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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덕장(德將)

손자병법에 장수는 세가지 부류로 나눈다. 맹장(猛將)과 지장(智將) 덕장(德將) 등이 그것이다.맹장은 전투에서 군사를 진두지휘하는 용맹함과 뛰어난 전투력을 갖춘 인물을 일컫는다. 대표적 인물로 삼국지의 장비를 들 수 있다.지장은 뛰어난 지략과 견문을 갖춘 전략가형 장수다. 다양한 전술을 구사할 줄 알아야 하고 날카로운 예지력과 통찰력으로 부하를 지휘하는 능력의 소유자다. 삼국지 등장인물 가운데는 조조나 제갈량 등이 이에 해당한다.덕장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로 부하를 통솔하는 솔선수범형 장수다. 제갈량을 찾아가 삼고초려 했던 유비와 같은 인물을 덕장이라 부른다.장수 간의 우월을 가려본 사례는 없지만 보통 “맹장은 지장을 이기지 못하고 지장은 덕장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을 잘 쓴다. 부하를 통솔하는 데는 뛰어난 지략과 용감한 전투력도 필수지만 부하의 마음을 사로잡을 인간적인 면모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덕장의 덕(德)은 동양사상에서 지도자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인 인격적 능력을 말한다. 덕이란 공정하고 남을 넓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인데 전장에 나선 장수도 힘과 기술보다는 덕성을 중시하라는 뜻이다.흔히 듣는 ‘부덕의 소치’말은 본인이 덕이 없어 생겼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나라에 큰 재해가 덮치면 임금이 나서서 백성을 위로하기 위해 이 말을 썼다고 한다. 자산과 상관이 없는 일인데도 스스로 덕이 없다고 함으로써 윗사람의 넓은 아량을 보여준 것이다.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독주에 대한 검사들의 집단 반발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추 장관의 이후 대응이 주목된다. 추 장관이 지장이 될지 맹장 혹은 덕장이 될지는 자신의 선택에 달렸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11-03

이상한 대구 부동산 시장

김영태대구취재본부 부장(부국장 대우)대구 부동산 시장이 이상하다. 특히 수성구의 아파트 가격이 급상승하면서 ‘미쳤다’라는 표현이 적절할 만큼의 장세를 이어가고 있다.한국감정원이 지난 2일 발표한 ‘10월 전국주택가격 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구의 주택매매 가격은 지난달에 비해 0.75% 상승했다.대구 부동산의 상승폭은 세종(1.43%), 대전(0.81%)에 이어 전국 17개 시·도 중 세번째이고 전국 평균 상승률 0.32%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더욱이 대구 수성구는 1.91%가 올라 전국 지자체 중 상승폭 1위를 기록하는 등 정부의 부동산 규제 후 특정지역으로의 쏠림 현상을 여실히 드러냈다.심지어 ‘학세권’과 ‘초품아’효과를 톡톡히 누리는 수성구 중 이른바 ‘범4만3(범어4동, 만촌3동)’의 집값은 호가와 실거래가 모두 고공행진에 접어들었다. 지난 8월 ‘빌리브 범어’ 84㎡형이 15억3천만원에 거래돼 비수도권 최초로 15억원을 돌파했고 준공된 지 40년을 앞둔 범어4동 한 아파트 84㎡ 매물의 호가는 이미 지난달 18억원을 넘어 얼마까지 오를지 짐작할 수 없다.대구 수성구는 부동산 매매는 물론이고 전세마저도 거의 자취를 감췄고 품귀 현상마저 빚어지고 있다. 가끔 등장하는 급매물도 내놓기가 무섭게 소진되며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다 보니 대구지역 실수요자들을 중심으로 이른바 ‘똘똘한 한채’를 보유하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지며 이런 기현상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이는 정부의 새임대차법 시행이후 대구지역 집값 상승의 기대가 오히려 더 팽배해졌고 전월세 물량 급감과 함께 주택가격 상승을 견인한 것으로 분석된다.대구 일부 아파트 단지의 경우에는 허위매물처럼 호가보다 낮은 가격을 표시하는 부동산 중개인과의 거래하지 말자는 내용의 현수막까지 내붙는 진풍경마저 벌어졌다. 실제로 대구 동구, 수성구, 달서구 등지에는 ‘허위부동산 매물 퇴출, 저가매매 유도 아웃’이라는 현수막이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 이유다. 현재 대구의 모 아파트의 경우에는 단지 입주자 대표와 부동산 중개인 간 소송으로 번지는 극한 대립 양상마저 보이며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이런 상황은 정부의 부동산규제 발표가 있을 때마다 지역 부동산 전문가들은 수성구 쏠림현상과 가격 폭등 등을 지적했고 그 결과가 그대로 재현되는 상황이다. 또 대구지역 부동산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견해를 보이며 정부의 실질적인 정책이 발표되길 바란다고 했지만, 도외시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정부 정책이 서울 강남3구의 집값을 잡기 위해 집중되다보니 지방에서는 특정지역의 부동산 가격만 오히려 상승시키는 역효과를 낳았다. 결국 현재의 대구 부동산 시장의 이상 현상은 정부의 각종 규제가 성장세를 키운 셈이며 앞으로의 정책이 또 어떻게 전개될지에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정부의 부동산 억제 정책이 더 이상 지역의 부동산 가격을 오히려 인상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기를 기대하면 무리일까.

2020-11-03

중국의 ‘항미원조’ 전쟁의 발언 배경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지정학적으로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어있는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많은 수난과 고통을 겪었다. 한반도는 중국으로부터 수차례 침범을 받았다. 수·당 시절부터 중국의 침범은 명장 을지문덕과 강감찬이 있어 막을 수 있었다. 임란 시에는 명의 이여송이 조선에 파견되었다. 정묘호란 기에는 청의 홍타이지가 남한산성을 포위하고 인조가 무릎을 꿇게 하였다. 조선왕조는 중국 명황제의 숭정연호까지 사용하기도 했다.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탐욕은 그 역사가 오래고 이번 ‘항미원조(抗美媛朝)’ 발언도 그와 맥을 같이 한다.1950년 6·25 전쟁에서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김일성 정권을 위기에서 구출해 주었다. 6·25 전쟁은 김일성의 남침 전쟁임이 판명된 지 오래다. 미국의 부루스 컴잉(Bruce Cumming)은 한때 북의 남침 설을 인정치 않았으나 후일 이를 수정했다. 중국은 최근 6·25 전쟁을 한반도 내전인데 미제가 침범하여 이를 물리친 정의의 전쟁이라고 선포하였다. G2로 성장한 중국은 6·25 전쟁마저 대미항전이라는 도구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이번 정의의 전쟁 발언은 중국의 단순한 실수도 아니고 그들의 오래된 역사 인식에 기인한다. 여러해 전 중국 여행 시 압록강 철교 끝 단둥에 설치된 중조우의(中朝友誼) 비를 본 적이 있다. 동북 3성의 마을 입구에는 의례 그들의 6·25 참전 기념비가 서있다. 전쟁에서 희생된 의용군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물론 중국의 항일 혁명 시 희생된 영웅들의 기념비도 여러 곳에 서 있다. 여기에는 중국 팔로군을 도운 조선족 영웅들의 모습도 더러 눈에 보인다. 중국이 6·25 전쟁을 미제 침략에 반대한 정의의 전쟁으로 미화한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다.중국은 겉으로 한반도 국가의 주권 존중을 강조하지만 내심으로는 그들의 영향력이 미치는 한반도 국가 건설을 구상하고 있다. 중국은 한반도의 통일 보다는 분단된 현실을 선호하는 입장이다. 중국은 중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정권 창출을 갈망하고 있다. 중국은 여전히 한반도를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로 인식하여 북한을 두둔하려 한다. 중국 중앙 정부가 공들인 동북공정(東北工程)도 그들의 국가 헤게모니 확대 전략의 일환이다. 중국은 우리의 발해사까지 자신들의 지방사에 편입시켜 버렸다. 북한정권이 붕괴되면 중국이 동북 4성에 편입할 것으로 우려하는 사람도 많다. 물론 미국은 이를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대중정책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한미동맹을 중시하면서도 교역의 가장 큰 파트너인 중국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어정쩡한 입장을 내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은 그간 미국의 사드 배치를 강력히 항의했으며 우리 경제에도 상당한 타격을 입혔다. 중국은 ‘일대일로’ 원칙을 고집하면서 미국의 인도 태평양 방위전략을 극력 반대한다. 중국은 한미 동맹의 강화를 반대하고 대한 외교적 압력은 가중시킬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중미 양다리 외교의 조화는 가능할 것인가. 우리 외교의 최대 딜레마이다.

2020-11-03

광화문, 빛들문, 門化光

이재현동덕여대 교수“볼수록 아름다운 스물넉 자는 / 그 속에 모든 이치 갖추어 있고 / 누구나 쉬 배우며 쓰기 편하니 / 세계의 글자 중에 으뜸이도다 / 한글은 우리 자랑 민주의 근본 /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외솔 최현배가 작사한 한글날 노래 2절 가사이다. 세종대왕의 과학·철학·애민의 탁월한 정신이 오롯이 담긴 세계 최고의 글자, 쓰기 쉬우면서도 모양 또한 아름다운 글자가 한글이다. 유네스코는 문맹퇴치에 공이 큰 단체나 개인에게 주는 상으로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을 1989년에 제정하였다. 인도네시아의 글자가 없었던 부족인 찌아찌아족은 2009년부터 그들의 말을 적는 글자로 한글을 가져다 쓰고 있다. 한글의 과학성, 우수성을 보여주는 두 장면이라 하겠다.서울 한복판 세종로에 광화문이 서 있다. 경복궁으로 들어가는 정문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소이다. 대한민국의 얼굴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1395년 왕궁이 처음 지어지던 때의 이름은 ‘오문(午門)’이었는데, 세종대왕이 집현전에 왕명을 내려 새로 만든 이름이 ‘광화문(光化門)’이다.광화문은 우리 역사와 길을 같이 걷는다. 임진왜란 때 경복궁과 함께 소실되었다가 조선 후기 고종 때에 궁을 중건하면서 문도 재건되었다. 경복궁에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은 일제에 의해 광화문은 경복궁의 동문인 건춘문 자리로 옮겨졌다가 1968년, 2010년 두 차례의 재건축 과정을 거쳐 원래 자리인 지금 위치로 돌아왔다.광화문의 현판은 광복 이후 3번 교체되었다. 고종 때 경복궁의 중건 책임을 맡은 훈련대장 임태영이 쓴 한자 ‘門化光’으로 현판이 걸렸다가, 1968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씨 ‘광화문’으로 현판이 바뀌었고, 2010년 복원된 광화문에 임태영의 글씨를 복원한 한자 현판 ‘門化光’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2010년 복원 당시 고증의 오류와 현재 현판의 균열로 인해 문화재청은 현판을 다시 제작하기로 결정하였다.2011년 문화재청이 5천 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현판 글씨로 한글(58.7%)을 한자(41.3%)보다 선호한다는 답을 얻었다. 하지만 문화재 전문가들의 공청회와 토론회에서는 한자 현판이 우세했고, 임태영의 한자 현판으로 최종 결정이 났다. 광복 이후 4번째 광화문 현판은 올해 걸기로 예정되어 있지만, 아직 소식이 없다.지난 5월 ‘광화문 현판 훈민정음체로 시민모임’(공동대표 강병인·한재준)이 만들어졌다. 나는 광화문 현판을 글자체가 우아하고 아름다운 훈민정음체로 하자는 이 모임을 지지한다.우리의 정체성을 무엇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의 얼굴이라 할 광화문의 현판을 한자로 적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문화재는 옛것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타당할지 모르겠으나, 문화는 옛것의 답습으로는 발전할 수 없다.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문화의 대표성을 생각할 때 한자 현판 ‘門化光’보다 ‘광화문’이 훨씬 더 어울리지 않을까? 세종대왕이 지은 이름 ‘광화문’을 세종대왕이 만든 훈민정음체로 쓰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마음 같아서는 한자 뜻을 확 풀어 아예 ‘빛들문’으로 바꾸자고 하고 싶지만 말이다.

