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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라를 찾아서

요즘 역사책에 푹 빠져있는 큰딸 시은이가 신라에 대해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재잘재잘 질문이 많아졌다. 그런 딸아이를 보면서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나도 중학교 국사 시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입담 좋으신 국사 선생님의 역사 이야기가 할아버지께서 들려주는 옛이야기 같아 수업시간이 늘 즐거웠다. 그런 성향을 큰애가 똑 닮았나 보다. 이참에 관심을 흥미로 바꿔주려고 주말에 경주 문무대왕릉을 보러 가자고 했다. 역사에 대해 글을 쓰고 있는 지인 찬스를 쓰기로 했다. 들려주는 추천코스는 경주 읍천항(파도 소리길) - 경주 문무대왕릉 - 감은사지 2013 이견대였다. 늦잠을 자고 있던 남편을 깨우고 간단하게 간식도 챙겨서 경주로 가족 나들이 떠났다.읍천항은 바다에서 솟은 주상절리가 길을 안내했다. 둘레길을 걸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꽃피우고, 간간이 인증샷도 남겼다. 바닷길을 달리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문무대왕릉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훨훨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이 문무왕 곁을 지켜주고 있는듯했다.차로 5분 거리의 감은사지에 도착했다. 절은 사라지고 탑 두 기만 남아 언덕을 채우고 있었다. 문무왕이 짓기 시작해 아들인 신문왕이 완성하였다. 쌍둥이 석탑을 우러러보았다.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가장 큰 석탑으로 금당 아래 석축 사이 공간으로 동해의 물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문무왕이 용이 되어 오가던 길이라고 한다. 옛 선조들의 지혜와 기술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러는 사이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두 딸을 불러서, 만파식적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진지하게 들어주는 아이들이 그저 고맙고 대견스러웠다.마지막 코스인 이견대로 발길을 돌렸다. 탁 트인 이견대에서 문무왕릉을 바라보면서, 죽어서라도 용이 되어 왜구를 지키고자 했던 문무왕이 떠올라 마음이 울컥했다. 아이들에게 역사를 알려주려다 내가 더 감동을 얻어 온 하루였다. /엄민재(포항시 북구 삼호로)

2020-11-16

냉동고 타령

데레사가 소리를 지른다. “여보! 큰일 났어. 냉동실이 고장 났는지 다 녹아내리고 있어. 빨리 와봐.” 달려가 보니 냉동식품들이 해동 중이었다. 냉동실에는 얼어있는 물건들이 많고 단열이 잘 되어있어 문만 여닫지 않으면 하루 이틀은 버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데레사에게 냉장고 문을 절대 열지 말라고 이르곤 A/S 센터에 전화했다.담당자가 이것저것을 묻더니 냉동실 상부 두 군데에 찬바람이 나오는 구멍이 있는데 혹시 얼음으로 막히지 않았는지 살펴보라고 한다. 그러면서 종종 식품이 바람 통로를 막아 냉동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였다.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냉동실 문을 여는 순간 반쯤 녹은 덩어리가 떨어지며 발 등을 때린다. 이것은 냉장고가 아니다. 무슨 창고나 식품상이다. 틈도 없이 꽉꽉이다. 얼음을 제거하고 공기 통로를 열어 놓은 뒤 이틀이 지나 확인해보니 정상적으로 작동됐다.냉동실에 무엇이 들었는지, 언제 넣은 것인 줄 아느냐니까 다 알고 있으니 걱정을 ‘하덜덜’ 말라고 한다. 우리 두 식구 사는 집에 684리터짜리 냉장고와 199리터 크기의 김치 냉장고가 있다. 그런데도 일이 생길 때마다 냉동고 타령을 하며 냉동고 없는 집은 우리 집뿐이라고 한다. 만약 내가 냉동고를 사 준다 해도 반년쯤 지나면 또 꽉 꽉 들어찰 것이고 그때는 업소용 냉동고로 바꾸어 달라고 할 것 같다. 사십오 년 전 결혼 다음 해 12월 보너스 타서 180리터짜리 냉장고를 샀다. 그날 밤 데레사는 얼마나 좋았던지 한밤중 자다 말고 일어나 냉장고를 닦았었다. 그때 그 사람이 맞는가 묻고 싶다.요즈음은 자동차공장에서도 부품창고가 없다고 했다. 조립에 필요한 부품을 공장에서 바로 조립장으로 들여오므로 창고며 부품을 관리하고 운반하는 비용을 없앴다고 한다. 사용빈도가 높지 않은 식품들은 마트의 신선 코너에 보관하는 것은 어떨까 하고 묻고 싶다./류대열(경주시 외동읍)

2020-11-16

꿩에서 얻는 교훈

강희룡 서예가부모자식 관계는 농부와 곡식으로 비유된다. 농부가 곡식을 잘못 가꾸면 결국 굶주림의 환난을 겪게 되고, 자식을 잘 가르치지 못하면 필경에는 위험한 화란(禍亂)을 초래한다. 곡식을 잘 가꾸고 자식을 잘 가르치는 법을 어찌 조금이라도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조선 초기 대학자였던 사숙재 강희맹은 아들의 교육을 위해 훈자오설(訓子五說)을 짓는다. 아비가 자식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기에 사숙재가 지은 이 글은 오늘날 독자에게 교훈을 전달하는 교술 갈래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훈자오설 중 성질이 음탕하고 싸우기를 좋아한다는 꿩에 비유한 ‘삼치설(三雉說)’의 내용이다. 수풀에 숨어서 피리로 암컷소리를 내며 미끼로 삼은 수컷을 움직이면 암컷과 함께 있는 것으로 착각한 욕심 많은 다른 수컷이 화를 못 참아 미혹에 빠지는 경우로 닥칠 재앙을 잊고 다가와 단번에 잡히는 경우이다. 이런 유형은 자신의 내면이 이기심으로만 가득 차 있기에 방탕하며 부모나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도 않아, 엄히 가르치지 못하고 마땅히 꾸짖을 수 없으며, 부끄러움조차 없기에 죄의식 없이 잘못을 저질러 스스로 죄의 그물에 걸리는 경우로 평생 지혜를 깨우치지 못하고 비참한 삶을 살게 된다.두 번째 경우는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유혹하면 못 본 척 하다가 같은 행동의 반복에 결국 욕망을 못 참고 미혹되어 미끼 쪽으로 다가오나 미리 경계심으로 방비를 하기에 완벽하게 속여야 겨우 잡을 수 있는 경우이다. 꿩 중에서 조금 영리하여 자신에게 닥칠 재앙을 미리 짐작하고 있는 경우로, 이미 한두 번 미혹되어 고생하고 뉘우치면서도 오히려 그 감정에 빠져 다시 부끄러움을 잊고 전철을 밟아서 마침내 재앙의 그물에 걸리는 두 번 덮쳐서 잡는 부류이다.끝으로 사람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하늘로 날아올라 숲 속으로 들어가는 경계심이 많은 꿩의 경우이다. 욕심이 적고 경계심은 앞서는 까닭에 사람을 꺼려해서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다. 온갖 술책을 다 써서 겨우 가까이 오게 했을지라도 그 민첩한 모양새가 마치 신과 같아 어떻게 기회를 잡아 술책을 펼 수도 없다. 꿩 중에서 가장 영특해 해로움을 멀리하는 종류이다. 이런 유형은 품성이 단정하고 굳건해 맑게 갈고 닦음을 좋아하고, 음탕하고 황당한 것을 부끄럽게 여겨 멀리한다.위에서 열거한 세 종류에서 첫 번째 인간형은 내면이 일그러진 욕망으로 가득차서 결국 그로 인해 자신이 미혹에 빠졌다는 사실도 모르기에 부끄러움도 없다. 혹시 있다고 해도 고칠 생각이 없는 극우나 극좌의 진영론자, 죄의식 없는 강력범죄자, 직을 이용한 부패나 비리의 공직자나 위정자들, 정의와 공정을 외치며 스스로 정한 규정을 이익에 따라 헌신짝처럼 팽개치는 부류들이다. 미혹에 빠져 후회하면서 또 다른 유혹에 넘어가는 부류는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위정자나 관료로서의 자질이 없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장식품에 불과하다. 끝으로 뉘우쳐 후회할 줄 알기에 유흥을 단절하고 부정한 권력에 굴하지 않으며 올곧은 선비정신을 좇아 날로 새롭게 갈고 닦아 평생 재앙을 모면하는 이상적인 형이다. 이렇듯 15세기 꿩에 비유한 사숙재의 교훈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2020-11-16

패배의 아픔으로 지은 불멸의 건축물

박문하전 포항시의회 의장16세기 초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활동했던 두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가 있다.다빈치는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 등 주로 그림을 그렸고, 미켈란젤로는 ‘피에타’와 ‘다비드’ 같은 조각을 남겼다. 20여 년의 터울을 두고 활동한 이들은 작품의 이름만 들어도 다 알 수 있는 수많은 걸작들을 역사에 남긴 상호 존중과 품격의 모드를 갖춘 선의의 라이벌이었다. 하지만 배경이 조금 다른 라이벌이 있었으니 브루넬레스키와 기베르티로 처음엔 둘 다 조각가였으며 명성은 다소 생소하지만 경쟁과정과 승패의 대립구도는 앞선 라이벌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격렬했다.1401년 유럽인구 3분의 1을 집어삼킨 페스트의 상처가 아물어가고 있을 때 예술의 도시 피렌체는 도시분위기 일신의 차원으로 조반니 세레 당을 치장하는 사업공모를 내걸었다.내로라하는 당대의 미술가들이 공모에 참여했고 결승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22살의 견습 화가 기베르티와 한 살 위인 금 세공사 브루넬레스키 두명 이었고 이들에겐 바로 34kg의 청동판 위에 일년 동안 4엽 장식으로 구약 성서에 나오는 ‘이삭의 희생’을 표현하라는 오더가 내려졌다.이 숙명적인 세기의 대결에서 유실 왁스기법의 작품을 제출한 기베르티가 최후의 승자로 낙점됐고 승자가 된 기베르티는 1403년 피렌체시와 동쪽 문에 28개의 부조를 만드는 계약을 체결하고 21년 후에 완성했다. 그렇다면 패자가 된 브루넬레스키의 행보는 어떠했을지 궁금하다. 세계의 저명한 건축가들은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건축물 중의 하나로 ‘피렌체 대성당’을 선택하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5세기 초에 건립된 작은 교회를 대도시로 성장한 피렌체 시에 걸맞게 웅장한 규모로 개축하기 시작한 해는 1천296년이었고 1천436년에야 완공됐다.140년 동안 쟁쟁한 건축가들이 건설 현장을 수없이 다녀갔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건축가는 단 한 명 브루넬레스키 뿐이다.종전의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55m 높이의 팔각형 건물 위에 직경 45m가 넘는 거대한 돔 지붕을 얹는 대과업이 그의 집념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혼자서 기중기를 개발하여 3만7천여 톤에 달하는 건축자재를 들어올리고 400만개의 붉은 벽돌을 쌓아 올려 스스로 지탱하는 기적과도 같은 돔을 완성했다.그는 죽은 뒤 성인이 아니면 허락하지 않았던 대성당의 지하납골당에 묻혔다. 거친 경쟁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이길 때보다 질 때를 더 많이 경험한다. 그러나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 다음에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다.기베르티에게 패한 다음 그대로 주저앉았다면 피렌체 대성당은 여전히 비가 들이치는 뻥 뚫린 구멍을 간직한 초라한 건축물로 남아있었을 것이다.라이벌 대결에서 패배하여 좌절한 마음을 달래며 로마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고 마침내 피렌체로 다시 돌아와 세계 건축사에 오래도록 기억될 불멸의 명작을 남긴 한 인간의 열정과 가슴 뭉클한 인생역정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결코 적지 않음을 그 흔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2020-11-16

우리의 인연이 다하는 그날까지… 통영 도솔암(兜率庵)

