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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聖과 惡 경계를 뛰어넘는 신라여인 미실, 21세기로 데려오다

아득한 옛날 서라벌. 선덕·진덕·진성 등 3명의 여왕과 비교해도 좋을 만큼 큰 권력을 누렸고, 수로부인과 더불어 ‘가장 아름다웠던 신라 여성’으로 손꼽히는 사람. 외형적 미와 함께 내면의 지혜까지 갖췄기에 생의 어느 한 순간도 사랑받지 않았던 적이 없는 여자. 바로 ‘미실’이다.논란과 주목, 부러움과 질시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이 여성을 ‘화랑세기’라는 책에서 세상 밖으로 꺼내놓은 이는 소설가 김별아(49).제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장편소설 ‘미실’의 작가인 그녀를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폭염이 지속되던 7월 말 서울에서 만났다.오후 4시쯤 시작된 인터뷰는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김별아는 ‘6세기 신라 사회’와 ‘일찌감치 능동적 삶을 실천한 여성 미실’ 여기에 더해 ‘역사소설 쓰기의 어려움과 즐거움’ ‘21세기 페미니즘 운동의 바람직한 방향’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줬다.가장 신라적이자 가장 현대적 여성여성작가의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세상 앞에 당당했던 미실의 욕망오늘날 여성에게 시사하는 바 있어-당신은 6세기 말과 7세기 초를 살았던 신라 여인 ‘미실’을 21세기 사람들의 관심 속으로 끌어들인 작가다. 어떤 매력이 미실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는가.△ 미실은 역사에 없었고 기존에 알려진 여성 전부를 뛰어넘는 캐릭터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뿌리박힌 여성에 대한 이분법 즉, 성녀/악녀, 어머니/요부라는 규정을 훌쩍 넘어서는 존재다. 선악으로 분별할 수 없고, 아름다움을 무기로 거침없이 사랑을 쟁취했으며 스스로 권력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처럼 가장 신라적인 여성이자 시대를 건너뛴 현대적 여성에게 관심이 갔던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장편소설 ‘미실’은 1억 원의 상금을 내걸었던 세계문학상의 첫 번째 수상작이다. 역사, 좀 더 미시적으로 말하자면 ‘역사 속 여인’을 소재로 문학상 응모작을 썼던 이유가 있는지.△‘미실’은 내가 역사를 소재로 쓴 첫 번째 소설이다. 등단 후 10년간 개인적 체험을 바탕으로 작업하다가, 자기 고백을 넘어 독자들과 소통하기 위해 소재를 다각화할 필요성을 느꼈다. 역사는 이야기의 보물창고다. 그러나 현재 남아있는 역사는 남성과 승자의 기록이다. 여성과 약자의 이야기가 합해져야 온전한 역사가 되지 않을까? 기존의 역사를 소재로 한 소설들 또한 주로 남성 작가에 의해 쓰였기에 나 자신이 여성 작가로서 새로운 시각으로 할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했다.-미실이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화랑세기’ 필사본은 아직도 ‘진위 논란’ 속에 있다. 그 논쟁과 별개로 이 책의 매력이 무엇이라고 보는가.△‘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갇힌 고대사의 지평을 넓혀줬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유교가 장악하기 전 고대 신라의 사상과 문화와 풍속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유불선(儒佛仙)을 뛰어넘은 ‘풍류’라는 현묘한 도의 실체가 드러나 보이는 것도 매력이다. 학계의 고고학적 연구가 보강돼 진위 논쟁이 학문적 지평을 넓히고 고대 사회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몇몇 논문을 보면 미실이 살았던 신라 사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여권’이 신장되고, ‘성적’으로도 개방적이었던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떤지.△중요한 건 고대 사회를 이해하는데 현대의 기준, 윤리와 제도의 잣대를 들이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신라시대의 ‘여권’이나 ‘성적 개방’이 지금 쓰는 말뜻 그대로였을 리 없다. 생산성이 낮았던 고대엔 열악한 삶의 조건 속에서 생존과 번식을 위한 생명력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남녀의 분별이나 도덕적 질서만을 내세워서는 후손인 우리들이 지금 살아남지도 못했을 것 아닌가. 신라는 그런 원초적이고 자연적인 에너지를 국가적 힘으로 활용했다고 본다.-단편적인 자료와 고문헌의 몇 줄 문장을 토대로 장편소설을 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미실’을 집필하며 가장 힘들었던 점은.△역사를 소재로 한 소설이었기에 사료를 찾아 공부하고 정리하는 게 가장 복잡하고 어려웠다. 특히 고대사는 자료 자체가 많지 않아 신라뿐 아니라 고구려와 백제, 중국과 일본의 연구서까지 뒤져봐야 했다. 최대한 정사(正史)를 훼손하지 않는다는 내 나름의 창작원칙 때문에 소설에 쓰지 못할지라도 확인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썼기에 더 애착이 간다.-위의 질문과는 반대로 예술가에게 창작 과정은 희열과 환희의 체험이기도 할 것이다. 즐겁거나 행복했던 기억도 분명 있었을 텐데.△자료가 적다는 게 어려운 문제이긴 했지만 소설적 상상력을 펼치는 데는 유리한 조건이었다(웃음). ‘화랑세기’는 학교에서 배운 적 없는, 우리가 알던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신세계였기에 문학적으로 보수적인 내가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었다. ‘미실’을 쓴 그해 벽걸이 달력에 ‘화랑세기’를 ‘삼국사기’ ‘삼국유사’와 비교해 나만이 알아볼 수 있는 연대표를 만들었는데, 그 빽빽하고 나달나달한 달력이 창작의 기념품이 됐다.▲ 소설가 김별아가 서울 망원동 한 카페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 구창웅-당신이 만난 ‘미실’은 어떤 여자, 아니 어떤 인간이었나.△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세상이 만들어놓은 모든 억압과 약속까지도 뛰어넘으려 했던 여자다. 현대를 사는 비겁하고 둔중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인간이기도 했다.-미실은 왕과 귀족, 화랑 등 많은 남성들과 육체적으로 교접하고 정신적으로 교류했다. 그중 미실이 가장 신뢰했고 사랑했던 사내는 누구였을까.△처음으로 정을 준 화랑 사다함과 마지막을 함께한 설원랑이 아니었을까? 사다함은 순수의 표지이면서 미실의 운명을 바꾼 남자다. 힘을 갖지 못하면 힘에 지배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줬다. 설원랑은 지고지순한 동시에 신뢰와 의리의 사내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으면 색이 바래듯 사랑도 흐려지기 마련이라는 이치를 거스른 남자이기에 매력적이다. 병든 미실을 대신해 죽기를 하늘에 빌고 먼저 떠난 것은 로맨틱하기까지 하다.-10년 넘게 ‘역사’에 대한 관심을 끊지 않고 관련 공부를 하며 작품을 쓰고 있다. 미실 외에 당신이 주목하는 ‘신라의 또 다른 여인’이 있는지.△신라의 여왕들은 특이한 고대사의 인물이다. 고구려와 백제가 여왕의 존재를 공격의 근거로 삼았다는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세 나라 중 신라만이 여왕을 옹립하고 통치를 수용했다면 그만큼의 진보성과 순혈주의가 강조되었다는 것이 아닌가. 드라마 ‘선덕여왕’은 활동 시기가 거의 겹치지 않는 미실과 선덕여왕을 동시대에 놓고 꾸며낸 일종의 판타지에 불과하다. 그렇게 소비되기엔 선덕여왕의 존재가 너무 크다.-신라부터 조선, 근대까지를 오가며 ‘역사’를 소재로 작품을 쓰고 있다. 현재 집필하고 있는 소설이 있는가.△얼마 전 출간한 ‘구월의 살인’ 이후 현재는 쉬고 있다. 소설이라는 서사 장르가 현대에 적합한지 근본적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말하면 너무 거창한가(웃음)? 목소리를 대신하고픈 중세와 근대의 인물이 몇몇은 남아있다. 하지만 누가 그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들어줄지는 의문이다.-1천 년 전 신라사회건 오늘날 한국사회건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가 분명 있을 것 같다. 뭐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이 생각하는 그 문제의 해결 방안은 뭔가.△요약하면 투쟁과 조화가 아닐까. 남성들의 오랜 영토 속에서 식민지로 착취당하지 않고 투쟁하며 여성의 영지를 개척해야 한다는 건 인류사적 과제다. 동시에 인류를 보존하는 파트너로서 이성(異性)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협력할 것인가도 고민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과 AI의 시대에 여성과 남성이 만든 전선(戰線)이 고착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이런 낙관이 온당한지는 잘 모르겠다.-이른바 ‘페미니즘 논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당신이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어떤 것인지.△현재 페미니즘 운동을 주도하는 젊은 페미니스트들은 이전 세대와는 전혀 다른 생각과 감성을 갖고 있다. 그들의 운동은 남성중심사회에 대한 도전인 동시에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이다. 변화를 위한 모든 운동에는 급진성의 단계가 있고, 의미와 함께 폐해도 있기 마련이다. 때로 싸움이 엉뚱한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 이는 혐오에 혐오로 맞서는 젊은 여성과 남성 중 어느 쪽도 강자가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기자는 ‘미실’을 시대를 뛰어넘는 ‘자립과 자존의 여성성’이란 키워드로 읽었다. 동의하는가. 또 신라 사회에서 미실이 가졌던 한계는 무엇이었을까.△미실이 자립하고 자존할 수 있었던 힘이 동시에 그녀의 한계였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권력이 된 근거가 그다지 근대적이지 않은 ‘아름다움’ 때문이 아닌가. 또한 미실이 행사하는 정치권력이 새로운 ‘여성 권력’이 아니라 기존의 ‘남성 권력’과 크게 변별되지 않는 형태를 보인다는 것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자신의 욕망에 당당하고 세상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으며, 원하는 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했던 미실의 삶은 오늘날 여성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김별아는…1969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연세대 국문과에서 공부했고, 1993년 문예계간지 ‘실천문학’에 ‘닫힌 문 밖의 바람소리’를 발표하며 소설가로 데뷔했다.20대엔 ‘자아 발견’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작품 활동을 했다. 30대 중반 이후로는 한국 역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 관심은 ‘역사소설 집필’로 이어졌다. 장편 ‘미실’과 함께 ‘영영이별 영이별’ ‘논개’ ‘백범’ ‘채홍’ 등이 그 시기에 쓰인 소설들이다.“멈추지 않고 꾸준히 쓰는 성실한 작가”로 문단 안팎에서 인정받는 그녀는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 ‘죽도록 사랑해도 괜찮아’ ‘이 또한 지나가리라’ 등의 산문집으로도 주목받았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8-08-10

‘냉혹한 권력자’ ‘순정한 여인’ 꽃들도 질투한 신라 절세미녀 미실의 두 얼굴

먼저 얼핏 보기엔 ‘난잡한 여성의 남성 편력기’로 오해될 수도 있는 기록부터 옮긴다.“14살에 황후의 아들과 혼인한 그녀는 첫 남편의 곁을 떠나 신라의 전쟁영웅 중 하나였던 화랑 사다함(斯多含)과 뜨거운 연애를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녀가 한 사내 옆에 머무는 것을 신라의 지배자와 귀족들은 견디지 못했다. 진흥왕과 진평왕을 비롯해 금륜태자와 화랑 설원랑까지….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남성들이 귀애한 그녀는 5명의 왕·왕족·귀족 사이에서 8명의 자녀를 낳았다.”궁금증이 생긴 이들이 ‘대체 그 여성이 누구냐’는 질문을 해올 게 빤하다. 미실(美室·549~606 추정). 외형적 아름다움과 내면에 잠재한 정치력으로 6세기 말 신라를 자신의 치마폭에 가둔 여걸.한국여성문학연구회장을 지낸 정영자(77)는 미스터리와 비밀 속에 존재해온 미실을 이렇게 정의한다.“3명의 왕과 왕자들, 화랑 사다함을 비롯한 숱한 호걸영웅을 미색으로 녹였고 왕실의 권력을 품었던 여성, 욕망에 솔직하면서도 자유를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당당하고 지혜로운 여자”였다고.◆ 세상의 모든 여성이면서 그 모두를 뛰어넘은 ‘어떤 존재’정영자가 평론가다운 정제된 문장으로 미실을 표현했다면, 소설을 통해 그녀를 21세기 한국사회로 불러낸 장본인 김별아(49)의 서술은 좀 더 드라마틱하다. 읽어 보자.“이러저러한 매체를 통해 이제는 세간에 그 이름이 제법 알려진 미실은 짧지 않은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여인이다. 성녀와 악녀, 어머니와 창부의 바탕을 한 몸에 가진 그녀이기에 누군가는 그녀에게 매혹되어 열광하고 누군가는 질시하며 비난한다. 하지만 내가 아는 미실은 세상의 모든 여성이면서 그 모두를 뛰어넘은 어떤 존재다.”혹자에겐 ‘미색을 무기로 권력의 정점에 섰던 여인’으로, 또 다른 어떤 이들에겐 ‘고대(古代)를 살았던 희귀한 페미니스트’로 불리는 미실.그녀와 관련된 가장 많은 기록이 담긴 건 필사본 ‘화랑세기(花郞世記)’다.그 책에 따르면 미실은 왕가의 사내들은 물론, 귀족과 화랑들을 자신의 품에 넣고 좌지우지하며 왕을 능가하는 권력을 휘둘렀다. 미실의 출생에 관해 ‘화랑세기’는 아래와 같은 설명을 덧붙인다.“신라 왕족과 귀족에게 색공(色供·높은 신분의 사람에게 제공하는 성적 서비스)을 바쳐 자신의 권세를 유지했다. 출중한 아름다움과 함께 학식도 가졌던 여인으로 외할머니는 초대 풍월주(風月主) 위화랑의 딸 옥진이었다. 미실의 아버지는 2대 풍월주인 미진부다.”역사학자 신재홍의 논문 ‘미실과 사다함, 송사다함가와 청조가’에는 미실의 아름다움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대목이 등장한다.“미실은 용모가 절묘했다. 풍만하고 도톰함은 외조모를 닮았고, 마음까지 밝고 총명하면서도 오묘했으니 온갖 꽃들이 그녀를 질투할 정도였다.”하지만, 미실과 ‘화랑세기’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태어난 날과 사망일이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미실. 필사본 ‘화랑세기’가 가짜라고 주장하는 연구자들은 “미실은 실존했던 여인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 과연 미실은 권력만을 탐했을까?아득한 옛날의 사건이나 인물을 놓고 벌어지는 학계의 ‘진위논쟁(眞僞論爭)’은 별스런 것이 아니다. ‘화랑세기’와 ‘미실’에 얽힌 사학자들 간의 설왕설래 역시 그런 차원에서 보면 될 터.필사본 ‘화랑세기’를 부정적 관점이 아닌 긍정적 시각에서 해석한 하현진의 논문 ‘화랑세기에 나타난 신라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활동’엔 6세기 말부터 7세기 초까지 미실이 가졌던 정치권력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는 서술이 눈에 띈다.“미실은 색공을 통해 진흥왕, 진지왕, 진평왕대(代)에 이르기까지 30년 동안 신라 왕실에 큰 힘을 발휘했다. 미실이 정치 일선에 있으면서 왕의 즉위와 폐위에 관여했을 정도니 얼마나 강한 권력을 지니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미실의 삶을 통해 신라 사회에서는 여성도 권력을 지닐 수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이쯤에서 자연스레 질문 하나가 이어진다. 그렇다면 미실은 오로지 정치적 권력만을 탐한 여자였을까?아래 인용하는 향가(鄕歌·향찰로 표기된 신라시대의 노래)인 ‘송사다함가’(학자에 따라 ‘풍랑가’ 혹은 ‘송랑가’ 등으로도 부른다)’는 이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 읽힌다.바람이 분다고 해도랑 앞에 불지 말고물결이 친다고 해도랑 앞에 치지 말고어서 빨리 돌아와다시 만나 안아 보기를마주 잡은 손만으로도 좋은데우리 행여 헤어지진 않겠지‘화랑세기’에 의하면 미실이 썼다고 전해지는 이 향가는 신라가 대가야와 전투를 벌일 때 참전한 연인 사다함에게 노심초사의 애틋함을 전한 것으로 보인다.‘송사다함가’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전쟁터로 사랑하는 이를 보내야 하는 여인의 안타까운 심정이 고스란히 담겼다.TV 드라마를 포함한 대중문화 매체에선 미실을 성적 기교와 미모를 무기 삼아 수많은 남성들 위에 군림한 ‘냉혹한 여성 권력자’로 묘사하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그게 미실의 본모습일까?그런 사람이 과연 위와 같이 ‘따스한 문장’을 쓸 수 있었을까?어쩌면 미실은 우리의 선입견과 달리 여러 사내들의 마구잡이식 사랑이 아닌, 한 남성의 완전하고 오롯한 사랑을 받고 싶었던 ‘순정한 여인’이었을 수도 있다. 미실을 역사 속에서 불러낸 책 ‘화랑세기’“인간의 상상 밖에 존재하는 바다 풍경을 묘사했다”고 평가받는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의 소설 ‘백경(白鯨)’. 그 작품의 주인공은 ‘크기를 짐작할 수 없을 만치 거대한 고래’다.급속하게 진행된 산업화의 과정에서 ‘뿌리 뽑힌 사람들’로 전락한 이들의 서러운 풍경을 빼어난 문장으로 형상화한 황석영의 수작(秀作) ‘삼포 가는 길’의 주인공은 타락과 순수의 경계선을 위태롭게 걸어가는 작부 백화.이런 차원에서 보자면 ‘화랑의 리더 풍월주들의 전기’로 기술했다고 전해지는 책 ‘화랑세기’의 주인공은 ‘미실’이라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화랑세기’는 7세기가 끝나갈 무렵 ‘신라의 문장가’로 이름 높던 김대문이 썼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원본은 소실돼 전하지 않는다. 다만 필사본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1989년과 1995년 공개돼 논란이 일었다.필사본을 베낀 것으로 알려진 사람은 일제강점기 일본 왕실 도서관에서 일한 박창화(1889~1962).다수의 사학자들은 필사본 ‘화랑세기’를 두고 “상상력으로 만든 창작품에 불과하다”고 말하지만, 다른 쪽에선 “여러 정황과 사실 묘사의 핍진성으로 볼 때 위서(僞書)로 보이지 않는다”는 견해를 내놓기도 한다.어쨌건 ‘진위 논란’과는 별개로 ‘화랑세기’의 진정한 주인공이 ‘문제적 신라 여성’ 미실이라는 것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다. 이에 관해 ‘화랑세기, 또 하나의 신라’를 쓴 김태식은 이렇게 부연한다.“‘화랑세기’를 대중문화의 영역으로 치고 들어가게 만든 신호탄은 소설가 김별아의 ‘미실’이다. 소설이 주인공으로 삼은 미실은 ‘화랑세기’가 아니면 영영 매몰되었을 인물이었다. 김별아는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무수한 인물 중에서도 어쩌면 가장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는 여성을 문학으로 극화해냈다.”조선시대 때부터 “이미 사라져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만 풍문처럼 전하는 책”으로 평가절하 된 ‘화랑세기’.하지만, 일부 사학자들은 “화랑과 당대 신라 귀족들의 성 풍속을 거침없이 드러냈기에 유학이 지배했던 사회가 ‘화랑세기’를 배타적으로 대했던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어쨌건 필사본 ‘화랑세기’가 지닌 가치와 의미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그러나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1천400년 전 아득한 기억 속 서라벌을 들었다 놓았다 했던 매력적인 여성 미실에 대한 ‘대중적 주목’은 ‘화랑세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8-08-03