2020-11-03

책의 묶인 끈을 풀며

집에, 연구실에 그야말로 산처럼 쌓여가는 책들을 보면서 한숨이 나오는 하루하루다. 책의 자리가 점점 넓어져 옴짝달싹 못하게 되는 것은 책을 좋아하여 그것을 매개로 사유하고, 소통했던 모든 이들이 겪었을 고충이니, 특별히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책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줄여 나의 자리를 넓힐 궁리를 해본다. 별 뾰족한 수는 없다. 책을 주변에 나눠주면 좋겠지만, 그 책을 받고 난감해할 사람의 표정을 상상하면, 그것도 민폐가 아닌가. 요즘에는 책이 차지하는 공간을 줄이려 책을 묶어둔 제본 부분을 자르고, 스캔을 해두는 것도 많이들 하고 있다지만, 그것만큼은 왠지 저어된다. 사실, 많은 자료를 인터넷으로 보고 있는 셈이니, 그리 거리낄 이유도 없지만, 책을 찢는 것은 무언가 내 속에 담겨 있는 문학과 예술에 대한 감각을 건드린다. 디지털과 네트워크가 기본이 되는 시대, 그것은 내게 남은 한 줌의 ‘예술’에 대한 감각일지도 모르겠다.생각하면, 본래 종이의 한 쪽 끝을 묶었던 것을 푸는 것에 불과하니, 그리 신경을 쓰는 것은 과민한 일일지도 모른다. 다만, 책을 찢는 일은 단지 그 묶었던 끈을 푸는 것만이 아니라, 책이 담고 있던 내 손끝에 닿아 명징했던 총제적인 예술의 감각을 훼손하는 일인 것만 같다.지금 시대는 분명 디지털 신호로 변환되지 않은 예술을 상상하기 어려운 시대이다. 지금도 네트워크를 떠돌고 있는 유튜브의 영상들이 그러하고, 그 주변에 모여 분명 ‘예술적인 감흥’을 얻고 있을 사람들의 존재가 그러하다. 고작 ‘사진’에 의해 복제된 예술품의 가치 유무를 논하며, ‘아우라’라는 현실적인 낭만성의 기호로 그를 지칭하고자 했던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고민은 이 시대에 닿으면, 사실 하찮은 것이 되고 만다. 그림 속에 찍힌 점과 점 사이에 존재하는 무한한 점들까지 디지털 신호로 바뀌어 어디로든 전송될 수 있다.분명 벤야민의 시대에는 예술이 갖고 있는 수많은 가치들을, 그것에 새롭게 붙은 화폐 가치가 밀어내고 소외시켰던 것이 예술을 대하는 사람들의 중요한 고민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이런 시대에는 정치나 시장이 예술을 잠식한다. 하지만, 이제는 예술작품과 그것을 ‘재현’하는 길고 긴 디지털의 코드더미들이 실제로 같은 것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더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것이 된다. 이제는 본래적인 것과 찰나적인 것을, 그 선후를 구분할 수 없게 된 시대이기 때문이다.이런 시대에 ‘문학’이 질식할 수밖에 없는 전망을 갖는 것도 당연하다. 애초에 문장에 붙어 있는 문장 이상의 의미들과 그것이 우리 마음에 일으키는 파문이 갖는 신비가 바로 ‘문학’이 본령이 아니었는가. 어떤 문장을 읽고 그것을 더 확실한 무엇으로 치환해버리는 시대에야 ‘문학’의 자리가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아니, 그것이야말로 문학의 가능성을 ‘책’이라는 매체에 가두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문장 한 줄은 디지털 신호로 변환되어 네트워크를 타고 흐르다가 누군가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다. 누군가의 길고도 깊은 사유의 원형이 담겨 전달되지 않는다는 아쉬움이나 향유의 양상이 찰나적이 되고만 것은 여러 번 생각해도 아쉬운 일이지만, 인간이 언어를 쓰고, 그것을 가지고 타인에게 무언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는 것만큼은 시대가 지나도 변화하지 않을 것 아닌가.책의 묶인 끈을 풀어 헤쳐 둘지 고민하다 결국 풀어내지 못하고 어딘가에 쌓아둔다. 아직 나는 책의 시대에 남아 있으므로, 그것을 헤쳐 새로운 ‘문학’을 만드는 것은 누군가에게 맡겨 둔다. 책의 시대는 어쩌면 이제는 골동의 영역에 남겨질지도 모르겠지만, 시대는 계속해서 흐르고 있고, 인간이 영위하는 문학만큼은 날로 새로운 것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홍익대 교수

2020-11-02

이 가을, 마음을 헹구며… 청도 북대암(北臺庵)

북대암을 처음 찾은 것은 수십 년 전 시를 쓰는 친구와 함께였었다. 고즈넉한 절간의 정취도 좋았지만 선한 미소로 반겨주시던 치자향 닮은 스님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때 마침 제를 지낸 뒤 우리 앞에 차려진 푸짐한 공양상과 친절함은 감동적이었다. 봄기운 가득한 북대암의 첫 이미지는 두고두고 나를 미소 짓게 했다.북대암은 창건연대가 확실치 않고 창건자도 신승 혹은 보양국사라는 설이 전해진다. 네 개 암자 중 가장 먼저 세워졌으며 운문사 북쪽에 제비집처럼 높은 곳에 지어져 북대암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우연찮게 오늘은 동화 작가와 함께 북대암을 찾아간다. 작가의 신도증으로 매표소 앞을 무사통과하는 것도, 전설 같은 옛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도 흔치 않은 행운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송진 체취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노송들, 그 상흔의 그림자를 밟으며 사색하던 길을 오늘은 문우들과 한껏 들떠서 지나간다.어릴 적부터 어머니 손을 잡고 북대암을 오르내렸다는 동화작가가 그 옛날의 암자와 스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시간으로 다져진 인연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이다. 존경과 신뢰로 엮여진 오랜 인연을 부러워하면서 나는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왔는지 반문할 수밖에 없다.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의 일상들이 푸석거리며 먼지를 일으키는데, 그녀의 추억담은 가을 햇살에 녹아들어 가파른 포장길을 운치 있게 만든다. 소통이 된다는 것은 정신적인 안온함을 나누는 일인데 오늘은 햇살조차 곱다.불현듯 장르가 다른 문인들이 북대암을 찾기로 한 건 파장이 통했다는 의미가 아닐까. 아직은 서로의 깊이를 잘 모르지만 같은 곳을 바라보며 걷는 자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즐거움은 크다. 흔들림 없는 모습으로 제 영역을 확고히 지키며 살아가는 문우들을 바라보며 나는 청명한 하늘이었다가 거침없는 바람이기도 하고 속으로 흐느끼는 억새가 되기도 하며 비탈길을 오른다.벼랑에 둥지를 튼 제비집 같은 정겨운 북대암, 작은 마당에 배를 깔고 누운 가을 햇살을 깨우며 동화작가가 익숙하게 대웅전을 향하고 우리는 그녀를 따른다. 준비해 온 떡을 다소곳이 제단에 올리는 시조 시인, 가톨릭 신도인 문우도 자기를 낮추고 절간의 법도를 따라 절을 한다. 예수님과 부처님이 손을 잡는 훈훈한 시간이다.가파른 계단 위 작은 전각에는 독성각과 산신각 현판이 나란히 붙어 있다. 뒤로는 거대한 바위 봉우리가 신비로움을 더하고, 법당은 햇살의 품에 안겨 잠든 듯 고요하다. 북대암에서 가장 기돗발이 영험하다는 독성각의 동자승 앞에서 또 나란히 기도한다. 함께 한 문우들의 건강과 문운을 기도할 수 있는 이 시간이 참으로 감사하다.숨어 있듯 열려 있는 산길을 따라 바위 앞에 이르면 운문사와 북대암이 한 눈에 보인다. 거대한 바위 어딘가에 스님과 보살의 사리가 봉안되어 있다고 한다. 수행을 열심히 하신 스님이 열반에 들면서 사리가 나오면 북대암 뒤 바위에 안치하라는 유언에 따라 모셔진 것이다. 그리고 아랫마을 노보살이 평생을 눕지 않고 염불하여 생시에 치아에서 사리가 나와 이곳에 봉안되었다고 하니 옷깃을 여밀 수밖에 없다.정갈한 나무데크에 앉아 내려다 본 운문사는 한 송이 연꽃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운문사, 그 청렴한 정수리가 향기롭게 빛난다. 노송 아래에서 좌선하듯 앉아 홀로 시간을 보내고 싶다. 숱한 잡념들은 솔바람에 씻겨 나가고 온몸에 나무향이 배일 것만 같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서로의 눈빛에 젖어들고 싶은데 쉽지 않다. 뒤에 오는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할 수밖에 없다.구절초가 한들거리는 볕 좋은 산기슭을 따라 내려오는데 앞서 간 동화작가의 나지막한 소리가 들린다. “스님, 스님.” 요사채 방문 앞에서 노스님을 부르는 그녀의 자태가 가을 들꽃을 닮았다. 굳게 닫힌 방문은 끝내 기척이 없다. 어떤 상황에서나 사람을 먼저 섬길 줄 아는 배포 크신 노스님, 법춘 스님을 뵙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크다.들어올 때 공양주 보살이 내다준 홍시가 여태 평상 위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여전히 인심 좋은 북대암이다. 노스님의 안부를 여쭙자 보현사로 감을 따러 가셨다며 특별히 떡까지 내어오신다. 평상에 앉아 홍시와 떡을 먹는다. 물 귀한 북대암에 감로수 대신 글귀 하나가 마음을 헹구라고 자꾸만 눈빛을 빛낸다.조낭희 수필가“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내가 나를 바꾸는 것이고,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것 또한 내가 나를 바꾸는 것이다.”대화를 나누면서도 뚫어지게 나를 쳐다보는 글귀에 붙잡혀 꼼짝을 못한다. 스스로의 단점을 극복하려고 노력하지만 연거푸 좌절감만 맛본 나에게는 멀고도 난해한 글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어느 스님은 카르마라는 쳇바퀴에서 벗어나는 길은 부단한 수행뿐이라고 하셨다.귀한 오늘, 되담을 수 없는 숱한 말을 뱉어낸 벌로 북대암이 안겨 준 숙제 하나 무겁다. 돌아오는 발길에는 가는 계절이 채여 비틀거리며 쓰러지고 문우들에게서는 잘 익은 시향(詩香)이 난다. 특별했던 가을날의 하루가 추억 속에 또 둥지를 튼다.

2020-11-02

독서에 대한 잡스런 기억들

허명화씨의 책들.누군가 내게 언제부터 독서에 대한 취미를 붙였느냐고 물어본다면 내 대답은 이러하다.먼저 독서는 나에게 취미로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 독서 감상문을 써오기 위한 책 읽기였으니 말이다. 매번 검사 받아야 하는 숙제라 여기니 재미있다거나 신나는 일은 더욱 아니었다.생각해보면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 엄마가 자주 쓰시던 부모님전상서를 의미도 모르면서 읽은 것이 그 시작이었을 거라고 얼버무리고 말 성싶다.분명한 것은 이런 일들이 학기 초 교과서 읽기로 이어졌다. 이렇게 책을 가까이 하며 사십이 넘은 지금까지 살고 있는 것만은 부정할 수가 없다.지난 주말 찾았던 고향집 거실 책장에는 중·고등학교 다닐 시절 사 놓은 시집이나 소설책, 잡지, 또 열기도 겁나 보이는 두꺼운 전공서적들이 여전히 촘촘히 꽂혀 있다. 볼 때 마다 내 인생의 한 단편을 보는 것 같아서 아련해진다.내가 살았던 시골은 책 한권 사볼 서점이 마땅치 않았다. 당연히 학교도서관은 책을 볼 수 있는 전부였다. 그렇게 만난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새끼’는 나의 첫 책이었다. 그 후로 계속 읽게 된 안데르센 동화들. 여름날 더위 날리기에 안성맞춤이었던 ‘셜록 홈즈’ 시리즈. 내가 생각한 그 범인이 맞는지 확인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중학교 때 친구의 추천으로 읽게 된 여자의 일생, 언젠가 독일에도 가보고 싶게 만든 내가 좋아하는 작가 헤르만 헤세의 소설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는 목련꽃 아래에도 서 보았다. 4월에 아파트 화단에 목련꽃이 피면 넌지시 눈길을 건네곤 한다.한 동안 온몸으로 생각했고 ‘내가 아큐 형 인간은 아닌가 ’ 했던 노신의 ‘아큐정전’, 부끄러움의 시인 윤동주, 현진건, 이효석의 소설들. 러시아 소설 속 등장인물들 이름은 왜 이렇게 길고 어려운지 입에서 익숙해지기가 쉽지 않았다. ‘부활’의 남자 주인공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네흘류돌프는 메모를 해가며 외운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책 속의 주인공들은 모두가 ‘나’였다고나 할까.자취를 했던 고등학교 때 토요일 오후가 되면 내 발걸음은 서점으로 향했다. 진열된 책의 제목에 마음이 꽂혀 책장을 들추게 되고 우연히 펼친 페이지에 잠시 몰입하는 기쁨은 도둑의 긴장감처럼 황홀했다. 이렇게 구입한 책은 친구들과 함께 했던 독서동아리 책이 되었다. 스스로 만든 동아리라 진실은 독서보다는 모여서 수다 떨기로 더 바쁜 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먼지 앉은 책들이 불쌍하기도 하고 때론 소중하기도 하다.나는 식자(識者)들에게나 어울릴 법한 자타가 공인하는 ‘독서광’은 아니다. 그러나 다독가이고는 싶다.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주마간산으로 훑은 책을 다시 보고자 했다. 하지만 한갓지게 독서한 기억이 없다.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을 기웃기웃한다. 여행이 아쉬운 지금 앞선 작가들의 여행기를 덥석 빼 든다. 오늘은 산티아고를 넘어 남미여행기에 푹 빠진다. 독서의 즐거움에 여행의 기쁨도 더해진다.책과 함께하는 일상이 오롯하다./허명화(포항시 북구 아치로)

