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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軍의 명예

명예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만은 특별히 명예를 소중히 하는 집단을 손꼽으라 하면 군인 집단만 한 데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군인의 임무는 전시와 평시로 나눠 생각할 수 있다. 전시에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고, 평시에는 전쟁을 억제하고 전쟁에 대비하여 철저히 준비하는 것이다. 이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재산을 보호하는 군의 임무와 직결되는 역할이라 하겠다.그래서 보통 군인 정신에는 애국심, 충성심, 희생정신, 임전무퇴의 기상 등과 같은 온갖 성스럽고 거룩한 요소들이 많이 포함된다고 한다. 이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언제든지 목숨을 내던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군의 기본정신이다.목숨을 건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존엄한 명예를 지키는 것과 같다. 서구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의 출발은 귀족층의 희생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 로마시대 귀족층이 서민층보다 존경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솔선수범한 전쟁참여 정신에 있다.남보다 먼저 내 목숨을 내놓겠다는 프랑스 칼레시의 시민정신도 남을 위한 나의 희생에 있었고, 영국 이튼칼리지가 귀족학교지만 일반시민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학교가 솔선해 보인 희생정신 때문이다. 이튼칼리지의 학생들은 1, 2차 세계대전에 자발적 참여로 2천명이 넘는 이가 목숨을 잃었다.군은 명예를 잃으면 국가와 민족을 위해 내던질 목숨이 없는 것과 같다. 추미애 법무부장관 아들 특혜와 관련해 여당 정치인이 추 장관을 감싸기 위해 군의 기강을 무너뜨리는 경솔한 발언을 일삼아 걱정스럽다. 국가를 위해 정치적으로 목숨을 한번이라도 내던져 본적이 없는 정치인이 목숨과 같은 군의 명예를 짓밟을까 두렵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9-17

기로에 선 대한민국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문재인 정권이 지향하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는 과연 어떤 나라일까? 현 정부와 여권의 요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운동권’이었다가 전향한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그 답을 알 수 있다. 그 분들이 폭로하기 전에는‘민주화운동’으로 포장된 반체제 투쟁의 실상과 내막을 대다수 국민들은 모르고 있었다. 학생운동이든 노동운동이든 좌경이념으로 무장한 소위 ‘종북주사파’들이 주축이 되어 이끌었다는 것이 공통된 주장이었다.우리나라의 학생운동은 일제 식민지 시대의 항일운동과 브나로드운동(계몽운동)을 시작으로 광복 후에는 4·19혁명, 6·3항쟁, 부마항쟁 등 독재에 저항하는 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러다가 1980년대부터는 좌경이념이 학생운동의 중심축이 되면서 그 전 시기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상당히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념학습과 현장 활동을 통한 사회변혁을 기도하는 운동으로 변모했다. 노동계와 교육계, 종교계 등에 침투하여 대중적 기반과 영향력을 넓혀가다가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에는 정계에도 대거 진출을 했다.저들이 ‘촛불혁명’으로 일컫는 2016년 10월의 대규모 촛불시위를 계기로 정권을 장악한 좌파 운동권 세력은 마침내 그들이 꿈꾸던 세상을 실현할 호기를 잡게 되었다.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그들의 이념에 의거하면, 이승만 대통령이 건국하고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적 기반을 다진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다. 자유민주주의도 자본주의 시장경제도 그들의 이념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래서 애국가도 태극기도 못마땅하고 헌법 조문에서도 자유민주주의의 ‘자유’란 말을 빼려고 한다. 아무튼 그들이 만들고자 하는 나라는 지금까지의 대한민국과는 다른 체제의 나라임이 분명한 것 같다.그들을 지지하는 국민들 중에 아직도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사람들은 아마도 지금 도처에서 불거져 나오는 그들의 민낯이 적이 당혹스러울 것이다. 백보를 양보해서 사회주의 체제를 인정한다고 치더라도 그들이 말하는 식으로는 안 된다. 위선과 파렴치가 상식이 되고 프로파간다와 포퓰리즘이 기본 정책이 되는 나라는 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소련을 위시한 공산권의 몰락이 그랬고 베네수엘라 같은 좌파정권 국가가 그래서 패망의 길을 걷고 있다.대한민국은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전복하려는 기득권 세력에 동조할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올바른 선택을 하려면 우선 실상을 알아야 한다. ‘민주화’니 ‘진보’니 하는 가면 뒤에 숨겨진 민낯도 볼 줄 알아야 하고, ‘개혁’이란 말로 포장된 불순한 야욕과 음모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내막을 아는 사람들의 증언과 폭로에 귀를 기울이는 국민들이 많아야 하고, 분별력을 가진 식자층의 사람들도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 이미 좌경이념에 영혼을 판 자들과 권력에 빌붙어 곡학아세하는 비열한 기회주자들은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좌파이념에 물이 덜 든 중도층을 일깨우는 운동이 자유민주주의 진영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래야 희망이 있다.

2020-09-17

선심 정치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선심정치는 정치권의 단골 메뉴이다. 전 국민에게 통신비 2만원을 주자는 정치권의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인구 5천만이면 총 비용은 1조원이다.1조원을 이렇게 쓰는 게 최선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간다. 선심정치는 금년 봄 선거에서도 큰 이슈였다.당시 야당이 모든 대학생과 대학원생에게 1인당 100만원의 ‘특별재난장학금’을 주자고 제안했을 때 명분은 코로나19 위기로 국민 모두가 고통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생이라고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뜻은 좋아 보였다. 그러나 여당은 야당이 젊은 층의 지지를 받기 위한 선심정치를 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야당이 젊은 층 지지에 목말라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런 여당도 마찬가지였다. 당정이 긴급재난지원금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총선 전에 성사되어야 한다는 내부 전략을 만들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당초 재난지원금을 일부 저소득층 가구에 지급하겠다고 해놓고 여당이 전 국민 지급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은 선거를 앞둔 포퓰리즘이란 강한 비판을 받았었다. 결국, 여당이건 야당이건 재난지원금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겠다는 전략과 이를 통한 선심정치를 하겠다는 생각은 똑같다 할 것이다.전 국민에게 통신비 2만원 정책도 흐트러진 민심과 추락하는 여당 지지율을 생각한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 이 보다는 먼저 과연 그러한 정책이 다른 정책보다 우선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한다. 통신비 2만원이 개인에게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겠지만 1조원을 투입해야 할 현재 당면한 문제들이 너무 많다.필자는 30대 후반 포스텍 기숙사 사감으로 있던 시절 기숙사에서 학생이 큰 부상을 당한 일이 있어 들추어 업고 병원을 전전한 일이 있다. 결국 대구까지 가서 수술을 받았지만 당시 지역 간의 의료시설의 차이를 느꼈다.정년 퇴임 후 대구 현풍으로 오게 되었는데 대구까지가 가까운 거리는 아니기에 의료시설이 여전히 문제가 된다는 걸 느꼈다. 대구의 종합대 병원까지 가는 길은 결코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이제는 수원으로 와있는데 좀 더 편한 것을 느끼지만 여전히 서울의 대형병원을 선호하는 생각들을 가진 사람들도 많았다.오늘날 의료는 의사뿐만이 아니라 첨단 진료, 치료 시설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지역의 환자가 지역 중심도시로 그리고 다시 서울로 빠져나간다. 이제는 환자가 부족해서 지역 병원을 제대로 운영할 수가 없다는 불평도 나온다. 이러한 문제는 첨단 시설 투자가 대도시부터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던 데에서 비롯됐다.그렇다면 지금 1조원을 지역의 의료시설 강화에 투자하면 어떨까? 지역 의료시설도 좋아지고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의대정원 확대 등의 이슈를 둘러싼 갈등도 완화할 수 있지 않을까?의료시설의 확대와 강화는 의대정원 확대를 위한 전제조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20-09-17

의식보다 기질!

세월이 흘러갈수록 대전에 오가는 횟수가 빈번해진다.어머니, 아버지 만나 뵙고 점심이나 저녁 식사라도 같이 해보자는 것이다. 1, 2주일에 한 번 이렇게라도 하고 나면 그 사이에 장남 된 마음이 한결 안정되는 느낌이다.그런데 이렇게 자주 대전에 가는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사실, 대전 집에 들어서자마자 내 마음은 벌써 고등학교 동창생 병수나 또 승진 같은 친구들한테 가 있기 일쑤다.-논산에서 서대전역까지 얼마나 걸려? 오늘 한 번 대전 나들이 할 수 있어?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기 전에 나는 얼마 전에 논산으로 이사 간 승진을 호출한다. 오랜만에 한 번 대전 나들이를 해보라는 것이다. 혼자 살 집을 찾아 논산으로 내려간 지 하마 1년은 족히 넘은 것 같다.흔쾌히 동의해 오는 승진을 대전 옛날 중구청 거리 옆에 진로집으로 오라 하고 이번에는 친애하는 병수를 찾는다.-승진이도 온다구? 그려, 알았어.병수하고는 매일같이 전화통 붙들고 삼십 분씩 떠들어 대는 사이, 오늘 비도 오는데 승진까지 합류한 게 차라리 이색적이다.비 오는 진로집에 모여 앉은 세 사람, 둘은 아직까지 홀아비 신세, 오징어두부 두루치기에 보문산 막걸리 놓고 앉아 우리 셋만 있는 듯 떠들어댄다.승진한테 병수는 꽃씨를 좀 달라 했던 모양이다. 승진은 이 나라 산이란 산은 안 다녀본 데 없는데, 논산 집 마당에 채송화, 백일홍, 해바라기에 사루비아까지 심었는데, 깨며 상추는 또 얼마나 생명력이 드센지 뜯어도 뜯어도 끝없이 솟는단다. 홀어머니 모시고 혼자 사는 병수네 집도 마당 있는 집, 가시오가피 나무가 멋지게 자랐다. 뒷곁으로, 담벼락 밑으로 밭을 일궜는데, 뭐든 병수 손에 걸리면 제대로 안 자라는 것들이 없다.셋이 모여 떠들다 보니 화제가 어느새 정치 쪽으로 향하는데, 승진은 박 전 대통령을 어찌나 좋아 하는지 기가 막힐 지경이고, 병수는 또 현 대통령을 은근히 쎄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또 나대로 생각 없는 건 아니고.밖에서는 휴일의 비가 내리는데, 우리는 갑론을박을 하다 말고 막걸리를 부딪치며 서로 웃는다. 사실 우리 사이에서는 그 견해차이라는 것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다. 우리한테는 그렇게 해서 생기는 별다른 이해관계가 없으니 말이다.나이가 들면서 의식보다는 기질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것을 믿는다. 우리는 의식을 넘어 친구로 남을 수 있다.이런 날, 비가 내리니, 참 좋다. 이 비는 꼭 옛날 우리가 어렸을 때 맞으며 낄낄거리던 그 비인 것만 같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09-16

