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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냉정하고 침착하게 대응하자

김진홍 포항지역학연구회 연구위원 지난 6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영일만 앞바다에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 탐사 결과와 함께 탐사시추 계획의 승인을 알렸다. 석유 문제로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전 국민의 이목이 쏠리게 된 것은 50년 만이다.당시 많은 언론의 1면을 장식했던 영일만 앞바다의 석유 이야기는 당시 어디에선가 지하로 스며든 경유가 우연히 올라온 것을 원유로 착각하면서 오해가 커지기도 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1973년 2월 7일 상공부는 포항 앞바다 제6광구 1차 석유 시추 탐사작업의 90%를 완료한 시점에서 석유 발견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발표하였다. 그럼에도 당시 포항 앞바다의 석유 발견의 꿈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3년 뒤인 1976년 1월 16일에는 포항 영일 일대 석유광업권을 국가서 집행하고 민간인 광구 설정은 불허한다는 결정도 나왔다. 이후로도 포항 앞바다 일원의 석유 탐사는 본격화돼 30개소에 시추작업이 추가로 이뤄지기도 하였다. 결국 1977년 1월 15일 당시 상공부 장관은 재차 포항의 석유탐사는 진전이 없다고 언명하였다. 그 이후 포항 앞바다의 석유 이야기는 마치 전설과 같은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다시 50여 년이 지난 지금 새로운 불이 붙었다.50년 전보다 더욱 과학기술이 발전한 지금의 물리 탐사 결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기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사실 포항의 지하에 가스전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당장 수년 전부터 철길숲의 불의 정원이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나중 확인이 되어야만 하겠지만 적어도 영일만 앞바다가 분쟁 수역이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에는 경제적으로 큰 긍정적인 효과를 주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우리나라가 석유제품 수출국이기는 하지만 수출하는 석유화학 제품의 원재료인 원유를 모두 수입하기에 국가 차원에서 수익이 극대화되기는 한계가 있다.그런 면에서 만약 영일만 앞바다에서 대규모의 원유나 가스전이 발견되어 실제 상업 생산에 들어간다면 우리나라의 석유화학제품의 가격경쟁력만큼은 크게 개선될 여지가 크다.포항의 경우에는 향후 생산기지가 될 곳과의 직선거리가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겠지만 이후 내륙으로 원유나 가스를 이동시켜 임시로 저장할 시설 등을 해안가 어디엔가 만들 수도 있다. 포항철강공단에서는 이와 관련된 저장장치, 수송장치 등에 필요한 강관이나 관련 설비를 생산하기 위해 모처럼 가동률이 올라갈 수도 있을 것이다. 당연히 이로 파생되는 어떠한 형태로든 새로운 고용 창출, 인구의 유입과 그로 인한 소비산업과 서비스업에 긍정적인 파급 효과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그러나 이제 겨우 탐사 시추계획을 승인했을 뿐이다. 호들갑 떨 때는 아니다. 앞으로 실제 포항 앞바다에서 석유나 가스가 나더라도 그 소유권은 포항시와 무관하다. 따라서 포항시나 경상북도는 이 사업이 성공할 경우를 대비하여 최대한 그 낙수효과가 포항시, 경상북도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다양한 시나리오별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냉정하고 침착하게 대응해야만 한다.

2024-06-03

가난이란 무엇인가

최근 타계한 신경림 시인은 ‘가난한 사랑 노래’란 시를 남겼다. /연합뉴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서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 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신경림의 시 ‘가난한 사랑 노래’다. 시인은 맑고 뜨거운 눈물의 언어를 우리에게 남기고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 ‘파장’, ‘농무’, ‘목계장터’ 등 절창이 셀 수 없으나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건 위의 시다.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라는 부제가 달렸다. 가난한 젊은이는 곧 그 자신이기도 하고, 1960년대와 70년대를 거쳐 온 민중이기도 할 것이다. 시인은 젊은 날 광부, 장사꾼, 영어강사 등으로 힘겹게 삶을 이었다.가난을 겪어본 시인이 쓴 이 시는 가난이 무엇인지 말해준다.가난이란 두려워하면서도 기계에 손을 넣거나 용광로 위를 아슬아슬 걸어가는 것이다. 가난이란 버릴 수 없는 그리움을 버리고 사랑을 알아도 몰라야만 하는 것이다. 가난은 꿈과 사랑과 그리움을 다 버려야 하는 상태, 개성이며 취향은 물론 희망과 기대까지 모든 게 끊어져버린 막막한 무저갱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시에 흐르는 가난의 구정물 대신 애처롭게 빛나는 가난의 낭만만을 읽는다.신경림 시인이 하늘로 돌아간 날, 학생들과 박완서의 단편 ‘도둑맞은 가난’을 읽었다. 빈민촌에서 사는 ‘나’는 일가족이 자살해 세상에 홀로 남았다. 얼마 안 되는 봉급이지만 씩씩하게 삶을 꾸리면서 동거남인 상훈과 미래의 알뜰한 행복을 꿈꾼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던 상훈이 말끔한 양복 차림으로 나타나 말한다. “사실 나는 부잣집 도련님이고 대학생이야. 아버지께서 방학 동안 어디 가서 고생 좀 하고, 돈 귀한 줄도 알고 오라고 해서 너랑 여기서 지낸 거야.”가난을 ‘사서 하는 고생’으로 여기는 풍조는 여전하다. 몇 해 전 쪽방촌 체험 프로그램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나’는 “부자들이 가난을 탐내리라고는 꿈에도 못 생각해 본 일이었다. 그들의 빛나는 학력, 경력만 갖고는 성이 안 차 가난까지를 훔쳐다가 그들의 다채로운 삶을 한층 다채롭게 할 에피소드로 삼고 싶어 한다는 건 미처 몰랐다”며 절규한다. 사람들은 가난에 낭만을 부여하고 서사를 입히기 좋아한다. 같은 성공이라도 자수성가 스토리에 열광하고, 가난해본 적이 있다고 하면 인간적으로 느낀다. 그러니 정치인들이 선거철마다 재래시장에 가 어묵을 먹고, 겨울에 연탄 나르며 흰 얼굴에다 검댕을 처바른다. 연예인들이 빚더미에 앉았다며 생활고를 호소하고, 광고가 끊겼다며 운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의 가난은 대개 상대적 가난이다. 하지만 진짜 가난은 절대적인 것이다. 서로의 가난을 비교하다 그래도 나는 낫구나 싶으면 가난이 아니다. 남보다 나은 게 하나도 없는 가난이 진짜 가난이다. 학생들에게 말했다. “집에서 나와 옷 입고 밥 먹고 여기 앉아 있는 여러분과 나는 가난하지 않다. 결핍과 가난을 혼동하지 말자. 정말 가난한 이들을 욕보이지 말자. 가난을 낭만으로 여기지 말자. 가난을 대상화하지 말자”고.돌아보면 나는 결핍을 가난과 착각해 잘 먹고 잘 사는 생활을 애써 남루하게 만든 적이 많았다. 누군가에게 가난은 타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며 삶 자체다. “가난을 희롱하는 것만은 용서할 수 없지 않은가. 가난한 계집을 희롱하는 건 용서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가난 그 자체를 희롱하는 건 용서할 수 없다. 더군다나 내 가난은 그게 어떤 가난이라고. 내 가난은 나에게 있어서 소명이다. (…) 내 방에는 이미 가난조차 없었다. 나는 상훈이가 가난을 훔쳐갔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는 소설의 마지막 대목을 읽으며 등골이 서늘하다. 나는 그리움을 알고 사랑을 알고 고기와 술을 먹고 마시며 더 즐거운 내일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닌가.

2024-06-03

결혼 이야기

요즘 부쩍 결혼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주말이 되면 카페에 앉아 가능한 주택 대출제도를 알아보고 앞으로 우리가 살 곳이 어딜지 점찍어 보며 살고 싶은 동네를 찾아가 찬찬히 둘러본다. 그것만으로 벌써 내게 마음에 드는 집 한 채가 생기는 기분. 연인의 손을 잡고 걷는 이 동네가 벌써 우리 것이 된 것만 같아 설렌다.결혼이란 뭘까.사실 깊게 생각해보진 않았으나, 때때로 결혼이란 상대에게 얽매이는 구속 또는 희생처럼 느껴지곤 한다. 그렇게 지레 겁을 먹다보면 현재 내 앞의 행복이 소중하고 아까워서 놓치고 싶지 않아진다,8평 짜리 원룸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찬 자유의 공간. 하지만 사정이 좋지 않아 이곳에 배우자와 함께 살게 된다면? 아주 약간 망설여질 정도로 쉽게 내 공간을 내어주기란 쉽지 않다. 이 협소한 공간 속에서 우린 서로의 눈치를 살피고 양보하며 살아가야 할 거고,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야 근사한 결혼 생활이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러던 중 며칠 전 본 영화 ‘결혼 이야기’를 보고 결혼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LA 출신 여배우 니콜은 연극 감독인 찰리와 결혼을 하기 위해 배우 커리어를 버리고 그와 결혼해 뉴욕에 산다. 니콜은 결혼 생활 중 고향인 LA로 돌아가고 싶지만 찰리와의 결혼 생활 때문에 쉽게 내려가지 못한다. 그러던 중 니콜이 LA에서 촬영이 진행되는 한 파일럿 프로그램에 들어가게 되고, LA에 생활하며 찰리에게 이혼 신청을 요구한다.그 와중 그들의 싸움은 점점 격해지며 결국 변호사를 고용해 이혼 소송까지 번지게 된다. 이혼 소송에서 일어나는 일과 인물의 감정선을 극의 절정까지 끌어올리며, 두 인물 모두 서툴고 인간적이며, 본인 스스로가 제일 중요한 이기적인 인간상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낸다.사랑은 변하기 마련이다. 남녀간의 사랑은 결혼 전과 후 분명히 결이 달라진다. 무수히 많은 상황, 환경, 사건이 있겠고 두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거나, 변형되거나, 비틀어지거나, 끈끈해지거나, 단단해질 수도 있다.이 영화를 통해 깨달은 건 사랑만으로 완벽한 결혼 생활의 완성을 꿈꿀 수 없다는 점이다. 나와 너는 우리로 묶이지만 어쨌든 다른 개개인의 인간이고, 더군다나 유통기한처럼 소멸하는 연인간의 뜨거운 사랑만으로는 결혼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영화 속 니콜과 찰리는 웨딩마치 속 화려함이 완벽하게 빼내진 채로 담담하고 솔직하게 마지막을 향해 달려간다. 하지만 니콜은 찰리와 헤어지는 길에서 그의 풀린 신발끈을 정성스레 묶어준다, 이혼을 고려할 정도로 그를 증오하지만 그가 가는 길에 넘어지지 않도록 신발끈을 묶어주며 끝내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니콜에게 찰리는 ‘우리끼리의 나눈 농담도 다 기억하는 사이’, ‘확신이 없는 나랑은 정반대인, 뭘 원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었으며 무엇보다도 ’그를 본지 2초 만에 사랑에 빠져‘버릴 정도로 내가 깊게 빠져들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상대를 답답해하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소리를 지르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모난 말들만 던지는 싸움 속에서 그간 우리가 쌓아올린 존중과 신뢰의 태도를 굳게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싸움은 감정을 소모하는 일이고, 감정이 고조되며, 본능적으로 손해를 보기 싫어하니까. 아담과 찰리도 그렇다. 서로를 위해 고상하게 차 한 잔 나누며 이야기를 이어가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고, 벽을 부수고, 욕설을 내뱉는다. 하지만 그들이 사랑으로 쌓아올린 믿음까지 부수진 못한다. 그들은 과거의 사랑을 바탕으로 각자의 길을 걸어도 서로의 길을 응원하는 사이를 택한다.파경 후 관계를 유지하는 ‘결혼 이야기’를 보며 나는 오히려 그전까진 알지 못했던 사랑에 대한 또 다른 가능성을 보았다. 내가 무서워했던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소멸된 애틋한 사랑이었고, 이는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아주 단순한 겁이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사랑은 자연스레 변할 테지만 함께 사랑해온 시간 속의 믿음과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언제고 연인과의 첫 만남, 우리가 나눈 눈빛, 여행지를 기억할 수 있고 이는 이미 내게 영원한 믿음으로 자리했기 때문이다.