2020-11-02

나의 직업

전효선씨.나는 요양병원 간호사입니다.코로나 시대에 항상 감염의 중심에 서 있는 것같이 방송에 나오는 위험지역에 근무합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는 요양병원은 청정지역입니다.갇혀있는 섬이라고 할까?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된 곳으로 직원이 바깥에서 옮겨오지 않으면 절대 코로나가 발생할 수 없는 곳입니다.그러나 외부에서 잘못 옮겨온 병원균으로 인해 치명적인 결과가 발생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그래서 직원들은 더 조심하고 경계하고 통제합니다.요양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는 육체적으로 심적으로 극한 직업입니다.아니 정말 힘든 사람은 요양병원 환자일지도 모릅니다.입으로 먹지도 못하고 “춥다, 덥다”말도 못하고 심지어 자식도 몰라보고 자신의 세월도 잊어버린 채 1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침대에 누워 지내는 분들도 있습니다.‘내손으로 수저질하다. 반찬 올려 보조하여 먹다가 남은 음식 일부 떠 먹여 식사량 유지함. 전적으로 떠 먹여줌’. 이것이 요양병원 환자분의 식사하기 일상 활동의 기록입니다.전적으로 떠 먹여도 치매로 삼키는 것을 잊어버리거나 연하곤란으로 삼키지 못하면 경관식이를 합니다. 일명 ‘코줄’을 꽂아서 튜브를 통해 생명을 이어갑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차라리 죽는 것보다 못하지 않으냐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그러나 그렇게라도 살아있는 것이 누군가에게 힘이 된다고 믿고 싶습니다.삶의 의미는 우리가 부여할 수 없는 존엄한 것이기에 오늘도 일방적인 질문과 답을 하면서 그분들과 말을 이어갑니다. 오래 입원하고 계신 분들 중에는 가족들이 띄엄띄엄 찾아오다가 코로나 때문에 면회가 통제 되면서 비대면으로 영상 통화만 가능합니다. 저는 여기서 3년 조금 넘게 근무했습니다. 몇 년을 같이 지내다 보면 정말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어서 마지막 가실 때는 내 가족 같아서 마음이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로 인해 사직하는 간호사들도 있습니다.방송에서 요양병원에서 환자를 학대하고 인권이 없는 곳이라고 일부의 잘못을 가지고 모든 곳에 적용시키는 것을 보면 속상해서 화가 나기도 합니다.하지만 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환자분들이 계시고 간호사들이 해야 될 일이고 해내야 되기 때문에 오늘도 힘을 내 봅니다. /전효선(포항시 북구 흥해읍)

2020-11-02

모국어가 그리울 때

우리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동네 체육관이 있다. 이름하여 Mitchell Field Community Center이다. 오후 5시경, 걷기 운동을 하러 갔다. 초가을답지 않은 차가운 기온이라 실내에서 걷기로 하고 체육관에 간 것이다. 아래층 농구 코트에서는 고등학생 정도의 학생들이 무리 지어 농구 연습을 하고 있었다. 2층 워킹트렉에는 열심히 돌고 있는 여인들 대여섯 명이 보였다. 남자는 나 혼자였다. 전광판의 시계를 확인하고 걷기 시작했다.나보다 빨리 걷는 이들도 있고 나와 비슷한 속도로 걷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유독 나이 많은 서양 할머니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내가 걷는 속도의 반도 안 되는 속도로 걷고 있었다. 몸이 무거워 걷기가 무척 힘들어 보였다. 살이 좀 많이 찐 편이었다.걷다가 운동기구의 의자에 앉아 쉬었다. 그 표정을 보니 삶에 지친 모습이 역력하였다. 팔순이 넘어 보였다. 그 나이쯤 살았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싶었다. 그때 걷던 젊은 여자가 쉬고 있는 그 할머니와 한참이나 말을 하였다. 아마 모녀지간인 것 같았다. 젊은 여인 역시 몸이 꽤 살이 찌고 무거워 보였다. 그래도 나보다 더 빨리 열심히 걸었다.얼마 걷다 보니 거의 다 나가고 그 육중한 체구의 할머니와 나만 남았다. 할머니는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천천히 걷는다. 나는 그렇게 사십여 분을 걸었다. 아래층으로 내려와 의자에 앉아 잠시 쉬었다. 그때 그 할머니도 내려와 내가 앉은 의자 끝에 앉았다. 말을 걸어 볼까 하다가 말았다.40여 년을 토론토에 살았어도 영어로 하는 대화는 항상 긴장을 좀 해야 하기 때문이다. 늘 눈인사로 대신한다. 모국어를 사용한 시간보다 더 오래 외국살이를 했지만 나이 들어서 배운 언어는 늘 입안에서만 맴돈다. 잠시 후 젊은 여자가 와서 할머니를 모시고 밖으로 나간다. 그의 등에 대고 see you again 하고 눈으로만 인사를 했다./김용출(캐나다 토론토)

2020-11-02

그래도 꽃은 핀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 겨울에 몸을 움츠리게 하던 찬바람과 함께 뜬금없이 찾아온 불청객은 봄이 지나고 여름을 거쳐 가을이 다 지나도록 떠나지 않고 지척에서 맴돈다. 듣지도 못했었고, 보지도 못했었고, 생각지도 못했던 고약한 그놈과의 불편한 동거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 끝은 보이지도 않는다.떠나보내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이유가 분명한 그놈이다. 가까이해서는 절대 안 되는 생존의 위기를 초래하는 그놈이다. 떠날 조짐조차 보이지 않는 참 끈질긴 그놈이다. 먹고 살기 위한 최소한의 일상마저 앗아간 몹쓸 그놈이다.학교에 가고 싶은 학생들, 직장에 가야만 하는 가장들, 수십 년 해온 점포를 닫아야 하는 소상공인들, 부모님을 찾아뵈어야 하는 자식들, 명절에도 오지 말라고 한 가슴 아픈 부모님들, 가까이 있어도 못 보는 친구들, 누구나 할 것 없이 일상을 잃어버렸다. 평범했던 일상이 귀하고 소중해진 지금이다.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서로 간에 거리를 두라고 강요하는 매정한 지금이다. 그래도 마음만은 가까이하라고 위안하는 안쓰럽고 안타까운 지금이다. 참으로 잔인한 2020년이다.황무지가 되어버린 일상에도 불구하고 먼 산엔 단풍이 물들었다. 낙엽은 그리움이 되어 떨어지고 얼어붙은 대지에 포근한 흰 눈이 내리고 나면 또다시 봄은 오겠지. 엘리엇(T. S Elliot)의 시 ‘황무지(荒無地)’에서 ‘죽은 땅에서 라일락은 피우고’처럼 그렇게 꽃은 피고 지고 또 피겠지. /윤현도(사진작가)

2020-11-02

일안이구(一顔二口)의 괴물

강희룡 서예가괴물은 인간의 내면에 드리운 욕망과 상상력의 산물이다.고대 로마의 문인이며 정치가였던 플리니우스의 ‘박물지’나 오비디우스의 ‘변신’은 유니콘, 그리핀 같은 괴물 이야기를 모은 책들이다.눈이 먼 현자로 유명한 아르헨티나의 소설가이자 시인이었던 보르헤스(1899~1986)의 ‘상상 동물 이야기’는 서양 괴물 이야기의 집대성을 이루며 그리스 신화의 괴물에서 카프카의 소설 속 크루자에 이르기까지 약 140여 종이 등장한다. 시공을 초월하여 인간이 만들어낸 상상속의 기묘한 이 허구의 존재들은 어쩌면 실제 세계를 더욱 잘 이해하게 해 주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동양에도 이런 고전이 있으니 하(夏)나라의 우왕 또는 백익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산해경(山海經)’이다. 짐승의 몸에 사람 얼굴로 용을 타고 다니는 불의 신 축융(祝融), 뱀의 몸에 사람얼굴로 불꽃처럼 붉은 머리를 가진 물의 신 공공(共工), 범의 몸과 사람 얼굴에 머리 다리 꼬리가 각각 여덟인 천오(天吳), 발 하나에 뿔이 없는 푸른 소인 기(夔) 등 200여 종의 괴물 이야기가 실려 있다.2006년에 봉준호 감독의 영화로 ‘괴물’이 있다. 오늘날 기형괴물의 탄생은 환경오염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이 영화는 1천2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면서 역대 최대 기록을 세웠다.미 8군 영안실에서 근무하는 의사가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 약병에 먼지가 있단 이유로 수 백병이 넘는 이 약을 모두 하수구에 버리면서 버려진 독약으로 인해 한강의 물고기는 곧 상상을 초월하는 괴생물체로 변하여 평화로운 한강에 재앙을 불러온다는 내용이다.이명박 정부 시절 광우병 시위 때 지금의 이낙연 여당대표가 당시에는 야당으로 집회와 시위, 표현의 자유를 외치며 독재정권의 공권력 남용이라며 거리에서 앞장서서 강력히 규탄하더니 지난 개천절 보수단체 집회에 대해서는 여당대표로서 코로라 방역을 빌미로 설치한 버스 벽 뒤에서 공권력의 강경진압과 무관용 원칙을 경찰에 주문했다. 이 행태를 두고 시무7조로 화제를 모았던 조은산 논객이 그가 지은 ‘산성가’에서 ‘얼굴은 하나요, 입이 두 개인 기형생물’이라고 비판했다. 동물은 환경오염으로부터 기형괴물이 탄생하나 인간은 권력과 영욕으로 오염된 영혼 소유자가 정치판에서 정치를 오염시키고 주변인물과 자신도 괴물로 변하는 것이다.바로 이들을 얼굴 하나에 입이 두 개인 일안이구(一顔二口)의 괴물들이라 일컫는다. 이들은 본인이나 가족 또는 같은 편의 비위사실이 드러날 경우를 우려해 권모술수는 물론 동질사안에 대해서도 아침저녁으로 말이 바뀌는 조삼모사(朝三暮四)의 기형생물체들이다. 내로남불이 일상이 되어버린 이들은 국민이 임기동안 쥐어준 권력을 남용해 진영의 장기집권과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린다.국가 탑을 쌓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것은 순식간이다. 110년 전 망국의 유령이 지금 이 땅에 떠돌고 있다.

2020-11-02

3AS 포항 공공미술 프로젝트

최미경동화작가지난 7월 8일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총 848억원 규모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밝힌 이후 공공미술프로젝트에 대한 지자체와 미술계, 그리고 일반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문화예술 분야의 지원 중 단일규모로는 최대 수준이기 때문이다.전국 228개 지자체에 총 948억원이 나누어질 예정이기에 각 지자체별로 4억원 정도가 배분된다.이번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코로나19로 침체된 미술계 작가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 및 지역 공간문화 개선 등을 목표로 지자체별로 최소 18명에서 최대 38명까지의 작가들이 참여하며 예술작품 설치, 문화공간 조성, 도시재생, 미디어·온라인 전시, 주민 참여 프로그램 등 다양한 유형으로 진행되고 지역의 여건에 맞게 탄력적으로 운영할 예정이라고 문체부에서는 밝혔다.하지만, 이같이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공공미술 사업에 대한 실효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많다.먼저 짧은 공모기간과 급한 진행이 첫 번째의 문제점으로 드러났다. 사업 공공기간이 짧게는 일주일부터 길게는 이주일, 접수 기간 또한 짧게는 하루 뿐인 곳도 있고 긴 곳은 15일 정도이다. 그래서 공공미술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연구기획기간이 짧기에 조악한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더불어 실행 주체인 문화재단이나 담당공무원들의 이해 부족, 전문성 부족, 지자체별 차별성 부족, 유사 선생사업 모방 등의 우려도 드러났다. 그렇다보니 ‘과거 정권에서 실패한 정책의 우려먹기일 뿐’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또한 작가들의 공평한 참여가 배제된 채 협회와 단체들이 독점하는 양태에 대한 문제점도 드러났다.포항에서도 지난 9월 ‘2020 공공미술프로젝트-우리동네’사업 3AS 포항 공공미술 프로젝트라는 명칭으로 포항문화재단에 공고가 났다. 총 6개의 작가팀이 공모했고 먼저 그 중 1팀이 선정되었고 이후 포항문화재단은 10월 재공모를 거쳤다. 재공모에 선정된 팀은 1차 공모에서 떨어졌던 작가팀의 팀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자신들이 기획했던 프로젝트를 공유하며 수정-보완-반성해서 다시 하나로 만든 팀이었다. 팀원들의 성향과 활동영역은 달랐지만 그들이 하나로 모일 수 있었던 이유는 지역의 작가가 지역의 공간을 지역주민들을 위해 만들어보자는 마음이 하나로 모였기 때문이었다.선정된 2팀 모두 아직 컨설팅 단계와 작품의 창작, 설치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하지만 두 팀 모두 제대로 된 과정을 통해 공공미술이 단지 공공 공간에 미적 가치가 있는 오브제를 들여다 놓는 것만은 아니라는 인식을 가지고 그 장소가 가진 기억과 지역민의 의식을 담아 감성과 가치가 담긴 오브제를 만들 길 기대해 본다.또한 시간에 쫓게 지역의 특성과 여건, 주민을 고려하지 않고 프로젝트 결과물에만 집착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길 바란다.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좋은 취지와 목적으로 시작된 만큼 3AS 포항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대한 포항 시민 모두의 관심이 필요하다.

