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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침과 스밈

등록일 2022-05-23 18:07 게재일 2022-05-2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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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연초록 수채화 같은 5월이 벌써 하순으로 접어들어 초목의 두터움 속에 어느새 초여름으로 치닫고 있다. 경쾌한 새소리가 새벽을 깨워주고, 정갈한 햇살과 훈향의 바람이 푸른 오월을 구가하고 있으니, 어디를 가거나 무엇을 해도 좋을, 그야말로 네 가지의 아름다움(四美)이 꿈결처럼 찾아드는 때가 아닐 듯싶다. 이른바 좋은 시절(良辰)에 아름다운 경치(美景)를 감상하고 마음껏 즐기며(賞心), 즐거운 일(樂事)을 더불어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언제부턴가/자명종 같은 새소리가 두드리면//깃 터는 아침이/선물처럼 다가와//샘솟는/환희의 빛살/온누리에 뿌리네//터질 듯한 음조로/하루를 탄주(彈奏)하느니//초목의 푸르싱싱/새들의 무정설법(無情說法)//오롯이/추임새 삼는/꿈을 향한 날갯짓” -拙시조 ‘새소리로 여는 아침’ 전문

야산과 인접한 우거엔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온갖 새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그러다 보니 새벽부터 재잘거리는 새소리에 하루가 시작되고, 밤하늘에 퍼지는 밤새 소리에 그 날을 마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같은 새소리라 하더라도 참새처럼 그냥 짧고 가볍게 스쳐가는 지저귐이 있는가 하면, 뻐꾸기나 소쩍새처럼 구슬픈 듯 애틋하게 깊이 들리는 새들의 울음도 있다. 새소리의 음절이나 음색, 음역이 각기 다르고 사람의 청각으로 받아들여지는 느낌과 마음의 울림 정도가 저마다 상이하기 때문이다.

흔하게 듣는 새소리가 이럴진대, 사람사는 세상에는 오죽이나 복잡미묘한 소리와 별의별 울림들이 난무할까? 자신의 주관에 따라 자기본위로 제 목소리를 내며 살아가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제 각각의 목소리를 내거나 들으며 살다 보면 자신의 음색과 비슷하거나 편안하게 어울리는 음률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마치 자신이 즐겨 부르는 노래나 듣기를 좋아하는 곡을 선호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마음이 통하고 뜻과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리고 정을 나누며 공생가치를 추구하는지도 모른다. 같은 무리끼리 어울리며 서로 사귄다는 유유상종(類類相從)은 결국 물이유취(物以類聚)나 초록동색(草綠同色)처럼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생각이나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스스럼없이 어울리게 된다는 뜻이다.

시절인연(時節因緣)처럼 인생행로에는 인연에서 비롯되는 온갖 현상과 만남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부지기수 나타나고 만나는 사물이나 사람들은 대부분 돌차간 스쳐 지나는가 하면, 찰나의 마주침 속에서 부침하며 절로 스며드는 경우도 더러 있다. 물체의 공명으로 울림이 커지듯이 사람은 공감으로 투합이 많아지게 된다. 소통과 공감으로 상호관계가 합치될 수 있음은 동조와 합심으로 한배를 탄다는 의미이다. 건성의 비위맞춤이 아닌 진솔한 이심전심으로 마음에 스며든다는 것이다.

풍파가 그칠 날이 드문 세상살이는 자신의 이해타산에 따라 이합집산이 많은 곳이다. 위선자의 가식적인 행위나 위정자의 언행에는 무릇 새소리만큼의 무구함이나 명징한 울림이 있기라도 하는 걸까? 스치면 인연, 스며들면 사랑이 됨을 명심하여 관계의 소중한 가치를 함께 누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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