2024-06-03

방언시의 놀라운 효과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시는 세상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고통을 나누어야 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시는 독자들과의 소통 고리를 잃어버리고 표독하게 제 잘난 듯이 알 수 없는 언어로 옷을 갈아입고 미로로 질주하고 있다. 시인은 정치적 선동으로도 모자라 고발과 분열을 미덕으로 삼아 내뛰고 있다. 글로 쓰인 시가 시 본연의 운율과 가락을 찾지 못하고 있다. 황혼에 물든 저녁녘 단 한 줄의 시 구절에 어깨를 들썩이는 독자를 찾으러 나서는 시인이 그립다.말하듯 노래하듯 써야 시가 되는 언문일치와 결별한 지 오래되었다. 그런데 표준어라는 그물망이 직조되기 이전에는 가슴을 격렬하게 울리는 싱싱하고 푸른 토착어로 노래하듯 시를 쓴 작가들이 있었다. 소월이 대표적인 시인이다. 구전 전통의 우리 가락을 시작을 통해 안정된 시의 미학에 도달하였다. 한자어는 물론 외래음차표기조차 배제하여 쓴 그의 시는 노래하는 시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민요적인 가락과 구어적 글쓰기의 결합으로 가장 전통적인 시혼을 우려내는 시작에 충실하였다. 김소월은 ‘개여울’, ‘가는 길’, ‘팔베개 노래’, ‘진달래꽃’에서 외래어나 외래어 음차표기나 한자어를 철저히 배제하고 토착어 지향적인 자세를 일관하였다. 동시대의 만해나 이상화 등의 시인들과도 비교해 보면 매우 재미있다. 토착어로만 쓴 시들과 외래어나 한자어가 많이 뒤섞인 시들을 비교해 보면 시로서의 품격의 차이를 금방 알 수 있다. 상화 시의 경우에도 고유어로만 시어를 선택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한자어가 뒤범벅이 된 ‘이중의 사망’을 비교해 보면 토착어 지향성의 시들이 훨씬 더 아름답고 가슴을 치는 품격을 지녔다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다. 30년대 이후 시문학파나 생명파, 특히 청록파 시인들의 토착어 지향의 시작 경향이 이어져 아름다운 시들을 만날 수 있었다.50년대 한국전쟁 이후 한자어를 선호하거나 외래어나 외래어음차표기를 선호하는 위세적 심층의 욕망이 꿈틀거리는 모습이 시 쓰기에도 반영이 되었다. 사회 공간 속에서 지적이고 고급적 집단 무리에 편승하고자 하는 이 시대의 시에는 마치 조선조 양반과 평민층의 계급적 길항관계처럼 외래어나 한자어가 꿈틀거린다. 특히 모더니즘 계열의 시인들에게 두드러졌다. 70년대로 들어서면서 민학운동이 촉발되고 상실된 실체로서의 민족과 고향을 강조하는 민족문학이라는 미명으로 포장된 시들이 판소리나 민중극과 함께 많이 나타났다. 특히 새마을운동으로 붕괴된 고향을 떠나 도시로 몰려든 이들이 잃어버린 고향과 고향의 재발견을 위한 방편으로 토착어 지향성을 보이지만 표준어라는 압박에서 자신의 구어의 맛깔을 온전히 찾아내지는 못하였다.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시인협회 주관으로 두 차례에 걸친 방언시집 간행이 계기가 되었던지 모티브 차원에서 이용되었던 방언이 시작에 본격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하였다. 표준어를 수호하던 국립국어원이 오히려 토착적 방언시의 창작을 지원하고 주도하였다. 언어의 종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 국어정책의 중요한 축이라는 지향이 피상적으로 간간히 이용하던 방언 시어들을 온전하게 활용하는 차원으로 전개되었다. 어른과 아이들이 공유하고 지식과 계급의 차등을 뛰어넘는 상실의 실체, 사라진 것들을 다시 호명해 내는 시적 기술로서 방언시가 나타났다. 토착 지향의 시인들이 방언을 활용한 노래하는 시, 말하는 시로서의 발돋움을 시작하였다.방언으로 쓴 시편들의 가장 큰 특징은 온갖 감각 기관을 총동원시키는 시간 회귀의 여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상실한 사물과 상응하는 토박이 음성이 결합하는데 성공한 작품들이 하나둘씩 나타난다. 방언으로 쓴 시편들은 시각적 텍스트인 문자로 잊어버린 옛 시간을 당겨오고 가물가물 사라진 기억을 호명하는 힘을 가진다. 떠나온 고향,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친척들과 이웃의 삶터를 개방해 준다. 눈으로는 지나간 시간이나 공간의 빛을 되찾아주고 귀로는 소멸된 소리를 토속적인 악센트로 불러온다. 코로는 증발되어버린 시큼하고 소똥냄새가 뒤섞인 공간의 냄새를 소환하고, 입으로는 소멸된 사물의 존재들을 호명해 온다. 시의 방언은 지나간 모든 시간과 공간을 기억해내고 불러오는 수단이 된다.

2024-06-03

인류 문명 발상지 해 뜨는 동방의 나라 오리엔트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무한한 동경으로 실크로드를 열었던 서아시아다. 서구 유럽의 시각으론 역사의 카메오라며 인정하는 것에 인색하지만 인류문명 교류에 위대한 공헌은 변치 않은 사실이다.서아시아는 기원전 8000년경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이름도 생소하기 짝이 없는 ‘차탈휘유크’와 ‘예리코로’라는 인류 최초의 도시가 형성된 곳이 서아시아와 나일강 유역의 오리엔트 지역이다. 물론 처음에는 주민이라고 해봐야 5000에서 1만 명 정도였겠지만 가축의 사육이라는 선진 삶의 방식으로 윤택한 터전을 닦았던 곳이며, 농법과 가축사육, 생산물의 이동 등을 유럽에 전해준다.기원전 4000년경부터 인류 최초의 문명이 발생한 곳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의 두 강 사이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이었다. 3500년 전, 농경과 관련해 관개농업이 발달했던 이 지역에서 농업생산량이 늘어나고 농촌은 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청동기가 제작되고 점성술과 더불어 문자와 태음력이 발명된다.이집트 역시 나일강 유역의 범람을 대비한 대규모 치수 사업을 통해 도시국가가 형성된다. 이로써 고대문명의 태동, 즉 메소포타미아 수메르를 중심으로 히타이트, 아시리아, 헤브라이, 바빌로니아, 페니키아 등 수많은 오리엔트 고대국가가 태어났고, 또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인류문명 창달에 앞장섰다. 이 중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훗날 5000년 역사의 굳건한 모태가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문명이란, 자생적이든 모방에 의한 것이든 일단 탄생과 동시에 이동과 전파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동 과정이 곧 문명의 교류다. 문화교류를 통해 서양문명의 뿌리라 일컫는 그리스·로마 문명이 꽃피는 토양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서양 기독교 중심사상이 절대적 보편가치로 인식되고, 유럽인의 인식 세계에 들어앉은 이교도에 대한 배타적 권리는 오리엔트문명의 영향을 축소하거나 부정하고 있다. 르네상스나 산업혁명으로 인한 살상 무기의 발전으로 절대강자의 자만이 넘쳐 인류침탈에 이바지한 제국주의만 없었어도 자랑할 만한 요소는 그리 많지 않다.오리엔트란 용어 역시 서구의 시각이다. 오리엔트란 지중해 동쪽 여러 나라, 아시아를 가리키는 경우다. 어원은 라틴어의 오리엔스(Orient)에서 나왔다. ‘해가 뜨는 곳’ 동방(東方)을 뜻하며, 특히 로마인들은 자신들을 세상의 중심으로 한 지중해 동쪽을 통틀어 오리엔트라고 불렀다. 라틴의 속담 ‘빛은 동방으로부터’에서 동방이란, 당시 그리스를 가리킨다. 이때 빛이란 선진문화를 일컫는다.‘페르시아’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란 남서부 해안가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르는 말인 파르스(Fars)라고 부른데서 비롯되었다. 이란의 고대국가 엘란 왕국에 이어 기원전 815년경 이란의 북서부 아제르바이잔 지역에 거주하던 민족이 남쪽으로 내려와 파르수마슈에 정착해 세웠던 아케메네스 왕조의 발상지다.막강 페르시아가 등장하면서 기원전 6세기 나일강 유역에서 3000년이라는 기간 동안 자연재해 한번 없이 풍요를 누리던 이집트를 평정하고, 갈등을 일으키던 오리엔트를 하나로 묶는다.페르시아는 지중해로 진출해 소아시아 그리스 식민지를 야금야금 삼켰다. 이는 필연적으로 그리스와의 한 판 세기의 대결을 불렀다. 결국 다리우스 3세를 마지막으로 알렉산드로스에 의해 기원전 331년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제국이지만, 당시 화려했던 그들의 문화는 상상 속에서 여전히 찬란하다. 6세기에 폐허가 된 페르시아 고대도시 페르세폴리스를 방문했던 여행자들은 적지 않은 기록을 남겨놓았다. 그 기록 중 하나이다.“황량한 들판에 초라한 기단과 무너진 원형 석주만이 남아 있을 뿐 화려했던 과거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훗날 1931년이 되어서야 세상에 그 비밀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이 생존한 이상 인류는 진화를 거듭할 것이고, 문화는 느리게 빠르게, 혹은 발효의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은 멈추지 않는다. 신라인 혜초, 이븐바투타, 마르코폴로는 기록의 사나이였던 까닭에 역사 인물로 기억되지만, 이전에도 이후에도 이름을 남기지 않은 무수히 많은 사람이 오갔을 것이고, 그 길에 족적을 남겼다.초기 페르시아제국에는 수백만의 이민족이 살았고, 거대한 주를 통치하는 지방 총독들 역시 왕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웠다. 제국에 대항하는 자는 피의 응징을 당해야 했지만, 기원전 538년 바빌론을 점령하면서 그곳에 잡혀 있던 유대인들을 해방했으며, 그들의 신앙과 종교의례도 허락했다. 훗날, 이 일로 인해 제국에 다양한 종교가 섞이면서 복잡한 문화적 양상을 띠게 되지만 말이다.역사란 제국이 힘을 다하면 새로운 제국이 태어나면서 이어진다. 고대 제국은 토지와 노동력 확대 및 군사력의 기본적 확장에 목적을 두고 정벌이란 이름으로 정복 전쟁을 일으키곤 하였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4-06-03