2020-11-02

한미동맹, 격랑 속으로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한미동맹이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동맹의 불신과 균열이 매우 우려할만한 상황이다. 이슈(issue)에 따른 단순한 이해관계나 견해차이가 아니라 동맹의 성격과 목적에 대한 근본적 이견이 충돌하고 있다. 한미동맹 70년 역사상 처음으로 경험하는 최대의 위기다.동맹의 생명인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무엇보다 한미동맹에 사활이 걸려 있는 한국의 안이한 인식과 비현실적 외교가 심각하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의 판문점선언 및 군사합의가 한미동맹에 영향을 미치는데도 미국과 사전협의가 없었고, 중국을 의식한 균형외교는 동맹국인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불신을 자초하였다. 또한 냉전적 군사동맹을 평화동맹으로 전환하자는 이인영 통일부장관의 주장은 한미동맹의 성격과 목적을 완전히 왜곡하였다. 한미동맹은 평화를 지키기 위한 ‘억지력(deterrence)’이 그 핵심인데, 북한의 핵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핵확산억지력’ 밖에 없음을 왜 모르는가? 게다가 동맹외교의 최전선에 있는 이수혁 주미대사는 “70년 전에 미국을 선택했다고 앞으로도 미국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동맹의 신뢰를 스스로 훼손하였다.물론 동맹국인 미국의 책임도 적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우선주의’는 동맹국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동맹국이 미국을 이용해왔다는 ‘편협한 동맹관’에 입각하여 무리한 방위비 인상을 압박함으로써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주한미군이 가져다주는 미국의 전략적 이익과 안보증진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또한 미국은 일방적으로 반중(反中) 쿼드(Quad) 및 5G 클린네트워크(Clean Network)에 한국이 동참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나아가 에스퍼(M. T. Esper) 국방장관은 중국을 견제할 목적으로 동맹국들에게 아시아판 NATO를 제시함으로써 한·중 전략적 협력관계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양국의 동상이몽(同床異夢)도 심각하다. 한국은 선(先) 종전선언 후(後) 비핵화이지만, 미국은 선 비핵화 후 종전선언이다. 한국은 전시작전통제권 조기전환을 주장하나 미국은 조건충족이 먼저라고 본다. 정부가 추진하는 미·중 균형외교 및 북·미 중재외교는 한·미 동맹외교와 충돌하고 있다. 방위비협상이 길어질수록 동맹의 불신만 깊어질 것이며, 미·중 패권경쟁에서 동맹의 편에 서라는 미국의 요구는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어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갈등으로 최근의 한미안보협의회(SCM)는 예정된 공동기자회견마저 취소되었다.이처럼 현재의 한미동맹은 중병에 걸려 있다. 치료를 서두르면 동맹이 회생될 것이지만 방관하면 동맹이 와해될 수도 있다. 동맹의 치유는 양국의 신뢰회복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동맹은 같은 생각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는 신뢰관계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친중탈미(親中脫美)’나 ‘친북탈미(親北脫美)’는 동맹에 대한 배신이다. 동맹의 존립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가치와 이익의 공유’를 위한 전략소통과 정책조율이 시급한 시점이다.

2020-11-02

암호화화폐 스캠 주의보

본래 스캠이란 ‘도박판에서 상대방을 속이는 행위’로 경제사기수법 용어로 통용된다. 암호화폐 시장에선 투자자를 현혹해 투자금을 가로채고 잠적하는 행위를 말한다. 스캠 일당이 온라인 메신저나 SNS로 피해자에게 접근해 특정 계좌번호나 지갑 주소에 자산을 이체하도록 유도한다. 신종스캠은 기존 스캠에서 한단계 진일보한 사기유횽이다. 피해자의 이성적 호감을 이용한 로맨스 스탬에 피해자에게 실제 수익이 나는 것처럼 위장하며 경계심을 풀게하는 수법이 고도화 됐기 때문이다.먼저 일당은 데이트앱에서 범죄대상을 물색한 뒤 이성적 호감을 사 경계심을 누그러뜨린다. 처음에는 호감으로 접근한 것처럼 속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암호화화폐 투자를 권유하기 시작한다.실제 사례를 보면 A씨는 사회관계망 서비스에서 이성 B씨를 알게됐다. 어느날 B씨는 쏠쏠한 수익을 올렸다는 해외소재 암호화화폐 투자사 홈페이지를 소개했다. A씨는 B씨가 소개한 투자사 가상지갑으로 비트코인을 전송했다. 처음 걱정과 다르게 상당한 수익이 나왔다. A씨는 수익금을 찾기로 결심했다. 그러자 투자사는 해외세금 등을 이유로 고액의 추가 입금을 요구했다. 문제는 추가 입금에도 수익금은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 B씨는 잠적했고, 해당 홈페이지도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한마디로 신종 스캠수법이다.국내 암호화폐거래소 고팍스의 자금세탁방지팀에 지난 10월말부터 4건의 동일한 유형의 스캠 사기신고가 접수됐다. 4건 가운데 3건은 거래소 차원에서 사전에 암호화폐 인출을 막아 금전피해를 막았지만 금융당국은 수면위로 드러나지 않았던 피해사례가 더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어떤 경우든 낯선 이의 투자권유와 접근은 경계하고 볼일이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11-02

이번 미국 대통령선거를 보는 눈

11월 3일 미국에서 제46대 대통령선거와 더불어 상원과 하원 의원선거, 주요 주지사선거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가 신임 대통령으로 당선될 것이라는 예측이 높은 가운데, 민주당이 정권을 잡더라도 상원과 하원에서 다수당의 지위를 차지한다면 최소한 앞으로 2년간은 민주당의 색채가 짙은 과감한 정책이 추진될 가능성이 크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고 민주당이 다수당이 되거나, 민주당 정권이 탄생하더라도 상원에서 다수당을 차지하지 못한다면 미국의 앞으로 대내외 정책의 불확실성은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역 업계도 이번 미국 선거를 주의 깊게 관찰하여 미국발 정책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에 참여할 권리인 참정권, 다시 말해 투표할 수 있는 시민권을 가졌다고 해서 한 나라의 정책 수립과 집행 과정에 직접 개입할 틈은 사실상 거의 없다. 그저 자기 생각과 대체로 비슷한 성향을 지녔다고 착각한 정치인이나 특정 정당의 공약을 보고 한 표 찍는 것으로 지금보다는 내 입맛에 가까워지기를 막연히 바랄 뿐이다. 하지만 일단 선거가 끝난 다음부터는 소득, 고용, 소비, 교육과 같은 개인과 가정에 직접 연결되는 모든 영역에서 즉시 영향이 나타난다. 싫든 좋든 그러한 영향에서 벗어나려면 다시 새롭게 그 나라의 정계 구도가 재편되기 전까지는 감내할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평생 자기가 원했던 정치인을 뽑고 예상대로 국가 정책이 집행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행운을 얻는 시민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이처럼 자기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 중요한 선거인데도, 우리는 인간이기에 매번 선거철에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 사고의 영향을 받거나 분위기에 휩싸여 순간적으로 지지 대상을 바꾸는 경우도 많다. 때에 따라서는 투표를 하지 않거나, 반대로 한 번도 투표하지 않았던 사람까지 투표권을 행사하기도 한다.이번 미국의 대통령선거에서 그런 모습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선거결과 미국 정계가 앞으로 어떻게 재편될 것인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그동안 불거진 인종차별 문제, 민주당이 정권을 잡게 되면 총기 보유 규제가 강화되리라는 전망과 겹치면서 미국 사람들이 혼란에 빠진 모습이다. 심지어 아예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올해 생전 처음으로 총을 산 사람만 500만 명을 넘겼다고 한다. 게다가 이번 대선은 코로나19의 대책으로 우편투표가 많이 늘어나 평소보다 선거결과가 집계되는 시일이 늦어지기 쉬워 개표결과를 의심하는 사태까지 일어날 위험도 있어 안심하기 힘든 상황이다. 11월 3일에 이루어지는 대통령선거를 8일 앞둔 시점인 10월 26일까지 사전투표를 마친 유권자가 6천만 명을 넘겼다. 플로리다 대학에서 ‘미국 선거 프로젝트’를 주관하고 있는 마이클 맥도날드 정치학 교수는 이번 선거의 예상 투표자는 총 유권자의 65% 수준인 약 1억5천만 명에 달해 1908년 대선 이래 최고의 투표율을 기록할지도 모른다고 예측하였다. 당시 남부에 지지 기반을 둔 민주당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후보가 17개 주에서 승리하였으나, 공화당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후보가 북부를 중심으로 29개 주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제27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적이 있다. 이번 선거가 당시처럼 미국 유권자에게 높은 관심을 받으며 예측불허의 승부가 예상된다고는 하나 정치 관련 전문기관 대다수는 그때와는 달리 조 바이든 후보를 낸 민주당이 승리할 것으로 보고 있다.이번 선거는 마침 대통령선거에 더해 상원과 하원 선거, 일부 주지사선거까지 겹쳐 더욱 열기가 높다. 당연히 이번 선거결과는 우리나라도 정치, 경제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크든 작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발표된 지지율 분석결과를 종합해보면 일단 대통령선거에서는 조 바이든 후보가 신임 대통령으로 당선될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다른 선거에서는 과연 어떠한 결과로 예측되는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11월 3일 대통령선거와 동시에 이루어지는 연방 하원과 상원의 선거결과는 내년 1월 20일 취임할 제46대 미국 대통령의 정책운영에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하게 된다. 하원 선거는 과연 어떻게 될까. 현재 미국 하원의 전체 의석수는 435개다. 하원 의석은 각 지역 인구수에 비례 배정되는데 의석이 1개인 주는 7개 주(알래스카, 몬태나, 델라웨어, 노스다코다, 사우스 다코다, 버몬트, 와이오밍), 20개가 넘는 주는 4개 주(캘리포니아 53개, 텍사스 36개, 플로리다 27개, 뉴욕 27개)다. 하원 임기는 2년이기 때문에 모든 의석이 이번 선거에서 새로 결정된다. 선거 직전인 현재 의석 분포는 결원이 있어 민주당 232개, 공화당 197개지만 이번에도 민주당이 다수당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의 정치 전문채널 538은 민주당 239석, 공화당 196석으로 예측하였다.만약 상원까지 민주당이 다수당을 차지하면서 조 바이든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새로 출범할 민주당 정권의 주요 정책들은 아무런 걸림돌도 없이 신속하고 강력하게 추진되기 쉽다. 마치 버락 오바마 제1기 정권의 전반기(2009년부터 2010년)처럼 대담한 정책을 시도할 가능성이 커진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말할 것도 없고, 설사 재선에 실패하더라도 공화당이 지금처럼 상원에서 다수당을 차지하게 되면 바이든 정권이 탄생하더라도 의회에서 발목이 잡혀 획기적인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거나 집행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이렇듯 관심이 높은 미국 상원 의석수는 인구수와 상관없이 50개 주마다 상원의원 2명이 배정되기 때문에 총 의석수는 100개뿐이다. 상원 임기는 6년인데 2년마다 전체 의석의 3분의 1씩 교체하기 위한 선거를 한다. 올해 상원 의석 가운데 선거대상 주는 34개지만 조지아주에는 결원에 따른 보궐선거 1개가 있어 새로 선출되는 의석수는 35개다. 지금의 35개 의석 분포는 공화당 23개, 민주당 12개로 공화당이 민주당보다 우세하나 상황은 전혀 다르다. 현재 전체 상원 의석 분포는 공화당 53개, 민주당 45개, 무소속 2개지만 무소속 의원이 민주당과 투표 행동을 같이하고 있어 공화당 53개와 사실상의 민주당 47개로 의석 차는 6개다. 하지만 민주당이 정권을 잡고 2021년 1월 3일 개회되는 상원에서 민주당이 현재 의석에서 3석만 늘리면 사실상 과반수를 차지하게 된다. 상원의장을 부대통령이 겸직하기 때문이다. 만약 공화당 정권이 이어진다면 상원에서 민주당이 다수당이 되려면 의석을 4개 늘려야만 한다. 미묘한 상황이지만, 10월 22일 현재 주요 예측기관들의 11월 3일 선거를 하는 34개 주에 대한 분석결과는 민주당이 현직 상원의원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12개 주 가운데 재선에 불리하다고 예상되는 주는 3개 주(알라바마, 미시건, 미네소타)뿐이다. 반면, 공화당의 경우에는 현직 23명 가운데 낙선이 우려되는 주가 8개 주(아리조나, 콜로라도, 조지아(보궐선거 포함 2명), 아이오와, 메인, 몬태나,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캐롤라이나) 9명에 이른다. 공화당 의원이 의석을 잃을 것이라 예상하는 의석수가 민주당보다 3배나 많다. 전문 예측기관들은 선거결과 상원 의석 예상분포를 민주당 52~53개, 공화당 47~48개로 보면서 민주당이 상원에서 다수당을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만약 미국의 제46대 대통령으로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가 당선되고, 상원과 하원에서도 민주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게 된다면 적어도 2년 동안은 민주당 색채가 강한 대내외 정책을 비교적 수월하게 추진할 수 있을 전망이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더라도 상원과 하원에서 예측대로 민주당이 다수당을 차지하게 되거나, 반대로 민주당이 정권을 잡더라도 상원에서 다수당의 지위를 탈환하지 못하게 된다면 미국의 향후 정책 방향에 대한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기 쉽다. 앞으로 지역 업계는 이번 미국의 선거결과에 대해 지금까지 이상으로 세세하게 살펴 경영전략을 조정해 나가야만 미국발 정책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11-01

