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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욕감에 대처하는 법

등록일 2021-03-29 19:58 게재일 2021-03-3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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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희<br>인문글쓰기 강사·작가<br>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

모욕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모욕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모욕은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준다. 쑤퉁의 ‘쌀’이라는 소설의 주인공 우룽의 이야기는 조금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모욕의 무게를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고향에 홍수가 나서 먹을 것이 없어 우룽은 석탄 수송 기차를 타고 도시로 오지만 도착하자마자 부두 깡패에게서 심한 모욕을 받는다. 대홍기 쌀집에 가서 하인으로 써달라고 사정하지만 펑 사장과 그의 두 딸 쯔윈, 치윈에게 말할 수 없는 모욕을 당한다. 우룽은 증오의 화신이 되어 대홍기 쌀집을 차지하고 와장가의 두목이 되어 잔인하게 복수하고 자신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윌리엄 어빈의 ‘알게 모르게, 모욕감’이라는 책에서는 모욕이라고 느끼는 여러 상황을 소개하면서 자존감이 낮거나 자아상이 취약할 때 모욕을 참기 어렵다고 한다. 그는 모욕 평화주의라는 말을 만들어 덕을 쌓아 안정적인 자아상을 확립하면 남이 나를 모욕할 수 없으니 모욕감을 느끼지 않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처방을 우룽에게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덕을 쌓기 위해서는 덕을 쌓겠다는 의지가 먼저 있어야 가능하고 그런 의지를 발동하기 위해서는 덕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한다. 우룽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모가 굶어 죽었고 동냥으로 연명해온 처지라 덕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전혀 없었다. 설사 어느 정도 덕을 쌓았다고 하더라도 그가 받은 모욕은 덕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너무나 심각한 물리적인 가해를 동반했다.

우룽과 비슷한 처지의 인물 아큐의 대응은 좀 다르다. 루쉰의 ‘아큐정전’에 나오는 이 사람은 모욕을 당해도 마음속으로 자기가 이긴 것이라며 정신승리법을 사용하여 모욕을 견딘다. 그 역시 자기보다 약한 사람은 함부로 모욕한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우룽과 아큐는 사회적 지위가 무척 낮다는 것이다. 주먹이든, 재화든, 지식이든, 권력이든 한쪽이 극단적으로 많으면 그렇지 못한 상대방을 모욕할 가능성이 많다. 아큐가 정신승리법이라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우룽보다 형편이 나아서 움막같은 집이나마 돌아가서 몸을 뉘일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우룽이 아큐보다 모욕감을 더 크게 느낄 가능성이 많다.

윌리엄 어빈도 사회적 지위 차이가 클수록 약자가 모욕을 느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는 같은 언행이라도 안정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은 모욕이라고 느끼지 않을 수 있는데, 불안정한 위치에 있는 사람은 심한 모욕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면서 내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간다. 모욕 금지법 같은 물리적 방법은 효과가 별로 없다고 하면서 내면의 덕 쌓기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모욕감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모욕할 가능성을 줄여야 한다. 권력 관계가 평등해질수록 모욕하기 어려워진다. 내면의 덕 쌓기도 물론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사회적 불평등을 좁혀야 한다. 이런 사회 환경이 만들어지면 모욕의 힘은 약해지고 내면의 덕 쌓기도 수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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