‘24환경의날’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대구시는 지난 1일 삼성창조캠퍼스에서 ‘2024년 환경의날 및 환경교육주간’을 맞아 ‘파란하늘 대구, 탄소중립으로 GREEN 미래’라는 주제로 ‘24환경의날’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기념식에 앞서 지역 예술인 양철인간의 ‘마임공연’이 이루어졌는데, 태극기 그림이 들어간 폐현수막으로 만든 옷에 대나무꽂이가 몸통 곳곳에 박혀 보기가 불편한 복장을 하고 퍼포먼스를 진행했다.‘마임공연’은 관객 앞에서 보다 관객 속으로 들어가 진행한 시간이 많이 길어 바로 옆에서 보는 사람은 다소 불편하였다. 그러나 그만큼 환경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행위예술의 방법으로 전달하려 한 것 같다. 그럼 실제 대구시민은 환경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대구시가 지난 2012년부터 10년 이상 꾸준히 조사하고 있는 ‘대구의 사회지표’ 조사 결과를 참고해 보았다. 이 조사는 구군별로 1000~1200가구를 표본추출하여 총 8400가구, 가구원수 총 1만484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메머드급 인식조사이다.‘생활환경’ 분야 인식조사 항목은 대기, 수질, 토양, 소음·진동, 녹지환경 등에 대한 ‘환경체감도’, 쓰레기 증가, 자연자원의 고갈, 수질오염 등 ‘환경문제 인식’, 합성세제 사용줄임, 대중교통 이용, 녹색제품 이용 등 ‘환경보전 노력’ 등 다양하게 구성하였다. 먼저, 최근 2022년의 대기환경 체감도를 보면 ‘좋음’ 응답자가 22.6%로 2019년 ‘좋음’ 응답자 비율이 36.9%인 것에 비해 무려 14.3% 감소하였다. ‘나쁨’에 대한 비율은 2013년 13.8%에서 매년 증가하여 2022년에는 33.5%까지 증가하였다.이렇게 2022년의 조사결과, 대기 외에도 수질, 토양, 소음·진동, 녹지환경 모두 ‘좋음’ 응답자 비율이 2019년에 비해 감소하였고, ‘나쁨’에 대한 비율은 2013년부터 2022년까지 계속 증가하였다. 2022년도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 가장 큰 환경문제는 ‘쓰레기 증가’로 39.6%이고, 이어서 ‘기후변화’가 17.7%로 두 번째로 높게 나타났다. 특히 ‘기후변화’에 대한 환경문제로서의 인식은 2019년 5.1% 정도에서 22년에 17.7%로 무려 12.6%p 증가했다. 구·군별로 보면 기후변화에 대한 문제 인식은 달서구가 22.5%로 가장 높고, ‘소음’은 동구가 12.0%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환경보존 노력은 ‘에너지 절약’이 유일하게 51.1%로 50% 이상이고, ‘녹색제품 이용’, ‘중고물품 구매 및 판매·기부’, ‘환경 및 자연보호운동 참여’는 노력하는 비율이 30% 이하이고, 매년 감소추세이다. 이처럼 대구시민들의 ‘환경체감도’는 나빠지는데, ‘환경보전 노력’은 오히려 낮아지는 상황이다.그래서 시민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환경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현명한 환경보전 노력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다. 마침 이번 ‘24환경의날’에 27개 기관과 단체에서 마련한 다양한 교육과 ‘체험부스’에 부모님과 함께 흥미롭게 참가한 많은 ‘어린 시민’들을 바라보면서 미래의 환경은 분명 좋아질 것으로 보인다.

2024-06-03

지금 애타게 ‘우리’를 찾는 건

김규인 수필가 대한민국에서 ‘우리’라는 말이 사라진다. 코로나로 사람들은 혼자가 되고, 정치권에서는 철저히 나와 남을 두부 자르듯이 구분한다. 잘린 무리는 남이 되어 우리의 크기를 자꾸 줄인다. 수천 년 전부터 ‘우리’를 입에 달고 살아온 한민족이지 않은가. 그렇지 않아도 줄어드는 인구로 가속도가 붙으며 사그라든다.혼자 크는 자녀가 ‘우리’라는 단어를 잃고, 집뿐만 아니라 식당에서조차 홀로 식사하는 자리가 늘어난다. 음식물 제조 회사에서는 일인 가구에 맞추어 용량을 줄인 상품을 잇달아 내어놓고 편의점에서는 한 사람의 식사에 맞추어 무가 자신의 형체를 잃고 토막 난 채로 잘려 나온다. 그렇게 ‘우리’는 해체된다.휴대전화의 출현은 나 홀로의 삶을 부추긴다. 친구를 만나려는 사람들을 떼어놓고, 긴 시간을 붙들고 자기만 쳐다보라고 다양한 미끼를 던진다. 미끼를 문 사람들을 놓지 않는다. 심지어 버스에서 내려 길거리를 걸을 때도 휴대전화를 쳐다보느라 사고를 당해도 사람의 일이라 넘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휴대전화를 꽉 쥔 채 놓지 못한다.친구들을 만날 때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간단한 인사말을 건네고는 모두 휴대전화를 쳐다보느라 바쁘다. 말하더라도 휴대전화가 중심이 된다. 휴대전화 게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거나 최신 모델의 휴대전화가 이야기 소재가 된다. 휴대전화는 한 번 문 미끼는 절대 놓지 않는다.사람들이 혼자의 삶을 즐기고 휴대전화가 자신에게 빠진 사람들을 놓지 않는 한 ‘우리’는 홀로 떠돈다. 우리 엄마, 우리나라, 우리 집과 같이 ‘우리’가 붙어야 말맛을 느끼던 우리의 모습은 다 어디로 갔을까. 모두가 혼자의 삶에 빠져있는 사이, 밀려 사라지는 ‘우리’를 되찾아야 한다.아직도 늦지 않았다. 여기저기 흩어진 ‘우리’를 다시 모으자.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서 “이모, 밥 한 그릇 줘요”라고 할 수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이모가 차려주는 한 끼의 식사는 몸과 마음을 덮인다. 돈을 내고 먹는 한 끼의 식사가 아니라 우리라는 든든한 울타리를 일상에서 확인하는 순간이다.어디 그것뿐인가. 2002년 월드컵 경기 당시 한국인들의 월드컵 응원 열기는 축구 실력 못지않게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모두가 하나 같이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하나 되어 응원하는 모습은 한국인이 아니고서는 보기 어렵다. 한국인은 좋으나 슬프나 한결같이 ‘우리’의 의식 속에서 그렇게 살아왔다.지금 애타게 ‘우리’를 찾는 것은, 혼자 해결하기에는 풀리지 않는 문제들 때문이다. 낮은 신생아 출생률, 합의를 모르고 각자의 길을 가는 의대 증원 문제, 침체한 경제는 아직 헤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국민연금 개혁 문제는 다시 22대 국회로 책임을 떠넘긴다.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더미인데 그 앞에서 나만을 찾는다.다시 ‘우리’를 회복할 수는 없을까. IMF 위기 앞에 금을 모으고 국가 채무를 갚기 위해 돈을 모으던 우리의 유전자는 그대로 우리 몸에 남아있지 않는가. 혼자가 편하고 생각이 다르더라도 더 큰 대한민국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2024-06-03

국민들의 대통령과 영부인 걱정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해결 어려운 문제나 걱정거리가 있을 땐 선현이 남긴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전 세계 사람들의 입에서 하루에도 수천 번 인용되는 것이지만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기에.‘논어’ 계씨편엔 天下有道 則政不在大夫 天下有道 則庶人不議(천하유도 즉정부재대부 천하유도 즉서인불의)란 문장이 있다. 고루하고 어려운 말이 아니다. 현대적으로 풀어쓰면 대충 아래와 같다.“공자는 말했다. 세상에 도(道·원칙과 합리)가 굳건히 서있다면 정치가 권력자의 손에만 독점되지 않고, 그런 세상이라면 국민들이 정치를 걱정하지 않는다고”.국민을 위무하고 편안하게 해줄 의무를 가진 정치인이 국민을 걱정하지 않고, 외려 국민이 정치인을 걱정하는 해괴한 상황에 오늘날 한국이 처해 있다 말하면 과장이라고 욕을 먹을까? 앞서 인용한 문장 중 大夫(대부)란 단어를 21세기 방식으로 ‘대통령’이라 바꿔보자.한국 국민들은 현재 전·현직 불문 대통령과 그의 아내를 무거운 마음으로 걱정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중 인도를 방문한 아내를 두고 ‘영부인의 첫 단독 외교’라 하니, 견해를 달리하는 국회의원 한 명이 “국민을 어찌 보고 능청맞게 흰소리를 하느냐”고 따진다.현직 대통령의 아내가 선물로 받았다는 수백만 원짜리 가방을 놓고는 “특별검사를 통해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는 의견과 “과도한 흠집 내기”란 목소리가 긴 시간 격렬하게 충돌 중이다.너그럽고 선량한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까진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저 대통령들과 그의 배우자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서민들의 걱정과 화를 부르지나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것도 못해주는가?/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6-03

‘승자독식 전쟁’을 끝내려면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정치’가 ‘전쟁’이 되었다. 승자독식(勝者獨食)이라는 함정에 빠진 탓이다. 승자의 독식은 패자의 박탈감과 분노를 불러온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정치보복이 반복되는 이유다.대화와 양보가 없는 승자독식 정치는 민주주의를 형해화(形骸化)한다. 집행권을 가진 여당과 입법권을 장악한 야당의 끝없는 전쟁이 그 생생한 증거다.승자독식 선거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민의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대선에서 득표율 0.73% 차이(윤석열 48.56%, 이재명 47.83%)로 승리한 대통령이 집행권을 100% 독점하며, 총선에서 지역구 득표율 5.4% 차이가 의석수 1.8배 차이(민주당 161, 국민의힘 90)를 초래했다. 이처럼 엄청난 사표(死票)가 발생하는 선거는 민심을 제대로 대변할 수 없다.승자독식 제도에서는 승리를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전쟁 같은 정치’가 일상화된다. 다수결의 전제인 대화와 타협은 공허할 뿐이며, 이성과 양심은 설 자리가 없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증오 마케팅’으로 상대를 비난, 조롱하고 혐오를 극대화시킨다. ‘나는 천사, 당신은 악마’라는 흑백론이 거대양당의 적대적 공생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약육강식과 각자도생을 심화시킴으로써 공동체의 기반을 무너뜨린다.그렇다면 어떻게 ‘승자독식 전쟁’을 ‘승패공존 정치’로 바꿀 것인가? 이를 위해서는 ‘정신’과 ‘제도’의 혁신이 필요하다. 먼저 정신적 측면에서는 대화와 타협의 민주주의 가치관이 내면화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전부 혹은 전무’(all or nothing)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 대소’(more or less)를 두고 벌이는 협상과 타협이다. 상대를 죽이고 나만 살겠다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전쟁이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오만과 독선이 민주주의 파괴의 주범이다.다음으로 제도적 측면에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개혁과 중·대선거구제의 도입은 물론, 대통령 4년 중임제 또는 의원내각제 개헌까지도 본격적으로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서유럽국가들이 보여주듯이 다당제 연합정치와 같은 합의제민주주의가 정치의 양극화를 완화하고 정책의 연속성을 제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특히 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는 꼼수 위성정당을 막고, 소선거구제의 사표를 줄이기 위해 중·대선거구제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이 문제는 이미 여야가 인식을 같이하고 있음에도 기득권 상실을 우려하여 ‘폭탄 돌리기’만 계속하고 있다.거대양당이 여론을 의식하여 개혁시늉만 할 뿐, 적대적 공생관계에서 얻는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으려하기 때문이다.이처럼 선거법 개혁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니 결코 쉽지는 않다. 하지만 지식인·시민사회·언론 등 여론의 압력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성사시킨 것처럼, 개혁요구가 거세지면 정치권도 계속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주권자인 국민은 거대양당의 ‘승자독식 전쟁 놀음’에 놀아날 것이 아니라, 그들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개혁에 나서도록 지속적으로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