요즈음의 이웃사촌

윤영대수필가이웃사촌이란, 옛날 집성촌이 많을 때 이웃에는 사촌들이 많아 길흉사에 서로를 도우며 의존하며 정답게 살아가던 시절의 풍경이다. 그러나 근래 들어 가족 수도 줄고 또 도시로 흩어지면서 이웃에는 남들이 많아지게 되었고 친족들은 명절에나 볼 수 있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가깝게 사는 이웃이 오히려 혈육처럼 허물없고 매우 가까운 관계가 된다는 말인데, 이제는 이웃사촌이란 말도 옛말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사회적 현실이다.80년대를 지나면서 지방에도 아파트 붐이 일었고 인간미가 정겹던 골목길이 사라져갔다. 아파트가 20층이라면 한 통로만 하더라도 좁은 골목길에 40여 채 이상의 집이 모여있는 큰 마을인 셈이다. 동네 마을은 골목길 오가며 인사도 나누고 담장 너머로 집안 사정도 볼 수 있지만, 밀폐된 아파트 마을은 앞집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현관문은 꼭꼭 잠기고 문패도 없어 성도 이름도 모른다. 아기들을 키우며 집을 지키고 이웃과 웃음을 나누던 집안의 여성들도 맞벌이 등으로 집을 비우면 옆집 이웃은 없는 것과 같다. 얼굴을 보는 것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는 수십 초간, 서로 인사도 말도 없이 내려버린다.한 아파트에서 20년 가까이 살았어도 이사가 빈번하여 주민들이 바뀌니 대부분 낯설다. 다행히 오래 살다 보니 터줏대감이 되었고 나와 비슷한 나이의 분들이 몇 집이 있어 정답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제는 허물없이 대화하며 짐도 들어주고 가끔 바로 아래 선술집에서 한잔하기도 하는 참으로 좋은 이웃사촌이 되었다.어린아이들을 볼 때면 귀엽고 사랑스러워 말을 붙여보고 싶어도 옆의 아빠 엄마가 이상한 눈초리로 볼 것 같고, 아침저녁 밝은 얼굴로 만나는 학생들에게 무언가 묻고 칭찬하고 싶어도 두렵다. 특히 여학생이 경우 성희롱이 아닌지 의심할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나는 교직에 있었다는 배짱으로 한 마디씩 물음을 던지다 보니 학생들도 이제는 먼저 인사를 하곤 한다.요즘 층간소음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밀폐된 아파트 문화가 낳은 이웃에 대한 서로의 배려 부족이리라. 1970년대 아파트는 주로 5층짜리였지만 그때 친구 집에 갔다가 그의 아내에게 들은 얘기가 아직도 귀에 남아있다. 타지에서 온 신혼부부라 이웃도 없어 남편 귀가 시간만 기다리고 있을 때, 윗층에서 아이들이 뛰고 웃는 소리에 이웃이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 마음 푸근히 고마웠단다.이웃이 사라진 도시의 아파트 문화, 그나마 있던 반상회도 없어져 이제는 같은 통로의 이웃 사정도 쉽게 듣지 못한다. 옛날은 수평 이웃이었지만 이제는 수직 이웃이라 가까워지기가 쉽지 않다. 근래 어느 도시마을생활 인식조사에서 ‘인사 나누는 이웃-5명 이하’가 51.3%로 절반을 넘는다니…. 아!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국가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가까운 이웃은 일본과 중국인데 사이좋게 동아시아의 번영을 같이 이루어 가면 좋으련만 서로가 층간소음을 내며 신경을 날카롭게 하니 안타깝다.‘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라는 속담을 되새겨본다.

2020-11-01

詩가 흐르는 뜨락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스치는 바람 결에 풍경소리 맑고 풍금소리 정겹게 들리는 풍경이다. 바람소리 새소리가 간간이 울리는 서옥(書屋)의 뒤뜰에서 잔잔한 배경음을 바탕으로 시 낭송하는 소리와 문학 얘기를 나누며 공감하고 담소하는 시간이 흐르고 있다. 가을이 깊어가는 도심의 한 켠에서 시와 시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둘러앉아 시를 읽고 시 이야기를 나누는 이른바 ‘시가 흐르는 뜨락(詩뜨락)’의 행사 장면이다.‘도심 속 작은 쉼터 아늑한 정원에는/이따금 풀꽃의 속삭임이 들려오고/새들의 지저귐 같은 낭랑함이 퍼진다//시(詩)의 행간에 목소리가 스며들어/그림을 그리듯 날개를 달아주니/비로소 시의 꿈이 피고 맵시마저 곱구나//별빛처럼 타는 운율 영롱함을 더하고/도란도란 엮는 시담(詩談) 달빛에 젖어 드네/뭉클한 감미로움이 새록새록 아리네//꿈결같은 시가 흐르는 뜨락에는/바람의 몸짓으로 시흥(詩興)이 어우러져/새로운 문화의 요람 향기 짙게 울리네’ -拙시조 ‘ 시(詩)가 흐르는 뜨락’ 전문.‘詩뜨락’ 행사는 일종의 시낭송 콘서트다. 경향의 저명한 시인이나 문인을 우거에 초빙해서 시낭송가들의 낭랑한 음성으로 음악을 곁들여 시를 낭송하고 시인의 시작(詩作) 배경과 삶에 대한 얘기를 듣고 나누는 시 누림이다. 즉, 저자와 독자가 같은 공간에서 가까이 만나 소통하고 문학적으로 교감하는 시 나눔 마당이다. 이러한 행사는 포항시낭송협회와 필자가 공동으로 작년부터 열기 시작하여 지난 주말에 네 번째로 열리면서 세간에 회자되어 시 감상과 시 낭송 콘서트의 대중성을 지향하는 새로운 문화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다.한 편의 시에는 소설같은 스토리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시에는 응축된 시간과 함축된 생각, 농축된 경험과 절절한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는 가장 짧은 문장으로 가장 긴 울림을 준다고 했던가. 때로는 연분홍 편지 같고 아스라한 절해고도 같으며 한편으론 뇌성벽력처럼 일갈하는 시를 진지하게 또는 애절하게 낭송하는 것은 시의 행간에 날개를 달아주는 일이 아닐까? 아니 어쩌면 활자화된 시에 어울리는 멋진 옷을 입혀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인에게서 떠난 시는 독자의 몫이라지만, 시에 걸맞는 음색으로 옷을 입혀서 행과 연의 율격에 따라 목소리의 강약과 완급을 조절하며 표정과 몸짓으로 다시 우려냄은 시를 애틋하고 살갑게 가슴에 품는 일이다.표현하는 사랑이 아름답듯이 시낭송은 또 다른 색조의 감동을 전해준다. 저마다의 목소리와 특유의 표정, 몸짓으로 연출해내는 시낭송은, 시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가슴을 열게 하여 손으로 만져질 것만 같은 느낌과 운치를 더해준다. 시의 행간에 목소리가 스며들어 고운 음색과 조화로운 음률로 시를 단풍처럼 물들게 하는 것이다.시의 날(11월 1일)이 있는 계절에 별빛처럼 시가 흐르고 꿈결처럼 시 얘기가 피어나는 뜨락에서 시의 맛과 멋을 음미하며 교감하고 담소하는 아름답고 귀한 자리가 많아지고 계속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이러한 시 울림은 코로나19로 인해 소침해져가는 마음을 위무하고 활기를 더해주는 감성의 활력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2020-11-01

오만(傲慢) 증후군

증후군(症候群)이란 질병의 몇가지 징후가 늘 함께 나타나지만 그 원인이 명확하지 아니할 때 쓰는 용어다. 영어로 신드롬이라 한다.권력이란 남을 합법적으로 지배하는 수단이다. 정부가 국민에게 강제하는 공권력 같은 것을 권력이라 한다. 권력이 꼭 정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직장이나 사회적 관계에서 생기는 크고 작은 권력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정치권력만큼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것은 없다.권력이란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합법적 수단이라는 점에서 신중히 사용돼야 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권력을 남용해서 빚어진 불행한 일은 역사적으로 얼마든지 있다. 독재자의 말로 등이 그런 것이다.미국의 심리학자 대커 켄트너 교수는 “견제 없이 권력을 누린 자는 뇌 손상을 당한 사람처럼 공감 능력을 상실한다”고 말했다. 타인을 생각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실패에 대한 걱정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권력자의 공감능력 부족 등의 현상을 오만 증후군이라 부른다.상당 시간 견제 없이 권력을 누리게 되면 이런 증상은 더 심각해진다. 권력자는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자신에 대한 비판적 의견은 외면한다. 권력 집단의 판단에 대해 언제나 자신감이 넘쳐난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국정을 1인 운영체제로 만들고 그에게 견제와 균형을 요구했던 참모 다수를 해고한 것을 두고 미국 내에서는 오만한 권력의 행태로 보는 시각이 많다.오만 증후군은 일종의 권력이 낳은 부작용이다. 권력을 남용하거나 국민의 뜻을 외면한 권력자의 독주가 빚은 잘못된 결과물이다. 집권당인 더불어 민주당이 5년 전 국민과 약속했던 당헌 규정을 내팽개치고 서울·부산시장 후보를 내기로 내부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여당의 오만 증후군이 또 하나 추가되는 순간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11-01

‘팬덤(Fandom) 정치’ 망국론

안재휘 논설위원지구상에 광신정치(狂信政治)가 처음 나타난 게 언제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21세기 대명천지에도 여전히 치밀한 선동전략에 의해 지도자를 신격화하여 미친 듯이 지지하는 나라가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긴 왕조시대를 거치는 동안에는 백성의 섬김이란 충효(忠孝) 사상을 중심으로 강요된 복종이었다. 나라는 온전히 왕의 소유물이고 백성은 오로지 얻어먹는 비렁뱅이 취급을 당했다.북한은 그 인민들이 동족이라는 사실을 빼고 나면 완전히 다른 행성의 나라다. 그 독재구조를 보면 왕조시대에서 오히려 퇴보한 국가체제라고 평가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런데, 민주주의를 선택하고 발전해온 우리나라에서도 양태는 조금 다를지언정 결과는 마찬가지인 전체주의의 비극적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대한민국 건국 이래 팬덤(Fandom) 정치는 늘 있었다. 8·15광복 이후 나타났던 팬덤 정치는 교육받지 못한 국민이 일부 명망가를 중심으로 한정된 정보를 갖고 극소수가 따로 뭉치는 정도였다. 전혀 새로운 양상의 선진적 팬덤 정치를 만들어낸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노무현이 무명에 가까운 정치인에서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르는 과정에서 나타난 팬덤 현상은 우리가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독창적인 정치모델이었다. 투신자살이라는 비극적 종말을 맞았지만, 그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팬덤 정치의 가능성이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은 그 가능성을 상속받아 더욱 정교해진 선동기술에 의해 정치를 만들어갔다. 작게는 25%에 이르는 범(凡)친문계열 골수 지지층의 정서는 독특하다.친문계열은 친노가 그 핵심이다. 하지만 친노와의 차이점은 분명하다. 친노의 핵심인 노사모는 ‘노무현이 그저 좋은’ 사람들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친문은 다르다. 특히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의 준말)으로 불리는 핵심은 노사모와는 달리 이익 집단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진중권 같은, 한때 진보 논객이었던 사람들은 그 변질에 치를 떤다.조국 사태 때는 물론이고, 작금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해괴한 권력 힘자랑 현상에서 나타나는 그 자신감의 저변에는 바로 그 팬덤 정치에 대한 확신이 존재한다. ‘대깨문’들의 행태에는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이성 따위는 전혀 작동되지 않는다. 오로지 확증편향으로 굳어진 아적(我敵) 개념만이 그들의 언행 양식 일체를 결정한다. 누군가 좌표를 찍어주기만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몰려가 때려 부수는 원초적 복종만이 작동할 따름이다.더불어민주당이 당헌을 뒤집고 내년 4월 서울·부산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래도 이기고, 저래도 이긴다는 팬덤·광신정치에 물든 자신감이 그들의 행태를 뒷받침한다. 이제 이 문제는 온전히 국민의 판단력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되었다. 괴물처럼 변해버린 팬덤 정치가 이 나라의 또 다른 치유 불능의 고질병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중우정치(衆愚政治)의 망령이 어른거리는 우울한 11월이다.