꿈틀로 철수와 목수 문화반상회 문화품앗이

포항시의 문화적 도시 재생 정책 일환으로 문을 연 포항문화예술창작지구 꿈틀로.포항시 북구 중앙로에 위치한 이곳은 지역 예술가 21개팀이 입주한 창작예술촌으로서 공예, 사진, 회화, 연극 등 다양한 창작활동과 아트프리마켓, 거리축제 등이 펼쳐지는 등 포항의 새로운 문화 거점이 되고 있다.2016년 꿈틀로 사업초기만 해도 4~5 점포 건너 문을 닫은 빈 점포가 즐비하던 노후한 골목이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으로 하나둘씩 채워지면서 예술가의 창의성이 덧입혀진 예술간판과 조형작품이 설치되고 공예, 사진, 회화, 연극 등 다양한 창작활동과 아트프리마켓, 거리축제 등이 펼쳐지는 등 조금씩 활기를 되찾고 있다. 이러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지난 2월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사업인 ‘문화적 도시재생사업’에 꿈틀로가 선정되면서 도시재생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문화와 더불어 도시성장을 견인할 포항시 도시재생 정책의 추진방향과 문화적 도시재생의 의미, 발전방향 등을 알아본다.다양한 장르 예술가들 입주문화 체험·젊은 예술가 ‘허브’로도심에 불어넣는 문화 성장동력주민_입주 예술가 결속상인에 간판 만들어 주고작가 활동땐 자원봉사함께 ‘밥’ 먹으며 상생 공동체 형성1:1 결연해 서로 도움주며함께 살아가는 ‘삶터’로 인식단발적 지원금에 의한시스템 아닌지속적 생명력 갖춘 공간 ‘과제’△사람중심의 문화공간으로서의 문화적 도시재생최근 문재인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로 전국의 낙후지역 500곳에 매년 재정 2조원의 예산을 들여 도시활성화를 도모하는 도시재생뉴딜사업이 본격적으로 착수되면서 도시재생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 보다 뜨겁다.특히 지난해 11월 지진이후 재난지역으로 지정된 포항시의 경우 물리적 정신적 재건의 도시재생이 그야말로 절실한 상황이다.도시재생은 급격한 산업화가 이뤄는 과정에서 도시공간의 재편에 따라 나타난 도심공동화 현상을 막고 침체된 도심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공간활성화 전략으로 국내에서는 2013년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됨에 따라 도시재생사업의 변화 양상이 가시화됐다.도시재생이란 단순히 기존의 것을 허물고 새로운 것들로 채워지는 개발사업이 아니다. 1960년도 이후 진행돼온 도시개발사업의 물리적 개발방식에서 탈피, 지역의 공동체를 중심으로 공간적 특성과 경제·사회·물리·환경 등의 비물리적 측면을 고려해 재생해 가는 도시재생 패러다임으로 변화되고 있다. 무엇보다 도시의 원형을 보존하면서 사람중심의 문화공간으로서의 도시재생을 추진하는 것이 최근의 주요 트렌드가 되고 있다. 특히 유휴지나 폐공간을 박물관, 갤러리 등 이색적인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매개로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어 도심을 활성화시키고 관광산업으로까지 확대시킨 사례는 너무나 많다.최근 몇 년사이 국내에서도 서울주택도시공사의 역사문화마을 돈의문 박물관 마을이라든가 공연과 푸드 패션 분야의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 플랫폼 창동 61 등 문화를 접목한 도시재생으로 성공시킨 사례가 늘고 있다.이처럼 도시재생에 있어 문화중심의 장소성 복원과 커뮤니티 활성화는 도시재생을 관통하는 핵심 아젠다가 되고 있다.1970년대 북미대륙에서부터 문화예술을 활용한 새로운 의미의 도시정책에서 시작된 문화주도의 도시재생 정책은 1980년대 유럽을 중심으로 더욱 크게 부각되기 시작했다.공예와 민속예술 분야의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에 지정된 일본 가나자와, 세계 최대의 광산 지역을 산업시설과 도시환경을 문화적으로 재생시킨 독일 루르지역, 20년간 방치된 화력발전소를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변모시킨 영국의 테이트모던 등 산업화 이후 침체되고 낙후된 도시들의 새로운 성장동력은 바로 ‘문화’라는 공통분모를 지닌다. 또 단순히 문화적 색깔을 덧입히는 방식에서 나아가 문화산업 육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관광산업을 견인하며 세계적인 문화도시로 성장시켰다.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17년 도시재생특별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가지원 도시재생지역 선정사업이 시작되면서 도시재생이란 의미가 피부에 조금씩 와 닿기 시작했다.올해 첫 시행된 문재인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시범지역으로 전국의 68개의 지자체가 선정된 가운데 포항시에서도 국토부가 주관하는 도시재생 뉴딜사업과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문화적 도시재생사업 대상지로 각각 선정되면서 도심 활성화에 기대감을 주고 있다.이 가운데 문화적 도시재생사업은 도시재생사업과 연계를 통해 도시공간을 문화적으로 활용해 도심과 공동체의 활성화는 물론 문화적앵커로서의 장소구축사업을 펼치는 사업이다. △포항시의 문화적 도시재생사업의 중심 꿈틀로포항시의 문화적 도시재생사업은 지난 2016년부터 포항시가 문화도시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해 오고 있는 꿈틀로를 거점으로 이뤄진 다양한 문화적 활동이 기반이 돼 공모에 선정됐다.꿈틀로에는 현재 올해 6팀의 신규작가를 추가로 공모·선정해 총 27팀의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입주해 있으며 그램책 마을과 꿈틀갤러리 등 소규모 문화공간이 자리하고 있다.2016년 꿈틀로 사업초기만 해도 4~5 점포 건너 문을 닫은 빈 점포가 즐비하던 노후한 골목이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으로 하나둘씩 채워지면서 예술가의 창의성이 덧입혀진 예술간판과 조형작품이 설치되고 공예, 사진, 회화, 연극 등 다양한 창작활동과 아트프리마켓, 거리축제 등이 펼쳐지는 등 조금씩 활기를 되찾고 있다. 이러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지난 2월 문화체육관고아부 공모사업인 ‘문화적 도시재생사업’에 꿈틀로가 선정되면서 도시재생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됐다.포항 문화적 도시재생사업은 올해 1년간 총사업비 2억5천만원이 투입돼 도시재생 뉴딜사업과 연계를 통해 예술가와 주민, 지역 문화리더, 시민이 상호 거버넌스 구축을 통해 꿈틀로의 장소성 회복과 커뮤니티 활동, 장소디자인 구축 사업을 펼치게 된다.그러나 꿈틀로 문화적 도시재생사업은 경관 위주의 물리적 재생보다 장소성이 가진 서사성을 살리고 주민 공동체가 자발적 중심이 된 사회적 재생에 더 방점을 두고 있다.주민과 입주예술가가 결속이 돼 언제 닥칠지 모르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에 대응하고 제대로 된 간판조차 갖추지 못한 영세 상업자들에게 입주작가들이 간판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반대로 주민이 작가들의 활동에 자원봉사를 하는 ‘문화품앗이’ 등의 상생의 과정을 통해 삶터로서의 관계성을 만들어가는 다양한 사업을 진행한다. 기존 외관 중심의 도시재생사업과는 차별성을 둔 것이다.△2018년 문화적 도시재생 사업포항시의 문화적 도시재생 사업의 대표적인 커뮤니티 및 작가협업 프로그램으로 ‘철수와 목수’‘문화반상회’‘문화품앗이’‘주민영화제’ 등이다.이 중‘철수와 목수’는 철공과 목공이라는 수단을 활용해 지역사회 자원활동가가 주민(상인)이 필요한 간판이나 생활용품을 만들어 주면서 꿈틀로의 환경을 변화시키는 문화공작소 기능을 담당한다. ‘문화반상회’는 음식이라는 매개체가 가져다주는 ‘소통과 연대’의 효과에 착안해 주민과 입주예술가가 정기적으로 함께 밥을 먹으며 주민과 예술가의 문화간극을 좁히고 서로 소통하며 공동체 형성을 돕는 프로그램이다. 꿈틀로 조성사업에 있어 주차문제, 공간조성 등 현안을 해결하는 방식에 있어 주민과의 소통은 매우 중요한 지점을 차지한다. 결국 거주자가 아닌 정주자로서 주민과 입주예술가가 ‘우리 동네’라는 삶터로서의 인식을 가지고 서로 함께 현안을 고민하고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야 하기 때문이다.‘문화품앗이’는 꿈틀로 작가와 주민(상인)이 1:1 자매결연을 맺어 서로에게 필요한 도움을 나누며 공동체적 삶을 영위해 나가는 프로그램이다. 구제옷가게, 소규모 양품점, 분식집, 세탁소 등 꿈틀로의 영세 상업체 대부분은 제대로 된 간판이나 사람의 발길을 끄는 세련된 실내 인테리어를 갖추지 못했다. 이처럼 하루하루 벌어서 겨우 살아가는 꿈틀로의 상인들에게 입주작가들이 자신이 가진 재능을 통해 이색적인 간판을 만들어 주거나 실내 인테리어를 단장해 주고 혹은 식기나 찻잔을 제작해 주면서 영업에 활력을 도모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반대로 주민들은 꿈틀로에서 펼치는 문화행사때 자원봉사를 한다거나 음식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서로 상생해 나간다.이러한 상생의 기반을 위해 수차례 주민과 입주작가가 식사자리와 간담회를 가졌으며, 지난 6월 개최한 ‘꿈틀로 여름날의 소소한 축제’에서 주민과 입주작가 자치회가 중심이 돼 차없는 거리를 요청하고 함께 문화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문화적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포항문화재단 문화도시TF팀은 이런 사회문화적 재생에 방점을 둔 주민, 입주작가간 커뮤니티 활동을 정례화하고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공간 마련을 위해 꿈틀로 내 구 아카데미 극장 부지에 ‘문화공판장’을 조성 중에 있다. 또 1960년대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문화사랑방이었던‘청포도 다방’을 재현해 다양한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주민과 입주예술가들이 함께 마을 발전궁리를 실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줄 계획이다.또 주민의 일상과 꿈틀로의 모습을 기록해 함께 영화를 제작하고 상영하는 ‘주민영화제’ 개최와 지역의 이슈를 그들만의 유쾌한 방식으로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는 여러 가지 방안들도 모색해 나갈 예정이다. △지속적인 생명력 갖춘 공간으로 거듭나야 이처럼 문화가 매개가 된 커뮤니티 중심의 도시재생사업 방식은 시간이 더디 걸린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보다 지속적이고 영속성을 가진다.장기불황에 따른 경기침체에 지진이라는 악재를 겪으면서 재난상황이 직면한 포항은 현재 사회적 관점의 도시재생이 절박한 시점이다.수 백억을 투자해 대형 신축건물을 짓고 갖은 편의시설을 조성하는 천편일률적인 백화점식 개발사업 형태의 도시재생의 관점에서 보다 나아가 도시의 철학을 세우고 사람이 중심이 된 인문적 도시재생방안에 대한 연구가 보다 깊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실례로 수년간 30억원이 넘는 사업비를 들여 조성했지만 올해 사업비 지원이 끝나게 되어 입주작가들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과 투자에 대한 고민을 안고 있는 창동예술촌의 사례는 향후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는 포항이 중요하게 되짚어봐야 할 사안이다.지역의 한 인문학자는 “도시재생사업이 단발적인 지원금에 의해 사업의 성패가 좌지우지 되는 시스템에서 벗어나 지속적인 생명력을 갖춘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는 철학적 베이스가 된 사업추진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황상해 포항문화재단 문화도시TF팀장은 “문화적 도시재생 사업이 사회문화사적인 도시철학을 바탕으로 도시에 문화가 관통하고 시민의 삶을 바꾸고 지속가능한 도시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성공적인 모델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기존의 문화도시 조성사업과 각종 부처연계사업을 통해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8-08-01

소 풀 먹이고 초롱불로 공부하던 시골소년의 ‘회장 되겠다’ 막연한 꿈, 36년만에 현실로

제 9대 포스코 회장으로 선임된 최정우 회장은 1983년 포스코에 입사한 뒤, 재무실장, 정도경영실장, 가치경영센터장, 포스코건설 경영전략실장, 포스코대우 기획재무본부장 등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회계, 원가관리부터 심사분석 및 감사, 기획 업무까지 제철소가 돌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핵심 업무를 두루 경험하며 현장 구석구석에 대해 누구보다 밝은 눈을 가지게 됐다.공정 간 물류는 어떻게 관리되고, 공정 간 가치 전환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실수율은 어떠한지 등의 현장 프로세스를 손바닥 보듯 해야 원가든 심사든 감사든 주어진 업무를 해결해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업무 경험이 36년간 고스란히 쌓여 ‘철강업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다.경남 고성 구만초등학교·회화중학교 전교 1등 우등생1983년 포스코 입사, 동기회장 맡으며 ‘회장 되겠다’ 결심포스코켐텍서부터 준비한 ‘경영 아이디어 노트’ 로100년 기업 포스코에 ‘준비된 적임자’ 이미지 얻어여기에 포스코건설, 포스코대우를 거쳐 포스코켐텍에 이르는 그룹사 근무 경험은 철강 이외 분야에서의 전문성을 키우는데 큰 도움이 됐다.이러한 다양한 분야에서의 경력이 그를 ‘철강 그 이상의(Steel Beyond)’ 100년 기업으로 도약을 준비하는 포스코에 딱 맞는 적임자로 만들어 주었다.2015년부터는 포스코그룹의 컨트롤타워 격인 가치경영센터를 이끌며 그룹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추진함으로써 그룹 사업재편과, 재무구조 강건화 등 새로운 도약을 위한 기반을 다지고, 리튬, 양극재, 음극재 등 신사업을 진두 지휘함으로써 창립 50주년을 맞이한 포스코의 100년 미래성장 토대를 마련했다.그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비핵심 철강사업은 매각했으며, 유사한 사업부문은 합병시켜 효율성을 높이고, 낭비를 제거했다. 저수익, 부실사업은 과감히 정리해 부실확대를 근본적으로 차단했다. 이로써 한때 71개까지 늘어났던 포스코 국내 계열사는 38개가 됐고, 해외계열사는 181개에서 124개로 줄었다.2015년 포스코 해외생산법인의 실적은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당시 최정우 가치경영센터장은 해외법인의 고부가제품의 생산 판매 확대, 현지 정부 및 철강사와의 협력강화를 통한 사업환경의 구조적 개선, 포스코와 해외법인간 협력체제 강화 등 전사적 활동을 전개해 해외생산법인의 생존력 확보를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전교 1등 산골 소년의 야망경남 고성 구만면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란 최정우 회장은 구만초등학교를 거쳐 회화중학교를 나왔다.당시 구만면에는 중학교가 없어서 좀 더 큰 면 소재지인 회화면으로 매일 6km씩 걸어서 등교했다.가난한 농가 형편에 배불리 먹어본 기억이 없는 작은 체구의 아이였지만 초등학교 6년 내내 전교 1등을 한번도 놓친 적이 없고 중학교에 진학할 때에도 수석 입학을 할 정도로 다부진 우등생이었다. 고등학교는 부산으로 다녔다. 부모님께서 매달 보내주시는 쌀 한 말로 큰 집에 신세를 지며 수학했고, 동래고등학교를 거쳐 부산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했다.다들 넉넉하지 못했던 시절인데다 농사 밖에 모르시던 부모님 밑에서 학업에 매진하기는 쉽지 않았다. 초등학교가 끝나면 소 풀 먹이러 산으로 들로 다녀야 했고 소가 풀을 뜯는 동안 짬짬이 책을 보거나 밤에 초롱불을 켜두고 공부했다. 힘들게 자라온 어린 시절 기억은 지금까지 남아 주변에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단돈 천원이라도 주고 가야 마음이 편했다.# 최정우를 쓰다듬던 손, 포항제철소 착공식 버튼 누르다1970년 3월 경남 고성군 회화면 회화중학교 입학식날 운동장으로 흙먼지를 날리며 헬기 한대가 내려앉았다. 고성의 자랑 김학렬 경제기획원 장관 겸 부총리가 온 것이다. 바로 수석 입학생에게 상장을 주기 위해서였다.얼굴이 까맣고 키 작은 최정우 소년은 당시에는 짐작도 못했지만 포스코와의 인연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김학렬 부총리는 최정우 소년에게 상장을 준 그 손으로 한달 뒤 포항제철소 착공식 버튼을 누른다.김 부총리는 포스코 전신인 포항제철의 산파역을 맡았다. 한일각료회담 참석차 일본으로 가는 김 부총리에게 박정희 대통령은 ‘포철 자금이 합의 안 되면 돌아오지 말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대일 교섭 초창기 일본 관료들이 한국의 신생 제철소를 ‘쓰루제철소’라고 불렀는데, ‘쓰루’란 학(鶴)의 일본말로 김학렬 부총리의 ‘학’을 따서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신입사원 최정우, 사진 속 김학렬 부총리와 재회1983년 1월 대학 졸업을 앞두고 포항제철에 입사한 최정우는 홍보센터에 걸린 커다란 흑백 사진 속 낯익은 인물을 보고 머리를 쿵하고 얻어맞은 듯 소스라치게 놀랐다. 바로 자신의 우상이었던 김학렬 부총리가 박정희 대통령, 박태준 사장과 함께 당당하게 포항제철소 착공식 버튼을 누르고 있는 것이었다.13년전 중학교 입학식때 상장을 받은 인연으로 여름방학이면 군내 우수 학생들과 함께 ‘뉴 화랑’이라는 이름으로 고향집에 초대해 합숙훈련도 시켜준 고마운 분이었다.‘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부산에서 다니면서 잠시 잊었던 자신의 우상을 여기에서 만나다니… 10여년전의 인연이 필연이 돼 자신을 여기로 이끈 것은 아닐까?’신입사원 최정우는 자신의 어깨를 누르는 중압감과 알 수 없는 책임감으로 연수원의 첫 밤을 고스란히 지새웠다. #포스코 회장을 꿈꾸던 신입사원1983년 입사할 때만 해도 경기가 좋은 편이라 친구들은 주로 종합상사나 건설회사에 취직을 많이 했다.당시 포항제철은 봉급은 많지 않았지만 복지정책이 좋고 안정된 직장이라는 소문이 났고, 국가 기간산업이라 부모님들도 은근히 권유했다.그의 입사 동기생은 75명이었다. 신입사원 교육 때는 학생장이 다른 동기생이었으나 부서에 배치받은 이후 동기회에서 동기회장을 하겠다고 했다.아무래도 앞장을 서야할 것 같았다. 동기회장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나중에 회사 회장이 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지금까지 동기회장을 맡고 있는데 동기생들은 말이 씨가 됐다며 “회장이 되겠다고 하더니 진짜 회장이 됐다”고 놀라움으로 축하를 대신해 줬다.#사외이사 마음 움직인 2권의 노트지난 4월 18일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갑자기 권오준 회장이 사임한다고 했다.포스코 역사상 한번도 임시주총을 한 적이 없던 터라 충격적이었다.그날 밤은 입사첫날 때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 회사는 어디로 갈 것인가? 나는 어디로 가야할 것인가?’ 불현듯 틈날 때마다 메모해뒀던 노트가 생각났다. 올해 초 포스코켐텍 사장으로 명령이 났을 때 본인의 생각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로부터 걱정과 위로를 들었다.고마운 일이지만 정작 본인은 겸연쩍었다. 포스코켐텍은 포스코그룹이 차세대 먹거리 사업중 하나인 에너지저장소재를 책임지는 회사인데다 평판도 아주 괜찮은 회사라 그 회사의 대표는 모사 사장만큼이나 중요한 자리이기 때문이었다.지난 3년 가까이 그룹내 구조조정에 심혈을 기울이다보니 심신이 지친 측면도 있고, 또 참모로서 한 분야를 깊이있게 보는 것보다 작은 규모지만 대표로서 회사 전반을 총괄하는 경험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포항에서 등산도 하면서 체력도 보충하고 CEO로서 안목도 넓혀볼 참이었다. 그러면서 차근차근 포스코에 36년을 몸 담으면서 각 분야에 개선했으면 좋은 점, 최근 회사를 둘러싸고 있는 우려에 대한 해결책, 타사에서 배웠으면 하는 점을 매일매일 정리했다. 이대로 계열사에서 직장생활을 마감한다면 포스코켐텍 사장 후임자에게 전해줘도 좋고, 포스코로 다시 돌아가거나, 더 큰 기회가 온다면 업무에 큰 도움이 될 성 싶었다.그러나 갑자기 권오준 회장이 사임을 발표하면서 마음이 급해졌다. 누가 될지는 모르지만 포스코를 잘 이끌어야 하고 어려울 때 힘을 보태려면 아이디어 노트도 완성도가 높아야 할 것이었다.그때부터 외부 출입을 자제하고 포스코의 시대적 소명과 비전을 좀 더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경영쇄신방안, CEO의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조직문화, 사업계획, 대북사업, 사회공헌 등 분야별로도 전략안을 만들었다.포스코켐텍으로 옮긴 지 4달여, 권 회장 사임 발표 후 2달여 지난뒤 최정우의 경영 아이디어 노트는 더 두껍고 촘촘해졌다. CEO후보추천위원회에서 면접대상자로 결정되었을 때 사외이사들의 마음을 움직인 2권의 노트가 완성된 것이다.#건강한 리더, 건강한 리더십90년대 초반 주말도 없이 일에만 파묻혀 지내다보니 갑작스럽게 건강이 악화된 적이 있었다. 고지혈증이 찾아와 간경화로 발전될 수도 있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은 것이다.‘이런 몸 상태로 일이나 계속 할 수 있겠나’하는 생각에 겁이 덜컥 났다. 그 길로 매일 아침 북부해수욕장 모래사장을 뛰었고 지금도 건강관리라면 누구보다 철저하다. 등산, 자전거 등 건강한 취미 생활도 하나 둘 만들었고, 사무실까지 계단을 이용해 오르내리기를 생활화하고 있다. 그러면서 건강관리를 혼자만 하지 않는다. 임원들이나 그룹장, 팀장들과 주말 등산을 함께한다.올초 포스코켐텍 사장으로 옮겨간 후 “리더가 건강해야 현장 곳곳을 다니며 직원들의 안전을 지킬수 있다”면서 연말까지 계획을 짜놓고, 매월 1회 전 임원 및 그룹장들과 등산을 해왔다.리더가 건강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리더십은 말할 것도 없고 아예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쳤기에 직원들의 건강 관리에 발벗고 나서게 된 것이다.#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어디서든 주인이 되고 서는 곳마다 참되게. 최정우 회장의 36년 철강인생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 할 수 있다.어떤 조직에서 어떤 일을 맡게 되든 주인의식을 가지고 사명감과 책임감을 다하면 내가 있는 위치가 진리, 참된 것이라는 뜻이다.최정우 회장이 회사생활을 하는 동안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준점으로 삼아 온 좌우명이자, 신조다.어느 회사든 비슷하지만 과거에는 모기업에서 계열사로 이동할 때는 낙담하고 계열사에 있다가 퇴사할 것으로 생각하고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정우 회장은 처음 계열사 포스코건설로 발령이 났을 때에도 주어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보자고 생각해서 건설분야 공부에 매진했다.당시 최 회장은 포스코건설의 경영전략실장으로 부임했는데, 모든 임원들과 친분을 쌓기 위해 임원들이 모이는 자리마다 참석했다. 본인이 마음을 열어야 다른 임원들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줄 것이라고 생각해서 건설화되려고 정말 열심히 노력한 것이다. 2년 후 기회가 돼 포스코에 돌아왔고 4년 뒤에 포스코대우로 발령이 났을 때도 같은 마음으로 포스코대우화되기 위해 팀장이상 부장들과 자주 소통했다.자신이 있는 위치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 회장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직장인의 자세며, 후배들에게도 그런 리더가 되기를 주문하고 있다./김명득기자 mdkim@kbmaeil.com