2024-06-03

포항 근해에 ‘석유밭’… 한국 다시 ‘産油國’되나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첫 국정브리핑에서 “포항 앞바다에 막대한 양의 석유·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물리탐사 결과가 나왔다”고 발표했다. 최대 매장량은 140억 배럴로 추정되며, 우리나라 전체가 천연가스는 최대 29년, 석유는 최대 4년을 넘게 쓸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매장 예상지역은 영일만에서 38∼100㎞ 떨어진 넓은 범위의 해역에 걸쳐 있으며, 모두 한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이다. 신생대 3기 지층을 가진 포항에서는 그동안 수차례 석유와 가스가 발견됐다. 특히 지난 2017년 3월 남구 대잠동 철길숲 공원 조성지에서 지하수 개발을 하던 중 발견된 천연가스의 경우, 경제성은 없지만 7년이 지난 현재까지 타오르고 있다. 한국은 지난 1966년부터 해저 석유·가스전 탐사를 꾸준히 시도해왔다. 그 결과 90년대 후반 4500만배럴 규모의 ‘동해 가스전’을 발견해서 2021년까지 상업생산을 마쳤다. 윤석열 정부 들어와서는 지난해 2월 세계 최고수준의 심해 전문기업인 미국 액트지오사에 동해 가스전 주변 물리탐사 심층분석을 맡겼는데 이번에 성과가 난 것이다.실제 석유·가스 부존 여부와 부존량은 탐사시추 단계를 거쳐야 확인할 수 있다. 탐사시추를 위해서는 최소 5개의 시추공을 뚫어야 하는데 1개당 1000억원이 넘는 비용이 들어간다. 정부는 첫 시추 일정을 연말로 계획 중이며, 최종적인 작업 결과는 내년 상반기 중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개발 과정에서의 투자 비용은 정부재원과 해외 메이저 기업의 투자 유치를 통해 조달할 방침이다.한국은 지난 2004년 한국석유공사가 생산을 시작한 ‘동해-1 가스전’ 덕분에 ‘세계 95번째 산유국’이란 타이틀을 얻었지만, 2021년 가스전 고갈로 산유국 지위를 잃었다. 시추를 해봐야 정확한 결과를 알 수 있겠지만, 포항 앞바다에 경제성이 풍부한 석유·가스가 생산돼 한국의 경제성장을 견인하길 기대한다. 우리나라가 다시 산유국이 되면 국제 입찰·자원 외교에서 ‘갑의 위치’에 설 수 있다.

2024-06-03

“돈 준다고 아이 안 낳아” 정교한 출산정책 필요

정부는 2006년부터 4차에 걸친 저출산 고령화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줄어드는 인구 문제에 대응해 왔다. 투입된 예산만 무려 280조원이다. 많은 예산을 투입했는데도 인구는 늘지 않았고, 출산율은 거꾸로 떨어졌다. 통계청에 의하면 올 1분기 국내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 수)은 0.7명대다. 정부가 초저출산율 국가로 진입했다고 발표한 2002년 0,18명을 기록한 후 지속적으로 출생아는 감소세다.합계출산율 0.7명은 100명이 70명의 아이를 낳는다는 뜻이다. 통계청은 지금 추세라면 100년 후 우리나라 인구는 1000만명으로 떨어진다고 예측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나라라는 말이 실감나는 예측치다.15년 동안 예산으로 280조원을 투입했는데도 효과가 없었으니 “밑빠진 독에 물붓기” 꼴인 셈이다. 정부가 선전효과만 노려 백화점식으로 정책을 남발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정책의 시스템에 문제가 있음은 분명하다.경북도가 도내 22개 시군을 대상으로 지난 10년간 지출한 출산지원금과 합계출산율을 비교 분석해 보았더니 출산지원금이 합계출산율 상승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돈 준다고 아이 낳는 게 아니라는 해석이다. 현금성 위주 정책의 교정이 필요하다. 경북의 대표적 산업도시인 포항과 구미의 경우는 출산지원금과 합계출산율이 반비례 관계를 보여 현금성 지원보다는 경제적 요인이 더 큰 작용을 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경북도는 이번 조사에서 출산지원금을 시군별로 차등 지급되는 것에 대한 부적합 여론과 시군간 출산지원금 경쟁이 인구 빼가기로 변질되는 문제점도 파악했다.경북도는 이번 결과를 중앙 부처에 알리고 정부 정책에 반영해줄 것을 건의했다. 정부도 출산정책에 대한 획기적 방향 전환에 고심하고 있다. 저출산 해결에 현금 지원이 능사가 아니란 사실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각 지자체가 남발하는 현금성 지원책에 대한 통일된 정책도 검토돼야 한다. 저출산 정책이 더 정교해져야 한다.

2024-06-03

특검이 인민재판은 아니다

김진국 고문 민주주의에는 절제가 필요하다.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표는 많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도 국민이 뽑았다. 각자 자기 역할이 있다. 대통령은 가장 많은 사람의 지지로 선출됐다. 그렇지만 대통령도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국회의원은 법을 만든다. 그렇다고 아무 법이나 만들 수는 없다.흔히 대통령은 뭐든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언론은 대통령이 자기 권한을 넘어서지 않도록 날을 세워 견제한다. 원로원 중심의 로마에서 권력을 집중하던 시저는 암살당했다. 대통령과 의회 다수당이 서로 다른 분점(分占) 정부에서는 대통령과 의회가 대립하는 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 대통령 임기 중에 하는 의회 선거는 일종의 중간평가다. 그러니 감내할 수밖에 없는 대통령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그런데 요즘 일부 야당 의원은 선을 넘어선다. 대통령 선거는 과거이고, 국회의원 선거는 최근이라고 해서, 대통령 선거를 무효로 만드는 게 아니다. 그런데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긴 정당이 대통령의 권한까지 접수한다고 착각하는 듯한 행태를 보이는 의원도 있다.특검도 필요하면 해야 한다. 의혹을 묻어놓고, 두고두고 정치적 갈등을 빚는 것보다 특검으로 진실을 밝히는 게 오히려 오해를 덜 수 있다. 더구나 윤석열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와 관련해서는 너무 예민하다. 그것이 오히려 김 여사에 대한 오해를 증폭시킨다. 윤 대통령과 아주 가까운 사람조차 김 여사 문제와 관련한 조언을 피한다고 한다. 윤 대통령이 버럭 화를 내기 때문이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사이가 멀어진 원인도 김 여사다.그렇지만 민주당 이성윤 의원이 발의한 ‘김건희 종합 특검법안’은 어이가 없다.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했다고 전시 군사정부를 운영하는 점령군이 된 건 아니다. 그런데 모든 수단을 다 끌어다 붙였다. 상상을 뛰어넘는다. 민주당이 모든 권한을 쥐고, 김 여사를 심판하겠다고 한다. 한마디로 ‘인민재판’이다.이 의원은 문재인 정부에서 서울중앙지검장으로서 김 여사를 수사했다. 당시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이었지만,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래서 지휘권을 박탈당한 상태였다. 윤 총장을 털어서 몰아내기 위해 임명된 지검장이었다. 그런데도 아무 결과도 내놓지 못했다. 검찰수사로는 먼지까지 털어도 안 되니, 이제 ‘정치수사’를 해보겠다는 건가.그는 사법 체계를 잘 아는 전문가다. 그런데도 사법 체계를 파괴하며 자기 편할 대로 일방적인 수사를 할 수 있게 법을 짰다. 특검은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추천하도록 했다. 이제까지 여야 정당이 합의해 추천하던 관례를 버렸다. 민주당이 단독으로 추천하려다 비난을 받자, 겨우 선심을 쓴 게 조국혁신당도 추천하라는 것이다.특검을 임명하는 것은 대통령이다. 수사와 기소는 행정부의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국회가 추천한다. 그런데 이 법은 국회가 특검을 추천했는데도 대통령이 3일 이내에 임명하지 않으면, 두 명 가운데 연장자가 자동 임명된다고 규정했다. 사실상 민주당이 임명하겠다는 말이다.행정부만 무시하는 게 아니다. 특별검사는 관할 법원장에게 영장을 심사하고 발부할 전담판사를 지정하도록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이 특검이 기소한 재판은 전담재판부가 신속하게 집중심리하도록 규정해 놓았다. 영장 발부는 물론 재판까지 입맛에 맞는 판사를 지정하겠다는 뜻이다.특검은 검사 10명, 검사 아닌 공무원 20명을 파견받아, 특별검사보 10명, 특별수사관 70명을 임명하도록 했다. 100명의 수사 인력이 최대 170일까지 수사를 벌인다. 관련 범죄 혐의를 자수·자백·제보하는 사람은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하는 ‘플리바게닝’까지 도입했다. 우리 법체계에는 없는 제도다. 이런 법을 던져놓고, 거부권을 행사하면 윤 대통령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꽃놀이패다.박근혜 대통령 특검에서조차 없던 무소불위의 특검이 9개월 동안 대통령실을 휘저으면 국정이 마비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권력을 절제하지 못하면 국민은 더 큰 권력을 주었을 때를 두려워하게 된다. 권력 행사는 넘치지 말아야 한다.

2024-06-02

교육부와 고질라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의대 학생 증원을 둘러싼 사회·정치적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이른바 자유전공(무전공)학부 문제가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의대 증원에 찬성하지만, 전체적인 상황과 미래기획을 입체적으로 조명하지 않은 채 정부가 힘으로 밀고 가는 상황이어서 씁쓸하다. 의견 대립과 충돌을 방지하면서 충분한 대화와 설득의 마당이 선행돼야 했다는 아쉬움이 크다.교육부는 자유전공학부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 Deus ex machina’처럼 단칼에 대학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고전 그리스 비극에서 얽히고설킨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는 방안으로 고안된 것이 ‘기계 타고 오는 신’이었다. 쾌도난마식으로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소하고 표표하게 무대를 떠나가는 위대한 신을 경배한 고대 그리스인들은 행복했을까?!자유전공학부는 새로운 제도가 결코 아니다. 지난 1977년 박정희 정권 시절 말기에 실시된 ‘실험대학’ 제도와 전혀 다르지 않다. 입학하기 전에 전공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1년의 대학 생활을 경험한 후에 전공을 결정한다는 취지로 도입된 것이 실험대학이었다. 하지만 실험은 끝내 실험으로 끝났고, 5년 만인 1982년부터 학과제로 환원되고 말았다.이유는 간단명료하다. 특정 학과 쏠림 현상이 우심(尤甚)한 까닭이었다. 나는 어문계열로 대학에 들어갔는데, 국문·영문·불문·독문·중문·노문학과의 여섯 개 학과가 어문계열 소속이었다. 어문계열 정원이 190명이었는데, 그 가운데 130명 이상이 영문과로, 30명 정도가 국문과로 진학했다. 따라서 30명을 가지고 4개 학과가 운영되는 기형적인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실험대학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김영삼 정권은 1996년부터 이른바 ‘학부제’라는 이름으로 ‘실험대학’을 부활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학생과 교수들의 극심한 반발과 준비되지 못한 교육 현실의 벽에 막혀 불과 3년 만에 좌초하기에 이른다. 1999년부터 학과제로 돌아가는 대신 일부 국립대와 사립대에 ‘자유(자율)전공학부’가 만들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문제는 내년 입시부터 전국 73개의 대학에서 3만 8천 명에 이르는 신입생을 무전공으로 선발하게 된다는 점에 있다. 전체 입학생의 28.6%에 이르는 무전공 입학 인원이 작년의 6.6%에 비해 무려 5배 가깝게 늘어난 것이다. 무전공 인원을 대거 늘리면 한국 대학의 문제가 자연적으로 해결될 것처럼 호도하는 교육부의 행태는 이해하기 매우 어렵다.비인기학과 혹은 기초학문 영역에 속하는 단과대학과 학과 및 해당 대학과 전공 교수와 학생들의 반발과 우려는 불을 보듯 자명하다.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무시한 채 두 차례나 실패한 제도를 앞세워 재정지원을 빌미로 대학을 압박하고 협박하는 교육부 관료들의 두뇌 속에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지 참으로 궁금하다.몇 년에 한 번씩 강남 8학군 학생들을 위한 대입제도 변화로 그나마 존립 근거를 찾아왔던 교육부가 이제는 대학 자체를 송두리째 집어삼키려 하고 있다. 유명무실한 국가교육위원회와 고질라처럼 괴물이 되어가는 교육부의 행태가 우려스럽기 짝이 없다. 아! 교육부여, 대학이여!