책장 정리 단상

책장 정리를 합니다. 될 수 있으면 많은 책을 지니지 않으려고 합니다. 주어진 책꽂이 안에서만 책이 놀게 하고 덤으로 쌓이지 않게 신경 씁니다. 손쉽게 구할 수 있다는 이유로 그간엔 인터넷 서점을 통해 책을 사서만 읽었습니다. 집안은 온통 책 세상 같았습니다. 덜어내는 연습을 하면서 책 사는 습관도 줄었습니다. 불어난 신간은 중고서점에 팔거나 이웃에 나눔을 합니다. 그래도 책꽂이는 떠나보내기 힘든 책들로 무질서하기만 합니다.오래된 책 한 권에 눈길이 갑니다. ‘도덕교육의 파시즘’. 교육방송에서 그 책에 대해 토론한 걸 시청한 적이 있었지요. 패널이자 저자인 김상봉 교수의 애정 어린 비판. 그는 한국 사회의 일보전진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 중의 하나로 도덕교육을 꼽았습니다. 우리의 중고교 도덕 교과서는 낡은 노예적 가치관을 주입하는 선봉장 역할을 한다고 했습니다. 참된 자유인을 양성하는 게 아니라, 위계적 노예를 학습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개인의 자발성을 묶어놓은 채, 획일화된 질서의 옷자락을 부여잡으려 하는 면이 없진 않았지요. 테크놀러지의 첨단을 향유하는 21세기 현대인을 교육하는 방법으론 어울리지 않습니다.저자에 의하면 우리의 예절교육은 약자가 강자에게 바치는 일방적인 헌사를 의미한답니다. 그러고 보니 예절에 관한한 강자의 그 어떤 역할도 약자만큼 구체성과 강제성을 띠지는 않습니다. 공자가 강조하는 예의 본질이 인간 심성의 참된 교류에 있지 결코 위계의 선후를 따지는 치졸함에 있지는 않을 터인데 말입니다. 국가가 관장하는 이러한 지속적이고도 뭉근한 교육 덕(?)에 약자들은 근거 없는 주눅과 스트레스를 원치 않는 선물로 떠안았습니다. 유교문화와 일제 강점기도 모자라 독재정권을 거치면서 이러한 노예도덕은 더 깊은 뿌리를 내렸지요.우리 유가 사상의 최대 목표는 체제 유지였습니다. 그 정당성을 부여 받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덕목이 충효일 수밖에 없었지요. 자연스레 높은 자를 위한 헌사로써 예의와 도덕은 필요했습니다. 충효의 보조 항목으로서 이 두 덕목이 따라붙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구요. 원래 예절이란, 마음의 진정성이 형식으로 표현되는 것을 말하지 않았던가요. 갑의 위치라 해서 진정성과 형식에 예외가 있진 않을 테지요. ‘인사에 선후 없다’라는 말이 예절의 본류였을 터인데, 실제 상황에서는 그것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지요. 체제 유지 하에서는 낮은 자를 위한 배려로써의 예의와 도덕은 언제나 묻히기 일쑤였지요. 그리하여 예절은 그저 강자 앞에서 표하는 약자의 리액션에 머물고 말았습니다.김살로메 소설가예절에서만큼은 지금도 인간 동격 개념을 적용하기엔 무리인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체제 유지에 원활한 시민을 기르는 게 우리 도덕 교육의 가장 큰 목적이 되어버렸다고 김상봉 교수는 우려합니다. 자유와 개인적 가치는 국가와 위계질서 앞에서는 언제나 나쁜 것이 되거나 하위인 개념으로 간주됩니다. 이때 종속의 마땅한 액션으로 예의와 도덕이란 덕목을 활용하는 것이지요. 도덕 교육이야말로 권력자와 집단 -그것이 아무리 부당한 존재라 할지라도- 이 약자와 개인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정당성을 부여해 줬지요. 물론 무서운 것은, 약자이고 피해자였던 시민들이 집단이 될 때는 어느새 권력자의 위치로 가 있게 된다는 것이겠지만요.도덕 교과서의 이러한 파시즘적인 이데올로기는 여성을 보는 시각에서도 왜곡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가혹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한데도 가부장적인 질서에 익숙해진 우리 여성들 스스로 그 노예교육의 전면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자각조차 하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십여 년 전 딸이 중학생이었던 시절, 도덕 교과서 예절 편의 서술 방식이 떠오릅니다. 결혼 제도 하의 여성을 대하는 시각이 너무 전근대적으로 묘사된 것에 충격을 먹은 적이 있습니다. 기혼 여성이 시댁 식구들을 칭하는 모습을 예로 들까요. 아가씨, 도련님, 서방님 등과 같이 불러야 한다고 교과서에 명시 되어 있었습니다. 문득 아직도 그런가 싶어 도덕 선생님인 친구에게 물어 봤습니다. 다행히 호칭과 관련된 부분은 2015년 개정교육과정이 시작되면서 없어졌다고 합니다. 요즘은 양성 평등 부분을 강조하고, 가족 간의 질서보다는 갈등 해소에 초점을 두는 것으로 바뀌었다네요. 뒷북이지만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도덕 교과서가 점점 진화되고 있으니 ‘도덕교육의 파시즘’도 개정판이 나올 때가 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새 책이 나오면 주저 없이 달려가 앞줄 서는 독자가 되겠습니다. 물론 그 책은 중고책으로 팔리기보단 오래오래 책꽂이에 꽂힐 확률도 높겠지요.

2020-09-16

품앗이

정미영수필가논두렁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높고 푸르다. 새떼들이 구름 사이로 미끌어지듯 날아가고, 건너편 대숲은 바람 따라 초록 물결을 일으킨다. 논 가장자리에는 백로가 부리에 미꾸라지를 문 채 한가로이 걸음을 옮기고 있다. 농촌이 빚어내는 정겨운 풍경을 정독하며 리듬감 있게 걷는 내 마음이 흐뭇하게 젖어든다.큰형님이 조카 결혼식을 앞두고 기별을 했다. 잔칫집에 미리 와서 음식 장만을 돕고, 하룻밤 자며 동서지간에 정도 나누자고 했다. 흔쾌히 가겠다고 했지만, 뒤돌아서니 걱정이 되었다. 동작이 굼뜨고 일머리를 모르는 내가 큰일 치르는데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짐이 되면 어쩌나 신경이 쓰였다.명절 때 큰집에 가면 차례 상에 음식 가짓수가 많다. 내가 시집와서 처음 추석을 맞이했을 때 제수거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차례 지내고 동네 분들과 경로당에서 음식을 나눠먹는 인심이 온전히 남아 있다고 했다. 이번에도 결혼식을 앞두고 다양한 음식을 장만하리라.햇살이 투명하게 일렁이는 고샅에 들어선다. 고양이가 사뿐 걸음으로 걸어 다니고 닭이 홰치는 소리도 들린다. 담장마다 능소화가 웃음 짓고 호박이 줄기에 의지해 졸고 있다. 여유로운 정경이다.그런데 큰집 가까이 다가가니 마음이 바빠진다. 고소한 냄새가 내 얼굴에 훅 끼쳐든 까닭이다. 새벽부터 서둘러 왔건만, 혼자서 음식 만들기를 시작하셨는가 싶어 조바심이 인다. 안마당에 들어서니 몇몇 아주머니가 전을 부친다. 인사를 하고 집안으로 들어서니, 그 곳에도 재빠른 손놀림으로 한쪽에서는 나물을 다듬고 다른 쪽에서는 생선을 손질한다. 그들 사이에서 형님을 찾아 인사드린다.“동서야, 멀리서 오느라 고생했데이.”형님 친구 분들이 이른 아침부터 찾아와 음식 만들기를 시작했단다. 내 집에서부터 음식 장만할 걱정을 잔뜩 이고 왔는데, 살며시 웃음이 난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한쪽으로 비켜나 심부름거리를 찾았으나 그것마저 여의치 않다. 한참을 기다려도 내 몫의 일은 나타나지 않는다. 형님네 마을에서는 품앗이가 남아 있어 보기 좋다.시골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주택이나 길이 여기저기 헐리고 새로 고쳐졌다. 젊은이들 또한 학교나 직장을 찾아 고향을 떠나는 등속이 늘었다. 농사나 관혼상제에서도 노동을 노동으로 갚는 대신 돈을 지불하는 곳이 많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이 마을에서는 도움이 필요하다 싶으면 스스럼없이 품앗이를 한다. 서로 형님 동생하며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도와준다.누구네 집에 경조사가 있거나 환자가 생기면 이웃사촌들이 더 잘 알아서 챙긴다. 옛정을 그대로 체득할 수 있는 품앗이 전통이 명맥을 이어가니 반갑다.한 편으로는 부럽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는 이웃에 무관심한 경우가 많아 서로 소원하다. 바쁘게 생활하다 보니, 마음에 여유가 없어 왕래할 틈이 보이지 않는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공지사항은 관리실에서 방송을 하거나, 게시판에 붙여놓는다. 이런 연유로 사람살이의 살가운 정을 품앗이에서 느낄 수 있어 고맙다.편의와 실리를 쫓아가는 세상이다. 나에게 손해가 되면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고, 이익이 되면 두 발자국 앞서려는 경향이 늘었다. 그러나 품앗이는 동네 대소사를 제 일처럼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이익을 바라거나 욕심을 부리면 불협화음만 이어질 뿐이다. 자칫 생산성은 줄어들고 이웃 간에 믿음마저 깨질 수 있는 것이 공동체에서 마음 맞추는 일이다. 오늘 형님네서 음식 준비에 손을 보탠 분들도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배추전이나 부추전을 서너 장씩 챙겨가는 것이 전부다.어우렁더우렁 사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그들의 땀 흘린 얼굴이 힘들기는 해도 편안해 보인다. 도린곁에서 살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면 이웃과 어깨를 겯고 곰살궂게 마음을 나누며 사는 것도 삶의 재미이리라. 정신적으로 충만해 보이는 품앗이꾼들 앞에서 내 가슴이 푸근해진다. 마음에 환한 등불 하나 내걸린다.

2020-09-16

지역화폐 논란

지역화폐는 특정 지역에서 자체 발행해 특정 지역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화폐로, 일명 ‘고향사랑 상품권’으로도 불린다. 형태에 따라 지류형(종이상품권)·모바일형(QR코드 결제 방식)·카드형(선불·충전형)으로 나뉜다.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외환위기 때 30여개의 지역화폐가 도입됐다. 지역화폐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보통 시·군별로 백화점, 대형마트, 기업형 슈퍼마켓(SSM)과 사행성 업소를 제외한 전통시장이나 영세상점 등으로 사용처가 제한된다. 올해는 서울·경기·세종 등 229개 지자체가 서울사랑상품권, 경기지역화폐, 인천e음, 여민전 등으로 연간 9조원 규모로 발행하고 있다. 소비자는 10% 할인된 금액으로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를 구입하고, 8%는 중앙정부 국고보조금으로, 나머지 2%는 지자체 예산으로 지원하고 있다.지역화폐의 유효성 논란은 최근 정부 산하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조세연)이 “지역화폐 발행으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는 관측되지 않았다”는 내용의 연구보고서로 촉발됐다. 연구진은 통계청 통계빅데이터센터(SBDC)를 통해 2010~2018년 3천200만개 전국 사업체의 전수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역내총생산(GRDP) 1% 규모로 지역화폐를 발행할 경우 동네마트·식료품점 매출만 기존 매출 대비 15% 증가했을 뿐 나머지 업종의 매출 증가는 0%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권유력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는 자신이 지역발전의 원동력이라고 도입해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지역화폐에 대한 평가절하라며 발끈했다. 이걸 계기로 지역화폐 정책이 힘겨운 서민의 삶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명명백백히 밝혀지길 기대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9-16

지금처럼 해서는 내일이 없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물고 뜯고 할퀴고 상처낸다. 싸우기를 좋아하는 백성인가. 대유행 감염병의 와중에도 다툼에 그침이 없다. 서로를 향한 삿대짓과 욕사발에 지치지도 않는 것일까. 상식과 이성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어른이든 아이든 너는 누구편이냐는 눈치부터 살핀다. 편에 따라 모든 게 다 틀리든가 무조건 다 맞는다. 절반이 절반을 포기하는 사회. 주장과 고집만 무성한 사이에 사람들 심성만 고약해져 간다. 어른이 사라졌을까. 모두 한 쪽으로만 치우쳤을까. 경제도 나아지려면 한참 멀었지만 살림이 나아진다고 주변이 고요해질 턱이 없어 보인다. 코로나19도 끝내 물러가겠지만 분위기가 흉흉하긴 마찬가지가 아닐까. 어디서부터 병들었을까. 어떻게 고쳐볼 수 있을까.의인은 없다. 세상에 한 사람도 없다. 이미 이천 년 전 성경이 고백한 바가 아닌가. 날마다 누군가를 콕 집어 나쁜 놈을 만들고 싶지만 돌아보면 나 자신도 자유롭지 못하다. 문제마다 상대방 탓을 해 보지만 같은 숙제로 속을 끓였던 건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편을 갈라 열심히 싸워보지만 홀로 반추하면 내 그림자도 만만치 않다. 상대방의 구석진 모습을 밝혀내고 싶었지만 내 속의 어두움이 내내 뒷꼭지를 어지럽힌다. 누구라 할 것 없이 오늘 모두의 모습이 아닌가. 이건 ‘신이 세상을 벌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벌하는’ 중이 아닐까. 모두의 문제를 상대의 문제로만 주장하는 못된 버릇을 이제는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나쁜 버릇은 편을 가르지 않는다. 누구도 그 버릇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세상천지에 의인 열 명만 있어도 세상을 구해보겠다던 하나님의 음성이 신음처럼 들린다.나라가 조용해질 방법은 없는가. 국민이 편안해질 방법은 없는가. 오늘을 하염없이 탓하기보다 내일을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스웨덴의 10대소녀 그레타툰베리(Greta Thunberg)는 인류가 초래한 기후변화가 내일을 살아야 하는 미래세대에게 끼칠 악영향을 짚어내며 오늘 기성정치인들의 나태함과 안일함을 꼬집고 있다. 눈앞의 작은 이익에만 몰두하는 어른들의 게으름을 지적하였다. 내일을 생각하는 책임이 모두에게 있음도 짚어내었다. 한 사람도 예외가 될 수 없는 ‘지구일병구하기’를 진행 중이다. 어른보다 아이가 나아보인다. 세상을 구할 힌트는 오늘보다 내일에서 찾아야 한다. 편갈라 싸우는 오늘보다 힘모아 건져낼 내일이 참으로 무겁다.오늘의 다툼도 내일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당장의 이익에 집착하는 동안 내일을 향한 방법을 찾을 길이 없다. 속시원하게 한 방 먹이는 집요함으로는 세상이 한 발짝도 나아지지 않는다. 그 어떤 문제도 우리 모두의 문제다. 남의 편만 틀린 세상은 어디에도 없다. 나만 맞는 일거리도 천지에 없다. 조금씩 더 겸허해지고 조금씩 더 내려놓는 용기가 필요하다. 어려울 때마다 끝내 구해내었던 보통사람들의 국난극복유전자에 다시 기대를 건다. 이대로는 안 된다. 지금처럼 해서 내일을 구할 방법은 없다. 우리의 내일은 모두에게 달렸다. 한 사람도 예외는 없다.