가을날의 하루는 유난히 짧다. 용화사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는 산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숲은 부산하게 하루를 접고 있었다. 용화사 오르는 반대편으로 넓은 시멘트 길이 시원하게 산으로 이어져 있지만 우리는 걸어서 도솔암을 오르기로 했다. 만만치 않은 비탈길에서 뿜어내는 거친 숨소리가 고요한 숲을 깨운다.지척에 있을 거라 여겼던 도솔암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데, 친구는 지친 기색도 없이 잘도 오른다. 관음암으로 향하는 자동차가 우리 곁을 가볍게 지나칠 때마다 그 편안함이 부럽지만 우리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급한 마음으로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뒤늦게 놓친 것들을 알고 얼마나 안타까웠던가. 사위어가는 가을 숲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는 즐거움도 크다.‘소치는 사람이 채찍으로 소를 목장으로 몰고 가듯 늙음과 죽음은 중생의 목숨을 몰고 간다.’중간중간 비석처럼 서 있는 글귀들이 피곤함을 잊게 한다. 어디로 흘러가는지 스스로를 돌아볼 여가 없이 세월에 쫓겨 생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는 만나는 글귀들을 주제로 삼아 소소한 마음밭을 일군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이끌려 살아온 숱한 시간들을 이 곳에 내려놓고 갔을까. 가파른 길은 겸허해지고 아파오는 다리와 거친 숨소리가 뿌듯하다.관음암을 지나고 미륵산 정상으로 향하는 오솔길과 헤어진 후에야 도솔암이 보인다. 고려 태조 26년(943년) 도솔선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한때는 남방제일선원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도솔암은 한국 불교 선종의 고승인 효봉스님이 6.25전쟁 직후 제자인 구산 스님과 함께 이곳에서 선종의 법맥을 계승하였다.도솔선사가 미륵산 암굴에서 수도할 때 호랑이와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어느 날 호랑이가 처녀를 업어와 바치자, 선사는 호랑이를 꾸짖고 처녀를 고향으로 데려간다. 처녀의 아버지가 은혜를 갚기 위해 300냥을 선사해 그 돈으로 도솔암이 지어졌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어느 절에나 있을 법한 설화는 신빙성이 없지만 도솔암 위쪽에는 여전히 바위굴이 남아 있다고 한다.절은 조용하다. ‘컹’하고 외마디로 짖던 누렁이의 눈빛도 이내 무심해진다. 가을 앓이를 하는지 조용한 산사를 찾아든 객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꼬리를 흔들며 반기거나 경계심으로 불안해 하지도 않는다. 온전히 자유롭다. 그의 이름은 보리이거나 반야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스님은 출타 중이신 듯하다. 하루치의 낙엽이 가만가만 뜰아래로 모여들고 있다.늦가을 늦은 오후의 정취로 마음이 심산해지는데 도솔암은 통영 앞 바다를 그윽하게 내려다 볼 뿐 흔들림이 없다. 선지식 효봉 스님을 생각하며 절을 둘러본다. 일제 강점기 와세다 대학 법대를 졸업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판사가 되었지만 조선인에게 사형을 선고한 후 양심의 가책을 받아 승려가 되었다는 전설 같은 일화를 남긴 분이다. 전쟁이 나자 부산으로 피난 갔다가 여수로 가던 중 뱃멀미가 심해 잠시 통영과 인연을 맺게 된다.마침 용화산 도솔암이 비어 있어서 며칠 쉬었다 갈 요량으로 주저앉다 아주 눌러 살게 되었다고 한다. 효봉 스님은 수행을 시작하면 엉덩이가 짓물러 깔고 있던 방석이 엉덩이에 달라붙을 정도로 꼼짝하지 않아서 절구통 수좌라고 불렸다. 그리고 동료 스님을 고자질하던 제자에게 “너나 잘해라.”고 소리를 치셔서 ‘너나 잘해라’ 스님으로 불리기도 했다.조낭희 수필가편백나무가 울창한 미륵산 미래사에서 효봉 스님의 부도를 본 듯한데 이곳 도솔암에서는 효봉 스님에 대한 어떤 자취나 이야기도 들을 수가 없다. 그래서일까? 대웅전이나 동국 선원보다 요사채의 쓸쓸함과 담장 밖에 선 오랜 느티나무가 떠난 스님이 남기고 간 법문처럼 가슴을 파고든다. 벽속에서 울어대는 겨울 귀뚜라미처럼 절 안에 갇혀 세상을 읽던 그 서슬 푸른 기운은 사라지고, 도솔암의 텅 빈 눈빛 속에는 그렁그렁 그리움이 잠겨 있다.대웅전 가는 길에 ‘말씀은 가만가만’ ‘걸음은 조용조용’ 이란 음각으로 새긴 글자가 맹숭맹숭하게 쳐다본다. 누구를 향한 글귀일까. 성성하게 푸른 기운이 살아 있을 경내, 발소리 낮춰가며 들어섰을 한 때의 도솔암을 그려본다. 수행하는 스님이 신경 쓰여 걸음을 눌러 밟고 숨죽이며 법당 문고리를 당겨 보고 싶다. 가는 절마다 번듯한 선원들이 비어 있듯 쓸쓸하다. 우리는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잠시 대웅전에 들러 기도한다. 남의 시선에 휘둘림 없이 마음의 주인으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는 친구는 언제나 내 삶의 질을 돌아보게 만든다. 인연이 다하는 그날까지 참 좋은 인연이 되기를 기도한다. 우리는 어떤 인과 관계에 얽혀 이곳까지 함께 떠나올 수 있었는지 그 오랜 인연에 대해서도 감사한다. 우리가 갖는 순간순간의 생각이나 염원은 우주에 남아 진동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의 인연도 사랑의 파장으로 진동할 수 있으면 좋겠다. 들꽃이 흔들리듯 향기롭고 잔잔했으면 좋겠다.짧은 기도를 끝내고 법당을 나설 때 고목의 느티나무는 여전히 맑은 기운 성성하고, 친구는 마당을 서성이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륵산에 얼굴을 묻은 작은 바다 홀로 먼 데를 꿈꾸듯 항해 중이다.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닌 달, 11월의 도솔암은 하나의 큰 말씀으로 남을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2020-11-16

보기에 좋았던 것들이 사라지는 시간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그 이유를 말씀하지 않았다. ‘흑암’의 깊음 위에서 처음 빛이 만들어지게 된다. 그리고 궁창(하늘) 위와 아래를 물로 나뉘고 하늘을 창조한다. 다시 물을 가르고 땅과 바다를 만들고 이름을 붙인다. 이제 이곳에 생명의 기운들이 돋아난다. 하루에 하나씩 천지를 창조할 때마다 여호와 하나님은 스스로 ‘보기에 좋았더라’고 감탄을 이어간다.창세기 1장 1절 어느 곳에서도 창조의 당위성에 대한 어떠한 이유나 설명 없이 6일 동안 순차적으로 ‘천지와 만물을 다 이루어지’게 하시고 일곱째 날 안식을 취한다. 그 이유를 설명할 존재가 없었으며, 더욱이 안식일 이후에 창조된 인간들에게 그 이유를 알리지 않는다.여호와 하나님은 안식일 이후 천지 만물과 인간을 만들고 자연의 질서를 부여한다. 그리고 아담 이후에 창조된 생물들에게 태초의 인간이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권한을 주게 된다. 물론 그 권한 뒤에는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금기의 항목이 뒤따른다. 그 금기로 인해 인간은 원죄를 갖게 되고 낙원에서 추방된다. 존재의 이유를 알기 이전에 선과 악의 구분에 눈을 뜨게 됐으니, 이후 인류는 선과 악의 선상에서 길흉화복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인류는 문명의 발달과 함께 제법 많은(?) 자연의 법칙을 발견하고, 체계화 한다. 그 와중에 인간과 만물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지금도 에덴의 동쪽에 머물고 있다. 만약 태초의 인간이 하나님의 금기를 어기지 않았다면 신의 뜻에 따라 창조된 모든 것들과 인간의 존재 이유를 들을 수 있었을까.벨라 타르 감독의 영화 ‘토리노의 말’은 천지창조의 시간을 거꾸로 돌린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간명하다. 그러나 그 줄거리가 일반적인 내러티브를 가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내러티브 너머에 있는 근원적 질문에 접근한다. 천지창조의 시간을 거꾸로 돌릴 때, 신이 창조한 그 역순으로 피조물은 소멸돼 간다. 신이 천지를 창조할 때 창조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듯이, 벨라 타르 감독 또한 천지창조의 시간을 거꾸로 돌리며 만물의 존재가 소멸돼가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인류가 세상만물과 인간의 존재 이유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도 전에 순차적으로 사라져버리는 상황에 놓인다. 6일간 창조했던 ‘보기에 좋았’던 것들이 사라져버리는 상황에 안식일 이후에 창조된 인간이 마지막 빛이 사라지며 ‘흑암’으로 돌아가는 화면 속에 남는다.146분짜리 흑백영화는 내레이션을 빼면 창세기 1장 정도 분량의 대사만 있다. 세상만물이 특이점을 향해 소멸되어 갈 때, 대처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이유를 따지는 것조차 의미가 없을 때, 절망과 허무는 가장 늦게 창조되어 가장 늦게까지 소멸되지 않는 인간의 몫으로 남는다. 여기에 벨라 타르 감독이 안식일 이후에 창조된 인간을 천지창조의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6일간의 시간에 배치한 이유가 될 것이다. 원죄를 안고 태어나 에덴의 동쪽에 머물던 인류는 ‘구원’에 의해 언젠가는 낙원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의지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제 그 기회마저 박탈당하고 천지창조의 이유를 알기도 전에 깊이를 알 수 없는 흑암 속으로 잠겨 간다.‘소멸’이라고 했지만 ‘근원으로의 회귀’로 읽을 수도 있다. 예전에 ‘빛의 예술’이라는 사진의 근원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흔히 사진을 시간의 예술, 빛의 예술이라고 한다. 창세기에도 나와 있지만 빛은 어둠에서 나왔으니 그 근원은 어둠이 된다. 사진은 빛을 제어하는 예술이라기 보다는 어둠을 제어하는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의견에 동의한 적이 있다. 음악도 그렇다. 음악은 소리에서 나왔으며, 그 소리는 침묵에서 나왔다. 그래서 음악은 소리의 예술이 아니라 침묵을 제어하는 예술이라는 것으로 현대음악가 존 케이지의 예술 세계를 이해했던 적도 있었다.5년여를 주기로 영화를 만들던 벨라 타르 감독은 ‘토리노의 말’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다. 유려한 롱테이크와 물성 가득한 흑백영화를 남기고 그의 영화처럼 절망과 슬픔, 기괴하며 짙은 어둠을 던져주고 근원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문화기획사 엔진42 대표 김규형

2020-11-16

분열된 나라의 대통령들: 미국과 한국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미국 민주주의를 파괴한 트럼프(D. Trump)의 ‘팬덤(fandom)’정치가 막을 내리고 있다. 분열정치에 지친 유권자들은 화해와 통합을 역설한 바이든(J. Biden)을 선택했다. 진영논리에 갇혀 갈라치기하고 ‘선택적 정의’를 추구함으로써 나라를 두 동강 내어 놓고도 잘못을 모르는 것은 미국과 한국의 대통령이 판박이다.‘탈 진실(post­truth)’ 선동의 주역, 트럼프는 공공연히 거짓말을 하면서 백인과 유색인의 갈등, 이민자에 대한 증오를 부추겨 지지층 결집을 유도했다. 그는 정치적 반대자들을 서슴없이 공격했다. 트럼프의 4년 통치로 미국은 남북전쟁 이래 최악의 분열로 대립하고 있다.문 대통령 역시 ‘편 가르기 정치’로 일관해 왔다. 광화문과 서초동, 부자와 빈자, 친일과 반일, 의사와 간호사, 검찰총장과 법무장관 등 ‘여론 갈라치기’로 정치적 이익을 추구했다. 지지자에게는 관대하고 비판자에게는 냉정한 ‘선택적 인식’을 하는 대통령은 국민의 대통령이 아니라 진보진영의 보스에 불과했다. 그 결과 ‘두 외눈박이 대통령들’의 공통적인 최대 업적(?)은 ‘증오와 배제의 분열정치’를 통하여 ‘한 나라에 두 국민을 만들어놓았다’는 놀라운 사실이다.바이든은 선거운동 중에 남북전쟁의 최대 격전지, 게티스버그(Gettysburg)를 찾았다. 링컨(A. Lincoln)의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민주주의 원칙과 “분열된 집은 바로 설 수 없다”는 통합정신을 다시 일깨워주기 위해서였다. 링컨이 말한 국민이란 내편 네편 구별하지 않은 모든 국민임은 물론이다. 링컨은 연방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 전쟁까지 불사한 통합주의자였다. 바이든은 지난 3일 선거승리 연설에서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당리당략을 위한 자리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민주당의 대통령이 아니라 미국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그는 이미 자신의 저서 ‘지켜야 할 약속’에서 “약속은 지켜야만 하며, 정치에 참여하려면 통합이라는 최소비용이 필요하다”는 정치적 신념을 밝힌 바 있다.트럼프의 분열정치와 바이든의 통합정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문 대통령은 바이든의 통합과 치유의 메시지를 들으면서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취임식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린 대통령은 분열과 대립의 중심에 서 있다. 민주정치의 핵심인 삼권분립이 무너졌으니 모두가 ‘왕(王)이 된 대통령’의 입만 쳐다 보고 있다. 이게 대통령이 말한 나라다운 나라인가? 지금이라도 초심으로 돌아가 ‘심리적 내전상태’에 있는 분열된 나라의 치유에 나서기 바란다.바이든의 승리는 ‘위대한 시민정신의 승리’다. 미국인들은 ‘분열의 리더십’을 거부하고 ‘통합의 리더십’을 선택했다. 우리도 대통령의 ‘편 가르기’와 ‘갈라치기’ 꼼수를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 국민은 ‘배의 균형을 유지하는 평형수’와 같은 존재이다. 균형을 잃은 외눈박이 대통령의 분열정치를 거부하고 통합의 리더십을 지지·육성하는 것은 국민의 책임이다.