2024-06-02

제2의 프랑크푸르트 선언

우정구 논설위원 고(故)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삼성그룹을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도약시킨 획기적 전기가 된 사건으로 유명하다.1993년 6월 7일. 이 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임원 200여 명을 불러모아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 내지 2.5류가 된다”며 “마누라와 자식을 빼고 모두 다 바꿔라”라는 강도 높은 주문을 했다.이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 삼성은 경영의 핵심가치를 양에서 질로 전환하고, 품질경영으로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한다. 기업주의 비전 제시가 성장으로 이어진 모범적 사례로 평가된 선언이다.프랑크푸르트 선언 2년 후인 1995년의 일이다. 삼성 생산 휴대폰 15만대가 불태워지는 이른바 ‘애니콜 화형식’이 거행된다. “품질은 나의 인격이자 자존심”이라는 구호 아래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운동장에서 거행된 휴대폰 화형식 후 삼성의 휴대폰 시장 국내 점유율은 놀랍게도 4개월 만에 50%를 차지한다.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많은 기업의 본보기로 회자되는 것은 선언적 의미 이상의 기업성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 지난달 파업을 결의하자 국내 경제계의 관심이 삼성의 파업 움직임으로 쏠리고 있다. 무노동 경영을 고수하던 삼성에서 파업선언이 나온 것만으로 쇼킹한 일인데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시점이라 삼성이 지금의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일부에서는 프랑크푸르트 선언에 버금갈 제2의 선언이 나와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의 국내 경제 기여도는 국내 기업 중 단연 1위다. 삼성의 대응에 국민적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06-02

포항 해양쓰레기 발생 전국 1위 불명예 벗자

본지는 창간 34주년을 맞아 지속발전 가능한 포항의 성장을 위해 환경오염 문제와 그 해결책을 모색하는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다. 2024년 5월 31일자 1면시리즈에서는 산업화 과정에서 파생한 환경오염 및 파괴에 대한 전반적 문제를 짚는다. 특히 첫 회에서는 바다를 끼고 해양문화도시를 지향하는 포항시가 해양쓰레기 발생량 전국 1위라는 불명예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주요 테마로 강조했다. 해양쓰레기 발생 1위는 글로벌 도시를 꿈꾸는 포항의 이미지에 나쁜 영향을 줄뿐 아니라 포항시민의 자존심에도 상처를 주는 문제이기 때문이다.포항시는 여타 도시와는 달리 청어를 시어(市魚)로 삼고 있다. 바다와 수산업에 대한 비중을 높게 보고 이를 상징화한 것이다. 또 시는 일찍부터 환동해 중심도시를 목표로 시정을 펼쳐왔다. 해양관광, 해양스포츠, 해양관련 먹거리와 볼거리를 개척하고 바다를 낀 도시로서 각종 콘텐츠를 확충하는 데 주력했다.특히 청정해양도시 이미지를 알리고 관광자원을 목표로 호미곶국가해양정원 지정을 위해 노력 중이다. 해양쓰레기 발생 1위는 이런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과 같아 하루빨리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포항의 해양쓰레기 발생은 작년 한국해양대 연구진의 논문 발표로 알려졌으나 포항시 해양쓰레기 수거 실적에서도 이를 증명한다. 포항시가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간 수거한 해양쓰레기는 1626t으로 2018년부터 3년간 수거한 양의 두배다. 매년 그 양이 증가하고 있어 더 문제다. 포항지역 환경단체는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배 위에서 해양쓰레기를 수거 처리하는 하이브리드 특수선박 기술 도입을 주장한다. 기술적인 문제는 관계당국이 검토해 좋다면 서둘러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옳다. 그와 동시에 시민들의 환경의식을 일깨우는 노력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생활 속에서 환경보전을 각자가 실천하는 것은 환경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다.환경오염에 대한 본지의 연재가 자극제가 돼 시민실천운동으로 번진다면 포항의 해양쓰레기 해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2024-06-02

지구당 부활 필요하지만 ‘검은돈 차단’이 관건

‘지구당 부활’이 최근 여야 정치권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 등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들이 지구당 부활을 주장하면서 22대 국회 초반 뜨거운 논쟁거리가 된 것이다. 입법 논의도 시작됐다. 민주당 김영배 의원은 국회 개원 첫날, 지구당 부활을 핵심으로 한 정당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지구당 설치와 후원회 모금을 가능하게 하는 정당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했다.여당에선 ‘취약한 원외조직’이 총선참패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지구당 부활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한 전 위원장은 최근 “차떼기가 만연했던 20년 전에는 지구당 폐지가 정치개혁이었지만, 지금은 지구당을 부활하는 것이 정치개혁”이라고 밝혔다. 여당 당권 주자인 나경원·안철수·윤상현 의원이 이에 동조했고, 이해 당사자인 원외 위원장들이 지구당 부활을 요구하는 성명까지 냈다.지구당은 지역구별 위원장을 중심으로 사무실을 두고 후원금을 받을 수 있는 중앙당 하부 조직이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차떼기’로 불린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을 계기로 2004년 들어 폐지됐다. 당시 지구당 폐지에 앞장섰던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구당은 지역토호의 비리온상이다”며 부활론에 적극 반대하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지구당 부활 논쟁은 반(反)개혁일 뿐 아니라 여야의 정략적 접근에서 나온 말”이라며 비판하고 있다.사실 지구당은 제대로만 운영된다면 정당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제도임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지역구 사무실을 둘 수 있는 현역의원과는 달리, 편법으로 사무실을 운영해야 하는 원외 위원장의 차별해소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국회개원 때마다 지구당 부활 논의가 반복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지구당이 ‘금권선거의 온상’이 될 우려가 아직도 크다는 점이다. 22대 국회에서 지구당 부활을 입법화하더라도 ‘돈 먹는 하마’라는 비판을 차단할 수 있는 투명성 보장 장치는 철저하게 마련돼야 한다.

2024-06-02

어서와, 구미는 처음이지

김장호 구미시장 중장년 세대라면 누구나 옛 장터에서의 정겨웠던 추억 한두 가지쯤은 갖고 있기 마련이다.필자도 어린 시절 시끌벅적한 시장을 구경하며 설레었던 기억이 아련하다. 구미역 앞에는 오랜 전통을 가진 ‘새마을중앙시장’이 자리하고 있다. 그동안 구미의 역사와 함께 부침을 겪어왔다.70∼80년대 전성기를 누리며 구미를 대표하는 전통시장으로 자리매김했지만, 시대가 변하고 지역이 쇠퇴하면서 다른 전통시장과 마찬가지로 밤에는 불이 꺼지고 점점 침체되어 갔다.그랬던 새마을중앙시장이 최근에는 주말 저녁이면 구름 인파가 몰리며,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비고 있다. 지난 4월 새롭게 개장한 ‘달달한 낭만야시장’의 인기 덕분이다.개장 첫 주 4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몰렸고, 일부 가게는 평소의 6배에 달하는 판매고를 올리면서, 시작부터 대박을 터트렸다.다른 지역에서도 많이 찾고 있는데, 서울의 한 방문객은 “서울 명동과 남대문을 옮겨 놓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그동안 구미는 산업도시로 잘 알려졌지만, 그만큼 회색도시, 노잼도시의 이미지가 강했던 것도 사실이다. 오랜 시간을 지나며 굳어진 구미의 이런 이미지를 한순간에 바꾸기란 쉽지 않았다.인식의 전환이 필요했다. 구미가 가진 고유한 특성과 가치를 최대한 활용하고, 주변의 익숙했던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새롭게 디자인하는 작업에 돌입했다.구미의 대표 관광지인 금오산엔 알록달록 깜찍한 의자와 예쁜 포토존을 설치하고 잔디밭 출입도 자유롭게 허용했다. 낙동강 수변공간에는 스포츠 시설을 비롯해 특색있는 휴식 공간과 산책 코스를 더해 새로운 힐링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구미 IC를 비롯한 도심 주요 장소에는 내년 개최되는 ‘2025 아시아육상경기선수권대회’를 기념해 ‘WEICOME TO GUMI’, ‘승리의 주먹’ 등 다이내믹한 조형물을 설치하고 경관조명을 더해 이색적인 볼거리를 선보였다.뿐만 아니다. 젊은이들의 거리 ‘금리단길’은 로컬크리에이터들의 손길로 골목골목 개성을 더하고 있고, 지역특색을 살린 ‘구미푸드페스티벌’과 ‘라면축제’는 새로운 도심 축제의 성공 가능성을 알리며, 구미의 심심하고 지루했던 도시 이미지 틀을 깨부쉈다.돌이켜보면, ‘낭만야시장’도 관행으로부터의 탈피,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수십 년을 이렇게 해왔는데 잘 되겠냐’는 회의적인 시선, ‘대구와 다른 도시에서 이미 하고 있는데 구미에서 성공하겠느냐’는 의구심. 극복해야 했다. 끓는 물 속에서 익숙함을 즐기는 개구리를 기다리는 것은 결국 죽음뿐이지 않은가.국내외 내로라하는 야시장을 찾아 힌트를 얻고, 수차례 난상토론을 거치며 아이디어를 구체화해 나갔다. 그저 그런 야시장으로 끝나지 않도록 전문가들의 참여를 이끌어 완성도를 높이고, 다른 곳과의 차별화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시장 상인들의 적극적인 참여 속에 대학 교수님들의 도움을 받아 조명 하나, 메뉴 개발 하나에도 세심하게 신경 썼고, 한식대가와 외식업계에도 적극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이렇게 해서 ‘달달한 낭만야시장’이 탄생했고, 성공적인 첫발을 내디뎠다. 덕분에 시장 안의 국수골목, 순대골목, 족발골목 등 잊혀 가던 골목길도 오랜만에 활기를 되찾게 됐다.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더 보강해서 야시장의 활기찬 기운을 문화로와 금리단길을 비롯한 원도심 전역에 퍼트리고, 도시 구석구석에 구미의 새로운 색깔을 입혀나가려고 한다.익숙함 너머의 새로움을 발견하고 재창조하는 도시, 깊은 정취와 넘치는 활기로 밤에도 불빛이 꺼지지 않는 도시. 낭만도시 구미의 달달한 매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2024-06-02