2020-09-16

누가 변화를 두려워하랴?!

김규종 경북대 교수언젠가 솔깃한 말을 듣고 실천에 옮긴 적 있다. 바라는 소원이 있으면, 마음속에 가두지 말고 날마다 글로 쓰라는 것이다. 간절한 소원을 위해 뛰어내리는 ‘와호장룡’과 달리. 혼잣말로 소원하는 것보다 소원을 글로 쓰면 손과 눈과 마음이 함께 움직여서 바라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소원을 쓰려고 만년필도 사고, 공책도 준비했다. 그날부터 최소 3년 동안 날마다 소원을 썼다. 드물게나마 잊어버린 날이 있지만, 꾸준하고 진지하게 소원을 쓰고 또 썼다.소원은 소박한 것이었다.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문필가!’ 고작 12글자로 이루어진 소원을 가졌던 날들을 돌이켜본다. 20대 청춘의 나는,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와 너와 내가 부둥켜안을 때….”로 시작하는 노래를 즐겨 부르곤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다시 거침없이 흘러도 검은 머리에 백발 돋아나도 사람 사는 세상은 오지 않았다. 그저 돈 많은 사람 숫자만 늘었을 뿐.그러던 어느 날, 소원 쓰기를 그만두었다. 그것은 도달할 수 없이 아스라한 저 너머의 신기루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려면 세상이 변해야 한다. 그런 세상은 어느 한두 사람의 노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왜냐면 변화가 어렵거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치가들은 언제나 변화와 개혁을 말한다. 하지만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진 적은 없다.변화를 말하는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이율배반이다. 나이 먹으면서 깨닫게 된 대목이다. 세상을 향한 손가락질과 비난의 눈길과 매서운 말길을 거두어야 한다는 것! 이토록 자명하고 단순한 이치를 깨우치지 못하고 세상을 원망하고 사람을 한탄하고 시대를 나무랐던 자신에게 되묻는다. “너는 변하고 있는가?!” 고개를 흔들면서 자탄(自嘆)한다.자신의 정의를 의심하지 않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자신의 정당성을 믿는 사람은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거처(居處)하는 세상이 불편하지 않은 사람은 돌처럼 굳건하다. 지금과 여기에 만족하는 사람은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항상성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가진 것, 지킬 것, 누릴 것 많은 사람은 변화를 싫어한다. 그래서 보수와 수구(守舊)는 변화와 거리를 둔다. 변화는 진보와 혁명의 편에 선 자의 전유물이다.세상과 다중(多衆)에게 향했던 손가락으로 내 가슴과 머리를 가리키면서 중얼거린다. ‘너는 결코 세상을 바꿀 수 없어!’ 이유는 너무 자명하다. 나는 하나의 타자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고유한 사고방식과 습관과 가치관, 역사의식과 행동방식이 있다. 그것은 석영이나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하게 흉중에 자리한다.어떻게 바꾸겠는가?! 그것을 바꾼다 해서 전혀 다른 꿈같은 세상이 열리기라도 한단 말인가?!세상을 바꾸려 했던 시절을 보내니 남은 명제는 단출하다. “그래도 나는 변할 것이다!” 변화를 향한 더운 열망이 오늘도 나를 재촉한다. 벌개미취가 봄처럼 환한 아침나절 지나간다!

2020-09-16

교육 싱크홀? 온라인 수업

이주형산자연중학교 교감“선생님은 시간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학생이 교무실로 오더니 다짜고짜 물었다. 당황스러웠지만, 흥미로웠다. 학교가 질문 사각지대가 되면서부터 필자 질문도 말라버렸기 때문에 질문을 받는다는 것은 즐겁다. 학생 말이다.“‘시간을 파는 상점’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거기에 나오는 내용 중에 시간은 금이다는 말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좋은 말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그 말이 때론 사람들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했어요.”학생들과 시간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했다. 학생들은 물리적 시간, 심리적 시간 등과 같은 시간의 종류에 대해 흥미로워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마무리했다.“아무리 생각해도 시간을 꼭 금처럼만 사용하라는 것은 어른들의 일방적인 강요 같아요. 시간을 금처럼 사용하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다르게 사용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학생들의 말이 결코 틀린 말이 아니기에 필자는 학생들을 응원했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기성세대와는 다른 학생들만의 시간 사용법이 있다는 것을 필자는 확신한다. 그리고 그 방법을 필자는 정말 배우고 싶다. 학생들은 환한 웃음을 남기고 총총걸음으로 교실로 향했다.학생들이 나가고 필자는 시간에 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 딸아이 말이 생각났다. 올해 중학교 1학년인 아이는 중학교 입학 전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중학교 입학 후 학교생활에 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지금은 오로지 온라인 수업의 과제 이야기뿐이다.“아빠, 우리 3주 동안 또 학교 안 간다. 이제는 학교 가는 게 이상해. 과제나 해야겠다.”온라인 수업은 학교의 많은 질서를 무너뜨렸다. 물론 코로나19 예방이라는 국가 방역 차원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는 하지만 그 방법은 분명 크게 잘 못 되었다. 오류의 시작은 교육부가 콘텐츠 활용 중심 수업, 과제 수행 중심 수업을 무리하게 온라인 수업 유형으로 제시하면서부터다. 이 두 유형은 결코 학교 수업이 아니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교육 관료들은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였다. 그 결과 전국의 95%가 넘는 교사들이 쌍방향 수업을 포기했다.그런데 그 포기가 학생과 수업 포기라는 것을 교육부는 알까! 학교와 교사가 포기하지 않아도 학생과 학부모가 학교 교육을 포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 어느 뉴스 제목이다.“학습지 교사도 이렇겐 안 해, 학부모들 원격 수업이 아니라 방치”지금의 원격 수업은 공교육 붕괴 주범이다. 말도 안 되는 원격 수업으로 학생들은 학교 수업 시간에 대한 감을 잊었다. 교사는 설명 대신 벌점으로 엄포를 놓기 바쁘다. 온라인 수업이 만든 교육 싱크홀에 이 나라 교육이 침몰 중이다. 교육이 완파되기 전에 교사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실시간 쌍방향 수업 플랫폼을 교육부 차원에서 꼭 만들기를 제안한다. 교육부(청)에 묻는다, 당신이 학생이면 지금의 온라인 수업을 들을 것인지!

2020-09-16

우리 안의 인종차별

요즘 미국에서는 프로농구 리그인 NBA 플레이오프 경기가 한창이다. 그런데 경기에 출전해 저마다의 기량을 뽐내는 선수들의 유니폼 등판에 이름과 백넘버가 아닌 구호들이 적혀있는 것이 이색적이다. 적혀있는 글들은 ‘Black lives matter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 ‘Equality (평등)’, ‘Vote(투표하라)’등으로, 모두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구호들이다. 선수들 대다수가 흑인이거나 흑인 혼혈로 구성된 NBA 리그이기에 선수들이 직접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움직임의 발단은 올해 5월에 발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었다.편의점에서 20달러짜리 위조지폐를 사용했다는 혐의로 백인 경찰관은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를 체포하려 하였다. 플로이드가 저항을 하자 경찰관은 그를 바닥에 눕히고 무릎으로 목을 짓눌렀다. 목이 졸린 플로이드는 숨을 쉴 수 없다며 고통을 호소했지만 경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결국 그는 현장에서 의식을 잃었고 그날 밤 병원에서 사망했다. 경찰의 과잉진압 과정은 현장을 지나가던 행인에 의해 고스란히 촬영되었고 플로이드가 격렬한 저항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영상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일파만파 퍼져나갔다.이러한 사건은 미국 전역에서 불평등을 경험하고 있었던 흑인들의 전국적 시위의 방아쇠가 되었다. 시위에 참여한 이들은 해당 경찰관에 대한 처벌 뿐 만 아니라 미국 사회에 만연해 있던 흑인에 대한 차별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것을 요구하였다. NBA선수들은 이러한 시위에 대한 지지의 의미로 시위대의 구호를 유니폼에 새긴 것이다.이런 인종차별 이슈는 단일민족국가라는 환상에 젖어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지곤 한다. 우리나라가 정말 단일민족국가인가는 논의가 필요한 이야기이지만 그렇다 치고, 그로 인해 인종차별 이슈가 적을 수밖에 없는 국가이기에 그것에 대한 심각성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이러한 무지로 인해 최근 필리핀 누리꾼 사이에서는 #CancelKorea(한국을 취소하라) 라는 해시태그를 다는 움직임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한국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기 위한 구호인데, 이것은 필리핀계 미국인 스타인 벨라 포치가 올린 한 영상이 발단이 되었다. 그가 공유한 영상 속 그의 팔에는 욱일기를 연상하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한국인들은 댓글을 통해 그 문양이 역사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이에 포치는 한국인들을 향해 사과문을 올렸다.사과문의 내용은 “한국인들에게 6개월전에 새긴 붉은 태양과 16개의 광선 문신에 대해 사과한다. 그때는 내가 역사에 대해 무지했다. 그러나 내가 깨닫자마자 즉시 나는 이것을 가렸고, 이것을 제거하기 위한 일정을 잡았다. 나의 행동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며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내용이었다.그런데 이러한 충분한 사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누리꾼들은 해서는 안 될 이야기를 쏟아내고 말았다.포치의 출신 국가인 필리핀에 대해 “못 배워먹고 키 작은 사람들”, “가난한 나라”, “못생긴 민족”이라는 식의 인종차별적 발언을 쏟아내고 만 것이다.이에 항의하기 위해 필리핀 누리꾼들이 #CancelKorea(한국을 취소하라) #ApologizeToFilipinos(필리핀 사람들에게 사과하라) #Apologizekorea(한국은 사과하라)와 같은 해시태그를 달고 있는 것이다.포치 역시 “나를 공격하는 것은 괜찮지만 필리핀에 대한 공격과 비난은 참을 수 없다”며 항의의 뜻을 내비쳤다. 이에 뒤늦게 일부 네티즌들이 #SorryToFilipinos(필리핀 분들에게 사과한다)라는 해시태그를 달며 수습을 하고 있지만 한국인들은 이미 국제사회에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내고 말았다.인종차별적인 시각은 앞으로 더 큰 문제들을 야기할 수 있다. 대한민국 사회는 더 이상 ‘한민족’이라 불리는 단일민족만이 존재하는 사회가 아니다. 이미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과 이주결혼여성들이 우리 곁에서 생계를 꾸리며 살아가고 있다.다문화 가정의 아이의 이야기를 다룬 ‘완득이’라는 소설이 나온 것이 벌써 12년 전이다. 수많은 완득이들이 이미 대한민국의 사회구성원이 되어 우리 주변에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인종차별적 시각을 거두지 않는다면 언젠가 대한민국에서도 인종차별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미국과 마찬가지로 대규모 행동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우리 안의 인종차별의 씨앗은 아주 사소한 태도로부터 싹트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다른 국가 출신의 사람이나 다른 인종의 사람을 만났을 때 개인으로서의 그 사람보다 그의 국가와 인종에 먼저 집중하는 습관이다.학부시절 교양수업을 같이 듣던 한 친구가 내게 물었다. “저한테 궁금한 게 중국 얘기 밖에 없어요?” 그는 중국에서 온 유학생이었다. 나는 술자리에서 한참동안 그와 대화를 나눴는데, 대화의 대부분이 “중국은 어때?” “중국 사람들도 그래?”같은 식이었다.그는 내게 고민을 토로했다. 사실 그는 중국인이기 이전에 스물한 살, 내 또래의 여자애였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연애나 진로에 대한 고민들을 가지고 있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그런 고민들을 나누며 다양한 이야기들을 하는데, 사람들이 자신에게만은 오로지 중국 이야기만 묻는 것이 불만이라고 했다. 자기는 중국 국가대표로 여기에 온 것이 아니고, 그냥 나와 같은 학교 학생일 뿐이라고.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이 붉어졌다. 그때 느꼈던 그 부끄러움은 외국에서 온 친구들을 대할 때 나의 태도의 기준점이 되었다.지금 내게는 두 명의 절친한 외국인 친구가 있다. 한 명은 우크라이나에서 왔고, 한 명은 영국 맨체스터에서 왔다. 그 둘 모두 내게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우크라이나에서 온 친구는 그놈의 ‘김태희가 밭 가는 나라’라거나 ‘장모님의 나라’와 같은 이야기를(이 얼마나 부끄러운 차별 발언인가), 영국에서 온 친구는 ‘두 유 노우 박지성?’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다는 것이었다.그들은 나와 친해질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내가 그들의 나라에 대해 묻기보다 그들 자신을 궁금해 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다가왔다는 이야기를 한다. 내게 그들은 ‘어디서 온 누구’가 아니고, 그저 ‘내 친구’일 뿐이다. 외국인 친구와 마음 터놓고 지내는 비결은 다름 아닌 그들이 외국인임을 잊는 것이다. 그들과 나의 피부색이나, 성장 배경 같은 차이에 집중하기 보다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 느끼는 동질감에 집중하는 것이다. 차별은 차이에 집중하는 태도로부터 출발한다. 차이에 집중하지 않으면 차별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우리가 받아온 차별을 생각해보자. 일제강점기 내내 ‘조센징’이라는 이유로 억압받고, 아직도 못 배워 먹은 일부 서양인들은 우리를 향해 눈을 양쪽으로 찢는 액션을 보이며 조롱한다.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느낀다면 우리부터 우리와 다른 피부색의 사람들, 우리와 이 넓은 지구를 나눠 쓰고 있는 이들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을 거두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 글을 통해 한국전쟁 당시 우리와 함께 싸워준 국가 필리핀 국민들에게 #SorryToFilipinos라는 해시태그를 통해 사과의 마음을 전한다.강백수싱어송라이터·시인강백수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2020-09-15