2018-07-30

神들도 탐한 절세미녀 수로부인 그녀가 곧 꽃이었다

역사와 문학 연구자들로부터 ‘신라의 대표적 시가’로 지목받는 ‘헌화가’와 ‘해가’. 숭실대학교 국문과 이경재 교수가 여기에 등장하는 매력적인 신라 여성 ‘수로부인’이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 김동리(1913~1995)의 소설과 서정주(1915~2000)의 시에서 어떻게 묘사·해석되고 있는지 분석한 글을 보내왔다. 독자들을 위해 가감 없이 게재한다. /편집자 주 신라는 기원전 57년부터 935년까지 992년간 존속했던 왕조다. 한반도에 존재했던 왕조 중 유일하게 1000년을 지속한 신라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그 이야기의 가닥 중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여성들의 다양한 활약상이다.신라시대에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세 명의 여왕(선덕·진덕·진성)이 존재했고, 화랑의 전신(前身)으로 이야기되는 원화(源花)들이 활동하기도 했다. 여러 연구들은 성리학에 찌든 조선시대보다 신라 여성들의 삶이 더욱 활기찼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신라 시대 여성들 중에서도 한국문학에서 자주 호출된 이로는 신라 33대 왕인 성덕왕(재위 702~737) 때 사람인 ‘수로부인’을 들 수 있다.대표적인 신라시대 시가로 꼽히는 ‘헌화가(獻花歌)’와 ‘해가(海歌)’의 배경 설화에 등장하는 수로부인은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편’에 등장한다. 남편 순정공(純貞公)이 태수로 임명된 강릉으로 가던 수로부인은 일행과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으며 휴식을 취한다.이때 수로부인은 천 길이나 되는 절벽 위에 활짝 핀 철쭉꽃을 발견했고 “꽃을 꺾어 바칠 사람 그 누구 없소?”라고 외친다. 순정공을 포함한 모든 이가 망설이고 있을 때, 암소를 끌고 지나던 한 노인이 꽃을 꺾어서는 노래까지 지어 바친다.그때 노인이 꽃과 함께 지어 바친 노래가 4구체 향가 중 절창으로 꼽히는 ‘헌화가’다.자줏빛 바윗가에잡고 있는 암소 놓게 하시니,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꽃을 꺾어 바치오리다.이틀 후에는 임해정(臨海亭)에서 수로부인이 바다의 용에게 납치당한다. 모두가 어쩔 줄을 모를 때, 한 노인이 나타나 사람들이 모여 막대기로 언덕을 치며 노래를 지어 부르면 부인이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말한다.이 말을 따랐더니 실제로 수로부인이 다시 나타났다. 이때 사람들이 불렀던 노래가 바로 ‘해가’다. 이후에도 자태가 빼어난 수로부인은 깊은 산이나 큰 연못을 지날 때마다 신(神)적인 존재들에게 납치당하고는 한다.‘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수로부인은 한국 현대문학사의 거장이라고 할 수 있는 김동리와 서정주에 의해 작품화된다.김동리는 1977년 출판사 지소림(智炤林)에서 ‘김동리 역사소설(신라편)’을 발간한다. 여기 수록된 16편의 소설은 석탈해, 최치원, 장보고, 눌지 왕자, 왕거인, 강수 선생, 우륵, 김명, 최치원, 김현, 엄장, 기파랑, 미륵랑 등을 다루고 있다. 이 중에는 수로부인을 다룬 ‘수로부인’이라는 단편도 있다.이 작품에서 수로부인은 한마디로 ‘신명에 취한 여인’이다. 용모가 빼어나고 가무에 재주가 남다른 수로부인은 열세 살에 나을신궁의 신관(神官)이 된다. 이후 펼쳐지는 수로부인의 사랑, 결혼, 이후의 행적은 모두 신적인 존재인 ‘검님’의 뜻에 따른 것이다.화랑 응신의 피리 소리에 이끌려서 그와 만나게 되는 것도 검님의 뜻에 따른 것이고, 이후 순정공의 청혼을 받아들이는 것도 초월적인 힘에 이끌린 결과이다. 남성들과의 관계도 육체성은 배제된 정신적인 것으로 그려진다.응신과 수로부인이 만날 때도, 응신은 피리를 불고 수로부인은 그에 맞추어 가무(歌舞)를 할 뿐이다. 수로부인은 결혼 이후에도 제단을 만들어 두고 아침저녁으로 검님을 배례하며, 제단에 올렸던 음식만 먹는다.“항상 신명에 취해 지내는” 수로부인에게 일어나는 일은 모두 검님의 뜻에 따른 것이다. 수로부인에게 절벽의 꽃을 꺾어다 바친 노인도, 나라에서 제일가는 도사인 이효 거사가 후일의 대업을 위해 보낸 것으로 그려진다.작품의 마지막은 나라에 큰 가뭄이 들자, 이효 거사가 주관하는 기우제에서 월명 거사가 된 화랑 응신이 피리를 불고 수로부인이 춤을 춤으로써 비를 불러오는 것이다. 이 모든 일도 결국은 신명의 뜻과 응감에 따른 것으로 그려진다.이 작품에서 수로부인은 검님이라는 자연의 질서와 하나가 된 성스러운 존재라고 할 수 있다.김동리의 친구이자 문협정통파(文協正統派)로서 순수문학의 깃발을 함께 들었던 미당 서정주 역시 ‘노인헌화가(老人獻花歌)’라는 시를 통해 수로부인을 형상화하였다.이 시는 1961년 정음사(正音社)에서 간행된 ‘신라초(新羅抄)’라는 서정주의 네 번째 시집에 수록돼 있다. 제목에도 선명하게 드러나듯이, 이 시집은 신라시대의 인물과 각종 설화 등을 주요한 제재로 다루고 있다.불교 정신을 중심으로 한 신라에 대한 관심은 다음 시집인 ‘동천(冬天)’까지 지속된다. 신라에 대한 탐구는 미당 시의 중심 줄기를 형성하는 한국의 전통과 영원주의 탐구에 그 맥락이 닿아 있다.‘노인헌화가’는 제목처럼 암소를 끌고 절벽 위의 꽃을 따다 수로부인에게 바친 노인을 화자(話者)로 내세운다. 이 시는 서정주 특유의 능청과 넉살로 노인을 둘러싼 온갖 형이상학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걷어내고 있다. 노인이 꽃을 바친 행위는 심플하게 “이것은 어떤 신라의 늙은이가/젊은 여인네한테 건네인 수작이다”라고 간명하게 정리된다. 노인은 신적인 존재도 무격(巫覡)도 아닌 사랑의 달콤함에 어깨가 들썩이는 그저 인간일 뿐이다. 그렇기에 “자기의 흰 수염도 나이도 다아 잊어” 버리고, “남의 아내인 것도 무엇도 다아 잊어” 버리고, 심지어는 벼랑의 그 높이도 “다아 잊어” 버리고, “꽃이 꽃을 보고 웃듯이 하는 그런 마음씨”로 꽃을 따다 바친 것이다.이 시에서 ‘헌화가’는 한 여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남의 집 할아비가 지나다가 귀동냥하고 도맡아서 건네는” 작업 멘트가 된다.이러한 노인의 성격에 걸맞게 수로부인도 인간의 정감에 충실한 모습이다. 아름다운 꽃을 보고서는 “아이그마니나 꽃도 좋아라/그것 나 조끔만 가져 봤으면”이라고 지극히 인간적인 목소리를 낸다.흥미로운 것은 이 말이 “꽃에게론 듯 사람에게론 듯 또 공중에게론 듯” 발화된다는 것이다. 수로부인은 자신의 남편과 동행자에게만 꽃을 따 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미지의 대상(공중)을 향해서도 꽃을 따 달라고 하는 것이다.꽃이 가진 중의성까지 덧보태져 이 작품의 수로부인 역시 암소를 끄는 노인만큼이나 인간적 욕망에 충실한 상태임이 드러난다.‘노인헌화가’는 노인과 수로부인을 둘러싼 공기(空氣)가 “그들의 입과 귀와 눈을 적시면서/그들의 말씀과 수작들을 적시면서/한없이 親한 것이 되어가는 것을/알고 또 느낄 수 있을 따름이었다”로 끝난다. 어느새 수로부인과 노인은 같은 공기에 적셔진 친한 사이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수로부인 이야기가 수록된 ‘삼국유사’는 고려 충렬왕 시절 보각국사 일연(一然·1206∼1289)이 지은 책이다. 이 저서는 우리 민족의 소중한 역사서이자 신화집이며 동시에 빼어난 문학작품집이기도 하다.그렇기에 여기 실린 이야기들은 해석의 폭이 넓고도 깊다. 수로부인 이야기도 마찬가지여서, 이 작품의 수로부인은 水路라는 이름처럼 물로 대표되는 자연과 소통하는 신화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바다로, 산으로, 못으로 수시로 불려 다니는 그녀는 사실 자연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한국 현대문학사의 거장인 김동리와 서정주는 바로 수로부인이 지닌 이 자연과의 일체성에 공통적으로 주목하고 있으나 그 자연을 해석하는 방식은 각기 다르다.김동리에게 천지자연은 하나의 유기체이며, 그 유기체의 원리 속에서만 인간은 온전한 존재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수로부인’에서 그 유기체의 원리를 인격화한 것이 검님이고, 수로부인은 그 검님의 신명과 감응에 따름으로써 ‘생의 구경(究竟)적 형식’을 완성하게 된다.서정주가 파악하는 자연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는 이성에의 끌림에 충실한 모습을 통해 드러난다. 이 자연에 비하자면 나이니 지위니 하는 것은 성가신 인공의 장식품에 불과하다.수로부인은 과감하게 그 장식품을 떼어낼 줄 아는 여인이고, 그렇기에 결국 “맑은 공기” 속에서 암소를 끄는 노인과 하나로 어우러질 수 있는 것이다.김동리와 서정주가 형상화한 신라 여인 수로부인의 모습에는 한국의 고유한 정신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숨 쉬고 있다.문학평론가 이경재‘매혹적인 신라 여인’ 수로부인. 서정주와 김동리는 자신들의 문학에서 이 여성을 어떻게 그려냈을까?이 궁금증에 답하는 원고를 본지에 보내온 문학평론가 이경재는 1976년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국문과와 동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박사학위 논문은 ‘한설야 소설의 서사시학 연구’.200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돼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시작했고, 문예지 ‘문학수첩’의 편집위원을 지냈다.비평집 ‘단독성의 박물관’과 ‘끝에서 바라본 문학의 미래’를 등을 썼으며 ‘한설야와 이데올로기의 서사학’ ‘한국 현대소설의 환상과 욕망’ 등의 연구서를 펴내 주목받았다.지난해 출간한 ‘한국 현대문학의 공간과 장소’는 평단과 독자들로부터 “공간의 이해를 통해 문학의 주제에 접근한 독특한 저작”이라는 호평을 얻어내기도 했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8-07-27

韓~러 연결 통로서 환동해 물류·관광활성화 견인 기대

갈 수 없는 지역을 곧바로 이어주는 매개체, 바로 다리(교량·橋梁)이다. 우리는 일생 동안 수많은 다리와 마주한다. 냇가에 놓인 징검다리부터 산과 산, 육지와 섬, 섬과 섬을 잇는 다리까지 지금까지 또 앞으로도 많은 다리를 오가며 살아갈 것이다. 다리는 의식주에서부터 물적·인적 교류를 통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많은 분야의 연결통로가 돼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다.이렇듯 다리가 가지는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예를 들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골든게이트교는 차고 거센 조류와 안개가 많은 날씨, 그리고 수면 아래 지형이 복잡해 건설이 불가능할 것으로 예측됐지만 4년 만에 완공돼 미국 토목학회에서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오클랜드 베이교 역시 마찬가지로 샌프란시스코 특유의 거친 물살, 강풍, 토양조건, 물의 깊이, 기술적 문제 등으로 인해 건설이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됐지만 예르바부에나섬을 중심으로 베이 브릿지를 건설하면서 많은 건축자재와 인건비를 최소화해 결국 건립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국내외를 가릴 것 없이 대형 교량들은 갖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건설돼 각 지역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다.그렇다면 경북은 어떨까. 경북 동해안의 교통허브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포항을 보면 포항∼영덕 고속도로 건설 사업의 일부 구간으로 영일만 대교 사업이 있다. 하지만 이 사업은 사업 제안 이후부터 많은 우여곡절을 거치며 현재는 추진이 지지부진한 상태. 그러나 위기가 지나면 기회가 다시 찾아오듯, 북방외교의 활성화로 영일만 대교가 다시 주목받고 있는 현 시점에서 그 필요성과 기대효과에 대해 알아본다.포항시, 주요 관광명소 접근성 높이고 울산간 국도대체우회도로 이용 줄여 물류비 절감 기대경북도, 부산~유럽 아시안하이웨이 연결 도로망 구축된다면 북방교류 협력 선점 효과 커중앙정부, 영일만항 거점으로 북방외교 성공 이끌 교두보 기대·U자형 국토균형발전 역할도□ 영일만 대교 추진될까포항시가 영일만항 물류수송 및 해양관광 활성화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영일만대교 건설 사업이 경제성과 환경문제 등으로 좀처럼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던 가운데 ‘판문점선언’ 등 남북경제협력의 확대 분위기로 인해 그 필요성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고개를 들고 있다.영일만대교는 포항시 남구 동해면과 북구 신항만을 연결하는 전체 길이 9.1㎞의 구간으로 포항∼영덕 고속도로 건설 사업의 일부 구간이다. 영일만대교가 건설되면 네트워크형의 교통순환체계가 이뤄지면서 블루밸리를 비롯한 국가산업단지와 영일만항, 철강산업단지와의 접근성이 한층 좋아지게 된다. 당연히 물류비용이 획기적으로 절감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따라서 물류수송 수단인 철도와 고속도로 건설이 필수요건이라는 점에서 본격적인 남북경제협력을 위해서는 영일만대교의 건설 추진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문제는 예산이다. 영일만대교 건설은 수조원이 투자되는 사업으로 수익성과 예산확보 등의 문제로 최근까지 실질적인 사업진척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하지만 포항시는 영일만대교 건설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특히 최근 남북관계 호전에 대한 기대감으로 사업 진척에 파란불이 켜졌다는 평가이다.관련해서 포항시는 영일만대교 건설을 비롯해 국제여객부두 조성과 포항 수출물류(가공)단지 조성, 자유무역 지역 조성, 콜드체인(Cold Chain·저온유통체계, 즉 냉동 ·냉장에 의한 신선한 식료품의 유통방식) 구축, 북방항로 및 북극항로 개척 등 관련 사업에 대한 연계 추진 등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이강덕 포항시장은 “포항이 명실상부한 환동해중심도시로 거듭날 수 있는 사업으로 미래 경북의 100년을 위한 사업이기도 한만큼 민·관이 체계적으로 역할 분담을 하고 협력해 나가겠다”면서 “영일만대교 건설을 통해 영일만항 활성화를 비롯해 지역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일만 대교 사업의 역사총 사업비 1조7천700억원의 대형 국책사업인 영일만대교는 지난 1992년 초 포스코에서 발표한 ‘영일만 광역권 개발 기본구상’에서 출발했다. 서울대학교에 용역 의뢰해 만들어진 이 기본구상에는 영일만 해상도시(인공섬) 프로젝트가 포함돼 있다. 영일만에 인공섬을 조성해 국제공항과 항만시설, 주거지역, 위락시설 등을 입주시키고 이 인공섬과 육지 양쪽을 교량으로 연결시키는 방안이 제안됐다. 영일만대교는 이처럼 포항의 새로운 희망으로 힘차게 출발했지만, 이후 정치권의 변화에 따라 정부의 정책이나 평가주체, 평가시점이나 방법 등에 따라 다른 추진 해법이 나왔다. 특히 예비타당성조사에서 국토균형발전론을 내세운 정치권의 영향으로 서해대교를 비롯해 호남지역의 대부분의 섬들은 교량으로 연결됐지만, 영일만대교에는 경제성 분석의 잣대가 적용돼 매번 사업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그러던 중 영일만대교는 2011년 말 국토해양부의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당초 서쪽 육지로 계획된 포항~영덕구간 일부가 영일만을 횡단하는 동쪽으로 변경되는 안이 확정되면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이에 포항시 역시 민자유치를 통해 2020년 완공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했고, 2015년에는 국회 본회의를 통해 ‘기본계획수립용역비’ 20억원이 반영됐다. 하지만,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조사와 국토부 타당성조사까지 마쳤음에도 지난 2017년 사업계획 적정성 재검토가 진행되는 등의 시련을 겪었고, 이번 정부 들어서는 아예 국정과제에 포함되지 않으며 현재 사업추진에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이다. □ 영일만 대교의 필요성그렇다면 경북도와 포항시는 왜 경제성이 떨어지는 영일만대교의 건설을 고집하는 것일까? ‘해양경북의 랜드마크’가 될 영일만대교가 완성되면 어떤 효과가 나타날까?우선 포항시의 입장에서는 영일만대교가 완성되면 호미곶을 비롯한 주요 관광명소의 접근성이 높아진다. 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가장 철(鐵)을 많이 생산하는 포항과 국내에서 가장 철(鐵)을 많이 소비하는 울산간의 물류가 국도대체우회도로를 이용하지 않아도 돼 물류비가 크게 절감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재 포항∼울산 고속도로의 개통으로 국도대체우회도로와 국도 7호선의 교통량이 증가해 심각한 정체현상을 보이고 있는데, 영일만대교가 완공되면 이 문제도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영일만대교 건설과 영일만항 활성화를 시작으로 영일만관광특구 지정으로 이어지는 물류산업과 해양관광산업의 육성을 통해 다음 세대를 위한 먹거리를 발굴한다는 측면도 중요하다.경북도의 입장에서도 영일만대교는 북방교류협력을 선점하는 차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사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포항에서 영덕, 울진, 삼척으로 이어지는 동해안고속도로를 부산에서 시작해 유럽으로 연결되는 아시안하이웨이와 연결한다면 북방진출의 대동맥을 경북에서 시작하게 된다. 여기에 동해안 유일의 국제 컨테이너항만인 영일만항을 북방진출의 거점항만으로 육성해 나간다는 큰 그림을 그리는데 영일만대교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중앙정부 차원에서도 환동해경제권의 물류·관광산업의 활성화를 위해서 영일만대교의 건설은 미룰 이유가 없는 사안이라는 분석이다. 부산에서 시작해서 울산과 포항, 영덕, 울진, 삼척, 나선특급시 등을 거쳐 러시아의 하산과 블라디보스토크를 연결하는 도로망이 구축될 경우, 영일만대교는 환동해권의 도시연대를 통한 물류·관광 활성화에도 중요한 고리 역할을 할 것이라는 평가이다.또한 영일만대교는 L자형 국토개발 형태에서 U자형 국토균형발전에 기여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영일만항은 우리나라와 러시아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이다. 현 정부가 공을 들이고 있는 북방외교를 성공시킬 수 있는 교두보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될 곳 역시 영일만항이다. 영일만대교는 북방물류거점항만으로 건설된 그 영일만항의 남쪽 통로 역할을 하게 된다. 영일만항과 포항철강산업단지, 울산공업단지, 부산항을 연결하는 중요한 물류수송 기능을 하게 된다. 이제는 정치논리나 지역 차별성에서 벗어나 영일만대교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되고 냉정한 판단이 내려지기를 바란다./전준혁기자 jhjeon@kbmaeil.com

2018-07-26

경북 최초 ‘같이 모여 함께 일하는 창업공간’ 준비된 청년 CEO 육성

청년인구 유출과 실업난의 해결방법으로 기존 산업 체계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업종에서의 일자리 창출이 요구되고 있다. 그 중심에 ‘청년창업’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정부와 자치단체들은 이를 위해 각자 청년창업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이혁재 경북 북부권 청년창업지원센터 본부장은 “경북 북부권 청년창업자에게 최고의 접근성과 최대의 인프라 제공을 통한 창업 허브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본지는 안동시가 추진 중인 청년창업지원 사업과 성공·우수사례를 소개하고 앞으로의 청년 일자리 사업과 사회적 경제 활성화 방안, 향후 추진방향 등을 조명해 본다.경북도, 청년일자리 정책 추진창업투자생태계 조성에 88억지역정착지원형에 59억 투입청년 취·창업 다양한 기회 제공청년창업가 ‘코워킹 공간’ 제공전문적 교육·마케팅·판매까지기술·지식·6차 산업 창업 지원최고 접근성·최대 인프라 제공◇ 청년층 지방 유도·산업인력 창출통계청이 발표한 ‘5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15∼29세) 실업률이 역대 최고치인 10.5%를 기록했다.체감실업률을 보여주는 청년층 고용보조지표는 23.2%로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이처럼 사상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청년 실업률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안동시와 경북도가 추진 중인 ‘청년 일자리 정책’이 주목을 받고 있다.행안부는 지난 5월 일자리추경에서 확보된 831억원(국비 기준)을 활용해 전국 1만480명의 청년에게 취·창업 기회를 제공하고, 70곳의 창업 공간을 조성해 청년 친화적 취·창업생태계를 조성한다는 방침이다.이에 따라 경북도는 지역정착지원형에 59억원(국비 26억원)을 투자해 중소기업 및 사회적 경제기업 등에 390개의 청년일자리를 제공하고 도내정착을 도울 계획이다.특히 창업투자생태계조성형에 88억원(국비 27억)을 투입, 경북에 창업하는 도시청년 100명에게 1인당 연간 최고 3천만원의 창업자금을 지원하고 창업 공간 4개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앞서 안동시와 경북도는 ‘경북도 북부권 청년창업지원센터’를 안동에 설치하고 본격적인 청년층의 지방 유도를 위한 신성장 산업 및 일자리 창출에 나섰다. ◇청년창업지원센터가 하는 일경북 북부권 청년창업지원센터는 낙후된 경북 북부지역의 특화분야 청년 창업자를 발굴·육성해 청년 취·창업 활성화 및 우수 청년 창업자와 기업 배출을 목적으로 지난 5월 16일 안동시 옥정동에 위치한 안동도시재생센터 3층에 문을 열었다.지난해 6월 착공해 이날 개소한 북부권 청년창업지원센터는 청년 창업가들에게 효율적인 창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지원하고 ‘같이 모여 일한다’는 의미를 가진 경북 최초의 청년 창업가를 위한 코워킹(Co-working)공간이다.올해 도시재생센터 3층 359.84㎡, 내년엔 4층 269.4㎡ 공간에 4억7천여만 원을 들여 청년창업지원센터를 구축할 계획이다. 이곳엔 북 카페, 라운지, 공연장 등 청년문화 친화공간으로 활용된다.이 센터는 2021년까지 34억2천여만 원을 들여 안동·영주·문경시와 예천·의성·봉화·영양·청송군 등 8개 시·군의 청년 예비창업가를 대상으로 도내 협력기관들과 유기적 협업을 통해 장기적인 창업 보육 모델을 구축한다.이어 초기 창업 과정을 지원받은 심화 창업자를 위한 실무 중심의 효율적인 사업을 지원한다.특히 경북 북부권역 산업과 연계한 지역 강점인 6차 산업, 문화자원 등 사업 아이템을 가진 예비창업자를 중점 지원하고 있다.예비 창업가들에게는 실전형 창업교육과 아이디어에 대한 평가와 실행, 전문가 자문, 시제품 제작 등 창업 전 과정을 지원한다.교육 수료 이후에도 안정적인 경영정착을 위해 경북도와 협업을 통해 판로개척, 마케팅 디자인 제작지원 등 사후 관리도 한다.이곳에선 청년 창업가들에게 창업 활동비를 지원하고, 8개의 다양한 창업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청년CEO들의 창업 및 취업 활동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코워킹 공간(Co-Working Space)·청년창업 지원청년 창업가에게 창업공간을 제공하는 ‘코워킹 공간’ 지원은 청년창업 지원센터 입주자 대다수가 외부 사업장을 운영하거나 1인 창업기업으로, 고정적인 공간 필요한 기업을 제외 나머지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창업활동비의 뚜렷한 목적성을 위해 업무추진비 및 여비, 소모품, 기타 경비 목적으로만 사용하되, 높은 금액이 소요되는 특정 목적의 사업화 지원은 창업 분야별 요구에 따라 선택형으로 지원한다.학생 직업 역량 및 청년 일자리 부족과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한 ‘청년 강소기업 창업 인턴제’는 6천970여만 원을 투입해 청년 기업에는 맞춤형 특화 인재와 인건비 약 70%를 지원한다.청년 인턴에게는 인턴 필수교육 지원과 인센티브 지급한다.청년 강소기업에게 지원하는 인건비의 경우 월 1인 100만원 한도로 고용 계약서 기준 월 봉급액의 52.7%, 국가근로장학금 21%를 지원한다.지원기간은 선정일로부터 6개월간이다. 인턴에게는 사업 종료 후 1개월 이내, 1인 100만원 한도로 지급한다. 이 밖에 기업에는 청년 친화적 기업 인증을, 인턴에게는 경력증명서를 각각 발급한다.청년CEO 지원에 따른 규모 있는 사업화 지원금을 지급하는 ‘청년 Biz-up 프로그램’은 단일 제품을 판매하는 청년기업의 특징을 감안해 기술집약적 제품을 개발하고, 고부가가치를 융합한 새로운 표준의 제품 혁신이 목표다.이에 9천200여만 원을 투입, 청년CEO 20명을 선발해 이들에게 500만∼3천만 원까지 지원한다. 특히 지역특화, 기술 집약·혁신, 지역문화 덧대기 지원 등을 통해 지역특화 청년CEO양성, 기술 혁신 제품 창출, 고부가가치 창출을 기대하고 있다.◇농식품 창업·6차 산업-경북 문화 브랜딩 지원농식품 분야 청년 창업가를 위한 지원사업인 ‘농식품 창업 성공 DNA 과정’은 농식품 창업의 까다로운 제조공정을 전문 기관의 특화지원과 체계적인 전문가 양성 교육을 통해 조기 사업화와 제품의 시장 상용화를 돕는다.전문 기관으로 참여하는 경북바이오산업연구원은 시험 생산과 실험분석 지원, 제품검사, 인증 지원을 담당한다.경북바이오벤처프라자는 제품 공정과 품질 장비, 제품성분, 품질관리 등을 지원한다.교육과정을 마친 청년기업 중 직접 생산을 희망하는 기업 중 생산 공장을 설립하기 어려운 기업에는 경북바이오벤처프라자의 아파트형 공장 입주도 지원한다.6차 산업은 농촌에 존재하는 모든 유·무형의 자원을 바탕으로 농업과 식품, 특산품 제조가공(2차 산업) 및 유통 판매, 문화·관광·체험·서비스(3차 산업) 등을 연계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이런 농업의 6차 산업에 경북의 문화콘텐츠를 접목한 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6차 산업-경북 문화 브랜딩 지원’은 콘텐츠와 제품 간의 관련성이 인증될 때 해당 콘텐츠를 제품에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또 이 제품의 콘텐츠를 다각화해 6차 산업의 새로운 브랜드 마케팅 수단으로 지원한다.세무 및 회계 신고기간에 맞춰 단기특강을 지원하는 청년기업 실무 교육 및 멘토링 지원사업은 청년CEO 기업의 애로사항 및 시장 개척을 위한 교육을 진행한다.청년기업의 지속적인 사업 영위와 기업 규모 증대에 따른 세무·회계·법률 중심의 교육 및 멘토링 커리큘럼 구축한다. 또 판로 개척을 위한 우수 청년 기업의 직·간접적인 수출 교육 및 상담회를 시행한다. ◇청년기업 우수제품 세일즈·투자 오아시스 발굴‘청년 기업 우수제품 세일즈 프로모션’은 판매 스피치 프로그램 운영, 청년 창업가 플리마켓과 판매전 등을 개최하는 제품 판매 활동이 취약한 청년 기업을 지원한다.이론에서 벗어나 실제 실현 마케팅 중심의 지원 프로그램을 구축해 청년기업의 우수 제품이 시장에 상용화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한다.지원 체계는 1단계 청년기업 세일즈 시피치, 2단계 센터 및 학내 청년기업 플리마켓 운영, 3단계 도내 청년기업 팝업 스토어 설치, 4단계 유통·판매전 참가, 5단계 오프라인 스토어 개점, 끝으로 해외 수출까지 총 6단계로 나눠 지원한다.투자를 원하는 기관 또는 개인과 투자를 받고 싶어 하는 청년기업의 수요는 많으나 기업 검토와 투자 협상을 거쳐야 하는 복잡한 단계 아래서 많은 투자 기회가 사라지고 있다.이에 센터는 투자자와 청년기업간의 정기적인 만남(데모데이)의 장을 마련한다. 아울러 투자 유치의 중요성을 청년 기업에 인식시키기 위해 후원성 크라우드 펀딩 텀블벅과 굿 펀딩, 인큐젝터 등과 연계해 청년 기업의 투자 유치 활성화에 노력하고 있다.◇준비된 창업가 발굴해 청년CEO 육성경북 도내 청년창업지원센터는 각 시·군, 지역 대학교 창업보육센터와 기관들이 협력해 청년CEO 육성사업을 펼친 결과, 1천774팀이 창업에 성공하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뒀다.더욱 주목할 점은 창업유형이 소위 치킨점으로 대표되는 생계형 창업에서 벗어나 기술·지식·6차 산업 창업 등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이는 창업의 양적 성장보다 정착지원에 중점을 두고 좋은 창업, 준비된 창업가 발굴에 초점을 맞춰 추진한 정책이 효과가 있었다는 평가다.특히 지난해 안동시와 위탁 기관인 안동대학교는 경북 북부권 청년창업지원센터를 운영해 20명의 청년CEO를 양성했다.이들은 18억원의 매출과 34명의 고용 창출 성과를 거뒀다.이들 가운데 곤충 ‘페로몬’을 활용한 친환경 해충방제 기업인 (주)에이디(대표 권기봉)는 지난해 기업 및 제품 인증 5건 획득에 특허 출원 등록까지 마치면서 우수사례로 꼽히고 있다. 권기봉 대표는 “경북 북부권 청년창업지원센터로부터 창업초기 시제품을 개발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창업공간을 지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 재정적인 면에서도 많은 혜택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손병현기자why@kbmaeil.com