나란히 집으로 가는 길

아버지는 6·25참전 용사다. 아버지 집 대문을 지키는 ‘6·25참전 용사의 집’ 이라는 문구를 볼 때마다 나는 가슴이 뭉클해진다. 지금의 내 아들보다 더 어린 나이에 아버지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젊음과 목숨을 바쳐 싸웠다. 전쟁은 많은 상처를 남겼고 많은 것을 잃게 만들었다. 아버지가 끝내 지키고 싶었던 여동생은 지키지 못했기에 늘 가슴 한 조각이 분단된 조국처럼 떨어져 있다고 말했다.70년을 넘게 통일이 되기만을 기다리며 사신 아버지는 아직도 그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동생의 얼굴은 아버지 기억 속에 아직도 선명하다고 했다. 함께 별을 보며 냇가에서 멱을 감던 기억이나 빨래줄에 빨래를 널던 수많은 기억들이 남아 있었다. 전쟁 중 아버지는 목에 파편을 맞아 상처가 깊이 박혔지만 그 상처보다 더 깊은 것은 여동생에 대한 기억이었다.몇 해 전 아버지를 모시고 ‘고성 통일 전망대’에 다녀왔다. 조국분단의 현실을 볼 수 있는 통일전망대로 가는 내내 아버지의 얼굴은 어두웠다. 민통선 지역으로 향하며 출입국 신고서를 작성했다. 안보교육 영상도 보았다. 같은 나라 안이지만 민통선으로 가면 하지 말아야 할 말과 행동들이 많았다. 왠지 삼엄하고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통일전망대 관광’이라는 출입증을 국군들에게 받아 2차선 도로를 달렸다.“이대로 금강산까지 가면 얼마나 좋을꼬”아버지는 어서 이 길이 뚫려야 한다며 도로 옆 바다해변으로 고개를 돌렸다.통일전망대 앞에 오니 계단이 있었다. 통일로 가는 계단이기를 바라며 아버지는 희망의 계단을 올랐다. 지척에 북한 땅이 보인다. 뛰어 가도 얼마 걸리지 않을 땅을 우리는 망원경을 통해 보았다. 어렴풋이 철조망도 보였다. 북한의 해금강, 낙타봉, 송도해변도 눈에 담았다. 남북을 자유로이 오가는 뻐꾸기에게 아버지는 통일의 염원을 담아 메시지를 보냈다. 뻐꾸기가 그 임무를 잘 완수해 줄 것이라 믿는다.아버지의 여동생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생사를 알 수 없다. 아버지는 동생이 살아 있다고 믿었고 북쪽 땅 어딘가에 있기 때문에 만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놓지 않았지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 분단은 우리 민족의 의사와 상관이 없었다. 우리는 암울한 역사를 극복하고 정상적인 역사를 회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하고, 많은 대화로 풀어 나가야 한다. 통일은 헤어진 가족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실제 탈북자가 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통일을 ‘엄마’라고 정의했다. 통일이 되면 엄마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들의 그리움과 고통은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데 늘 걸림돌이 되었을 것이다. 아버지에게도 통일은 늘 마음의 소원이었고 동생이라 정의하는 단어였다.아버지의 슬픈 안색이 기쁜 안색으로 바뀌는 날이 와야 할 텐데 생각하니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많은 이산가족들이 살아계시는 동안 가족을 만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구순을 훌쩍 넘기신 아버지의 기억은 아직도 그림을 그리듯 술술 풀어낸다. 여동생을 만나서 하고 싶은 이야기와 쌓아야할 추억거리가 쌓여 있는데 꿈에서조차 한 번을 만날 수 없는 시간을 한스러워했다. 김경아 작가 분단의 슬픈 현실을 자손들에게 더 이상 물려주어서는 안 된다고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다시 못 올 것만 같은 북한 땅을 원 없이 바라보시다가 ‘덕순아, 덕순아 살아 있거래이’하시더니 발길을 돌렸다. 목숨 걸고 탈출한 새터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나 뿐인 목숨을 걸지 않고도 여행 가듯 남북을 오갈 수 있는 날이 속히 왔으면 좋겠다. 정치 이념 이런 것 다 내려놓고 그저 우리 민족이고 우리말을 쓰는 형제고 우리랑 같은 뿌리니까 쉽게 오고갈 수 있는 길이 열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통일이 되면 아버지 집 대문 앞에 ‘피양 랭면 배달’ 스티커도 함께 붙어 있겠지. 백두산 여행을 마치고 아버지와 고모가 나란히 함께 집으로 들어와 식초와 겨자를 곁들인 시원한 피양 랭면을 드시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리운 금강산’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마음먹으면 등산복 차림으로 다녀올 수 있는 그 곳이기를 바라본다. 아버지의 간절한 기다림에도 세월은 오늘도 기다려주지 않고 구름처럼 흐르고 있다.

2024-06-02

친족상도례를 보완하자

유영희 작가 가정의 달, 5월이 지났다. 가정의 달은 UN에서 정한 ‘세계 가정의 날’에 영향을 받아 2004년 ‘건강가정기본법’에 따라 법정기념일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정의 달에 어린이날을 비롯하여 어버이날, 부부의 날까지 가족 관련 기념일이 많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가정의 달로 지정하면서까지 기념하고 의미를 되새긴다는 것은 가족 간에 화목이 당연한 것은 아니라는 증거일 것이다. 실제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더 깊은 상처를 주기도 한다.심리적 상처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고통받는 자녀들도 많다. 5월이 되면 여지없이 부모의 착취와 학대로 고통받는 자녀들 이야기가 기사에 오른다. 올해 기사에도 딸을 여러 번 신용불량자를 만든 부모가 사위에게도 재산 피해를 주려 하자 인연을 끊고 싶다는 사연이 있었다. 나 역시 모 대학에서 어느 수강생이 부모가 자기 이름으로 대출하여 신용불량자가 되었다면서 자주 결석하다가 끝내 학기를 마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자식들이 이런 피해를 당해도 친족상도례 때문에 부모를 처벌할 수 없고, 어렵게 절연을 결심하고 집을 나와도 가족에게는 주소지와 연락처가 공유되어 피해가 계속되어도 속수무책이다. 친족상도례 때문이다.친족상도례는 고대 로마에서 ‘법은 문지방을 넘지 않는다’는 관습법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문화가 동양의 유교 문화에도 있었다. ‘논어’에서 공자는 아버지가 양을 훔쳤어도 아들이 고발하면 안 된다고 했고, 맹자는 순임금이라면 아버지가 사람을 죽여도 숨겨줄 것이라고 장담했다. 실제로 형법 제151조 2항에는 친족이나 동거의 가족이 죄를 지었을 때 숨겨주는 것은 형을 면한다. 다만, 이런 경우는 ‘친족간 처벌 특례 규정’이다.형법 제328조(친족간의 범행과 고소) ①항에 의하면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 간의 제323조의 죄는 그 형을 면제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것이 친족상도례이다. 그렇다고 모든 범죄에 대하여 친족상도례를 적용하는 것은 아니고, 재산죄에 적용된다. 형제라도 동거하지 않으면 친고죄로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직계존비속 관계는 동거하지 않아도 재산죄에 대해서는 형을 면제받는다. 그래서 방송인 박수홍의 아버지가 형이 한 횡령을 자기가 한 일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친족상도례의 부작용은 앞으로 더 커질 것이다. 2022년 방송에서는 정치인들이 친족상도례를 수정해야 한다는 인터뷰가 있었다. 그러나 아직 개정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정신의학과 의사 이호선은 ‘가족이라는 착각’에서, 자식은 ‘내 것’이 아니고, 부부는 ‘하나’가 아니며, 부모는 ‘어른’이 아니라면서 가족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되고, 가족 간에도 적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처방한다. 그러나 단순히 마음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족에게 자신의 재산권을 완전히 위임하지도 말고, 친족상도례도 시대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 내년 가정의 달에는 친족상도례로 고통받는 자녀들 기사가 더 이상 보이지 않기를 바란다.

2024-06-02

설비의 수명과 비용

엄주선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노화가 진행된다. 노화는 시간의 흐름에 의한 피할 수 없는 변화로 성장기를 지난 성인은 누구나 겪는 정상적인 과정이다. 근력이 떨어지고 피로감이 커지며 장기와 기관에 작용하는 생리적인 능력과 건강 상태가 전반적으로 저하된다. 신체를 작동하는 장기와 기관에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한 몸의 기능에는 이상이 없으나 성능이 저하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생애 주기에 거쳐 우리 몸을 어떻게 관리하는가에 따라 동일 한 나이 대 에서도 근력의 차가 생기고 수명이 달라지게 된다.사람이 영유아기 아동청소년기 중장년기 노년기를 거쳐 죽음에 이르는 생애 주기가 있듯이 생산 공장의 설비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도입부터 사용 열화 폐기까지 설비수명주기가 있다. 이 수명 주기를 늘리기 위해서는 초기 도입 시 공정의 생산품에 맞게 적절한 성능을 발휘하는 설비를 설계하고 적정한 비용을 투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이는 생애 주기의 전체 비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비용을 무조건 싸게 하여 성능 발휘가 안되면 설비 운영비용이 증가하고 성능이 필요 이상으로 크면 도입 비용이 커지기 때문이다.설비 도입 이후는 생산공정에서 필요로 한 때 정상적으로 가동되는 것이 중요하며 관리를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수명과 비용이 크게 달라진다. 사람의 수명도 청결한 관리로 병을 줄이고 발병 시 치료를 잘 해야 늘어나듯이 설비도 고장과 큰 연관이 있다. 설비 고장과 수명의 관계는 마치 욕조와 같은 구조를 하고 있다고 하여 욕조곡선(Bathtub curve)이라 한다. 즉 고장율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초기도입기는 높은 값이었다가 점차 감소하여 정상안정기는 일정한 값을 얼마 동안 유지한 후 시간이 지나 열화 마모가 진행되면 다시 점차로 높아진다는 것이다.설비 초기와 정상안정기 마모열화 고장을 줄여 설비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 비용을 줄이는 것이며 직원 모두가 참여 해야 한다. 고장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꾸준한 관리를 통해 고장이 안 나도록 예방하는 것이며 설비의 작동원리와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고 관리 해야 할 개소를 파악하여 닦고 조이고 기름치는 활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다. 포스코는 이를 마이 머신 활동으로 명명하고 2005년부터 전 직원이 참여하여 추진하고 있다.그리고 병들기 전에 징후를 알아차리거나 병이 날 것을 예측하여 미리 설비를 교체하고 유지 보수하여 예지보전하는 것으로 정비 직원의 주요 업무이기도 하다. 사람도 예방과 예지를 통해 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예기치 못하는 질병에 걸리듯이 설비도 돌발적인 고장이 발생하게 되며 이때는 안전하고 신속한 조치가 필요하다.안전하고 빠른 고장 조치를 위해서는 지식과 경험이 필요한데 경험은 시간이 필요한 반면 지식은 설비의 원리와 구조를 이해하고 운영하는 학습의 영역으로 시간을 뛰어넘을 수는 있기에 더욱 필요하고 강조되는 것이다.

