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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부모로서 해줄 단 세 가지

김현욱시인코로나19로 온라인 수업이 길어지면서 반 아이들과 일주일에 한번밖에 못 만나고 있다. 저번에는 태풍 때문에 하루 등교하는 날조차도 온라인수업으로 전환했다.아이들 만나서 할 일이 태산이었는데, 망연자실이다. 최초로 학급 선거를 온라인으로 치러야 할 판이다. 글기지개 2권 넘어가는 아이들도 있어 진심으로 격려하고 새 공책을 챙겨줘야 하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학기 초 꿈꿨던 많은 것들. 이를테면, 시 암송, 시 쓰기, 글기지개, 학급카페, 놀이 활동, 가정독서토론 등등이 코로나19로 물거품이 되는 꼴을 보자니 코로나 블루가 아니더라도 가슴에서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가장 걱정스러운 모습은 교실에 등교한 아이들 중 몇몇이 수업 시간에 꾸벅꾸벅 존다는 것이다. 물어보면, 십중팔구, 새벽까지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동영상을 봤다고 한다. 생활리듬이 완전히 깨진 것이다. 뭐든지 귀찮아요, 귀찮아요, 귀찮아 타령을 하는 아이도 늘었다. 학부모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또한 학부모이므로 고충을 모를 리 없다. 눈치를 살살 보면서 벌써부터 요령을 피우는 딸아이를 보자니, 이를 어쩌나, 싶다.누굴 탓하랴. 원격수업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담임과 학부모가 좀 더 관심과 인내를 가지고 도와주는 수밖에. 코로나19 치료제 희소식이 들리니 아무쪼록 내년에는 마스크 없는 세상에서 마음껏 뛰어놀고 어울리며 수업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오은영 교수의 ‘내 아이가 힘겨운 부모들에게’는 사춘기 아이들의 심리와 부모들의 고민을 담은 책이다.5학년 담임으로서 예사롭지 않게 읽혔다. 특히, 자녀와의 관계가 삐걱거리는 시점을 ‘공부’로 잡은 것은 몸소 체험한 일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보통 공부를 시작하는 시점부터 말을 안 들어요. 공부를 놀이처럼 즐겁게 하는 아이는 없거든요. (중략) 이렇게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야 하는 시기부터 아이와 부모는 사소한 일에 티격태격하게 돼요. 관계가 삐걱대기 시작하는 거죠.”딸아이의 공부, 특히 수학과 영어를 봐주기 시작하면서 나는 딸에게 화를 많이 냈다. ‘내가 왜 이러지’란 생각을 자주 하면서. 그전에는 늘 “우리 은유 참 열심히 했네.”, “우리 은유 자랑스럽다” 이런 말들을 자주 했는데 공부를 시작하면서, 아이가 잘 못 하는 것에만 도끼눈을 뜨고 있는 것이다.‘나는 내 아이에게 일체의 요구와/그 어떤 교육도 하지 않기로 했다/미래에서 온 내 아이 안에는 이미/그 모든 씨앗들이 심어져 있을 것이기에//내가 부모로서 해줄 것은 단 세 가지였다/첫째는 내 아이가 자연의 대지를 딛고/동무들과 마음껏 뛰놀고 맘껏 잠자고 맘껏 해보며/그 속에서 고유한 자기 개성을 찾아 갈 수 있도록 자유로운 공기 속에 놓아두는 일이다.’박노해 시인의 ‘부모로서 해줄 단 세 가지’라는 시를 알아도 현실은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내가 먼저 잘 사는 것, 내 삶을 똑바로 사는 것’이라는 시구를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겨본다. 경험상, ‘공부는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란 말도 함께.

2020-09-13

내 고장 9월은 사과가 익어가는 시절

윤경희청송군수“내 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렇게 시작하는 이 글은 우리 청송 근교에 위치한 안동의 저항 시인, 이육사의 ‘청포도’라는 시의 첫 구절이다. 그런데 시가 창작됐던 일제강점기 당시 안동에는 사실 청포도가 재배되지 않았다. 조국 광복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로 뭉친 모습을 알알이 영그는 청포도 송이에 비유했을 것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내 고장 청송의 7월은 사과가 영그는 시절”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추석을 앞둔 지금 9월은 명품 청송사과가 탐스러운 빛을 발할 시간이라고.“청송사과”는 따로 수식어가 필요 없는 지역 최고의 특산품이다. 필자는, 청송사과의 명성이 날로달로 높아지는 이유가 결코 변하지 않는 명품 맛에 있다고 본다. 청송은 일교차가 매우 크고 해양성과 내륙성 기후가 교차하는 등 사과가 자라기 위한 최적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어서 그 맛이 일품이다. 또 농가에 대한 지속적인 영농교육 및 선진재배기술의 도입으로 타 지역보다 상품성이 우수하며, 당도가 높고 과즙이 풍부해 신선도가 오래가므로 맛 또한 변함없이 유지되는 것이다.이를 증명하듯 청송사과는 2020년 대한민국 대표브랜드 사과브랜드 부문에서 8년 연속 대상이라는 쾌거를 달성했다.특히 차별화 측면에서 월등한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됐는데, 이는 소비자 반응이 우수한 시나노골드 품종을 ‘황금진’ 브랜드로 개발해 황금사과 이미지를 선점하고 붉은색으로만 치우친 사과 시장에 시각을 자극하는 ‘컬러 마케팅’의 남다른 전략 덕분에 성공한 것으로 분석된다. 또 황금사과는 사과 소비가 부진한 젊은 층에 인기가 높은 품종이어서 미래 고객인 젊은 세대를 겨냥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 군이 만들어가는 황금사과의 미래가 전설처럼 황금빛으로 물들 것이라 예상하는 건 당연지사.“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천혜의 자연이 만들어 준 생육 환경 위에 다채로운 정책들이 얹어졌다. 그 시너지 효과는 명품 청송사과의 품질, 유통 및 홍보 등 다방면에서 상호 상승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앞서 언급한 청송황금사과 브랜드 ‘황금진’을 필두로 해 청송황금사과 한국시리즈 나들이, 전국 146개 이마트 납품, 사과유통공사 시스템 재정비, 농산물 택배비 지원 사업, 청송사과 품질보증제 등이 그것이다.프로야구 한국시리즈 개막 시즌에 맞춰 서울시민과 관람객들에게 3만 개의 청송사과를 무료로 나눠준 아이디어는 독특하고 유쾌한 홍보 전략이었다. 또 필자가 임기 초부터 자처하며 강조한 ‘세일즈 군수가’ 되기 위해 전국 146개 이마트 납품은 물론, 국내 최대 농산물 도소매 매장인 서울 하나로클럽 양재점에서 홍보 판촉행사를 추진했다. 마찬가지로 매년 행안부의 지방공기업 평가에서 최하위를 면치 못하던 부실 공기업인 청송사과유통공사를 유통센터로 전환해 전국적 생산과잉 시대를 대비한 산지유통 시스템을 재정비했다.이렇듯 청송사과의 내일을 위해 이 시절 각 농가마다 주렁주렁 열린 사과들처럼 다양하고 유익한 정책들을 실현하려고 부단히 노력했고, 필자는 황금빛 미래라는 열매를 ‘주저리주저리’ 결실 맺게 하기 위해 그 노력을 멈추지 않을 작정이다.“내가 바라는 손님은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매년 10월 말경 성황리에 개최했던 청송사과축제를, 올해는 안타깝게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전 세계적으로 위협을 가져온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이다. 군민들의 소중한 피땀으로 알알이 익힌 사과를 전 국민과 함께 축제로 즐기며 맛볼 수 없어서 심히 유감스럽지만, 군민의 안전과 감염 예방이 무엇보다 우선이므로 취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시인 이육사가 바라는 손님은 푸른 베옷을 입고 찾아오는 조국 광복이었다. 그렇다면 필자가 민족 대명절을 앞둔 지금 바라 마지않는 손님은 감염병으로부터 우리 군민을 안전히 지켜내는 것과, 황금사과로 인해 빛나는 청송의 미래뿐이다. 한 시인이 하얀 모시 수건을 앞에 두고 조국 광복을 기다렸던 것처럼 필자 또한 그런 날을 염원해 본다.

2020-09-13

돌에 새기는 마음

금오산을 오른다. 제일 먼저 메타세쿼이아가 푸른 숲에 잘 오셨다고 반갑게 길을 안내한다. 양옆으로 늘어서서 그늘을 만들어주니 눈부터 시원해지고 ‘좋다~’라는 소리가 입에서 반사적으로 흐른다. 메타세쿼이아에게 배턴을 이어받은 소나무 산책로,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켰는지 둘레가 어른 한아름으로도 모자라다. 산새 소리와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의 협주곡이 더위에 지친 나그네를 위로한다. 곳곳에 놓인 나무마루에 일찌감치 눌러앉은 가족들, 얕은 물에 뛰노는 아이들 소리가 ASMR이 되어 숲에 마음을 내려놓게 한다. 금오산이 주는 선물이다.산 좋고 물 좋은 자리에는 늘 정자가 있다. 채미정도 그런 곳에 있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돌다리 너머에 흥기문이 보인다. 오래전 이곳에 주인이었던 길재 선생이 거닐었을 그 길에 내 발을 얹어본다. 그가 자란 고향이자 나이 들어 고려의 기울어짐을 바로 세울 힘이 없음을 알고, 어머니와 가족을 거느리고 찾아왔을 때 변함없이 우뚝 솟아 긴 산자락을 펼치고 선생을 안아 준 것은 금오산이었다.금오산은 본래 대본산(大本山)이란 이름이 있었는데 세월 따라 여러 개의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 중국 허난성 숭산과 생김새가 비슷한데다 남쪽에 있다 해서 고려 때는 남숭산(南崇山)이라고 불렸는데 북한 황해도 해주에 북숭산을 둬 남북으로 대칭되는 산의 이름이었다. 지금의 이름인 금오산(金烏山)이란 명칭은 저녁노을 속으로 황금빛 까마귀가 나는 모습에서 비롯됐다. 한편 중국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캐 먹다 죽은 백이와 숙제처럼 이 고장 출신의 고려 충신 야은(冶隱) 길재의 충절을 기려 옛사람들은 금오산을 일컬어 수양산이라 부르기도 했다.고려 말기의 충신이며 학자인 야은(冶隱) 길재(吉再) 선생은 조선이 개국하자 태상박사(太常博士)의 관직을 받았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은거 생활을 하면서 절의를 지켰다. 1419년에 별세하자 나라에서 충절(忠節)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충절과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1768년(영조 44)에 채미정을 건립하였다. 뒤편에는 숙종의 어필 오언시(五言詩)가 보존되어 있는 경모각이, 옆에는 구인재가 자리했다. 길 건너에는 기념관이 있다.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뜻하지 않은 곳에 갈 때도 있다. GOP에 근무하던 군인 아들 면회하러 가는 길에 민통선 내에 있어서 평생 가 볼까 말까 한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을 우연히 들렀다. 그곳에서 신라왕이 왜 경기도에 묻혔는지 그때야 새삼 깨닫게 됐다. 둘째 아이가 강원도 고성에 배치되었을 때에는 근처의 송지호 호수와 청간정에 올라 보기도 했다. 아이들이 거기에 있지 않으면 평생 가보지 않고 살았을 곳이다. 채미정도 큰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구미에 있어서 둘러본 곳이다. 고려 삼은 중에 한 분이라서 더 가봐야지 했다. 삼은 중에 포은 정몽주는 경상북도 영천군 임고면에 서원이 있고, 목은 이색은 경상북도 영해읍 괴시리에 기념관이 있다. 두 곳은 예전에 가 보았기에 채미정을 둘러보았으니 이제 삼은을 다 만나본 것이다.김순희수필가세 사람이 삼은으로 불리기 시작한 시기와 이유는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조선 중후기의 사림을 형성하는 성리학자들이 다름 아닌 야은 길재의 후학들이기 때문에, 이색-정몽주-길재로 이어지는 동방 성리학의 거성들을 숭상하기 위해 여말삼은이라 칭했을 것이라 추측할 뿐이다.‘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인생 말년을 금오산에 은거하며 스스로를 ‘금오산인’이라 불렀던 야은 길재의 대표 시이다. 이 시조는 채미정 입구 바윗돌에도 새겨져 있다. 고려의 서울이던 개성을 그리며 쓴 ‘회고가’이다. 돌에 새겨놓은 그의 마음이 절절하다. 내 학창시절, 교과서에 실려 길재 선생의 절절한 마음까지는 이해 못 하면서도 달달 외워서인지 수십 년 후의 내 입에서도 절로 흘러나온다. 오늘 그의 마음에 오래 간직한 충심을 다시 들여다보며 시를 읊조려 본다.