형산강 하류에서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태풍으로 큰물이 지고 난 형산강 하류를 찾았다. 둔치나 다리 주위 곳곳에는 온갖 쓰레기며 쓸려온 풀과 나뭇가지더미가 잔뜩 쌓여져 있었지만, 하늘엔 언제 그랬냐는 듯 간간이 불어오는 산들바람 결에 조각구름만 한가로이 떠다닐 뿐이다. 여름과 가을의 경계에서 한, 두 차례의 태풍이 일진광풍처럼 휘몰아쳤으니, 온 나라가 바싹 긴장과 우려, 안도의 시간을 보냈으리라 여겨진다.유난히 자연재난이 심했던 지난 여름날, 장마와 폭염, 연이은 태풍 등으로 막대한 피해와 손실을 가져왔다. 예기치 못한 기상이변의 정도가 컷을 테지만, 무방비와 난개발, 상황 오판에 따른 인재(人災)도 상당 부분 기인했음을 누구도 부인하진 못하리라. 해마다 되풀이되는 풍수해에 철저한 대비와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긴 하지만, 보다 근원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우지 않고서는 공염불에 불과할지도 모를 일이다.형산강 하류지역은 많은 것들을 품고 있다. 멈춘 듯 흐르는 물결 따라 다수의 동, 생물과 90여종의 조류 등의 생태자원이 있고 둔치에는 갈대나 억새 등의 갖가지 식물과 수목이 자라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산업화의 산실이 우뚝하게 서 있는 가운데 산책이나 해양레저로 사람들을 끌어안으며 너른 강폭만큼 친숙함을 더해가고 있다. 특히 경주를 거쳐 포항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와 문화를 품고 관광, 산업 등 다양한 자원을 활용해서 지역 상생발전의 성장동력으로 추진 중인 ‘형산강 프로젝트’는, 다소 난관도 있지만 환경복원과 도시재생을 통해 시민들의 여망를 담은 친수 여가 문화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해 5년째 공사를 벌이고 있다.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했던가. 시민들의 쉼과 생태체험 교육장인 형산강전망대, 수상레저타운 물빛마루, 수변 테마꽃밭 형산강장미원, 강둑으로 조성된 상생로드 자전거길과 둔치의 황토길, 에코생태 탐방로, 신부조장터 보부상길 등 시민들이 즐겨 찾고 이용하며 긍정적이고 공감하는 부분도 많지만, 지난 달 초 우여곡절 끝에 개장한 ‘형산강 야외물놀이장’은 장마와 태풍으로 벌써 두번씩이나 물에 잠겨 그야말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애물단지로 전락해버렸다.형산강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60억원을 들여 조성한 야외물놀이장의 침수는 이미 예상됐었다. 직접 가서 보니 침수로 인해 5개의 대형풀장과 부대시설 주위엔 많은 양의 토사와 쓰레기더미가 쌓여 물놀이장의 형태마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15년여 형산강변에 살아본 필자로서는 홍수가 나면 침수피해에 시달려 2006년 오천으로 이전하기 전의 포항운전면허시험장 그 자리에 하필이면 왜 물놀이장이 들어섰을까 반문해본다. 타지역의 운영사례를 접목했다 하지만, 과연 누구와 무엇을 위한 행정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근시안적인 정책과 지엽적인 입안으로 인해 애꿎은 시민의 혈세만 낭비하는 꼴이 돼버리는 건 아닌지 씁쓸하게 여겨짐은 나만의 기우일까. 그래도 한창 공사 중인 형산강 상생인도교나 신부조장터공원, 뱃길복원사업 등을 보다 신중하고 면밀하게 검토, 보완하여 수변 친수 위락시설 이용객들의 몸과 마음이 치유되고 시민들이 행복한 도시를 만들어갔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2020-09-15

트럼프의 ‘자아도취형’ 정치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밥 우드워드의 저서 ‘분노(Rage)’가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워터게이트 사건의 폭로로 일약 유명해졌으며 현 워싱턴 포스트 부편집인이다. 그는 언론의 노벨상격인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다. 그가 트럼프와의 인터뷰를 통해 발간할 이 책은 대통령 트럼프의 내면을 볼 수 있어 더욱 흥미를 끈다. 트럼프는 왜 이 유명 언론인과 18회나 만나 자신의 입장을 그대로 표출했을까. 11월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발간된 이 책은 어떤 영향을 미칠까.이 책의 내용 중 우선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코로나 사태에 대한 트럼프의 이중적 모습이다. 코로나 발단 초기 금년 1월 말과 2월 초 트럼프는 코로나의 심각성을 인식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밥 우드워드는 트럼프의 ‘코로나는 독감의 5배나 위험하여 치명적’이라는 발언을 그대로 소개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골프를 치고 마스크까지 착용하지 않았으며 3월 17일 ‘코로나는 별것이 아니다’고 폄하하였다. 이는 트럼프의 코로나 위험성에 대한 오판일까 아니면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한 계산된 언행일까. 결국 미국의 코로나 확진자는 663만 명을 넘었고 사망자가 19만7천명에 이르렀다.또한 김정은의 친서 27통도 이 책을 통해 공개되었다. 밥 우드워드는 친서의 내용을 녹취하여 비공개된 친서까지 공개해 버렸다. 김정은의 편지에는 트럼프에게 ‘각하’(your excellency)라는 최 존칭어를 사용하고, ‘존경심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아첨하고 있다.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빈손으로 돌아간 김정은은 트럼프와의 만남이 ‘영광의 순간’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정상 간의 친서가 양국의 합의 없이 그대로 노출되는 것은 외교 관례에 크게 어긋난다. 친서 폭로는 트럼프의 자기 과시욕의 발로이겠지만, 김정은의 자존심은 여지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트럼프 대통령은 대담에서 자신이 ‘위대한 대통령’으로 각인되기를 희망하였다. 트럼프도 조지 워싱턴, 토마스 제퍼슨, 루즈벨트, 링컨처럼 러치모어산 화강암 20m 크기의 큰 바위 얼굴로 기억되길 바랐다. 4명의 대통령은 모두 미국인들의 인권과 자유를 위해 가장 헌신한 대통령이다. 트럼프는 인종 차별, 이란과의 핵 협정 파기, 해외 미군 주둔 비의 턱없는 인상 등 패권주의적 정책을 구사하였다. 그의 부동산 흥정하듯 후려치고 합의하는 협상정책은 앞의 4명의 대통령상과는 부합되지 않는다. 이 욕구 역시 트럼프 특유의 자기 과시용이며 과대 망상적인 발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이 책에는 트럼프가 워터게이트 사건의 닉슨 대통령을 자신의 롤 모델로 삼는다는 주장도 있다. 닉슨은 미중 관계를 전격 개선하여 국교를 수립하였다. 그는 루터 킹 목사 암살 상황에서 미국 백인 중산층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된 닉슨을 벤치마킹하려는 것이다. 미국의 국내외적 위기를 미국 우선주의로 극복하려는 그의 정치적 야망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코로나와 미국의 경제적 위기 앞에서 또 다시 백인 중산층의 지지방책을 구사할 것이다. 정치지도자로서 트럼프의 신뢰 위기를 미국 유권자들은 어떻게 판단할까.

2020-09-15

예, 저는 개독교인입니다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쫓아오든 햇빛인데 / 지금 敎會堂 꼭대기 / 十字架에 걸리였습니다.”윤동주가 원고지에 쓴 그대로 ‘십자가’ 한 소절을 옮겨봅니다. 오늘은 맞춤법을 따르기보다 시인의 마음을 좇아, 참회의 그 심정으로 십자가를 바라보며 노래합니다.예, 저는 개독교인입니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기독교인을 경멸하며 비하해 부르는 그 ‘개독교인’ 맞습니다. 열정에 가득찬 누군가에 이끌려 교인이 된 게 아닙니다. 제 의지로 교회를 찾아가 교인이 된 것도 아닙니다. 태어날 때부터 개독교인, 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해 ‘못해신앙인’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모태신앙인입니다. 감성적이기도 하지만 나름 논리와 합리성을 따지는 저는 부모님으로부터의 신앙 유전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은 개독교인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모태신앙을 감사하며 이때껏 살아왔습니다. 비기독교인들이 장로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사람을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호감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기독교 친화적인 시절이 있었습니다. 권사님이라고 하면 왠지 믿음이 가고 어머님같고 친할머니같은 포근한 느낌을 보통 사람들이 가졌던 적도 있었습니다.구한말 백척간두의 위기 속에서 미몽에 갇혀있던 우리 민족을 깨우쳐 근대화를 이루게 하고, 일제하 독립운동에 주요한 역할을 한 것이 기독교였습니다. 독수리 날갯짓과 같은 믿음으로 ‘약한 자 힘주시고, 강한 자 바르게, 추한 자 정케함이 주님의 뜻’이라고 외치며 “해 아래 압박 있는 곳 주 거기 계셔서 그 팔로 막아주시어 정의가 사나니”라는 찬송을 부르며 독재의 군화와 최루탄에 당당히 맞서 민주화를 이뤄낸 선배 기독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는 사랑과 정의의 빛이 점점 흐려지고 부정적 인식은 점점 커져 개독교라고 불리는 데까지 이르고 말았습니다. 극우 집단이 태극기부대라는 이름으로 소동을 부린다 해도 태극기를 부끄러워할 수는 없듯이, 일부 극우 기독교 세력의 과격 언사와 행동으로 인해 사람들이 기독교를 싸잡아 욕한다고 해도 저는 개독교인임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나 한편 저 또한 기독교를 ‘개독교’로 부르게 만든 원인 제공자임을 자백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기보다는 욕망을 좇고 욕정에 뒤엉켜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기독교가 개독교로 불리는 데에 가톨릭교인들은 불편해 하기도 합니다. 가톨릭은 개신교에 비해 사회적 이미지가 좋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은 지금으로부터 30년전인 1990년 9월 말 ‘내탓이오’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한국 사회의 타락을 ‘나’부터 반성하며 일으킨 사회 개혁 운동입니다. ‘내탓이오’는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는 회개와 성찰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잘못까지도 끌어안는 사랑과 포용의 자세입니다. 이 자세를 배우려 합니다.저는 개독교인입니다. 가톨릭이 아닌 ‘개(신 기)독교인’입니다. 하여 이제 ‘다시 새로워’지겠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리는 날 새벽, 교회당으로 가겠습니다. 예배실 한 귀퉁이에 조용히 앉자 두 손을 모으고 머리 숙여 기도할 것입니다. 교회당 꼭대기가 아니라 제 마음 한가운데 십자가를 가만히 걸어두겠습니다.

