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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추석발 스미싱 주의보

올 추석은 코로나19 확산으로 가족과 지인 간 문자메시지나 메신저 등으로 안부 인사를 전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추석발 스미싱 주의보가 내렸다.안랩에 따르면 최근 아들·딸 등 가족 구성원을 사칭하거나 안부 인사로 위장한 메시지로 악성 앱 설치나 금융정보 탈취를 시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자녀를 사칭한 문자 메시지로 개인정보와 금융정보, 문화상품권 구매 후 핀번호 등을 요구하거나 스마트폰 원격 조종 등 악성 앱 설치까지 유도하는 것. 가족이나 친지의 문자라도 문자메시지로 앱 설치를 유도하거나 금전거래를 요구할 경우, 직접 전화를 걸어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스마트폰 전용 백신을 사용하는 게 좋다.고향 방문 대신 선물을 보내는 상황을 노리거나 사회적 이슈를 악용한 보안위협도 이어지고 있다. 해커가 택배 알림으로 위장한 스미싱 문자나 메일로 악성코드를 유포하거나 유명 국제 배송업체의 송장 확인 메일을 위장해 악성코드를 유포하는 사례다. 심지어 정부가 소상공인 등 코로나 2차 재난지원금 대상자에게 문자메시지 안내를 보낸다고 예고하자‘2차 재난지원금 지급’으로 위장한 스미싱 문자메시지도 발견된다. 피해 예방을 위해선 출처가 불분명한 문자메시지 및 메일의 URL, 첨부파일은 실행을 하지 않는게 중요하다. 사용하고 있는 프로그램과 앱을 항상 최신으로 유지하고, PC와 스마트폰에 백신을 설치하는 등 보안 수칙을 실천해야 한다. 추석 연휴에는 PC나 스마트 기기로 영화, 게임, 인기 동영상 등의 콘텐츠를 즐기는 사용자가 많아 이를 노린 해커들의 공격이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추석은 코로나와 스미싱 위험을 피해 조용히 지내는게 좋겠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9-23

남자들에게만 맡겨둘 세상이 아니다

장규열한동대 교수‘세상은 남자들의 작품이다.’ 프랑스 작가 시몬느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가 남긴 말이다. 세상이 남자들의 관점으로만 해석되고 구성되며 운영되는 일을 꼬집었다. 세상이 그렇게 된 까닭을 설명하려 하지만, 그 어느 설명도 가당치 않다고 했다.미국작가 캐롤라인 페레즈(Caroline Perez)는 그의 책 ‘보이지않는 여성(Invisible Women)’에서 구체적인 정책과 제도의 입안과 수립과정도 남성중심의 사고방식과 고정관념에 점령당했다고 했다. 기초자료로 사용되는 통계치들도 ‘여성의 존재’를 간과하는 경우가 허다해 여성이 거기에 있었음조차 무시되곤 한다는 것이다. 교육과정설계, 도시계획입안, 정책수립과정 등에 있어 여성의 시각이 누락되지 않아야 함을 지적하고 있다.최근 작고한 미연방대법관 긴즈버그(Ruth Bader Ginsburg)가 남긴 일화가 있다. 진보적 성향을 가진 그에게 기자가 물었다. ‘아홉명 정원 대법원에 여성대법관이 몇 명 앉아야 공정한가?’라는 질문에 그는 ‘아홉명 전원’이라고 답했다.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같은 질문을 뒤집어 ‘아홉명 전원이 남성이라면 같은 질문을 했겠느냐?’고 되묻는다. 남성이 지배하면 당연하고 여성이 들어서면 이상하다 여기는 생각부터 잘못된 것이 아닌가. OECD는 노동임금수준의 성별 간 차이를 발표한다. 회원국들 평균 여성이 남성에 비해 13% 덜 받는다는데, 한국은 단연 그 격차가 추종을 불허하는 1위로 34%나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존재가 되외시될 뿐 아니라 그 가치마저 저평가되고 있음이 아닌가. 남녀 간에 물리적으로 다른 것을 인정하더라도 인격과 인권 면에서 무시되고 소외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교회는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주요교단 하나가 ‘여성이 목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결정했다고 한다. 성경 어느 곳에 남자만 교회를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이 적혀 있는지 모를 일이다. 세상이 저렇게 변했는데, 남자 목사들끼리 모여앉아 저런 결정을 하는 배포가 놀라울 뿐이다. 아니 세상이 변하기 전에 이미 당신들의 대표 선생이었던 바울 사도가 ‘남자와 여자가 예수 안에서 하나임’을 선포하였던 일은 무시해도 되는가. 그런 교회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어디로 흩어질 것인지 두렵지도 않은가.여성 가수 한 사람이 어렵게 어렵게 입을 열었다. 어릴 적에 성폭행을 당했었노라고. 수많은 날들을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지내왔음도 고백했다. 오늘도 폭력 앞에 무너지고 있을 다른 여성들에게 위로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세상에 자랑거리가 많아 보이는 나라에서 이 같은 야만이 아직도 존재한다니 경악할 따름이다.무시당하고 값싸게 취급되며 폭력까지 감내할 양이면, 우리의 누이들에게 이곳은 선진국일 수가 없다. 갈 길이 아직 먼 숙제들은 이제 여성만의 몫이 아니다. 그동안 누리면서도 몰랐거나 무심했던 남성들이 깨어날 차례가 아닌가. 인류의 나머지 절반이 세상을 구할 수 있도록 소매를 걷어야 하지 않을까.

2020-09-23

오리 날다

배문경수필가보문호수는 윤슬로 춤춘다. 우거진 녹음 사이로 바람이 분다. 멀리 떠가는 오리 배, 수면 아스라이 앉은 오리와 뭇 새들이 풍경을 이룬다. 乙자 모양의 오리가 수면을 치며 날아오를 때, 순간 담담하던 풍경이 소스라치듯 놀란다.새들의 군무를 보았던 일이 떠오른다. 일몰 직후 노을 진 하늘 위로 떼 지어 날아오르던 새들은 가창오리였다. 그들의 비상과 선회는 한 폭의 점묘화를 이루며 나의 시선을 압도했다. 그 광경은 한 마리 한 마리가 단지 생존으로 다급한 힘겨운 몸짓에 불과했다. 그러나 작은 두 날개가 추위와 굶주림을 넘어서 함께 어울려 펼쳐 놓은 것이었기에 더욱 숨 막힐 듯 아름답게 느껴졌다.하늘 한 쪽에 펼쳐진 거대한 그림을 보며 어느 순간 하늘을 거침없이 날아올라 자신을 드러낼 구도자의 춤을 떠올렸다.아버지는 집에서 오리를 키웠다. 친정집 뒤에는 큰 도랑이 있어 오리를 키우기에 알맞은 곳이었다. 우리 집 앞에는 오리솟대가 있었는데 새들이 날아갈 때는 솟대의 오리도 날개 짓하는 것 같았다.오리들은 흰 깃털이 때가 묻어 늘 거무죽죽했다. 그 오리들 사이에 색깔부터 다른 청둥오리 몇 마리가 끼여 있었다. 아버지는 어디선가 청둥오리 알을 가져와 서너 개를 부화시켰다고 했다.어느 날, 약으로 쓴다며 오리를 사러온 사람에게 아버지는 두 날개를 끈으로 묶어 청둥오리를 넘겼다. 내 눈처럼 오리는 젖은 눈으로 퍼덕였다.청둥오리들은 가끔씩 날개를 펼쳐 날아오르기도 했지만 야생으로 영 날아가 버릴 생각은 애초에 없는 것 같았다. 가끔 비탈진 언덕을 오르거나 뒤뚱대며 내려올 뿐이었다. 이미 퇴화된 날개는 어깨의 일부처럼 붙어있었다.어느 날, 아버지는 높은 장대를 설치해서 그물을 치기 시작했다. 날개에 힘이 오른 청둥오리들이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을까. 하지만 그 여름 태풍이 한번 휘몰아치자 냇가에 세워둔 아버지의 그물막도 장대가 넘어지면서 한쪽귀퉁이가 무너져 내렸다. 그물막을 수리하는 동안 초막에 갇혀 지내던 오리들이 다시 냇가로 나왔다. 지저분한 날개를 씻어 깨끗해졌을 때, 아버지와 나는 서로 눈이 마주쳤다.그 아주 짧은 순간, 내 기억은 눈부신 빛 속으로 흩어졌다. 청둥오리 한 마리가 날개를 펼치며 몸을 위로 띄웠다. 그리고는 머리와 몸채가 평형이 되게 하고는 날개를 쭉 펼치자 앞으로 날아올랐다. 그때였다. 신호를 서로 보내고 있었을까. 한 무리의 오리들이 하늘에 낫 모양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청둥오리는 솟대를 지나 그 무리를 향해 더 높이 날았다. 지상에 있던 흰 오리들이 꿱꿱하며 날개를 퍼덕였다. 청둥오리는 날아오르다 잠시 공중에 멈춰 인사라도 하듯 고개를 젖혔으나 위로만 날아올라 무리들에 섞여버렸다.낮잠은 달았고 오리들은 자맥질 중이었다. 나는 청둥오리들이 푸른 하늘을 날아올라 자유롭기를 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오랫동안 나는 반복된 일상에 젖어있었다. 나 자신의 꿈은 내려놓은 채 가정에 모든 것을 붓는다고 자위했다. 피곤에 절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더러 나의 꿈을 돌이켜 본다. 한 때 영화공부를 해보고 싶었고 외국에서 영화감독이 되어 돌아오는 나를 그려보았다. 밥벌이가 중요하다고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나는 꿈을 접어 넣는 습관에 익숙해졌다. 그러면서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이러다 늙어죽는 것은 아닐까. 의문기호가 많아질 때, 나는 집에서 키웠던 청둥오리를 떠올린다. 그 많던 오리 중에 유일하게 울타리를 박차고 창공으로 날아오르던, 무리와 하나가 되어 훨훨 날아가던 오리.다시 보문호수에 바람이 불자 물결은 찰랑거린다. 언제 보아도 물 위의 오리는 수면 아래 물갈퀴 발을 열심히 움직인다. 오리 배는 여전히 묶여 있고, 에메랄드빛 하늘로 새들은 드높이 날아간다.

2020-09-23

아직 먼 길

이웃분이 이사를 합니다. 집수리까지 마쳤답니다. 한데 깔끔해진 집에, 문짝 내려앉고 손잡이 너덜거리는 장롱뿐 아니라 눈에 띄는 큼직한 세간이라면 허드레라도 다 싸들고 간답니다. 잘 수리된 집과는 어울리지 않는 행보라 다들 눈이 동그래집니다. 몇 십 년 넘은 결혼 생활에 바꿔야 할 세간이 한 둘이겠습니까.시댁의 눈치 때문이랍니다. 시댁 식구들 집들이를 무사히(?) 끝낸 뒤에 새살림으로 교체할 거랍니다. 듣는 이들 모두 한숨을 쉽니다.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손때 묻은 살림살이에 대한 애잔함 때문이 아니라, 잠깐 눈속임을 위해 덩치 큰 세간들을 이삿짐에 실어야 하다니요.이게 현실입니다. 아직까지는 그렇습니다. 물론 시댁과의 관계가 물 흐르듯 자연스런 대부분의 집안과는 무관한 이야기입니다. 평소 당당하고 거칠 것 없는 여성이라도, 시댁 문제에 닿으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빚기도 합니다. 새 가구와 최신형 가전제품을 갖춘 집안을 둘러 본 시댁 식구들이 며느리의 헤픈 살림법을 못마땅해 할까봐 미리 방어하는 것이지요. 제 세간 늘린 것과는 반대로 시댁 챙기는 것을 소홀히 했다고 책망 들을까봐 알아서 한 수 접는 것이지요. 시댁에 도리는 다하지 못하면서 제 욕심만 차리는 며느리로 비칠까봐 최대한 소심 모드를 취하는 것이지요. 요모조모 살필 시댁과의 유무언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이중의 노동과 비용이라는 비효율을 감수하는 것이지요.우리 현실은 여전히 ‘며느리의 도리’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위의 경우 시댁과 며느리 사이에는 외계인과 지구인 사이만큼이나 먼 소통부재의 다리가 놓여 있습니다. 남편도 그 상황을 잘 알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개입하지는 못합니다. 시댁과 아내 사이를 조율할만한 근본적인 묘수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속수무책인 채로 강 건너 불구경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남편 마음도 편할 리는 없겠지요. 특별히 별나서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집안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곤 하니까요. 시댁이 기대하고 요구하는 며느리상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조리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런 집에서는 며느리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내키지 않아 합니다. 며느리의 역할을 의무를 다하는 데로만 한정 짓고 싶어 합니다.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며느리의 도리를 미덕이나 지혜로 포장하고 추켜세우기를 좋아합니다. 도리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 어떤 입장에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바른길입니다. 그 말이 며느리에게 오면 ‘입장’도 왜곡되고 ‘바른길’도 변형 됩니다. ‘복종과 인내’ 같은 피동적인 의미로 덮어 버립니다. 그리하여 큰 죄 없는 며느리들에게 불필요한 자책감만 키우는 족쇄로 기능할 때가 많습니다.김살로메소설가며느리들, 나아가 여성들로 하여금 피해의식을 조장하는 일은 도처에 나타납니다. 어떤 모임에 신입 회원이 들어옵니다. 나름의 자기 의견을 개진합니다. 가부장적 사고의 틀에 갇힌 이들이 보면 그 모습이 영 달갑지 않습니다. ‘시집을 왔으면 시댁의 가풍에 따라야지. 시집온 첫날부터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는 핀잔을 듣습니다. 아직도 이런 비유가 횡횡하는 게 우리 현실입니다.점점 나아지고 있지만, 과도한 자기표현을 하지 않을수록 ‘참한 여자’라는 것을 우리 사회는 무의식중에 세뇌하고 여성들은 세뇌 당합니다. 어디쯤에서 나서고 어디쯤에서 물러서야 하는지에 대해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훨씬 불필요한 감정노동에 시달려야 합니다. 아니, 시달리기를 이 사회가 은근히 강요합니다. 너무 튀어서도 안 되고 부자연스러워서도 안 됩니다. 지키지 못하면 성격이 이상한 여자, 별난 여자로 낙인찍히기도 합니다. 남성 중심적 사고들이 마련해놓은 ‘괜찮은 여자’ 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이 사회는 뭉근히 여성들을 억압합니다. 여성들 스스로도 그 사고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합니다.많이 좋아졌다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질서는 가부장적 권위에 기댑니다. 혼사를 지낸 경우, 아들이 내 것이기 때문에 며느리도 응당 내 집안사람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가풍을 잇는다는 명목 하에 며느리를 가르침의 대상으로 파악하고 설교하려 듭니다.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며느리들이 가장 부담스러워 하는 시댁의 요구가 ‘전화 자주해라’ 라는 것이랍니다. 어떤 처가도 사위에게 그런 요구를 하지 않습니다. 어떤 처가도 사위의 도리를 강조하지 않습니다. 맞벌이가 대세인 요즘에도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그런 의무가 더 할당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마땅히 그러함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 진심에 의해서 몸과 마음은 움직입니다. 아들도 며느리도 내 것이 아닙니다. 그들 스스로의 것일 뿐이지요.추석이 다가옵니다. 오래된 장롱조차 버리지 못할 만큼 눈치 보는 며느리도, 전화 자주하라는 가르침에 소심해진 며느리도 시댁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으면 좋겠습니다. 아직은 먼 그 길, 서로 소통하고 배려하는 그날들이 가까워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2020-09-23