2020-09-13

축약어 시대

영어 브런치(Brunch)는 아침식사와 점심식사 그 사이에 먹는 식사를 말한다. 미국에서는 브런치를 먹는 가정이 많아 자연스레 생긴 단어라 한다. 우리나라도 언제부턴가 이를 아점이란 말로 부르기 시작했다. 국립국어원에서 어울참으로 사용할 것을 권했지만 아점으로 그냥 굳어져 가고 있다.긴 단어나 말을 줄여 부르는 현상이 어느 듯 우리의 일상에서 신조어라는 이름을 달고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소확행이나 버스카드 충전을 가리키는 버카충, 생일파티의 생파 등은 그래도 점잖은 표현이다. 낄낄빠빠(낄때 끼고 빠질때 빠져)나 안물안궁(안물어 봤고 안궁금함), 걸조(걸어다니는 조각상) 등은 설명을 듣지 않으면 내용 파악이 쉽지 않은 축약어다.법률분야에서도 단통법(단말기 유통구조개선법)과 아청법(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등과 같이 줄여 부르는 일들이 다반사로 행해지고 있다. 축약 언어의 사용은 세태 반영과 더불어 언어 관습의 변화란 관점에서 유의 있게 볼만한 일이다. 일부 전문가는 한국인의 축약어 사용은 민족의 조급성을 반영한 것이란 설명도 하고 있으나 더 자세한 것은 연구가 있어야 할 일이다.긴말을 줄여 부르는 것이 꼭 언어의 왜곡으로만 볼 수 없다.영어에도 축약어가 많이 있다. see you를 CU, First를 1st 등으로 부르는 것 등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축약된 언어가 무질서하게 난무한다면 언어 정화 차원에서 재고의 여지는 있다.최근 부동산과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유입되면서 젊은층 사이에 영끌이란 말이 유행이다. “영혼까지 끌어 모은다”는 말의 줄임이나 작고 사소한 것까지 탈탈 털어 모은다는 뜻이다. 기성세대에 실망한 젊은층이 지어낸 축약어라서 씁쓸한 뒷맛이 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9-10

여당의 실책이 야당의 성공?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더불어민주당의 잇따른 헛발질이 여권에 대한 여론의 반감으로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고 야당인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율이 급격히 오르고 있지도 않다. 이런 측면에서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비록 지금은 정부여당을 구석에 몰아넣고 공세를 퍼붓는 양상이지만 절대 자만할 일이 아니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적지않다.우선 여당 대표 출신의 추미애 법무장관 아들의 특혜성 휴가 논란이 통역병 지원과정에서의 청탁논란 등 군복무전반에 있어서의 불공정·특혜논란으로 번지고 있어 여권에 상당한 타격이 되고 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말한 것처럼 “병역문제는 국민의 역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특히 병역 불공정문제에 대해 분노를 느낄 젊은 세대는 서씨의 휴가 특혜논란에 상대적인 박탈감과 함께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가뜩이나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태에서 공정성 문제가 이슈가 된 마당에 추 장관 아들문제가 또 다시 한번 공정성에 의문을 갖게하는 충격을 더한 것이다. 또 여당 의원들의 잇따른 실수도 공교롭다. 최근 윤영찬 민주당 의원은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연설을 하는 과정에서 포털 메인뉴스 화면의 뉴스편집에 문제를 제기하며 카카오 관계자를 국회로 부르라고 지시하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는 장면이 보도됐고, 야당은“포털 통제”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후 윤 의원은 ‘카카오 문자’논란에 대해 “질책을 달게 받겠다”고 사과했지만 여당의 오만을 보여줘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대목이었다.엎친데 덮친 격으로 더불어민주당 대변인 출신으로, 4선 중진인 우상호 의원이 “카투사 자체가 편한 군대”란 취지로 말했다가 호된 비판에 직면했다. 우 의원은 추 장관 아들의 특혜성 휴가 의혹 방어에 나서서“카투사는 육군처럼 훈련하지 않는다. 그 자체가 편한 보직이라 어디에 있든 다 똑같다”며“카투사에서 휴가를 갔냐 안갔냐, 보직을 이동하느냐 안하느냐는 아무 의미가 없는 얘기”라고 말했다. 이 발언이 알려진 직후 카투사 출신 네티즌들이 활동하는 한 커뮤니티에서 우 의원의 사과를 촉구하는 성명이 발표되는 등 일파만파였다. 결국 우 의원은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현역 장병들과 예비역 장병의 노고에 늘 감사한 마음”이라며 공개사과했다. 이 같은 여당 의원들의 실책 때문일까. 리얼미터의 9월 2주차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32.8%로 민주당(33.7%)을 오차범위내로 추격했고, 20대에선 8.9%p 오른 36.4%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그러나 이번 국민의힘 지지율 상승은 정부여당 실책에 따른 반사이익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오히려 국민의힘이 최근 당명 및 정강정책을 개정하고, 로고와 상징색을 바꾸는 등 변신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데 대한 평가가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새 정강정책에 더불어민주당이 도입을 검토하던 기본소득을 정강정책에 포함하는 등 중도보수층을 아우르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데 대한 국민의 평가가 향후 대권 승부를 가르는 관건이 될 수 있다.

2020-09-10

분열의 정치

김병래시조시인넬슨 만델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 한 부족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백인 정부의 인종차별에 맞서 싸우느라 대학시절부터 줄곧 감옥을 들락거리다가 1963년엔 종신형을 받아 1990년 석방될 때까지 27년 넘게 감방과 채석장에서 복역을 했다. 석방된 후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의장으로 선출되어 백인정부와 협상, 350여년에 걸친 인종분규를 종식시킨 공로로 1993년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1994년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었다. 취임식에 옛 교도관을 초대했는가 하면 자신을 투옥시킨 사람들을 내각에 등용해서 갈등과 상처의 치유에 힘썼다.그를 추종하는 국민들로부터 종신대통령직 제안을 받았지만, 아프리카의 민주주의는 선거에 의해 지켜져야 한다며 거부하고 1999년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방문한 미국 대통령이었던 클린턴은 회고록에서 이렇게 밝혔다. “아파르트헤이트(인종격리 정책)의 지지자와 피해자가 함께 일하는 광경은 보기 좋았다. 그들은 과거를 부정하지도, 현재의 의견 불일치를 감추지도 않았다. 그러나 공동의 미래를 구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 것 같았다. 그것은 만델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화해의 정신 덕이었다.” 그리고 그는 만델라에 대해 ‘오랜 수감생활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우정, 친절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고 썼다.그와는 정반대로 문재인 정권은 오로지 분열의 정치에만 목을 매고 있는 것 같다. 대통령 취임사에서는 분명 통합과 공존의 세상을 열어가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언명했지만, 실상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분열과 적개심을 조장하는 일에 앞장을 선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적폐청산을 명분으로 지난 정권과 상대 당을 모조리 적으로 몰았고, 반일감정을 부추겨 우파들에 토착왜구란 프레임을 씌운 것,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편을 갈라 증오와 보복의 정치를 한 것, 최근에는 의사와 간호사들까지 이간질을 하는 비열한 행태를 보였다,정치적 책략 중 가장 비겁하고 치사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것이 바로 분열의 정치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좌우의 대립이 상존해 왔으므로 적당한 구실을 던져주고 프레임을 씌우면 알아서들 피터지게 싸운다. ‘대가리가 깨어져도’밀어붙이는 절대 지지층을 손쉽게 확보하는 확실한 방법이다. 그 다음엔 부화뇌동하는 중도층을 포퓰리즘으로 끌어들이면 정권유지가 보장되는 것이다. 그런 전략으로 톡톡히 재미를 본 것이 바로 지난 총선이었다. 재난지원금이란 구실로 돈을 풀어먹인 것이 주효했다.정권이 획책한 대로 대한민국은 지금 분열과 갈등의 양상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국민들 사이에 팽배한 불신과 적개심은 가뜩이나 어려운 국가의 전망을 더욱 암담하게 한다. 관용과 배려의 정신은 실종되고 나라가 망하든 말든 끝장을 보겠다는 광기와 증오가 난무한다. 넬슨 만델라와 같은 현인(賢人)이 참으로 아쉬운 시국이다. 최근 들어 문제인 정권을 지지했던 일부 지식인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아주 고무적인 현상이다. 올바른 식견과 분별력을 가진 사람들이 바른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사필귀정의 결과를 기대할 수가 있다.

2020-09-10

두 공항을 한 개의 공항처럼!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대구국제공항을 대체할 대구·경북 통합신공항(민간 공항+K2 공군기지) 이전지가 공동 후보지인 경북 의성군 비안면, 군위군 소보면 일대로 결정됐다. 대구시와 국토교통부 등은 2028년 개항을 목표로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건설에 나선다고 한다.기본계획수립용역을 통해서 개략적 내용이 수립되면 이를 토대로 통합신공항의 구체적인 내용이 결정되고, 건설사업도 본격적으로 추진된다고 하며, 2024년 착공을 거쳐 2028년 통합신공항을 개항한다는 계획이다.그러나 부산상공회의소는 최근 울산상공회의소, 경상남도상공회의소협의회와 공동으로 국토부의 김해공항 확장안 취소와 유일한 대안인 가덕신공항 건설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이번 공동성명 발표는 부·울·경 경제계가 지난 7월 22일 부·울·경 신공항의 조속한 건설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음에도 여전히 검증결과 발표가 늦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무총리실의 김해공항 확장안 적정성 검증 발표와 함께 신공항 대체 입지로 가덕도가 선정되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경북이나 포항의 입장에서 보면 영남권의 신공항 추진이 지역민들에 큰 기쁨과 희망인 것은 틀림없다.그러나 이 조그만 국토와 영남권에 부산권·대구권 2개의 공항이 필요한가 하는 건 그리 쉽지 않은 판단이다.부산·대구 지역이 상호 자기 지역에 공항유치를 위한 노력을 넘어서서 상호비방하는 현수막들을 보면서 참담한 생각이다 두 공항을 만들어도 하나의 공항 개념으로 묶을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다. KTX 고속철이 탄생한 후 서울과 포항, 대구간 항공 노선들이 없어지다시피 한 경험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비록 2개의 공항이 탄생하지만 하나의 국제공항 개념으로 가는 것이 영남지방 발전을 위해 훨씬 좋아 보인다.우선 공항명에 경북, 경남, 대구, 부산 등의 이름을 쓰지 말고 영남의 개념의 이름을 쓰면 어떨까 한다. 공항 이름에서 외국인들이 하나의 공항으로 생각하게 유도하는 게 좋다. 예를 들어, KB(경남, 부산) Airport, KK(경북, 경남) Airport 이름도 좋다. 또는 시애틀-타코마, 달라스-포트워스처럼 두 개의 도시를 묶는 트윈시티 이름을 써 대구·부산 공항으로 불러도 좋다.그리고 각각의 공항을 제1터미널, 제2터미널 등의 이름으로 부르자. 작명부터 하나의 공항 개념으로 묶어 영남권을 커버하는 것이 인천공항과 같이 국제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두 공항 사이에 최신 논스톱 고속철을 건설하여 항공권 소지자는 출발·도착 전후 24시간 내에 무료 승차를 허락하고 두 공항이 다소 거리가 있지만 사용자에게는 하나의 공항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보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이는 영남권을 국제적 중요 명소로 유도하고 영남권이 세계적인 지위를 획득하는 지역으로 발돋움 하는 지름길이 되리라 확신한다. 두 개의 공항을 하나의 공항으로 묶어 영남권 지역 발전에 불을 지피자. 두 개의 공항을 하나의 공항처럼!

2020-09-10

‘거북목 증후군’ 주의보

코로나19 재확산사태로 비대면 온라인수업이 크게 늘면서 많은 시간을 모니터앞에서 보내는 학생들에게 ‘거북목증후군’주의보가 내렸다. 거북목증후군은 C자형의 정상 목뼈가 잘못된 자세로 인해 일자목으로 변형되고, 더 악화되면 거북이의 목처럼 앞으로 나오고, 이로 인해 통증이 생기는 질환이다. 주로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오래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생긴다. 대표적인 증상은 목이 뻣뻣해지면서 아프고, 어깨주위까지 통증이 번진다. 팔 저림, 두통, 어지럼증 등도 따를 수 있다. 이런 증상이 오래 지속될 경우 목디스크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전문의를 찾아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증상이 경미한 환자의 경우 물리치료, 약물치료, 도수치료, 주사치료 등 비수술치료만으로도 좋아진다. 하지만 이미 목디스크로 진행된 환자의 경우 통증부위에 약물을 투입해 염증을 치료하는 시술을 고려할 수 있다. 시술은 경막외신경성형술, 풍선확장술, 고주파수핵성형술, 신경차단술 등이 있다.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목디스크가 심한 경우에는 수술을 해야한다. 수술에는 경추 전방유합술, 양방향 내시경 하후방 경유 신경감압술 및 추간판 제거술이 있다. 특히 목디스크를 그냥 방치할 경우 하반신 또는 전신마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치료해야 한다.거북목증후군은 무엇보다 예방이 중요하다. 컴퓨터 모니터나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 눈높이에 맞춰 사용하고, 어깨와 가슴을 바로 펴고 턱을 가슴쪽으로 당긴 바른 자세로 앉아야 한다. 또 1시간 이상 장시간 앉아있는 경우 중간중간에 목과 어깨의 긴장을 풀어주는 스트레칭을 하는 것이 좋다. 코로나19가 촉발한 또 다른 병마에 어린 학생들이 병들지 않도록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한 때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9-09