2018-07-25

추문·비난에 얼룩진 신라 마지막 여왕 진성, 그 빛과 그림자

지금으로부터 1천130년 전인 아득한 옛날 서라벌. 신라의 궁궐에서 시작된 소문이 저잣거리를 술렁이게 했다. 이런 내용이었다.“여왕이 자기 아버지의 동생인 숙부 위홍(魏弘)과 추문을 일으키더니, 그가 죽고 나서도 음심(淫心)을 참지 못하고 젊고 잘생긴 사내들을 궁으로 불러들여 밤마다 주지육림(酒池肉林)의 잔치를 벌이고 있다. 이 나라 미래가 어찌될 것인지….”이뿐 아니었다. 세간을 휩쓰는 풍문 중에는 아래와 같은 것들도 있었다.“여자가 왕에 오르고 나서 해괴한 일이 자꾸 일어난다. 사철 솟구치던 우물이 마르고, 하늘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비를 내려주지 않고 있다. 각처에서 도적이 들끓고, 조정(朝廷)의 충신은 씨가 말라 간신만이 활개치고 있다.”이처럼 맹렬한 공격과 원망의 대상이 된 사람은 신라, 아니 한국 봉건시대의 마지막 여왕인 진성(재위 887~897)이었다.“음란한 것은 물론, 정치 감각도 없었다”는 꼬리표는 진성여왕을 따라다니는 어두운 그림자다. 그런데 그건 공론(空論)에 불과했을까? 아니면 진실일까?가뭄·홍수로 고통받는 백성 위해즉위 즉시 조세면제 정책 펼치고어려운 백성 직접 돌보기도이미 국가통제력 상실된 신라말기진성의 정치력으로는 통제불가◆ 아버지와 오빠 둘에 이어 왕좌에 오르다먼저 그녀가 어떤 경로를 통해 여왕의 자리에 오른 것인지 살펴보자.진성여왕의 아버지인 경문왕은 ‘왕의 직계 혈통’이 아니었다. 그가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장인 헌안왕의 유언 때문. ‘삼국사기’에 따르면 죽음을 앞둔 헌안왕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과인은 불행히도 아들이 없고 딸만 있다. 옛날 선덕과 진덕 두 여자 임금이 있었으나, 이는 암탉이 새벽을 알리는 것과 유사하므로 본받을 일이 될 수 없다. 나의 사위 응렴(膺廉·경문왕)은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성숙한 덕을 갖추었으니, 경들은 그를 왕으로 세워 섬기라. 그러면 훌륭한 왕업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왕이 될 수 있는 사람’에서 여성을 배제한 헌안왕과 달리 경문왕의 아들이었던 정강왕은 요즘 말로 하면 ‘페미니스트(Feminist)’의 면모를 보인다.역시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다음과 같은 진술을 통해서 이를 알 수 있다. “나의 병이 위중하니 이제 다시 정치 일선에 나서기가 힘들 것이다. 그런데 내겐 왕위를 이을 자식이 없다. 누이 만(曼·진성여왕)은 천성이 총명하고 민첩하며 그 뼈대가 남자를 능가하니, 그대들은 선덕과 진덕의 옛 일을 본받아 그녀를 왕위에 옹립해 성심으로 받들라.” 진성여왕 직전에 신라 왕의 역할을 수행했던 사람은 경문왕, 헌강왕, 정강왕이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경문왕은 진성의 부친이고, 헌강왕과 정강왕은 오라버니였다. 진성여왕은 겨우 1년 남짓 통치권을 행사하다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오빠’ 정강왕의 의지 덕택에 왕좌에 앉을 수 있었다.사학자 이기봉은 그의 논문 ‘신라 진성여왕대의 재이(災異·괴이한 일과 재앙)와 농민 반란’에서 이와 관련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진성여왕은 경문왕가(王家) 성립 이후의 왕권 강화정책과 왕실의 신성화 노력으로 즉위할 수 있었다.”이에 더해 이기봉은 진성여왕 시기의 신라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는지도 요약해 알려준다. 아래와 같은 진술이다.“진성여왕은 즉위 이후 곧바로 조세 면제 조치를 취했다. 계속된 서라벌 일대의 가뭄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정책이 백성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당시엔 이미 신라의 국가통제력이 상실되는 상황이었고, 이듬해 조세를 독촉하자 농민들의 반란까지 일어났다.”실제로 그랬다. ‘통일신라’의 번영을 몇 대에 걸쳐 제대로 누렸던 서라벌은 9세기를 넘어서며 위기를 맞고 있었다.반복되는 홍수와 가뭄은 민생을 곤궁에 빠뜨렸고, 귀족들의 욕심이 도를 넘어서고 있었던 것. 당연한 수순처럼 신라 각지에서 민란(民亂)이 발생했다. 진성여왕 한 사람의 잘못 탓만이 아니었다. 한국역사연구회에서 발행한 조경철의 논문 ‘신라의 여왕과 여성성불론’엔 이와 관련된 서술이 등장한다.“진성여왕은 국내외적 상황이 어려움에도 나름대로 정치를 이끌어 나가려고 노력했다. 진성여왕 시기에 조세와 공물이 제대로 걷히지 않고 도적이 들고 일어났지만, 신라의 상황은 진성여왕이 왕위에 오르기 전 이미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이와 같은 상황이 진성여왕대에 눈덩이처럼 불어나 더욱 어렵게 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다른 왕이 다스렸다 해도 몰락으로 기울고 있는 신라를 어찌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 진성여왕이 보여준 ‘긍정적인 면’도 살펴야조경철의 지적처럼 9세 말 신라에 닥쳐온 위기상황이 진성여왕의 실정(失政) 하나만으로 야기된 것은 아닐 터. 하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음탕함’과 ‘정치 감각의 부재’라는 진성여왕의 ‘그림자’에만 주목하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녀에게도 ‘환하게 빛나는’ 일화 역시 없지 않다. ‘삼국사기’엔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진성여왕 시절 서라벌에 살던 처녀 지은(知恩)은 서른이 넘도록 혼인을 하지 않고, 장님인 어머니를 모시는 일에만 온 정성을 다했다. 하지만, 여자 혼자의 몸으로 모친을 제대로 공양하기가 쉽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지은은 부잣집에 자신을 여종으로 사달라고 읍소한다. 지은의 어머니는 딸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이 소식을 들은 진성여왕은 집을 마련해 모녀를 편히 살게 해주고, 군사를 보내 둘을 지켜주기까지 했다.”이 에피소드는 진성여왕의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이에 더해 진성여왕은 권력의 무상함을 일찍 깨닫고 자신의 조카인 요(嶢·효공왕)에게 왕위를 기꺼이 물려주기도 했다. 그때 그녀의 나이 겨우 20대 후반이었다. 욕심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이 간행한 ‘신라에서 고려로’엔 다음과 같은 서술이 실렸다. 이는 진성여왕의 ‘그림자’만이 아닌 ‘빛’도 함께 살피자는 이야기로 이해될 수도 있다.“진성여왕에 대한 비난은 대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거나 남성우월주의의 편향된 시각에 기인한 바가 많다. 국가 멸망의 원인을 지배층의 무능과 실책 탓으로 돌리는 것은 보편적인 경향이라 하겠지만, 그것을 여자가 왕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하고 거기에 음란과 방탕이라는 올가미까지 씌워 비난하는 것은 가혹하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적절하지 못한 비판이나 오명을 덮어쓴다는 것은 마땅치 않다. 신라 쇠퇴의 원인에 대한 보다 객관적이고 엄정한 규명이 이루어져야 한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8-07-20

울진 바다·숲·온천… 三色 매력에 심장이 쿵

일상을 훌훌 벗어 던지고 어디론가 달려가고 싶은 열정의 계절, 여름이다.작열하는 태양, 코발트 빛으로 유혹하는 바다, 눈부시도록 환한 은빛으로 펼쳐진 모래밭, 싱그런 녹음으로 뒤덮인 계곡이 그리운 여름이다. 동해안에 자리잡은 ‘생태문화관광도시’, 국내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삼욕(三浴;해수욕·산림욕·온천욕)의 고장 울진에서 올 여름 특별한 이벤트를 마련했다. 올해로 8회째 맞는 ‘2018 울진 워터피아 페스타’가 바로 그 것. 울진 워터피아 페스타는 ‘생태문화관광도시’ 울진의 대표적인 여름 축제로 여름 휴가가 절정에 이르는 오는 28일부터 8월 5일까지 9일간 울진 염전해변과 왕피천, 엑스포공원, 망양정해수욕장, 금강소나무숲 일원에서 화려하게 펼쳐진다.이번 울진 워터피아 페스타의 슬로건은 ‘바다·숲·온천 울진에 푸욱 빠지다’다. 낮에는 시리도록 투명한 바다와 모래밭, 맑고 깊은 왕피천에서 물놀이 체험프로그램과 모래조각 체험, 은어반두잡이·후릿그물체험, 놀싸움, 뗏마타기, 윈드스핑, 카누·카약, 워터바이크, 워터 제트 등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가족 중심 체험프로그램이 숨가쁘게 진행된다.해변의 밤은 노래와 춤과 마임, 매직과 모래밭 토크쇼가 어우러진 환상의 콜라보레이션이 연출된다. 축제가 진행되는 9일 동안 염전해변과 왕피천, 망양정해수욕장은 힐링과 열정의 공간으로 변한다. 28일부터 8월5일까지 9일간염전해변·왕피천·엑스포공원·망양정해수욕장 등곳곳에서 다양한 축제장 펼쳐져낮에는 물놀이와 체험 프로그램밤에는 공연·마술·토크쇼 등지루할 틈없는 한여름의 울진 ‘유혹’◇모래밭에서 펼쳐지는 한국청소년댄스경연대회축제를 주관하는 울진군축제발전위원회(위원장 남효선)는 이번 축제에 청소년들의 위한 킬러콘텐츠 하나를 더 마련했다.올해 첫 선을 보이는 ‘한국 청소년 댄스 경연대회’가 그 것이다. 이번 대회에는 전국의 청소년 댄스동아리 50여개 팀이 출전해 기량을 겨룬다.축제 오프닝 퍼포먼스를 겸해 펼쳐지는 경연대회는 참가팀이 ‘울진대게춤과 대게송’을 주제로 한바탕 신명나는 플래시몹을 펼친다. 모래밭에 펼쳐지는 경연 자체가 열정의 무대다.축제발전위원회는 이번 청소년 댄스경연대회를 마련한 배경으로 젊은 층 참여를 통한 워터피아페스타 이미지 확장과 축제 변별력 강화를 내세웠다. 참가자격은 청소년(13~19세) 4인 이상으로 구성된 팀이면 가능하다. 참가 분야는 B-Boy, 팝핀, 힙합, 방송댄스, 창작댄스 등 댄스 전 장르이다. 상금도 푸짐하다. 참가신청은 울진군청 홈페이지의 워터피아페스타 홈페이지나 울진군축제발전위원회(054-789-5485~6)로 하면 된다. ◇모래밭과 왕피천이 선사하는 놀이의 세계축제장인 염전해변과 왕피천은 모래조각 체험장과 가족 단위로 함께 즐길 수 있는 물놀이와 은어잡기·구이체험장 그리고 수상레저 체험장으로 운영된다.모래조각 체험장은 지난해와 달리 그 규모와 체험프로그램을 대폭 강화했다. 세계적 명성을 지닌 모래작가와의 만남은 물론 유아들이 맘놓고 놀이판에 빠져들 수 있도록 체험장을 다양하게 마련했다. 물놀이 체험장은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물놀이 기구를 구비해 그야말로 물놀이 천국으로 운영한다. 또 어른들이 즐길 수 있는 워터장애물 놀이장의 규모도 대폭 늘여 운영한다.수상레저 체험장으로 운영되는 왕피천은 교육을 겸한 윈드스핀 체험프로그램과 카누, 카약, 수상바이크 등 다양한 수상기구를 즐길 수 있도록 진행한다. 또 하늘로 치솟는 워터제트의 체험은 짜릿한 스릴과 함께 소중한 추억을 선사한다.특히 지난해 처음 선 보인 ‘놀싸움’과 ‘뗏마체험’은 울진지방 전통 문화의 진수를 직접 체험하는 소중한 기회를 안겨준다.이와 함께 왕피천과 염전 앞 바다에서 진행되는 ‘후릿그물던지기 체험’은 울진지방 전통어로 기술을 직접 익히는 프로그램으로 쏠쏠한 재미를 안겨준다. 여기에 관동팔경의 하나인 망양정과 울진 남대천 은어다리를 잇는 해파랑길 걷기 체험프로그램과 세계적 명품 ‘울진금강소나무숲 생태탐방’은 버스킹과 함께 최고의 힐링을 선사한다.지역민과 관광객이 함께 참가하는 ‘수중배구’, ‘수중풋살’, ‘수중줄다리기’는 경기 방식으로 진행해 긴장감과 묘미를 더한다. ◇망양정해수욕장, 여름밤이 펼치는 품격 높은 공연축제 이튿날인 29일 망양정 해수욕장을 배경으로 ‘청소년 댄스 경연대회’와 플래시몹으로 막을 여는 야간 프로그램은 ‘관과 현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펼쳐지는 콜라보레이션인 ‘망양정 블루스’, ‘모래밭 섬머파티’, ‘하이퍼마스크댄스’와 유명 연예인과 지역 연예인이 함께 어우러지는 무대 공연, 마임과 매직 등 다양한 장르로 전개된다.특히 문학, 사진, 미술 등의 주제로 모래밭에서 진행되는 ‘모래밭 토크쇼’는 뜨거운 여름밤을 훈훈한 감성으로 식혀주는 격조 높은 축제의 진수를 보여준다. ◇‘축제 밴드제’ 지역 경제 살리는 ‘일석이조’축제장인 염전해변과 왕피천을 무대로 운영되는 모든 체험 프로그램을 비롯 축제 체험프로그램은 모두 ‘축제밴드제’로 운영된다.축제장에 마련된 ‘축제밴드(1개당 1만원)’ 판매소에서 반드시 밴드를 구입, 착용해야만 체험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축제밴드를 착용하면 축제장 전역에 마련된 모든 체험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또한 체험프로그램에 참여한 밴드는 재활용된다. 축제장에 마련된 다양한 먹거리 부스나 울진지역 농수임특산물 부스에서 재활용(밴드 1개당 5천원)하면 된다.축제장에 마련된 체험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축제참가밴드를 1만원에 구입하고 체험을 모두 즐긴 뒤 축제장에 마련된 먹거리 부스나 농수임특산물 부스에서 1개당 5천원으로 재활용 되는 방식이다.축제도 즐기고 울진지역 특산물도 구입해 축제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는 선순환적 프로그램인 셈이다.남효선 축제위원장은 “올 워터피아 페스타는 종전과는 달리 프로그램을 대폭 강화하고 특히 울진군민이 직접 축제판을 짜고 운영하는 주민참여형 축제와 울진이 보유하고 있는 자연을 고스란히 담아 격조 높은 힐링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며 “물놀이 중심의 ‘낮’ 프로그램과 ‘가족 중심의 따뜻한 감성과 공연’을 담은 ‘밤’ 프로그램으로 특화해 울진을 찾는 피서·관광객들에게 또다른 볼거리, 즐길거리를 선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울진/주헌석기자 hsjoo@kbmaeil.com

2018-07-16

7척의 키에 풍만하고 아름다운 모습용인술·외교력까지 갖춘 진덕여왕

서기 649년. 백제는 은상(殷相)을 선봉장으로 하는 7천여 명의 군대를 신라로 보내 7개의 성을 동시에 공격한다. 태풍 앞에 세운 촛불 같아진 나라의 운명. 왕은 궁궐로 대장군 김유신(595~673)을 불러들인다. 목숨을 건 수많은 전투에서 잔뼈가 굵은 김유신은 신라의 군권(軍權)을 실질적으로 장악한 인물인 동시에 정치적으로도 무시할 수 없는 거물이었다. 그러나 명령을 내리는 왕의 카리스마는 김유신을 압도했다.“병사를 내어줄 것이니 속히 전장으로 달려가 위기에 빠진 이 땅과 백성을 구하라. 패배는 용납하지 않겠노라.”휘하의 장수 수천 명을 도열시킨 김유신이 답한다.“명을 받들어 기필코 승전(勝戰)의 소식을 주군께 전하겠나이다.”다소의 상상력이 더해진 이 장면에 등장하는 왕은 누굴까? ‘천하의 김유신’을 쥐락펴락한 이는 예상 외로 남성이 아닌 여성이었다. 선덕여왕의 사촌동생이자 신라의 28대 왕인 진덕(재위 647∼654).진안갈문왕(眞安葛文王)과 월명부인(月明夫人) 박씨 사이에서 태어난 진덕여왕은 그 풍모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고 한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엔 이런 기록이 남아있다.“자태가 풍만하고 아름다웠던 진덕여왕은 키가 7척(尺)에 이르렀다. 또한 늘어뜨리면 팔이 무릎 아래에 닿을 정도로 길었다.”경주대학교 이강식 교수는 성신여자대학교 경영연구소가 발행한 논문 ‘신라 세 여왕의 삶과 경영’에서 아래와 같은 설명을 덧붙인다.“진덕여왕의 이름은 승만(勝曼)인데 이는 ‘특별히 뛰어난 아름다움’으로 해석할 수 있다. 7척을 신라 때의 당척(唐尺)으로 계산하면 207.9cm가 되니 당시로나 지금으로나 사실 거인 여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장대한 자태도 등극하는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이는 큰아버지인 진평왕이 신체가 장대한 것에서 유전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전쟁에는 김유신 앞세우고정치에는 김춘추 활용삼국통일 완수의 큰 발판 만들어◆ 수차례의 외침을 극복한 용기 있는 여왕사실 고대의 역사를 기록한 문헌이나 예술작품엔 크건 작건 과장이 섞여 있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관우는 어지간한 10대 청소년의 몸무게와 맞먹는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를 가벼운 나무젓가락 다루듯 한다. 뿐인가. ‘수호전’의 무송은 맨주먹으로 거대한 식인 호랑이의 머리뼈를 부숴버리는 초인적 괴력을 보여준다.비단 중국만이 아니다. 잭 스나이더 감독이 연출한 영화 ‘300’에서 페르시아 제국의 4대 왕 크세르크세스(Xerxes·재위 BC 486∼BC 465)는 키가 진덕여왕의 2배쯤 되는 4~5m로 그려진다.하지만 그 옛날 왕이나 영웅호걸에 대한 묘사가 마냥 과장스럽기만 한 것일까? 진덕여왕의 경우를 꼼꼼히 살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하다.앞서 언급한 649년 침공 외에도 진덕여왕은 즉위한 직후부터 백제와 고구려 군대의 끊임없는 공격에 맞서야 했다.진덕여왕이 명령하고 김유신이 실행한 방어작전은 성공적이었다. 647년에는 무산성과 감물성을 포위한 백제군을 격퇴했고, 이듬해에도 서라벌 서쪽을 노리는 백제 무장 의직(義直)으로부터 신라의 10개 성을 지켜냈다. 이강식 교수는 위의 논문에서 “사촌누이를 반대한 비담과 염종의 반란을 겪으며 그다지 우호적이지 못한 상황 속에서 즉위한 진덕여왕은 누란의 위기에 빠진 신라 국정을 개혁해 삼국통일의 초석을 다져야한다는 주요한 과제를 안고 탄생했다”고 쓰고 있다. 안으로는 반란의 잔당을 진압하고, 밖으로는 여러 차례의 외침을 효과적으로 극복했다는 점에서 진덕여왕의 용기와 군사적 능력에 후한 점수를 주는 학자들이 적지 않다.여왕의 관심은 군사조직의 정비에까지 이어져 651년에는 왕궁의 호위를 담당하는 부서를 신설했고, 652년엔 궁병(弓兵)들이 주축이 된 부대를 만들기도 했다.일부 역사학자들 사이에선 진덕여왕이 김유신과 김춘추(604~661)가 ‘허수아비로 세워놓은 왕’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그러나 7세기 중반 신라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어떤 잣대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이 주장은 힘을 얻을 수도, 잃을 수도 있다. 아래와 같이 정반대로 말하는 학자도 존재하니까.“선덕여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걸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안목을 키운 진덕여왕의 상황 판단능력과 정치력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전쟁에는 김유신을 앞세우고, 정치적 감각이 탁월했던 김춘추는 당나라와의 외교에 적극 활용했다. 이것만 봐도 진덕여왕의 용인술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 ‘외교’ 분야에서도 탁월한 능력 보여줘백제와 고구려의 침탈에 용기 있게 맞선 통치자였던 진덕여왕은 ‘외교’에서도 발군의 능력을 보였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강식 교수의 논문 ‘신라 세 여왕의 삶과 경영’은 진덕여왕의 외교 전략을 ‘자주화’와 ‘대당 외교의 병행’으로 요약한다.“진덕여왕은 즉위 원년(647년) 연호를 태화로 고쳤다. 그리고 같은 해 초겨울 신궁에서 친히 제사를 지냈는데, 이는 신라의 천신교 의례를 수행함으로써 자주성을 표방한 것이다.”신라가 고구려와 백제 사이에서 ‘자주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제화 전략도 필요했다. 이를 위해 진덕여왕은 ‘중국(당나라)과의 외교’라는 방법을 선택했다.이 교수는 신라와 당나라가 우호적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었던 당대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백제와 고구려의 침략에 시달렸던 신라와 고구려 원정에 두 번이나 크게 실패한 당나라의 이해관계가 일치한 결과다.” 여기에 이런 문장도 덧붙이고 있다.“진덕여왕의 대당 외교 성공은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해 삼국통일을 완수하게 되는 발판을 만들었다.”8년의 재위 기간 동안 국방과 외교 분야에서 진덕여왕이 이룬 일은 결코 적지 않았다. 그녀에 관한 보다 정밀한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신라를 읽는 또 하나의 키워드 ‘골품제’뼈에도 품격이 있다?신라는 철저한 계급사회였다. 타고난 혈통과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부모를 통해 얻게 되는 지위가 평생을 지배했다. 언필칭 골품제(骨品制)다.골품제의 최상위 계급은 성골(聖骨). ‘성스러운 뼈’로 해석 가능한 성골은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가 왕의 핏줄을 가진 사람을 지칭했다. 신라의 두 번째 여왕인 진덕은 성골 출신의 마지막 왕이었다.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이 발행한 책 ‘신라의 사회 구조와 신분제’에는 아래와 같은 설명이 실려 있다.“골품제는 신라의 역사와 사회를 들여다보고 살피는 창(窓)과 같은 역할을 한다.동시대에 존재했던 고구려와 백제는 물론 비슷한 시대의 외국에서도 유래를 찾기 어려운 독특한 신분제였고, 신라 사회를 살아갔던 많은 사람들의 정치·사회 활동과 일상생활까지 두루 영향을 미쳤던 법제도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랬다. ‘성골-진골(眞骨·부모 중 한 사람이 왕족의 혈통인 사람)-6두품-5두품-…1두품’으로 나뉜 골품제 아래서 자신의 계급이 확정되면 오를 수 있는 벼슬의 상한선에서부터 입는 옷, 사용하는 생활용품, 집을 지을 수 있는 규모까지가 함께 정해졌다.심지어 여성들의 속치마와 장신구 색깔에까지 골품제가 끼어들었다. 현대인의 상식으론 이해가 힘들다. “너는 성골이 아니라 6두품이니 아무리 돈이 많아도 샤넬 립스틱을 쓰면 안 된다”고 한다면 21세기 여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중앙집권제 국가로 성장하던 신라가 지역 토호들의 세력을 흡수하며 만들어진 골품제는 많은 폐단을 낳기도 했다. 능력과 노력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출신 성분’을 인간의 판단 기준으로 삼았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그래서 몇몇 역사학자들은 신라 멸망의 원인을 ‘골품제가 야기한 차별’에서 찾기도 한다.인도의 ‘카스트(Caste)제도’는 신라의 골품제와 여러 측면에서 유사성을 보인다. 카스트제도 역시 사람을 브라만(Brahman·성직자), 크샤트리아(Ksatriya·귀족과 군인), 바이샤(Vaisya·평민), 수드라(Sudra·천민)의 네 가지 계급으로 나누고 각 계급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을 정해주는 건 물론, 결혼까지 같은 카스트끼리만 하도록 허락했다. 현재 법적으로는 카스트제도가 폐지됐다. 그러나 아직도 인도 사람들의 인식 속에는 이 제도의 그림자가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 생생한 사례를 인도를 여행한 몇 해 전 목격하기도 했다.기자가 묵은 남부 인도의 호텔 주인은 브라만이었는데, 남이 입었던 옷을 절대로 만지지 않는다고 했다. 인도에서 빨래는 천민 계급인 수드라가 한다.뭄바이에선 더 황당한 일을 겪었다. 브라만 계급인 택시기사가 목적지로 가던 중 갑자기 차를 세우고 태양을 향해 기도 올리는 걸 본 것이다.이처럼 골품제와 카스트제도는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기엔 불합리하고 우스꽝스런 사회 시스템이다. 하지만, 그 옛날 신라와 인도를 해석하기 위한 중요한 키워드이기도 하다는 걸 부정하기 힘들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8-07-13