스가 요시히데 내각 출범을 보면서

김규종 경북대 교수지난 9월 16일 아베 신조 후임으로 스가 요시히데가 일본의 99대 총리로 취임한다. 그는 2014년부터 지난 9월까지 관방장관을 역임하면서 아베의 하수인 노릇을 한 인물이다. 총리를 포함한 내각 인사를 보면 전임 아베 정권의 인물 8명이 고스란히 유임되었다. 스가는 아베의 동생을 방위상에 임명함으로써 아베 정권의 기조를 강화하는 태도를 보인다. 아베가 지금까지 보인 반한정책 철회는 당분간 없을 듯하다. 일제 강점기 징용공 관련 대법원판결 불복과 위안부 문제 처리에서 문재인 정부는 원칙적인 입장을 천명해왔다. 하지만 자국에 유리한 결과를 고집한 일본 정부는 소재-부품-장비의 한국 수출을 제한하는 강경책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작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한일 관계는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가는 이런 정책을 견지할 것이라는 평가가 주조다.일본 내정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려는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지구촌 시대를 살아가는 세계시민의 한 사람으로 우려되는 바가 적잖다. 더욱이 일본은 중국과 함께 우리의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 아닌가?! 역사적인 맥락에서 보더라도 일본은 한반도의 명운과 긴밀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663년 백강 전투와 1592년 임진왜란, 1895년 을미사변, 1905년 을사늑약과 1910년 경술국치는 모두 일본과 관련된 사건이다.올해는 일본 제국주의 압제에서 해방된 지 75주년이다. 그동안 우리는 세계 최빈국에서 3050클럽에 가입하는 쾌거를 이뤘고, 1998년에는 아시아에서 최초로 평화적인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이른바 ‘역동적인 대한민국’의 위상이 날로 웅혼해지는 시점이다. 반면에 일본은 2010년 중국에 밀려 세계 경제순위 3위로 내려앉은 후 과거의 영화(榮華)를 추억으로 간직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패전국가에서 세계적인 경제 대국으로 부상했던 일본의 추락은 숱한 평가와 해석을 낳고 있다. 나는 그중에서도 일본의 정체(停滯)를 말하고 싶다. 일본 사회의 역동성이 약화하여 미래를 추동하거나 견인할 세력이 사라진 현실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온전한 정권교체는 2009년 8월 30일 민주당이 자민당을 대신한 2년의 경험이 전부다. 그러다 보니 일본은 자민당 일당 독재라는 말이 나와도 유구무언이다.어느 나라든 대안세력이 존재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야당이나 시민사회단체라 부른다. 수권 능력을 갖춘 실력 있는 야당과 정부의 실정과 부패를 강력하게 비판하는 시민사회의 존재가 나라의 명운을 쥐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일본은 무력한 야당과 미약한 시민사회로 인해 미래를 열어나갈 구심력과 추동력을 스스로 상실하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 내각은 이것을 깊이 성찰하고 사유함으로써 대한민국의 건강한 이웃이자 경쟁하는 국가로 재탄생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선량하고 능력 있는 이웃이야말로 커다란 선물 아니겠는가?!

2020-09-23

이참에 수행평가를!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때로는 산안개의 배웅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아기단풍의 성장기를 파노라마로 감상하기도 하는 등 가을 잔치를 펼치는 자연과 하나 되는 길! 보통 출·퇴근길을 상상하면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체증이다. 꽉 막힌 길, 여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길, 오로지 도착을 위한 맹목적인 길! 하지만 필자에게 출·퇴근길은 다르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든 고속도로라는 것을 제외하면, 필자는 매일 자연과 함께 출·퇴근한다.아무리 바쁘고 지친 날이라도 출퇴근길에서만큼은 필자는 자연의 변화에 여유를 찾는다. 그 변화가 곧 철이다. 철의 중요성을 아는 자연은 철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에게 장마와 태풍 등으로 경고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갑자기 커진 일교차에 자연의 경고를 잊었다.필자 또한 차에서 내리는 순간 자연과 함께 한 시간을 잊어버린다. 그런데 이번 주는 다르다. 월요일 라디오에서 나온 사연을 필자는 지금도 기억한다. 그 사연이 바로 글머리에 적은 말이다. 코로나 19는 명절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어 나왔다.“불효는 ‘옵’니다.” “올해 벌초하러 오면 내년에는 벌초 거리 된다.” “추석 연휴 가족, 이웃의 건강을 위해 고향 방문을 자제합시다.”코로나 19가 바꿔 놓은 가로 펼침막 내용이다. 작년만 하더라도 고향 방문을 환영하는 글이 추석의 분위기를 한껏 더했다.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 19 예방을 위해 고향에 오는 것 자체를 막고 있다. 이러다 명절도 온라인 명절이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고향길이 막히면서 휴가길이 열렸다. “황금연휴 일주일간 30만 명 몰리는 제주도” 전국 유명 여행지는 이미 예약이 마감될 정도라고 한다.이대로 가다간 온라인 명절이 아니라 명절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궤변이 넘치는 사회 특징 중 하나는 꼭 지켜야 할 것이 지켜지지 않거나, 없어져야 할 것을 지키기 위해 혈안이 된다는 것이다.궤변 사회의 궤변 교육 중 하나가 수행평가이다. 코로나19 전에 교육 당국은 수행평가 반영비율을 50% 이상 하라고 하였다. 그런데 수행평가는 이론에서나 존재하는 평가이지 현실에서는 실행 불가능한 평가이다. 필자가 이렇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교사들의 평가 능력이다. 과연 교사들에게 학생들의 학습 과정과 결과를 평가할 능력이 있을까?교육 당국은 과제형 수행평가는 안 된다고 지침을 내리고 있지만,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수행평가는 과제형이다. 그런데 그 과제를 보면서 과제를 낸 교사는 수행평가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과제형과 서술형 평가는 표준 답안이 제시되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교사가 제시한 표준 답을 본 적은 한 번도 없다.얼마 전 “학생평가 반영비율 조정”이라는 공문이 왔다. 내용은 수행평가 비율을 50% 이상에서 20% 이상으로 조정한다는 것이다. 명절도 없어지는 이참에 교사 중심의 일방적이고 주관적인 평가인 수행평가도 없애면 어떨까! 아니 없애자!

2020-09-23

접붙이기에 관하여

국문학을 하는 나로서는 늘 고민거리가 한국 현대라는 것이 어떻게 해서 ‘나타날’ 수 있었으냐 하는 것이다.요즘은 정치라는 것에 대한 관심도 꽤나 시들해져서 시간을 내서 평소 관심을 갖던 접붙이기, 접목이라는 것에 대해 더 찾아보게 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 접붙이기에 한국 현대의 형성 과정의 ‘비밀’이 숨어 있을 것이라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한 사회에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는 과정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을 수 있다. 한국 근대를 일본이 가져다주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은 주로 이식(transplantation)과 모방(imitation), 또는 복사(copy)에서 해답을 찾는다.시인이자 비평가였던 임화는 옛날에 순전한 이식이란 아프리카 원주민 사회 같은 곳에나 가능하다고 하였는데, 나는 그조차 아프리카에 대한 잘못된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 믿는다.순전한 이식이란 모래땅, 황무지에 파인애플을 옮겨다 심는 것 같은 것을 말하는데, 사회라는 것에 그런 순전한 이식이란 것이 과연 가능하겠느냐 하고 의심한다. 물론 이식과 모방, 복사는 새로운 문화 형성의 쉬운 방법이자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새로운 창조에는 반드시 ‘원래’의 것과 외래적인 것의 ‘접합’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간과한 것이 아닐까 한다.나는 대신에 접붙이기, ‘접목’이라는 식물학적 용어를 어떻게든 활성화해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가지에 토마토도 접붙일 수 있고 벤자민에 귤도 접붙일 수 있고 고욤나무에 감나무를 접붙인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블로그 같은 것을 보면 성경에 고욤나무의 비유가 나온다고도 한다. 그것은 오래된, 버리지 못하는 습성, 생각 등에 비유되며, 감나무와 접을 붙여야만 좋은 열매를 얻을 수 있기에 사람아 자신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여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을 말한다는 것이다. 이 접붙이기에서 접을 붙이는 나무를 ‘대목’, 붙여지는 것을 ‘접수’라고 한다. 그러니까 접붙이기의 원리를 잘 생각해 보면 이 식물세계의 진실이 인간의 문화 형성 과정에도 아주 잘 들어맞는 ‘비유’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대목과 접수는 서로 접을 붙일 때 나무의 형성층이 서로 잘 맞아야 서로 다른 두 생명이 원만하게 이어져 훌륭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한다. 맞아들이는 쪽만의 의지로도 아니요, 붙어드는 쪽의 의지만도 아닌, 양방, 서로의 ‘뜻’이 조화롭게 어울려야 풍성한 문화를 새롭게 이룰 수 있지 않을까?사회문화의 전환기에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는 방식에는 여러 차원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식도, 복사도, 모방도 다 그 방법이지만 원리주의적 고수, ‘국수’가 아닌 다음에야 접을 잘 붙여 서로의 강점을 살리는 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방법이 아닌가 생각한다.앞으로 나도 한 번 서투른 농사꾼처럼 이 접붙이기의 묘미를 배워 봐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이 식물 세계가 선사하는 인문학의, 문학의 이야기도 엿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09-23

풀을 내리며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추석이 가까워지면 으레 하게 되는 것이 벌초(伐草)다. 벌초란 조상의 묘에 자란 풀이나 나무를 베어내고 묘 주위를 정리하는 일이다. 처서가 지나면 풀의 성장이 거의 멈추기 때문에 추석 때의 성묘를 위해서 묘를 깔끔하게 미리 손질을 하게 된다. 일부 지역에선 벌초를 금초(禁草)라 부르기도 하고 제주도에서는 소분(掃墳)이라고도 한다. 또한 안동지방 등지에서는 ‘풀을 내리는 것’이라 하여 경건한 손길로 묘소를 다듬으며 정성을 다했다.우리나라는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조상의 묘를 살피고 돌보는 일은 효행이자 후손들의 책무라 여겼다. 북망산천에 계시지만 조상도 살아있는 사람처럼 예우하였기에, 묘소가 함부로 방치되거나 흉해지지 않도록 후손된 도리로 해마다 깨끗하게 관리해왔다. 그래서 수년 간 벌초를 하지 않으면 자손이 없는 묘로 여기거나 또한 후손이 있음에도 벌초를 하지 않는 행위는 불효로 간주되었다. 이와 같은 풍속은 조상의 덕을 생각하여 제사에 정성을 다하고 자기가 태어난 근본을 잊지 않고 은혜를 갚는다는 ‘추원보본(追遠報本)’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의 나와 내 가족이 있고 자손으로 계속 이어지게 되는 것도 모두 조상이라는 근원이 있고 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하늘로 가는 능선/솔숲에 튼 둥지 있어/먼 산 큰 품에 안긴 안도의 칩거인가/생시의 도도한 말씀/석간수(石澗水)로 푸시네//반 평생 눈물 언덕/까만 동공 등불로/속절없는 이승길 버린 듯 가신 자리/한 움큼 익모초 줄기/서걱이며 손젓네/’ -拙시조 ‘풀을 내리며’ 중(1990)지난 주말, 올해도 어김없이 풀을 내리고 왔다. 연례행사처럼 한 해도 빠짐없이 그렇게 참여해온지 어언 35년여, 예전에는 주로 낫으로 힘겹게 벌초를 했었지만, 요즘은 거의 예초기라는 풀 베는 기계를 이용해 비교적 손쉽게 하는 편이다. 고향을 떠나 대처에서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던 형제나 사촌들이 약속처럼 모여들어 공동으로 벌초작업을 벌이니 우애와 협력을 다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또한 벌초 후 대부분이 추석 때의 성묘를 겸해 잔을 올리면서 조상을 추모하고 섬기는 마음을 모으기도 한다.그러나 시대가 변하니 벌초의 양상도 바뀌고 있다. 바쁜 도시인들이 벌초할 시간과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대행업체에게 벌초를 맡기기도 한다. 1990년대 중, 후반부터 예초기의 보급과 함께 벌초대행업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벌초를 하기 위해 교통체증에 시달리고 힘겹게 작업해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게 됐다. 더욱이 요즘같은 비대면 시기에는 고향 방문을 미루거나 직접 벌초를 포기하는 경향이 많아져 벌초대행이 예년에 비해 30~40% 급증하고 가격도 오르고 있다고 한다.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로 인해 벌초 풍경도, 명절 채비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이맘때면 시골이나 도시 어귀에는 고향 방문을 반기는 현수막이 즐비했었는데, 오히려 귀성과 이동을 자제해달라는 글귀가 걸리니 묘한 느낌이 든다. 또한 온라인 성묘, 화상 차례 서비스 등의 생소한 성묘, 제례문화로 살가운 일가친척 간에도 틈과 거리가 생기는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2020-09-22