초인은 없다 일등도 아니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현실은 늘 못마땅하다. 세상은 언제나 불공평하다. 삶은 날마다 버겁다. 허덕이며 지나는 모든 질곡은 광야가 아닌가. 시인 이육사(李陸史)는 그래서 백마를 타고오는 초인을 기다렸을까. 보통사람들은 그래도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라고 때마다 표를 던진다. 기대만큼 일상이 호전되지 않아 기대는 다시 실망이 된다. 하필 감염병이 돌아 행동도 자유롭지 못한데 뜬금없는 ‘일등’소리를 듣는다. 일등은 과연 초인이었을까. 당신이 아니면 세상은 하염없는 나락을 헤맬 것인가. 일등만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한때는 그랬다. 아니 그래 보였다. 뛰어난 지력이 놀라운 성장과 함께 성취에 이르면 눈부신 열매도 거두는 듯하였다. 세간의 관심이 먹고사는 데에 머무는 동안 세상의 일등들이 이끌어 여기까지 온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허세와 과장도 결과를 보면서 용인하였다. 그늘에서 이름없이 도왔던 손길들도 그들의 출중함을 탓하지 않았다. 부럽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지만, 자신들도 묵묵히 일로 보여주므로 공연히 시비하지 않았다. 너무 오래 그래 왔을까. 급기야 일등들이 스스로 ‘일등만 해야한다’고 주장하는가 싶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다.자만은 위험하다. 자신을 세상보다 높은 자리에 올린다. 더 배우거나 깨우칠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 현실에 안주하여 생각할 필요를 막아버린다. 더 배우지 않게 하고 상상력을 차단하며 남과 함께 하는 협력의 창을 닫아 버린다. 고대 그리스의 시인 테오그니스는 ‘신은 세상에서 없애버리고 싶은 사람에게 자만심을 선물로 준다’고 하였다. 세상도 바뀌었다. 일등을 조건없이 인정하고 순순히 따르는 사람은 이제 없다. 당신에게서 진정성과 공감능력을 확인해야 한다. 세상은 일등의 자만심에 기대지 않는다.사학자 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bee)는 역사 가운데 위기에 봉착했던 인류를 ‘창조적 소수자들(Creative minories)이 구해왔다’고 하였다. 광야에서 달려오는 어느 초인이나 일등의 기억만 고집하는 수재들이 아니라 공동체의 미래를 놓고 함께 공감하며 걱정하는 집단지성을 의미하였다. 인류문명은 외부의 공격에 무너지는 게 아니라 내부의 몰락으로 붕괴한다고 하였다. 우리 내부의 일그러진 모습을 직시하는 창조적 소수자들이 움직일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이념에 기초한 편 가르기에 몰두해서 될 일이 아니다.일등만 바라보는 세상이 아니다. 초인을 기다리는 국민도 없다. 함께 어우러지며 더 나은 내일을 열어가야 한다. 둔하고 더디어 굼뜨게 행동하는 인간이 인류의 위기를 이제는 절감하며 움직여 가도록 코로나19가 온 게 아닐까. 시대의 지성과 보편적 양심이 깨어나도록 재촉하고 있다. 어떻게 가야 할지는 모두에게 달렸다. 앞에 선 몇 사람에게 재촉할 일이 아니다. 애를 안 쓰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어째서 편만 가르고 있는 것일까.누구를 기대할 것인가. 무엇을 기다릴 것인가. 세상은 바꾸어보라고 아우성을 치는데.

2020-09-09

선인장의 죽음

어째서 선인장은 仙人掌, 신선의 손바닥이라 했나?멀리 라스베거스 가는 애리조나 사막 드넓은 황무지에서 그대를 만났었지. 고국에 돌아와 나는 선인장 그대를 사랑한다고,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다짐했노라. 사랑은 찾는 데서 싹트고 물을 주는 데서 자라나고 병들어 죽어가는 것을 보며 애절해질 수밖에 없다.안성 가톨릭 신자들 숨어 살던 배티 성지 가던 길에 아름다운 선인장 하나를 사고, 또 대전 중앙시장 옆 대전천 천변 꽃집에서 선인장 하나를 또 샀지. 하나는 산호 선인장, 다른 하나는 철갑을 두른 듯 용맹하게 생긴 선인장이었다.두 선인장 모두를 너무나 사랑했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여러 해를 살아왔으되 마치 헛 살아온 것처럼 선인장 키우는 법을 알지 못했다.물은 오랫동안 머금을 수 있어 자주 주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고향이 사막인 탓에 더위에도 추위에도 강하다는 것도 알았다. 한없는 어둠만 아니라면 꼭 햇살 따가운 곳이 아니더라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까지도 알았다.하지만 내가 몰랐던 것은 흙이 오히려 수분이 많아 축축해지면 선인장은 뿌리부터 썩어들어가 버린다는 사실이었다. 흙에도 물을 잘 내리는 흙이 있고 잔뜩 물을 흡수해서 진득진득한 상태로 오래 가는 흙도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여름 내내 비도 그렇게 질기디질기게 올 수 없고 그 끝에 태풍도 벌써 세 번째 북상 소식이 들리는데, 그 무덥고 축축한 여름이 오래 가는 사이에, 세상은 코로나 천지가 되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측정의 도구조차 잃어버린 사이에, 나의 사랑하는 선인장 하나는 물에 뿌리가 젖어 생살이 썩어가듯 잎사귀가 짓무르며 그만 모진 목숨을 끊고야 말았다.물 없이는 길게는 석삼 년씩도 사는 선인장이 있다는데, 이 여름처럼 습한 나날은 오히려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한 포기 선인장을 잃어 버리고 나의 방에는 이제 마지막 선인장 한 포기, 산호선인장밖에 없다. 푸른 머리카락을 길게, 메두사처럼, 그러나 아름답게 뻗어 올린 산호선인장은 사막처럼 바싹 메마른 외로운 방을 깊은 바닷물 속처럼 그윽하게 변모시킨다.선인장 하나와 나 하나. 아주 오랜만에 혼자인 혼자만의 삶으로 돌아온 것 같은 지금, 홀로 남은 강인한, 고독을 견디는 선인장의 삶을 생각한다.홀로 몇 스푼 아주 적은 수분에만 의지하며 적게 먹고 적게 쓰고 말없이 견디는 선인장의 미덕을 생각하며, 나 또한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적게 살고 뜨겁고 차가운 대지 위에 홀로 많이 버텨야 한다.그렇게 속으로 생각해 보는 날이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09-09

디어 위너

강길수수필가영문 이메일을 받았다. 어마어마한 내용이다. 만일 사실이라면, 나는 갑자기 벼락부자가 된다. 정말 행운의 소식이면 좋겠다.이메일은 영문 ‘디어 위너(Dear Winner)’로 시작되었다. ‘친애하는 당첨자’라니, 우선 기분이 좋다. 짧은 영어 실력으로 내용을 대충 살폈다. 내 이메일 주소가, 올해 자사의 이 메일 프로모션에 당첨되어 축하한단다. 당첨금이 원화로 환산하니 무려 150억 원이나 되었다. 일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전체 내용을 빨리 알기 위해, 인터넷의 영문번역기에서 전문을 우리말로 바꿔보았다. 따로 추첨에 참여하거나, 티켓을 끊을 필요는 없단다. 단지 이름, 주소, 나라,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만 답신으로 보내면 된다고 했다.기분이 이상해졌다. 번역문을 읽으며 ‘스팸’, ‘피싱’ 같은 단어들이 함께 떠올라서다. 스팸문자, 스팸메일, 보이스피싱 등 사기(詐欺)나 범죄에 이용되는 통신수단에 당했다는 보도나 사례들을 많이 보았다. 우리 집도 보이스피싱을 몇 차례 겪은 적도 있다. 그러니 은연중에 스팸이나 피싱에 대한 대응력이 생겼으리라.스팸메일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실이면 좋겠다는 바람(望)도 마음 한구석에서 명지바람으로 일었다. 달콤한 유혹이다. 이율배반이다. 햄릿 증후군이기도 하겠다. 머리로는 아닌 줄 알면서도, 가슴으로는 끌리는 심리상태를 또 경험한다. 이성(理性)과 감성(感性)이 조화롭다면, 스팸메일이란 판단이 들었을 때 지웠어야 했다. 내 속물근성이 이 이메일 앞에서 또 이빨을 드러내고 말았다. 보이지 않는 속 갈등을 한다.“그래, 다른 이들도 같은 사례가 있나 찾아보자!”내부 갈등의 타협안이 제시되면서, 내 손가락은 저절로 웹사이트를 뒤지고 있었다. 작년에도, 올해도 똑같은 내용의 메일을 받았다는 사람의 글을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작년 것은 금액이 올해보다 적었지만, 올해 것은 금액도 같았다. 전자는 상담을 받는 것이고, 후자는 어떤 카페에 올린 글이다. 후자의 경우, 끝에 독자들과 댓글을 주고받으면서 결국 답신 메일을 보내고 말았다는 게시자의 고백도 있었다.쓴웃음이 났다. 이성과 감성이 이런 상황에서도 싸운다.“이봐! 스팸메일이 맞잖아? 괜히 헛꿈을 꾸었어. 시간도 버리고….”“잠시 행복했잖아? 그러면 된 거지. 뭘 그리 따지고, 불평하는 거야?”처음 복권을 사던 날이 떠올랐다. 주택복권이다. 아마도 70년대 중반쯤이었을 거다. 확실한 날짜를 알려고 일기장을 한참 뒤졌으나, 못 찾았다. 아마 회식을 마치고, 얼큰한 기분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으리라. 회식 중 동료들과 복권에 대해 갑론을박하다가 ‘복권은 바로 행운 부르기’란 말에 이끌려, 난생처음 100원짜리 주택복권 두 장을 손에 쥔 날이다. 술기운에, ‘이 복권으로 내 집을 살 것이다!’라며 의기양양하게 발길을 뗐었다. 조금 걷다가 어느 순간, ‘나도 그만 사행성 탁류에 휩쓸리고 말았구나!’ 하고 깨달으며, 하룻저녁에 천국과 지옥을 오갔던 기억이다. ‘근면, 자조, 협동’의 역동적 사회 구조 안에서, 그 시절 내 눈엔 복권은 사행성의 징표일 뿐이었다.세월이 많이 흘렀다. 이젠 복권을 사행성 징표나, 노름같이 보는 시각은 사라졌다. 어떤 지인은 투자라며, 봉급을 타면 내 기준엔 제법 많은 일정 금액의 복권을 샀다. 문제는 ‘디어 위너’처럼 공적 복권을 사칭한 스팸메일 등, 사기를 치기 위한 정보가 횡행한다는 사실이다. 4차 산업 시대니, 5지(G)시대니 하며 시시각각 달라지는 사회의 정보기술 환경에 따라가기도 힘든 현대인들이다. 그들이 스팸이나 피싱 같은 사기에 시달리는 상황에 놓인 것은 대체 무얼 말해주는 걸까.“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란 말이 있다. 인간과 생명은 아니, 만물은 이 말처럼 살고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우주 안 모든 존재의 존립 양상이 어찌 보면, ‘죽기를 각오하고, 모든 힘을 다하여 살고 또, 존재하는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마음을 다잡아야, ‘친애하는 당첨자’처럼 달콤한 사기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테니까.진정한 ‘디어 위너’만 있는 세상이 그립다.

