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재건축 아파트 철거작업이 끝나자 / 마지막으로 나무들이 철거되기 시작한다 / 아직 봄은 오지 않았는데 / 뿌리를 꼭 껴안고 있던 흙을 새끼줄로 동여매고 / 하늘을 우러러보던 나뭇가지를 땅바닥에 질질 끌고 / 이삿짐 트럭에 실려가는 힘없는 나무 뒤를 / 까치들이 따라간다 / 울지도 않고 / 아슬아슬 아직 까치집이 그대로 남아 있는 나무 뒤를 / 울지도 않고”
2004년에 창작과 비평사에서 정호승 시인이 펴낸 시집 ‘이 짧은 시간 동안’에 실린 시 ‘이사’의 전문(全文)이다. 시인은 아파트 단지의 철거로 까치집을 그대로 얹은 채 뿌리째 뽑혀나간 나무들에 대한 아릿한 심사를 이렇게 그렸다.
내가 사는 동네 근처의 아파트가 재건축이 되면서 지난 가을부터 집들이 하나둘 비워지기 시작했다. 가을 끝 무렵에는 주민들의 이주로 텅 빈 아파트 건물들만이 괴이한 모습으로 줄지어 겨울을 맞이했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건물 사이사이에 꿋꿋이 버티고 을씨년스러움을 가려줘 그나마 다행인 듯 보였다. 아파트가 들어설 때 심어졌을 테니 못해도 삼사십 년은 된 나무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얼마 뒤 나무들이 댕강댕강 잘린 채 차량 빠진 아파트 주차장에 널부러져 있는 모습을 보게 됐다.
정호승 시인은 아파트가 철거되고 마지막으로 나무가 철거됐다고 했는데 내가 본 재건축 아파트 단지의 철거 모습은 사뭇 달랐다. 가가호호 집들이 비워지자 맨 먼저 철거된 것은 건물이 아니라 나무들이었다. 재건축 단지의 나무들은 뿌리에 흙을 새끼줄로 동여매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 것이 아니고 까치 둥지를 가지에 건 채로 토막토막 잘려 자기의 천명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안전진단에서 위험 판정을 받지 않은 아파트 건물이지만 사람들의 재산가치 증식을 위해 재건축 결정이 나고 철거가 시작되면서 아파트 주민들에게 맑은 공기를 베풀고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 주던 나무들의 수십 년 길지 않은 삶은 사람들의 욕망에 스러져 갔다.
재건축으로 못해도 몇 억의 재산가치가 상승할 터인데 그깟 나무들이 잘려나가는 것이 무슨 대수랴. 까치 둥지가 허물어지는 것, 까치가 집을 잃고 헤매는 것은 내 알 바 아니다. 과연 그럴까? 김광섭 시인은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성북동 비둘기만 번지가 없어졌다고 했다. 비둘기에겐 애초부터 번지라는 것은 없었으려니와, 있고 없고는 둘째 문제이고 살아온 터전을 잃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야 하는 새들의 삶이 애처롭다.
성북동 골짜기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와 도시 한복판 아파트 단지의 길조 까치가 집을 잃고, 나무들이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잘려나가는 일은 이 땅에 인간이 존재하는 한, 사람들의 욕심이 끝모르게 이어지는 한 계속돼야 하는 운명일까. 더욱이 재건축, 재개발로 점점 외곽으로 밀려나는 서민들의 아픔과 슬픔은 이루 말하기조차 어렵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까치는 울지 않아도 가슴 속에 한 줄기 뜨겁고 검은 물이 흐른다. 우리들 이사가 몸과 물질의 안녕만을 위한 이사가 아니라 정서의 안녕과 사랑도 함께 도모할 수 있는 이사가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