김종인의 좌 클릭 노선, 성공할 것인가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김종인 비대위원장은 몇 달 전 미래통합당의 구원 투수로 등장했다. 지난 선거에 4연패한 야당은 궁여지책으로 그를 비대위원장으로 추대했다. 김 위원장의 경력은 대학교수, 청와대 비서관, 장관, 국회의원 등 매우 화려하다. 비례대표 국회의원 5선에 여야를 넘나들며 비대위원장과 선대 위원장을 맡았던 80대 고령의 그가 야당의 개혁의 선봉장이 되었다. 보수 야당은 그간 인명진 목사, 유석춘·김병준 교수 등 여러 명을 비대위원장으로 맡겼으나 당 개혁은 성공하지 못했다. 김종인의 좌 클릭 노선은 보수정당 개혁을 성공으로 이끌 것인가.김종인 위원장은 첫 회의에서 “진취적 정당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과거 수구 정당의 개혁을 위해 당의 노선을 중도 좌쪽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박근혜 탄핵문제에 종지부를 찍고, 이제 광화문 태극기 집회와도 단절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보수 야당의 비대위원장이면서도 스스로 ‘보수’라는 말을 싫어하고 있다. 또한 그 스스로 광주를 찾아 5·18 국립묘지에서 회개의 무릎을 꿇었다. 그는 대북 정책에 있어서도 북한과의 ‘화해 협력’을 강조하여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다. 모두가 그의 좌 클릭 행보의 일환이다. 그는 미래통합당의 당명을 ‘국민의힘’이라는 다소 생소한 이름으로 변경하였다.그의 좌 클릭 행보는 경제 정책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김종인 위원장은 자신의 ‘경제 민주화’ 노선을 당의 정강 정책에 담았다. 그는 국민에게 일정 규모의 현금을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국민 기본 소득’안을 제시하였다. 그는 복지 어젠다도 선점하면서 집권 여당의 ‘공정경제 3법’의 수용의사까지 밝히고 있다. 당의 경제 노선이 재벌과 시장 중심에서 친 노동, 친 서민 정책으로 바뀌는 듯한 인상을 준다. 물론 당내의 반발도 상당하다.이러한 김종인 비대원장의 개혁노선을 보는 당내의 시각은 찬반으로 갈린다. 당내의 보수 강경파들은 이러한 그의 좌 클릭 행보에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아직도 입당치 못한 홍준표 의원은 “좌파 2중대 흉내 내기를 개혁으로 포장해서는 좌파 정당의 위성정당이 될 뿐”이라고 비판했다. 장제원 의원은 “보수의 소중한 가치마저 부정하며 보수라는 단어에 화풀이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그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의 주요 당직자들은 그의 당 개혁노선에 부분적으로 불만이 있지만 현재로선 묵인 수용하는 입장이다.김종인 비대위의 임기는 내년 3월로 잡혀 있다. 이 기간 내에 김종인 위원장의 당 개혁의 성공 여부는 현재로선 예단하기 어렵다. 그의 좌 클릭이 성공하려면 최소 몇 개의 관문은 통과해야 한다. 그 하나는 차기 당대표가 그의 노선을 따르는 인사가 선출되어야 한다. 김종인의 노선을 반대하는 당대표가 선출되면 그의 개혁노선은 수포로 돌아간다. 또한 내년 3월 지방선거에서 승리해야 그의 개혁노선은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당 대선후보로 그의 노선을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어야 한다. 항간의 풍설대로 그가 대선후보로 나선다면 당의 개혁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관문이 아니다.

2020-09-22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절실한 생략은

많은 이들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코로나19를 두고 깊은 우울감과 무기력증을 겪고 있다. 사소한 일에도 자극을 받아 울컥하거나, 감흥을 느끼지 못하거나, 자주 체하거나 소화가 되지 않는 몸의 아픔을 느끼기도 한다. 최근 수도권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되던 때에는 내면의 침잠이 한꺼번에 부서지려는 듯 휘청였다. 어서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이 쫓기듯 들자 홈트레이닝을 시작하고, 새로운 취미를 찾아 나서고, 새로운 자격증 공부를 도전해보기도 했지만 모두 집 안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들이었고, 쉽게 무료해졌다.‘쉼’은 어렵다. 그동안 열정이라는 이유로 욕심껏 가지고 있던 것을 하나씩 내려놓는 데에는 많은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쉬고 싶단 이유로 하나씩 내려놓다 보면 결국 그간 쥐고 있던 모든 걸 잃게 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움이 들기도 한다.마음 깊은 곳에 이고 진 짐들 때문에 작은 움직임에도 방해를 받는다. 최근 유튜브를 보며 가벼운 요가 자세를 따라 하기 시작했지만 집중력이 모자라 빈번히 무너졌다.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몸도 문제였지만 습관처럼 따라오는 잡생각은 왜 이렇게 물리치기 어려운지. 유튜브 속 요가 선생님은 이마 위에 작은 점을 그려서, 그 점을 일정한 힘으로 응시하며 자세에 집중하라고 했지만 그 작은 점 하나도 그리기 어려워 시계를 보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고, 그러다 휴대폰을 쳐다보기 일쑤였다. 결국 적당한 쉼은 무엇이고, 어떻게 행해야 내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을까, 고민이 시작되었다.티브이 속 ‘여름 방학’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는데,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두 배우는 아주 느릿느릿 여유를 두고 살아가는 일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작은 시골 마을 속 오래된 집을 개조해 여행 같은 삶을 즐기는 이들은, 꼭 필요한 물건만을 그때그때 사서 쓰는 ‘미니멀 라이프(minimal-life)’의 삶을 실천하고 있었다. 미니멀 라이프란 불필요한 물건이나 일을 줄이고,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으로 살아가는 ‘단순한 생활방식’을 지향하는 것을 일컫는다.가장 적은 물건으로만 살아가는 것. 문장만 보면 쉬워 보이나 사실 주변을 잘 둘러보면, 내 몸 하나 존재하는 공간이 너무 많은 사물과 관계에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여름 방학’은 떠들썩한 움직임도, 큰 사건도, 반전도 없는, 오롯이 ‘먹고 자고 살아가는’ 잔잔한 일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직접 시장이나 마트에 들려 식자재를 고르고, 제대로 된 한 끼를 위해 오랜 시간을 들여 정성껏 만든다. 많은 시간이 들여야 하는 일을 행하고, 졸음이 몰려올 땐 잠을 잔다. 이외에도 평소 배우고 싶었던 빵 만들기 기술을 익히거나 서핑을 배워 파도 타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몰두하는 동안 하루가 끝나면 그림으로 자신의 하루를 기록한다. 나무 책상에 앉아 색색의 연필을 들고 하루를 기록하는 일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더듬더듬 과거를 돌아보게 만들고, 고민 없이 지냈던 어느 평온한 나날을 자연스레 떠올려보게끔 한다.최근 많은 예능 프로그램은 코로나 시대에 발맞춰 ‘언택트(untact) 예능’을 택하고 있다. 사람들과의 대면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작은 시골 마을로 찾아가, 집에서 머무르는 시청자에게 실제로 여행을 하는 듯한 자연경관과 여유로움을 보여준다. 시청자들은 실제로 여행을 하진 않지만 화면 속 느릿한 일상과 거대한 자연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낀다.‘바퀴 달린 집’은 커다란 캠핑카를 타고 전국을 유랑하며 자연 속에서 하루를 살아보는 프로그램이다. 이들은 한적한 시골에서 물멍(물속에서 멍하니 넋을 놓거나), 불멍(불을 보며 멍하니 넋을 놓는) 등 한가로운 모습을 보여주며, 게스트와 함께 밥을 지어 먹고, 직접 커피를 내려 마시며, 제한된 물을 쓰고 간소화된 물품을 사용한다. 이 프로그램은 바쁜 도시 생활을 벗어나 진정한 휴식을 실현하고 싶은 현대인의 욕구를 대변해주는 듯, 그저 먹고 이야기하고 자연 속에 놓여 있는 장면뿐인데도, 많은 시청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다시 미니멀 라이프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본격적인 쉼을 위해서는 마음 비우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집 안을 살폈고, 쌓인 어마어마한 짐들이 눈에 들어왔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나에게 꼭 필요한 것’, ‘필요하지 않지만 가지고 싶은 것’, ‘폐기해야 할 것’이라 적은 3개의 상자를 나란히 두고 하나씩 정리해 나갔다. 정말 내가 이걸 다 산 걸까? 싶었던 건, 책이었다. 일 년 전 이사를 하면서 많은 책을 처분했지만 아직도 집 공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언젠가 이 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글을 쓸 때 필요한 참고 자료가 되지 않을까? 이 책은 소중한 이와 함께 서점에 들러 고른 책이었는데 등등. 한 가지의 물건 속에는 불명확한 목적, 그때의 기분이나 시간, 기억 같은 게 들어있어 버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조금씩 비우니 보이는 게 있었다. 생각보다 입지 않는 옷이 많았고, 필요 없는 책은 끈으로 묶어 필요한 사람에게 주었다. 현재 생활 습관에 맞춰 가구를 재배치하여 더 넓은 공간을 만들었다. 남은 옷은 몇 벌 되지 않아서 모두 옷걸이에 걸어두고, 양말과 수건은 색깔별로 잘 개켜 서랍 안에 세로로 줄 맞춰 넣었다. 쉽게 버릴 수 있는 것도 있었지만 쉽게 버릴 수 없는 것 또한 있었다. 대학 시절 학보사 기자로 활동했던 기사문, 동아리 일지, 의미 있는 편지, 신춘문예 기간에 시를 보내고 받은 우체국 영수증 등 내게 많은 것을 안겨다 준 물건들이 멋대로 굴러다니고 있었다. 오래전에 받은 게 많아서 이미 프린트나 글씨가 벗겨진 것도 많았다. 좋은 노하우를 참고해 작은 크기의 종이는 속이 비닐로 된 파일 안에 집어넣어 정리하였고, 다소 크기가 큰 종이는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A4 용지의 크기로 뽑아 파일 안에 넣었다. 많은 종이와 인쇄물이 한 권의 사진첩으로 정리되자 책장 속 딱 한 칸만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필요한 자리에 알맞게 위치하는 것. 그 적당한 위치와 무게가 어쩌면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코로나19로 적게 소유하고 적게 소비하면서 충만을 누리는 새로운 생활양식이 확산하고 있다. 집 안에 있는 불필요한 물건을 비우고 나니, 소비습관이 조금씩 달라지고 대체 용품을 찾게 되었다. 이제 조금씩 실천하고 있지만, 가장 많이 바뀐 부분은 물건을 고를 때 5년 정도 쓸 수 있는지 생각해 보고 구매를 결정하게 되었다. 또 손수건을 사용하여 휴지 사용을 줄이거나, 장바구니 사용으로 비닐봉지를 쓰지 않는다던가, 식당에서 먹지 않는 반찬은 미리 말해두는 등 실천 가능한 습관을 생각해보고 있다.비워지는 물건의 이후 또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는 이들은 ‘제로웨이스트(zero-waste)’ 움직임을 실천하고 있었다.제로웨이스트는 일회용 포장재, 완충재 등의 사용을 줄이고, 자원과 제품을 재활용할 수 있도록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사회 운동이다. 많은 클렌징 용품을 대체해 천연 비누를 쓰거나, 세제나 섬유유연제 대신 ‘소프넛’을 대체해 사용한다. 소프넛은 솝베리나무(soapberry·무환자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로 수질오염, 환경오염 없이 생분해되는 천연 계면활성제다.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또는 비닐봉지를 줄이기 위해 매립 후 90일 이내 물과 이산화탄소로 바뀌는 생분해 봉지를 사용한다. 편리하게 사용하는 물티슈 또한 생분해 행주로 대체하고 플라스틱 빨대는 소독으로 재사용이 가능한 스테인리스 빨대를 쓴다. 그간 행하던 습관들을 한 번에 고치기는 어렵다. 계산 후 영수증이나 플라스틱 빨대를 받지 않거나 텀블러 사용, 다회용 장바구니 사용, 생분해되는 대나무 칫솔을 쓰는 등의 작은 실천부터 해볼 수 있다.조금만 눈을 돌리면 불필요한 것을 구매하지 않고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생활을 채워 넣을 수 있다. 필요하지 않은 것을 줄이면서, 아주 최소한의 물건만으로도 만족감을 느끼는 삶도 있다.비워낸다는 것은 기꺼이 불편함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는 환경을 위해 함께 상생하자는, 같이 살아가자는 건넴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온전히 마음에 꼭 드는 것으로만 채우고, 불필요한 것은 생략하는 법은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자세다.세상은 시끄러우나 내 안의 고요는 비워둔 곳에서 온다. 코로나19로 인해 앞으로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삶의 태도나 자세를 느린 시간 속에서 선명히 그려 보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지킬 수 있는 것들을 반듯하게 지키며, 무해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더 고민해야 한다.