2020-09-09

짧은 만남 긴 우정

우리가 만난 세월이 얼만데! 상대와의 관계가 얼마나 돈독한가를 증명해보이고 싶을 때 흔히 하는 말입니다. 오랜 기간 만나왔으니 그 우정의 깊이는 재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시간과 우정이 꼭 비례하는 건 아닙니다. 학창 시절 친구가 아무리 좋다 해도 서로 도움 주는 이웃만 못하고, 직장 동료와 종일토록 붙어 있다고 해도 마음 먼저 닿는 먼 친구만 못합니다. 한마디로 때와 장소 등 물리적 요인은 관계를 규정하는 절대적인 잣대가 되지는 않습니다. 오래 알아왔다고 우정이 깊은 것도, 자주 만나는 사이라고 절친이 되는 것은 아니지요. 공감보다 나은 친구는 없고 마음보다 앞선 우정은 없을 테니까요. 진심이 통할 때 우정은 지속됩니다.온라인에서 알게 된 친구들이 있습니다. 다섯을 묶은 출발점은 ‘책’입니다. 어느 날부터 자연스레 의기투합하여 비정기적으로 만남을 가져왔습니다. 일부러 그렇게 모이기도 힘들 텐데 다섯 친구들은 운명처럼 전국에 골고루 흩어져 삽니다. 대전, 청주, 광주, 포항, 부산. 각자 뚜렷한 개성을 지녀 한 번만 만나도 어떤 성격인지 알 정도입니다.좋은 날 불쑥 각자 기차를 타고 청주나 부산 또는 경주나 대전 그리고 광주 어디쯤에 모여 점심을 함께 하며 수다를 떱니다. 읽은 책을 화제 삼고 가진 책을 나누며, 잘 쓴 작가를 부러워하고 읽고 싶은 책 목록을 공유하기도 합니다. 물론 고상한 척 책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닙니다. 자식 걱정이나 자랑도 하고, 남편 흉이나 장점도 나눕니다. 각자의 회한도 돌이켜보고 앞일을 가늠해보기도 합니다. 주어진 하루가 짧다는 걸 알아서일까요. 오래 만나온 사람들이 나누는 것 이상으로 인간사 희로애락을 그토록 짧은 시간에 술술 풀어내곤 합니다.이 매혹적인 모임은 한 친구 덕에 가능했습니다. 어떤 방해꾼도 없는 온전한 한나절의 해방구는 그녀의 기획 작품인 셈이지요. 열정과 선함이 몸에 밴 그 친구는 나머지 네 명을 적극적으로 아우르고 배려하고 챙깁니다. 우리는 그녀를 신뢰하고 따릅니다. 그녀가 마련한 멍석 마당에 자유롭게 퍼질러 앉아 수다 떨고 웃기만 하면 됩니다. 책과 사람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그녀에게 저는 ‘다정도 병’이라는 별명을 지어줬습니다. 그토록 다감하고 그토록 솔직하며 그토록 열정적인 친구를 일찍이 본 적이 없을 정도입니다.그렇게 모임을 이끌던 친구가 멀리 떠나게 되었습니다. 미국인 남편을 따라 LA로 가게 되었지요. 환송회가 있던 날 키 크고 잘생긴데다 착하기까지 한 그녀의 남편 뢉이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양손엔 다섯 점의 그림이 들려져 있었습니다. 예술을 전공한 뢉이 아내와 그 친구들을 위해 몇날 며칠 이별 선물을 준비한 것이지요. 아무도 생각지 못한 깜짝 쇼였습니다. 안타까움으로 허해진 가슴에 훈풍이 깃들었고, 순식간에 눈물바다가 됐습니다. 아쉬움과 감동이 교차하던 시간이었습니다.미국에 정착한 그녀는 새로이 간호학에 도전했습니다. 기전공인 패션과는 너무 먼 방향이라 의아했지만 그녀의 열정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였지요. 공부엔 나이가 없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몇 년 만에 드디어 학위를 받게 됩니다. 내친 김에 대학원에도 진학해 학계에 남고 싶어 합니다. 긍정적 마인드로 앞을 향해가는 그녀의 성정을 알기에 그것 역시 어려운 고지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취미이자 특기인 공부에 매진하는 그녀가 경이롭기만 합니다.바쁜 와중에도 그녀는 친구들의 생일이나 경조사 등을 챙깁니다. 그녀를 알게 된 후, 받는 데만 익숙했지 뭔가를 제대로 줘 본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그녀보다 한 발 늦습니다. 이번엔 큰 맘 먹고 한 발 앞서보기로 했습니다. 간호사 면허 취득 축하겸 생일 축하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탄탄대로만 남은 그녀에게 뭔가 의미 있는 선물을 하고 싶었습니다.김살로메소설가졸업파티에서 입을 한복을 선물할까, 액세서리를 좋아하니 목걸이를 선물할까 이것저것 고민했습니다. 기왕이면 그녀가 받고 싶은 선물을 하고 싶었습니다. 몇 번의 밀당 끝에 제 진심을 안 그녀가 조심스레 말합니다. 청진기를 받고 싶답니다. 미국 간호사는 청진기가 필수랍니다. 선물 받은 청진기로 진료하는 간호사라니, 생각만 해도 멋진 일입니다. 아마존에 접속해 전문 청진기를 검색해봅니다. 그녀가 모델명까지는 끝내 말하지 않으니 화면 앞의 제 눈은 까막눈이 될 뿐입니다. 아쉽지만 차선책으로 송금이란 선물을 택했습니다. 며칠 뒤 청진기에다 제 이름을 새기고 싶다며 그녀가 연락해왔습니다. 쑥스럽지만 고집 피울 일은 아닌 것 같아 그러라고 했습니다.작년 미국에서 만나자는 약속도 놓쳤고, 올해 서울에서 재회하자는 통화도 코로나 때문에 지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기야 만남 유무가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마음이 있는 한, 우정은 계속되는 것이니까요. 간호사로 멋지게 성장할 그녀를 멀리서나마 응원해봅니다.

2020-09-09

이리나를 생각하며

김규종 경북대 교수1990년 10월 3일 동서 도이칠란트가 재통일되면서 남북의 분단상황이 더욱 괴롭게 느껴지던 무렵의 이야기다. 유학의 피로와 염증이 있던 데다가, 육체적·정신적 소모가 상당해서 일상의 하중을 견디기 어려웠다. 항시적인 피로와 체중감소로 집 근처 내과를 찾았다. 50대 초반의 여의사가 반가운 얼굴로 맞이한다. 루마니아 태생이며 ‘이리나’라는 이름을 가진 의사. 체호프의 ‘세 자매’에 등장하는 막내딸 이리나가 생각났다.무슨 일로 왔는지 물으면서 차분한 눈길로 나를 바라본다. 그러면서 나의 신상 하나하나를 캐묻기 시작한다. 학위논문을 준비하고 있는데, 상당히 어렵게 진행되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 야경꾼으로 일하고 있는데, 낮과 밤을 바꿔 살아야 하는 일이어서 감당하기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건넸다. 가깝게는 부모님의 건강 이력부터 멀게는 조부모에 형제들까지 소급해가면서 요모조모 캐묻는 이리나의 진지함과 성실함에 의아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1시간도 넘게 걸린 질의응답을 거쳐 그녀는 일주일 후에 자신이 지정한 병원에 가서 종합검진을 받으라고 했다. 당시 나는 유학생 신분으로 한 달에 1만5천원 정도를 의료 보험비로 지출했다. 물론 보험은 3인 가족 전원에게 적용됐다. 종합검진을 받고, 약속한 날짜에 이리나의 병원을 찾아갔다.그녀는 간단한 결론을 준비하고 있었다. 양자택일하라는 것이었다.“학위논문을 포기하거나, 야경 일을 관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조만간에 큰 사달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공부를 포기할 수는 없으니 야경 일을 내려놓는 것이 유일한 출구였다. 그러나 안양에서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시는 아버지를 생각할 때, 그것도 선택 밖의 일이었다. 골똘하게 생각하다가 이리나에게 물었다. “무슨 방도가 없을까요?” 하는 질문에 그녀가 소견서를 써주겠다고 한다.소견서의 골자는 나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에 야간근무를 주간근무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리나와 나의 두 번째 대면은 30분 정도로 끝났다. 소견서 덕분에 나는 야경(夜警)꾼이 아니라, ‘주경(晝警)’꾼이 될 수 있었다. 야경으로 학업을 유지하던 주변의 유학생들은 그런 나를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곤 했다. 하지만 내가 주목한 대목은 다른 곳에 있었다.환자 한 사람과 1시간 이상 의료상담을 하면서 도이칠란트 의사들은 어떻게 생계를 꾸려가는 것일까?! 그것이 정말 궁금하고 신기했다. 지금도 한국인 의사들은 환자 1인에게 5분 이상의 시간을 허여하지 않는다. 내원자가 많을수록 의료비는 올라가고 그것이 고스란히 의사 개개인의 수입으로 잡히기 때문이다. 아주 특별한 가정의나 부자들의 개인 전담의가 아닌 담에야 어떤 한국인 의사가 환자에게 1시간의 상담과 진료시간을 베풀고 있는가?!그런 도이칠란트조차 의대 입학정원을 5천명 이상 늘리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인구 천명당 의사 수가 4.6명이라는 도이칠란트의 의사들이 의대 정원확대를 반긴다고 한다. 우리는 2.3명 혹은 2.6명이라 한다. 한국의 의사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2020-09-09

교육과정과 따로 노는 대입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8월이 자신의 색을 거둬냈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곳이 들판이다. 녹색으로 일렁이던 들판에 노란색이 더 해지기 시작했다. 색이 익어가는 들판의 변화를 필자는 9월 들어서야 봤다. 그토록 눈을 부릅뜨고 다녔지만 왜 그동안 못 보았을까! 두 눈을 뜨고도 볼 수 없다는 것을 필자는 확실히 경험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마음의 여부라는 것도 분명히 알았다.욕심을 내려놓고 2020년을 겸손하게 마무리하는 들판을 보면서 공자의 말씀을 떠올렸다.“마음에 없으면 봐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 수가 없다.”마음먹은 대로 된다는 말처럼 마음은 모든 행동의 근원이다. 우리가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같은 일도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다. 심지어 마음은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게 만든다. 기적 또한 간절한 마음의 결과다. 용기, 용서, 사랑, 희망과 같은 말 또한 마음의 소산이다.마음은 어떤 일의 성공 여부에 있어 필요충분조건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공을 위해 자기에게 최면을 건다. 개인의 일도 이런데 하물며 회사나 국가 일은 어떤가. 리더십은 곧 지도자의 마음이다. 리더의 마음이 어떠하냐에 따라 그가 속한 집단의 운명이 결정된다.그럼 우리가 속한 사회는, 또 나라는 어떤가?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아서는 리더가 마음이 없거나, 아니면 그 마음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많은 왜곡이 있음이 확실하다. 아니고서야 자연이 노(怒)할 만큼 이 나라가 어쩌면 이토록 불안할까! 지금 우리 사회 모든 리더의 공통된 마음은 탓하기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남 탓하는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이 사회 많은 분야가 그렇듯이 교육계 또한 교육 리더의 마음이 순수하지 않다. 이 나라 교육이 특정 정치이념 재생산의 도구가 된 것 역시 정권의 하수인이 된 교육 관료들의 불순한 마음 때문이다.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우리 교육은 정상에서 멀어진다. 굳이 비정상이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지만, 이 말은 지금의 교육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다.비정상의 대표적인 사례가 교육과정과 따로 노는 대학교 입시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 기술 창조력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라는 새 교육과정의 목표와 “문·이과 공통 과목”이라는 말에 희망을 가졌다.“2015 개정 교육과정은 흔히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고등학교에서 문·이과 구분 없이 공통 과목을 배우는 것이 2015 개정 교육과정의 핵심이라고 (….)”그리고 위의 기사 내용이 대학교 입시에 적용되어 문과 이과 구분 없이 학생이 자신의 적성에 맞추어 대학교 입시에 응시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비정상적인 나라의 비정상적인 교육계는 이런 학생들의 믿음을 배신했다. 2021 대학교 입시에서 계열 통합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학교는 얼마나 될까? 버젓이 계열을 구분해 놓은 대학교 입시 요강에 학생들의 마음은 이 나라를 떠나고 있다.

2020-09-09

울릉도 주민들의 태풍 방송에 대한 분노

김두한경북부울릉도 주민들은 태풍이 내습할 때마다 방송국의 보도때문에 분통을 터트리며 울분을 삼킨다.이번 제9호 마이삭 강타 때에도 울릉군은 500억원이 넘는 피해를 보았지만, 방송에서는 마이삭이 우리나라에 큰 피해를 주지 않고 빠져나갔다고 보도했다. 그 이유로 기상전문가의 해설까지 달았다. 하지만, 울릉도는 역대급으로 큰 피해를 보았다.이 때문에 울릉주민들은 울분을 토한다. 방송에서 동해안으로 빠져나갔다고 했으나 울릉도는 태풍 피해가 시작됐고, 태풍방송 내용 역시 예보나, 피해, 진로에 대해 아예 울릉도·독도는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같은 비난으로 이번 제10호 태풍 하이선 때에는 오후 2시에 울릉도를 통과해 북상한다고 방송을 하긴 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틀렸고, 울릉도는 오히려 오후 4시에 순간 최대 파도 높이가 13.3m를 기록했다.이를 두고 SNS에서 한 누리꾼은 “방송에서 동해안으로 빠져나갔다고 할 때 울릉도는 시작이다. 그럼 울릉도와 독도는 우리나라가 아닌가? 동해 상으로 북상해 울릉도와 독도에 피해를 줄 것으로 보인다고 방송해야 하는데 동해 상으로 빠져나가 우리나라는 영향권에서 벗어났다고 방송한다”고 울분을 토했다.특히 태풍 진로 및 예보 방송을 할 때 진행자가 우리나라 지도에서 울릉도와 독도를 가려 방송을 한다. 최소한 울릉도와 독도에 대해 언급이 있어야 하지만 어느 방송국에서도 울릉도, 독도는 없다. 앞서 2003년에 울릉도에 큰 피해를 줬던 태풍 매미 당시에도 방송은 동해로 빠져나갔다고만 얘기해 울릉주민들의 분노를 쌓았다.김병수 울릉군수는 “울릉도와 독도도 대한민국의 땅이다. 태풍이 동해에 진출할 가능성이 있으면 태풍예보, 진로 등 기상특보 방송에 반드시 울릉도와 독도를 포함해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부디 앞으로는 태풍 방송에서 울릉도와 독도의 소식을 들을 수 있길 바란다./kimdh@kbmaeil.com