에어포항, 저가항공사로 규모 키워다양한 하늘길 여는 영남권 대표항공사 만든다

포항시 남구 동해면 도구리에 위치한 포항공항. 포항공항은 포항시청에서 약 11.5㎞, 포스코에서 구룡포 방향으로 5㎞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지난 1970년 포항공항에 민항시설이 설치된 이후 48년의 세월 동안 시민의 발로 그 역할을 해왔다. 지난 2014년 6월부터는 약 2년간 활주로 및 항행안전시설을 전면 개보수하고 새롭게 문을 열기도 했으며, 올해 2월 7일에는 포항시를 기반으로 한 지역항공사인 ‘에어포항’이 첫 취항을 시작했다. 초기 자본금 100억원으로 시작한 ‘에어포항’은 50인승 이하 규모의 항공기 2대를 도입해 포항을 거점으로 한 김포 및 제주노선 운영을 시작했으며, 향후 인천을 비롯해 울릉공항 개항을 대비해 울릉도까지 연결하는 노선을 계획하고 있다.경북도 주도 내년 3월 지역항공사 설립 추진… 7월까지 에어포항 법인 합병키로광주공항 등 ‘동서 노선’ 개설·울릉공항 거점공항 육성 등 다양한 발전방안 모색포항, 지역발전·일자리창출 ‘두 토끼’ 잡고 북방교류협력 전초기지 자리매김 기대□에어포항의 도전포항시는 지난 2016년 4월, 포항공항 활주로 공사를 마치고 대형항공사들의 취항을 기다렸지만, KTX 개통으로 수요가 줄어들면서 기존 항공사들이 적자를 이유로 운항을 꺼리는 상황에 맞딱트렸다. 이에 포항시는 시 차원에서 지출하고 있는 적자보전금의 규모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을 타개하고자 새로운 지역항공사 설립에 적극 나서게 됐다.포항시가 기존 항공사에 기대지 않고 새로운 지역항공사를 설립한 결정은 사실상 KTX 개통으로 인해 국내선 항공편의 운항횟수나 항공편 이용승객이 크게 줄고 있는 현실을 반영해서다. 하지만 여기에도 해법은 있다. 제주노선의 경우 해마다 폭발적으로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실제로 한국공항공사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5년도 6월 대비 대구-제주노선의 운항편수와 이용객 수는 각각 11.9%와 20.6%가 증가했다. 2014년 6월에 비해 운항편수는 15.7%, 이용객 수는 35.2%가 늘어난 수치다.국내를 제외한 국제 항공 여객도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이는 엔저와 유류할증료 부담 완화에 따른 내국인의 일본관광과 중국인의 국내관광 수요 증가, 그리고 저가항공사(LCC)의 해외 근거리 신규노선과 운항 확대 등에 힘입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이런 가운데 지역을 기반으로 한 소형항공 사업은 유럽과 미국은 물론 가까운 일본만 보더라도 관광산업 부문을 중심으로 항공수요 창출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좌석 수가 50인 이하인 항공기로 운영되는 소형항공사는 제주에어(제주), 에어부산(부산), 이스타젯(전북), 티웨이(서울) 등의 저가항공사(LCC)와는 구분되는 개념이다.최근 국내에서도 이러한 소형항공사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지방을 거점으로 한 소형항공사는 에어포항에 이어 지난달 말에 취항한 광주공항 기반의 에어필립이 운항 중에 있고, 인천의 에어 프레미아, 강원지역의 플라이강원, 충북지역의 에어로케이가 취항을 추진하고 있다.이강덕 포항시장은 “증가하는 항공여객 수요에 발맞춰 하늘길을 꾸준히 확대해 포항시민은 물론 인근 경주와 영천, 영덕, 울진 등의 지역민들이 제주와 김포 등으로 가기가 한결 편리해질 것”이라면서 “더 나아가 지방 거점공항 확보를 통해 지방도시간 항공교통망을 구축해 포항공항 활성화를 도모하는 한편, 소형항공사로 시작하지만 이른 시일 안에 저가항공사(LCC)로 회사 규모를 키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역항공사를 위한 경북도와 포항시의 노력에어포항은 현재의 노선에 이어 인천, 여수, 울릉도, 흑산도 등으로 국내 노선을 점차 늘려갈 계획이다. 또한 향후 중국, 일본, 러시아, 베트남 등 국제노선도 취항한다는 계획까지 세우고 있어, 포항시는 에어포항을 통해 말 그대로 ‘환동해중심도시 포항’으로 도약하는 또 하나의 계기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이런 가운데 경북도가 에어포항의 안정적인 운항과 포항공항의 활성화를 위해 지역 항공사 설립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북도는 포항시와 함께 각각 자본금 20억원을 출자해 내년 3월 지역항공사를 설립하고 7월까지 에어포항 법인과 합병한다는 내용이다.지난 3월, 경북도에 보고된 ‘경상북도 지역항공사 설립 타당성조사 연구용역’ 결과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가 전체 400억원 규모의 자본금 중 10%인 40억원을 출자하면 비용보다 편익이 높아 경제성 확보가 가능한 것으로 분석됐다.출자방식은 지자체가 시설법인을 설립하고 나서 이미 설립된 에어포항을 합병하는 방식으로, 국내에서 지자체가 출자한 항공사 사례로는 제주항공과 에어부산, 이스타항공 등 3곳의 항공사가 있다.이 경우, 경북도와 포항시가 출자하고 에어포항과 합병하게 될 지역항공사는 설립 후 5년간 약 2천446억원의 생산과 약 584억원의 부가가치, 약 574명의 취업 등 경제유발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됐다.다만, 보고서는 출자시점을 에어포항이 국제항공사 면허를 취득해 B737 항공기(189석 규모)의 운영이 가능하게 되거나, 2022년 이후로 예정된 울릉공항이 개항하는 시점이 적절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에어포항 성공할까에어서울, 에어부산, 제주항공처럼 지역의 이름을 따서 그 지역을 대표하는 항공사가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에어포항에 거는 지역의 기대는 크다. 항공업계는 에어포항이 기업의 규모를 키우고 취항 노선을 늘린다면 동해권역은 물론 영남권을 대표하는 항공사로 자리매김하고 지역의 이미지와 브랜드도 크게 선양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특히 지방도시 간의 하늘길을 개척함으로써 지역민의 항공 이용편익을 늘리는 데도 크게 기여하는 한편, 에어포항이 보유한 인프라를 통해 지역발전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포항공항의 시장성을 높이는 데에도 에어포항이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이에 따라 포항시와 포항공항, 그리고 에어포항 등은 향후 지속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KTX와의 차별화를 비롯한 다양한 발전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이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포항공항과 호남의 광주공항 등 동서(東西)를 연결하는 노선의 개설이다.우리나라 영호남의 주요 도시를 연결하기 위해서는 최소 4시간 이상이 걸리는 육상교통의 불편으로 인해 인적·물적 교류의 장애는 물론 지역화합도 사실상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동서를 잇는 항공노선을 마련하자는 것이다.이와 함께 포항공항은 앞으로 들어서게 될 울릉공항의 거점공항으로 육성하는 한편, 인근에 천년고도 경주와 영일만관광특구 조성에 따른 관광수요를 활용한 활성화 전략 역시 필요할 것이라는 지적이다.이 밖에도 교통약자를 배려하는 서비스 제공과 검색대 확대 등 시설확충, 최적의 항공스케줄 구성 등 항공서비스 경쟁력 강화 등은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이다.이강덕 포항시장은 “에어포항은 국제종합물류항만인 영일만항과 함께 포항이 지속발전 가능한 환동해중심도시로 나아가는데 디딤돌이 될 것”이라면서 “이를 바탕으로 제1차 한·러 지방협력포럼의 개최를 계기로 포항이 북방교류협력의 전초기지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하는데 발 벗고 나서겠다”고 밝혔다./전준혁기자 jhjeon@kbmaeil.com

2018-07-12

심미적 감성 품은 예술가이자 명철한 과학기술자 ‘선덕여왕’

선덕여왕(재위 632∼647)이 남긴 흔적을 찾아 홀로 경주를 찾았던 날은 초여름 소나기와 뜨거운 햇살이 거듭 반복되며 사람을 괴롭혔다. 그러나 6월 말 경주의 풍광은 짜증보다는 감동을 먼저 불러들였다.국립 경주박물관이 마련한 ‘황룡사 특별전’을 천천히 둘러보고, 여왕이 영면에 든 보문동 선덕여왕릉을 들른 뒤 버스를 타고 경주시 인왕동에 우뚝 선 ‘첨성대(瞻星臺)’를 향했다.과학기술·천문관측에 큰 관심삼국사기 ‘총명하고 민첩’ 기록그림 속 은유·상징 읽어내기도옛 사람들은 하늘의 별자리가 인간의 운명과 세상의 변화를 예측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랬기에 반짝이는 달과 별을 관찰하는 것은 ‘세상사의 순리와 역행’을 예언하는 행위와 동일한 의미였다. 첨성대는 바로 이 역할을 수행했다.고서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따르면 첨성대는 선덕여왕 16년(647년)에 만들어졌다.지금은 국보 31호로 지정된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가 남성 왕이 아닌 여성 왕이 지배하던 서라벌에 들어선 것이다.구조적인 측면은 물론, 미학적인 면에서도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첨성대는 선덕여왕이 과학기술과 천문 관측에도 높은 관심을 가진 통치권자였다는 사실을 미루어 짐작하게 해준다.사실 여러 문헌에 전하는 선덕여왕의 모습은 ‘미모’와 ‘예술적 감수성’에 한정돼 있다는 걸 부정하기 힘들다. 예컨대 아래와 같은 묘사들이다. “용봉(龍鳳·용과 봉황)의 자태와 천일(天日·하늘에 떠있는 태양)의 위의를 가진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화랑세기(花郞世紀)’가 표현한 선덕여왕.“성품이 너그러운 동시에 어질고 총명하며 민첩하기까지 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등장하는 선덕여왕 모습.그런데, 과연 그것뿐이었을까? 한국학중앙연구원 김창겸의 논문 ‘신라 선덕여왕의 왕위계승에 대한 논의’에는 아래와 같은 문장이 등장한다. 선덕여왕이 여성의 입장에서 왕이 되기까지의 어려움을 추정하게 해주는 대목이다.“선덕여왕의 즉위는 신라 왕위 계승에서 종전에 지켜온 부자 계승원칙을 준수하고자 재위 중인 왕의 자식이라야만 하는 필수적 기본조건인 혈연에 더하여, 반드시 성골(聖骨·부모가 모두 왕의 직계인 신라의 최고 골품)이라야 한다는 골품제 규정을 새롭게 추가로 적용시킨 사례다.”위의 서술은 선덕여왕이 남성이 아닌 여성이라는 ‘성적인 한계’를 당대의 정치적 지지와 더불어 개인적 능력을 통해 쟁취했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신라의 주류사회가 곧 무너질 ‘골품제 규정’을 그녀를 위해 억지스럽게 적용시킬 필요가 있었을까? ◆ ‘예술 애호가’에서 멈추지 않았던 선덕여왕우리의 인식 속에 고착된 또 하나 ‘선덕여왕의 신화’는 예술 애호가로서의 모습이다.한 점의 그림도 허투루 보지 않고 그 작품 속에 숨겨진 은유와 상징을 읽어내는 선덕여왕의 예술적 심미안은 ‘삼국유사’에서 아래와 같이 묘사되고 있다.“당나라 태종이 붉은색, 흰색, 자주색의 모란 그림과 함께 꽃의 씨앗을 신라로 보내왔다. 선덕여왕은 그림을 한참 살피더니 ‘이 꽃은 향기가 없을 것’이라 잘라 말했다. 과연 그랬을까? 신하들은 왕궁에 당나라 왕이 준 씨앗을 심어 꽃이 필 때까지 기다렸다. 마침내 꽃이 만개했다. 여왕의 말처럼 꽃에서는 향기가 나지 않았다.”앞서 언급한 두 가지 일화를 통해 선덕여왕은 그저 ‘아름다운 예술 애호가’로만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는 게 세간의 인식이다.하지만 이에 아쉬움을 표하는 학자들도 이제는 적지 않다. 남성 중심의 역사 서술과 유교적 틀에서 신라 왕조를 연구해온 ‘20세기적 해석의 한계’가 젊은 역사학도의 반발을 부르고 있는 형국.한국동서비교문학학회가 발행한 김명희의 논문 ‘드라마 선덕여왕에 나타난 여성의 자기실현’은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을 “소속 집단을 리드하는 왕이면서 새로운 질서와 가치체계를 가지고 기성사회를 재편하고자 하는 창조적 영웅”이라고 규정한다.김명희의 주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문제 해결을 위해 제시되는 다양한 지략과 영민한 전략의 향연”을 펼치는 인물로 선덕여왕을 지목하고 있는 것.이제 이어지는 논문의 아래 대목을 한 번 읽어보자.“주인공(선덕여왕)이 여러 난관과 과제를 명철한 슬기와 계략으로 헤쳐 나가며 왕에 오르는 과정을 외연적으로만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 과정 전체를 자기실현의 심리적 과정으로 뒷받침함으로써 풍부하고 심오한 상징적 층위를 창출한다.”이 문장이 과연 ‘드라마 선덕여왕’을 향한 단순한 상찬(賞讚)에 그치는 것일까?그게 아니면 ‘인간 선덕여왕’을 향해 있는 것일까?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 ‘첨성대’에서 선덕여왕을 떠올리다인왕동에서 칼국수로 늦은 점심을 먹고 첨성대를 찾았다.‘하늘의 별과 달을 관찰한다’는 실용적 의미만이 아닌 ‘미학적 완결성’까지 갖춘 7세기 고대의 건축물이 21세기 현대의 인간을 단번에 매료시켰다.기단(基壇)으로 사용된 화강암은 천년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도 건재했고, 높이 9m, 밑지름 4.93m·윗지름 2.85m로 설계된 첨성대의 조형미는 ‘완벽’이라 불러도 모자랄 것이 없어 보였다.기단석 위로 가지런히 쌓인 돌은 한 단이 28개. 이는 천체의 28개 별자리를 나타내고 있다.가운데 자리한 네모난 출입구엔 창문 아래와 위로 12개의 단이 쌓였다.이것은 1년이 12개월이란 것을 의미한다고 사학자들은 해석한다.지척에 첨성대가 바라다 보이는 풀밭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자연스레 날개를 편 ‘역사적 상상력’은 선덕여왕이 정치·사회·종교적 우두머리였던 그 옛날 신라로 날아갔다.그 순간, 서라벌의 쟁쟁한 천문학자와 물리학자들 가운데서도 기죽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개진하는 덕만(德曼·공주 시절 선덕여왕의 이름)의 모습을 본 듯도 하다.자, 당신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선덕여왕은 ‘아름다운 예술 애호가’인 동시에 ‘명민한 자연과학자’이기도 하지 않았을까? ‘신라의 3가지 보물 중 하나’ 불국토 이상사회 구현 ‘황룡사 9층 목탑’법흥왕(재위 514∼540)의 불교 공인 이후 신라에는 대규모 사찰이 우후죽순(雨後竹筍) 들어선다. 선덕여왕이 통치하던 시절에도 분황사, 영묘사, 법림사, 통도사 등 20여 개의 사찰이 만들어졌다.역사학자들의 공통적인 지적처럼 신라의 불교는 국가 혹은, 왕의 권력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선덕여왕이 가졌던 권위를 짐작하게 만드는 거대한 건축물 황룡사 9층목탑도 그런 연장선상에 있다.황룡사는 지금의 경주시 구황동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는 신라 최대의 절 중 하나였다.진흥왕 14년(553년) 왕이 기거할 새로운 궁궐을 짓던 중 어두워진 하늘에서 황룡이 나타난다. 숭배 받는 동물의 출현을 신기하게 여긴 왕은 궁을 만들던 자리에 사찰을 지으라고 명령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황룡사다. 자그마치 2만5천 평에 이르는 거대한 가람(伽藍)이었다.선덕여왕은 바로 이곳에 드높은 목탑을 축조한다. 황룡사 9층목탑이 세워질 당시 공사현장의 총감독이 김춘추의 아버지 김용춘이었다는 것은 이 프로젝트가 가진 무게감을 보여준다. 모두가 알다시피 김춘추는 후에 삼국통일의 밑그림을 그리는 태종무열왕이 된다.‘신라의 3가지 보물 중 하나’로 불리는 황룡사 9층목탑은 선덕여왕 12년(643년) 당나라로 유학을 다녀온 승려 자장(慈藏·590~658)의 건의로 만들어졌다. 연구자들은 변방 아홉 국가의 침탈로부터 신라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를 담기 위해 탑을 9층으로 설계했다고 말한다.문헌과 학자에 따라 탑의 높이는 조금씩 다르게 이야기된다. 하지만 80m 안팎이었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현대적 건설장비 하나 없던 1천400여 년 전에 그 정도 높이의 목탑을 만들 수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탑의 꼭대기에선 당시 서라벌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을 터. 최고 통치권자였던 선덕여왕이 황룡사 9층목탑을 오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수많은 신하를 거느리고 황룡사로 행차한 여왕의 모습은 어땠을까?경상북도가 간행한 ‘신라의 불교 수용과 확산’은 황룡사 9층목탑의 축조가 가지는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왕실의 권위 강화와 외침의 저지라는 목적 속에 건립된 황룡사 9층목탑은 ‘신라 땅에 불국토’라는 이상사회를 구현하고자 하는 신라 불국토의 관념으로 확대되었다.”안타깝게도 지금은 황룡사 9층목탑을 볼 수 없다. 만들어진지 50년 후 벼락에 맞아 파손된 뒤 여러 차례 중수됐으나, 1238년 몽골군에 의해 완전히 불태워진 탓이다.현재는 경주시 구황동에 자리한 황룡사 역사문화관에서 1/10로 축소·복원된 9층목탑만을 만날 수 있을 뿐이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8-07-06