2020-11-01

진일보하고 있는 평생학습도시 청도

이승율청도군수우린 교육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공교육에 각종 사교육, 인터넷에 흘려 넘치는 정보 속에 사는 것이다. 사교육으로 부모의 허리가 휘지만, 우리 부모세대와 우리는 자식을 공부시키는 것이 큰 목표 중의 하나였다.지금은 누구나 대학진학을 꿈꾸지만, 자식을 대학에 보낸 것이 부모의 자랑거리인 시기도 있었다. 이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먹는 것조차 아끼며 오직 자식이 잘되기만 고대하던 아픈 추억이 있다.청도는 자식 뒷바라지에 청춘을 바친 많은 군민이 고향을 지키며 살아가는 농촌도시다.군은 교육을 받고는 싶었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 교육과 동떨어진 삶에 평생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감수해야만 했던 군민을 위해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평생학습교육을 군정목표로 삼아 평생교육진흥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전담부서 설치, 전문가를 채용해 평생교육 중장기 종합계획을 수립하는 등 지역민의 행복한 삶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그 결과 2014년 10월 교육부로부터 평생학습도시 지정을 받았다.평생학습도시 지정을 받은 이후 행복학습센터 공모사업과 평생학습도시 특화 프로그램, 성인문해교육지원 사업, 지역 특성화 평생교육프로그램 운영 등 지역민의 평생교육에 전력투구했다. 이러한 청도군의 노력은 많은 국비와 도비를 확보하며 2017년 경북도 평생교육시책평가 대상을 받고 2018년에는 최우수상을 받는 결과로 나타났다.또, 경북도민 평생학습을 통한 행복지수 2016년 조사에서 도내 5위와 군부 2위를 차지하고 2017년 10월에는 인구 5만 명에 상대적으로 부족한 인프라에도 제5회 경북도 평생학습박람회를 개최해 32만 명이 관람하는 성과를 거두어 주위를 놀라게 했다.지난해에는 중소벤처기업부 지역특구 평가에서 ‘청도우리정신글로벌화 교육특구’가 전국 197개 지역특구 중 10위 안에 들어 시상금을 받았다. 평생학습을 통한 행복지수는 학습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부정적인 정서가 감소하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평생교육이 군민에게 끼친 영향력을 알 수 있다.평생학습은 연속성과 지역밀착, 수요에 따른 공급이 우선되어야 한다. 군은 제2차 평생학습 중장기 계획을 세워 연도별 전략적 특성화 프로그램 아이템 발굴, 주민요구조사를 통한 주민 맞춤형 교육 등 전략적이고 수준 높은 평생학습문화를 선도해 나갈 것이다. 올해 문학자판기를 민원실에 운영해 기다리는 민원인이 다양한 수필과 시, 문학, 명언 등을 제공하고 있다.평생교육은 시대상을 반영해야 한다.청도군은 평생교육을 온라인까지로 확대하는 교육환경체질개선에 나서 온라인 평생학습센터가 평생학습의 귀중한 자료와 지역의 학습자료를 축적해 지역의 평생학습 플랫폼으로 자리 잡도록 할 것이다. 생애단계별과 연령별, 성별, 환경별 다양한 잠재적 교육집단의 발굴을 통한 평생교육프로그램도 개발한다.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교육과 글로벌 시민교육, 환경교육 등으로 국제교육연합도시나 유네스코 글로벌 평생학습도시네트워크의 가입을 추진한다. 청도군의 이러한 노력과 결과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군민들이 있을 것이다.앞으로 마을단위의 평생교육 전폭 확대, 평생학습센터 확장, 지역개발사업과 도시재생 등에 필요한 주민교육, 두 가지 이상의 학습방법을 결합하는 블랜디드 러닝(blended learnig)과 비대면 교육 등 시대적·환경적 변화를 반영한 평생교육에 나설 것이다. 또 지역사회의 소외계층을 위한 사업을 확대하고 여성의 취·창업교육으로 일자리 마련, 청소년의 인성교육 등 평생교육에서 소외되는 군민이 없도록 할 것이다.청도군은 지역의 평생교육에서 나아가 세계평생학습포럼과 전국단위 평생교육 행사를 지역에 유치하는 꿈을 갖고 있다. 꿈이 꿈으로 그치지 않고 현실로 실현될 때 그 가치가 있다.청도군은 지역민의 행복지수가 점점 높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청도군을 거론하면 청정자연에 소싸움과 운문사 등 지역명소를 떠올리는 것과 함께 평생학습도시 청도를 말하게 할 것이다. 무분별한 교육의 홍수 속에서 지역민에게 꼭 필요한 평생학습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다른 지자체가 부러워하는 평생학습도시로 청도는 진일보해 나갈 것이다.

2020-11-01

기차와 향나무

경주 불국사역에는 무궁화호만 지난다. 멀리서 바라보면 전통 기와를 얌전히 이고 있어서 새로 만들어진 역에서 느낄 수 없는 세월이 느껴진다. 가을 햇살이 그 위로 살포시 내려앉는다. 조그마한 역이지만 100년의 역사를 품고 있어서인지 작지만은 않게 느껴진다. 함께 간 친구는 불국사란 이름이 붙은 역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고 한다. 불국사 근처에는 시장 이름도 불국사시장, 밀면집도 불국사를 앞에 달고 장사를 하고, 길 이름도 불국로라 붙였다. 불국사의 그늘이 넓게 펼쳐져 있다.고려말 조선 초의 문인 ‘이행’은 소를 타고 여행을 했다. 그는 달 밝은 밤이면 술 한 병 옆에 차고 소 등에 걸터앉아 느릿느릿 산수를 거닐었다. 소보다는 말이 빠르지만 모든 것은 천천히 보아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는 법이라고 읊조렸다. 빠르기로 치면 KTX 열차가 제일이지만 달빛에 비친 아름다운 자연을 찬찬히 보기엔 소를 탄 것처럼 무궁화 열차만 한 것이 없을 것이다. 그 옛날에 사라진 비둘기호의 전설은 뒤로 미뤄두고 말이다. 느림의 미학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하며 천천히 자연을 감상하는 둘레길이 만들어지고 스스로를 슬로우시티라고 이름 붙이는 곳이 늘어났다.경주는 이런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느리게 여행하기에 좋은 곳이다. 그 처음 시작이 불국사역이다. 몇 해 전 포항에서 기차를 타고 이곳을 지나갔었다. 부산 구포역을 거쳐 순천까지 가는 열차였다. 새벽에 출발해서 해운대를 지날 때쯤 바다에서 해가 떠오른다. 그 장면을 보려고 일부러 무궁화호를 탔었다. 그해를 마지막으로 해운대 노선이 다른 곳으로 옮겨져서 지금은 그 레일 위로 관광열차가 다닌다.불국사역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졌지만, 조선 시대 전통 건축양식을 간직하고 있다. 1918년 11월 기차 운행이 시작된 불국사역은 올해로 102년을 맞았다. 오랜 역사와 문화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코레일이 2013년 철도기념물로 지정하기도 했다. 불국사역은 부산~울산~경주~포항을 잇는 동해남부선 무궁화호 열차가 하루 36차례 운행 중이며, 피서철과 여행 성수기에는 2000여 명이 불국사역을 찾는다. 기차를 타려고 역사를 나가니 레일 앞에 향나무 몇 그루가 우리를 반긴다. 기차가 처음 달리던 날 심었다고 이름표를 달았다. 5~10년 된 것을 심었다고 하니 불국사역보다 나이가 많다. 우둘투둘한 몸피에 이곳을 지나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득 품고 있어서 함부로 말을 놓지 못하는 위엄이 느껴졌다.“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에 키 작은 소나무 하나…”, 이규석의 ‘기차와 소나무’라는 곡이다. 노래 속에 소나무는 휙 지나치는 기차라도 볼 텐데 불국사역에 향나무는 곧 기차를 보지 못하게 된다. 동해남부선(총 142㎞·경주구간 52.4㎞) 복선화와 철도 이설사업으로 2021년 말이면 지금의 철도가 폐쇄돼 불국사역의 역할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열차 여행 애호가들을 중심으로 불국사역을 살리자(불사조-불국사를 사수하는 조직모임)는 취지의 서명운동이 지난해 5월부터 진행 중이라고 한다.김순희수필가거기에 이름을 올려 힘을 보태야겠다. 나도 초등학교 수학여행을 경주로 왔었다. 느리게 역마다 서는 비둘기호를 타고 “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 이렇게 부르는 노랫말을 “독사 껍질 벗겨 그녀에 목에 걸면 그녀는 깜짝 놀라…”로 바꿔 돌림노래로 부르며. 지금도 친구들을 만나면 까르르 웃게 되는 기차의 추억이다.향나무가 들려주는 100년의 이야기에 취해 있자니 기차가 들어온다. 호계역에서 달려온 기차는 젊은 연인들을 내려놓고 경주역을 향해 뒷모습을 남기며 가을 속으로 사라져 간다.향나무 아래 코스모스 꽃밭을 배경으로 기차의 꼬리를 넣어 한 컷의 사진을 남긴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불국사역의 무궁화호 모습도 역사 속의 한 장면으로 남을 테니. 기차역에는 사람과 기차가 드나드는 게 제모습이다. 향나무가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그 자리를 지키길 기도하며 역을 빠져나왔다.

2020-11-01

들국화 가을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코스모스가 지고나면 들국화가 제철을 맞는다. 여름의 열기가 덜 가신 초가을에 어울리는 꽃이 코스모스라면 들국화는 그보다 더 깊어진 가을에 어울리는 꽃이다. 그런데 들국화란 이름은 흔히 쓰이지만 막상 식물도감에는 나오지 않는다. 가을의 산과 들에 자생하는 쑥부쟁이나 구절초, 산국 같은 국화과 꽃들을 총칭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산야에 자생하는 꽃들을 통틀어 야생화라 하는 것처럼.“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絶交)다!” 안도현 시인의 ‘무식한 놈’이란 시 전문이다. 명색이 시인이면서 그것도 몰랐던 자신을 자책하는 시이다. 사실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지 않고서는 구별이 잘 안 되게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바쁜 세상에 그따위 풀꽃이나 구별한다고 무슨 득이 되겠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시인이 아니라도 그 정도는 아는 것이 교양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세상의 어떤 지식보다도 종요로운 것이 자연에 대한 지식이다. 인류의 문명은 물론 생명까지도 자연에서 비롯된 것일진대, 자연을 모르는 사람은 그야말로 ‘무식한 놈’인 것이다. 하루 세 끼 제 입으로 들어가 목숨을 연장하는 음식의 출처도 모르면서 다른 무슨 대단한 걸 안다고 잘난 체 할 것인가. 그런즉 이 가을에는 들국화에 대한 공부라도 제대로 해서 무식을 면해 보시기 바란다.들국화를 대표하는 꽃으로는 아무래도 쑥부쟁이를 꼽아야 할 것이다, 가을 들녘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기 때문이다. 개화기간도 길어서 초가을부터 늦가을까지 줄곧 피고진다. 비슷하게 생긴 벌개미취나 구절초가 있지만 쑥부쟁이만큼 흔하지는 않다. 그 중에서 쑥부쟁이와 벌개미취는 연한 자주색 꽃만으로는 거의 구별이 되지 않는다. 쑥부쟁이보다 잎이 훨씬 크고 줄기가 튼튼한 것이 벌개미취인데 요즘은 원예용으로 개량해서 화단에 심기도 한다. 구절초는 쑥부쟁이에 비해 흔치가 않은데다 주로 산자락에 핀다. 꽃잎은 희거나 엷은 분홍색인데 쑥부쟁이보다 넓다. 줄기도 곧고 단순한 편이어서 관심과 눈썰미가 있는 사람은 금방 알 수가 있다.가을 야생화로는 산국을 빼놓을 수 없다. 쑥부쟁이만큼이나 흔하지만 꽃이 노랗고 자잘하기 때문에 혼동할 여지는 없다. 들과 산의 경계쯤에 흔하게 피는 꽃인데 향기가 진해서 국화차로도 많이 쓰인다. 요즘은 산국과 꽃의 크기와 모양이 비슷하지만 색깔이 하얀 미국쑥부쟁이가 무서운 속도로 들녘을 잠식하고 있어 생태계 교란을 우려할 정도다. 북미 원산으로 한국전쟁 기간 동안에 미군 군수물자에 섞여 들어온 신귀화식물이라는데, 가을의 정취마저 바꾸어 놓을 것 같은 서슬이 자연스럽게 다가오지는 않는다.산에 들에 들국화가 피어서 이 가을날이 얼마나 향기롭고 정겨운가. 이렇게 고운 꽃들로 장식한 세상에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다행한 일인가. 누가 뭐라 하는가. 우리 모두는 자연이 정성껏 차려놓은 연회장에 초대받은 손님들이다.