2020-09-15

망국병

망국병이라 함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를 말한다. 그 고질병을 콕 꼬집어 말하라고 하면 “이거다” 하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나라를 망하게 하는 이유가 매우 다양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조선말 단재 신채호는 조선이 망한 이유로 유교문화를 손꼽았다. 그가 주장한 유교망국론에 대해 당시 많은 지식인이 동조했다. 유교문화에서 비롯된 사대주의 사상과 당파 싸움, 허례허식과 같은 잘못된 문화가 결국 조선을 멸망의 길로 이끌었다는 것이다.한나라가 융성하고 쇠락하는 것은 외적 요인보다 내적요인에 의한 것이 더 많다. 내적 요인이란 그 사회와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지도자나 국민을 말한다. 국민이 똑똑하거나 뛰어난 지도자가 나와 국가를 잘 경영한다면 나라가 망할 이유는 없다. 특히 과거처럼 전쟁과 무력으로 한 국가를 점령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간 것이다.인도의 간디는 나라가 망할 때 나타나는 일곱 가지 병폐를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부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교육 △도덕성 없는 상업 △인간성 없는 과학 △희생 없는 종교 등이다.틀릴 데가 없는 말이다. 사회정의는 반드시 원칙이 있어야 세워지고, 부를 축적하려면 땀과 노력이 필수여야 한다. 종교가 희생이 없다면 종교로서 의미를 상실한 거나 같다.정부의 2차 재난지원금이 국회 문턱을 넘기도 전에 여권 내부에서 내년초 3차 지원금 얘기가 흘리고 있다. 국민이 곤경에 빠졌다면 정부가 할 일은 마땅히 해야겠지만 나랏빚이 산더미인데 국민 세금을 선심 쓰듯 하겠다는 집권여당의 생각이 지극히 실망스럽다. 포퓰리즘으로 망한 나라는 얼마든지 있다. 포퓰리즘적 발생이 잦으면 그것도 망국병이 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9-15

이율배반적인 관료들

강희룡서예가전국시대 맹자는 유가학파의 분류상 사맹학파로 공자 문하의 적통을 대표하며, 철두철미하게 백성을 근본으로 생각했던 민본주의 사상가이다.전국7웅이 다투는 혼란의 와중에서도 꿋꿋하게 백성을 중심에 놓는 민본주의를 꿈꾸며 임금은 백성과 함께 즐겨야 한다며 민권(民權)을 더없이 높였고 민본사상을 최대로 고취시켰다. 반대로 패도정치는 악덕하므로 오래가지도 못하고 천하를 통일해도 참다운 패자(覇者)가 될 수 있는 길이 아니라고 지적했다.당시 맹자는 이상 사회를 꿈꾼 것이 아니라 그 실현 가능성에도 털끝만큼 의심하지 않았다. 부국강병의 패도주의가 오히려 비현실적인 뜬구름이라며 군주들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썼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맹자 이후 2천300여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그가 그토록 믿어 의심치 않았던 민본주의라는 이상사회는 실현된 적이 없다. 다만 현대사에서 일컫는 민주주의시대가 열린 것만 해도 인류 역사의 큰 성취로 보아 이를 위안으로 삼아야 할 형편이다. 맹자의 민본주의는 말 그대로 ‘백성을 뿌리’라고 생각하는 사상이다. 맹자가 생각한 백성은 보이지는 않지만 땅 위에 서 있는 큰 나무를 지탱해 주는 뿌리와 같은 존재였다. 비록 정치적인 힘은 없지만 백성이 없으면 국가의 존립 자체가 불가능하다. 나무의 뿌리가 조금이라도 상하면 나무 전체의 생명이 위태롭기에 백성 역시 하나라도 소외되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였다.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라고 최고 법에 명시한 민주주의라는 우리사회를 맹자가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우리는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며 정치가는 국민의 머슴이나 심부름꾼이라고 부르짖는다. 맹자가 그토록 갈망하던 민주주의라는 이름만 듣고는 백성이 주인인 시대가 열렸다고 기뻐하다 그 내막을 들여다보고는 크게 실망하며 분명 적지 않게 의아해 할 것이다.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머슴이 되기 위해 막대한 돈을 쏟아 부으며 머슴살이 시켜달라고 애원하며, 자기들보다 몇 배 더 잘 살도록 돈을 걷어서까지 머슴 월급을 줄 주인이 과연 어디 있단 말인가!이러한 기이한 현상을 보고나면 맹자는 명(名)과 실(實)이 맞지 않으니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고치거나 이름에 맞는 참된 민주주의를 시행할 것을 요구할 것이다.현대 민주주의 체제에서 국민이 주인 노릇을 하는 경우는 선거 때마다 한 표를 던지는 일 밖에 없다. 제도의 한계나 권력추구자의 행태를 탓하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가 의(義)가 아닌 이(利)에 눈이 멀어 표밭의 노예가 되기를 자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보아야 할 것 같다. 국민들의 정치 선진의식이 깨어있어야 국민의 바람과는 동떨어진 의구심이 가는 검찰개혁추진과 이율배반적인 행태를 서슴지 않는 조국이나 추미애 같은 관료를 두 번 다시 보지 않을 것이다.국민이 권력추구자의 정치놀음에 놀아나지 않고 모두가 깨어서 냉철한 눈으로 권력자를 바라볼 때라야 비로소 주인은 국민이 되고 권력자들의 술수는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2020-09-14

무기력증에 빠진 당신에게

문가인참마음심리상담센터 원장심리상담도 유행이 있다. 분노조절장애(전문용어 간헐적 폭발성장애)가 유행이었던 적도 있고, 공황장애가 유행이었던 적도 있는 것 같다.요즘에는 무기력증을 호소하며 상담센터를 방문하는 이들이 많다. 아동, 청소년, 청년, 성인, 노인 가릴 것 없이 의욕이 없고, 만사가 귀찮고, 온종일 누워만 있고 싶다고 한다. 심지어 두통을 비롯해 가슴의 답답함까지 호소하기도 한다.외관적으로는 우울증과 비슷해 보이지만 자신, 환경, 미래에 대한 부정적 사고를 주로 호소하며 자살까지 생각하기도 하는 우울증과 무기력증은 다르다. 그들은 부정적 사고를 크게 호소하거나 죽고 싶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단지 몸과 마음에 활력이 없다고 한다.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리의 신체 건강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무기력증이란 바이러스로 마음 건강까지 위협하고 있다. 그들은 힘없는 목소리와 흐릿한 눈동자로 나에게 도움을 청한다. 생존의 욕구가 그들에게 나를 만나러 오게 한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오기도 하지만 가족 중의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나를 찾아온다.나는 고민한다. 그들을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 무기력증에 빠진 그들을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세계적인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은 1964년 개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탈출구가 없는 상자에 갇힌 개에게 지속해서 전기자극을 주었을 때 처음에는 개가 팔짝팔짝 뛰다가 나중에는 웅크린 자세로 주저앉는다는 그 실험에서 우울증의 학습된 무기력 이론이 생겼다.우리의 지금 상황이 그렇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처음 우리의 대기를 떠돌 때는 당황하고 놀라고 두려워하고 분노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장기화함으로써 무기력해져 버리는 것이다. 그중에 몇몇은 심각한 우울증 등의 심리적 문제로 발전하기도 할 것이다. 그중에 몇몇은 지혜로운 방법을 스스로 찾을 것이다.마틴 셀리그먼의 실험에서도 모든 개가 무기력하게 주저앉아 있지는 않았다고 한다. 자신이 탈출할 방법이 있다는 것을 이전에 학습한 개는 포기하지 않고 탈출할 방법을 찾아서 도망을 쳤다는 것이다. 학습된 무기력이 있다면 학습된 낙관주의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부정적인 마음도 학습될 수 있듯이, 긍정적인 마음도 학습될 수 있다는 것이다.학습된 낙관주의로 우리는 이 코로나 시국에서 탈출해나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방법의 하나로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을 때 외부의 전문가를 찾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그 외부의 전문가들을 너무 맹신하거나 쉽고 빠른 해결책을 찾으려 하지 말라.나는 무기력증을 호소하는 그들이 심리상담 및 최면을 통해 어느 정도 회복이 되어갈 무렵, 이렇게 말한다.“밀림의 성자 슈바이처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사람들은 자신이 의사인 줄 모르고 외부의 의사를 찾으러 돌아다닌다.”“신이 인간에게 자신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는 비밀의 열쇠를 어딘가에 숨겨두었다고 합니다.”“그 비밀의 열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십시오.”

2020-09-14

저 자비롭게 나투는 꽃처럼… 고령 반룡사(盤龍寺)

일주문은 길을 살짝 비켜나 높은 곳에 서 있다. 절을 드나드는 사람들과는 무관하게 먼 곳을 응시하는 눈빛에서 느껴지는 고독한 품격은 그 상징성만으로도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쉽게 일주문을 통과했지만 이내 단단한 철문이 더 이상의 진입을 허락하지 않는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장내 집회를 금한다는 하얀 안내문이 콜록거리며 반룡사를 보호한다. 경내는 공사 중인지 푸른 가림막이 쳐져 약간은 어수선하고, 인기척 없는 산중에 빗줄기만 뿌려댄다. 그냥 돌아서기에는 아쉬움이 남아 철문 아래로 몸을 굽혀 허락없이 경내로 들어선다.반룡사는 동화사의 말사로 신라 애장왕 3년(802년) 해인사와 함께 창건된 절로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가 중건하였고, 고려 공민왕 때 나옹선사가 다시 중건하였다. 대가야의 후손들이 신령스러운 용의 기운이 서려 있는 곳에 세웠다고 해서 반룡사라 이름 붙였다. 임진왜란의 병화로 소진된 것을 사명대사가 중건하였지만, 화재로 전소되어 1764년 영조 때 대웅전과 만세루를, 1930년경 다시 중수하였으며 1996년 대적광전을 건립하여 오늘에 이른다.허락 없이 들어서는 사찰이라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미숭산 품은 더 없이 아늑하고, 그 안에 자리 잡은 반룡사는 바깥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따뜻한 기운이 흐른다. 퇴락해 가는 천년고찰의 상실감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가지런히 쌓아올린 담들과 잘 가꾸어진 나무들이 절의 품격을 한껏 높여 주고 있다.커다란 굴참나무가 불이문을 대신하고 맞은편에는 잘 정돈된 승탑밭이 숙연하게 나를 돌아보게 한다. 크게 두 곳으로 나뉘어 배치된 당우들도 산만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대적광전 앞에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예불을 볼 수 있도록 검은 차양막이 쳐져 시대의 아픔을 호소하는데, 법당 뒤편 레이스빛 불두화들만 축제를 벌이듯 쓸쓸히도 탐스럽다.굵어지는 빗줄기를 피해 대적광전 법당문을 열고 들어선다. 손 세정제와 방명록이 사천왕처럼 나를 점검하는 이색적인 풍경, 이 모든 것들에 익숙해져 가고 있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이름을 적고 백팔배를 시작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법당은 언제나 위험과 불안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던 가장 안온한 공간이었다. 아무도 없는 법당에서 기도할 때면 저절로 감사함으로 행복해지곤 했다.그런데 오늘은 텅 빈 법당에서 올리는 백팔배가 부끄럽다. 잔인했던 태풍의 상흔과 도무지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사회는 의기소침한데, 나는 그들의 아픔을 방관하지는 않았는지, 위기 앞에서 나를 동여매느라 타인과 사회로부터 돌아앉아 있지는 않았는지 점검해 본다.궂은 날씨에도 몸은 가볍다. 가뿐히 백팔배를 끝내고 가부좌를 하고 비로자나불을 올려다본다. 만물의 창조주인 비로자나불의 미소에는 견고한 침묵만 흐를 뿐 말이 없다. 부드러움과 힘이 공존하는 목조비로자나삼존불상은 경북 유형문화재로 17세기를 대표하는 조각승 혜희(慧熙)의 작품이다. 여느 불상과는 다른 묵직함이 마음을 사로잡는다.영혼을 태워 불상을 탄생시켰을 조각승의 일생이 떠오른다. 오로지 한 곳을 향한 집념과 절절함으로 이루어졌을 모든 날들, 그의 삶에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 깊고 푸른 호수 하나 자리 잡고 있었으리라.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피그말리온의 조각상처럼 생명의 기운이 도는 부처님, 마침내 서로의 눈빛을 교환하는 순간의 감격과 희열을 무엇에 비하랴.조낭희수필가비로자나불의 엄숙하고도 잔잔한 미소에서 조각승의 얼굴이 보인다. 일상의 위기 앞에서 수많은 염원과 기도로 무릎을 꿇던 순간들도 있었으리. 생각지 않았던 역병과 수많은 자연재해들, 인류가 쌓아올린 질서는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 그럴수록 우리는 좀 더 겸허해지고 자숙의 시간을 가져야 하리라. 오래도록 비로자나부처님을 우러러 본다.부처님과 나 사이에 수많은 말씀들이 오고간다. 생명력이 느껴진다는 것은 세월과 정성이 빚어낸 아우라를 뜻한다. 예측조차 할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와 현실 앞에서 부처님은 꺼지지 않는 빛이 되어 존재하신다. 나의 백팔배는 좀 더 이웃의 아픔을 돌아볼 줄 아는 자비심으로 이어져야 함을 깨닫는다. 내 안에 맑은 기운이 솟아오른다. 법당을 나설 때는 바람은 멎고 빗줄기는 유순해졌다.물기를 머금은 절은 한층 깊고 힘이 넘친다. 대단한 풍광을 자랑하지도 않고, 크지도 작지도 않으며,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도 없다. 하지만 눈길 닿는 곳마다 안정적인 맥박이 함께 한다.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소나무와 배롱나무 들은 조화롭게 서로를 보듬고, 적당한 높이의 돌축대에서는 반듯함이 읽혀진다. 욕심 없이 스스로를 다스리는, 중용의 아름다움을 갖춘 선비와 대화를 나누듯 나는 경내를 거닌다.우측 산기슭에 자리 잡은 약사전과 지장전을 둘러보는데 여성 불자 두 분이 우산을 쓰고 절을 빠져나간다. 어디에 있었던 걸까? 이야기를 나누며 내려가는 발걸음에 부처님이 보인다. 이끼 낀 돌축대는 여전히 좌선 중이고, 넓은 파초잎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염불을 외며 그들을 배웅한다.나는 철 늦은 꽃들이 시간을 품은 채 나투시는 모습을 그윽히 바라보며 절을 나선다.