영일만, 동해안시대 넘어 신북방시대 열어갈 거점항으로

최근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환동해 물류중심항인 영일만항이 남북교류뿐만 아니라 북방교류협력의 거점항만으로 떠오르면서 활성화와 새로운 도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남북정상회담의 성과로 남북 간 동해선이 연결되면 개통을 앞두고 있는 영일만항 인입철도가 동해선을 따라 북한과 시베리아를 거쳐 유라시아까지 진출할 수 있어 영일만항이 물류중심항으로 부상하기에 충분한 조건이 된다는 분석이다.또한 영일만항 인입철도를 통해 고정 물동량이 늘어나면 중국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항로와 화물선 운항횟수도 늘어나 영일만항이 본격적인 활성화 단계에 접어들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이강덕 포항시장은 “민선6기 들어 해마다 개최하고 있는 ‘동북아 CEO포럼’을 통해서 영일만항을 중심으로 환동해권의 도시들과 물류·해양관광을 연계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면서 “현 정부의 신북방정책에 맞춰 영일만항을 북방물류 거점항만으로 육성해 나가고, 항만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인프라 개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북~시베리아~유라시아 진출 대비포항~블라디보스토크 등신규 항로 개설로 물동량 확대화물물류기능에 관광기능까지국제항만 확장위한 국제여객부두 건설냉동냉장 국제물류센터, 해외수출 기반□항로 다변화 및 물동량 증가포항시는 영일만항의 신규항로 개설을 통한 물동량 확대를 위해 항로 다변화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5월에는 포항∼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포항∼필리핀 마닐라를 연결하는 항로의 운항을 시작했다. 러시아 항로를 추가로 개설함에 따라 북방항로가 주 3항차로 확대되면서 대 북방교역 서비스도 강화됐으며, 베트남·필리핀 항로 운항으로 철강재와 부원료, 우드펠릿 화물의 물동량도 안정적으로 유치해 나갈 수 있게 됐다.이로써 영일만항은 중국과 일본, 러시아, 동남아 등 7개 항로, 29포트, 주 7항차로 서비스를 확대하게 됐다.특히 이번 정기 컨테이너 항로개설로 영일만항은 항로 다변화와 기항지 증대를 통해 포항지역 화주들의 항로·항차 증대 요구에 부응하고, 남북경제협력과 북방교역 활성화에 대비한 환동해권역에서 북방물류를 선점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이다.포항시의 이 같은 노력 덕분에 한때 물동량 감소로 어려움을 겪었던 영일만항 화물 처리량 역시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 2016년 9만916TEU였던 영일만항 컨테이너 물동량이 지난해에는 10만3천659TEU로 14%나 늘었다.올해 1분기의 경우는 2만6천450TEU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2만1천727TEU보다 21.7%가 증가하는 한편, 수입화물이 15.7%, 수출화물은 27.9%가 각각 늘었다. 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대분이다.이와 함께 포항시는 동해안 유일의 국제무역항인 영일만항이 중국과 러시아, 일본 등 환동해 국가들을 연결하고 북극해 자원개발의 전초기지 및 북방물류 거점항만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인프라 구축에 본격적으로 나섰다.□인프라 강화포항시는 우선 현재 컨테이너 4선석과 일반부두 2선석으로 된 영일만항을 총 사업비 2조8천463억원을 투입해 16선석으로 건설하고, 항만배후단지와 방파제 등을 조성하는 대규모 항만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여기에 KTX와 포항공항(에어포항), 울산-포항 고속도로, 동해 남·중부선 등 광역 교통망과 연계를 통한 시너지 효과로 포항을 환동해권의 물류 중심도시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한다는 방침이다.또한 지금까지 화물 물류기능만 수행했던 영일만항을 관광기능이 더해진 국제항만으로 확장하기 위해 7만5천t급 크루즈선이 정박할 수 있는 국제여객부두를 건설하기로 했다.포항시는 여객부두 준공에 맞춰 중국·일본·러시아를 연결하는 항로를 개설해 국제 크루즈 선을 유치하는 한편, 포항∼울릉∼독도와 포항∼부산∼속초를 잇는 연안 크루즈 항로 개설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이와 함께 영일만항 배후단지에 위치한 (주)포항국제물류센터가 준공돼 운영 중이고, 민간자본 150억원이 투입된 냉동·냉장 물류센터 역시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주)포항국제물류센터는 앞으로 농수산물 가공공장을 추가로 증축해 보관 및 가공을 통해 국내공급은 물론 해외수출도 계획하고 있다. 앞서 지난 2월에는 중국 청도에서 양파 240t을 테스트 물량으로 수입해 재포장을 거쳐 전국 농산물시장에 판매하기도 했다.특히 냉동·냉장 물류센터는 4만9천86㎡의 부지에 1만6천547㎡ 규모의 냉동 창고로 이뤄져 1만3천t의 보관능력을 가진 대구·경북 내 최대 규모로 고추와 양파, 마늘, 명태, 오징어 등 농수산물을 유통하고 있다.이로써 영일만항은 건화물(Dry cargo)만이 아닌 농축산물과 같은 냉동·냉장화물의 처리도 가능해지면서 처리 화물 다변화와 서비스 질 개선 등 항만 경쟁력 제고와 함께 물동량 확보를 통한 영일만항 활성화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이강덕 포항시장은 “포항국제물류센터 냉동 창고를 기반으로 중국과 러시아, 일본 등을 연결하는 콜드체인(Cold Chain, 어류·육류·청과물 등의 신선한 식료품을 생산지에서 가정까지 저온을 유지함으로써 선도(鮮度)를 떨어뜨리지 않고 배송하는 방식) 클러스터를 조성해 영일만항이 북방물류 거점항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할 것”이라면서 “이를 위해 영일항만 인입철도를 비롯해서 국제여객부두와 추가 항만배후단지 건설과 같은 기반사업도 차질 없이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한·러 지방협력포럼’ 개최로 청신호올 하반기에 열릴 예정인 ‘한·러 지방협력포럼’의 개최지가 최근 포항시로 최종 확정된 점도 영일만항의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지난 6월 21일부터 23일까지 러시아를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갖고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양국 지방간 경제·통상, 교육·과학, 문화·관광 등 분야에서의 협력 확대를 위한 ‘한·러 지방협력포럼’이 금년도 하반기에 대한민국의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출범하고, 제2차 포럼은 2019년 중 러시아 연해주에서 개최키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외교부 관계자에 따르면 포항시가 첫 ‘한·러 지방협력포럼’을 유치하게 된 것은 그동안 ‘동북아 CEO경제포럼’ 등 국제행사의 개최 경험이 많고, 동해권역 유일의 컨테이너 항만인 영일만항 등 국제물류 인프라와 현재 건설되고 있는 국제여객부두 등이 강점으로 작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여기에 남·북·러 협력사업인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추진한 사례와 함께 현재 영일만항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간에 주당 3항차가 운항하고 있는 점도 향후 포항시와 극동러시아 간의 주요 협력사업 추진에 유리한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영일만항의 가치를 새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이강덕 포항시장은 “앞으로 남북경협사업을 포함한 북방경제협력 사업에 적극 참여해 북방교류의 거점도시가 될 수 있도록 모든 가용자원을 동원하겠다”면서 “지역기업의 북방진출은 물론 관련 국내외 기업들의 포항유치 등을 통해 지역경제가 활력을 되찾고 나아가 크게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나가는데 주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영일만항 현황△연혁- 2001. 10 : 포항영일만항 1-1단계 민간투자사업 우선 협상대상자로 선정- 2004. 05 : 포항영일신항만 주식회사(PICT)- 2005. 08 : 공사착공(컨테이너 4선석)- 2009. 08 : 준공 및 운영개시△주주현황대림산업 29.5%코오롱글로벌 15.3%한라건설 13.5%두산건설 10.8%경상북도 10%포항시 10%포스코건설 7.2%흥우건설 3.6%△민간투자사업(BTO)- 운영기간 : 2009. 8 ∼ 2059. 7 (50년)- 총투자비 : 3천84억(정부 1천232억, 민간 1천852억)△시설현황- 3만 DWT선 4척 동시 접안가능(안벽 1천m / 폭 600m / 수심 12m)- 장비현황 : 안벽 크레인 2기(Q/C), 야드 크레인 5기(RTGC)△주요 수출입 품목- 자동차(쌍용, 마쯔다자동차), 우드펠릿, 철강제품, 철강부원료 등△주요항로 (러시아, 중국, 일본, 동남아 등)- 현재 : 7개국 29PORT, 주7항차△일반부두 : 2선석(수심 10m)/전준혁기자 jhjeon@kbmaeil.com

2018-06-28

일삼은 건 천 권의 책, 평생 낚싯대 하나…노계의 삶과 예술세계, 문학관에 고스란히

‘행장(行狀)’은 고인이 평소 어떤 성품과 몸가짐을 지니고 살아왔는지를 기록한 글이다. ‘조선 가사문학의 대가(大家)’이자 ‘문무를 두루 갖춘 선비’로 알려진 노계 박인로에 관한 행장을 살펴보는 것은 그가 타자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가장 먼저 이런 대목이 눈길을 사로잡는다.“박공(박인로)은 허물이 적었다. 다닐 때는 지름길로 가지 않고 입으로는 바른 말만 하였다. … 사람들이 서사(書史·책)를 읽으면 한 번 듣고 바로 기억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글을 잘 지었는데 일찍이 빼어난 시를 지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박인로의 행장을 쓴 이는 유학자인 정규양(鄭葵陽·1667~1732). 노계가 죽은 이후에 태어난 새까만 후배다.그러니, 선배 학자에 대한 다소 과도해 보이는 칭찬은 후학이 갖춘 예(禮)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글 싣는 순서노계 박인로의 생애와 예술세계노계문학관, 가사문학의 이정표 세우다 영천시, 26일 노계문학관 개관노계의 일생과 문학 부활시켜내년까지 ‘노계문학공원’ 조성현대인과 노계의 예술 어우러지는지역명소 탄생 기대 ◆ 정규양의 ‘행장’을 통해 본 노계 박인로의 품성하지만, 행장은 뒤로 갈수록 구체성과 객관성을 드러낸다. 예컨대 아래와 같은 것이다.“젊었을 때 대마도를 바라보며 탄식해 이르기를 ‘죽은 제갈량이 살아 있는 사마중달을 쫓았는데 내 어찌 왜놈들을 두려워하겠는가?’라고 하였다. 공은 넓고 큰 재주를 가졌으나 세상이 이를 알아주지 못했다.”노계의 담대하고 호방한 무인 기질을 표현한 정규양의 문장은 끊임없이 이어져 이제는 박인로의 효(孝)에 이른다.“공의 성품은 지극히 효성스러웠는데 어머니의 노년에는 매양 근심스러워하며 부지런히 봉양하였고, 행여 가난 탓에 어머니를 소홀히 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여름에는 잠자리에서 부채질을 해드리고, 겨울에는 몸으로 이부자리를 따뜻하게 해드렸다. 아침저녁으로 환히 웃는 얼굴을 보여드리고, 상(喪)을 당하여서는 식음을 전폐해 여러 번 혼절하였다.”임진왜란 때는 무장으로 수백 수천의 왜군과 맞서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고, 세상이 자신을 몰라주는 걸 탓하지 않았던 군자(君子)였음에도 부모의 죽음 앞에서는 서러워 수저를 들지 못했던 노계의 효행을 기록한 행장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고 있다.“아, 세상에 어찌 이 같은 사람이 다시 있겠는가? 공(박인로) 전에도 공과 같은 씩씩한 무부(武夫·용맹한 사나이)가 없었고, 공 후에도 공과 같이 독서(讀書)를 수행한 선비가 없었다.” ◆ 영천시에 산재한 박인로의 흔적들이처럼 후세에 내세워 자랑할 만한 인물을 가졌으니 고향인 영천시의 자존심과 긍지도 높다. 영천 곳곳에서는 노계의 생애를 엿볼 수 있는 흔적들이 발견된다.‘도계서원’은 박인로가 세상을 떠난 지 65년 만인 숙종 33년(1707년)에 만들어졌다. 그의 예술적 업적을 기억하고 덕행을 본받아 따르고자 하는 후배 학자들이 적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서원은 1868년 대원군에 의해 훼철(毁撤·헐어 없애버림)됐으나, 1970년 영천시 북안면 현재 위치에 다시 건립됐다. 도계서원의 봄은 활짝 핀 벚꽃으로 눈부시고, 가을은 저수지를 비추는 둥근 달로 아름답다.서원에는 구인당, 주경재, 사성재 등 박인로 문학의 키워드가 된 문구를 딴 건물들이 자리해 있다.서원 뒤쪽에는 노계의 위패를 모신 사당 입덕묘(入德廟)가 있어 아직도 그를 기리는 사람들의 방문이 줄을 잇는다. ‘덕(德)에 들어서는 입구’라는 의미를 가진 ‘입덕’이란 단어가 귀하게 보인다.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68호인 ‘노계집(盧溪集) 판목(版木·인쇄하기 위해 글씨나 그림을 새긴 나무판)’이 보관된 판각고도 ‘영천의 선비’ 노계의 그림자가 일렁이는 공간이다.도계서원 앞에서 만날 수 있는 시비(詩碑) 역시 수백 년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선명히 살아 숨 쉬는 박인로 문학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유산.노계의 묘소는 도계서원 앞 저수지 왼편에 아버지, 형제들의 묘와 함께 자리해 있다. ◆ 작품을 읽으며 느껴보는 노계의 예술적 지향가사와 시조, 한시 등 다양한 작품을 남긴 노계 박인로. 노계박인로기념사업회가 간행한 ‘신역(新譯) 노계집’을 보면 그의 문학·예술적 성취를 짐작할 수 있다.아래 시 ‘최상사(崔上舍) 산정을 읊다’에서는 가난하고 겸허하게 살아가려는 노계의 성품이 그대로 읽힌다.일삼은 건 천 권의 책평생 낚싯대 하나하늘이 아껴둔 참된 낙지(樂地)에높이 괴고 누우니 한가롭네. 아래 인용하는 작품 ‘흥취가 일어’ 또한 인간과 자연 속에서 길을 찾고자했던 박인로의 예술적 지향이 느껴지기에 ‘신역 노계집’ 절창 중 하나로 볼 수 있다나이 많고 가난하니 손님은 오지 않고보이는 건 스스로 날아오는 꾀꼬리 뿐소나무 창에 낮은 길어 할 일 없는데다시 한가로운 구름 마음대로 오가네.노계 박인로를 기억하는 많은 이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선생은 자연과 삶을 노래한 구도자(求道者)였다”고. ‘구도자’란 길을 찾는 사람을 뜻한다.그렇다면 ‘길’이란 과연 무엇일까? 노계는 어디에서 길을 찾았을까? 아래 시는 이 물음들에 관한 박인로의 대답으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벼슬살이가 밭갈이보다 낫다는 말 말아라벼슬살이가 어찌 이 밭갈이와 같겠느냐벼슬길은 때로 영욕(榮辱)이 있는 법영욕이 없는 이 밭갈이 같지는 않으리. ◆ ‘노계문학관·문학공원’으로 부활하는 박인로위에서 짧게 살핀 행적과 사후의 추모 열기, 몇몇 작품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게 노계 박인로의 삶과 예술세계다.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영천시는 박인로를 현대인의 기억 속에 되살리려는 사업에 꾸준히 심혈을 기울여왔다.그 사업 중 가장 주목 받아온 ‘노계문학관’이 지난 26일 개관식을 열었다. 개관식 행사는 영천시와 노계박인로기념사업회가 공동으로 주관했다.36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대지 2만7천427㎡·연면적 484㎡로 조성된 노계문학관은 전통과 현대적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룬 디자인의 강당과 전시장, 관리실 등을 두루 갖췄다.전시장에선 노계의 생애와 예술을 다룬 3D 영상이 상영되고, 가상현실 체험공간과 포토존도 마련됐다.2013년부터 시작된 공사를 무사히 마친 영천시청 관계자들은 “노계문학관 건립은 우리 가사문학의 이정표를 세운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말로 보람과 기쁨을 표현했다.이제 올해부터 내년까지는 ‘노계문학공원 조성사업’이 이어질 예정이다.도계서원과 노계문학관 인근 저수지를 활용해 문화산책로를 만들고, 십자형 데크, 분수, 나룻배 등을 설치해 낭만적 풍경을 연출하며, 벚꽃길과 배롱나무길을 가꾼다는 것이 영천시가 세워놓은 계획.여기에 전망대와 팔각정까지 들어서면 ‘도계서원-노계문학관-노계문학공원’으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지역 명소가 탄생하게 될 전망이다.이 프로젝트가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영천시와 문화·예술계 관계자들의 숙원이 풀릴 날이 머지않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8-06-28

‘곱작골, 질바들…’ 들으면 정겨운 마을이름 속 켜켜한 역사와 의미

영주시의 지리는 역사적인 면에서는 삼국이 연관 돼 있고 다양한 문화와 역사적 숨결이 고스란히 간직 돼 있는 고장이다.지명 유래는 기록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 수차례의 행정구역 변화로 지명에 대한 혼란과 중요성이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어 안타깝다. 영주지역 역사에 대한 이해와 중요성을 다시한번 인식시키기 위해 영주의 지명과 전해오는 유래를 재조명 해 본다.화랑들이 무술 익혔던 ‘달밭골’퇴계 이황이 첫 장가 든 곳 ‘사일’조선총독이 만든 신사가 있는 ‘신사골’신라·조선·일제시대까지 역사성 담아상망동조선 영조 때 영천군 봉양면 상망동에 속했다.▷보름골현 영광고등학교 부근 마을을 보름골이라한다. 배치암(裵癡巖)이란 선비가 이곳 치바위에서 살았는데 거기서 마을이 보인다고 해 망동(望洞)이라 불렀다. 또 다른 이야기는 이 마을이 고을의 동쪽에 있어 보름달을 가장 먼저 보는 곳이라 해 보름골이라 불렀고, 위쪽 마을을 웃보름골(上望)이라했다는 구전이 있다.▷사례골장물도가(구동부파출소옆)앞에서 시내 방향으로 가면 오른편 동산교회 언덕 아래에서 영주여고 입구까지의 마을을 사례(寺禮)라 한다. 영주향교 아래쪽에 옛날 정토사(淨土寺)가 있었다는 사실은 1983년 영주시와 영풍군이 공동으로 발간한 우리 고장의 전통문화에 기록돼 있다. 지금 안양원의 자리로 추정하고 있다. 절골 또는 사례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금도 이 길은 사례길이라고 안내하고 있다. 하망동조선 영조 때 영천군 봉양면 하망동, 성저동의 일부에 속했다.▷원댕이영동서 철길 옆 하망동사무소가 소재한 인근에 마을이 있으며 이 마을을 원댕이라 불러오고 있다. 조선 명종 때 고령 박대령이란 사람이 처음 터전을 이루고 살 때 마을 뒤편에 있는 큰 절 마당에 원당지라는 넓은 연못이 있었다고 해 마을 이름을 원당이라 불렀는데 그후 발음이 변해 원댕이가 됐다고 한다.▷곱작골동부초등학교 뒤편 골목에서 청구아파트 방향으로 넘어가는 골짜기에 마을이 있었는데 이 마을을 곱작골로 불러오고 있다.이 골짜기는 계단식 밭으로 햇볕이 잘 들어서 농산물 수확이 다른 곳 보다 배 이상 수확한다고해 곱작골로 불리게 됐다고 전해진다. 영주동조선 영조 때 영천군 봉양면 하망동, 성저동 일부와 망궐면 노상동에 속했다.▷신사골영주시의회 오른편 골목길을 따라 약 200m쯤 가면 영주초등학교 뒤편 철탄산 기슭에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신사골이라 부른다.1935년 당시 부임한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오가 우리 민족의 황민화를 강요하면서 각 군마다 신사를 만들어 일본의 국조신인 천조대신을 모셔놓고 매일 아침 참배하도록 했다. 이 당시 마을 아래 영주초등학교 교실 옆에 영주의 신사가 있었는데 신사가 있었던 곳이라 해 신사골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숫골제일교회 옆 골목을 따라 약 100m쯤 가면 둘리원룸이 있는 곳에서 영광중학교 사이에 철탄산 비탈까지 이어진 오래된 마을이 있는데 이곳을 숫골이라 부른다. 이 마을 뒤편에 뻗어 있는 철탄산 줄기가 호랑이가 잠을 자고 있는 수형형이라 해 마을 이름을 잘수 睡, 골곡 谷자를 써서 수곡이라 불렀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숫골로 불려지게 됐다고 한다.휴천동, 적서동▷광시이, 광승휴천동 사무소 남쪽 거북바위(뚜껑바위)아래에 동부맨션이 있는 마을로 광승이라 불러오고 있다. 조선 중기에 야성 송씨 일족이 이 마을을 터전으로 이루어 살면서 마을 뒤편 골짜기에 신라고찰 광승사란 절이 있었다고 해 마을 이름을 광승마을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 마을 뒤편 거북바위가 있는 산이 옛날 고을의 외적을 막아주는 토성이라 해 광성이라 불렸다고도 한다.▷사일수청거리 마을 앞 국도에서 오른편 사일교를 건너서 왼쪽 농로를 따라 약 400m쯤 가면 경북선 철길 옆에 작은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사일이라 부른다.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을 피해 경남 의령에 살던 오운이 이곳에 이주하면서 마을 앞 서천의 고운 모래가 햇빛에 아름답게 반짝인다 해 모래 사(沙), 해 일(日)자를 써서 마을 이름을 사일이라 부르게 됐다. 조선시대 주변 숲이 울창해 초곡이라 불리기도 했으며 남평 문씨로 창계 문경동이 우서했으며 사위 김해 허씨가 살다가 퇴계 이황이 이 마을 김해 허씨(첫번째 부인) 집안으로 장가든 곳이기도하다.▷질바들노벨리스코리아가 있는 곳이 질바들이다. 옛날 이 곳에 질그릇을 만드는 진흙이 많이 나오고 비오는 날은 온통 질펀하다고 해 질그릇 도(陶), 들 평(坪)자를 써 도평이라 뜻으로 질바들이라 불렸다.가흥동, 문정동, 고현동▷대부내시민운동장 입구에서 우시장 방향으로 600m쯤 가면 오래된 느티나무가 서 있는 갈림길이 있고 그곳에서 왼쪽길로 약 200m쯤에서 굴다리를 지나면 저수지마을이 있는데 이를 대부내라 부른다. 오래된 마을이었으나 광복 후 빨치산 출몰이 잦아 소개령으로 모두 흩어졌다가 최근 다시 마을이 형성되고 있다.▷한정제2가흥교에서 장수 방면으로 약 300m쯤 가서 첫 번째 신호등 왼편 제방길을 따라 약 1.4km를 가면 오른편 산 아래 마을이 있는데 조선시대 마을 앞 서천 물가에 박녹이란 선비가 하한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지냈다 해 한정이라 불려오고 있다.▷서릿골(蟠谷)조선 영조 때 반남 박씨 박정구라는 선비가 터전을 이루고 살았는데 나을 입구 느티나무 주변 바위돌이 마치 용이 기어가는 모습으로 서리어 있다고 해 반곡(蟠谷즉 서릿골)이라했다.▷핑구재귀내마을 입구에서 영광여자중학교 방향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있는데 이를 핑구재라 부른다. 겨울에 소백산에서 내려 부는 차가운 바람이 이 고개를 지나면서 핑핑 소리가 난다고 해서 핑구재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풍기읍▷금계촌(金鷄村)풍기읍 금계리 골짜기에 금계라는 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닭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 금계바위라 불렸고 이 근처 마을을 금계촌이라 한다. 마을 지세가 금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며 정감록 십승지 중 1승지로 지목 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옛날 이 금계바위 닭의 눈에 해당하는 부분에 빛나는 보석이 박혀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이 보석이 탐나 바위에 올랐다가 갑자기 천둥소리와 벼락이 떨어져 죽었다고 하는 전설이 전해내려 오고 있다.▷금선정과 금선대금산계곡의 금선대에 금계 황준량이 명명하고 군수 이징계가 바위에 금선대란 글씨를 새겼다고 전한다. 조선 정조 5년 군수 이한일이 높다란 반석위에 정자를 지었는데 이를 금선정이라 부른다. 금선정에서 서북편 마을 뒷산 중턱에 1565년 황준량이 독서하던 금양정사가 있다.▷적전들, 윗두들백1리 속계마을회관에서 약 700m쯤 가서 왼편 농로를 따라 가면 마산 앞으로 작은 들판이 있는데 이곳을 적전들이라 부른다. 옛날 이곳에서 고려와 후백제의 군사들이 큰 접전을 벌렸다 해 접전들이라 했으나 세월이 흐르며 발음이 변해 적전들로 불려지고 있다고 한다. 이산면, 평은면, 문수면, 장수면▷우금약 400년전 김우익이라는 선비가 마을을 개척해 살았으며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의 형상이 마치 하늘에 선녀가 거문고를 타는 모습과 흡사하다해 마을 이름을 우금이라 불렀다 한다.▷장골평은교 다리를 건너면 길 오른편에 작을 골짜기가 있고 이를 장골이라 불렀다. 조선시대 평은리가 역촌을 이루고 있을 때 이곳에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이 있었다 해 장골이라 부르게 됐다고 전한다.▷멱실약 300년전 경주 김씨와 예천 임씨가 내성천 연안에 12실의 피난처가 있다고 해 이것에 정착했다. 실자가 든 곳을 찾았다고 해서 멱실이라 불리고 있다.▷은단지골두전1리 신교에서 좌측 방향으로 600m쯤 가면 작은 골짜기가 있는데 옛날 이 골짜기에 사찰이 있었으나 사찰이 철폐될 무렵 당시 주지가 사유자화를 큰 단지에 넣어 땅에 묻어 감추었다고 해 은분지골이라 불리다가 현재는 은단지골로 불리고 있다. 안정면, 봉현면, 순흥면, 단산면, 부석면▷홍다리중국의 주자가 구곡선동을 찬양한 홍교일촌이란 글에서 마을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안정면 단촌2리의 유일한 자연부락으로 홍교마을을 가로지르는 무지개 같은 다리가 있어 홍다리란 지명을 붙였다 한다.▷핏끈안정면 판타시온리조트에서 순흥 방향으로 낮은 고개를 넘어 동촌 1리에 위치한 자연부락이다. 1456년 세조에 의해 순흥부에 유배됐던 금성대군이 순흥부사 이보흠과 함께 단종복위를 도모하던 중 사전에 전모가 드러나 역모에 가담했던 사람들이 순흥 청다리 밑에서 살해됐는데 그 피가 죽계천으로 흘러 4km나 떨어진 이 마을 앞까지 흘렀다 해 피끝이라는 지명으로 불려지게 됐다고 한다. 지금은 발음이 변해 핏끈이라 불린다.▷새마봉현 사리미마을에서 서북편 노좌3리골짜기 방향으로 약 90m쯤 가면 오른편 산비탈 위로 작은 마을이 있는데 이곳이 새마다. 이 마을은 1905년경 입주자가 생기며 새로운 마을이 생겼다는 뜻으로 새말이라 부르게 됐다 한다.▷달밭골초암사에서 500m쯤 국망봉쪽으로 오르다가 왼편 시냇물 건너편 골짜기로 들어서면 달밭골로 가는길이 나온다. 달뙈기만한 밭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해 달밭골이라 한다. 달밭골은 옛날 화랑들이 무술을 익혔던 훈련장이란 이야기도 있다.▷태장리순흥 비봉산 아래에 있는 마을로 고려 충렬왕, 충숙왕, 충목왕 등 세분 왕의 태를 비봉산에 묻어서 그 아래 마을을 태장이라했다.▷법수동단산면 마락리 동쪽에 있는 마을로 한국전쟁 때 인가가 모두 소실됐다가 다시 마을이 형성된 곳으로 이곳 사람들이 남달리 예의가 바르고 법을 잘 지킨다 해 법수동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탑드리부석면사무소에서 부석사 방향으로 가다 보면 도로변에 동네가 있는데 탑드리라 부른다. 마을에 뱀이 많아 집을 지을수가 없어서 동네에 탑을 세워 뱀을 없앴다해 탑드리라 하고 혹은 탑평이라 불리기도했다.현재 3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이밖에도 영주 지역에는 위에 소개된 지명 유래보다 많은 곳이 있지만 지면에 다 소개 할 수 없어 일부만 소개한다. 영주/김세동기자 kimsdyj@kbmaeil.com