2020-11-16

번아웃증후군

최근 시장조사 전문기업이 전국 만 19~59세 직장인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직장인 4명 중 1명은 번아웃증후군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번아웃증후군은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을 말한다.갑자기 불이 꺼지는 것처럼 체내 에너지가 방전되는 모습을 비유해 붙여진 이름이다. 이 병명은 뉴욕의 정신분석가 프로이덴버그가 처음‘소진’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에서 유래했다.번아웃 경고 증상은 여러가지다. 기력이 없고 쇠약해진 느낌이 들고, 쉽게 짜증이 나고 노여움이 솟는다. 하는 일이 부질없어 보이다가도 오히려 열성적으로 업무에 충실한 모순적인 상태가 지속되다가 갑자기 모든 것이 급속도로 무너져 내린다. 만성적으로 감기, 요통, 두통과 같은 질환에 시달리고, 감정의 소진이 심해 ‘우울하다’고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에너지 고갈 상태를 보인다.직장인들이 번아웃증후군에 시달리게 된 이유는 뭘까.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주는 대상은 역시 상사다. 직장인 2명 중 1명이 “상사가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고 답했다. 그 중에서 팀원과 직원들을 존중하지 않는 상사와 업무능력이 떨어지는 상사가 스트레스를 많이 주는 상사유형으로 꼽혔다. 젊은 직장인들은 야근을 강요하거나 주말에 일 처리를 명령하는 상사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번아웃증후군 예방을 위해서는 직원 상호간 서로 노력을 인정하고, 힘을 북돋아주는 직장문화를 형성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퇴근 후에 집으로 일을 가져가지 않고, 운동, 취미 생활 등 능동적인 휴식 시간을 갖는 것도 한 방법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11-16

최면과 강아지풀

문가인참마음심리상담센터 원장우리는 학교 교육을 통해서 최면을 경험하거나 배워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최면과 최면치료만큼 항간의 오해를 받는 심리치료기법도 드물 것이다.그렇지만 시골에서 성장한 사람은 강아지풀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개를 부르듯이 불러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강아지풀을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있다. 강아지풀은 열매의 표면에 작은 털이 많은 식물로 미세한 움직임에도 흔들리게 되어있다. 그 강아지풀을 쳐다보고 집중하면서 “오른쪽으로 움직여”, “왼쪽으로 움직여”라고 말했을 때 실제로 그 강아지풀은 움직인다. 내가 마음속으로 집중하고 움직이라는 언어적 암시를 했으므로 움직이게 되어있는 것이다. 그것이 최면에서 중요시하는 관념운동 반응(ideomotor response)으로 마음의 존재를 알려주는 반응이다.이 강아지풀 놀이와 유사한 것으로 펜듈럼 기법이란 최면기법이 있다. 이것은 종이 위에 커다란 원을 그려놓고 실 끝에 추를 달아놓고 집중하면서 “오른쪽으로 움직여”, “왼쪽으로 움직여”, “돌아라” 하면 의식적으로 손을 움직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움직이는 것이다.이것이 바로 마음 중에서도 잠재의식이며, 이 잠재의식의 힘을 활용한 것이 최면이다.천재적인 최면가인 밀턴 에릭슨은 “환자는 자신의 잠재의식과 라포가 단절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최면, 즉 깊은 이완 상태에서 잠재의식의 메시지를 듣는 것이 최면치료의 궁극적 목적이다.이러한 잠재의식의 힘을 알 수 있는 사례를 하나 더 들어보도록 하겠다. 우리가 어린 시절 배가 아팠을 때 어머니가 “엄마 손은 약손이야. 엄마 손은 약손이야” 하면서 배를 문질렀을 때 실제로 배가 덜 아팠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 방법은 최면의 아버지인 안톤 메즈머가 환자들을 최면 치료할 때 쓰던 방법과 유사한 최면기법이다. 실제로 프랑스 등에서는 현재에도 메즈머의 최면전통을 이어받아서 메즈머리즘이란 기법을 가르치고 배우는 워크숍이 존재하고 있다.합리적 정서치료(REBT)의 창시자인 앨버트 엘리스와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프로이트도 최면가였다. 그런데도 심리학과 의학은 옳고 최면은 사이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은 자신의 마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아주 어리석은 사람이다. 해의 혜택을 누리면서 해를 부정하는 것과도 같다.매일 우리는 자신과 타인에게 말로써 긍정적인 최면이나 부정적인 최면을 유도하고 있다. 이왕이면 자신과 타인에게 긍정적인 최면을 하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또 하나의 지혜로운 방법이다. 즉, 최면은 신비스럽거나 무서운 것이 아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매일 나누는 대화, 그것이 일종의 최면이다. 즉, 당신의 말은 자신의 몸과 마음에 영향을 미치고, 타인의 몸과 마음에도 영향을 미치며 건강하게도 혹은 병들게도 한다는 것이다.강아지풀을 가지고 놀았던 그대, 어머니의 약손을 기억하는 그대, 그대는 이미 최면가이다.

2020-11-15

무착륙 관광비행

윤영대수필가코로나19로 가장 타격을 많이 받은 곳이 여행사와 항공사인 듯하다. 그래서 새로운 여행상품이 등장하고 있다. 바로 ‘무착륙 관광비행’이라는 것이다. 항공법상 한 지점을 이륙하여 정해진 노선을 돌고 착륙 없이 다시 이륙지점으로 되돌아오는 비행을 말한다. 세계항공업계도 ‘목적지 없는 비행’이 생각보다 큰 호응을 얻고 있는 모양이다.이에 국토교통부는 해외에 착륙하지 않고 상공만 비행하고 오는 노선도 국제선으로 분류하고 면세품 쇼핑도 긍정적 방향으로 검토하겠다고 하니 코로나에 찌든 여행업계도 반색이다.10월 초, 에어부산은 항공 관련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승무원 체험학습 비행프로그램을 처음으로 시행하였고, 월말에는 일반 승객을 태우고 두 차례의 무착륙 비행을 선보였다. 대한항공과 다른 저가항공사들도 이를 추진 중이며 점차 확대될 조짐을 보인다.아시아나항공에서는 인천국제공항을 이륙하여 강릉-포항-김해-제주 상공을 돌아오는 ‘한반도 일주 비행’상품을 내놓았다. 초대형 항공기 A380 기종으로 비즈니스석을 비롯하여 20~30만 원 선이었지만 완판되었고 지금까지 4회 운항하여 여행객들의 반응도 좋다.이에 앞서 제주항공이 국내 최초로 ‘비행기 속 하늘여행’으로 1시간 반 정도 우리 땅 위를 반시계방향으로 날며 관광비행을 했고, 진에어도 ‘홍콩여행’ 테마로 인천에서 이륙하여 광주-제주-부산 상공을 돌아오며 탑승객에게 기내식과 홍콩여행 기념품을 주는 상품을 내놨다. 모두 평균 85% 탑승률을 기록했다.이뿐만 아니다. 국내 경비행기 체험도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4인 이하의 경비행기는 고도 500피트까지 하강할 수 있어 저공비행으로 관광명소를 관망할 수 있으니 한번 타보고 싶다. 오래전 헬기로 미국 그랜드캐년 협곡을 돌아보았고 열기구를 타고 터키 카파도키아 계곡 위를 떠다녔던 기억을 되살려 보니, 우리 동해의 울릉도와 독도, 제주 한라산 백록담, 더 나아가 대마도까지 한눈에 담고 오는 관광비행도 좋으리라.더 나아가 해외 무착륙 관광여행을 하려면 몇 가지 문제점도 있다. 면세품 취급에 대해서는 관세청이 그 범위를 정해야 하고 여행객들을 출국자로 할 것인지의 여부는 법무부가, 또 노선 신설은 국토교통부가 결정해야 한다. 이미 세계 항공사 중에 40여 개가 파산 및 운영중단을 했다고 하니 우리는 현명하게 대처하여 항공사와 여행사 그리고 면세품업계에 숨통을 틔워주자.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비행 루트도 개발하고 기내 이벤트와 서비스의 새로운 방향 모색도 필요하다.그냥 비행장에서 앉아 있는 비행기를 띄워서 코로나에 발 묶여 있는 해외여행 희망자들의 마음을 반이라도 풀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비행 중 지상의 풍경이나 유적지를 가상현실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여행지에 내려 관광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것도 좋겠다. 일부 항공사는 기내식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한다. 나도 한때 기내식 먹는 것이 취미라고 허풍을 떨기도 했는데 코로나 덕분에 높은 아파트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한번 먹어보고 싶다.

2020-11-15

미국 신정권 출범이 포항경제에 미칠 영향

미국 대통령선거가 끝났다. 선거전 여론조사에서는 바이든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상원과 하원에서도 민주당이 압승하는 ‘블루 웨이브(blue wave)’를 이룰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고 보니 예상외 접전으로 바이든의 대통령 당선은 확실한 듯 보이나, 민주당이 아직 상원까지 확실하게 과반수를 차지하지는 못하였다. 내년 1월 5일 조지아주 상원의원 결선 선거에서 민주당이 2석을 확보하면 연방 상원에서 50대 50의 동석을 이룰 수 있으므로 기회는 남아 있다. 그리되면 상원의장은 부통령이 맡아 결정권을 가지게 되니까 사실상 민주당이 과반을 이루게 되는 셈이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 진영에서 지난 11일 부정선거가 횡행한다며 미시간주를 비롯한 여러 주에서 선거결과를 둘러싼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는 데 있다. 또 조지아주 주무장관은 모든 투표용지를 수작업으로 재집계할 것을 결정하고 11월 20일 기한 내에 마치겠다고 발표하기도 하였다. 미국 대통령선거에서는 어느 후보든지 패배를 인정해야만 결과가 확정된다. 그러는 동안 미국 정치의 공백기가 길어지고 사회불안이 높아지면 잠깐이나마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질 우려마저 있다. 게다가 신정권이 추가 경제대책을 내더라도 사실상 내년 취임식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것도 불안요인이다. 미국 경제가 지난 2분기 31.4%의 역성장률을 기록하였다가 3분기에는 73년 만의 최고치인 33.1%라는 성장률을 보였지만 이는 2분기의 골이 깊었던 기저효과에다 약 3조 달러 규모의 경기 자극 효과가 더해진 결과여서 4분기와 내년 1분기는 다시 낮은 성장률로 돌아올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미국에서 신정권 출범 이후 주요 정책 방향에 따라 크든 작든 포항경제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앞으로 바이든 정권이 출범한다고 가정할 때 트럼프 대통령의 기존 정책과 조금이라도 바뀔 여지가 있는 사안을 미리 짚어 봄으로써 포항경제에 미칠 영향을 가늠해 보고자 한다.먼저, 미국의 재정 금융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 같다. 큰 정부를 지향하는 민주당 바이든 씨는 ‘블루 웨이브’를 이룬다는 전제하에 법인과 부유층에 대한 증세와 함께 인프라 투자, 육아와 교육, 건강관리, 사회보장 급부에 이르는 막대한 세출 집행을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미 연방예산위원회(CRFB)의 계산 결과에 따르면 바이든의 정책이 집행된다면 앞으로 10년 동안 증세액은 4.3조 달러, 세출 확대는 9.9조 달러에 이른다. 차액 5.6조 달러 만큼의 재정적자가 확대될 수밖에 없고 금융완화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와 바이든 모두 ‘바이 아메리칸’, ‘메이드 인 아메리카’를 주장했었기에 인프라 투자확대가 포항경제에 미칠 효과를 다소 제약되더라도 일단은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두 번째, 중국과 서로 관세 제재를 주고받는 무역전쟁의 범위와 정도는 낮아지는 방향으로 움직이겠지만 즉각 휴전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씨가 비록 중국에 대한 제재 관세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민주당 내에 중국에 대한 강경노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아 정책전환의 걸림돌로 작용하기 쉽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까지 내세운 세계 각국과 무역 관세나 무역정책 자체를 인질로 삼는 일종의 경제 내셔널리즘, 탈글로벌화 정책은 조금씩 완화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겠지만 관세정책을 대신할만한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점에서 정책전환에는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미국과 중국의 현재 상황은 당분간 현상 유지에 머무를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와중에 철강 쿼터 제한과 같은 유탄을 맞은 포항경제에는 다소 긍정적 영향을 기대할 수는 있겠으나 즉시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그 영향은 중립적이라 생각한다.세 번째, 신정권 출범에 따라 종전과 분위기가 바뀔 분야는 북한에 대한 정책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사이의 개인적 친근관계까지 이야기되던 훈풍은 아마도 사라질 것이다. 오히려 북한 핵 문제를 중심으로 하는 국제적인 압박카드를 다시 꺼낼 확률이 높아졌다. 다만 미국이 강경노선을 채택하여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한국과 일본의 관계개선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전방위적인 압박이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최근 일본의 일부 학자들은 미국 신정권 출범으로 한국의 일본에 대한 강경 자세가 완화될 것으로 전망하기도 하였다. 한술 더 떠 그렇게 되면 한국인 관광객이 늘어나 관광산업에 경제효과를 기대하는 분석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오산이다. 일본이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조치를 먼저 풀면서 대화를 요청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미국의 압력을 받아 손을 내미는 것은 ‘노 저팬’을 부르짖고 있는 국민 정서를 고려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북한과 미국과의 관계 재정립은 그동안 남북 경제협력을 추진하던 산업, 기업체는 물론 일본과의 관계개선까지 얽혀 있다는 점에서 당장 변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론적으로 미국 신정권 출범 이후 북한과 경제협력을 위한 철도현대화와 같은 주요 인프라 투자사업에 개입할 틈이 지금까지 보다는 훨씬 좁혀지기 쉽다는 점에서 포항경제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마지막으로 가장 확실하게 트럼프 대통령과 반대 방향으로 전환될 분야는 지구온난화에 대한 정책대응일 것이다. 민주당이 지구온난화대책을 강력하게 미는 데는 이 정책이 중국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 믿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이 최근 원자력 발전소를 많이 건설하고는 있으나 여전히 석탄 화력발전에 의존하는 비중이 높아 이산화탄소(CO2)배출량이 많다. 중국경제가 성장할수록 탄소 배출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보니 삭감목표 부과가 중국 성장을 억제하는 수단이라고 여기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중국을 겨냥한 이산화탄소 배출문제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지구온난화정책이 미치는 효과는 결국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에 또 다른 유탄으로 작용하기 쉽다. 이미 미국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빨라지고 있다. 민주당 지지세력이 많은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지난 9월 23일 2035년부터는 휘발유를 사용하는 자동차의 신차판매를 금지한다는 방침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앞으로 15년. 사실 그리 시간이 많지도 않다. 미국 정책에 따라 전기차로 이행하는 속도가 빨라지게 되면 국내 완성차업계는 물론 경주의 자동차부품 제조업체와 소재를 제공하는 포항의 철강업체까지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다만, 전기차로 이행되는 속도가 빨라지면 포항이 추진하는 배터리산업은 반대로 탄력을 받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두 효과가 상쇄될 수 있다면 중립적인 영향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결론적으로 미국의 신정권 출범 이후에도 경제 내셔널리즘과 같은 정책성향은 계속되기 쉽다. 앞서 짚어 본 4개 사안 가운데 포항경제에 미칠 영향이 중립적인 것이 둘, 긍정과 부정이 각 하나씩이긴 하나 길게 보면 저울은 부정적 영향으로 기울어질 우려가 크다. 포항은 지금 추진하는 신성장동력에 대한 투자육성에 힘쓰면서 이와 동시에 철강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혁신과 연구개발에 더욱 노력하는 것 외에 별다른 대응책이란 있을 수 없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11-15