2020-09-14

쇠퇴하는 바로크, 떠오르는 신고전주의

1750년을 전후로 서양미술사에서는 신고전주의 양식이 나타나 프랑스 혁명기 동안 전유럽에서 유행했다. 신고전주의는 앞선 바로크와 로코코의 현학적인 기교에 대한 미학적 반발로 등장하면서 고대, 특히 고대 로마 미술에서와 같이 형식과 내용의 통일성과 명료성을 강조했다.신고전주의가 유럽 전역에 급속히 확산 되는데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수백 년 동안 화산재 속에 덮여 있던 고대도시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의 발굴이다. 고대의 정신을 이상적 가치로 여기던 유럽인들에게 고고학적 발굴로 옛 도시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으니 그 흥분이 어떠했을지 충분히 예측된다. 많은 유럽인들이 상상으로만 그리던 고대 도시의 모습을 직접 경험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향했고, 부유한 영국인들 사이에서는 유서 깊은 도시를 방문해 그곳의 문화와 역사를 현장에서 체험하고 익히는 이른바 그랜드 투어가 유행했다. 지적 호기심에 가득찬 여행객들 중에는 당연히 미술가들도 포함돼 있었다. 미술가들은 눈앞에 펼쳐진 고대의 생생한 모습을 그림으로 담아 판매했고, 타국에서 몰려온 여행자들은 현장의 감동을 오래도록 간직할 목적으로 그림을 구매해 집으로 돌아갔다. 이처럼 고대에 대한 지적 호기심의 고조가 신고전주의 양식이 급속히 전파되는데 적잖은 역할을 했다. 신고전주의는 고대를 모범으로 삼았지만 신고전주의가 발달한 것은 이탈리아가 아니라 프랑스였다. 유럽 다른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프랑스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국가주도의 체계적인 미술교육이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바로크적 미술 취향을 밀어내고 신고전주의가 싹을 틔운 것은 18세기 중반이다. 이 양식이 번창했던 것은 초기 혁명기에서부터 나폴레옹 시대까지 다다르는데, 1800년경 낭만주의 미술과 일정 기간 공존하다 서서히 사라졌다.신고전주의 미술을 이끌었던 가장 대표적인 미술가는 자끄-루이 다비드(1748∼1825)라는 인물이다. 위풍당당 말을 타고 ‘알프스를 넘어가는 나폴레옹’(1801년)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나,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성대히 거행된 ‘나폴레옹의 대관식’(1806년) 장면을 담은 그림이 바로 그의 대표작이다.다비드는 프랑스 왕립미술학교에서 그림을 배웠는데, 당시에는 귀족들의 유희와 쾌락이 강조된 장식성 짙은 로코코 양식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시대적 유행과는 달리 다비드는 신고전주의 양식을 발달시킨 선구자 조셉-마리 비엥(1716∼1809)에게서 그림을 배웠다. 1648년 루이 14세의 명으로 문을 연 프랑스 왕립미술학교는 해마다 각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들을 선발해 로마로 국비유학을 보내주는 ‘로마 대상’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자끄-루이 다비드는 1774년 명예로운 로마 대상을 수상해 1775년부터 1780년까지 로마에 머물며 이탈리아 거장들의 미술은 물론 고대에 대한 식견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로마로 유학을 떠난 다비드는 이제 막 발굴되기 시작해 지식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폼페이를 방문해 고대 유물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다. 폼페이에서의 경험은 훗날 다비드가 신고전주의 양식 최고의 대가로 성장하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로마 유학을 마치고 파리로 돌아온 다비드는 프랑스 왕실로부터 한 점의 그림을 주문 받았고, 그렇게 그려진 그림이 루브르가 소장하고 있는 다비드의 대표작 ‘호라티우스 형제들의 맹세’(1784년)이다. 고전미술을 모범으로 내용과 형식에서 명료함과 통일성을 완벽에 가깝게 구현한 다비드의 그림은 1785년 파리의 살롱전에 소개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한 점의 그림으로 자끄-루이 다비드는 단숨에 프랑스 미술계 일약 스타로 급부상했다. 고대로마의 역사가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그리고 리비우스의 ‘로마사’에 묘사된 한 장면을 그리고 있는 ‘호라티우스 형제들의 맹세’는 화가 다비드의 출세작임과 동시에 바로크가 막을 내리고 신고전주의라고 하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중요한 걸작이다. /미술사학자 김석모

2020-09-14

인연

초가을 햇살이 눈 안에 반짝인다. 녀석은 순하고 따뜻한 성격이다. 태풍 두 개가 지나갈 때도 잘 참고 작은 박스집을 의지 삼아 잘 견뎌 주었다. 내 곁에 온 두 살배기 라마스테다. 녀석의 고향은 스코틀랜드라 했던가. 이억만 리가 고향인데 어떻게 한국의 땅 경주까지 왔을까. 인연법이란 참 묘하다.나름대로 사랑을 독차지한 녀석에게 어느 날 이변이 생겼다. 인연이련가. 다른 절에서 키우던 집고양이 자몽이 4개월 정도에 인연 따라 여길 왔다. 여동생이 생긴 셈이다. 녀석의 눈치를 보니 처음에는 서로가 경계하는 듯하더니 어느새 어린 동생을 잘 돌봐주고 덕과 아량을 베풀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집을 뺏기기 시작했다. 사료도, 장난감도 빼앗기며 순번이 뒤바뀌는가 싶더니 두 녀석의 서열 싸움이 시작되었다.사람도 성격과 습관이 다르듯 두 녀석은 확연히 다른 성격이었다. 녀석이 모든 것을 내주는 부모 같은 성격이라면 다른 절에서 온 고양이는 질투심과 이기가 대단해 온순한 라마스테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암고양이였다. 어느 날부터 라마스테의 몸이 야위기 급속히 야위기 시작했다. 들어보니 바람개비처럼 휙 그냥 들린다.어느 날은 녀석이 이틀간 보이지 않았다.“라마스테 오빠 찾아 와. 네가 밥도 집도 다 빼앗아 배가 고파 나갔으니 빨리 찾아 와.” 그랬더니 눈 옆에 눈물을 흘린다. 아량 넓고 모든 걸 양보하던 라마스테가 없어진 것을 그때야 알아차린 듯 자몽의 눈가에 눈물 자국이 크게 나 있었다. 갑자기 짠해졌다. 동물도 저러한가. 며칠을 찾은 끝에 옆집 담장 사이에 빠져 못 나온 라마스테를 구조했다. 가끔 기도를 할라치면 사람처럼 손과 두 다리를 모으고 한 자리에 두 시간을 앉아 있는 라마스테를 본다. 아마도 전생에 많이 닦은 수행자의 모습이다. 나와 세 번째 가을을 맞이한 라마스테가 오래오래 인연이 되길 바란다. 라마스테(그 안의 불성이 거룩합니다)라는 의미처럼. /지원 스님(경주시 외동읍)

2020-09-14

빛과 기다림의 예술

우리는 지금 사진의 숲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진이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인터넷 광고는 물론이고 심지어 음식점의 맛있는 음식도 사진으로 찍어 SNS로 보내는 실정이다.그럼 어떤 사진이 잘 찍은 사진이고 못 찍은 사진인지 평가하기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 잘 찍은 좋은 사진일 수도 있고 잘못 찍은 나쁜 사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좋고 잘 찍은 사진은 아름답거나, 다른 사람에게 감명을 줄 수 있는 사진, 작가의 생각과 느낌을 잘 나타내야 좋은 사진이라 할 수 있다.사진은 빛과 기다림의 예술이라 한다.많은 사진인들이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밤잠을 설쳐가며 또 순간의 찰나를 포착하기 위해 먼 장거리도 마다 않고 출사를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큰 사진은 러시아의 이르크추크시 앙가라강변의 영하 30~40℃ 되는 새벽 풍경이다. 이 사진은 누가봐도 혹한의 추위를 느끼게 하는 사진이다.혹한을 느끼게 하는 건 주위에 눈, 상고대 뿐이 아니고 사진의 빛의 색 때문에 이다. 아마 이 사진을 해가 중천에 떴을 때 빛으로 찍었으면 이렇게 리얼하지 않았을 것이다.이 사진은 올해 경북사진대전에서 최고의 상인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작은 사진은 고니 사진이다. 고니는 몸통이 커서 한번 앉으면 잘 날지를 않는 습성을 가지고 있어 활공이나 착지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이 고니의 착지와 비상의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서 많은 기다림으로 순간을 포착한 작품이다.다른 사람에게 감동 여부를 평가 받는 방법으로는 공모전에 출품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권일영 사진작가

2020-09-14

초보 농사꾼 입문기

농사를 짓다 보면 생각만큼 쉽지 않아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직장 생활이 힘들거나 하던 일이 잘 안 풀리면 ‘고향에 내려가 농사나 짓지 뭐’하고 씹던 껌 버리듯 무심코 말을 내뱉지만 농사야말로 그 어떤 일보다 많이 생각 해보고 결정을 내려야 될 일이다.남편이 정년퇴직을 앞두고 퇴직 후에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무료한 시간을 보낼 겸 소일거리로 할 수 있는 조그만 농장을 하나 샀다. 뜻하지 않게 나를 동참시키는 바람에 얼떨결에 남편이랑 같이 농사를 짓게 되었다. 산비탈 들쑥날쑥한 땅을 포크레인으로 고르게 평탄 작업해 놓으니 땅 모양이 화장한 여인처럼 근사하게 바뀌었다. 초봄이라 잡풀 하나 없이 매끈한 것이 새로 집을 지어 이사한 것처럼 흥분되고 설레기까지 했다. 예쁘게 자랄 방울토마토, 오이, 가지, 고추 등을 상상해 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봄이 무르익자 온갖 잡풀들이 쑥쑥 올라왔다. 작물들을 심으려고 땅을 뒤집으니 곳곳에 돌이 박혀 있어 돌 고르는 작업을 먼저 해야 했다. 뒤집으면 다시 돌이 올라오고 치우고를 반복하며 우리 부부는 조금씩 지쳐갔다. 남편이 전화로 서울 사는 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토요일에 아침 일찍 내려왔다가 일요일 저녁에 올라가면 어떻겠냐고. 아이들은 왕복 열차표를 끊어 준다는 남편의 제안에 흔쾌히 수락했다.처음으로 해보는 어설픈 호미질에 외발 수레에 돌을 싣고 언덕을 오르는 작은 딸아이가 몇 번씩 고꾸라졌다. 남편은 눈짓으로 내게 못본척 하라고 신호를 보냈다. 옷이 흙으로 더럽히고 손바닥이 까여 상처가 났지만 일하고 먹는 삼겹살 맛이 최고라며 밥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그 후로 두 번 더 주말에 내려와 돌 고르는 작업을 도왔다. 직장에 다니는 아이들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두 명 왕복 열차 값이면 포크레인 하루 부르고도 남는다는 내 푸념에도 남편은 고집스럽게 제 주장대로 밀고 나갔다.눈앞에 웃자란 부추가 땅에 늘어져 있고, 바람이 불 때마다 들깨가 출렁이며 흔들린다. 알싸하고 고소한 향이 코끝을 스친다. 어설프지만 우리 부부가 힘들여 지어 놓은 농막 하우스에는 붉은 고추가 널려있다. 유례없이 긴 장마를 이겨 내고 올겨울 김장 양념으로 식탁에 오를 생각을 하니 여태껏 고생한 수고로움이 봄 눈 녹듯이 사라진다. 물건의 질이 좋으냐 나쁘냐를 떠나 내가 기른 농산물은 내게 최고의 가치다. 많은 시간과 노력, 땀방울과 한숨이 그 속에 배어있기 때문이다. 한 해의 결실이 손에 쥐어지면 힘들었던 과정은 깡그리 잊어 버리고 다시 내년 농사를 준비할 것이다. 농부가 아니라 진정한 농사꾼으로./김지연(경주시 마동)