2020-09-22

언택트 추석

올 초 시작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세상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비대면 언택트(Untact) 문화가 지금 우리시대를 주도한다.“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하더니 요즘 우리 사회는 모든 길이 언택트로 통한다. 가급적 사람을 만나지 않고 볼일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이 최상이다. 집콕이나 재택근무가 오히려 권장되고 있는 세상이다.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반드시 마스크를 써야 하며, 식사 중에는 가급적 대화를 삼가는 것이 좋다고 한다. 전시나 공연은 온라인으로 즐겨야하고 직접대면 회의는 화상으로 대체된다. 이러다가는 정녕 사람 만날 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사람은 본래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사람을 사회적 동물이라 했다. 그런데 요즘 우리사회는 모든 대면행위가 통제되고 비대면이 마치 선(善)인양 대접 받는다.추석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추석에는 언택트 문화가 우리의 명절 관습마저 바꿀 것 같다. 코로나 유행을 걱정한 정부는 “우리 조상도 역병이 돌 때는 제사를 모시지 않았다”며 이번 명절에는 가급적 이동을 말라고 조른다. 성묘는 온라인으로 하고, 고향에 계신 부모님에게는 마음의 정성으로 대신하란다.한국교통연구원은 이번 추석에는 평년보다 30% 정도의 교통량 감소를 예측했다. 그만큼 고향을 찾는 자녀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부모인들 역병이 창궐한다는데 위험을 무릅쓰고 고향에 오길 바라지는 않는다.하지만 코로나19 창궐로 만들어진 언택트 문화가 가족의 만남을 막고 명절 분위기를 삭막하게 하니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악마 같은 코로나가 빨리 지구를 떠나 내년 명절에는 가족이 한자리에 앉아 이야기 꽃을 피웠으면 좋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9-22

대구·경북행정통합과 메가시티

이곤영대구취재본부장수도권 인구가 전국 인구의 50%를 넘어섰다. 2000년 46.3%였던 수도권 인구가 지난해 말 50%를 넘어서면서 수도권 집중이 현실화 되고 있다. 게다가 강원도, 충북, 충남 등 수도권 접경지역도 범 수도권화가 되는 등 실제 수도권은 더 넓어지고 있다.반면 지방은 점차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광역시를 둘러싼 대도시권 외곽의 시·군에서 인구가 유출돼 광역시 중심의 대도시권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대도시권 바깥의 농촌과 중소도시에서 광역 대도시권으로 인구가 이동하고, 또 광역 대도시권에서는 수도권으로 유출하는 새로운 도시화가 급속하게 진행 중이다.지방쇠퇴가 현실화 되면서 대구·경북을 시작으로 세종·충남북, 광주·전남 등 광역시 중심으로 행정통합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대구·경북을 하나의 지방자치단체를 만들자는 ‘대구경북행정통합’이 21일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다. 김태일·하혜수 공동위원장 등 30명으로 구성된 공론화위원회는 21일 오후 4시 대구시청 별관 1층 대강당에서 출범식에 이어 분과별 회의를 갖고 대구·경북 행정통합의 비전과 필요성에 대해 논의를 했다. 공론화위는 통합자치단체의 방향·방식·절차에 관해 지역민들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맡게 된다.대구경북행정통합은 ‘소멸하고 있는 지방의 위기’를 극복하자는 절박함에서 출발했다. 갈수록 비대해지는 수도권에 반해 소멸 위기에 빠진 지역을, 서울과 경기를 넘어 세계적인 도시와 경쟁할 수 있는 거대 지방자치단체로 탈바꿈시키자는 것이다. 통합지자체는 대구시와 경북도를 폐지하고 완전자치를 지향하는 인구 500만명 규모의 도시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1대 1의 대등한 통합으로 기존 권한과 지위를 유지 또는 상향하는 방향으로 기본틀을 잡았다. 내년 5월 이전 주민투표에 이어 같은 해 9월 정기국회에 ‘대구·경북 행정통합 특별법(안)’ 제출 등을 거쳐 2022년 7월 이전에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그로나 벌써부터 경북도청이 위치한 경북 북부지역과 대구지역에서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경북 북부권은 도청 신도시가 성장거점도시로서의 동력을 잃을 것을, 대구시민들은 광역시 지위를 잃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높아 관련 법 제정도 난제다.게다가 통합이 조직축소에 따른 인적, 물적 자원도 줄고 각종 분야의 중복투자로 인한 예산 낭비 등 단순한 ‘행정의 효율성’을 위해서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이 때문에 통합 보다는 메가시티 차원의 협의체를 구성하는 것부터 선행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행정구역통합에 앞서 광역 교통 등 인프라 마련과 환경처리시설 입지, 산업입지와 도시개발 등 광역사업에 대해 메가시티 차원의 협의체 구성부터 시작해야 한다. 광역시와 50만 명의 대도시 거점을 중심으로 지역의 중추기능을 모으고 시·군, 시·도 간 상호협력하고 연계할 수 있는 관계망을 구축해 실현 가능한 광역경제권부터 실행하는 것이 시급하다.

2020-09-22

야행성 인간

윤영대수필가코로나19가 우리들의 일상에 파고든 것은 지난 2월 말경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큰 파도 없이 곧 끝나리라고 생각했었는데 팬데믹 상황을 지나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도 넘어 우리 국민 모두의 생활이 변했다.가장 큰 영향을 받은 곳이 학교일 것이다. 1, 2학기 등교도 어려웠고 비대면 수업이라는 초유의 교육방식이 도입됐다.일반인의 일상도 확 바뀌었다. 모임이 제한되고 가능한 집에 박혀있으라니, 우리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했는데….아침이 시작되면 밖으로 나가 맡은 일을 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얘기를 나누고 함께 움직이다가 집에 오면 가족을 보살피고 TV 보고 밤늦으면 슬슬 잠자리에 들어가서는 잠이 들곤 했었는데, 제한된 공간에서 거리두기 사회활동을 해야 하다 보니 모두에게 약간의 우울증도 생긴 것 같다.그러니 여태껏 지켜왔던 일상의 생체 리듬 즉, 아침-낮-밤이라는 명확한 시간개념이 바뀐 사람도 있으리니, 내가 바로 그러한 상태에 와있는 듯하다. 퇴직 후 꼭 아침 일찍 일어날 필요는 없었지만 그래도 나대로의 생활 패턴을 만들어 문화원에도 나가고 취미 활동이나 각종 모임에도 참여하여 짜여진 일상을 즐겨왔던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에 휘말린 이후에는 이 모든 것이 점차 와해되더니 이제는 내일을 알 수 없는 지경이 됐다.아침에 늦게 일어나고 낮에는 온종일 소파에서 빈둥대기가 일쑤라 낮잠도 자주 자게 된다. 그러니 자연히 밤이 되어도 그냥 책을 보거나 휴대폰 화면을 뒤지며 무료히 시간을 보낼 뿐이다. 자정이 가까워도 잠들 생각이 없고 누우면 바로 잠들었던 버릇이 불을 끄고 누워도 불면증에 걸린 듯 뒤척인다.잠은 체온이 내려가기 시작하는 밤 11시경에 자고 아침 5~6시경에 일어나는 것이 좋다는데 그게 탈이 난 것이다. 일부러 물도 마시고 나대로의 방법으로 눈알도 굴려보고 머리 목 등도 손가락으로 눌러보며 잠들려고 애를 써도 어렵다. 자율신경이 탈이 난 듯 ‘야행성 인간’이 되어버린 것이다.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에 대한 정의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좋은 완전한 상태를 의미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지금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불안하고 정신적으로도 이상함을 느낄 테니 비록 감염되지 않았어도 건강하다고는 할 수 없으리라.야행성이 심해져 버린 요즈음의 나를 이겨서 스스로 건강을 찾기 위해 ‘아침형 인간’이 되어보려고 아침 운동이나 저녁 산책 등을 시도해 보지만 코로나의 광풍이 자꾸 방해를 한다. 해외여행을 다녀오면 시차의 부적응으로 낮밤이 바뀌어 잠시 애를 먹는 일도 있지만, 확대되는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로 아침과 밤의 행동 조절이 더욱 어려워지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된다.이제 추분이 지나면 밤의 길이가 점점 더 길어질 텐데, 모두가 평소 생체 리듬을 잘 관리해 야행성 인간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2020-09-21

무경십서(武經十書) 장원(將苑)의 교훈

강희룡 서예가동아시아는 오랫동안 문인사대부가 권력의 중추를 이루었다. 학자가 천하를 다스렸기에 관료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사서삼경(四書三經)의 유가경전을 읽어야 했다.그러나 천하를 제대로 다스리기 위해서는 문관만 있어도 안 되기에 나라를 지키는 군인인 무관을 뽑기 위한 무과제도가 중간에 등장했던 이유다. 무인 선발을 위한 무거(武擧)제도를 만든 사람은 당나라의 측천무후(則天武后)다. 그의 치세로 인해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했기에 시호에 무(武)가 들어간 배경이다.송나라에 와서 무술뿐만 아니라 무경(武經)에 관한 시험이 덧붙여져 이른바 역대 병서인 손자병법, 오자병법, 사마법, 울료자(尉7E5A子), 육도, 삼략, 당리문대가 무경칠서(武經七書)로 정리된다.이 용어는 11세기 말 북송의 원풍 연간에 기존의 병서를 무학으로 정리해 무과의 시험과목으로 채택한 데서 비롯됐다.문과시험이 사서삼경의 7개 과목으로 정리된 것과 짝을 맞추기 위한 조치였던 것이다. 후에 무경칠서에 손빈병법, 장원, 삼십육계를 보태어 중국의 10대 병법서인 ‘무경십경’이 탄생된다. 이 병서들은 명나라를 거치면서 병가(兵家)의 기본 경전으로 자리 잡아 해설서와 묶어 출간하는 것이 유행했다. 조선도 그 영향을 받아 문종 때 수양대군 주관 하에 ‘무경칠서주해’를 펴냈다. 현재 일부 대학도서관에 소장하고 있으나 아직 영인본이나 번역본이 출간된 적은 없다.무경십서는 하나같이 ‘장수가 용병을 잘못해 전쟁에서 패하면 나라의 존망이 갈릴 수밖에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무경십서 중 제9서인 장원(將苑) 제1편 논비(論備), 제7장 장지에, ‘나라를 위해 헌신하라’는 기록이 있다. 장지는 나라를 위해 몸을 던지는 위국헌신(爲國獻身)의 의지를 ‘이신순국’으로 표현해 놓은 것이다.안중근 의사가 1910년 중국 뤼순 감옥에서 순국 직전에 남긴 마지막에 쓴 글귀가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이다. 위국헌신에 군인본분을 첨언하여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다’라고 강조했다. 110년 후 추미애 장관 아들이 병영생활에서 엄마찬스로 반칙과 특권을 누렸다는 야당의 의혹제기에 여당 원내대변인은 추 장관의 아들이 군인으로서 본분을 다했기에 안중근 의사의 말을 몸소 실천한 것이라고 옹호했다. 이런 기가 막힌 발상을 가진 부류들이 떼 지어 대한민국 독립의 역사를 왜곡시키며, 독립투사들의 명예를 오염시키고 있는 것이다.또한 ‘장원’은 지휘관이 군대 내에서 지켜야 할 역할과 품행, 병사지도와 작전실행 시 주의할 점 등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고 있어 무경 중 상당히 호평을 받고 있는 병법서다.군인 혼이 사라진 가치 없는 별을 달고 개인영달을 위해 권력층의 눈치나 기웃거리며 말잔치로 얼룩진 해바라기 정치군인들은 오천만 국민의 안위를 위해 스스로 군복을 벗고 야인으로 돌아가지 않겠는가! 1910년 경술치욕의 그림자가 또 다시 이 땅에 스멀거린다.

2020-09-21

카페예찬, 혹은 책 읽을 공간을잃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위로

작가 이상이 박태원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 그린 삽화, 두 사람은 카페에서 만나 당시의 카페문화를 예술창작의 대상으로 삼았다. 위(10회), 아래(13회).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 모두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올라간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모두에게 때때로 전하는 심심한 위로마저 위로가 되지 않는 시기이다. 어쩌면, 우리가 진정한 사회 속 고립을 실감하게 되는 것은 아주 작은 징후들로부터 찾아오게 되는 것 같다. 지금이라면, 카페에서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사실 같은 것이 그렇다. 여기저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카페’를 잃고 힘겹게 방황하고 있다는 말들이 들려온다. 의식하지 않지만, 그곳에 존재하고 있는 공기의 움직임이나 그것을 호흡하는 과정처럼, 무언가 사라지고 나서야 그것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우리가 삶에서 늘 만나게 되는 아이러니일 것이다.분명, 지금 한국 사회에서 카페가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사회 활동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공간으로서, 또 누군가에게는 집밖에서도 일을 할 수 있는 좋은 작업공간으로서, 또 어떤 사람에게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온전히 ‘나’로 돌아와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으로서, 어느 샌가 카페가 없는 한국 사회를 상상하기 어려워져 버린 것만 같다.카페 혹은 커피하우스가 우리 삶에 중요한 의미가 된 것은 단지 그곳이 개인의 공간이거나 공공 공간, 어느 쪽이 아닌 그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공간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공 공간이라면 우리에게는 도서관도 있고, 공원도 있다. 하지만, 그곳에서 우리는 온전한 ‘나’로 있을 수 없다. 온전한 개인의 공간이라면, 나의 방이 있다. 그곳에서 우리는 ‘나’로서 있을 수 있지만, 이내 심심해지고 만다. 타인의 눈이 존재하면서, 또 타인의 눈이 신경 쓰이지 않는 공간. 유달리 타인에 대해 관심이 많은 한국 사회에서 카페는 공공공간과 개인공간의 사이에 놓여 있는 ‘섬’과 같은 공간으로 기능해왔다.사실 지금까지 많은 작가들이 카페에서 자신의 창작을 완성했고, 카페에서의 시간을 예찬해왔지만, 그 중에서도 한국에서 카페가 갖고 있는 의미를 가장 극적으로 예찬했던 작가는 바로 이상(1910~1937)이었다. 스스로 ‘제비’ 같은 다방을 경영하기도 했던 그는 조각가 이순석이 경영하고 있던 종로의 카페 ‘낙랑팔라(樂浪Parlor)’를 드나들며 예술적 현장을 경험했던 예술지망생이기도 했다. 그는 카페에서 근대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던 것이다.1936년에 쓴 ‘추등잡필’이라는 신문 칼럼에서 이상은 카페라는 공간 속에서 근대적인 예의와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그곳에는 강철과 콘크리트에 압박된 근대인의 삶을 위로하며, 시끄러운 삶으로부터 잠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의자와 테이블, 그리고 따뜻한 차와 음악이 존재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상은 그의 소설 ‘날개’에서도 한 명의 정상적인 인간으로서 활동하지 못하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화폐의 기능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경성역(지금의 서울역) 2층에 있었던 ‘티룸’으로 갈 수 있는 인간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하지 않았는가. 시대의 문화와 예술에 대해 예민한 자의식을 가진 작가 이상에게 있어 ‘카페’란 단순한 공간 이상의 삶의 변화를 담보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일터와 집 사이에 놓인 휴식이자, 예술창작, 그리고 사회생활 모두를 상징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힘겨운 시간을 지나고 나면, 이제 우리는 다시 ‘카페’를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퇴근 후 책 한 권을 찬찬히 읽을 여유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공간은, 아니 시간은 우리를 우리의 일상으로부터 잠시라도 떨어뜨려 놓아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 있는 유일한 것이다. 그것을 위해 지금은 조금 참아낼 이유와 가치가 있다. /홍익대 교수