2020-10-29

이건희 그리고 삼성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Samsung is proud of being a part of Boston” (삼성은 보스턴 가족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미국 보스턴공항 내 천장에 플래카드에 쓰여있는 문구이다. 하버드, MIT 대학이 있는 세계 학문의 중심이고 미국 개척의 시발점인 도시 보스턴시에 삼성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는 것은 한국민에게 큰 자부심을 심어준다.삼성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3남 이건희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선대를 이어 1987년 회장에 취임한 이건희 회장은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고 호언하였다.그리고 그 약속은 지켜졌다. 한국의 삼성을 세계 초일류기업 삼성으로 성장시킨 변화의 중심에는 항상 단호한 승부사인 이건희 회장의 강한 의욕이 있었다. 이 회장이 취임한 1987년 10조원이 채 못되던 삼성그룹의 매출은 30여 년 후 400조에 가까운 40배 성장을 보이면서 한국정부의 총 수입보다 많아졌다.삼성이 IT 산업의 모태인 반도체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아무도 삼성이 지금과 같은 위치에 오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일본 기업들도 한국은 할 수 없다라고 평가했다.그러나 이건희는 외쳤다. “언제까지 일본의 기술 속국으로 남을 수는 없으며, 기술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일에 삼성이 나서야 한다”고 했다. 1986년 1메가 D램을 생산하면서 반도체 산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이후 1992년 세계 최초로 64M D램 반도체 개발에 성공했다. 삼성 반도체가 메모리 강국 일본을 처음으로 추월하며 세계 1위로 올라서는 순간이었다.이에 고취된 이 회장은 품질에 눈을 돌리며 90년대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유명한 선언과 함께 역사적인 신경영 선언을 내놓기에 이른다.그는 “일류가 아니면 생산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지키며 품질에 문제가 있는 휴대폰 애니콜 500억어치를 불태우는 강수를 둔 끝에 애니콜은 1995년 8월 전 세계 휴대폰 시장 1위인 모토로라를 제치고, 51.5%의 점유율로 국내 정상에 올라섰다. 당시 대한민국은 모토로라가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가 됐다.80년대 미국 대학 경영대학원 교수들은 소니만을 칭찬하고 삼성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OEM(주문자상표부착)방식으로 생산했던 삼성은 눈물을 삼켜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삼성전자 TV라든가 특히 삼성 스마트폰 이런 것들이 미국 가전제품 상가의 전시대 맨 앞에 전시되어 있다.“우리의 목표는 초일류이며, 방향은 하나로, 눈은 세계로, 그리고 꿈은 미래에 두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갑시다”이건희가 생전에 남긴 이 한 마디는 이제 삼성의 또다른 도약의 깃발을 품고 있다. 삼성은 온갖 고난 속에서도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을 전세계에 한국을 알렸다. 일부 국민의 삼성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하여도 삼성이 한국민들에게 자긍심을 갖게해 주고 한국을 세계화 시킨 그 성과는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

2020-10-29

수불석권(手不釋卷)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면서 책을 가까이하기에 적합한 기온이어서 여름내 잊고 지냈던 책을 한번쯤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예로부터 가을을 등화가친(燈火可親)의 계절이라 부른 것도 책 읽기에 좋은 환경이라는 뜻이다.가을은 오곡백과 등 풍성한 수확의 계절이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책을 가까이한다면 이것도 힐링의 한 방법이 될 것이다.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라 한다. 우리에게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쌓게 한다. 또 눈으로 읽고 머리로 이해하고 가슴으로 체득하는 과정에서 어느새 삶의 지혜도 발견하게 된다. “책은 사람이 만들지만 책이 사람을 만든다”는 그 말이 옳은 것이다.공자도 논어 첫머리에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이 또한 즐겁지 않겠느냐”고 했다. 공부를 하고 책을 읽는 것이 군자의 으뜸가는 일이라 했다. 맹자는 군자삼락(君子三樂)의 하나로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 또 하나의 즐거움이라 말했다.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 되는 것보다 세상에서 영재를 만나 그를 가르치는 것이 훨씬 즐거운 일이라 했다.세종대왕은 한 권의 책을 100번 읽는 백독백습으로 유명하다. 그의 책 읽는 습관이 이름난 성군으로 만든 계기가 됐는지도 모른다. 조선시대 정약용은 집안을 일으키는 데는 책 읽는 것 만한 것이 없다고도 했다. 빌 게이츠는 그의 저택에 무려 2만여 권의 장서를 보유한 개인도서관을 두고 매일 책을 가까이하는 것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한다.코로나 바이러스로 집콕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코로나로 불편해진 우리 마음을 책으로 달래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가을이 깊어가는 지금, 책 읽는 기쁨으로 울적했던 마음을 떨쳐 보는 것도 지혜로운 생각이다. 수불석권을 실천해 보자./우정구(논설위원)

2020-10-29

정치의 이상향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현대에서 정치의 이상향은 어떤 것일까.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고, 우물 파서 마시고, 밭을 갈아먹으니 임금의 덕이 내게 무슨 소용 있으랴.” 태평성대의 대명사 격인 ‘요순시대’의 격양가에는 좋은 나라, 좋은 지도자란 서민들이 나랏일 신경 안 쓰고 자기 일만 하게 하는 존재라는 교훈이 담겨 있다. 인류역사상 정치가 있는 듯 없는 듯 여겨졌던 날이 며칠이나 있었을까. 인류 역사는 권력투쟁의 역사로 이어져왔기 때문이다.이 나라 민주주의 역사도 피와 땀으로 얼룩져있다. 일제로부터 광복이후 동족상잔의 6.25전쟁을 겪었고, 자유당 정부의 방종과 혼선에 이어 5·16혁명을 거친 군부정권의 경제개발, 그 이면에 독버섯처럼 피어난 독재, 문민정부 시대로 바뀐 이후에는 지역과 지역, 보수와 진보진영으로 나뉘어 격돌해온 정치판이다. 문제는 국민의 힘으로 군부독재를 타도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쟁취한 이후다. 어찌된 일인지 이 나라는 아직도 한마음 한뜻으로 국론을 모으지 못하고 정쟁을 거듭하고 있다.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람사는 세상 홈페이지에 ‘정치, 하지 마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무척 진솔한 성품의 노 전 대통령은 그 글을 통해 정치인으로서 살아온 자신의 고뇌와 고통을 가감없이 털어놨다.그는 “이웃과 공동체, 그리고 역사를 위해 가치있는 뭔가를 이루고자 정치에 뛰어든 사람이라면 한참을 지나고 나서 그가 이룬 결과가 생각보다 보잘것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 이라고 진단했다. 바로 노 전 대통령 자신이 정치를 시작하게 된 이유와 그 결과를 촌평한 것 처럼 느껴진다. 특히 그는 “정치인이 가는 길에는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거짓말의 수렁, 정치자금의 수렁, 사생활 검증의 수렁, 이전투구의 수렁 등의 난관과 부담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이 가운데 ‘이전투구의 수렁’ 에 대한 설명에서 그는 “정치인은 왜 그렇게 싸우는가? 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민주주의 정치구조가 본시 싸우도록 돼 있기 때문에 싸우는 것” 이라고 말했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독재시절에는 여야의 싸움을 전쟁처럼 감시하고, 조사하고, 죄를 씌우고, 감옥에 보냈다.패자는 살아남을 수가 없었으니 전쟁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는 싸움이 전쟁에서 게임으로 바뀌어 패자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게 됐다. 물론 민주주의라고 해도 정쟁을 전쟁으로 하던 적대적 정치문화의 전통이 남아있고, 사회적 대립과 갈등이 큰 나라에서는 싸움이 거칠어지고 패자에 대한 공격도 가혹해지기 마련이라는 설명도 덧붙었다. 어쩌면 자신의 운명마저도 예측한 듯한 내용이어서 마음 짠했던 대목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구이자 동지로서 평소 “정치하지 마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을 법한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국회 시정연설에 나섰다가 야당의원들로부터 냉대와 야유를 받았다. 민주주의가 원래 비효율적이고, 시끄러운 정치시스템이라 했던가. 이상적인 정치를 꿈꿔온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구인 문 대통령의 소회가 새삼 궁금해진다.

2020-10-29

핑크빛 주유권

강길수수필가여직원이 불렀다. 친구의 사무실 문을 나서는 참이다. 뒤돌아서니 명함크기만한 봉투를 내밀었다. 뭐냐고 묻자, 사장님이 드리라고 한다는 말만 남기고 여직원은 총총 안으로 가버렸다. 조금 의아한 기분으로 봉투를 주머니에 넣으며 하늘을 바라본다. 벌써 때 이른 가을 저녁노을이 핑크빛으로 물들기 시작하고 있다.차에 돌아와 봉투를 열었다. 핑크색 주유권 한 장이 들어있다. 보너스 카드 포인트로 주유권을 받은 적은 있지만, 손으로 내용을 적은 주유권을 받기는 처음이다. 사무실에서 직접 주면, 내가 곤란해 할까 봐 배려하는 친구의 마음이 느껴졌다. 전혀 예상치 못한 선물이다. 하지만, 마음 한편이 편치만은 않았다. 만나는 동안 부지불식간에, 동정(同情)이라도 바라는 태도를 그에게 보이지는 않았나 하는 염려 때문이다.친구 사무실에서의 상황을 되돌아본다. 내 차림이 종전과 다른 것은 없다. 방문목적도 내가 활동하고 있는 문학단체의 동인지를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대화도 내 문학 활동에 관한 이야기와 친구의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짧은 시간 나누었을 뿐이다. 오가는 말 중에 경제적 어려움을 말하거나, 평소와는 다른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았다. 그러니 친구는 내 태도를 보고 주유권을 선물한 것 같지는 않다. 그냥 마음에서 우러나는 호의를 베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정리되니 고맙고 즐겁다.친구의 사무실엔 이런저런 일로 두세 달에 한 번 정도 들르게 되었다. 갈 때마다 그는 비서를 시켜 주유권을 선물했다. 처음 얼마 동안은 미안하고 고마운 감정이 교차하기도 했다. 그러나 횟수가 거듭됨에 따라 마음이 두 갈래로 갈리는 현상을 자각해 갔다. 한마음은 ‘그래. 전에 내가 친구 회사와 거래할 때, 주유권에 비교되지 않을 이익을 안겨주었는데 뭐 대수이랴’하는 마음이다. 다른 마음은 ‘아니야. 그건 정당한 거래였으니, 주유권과는 무관한 거야. 그러니 주유권에 담은 친구의 따사한 마음은 참 고마운 일이지.’하는 마음이다.지난봄 코로나19 사태로, 소위 재난지원금이란 공짜 돈을 정부로부터 덥석 받았다. 우리 부부 두 사람 몫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나랏빚을 늘려서 국민에게 지급한 것 같다. 우리 집의 경우, 늦은 나이에도 일해야 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빠듯하게 살아도 그 돈이 가계에 큰 보탬이 되지는 않았다. 공짜라 꼭 필요치도 않은 것 몇 가지 사니 금방 다 없어졌다. 그 때문에 우리 집은 공짜심리로 과소비가 되었지 싶다. 어쩌면 정부의 숨은 의도도, 돈을 돌리기 위한 과소비 조장이 아니었을까.주유권 선물을 받는 횟수가 거듭될수록, 시나브로 생각도 않던 바람(望)이 마음에 자리 잡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친구 사무실에 가려고 마음먹으면, ‘오늘도 주유권을 주려나’라고 속으로 은근히 바라고 있는 자신을 만나곤 했다. 기실 그 무렵은, 조기퇴직 후 시작했던 1인 사업이 신통치 않아 휴업 상태였다. 자연히 차를 쓸 일도 줄어, 친구가 준 주유권이 거의 수요를 맞추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가계에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었다. 아무튼 친구에게 주유권을 받을 때마다, 고마우면서도 찝찝한 무언가가 마음 바닥에 하나씩 가라앉는 것 같은 묘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짐이 아닌데도, 짐같이 느껴지는 아이러니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란 속담이 떠오르기도 했다. 시간이 갈수록, 무언가 출구전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짙어갔다.신통치 않던 사업수익마저 끊어졌다. 그때 기술 자격으로 취업하라는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취업사이트에 한동안 부지런히 이력서를 냈다. 제법 시일이 흐른 후 다행히 취업하였다.친구 사무실에 갈 일이 생기자, 우선 생각나는 것이 핑크색 주유권이었다. 재취업하였으니 고마운 주유권은 그만 받겠다고 정중히 사양하여, 마음의 짐을 덜었다. 핑크색 주유권이 핑크빛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정부의 공짜 돈은, 국민의 세금으로 의타심도 얹어 주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친구의 주유권은 자기 것을 나누어주는 사랑의 핑크빛 징표로 가슴에 아로새겨져 있다.오늘 저녁에도 핑크빛 하늘이 열리겠지.