2020-09-14

냉장고 털기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었다. 주방에서만 걸음이 늦었던 나는 대단한 결심을 하였다.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이 집을 떠나 있다는, 회식이 잦은 남편 때문에 한걸음 뒤에 두었던 냉장고를 털기로 했다.앞치마를 두르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채소 칸에 쟁여 놓은 한 보따리의 욕심이 가득하다. 싱싱하다 싶으면 사고 일대일 행사제품을 보면 왠지 남는 장사라 싶어서 산 것이다. 비닐에 싸인 봉지를 꺼내 식탁에 쌓았다. 쿰쿰한 냄새를 품은 봉지가 식탁에 가득하다. 한 봉지를 열어 보니 호박들이 뒤엉키고 짓물러 서로 붙어 있다. 겨우 하나를 살리고 나머지는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렸다. 물러진 대파와 양파, 버섯은 그들이 갉아 먹은 시간을 갈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채소 칸을 비워 햇볕에 말리니 내 마음에 윤이 났다. 하나 남은 호박을 씻어 놓으니 참 매끈하다. 물러진 양파는 한 귀퉁이를 잘라 투명한 통에 넣었다. 내일이면 이 녀석들은 된장찌개에 들어가 통렬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내친김에 냉동실도 열었다. 내용물을 알 수 없는 봉지가 칸칸이 가득하다. 말끔해진 식탁 위에 또다시 얼음덩이가 하나 둘 쌓였다. 봉지를 열어 보니 봄에 데쳐 물과 함께 넣었던 나물이, 지난겨울에 지인이 국산이라고 주었던 고사리가 보였다. 고등어와 오징어 가자미 등 생선이 꼬리를 물고 나왔다.정리정돈의 첫 단계는 버리기다. 그다음에는 공간의 재배치이다. 그래서 나는 냉장고 문을 다시 열었다. 비웠으니 한눈에 볼 수 있게 반찬들을 배치했다. 자주 사용하는 것들을 앞에 놓고 장류와 양념 통은 냉장고 안쪽에 두었다.냉장고 털기는 마음이 가벼워지는 나의 훈련이다. 정리정돈에 약한 내가 정기적으로 치러야 하는 의식 같은 것이다./이순혜(포항시 남구 효자풍림아이원)

2020-09-14

코로나 시대에 행복해지는 법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코로나가 발생한 지 8개월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끝나리라는 희망을 갖기가 어렵다. 전염력이 강한 데다 그야말로 글로벌하게 발생하고 있으니 피할 곳도 없다. 그러나 어려운 시기일수록 행복 찾기는 더욱 절실하다. 여기저기서 심리적 적응을 위해 자구책을 제시한다. 그러나 심리적 자구책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제한되어 있다.한국인의 행복지수와 관련해서 장기 연구가 있다고 한다.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 팀은 2017년부터 매일 한국인의 행복도를 설문지로 조사하고 있는데, 올해도 이 연구가 계속되어 1월부터 6월까지 60만 명이 참여했다. 올해는 특히 이 조사를 통해 코로나 확진자 수 변화와 설문참가자들의 행복도 사이에 상관관계를 성별, 나이, 경제 수준, 성격 등에 따라 어떻게 다른지 연구하여 그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세 가지였다. 하나는 여자들의 행복도가 언제나 남자보다 낮고, 두 번째는 경제 수준이 낮은 사람의 행복도가 경제 수준이 높은 사람보다 낮았다. 마지막으로 나이 든 사람들의 행복도가 젊은이보다 높았다.경제 수준이 낮은 사람, 여성의 행복도가 낮은 것은 충분히 예상할 만한 결과지만, 50대 이상의 행복도가 젊은이보다 높고 변화폭이 적다는 것은 의외의 결과다. 연구 팀이 분석하기로는, 나이가 들면 반응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나쁜 일에 대한 충격도 그만큼 적은 데다가 나이 든 사람들은 평소에도 거리를 두고 살았기 때문에 격리 상황에 대한 불편함이나 그에 따른 우울감이 적다고 한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참고할 것은 행복의 의미다. 행복에는 삶의 만족도, 긍정적 정서, 삶에 대한 의미 경험 등의 요소가 있는데, 코로나 시기에 만족도나 긍정 정서는 하락했지만, 삶에 대한 의미 경험은 상승했다고 한다. 부정적 감정을 많이 느끼는 중에도 삶에 대한 성찰력은 높아졌다는 것이다. 나이 든 사람들의 성찰력이 젊은이보다 높으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것이 나이 든 사람의 행복도가 높은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그러나 이런 결과가 있다고 해서 나이 든 사람의 행복 찾기 방식을 모델로 삼기는 어렵다. 이것은 나이듦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인 데다, 무엇보다 외부 변화에 반응력이 낮은 것을 긍정적인 신호라고 보기 어렵고, 평소 대인 관계에서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것은 그만큼 심리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이다.그러므로 행복지수를 높이려면 행복도가 낮은 사람들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자영업의 휴업이 잇따르고 고용도 불안정하니 한창 일할 젊은이들의 행복도가 낮고, 특히나 여성들은 언제나 낮다. 이 결과를 보면, 행복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물리적 조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사회적 거리 두기 기간에 의미를 부여하여 말을 줄이고 마음을 깨끗이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거나, 내 방도 여행하고 몸과 마음을 살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만, 모두가 그런 방식으로 행복을 찾을 상황에 있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정책 입안자들의 현명한 대처가 더욱 필요한 이유다.

2020-09-14

‘단지 셰어링’서비스

세대별로 갑자기 필요한 물품이나 부탁할 일이 있을 때 서로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마을공동체 문화를 되살리는‘단지셰어링’서비스가 새롭게 소개돼 관심을 끌고있다.예를 들면 컴퓨터가 갑자기 말썽을 일으켜 쓸 수 없게 됐을 때 “노트북 한나절만 빌려주실 분 찾습니다”라고 올리면, 주민 가운데 그날 하루 컴퓨터 쓸 일이 없는 사람이 “제가 빌려드릴게요”라고 댓글로 응답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급하게 외출해야 할 일이 생겨 아이를 잠깐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거나 집들이를 해야 하는데 큰 상이나 그릇이 필요한 경우에도 이런 앱을 이용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골프 강사나 아이 미술·음악·운동 선생님 등을 찾거나, 유모차·장난감과 어린이용 자전거 등이 필요한데 잠깐 쓸 용도여서 목돈주고 장만하기 애매할 때도 유용하다.단지셰어링 서비스 아이디어는 어린 시절 웬만한 것은 마을 주민끼리 다 해결할 수 있었던 시절의 추억에서 비롯됐다. 아이 학교 육성회비를 내야 하는데 돈이 떨어졌으면 이웃에게 빌렸고, 갑자기 호미나 낫이 필요할 경우 이웃집에 먼저 손을 내밀었다. 급하게 외출을 할 때도 마주치는 동네 주민에게‘우리 애들 밥 좀 챙겨줘’라고 말하면 됐던 시절이었다.이같은 앱서비스를 개발, 제공하고있는 쏘시오리빙은 2018년 설립해 시작한 종합 주거 서비스에 아파트단지 주민끼리 물품과 재능을 공유할 수 있게했다. 이 서비스는 현재 서울 강남의 아크로비스타·신반포자이와 수원시 꿈에그린 등 5개 아파트단지 5600세대를 대상으로 제공되고 있다. 우리 전통의 아름다운 마을공동체 문화가 4차산업혁명 시대에 되살아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9-14

울릉도 특별재난지역 신속 지정해야

김두한경북부제9호 태풍 마이선과 제10호 태풍 하이선이 잇따라 동해안을 관통하며 울릉도가 큰 피해를 입었다. 섬 전체가 무너지고, 부서지고, 깨지고, 날라가고, 침몰하는 등 멀쩡한 곳의 하나도 없을 정도로 초토화됐다.울릉도 주민 80%가 직간접적으로 관광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코로나 19로 관광객이 크게 줄어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태풍마저 연이어 덮치며 아사지경으로 내몰았다.육지와 연결하는 유일한 교통수단인 여객선 선착장과 터미널이 부서지고 울릉도 대동맥인 섬 일주도로가 무너지고 뜯겨나갔다. 50t급 시멘트 구조물이 날아다닐 위력의 파도가 덮쳤으니 해안가를 따라 개설된 도로의 파괴는 짐작하고 남을 일이다.지난 3일 울릉도를 관통한 태풍 ‘마이삭’은 최대순간파고가 19.5m로 기상관측 이래 가장 높은 파고를 기록했다. 아파트 7층 높이의 파도가 덮친 셈이니 해안가 시설물과 주택이 온전하게 버텨낼 수 없었다.성한 곳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파괴된 울릉도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재난, 재해가 발생하면 피해를 정리 입력하는 NDMS(국가재난관리시스템)가 있다. 여기에 울릉도 피해를 입력한 결과 546억 원에 달하는 피해가 발생했다. 아직 제10호 태풍 하이선의 피해는 제대로 산정하지 않은 집계이니 울릉도의 피해 규모가 어느정도인지 가늠해 볼 수 있다.특별재난지역선포기준 피해예상금액 75억 원 이상이면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시행령 제69조’에 의거 최종 피해금액이 확정되기 전 예비조사를 거쳐 특별재난지역으로 우선 선포할 수 있다.정세균 국무총리와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국가관리연안항, 국가어항 시설의 책임자인 해양수산부장관까지 피해현장을 목격했다.따라서 당장 특별재난 지역으로 선포해야 한다. 울릉도는 육지와 달리 피해 복구하는데 엄청난 시간이 소요된다. 울릉도의 태풍 피해복구를 서둘러 시작해야 한다.울릉주민들의 울분을 달래고 합리적인 법적 근거에 따라 정부는 자체없이 울릉도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 울릉도주민들이 삶의 의욕을 되찾도록 해주기 간곡히 바란다./ kimdh@kbmaeil.com

2020-09-13

사업의 성패는 간판보다는 내용

최근 마이삭과 하이선이라는 강력한 두 개의 태풍이 경북 동해안 지역을 강타하며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 울릉도는 방파제가 유실되고 차량과 선박이 파손되었으며 도로도 유실되었다. 포항을 비롯한 경주, 영덕, 울진 등지도 집중호우로 한 해 농작물이 추석을 앞두고 쓰러지고 심지어 어디에 있던 것인지도 모르는 컨테이너 하우스가 버젓이 남의 논밭에 자리를 잡기도 하였다. 코로나19로 어렵던 시기를 보내고 있던 소상공인의 가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돈을 들여 세워두었던 입간판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건물 외벽에 전기장치까지 달아 두었던 세로형 간판은 구겨지고 떨어졌다. 어느 모델의 옥상 간판도 넘어졌지만 옥상 안쪽으로 넘어져 다행히도 인명피해는 나지 않았다. 아는 지인이 경영하는 철강공장도 지붕이 구겨지고 훼손되었지만, 그 옆 공장의 지붕은 아예 이번 태풍이 뜯어갔다고 한다.포항시 등 지역 공무원들은 불어난 강물로 오염된 산책로에 쌓인 쓰레기를 수거하고, 부러진 가로수를 처리하는 등 불철주야 고생하였다. 그동안 공무원들의 일 처리에 불만이 있던 시민들도 이번에는 박수를 보냈다. 코로나19사태가 확대된 이후부터 최근 태풍 피해 복구 등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올해만큼은 공무원들이 모두 월급 값 이상을 한 것만은 틀림없다고 본다. 이번 재해는 특히 아주 가끔 나타나는 초대형 태풍이었기에 아무리 사전에 철저하게 단속하고 준비했다고 하더라도 자연의 힘은 언제나 인간의 상상을 이겨왔기에 피해가 전혀 없을 수는 없었다.이처럼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이후부터는 복구가 최대 현안이 된다. 하지만 태풍이라는 자연재해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고, 그때마다 지금처럼 강풍으로 훼손되는 주요 대상이 늘 같다는 것이 문제다. 간판이다. 그동안 상인들은 자기 가게 홍보를 위해 어느 한 곳이 돌출형이나 세로형 간판을 만들면, 그 옆 가게는 그보다 더 크고 더 화려한 간판으로 대응해왔다. 입간판이나 돌출간판, 세로형 간판 등은 오래전부터 도시미관을 해치고, 자동차 운전자들의 시각을 어지럽게 하며, 보행자에게는 불편을 주는 대상이었다.약 16년 전인 2004년 당시 건설교통부는 신도시 건설이 한창이던 경기도 화성과 판교지역의 건축주나 건물사용자가 건물에 간판을 함부로 설치하지 못하도록 규제한다는 방침을 세웠었다. 최근 두 도시를 가보지 않아 지금의 모습은 모르지만, 그때 정부가 내세운 기준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신도시 건축물 간판 경관제도’라는 이 정책은 무질서하고 원색적인 건물 간판이 도시 미관을 해치고 운전자의 주의를 분산시켜서 교통사고를 유발한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기존 도시보다는 신도시 건설 단계부터 적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 여겨 시행했던 것 같다. 당시 계획으로는 업소당 가로형 간판 1개만 허용하고 세로형 간판은 설치를 금지하며 돌출형 간판은 4층 이상 건물에서 통일된 형태로 설치할 때만 허용하였다. 또 가로형 간판의 경우 3층 이하에는 위층과 아래층 사이 폭 이내에서만, 그리고 4층 이상에는 건축물 상단과 측면에만 설치할 수 있도록 하며, 간판의 색채는 주변 건물이나 간판과 어울리지 않는 순도 높은 원색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문자도 딱딱한 느낌을 주는 사각형체 사용을 억제하는 상당히 강력한 방침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아무리 강한 의지로 규제하더라도 언제나 그 틈새는 있기 마련이다. 상인들도 자신의 가게가 생존하고 더욱 번창하려면 더욱 기발하고 크며 화려한 간판이 필요하다고 믿으며 지금에 이르렀다.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간판(看板)’이라는 존재와 용어 자체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일제강점기 시절부터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시대의 거래는 시장이 중심이었고, 그곳에서 거래를 위해 모인 상인들은 호객하거나 자신의 거래목적을 위해 장터를 돌아다니다 적당한 상인을 발견하고 거래하거나 거간꾼을 통해 매매하는 것이 전통적인 방식이었다. 이후 상인이 자신의 가게에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는 상가가 도시를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일본인들이 상회 등 회사조직을 도입하면서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조선 시대에도 물론 유사한 기능은 있었다. 주요 건물에는 간판이라는 용어가 아닌 현판이나 편액 등이 걸렸다. 때로는 나무판자에 붓글씨를 써서 대문 근처에 걸어두기도 하였다. 당시 일본인들이 도입한 간판과 유사한 기능을 가지면서 지금의 네온사인과 같이 밤에도 빛나는 초롱을 걸던 곳도 있었다. 깊은 밤중 산길을 밝혀주는 지금의 여인숙 기능을 함께 하였던 주막의 등불이었다.이처럼 간판이라는 존재는 근대 이후든 이전이든 그 가게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용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파는 곳인지 알려주는 용도 등에 일차적 목적이 있다. 그리고 산업사회가 발달하면서 많은 사람이 멀리서라도 자신의 가게 위치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알려주는 용도로 오랫동안 긍정적인 역할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때마다 다시 그림이나 글자를 새로 쓰던 아날로그 간판은 순식간에 글씨를 바꿀 수 있는 디지털 간판으로 바뀌고 있다. 게다가 이제는 누구나 지닌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위치 기능을 이용하여 가게 이름부터 주변 맛집 검색 등을 통해 정확하게 해당 지점까지 지도로 안내해주고 있다. 굳이 입간판, 돌출간판, 세로형간판 등 온갖 돈을 들이지 않더라도 간판이 없어 가게나 어떤 업체를 찾아가지 못하는 경우란 있을 수 없다. 대형 건물에 입주한 기업이나 점포도 굳이 머리를 치켜들어 빌딩 바깥의 간판을 보고 몇 층에 있는지 찾을 필요도 없다. 건물 로비에 들어가면 네모난 아주 작은 크기의 판에 각층별로 입주한 업체나 가게를 깨알같이 써서 안내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일종의 간판이다.우리는 간판의 크기와 모양을 생각하기에 앞서 더욱 중요한 것이 있음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제아무리 간판이 화려하고, 네온사인을 두르고 원색적인 글자로 손님을 유혹한다고 하더라도 가게의 성업과는 거의 관련이 없다. 유통점이라면 그 점포에 진열된 상품들의 품질이나 상태가 양호하고 다양성이 갖추어져 있고, 접객하는 종업원의 친절도가 고객의 재방문을 결정한다. 음식점이라면 아무리 수시로 실내 장식을 바꾸고 온갖 진귀한 진열품으로 가게 분위기를 화려하게 꾸미더라도, 정작 그 가게의 정체성인 음식점으로서 음식이 맛없거나 청결하지 않고 손님들이 불편하면 소용이 없다.이번에 마이삭과 하이선이라는 초대형 태풍이 연속으로 강타하면서 지역 곳곳에 있는 많은 사업체의 간판을 부수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당장 망가진 간판부터 새로 만들기 전에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하였으면 한다. 또다시 지금처럼 태풍이 와서 강풍으로 날아갈 세로형 간판이나, 입간판, 돌출형 간판을 굳이 돈을 들여 마련해야만 할지를.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강력한 태풍은 반드시 오기 마련이다. 그동안 도시미관을 헤친다는 지적이 있었던 간판이라면 더더욱 이번 기회에 깔끔한 작은 디자인으로 만들어, 스스로 우리는 간판보다는 내용이 충실한, 간판이 없어도 경쟁력이 높은 가게임을 자랑해보면 어떨까. 명함에 금박을 입혔다고 그 사람이 높게 평가받는 것은 아니다. 안 그래도 어려운 시기다. 시간이 흐르면 녹슬고 태풍 때마다 날아갈까 노심초사하지 않았으면 한다. 사업의 성패는 간판보다는 내용에 있음을 잊지 말자./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09-13