‘윤석열’이 온다

안재휘 논설위원중국 전국시대 말엽, 진나라가 조나라 수도 한단(邯鄲)을 포위·공격하자 혜문왕(惠文王)은 동생이자 재상인 평원군(平原君)을 초나라에 보내 원군을 청하기로 한다. 평원군이 수행원 스무 명을 뽑을 때 마지막에 나타나 스스로를 추천한 인물이 모수(毛遂)다. 평원군은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로 거절한다.낭중지추는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는 말로 인물이라면 주머니를 뚫듯 저절로 나타나는데 모수는 3년을 평원군 집에 식객으로 있었지만 기억에 남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모수는 “한 번도 저를 주머니에 넣어 주시지 않았지 않았느냐”는 절묘한 답변으로 수행원에 포함되고 이후에 눈부신 활약을 펼친다.윤석열 검찰총장이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이 일어나 정치판을 요동치게 했다. 여론조사기관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 의뢰를 받아 지난 7∼9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천2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윤석열이 24.7%로 가장 높게 나왔다. 이낙연 대표는 22.2%로 2위, 이재명 경기지사는 18.4%로 3위를 차지했다.이어진 ‘한국갤럽’의 차기 정치지도자 선호도 정례 조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이 처음으로 두 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한 것도 주목거리다. 이 조사에서는 윤석열 총장은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지사의 각각 19%에 이어 3위였다. 윤석열의 지지도는 11%로 한 달 만에 무려 8%나 수직상승했다.‘윤석열 현상’으로까지 회자되는 이 흐름을 놓고 정치권은 엇갈린 분석들을 쏟아내고 있다. 여당은 대체로 떨떠름한 표정이고, 야당 또한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야릇한 처지에 빠져들고 있는 양상이다.윤석열의 대권후보 지지율 선두권 부상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윤석열 부각의 일등공신은 모두가 알듯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다. 추 장관은 윤석열을 끌어내리기 위해서 지휘권·감찰권·가족 수사·공개 저격 등 오만 핍박을 다 펼치고 있다.‘김대중을 만든 건 박정희’라는 말이 떠오른다. 박정희의 가혹한 탄압이 오히려 담금질이 되어 연철에 불과하던 김대중을 강철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같은 원리를 적용하면 추미애의 말도 안 되는 채찍질·발길질 횡포가 윤석열을 날로 단단한 강철로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다.그러나 현 단계에서 윤석열의 부각을 가장 두려워해야 할 쪽은 국민의힘이다. 가뜩이나 마땅히 떠오르는 주자가 없는 마당에 윤석열이 야당의 잠재영역을 다 차지해 여지를 말살하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여야를 불문하고, 날로 까발려지는 정치권의 온갖 추잡한 이면들을 바라보면서 ‘법치의 위기’를 절감하는 민심을 직시해야 한다. ‘입법부를 행정부에 종속시키는 것이 파시즘의 본질’이라는 20세기 최고의 진보지성 버트런드 러셀의 파시즘 정의가 아니더라도, 3권분립이 무너지고 있는 이 나라는 진실로 위험하다. 아직은 그를 담아낼 마땅한 그릇조차 없는데, 어쨌든 ‘윤석열’은 온다. 검찰청 앞 화환에 붙은 ‘낭중지추’ 응원 문구가 새뜻하다.

2020-11-15

덜식의 날

11월 11일은 똑같은 숫자가 네 개가 들어가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어 보이는 날이다. 실제로 이날은 보행자의 날, 농업인의 날로 지정돼 있고, 빼빼로데이, 가래떡데이 등 민간차원의 각종 행사도 많이 벌어지는 날이다.중국은 1자가 홀로 서 있는 것이 사람처럼 생겼다 하여 독신자의 날로 정했다. 또 11월 11일이라는 숫자가 주는 이미지 탓인지 세계 각국의 유통업체들이 이날을 시작으로 대규모 할인행사를 자주 벌여 이제는 유통업계의 세일 날로 점차 자리를 잡아가는 추세다.2010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보행자의 날은 산업화에 따른 미세먼지를 줄이고 국민건강 증진과 걷기의 중요성을 알리는 날이다. 농업인의 날은 도시화와 산업화로 날로 기울어 가는 농촌의 현실을 널리 알리고 농업인의 의욕 고취를 위해 국가가 기념일로 지정한 날이다.또 빼빼로데이는 민간차원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이벤트 날이다. 부산의 어느 여고에서 여학생들이 “다이어트에 성공하여 빼빼하게 되라”고 놀리며 친구에게 빼빼로를 선물한 것이 유래라 한다. 이것이 제과업체의 마케팅으로 이어져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생긴 날이다. 빼빼로데이의 반작용으로 우리 농산물을 소비하자는 취지의 가래떡데이가 생겼다.경북도가 11월 11일을 ‘덜식의 날’로 정했다. 덜어먹는 식문화의 날이란 뜻이다. 코로나 감염증을 예방하고 위생적이며 올바른 식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경북도의 식생활 개선 캠페인이다. 노란색 디자인의 덜젓가락도 제작, 모범업소에 전달했다.여러 사람이 함께 먹는 공통반찬의 우리 식문화 이젠 바꿀 때가 됐다. 기왕이면 전국적 캠페인으로 확산되면 더 좋겠다. 11월 11일 기념일에 덜식의 날이 추가됐다./우정구(논설위원)

2020-11-15

코로나와 영덕대게축제

이희진 영덕군수많은 사람들이 영덕이란 지역을 듣고 연상하는 이미지는 대부분 바다와 대게일 것이다. 고래불 해수욕장을 비롯한 맑고 푸른 동해를 품은 영덕의 청정 해안 절경과 맛과 품질 모두 전국 으뜸인 대게는 1천 만명의 관광객을 영덕으로 오게 한 일등공신이다.2019년 영덕군 사회조사 결과 영덕군민들은 가장 선호하는 축제로 ‘영덕대게축제’를 꼽았다. 영덕대게축제는 군민 44.9%의 선택을 받았고, 이어 해맞이축제(33.9%)와 영덕황금은어축제(6.4%)가 뒤를 이었다.영덕군 대표 축제인 영덕대게축제는 대게가 제철인 매년 2월 강구항 해파랑 공원에서 개최된다. 2020년 문화체육관광부 국가지정예비축제로 지정됐으며 경북도 지정 최우수 축제로 선정되기도 했다.11월 1일부터 대게 금어기가 해제돼 본격적인 영덕 대게 철이 시작됐다. 더불어 대한민국 대게 최대 집산지이자 소비지인 영덕 강구항이 겨울철 최고 별미여행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대게는 발이 붙어나간 모양이 대나무의 마디와 같이 이어져 있다고 해서 이름지어졌으녀 한자로 죽해(竹蟹)라고도 한다. 주요 서식처는 영덕군 영해면 대진리 앞바다에서 감포앞바다에 걸쳐 형성되고 있으며 그 가운데에서도 영덕군 일원의 앞바다가 주산지이다.대게 자원보호를 위해 산란기인 매월 6월1일부터 10월31일까지 금어기로 정해져 있고 영덕군은 금어기와 별도로 어민들이 자체 금어기를 정해 자원보호에 앞장서고 있다.대게는 금어기 포획과 함께 체장 9㎝(몸너비) 이하의 어린대게와 암컷대게는 연중 포획이 금지되어 있다.대게의 고장 영덕군은 매년 4월 초에 영덕대게축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이 참여해 영덕대게의 맛을 체험하고 있다.영덕군과 영덕대게축제추진위원회 주최로 매년 개최되는 영덕대게 축제는 어민소득 증대 및 지역 경제활성화에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지난해 3월 21일부터 24일까 나흘간 열렸던 제22회 영덕대게축제 평가보고회 결과에 따르면 관광객은 전년(9만5천458명)보다 17% 감소한 7만8천876명으로 집계됐으나, 수도권 방문객과 대전, 충청, 세종 지역 거주자의 방문 비율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방문객 1인당 소비지출이 전년(7만 7천38원)보다 45% 늘어난 11만1천636원으로 집계돼 경제적 파급효과가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직접경제효과는 86억 원이었고, 이는 전년의 55억 원 대비 57% 증가했다. 간접경제효과도 276억 원이나 됐고 이는 전년의 174억 원 대비 58%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하지만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해 4월 축제를 열지 못하고 오는 12월 비대면 행사로 개최할 예정이다. 영덕군 지난 2월 코로나로 개최가 불투명할 때 영덕군의 대표축제인 영덕대게축제를 취소하지 않고, 무기한 연기하면서 축제 개최의 여지를 남겼고, 마침내 축제 개최로 이어졌다. 군은 대게축제 홈페이지를 구축하고 재미와 맛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를 준비하고자 공직자와 군민들이 한마음으로 노력중이다.올해 축제는 홍보와 판매를 연계해 진행할 방침이다. 전 세계가 볼 수 있는 온라인의 특성을 활용해 영덕대게를 전 세계에 알리는 방식으로 진행할 것이다.코로나가 남긴 비대면 시대, 어쩌면 군민들을 비롯해 많은 공직자들이 어색하고, 낯설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년에도 코로나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비대면 방식으로 행사와 축제를 지속적으로 개최해야 한다.내년에는 더 양질의 축제와 행사를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하고자 한다. 라이브 커머스를 활용해 판매와 연계함은 물론, 비대면 방식 축제의 흥행 성과도 보다 객관적으로 측정하고자 한다.콘텐츠의 차별화 그리고 많은 군민들의 참여가 비대면 방식의 성공을 가를 열쇠로 보인다. 여기에 영덕군의 맑은 자연 환경을 비대면 방식으로 어떻게 전달할지도 고민해야 한다. 포스토코로나 시대, 영덕군의 비상을 지켜봐 달라.

2020-11-15

꽃지 순례

노란 꽃비가 내린다. 바람이 쓰윽 지날 때마다 화라락 은행잎의 비행이 시작된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그들의 비행하는 소리가 들릴 듯하다. 쏴아, 바람이 또 분다. 겨울을 준비하려고 옷을 벗는 은행나무의 바스락거림 연주가 울려 퍼진다. 오늘 또 길을 나서야겠다.몇 해를 벼르고 별러 영양군 입압면의 서석지를 찾아갔다.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어 반은 나무에 머물고, 반은 떨어져 발밑을 덮고 있을 때가 장관이라 지난해, 지지난해까지 사진을 찾아보며 가장 절정인 때를 골랐다. 하지만 서석지 주차장에 들어서며 알았다. 일주일 전에 왔어야 했다는 걸. 400번의 가을을 그 자리에서 맞았을 텐데 올해는 더 일찍 옷을 벗었다. 하늘 향해 높게 뻗은 가지에는 한 잎도 남아 있지 않았다. 대청마루에 올라 그 풍성한 노란빛의 수런거림을 오후 내내 듣다 오려고 했던 계획은 날아가 버렸다. 서석지 못 안에 이미 연주를 끝낸 노란빛이 가득했다. 내년을 기약할 수밖에.그다음 찾아간 곳은 경주 통일전 가로수길이다. 7번 국도를 달리다 통일전 삼거리에서 주차장까지 2킬로미터에 이르는 길이 노란빛으로 물들었다. 지난 주말이 절정이었다. 쭉 뻗은 가로수가 가슴을 트이게 하고 넓게 펼쳐진 통일전 마당이 또 한 번 눈을 시원하게 한다. 잔디도 노랗게 단풍 색으로 변했고 정자 위에서 내려다보는 들 또한 갈색이라 풍경이 그저 그만이다. 은행나무 가로수와 들판의 이중주가 아름다운 곳이다. 가장 늦게 물드는 곳이 경주 운곡서원이다. 햇살의 양이 적어서 서석지와 통일전 은행잎이 다 떨어지고 나서야 조금씩 노란색을 띠기 시작한다. 같은 길에 선 나무 중에도 하루 종일 해를 보는 나무는 노래져도 건너편 건물 그늘에 가려진 나무는 열흘 이상 늦게 물든다. 하지만 조금 늦다뿐이지 은행나무의 그 노란빛은 같다. 한껏 노란 물이 올랐을 무렵에는 서원을 오르는 계단부터 은행잎으로 덮인다. 해질 무렵이면 찍사들의 삼각대가 쭈욱 둘러서 한복을 입은 모델까지 세워놓고 셔터를 누르기 바쁘다.해질녁 서원의 공기가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햇살이 큰 나무 사이로 조금 남은 빛을 흘려보내서 실크 커튼을 드리운 듯하다. 바람이 살짝 불기라도 하면 보는 이들의 탄성에 셔터 소리가 묻히기도 한다. 오래된 기와에 떨어지는 노란 잎, 대나무 담장을 뚫고 들려오는 냇물 소리, 운곡산방의 차 따르는 소리까지 어울려 웅장한 협주곡이 완성된다. 가을 끝자락이 들려주는 음악에 취해 어둑해질 때까지 나무 밑을 서성인다.이곳 말고도 은행이 찬란한 곳으로 가까이는 오어사, 조금 멀리 대구의 도동서원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영천 임고서원에 들러 금관처럼 생긴 은행나무에 취해봐도 좋다. 경주 도리마을은 은행잎이 다 진 다음에 가도 좋은 곳이라 볼 수 있는 기간이 길다.김순희 수필가누가 나무를 제일 사랑하지? 라는 질문에 시인은 봄은 나무에 예쁜 나뭇잎 옷을 입혀 주고, 여름은 나무에 하얗고 노랗고 빨간 꽃을 피워 주며, 가을은 맛있는 과일을 주고 화려한 단풍을 입혀 준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진 겨울이 나무를 제일 사랑한다고 하며 말을 끝맺는다. 나무들에게 휴식을 주니까. 은행나무가 겨우살이를 준비하는 줄 알았는데 시인은 겨울이 나무에게 휴식을 선물하는 거라고 일러준다.은행나무는 오래 한자리를 지킨다. 수백 년은 그 자리에서 오가는 이들을 보았을 것이다. 함부로 대할 게 아니라 나무님이라고 치켜세워 주어야겠다. 오랜 연륜 탓인가 버려야 할 시기를 알고 어김없이 늦가을이면 잎을 내려놓는다. 오래 멀리 가는 방법을 터득한 은행나무들의 루틴이다.종교인들은 종교활동의 하나로 발생지나 순교지를 따라 성지순례를 한다. 빵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맛있다는 빵집을 찾아가 맛보는 빵지순례를 한다. 나는 계절 따라 피는 꽃이나 숲을 찾아다닌다. 꽃지순례이다. 11월에는 은행나무의 비행을 보러 다녔다. 그런 내게 은행나무가 말한다. 바람이 분다, 떨어져야겠다고.