2020-09-08

멈춘 시간을 보내는 법

집 밖에 나가지 않는 생활이 일상이 되었다. 최근 서울·경기 지역에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자 정부는 강화된 방역 조치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2.5단계로 격상했다. 수도권의 음식점은 오후 9시까지 운영되고 프랜차이즈형 카페나 베이커리는 포장만이 가능하다. 헬스장이나 각종 실내체육시설도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개강 시즌이 무색하게 대학가는 고요하고 밤낮으로 북적이던 번화가 역시 텅 비었다. 이렇듯 모두가 힘을 모아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쉬운 일은 아니다. 자타공인 집순이인 나 역시 참을 수 없는 답답함을 느끼고 있으니. 분리수거를 하러 나서는 잠깐의 순간도 방역 마스크를 써야 한다. 카페에서 글을 쓰는 작업을 해왔는데 이젠 어려운 상황이 됐다. 단골 술집에 옹기종기 모여 맥주잔을 맞대던 여름밤도 다 지나갔다. 내가 이렇게 바깥 공기를 좋아했던가. 이전엔 미처 몰랐던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는 요즘이다.상상해본다. 내게 시간을 멈추는 능력이 생긴다면 어떨까.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게 시간을 정지한 뒤, 나 혼자만이 움직일 수 있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할까.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이를 구할 수 있다. 얄미운 상사의 이마에 꿀밤을 날려줄 수도 있겠다. 이런 과대망상이 현실이 된대도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아무도 없는 깜깜한 거리를 걸으며 지상 마지막 생존자가 된 것만 같은 기분에 잠겨본 적 있다.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은 피곤하지만, 그들이 모두 사라진 세상은 끔찍하게 느껴진다. 멈춰버린 시간 속에 혼자 남겨진다는 건 자유보다 고독에 가깝다.나는 인류를 위협하는 바이러스와 맞서 싸우는 천재 과학자도, 뛰어난 운동 신경으로 좀비를 무찌르는 전사도 아니다. 시간을 멈추는 초능력자는 더더욱 아니다. 요즘 내가 하는 일이라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울리는 재난문자를 확인하며 전전긍긍하는 것뿐이다. 확진자의 동선을 파악하며 혀를 쯧쯧 차다가 익숙한 지명에 화들짝 놀란다. 내가 거기를 다녀왔던가. 과거의 발자국을 헤아리며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역시 ‘집콕’이 가장 마음 편하다. 간단한 모임 약속을 잡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당장 필요한 식료품도 배달을 이용한다. 몸이 뻐근하면 유튜브를 켜고 스트레칭을 따라 한다.이런 와중에도 눈앞의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원고 마감일은 째깍째깍 다가온다. 일주일에 두 번 화상 회의 도구인 줌(zoom)으로 학생들과의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 모니터 너머의 아이들은 풀죽은 목소리로 말한다. “선생님, 코로나 대체 언제 끝나요?” 그러게 말이다. 안타까운 마음을 누르며 몇 시간이고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속이 울렁대고 머리가 지끈거린다. 힘들다고 투덜대는 것도 잠시, 일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라는 가상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이런 상황일수록 더욱 열심히 해야 한다며 자신을 채근하게 된다.‘K-직장인’이란 이런 우리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어떤 상황에서도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긍정적인 뜻이 아니다. 국가적 위기나 자연재해, 심지어 사람을 물어뜯는 좀비가 출몰할지라도 한국의 직장인은 꾸역꾸역 회사를 나갈 것이라는 자조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실제로 홍수 때문에 물이 허리까지 찬 상황에서 물살을 가르고 출근하는 이들의 영상은 전설처럼 내려와 인터넷을 떠돈다. 양복에 서류가방을 들고 일터를 향해 용맹하게 나아가는 모습에 감탄 아닌 감탄을 내뱉게 된다. 우리는 그렇게 배웠다. ‘아파도 학교에서 아파라. 몸담은 직장에 뼈를 묻어라.’ 이것은 비대면 시대에도 유효한 듯하다. 뼈를 묻어야 하는 장소만 바뀌었을 뿐이다. ‘아파도 화상 강의는 참여하고 아파라. 컴퓨터 전자파를 받으며 한 줌의 재가 되어라.’완전히 지쳤다. 휴식의 필요성을 간절하게 느끼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다. 나는 쉬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어른으로 자라버렸다. 생전 처음 접하게 된 ‘거리 두기’의 시간이 무한정으로 길어지면서 더더욱 일과 휴식을 분리하지 못하고 있다. 안락한 소파와 침대가 이젠 더 이상 쉼의 공간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지인 중 한명은 주말의 휴식 시간을 철저하게 계획한다고 했다. 국가공무원으로 일하는 그는 자신만의 ‘휴식 루틴’을 가지고 있다. 10시까지 늦잠 자기. 2시간 운동하기. 6시까지 레고 조립하기. 30분 동안 목욕하기. 일기 쓰고 잠자리에 들기. 이렇게 자신이 생각하는 휴식을 충실하게 이행해야만 제대로 쉬었다는 느낌이 난다는 것이다. 쉬는 것마저 계획적이라니. 나도 모르게 박수가 나왔다.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K-공무원’입니다.” 그는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사람마다 휴식의 방식은 다르니까요.” 문득 궁금해졌다. 다들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모바일 게임이나 온라인 동영상의 유저가 급증했다. 대표적인 OTT 서비스인 넷플릭스의 사용자는 끊임없이 증가하며 역대 최대치를 갱신하고 있다. 나 역시 넷플릭스, 왓챠, 유튜브 프리미엄을 사용하는 사람으로 프로그램 개발자에게 굉장히 감사해하고 있다. 동영상 서비스 없이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 휴식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현재의 시간을 빠르게 흘려보낸다는 느낌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정신을 집중하여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해 명상 앱을 켰다. 편안한 음악이 흐르고 몇 분 지나지도 않았는데 불안해졌다. “당신은 무한한 우주를 홀로 떠다니고 있습니다.” 명상 안내자의 목소리에 나는 곧바로 앱을 종료했다. 집에서도 혼자 있는데 우주에서도 혼자라니. 그건 너무나 가혹하지 않은가.사실상 완벽한 고립은 불가능하다. 세계와 연결되었다는 감각이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 정치·사회면은 어떤 사건이 장식하고 있는지, 연예계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한민국이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지 확인해야 안심이 된다. 인터넷 기사와 댓글, 각종 소식과 정보는 침대 위에서도 끊임없이 쏟아진다.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메인 기사부터 시작해서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트판까지 정독해야 직성이 풀린다. 모니터 너머의 이야기에 파묻혀 정작 내가 직접 눈으로 보고 피부로 경험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게 된다.이와 함께 우울감을 호소하는 ‘코로나 블루’에 빠진 이들도 생겨났다.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로 나타난 현상이다. 일상생활의 제약이 커진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호도, 가짜 뉴스 등으로 심각한 피로감을 호소하는 것이다. 좋은 일이라곤 하나도 없는 것만 같아 화가 나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자. 슬픔이나 분노 또한 삶의 원동력일 수 있다. 가장 위험한 것은 아무것도 진단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태도다. 아무리 노력해도 더 나아질 것이 없다는 냉소와 허무의 늪에 빠지는 순간, 우리는 무기력이라는 무시무시한 괴물에게 잡아먹히게 된다.집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며 좋은 점을 꼽아보기로 했다. 순전히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함이다. 먼저 강아지와 보낼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이 확보되었다. 나의 반려견 보리는 종일 헥헥대며 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친구들과의 연락이 설레어졌다. ‘어느 날 아침, 내게 초능력이 생기면 어떨까’와 같이 쓸데없는 망상을 하는 시간도 늘어났다.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보거나 미술관에서 하루를 보내던 당연하게 존재했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던가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코로나가 끝난 이후에는 무엇을 할까 계획하는 것도 소소한 재미다.물론 이것은 자기 위안에 불과하다. 유치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지금이야말로 극단적인 자기 암시가 필요한 때가 아닐까. 우리는 어떤 메시아적 전언을 기다린다. 시련은 모두 끝났다. 이제 우린 안전하다. 하늘에서 빛이 쏟아지고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려오면 좋겠다. 물론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일시 정지’된 시간을 ‘빨리 감기’하여 낙관적인 미래로 훌쩍 건너뛰고 싶다. 이 역시 상상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현실의 상황을 응시하고 현재의 시간을 버텨야 한다. 많은 이들이 예측하듯 세상은 이전과 같을 순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더 나은 내일이 올 거라고. 무엇보다 우리는 함께,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고.문은강‘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2020-09-08

바람 따라 바퀴 따라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바람을 가르며 강변을 달려가는 자전거 타는 모습을 볼 때면 생동과 활력, 낭만과 여유가 느껴져 누구라도 그렇게 타보고 싶은 충동이 들 때가 있다.자전거는 엔진 역할을 하는 두 다리의 힘으로 바퀴를 굴리며 두 손으로 잡은 핸들의 방향에 따라 사람이 갈 수 있는 웬만한 곳이면 타거나 끌고 갈 수 있는 유익한 이동수단이다.자전거는 타는 목적이나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가벼운 차림으로 안장에 앉아 느긋하게 동네 한 바퀴를 돌 수 있고, 가까운 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가서 볼일을 보거나 누구를 만날 수도 있다.그리고 자출(자전거 출퇴근)하면서 생활 속의 운동으로 삼을 수도 있으며, 휴일의 MTB(산악용자전거) 라이딩으로 질주와 스릴 속에 심신을 단련할 수도 있다. 또한 인천~부산까지의 국토종주나 4대강 종주 등의 원정 라이딩으로 자신의 의지를 불살라 완주의 성취감을 만끽할 수도 있다.이렇듯 자전거는 인간의 힘을 이용해 움직이는 탈것 중에선 가장 훌륭하고 위대한 발명품으로 사람의 두 발을 대신해 어디든지 손쉽게 누빌 수 있다. 인류가 끊임없이 진화할 수 있도록 해준 시발점이 되는 바퀴는 인류의 10대 발명품이기도 하다.필자는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께서 사주신 중고 자전거로 20여리 신작로를 등·하교 하면서 그리도 신나게 즐겨 타던 추억이 있었기 때문일까? 4~5년 전부터는 거의 매일 자전거로 출·퇴근하는가 하면, 아들과의 국토종주, 동료들과의 퇴근 라이딩, 섬 일주 라이딩 등을 즐기며 쏠쏠한 재미에 빠져들고 있다.80년대 초·중반 신입사원 시절에는 교통사정이 여의치 않아 비바람이나 눈보라를 거침없이 헤치면서까지 자전거 출퇴근을 했어야 했지만, 요즘은 건강과 여기(餘技) 삼아 여유롭게 운동하듯이 타고 있으니 감회가 새롭기만 하다.최근엔 주말에 두 바퀴를 굴려 친구나 지인의 집을 무작정 ‘찾아가는 라이딩’으로 자전거 타기의 또 다른 재미(?)를 누리곤 한다. 한동안 뜸했던 사람을 만나는 반가움 속에 차나 음식을 곁들여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살가운 정이 솟아나게 되고, 어떤 친구는 손수 가꾼 푸성귀를 듬뿍 뜯어 주기도 한다. 이따금씩 기계나 죽장, 청하, 경주 등지에 거처하는 분들을 만나러 가는 들길이나 농로 주위에는 민들레와 금계국, 쑥부쟁이가 환호하듯이 반겨 피고 바람의 결마저 설레어 바퀴가 저절로 굴러가는 듯하다.숨막힐듯 왕왕거리며 들려오는 봄날의 개구리 울음소리와 초록의 논에서 한가로이 날갯짓하는 왜가리, 너른 들판에서 묻어나는 싱그러운 냄새를 맡으며 바람 따라 바퀴 따라 유유히 자전거를 저어가다 보면 어느새 새로운 풍경 속의 주인공이 되는 듯하다. 근교 라이딩으로 사람을 찾아가는 것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길가의 정경을 완상하며 사람의 향기에 젖어 드는, 일종의 도락(道樂)과 교분을 나누는 일이다. 바람 따라 바퀴가 굴러갈수록 마음 따라 교유는 더욱 깊어질 것이다.

2020-09-08

남북관계는 언제쯤 개선될 것인가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남북관계를 풀 수 있는 해법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는 11월 대선 승리만을 위해 북미 협상에는 관심이 없다. 북한 역시 개성 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미국의 눈치만 보고 있다.중국, 러시아, 일본 등도 남북문제에 관심이 없다. 우리 정부만이 남북관계의 새로운 돌파를 마련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중이다. 새로 취임한 이인영 통일부장관은 경색된 북한 관계를 풀기 위해 남북 교역을 시도했지만 유엔의 제재로 좌절됐고 금강산 개별관광과 이산가족 상봉도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 남북관계의 기본 변수가 개선되지 않기 때문이다.남북관계 개선의 기본 변수인 미국의 대북 정책은 고정 불변이다. 미국의 ‘완전한 비핵화 후 체제 보장’이라는 대북 정책 틀을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11월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다급하게 협상전술을 바꿀 가능성은 희박하다.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이 성공 가능성이 없어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트럼프는 하노이 협상 결렬 이후 미국의 보수 강경파와 군수 업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한미 워킹 그룹을 통해 미국이 남한의 대북 정책을 엄격히 통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트럼프가 11월 대선에서 승리를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미국은 대북 협상에 관심이 없다.당사자인 북한 역시 대미 협상에는 관심을 돌릴 겨를이 없다. 북한은 유엔 제재 상황 하에서 코로나19와 태풍으로 북한의 대외 노선이 더욱 경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여전히 종래의 통미봉남(通美封南)정책 틀을 견지하면서 미국 선거 결과를 예의 주시할 것이다. 대북제재로 타격을 입은 북한 경제는 수재까지 겹쳐 회생될 전망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럴 때일수록 내부 주민 통제와 결속을 다지는 것이 그들의 통상 수법이다. 그들은 핵과 미사일을 증강하면서 대미 협상의 조건만 강화할 것이다.이러한 환경에서 정부도 독자적인 대북 돌파구를 마련하기 어렵다. 지난번 청와대는 통일 안보 라인을 대폭 교체했지만 새로운 해법은 찾기 어렵다. 대북 관계의 3대 축인 국가 정보원, 통일부, 청와대 안보의 수장을 적극 협상론자로 교체되었지만 북한의 대응은 기대하기 어렵다. 앞서본 미국과 북한의 외부 변수가 우리의 정책의지 변수를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코로나 방역 위기와 만연된 반북 여론이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의지를 억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의 대북 관계 복원의 물꼬는 더욱 틀 수 없을 것이다.이처럼 내외의 환경 변수는 남북 관계의 재개를 어렵게 한다. 그러나 분단 이후 남북관계에서 보듯이 예상치 못한 ‘돌발변수’가 상황을 급변시킬 수도 있다. 트럼프가 자신의 선거 승리를 위해 조건 없이 북미 대사급 외교관계의 수립을 선언할 경우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역으로 북한이 경제 제재를 풀기 위해 조건 없이 핵시설 파기를 선언하는 경우이다. 비밀 협상에 의한 4차 남북 정상회담도 하나의 시나리오는 될 수 있다. 이러한 돌발적 변수는 현재로선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세상의 일은 상식을 뛰어 넘는 경우도 있어 기다려 볼 필요가 있다.