2020-09-21

인향과 법향이 머무는 곳… 대구 관암사(冠巖寺)

네비게이션이 팔공산 갓바위 오르는 길 중턱에 자리 잡은 사찰로 나를 안내할 때까지 나는 관암사를 기억하지 못했다. 무심히 오르내리던 길목에 배경처럼 서 있던 절, 언제나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경내를 지나다니기만 했던 곳이었다.관봉은 내 젊은 날 즐겨 찾던 등산코스였다. 가슴이 답답하거나 사색이 필요할 때면 그곳을 찾곤 했지만 절은 한결같이 침묵에 싸여 있었다. 가파른 시멘트 포장길이 끝나고 이제 험난한 돌계단이 이어질거라는 묵시적인 길 안내만으로 충실했다. 모처럼 추억을 더듬으며 산길을 오른다.폐사의 비운으로 방치된 절터에서 한국 불교 태고종 제 14대 종정 백암 대종사가 기도 중 불상을 발견하여 1962년 관암사가 창건됐다. 팔공산 관봉의 석조여래좌상이 있는 갓바위 아래에 자리하여 관암사라 지었다고 한다. 갓바위 석조약사여래좌상은 불교 미술적 가치도 높으며,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영험함이 알려져 전국 각지에서 불자들이 찾아오는 곳이다.백암 대종사가 중생의 안식처를 만들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갓바위까지 손수 돌을 져 나르며 길을 닦은 업적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미륵불로 불리던 갓바위 부처님을 약사여래불로 명명하여 1963년 국가지정문화재로 등재하여 세상에 빛을 보게 한 것도 백암 대종사의 원력에 의해서다. 하지만 1970년 소유권분쟁에 휘말려 지금은 관리권이 선본사에 넘어가 있는 상태라고 한다.자신과 중생의 이익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서원은 모든 존재를 사랑하는 자비심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좌선의 수행보다 스스로의 노고로 남을 기쁘게 하는 실천하는 구도자, 그가 겪었을 아픔과 좌절 앞에서 잠시 숙연해진다. 지금은 새롭게 정비된 돌계단이 전설 같은 이야기를 숨긴 채 사람들을 맞을 뿐이다.오로지 개인의 소원 성취를 위해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계단을 오르는 불자들과 상호의존적인 관계로 만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해탈하신 부처님의 삶이 묘하게 교차된다. 참된 종교는 자기 성찰과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에서 시작되어야 하리라. 갓바위 오르는 돌계단이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구도의 길이 되었으면 좋겠다.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관암사가 오늘은 목적지가 되어 내 앞에서 위풍당당하다. 2대 주지 혜공 화상이 2010년 대웅전 등을 낙성함으로써 지금은 관음전, 지장전 등 12동의 전각이 모여 제대로 된 전통가람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십여 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마주 선 감회가 남다르다.고요하던 사찰은 활짝 문을 열고 큰 품으로 대중을 맞고 있다. 몇 개의 벤치와 공양간 쪽마루에 걸터앉아 늦은 오후의 피로를 풀고 있는 등산객들의 모습이 제일 먼저 눈에 잡힌다. 가파른 돌계단을 내려와 관암사에 이르면 하산의 안도감이 밀려들던 곳, 그들의 땀자국 위로 부처님의 그림자가 일렁인다.공손히 합장한 후 돌계단을 올라 대웅전으로 향한다. 관음전과 지장전이 좌우로 든든하고 대웅전 앞을 지키는 자귀나무 두 그루도 눈길을 끈다. 편안하고 자유로운 첫인상과 달리 대웅전 쪽에서 내려다본 관암사는 위엄과 격조가 느껴진다. 가을 공기가 머무는 법당에서 처사님 홀로 명상 중이다. 석양으로 떨어지는 햇살이 법당문을 비추고, 처사님은 대웅전과 하나가 되어 미동도 않는다. 그림 같은 풍경이다.나도 좌복 대신 요가용 매트를 깔고 백팔 배를 시작한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느라 또다시 허리 통증이 신호를 보내오지만 차분히 마음을 다스린다. 윤이 나는 마룻바닥, 눈 꼬리가 약간 올라간 부처님의 이색적인 미소조차 낯설지가 않다. 비로소 관암사는 내게 새로운 출발점이거나 성장점이 되어 손을 내밀고 있다.잠시 가부좌를 하고 명상에 잠긴다. 맑고 안온한 기운이 흐르는 법당에는 하오의 여유로움이 밀려들고, 팔공산 정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관암사의 역동성이 느껴진다. 쪽마루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 그들도 언젠가는 인간의 심성 안에 불성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부처님과 산사를 사랑하게 되리라.조낭희 수필가종교를 떠나 팔공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편안한 휴식처가 되어주는 관암사의 선행이 햇살보다 곱다. 약수를 마시고 법당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저 깊숙한 상처가 아무는 소리가 들린다. 십여 년 전 조심스럽게 지나다니던, 그 까칠하던 문턱은 사라지고, 지금은 사람의 향기와 부처님의 향기 가득한 도량으로 변해 있었다. 그것은 갓바위 부처님을 시봉했던 사찰, 관암사만이 지닌 자존심이다.태고종 사찰인 관암사의 가슴 넉넉한 보시가 흥건한 온기로 피어나고 있다. 자타불이(自他不二), 남을 위하는 일이 곧 나를 위하는 일임을 우리는 알지만 잊고 산다. 불국정토는 자비로운 마음들이 모여 만들어지리라 믿는다. 인향(人香)과 법향(法香)이 머무는 관암사의 새로운 서원인 불국정토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염원한다.행여 갓바위 오르는 길 있거든 잠시 관암사에서 쉬어 가라. 발걸음이 법당까지 허락하지 않는다면 두 손 모아 합장이라도 하고 가던 길을 가라. 그대 안이 환해지고 지혜의 강물이 서서히 그대를 휘돌아 나갈 것이니.

2020-09-21

가족과 보내는 안전한 추석연휴, 가스안전으로부터…

정성원 한국가스안전공사 경북동부지사장경북 동해안지역은 최근 ‘마이삭’, ‘하이선’이라는 태풍이 연속으로 휘몰아치며 많은 피해가 발생하였다. 다행히 대비를 잘 한 덕분에 태풍으로 인한 가스사고는 없었으나, 음식준비로 가스사용량이 많아지는 추석연휴에는 가스사고에 대한 걱정이 앞서기 마련이다.최근 5년간(2015∼2019년) 전국 추석연휴 기간 가스 사고는 15건 발생했다. 가스별로는 LP가스 9건, 부탄연소기(캔) 3건, 고압가스 2건, 도시가스가 1건이다.사고원인으로는 사용자취급부주의가 5건으로 33.3%를 차지했고, 그 다음으로 시설미비가 4건으로 26.7%를 차지했다.사용자취급부주의 사고는 사용자가 직접 LPG 용기를 교체하거나 부탄연소기 사용 시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발생한 사고가 대다수다. 이처럼 사용자의 부주의에 의한 사고가 지속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음식 조리량이 급증하는 추석연휴 기간 △부탄연소기 다단적재 금지 △화기(전기레인지 등) 근처 부탄연소기 사용 및 부탄캔 보관 금지 △과대 불판 사용 금지 △남아있는 가스 사용을 위한 부탄캔 가열 금지 등 사용자의 안전 사용수칙 준수를 당부한다.이와 더불어, 오랜 기간 집을 비울때에는 가스레인지 콕과 중간밸브, 주밸브(LP가스는 용기밸브)를 잠가야 안전하다. 연휴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는 제일 먼저 창문을 열어 집안을 환기하고, 혹시라도 가스 누출이 의심되면 관할 도시가스사나 LPG 판매사업자에 연락해 안전점검을 받은 뒤 사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이상이 있을 경우 반드시 가스공급업소 즉 도시가스사나 LP가스판매사업자 등에 연락해 꼭 안전점검을 받은 뒤 가스를 사용해야 안전하다. 전화번호는 도시가스는 요금고지서, LP가스는 가스용기에 적혀있다.추석 연휴를 맞아 캠핑을 계획한다면 텐트 내 가스버너, 가스난로 등 가스용품은 사용하지 않는게 좋다.가스 사용량이 급증하는 연휴 기간, 가스시설 이상 유무를 반드시 확인해 가스사고 없는 안전한 추석 연휴가 됐으면 한다.

2020-09-21

진보정권의 ‘표리부동(表裏不同)’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정치인의 생명은 ‘신뢰’이다. 신뢰의 기초는 ‘언행일치(言行一致)’에 있다. 위선자는 말과 행동이 다르다. 정치지도자의 위선은 그를 믿었던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두 얼굴을 가진 정치인들의 ‘표리부동’이 진보정권의 실체를 말해주고 있다.진보세력은 ‘촛불을 든 국민의 명령’을 받들어 평등·공정·정의를 앞세워 집권했다. 그럼에도 권력의 힘으로 ‘불의를 정의로 둔갑’시키고 ‘특권과 반칙을 정당화’하고 있다. 적폐를 청산하겠다던 정권이 도덕성과 공정성을 상실하여 새로운 적폐를 양산하고 있는 중이다.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선물했다는 ‘춘풍추상(春風秋霜)’액자는 장식품이 된지 이미 오래고, “살아있는 권력도 수사하라”는 말을 믿었던 검찰총장에게 돌아온 것은 온갖 압력과 위협이었다. 통합을 말하면서 ‘갈라치기’로 정략적 이익을 도모하고, 협치(協治)를 말하면서 야당에게 양보가 없으니 모두가 ‘계산된 정치적 수사(修辭)’에 불과하다. 이처럼 겉과 속,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대통령을 국가지도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대통령이 이러하니 참모들 역시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조국·추미애 등 정의부장관들이 불의에 연루된 혐의로 재판 또는 수사 중에 있다. 정치교수를 추상같이 비판했던 조국은 알고 보니 자신이 바로 정치교수였고, 정의의 사도처럼 행세했던 그의 내면에는 악마의 간계(奸計)가 숨어있었다. 추미애 아들의 ‘황제휴가’ 역시 조국 딸의 ‘입시비리’와 판박이다. 당시 당직사병은 “나를 거짓말쟁이로 몰고 가는 추미애의 행태가 모욕적”이라고 했다. 힘 있는 자들의 특권과 반칙을 지켜보아야 하는 힘없는 서민들은 자녀에게 ‘아빠찬스, 엄마찬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무능에 가슴이 무너진다.페미니스트를 자처했던 박원순은 성추행으로 고소되자 자살했고, ‘을’의 편에 서겠다던 안희정·오거돈 역시 ‘갑질 성범죄’를 저질렀다. 진보의 이중성은 ‘불편한 진실’이다. 부동산정책의 실패로 집값은 폭등하고 전세난이 심화되자 2030세대는 ‘영끌’해서라도 아파트를 산다. 하지만 부동산투기를 비난했던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하여 다수의 수석·장관들은 다주택 소유자임이 드러났다. 말로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을’의 편에 서겠다던 진보인사들의 ‘갑질’과 ‘위선’이 약자들을 더 큰 분노와 고통 속으로 내몰고 있다.이처럼 말로만 공정과 정의를 외치는 ‘입진보’는 진보가 아니라 ‘퇴행이자 반동’이다. 보통사람들도 말과 행동이 다르면 상종하지 않으려하는데, 하물며 정치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이중인격자이니 기가 막힌다. ‘춘풍추상’을 역설했던 대통령이 내편에는 관대하고 네편에는 엄격하니 후안무치(厚顔無恥) 아닌가? 야당의 잘못은 노골적으로 비판하던 대통령이 정부여당의 잘못으로 국민들이 아우성치고 있는데도 모른 척 침묵만 지키고 있다. 공자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 했다. 앞에서는 정의·통합·협치를 말하면서 뒤로는 반칙·갈라치기·독선을 계속한다면 스스로 파멸을 재촉할 뿐이다.