2018-06-27

역사·인재·실질적 시스템 갖춘 ‘포항 국립방재공원’ 건립을

지진을 피할 수는 없지만, 피해를 최소화할 수는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준비하고 대비’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육’해야 한다.국내 최대규모의 지진안전체험관을 비롯해 지진과 관련한 모든 시설을 포함한 ‘국립방재공원’ 건립이 포항에서 추진되고 있다. 지진부터 태풍, 해일, 화재 등 한반도 재난대응의 제어탑 역할이다.이전까지 경상북도에는 마땅한 안전체험관이 없어 늘 교육분야에 부족하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국립방재공원은 11·15 포항지진을 겪은 포항이 대한민국 대표 방재도시로서 우뚝 일어설 수 있는 교두보 기능을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앞으로 경북 중심도시인 포항에 조성될 방재공원은 좁게는 한반도, 멀리는 대륙철도로 이어지는 유라시아 모든 국가들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본지는 창간 28주년을 맞아 방재선진국 일본의 사례를 들어 포항에 들어설 국립방재공원이 갖춰야할 기능과 역할을 알아보고자 한다.방재선진국 일본 본보기지진발생~구출 체험활동지형변화모습·현장 보존방재자료 강습·학습화 등체계적 단계별 능력 강화한반도 방재 전문가 육성후세에 위험 경각심 갖도록파손 일부 건축물 보존해야 □ 사적 가치, 북단지진재해기념공원북단지진재해기념공원(호쿠단신사이공원, 1998년 4월 2일).아직 ‘일본 최악의’ 지진으로 불리는 한신·아외지 대지진의 현장이 보존된 곳이다. 면적 51.07㎢, 1만1천214명 약 3천700세대가 살았던 그날 아와지시의 평화롭고 한적한 마을에서 보인 지진의 실상이 공원에 보존돼 있다.북단지진재해기념공원은 한신·아와지 대지진의 활성단층인 노지마단층 바로 위에 세워졌다. 이곳은 민가가 있는 사유지였지만, 일본 정부는 부지를 횡단해 지표면으로 표출된 노지마단층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이 일대를 사들였다. 생생한 지진 현장과 함께 단층의 이동, 지형의 변화 모습을 보존하는 동시에 고용한 해설사의 설명을 통해 보다 사실적으로 지진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북단지진재해기념공원 관계자는 “지진 당시의 현장을 재현해놓기 위해 많은 돈을 들여 사유지를 사들였고, 20년이 넘도록 내부 온도와 습도, 햇빛 등 자연환경을 항상 일정한 상태로 유지하고 있다”며 “일본에 있어 이곳(북단지진재해기념공원)은 역사적 가치이자 지진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는 현장”이라고 말했다.내부에는 가장 먼저 노지마단층 보존관이 나온다. 국가지정천연기념물인 노지마단층은 지진 당시 평평했던 땅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형시켰다. 지면과 함께 일직선으로 뻗어 있던 배수관은 45도 정도가 어긋났고, 마름모꼴로 가꿔놓은 나무정원은 알 수 없는 형태로 배열이 바뀌었다. 이곳에는 지진의 흔들림으로 발생한 현상을 자연 그 상태로 보존해놓고 있다.단층 보존관을 지나면 ‘고베의 벽’이 전시돼 있다. 고베시 나가타구 와카마츠시장에 있었던 이 방화벽은 한신·아와지 대지진이 발생한 당일 고베시 건물 대부분이 무너지고 화재로 아수라장이 된 와중에도 꿋꿋이 자리를 지킨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이전에는 제2차 세계대전의 고베대공습에도 견딘 이력이 있다. 지난 2009년 1월17일 북단지진재해기념공원으로 이동 설치됐다. 지진의 위력을 실감했던 고베시민들이 지진의 위협을 후세에 전하고자 하는 의미와 마음을 담고 있다.‘메모리얼 하우스’도 있다. 지진단층이 뒷마당을 가로질렀던 민가를 사들여 ‘메모리얼 하우스’라고 명명, 당시 건물 모습을 공개하고 있다.내부에는 지진을 겪어보지 않은 관광객들에게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지진 직후의 부엌’ 모습을 재현해놓았다. ‘신사이의 이야기’를 통해 주민들로 이뤄진 자원봉사자들이 매주 화요일 두 차례에 걸쳐 직접 겪었던 지진체험담을 들려주기도 한다.지진의 구조나 전 세계의 활성단층을 살펴볼 수 있는 활단층 연구실도 마련돼 있다. 특히, 11·15 포항지진 당시 한반도에서 처음 관측된 액상화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을 이곳에서 직접 실험해볼 수 있다. 또 해일의 시뮬레이션 영상 등 다양한 각도로 지진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교육장과 효고현 남부지진과 같은 진도 7의 흔들림을 체험할 수 있는 지진체험관도 있다.□ 체험형 방재학습시설, 오사카시립 아베노 방재센터‘대지진 발생, 화재 발생…그럴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하실 수 있습니까?’‘아베노 방재센터’를 찾은 방문객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북단지진재해기념공원의 의의가 사적가치의 보존에 있다면, 오사카 중심부에 있는 아베노 방재센터는 말 그대로 체험을 통한 총괄적인 방재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이곳에서는 체계적인 방재를 체험할 수 있는 ‘지진재해 체험존’이 단계별로 마련돼 있다. 가상 지진코너에서 뉴스 형식으로 지진을 소개하면서 프로그램이 시작된다. 세트장을 이동하면서 화재 발생부터 소화, 구출, 구급 등 다양한 체험활동을 진행할 수 있다. 특히, 지진이 발생했을 때 가장 쉽게 노출되는 화재사고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몸소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장점이 있다. 내용은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과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지진 발생을 가정해 실내에서 가스 밸브를 잠근다거나 냉·난방기 전원을 꺼야 다음 단계로 이동할 수 있는 방식이다. 연기가 자욱한 연결통로를 지나갈 때 취해야 할 행동과 실제 소화기를 사용해 불을 진화하는 요령, 전화기를 사용해 119에 직접 신고하는 세세한 부분까지도 ‘이론’만이 아닌 ‘체험’할 수 있도록 준비돼 있다.총 14가지로 구성된 프로그램 중 체험활동만 9곳에 달할 만큼 이곳에서는 체험을 통한 실질적인 방재지식 함양을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실제처럼 꾸며진 세트장에서 이뤄지는 체험활동을 통해 방문객들은 간접적인 지진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체험활동 이후에는 준비된 화면으로 녹화된 자신의 행동이 방영되면서 부족한 점과 보완해야 할 점 등을 전문가가 직접 설명해준다.또한, 이곳에서는 건물에서 실제로 사용되는 스프링클러 등 각종 소방설비를 이용해 구조와 작동학습을 할 수 있다. 방재와 관련해서는 기본적인 지식학습을 비롯해 재해 발생상황과 대책 등 방재에 관한 강습도 진행할 수 있는 방재연수실도 따로 마련돼 있다.□ 연구, 인간과 방재 미래센터고베시에 있는 인간과 미래 방재센터는 일본 방재의 제어탑 역할을 한다. 이곳 역시 한신·아와지 대지진 재해기념으로 건립됐다.서관과 동관으로 나뉜 건물은 서관에서 지진 체험과 기억, 방재·감제 체험공간이 마련돼 있다. 동관에는 풍수해를 중심으로 물과 감재를 학습할 수 있는 공간이자 자연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공간들이 있다. 모두 연구를 통한 방재와 감재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 외에도 지진을 비롯한 재난과 방재에 관한 자료를 열람, 대출받을 수 있도록 자료실을 공개하고 있다. 큰 틀에서 △전시 △자료수집·보존 △재해대책 전문직원 육성 △실천적인 방재연구와 젊은 방재전문가 육성 △재해 대응 현지조사·지원 △교류 및 네트워크 6가지 기능으로 이뤄진 센터는 재해 극복사례를 일본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인간과 방재 미래센터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점은 ‘방재전문가 육성’이다.일본 본토에서 방재전문가 육성을 전담으로 하는 곳은 인간과 방재 미래센터가 유일하다.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자 등을 3∼5년 임기로 상근 채용해 상급연구원의 지도로 실천적 방재연구를 수행한다. 상급연구원은 나카가와 하지메 교토대학 방재연구소 소장, 야마자키 노보루 NHK 해설주간(자연재해·방재담당), 후쿠와 노부오 나고야대학 감재연계 연구센터장 등 9명으로 구성돼 있다.센터에서 교육·연구를 통해 육성된 방재전문가들은 타 지자체나 대학, 방재전문기관에 고용돼 선진 방재정책을 마련하거나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또한, 센터는 △재해대책행정대응 △응급피난대응 △구명 및 구급대응 △2차 재해대응 △자원동원대응 △정보대응 △자원봉사대응 △인프라대응 △이재민지원대응 △지역경제대응 등 10가지 연구분야를 세워 실천해나가고 있다. 30년을 전망해 5년 주기로 계속적·조직적인 중점연구영역을 추진한다. 또다시 핵심연구와 특정연구로 구분해 주제별로 해결과제를 모색하고 있다. 대학과 사설연구소는 물론, 사회·시민단체와의 협력도 이뤄지고 있다.□ 국립방재공원, 3마리 토끼 다 잡아야국립방재공원은 역사적 가치와 연구원 양성, 실천적인 방재 등 3가지를 모두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11·15 포항지진으로 필로티 건물의 위험성이 대두됐고, 내진설계에 대한 전국적인 관심이 많아졌다. 경북권에 밀집한 원전에 대한 안정성 요구 역시 포항지진 이후부터 본격화됐다. 이전까지 이론상으로만 존재했던 지진대책과 이재민 구호활동 등 모든 부분에서 문제점이 드러났고, 정부와 국회가 직접 나섰다.이제 포항은 이미 한반도에서 상징적인 도시가 됐다. 남은 건 들어설 국립방재공원을 어떻게 구성해 한반도 방재선구도시로 나가느냐다.우선 역사적 가치를 위해 파손된 일부 건축물을 선별해 보존, 후세에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 이를 통해 자손들에게까지 지진에 대한 위험성을 전달함과 동시에 재앙에 대비할 수 있도록 경각심을 갖게 해야 한다. 또 지진을 직접 체험해 본 당사자들의 의견을 모아 실질적인 방재대책과 체험시설 등을 완비해 타지역과 차별화된 체험형 방재시설을 만들어야 한다.특히, 행정안전부의 지진방재분야 전문인력 양성학교와는 별개로 지역 대학인 포스텍과의 연계를 통해 한반도를 이끌어갈 새로운 방재전문가 육성에도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더불어 지진뿐만 아니라 화재, 태풍과 같은 풍수해, 지진해일까지 연구분야를 확장해 고차원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재난을 이해하고 극복하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포항 국립방재공원을 필두로 좁게는 한반도 전역, 넓게는 대륙열차를 타고 유라시아까지 방재전문가를 파견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이바름기자 bareum90@kbmaeil.com

2018-06-22

포항 ‘잃어버린 10년’… 도시재생 총력 쏟아 새 돌파구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철강산업에 직격탄을 날린 2009년 이후 철강도시 포항은 침체의 늪에 빠졌다. 포항지역 정치인, 지식인, 상공인 등은 머리를 맞대고 위기에 빠진 도시를 구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 철강산업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도, 새로운 먹거리 산업을 찾아내기 위한 노력도, 통하지 않았다. 반복된 실패가 이어지고 있던 지난 2017년 11월 15일, 포항은 또 한 번 시련을 맞이했다. 지진이라는 예고없이 다가온 재난으로 도시는 순식간에 폐허로 변했다. 다행히 목숨을 잃은 시민은 한 명도 없었지만, 이후에도 수개월 동안 여진이 이어지면서 포항시민들은 역사상 가장 추운 겨울을 보냈다.봄이 오고 지진도 잦아들었다. 지난 3월 31일 새벽, 100번째 여진이 발생한 이후에는 여진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포항시는 지진으로 흔들렸던 마음을 부여잡고 도시재건을 향한 채비를 마쳤다.구도심인 중앙동 일원과 지진 최대피해지역인 흥해읍이 국토교통부 도시재생사업에 나란히 포함된 것이 강력한 지원군이 될 전망이다.본지는 창간 28주년을 기념해 포항시와 시민들이 함께 그리는 포항의 새로운 지도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포항 지도가 바뀐다□ 10년 넘게 침체된 포항 ‘시내’, 도시재생이 유일한 돌파구“시내 우체국 앞에서 12시에 만나자.”휴대전화나 무선호출기(일명 ‘삐삐’)가 없던 시절, 포항의 젊은 청년들이 약속장소를 정할 때 주로 나눴던 대화다.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포항의 번화가는 흔히 ‘시내’라고 불린 중앙상가, 불종로 일원이 유일했다.포항 ‘시내’(이하 구도심)는 주말과 휴일이면 친구, 연인과 함께 여가를 즐기는 젊은 청년들로 가득했다.그런데 2000년대 들어 구도심을 찾는 사람은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지난 2006년 구도심과 인접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던 포항시청이 대이동으로 신축·이전하고 2010년대를 전후해 ‘쌍용사거리’, ‘영일대해수욕장(당시 북부해수욕장)’, ‘양덕’, ‘문덕’ 등 부도심에 자리잡은 번화가가 성장한 것이 복합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올라가기는 힘들어도 내려가기는 어렵지 않다.쇠퇴기를 맞은 구도심은 순식간에 생기를 잃었다.찾는 사람이 줄어들며 자연스레 상권은 위축됐다.빈 점포는 늘어났지만 대부분 수개월, 수년이 흘러도 새로운 임차인을 찾지 못한 채 ‘점포임대’현수막 만이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포항 중앙상가에서 30년째 장사를 하고 있는 한 상인은 “매년 경기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중앙상가는 경기회복을 위한 동력자체가 사라진 상태라 암담한 상황이다”며 “포항시에서 중앙상가를 중심으로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여기에 일말의 희망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 문화와 청년이 공존하는 공간으로‘11·15 지진’이 발생한 지 1개월 만인 지난해 12월 14일 정부는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제9차 도시재생특별위원회를 열고 포항시를 포함한 전국 68곳을 2017년 도시재생 뉴딜 시범사업 대상지로 의결했다.공공기관(LH) 제안 사업으로 포함된 포항시 북구 중앙동 일원은 경제기반형, 중심시가지형, 일반근린형, 주거지지원형, 우리동네살리기 등 정부가 구분한 5개 사업유형 중 중심시가지형에 포함됐다.여기에 사업지당 30억원씩을 추가 지원해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스마트시티를 구축하는 스마트시티형에도 부산 사하, 인천 부평, 세종 조치원, 경기 남양주 등 4곳과 함께 선정됐다.포항시는 이번 도심재생 뉴딜 시범사업 선정을 바탕으로 중앙동 일원의 쇠퇴한 구도심을 되살리고 일대를 새로운 청년·문화공간으로 조성해 새로운 도시 재창조의 기회로 삼을 방침이다.이번 도심재생 뉴딜 시범사업 선정을 바탕으로 중앙동 일원의 쇠퇴한 구도심을 되살리고 일대를 새로운 청년·문화공간으로 조성해 새로운 도시 재창조의 기회로 삼을 방침이다.총사업비 1천442억이 투입되는 중앙동 도심재생사업은 옛 중앙초등학교 부지, 현 북구청 부지, 육거리 및 중앙상가 등을 문화예술허브와 청년창업허브 2개 거점으로 나눠 추진된다.먼저 문화예술허브는 옛 중앙초등학교 부지에 집중적으로 추진된다.포항시는 지난해 2월 중앙초가 우현동으로 이전하면서 같은해 6월 교육청으로부터 이곳 부지를 모두 매입했다.이렇게 확보된 1만8천729㎡에는 △문화예술팩토리(58억원) △주차장(71억원) △북구청 신축건물(108억원) △버스환승장소(5억원) △시청어린이집(50억원) △공공임대주택(120억원) 등이 들어선다.문화예술팩토리는 연면적 1천600㎡에 문화예술인력을 양성하고 창작공동작업이 가능한 공간이 조성된다.이 공간이 마련되면 포항지역 문화예술인 1천100여명이 개인작업에서부터 전시 및 판매, 상호 커뮤니케이션까지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지진으로 사실상 건물사용이 불가능하게 된 북구청은 오는 2020년 이전을 목표로 연면적 4천700㎡ 규모로 건립돼 북구지역 주민들에게 민원편의를 제공할 예정이다.아울러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건립하는 공공임대주택 120세대와 인근 지역 주차난을 해소하기 위한 300면 규모 주차장도 들어설 전망이다.청년창업허브는 옛 북구청 부지, 육거리, 중앙상가 등이 포함됐다.북구청(면적 6천942㎡)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청년창업 플랫폼(27억원) △청소년문화의집(60억원) △환동해 메이커스페이스(43억원) △스마트복합문화광장 및 주차장(46억원) 등이 조성된다.청년창업 플랫폼은 청년들의 기술창업(ICT, 핀테크 등) 특화지원과 청년창업 인큐베이팅 및 지원프로그램 운영 등을 담당하게 된다.청소년문화의집은 진로상담과 토론실, 공연실 등을 제공하는 청소년 아지트 역할을 수행한다.환동해 메이커스페이스는 3D프린트 등 공영장비를 지원하는 시제품 제작 공간과 사무실, 카페 등을 제공한다.육거리 일원을 대상으로는 보행환경 개선을 위한 사업이 준비돼 있다.8억3천만원이 투입돼 육거리 차량통행 및 보행자들의 효율적인 시간관리를 위한 스마트교차로가 조성된다.이밖에 중앙상가 실개천에 청춘 공영임대상가(16억6천만원), 꿈틀로 일원에 예술문화 창업로(12억9천만원), 중앙동 전체에 스마트시티 조성(50억원) 등이 이뤄진다.포항시는 오는 7월 중에 사업이 착공될 수 있도록 지난 8일 국토부에 신청한 도시재생 활성화계획 승인절차를 7월 이내에 마무리지을 계획이다. □ 포항시와 흥해주민이 함께 그리는 새지도중앙동 도시재생 뉴딜사업 선정발표 1주일 전인 지난해 12월 7일, 정부는 제19회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열어 포항 흥해읍을 ‘특별재생지역’으로 지정했다.지진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흥해읍 지역을 도시재생 뉴딜사업 대상지에 포함시켜 재해복구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한 정부의 조치였다.현행법에 특별재생지역과 관련된 내용은 포함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제도 신설을 위해서는 관련법 개정이 필요했다.이에 따라 지역구 국회의원인 김정재 의원은 이듬해 1월 19일 도시재생특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2개월여 만인 지난 3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흥해 특별재생지역은 법적 근거를 얻었다.그동안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라 지진 등 대규모 재난에 대한 대응 시스템은 단순히 복구 보조금을 지급하는 ‘긴급복구’ 위주라 기존의 도시기능을 회복하기 위한 종합적인 지원에는 한계가 있었다.법 개정으로 앞으로 단일면적 기준 100만 ㎡ 이하의 범위에서 합계 피해 금액이 100억원을 넘으면 특별재생지역으로 지정된다.피해항목별 피해금액 기준은 각각 기반시설 20억원 이상과 주택 60억원 이상이다.이 기준을 충족한 흥해읍은 최초의 특별재생지역으로 지정돼 주택과 도시재생기반시설의 정비와 공급은 물론 피해주민의 심리적 안정대책, 지역거점 육성 대책 등의 특별재생 계획을 수립할 수 있게 됐다.포항시는 총 6천500억원의 사업비를 확보해 오는 7월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에 나선다는 방침이다.우선 지진피해지역 중 피해가 심각한 주택가를 중심으로 전체 사업비 중 절반이 넘는 3천8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3천억원은 주택 및 공동주택단지를 포함한 사업성이 있는 재개발·재건축 지역에, 800억원은 사업성이 부족한 나홀로아파트 등 재건축지역에 투입한다.또 공공편의시설 조성, 소규모주택 정비, 상가리모델링 지원, 지역명소화 사업 등 주거복지실현 도시재생뉴딜사업에 870억원, 소파 및 노후불량 주택 내진보강 사업에 330억원이 책정됐다.아울러 1천억원의 사업비로 30만㎡ 부지에 연면적 1만3천㎡규모로 국립 지진안전교육장을 건립하고 300억원을 투입해 지역 6곳에 다목적 재난 대피시설을 설치한다.지역 내 주요 지점에 지진감시센터 설치와 재난 위험지도 구축, IoT(사물인터넷) 활용 위험예측, 감지, 컨트롤, 분석 등 지진대응시스템을 구축하는 스마트 안전도시 건설에도 200억원이 들어간다.포항시는 이같은 청사진을 구체화하기 위해 구체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시에 따르면 지진발생 당시 흥해지역 내 공동주택 130단지 중 재건축이 필요한 노후·불량 공동주택은 115단지(88%)였다.포항시가 지난 3월 주민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주민들은 주거안정 부분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으며 대다수가 재개발·재건축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이에 포항시는 지자체의 열악한 재정상황과 주민분담금을 낮추기 위해 국가차원의 지원을 요청하고 지역기업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했다.또한 사업추진시 재산세, 취·등록세, 상·하수도 원인자부담금 감면을 검토하고 있다.포항시는 주민 의견도 적극 수렴하고 있다.우선 ‘주민참여컨설팅단’에 소속된 도시재생분야 전문가들이 직접 주민들과 만나 마을 부흥의 의견을 수렴해 ‘새로운 흥해’를 설계한다.또 한동대나 포항대, 선린대 등 지역 대학생들의 집합체인 ‘특별재생 영아이디어 발굴단’을 통해 대학생들이 보고 느낀 아이디어를 수집해 도시계획에 반영한다.아울러 주민의 다양한 의견을 대변하고 사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주민 대표모임인 ‘흥해 도시재생 주민협의체’를 지난 5월 24명 규모로 구성했다.이강덕 포항시장은 “강진으로 흔들린 지반과 노후주택 복구 및 내진보강, 재개발과 재건축을 포함한 모든 사업은 주민협의체 구성 등을 통해 시민공감대 속에서 속도감 있게 추진할 방침”이라면서 “무엇보다도 전국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를 만드는데 모든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박동혁기자phil@kbmaeil.com