2020-09-08

국민의힘 당의 과제

김영태대구취재본부 부장(부국장 대우)미래통힙당이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변경하고 새 출발했다. 새 당명을 두고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의 연대를 염두에 둔 작명이라는 말부터 당명과 관련한 여러 가지 추측이 회자됐고 당내 불만도 제기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동안의 경험상 정당명과 관련해 여당은 특별한 의미를 포함하기도 했고 야당은 선명성과 투쟁성 등을 포함하는 내용을 담는 데 주력했다.여야가 모두 당명변경 시 심혈을 기울인 데는 대통령 선거나 이슈가 되는 선거 등을 목전에 두고 이미지 쇄신에 주안점을 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야당은 주로 대여 투쟁강도를 높이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강했다. 특히 과거 민주당은 항상 ‘민주’라는 부분에 애착을 보이며 즐겨 사용했다. 이는 야당의 대여 압박카드로도 사용되는 등 야당의 역할을 다하겠다는 뜻도 포함돼 있다.현재 야당인 국민의힘 역시 국민을 우선시하고 국민의 뜻에 따르겠으니 국민의 힘을 보여달라는 주문성 명칭으로 판단된다.당명처럼 되려면 국민의힘 당 앞에는 산적한 과제가 놓여 있다. 우선 수적 우세를 통해 밀어붙이기를 강행하는 여당에 대한 견제와 실질적인 대안, 수구화되는 여당에 일침 등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나머지 야당들 역시 이 같은 부분에 매진해 창당의 목적인 정권창출을 노려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야당에는 이른바 여당의 잘못을 지적하고 실행하지 않을 때 압박하는 대여투쟁의 한 방법인 ‘저격수’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팩트를 바탕으로 여당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하는 물증과 증거를 토대로 여당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국민이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코로나19 정국인 현 정치상황에서 별다른 이슈거리가 없어 여러 저격수의 등장은 꽉막힌 정국의 돌파구가 되고 국민의 관심을 이끄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정상적인 정치 기사가 실종되다시피한 현정국에서 뜨거운 감자 역할은 물론이고 여당의 독주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현 여당이 과거 야당시절에는 이름난 여당 저격수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당 현실은 곽상도 의원을 비롯한 몇몇 의원들만 저격수로 나서는 상황이다. 적은 의석이지만, 과거 민주당이 집요하게 한 문제를 물고 늘어지며 여당의 항복선언이나 그 직전까지 치받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정치 상황은 야당이 이런 방법을 사용할 시기임에도 적극적으로 여당을 공격하는 저격수는 많지 않다.지난 총선 당시에도 여당발 각종 악재가 발생함에도 야당은 이를 전혀 활용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 것과 별다르지 않다. 당 비상대책위원장이나 원내대표가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것은 언발에 오줌누기에 불과하다. 이런 방식의 반복은 곧 국민에게 식상함만 제공할뿐이고 야당발 악재가 터지면 곧바로 잊혀진다는 사실은 그간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불문가지다.현재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여당발 의혹들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동시다발적인 저격수의 등장해야 하는 무대는 이미 보기 좋게 마련돼 있다.

2020-09-08

공평무사(公平無私)

춘추시대 진나라 평공(平公)이 기황양이라는 대신에게 물었다. “남양현을 다스릴 사람으로 누가 적당한지를 추천하라”고 했다. 그러자 기황양은 그 자리에서 바로 “해호가 가장 적임자 입니다”고 말했다.두 사람 사이를 잘 아는 평공은 깜짝 놀라 “내가 알기로 두 사람 사이가 원수지간인데 어찌 그 사람을 추천하는가”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그는 “전하께서 남양현을 잘 다스릴 사람을 물으셨지 나하고 관계를 물은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대답했다. 공평하여 사사로움이 없다는 뜻의 대공무사(大公無私)란 말의 유래에서 나온 이야기다.삼국지의 제갈량은 군기를 바로세우고 공정한 법 집행을 위해 그의 친구 동생인 마속의 목을 벤다. 눈물을 흘리며 마속의 목을 베었다는 읍참마속(泣斬馬謖)은 신상필벌을 엄정하게 집행할 때 쓰는 표현이다.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정의의 여신’은 눈을 가리고 있다. 또 한손에는 저울을, 다른 한손에는 칼을 쥐고 있다. 저울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겠다는 것이며 칼은 사회질서를 파괴 하는 자에 대한 제재를 의미한다. 눈을 가린 것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공평무사함을 견지하겠다는 의지의 뜻이다.공정한 사회란 자유경쟁이 허용되고, 출발과 과정에서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부패하지 않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도 마땅히 있어야 하는 사회를 말한다.추미애 법무부장관 아들의 군휴가 특혜 의혹을 둘러싼 여야간 공방이 점입가경이다. 이젠 사실에 입각한 진실 규명만이 문제를 풀 해법으로 보인다.야당의 특임검사 요청으로 실체 규명을 위한 검찰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지도 지금부터가 주목거리다. 그러나 이 사건의 핵심 포인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공평무사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9-08

초심(初心)을 잃어버린 대통령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초심이란 어떤 것인가? 초심은 순수하며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편견 없는 마음이다. 초심은 있는 그대로 보는 자세로서 비판단(non-judging)의 태도이며, 내편 네편을 구별하지 않는 열린 마음이다. 이처럼 겸손한 마음과 경청의 자세가 사실(fact)을 보는 정확한 눈을 가지게 해 준다.문 대통령의 초심은 취임사에 잘 나타나 있다.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대통령답게 ‘촛불초심’을 역설하였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며…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고…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며…약속을 지키는 솔직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에 대한 기대가 컸다. 게다가 윤석열 검찰총장에게는 “살아있는 권력도 수사하라”고 했으니 대통령의 좌우명이라는 ‘정자정야(政者正也)’를 믿었다.아뿔싸! 착각이었다. 대통령의 정치적 수사(修辭)에 현혹되어 ‘권력의 속성’을 잊었던 것이다. ‘권력의 맛’을 보자 마음이 바뀌었다. 통합과 공존의 초심을 잃었으니 나라는 두 동강 났고, 아전인수(我田引水)로 해석하는 평등·공정·정의는 개념부터 다시 규정해야 할 판이다. 대통령의 당부대로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총장을 제거하기 위해 측근감찰·조직개편·인사이동 등 온갖 압박을 가하는데도 대통령은 말이 없다. 이 정권의 특허품이 바로 ‘내로남불’과 ‘표리부동(表裏不同)’이다. 정치의 생명은 신뢰인데,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초심은 허언(虛言)이 된지 오래다. 대통령은 ‘정의의 편’이 아니라 ‘권력의 편’이었다.그럼에도 올해 초 연두기자회견에서 또 다시 “임기후반에도 초심을 잃지 않겠다.”고 했다. 기막힌 위선이다. 이미 초심을 잃어버렸는데 무슨 말장난인가? 예스맨(yes man)과 ‘문빠’들에 둘러싸여 있으니 민심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초심의 상실 여부는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 판단하는 것이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겠다는 초심이 지켜졌다면 왜 국민이 “나라가 니꺼냐”라고 항의하겠는가. 대통령이 초심을 잃었으니 주권자의 민심이 떠나는 것은 당연하다.권력자가 초심을 지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권력이 마약’임을 깨닫고 권력에 취하지 않아야하기 때문이다. 초심을 잃으면 민심을 받드는 ‘수단이 되어야 할 권력 자체가 목적’이 된다. 대통령이 정권재창출이나 퇴임 후 자신의 안전을 위하여 정략적으로 권력의 논리에 집착하면 할수록 불행의 길을 자초하게 된다. 우리의 헌정사를 보면 재임 중 권력으로 퇴임 후를 대비했던 어떤 대통령도 자신을 지켜내지는 못했다. 대통령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초심을 유지하는 것이다.‘선심초심(禪心初心)’을 쓴 스즈키 순류(鈴木俊降)는 “항상 시작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는 것이 초심을 유지하는 비법”이라고 했다. 문대통령도 2017년 5월 10일 국민에게 엄숙히 약속했던 통합과 협치, 공정과 정의, 겸손과 소통의 초심으로 돌아가서 ‘유종(有終)의 미(美)’를 거두기 바란다.

2020-09-07

캘리포니아 홍역

캘리포니아 홍역은 백신접종 등 전염병예방을 위한 지침준수를 개인의 판단에 맡겼다가 집단감염을 통제할 수 없게 된 대표적인 사례로, 2014년 캘리포니아주 디즈니랜드를 방문했던 9명의 아이들이 홍역에 감염된 것을 시작으로, 미 전역 7개주에서 140명이 넘는 홍역 환자가 발생한 것을 가리킨다. 홍역은 95%가 예방접종을 하면 집단면역이 형성돼 퇴치할 수 있다. 집단면역은 집단의 대부분이 감염병에 대한 면역성을 가졌을 때, 감염병의 확산이 느려지거나 멈추게 됨으로써 면역성이 없는 개체가 간접적인 보호를 받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문제는 그 당시 캘리포니아주는 개인의 종교적인 신념 등을 이유로 예방접종을 거부할 수 있었다. 특히 예방접종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의학논문이 부모들 사이에 반향을 일으키면서 접종 반대운동이 일어났다. 과학자들이 예방접종은 안전하다고 설득했지만 한번 자리잡은 대중의 믿음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고학력자들이 백신 반대운동을 주도했다. 그 결과 캘리포니아주는 예방접종 비율이 떨어져 집단면역이 붕괴되는 바람에 말 그대로 홍역을 앓았다. 그 직후 캘리포니아주는 백신의무화법을 제정, 시행중이다.역사적으로 고대 지중해의 초기 기독교는 이교도들이 병자들을 팽개치고 도망가는 와중에도 서로 도움을 줘서 교세를 확장하는 성공을 누렸다. 이후 1천여년이 넘은 현대에 이르러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사랑제일교회는 정부가 자제를 촉구했음에도 8월15일 반정부집회를 갖고, 국가의 방역정책과 질병관리본부의 지침에 정면도전함으로써 이 나라의 방역체계를 위협,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법원이 7일 전광훈 목사에 대한 보석취소 결정으로 140일만에 재수감토록 한 것은 자업자득, 인과응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9-07

코로나 블루를 살아가는 방법

용기내서 고백할게요. 저는 사람 이름과 얼굴을 잘 기억해내지 못하는 편입니다. 물론 요즘처럼 마스크로 무장하고 다녀서 그런 건 아니에요. 코로나 전염병이 돌기 전 부터 그랬으니까요. 특히 첫 만남이거나 한 번에 여러 사람과 악수로 인사 한 다음에는 어김없습니다. 어디에선가 불쑥 나타나 반갑게 눈길을 건네는 분들을 제가 몰라보는 것입니다. 게다가 저는 곧장 되묻습니다. 우리 언제 만난 적이 있던가요. 저를 아시나요. 어떤 분들은 까르르 웃습니다.게다가 취약하게도 저는 얼마 전까지만해도 사람뿐 아니라 곤충도 잘 알아채지 못하는 어른이었습니다. 시각적 센스가 둔해서 일까요. 부끄럽지만(특별히 초등학생 조카에게) 서울 도심에서 자란 저에게 여치, 메뚜기, 사마귀는 모두 엇비슷한 녹색 곤충으로 보였습니다. 그 특별한 사마귀가 우리 집 밥상 위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어떻게 그 유명한 사마귀도 몰라보나요? 사마귀는 누가봐도 사마귀인데 어린이가 항의해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때는 제가 그랬습니다.아침 메뉴로 어울리지 않지만 아무튼 그때, 저는 상추를 꼼꼼히 세척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풀빛 무언가가 제 오른팔을 폴짝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 사마귀 말입니다. 저는 그 곤충을 비닐봉지 안으로 생포하는데 성공한 겁니다. 숨구멍을 만들어 주고 푸른 잎사귀도 넣어주었습니다. 저는 사마귀를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긴장감. 혹시 네가 나에게 유해하지는 않을까 하는 공포에 오싹했습니다. 사마귀는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요. 퇴근하고 돌아오니 사마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신기한 노릇이지요. 한낱 곤충이 탈출하다니 말입니다. 숨구멍을 큼직하게 만들어 주었다고 자책해 보아도 소용없었습니다. 저는 사마귀의 행방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저처럼 사마귀를 몰라볼 정도로 주변에, 이웃에게 무관심한 어른이 또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코로나 공포 시대에 제가 만난 그 특별한 사마귀에 대해서 소곤소곤 말해줄게요. 그 사마귀는요, 짝짓기를 마친 그 암컷 사마귀는요, 제 짝꿍을 대놓고 잡아먹는 못된 육식 곤충이었데요. 그리고 지금은 그 악명높은 사마귀가 짝짓기 하는 계절이래요. 어떠신가요. 과연, 사마귀 이야기가 호랑이 아저씨보다 더 무시무시하고 코로나 전염병보다 더 무섭죠? /김정희(포항 남구 효성로88)