2020-09-21

추석선물 트렌드

코로나19 사태로 추석에 고향을 방문하는 대신 선물만 보내는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추석 선물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신세계그룹의 통합 온라인몰 SSG닷컴이 지난달 13일부터 이달 19일까지의 판매 데이터 전체를 분석한 결과 올 추석 선물 트렌드 키워드는 명절 선물 가격대가 지난해보다 높아지고(Flex), 건강과 위생(Anti-Virus)을 고려한 상품이 인기였으며, 사회적 거리두기로 선물만 원격(Remote)으로 보내는 현상이 두드러져‘F.A.R’로 꼽혔다고 21일 밝혔다.우선 판매된 선물세트의 평균 가격대가 지난해 추석보다 15% 이상 상승했다.특히 선물세트에서 10~20만원대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2배 이상 늘었다.코로나19로 귀성을 자제하면서 선물에 신경을 쓰는 소비자가 많아졌고, 올해 추석 기간 공직자 등에게 허용되는 농·수·축산물 선물 상한액이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상향된 데 따른 것이란 분석이다.역대 명절 중 처음으로 핸드워시 선물 세트가 인기 품목 10위 안에 드는 등 위생 관련 제품이 강세를 보였다. 지난해에는 건강기능식품 중 홍삼만 인기를 끌었지만, 올해는 유산균, 루테인, 비타민 등 다양한 건강식품이 인기 순위 20위 내에 올랐다.또 선물하는 방식도 달라져 휴대폰 번호만 알면 손쉽게 선물을 보낼 수 있는‘선물하기’서비스 이용이 크게 늘었다.이는 직접 만나 선물을 전하는 대신 휴대폰 문자를 통해 손쉽게 선물을 보내는 고객이 많아진 것으로 분석된다.받는 사람의 주소를 정확히 알지 못하더라도 선물할 수 있는 점 역시 장점이다. 코로나19가 명절 선물 트렌드까지 크게 바꾸는 모양새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9-21

명품 리더십이 그리워지는 계절에

박문하 전 포항시의회 의장우리가 아는 대표적인 겨울 철새 기러기는 따뜻한 남쪽 나라로 날아가 추운 겨울을 보낸다.해마다 생존을 위해 수만 킬로가 넘는 엄청난 거리를 날아야만 한다. 목적지를 향해 높은 산을 넘고 끝모를 벌판을 가로지르는 기러기 떼의 날개짓은 인간의 멀고 험한 인생 여정을 연상케 하고 무엇보다 이동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리더 기러기의 희생적인 모습은 우리에게 숙연함을 느끼게 한다.힘이 센 수컷의 리더는 상승기류가 없는 V자 대형의 맨 앞자리에서 공기 저항을 고스란히 받으면서 수천마리의 기러기들의 나갈 방향을 지휘하는 리더 기러기의 막중한 책임을 인정하고 앞장선 대장 기러기가 지치면 소리를 내어 격려하고 응원하면서 절대적인 신뢰를 보낸다고 한다.우리는 이 같은 기러기 무리의 대장정을 보면서 리더 역할의 중요성과 어디선가 크고 작은 조직의 맨 앞자리에서 열심히 날개를 퍼덕이는 명품 리더십의 결과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되짚어보면 어떨까 한다.전쟁 파병으로 오랜 기간 대한민국과는 어색한 우호 관계였던 베트남에는 한국과 베트남 양국 우정의 상징이 된 국가대표 축구팀 박항서 감독이 있다.부임 이후 박 감독은 베트남에 적합한 전술을 만들고 선수 개개인의 장단점을 완벽하게 분석하였고 특별히 그는 선수들이 축구에 전념하도록 아버지와 아들 같은 친밀함으로 선수들과 교감해 나갔다.훈련에 지친 선수들의 발을 마사지해주고 출전시키지 못한 선수들에게 양해를 구했고 부상당한 선수에게 자신의 비즈니스 좌석까지 양보하는 감동과 혁신의 리더십을 행동으로 보이기도 했다.흔치 않는 이 같은 리더십은 베트남 국민들의 기대와 상상을 훨씬 초월한 성적으로 다가왔다. 베트남 언론은 2018년 한해 베트남을 가장 빛낸 인물에 베트남 축구 국민으로부터 존경과 신뢰의 표상이 되고 있는 한국인 박항서 감독을 선정했다.더불어 응우엔 총리가 박항서 정신을 베트남 경제 발전을 모델로 삼을 것을 지시하고 베트남 정신과 비전으로 승화시킬 필요성을 역설했다고 전하고 있다.얼마 전 태국 유소년 축구팀 무빠(야생멧돼지) 팀원 열세명 전원을 구출했던 감동의 현장을 우리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무려 18일만에 단 한 명의 사고도 없이 전원 구조되는 것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 기적의 해피엔딩 드라마를 지켜 본 세계의 동굴탐사 전문가들은 스물다섯의 젊은 무빠 축구팀 코치의 지혜와 헌신적인 리더십이 없었다면 어린 선수들의 생존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한결같은 견해를 보였다.암흑의 공간에 고립된 18일 동안 그는 아이들이 동굴 내에서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지 않도록 현장을 지키고 종유석 천정에 맺힌 깨끗한 물만 마시게 했다.소년들의 부모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은 아이들이 우선이었고 자기 몫의 음식도 포기한 채 불안해하는 아이들을 달래느라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고 한다.의료진들에 의하면 실제 그는 구조된 13명 중 유독 건강이 좋지 않아 제일 먼저 동굴을 나가도록 권유했지만 많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모두 동굴을 안전하게 빠져나간 것을 확인하고 마지막 순위를 고집하여 최후의 구조자로 확인되었다.우리는 단순히 조직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을 리더라고 하지 않는다. 조직원을 먼저 챙기고 그들의 안전을 위해 희생하며 조직의 역량을 발현하도록 하는 사람을 리더라고 부른다.크게는 국가에서부터 작게는 사설 단체에 이르기까지 리더의 역량으로 그 조직의 명암이 갈린 사례를 숱하게 보아왔다.박항서 감독은 베트남 국민과 축구 대표팀 선수들에게 진심과 혼신으로 대표팀 감독직을 수행했기 때문에 절대적인 신뢰를 얻었고 그 결과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최상의 성적은 부수적으로 따라왔다고 볼 수 있다.태국의 스물다섯 젊은 청년 축구 코치의 헌신과 지혜가 없었다면 18일 동안 암흑의 동굴에서 전원 생존이라는 기적의 불빛을 밝힐 수 있었는지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개개인의 뛰어난 능력으로 성공하는 조직도 있지만 다수의 사람이 모여 사회를 이룬 공동 운명체는 리더십의 역량에 따라 승패가 좌우되는 것이다.2002년 히딩크 감독은 정글 같은 축구장에서 개성 넘치는 열한 명의 선수들을 한 몸처럼 움직이게 하여 대한민국의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룩하였다.임진왜란으로 나라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있을 때 홀연히 열두 척의 배로 스물세번의 해전에서 모두 승리하고 쓰러져가는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을 생각하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헌신과 배려 넘치는 리더의 품격으로 결단과 용맹으로 더러는 국가나 사회 그리고 작은 회사나 단체까지 명품으로 만들고 그 안에 소속된 구성원들이 자부심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리더십이 더욱 그리워진다.어느덧 코로나19와 폭염, 태풍까지 심신을 지치게한 긴 여름도 끝자락이 보인다. 분열과 갈등으로 점철된 혼돈의 이 시대를 잠재울 명품 리더십이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절실하게 생각나는 것은 결코 계절 탓만은 아닐 것 같다.

2020-09-21

여남포구

수평선에 공장의 불빛들이 스며든다. 이곳은 어촌풍경과 도시의 풍경들을 사진에 담을 수 있어서 자주 찾게 된다. 포항시 북구 여남포구는 바다 끝에 산이 있고 산 끝에 바다가 맞닿아 있다. 방파제 등대에서 마을을 바라보면 집들이 위치한 산의 모양은 꼭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는 듯하다. 해질녘 불이 켜지면 옹기종기 앉아 있는 불빛들이 물고기 비늘같이 반짝인다. 밤이 깊어지면 산도 헤엄쳐 바다로 가는 꿈을 꾸지 않을까하는 상상을 해본다.포구에는 풍랑을 피해온 배들이 정박해 있다. 파도와 맞서고 삐걱거렸을 배들은 포구에 안긴 듯 편안해 보인다. 선착장 타이어를 배게 삼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들이 어머니의 품에 안긴 아기의 모습 같다. 포구는 옷고름을 풀고 젖을 물리고 있는 듯하다. 포구로 돌아온 배들은 다음 출항 때까지 망중한에 들 것이다. 포구는 요람이요, 피난처이며 휴식 공간이다.잠시 몽환적 상상을 해보다 눈을 감고 파도소리를 듣는다. 바다가 들려주는 파도소리에 아득하니 심장이 뛴다. 금어기가 풀리면 포구에 정박했던 배가 산소통을 싣고 엔진소리를 내면서 포구를 떠날 것이다.오늘도 여남포구에는 만선의 꿈들이 헤엄친다. 쉼 없이 파도가 밀려와 바위에 닿았다 다시 떠나간다. /김주영(사진작가)

2020-09-21

이름표를 붙여 내 가슴에

코로나로 일이 없는 날이 많다. 마음은 편하지 않지만 몸은 편하니 산책을 가기로 했다. 친구에게 수목원으로 소풍을 가자고 했다. 사람이 많은 커피숍보다는 낫겠지 하며 간식을 싸서 나섰다. 주왕산에 숲속 도서관이 생겼다고 반가워하는 나에게, 누군가 포항 연일중명자연생태공원에도 도서관이 있다고 했다. 그럼 오늘 오후 산책은 거기로.갈 때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을 하는 산, 길도 더 넓어지고 꽃의 키도 식구 수도 늘어났다. 한참 숲을 둘러보아도 도서관은 못 찾았다. 하지만 오늘 또 달라진 것 발견. 이름표를 새로 만들어 달았다. 내가 퀴즈마니아인줄 어찌 알고 “나의 이름은 뭘까요?” 한다. 감나무 뽕나무 정도만 구별 가능한 나에게 어려운 퀴즈이다.내 실력을 알았다는 듯이 주위에 여러 나무 중에 어떤 나무의 이름인지 눈치채라고 앞판에 나뭇잎과 꽃과 열매를 새겨 놓았다. 그 정도 힌트로 맞힐 내가 아니다. 처음부터 알려주면 재미없다. 너무 쉬워 보일까 봐 뚜껑을 살짝 넘기란다. 손으로 들추니 이름이 나오고 어디에서 온 것인지, 어느 시기에 꽃을 피우는지 꽃의 이모저모를 적어 놓았다. 나무나 꽃이나 사람이나 쪼는 맛이 있어야 한다.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니 야생화 관찰원, 약용 식물원, 암석원, 야생화원 등 다양한 생태 학습장이 있었다. 곳곳에 설치된 소리 채집기에 귀를 기울이면 물소리 바람 소리가 또 다르게 들린다. 오르면서 보니 계곡 여기저기에 동물 모형이 있어서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한쪽에 놓은 정자에 앉아서 가져간 간식으로 갈증을 달랬다. 산을 따라 올라가면 옥녀봉에 전망대도 있다. 오늘은 산책만 하기로 했으니 전망대까지 가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뤘다.집에 돌아와 연일중명자연생태공원 홈페이지에 방문했다. 요런 재미난 생각은 누가 어찌하였는지, 다음번에 가면 또 다른 무언가를 내게 보여줄 건지 물어보고 머리 한번 쓰다듬어 주어야겠다. 참 잘했어요, 도장도 찍어주고./이지헌(구미시 양호동)

2020-09-21

국제 항만도시 포항의 우선 과제

이제야 포항이 국제 항만도시라고 하는 말에 조금은 고개를 끄덕일 만 해졌다. 한 나라나 지역이 국제적인 인지도를 높이려면 반드시 출입구를 가져야만 한다. 하늘길을 이용하는 공항이든, 육로를 이용하는 국경이든 내국인과 외국인이 접점을 가지고 드나들 수 있는 곳 말이다. 이처럼 다른 나라와 물리적으로 연결되는 창구를 가지지 못하면 그 나라나 지역이 국제사회에서 이름을 알리거나 경제활동을 활발하게 하기는 매우 어렵다. 우리나라는 북한을 마주하고 있어 여느 내륙 국가처럼 국경을 접점으로 하는 국제관문은 사실상 막혀있다. 지금 외국과 국제무역을 활발하게 하거나 내국인의 해외여행과 외국인의 국내 관광이 가능한 것은 국제공항과 국제항만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항은 국제항만을 가지고 있다. 3개 항으로 이루어진 포항항 가운데 신항은 국제벌크항만, 영일만항은 국제컨테이너항만이다. 이번에 완공된 국제 크루즈 여객부두로 인해 포항항은 국제 벌크화물과 국제 컨테이너 화물 그리고 국제여객 모두 다루는 완전체의 국제항만으로 재탄생하였다. 명실공히 국제 항만도시 포항이라는 자격증이 이제야 완비된 셈이다. 여기에 하늘길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필요하다면 특별전세기를 통해 세계 어디라도 움직일 수 있다. 실제 외국을 오간 사례도 있다. 이번에 포항을 모항으로 삼고 러시아와 일본 서해안지역을 오가는 국제 카페리호가 취항하였다고 한다. 앞으로 이를 통해 포항의 국제화물과 국제여객이 넘나들며 항만물류가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세계 경제가 동시 부진에 빠지면서 국제물동량도 자연 격감하였다. 특히 그중에서도 그동안 높은 성장세를 보여왔던 국제크루즈산업의 피해는 매우 컸다. 국제해운업계가 이처럼 심각한 불경기를 맞이하면서 상위권의 국제여객선사들까지도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중고여객선의 가격은 종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최악의 상황에서 포항의 국제 크루즈 여객부두가 완공된 것이다. 시기적으로 보면 어려운 상황임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앞으로는 전망이 밝다고 단언할 만한 확신도 없다. 주식투자가라면 누구나 발가락 끝에서 사서 머리카락 끝에서 팔아 최고의 수익을 올리고 싶어 할 것이다. 하지만 워낙 시장 상황이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현명한 투자가들은 무릎에서 사고 어깨에서 팔라고 조언한다. 국제정치, 국제경제의 역학관계도 주식시장만큼이나 한 치 앞을 모를 정도로 빠르게 변화한다. 국제 해운업계가 지금 불황인 것만은 틀림없다. 하지만 언제 회복세를 보여 급반등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세계 무역이 차단되어 국제물동량이 바닥을 보이고 국제해운업계가 불황의 늪에 빠진 상태에서 국제 카페리 노선을 새로 시작하는 것은 어쩌면 모험이라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러시아와 일본을 오가는 여객과 화물을 동시 수용할 수 있는 카페리의 유용성을 고려하면 지금이 무릎 단계인 최적의 타이밍일 수도 있다. 국제 해운업계가 어려운 만큼 포항발 국제카페리 노선의 시장진입 허들은 상대적으로 낮아질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일반적으로 항만, 공항, 철도 등 인프라 투자는 불경기에 추진할수록 비용 대비 성과가 높아진다는 특징을 지닌다. 불황기에 각국이 인프라 투자에 나서는 것도 그 때문이다.포항항이 국제 항만도시에 어울리는 적합한 기능을 발휘하여 도시 성장의 한 축을 담당하려면 선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그중에서도 특히 2개의 교육기반만은 서둘렀으면 한다.첫 번째 과제는 포항의 지정학적 중요성에 기반하여 주변 국가와의 경제적 문제를 전략적으로 접근 가능한 지경학(地經學·geoeconomics) 지식을 갖춘 전문가를 양성하는 일이다. 국제관계는 과거와 달리 정치, 경제, 외교 등 어느 특정 분야만 다루지 않게 되었다. 우리나라가 외교부를 외교통상부로 개편한 것도 이와 같은 지경학에 기반한 국가전략의 흐름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분쟁을 군사 행동이라는 물리적 수단으로 해결하던 시대는 지났다. 지금은 정치적 문제나 전략을 기반으로 경제적 수단을 이용하는 국가전략이 일반화되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다양한 경제적 제재 수단을 이용하는 것도 지경학적 전략에 기반한 것이다. 이처럼 경제학, 정치학, 지리학이 통합된 학문인 지경학은 그동안 경제외교를 지탱해왔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경제적 수단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로 지경학인 셈이다. 포항이 앞으로 국제 항만도시로서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생존하려면 폭넓은 시야와 통찰력을 갖출 수 있는 지경학적 소양을 지닌 젊은 인재들을 양성할 필요가 있다. 국가가 아닌 포항지역에 특화된 지경학적 지식을 갖춘 인재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포항의 대학 내에 지경학과를 신설하거나 단일 교양과목의 형태라도 개설하여 국제정치 경제적 감각이 배인 청년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기반을 서둘러 구축해 나갈 필요가 있다.두 번째 과제는 국제 항만도시 포항의 주요 분야에서 즉시 활용할 수 있는 다국어가 가능한 외국 청년인재의 유인과 수용을 위한 기반 마련이다. 일종의 교육프로그램이라 해도 무방하다. 포항항이 환동해 거점항만으로 지정된 것은 포항이 지닌 지정학적 위상 때문이다. 포항은 국제컨테이너부두, 국제벌크화물부두, 국제여객부두 모두를 갖춘 동해안 유일의 국제항만도시다. 바다를 격해 중국만 상대하는 서해안의 국제항만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포항은 울릉도 독도라는 동해안 최동단의 국경 도서를 끌어안으면서 위로는 북한, 중국의 동북 3성, 러시아 극동연방 관구를 두고 있다. 우로는 일본의 서해안지역을 상대하며 남으로는 미국, 동남아까지 연결된다. 환동해 내지 환울릉지역을 아우르는 포항은 태생부터 다국적을 상대하는 국제 항만도시인 셈이다. 이러한 전략적 위상을 지닌 항만도시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포항시가 어떠한 전략을 가지고 움직이는가에 따라 포항이 지닌 지정학적 장점을 살려 경제적으로도 유의미한 파급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인지 아닌지가 결정된다. 이 문제는 누구도 대신 해결해줄 수 없다. 포항 스스로 환동해 전략을 수립하고 실천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활용할 수 있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어야만 한다. 러시아, 일본, 중국에서 한국어가 가능한 교포 2세들을 선점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이를 위해 포항국제아카데미(가칭)와 같은 교육프로그램의 개설을 제안한다. 학력 인정까지는 불필요하다. 그저 우수한 청년 교포들을 끌어들여 포항에 정착시키고 해양으로 나아갈 포항에 필요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하기만 하면 된다.포항은 앞으로 포항항을 거점으로 러시아, 중국, 일본 등 환동해권으로 경제영토를 확장해 나가야만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지금 당장 포항에 필요한 교육기반은 앞서 언급한 딱 2개의 교육기반뿐이다. 국제적 감각을 지니면서 포항의 미래전략을 세울 청년 인재의 양성, 즉시 활용 가능한 환동해권 4개국 언어에 능통한 외국 국적 청년 교포를 산업인력으로 유인, 수용할 그릇이다. 포항의 인재는 자체적으로 수급해야만 한다. 다가올 환동해경제권 시대에 포항을 거점으로 삼으면서 포항을 등에 지고 활약할 청년 인재들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프로그램의 구상은 단지 졸업 후 포항을 떠날 학생들을 수용하기 위한 국제학교의 설립 문제보다 더 시급한 최우선 과제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09-20