2024-06-02

해양쓰레기와 SRF발전선박, 그리고 바다의 날

유성찬 포항환경연대 공동대표 5월 31일은 바다의 날이다. 바다의 날은 국가마다 다르다. 우리나라는 장보고 장군이 청해진을 설치한 날로 정했다. 미국은 5월 22일, 일본은 7월 10일이다. 흥미로운 것은 바다가 없는 볼리비아에도 바다의 날이 있다는 것이다. 그 날이 3월 23일이다. 이 날은 볼리비아가 칠레에게 전쟁에서 패해서 바다를 빼앗긴 날이다. 다시 바다를 찾기 위해 온 국민이 마음을 다잡는 날이다. 이렇듯 국가에게는 영토가 중요하다. 독도는 경상북도의 땅이고, 대한민국의 영토이다.유엔(UN)에서 정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가 있다. 전 세계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실현하기 위해 2030년까지 유엔과 국제사회가 달성해야 할 목표이다. 2015년 유엔에 의해 채택되었다. 지속가능발전 목표에는 양극화 해소, 빈곤퇴치, 성차별 종식 등 17개 목표가 있는데 그 중에 해양생물보호가 들어가 있다.세계적으로 바다를 지키고 해양생물을 보호하자는 운동이 활성화되고 있다. 그린피스가 고무보트를 타고 석유시추선, 러시아 군함, 일본 포경선에 달려드는 용감한 그린피스 투사들의 사진을 우리는 자주 보게 된다. 인간으로서 지구공동체를 온전하게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하여 빠른 속도에만 관심이 있는 인간종들과 쟁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린피스는 후원금을 받을 만한 활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가 그린피스처럼 살아갈 수는 없는 일. 일상생활에서 직장을 다니고, 아이들을 키우고, 이웃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지역공동체에서 사회활동, 경제적 활동을 해야 만이 우리의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일상의 시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환경운동이 필요한 것이다. 특히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활동에서 환경산업과 환경운동이 결합해야 일반시민들의 호응을 받을 것이라고 필자는 믿고 있다.바다에는 해양쓰레기로 몸살이다. 아니 몸살을 넘어 생명에 해가 되기 시작하였다. 플라스틱 음료수 페트병이나 수산 양식에 사용되는 부표는 해양에서 제대로 수거되지 않는다면, 작은 조각으로 파편화가 진행된다. 하나의 작은 쓰레기가 바다에서는 수십만 개의 작은 오염원으로 나쁜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분자화 되어가는 미세 플라스틱으로 인해 해양생태계를 넘어 우리가 먹는 식품의 안전이나 사람의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치는 범위로 넘어서게 된다.2015년에 발표되어 자주 인용되는 잠벡(Jambeck)이란 학자의 논문에서 육상에서 해양으로 유입되는 플라스틱 쓰레기양이 480만~1270만t으로 추정하였다. 또 우리나라의 해양쓰레기 연간 발생량도 2018년 기준으로 14만5000t 정도라고 한다.태평양 공해상에 떠 있는 쓰레기 지대의 총량이 7만9000t 정도라고 하고, 그 쓰레기 지대의 면적은 180만㎢로, 남한 면적의 16배 정도이다. 진짜 쓰레기양이 어머어마한 것이다.몇 년 전 세계자연기금(WWF)이 낸‘플라스틱오염이 해양생물, 생물다양성,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에서 해양생물종의 88%가 플라스틱 쓰레기로 악영향을 받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전체 바닷새의 90%, 바다거북의 52%가 플라스틱을 섭취한 것으로 추산되며, 인간도 매주 신용카드 1장 분량의 미세플라스틱을 먹고 있다고 밝혔다.실제로 죽은 고래 배 속에서 플라스틱 컵과 비닐봉지 등이 잔뜩 쏟아지는 사진이 찍히는 상황이 해양생태계의 현실인 것이다.포항은 해양관광도시를 지향한다. 포항의 근대화를 일으킨 산업인 철강산업에서 문화적으로 더욱 나아가, 친환경탈탄소 철강산업이 성공하고, 배터리산업, 해양관광산업으로 포항지역공동체가 발전하려면 바다에 대한 특별한 계획이 필요하다. 매년 바다로 유입되는 수십만t의 해양쓰레기, 플라스틱 쓰레기들을 선박을 이용한 SRF(고형폐기물연료) 발전소를 계획해 볼 단계가 아닌가 생각한다.필자가 알기에 국내기업 중에 선박 위에 발전소를 설치하여 노르웨이로 수출한 기업이 있다고 듣고 있다. 발전소에 사용되는 경유 대신에 해양 플라스틱쓰레기(SRF)를 사용하는 선박발전소가 건조되고, 그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에너지를 포항의 배터리에 저장하여 육지로 갖고 올 수 있다면 해양생물, 해양생태계의 지속가능한 안전과 평화는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2024-05-30

정치인의 신의

홍석봉 언론인 21대 국회가 여야의 극한 대치 속에 막을 내렸다. 역대 최악이라는 오명을 남겼다. 21대 국회 후반기 2년 동안 정부 여당은 거대 야당에 질질 끌려가며 여소야대의 설움을 톡톡히 맛봐야 했다. 여야는 지난 28일 정국의 뜨거운 감자인 ‘채상병 특검법’을 표 대결 끝에 부결시켰다. 더불어민주당은 논란이 많은 민주유공자법 등 5개 쟁점법안을 단독 통과시켰다. 윤석열 대통령은 4개 법안을 통과 하루 만에 거부, 폐기시켰다. 14번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다. 국민연금 개혁안도 차기 국회로 떠넘겼다. 우리 정치의 민낯이다. 21대 국회는 2만5830건의 법안을 발의, 이 중 36.6%인 9454건을 처리하는 데 그쳤다. 여야가 사실상 합의했거나, 이견이 없는 민생 법안들까지 줄줄이 밀려났다. 대통령을 겨냥한 특검법과 당 대표 방탄법만 반짝였다. 정쟁으로 날을 샜다. 국회의 직무유기다. 국민에 대한 신의 배반이다.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은 바닥이다. 불신받는 대통령의 현주소다. 거대 야당의 발목잡기와 몽니도 한몫했다. 민주당의 ‘채상병 특검’ 재의결도 윤 대통령 불신에서 기인했다. 젊은 병사의 희생 원인을 밝히고 유사 사태의 재발을 막는 것이 우선인데도 본말이 전도됐다. 야당은 ‘대통령 격노’만 부각시켜 윤석열 깎아내리기에 올인이다.여야 간의 신의는 일찌감치 사라졌다. 정치판의 협치는 기대하기조차 어려워졌다. 장기화하고 있는 의정갈등도 신의 상실이 그 근저에 있다. 정부와 의사집단은 서로 불신하고 있다.서울의대 교수들은 “의대 정원 증원이 지지율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대로 강행한다면 대통령께서는 우리나라 의료계를 붕괴시킨 책임자로 손가락질 받게 될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불신만 쌓여간다.30일 문을 연 22대 국회도 21대 국회와 판박이가 될 공산이 커졌다. 정치판엔 암운만 가득 드리워져 있다. 여야 무한대치 정국 속에 입법폭주와 대통령 거부권이 맞부딪히는 충돌 사례는 더욱 잦아질 전망이다. 민주당은 22대 국회 개원 즉시 특검법 재발의를 공언했다. 국회가 열리자마자 여야 충돌이 재연될 전망이다.진(秦)나라의 재상 상앙(商鞅)은 큰 나무를 옮기는 사람에게 상금을 약속하고 이를 지킴으로써 나라가 백성을 속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고사성어 이목지신(移木之信)이 나온 배경이다.상앙은 법을 어긴 태자의 대부를 처형하고 태사를 형벌에 처했다. 이후 10년이 지나자, 길에 떨어진 물건은 줍지 않았고, 도적이 없어졌다. 백성의 살림은 풍족하고 나라는 부강해졌다. 상앙의 법치주의를 바탕으로 한 강력한 부국강병책은 진시황제가 천하를 통일하는 기틀이 됐다.신의는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다. 개인 간은 물론 기업과 기업 간,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신의가 있어야만 원만한 관계가 이뤄진다. 이목지신은 위정자가 국민에게 믿음을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22대 국회에서는 윤석열 정부와 정치권이 얼마나 국민에게 믿음을 줄 수 있으려나. 통렬한 자기반성과 쇄신에 달렸다.

2024-05-30

대학병원 도산위기, 이게 무슨 의료개혁인가

대구·경북 의사회를 비롯해 각 시·도의사회가 어제 오후 전국적으로 의대증원을 규탄하는 촛불집회를 열었다. 대한의사협회는 “정부가 한국 의료에 사망선고를 했음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전국 권역별로 집회를 열게 됐다”고 했다. 대구·경북 의사회는 대구시 중구 동성로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상호 대구시의사회 수석부회장은 지난 29일 대구아트파크에서 열린 아시아포럼21 주최 초청토론회에서 “전공의들이 SNS에 글을 쓴 것만으로 조사받는 상황이다. 만약 전공의에 대한 법적 제재가 가해질 경우 개원의들도 전면 파업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의대 증원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지 100일이 넘어서면서 전공의 의존도가 높은 대학병원들이 심각한 경영위기를 맞고 있다. 대학병원 중에서도 서울 ‘빅5’와 같은 규모가 큰 병원에서는 하루에 10억원 이상 적자가 난다고 한다.대구·경북지역도 마찬가지다. 경북대병원은 최근 병원장이 내부 전산망을 통해 “의료진의 진료 공백으로 병원 경영이 상당한 어려움에 놓여 있다. 병원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운영 자금이 부족해 금융기관 차입을 고려한다”고 공지했다. 경영위기는 대구가톨릭대병원, 계명대 동산병원, 파티마병원, 영남대병원도 마찬가지로 겪고 있다. 전공의 집단이탈이 계속되면 곧 문 닫는 대형병원이 생길 것이란 얘기가 공공연히 나온다.이런 위급한 상황에서도 의료계는 의대증원 전면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고, 정부는 의사들과 더 이상의 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강경입장이다. 마치 환자를 볼모로 ‘치킨게임’을 하는 모양새다. 의정갈등이 이대로 지속하면 남는 것은 ‘파국’뿐이다. 전공의 집단 이탈 사태가 석 달을 넘어 의대생들의 ‘집단 유급’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들이 유급되면 매년 3000여 명씩 배출되던 신규 의사가 급감할 수밖에 없다. 전공의들이 수련 기간을 못 채우면 ‘전문의’ 수급도 어려워질 수 있다. 이게 무슨 의료개혁인가. 이제라도 정부와 의료계 양측은 한발씩 물러나 타협하는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2024-05-30

서민의 꿈 로또복권

우정구 논설위원 지난해 복권을 관리하는 기획재정부가 복권에 대한 인식조사를 한 적이 있다. 응답자의 74%가 “복권이 있어서 좋다”는 대답을 했다. 당첨 여부를 떠나 복권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대체로 긍정적이다.복권 구매 이유로는 기대와 희망, 행복과 기쁨 등이 가장 많았다. 복권 당첨자가 발표될 때까지 인생역전을 노리는 희망과 기대감으로 행복을 느끼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가 된다.지난해 우리나라 복권 판매액은 6조700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그중 로또복권이 83%로 5조6000억원을 차지했다. 로또복권의 경우는 10년 전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났다.경기 불황과 복권 판매는 비례한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빠듯해진 살림살이를 복권 한방으로 해결해 보자는 대중의 심리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지속되고 있는 국내 경기 불황에도 복권 판매가 역대 최대치를 갱신한 것만으로 불경기가 복권 판매를 부추겼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복권 구매자의 연령층에서 20대보다 60대가 2배가량 많다. 저소득 서민층일수록 복권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는 반증이다.한국의 로또복권 당첨 확률은 814만5060분의 1이다. 3억분의 1인 미국의 로또 파워볼과 메가밀리언과는 비교가 안되지만 행운이 없이는 당첨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2022년 11월 미국 파워볼에서 나온 당첨금은 20억4000만 달러(약 2조8000억원)다. 길을 가다가 번개를 맞고 살아날 확률이라는 소리가 그럴 듯하다.북권 당첨 금액을 올리자는 일부 여론에 정부는 검토한 적이 없다고 했다. 팍팍한 삶 속에서 소소한 위로를 받고자 하는 복권을 무턱대고 당첨금을 올리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5-30

