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수선화예요. 봄까치꽃과 꽃다지도 폈어요. 봄꽃 잔치에요!”
한 학생이 아침 급식 지도를 마치고 교무실로 가는 필자를 불렀다. 운동장이 좁을 정도로 다른 학생들은 마스크를 쓴 채 운동장에서 활발하게 봄맞이를 하고 있었다. 학생들의 에너지에 버거움을 느낀 땅이 뽀얀 먼지 숨을 거칠게 토해낼 정도로 활발한 학생들의 모습은 생명을 밀어 올리기 시작한 봄 그 자체였다. 봄에 봄을 닮은 학생의 모습을 보는 즐거움은 최고다.
학생들이 봄인 이유 중 하나는 다양성이다. 축구를 하는 아이들, 농구를 하는 아이들, 그네를 타는 아이들, 드럼을 치는 아이들, 산책하는 아이들 등 저마다의 방법으로 1교시 수업 전 10분의 쉬는 시간을 보내는 50명의 학생은 분명 이름만큼이나 다양한 봄꽃들이다. 그중 필자를 불러세운 학생은 화단에서 키를 한껏 낮추고 봄꽃들과 인사를 나누는 중이었다.
“수선화 꽃말이 뭔지 아세요? 자기사랑이에요. 그래서인지 다른 봄꽃과는 달리 훨씬 커요.”
학생의 말을 들었는지 수선화는 활짝 더 폈다. 수선화조차 춤추게 하는 학생의 따뜻한 마음에 화단에서 잠시 게으름을 피우던 다른 들꽃도 열심히 꽃대를 밀어 올렸다. 필자는 필자의 그림자가 학생과 들꽃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학생보다 더 키를 낮추었다. 그러면서 보았다, 학생과 인사를 하는 더 많은 들꽃을. 그들과 필자도 반갑게 꽃 인사를 나누었다.
들꽃과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준 학생이 고마웠다. 과연 학생은 들꽃들과 어떤 인사를 나누었는지 물어보려고 하는데,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쳤다. 학생은 혹시나 들꽃들이 다칠까 봐 조심히 발을 옮겨 화단을 나갔다. 그리고 빠르게 교실로 뛰어갔다. 학생이 떠난 자리가 하도 따뜻해서 그 자리로 가려다가 보았다, 필자가 밟고 있는 들꽃들을. 하지만 학생이 앉은 자리는 움이 돋기 전의 땅이었다. 필자는 필자의 부주의를 깊이 반성했다.
학생들이 떠난 운동장을 보았다. 비록 비어 있지만, 운동장은 전혀 쓸쓸하지 않았다. 학생들이 남겨 놓은 웃음들이 들꽃의 응원을 받아 곧 쏟아져 나올 학생들을 위해 운동장을 더 따뜻하게 만들고 있었다. 인간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여전히 잡히지 않는 코로나-19와 좀스러운 정치인들의 좀스러운 정치 이야기에 한겨울을 사는 필자에게 학생들은 봄을 선물해주었다.
봄꽃 소식만큼이나 따뜻한 교육 이야기 하나를 전한다. 필자는 지금까지 대안학교 학생들이 받는 교육계의 불평등과 불공정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 해왔다. 그런데 이제 경북 소재 대안학교에도 따뜻한 봄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경북교육청과 영천시청, 그리고 천주교대구대교구가 공동 투자한 산자연중학교 체육관이 1년 여의 공사를 마치고 드디어 준공식을 열었다.
이 체육관의 의미는 민관이 합작하여 지은 경북 소재 대안학교 1호 체육관이라는 것이다. 따뜻한 경북교육을 지향하는 경북교육청이 시작한 교육 불평등, 불공정 깨기가 들불처럼 피어나는 들꽃처럼 교육부, 정부로 이어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