퍼펙션 포인트

남자 100m 달리기 경기에서 10초의 벽이 깨진 것은 1968년 멕시코 올림픽 경기 때다. 미국의 짐 하인즈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100m를 9초95로 돌파했다. 이후 9초86(칼 루이스), 9초74(포웰)로 신기록이 갱신되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경기에 와서는 자메이카의 우사인 볼트에 의해 9초7의 벽이 깨진다.0.1초의 벽을 깨기 위한 스포츠계의 도전은 늘 흥밋거리다. 인간의 한계가 만들어내는 최고의 기록을 ‘퍼펙션 포인트’라 한다. 인간이 넘어설 수 없지만 끈질기게 도전하고 가까이 갈 수 있는 최고의 기록을 말한다. 이런 기록에 대한 도전과 좌절은 스포츠를 관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흥미와 매력을 선물한다.1982년 조난 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미국 MIT공대 휴허 교수는 자신이 개발한 로봇의족을 차고 71m 암벽등반에 성공한다. 일반인으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한계에 대한 도전이다.히말라야 8천m급 16좌를 세계 최초로 완등한 산악인 엄홍길 대장은 지난해 대한민국 스포츠 영웅으로 선정됐다. 대한체육회는 불굴의 도전 정신으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그의 인생철학이 국민 모두에게 희망을 준 점 등이 스포츠 영웅 선정 이유라 했다.이처럼 인간은 한계를 알면서도 한계에 도전한다. 그들의 도전이 비록 0.1초의 한계 극복에 그칠지라도 인류가 함께 느끼는 한계 극복의 통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스웨덴의 아르망 뒤플랑티스가 18일 이탈리아서 열린 세계대회에서 남자 장대높이뛰기 결선에서 세계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외신에 따르면 그가 세운 기록은 종전보다 1cm가 더 높은 6m15다. 1cm의 한계를 뛰어넘는데 무려 26년의 세월이 걸렸다. 인간의 도전정신에서 묻어나는 신선함이 느껴진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9-20

‘법꾸라지’ 공화국

안재휘논설위원공자는 도(道)를 일러 ‘솔선해서 행하는 것’이라 했고, 정(政)은 곧 ‘법제와 금령’을 뜻한다고 했다. 또 형벌을 주어서 균일하게 만드는 제(齊)에 치중하면 백성들이 형벌을 면하려고만 하고 부끄러움이 없어진다(齊之以刑 民免而無恥)고 경계했다. 법(法)은 야만의 시대, 무질서를 극복하는 데 있어서 인류에게 가장 유용한 도구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공자의 말처럼, 법이 과잉지배하는 사회가 되면서 무치(無恥)한 인간들이 양산되고 있다.지난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조국 사태의 논란들이 최근 들어 본격적으로 법정에서 다뤄지기 시작하면서 뜻밖으로 ‘법꾸라지’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조 전 법무장관의 아들 가짜 인턴증명서 발급 혐의를 받는 최강욱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정경심 교수 모자가 200회에 이르는 모든 질문에 증언을 거부했다. 앞서 조국 장관 자신도 정 교수 재판에서 303차례나 형사소송법 148조 근친자의 증언 거부권을 들어 증언을 거부했었다.해석은 의외로 쉽다. 형사재판은 기준이 엄격해서 확실한 증거가 없는 한 아무리 혐의가 짙어도 무죄가 나올 수 있다. ‘참말을 할 수도 없고, 위증의 죄를 무릅쓰고 거짓을 말할 수도 없어 최상의 선택을 한 것’이라는 풀이가 정확할 것이다.조국 일가의 ‘법꾸라지’ 행태는 일반 국민이라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몰라서 못 하고, 무서워서도 못한다. 수많은 피고인이 질문에 답변을 거부했다가 판사로부터 ‘개전(改悛)의 정이 없다’는 질책과 함께 괘씸죄까지 보탠 중형을 선고받고 있다.조국 일가는 도대체 무얼 믿고 이렇게 하는 걸까. 자기들 세상에 새로 판이 짜진 법원의 판결을 믿기 때문이다. 야릇한 일은 벌써 시작됐다. ‘우리법 연구회’ 출신인 서울중앙지법 김미리 재판장은 조국의 동생 조권 씨에게 웅동학원 교사 채용시험지 유출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일은 정말 중요한 혐의에 대해서는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는 사실이다.조 씨 혐의의 핵심은 거짓 공사대금 채권 확보 명목으로 가족끼리 짜고 치기 소송을 벌여 웅동학원에 115억 원 손해를 끼쳤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교사 채용 지원자 두 명에게 시험지를 빼주고 뒷돈 1억4천700만 원을 받은 것도 시험지 유출만 유죄고 뒷돈은 무죄라고 판시했다. 돈 심부름한 사람은 징역 1년 6개월을 받았는데, 시키고 돈 받은 사람은 무죄라니 참으로 해괴한 판결이다. 이제 어떤 가당찮은 일들이 펼쳐질지 충분히 예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지난해 조국 사태나, 최근의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논란을 보면서 이 나라가 여전히 초엘리트를 자처하는 성층권 ‘법 기술자’들이 지배하는 ‘법꾸라지’ 공화국임을 새삼 절감한다. ‘불공정’에 눈물짓는 민심은 아랑곳없이 ‘불법’만 아니면 된다며 뻗대는 지도층 위정자들의 후안무치(厚顔無恥)한 행태에 넌더리가 난다.

2020-09-20

지방의회 제멋대로 의정, 부끄럽지도 않은가?

손경찬전 경북도의회 의원·칼럼니스트지역의 지방의회가 후반기 의장단과 위원장을 새로이 선출하고 후반기 의정을 이끌어가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말들이 많다. 포항시의회가 후반기에 들어서자마자 원(院)구성으로 몸살을 앓았고, 최근 상주시의회에서는 의장불신임 의결이 기화가 돼 법정 문제로까지 번졌다. 지방의회 의원들이 시민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게 아니라 자기들끼리 밥그릇싸움인 것이다.포항시의회의 의원수는 총 32명으로 이중에서 국민의힘 19명, 더불어민주당 10명, 무소속 3명이다. 굳이 세(勢)로 따지자면 국민의힘과 민주당·무소속이 6대 4인데, 민주당에서는 후반기 상임위원장 배분에서 40% 정도는 민주당·무소속에게 배분돼야한다며 밀어붙였고, 뜻대로 안 되자 의장불신임안을 불쑥 제출했던 것이다.과거 60년간 전혀 볼 수 없었던 의장불신임 건이 작년부터 전국 지방의회에서 곧잘 등장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대구동구의회에서 의장불신임이 의결되자 해임당한 의장이 소송을 걸어 그 직을 되찾은 사례가 있다.지방자치법 제55조 제1항을 보면 ‘지방의회의 의장이나 부의장이 법령을 위반하거나 정당한 사유없이 직무를 수행하지 아니하면 지방의회는 불신임을 의결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지방의회의 의장이 법적으로 잘못하면 그에 맞게 제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상주시의회에서 의장불신임 발의사유 가운데 첫째가 ‘의장이 의회의 위상과 품위를 손상시켰다’는 것인데, 그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없이 두루뭉술하게 헐뜯기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두 번째와 세번째 발의 사유는 지방자치법상의 불신임사유에 전혀 맞지 않는 내용인즉, 전반기 의장 선거와 후반기 의장선거에서 당론을 무시하고 정당내 의장 내정자가 있었음에도 따로 나가서 당선됐다는 게 사유였다. 기가 찰 노릇이다. 설령 정당내에서 그렇게 정했더라도 그것이 지방자치법상에서 의장을 불신임할 수 있는 사유는 되지 않음이 분명한데 강행한 것이다.그러면서 의안처리과정에서 표결하기 전에 당사자에게 소명기회를 줘야함에도 신상발언을 봉쇄했고, 회의규칙상 질의와 토론을 거쳐야 함에도 생략하고 표결하는 등 위법을 저질렀다. 그랬으니 해임된 의장이 상주시의회의 위법 행위에 대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것은 당연지사가 아니겠는가.지방의회는 헌법기관이다. 헌법과 법률 및 의회 의사규칙이 정하는 바에 따라 운영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위법하면 안 될 일일 터, 지방의회가 중앙정치를 닮아 정쟁 일쑤고, 적당한 구실을 붙여 인민재판식으로 몰아붙여 의장의 자리를 박탈하는 것은 반(反)의회적이다. 상주시 기초의원들이 중앙정치의 폐습을 풀뿌리민주주의 현장에 옮기려는 처사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의장이 법령 위반과 직무 태만이 없음에도 해당되지도 않는 불신임사유를 갖다 붙여 발의하고는 의원 표결권, 의회의 자율권을 앞세워 마치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휘두르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된다. 기초의원과 도의원을 지낸 필자가 보기에도 지난 8일 발생한 상주시의회의 의장불신임 과정에서 보인 제멋대로 의정은 문제가 있다. 시민들에게 부끄럽지도 않은가?