2020-11-15

윤석열 대망론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윤석열 대망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11일 발표된 여론조사기관의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에서 아직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지도 않은 윤 총장의 차기 지지율이 24.7%를 기록,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22.2%)와 이재명 경기지사(18.4%)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윤 총장은 지난해 조국 사태 이후로 추미애 법무부 장관 등 여권 인사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존재감을 키웠다. 특히 지난달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작심 발언을 쏟아내면서 지지율이 급등했다.여야 정치권은 그야말로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형국에 빠져들었다. 우선 여권은 윤석열 지지율 1위를 애써 폄하하면서도 당혹감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중심으로 검찰개혁에 강한 드라이브를 건 것이 오히려 보수층 결집을 초래하면서 윤 총장의 몸값만 올려준 결과가 됐다고 성토하는 분위기다. 특히 추미애 장관이 수사지휘권 발동, 감찰 지시 등에 잇따라 나서면서 불필요하게 전선을 확대한 것이 실책이란 지적들이 많다. 정세균 총리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추 장관에 대해 “좀 더 점잖고 냉정하면 좋겠다. 사용하는 언어도 좀 더 절제됐으면 좋겠다”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제1야당인 국민의힘 분위기는 여권보다 좀더 복잡미묘하다. 민심이 현 정부에 대해 비판적으로 돌아선 모양새란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국민의힘 내부 주자가 아니라는 점이 딜레마다. 윤석열 대망론은 새 인물과 정권 탈환을 고대하는 보수층의 갈증에 당이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윤석열 대망론은 저조한 지지율 아래 관망세를 유지해온 당내 대권잠룡들의 행보를 재촉하는 효과는 톡톡히 해낼 것으로 보인다.현직인 원희룡 제주지사가 틈날 때마다 중앙 정치 무대를 향해 경제 교육 정책 관련 메시지를 보내고 있고,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도심재개발을 통한 서울 집값 안정정책, 대학생 지하철교통비 반값정책 등을 내세우며 대권도전을 선언한 데 이어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11일 킹메이커 역할을 자치하고 있는 야권 최대모임인 ‘마포포럼’ 강연에서 ‘야권연대 플랫폼’ 을 구성하자며 대통합주장을 펼쳤다. 또 야권 잠룡중 TK출신인 유승민 전 의원은 오는 16일 ‘주택문제, 사다리를 복원하자’ 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자신의 강점인 ‘경제 전문성’ 부각에 나서는 한편 오는 26일 마포포럼에서 대권도전을 선언할 것으로 전망되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 닿아있다.대선이 1년여 넘게 남은 시점에서 급부상한 윤석열 대망론이 어떻게 결말지어질까. 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말한 것처럼 2017년 대선 1년 전쯤인 2016년 5월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이 지지율 1위를 기록한 뒤 사라졌던 ‘제2의 반기문 효과’로 귀결될 지, 윤 총장이 특정 시점에 전격적으로 대선 경선에 뛰어들어 새 국면을 이끌어 나가게 될 지 누구도 예단하기 어렵다.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윤석열 대망론은 보수층이 새 인물과 정권탈환을 바라고 원한다는 점을 웅변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2020-11-12

대구 감귤

아열대기후는 월 평균 기온이 섭씨 10도 이상인 달이 한해 8개월 이상 지속하고 추운 달 평균 기온이 섭씨 18도 이하인 기후를 말한다. 가장 추운 달 평균 기온이 18도를 넘으면 열대기후에 속한다.이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 남해안은 아열대기후에 속한다. 원래 우리나라는 온대기후에 속하나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면서 제주, 경남 통영, 전남 목표 등 일부 남부지방이 아열대 지역으로 바뀌고 있다.한반도의 기온 상승률은 지구 평균의 2배에 달한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조사에 의하면 1900년 이후 전 세계 평균 기온은 0.74도 상승했으나 한반도는 1.5도나 상승했다고 한다.2018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 한반도의 평균 기온은 지금보다 3.2도가 상승해 한반도 대부분 지역이 아열대화 할 것으로 예측했다.한국인은 사과, 배, 복숭아, 포도, 단감 등을 즐겨 먹는 과일로 꼽는다. 그 중 가장 많이 먹는 사과는 지구온난화로 10년 뒤쯤에는 한반도에서 사라질 것 같다고 한다. 지금도 대구에서 주로 생산되던 사과가 강원도 영월까지 북상을 했다.대구에서 처음으로 감귤이 생산됐다. 수성구 고모동 한 농가에서 재배된 감귤 2t이 수확을 마치고 로컬푸드점에 선을 보였다. 제주도의 특산물 한라봉이 전남 고흥과 나주 등지에 생산된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우리나라에도 이젠 아열대 과일인 망고와 파인애플, 바나나 등을 구경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다.중국 고사인 귤화위지(橘化爲枳)는 “강남의 귤을 강북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뜻이다. 사람도 환경 변화에 따라 기질이 달라진다는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대구에서 등장한 감귤의 생산을 보며 지구온난화를 실감해 본다./우정구(논설위원)

2020-11-12

인동초 바이든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추운 겨울을 버티고 산과 들에서 피어나기 시작하면 이젠 봄이 막 끝나고 여름이 시작됨을 알리는 꽃이 있다.이름 그대로 인동초(忍冬草)! 인동초는 기나긴 겨울을 버티고 햇살 바른 양지의 돌담에 기대어 한 겨울에도 상록의 이파리를 간직하고 있다가 봄이 되면 개나리 진달래에게 선두권을 양보하고 서서히 피어올라 진한 봄을 알린다고 한다. 끈질김과 양보의 미덕을 가지고 있다는 인동초는 폐질환에 좋다고 알려져 한방에서 약초로도 널리 쓰이고 있다. 인동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표적 별명이기도 했다.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대통령에 당선 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2021년 초 임기기 시작되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지난주 끝났다. 아직 현직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불복을 선언하고 있지만 결과가 바뀔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이번 미국 대통령 당선자 민주당 바이든 후보에게 미국판 ‘인동초’라는 별명이 붙고 있다. 1942년생 바이든은 변호사 출신으로 만 29세의 나이로 1972년 미 델라웨어주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도전했다. 당시 닉슨 대통령의 전폭적 지지를 받던 공화당 거물 케일럽 보그스 현직 의원을 상대로 1% 포인트 차, 극적인 대역전극을 펼치면서 단숨에 정계의 주목을 받았다.최연소 상원의원, 탄탄대로가 펼쳐지는 듯 보였다. 그러나 기쁨은 한 달도 채 가지 않았다. 큰 교통사로고 부인과 딸을 잃었고 두 아들도 중상을 입었다. 그는 병간호를 위해 상원의원 취임도 포기하려고 헀지만, 주변의 만류로 병실에서 상원의원 취임 선서를 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그는 내리 6선에 성공한다. 그리고 바이든은 대통령에 도전한다.1988년 첫 대선 도전에 나섰다가 연설문 표절 의혹으로 중도 하차했고, 지난 2008년 대선 때는 오바마·힐러리 ‘2파전’ 속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 바이든 후보에게 희망은 아들들이었다. 특히 큰 아들에 대한 기대가 컸다고 한다. 실제로 장남 보 바이든은 이라크 전쟁에 참가해 훈장을 받았고, 정치에 입문해 지난 2006년 델라웨어주 법무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다.그는 장남이 자신이 못이룬 대통령의 꿈을 대신 이뤄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그 장남은 2015년 뇌종양으로 46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부인, 딸, 아들을 계속 잃은 바이든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지 자식을 먼저 보냈던 필자 자신은 너무도 잘 이해한다. 그 힘든 시간을 견딘다는 것은 거의 극한의 정신적 고통과 싸워 이겨 내야 한다. 그는 그러나 버텨냈다. 올해 경선에서도 초반에는 거듭된 참패로 조기 사퇴론에 시달렸지만, ‘슈퍼 화요일’에서 대승을 거두는 역전 드라마로 결국 경선 승리를 굳혔다. 뉴욕타임스는 “첫 주요 공직을 맡은 후 대선후보가 되기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후보는 없었다”면서 “정치적 인내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민주당과 공화당, 진보와 보수, 그리고 바이든과 트럼프, 정당이나 인물에 대한 호불호는 각자의 판단이지만 바이든이 보여준 인동초 같은 불굴의 정신은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정신 아닐까?

2020-11-12

단풍의 계절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사계절이 뚜렷한 대한민국의 사람들은 크나큰 천혜를 누리고 산다. 봄의 꽃과 신록, 여름의 녹음,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경은 우리나라 국민이면 누구나 무상으로 누릴 수 있는 혜택이고 축복이다. 연중 얼음에 덮인 극지방이나 상하의 열대지방, 불모의 사막지방에서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국토의 70% 이상이 산지로 되어있는 우리나라는 자연경관이 빼어나서 전국 어디나 말 그대로 산자수명한 금수강산이다. 그 중에서도 가을의 청명한 날씨와 단풍은 선계의 비경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가을볕이 심사를 맡고/ 나무들 단풍잎 품평회 열렸다/ 누가 더 이쁜가 다투지 않고서야/ 저토록 고울 까닭이 뭐겠는가//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고/ 열매를 위해서 잎은 있는 거라고/ 아는 체 하는 사람 있을까 몰라도/ 나무들 어디까지나 잎으로 산다// 또 한 해 무사히 잘 살았다고/ 한바탕 벌이는 잔치마당에/ 가을 하늘이 더 푸른 것은/ 울긋불긋 단풍잎 돋보이라고/ 그 배경이 되기 위해서다” - 졸시 ‘단풍잎 품평회’기온이 내려가서 나뭇잎이 광합성 활동을 멈추면 엽록소의 자가분해가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안토시안이 생성되는 종은 붉은색 또는 갈색 계열의 단풍이 들고, 안토시안이 생성되지 않는 종은 엽록소의 녹색에 가려 보이지 않던 잎 자체에 들어 있는 노란색 색소들이 나타나게 되어 노랑 단풍이 든다는 것이 과학적 설명이다. 그렇더라도 단풍이 그토록 고와야 하는 이유는 되지는 못한다. 그래서 가을마다 품평회를 열어 서로 미색을 다투고 자축하는 잔치를 벌인다는 게 내 생각이다. 여름내 광합성으로 뭇 생명의 양식을 생산하는 일에 전력을 다했으니 찬란한 풍악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거라고.“홍시가 있는가 쳐다보는데/ 감나무 이파리 하나 떨어진다/ 초록에서 빨강까지 곱게 채색된/ 윤기 자르르한 감잎 단풍// 감잎 단풍이 이렇게 고운 줄/ 오래 잊고 살았다/ 제각각 색이 다른 감잎이 고와/ 주워 모우기도 하던 시절로부터/ 나는 지금 어디만큼 와 있는가// 마당가에 늘 무심한 듯 서 있던 감나무/ 어디에 이토록 고운 마음이 깃들었을까/ 감나무가 건네주는 그림엽서 한 장/ 받아들고 내 마음이 온통 환하다“ - 졸시 ‘감잎 단풍’곱디고운 감잎 단풍은 이 가을이 나에게 건네는 그림엽서이고, 그것을 받아든 나는 무심한 척 서 있던 감나무에 그토록 고운 마음이 깃들어 있었다는 것에 놀란다. 실로 살아있음을 감격스럽게 하는 단풍이고 가을이다.“이 가을 한바탕 풍악(風樂)입니다/ 산천초목 자진모리로 타오릅니다// 퍼담을 수 없도록 햇살 넘치고/ 단풍도 풀꽃도 독한 주정(酒精)입니다// 고통은 썩으면 독(毒)이 되지만/ 발효하고 숙성하면 술이 됩니다/ 슬픔이란 이름의 술이 됩니다” - 졸시 ‘한잔의 가을’잔치마당에 술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눈부신 가을볕에 풀꽃도 단풍도 어찌 잘 익은 술이 아니랴. 가뭄과 태풍 같은 역경과 고통도 잘 삭이고 숙성하면 깊고 향기로운 술이 된다는 것, 그 술이란 찬란한 슬픔이기도 하다는 것. 인생 또한 그렇다는 것.

