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보이지 않는 손

등록일 2021-03-28 20:02 게재일 2021-03-29 18면
스크랩버튼
윤영대수필가
윤영대전 포항대 교수

아침에 일어나면 휴대폰을 열고, 코로나로 만나지 못하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보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 날도 노트패드에 깔아두고 재미 삼아 하는 그림 색칠하기 앱을 열었더니 ‘앱을 중지했습니다’라는 표시가 뜬다. ‘이상한데, 그럴 리가….’ 하며 빠져나왔다가 다른 앱에 들어가 봐도 마찬가지다. 카톡 대화도 안 되고 네이버도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지난 23일 아침의 일이다. 황당해하며 ‘앱 설정’에 들어가서 이리저리 해보다가 ‘아! 혹시 해커의 장난이 아닐까?’ 하며 얼른 덮어버렸다.

매일 들춰보던 앱을 열어보던 아내도 안된다며 포기하고 “당신이 너무 사용하니까 고장 났다.” 하며 핀잔을 준다. 그럴지도 모른다며 오후에 판매점에 가보려고 했다.

한참 후에 관련 앱뷰를 삭제하거나 새로 깔면 된다고 하는 긴급공지가 떴고, 구글은 오후 3시가 지나서야 사과문을 냈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앱이 업그레이드되면서 기존의 앱과 충돌하며 일어난 사고라는 것이다. 다음 날 기사를 보니 이동통신 3사에 수만 건의 오류 문의가 접수됐고 서비스센터에도 수리하러 온 사람들로 붐볐다고 한다.

네이버는 디도스(DDOS) 공격으로 빚어진 오류일 가능성이 있다고 신고했고 방송통신위원회도 사태의 원인을 분석한다고 한다. 하루만에 문제가 해결됐지만 나의 머리에 맴도는 것 하나, 디지털 사회가 안고 있는 위험성이다. 누군가가 악성 코드를 심거나 데이터를 조작하여 전체 통신망을 흔들거나 마비시켜 사회적 환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업데이트하라는데 데이터 손실은 없을까? 자료가 새어나가지는 않을까? 염려하면서도 초기 버전으로 바꾸거나 저장공간을 정리하는 등 임시방편으로 해결한 사람들도 많으리라. 그러나 최근 과기정통부의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에서 보듯이 고령자, 장애인, 저소득층, 농어민 등의 정보 의존성이 점점 높아지는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많이 당황했을 것이다.

문득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의 ‘빅 브러더’가 생각난다. 정보의 독점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권력 또는 사회체제를 일컫는 말이다. 하기야 오웰이 미래라고 한 그 40여 년 전의 텔레그래프가 이제 CCTV로 발전하여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는 디지털 세상에 살고 있다. 소리 소문도 없이 프로그램 하나의 잘못으로 수많은 폰 이용자들이 무기력하게 된 아침, 만일 그것이 인위적인 빅 브러더의 짓이었다면, 아니 그보다 더 끔찍한 내용이었다면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진다. 보이지 않은 손에 의해 얼마든지 네트워크의 통제 조작이 가능하리라. 그러니 빅 데이터를 이용하여 미디어도 통제하고 정보를 왜곡하고 민중을 유혹하는 독재 권력이 안 생긴다고 어찌 단언하겠는가. 디지털 정보로 사회와 문화를 장악하는 거대한 네트워크 속에서 일상의 지식을 얻고 그것을 믿고 살아가는 인간의 미래가 밝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가까운 미래의 자율주행 자동차와 배송 드론 같은 운행시스템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먹통으로 되어버린다면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너무 편한 디지털 시대만을 꿈꾸지 말자.

월요광장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