2020-09-07

‘No man is an island’

17세기 영국 시인 존던의 얼굴 사진과 그의 시 구절 “No man is an island.”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한지 얼마 되지 않아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전 세계로 다시 재 확산되고 있다. 1948년 세계보건기구(WHO) 설립 이후 세 번째 팬데믹(Pandemic) 공포가 전 인류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나는 친지의 죽음을 애도하는 장소에 참석하는 것조차 불편해지고, 고인에게 지상에서의 마지막 인사도 못하고 보내는 쓰라린 슬픔을 겪었다. 고인의 장례식에 참석을 하지 못하고 집콕하며 가슴 아파하던 중에 어떤 글귀가 나에게 왔다.“No man is an island.”(존던, John Donne)해석을 하면 “인간은 섬이 아니다. 아무도 혼자인 사람은 없다.”이다. 17세기 셰익스피어와 함께 영국 르네상스 문학을 대표하는 동시대 시인이자 성직자인 존 던이 쓴 기도문 형식의 산문에 나오는 일부이다. 존 던이 살았던 영국의 그 당시에도 전염병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한다. 존 던이 살던 마을에도 많은 사람이 전염병으로 죽었고, 그 때마다 교회에서 종을 울리게 했다. ‘종이 울렸구나, 누군가 죽었나보다.’ 그러던 어느 날 존 던마저 전염병에 걸려 병석에 누워있던 중에 그 종소리를 다시 듣게 되었고, 그 때 존 던이 느꼈던 그 종의 울림이 바로 자신일 수 있음을 깨닫고 쓰게 된 것이라고 한다. 이 시의 뒷부분에 “그 어떤 이의 죽음도 나를 작아지게 한다. 왜냐면 난 인류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이 있다.매스컴에서 코로나 감염으로 사망자 수치가 발표될 때마다 통계수치로만 읽었고, 그저 나와 내 가족만 조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가까운 지인의 죽음을 맞고 장례식장조차 가지 못해 집에서 슬픔을 온전히 껴안게 된 경험을 하고서야 타인의 죽음이 마음으로 다가왔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나는 마치 하나의 섬 같다. 그러나 그 어떤 사람도 섬으로 존재할 수 없고, 우리의 죽음도 예외일 수 없듯이, 그 어떤 누군가의 죽음도 ‘남의 일’로 치부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지인의 죽음을 슬퍼하는 나에게 상주는 온라인으로 장례식의 영상을 보내주었고, 생전의 모습을 영상으로 만들어 고인의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렇게 나는 사랑하는 고인을 보냈다. 바야흐로 언택트(Untact)에서 온택드(Ontact)시대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섬처럼 있는 나를 ‘연결(on)’하여 분리된 섬이 아니라, 서로를 연결하는 군도(群島)임을 느끼게 되었다. /김예원(경북 경주시 양북면)

2020-09-07

나의 춘장일기

시작은 이랬다. 코로나19 사태로 집안에서 먹는 식사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메뉴도 바닥나 도서관에서 요리책을 빌려왔다. 근래에 만들어 먹은 적이 없는 유니 짜장이 맛있어 보이길래 춘장과 필요한 재료들을 사 왔다. 마침 돌아오는 주말에 남해 지인댁에 감자를 캐러 갈 일이 있어 거기도 들고 갈 겸 짜장을 넉넉히 만들 생각이었다. 먼저 프라이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춘장을 볶기 시작했다. 다 볶아진 춘장을 기름과 분리하고 간장으로 간을 해 두었다. 이것을 냉장고에서 하룻밤 숙성시키고, 다음날 야채를 다지고 다짐육을 넣어 볶은 후 춘장과 녹말물을 섞어 짜장을 완성했는데, 춘장의 염도도 모르고 너무 많이 넣은 탓에 짜장이 너무 짜졌다. 어차피 남해에 들고 가려면 부족한 듯해서 다른 팬을 꺼내 같은 과정을 반복하되 이번에는 춘장을 적게 넣고 멸치육수 양을 적당히 조절해서 간을 싱겁게 한 후, 아까 만든 짜장과 섞어서 살짝 끓였다. 예전에 자연주의 식단으로 요리하시는 분의 요리 방법 중 짜장에 설탕대신 바나나로 단맛을 내는 것을 본 적이 있어 바나나도 숭덩숭덩 썰어 넣어주었다.이렇게 짜장을 만들고 나니 20분 거리에 사시는 시어른께도 만들어서 갖다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처음부터 양배추와 호박, 양파를 잘게 썰고 섞어서 끓이니 짜장 세 판, 아니 세 통을 만들게 되었다. 나는 밀폐용기에 세 번째 짜장을 담아 부리나케 들고 어머님께 갔다. “웬 짜장을 다 했냐?”라시며 반가이 받으시던 어머님은 맛도 안보시고, 얼마 전 가깝게 지내시는 분이 옆 동으로 이사 왔는데 좀 나눠먹어야겠다고 하시며 그 분과 그 분의 아드님까지 드시게 됐다.식단이 궁해서 사온 춘장 세 팩이 감자가 주렁주렁 달려 나오듯 뜻하지 않게 많은 사람들과 나눠 먹게 되는 기적의 밥상이 되었다. 아주 어릴 적에 놀았던 ‘쎄쎄쎄’의 노래 가사가 생각났다. “너 먹고, 나 먹고, 이 집 주고, 저 집 주고….” 행복한 유니 짜장이었다. /권현주(포항시 북구 장성동)

2020-09-07

작은 세계 속의 큰 세계

이른 아침, 안뜰은 이슬 축제로 수런거린다. 거미는 정교한 설계로 기하학적인 문양을 잣는다. 아이비 푸른 넝쿨 위로 보석들이 쏟아진다. 크리스털 목걸이 여러 겹을 둘렀다. 렌즈를 통해 들어온 보석이 영롱하다. ‘작은 세계 속의 큰 세계’, 새롭게 펼쳐진 우주가 경이롭다. 미시적 세계를 카메라에 담아 보면 우리가 인지하는 못하는 세계를 볼 수 있다. 햇빛 반짝하면 스러지고 말 ‘찰나의 꽃’이라 애틋하다.매슬로우는 일상에서 행복, 환희, 황홀, 기쁨을 느끼는 순간을 ‘절정체험’이라 했다. 강렬한 애정, 예술과의 만남, 보석 같은 글과의 만남, 여행지에서의 즐거운 체험, 대자연의 경이로움에의 매료 등을 들 수 있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수시로 절정체험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훈련이 필요하다. 많이 감탄하고, 많이 기뻐하고, 많이 축복할 일이다.삶은 목걸이를 하나 만들어놓고 여기에 진주를 하나씩 꿰는 과정이라고 한다. 사람의 눈을 넘어선 미시적 체험은 내 삶의 목걸이에 진주 한 알을 꿴다.행복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마주치는 것, 소유가 아닌 경험이라고 한다. 자연이 빚은 크리스털 목걸이 앞에서 ‘카르페 디엠’,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한다. 내게 주어진 삶을 사랑해야겠다./서정애 사진작가

2020-09-07

부끄러움이 없는 정치

강희룡 서예가조선 후기 학자이면서 문장가로 이름이 높았던 이의숙 선생은 그의 저서 ‘이재집, 잡설(頤齋集, 雜說)에서 자신의 역량을 헤아리지 못하고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을 이루기 위하여 일생을 허비하고, 뜬구름을 잡으려고 헛된 꿈을 꾸다가 삶을 송두리째 망치는 경우를 예를 들어 기록하고 있다. 그 첫째가 한 동자가 돌을 쌓아 시냇물을 막으려했으나 무너져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마을로 달려가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하여 아이들과 풀과 넝쿨을 베어 쌓고 그 위에 흙과 모래로 둑을 쌓아 반나절 정도 되어서 겨우 시냇물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물이 가득 차면서 또 둑이 터졌다. 둑이 터질수록 동자는 오히려 냇물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막았으나 둑은 터졌다. 이런 경우는 자신의 역량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다음으로 하늘을 날던 연이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달려가 주우려고 하였으나 가까이 있던 아이가 먼저 주워 가지고 갔다. 이미 다른 아이가 주워간 것을 모르고 쉬지 않고 달려가다가 간신히 연이 떨어진 곳에 이르러 연을 찾았으나, 연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오히려 하늘을 쳐다보면서 다시금 떨어진 연을 찾아 돌아다녔다. 이것은 한갓 헛수고만 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아이들이 시장 놀이를 하며 놀았는데 기와 조각과 여러 가지 기물을 벌여 놓고 나뭇잎을 따서 돈과 음식을 대신하였다. 서로 오가며 팔기도 하고 사기도 하면서 웃고 떠들며 시장놀이를 하였는데 한낮이 되도록 배고픈 줄도 모른 채 집으로 돌아가지 않자 아이의 아버지가 와서 나뭇잎과 기와 조각을 내던진 다음 집으로 데려와서 밥을 먹였다. 그러자 아이는 울면서 밥을 먹지 않은 채 그 놀이를 망친 것을 몹시 원망하였다. 이런 경우는 미혹된 것이라고 정리했다.위 예시 글에는 세 바보 아이의 행동이 나온다. 쉴 새 없이 흐르는 시냇물을 막으려고 한 행동, 다른 아이가 이미 주워간 연을 찾기 위해 온종일 헤매는 행동, 소꿉놀이에만 정신이 팔려 밥 먹는 것도 잊은 행동이다. 흐르는 물을 무슨 수로 막으며, 이미 주워간 연을 무슨 수로 찾으며, 소꿉놀이에서 먹은 가짜 밥이 어찌 배를 부르게 할 수 있겠는가! 이 글은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도 많은 생각을 해 보게 하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지금 우리 사회 전반에 펴져 있는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천민자본주의와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과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무한이기주의를 읽어낼 수 있다. 이러한 비민주적 사회적 바탕 속에서 한국 정치의 질은 국가의 운영이나 이 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과는 거리가 멀고 권력 및 지위나 이권 획득을 위해 선동과 분탕질이 난무하는 것이다. 정부의 해괴한 정책이나 개혁이란 이름으로 패거리의 비리를 감추려는 행태나 고위직을 이용한 사회 전반에 걸친 갑질의 행태를 기저(基底)로 편견과 오만의 정치가 지금 이 나라에서 국민 앞에 부끄럼도 없이 궤변으로 포장되어 난무하고 있다.