2020-11-12

염소새끼를 어미 젖에 삶지 말라

강영식 포항 하울교회 담임목사아프리카 원시족은 염소의 젖을 끓여먹지 않는다. 우유를 끓이는 행위를 생명을 앗아가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그 모습을 어미염소가 목격하게 되면 더 이상 우유를 생산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지역 구분 없이 대부분의 원시족들이 가지는 공통된 생각이다. 이런 행위를 공감주술, 또는 감응주술이라고 하지만 단순히 주술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이 프레이져를 비롯한 인류학자들의 주장이다.출애굽기 34장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십계명과 달리 “새끼염소를 어미젖에 삶지 말라”는 것을 마지막 계명에 포함하고 있다. “새끼염소를 어미젖에 삶지 말라”는 것은 다소 이해하기 힘든 생소한 계명이다. 도대체 무슨 뜻일까? 어미의 젖은 새끼를 양육하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만들어 내는 생명의 양식이다. 그 젖을 통해 어미와 새끼는 생명을 공유하여 이어간다. 그 젖에 새끼를 삶아 죽이는 것을 어미가 목격하게 되면 어미는 모든 생산 활동을 멈춘다고 믿었다. 결국 유목민들의 삶에 치명적 손상을 입히게 된다. 이 계명은 생명의 생산자가 되는 어미의 마음을 헤아려 교감하고, 공감하고, 생명을 공유하여 사회를 유지하고 존속케하라는 뜻이 담겨있다.우리 사회가 편향적이고, 양극화가 심화되고, 서로를 적대시 하며, 공정성이 무너지는 것은 서로의 마음을 공감해 보려는 능력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다. 있는 자가 없는 자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니 분배정의가 실현되지 않고, 금수저가 기회를 반칙으로 독점하니 공정성이 무너지게 된 것이다. 남이 기쁠 때 같이 기뻐하고, 남이 슬플 때 같이 슬퍼하는 같은 감정을 가지는 ‘공감’은 ‘공유’를 불러오지만 남이 기뻐하는 일을 슬퍼하고 남이 슬퍼하는 일을 기뻐하는 반대 감정을 가지는 ‘반감’은 ‘공격’을 불러온다. 우리 사회가 ‘공유성’ 보다 ‘공격성’이 강한 것은 ‘공감능력’ 보다는 ‘반감능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양극화는 점점 더 심해지고 편향적이 되어 가며 사회는 분열되고 서로 공격하게 되고 급기야 사회는 무너지게 된다. 그런 연유로 “새끼 염소를 어미젖에 삶지 말라”고 한 계명은 오늘 우리에게 꼭 필요한 생명연대를 위한 공감능력향상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예수님은 자신의 시대를 비유로 말하길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고 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생명연대의 공감능력을 향상 시켜 아름답고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2020-11-11

손꽃

배문경수필가딸이 엄마에게 손가락으로 글자를 만들어 보인다. 오른쪽 검지가 똑바로 서면 1이 되고, 두 개를 세우면 2가 된다. 바닥을 향해 총을 쏘듯이 엄지를 수평으로 하고 검지를 수직으로 하면 ‘ㄱ’이 되고 반대로 하면 ‘ㄴ’이 된다. 수화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낯선 수신호(手信號)에 불과하다.어느 날, 두 여성이 경찰서로 당황해하며 달려 들어왔다. 손짓 발짓을 하는데 경찰이 전혀 알아듣지 못하자 가슴을 치며 울부짖었다고 그는 내게 전했다. 경찰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어쩌다 보니 그 해엔 농아와 관계된 사건, 사고로 경찰서는 조용할 날이 없었다. 경찰인 그는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함을 자책했다.이후 수화를 배우기로 마음먹었고 실행에 옮겼다. 쉰을 넘긴 그가 젊은 사람들 틈에서 열심히 배운 수화로 이선희의 노래에 맞춘 동영상을 만들어 보냈다.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로는 최고였고, 나또한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 후에도 동계 패럴림픽에 참석한 선수들을 위해 동료들과 함께 활동하는 모습을 지면을 통해 보았을 때 큰 감동을 받았다.사람들은 생각을 입이란 기관을 통해 세상에 전한다. 하지만 새어 나오지 못하는 언어는 갈무리되지 않았고 농아는 숙명처럼 묵언의 세계 속에 산다. 어머니가 농아면 태어나는 자녀의 상당수가 그러했다. 아이를 안고 말로 교육할 수 없는 어미는 다시 자신과 닮은 자식으로 연결되는 질긴 끈을 만들어갔다. 다시 삶의 연결고리에서 좌절했을 여인들의 그림자가 길었다.그의 삶도 녹록치는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가정형편 때문에 스스로 대학을 포기하고 뱃일을 택했다. 어느 날, 잠결에 찾아든 고향 후배인 동료는 새벽일을 자신이 하겠다며 교대를 부탁했다. 잠시 후 선상에서 사고가 났다. 그물을 바다에 투척하는 시간에 그물을 묶어 둔 밧줄에 발이 걸린 동료는 바다로 던져진 후 흔적 없이 사라졌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어둠 속으로 달리던 배는 항로를 다시 돌려 그 자리에 갔지만 거친 파도가 배를 맞을 뿐이었다. 그의 머릿속은 암전이 되었다.그 날, 어쩌면 그는 신(神)을 만났는지도 모른다. 삶을 포기한 듯이 살던 그보다 더 가난했던 후배는 바다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그의 귀에는 목선(木船)을 쓰다듬는 부드러운 파도 소리에서 환청을 듣곤 했다. 선착장에 도착했을 때, 육지에 발을 디딘 후 그는 다시는 배를 타지 않았다. 죽은 동료의 몫까지 살기 위해 평범한 삶을 내려놓았다. 덤으로의 삶을 타인을 위해 살겠노라 마음먹었다.그는 농아교회에서 봉사했다. 어느 날 운전자의 빈자리로 인해 운전대를 잡았다. 교회에 오기위해 차를 기다리는 교인 네다섯 명을 먼 거리에서 가까운 거리까지 태웠다. 그들과 함께 할 소통에 대한 고민도 했지만 *비수지 신호를 익히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서로 신뢰가 생겼다. 나도 함께 탑승한 차에서 그들의 삶을 잠시 보았다.성가대에 두 여성이 나와 수화로 찬송가를 했다. 화면에 나오는 노래에 맞춰 손과 표정으로 노래를 만들었다. 손짓에 따라 피어나는 꽃이 공중에 피었다가 지곤 했다. 꽃은 장미였다가 수선화였다가 벚꽃처럼 번져나가자 사람들의 표정이 환했다. 그들이 걸친 보라색 성가복이 흔들리며 라일락이 흐드러지게 피고 있었다.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는다. 단지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다. 옆 사람을 걱정하는 눈빛과 함께 하는 공간에 대한 즐거움이 묻어났다. 나날이 조바심으로 살아가는 나와는 다른 느긋함을 그와 농인에게서 느꼈다.그들은 지상에 발을 내리며 다시 손 꽃을 내게 내밀었다. 마지막 한 사람을 내려주며 그와 농인이 함께 다시 무형의 꽃을 피웠다. 수화(手話)는 그들을 통해 수화(手花)로 피어났다.그러고 보니 오늘이 지체장애인의 날이다. 나와 타인의 거리가 조금 좁혀지는 날이 되길 기대해 본다.*비수지신호: nonmanual signals, 표정과 몸짓

2020-11-11

해바라기 스캔들

사람인 이상 시종일관 이성적일 수는 없습니다. 인간더러 흔히 이성적 동물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늘 논리적으로 판단하고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근거는 되지 못합니다. 인간은 보기보다 허술하고 허당끼 많은 존재이지요. 이성이란 갑옷으로 아무리 무장을 해도 부지불식간에 감정이란 빨간 내복이 삐져나오기 마련입니다.짐승은 본능에 충실하고, 괴물은 본능을 관장합니다. 그러면 그 중간인 인간은? 본능을 억제하는 순간적 능력을 발휘하는 동물일 뿐이지요. 짐승은 번민의 정도가 인간만큼 드러나지 않고, 괴물은 타자로 하여금 번민을 유발하는 존재이지요. 그 도발된 번민에서 자유롭지 못한 유일한 동물이 인간이지요. 성경에 묘사된 하느님조차도 온전한 이성으로 세상과 인간을 판단하지는 않았습니다. 절대자답게 당신 기준으로 세상 피조물들의 생사를 관장했습니다. 그 기준이란 것은 인간의 눈으로 봤을 때 완벽히 이성적인 것은 아니었지요. 말하자면 당신 닮은 인간을 창조했다고 말한 당신의 말씀은 너무 인간적이고 온당한 것이지요.어떤 판단을 할 때 이성이 꼭 감정보다 낫다고 말할 수 없다는 걸 말하기 위해 이렇게 빙빙 돌아왔네요.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우리는 흔히 ‘감정 섞지 말고 이성적으로 판단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이성적이 될 수는 있지만, 그 이성이 항상 실천적 행동으로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이성적 판단은 결국 감정을 덜 섞는 타협으로 나타날 뿐, 이성 그 자체에 이르지는 못합니다.지금 이 순간도 우리는 착각합니다. 나는 감정적이지 않으며 이성적인 판단을 유지하고 있다고. 어림없는 소리입니다. 여전히 우리를 지배하는 결정적인 부분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라는 사실만 확인할 뿐입니다. 행불행을 관장하는 너무나 인간적인 단어, 감정!둘만 되어도 이성적 판단 앞에서 갈등하게 됩니다. 오죽하면 사르트르가 ‘타인은 지옥’이라고 표현했을까요. 안전한 거리 확보 없는 관계는 파국에 이르기 쉽습니다. 평화를 가장한 전쟁, 미소로 위장한 침울, 침묵으로 포장한 폭발이 당신 곁에 맴돈다면 이는 틀림없이 적당한 거리의 법칙이 무시 된 채 감정에 휩싸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감정 동물인 인간관계의 법칙에 가장 적절한 예가 예술가들일 것입니다. 예민한 예술혼이라는 짐을 진 대신 ‘제멋대로’라는 면죄부를 얻은 그들의 관계는 더 쉽게 깨지고, 그 파국 또한 처절할 수밖에 없습니다.고흐는 해바라기를 그렸습니다. 고갱도 해바라기를 그렸지요. 고흐의 해바라기는 심연을 후벼 파는 듯 격정적이고, 고갱의 해바라기는 자유분방한 듯 자신만만합니다. 고흐의 해바라기는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있고, 고갱의 해바라기는 맘먹고 검색이라도 해봐야 아는 이도 많습니다. 그렇다고 고흐의 해바라기가 더 아름답고 예술적이고, 고갱의 해바라기는 덜 아름답고 덜 미학적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해바라기로 대표되는 두 예술혼의 방식이 너무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거지요.고흐는 자신의 예술욕을 채우기 위해 고갱을 아를르로 불러들였습니다. 도도하고 지적이고 권위적인 고갱에 비해 고흐는 격정적이고 소박하고 성실했습니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의 매뉴얼을 담당하는 건 인지상정이지요. 둘 사이의 권좌 차지인 고갱은 소박한 의자에 앉아 집착하고 매달리는 고흐가 성가실 뿐이었습니다. 참을 수 없었던 고흐는 광기를 핑계로 자신의 귀를 세상을 향한 격정처럼 고수레하고 말았지요. 그렇게 해야만 상처받은 영혼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터였으니까요.김살로메소설가고흐의 해바라기는 예술혼의 결정체입니다. 고갱의 해바라기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너무 다른 자신만의 해바라기를 위한 것이었다면 그 둘은 만나지 않은 게 더 나을 것이었어요. 하지만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지요. 각각 신경강박증과 오만방자가 없었더라면 누가 그들이 남긴 해바라기 은유에 대해 이토록 오래도록 기억해줄까요.두 사람의 파국에 책임의 추를 견줘 보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고결한 고흐의 신화도 고집불통이었던 고갱의 전설도 감정에 충실한 개성 덕분이었지요. 그 감정선 덕에 그들의 예술혼이 빛날 수 있었으니까요. 자기 연민으로 견뎌내는 고통도 자기 격정으로 발산하는 오만도 예술가에게는 모두 필요한 덕목일 테니까요. 그러하니 오늘밤도 몇 번씩 제 귀를 면도날로 오리는 악몽에 시달리는 당신, 당신이야말로 해바라기 품는 예술가임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 꿈의 원천은 용서할 만한 이성이 아니라 달떠도 좋을 감성에 바탕을 두고 있으니까요. 격정의 드라마 없는 예술혼이 가당키나 할까요. 누군가의 예술혼, 그 출발점은 황금별 송이마다 촘촘 박힌 해바라기 씨앗 같은 감정 하나하나였음을 되새기는 밤.