2018-06-22

대구공항통합이전과 대구 미래

지난 13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 권영진 대구시장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대구공항·K-2 군공항 통합이전’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권 시장은 14일 새벽 당선자 인터뷰에서도 “민간공항을 두고 군공항만 옮기자는 것에 단 1%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그 가능성을 찾겠지만 불가능한 일”이라면서 “앞으로 4차혁명 시대에 소음피해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등 대구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일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흔들림없이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이러한 권 시장의 일성은 ‘대구공항통합이전’ 문제를 두고 선거 기간에 불거진 불협화음을 조기에 차단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자유한국당 경선에 참여한 이진훈 전 수성구청장과 더불어민주당 임대윤 후보는 ‘대구공항 존치’를 주장하며, 수성구와 동구 여론을 움직이기도 했었다. 경북매일신문은 창간을 맞아, 향후 ‘대구공항통합이전’ 문제를 재점검한다.권영진 시장“군공항만 이전은 불가능한 일통합이전 흔들림 없는 추진” 의지市, 이전 주변지역 지원계획 수립 등올해말까지 이전 문제 완료국방부8월 이전 부지 선정·계획 수립 공고신청 지자체 중 심의 거쳐12월께 최종 결정군위군 우보면·소보면 일대의성군 비안면 일대 후보지 물망권영진 시장 “흔들림없이 추진”자유한국당 권영진 대구시장이 재입성에 성공하면서 ‘대구공항통합이전’의 문제는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대구공항통합이전’이 이슈로 부각되면서, 대구시민의 선택을 받았다는 관점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이를 의식한 듯, 권 시장은 지난 14일 시청 기자실을 찾아 “김해공항은 확장이 되더라도 항공 물류가 (되지 않아)남부권 공항이 되지 않는다. 통합대구공항은 김해, 광주공항이 할 수 없는 항공물류가 되는 남부권 공항으로 1천900만 영·호남 주민을 위한 것”이라며 “올해 연말 최종부지가 결정되면, 그 다음부터 달라진다”고 말했다.그는 “지금 대구공항은 청사, 계류장, 주차장밖에 없지만 이전하는 공항은 12만 평을 확보해 천만 수요의 터미널, 주차장, 계류장, 화물처리장 등 민간 공항 시설이 들어가는 것으로 대구·경북이 원하는 최적의 사업”이라면서 “통합 신공항을 만들어 놓으면 항공사가 오느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공항정책을 전혀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장거리 항공물류 공항시설이 안되면 죽었다 깨어나도 세계적인 관문공항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권 시장은 특히, “이번 선거 결과로 심판을 받았다”면서 “제대로 안된다면 ‘대구시는 문닫아야(한다)’”라고 강조했다.대구공항통합이전, 왜 추진되나지난 1961년 4월 개항한 대구공항은 57년째 대구와 경북의 유일한 국제교류 중심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경산과 영천 등 대구 인근 지역은 30분 이내이며, 경주와 포항 등에서는 90분 이내로 접근할 수 있어 영남권 거점공항으로의 임무를 수행 중이다. 특히, 지난 2004년 KTX 개통 이후 100만 명도 되지 않는 이용객은 지난 2013년 108만 명에서 2016년 250만 명으로 급격하게 성장했다. 또 지난 해에는 350만 명을 돌파했고, 2018년에는 여객 수용 한계치인 375만 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이처럼 이용객이 늘어난 이유는 저비용항공사 취항, 국외노선 확대, 통행금지 시간(야간운행통제시간) 단축 등으로 항공 공급력이 늘어나면서 노선 수가 늘었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이처럼 이용객이 늘고 있는 대구공항의 이전을 왜 추진하는 걸까.가장 큰 문제는 도심에 위치한 K-2 군사기지 때문이다. 대구공항이 K-2의 활주로를 빌려 쓰고 있는 상태이며 수시로 활주로를 오르고 내리는 전투기의 소음으로 대구 동구와 북구지역의 주민 수십만 명이 수십 년째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실제로 대구공항 이전 문제는 K-2 군공항 이전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지난 2007년 11월 20일 대구 동구와 북구 피해주민을 주축으로 하는 ‘K-2 이전 주민비상대책위원회’가 발족했다.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은 ‘K-2 이전’을 선거공약과 국정과제에 포함시켰다. 특히, 지난 2013년 4월 5일에는 ‘군 공항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대구공항통합이전’ 문제가 현실적으로 대두된 것은 지난 2016년 7월 11일이다. 영남권신공항 건설이 백지화되고 김해공항 확장이 발표되면서, 성난 지역 민심을 달랠 필요가 있었던 정부는 ‘K-2,·대구공항통합이전’을 발표한다. 이에 대구시도 다음 날인 12일 최종 이전건의서를 국방부에 제출했다.가장 최근인 지난 3월 14일 국방부는 공항 후보지로 경북 군위군 우보면 일대와 의성군 비안면·군위군 소보면 일대를 선정하기에 이르렀다. 국방부는 앞으로 공항 이전 후보지 2곳에 지원 계획을 세우고 공청회, 주민투표 등을 거쳐 옮길 곳을 최종 선정할 방침이다.이전 후보지인 의성군은 “이전 후보지 지원 계획을 대구시와 함께 마련해야 한다”며 “주민 기대를 충족하고 정부도 받아들일 수 있는 실제 지원책을 수립하겠다”고 했으며, 군위군은 “후보지 2곳 결정은 통합공항 이전과 관련한 논란에 쐐기를 박는 계기가 됐다”며 “앞으로 각 기관과 행정 협의 등으로 순조롭게 옮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어떻게 추진되나‘대구공항통합이전’을 두고 난타전 양상으로 치닫던 찬반논란이 사실상 종지부를 찍으면서, 대구시는 올해 말까지 이전 문제를 완료하겠다는 복안이다.대구시의 향후 추진절차에 따르면, 국방부장관과 대구시장은 이전주변지역에 대한 지원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대구시는 군 공항 이전사업 지원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이어 이르면 8월 국방부는 이전부지 선정을 위해 이전부지 선정계획을 수립 및 공고하게 된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전후보지 지자체장에게 주민투표를 요구하게 되며, 이전후보지의 지자체장은 주민투표 결과를 반영한 유치 신청을 해야 한다.모든 절차를 거친 이전부지 선정은 이르면 올해 12월 결정될 전망이다. 국방부는 유치신청을 한 지자체 중에서 선정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이전부지를 최종 선정한다. 마지막으로 ‘이전사업 시행(국방군사시설 사업에 관한 법률)’은 국방부와 대구시, 이전 대상 지자체 등이 논의하게 된다.다만, 대구시가 ‘대구공항통합이전’에 대한 공론화 과정이 미흡했다는 여론에 대해서는 반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CBS대구방송과 영남일보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 1월 2일 발표한 여론조사(성인 남녀 1천631명 대상,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2.4%p,응답률은 4.7%)에 따르면, “대구공항통합이전이 공론화를 거쳤느냐”는 질문에 과반을 넘는 55.2%가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반면, “공론화 과정­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11.9%였다.또 공항 이전 방안과 관련, “군공항만 이전해야 한다”는 응답이 40.4%로 가장 많았다. 이어 “민간공항과 군공항 모두 이전해야 한다”는 응답은 27.2%였으며, “공항 이전에 반대한다”는 의견도 12.5%였다.대구공항통합이전 이후한국교통연구원이 지난 2016년 말 ‘대구공항통합이전’ 이후를 조사한 결과, 대구·경북의 생산유발 효과는 12조9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조사됐었다. 또 5조5천억원의 부가가치 유발효과가 예상되고 12만 명의 취업유발 효과도 나타날 것으로 분석됐다.연구를 맡은 한국교통연구원은 “여러 분석모형 중 현실가능성, 공신력, 활용성이 높은 다지역산업연관표분석모형(MRIO)을 활용해 수치로 나타낼 수 있는 정량적인 파급효과를 공항 건설단계와 운영단계(건설 후 30년간)로 나누어 산출했다”며 “수치로 표현하기 어려운 지역사회 변화형태, 소음 및 고도제한에 따른 영향 등은 별도로 제시했다”고 밝혔다.특히, 대구는 종전부지 개발사업(5년, 6천363억원) 시행에 따라 약 8천억원의 생산유발, 3천억원의 부가가치유발, 6천여 명의 취업 유발효과가 예상됐다. 경북은 통합신공항 건설공사(6년, 5조2천625억원)와 주변지역 지원사업 토목·건설공사(6년, 1천393억원) 시행에 따라, 약 7조5천억원의 생산유발과 2조7천억원의 부가가치유발, 5만3천여 명의 취업유발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됐다.뿐만 아니다. ‘대구공항통합이전’은 접근성을 위한 새로운 공항고속도로와 공항철도의 필요성을 유발시킨다. 중앙고속도로를 활용한 공항도로는 물론 서대구KTX를 중심으로 하는 공항철도의 건설도 기대할 수 있다.대구 정가의 한 관계자는 “아직 공항이전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야기하기에는 이르지만, 접근성 개선을 위한 개발은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공항고속도로와 공항철도, 주변개발 등이 대구와 경북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박순원기자 god02@kbmaeil.com

2018-06-22

“보수 인적 쇄신이 알파와 오메가… 한국의 마크롱 찾아야”

“국민 여러분!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그 어떤 말과 행동으로도 상처나고 성난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없음을 잘 압니다. 국민들께서 자유한국당에 등을 돌린 참담한 현실 앞에 처절하게 사죄를 드리며 반성문을 올립니다.”민주당 후보 14명 광역의원에 당선지역구 도의원 당선은 23년만에 처음대구 수성구의회는 민주당 ‘1당’ 부상한국당 해체 통해 처음부터 다시해야인적쇄신으로 새로운 인물 영입 필요구조·체제·관행·관습 모두 바꿔어야“국민들의 바람은 냉엄한 반성과 뼈를 깎는 혁신과 변화였습니다. 당명을 바꾸고 두 차례의 혁신위원회를 운영했지만, 결과적으로 국민들께 희망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중략) 보수의 가치가 희생과 책임에 있음에도, 소홀히 했습니다. 정부의 경제 민생 실정에 합리적 대안을 내놓지도 못했습니다. 결국 혁신을 위한 처절한 반성도, 뼈를 깎는 변화의 노력도, 새로운 미래도 준비하지 않는 집단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란 말도 부끄럽습니다. 국민 여러분! 다시 태어나겠습니다. 국민께서 주신 마지막 기회로 여기고 초심으로 돌아가겠습니다”민주당의 압승과 자유한국당의 참패로 마무리된 6·13지방선거 직후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이 지난 15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무릎을 꿇고, 내놓은 반성문이다. 6·13지방선거를 통해 본 TK민심은 어디로 어떻게 흐르고 있으며, TK 정치권은 앞으로 어떤 정치적 과제를 풀어나가야 할까.6·13지방선거에서 ‘보수의 심장’ ‘자유한국당의 텃밭’으로 불렸던 대구·경북지역 민심이 무너졌다는 사실이 자유한국당에 가장 뼈아픈 패배가 됐다.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 선거에서는 승리했지만 기초단체장 가운데 박정희 대통령의 고향이자 친박계의 성지로 불리는 구미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는 이변을 낳았고, 광역의회와 기초의회 선거에서도 민주당 후보들이 대거 당선되는 돌풍을 일으켜 TK 밑바닥 민심이 온통 흔들렸다.◇ TK 일당독재 바꾼 민주당 바람6·13지방선거 개표 결과는 자유한국당이 독식해왔던 TK 광역의회와 기초의회에 민주당이 대거 진출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불렀다. 우선 경북도의회에 민주당은 지역구 7명, 비례대표 2명 등 총 9명이 입성했다. 이로써 60명이 정수인 경북도의회가 자유한국당 41명, 더불어민주당 9명, 바른미래당 1명, 무소속 9명으로 재편됐다. 민주당 후보가 경북도의원에 당선된 사실만 해도 지난 1995년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영양군 제1선거구에서 류상기 전 경북도의원이 당선된 이후 23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대구시에서도 30명이 정수인 대구시의회에 비례의원을 포함해 더불어민주당 의원 5명이 당선돼 보수의 장벽을 허물었다. 또 TK지역 기초의원에서 민주당의 약진은 놀라울 정도였다. 대구 기초의원 선거에서는 민주당 공천 기초의원 후보 46명 가운데 단 한명을 제외한 전원이 당선됐다. 특히, 대구 수성구에서는 민주당 소속 구의원이 9명으로, 8명 당선에 그친 한국당을 제치고 구의회 1당이 되면서 의장직까지 챙겼다. 중구도 3명이 당선돼 자유한국당과 의석 수가 같았다.특히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의 대구지역 전체 기초의회 의석 수 차이가 8석에 불과해 기초의회는 문자 그대로 양당체제에 돌입했다. 경북 포항지역의 경우도 12개 지역구에서 28명의 당선인이 배출된 가운데 민주당은 출마한 10명의 후보 중 8명이 당선됐다. 민주당 중앙당 당직자 출신을 비롯 여권 불모지인 지역에서 목소리를 높이고도 남을 만한 강경파들이 많아 향후 지방의회 운영을 놓고 다수당인 자유한국당과의 마찰이 예상된다. 이에 따라 자유한국당이 독식하며 지방의회 운영을 좌지우지하던 시절은 가고, 민주당과의 협치가 원만한 지방의회 운영에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다.◇ 한국당 지도부 총사퇴…수습방안 고심한국당은 선거 참패직후 홍준표 대표를 비롯한 최고위원 등 당 지도부 전면사퇴와 함께 비대위 구성을 통한 당 수습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지방선거 직후 지난 15일 열린 자유한국당 비상의원 총회 분위기는 자못 비장했다. 김성태 당대표 권한대행은 이 자리에서 “이번 선거는 저희들에게 아직 사그라들지 않은 국민적 분노가 우리 당에 대한 심판으로 표출된 선거였고, 국민들이 자유한국당을 탄핵한 선거”라면서 “국회청산, 기득권 해체, 자신을 희생하지 않으려는 보수로는 더 이상 설자리가 없다. 무사안일주의, 보신주의, 뒤에서 딴생각만하고 잿밥에만 눈독을 들이는 구태보수 청산하고 노욕에 찌든 수구기득권 다 버려 보수이념의 해체, 자유한국당 해체를 통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아울러 그는“우리당이 처해있는 정치생태계도 바꿔야 한다. 우리당의 구조, 체제, 관행과 관습, 그 모든 것을 바꿔야 새로운 세력이 등장할 수 있고 새로운 도전이 가능해진다”면서 “물러날 분 들은 뒤로 물러나고 확실한 세대교체 이뤄야 한다”고 당의 인적쇄신과 환골탈태를 예고했다. 4선 이상의 중진의원들은 당의 미래를 논의하기 위한 비공개 모임을 가지기로 했다가 기자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취소했다. 일부 중진의원은 선거 패배 직후부터 당 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에 마음이 가있어 혁신적 결정이나 자기희생 방안이 나올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초·재선 의원들의 움직임도 비판대상에 올랐다. 김순례, 성일종, 정종섭 의원 등 초선의원 5명이 “중진 의원 은퇴 촉구”를 한 데 대해 “자기 희생없는 역대급 철판”이란 비판이 제기됐다. 17·18대 국회의원을 지낸 전여옥 전 의원은 최근 페이스북에 “홍준표 대표 시절 입 한 번 뻥끗도 하지 않았던 이름만 초선인 사람들이 ‘갑자기 왜저러지?’싶다… ‘진박 인증 사진’ 찍던 한국당 초선분들은 ‘중진 찜 쪄 먹는 노회한 초선’”이란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이번 선거 패배의 큰 원인 중 하나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책임이 있는 한국당 의원들이 ‘나몰라라’한 것인 데, 서로 손가락질하며 물러나라는 태도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중진의원인 김무성 의원은 이 자리에서 “새로운 세상을 주도할 보수의 가치관을 정립하고 당에 새바람을 일으켜야 하며, 새로운 보수정당 재건을 위해 저부터 내려놓겠다”고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고, 이어 초선인 윤상직·정종섭 의원이 불출마할 것으로 알려졌다. ‘친박계 좌장’인 8선의 서청원 의원도 “당에 도움을 드릴 수 없기에 조용히 자리를 비켜드리겠다”며 탈당을 선언했다.◇ 보수당에 바라는 TK민심의 속내보수당을 지지하는 시민단체인 경북희망연대 강형우 대표는 논평을 통해 “이번 6·13선거는 보수의 참패가 아니라 자칫 극우로 추락하는 ‘보수정당’을 국민들이 심판한 선거였다”면서 “국민의 충분한 동의를 얻기 위해서는 한국 보수의 이념과 진영을 도덕으로 재정립하고 보수와 중도, 아울러 진보까지 거중조정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온건 보수의 어른들이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수당의 18대 총선승리를 선사했던 전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나 민주당의 전남도시자 출신인 이낙연 국무총리만큼이나 포용력과 확정성이 강한 야전사령관으로 일컬어지는 김관용 경북지사 등이 백의종군해 ‘노마지지’의 길을 찾아 온건한 보수의 씨앗을 청년들에게 뿌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지난 1993년 설립된 전국 환경운동단체의 연합체인 환경운동연합도 지방선거 직후 논평을 통해 “이번 선거는 지난 과오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정치세력에 대한 냉엄한 심판”이라며 “신규원전 중단, 물관리일원화, 4대강재자연화 등의 주요 국정 과제에 대해서 뚜렷한 명분 없이 무조건적인 반대를 일삼아온 보수당은 뼈저린 반성없이는 당의 존립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만큼 궤변을 내려놓고 사회의 건전하고 합리적인 시민을 대변하는 보수로서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이번 지방선거 이후 새로운 보수의 등장을 바라는 목소리는 어느때 보다 높다. 사실 TK지역이 보수당의 텃밭으로 오랫동안 자리매김해오는 동안 지역 정치권의 경쟁력은 차츰 활력을 잃고 무너졌다는 분석을 내놓는 이들이 적지않았다. 선거때면 TK지역은 늘 ‘집토끼’ 신세였고, 보수당은 ‘산토끼’를 잡으러 산과 들로 다녔다. 그 동안 집토끼는 굶주리고, 외면받는 찬밥신세에 처해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구가 수 십년 동안 지역총생산이 최하위에 머물러도 획기적인 대책 하나 세우지 못한채 시들어가고 있고, 경북지역 역시 지역 출신 대통령을 여러 번 배출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속도로망이나 국도,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인 SOC투자가 제대로 돼 있지 않아 많은 지역이 발전의 동력을 원활하게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보수재건은 인적청산과 쇄신이 열쇠보수당인 자유한국당, 그중에서도 텃밭이었던 TK지역에서 보수당을 재건하기 위한 핵심은 인적쇄신과 함께 새로운 인물을 영입하는 데 있다는 게 지역 정치권의 일관된 진단이다.막말로 악명높은 홍준표 전 대표는 지난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마지막으로 막말 한 번 하겠다”며 “고관대작 지내고 국회의원을 아르바이트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 추한 사생활로 더 이상 정계에 둘 수 없는 사람, 국비로 세계 일주가 꿈인 사람, 카멜레온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변색하는 사람, 감정 조절이 안 되는 사이코패스 같은 사람이 한국당에 있다”고 썼다. 또 “친박(친박근혜) 행세로 국회의원 공천을 받거나 수차례 하고도 중립 행세하는 뻔뻔한 사람, 탄핵 때 줏대 없이 오락가락하고도 얼굴·경력 하나로 소신 없이 정치생명 연명하는 사람, 이미지 좋은 초선으로 가장하지만, 밤에는 친박에 붙어서 앞잡이 노릇 하는 사람”이 있다고도 했다. 홍 대표는 “지난 1년 동안 당을 이끌면서 가장 후회되는 것은 비양심적이고 계파 이익을 우선하는 일부 국회의원들을 청산하지 못했다는 점”이라며 자신이 대표로 있는 동안 한국당의 인적쇄신을 이루지 못했던 점을 아쉬워했다. 막말이긴 하지만 보수당의 쇄신에 있어 핵심을 찌른 말이었다.황태순 정치평론가 역시 “보수당의 쇄신은 인적쇄신이 새로운 보수재건에 있어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단언하면서 “보수당이 국민들에게 새롭게 다가서려면 영국의 토니 블래어총리나 엠마뉴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처럼 젊고 개혁적인 정치인을 영입해 정치에 희망을 불어넣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토니 블래어 영국총리는 지난 1994년 41세의 나이로 최연소로 노동당(Labour Party) 당수가 된 데 이어 1997년 총선에서 승리해 18년 만에 노동당 출신의 총리가 된 인물이며, 엠마뉴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역시 대통령 경제보좌관, 경제산업디지털부 장관을 지낸 뒤 39세의 나이로 프랑스 역대 최연소 대통령이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요약하면 오랫동안 TK지역민들의 표심을 독차지해온 자유한국당이 TK민심을 잃고 환골탈태의 요구에 직면하게 된 원인은 보수당으로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에 책임있는 정치인들의 자성과 희생이 없이 심판대에 오른 점, 그리고 당내 새로운 권력의 구심점이자 대권후보를 잉태하지 못한 점 등 두 가지다. 따라서 자유한국당이 새로운 보수로 거듭 나려면 바로 인적쇄신과 새로운 인물의 영입, 두 가지가 반드시 선행돼야 할 것이라는 게 TK지역민들의 한결같은 견해다./김진호기자kjh@kbmaeil.com

2018-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