2020-09-07

태풍을 맞으며

윤영대수필가여름의 끝, 태풍의 계절이다. 7월까지 조용하던 태풍이 1년에 3개가 한반도를 넘어가는 2년 연속 3홈런의 태풍관측 사상 드문 대기록도 세우고 있다.이들 삼형제-바비, 마이삭, 하이선은 적도 부근 태평양에서 열대성 저기압으로 태어나 ‘아기 태풍’이 되었다가 점차 열기를 끌어들여 힘을 키우고 급기야는 서북쪽으로 밀고 올라오는 강력한 폭군 회오리바람이 된 것이다.셋째 하이선은 고수온 지역에서 오래 머무른 탓에 초속 50미터가 넘는 초강력 태풍이 되었고, 북쪽에서 내려오는 찬 기운과 남쪽의 고온다습한 공기가 충돌하여 집중호우로 엄청난 강수량을 보일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다.태풍 경로예측이 나라마다 약간 다르긴 하지만 하이선은 우리나라를 관통할 거라던 당초 예상과 달리 대륙 쪽에서 발달하는 차가운 공기가 매일 조금씩 동쪽으로 밀어붙여 대한해협을 빠져 동해를 북상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나 포항 앞바다를 가까이 지나 지난번 마이삭으로 피해를 입은 해안지역의 피해가 컸다고 한다.둘째 태풍 마이삭이 오던 날 엄청나다는 바람의 세기를 느껴볼 생각으로 새벽까지 눈을 뜨고 아파트 창밖을 내다보곤 했다. 한밤중 유리창을 마구 두드리고 정원의 나무들을 흔들어 대더니 갑자기 정전까지 시켜버렸다.아침에 눈을 떠보니 하늘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푸르른데 앞 정원의 나무는 뽑혀있고 베란다에는 물이 흥건하다. 문틀 아래로 솟구쳐 들어온 빗물에 나무마루가 젖고 있었다. 여태 겪어보지 못했던 일이라 서둘러 물을 퍼내고 닦으며 손 한번 안 대었던 난간과 밖 유리창도 이참에 깨끗이 씻었다. 태풍 덕분(?)에 앞뒤 베란다 청소도 깨끗이 했다.중국 대륙과 일본 섬 사이의 한반도는 태풍의 경로가 되기 쉽다. 태평양의 뜨거운 공기가 밀어 올리면 서해로 빠지면서 전라 충청의 논과 강을 넘치게 하고 대륙의 찬바람이 강해지면 동해로 밀려 경상 강원의 산과 바다를 뒤집으며 북쪽으로 올라간다. 세력이 비슷하면 한반도 중앙부를 관통하겠지. 우리 한반도는 어쩔 수 없이 이들 거대한 기류의 소용돌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우리나라는 지금 또 다른 태풍이 불어오고 있음을 느낀다. 코로나19의 먹구름 아래 정치권에서의 기압골이 마주치고 그사이에 민의(民意)의 강풍이 일어나고 있다. 서북쪽 기운의 사회주의 바람과 남동쪽 기운의 민주주의 바람이 큰 기압골을 형성하여 잔뜩 구름이 끼어있는 상태다. 희한하게도 태풍과 닮았다. 이 기압골이 세어지면 언젠가는 태풍으로 변할지도 모르겠지만 조용하게 안정되어 맑은 비나 뿌려 대지를 풍요롭게 적시고 밝은 하늘을 열어주었으면 한다.태풍은 나쁜 짓만 하는 것은 아니다. 대양의 물기를 뭉쳐와서 마른 땅의 가뭄을 해소시키고, 대기순환으로 먼지와 스모그를 씻어주기도 한다. 또 붉은 태양의 열기로 강과 바다의 색깔이 변하는 녹조와 적조 현상을 없애 수질 개선도 해주고 범지구적 에너지 순환을 돕기도 하는 등 우리 지구의 생태계를 안정되게 변화시켜주는 혜택을 주기도 한다.우리 사회에도 심각한 피해를 주는 사나운 태풍이 아니라 한 번쯤 시원하게 불어와서 깨끗하고 안정된 나라로 변화시켜주는 태풍은 없을까?

2020-09-07

불교는 실천의 종교… 영천 충효사(忠孝寺)

꿈자리가 어수선하여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 태풍이 북상중이라는 소식으로 하늘빛조차 우울한데 영천댐 백리길 벚나무들은 꽃이 없어도 그 눈빛은 시리지가 않다. 나는 차이콥스키의 안단테 칸타빌레의 볼륨을 좀 더 높인다. 서정적이고 차분한 음악과 터널을 이루는 나무들 사이로 비쳐드는 잔잔한 물빛까지, 완벽한 축복의 아침이다.보현산을 향해 달리던 차는 영천댐을 벗어나자 이내 충효사 앞에 이른다. 겉보기는 여느 사찰과 다름없이 평범하지만 어마어마한 크기의 오백나한상들 앞에서 무언가 색다른 분위기를 감지한다. 세계 최대 백옥 오백나한상은 석고로 빚은 듯 희디희다. 무심코 어느 나한상과 눈이 마주쳤는데 온몸이 오싹하다.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에서 생명력을 느꼈기 때문이다.석가모니 부처님의 가장 뛰어난 오백 명의 제자들, 나한의 법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신통력이 자유자재하다고 한다. 오백나한상을 참배하고 기도하면 오백 분의 부처님을 친견하는 것과 같으며 무량공덕을 짓는다고 하는데, 도망치듯 서둘러 빠져나오고 말았다. 나를 두렵게 한 그 눈빛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커다란 12지신상을 시작으로 불교 전시장을 들어선 듯 크고 작은 조각상들이 즐비하다. 청이끼가 낀 약사여래불과 넓은 중앙에는 지장보살과 통일지장보살, 육지장보살이 우뚝하고 그 뒤를 메우고 있는 1인 1지장보살들까지, 경내는 쉴 틈을 주지 않고 볼거리를 제공한다. 한 사람이 한 분의 지장보살을 모시게 되면 그 자체만으로도 업장소멸의 공덕을 쌓으며, 스스로 지장보살처럼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우러나 보살행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조상의 영구 위패가 모셔진 안양요까지 둘러보고 나니 영험한 지장보살 도량임이 드러난다. 오늘따라 사후의 세계가 왜 이토록 낯설고 멀게만 느껴질까. 이분법적인 사고에 갇혀 죽음과 삶을 분리시킨 채 떨고 있는 스스로를 지켜본다. 영가들은 편안히 잠들어 있는데 나만 잔뜩 긴장한 채 이방인처럼 헤매고 있다.볼거리가 많을수록 온갖 상상과 억측들이 고개를 내밀고 마음은 점점 더 심산해진다. 중심전각으로 보이는 삼세보전의 법당문을 열자 과거불인 연등불, 현세불인 석가모니불, 미래불인 미륵불이 봉안되어 있다.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 부처님을 모두 모신 전각이라 삼세보전이라 이름 붙여진 듯하다. 신중단에는 경북 유형문화재인 사룡산금정암제석탱을, 다른 면은 일천지장보살 목탱으로 이루어진 위모설법전도 여느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법당 안은 아늑하고 편안한데, 허리 통증이 오늘도 나를 시험에 들게 한다. 조심스럽게 좌복 위에 무릎을 꿇으며 절을 시작한다. 선풍기를 틀어놓아도 등줄기에서는 쉴 새 없이 땀이 흐른다. 반이라도 하겠다는 처음의 마음은 결국 백팔배로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때마침 단아한 비구니 스님이 사시 예불을 드리러 들어오신다.예불이 시작되는데 나가기도 난처하다. 혼자 예불 보실 스님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얼떨결에 동참하기로 하였다. 스님은 한 시간이 넘도록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예불을 드리는데, 예불 절차나 격식, 진언조차 모르는 내게는 인고의 시간이 따로 없다. 하지만 끝내고 나니 백팔배에서는 맛볼 수 없는 충만한 기운들이 전신을 휘감는다.인연이 닿아 회주 스님까지 뵐 수 있었다. 1993년 대웅전 하나로 시작한 충효사를 지금의 모습으로 사세를 확장시킨, 외모와 풍모가 수려하신 원로 스님이다. 덕을 갖춘 인자함과 사람을 편하게 하는 세련된 매너, 간간이 농담까지 곁들인 스님의 화술은 시간조차 잊게 만든다. ‘일체유심조’를 가슴에 새기고 21살 청춘의 나이로 생활하신다는 스님의 따뜻하고 경쾌한 미소가 곧 법문이다. 사찰 일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활동과 봉사로써 대중과 함께하는 스님은 깨달음과 해탈을 위해 수행하는 스님들과는 삶의 질감이 다르다.스님은 오백나한 중 455번째 조사에 오른 신라 성덕왕의 셋째 아들인 무상공존자의 후신이라는 현몽을 꾼 후, 곧바로 그 분의 수행처를 찾아다니며 큰 서원을 세웠다고 한다. 미륵보살이 나타날 때까지 석가모니불을 대행하는 지장보살을 많은 불자들이 영가천도 정도로만 떠올리는 것이 안타까워 세계적인 지장도량을 만들겠다는 큰 포부다. 떠도는 영가를 위해 기도하고 49제 지장제를 백 번이나 올렸다는 스님의 정성과 열정이 존경스럽다.조낭희 수필가사세가 기울어가는 천년고찰을 바라볼 때 밀려들던 안타까움과 달리 일촌의 역사를 가졌지만 충효사는 든든하고 희망적이다. 안이한 태도로 횟수만 거듭하는 나의 산사기행과 턱없이 부족한 불교 지식을 돌아보는 일조차 부끄러운데, 불교는 실천의 종교라는 말씀 앞에서 나는 또 한없이 작아진다. 모처럼 듣는 스님의 말씀이 단비가 되어 나를 적신다.충효사를 나와 영천댐이 보이는 곳에 잠시 차를 세운다. 구름이 가득 끼어 있으면 해가 보이지 않는다는 스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스님의 법문집을 펼쳐든다. 말씀처럼 글도 편안하다. 행간마다 꽃이 피듯 새로운 다짐과 공감대가 자리 잡는다.삶이 위태롭다고 느껴질 때 산사는 그 자체만으로 위안이 되고, 스님의 말씀은 따뜻한 섬김이 되어 나를 일으킨다.

2020-09-07

새로운 세상을 향한 구두끈을 묶으며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동쪽에서는 소련군이 폴란드를 지나 독일로 진격하고 있었으며, 남쪽과 서쪽으로 연합군의 독일 입성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패망 직전의 독일. 패망 직전의 독일을 살아가고 있는 10살 짜리 소년의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보여졌을까.1945년 독일에서 살고 있는 소년의 세상은 다양한 선택지 속에서 자신의 길을 택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다. 그가 말을 배우고 조금씩 더듬으며 세상을 향해 나아갈 때 오직 하나의 길만이 존재하는 세상이었다. 그 길을 벗어난 모든 것들은 악이었으며, 그 길 위에서 꿈을 키우고 희망을 찾는 ‘영광의 길’이었다. 그리고 그 영광의 길 위에 그의 절친이자 우상인 히틀러(상상속의)가 함께 한다.그 길 위에서 갈등과 고민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시각각 전달되는 전시상황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패전 직전의 모습들은 밝고 유쾌하게 그려진다. 소년의 세상은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는 그 시대 모습 속에서 한가로이 날고 있는 파란 나비의 모습처럼 보인다.어둡고 암울한 상황이 밝고 유쾌하게 그려지고 공포와 불안이 유머로 치환된다. 이미 알고 있는 모든 상황들을 오직 10살짜리 소년만이 동화 속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파시즘 속에서 태어나 전 생애를 파시즘 속에서 성장한 10살 짜리 소년에게 파시즘은 어떻게 자리잡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작동되며 그 소년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는가를 영화는 파고든다.엄마 로지와 단둘이 살아가고 있는 소년의 구두끈을 묶어주는 장면이 반복된다. 10살 짜리 소년이 당연히 가져야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기초적인 지식들을 전수할 수 없는 시대를 그리고 있는 영화 속에서 이 장면은 사소하게 다가와 묵직하게 남는다.구두끈을 묶는다는 것은 소년이 성장하며 당연히 익혀야 할 가장 기초적인 지식의 상징에서 출발해 삶과 죽음의 상황을 가르는 기준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또 다른 상황의 출발점에서 다시 등장한다.갈등 없는 세상 속에서 오직 전달된 명령을 이행할 수 있는 ‘용기’의 함량만이 존재하는 소년의 동화같은 세상에 균열이 일어난다. 우연히 집에 몰래 숨어 있던 유대인 소녀 엘사를 발견하게 되면서 소년을 지탱해오던 세계관이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가를 보여준다.머리에 뿔이 난 유대인 괴물의 대면에서 시시각각 패망의 길로 치닫고 있는 독일의 상황 속에서 상상 속 히틀러와 나누던 대화들이 미묘하게 변화하는 과정들이 이어지면서 균열된 세계관에 비로소 객관적인 시선이 자리를 잡는다. 이제 소년 앞에는 오직 한 길만이 존재하던 상황에서 또 다른 길을 갈 것인가로 고민하게 만든다.영화 ‘조조 래빗’은 시대에 의해 만들어졌던 선입견을 깨는 과정의 영화다. 파시즘 속에서 태어나 성장한 소년의 선입견이 깨어지는 과정을 엉뚱하고 재기발랄하게 보여준다. 그동안 숱하게 영화화 되었던 홀로코스트에 관한 틀에서 벗어나 또 다른 방향의 시선을 제시하고 있다.연합군과 유대인의 시선에서 독일 아이의 시선을 택한 것이 그것이다. 전쟁과 학살의 주제를 무겁고 우울하게, 그리고 사실적으로 그리고자 했던 이전의 영화와 다르게 밝고 앙증맞으며, 웃음으로 비극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소년의 세상에서 ‘용기’의 함량만이 문제가 되었던 인생에서 의문과 갈등이 자리잡는다. 괴물이며 악마였던 유대인 소녀와의 만남에서 절대적 인물이며 절대적 선의 경지에 있던 나치가 서서히 위치를 바꿔가기 시작한다.변화의 과정은 예측 가능하고, 소년의 각성과 성장은 기대치를 벗어나지 않는다. 비록 성긴 구성을 따라 예상했던 결과에 도달하고 있지만 감독의 시선이 과하지 않은 미덕을 지니고 있다. 좀 더 깊이 들어가서 웃음을 유발하거나 비극의 극적인 상황을 더 크게 만들 수도 있었지만 적절한 시점에서 멈춘다.감독의 의도는 10살 소년이 세상에 대해서 가졌을 심각함의 정도만큼 머문다. 모두가 알고 있는 그때의 상황에 단순하고 엉뚱한 시선으로 우리를 이끈다.조조는 전쟁이 끝나고 새로운 세상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 드디어 세상으로 나온 유대인 소녀의 구두끈을 묶어준다.꺠어진 세계관에 또 다른 선택지가 놓인 길로 들어갔음을 상징한다./문화기획사 엔진42 대표

2020-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