2020-11-11

태평양 건너 어디선가 본 듯한

장규열 한동대 교수미국 대선이 막을 내렸다. 시민들은 선거로 참여하며 민주적 결정과정에 할 일을 다 하였다. 다만, 승자와 패자를 최종 가늠하기에 법적이며 정치적인 판단이 필요할 모양이다. 마지막 진통이 민주주의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인지는 지켜볼 일이다. 이미 가라앉는 듯한 미국의 국격에 또 한 차례 흠집을 내는 결과를 빚지 않기를 기대할 뿐이다. 험한 대선의 길목에서 주목받는 사람이 있다. 카멀라 해리스(Kamala Harris). 여성이자 흑인이며 아시아와 아프리카 혈통을 가지고 있어 바뀌어 가는 미국의 저변 시민 인구층에 넓은 지지세와 소구력을 확장하였다. 마흔다섯 대통령을 배출해온 미국에서 최초로 그런 배경을 가진 부통령이 될 모양이다.미국에서 모든 여성이 투표에 참여하게 된 것은 놀랍게도 1965년이었다. 1920년에 여성참정권이 시행되었지만, 남부 흑인여성들에게는 거친 인종차별과 함께 참정권이 제한되었다. 해리스가 성적, 인종적, 문화적 차별의 벽을 딛고 오늘의 자리에 오른 일은 가히 역사적이다. 그가 ‘이것이 처음이지만 마지막은 아니어야 한다’고 말한 것도 미국이 나아가는 길에 주시해야 할 부분이다. 선거의 승리를 놓고 CNN 앵커 밴 존스(Van Jones)는 ‘이제야 아빠 노릇하는 게 쉬워졌다’며 눈물을 흘렸다. 백인경찰이 흑인남성의 목을 눌러 숨지게 했던 조지플로이드(George Floyd)사건이 있었다. 공분을 자아냈던 한마디 절규 ‘숨쉴 수 없다(I can’t breathe.)’는 그 뿐 아니라 모든 흑인들이 날마다 겪는 차별과 혐오였다며 이제야 벗어날 가능성이 보인다고 하였다.미국에서 아시안은 누구인가. 인도 출신 어머니를 둔 해리스 덕에 아시안아메리칸에 대한 관심도 높아갈 터이다. 아시안들은 상대적으로 명석하고 출중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로 여겨진다. 미국 주류사회를 겨냥하며 살아가는 아시아 출신 이민자들에게도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한다. 우리정부는 해외교포 정책에 보다 깊은 관심을 가지고 교민들이 한국과 한국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유지하며 일등시민으로 살아가도록 유도하여야 한다. 해리스가 말하는 ‘다음 기회’에는 한국 출신 누군가가 반드시 성공의 닻을 올릴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여야 한다.미국이 바뀌어 간다. 밖에서 보아도 부끄러울 만큼 분열과 단절의 벽을 쌓아 올리던 미국이 조금씩 변할 모양이다. 실제로 바뀌려면 이긴 사람들이 잘 해야 한다. 졌다는 일로만도 상처가 깊을 ‘절반의 미국’에게 상생과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바이든 당선자가 선언했듯이 ‘우리가 서로 반대편에 서 있었지만 한 번도 적은 아니었다’는 생각을 살려내야 한다.우리는 어떤가. 나라 안에 보이는 분열과 차별, 단절과 균열을 어찌해야 하는가. 변화와 발전을 거듭한다 한들, 하나가 되지 못하는 국민은 좋은 나라를 만들 방법이 없다. 우리가 겪었던 유사한 경험을 태평양 건너에서 다시 목격하는 오늘, 우리는 우리의 다짐을 다시 돌아보아야 한다.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

2020-11-11

하이퍼루프

하이퍼루프는 영화 ‘아이언맨’의 실제 모델로 유명한 엘론 머스크 테슬라 모터스 최고경영자가 2013년 여름에 공개한 초고속 진공튜브 캡슐열차를 말한다.하이퍼루프는 공기 마찰이 없는 진공튜브와 시속 1천300km로 달리는 캡슐형 열차로 구성된다. 열차는 가압과 공기역학적 양력이 작용하는 공기쿠션으로 유지되며, 열차는 튜브 안쪽을 미끄러지듯 달린다.하이퍼루프는 1천500km 정도 거리의 교통량이 많은 도시에 적합하다. 당시 앨런 머스크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30분이면 주파할 수 있다”며 초고속 진공열차 하이퍼루프 프로젝트 구현 계획을 발표했다. 구상안에 따르면 이 초고속 열차는 일종의 ‘열차 총(Rail Gun)’ 개념으로 진공상태와 다를 바 없는 튜브 속에서 열차를 한 량씩 발사하는 형식으로 가동한다. 거의 진공상태로 저항을 최소화해 최고 시속 약 1천220km까지 속도를 높여 달린다는 논리다. 이 열차가 현실화한다면 차로 최소 5시간 걸리는 서울-부산 구간 이동시간이 10분의 1 이하로 줄어들어 불과 2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한마디로 전국이 일일 통근권에 들게된다는 얘기다.꿈같은 최첨단 하이퍼루프 원천기술이 국내기술진에 의해 개발되고 있어 화제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은 11일 독자개발한 축소형 튜브 공력시험장치에서 하이퍼튜브 속도시험을 통해 진공상태에 가까운 0.001기압에서 시속 1천19km의 속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철도연은 지난 9월 아진공 상태에서 시속 714km의 속도를 기록한 바 있다. 거리제한으로 통근이나 통학할 수 없는 경계를 무너뜨릴 하이퍼루프 기술은 이 좁은 나라의 지역균형발전에도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11-11

이런 교사는 제발!

이주형산자연중학교 교감“다른 학생에게 방해하지 말고, 그냥 조용히 잠이나 자!”어느 중학교 수업 시간에 교사가 학생에게 한 말이다. 이 말이 나오게 된 교실 상황이 어떨지는 어느 정도 그려진다. 그리고 오죽했으면 교사가 저런 말까지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서 동시에 ‘무너진 교권 속 교사 명퇴자 증가’라는 기사가 오버랩되어 지나간다.최근 교육계 관련 뉴스 중 많이 나오는 내용 중 하나가 바로 교권(敎權) 이야기이다. 공통점은 교권 실추(붕괴, 추락)다. 안타깝게도 그 유형도 모욕, 명예훼손, 교육활동 부당 간섭, 상해, 폭행, 성추행, 성희롱 등 매우 다양하다. 우리 사회에도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이 불변의 진리처럼 통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그래도 살맛 나는 세상이었다.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모습은 교과서에나 나오는 이상적인 내용이 아니었다. 작은 일에도 서로가 감사했으며, 그 감사함은 서로의 가슴에 더 큰 희망으로 자리했다. 희망은 불가능조차 가능으로 바꿔 놓았다. 신명 나는 세상이었다.하지만 지금은? 임금 자리에는 권력형 대통령이, 스승 자리에는 생계형 교사가 자리했다. 그 결과 교육은 정치의 시녀가 되었으며, 우리 사회에는 희망이 사라졌다. 절망만 남은 교육은 출산 거부 운동을 불러일으켰다. 희망이 꺼지는 것에 비례하여 폐교 수도 늘고 있다.나라가 사라질 판인데도 정치인들은 상대 탓만 하고 있다. 낙하산 정치 교육 수장들은 교육을 더욱 정치에 굴복시키고 있지만, 교육 현장에 있는 그 누구도 교육 독립성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대신 성과금과 교육 유공자 표창 이야기에 열을 올리기 바쁘다.지금 우리나라 교사들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분명 그들의 가슴에도 교사라는 사명감이 불타올랐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교사(敎師)! 비록 기간제 교사였지만, 필자는 필자의 이름에 처음으로 교사라는 호칭이 붙을 때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때의 기분은 법명이나 세례명을 받는 것보다 필자에겐 더 성스러웠다. 종교에서 새로운 이름을 받는 것은 지금까지의 잘못된 삶을 버리고 주어진 새 이름대로 새로운 삶을 살라는 뜻이다. 아직 턱없이 부족하지만, 필자도 필자의 스승께서 보여주시고 열어주신 교사다운 교사의 삶을 살기 위해 끝없이 노력 중이다. 한 나라의 미래를 창조하는 것은 교육이다. 그 교육을 책임질 사람은 바로 교사다. 교사가 바로 서야 교육도 바로 선다. 비록 암기 위주의 시험이지만, 교사라는 이름을 받을 사람을 뽑는 시험일이 다가오고 있다. 이번 시험부터라도 제발 교권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아는 사람을 뽑기를 기원한다. 그런 의미에서 잠시 교권에 대한 의미를 인용한다.“넓은 의미의 교권은 (….) 교육권으로서의 교권에는 학생의 학습권, 학부모의 교육권, 교사의 교육권, 학교 설립자의 교육 관리권, 그리고 국가의 교육 감독권이 모두 포함된다.”그리고 “잠이나 자!”라고 말하는 이런 교사는 제발 뽑히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2020-11-11

전태일

김규종 경북대 교수“정말 하루하루가 못 견디게 괴로움의 연속이다. 아침 8시부터 저녁 11시까지 하루 15시간을 칼질과 다리미질을 하며 지내야 하는 괴로움, 허리가 결리고 손바닥이 부르터 피가 나고, 손목과 다리가 조금도 쉬지 않고 아프니 정말 죽고 싶다.”1967년 3월 17일 전태일이 쓴 일기의 한 대목이다. 극심한 육체적 고통과 함께 그를 옥죈 것은 형식적으로만 존재하는 근로기준법과 업주들의 부당노동행위였다. 청계천에 있는 의류공장 보조 재단사와 재봉사로 일하던 전태일은 동료 여공들의 가혹한 노동조건과 부당해고에 맞선다. 그는 1969년 6월 평화시장에 노동운동조직 ‘바보회’를 결성한다. ‘바보회’는 1970년 9월 ‘삼동회’로 거듭나면서 노동운동의 거점이 된다.1970년 11월 13일 전태일과 ‘삼동회’ 회원들은 ‘근로기준법화형식’을 결행하려 한다. 평화시장 의료공장 업주들과 경찰이 이들의 시위를 저지하자 전태일은 온몸에 석유를 끼얹고 불을 지른다. “근로기준법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하는 구호를 외친 전태일은 병원으로 이송되나 끝내 절명한다. 그의 나이 스물두 살 때 일이다.전태일의 분신은 한국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에 일대 전환점이 되었으며, 노동자들의 실태를 알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부당하고 불의한 세상에 죽음으로 항거한 그의 투쟁은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1984)을 잉태하는 밑거름이 된다.“긴 공장의 밤, 시린 어깨 위로 피로가 한파처럼 몰려온다/ 두 알의 타이밍으로 철야를 버티는/ 시다의 언 손으로 장밋빛 헛된 꿈을 싹둑 잘라/ 미싱대에 올린다 끝도 없이 올린다/ 미싱을 타고 장군같이 미싱을 타고/ 갈라진 세상 하나로 연결하고 싶은 시다의 꿈”- ‘시다의 꿈’ 부분전태일이 분신한 지 15년 세월이 흘렀으되, 변하지 않는 노동조건과 생활고. 박노해는 “파리한 이마 위로 새벽별 빛난다”로 시를 맺으며 다가올 날들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세계는 신자유주의로 전환하여, 오늘날 상당수 노동자가 외주기업 하청 노동자로 전락한다. 그 결과 지난 2010년부터 2019년까지 10,173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다.해마다 1천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죽음의 대열에 합류해야 하는 세상은 무너지고 다시 태어나야 한다. 사람이 사람값을 온전하게 받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노동자들이 재벌과 대기업을 위한 일회용품이 아니라, 세상을 구성하는 소중한 일원으로 수용될 때만 대한민국은 자랑스러운 선진국 대열에 오를 것이다.전태일이 분신한 지 50년 세월이 흘렀다. 반세기 동안 우리가 이룩한 성취도 대단하지만, 그 뒤에서 소멸해간 숱한 생명과 인연과 관계를 생각할 때다.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고, 그것을 어린것들에게 넘겨주는 것이 우리의 시대적인 과제가 아닌가 한다.

