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권력자들의 너무 다른 언론관

등록일 2021-03-21 19:48 게재일 2021-03-22 19면
스크랩버튼
심충택<br>논설위원
심충택논설위원

대구에서 재선을 한 모 국회의원은 지역구에 내려와 기자들을 만날 때면 “기자만 없으면 국회의원이 최고의 직업인데 말이야….”라는 말을 자주 했다. 전 공직자 감사권과 회기 중 불체포특권 등 보통 국민과 비교해 백 개도 넘는 특권을 가졌으니 대통령도 부럽지 않은데 기자만 만나면 숙제를 안 한 사람처럼 찝찝하다는 것이다. 언론으로부터 감시를 당하고 있다는 의식을 하면 헌법기관이라는 책임감이 무겁게 느껴지고 국회 본회의장이나 국정감사장, 지역구에서 함부로 자세를 흩트릴 수 없다는 말도 했다.

지난 주말(18일) 한국 방문 중 젊은 기자들과 화상 간담회를 가진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공직자로서 때로는 언론이 고맙지 않지만, 그래도 감사하다”고 했다는 기사를 읽고 정치부 기자 때 허물없이 지냈던 그 국회의원이 생각났다. 기자에 대해 두 사람 다 그렇게 호의적이지는 않지만 건전한 사회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직업이라는 데는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블링컨 장관은 “민주주의에서 자유 언론은 필수다. 언론의 힘이 곧 대한민국의 힘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최근 미국 하원 법사위에서 코로나19로 인해 경영난을 겪고 있는 소규모 언론사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포털이나 소셜미디어 업체에 ‘기사사용료 부과를 위한 입법’을 추진한다는 뉴스를 보고 참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이미 호주, 유럽에서는 구글이나 페이스북에 게재되는 뉴스에 해당 언론사들이 사용료를 받고 있는데 미국도 법안을 만들어 이를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미국에서는 포털이나 소셜미디어 업체들이 뉴스 전재로 인한 광고 수입을 언론사와 공유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미국이나 유럽 권력자들의 민주적인 언론관을 대하면 우리 상황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느낌을 가진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달 중 언론사가 ‘거짓뉴스’를 내 보내면 최대 3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리는 법안을 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했다. 거짓뉴스는 권력자들이 입맛대로 판단할 수 있는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다. 지금은 권력자들이 자신들과 다른 비판의견이 나오면 가짜 뉴스로 몰아붙이는 세상이 아닌가. 국회 상임위의 검토보고서도 “민법상 손해배상이나 형사처벌 제도와 중첩돼 헌법상 과잉 금지 원칙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고 적시했지만, 블링컨과 같이 기자 출신인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이 법안을 두고 “피해자 구제를 위한 미디어 민생법이자 국민의 권리와 명예, 사회의 안정과 신뢰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장치”라고 말했다.

지난 2017년 4월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지방지 기자들과 만나 “언론의 자유는 헌법적 가치”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해야 하며, 언론의 감시와 비판 기능이 제대로 살아나게 만들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을 비롯한 현 정부 권력자들은 이미 늦은 감은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언론의 자유가 왜 지켜져야 하는지를 되새겨 보고 선진국들로부터 비웃음을 당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심충택 시평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