2020-09-20

동의합니까?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지난 여름 땡볕더위와 태풍에 지친 나뭇잎들이 쉴 곳을 찾아 거리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걸 보노라면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실감한다. 소슬바람에 코트 깃을 살짝 치켜세우고 사랑하는 연인과 팔짱을 끼고 고궁돌담길을 걸었으면 하는 기분이다. 말라비틀어져 가는 중년 사내의 심장 한 구석으로 촉촉한 물기가 스며든다. 왁자지껄하던 사회적 모임이 코로나로 잠시 정지되니 사람 만나는 일이 뜸하다. 의도하지 않게 사회분위기가 고독의 계절 가을에 어울리게 되었다. 그동안 너무 뒤섞여 지낸 탓에 소홀했던 자신을 돌아보고 조금 느리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가을빛이 높은 요즘, 은근히 쓴 커피향이 제 몸뚱이에서 풍겼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고독을 좀 폼 나게 즐겨보고 싶어 집을 나선다. 고독을 즐기는 것은 아무래도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 잔을 들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맞은편에 아리따운 여인이 앉아 조곤조곤 말상대를 해주는 것도 괜찮겠지만 고독한 분위기는 앞자리가 비어 있는 게 좋다. 평소 잘 들리던 커피전문점으로 발길을 옮겨본다. 출입문에 붙은 코로나 방역 경구가 눈에 확 들어온다. ‘마스크 미착용 출입불가’, ‘손 세척’,‘테이크아웃만 가능’ 등등. 고독한 분위기를 즐기려던 마음은 사치다. 죽음과 맞선 인간의 처절한 투쟁으로 여겨졌다면 너무 과한 생각인가? 카페 안으로 들어간다. 탁자와 의자는 패잔병처럼 한쪽 구석에 쌓여있다. 객장 안에서 음료는 안 된다는 무언의 시위다. ‘주문한 커피를 가지고 냉큼 나가야겠다’고 느끼는 순간, 부동산 계약서 같은 종이뭉치가 들이닥친다. ‘발열여부, 출입시간, 이름, 전화번호, 개인정보동의….’ 횡으로 뻗어나가는 칸들이 죄수를 기다리는 독방 같다. 국가적인 재난상황에 대응하는 착한 시민의 책임을 다해야 된다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꼼꼼히 적어나간다. 잘 적어나가던 펜이 ‘개인정보 동의’,‘개인정보 제3자에 제공 동의’란에 이르게 되니 주춤하게 된다. 개인정보가 볼모로 잡힌다. 코로나로 영업장을 출입하는 모든 사람들이 기재하도록 행정명령이 발동된 것이다. 영업을 하는 곳에서 기록물을 잘 보관했다가 행정기관에 제출할 것으로 믿는다. 그런데 혹시 원본은 제출하고 복사본을 업소에서 가지게 되면 어쩌나하는 생각에 이르자 덜컹 걱정이 된다. 너무 무분별하게 개인정보가 나돌아 다니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개인정보보호에 관한 엄격한 법이 정착되어 개인이든 기관이든 함부로 사용치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잊을 만하면 개인정보를 팔고 사는 사건이 생긴다. 사생활 보장은 민주주의의 근본이다.세상이 디지털화되면서 사생활 노출이 언제 어디서든 가능한 세상이다. 집을 나서면 하루 동안의 내 동선은 온통 폐쇄회로 천국에 갇힌다. 스마트폰은 실시간 위치추적기다. 신용카드는 내 생활패턴의 징표다. 오로지 무인도에서 고립된 자만이 사생활 비밀이 유지될까? 그도 드론의 고공접근을 막을 도리는 없을 것이다. 수집된 방대한 데이터의 최종 보관자는 누구인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악령은 법과 도덕을 이기곤 했다.

2020-09-20

U자형 칠곡관광벨트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한다

백선기 칠곡군수위기는 기회의 또 다른 이름이다. 기존 방식으로 위기를 넘기고자 했던 기업과 국가는 역사의 이름으로 사라졌지만 시대 흐름을 명확히 읽고 위기 이후의 시대를 준비한 국가와 기업은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이했다.현대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의 위기인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고 최악의 위기 상황에 놓인 것이 바로 관광산업이다.관광산업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피해를 보면서도 복구는 가장 늦다. 비단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코로나19로 위기에 빠진 관광산업도 생존을 위해 급변하고 있다.언택트 시대에 걸맞은 비대면 소비와 안전한 여행이 키워드가 되고 있고, 여행 유형의 개별화와 소규모화, 위생과 거리 두기가 장소 선택의 결정적 요인으로 떠올랐다.특히, 칠곡보생태공원 등과 같이 확 트인 야외 공간과 자연 친화적인 곳은 선호도가 급상승하고 있으며 관광버스를 이용한 단체관광 보다 개인 자동차로 떠나는 가족 단위의 소규모 개별관광이 대세로 자리 잡으며 가족 단위의 체험형 관광이 주목받고 있다.이로 인해 해외가 아닌 국내로 발길을 돌리는 관광객이 급증하며 국내 관광지의 가치가 상승하며 재조명받고 있다.앞으로 당분간 코로나19와 함께하면서 코로나 이후를 준비하는 것이 현실적인 자세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관광산업의 재개와 정상화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이에 칠곡군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해 관광산업 활성화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낙동강을 중심으로 좌우 강변으로 이어지는 ‘U자형칠곡관광벨트’ 막바지 마무리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U자형칠곡관광벨트는 2012년부터 9년에 걸쳐 이어온 역점 사업이다.2022년 완공을 목표로 자연과 생태, 호국과 평화, 역사와 문화, 예술 관람과 체험을 한 곳에서 할 수 있는 매머드급 복합관광 단지로 전체 면적은 약 3㎢로 총사업비는 2천억 원가량 투입되는 대규모다.무엇보다 낙동강을 중심으로 광활하게 형성된 확 트인 공간에 조성되어 사회적 거리 두기가 쉬워 비대면 관광지로서도 손색이 없다. 또 대구, 구미, 김천 사이에 있는 지리적 장점과 가족 단위의 체험 관광에 특화되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큰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U자형칠곡관광벨트가 완성되면 호국 평화를 테마로 한 맞춤형 체험 관광산업을 통해 지역 정체성 확보와 경제 활성화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것으로 기대된다.U자형칠곡관광벨트에는 △칠곡보생태공원 △관호산성 둘레길 △칠곡호국평화기념관 △칠곡보오토캠핑장 △칠곡보야외물놀이장 △꿀벌나라 테마공원 △향사아트센터 △음악분수 △사계절썰매장 등이 들어섰다. 이어 △호국문화체험테마공원 △애국동산 다목적광장 △공예테마공원 등의 사업은 2022년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다.지난달 14일 개장한 100m의 레인을 갖춘 칠곡보 사계절썰매장은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슬라이드에 3번의 굴곡이 있어 경사면을 타고 미끄러지듯 바람을 가르며 내려오면서 짜릿한 하강체험을 할 수 있다.전동카트 체험장, VR 체험장, 어린이 놀이터 등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체험코스가 마련돼 있다. 코로나19로 강화된 방역지침을 준수하며 제한적으로 운영했음에도 입소문을 타며 인근 도시에서 가족 단위의 관광객이 몰려오는 등 큰 인기를 끌도 있다.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했다. 지금의 이 시기는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어렵지만 어둠이 짙을수록 새로운 태양이 뜨는 아침이 멀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역사는 새벽과 새로운 아침을 준비하는 자의 몫이었다.위기를 넘기면 희망이 온다는 운외창천(雲外蒼天)의 격언처럼 코로나 먹구름 속에서도 우리의 계획을 차분히 실현해 칠곡의 희망찬 미래를 그려나가겠다.U자형칠곡관광벨트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힘차게 열어갈 것이다. 국민의 관심과 성원을 당부한다.

2020-09-20

초록등대

등대 여권을 받았다. 조카와 군산의 근대역사박물관에 들어가니 입구에 3층 높이의 하얀 등대가 버티고 섰다. 파란 지붕을 얹은 것이 그리스의 어느 섬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박물관에 어떤 것이 있는지 동선을 보려고 팸플릿을 받으러 갔다. 안내데스크에서 초록색 표지의 딱딱한 여권 모양의 수첩도 손에 쥐어 주었다. 펴보니 전국에 있는 등대 지도와 그중에 어떤 곳엔 도장을 찍을 수 있고 완성하면 기념품도 주는 이벤트였다.포항에는 오래된 대보등대와 국립등대박물관이 있으니 집에 돌아가면 얼른 달려가 여권에 확인도장을 두 개나 받아야지, 방학을 이용해 남해의 섬에 홀로선 등대도 접수하리라 다짐을 했다. 하지만 삶이 언제나 계획대로 되던가. 호미곶 해맞이광장에 자리 잡은 등대박물관을 오늘에야 찾았다. 구룡포 읍내를 지나서 가야 하는데,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효과인지 신항만 도로에서 내려서자 막히기 시작한 길은 읍내 전체가 주차장으로 만들었다. 항구를 빠져나오니 새로 난 길은 한산하게 뚫려 달리기 좋았다. 파란 하늘이 손에 닿을 듯 다가오고 옆으로 바다가 내내 같이 달렸다.해맞이광장도 주말이라 사람들로 가득 찼다. 하지만 국립등대박물관은 관람객이 거의 없어 우리 차지였다. 체온 측정 후 방문자 명단을 작성하고 유물관에 입장하니 입구에 엽서를 만드는 코너를 따로 마련해두었다. 등대박물관 스탬프 15가지와 항로 표지 스탬프 10개로 하얀 엽서에 나만의 무늬를 그려 넣을 수 있었다. 인어공주, 조가비, 물고기 한 마리, 대보등대, 상생의 손을 찍어 내 엽서를 완성했다. 그 외에도 아이들이 좋아할 등대 모양 접기, 등대 탁본 등 체험거리도 다양했다. 등대 학교입학이라는 팸플릿을 들고 더 안으로 들어갔다.세계 최초의 등대인 파로스 등대는 BC 280년경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항구에 세워졌고 우리나라 역사서에 등대가 처음 등장한 것은 삼국유사였다. 아유타국 지금의 인도에서 온 신부를 가야의 시조인 김수로왕이 맞이하는 장면이다. 횃불로 배를 안내했다고 하니 등대의 옛 모습이다.아래층으로 내려가면 등대를 구성하는 것들이 전시돼 있다. 우리나라 곳곳의 등대에서 사용하던 물건들이 이제는 제 역할을 다하고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오래전 바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등대에 오르내린 대원의 등대일지도 보이고, 그때 받은 월급 명세서도 있었다. 손으로 쓴 월급 명세서 여백에 받은 돈을 어디에 쓸 것인지 항목을 조목조목 적어놨다. 중학등록금 8000원, 주식, 부식, 병원. 몇 가지 되지도 않았는데 곗돈 380원이 모자란다고 적혀있다. 등대원의 힘겨운 삶이 고스란히 보인다. 등대지기란 노래를 들으면 아련해지는 이유가 거기 있었다.유물관을 나오니 오래되고 소박한 옛 박물관이 역사관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게 보였다. 그 옆에 호랑이 형상이 늠름하게 앉았고 하얀 등대가 점잖게 섰다. 1903년에 지은 대보 등대이다. 100년 넘은 역사를 간직한 지금은 호미곶등대로 부른다. 오래전 이곳에 와서 달팽이 모양의 계단을 밟고 올라봤던 기억이 있다. 박물관의 여러 곳이 닫힌 상태고 체험관은 공사 중이라 들어갈 수없었지만 홈페이지를 보니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어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또 한 번 와봐야지 했다.김순희 수필가등대박물관 앞바다에 초록 등대가 있다. 우현 표지인 빨간색과 좌현 표지인 흰색은 어느 항구에서나 자주 보지만 초록은 드물다. 근처에 암초가 많으니 조심하라는 신호이다. 신호등에 초록 불이 켜지면 사람이든 차든 길이 열린다는 뜻인데 바다에서는 조심조심해서 가라는 당부를 초록 등대로 말해준다.초록 등대를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복잡한 구룡포 읍내 쪽이 아닌 임곡 방향으로 잡았다. 동해라 일몰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해질녘의 바다의 노을은 구름과 함께 나름의 시를 써서 보여주었다. 구불구불한 길을 돌아오며 나는 바다만큼 아름다운 글을 쓰지 못하리란 걸 알았다. 겸손한 마음으로 그 순간을 사진으로 저장했다.

2020-09-20

‘서일병 구하기’공방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21대 국회 첫 대정부질문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서모씨 군휴가 특혜의혹 공방전으로 도배되고 있다.야권의 공격이 거세지자 여당 지도부가 총출동해 지난 해 조국 장관 사수에 나섰던 당시와 비슷하게 온갖 수사(修辭)를 동원해 추 장관 비호에 나서는 모양새다.이번에는 더불어민주당 박성준 원내대변인이 “(서씨는)‘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이 군인의 본분’(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이라는 안중근 의사의 말을 몸소 실천한 것”이라고 논평했다가 야권의 반발을 샀다.국민의힘 김은혜 대변인은 “반칙과 특권에 왜 난데없는 안중근 의사를 끌어들이나, 민주당은 대한민국 독립의 역사를 오염시키지 말라”고 질타했다. 논란이 커지자 민주당은 논평에서 관련 부분을 삭제하고 박 원내대변인이 사과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야권에선 민주당의 ‘서 일병 구하기’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이같은 무리한 논평이 나온 것 자체가 민주당 전체가 추미애 감싸기, 서 일병 구하기에 매몰돼 있다는 방증”이라 했다.문제는 여당 의원들의 지원사격이 더 큰 논란을 불러일으켜 사과와 수습의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는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데 있다. 민주당 우상호 의원이 “카투사 자체가 편한 군대”라고 했다가 사과했고, 황희 의원은 서씨 의혹을 최초로 제기한 당시 당직사병에게 “단독범”이라고 했다가 역풍을 맞았으며, 김태년 원내대표의 ‘카톡 휴가신청’, 정청래 의원의 ‘김치찌개 독촉’발언도 많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했다.무엇보다 왜 진작에 추 장관이 솔직히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지 않았을까 의문이다. 추 장관 아들은 ‘엄마 찬스’로 군대를 면제받은 게 아니라 군생활중 병가혜택에 절차적 편의를 본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이처럼 온나라가 시끄러운 것은 추 장관이 전혀 잘못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기 때문인 듯 싶다. 무엇보다 국민들은 더이상 국회가 생산적이지 않은 주제로 말싸움만 일삼는 걸 보고싶어 하지 않는다. 국회가 코로나19로 인해 큰 타격을 입은 영세소상인을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을 것인지를 연구해, 새로운 지원책을 마련해 주기를 기대한다. 또 추석명절을 앞두고 지원될 긴급재난지원금 등이 포함된 4차 추가경정예산을 꼼꼼히 심의해주기를 바란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국민들의 바람과 희망을 아는지 모르는 지 눈살 찌푸리게 하는 공방만을 무한반복하고 있다. 국민들은 그저 정치권의 이같은 움직임을 차가운 눈으로 지켜볼 뿐이다.추 장관이 한때 글을 인용하곤 했던 ‘잡보장경’이란 불경에서는 “지혜로운 사람은 어느 때나 분노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실이라서 욕을 먹으면 그것이 사실이니 성낼 것이 없고, 진실이 아닌데도 욕을 먹으면 욕을 하는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속이는 것에 불과한 것 아닌가.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울 것이 없다면 그걸로 족하다하면 될 뿐인데, 다들 왜 이러는 지 모르겠다.

2020-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