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바속촉’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웃자고 하는 이야기에 그런 사자성어가 어딨냐고 따지고 덤비는 이가 없길). 튀김이나 마카롱의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는 뜻인데, 봄은 겉촉속촉이다. 가지 끝에 물을 올리는 버드나무도 말랑해졌고, 따스한 기온에 몸을 부풀어 올린 꽃들도 한껏 물을 머금었다. 거기다 몇 주째 주말마다 봄비가 내려 더 촉촉해졌다.
비가 부슬거리는 지난 주말에는 의성 산수유 마을에 갔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주인공이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던 노오란 길을 우리도 거닐어 보기로 했다. 영화 속에 흐르는 마을의 사계절이 보는 내내 탄성을 지르게 했고 이곳으로 발길을 옮기게 했다. 마을 한참 전부터 산수유가 길 안내를 한다. 집집마다 뒷마당에 한 그루씩 품었고 길가 가로수도 노랗게 불을 켠듯한 자태로 오래 그 자리를 지킨 듯 몸피가 제법 굵다. 산수유 마을답다.
영화 속 주인공 혜원은 도시에서 바싹 마른 채 고향으로 내려온다. 늦은 밤 산짐승 소리에 무서워 전화 목록을 펼치는데 한 페이지가 다 차지 않는 주소록조차 바스락 소리를 낸다. 무섭다 외롭다 말하지 않아도 고향 친구 재하는 다 안다는 듯이 하얀 강아지를 품에 안겨준다. 퉁퉁 싫은 소리 하는 고모도 밥상을 차려서 허기를 달래주는 고향 마을이다.
봄엔 노는 손이 없다는 주인공의 내레이션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고사리와 재피 순을 따러 가는 길은 산수유 산책로이다. 3km 넘게 길게 이어진 노란 길이다. 초록 마늘밭을 옆에 두고 마을의 수호신처럼 키워서 내 키의 세 배 높이다. 올려다보니 가을에 익은 열매가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인 가지도 있다. 빨강과 노랑의 협주다. 비가 내려 더 좋다. 우산을 받치고 걸으니 빗소리가 산수유 숲에 들이치는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된다. 아 좋다~. 비가 와서 더 좋다. 비 오니 걷는 사람들의 숫자도 줄었고, 그래서 우리들만의 산책이라 산수유 골짜기가 다 우리 것이다. 노란 꽃잎에 빗방울이 조롱조롱 열린다.
고향은 모든 게 달다. 먼저 내려와 이미 고향 공기에 촉촉해진 친구가 농사지은 토마토도 마트에서 산 것보다 달고, 엄마가 알려준 방법으로 담근 막걸리가 익길 기다리는 시간도 달다. 그 장면은 목월 시인의 술 익는 마을이 떠올라 더 노골노골해진다. 살구꽃 핀 마을은 다 고향 같다는데 산수유 핀 곳도 다 고향이다. 영화의 배경으로 남자 주인공이 구여친을 배웅하는 곳은 의성 가까이 화본역이다. 그 외에도 고운사, 빙계 계곡 등 의성의 곳곳이 나온다. 담장 밑에서 꾸벅거리는 동네 할머니와 닭 한 마리 던져주시는 아저씨, 도망간 엄마 이야기를 무심하게 내뱉는 동네 아줌마 역할까지 의성 가까이 안동에서 연극 하시는 분들이라고 했다.
의성은 내 고향 안동 옆 동네다. 우리 차가 내가 나온 초등학교 언저리를 지날 때는 마음이 몸 어디에 붙었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소풍 갔던 암산 보트장, 학교 앞을 흐르던 강과 철길, 40년 사이 큰 길이 몇 개나 생겨서 산천은 변했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목 뒤부터 뒤꿈치까지 더듬이를 세웠다.
뭐니 뭐니해도 촉촉하게 만드는 것의 최고봉은 맛난 걸 먹는 거다. 혜원은 배추로 전을 부쳐서 젓가락으로 찢어 먹는다. 내 친정엄마가 비 오는 날이면 해 주던 음식이다. 안동을 오래전에 떠난 나도 겨울이면 달큰한 배추전으로 속을 달랜다. 산수유로 눈을 적신 우리 일행은 안동 갈비 골목으로 달려갔다. 마블링이 선명한 고기를 굽노라면 시래기 된장국과 갈비찜이 서비스로 나온다. 된장국에서 냉이 향이 그윽하다. 서비스로 나온 음식이 이래도 되는 건가 싶다.
영화 속 엄마는 딸에게 고향을 만들어주었다. 도시에서 바싹 마른 몸과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 줄 고향을. 사계절을 의성 사곡면에서 보낸 혜원은 겉도 속도 촉촉해지자 다시 공부할 용기를 얻는다. 함께 놀러 간 경숙 언니는 오늘 산수유를 보아 촉촉해졌으니 다음 주는 아이들에게 더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고향은 봄이다. /김순희(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