무는 걸까? 필자의 관점에서는 시스템과 비용적인 측면이 가장 크다고 본다. 모든 것은 일차적으로 자신이 안전해야 하며, 안전해진 개개인이 모이면 부분과 전체의 안전이 확보되어 안전한 상태를 유지하고 안전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안전한 조직’과 ‘안전한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여기에 공기단축이니 비용절감 같은 요소가 대두되고 관행이나 불감증이 파고들면 철통 같은 안전체계에도 구멍이 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학문에 왕도란 없듯이 안전에도 절대 왕도가 없다. 철저하게 시간과 노력으로 쌓아가고 의식과 시스템으로 하나하나씩 이뤄가야 한다. 안전과 건강에 관련된 것은 더 까다롭고 꼼꼼하게 작은 것 하나라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는 ‘엄마 같은 마음’과 자세가 중요하다. 예측할 수 없는 재앙은 없듯이 안전 앞에서는 설마나 예외도, 우연이나 요행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27일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안전은 배워서 같이 알아야 하고 안전 시스템을 철저히 이행하며 최우선 가치로 공감하는 ‘안전 마인드 셋’이 필요하다고 본다. 안전을 지키지 않는 것은 동료와 가족을 지키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내가 지키는 것들이 나를 지켜 주듯이, 안전은 처방이 아닌 예방이 우리 가족 행복의 확실한 보증수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