2020-11-11

필요한 건 당신 근처에

빈티지 물건을 좋아한다. 공장에서 생산된 각 잡힌 새 상품보다 사람의 손을 타고 구겨진 것들에 더 매력을 느낀다. 연식이 오래된 물건을 만나면 너는 이 험한 세상에서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았니, 하고 질문하고 싶어진다. 누군가 사용했던 물건이 시공간을 타고 이리저리 흘러 내 앞에 나타나는 일. 그건 일종의 운명적 만남처럼 느껴지기도 한다.스무 살 무렵에는 광장시장이며 동묘를 습관처럼 방문했고, 해외여행을 계획할 때면 벼룩시장에 들르는 코스도 빼놓지 않았다. 그곳에는 별별 것들이 다 있었다. 다양한 물건들은 편안하고 익숙한 감각과 함께 자신을 알아봐 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멀쩡한 것들이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조금 슬프기도 했다. 끊임없이 새로운 상품이 태어나는 세계 속에서 오래된 물건만이 가지고 있는 분명한 매력이 있다고. 어쩌면 나 역시도 그런 존재가 아닐까 하는 감상에 빠지면서.중고물품을 피하는 사람 중에서는 모르는 이가 썼던 물건이라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게 만약 평생을 불운하게 살았던 사람의 접시면? 죽기 전에 입었던 코트면? 하지만 그런 것쯤은 내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차피 인생에는 행운보다 불운이 더 자주 찾아오고 사람은 언젠가 죽기 마련이니. 나는 중고서적을 자주 구입하는 편이다. 뻣뻣한 종이의 질감보다 누렇게 변색하여 버석버석한 느낌이 더 좋다. 떠오르는 생각을 적고 밑줄을 그어가며 읽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새 책은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책을 읽다 문득 발견하게 되는 낙서도 어떤 설렘을 몰고 온다. 책장 귀퉁이의 고불고불한 글씨를 마주하며 손끝이 맞닿은 이의 막연한 얼굴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그런 내게 ‘당근마켓’의 등장은 정말이지 반가운 소식이었다. 매일같이 온라인으로 열리는 동네 벼룩시장이라니! 그야말로 인터넷 공화국다운 면모가 아닌가.다양한 중고거래 앱이 있지만, 그중에도 당근마켓은 사람들의 폭발적인 관심으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낸다. 서비스 시작 5년 만에 월간 실 이용자 수 800만 명을 끌어모으며 현재 국내 중고거래 앱 중에서 독보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성장의 이유로는 단연 거래의 편의성과 접근성을 들 수 있다.당근마켓은 ‘당신 근처의 마켓’을 줄인 말이다. 이용자가 사는 지역에서 앱을 접속해서 GPS 인증을 받으면 가까운 이웃과 소통할 수 있게끔 되어있다. 이들끼리 중고 물품을 사고팔 수 있으며 동네 생활에 대해 잡담을 나누고 숨은 맛집이나 편의시설을 공유하는 커뮤니티 기능도 있다. 특히 당근마켓의 주목할 점은 거래의 지역을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기존의 온라인 중고 장터와의 확실한 차별성이 보인다. 집 근처의 이웃을 직접 만나서 거래하기 때문에 물건의 상태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직거래 시스템은 중고 거래의 고질적 문제였던 사기 피해의 가능성을 현저히 낮췄다. 사용 방법도 간편하다. 가입하고 사진을 찍어서 올리면 끝이다. 그렇기에 뭐든 부담 없이 매물로 올릴 수 있다. 정말 이런 걸 산단 말이야? 하는 의구심이 들기 마련이지만, 정말 사는 사람이 있다. 그건 내가 보장할 수 있다.내가 처음으로 당근마켓에 판 물건은 머리핀이다.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나니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 물건이었다. 평소였다면 어느 구석에 처박아놓거나 쓰레기장에 버렸을 것이다.나는 머리핀을 깨끗하게 닦은 뒤 사진을 찍어서 당근마켓에 올렸고 몇 시간 만에 거래하자는 연락이 왔다. 근처 지하철역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잡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마스크로 가려진 얼굴 사이에서도 구매자의 모습은 한눈에 들어왔다.“저 혹시 당근…?” 쭈뼛쭈뼛 다가가니 “네. 당근….”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머리핀과 현금을 교환했다. 나는 그 돈으로 와인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더 이상 쓰지 않는 머리핀을 와인과 바꾸다니. 정말이지 만족스러운 교환의 경험이었다.과거의 나는 물건을 깨끗하게 쓰는 편이 아니었다. 어차피 소모품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질 좋고 튼튼한 상품을 사서 오랫동안 사용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절약이었다. 하지만 중고거래를 일상화하면서부터는 자연스럽게 내가 구입한 물건을 언젠가는 다른 누군가가 다시 쓸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내 습관에도 사소한 변화를 불러왔다. 내가 완전히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와도 공유할 수 있다는 가치관이 정립되자 어떤 것이든 허투루 대하지 않게 되었다.누군가에겐 필요 없어진 것이 내겐 절실하게 필요할 때가 있다. 당근마켓은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기에도 좋다. 중고 상품의 메리트는 역시 저렴한 가격이다. 새 상품을 사는 것보다 훨씬 적은 돈으로 필요한 것을 구입하는 이점을 누릴 수 있다. 이뿐 아니다. 거래를 하다 보면 이따금 사탕꾸러미나 ‘잘 사용하시길 바라요’ 하는 쪽지같이 달콤한 선물을 받기도 한다.그런 다정한 마음을 받으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기분이다. 맞아, 우리는 근처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었지, 하는 당연한 사실이 떠오른다. 멀게만 느껴졌던 이들이 성큼 가깝게 다가오게 된다.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무엇보다 중고 거래는 환경에 미치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지속가능한 소비다. 우리는 현재 환경오염과 쓰레기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에 다다르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환경문제는 실생활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창문을 열면 마주하는 미세먼지와 급격한 기후 변화는 인류가 지구에 발 디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경고문처럼 여겨진다. 미세플라스틱이 바다를 점령하고 해양생물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다큐멘터리를 보며 가슴 아파하는 와중에도 어디선가 쓰레기는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특히 SNS는 거대한 백화점이나 마찬가지다. 인스타그램에 전시된 인플루언서의 삶의 방식이나 유명 유튜버의 ‘쇼핑하울’은 매일같이 새로운 소비를 부추긴다. ‘이 물건이 당신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카피는 우리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소비를 권장하는 사회는 소비 이후에 대해서는 절대 책임지지 않는다. 나를 설레게 했던 상품이 하루아침에 쓰레기가 되어버리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숨 쉬고 있다.실제로 당근마켓에서는 중고거래로 인해 누적 19만t에 달하는 온실가스 감소 효과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자원의 재순환으로 환경을 보호한 좋은 사례다. 서로가 서로의 주변에 있다는 것을 인지하며 물건을 공유하는 것. 이런 행동은 이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타인이 사용했던 상품을 단순히 ‘헌 것’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닌 ‘윤리적인 것’이라고 여기는 의식으로 발전한 것이다. 이러한 시각의 변화를 토대로 우리는 더 나은 내일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환경오염의 문제가 절실하게 다가오는 요즘, 우리는 우리의 일상적 소비에 관하여 골몰해 보아야 한다. 갈수록 소비는 편리해져 간다. 손가락 하나로도 값비싼 제품을 뚝딱 결제할 수 있다. 찰나의 순간에 내 몫의 거대한 물건을 떠안게 된다. 그러니 우리는 늘 의식적으로 경계하며 소비를 부추기는 사회의 틈새를 걸어가야 한다. 내가 행하는 소비가 합당한가. 이 욕망이 정말 내 것이 맞나. 날카롭게 질문을 던져보자. 필요한 건 항상 우리 근처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2020-11-10

예술문화의 새로운 모색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 계절, 코로나19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은 어떻게 물들어 갈까? 사회 전반적으로 위축되고 침체된 나날 속에 몸과 마음의 푸른 멍처럼 여전히 침울의 일상을 허우적대고 있는 걸까? 아니면 환경이나 여건변화에 따른 이른바 ‘뉴노멀 시대’를 맞아 적응과 자구책으로 새로운 삶의 방편을 찾고 있다고나 해야 할까? 언제 끝날지도 모를 희대의 감염병에 노이로제처럼 시달리면서도 사람들은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대응과 처세의 슬기를 발휘하는 듯하다.그 중 필자는 문화와 예술에 주목한다. 몸이 힘들고 지쳐가도 마음이 안정되고 평온해지면 평정심을 가질 수 있다. 불안과 조바심의 나날이지만, 정서적인 위안과 순화를 누릴 수 있는 문화생활을 통해 사람들은 적으나마 치유와 위무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수시로 미술관을 찾거나 온라인 전시장엘 접속해 작품 감상과 해설을 들으며 어수선한 현실을 극복하는지도 모른다. 집중과 몰입의 시간 속에서 나름 잊을 건 잊고 살릴 건 살리는 성찰과 정리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그런 의미에서 지난 10월 말에 열린 다섯번째 ‘2020 포항호텔 아트페어’는 비교적 조용한 가운데 치뤄지면서 미약하나마 뉴노멀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으로 보여진다. 포항작가 뿐 아니라 타 지역 유수의 작가들이 참여해 코로나19 상황으로 종전의 호텔 객실을 갤러리로 활용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온·오프라인을 통해 작품과 시민들을 연결했다. 이러한 시도는 예기치 못한 난국을 마냥 피하고 포기하기 보다는 새로운 방법을 찾고 과정을 만들어 나가는 현실적인 대안과 전환점으로 미술계를 지켜 나가려는 신선한 바람으로 여겨진다.정부의 방역 기준에 맞춰 작품들은 직접 보고 참여할 수 있어서 시민들의 전시, 문화향유 욕구에 숨통 같은 작용을 했다고나 할까? 겉모습만 보여주는 거울에 비해 속마음을 비춰주는 그림은 마음을 치유하는 힘이 있다. 미술을 가까이하고 문화예술을 누릴수록 여유로운 마음으로 윤택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예측불가한 미래와 비대면 시대에 직면해서 미술계도 새로운 변화와 지향점을 모색해야 한다고 본다.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미술작품도 IT기술을 접목해 아카이브적인 콘텐츠로 보급시켜 향수층을 늘리고 미술문화를 활성화시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전시장이나 작업실에서 기다리는 작품이 아닌, 새로운 차원의 콘텐츠를 스스로 기획, 생산하여 유투브나 전자게시판, SNS 등으로 전파, 활용하는 생활미술 작품으로 다변화시켜야 한다. 언택트 시대에 온택트(On Tact) 작품을 선보임으로써 시민들에게 손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시류에 편승하지 않는 긍정적인 관점으로 예술작품의 융·복합을 통한 표현양식의 확장, 공동작업의 방향성, 탈모더니즘에 대한 해석의 다양화 등에 주안점을 두고 함께 느끼며 즐길 때 예술문화가 한결 활성화될 것이다. 예술이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때 보다 친근하고 향기로우며 따스한 사랑과 행복의 메시지가 전해질 것이다.

2020-11-10

‘눈치’ 보는 세상

서수백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과새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내 키만한 녹보수 한 그루를 거실 한편에 들여 놓았다. 그간 여러 사람들이 좋은 마음으로 나에게 주었던 그 많은 화초들을 살피지 못하고 말려 죽이고 말았던 무책임하고 게으른 내가 아니었던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또 다시 잎이 무성한 식물을 집에 들여 놓은 것은 실내 공기 정화의 효과도 있다고 하고, 녹음을 보면 쌓인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기분을 많이 느꼈기 때문이다. 녹색을 많이 보는 것이 와병(臥病)을 줄인다는 어느 의학 프로그램에서 들은 이야기도 의식을 했던 듯싶다. 순전히 내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식물원 주인이 나에게 물은 자주 줄 필요는 없고 열흘에 한 번씩만 주면 된다고 했다. 수월하게 집안에서 녹음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한층 더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역시 나는 열흘에 한번 물 주기, 그 수월한 일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았다. 멀지도 않은 곳에 있는 한 그루 나무인데도 말이다. 어느 날 녹보수를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무성한 잎들이 지칠 대로 지쳐 축 쳐져 있었다. 그제야 나는 얼른 물 한 바가지를 떠와 나무에 주었다. 더 놀란 것은 물을 준 지 불과 몇 분이 지나서 지친 잎들이 모두 힘 있게 일어나 푸르른 빛을 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에 왜 그토록 감정이입이 되던지…. 식물도 생명이 있으니 당연한 현상인데 내가 너무 감상에 취했다고 할지도 모르겠다.내가 ‘눈치’가 없었다. 누군가는 날더러 ‘눈치가 백단’이라고 하는데 왜 지쳐가는 나무에 대해 나는 눈치를 발휘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간의 내가 본 ‘눈치’의 의미와 가치는 무엇인가. 눈치 보지 말고 당당하게 살라는 말을 흔히들 한다. 자존감을 불어 넣는 기분 좋은 격려다. 그런데 이 말이 문득 우리를 ‘자기중심주의’, ‘이기주의’로 더욱 빠지게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19로 우리의 생활 패턴이 바뀌면서 사람들은 더욱 예민해지는 듯하다. 그리고 자신에게 더욱 몰입되어서 심리적인 폐쇄성은 더욱 커져가는 듯하다. 모두가 눈치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눈치’는 ‘남의 마음을 그때그때 상황으로 미루어 알아내는 것’이다. 나 자신의 안위와 편리를 위한 눈치보다 힘겨움과 곤란함을 외치고 있는 주변에 눈치를 발휘해야 한다. 나한테 무익한 일이라고,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내 자신 내 가족이 더 중요하다고 외면하는 습관적 가치관이 우리의 지혜로운 눈치를 더욱 감소시킬 수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그 눈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더 가지는 노력을 하자. 정치인이, 공직자가, 교육자가, 부모가, 자식이, 청년이, 청소년이, 우리 각자가 이타적 눈치를 볼 줄 알아야 한다. 그 가치 있는 눈치를 많은 사람들이 가질 때 우리 사회에 녹음의 빛이 골고루 퍼지고 날로 건강해지는 세상이 될 것이다. 이익과 성과의 중심을 ‘이타(利他)’에 두는 ‘눈치 있는 삶’, ‘눈치 보는 삶’의 시너지 효과가 얼마나 큰지 녹보수 한 그루에서 느꼈다.

2020-11-10

조 바이든 당선인의 대북 정책 긴급 진단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미국의 대선은 바이든의 당선이 확정되었다. 박빙의 6개 경합지구 중 펜실베이니아와 네바다 선거인단을 확보하였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법적 소송으로 대응했지만 선거 결과를 뒤집기 어렵다. 6선의 상원 의원, 부통령 8년의 경력에도 불구하고 바이든은 가정적으로는 심각한 불행을 겪은 정치인이다. 교통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었고, 아들마저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2번의 대선후보 경선에서 패배하고 78세에 46대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바이든의 대북 정책은 어떻게 펼쳐질까. 그의 대북 정책을 미리 진단해 본다.민주당 바이든의 대북 정책의 기조는 트럼프와는 분명히 다르다. 과거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철저히 무시하는 전략을 폈다.‘전략적 인내’라는 슬로건으로 북미 관계는 한 발짝도 진전될 수 없었고 남북관계마저 단절되었다. 바이든은 선거 유세 중 독재자 김정은에게 유화적인 트럼프의 대북 협상자세를 비난했다. 지난달 바이든 보좌관 출신 북한 전문가는 서울을 방문하여 당시 북한의 천안함 폭침 사건과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태도가 북한에 대한 불개입, 무시 정책을 견지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힌바 있다. 그러나 그의 대북 정책은 그대로 유지되기는 어려울 것이다.바이든 당선인의 대북 접근 방식은 트럼프와는 다르다. 트럼프가 정상 간의 탑다운 방식을 선호했다면 그는 바텀 업(bottom up)방식을 채택할 것이다. 트럼프가 외교적으로 일을 저질러 놓고 수습했다면 그는 실무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을 중시할 것이다. 바이든은 선거 유세 중 북한이 핵 역량을 감소한다면 북미 정삼회담도 할 수 있다는 발언도 하였다. 그러므로 바이든은 북미간의 위로부터 일괄 타결보다는 아래로부터 단계론적 접근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 역시 주고받기 식 단계론적 원칙을 선호하여 북미회담의 전망은 결코 어둡지 않다.바이든의 대한 정책은 남북관계뿐 아니라 북미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트럼프는 그간 한국정부에 방위비 대폭 인상을 요구하여 우리를 압박하였다. 기업인 출신 트럼프 특유의 이익확보 협상 전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이든은 방위비 문제로 시간을 끌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한미 간 현안인 주한 미군 문제, 전작권 회수, 한미 합동 군사훈련 문제 등을 한미 동맹의 결속차원에서 해결할 것이다. 상원 외교 위원장 출신인 그는 최소한 트럼프 식 동맹국에 대한 ‘후려치기 식’협상은 지양할 것이 분명하다.그러나 바이든 당선인의 대북 정책은 상당한 준비기간이 필요할 것이다. 북한이 과거처럼 이 기간을 참지 못하고 핵이나 미사일 시험 발사를 강행한다면 북미관계는 다시 경색될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이 핵문제에 관해 현 상태를 유지하고, 자제한다면 북미간의 협상은 재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운전자론도 힘을 실을 것이다. 다자주의를 강조하는 바이든의 정책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기조와 다르지 않다. 문제는 임기 말의 문재인 정부는 시간이 부족하다. 46대 대통령 바이든의 대한반도 정책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2020-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