2020-10-28

타자기를 추억함

노트북 키보드가 흠집투성이입니다. 자주 누른 글쇠는 보호막 비닐이 너덜거리는데다 글자 표식마저 벗겨져 잘 보이지 않습니다. 닳은 정도에 따라 어떤 글쇠가 혹사를 당했는지 금세 알 수 있습니다. 각각 왼손 검지와 중지가 맞닿은 ‘ㄹ’과 ‘ㅇ’의 윗면은 허옇게 까졌고, 오른손 중지가 관장하는 ‘ㅏ’ 글쇠자리는 영어 자판 ‘K’ 안내 글자가 사라지고 없을 지경입니다.오래된 노트북도 아닌데 키보드가 이렇게 너저분하게 된 것은 오래된 습관 때문입니다. 저는 손바닥을 키 판에 대지 않고 허공에 띄운 채, 손가락을 세워 자판을 내리찍는 편입니다. 자연스럽지 못한 이런 타격법은 손목에 힘이 들어가 타이핑 소리도 시끄럽습니다. 손톱에도 힘이 실려 글쇠판이 쉽게 긁힙니다. 이런 방식은 수동식 두벌 타자기를 칠 때 유용합니다.제 이십대의 글자 생활은 두벌 타자기의 나날이었습니다. 대학시절 한때 한글 운동 동아리 활동을 했습니다. 모임의 취지는 순우리말을 아끼고 퍼뜨리는 데에 있었습니다. 한자어가 칠십 퍼센트 이상인 게 우리 모국어의 현실인데, 순우리말을 고집한다는 것은 코미디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청춘의 열정과 우정으로 그 활동을 즐겼습니다. 지금은 생각조차 나지 않는, 한글 운동의 여러 행동강령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글자 생활을 기계화하자’라는 것이었습니다. 한글이 얼마나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또한 미적 감각을 지닌 문자인가를 기계화를 통해 널리 알리자는 취지였지요.개인용 컴퓨터가 일반화되기 전인 그때 글자 생활의 기계화란, 타자기를 활용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고도 거창한 슬로건이었지요. 하지만 실제 글자 생활을 기계화하는 회원은 흔치 않았습니다. 절실하게 와 닿지 않은 면도 있었고, 무엇보다 주머니 사정이 타자기를 구할 만큼 넉넉지 않았지요. 그럴수록 그 모토가 제겐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행동강령을 실천하는 차원이라기보다 타자기로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댔던 것 같습니다. 이미 서구 작가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타자기가 선사하는 경쾌한 터치감의 글 너울을 맘껏 타보고 싶었습니다. 자판 위에 손끝을 올리는 상상만으로도 얽힌 상념들이 흰 종이 위에서 사유의 길을 내는 것만 같았습니다.학교 정보센터 타자 교실에 등록을 했습니다. 수업이 없는 시간마다 들러 자판을 익혔습니다. 낱개였던 자모음이 유의미한 문장이 되어 꼬리를 잇는 게 신기하고 뿌듯했습니다. 창가 자리에 앉아 더듬더듬 자판을 익히는 그 짬 속으로 희망이라는 빛이 스며드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럴수록 타자기를 갖고 싶다는 열망은 더했습니다. 지금처럼 아르바이트 거리가 쉽게 나던 시절이 아니었으므로 주머니 사정은 늘 빈궁했습니다. 타자기를 산다는 건 제 깜냥으론 어림없는 일이었습니다. 마음을 읽은 큰오빠가 크로바 두벌식 중고 타자기를 사들고 왔습니다. ‘열심히 써봐라.’ 타자기 케이스를 열어 주던 큰오빠의 무심한 듯 따스한 눈길.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었지요. 그렇게 타자기는 제 보물 1호가 됐습니다.종이를 롤러에 끼우고 원하는 자판을 두드립니다. 글자쇠막대가 잉크 묻은 리본 위를 건반처럼 때립니다. 촬촬촬,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글자를 만들어내는 해머의 타격감은 지금 생각해도 무척 낭만적입니다. 종성용 자음을 칠 때는 왼쪽 아래에 있는 ‘받침’이란 누름쇠를 누른 뒤 해당 자판을 눌러야 합니다. 초성에 쓰였던 글자가 받침자리로 옮겨져 타이핑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하면 받침 글자가 중앙으로 쏠려 묘한 듯 매력적인 두벌식 타자 특유의 서체가 나옵니다. 한 줄 글이 다 써지면 왼쪽에 달린 레버를 밀어 종이 위치를 중앙으로 옮겨 주면 됩니다. 오타가 나면 타자용 흰 물감지우개를 글자 위에다 덧씌우고 다시 타건하곤 했지요. 청아한 쾌감을 지나 숙연한 의지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그 정신적 사치를 꽤 즐겼습니다. 저만의 보물인 크로바 타자기로 우리말을 갈고닦거나(?) 리포트를 작성했으며 단상도 끼적였습니다.김살로메소설가타자기의 자판을 두드리려면 손가락 각도를 가파르게 한 채 손끝에다 힘을 실어야 했습니다. 지금의 키보드처럼 평면이 아니라 계단식 글쇠판이라 글자를 누르는 동안 손바닥은 항시 허공에 떠있어야 했지요. 오래된 이 습관이 타자기 시대를 접은 지금까지 이어져 키보드에다 생채기를 내는 것이지요.버리기 좋아하는 저는 이사를 핑계로 많은 물건을 버렸습니다. 크로바 타자기도 예외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버린 것에 대해 좀처럼 후회하지 않는 편이지만 가끔은 그것이 그리울 때도 있습니다. 타자기의 나날과 함께 했던 소박한 열정이라는 연결고리가 쉽게 버려질 수 있는 건 아니겠지요. 버리려 해도 버려지지 않는 그때를 떠올리며 뒤늦은 마음의 자판을 눌러 봅니다. ‘추억추억’하며 글자가 종이에 박히는 동안, 공중에 뜬 두 손바닥 사이로 파노라마처럼 한 시절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2020-10-28

미워하여 행복할 수 있을까?

장규열 한동대 교수당신은 잘살고 있는가. 어떻게 해야 잘사는 것일까. 부귀영화를 누리며 만수무강하는 삶, 모두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을까. 1975년에 62세였던 기대수명이 오늘은 83세가 되었다. 일인당 국민소득은 1975년에 600불을 겨우 넘겼었는데 오늘은 3만불에 육박하고 있다. 스무 해도 더 오래 살게 되었으며 오십 배나 더 많이 버는 셈이 아닌가. 그 어떤 잣대로 견주어 보아도 손색이 없는 국격을 지니게 된 오늘, 우리는 행복한가 다시 물어야 한다. 겉으로 보아 모자람이 없는 조건 속에서 어째서 우리는 아직껏 만족하지 못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어느 산사(山寺)에 큰불이 났다. 까닭을 찾고 보니 어느 여인의 방화였다고 한다. 다른 종교를 믿는 그는 우상을 섬기는 절간을 용서할 수 없었다는게 아닌가. 미움으로 가득한 그 마음으로 남의 종교를 말살할 작정이었는가 보다. 사회 규범과 법적 통제가 있어 제어할 수는 있겠으나, 우리 종교계는 이런 혐오범죄에 어떤 의견을 가지는지 궁금하다. 종교는 미움을 가르치는가 아니면 사랑을 가르치는가. 종교가 혐오를 바로잡지 않는다. 미워하고 배척하는 태도를 종교만 가르치는 것도 아니다. 진영을 갈라 싸우는 일에 능한 정치는 백성들을 자기편에 세우기에만 최선을 던진다. 날마다 지지율을 확인하며 세를 불리기에 집중하느라 나라의 마음이 혼란스러워지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정치도 혐오를 바로잡을 생각이 없다.미움은 자란다. 시간이 지나며 혐오의 수렁은 깊어가고 표현의 강도는 짙어진다. 미워할 까닭을 배우고 익히며 다지고 훈련하여 행동에까지 이른다. 진행 중인 미국의 대선판에도 혐오와 테러의 그늘이 드리워졌다. 급기야 해외 공관들에게 선거 전후에 있을지도 모를 폭력사태에 대비하라는 훈령이 있었다고 한다. 대통령이 누가 되든 미국 사회가 어떻게 치유와 회복의 길에 들어설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혐오의 늪에 빠진 개인은 위태롭고 미움에 물든 사회는 위험하다. 돌이킬 수 없을 지경에 이르기 전에 사회적 각성이 있어야 한다.국민은 피곤하다. 정치와 종교가 만들고 퍼붓는 사회적 혐오에 지친다. 정치가 편안한 사회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가 부끄럽다. 종교가 평온한 개인을 회복해 주리라는 희망도 허망하다. 남 탓에만 익숙한 ‘내로남불’이 식상하고 자신은 돌아보지 않는 ‘후안무치’에도 기가 질린다. 부귀영화와 만수무강을 누리면서 선진국에 살아도 행복하지 않은 까닭이 혹 ‘미움’ 탓이 아니었을까. 이제는 좀 부드러운 시선과 따듯한 마음이 필요한 게 아닐까. 각자의 부족함과 허술함에 겸허하며 남을 용납하고 받아들이는 일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그동안 부수고 깨뜨려 정복하는 일에 몰두해 있었다면, 이제는 보듬고 다독이며 함께 쌓아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완전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으며 완벽한 사회는 지구상에 없다. 주어진 환경에 오늘의 최선을 함께 던져야 한다. 미워하여 행복할 방법은 없다.

2020-10-28

주식리딩방 주의보

주식리딩방은 자칭 투자전문가가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등을 통해 투자자문을 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곳을 말한다.문제는 주식리딩방이 금융감독원의 엄격한 규제를 받는 투자자문업자와는 달리 불특정 다수인을 대상으로 간행물, 출판물, 통신물, 방송 등을 통해 대가를 받고 단순한 투자조언을 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유사투자자문업자’인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이들은 ‘고수익 보장’ ‘연간300% 수익’ 등과 같이 소비자들이 혹할만한 문구를 내세워 유혹하거나 연예인이나 유명인을 광고모델로 내세우기 때문에 외관만을 믿고 유료회원으로 가입했다가 큰 손실을 입고 계약을 해지하는 사례가 많다.주식리딩방을 이용할 때는 우선 금융감독원에 신고된 유사투자자문업체인지 확인이 필요하다. 금융감독원 소비자정보포털 ‘파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만 금융감독원에 신고된 유사투자자문업체라고 하더라도 금융에 대한 전문성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유사투자자문업자의 경우 전문인력을 보유해야하는 요건이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소위 ‘주식리딩방’을 운영하는 운영자가 일반 개인인 경우 전혀 전문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유사투자자문업자는 법적으로 일대일투자자문을 할 수 없고, 오직 불특정 다수인을 대상으로 금융상품에 대한 투자조언만 가능하다. 상담게시판이나 카카오톡 등 대화방을 통해 특정 주식에 대한 추천을 하거나, 전화를 이용한 매수·매도 권유는 모두 불법이다.수수료의 환불조건, 환불방법 등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피해를 입었다면 금융감독원 유사투자자문피해신고센터에 신고하면된다. 금융감독원 홈페이지를 통해 신고하면 연2회 심사를 통해 건당 최고 200만원의 포상금을 받을 수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10-28

포스트 자유학년제 준비를!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아빠,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가! 학교에서는 1분이 1시간보다 더 길던데 ….!”월요일 아침 일찍 깨워달라고 한 중학교 1학년 아이가 일어나면서 한 첫마디다! 알람 소리를 사이렌 소리로 할 정도로 등교에 대한 의지가 강한 아이지만, 잠에는 장사가 없었다. 그래도 잠시 뒤척이더니 벌떡 일어나서 2주 만의 등교 준비를 하였다.출근 준비를 하다 달력을 보았다. 한 주밖에 남지 않은 10월이 필자를 처연하게 보고 있었다. 달력에서 제일 먼저 마음에 들어온 것은 “상강(霜降)”이었다. 출근길에 상강을 생각했다.상강은 가을의 마지막 절기이다.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덤빈다.”라는 속담처럼 차창 너머 들판에는 가을걷이가 한창이었다. 멀리서도 농부의 콧노래가 들리는 것 같아 손장단을 쳤다. 내년을 위해 숨 고르기에 들어간 추수를 끝낸 들판을 지날 때는 손이 더 경쾌하게 움직였다. 자연과 함께 하는 출근길은 늘 즐겁다. 끝은 시작이라는 명제가 참이라는 것을 행동으로 증명하는 자연이 필자에게 화두를 던졌다. 핵심은 “준비”였다.“아빠, 내년부터 시험 보는 것 때문에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정말 많아.”코로나 19 때문에 모두가 힘들지만, 가장 큰 혼돈을 겪는, 또 겪을 층은 현 중학교 1학년이다. 중학교 1학년은 자유학년제에 해당하는 학년이다. 하지만 등교일 자체가 얼마 되지 않기에 중학교 1학년들은 자유학년제 프로그램은커녕 중학교 생활 자체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 경험 부족은 당연히 이해 부족으로 이어질 것이고, 이해 부족은 부적응을 낳을 것이 뻔하다.자유학년제를 지낸 학생들은 자유학년제 전후 학교생활은 전혀 다르다고 말한다. 자유학년제는 취지만 보면 교육계의 문명(文明)과도 같은 제도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자유학년제 해당 학년은 문명 이후의 삶이라면, 자유학년제가 끝난 학년의 삶은 문명 이전의 혼돈의 삶이다.교육 수요자는 자유학년제 때문에 힘들다고 하는데, 교육 당국은 연계학기(년)제라는 말도 안 되는 제도를 예로 들면서 괜찮다고만 한다. 과연 학교 현장에서 자유학년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시행할 수 있는 교사가 몇이나 될까? 필자는 오래전부터 서열경쟁 중심의 교육과정 속에서는 자유학년제는 절대 불가능한 제도라고 계속해서 외치고 있지만, 씨알도 안 먹힌다.그래도 또 제안한다. 자유학년제를 지속하려면 학생들이 자유학년제 이후의 중학교 생활을 준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자고! 학생들이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가장 어려워하는 것은 바로 학교 정규 시험이다. 그러니 중학교 1학년 11월부터는 자유학년제의 이상을 거둬내고 학생들이 대한민국 학교 현실에 적응할 수 있도록 1학년 정규 시험 기간을 두자. 이런 준비도 없이 그냥 학생들을 중학교 2학년으로 진급시키는 것은 무책임을 넘어 범법 행위이다.사교육 현장에서는 “수학은 대학을 결정하고, 영어는 직업을 결정한다.”라고 학생들을 세뇌하고 있다. 이 말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초등학교 8학년인 내년 중학교 2학년이 걱정이다.

2020-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