‘사석(捨石)’ 놀이

안재휘 논설위원바둑판 격언 중에 ‘기자쟁선(棄子爭先)’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돌 몇 점을 희생시키더라도 선수(先手)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하수는 돌을 아끼고 상수는 돌을 버린다’는 속담도 있다. 바둑판에서는 초심자일수록 자기편 돌은 하나라도 죽이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러나 고수는 사석작전(捨石作戰)에 능하다. ‘버림돌’을 잘 써야 고수다.‘내 살을 내어주고 상대의 뼈를 자른다’는 뜻인 육참골단(肉斬骨斷)은 일본 사무라이들의 세계에서 하수가 고수를 상대할 때 쓰는 비법으로 통한다. 변화무쌍한 정치권의 쟁패에도 이 작전은 왕왕 구사된다.연초부터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병역논란이 도무지 종식될 기미가 없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적극적인 반격을 개시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2건의 ‘추 장관 탄핵’ 국민청원에 각각 24만여 명, 21만여 명의 동의를 얻으며 답변 요건을 충족하자 청와대는 이례적으로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국방부의 급변이 특히 눈에 띈다. 국방부는 관련 규정들을 구구히 들며 전화로 휴가 연장한 추 장관 아들의 휴가 연장 절차에 하자가 없다는 해석을 내놨다.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 휴가연장 명령서나 청탁 전화 등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그나마 국방부의 해명이 민주당과의 협의 절차를 거쳐서 작성되고 공유됐다는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추 장관 아들 측의 법적 대응도 주목거리다. 추 장관 아들 서모 씨 군부대 배치 청탁 의혹을 보도한 SBS와 소속 기자를 형사 고발한 데 대해서는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 3단체가 ‘언론 길들이기’라는 비판과 함께 고발 철회를 촉구했다.정부와 민주당의 반격에도 불구하고 추 장관 아들의 ‘황제 휴가’ 논란에 대한 국민 정서는 험악하다. ‘병역’이라는 민심의 역린을 건드린 일이어서 갈수록 고약해질 공산이 크다. 정치인들이 정치적 해법은 도외시한 채 스스로 판검사 밑으로 기어드는 현상은 우리 정치의 천박성을 상징한다.드디어, 정권이 추미애 장관을 ‘사석(捨石)’으로 놓고 게임을 벌이고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조국 사태 때도 그랬지만, 팬덤이 지배하는 돌연변이 정치풍토 속에서 온 나라가 난리를 쳐도 거시적 계산법으로는 ‘총알받이’를 장기간 두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전략일 수 있다. 야권은 지금 ‘전술’에서는 이기고 ‘전략’에서는 지는 게임을 벌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헐벗은 경제도, 조국도, 윤미향도, 윤석열의 위기도 잊히고 있다. 윤영찬도 곧 잊혀질지 모른다.무능한 정권에 대해 ‘퇴진’을 요구하는 제2의 촛불 민심은 ‘코로나19’가 대신 막아주고 있으니 문재인 정권은 참 복도 많다. 적지 않은 국민이 선동 장난질에 부화뇌동하고 선심 정책에 휘둘리는 수준에 머무는 현실은 참으로 기막힌 노릇이다. ‘깨어있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했던가. 독재 타도를 위해 평생을 뜨겁게 살다 간 고(故) 함석헌 선생의 말이 다시 새록새록 떠오른다.

2020-09-13

김치의 힘

김치는 우리나라 전통 발효식품이다. 지역과 가정마다 담그는 방법이 다양해 우리나라에는 200종이 넘는 김치가 있다.지역별로 보면 추운 북쪽지방은 고춧가루가 적게 들어간 백김치, 보쌈김치, 동치미 등이 유명하며 영남지방은 짠 김치, 호남지방은 매운 김치가 특색이다.김치에 들어가는 고추에는 비타민이 매우 풍부하고 마늘과 파, 생강 그리고 젓갈류 등이 가미되면서 김치는 영양학적으로도 우수한 건강식품이다. 미국의 건강잡지인 ‘헬스’는 세계 5대 식품으로 한국의 김치를 선정했다. 웰빙식품인 김치에는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해 소화를 원활히 하고 암을 예방하는데 유익하다는 것이 선정 이유였다.한방에서도 김치를 음양이 조화된 완전식품으로 설명한다. 성질이 서늘한 배추와 무가 열이 많은 고춧가루, 마늘, 파, 생강 등과 음양의 조화를 잘 맞춘 식품이라 건강에도 좋다고 했다. 조선후기에 만들어진 ‘동국세시기’가 김장 담그기와 장 담그기를 우리 민족의 중요 연례행사로 소개할 정도로 김치는 우리민족과는 뗄 수 없는 관계다.최근 프랑스의 한 연구진이 코로나19 사망자수와 국가별 식습관 차이간 상관관계를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진은 확진자 대비 사망자수가 적은 국가로 한국과 독일을 주목했다.두 나라는 발효된 배추와 양배추를 주된 부식으로 먹고 있는 것이 공통점이다. 한국의 김치와 독일의 ‘사우어크라우트’다. ‘사우어크라우트’는 양배추를 시큼하게 절여 발효시킨 음식이다.코로나 사태 속에 국내 김치의 수출이 전년보다 무려 44%나 증가했다. 국내 김치업계는 김치가 코로나 면역력 증강에 좋다는 소문이 알려지면서 김치의 해외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한다. 놀라운 김치의 힘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9-13

“뭉쳐라”, “흩어져라”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뭉쳐야 찬다’란 tv예능프로그램이 있다. 한 때 대한민국 내노라하는 스포츠 스타들이 축구종목으로 한 팀을 만들었다. 2002년 월드컵축구 반지의 제왕 안정환 선수가 감독으로 팀을 이끈다. ‘전설’, ‘신’, ‘천하’, ‘제왕’, ‘대통령’ 같은 으리으리한 수식어를 장착한 왕년의 최고 선수들로 구성된 팀이다. 동호회 팀들과 겨뤄 처참하게 연패를 당했다. 어느새 목표치 1승을 넘어 제법 하는 축구팀으로 성장해 가고 있다. 재미와 의미를 더해간다. 자신들과 무관했던 새로운 종목으로 one팀을 만들어 좌충우돌하는 설정이 쏠쏠한 재미다. 선수와 감독시절 버럭 소리의 대명사였던 농구대통령 허재의 허접한 말과 유행어들이 웃음으로 반전을 이루며 감칠 맛나게 한다. 웃음 뒤에 밀려오는 잔잔한 의미들을 곱씹어 보게 된다. 지나가는 세월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경험하지 않은 종목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정상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사람들이 패배를 받아들인다. 내려놓음의 미학을 음미하게 된다. 자기주장이 강하거나 능력을 과신하는 구성원들이 많은 조직은 갈팡질팡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함께하며 양보, 희생, 배려의 미덕을 보인다.전혀 다른 종목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모여 one팀을 이뤘지만 개성을 크게 내세우지 않는다. 팀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이 눈에 확 들어온다. 뭉쳐서 살아가는 지혜다. 감독의 목표달성을 위한 열정, 적절한 전술, 연공서열을 넘는 파격적인 출전 선수 선발, 선수들의 건강을 챙기는 자상함에 조직의 리더로서 역량도 보게 된다. ‘뭉쳐서 찬다’ 축구팀은 뭉쳐서 잘되고 있는 조직 같다.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뭉쳐서 잘했다. 몽골의 침략도, 임진왜란도, 6·25 남침도 모두 뭉쳐서 막아냈다. 일제강점은 ‘조선인은 세 명만 모이면 싸운다.’는 허언으로 뭉쳐서 저항을 할까 두려워했다. 코로나 사태로 뭉치는 일이 금기시 되고 있다. 뭉치면 죽는다는 말과 동의어로 ‘흩여져야 산다’는 메카폰 소리가 도처에서 울린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자민 프랭크린은 “join or die”(뭉치지 않으면 죽는다)라는 말로 영국 식민에 저항의 메시지를 던졌었다.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호소했다. 건국 후 좌우 이념의 극한 대립에 통합과 단결을 외쳤다.작금의 대통령은 ‘흩어져야 산다’고 한다. 이념과 정체성이 대비되는 대통령들의 외침에서 공교롭게도 정치적 메타포를 보는 것 같다. 뭉침은 저항의 최고 공격 무기다. 뭉침은 억압의 공고한 방패다. 부동산 정책, 장관아들 군복무 스캔들 등 난제들로 웅성거림이 이곳저곳에서 들린다. 뭉쳐서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광장은 나쁜 바이러스로 이미 폐쇄되었다. 한가위 달빛을 그리며 달리고 싶던 철마는 주춤거리고 있다. 간만에 큰 제사상 받아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듣고 싶던 조상님도 올 추석은 혼자 계셔야 할 처지다.암은 혈류와 신진대사의 막힘이다. 웅성거림이 막혀 밀폐된 중얼거림은 대중의 암이 될 수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방패삼아 이곳저곳 웅성거림을 막으려는 의도가 아닐까? 곱지 않은 시선이 나돈다. 뭉쳐서 살아났었던 민족이다!

2020-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