TK 행정통합, 여론 거쳐 특별법까지 가야

대구경북 행정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가운데 다음달 4일 열리는 4대 기관장 간담회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리는 4대기관 간담회에는 홍준표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지사, 이상민 행안부장관, 우동기 지방시대위원장 등이 만나 대구경북 통합의 필요성과 추진 방향, 정부 차원의 지원 방안 등을 논의하게 될 예정이다.4대 기관장의 이날 만남은 대구경북뿐 아니라 전국 광역단체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우며 바라보고 있다. TK 행정통합의 진척 정도에 따라 전국적으로 행정통합의 바람이 일지도 모른다.4자 회동에 앞서 대구시와 경북도는 28일 도청에서 행정통합을 위한 테스크포스(TF) 2차 실무단 회의를 가졌다. 4대 기관장 회동에서 논의할 과제들을 구체적으로 사전 조율하는 자리다. 이 자리서 시도는 양적 통합을 넘어선 질적 통합과 완전한 자치형태의 광역통합을 지향하는 시도지사의 의지도 다시 확인했다고 한다.윤석열 대통령의 지원 지시로 시작된 TK 행정통합은 4대 기관 모임 후 속전속결의 분위기로 진행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실무단 회의에 참석한 김호진 경북도 기획실장은 “역사적인 대구경북 행정통합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고, 황순조 대구시 기획조정실장은 “대구경북 행정통합이 국가 균형발전의 모범적 사례가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비상한 관심 속에 시작하는 TK 행정통합은 지방소멸을 억제하고 수도권 일극체제에 대응하는 지방 생존의 대안이다. 국가와 지역의 미래를 걸고 하는 행정통합이란 점에서 사즉생의 각오가 필요하다.4년 전에도 통합을 시도했지만 시도민 여론이 뒷받침되지 못해 유야무야 된 경험이 우리에게 있다. 2026년 지방선거 때 통합 단체장 선출을 목포로 하는 것만큼 시간이 별로 없다.무엇보다 시도민의 여론 수렴이 제대로 돼야 통합의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22대 국회에서 행정통합 특별법도 만들어야 한다. 지역주민의 뜻이 반영되고 법적인 제도가 만들어진다면 획기적인 통합의 그림이 나올 수 있다. 각오를 새롭게 해야한다.

2024-05-30

봄볕

윤명희 수필가 유모차를 밀고 들어오는 남자의 얼굴이 환하다. 공인중개사인 내 사무실에 그는 가끔 아이를 데리고 온다. 유모차에서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아이를 내려놓자, 아이는 탐색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손녀를 바라보듯이 웃었다. 가끔 보면서도 아이는 오늘도 어김없이 아빠의 바짓가랑이 사이로 숨는다. 고개를 빼꼼히 내밀더니 아랫입술이 삐죽이 나온다. 울음보가 터지기 직전이다. 나는 얼른 손바닥으로 내 얼굴을 가렸다.물기가 그렁한 눈도 잠시, 아이가 아빠의 품에서 내려선다. 우리 사이의 낯선 시간이 짧아지고 있다. 아이는 의자를 당기더니 기저귀를 찬 엉덩이를 올린다. 금방 시들해졌는지 의자에서 내려와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걷는 걸음마다 노랑병아리 소리가 따라다닌다. 아이를 쫓아다니는 남자의 눈이 깊다. 그는 아이의 뺨에 제 얼굴을 갖다 대고는 붕어빵 같으냐고 묻는다. 그는 만날 때마다 그렇게 묻는다. 꼭 닮았다고 하자, 그가 웃었다.몇 년 전, 처음 만났을 때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덤프트럭 운전을 하는 그는 한쪽 다리를 약간씩 절었다. 늘 기름때가 묻은 작업복 차림이었고, 마흔 조금 넘었을 뿐인데 쉰도 더 되어 보였다. 혼자 오래 살아왔던 그가 일이 끝나고 불 켜진 집에 들어가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했다. 아이를 갖는 게 소원이지만 나이가 열 몇 살이나 적은 필리핀 아내는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더 욕심내다 이 순간마저 날아갈까 싶어 포기한다는 그가 안타까웠다.그의 집을 보러 갔을 때였다. 부스스한 모습으로 문을 연 그녀는 재봉 일을 하고 있었다. 재봉질 해 놓은 천들이 작은 방 한 가득이었다. 바닥에는 일감과 먼지가 굴러다녔고, 2인용 식탁 위에는 빈 컵라면 그릇에 빵 봉지가 구겨진 채 있었다. 개수대에는 음식물이 말라붙은 냄비와 그릇들이 포개져 있고, 그 아래에는 빨래 바구니에 미처 담기지 못한 양말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남편이 출근하면 종일 재봉틀 앞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손님인 나를 보지 않고 눈길이 자꾸만 재봉틀로 가는 그녀는 주인이 아니라 잠시 일 하러 온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녀가 언젠가는 자기 고향으로 가 버릴 것 같아 며칠을 고민했다. 그의 눈치를 살피며 가진 재산이 얼마쯤 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전혀 거리낌 없이 계산기를 두드리는 내 옆에 앉아 미주알고주알 통장 내역을 털었다. 두꺼비같이 헌 집 주고 새 집으로 이사하기로 했다. 우여곡절 끝에 이사 하는 날, 그녀에게 새 집에서 예쁜 아기 낳아서 잘 살라고 했다. 그녀는 그의 뒤로 숨으며 더듬거리는 말로 집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같은 동네주민이 된 그들은 종종 우리 사무실에 들어와 직접 커피를 타 마시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비닐봉지에서 사과를 꺼내 내 손에 건네주며 아내가 아기를 가졌다고 했다. 축하한다는 달뜬 내 말에 그는 ‘남들 다 낳는 데요’ 라며 쑥스러워했다. 아빠가 된다고 생각하니 쉬는 날 없이 일을 해도 전혀 힘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매화꽃이 막 필락 말락 하려던 날 저녁, 산책길에서 만난 그가 휴대폰을 쑥 내밀었다. 폰에는 아기 사진으로 가득 찼다. 나는 길가로 물러서서, 입을 오물거리는 갓난아기의 동영상까지 보고 또 보았다.“다들 날 닮았다 그래요”내 옆에 붙어 서서 아기사진을 보는 그의 눈이 빠져들 듯 했다. 그는 가끔 내게 또 다른 사진들을 보여주었고, 또 가끔은 아기를 보여주러 유모차를 끌고 왔다. 볼 때마다 아이는 부쩍 자랐다.아장거리는 걸음으로 돌아다니는 아이를 지켜보며, 그는 며칠 전에 필리핀에서 장인장모님이 다녀갔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들이 딸이 사는 걸 보고 기뻐해서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이제 둘째 낳아야지?’ 라고 하자, 그가 또 웃었다. 집사람이 얼마나 씻고 닦고 하는지 피곤하다는 말이 행복의 비명처럼 터져 나온다. 세월이 거꾸로 가고 있다. 그는 이제껏 보아 온 중에 오늘이 가장 젊어 보인다.엄마가 기다리겠다는 그의 말에 아이가 먼저 문을 열고 나간다. 앞만 보고 걷던 아이가 뒤돌아서서, 내게 뽀얀 손을 흔든다. 햇살 같은 웃음을 보여주고는 종종 걸음을 이어간다. 빈 유모차가 바삐 따라간다. 나는 그들이 건물 모퉁이를 돌아 갈 때까지 마주 흔들던 손을 내리지 못하고 한참 서 있다. 딸을 앞세우고 가는 그의 등에 봄볕이 앉았다.

2024-05-29

삼삼오오 모여, 대구 오오극장

오오극장은 올해로 아홉 살 된 독립예술영화관이다. 이 극장은 위치를 정확히 모르면 어느새 지나쳐 버릴지도 모를 정도로 간판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55라는 숫자가 적힌 간판이 제법 크게 걸려있음에도 불구하고 혹은 눈앞에 두고도 찾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 그러나 영화를 사랑하고 따스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곳을 놓칠 수 없다. 어느 순간 은은한 그 분위기가 삼삼하여 오오극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지 못하기 때문이다.오오극장의 ‘오오’는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영화가 장면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작품 하나가 완성되어 가듯이 ‘오오’는 삼삼오오의 ‘오오’이기도 하고, 55석의 ‘오오’이기도 하다. 하나에서 열까지 전부 다 좋다는 감탄사 ‘오오’라 해도 괜찮다. 또는 어서오라는 뜻으로 ‘오오’라 쓰인 듯도 하다. 인터뷰 자료에 따르면, 층고가 높은 공간에 맞게 좌석을 배치하려다 보니 55석이 나왔고, 이를 극장 이름으로 삼았다고 한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매우 정감 있는 이름이 붙여진 셈이다.이름만큼이나 오오극장은 따스한 분위기가 맴돈다. 건물 입구에 들어서면 여느 극장처럼 상영 영화의 포스터가 벽면에 나란히 붙여져 있다. 무심하게도 툭 걸려있는 영화포스터가 낯선 방문객을 반기는 듯하다. 통유리로 된 1층의 외관은 탁 트여 있지만 사실 안은 잘 보이지 않는다. 유리창에 빼곡하게 적힌 하얀 방명록이 은은하게 안과 밖의 공간을 구분해주기 때문이다. 하얀 글씨로 적힌 수많은 방명록 중에는 오래도록 제자리에서 이어가기를 바라는 문구가 제법 많다. 입구를 들어서면 오른쪽은 잘 꾸며진 서재처럼 영화와 이에 관한 책자들로 즐비하다. 서재의 중앙에는 작은 스크린이 놓여 여러 독립예술영화와 오오극장에 대한 광고 영상이 흘러나온다. 특별작품 설명이나 독립영화에 대한 정보 등 다양한 영화 소식이 은은한 불빛과 함께 따스하게 전해진다. 멀티플렉스의 공격적인 마케팅 화면과는 꽤 대조적인 분위기다.왼쪽에는 예매소와 다방을 함께 운영하는 삼삼다방이 자리하고 있다. 삼삼오오 모여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차를 마시며 소통하는 공간으로 친근한 북카페처럼 보이기도 한다. 예술과 관련된 여러 발행물도 놓여있어 영화 대기 시간에 홀로 즐기기에도 제법 괜찮다. 더불어 마스코트 길고양이 ‘오우삼’의 애옹애옹 울음소리도 오오극장의 정감 있는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린다. 실질 상영관은 입구의 정면에서 보면 제일 안쪽에 있다. 상영관은 스크린과 좌석들이 매우 가깝게 배치된 아담한 곳으로 55석 중 앞의 4좌석은 휠체어를 위한 공간으로 마련되어 있다. 상영관의 안까지 턱없이 들어올 수 있도록 동선에도 신경 쓴 흔적이 엿보인다.1990년대 이전만 해도 한국 영화관은 지금 멀티플렉스처럼 크지 않았다. 대부분 오오극장보다는 규모가 있었으나 단관극장이 많았다. 영화 상영도 서울의 영화관부터 시작하여 지방으로 배급되는 형태였다. 더구나 당시 한국영화는 인기가 많은 편은 아니어서 외국영화가 상영되지 않는 기간에 상영되었다고 한다. 1998년 4월 ‘CGV강변 11’이 개관되면서 여러 편이 동시에 상영되는 다관극장(멀티플렉스)이 등장한다. 또한 상업적 논리와 더불어 한국영화시장이 전면 개방되면서 국내영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졌다. 1999년 2월 영화진흥법이 개정되고, 외국영화에 비해 상업성이 부족했던 한국영화를 지원하는 제도가 마련되었다. 당시만 해도 많은 한국영화들이 이에 속했었다. 이후 한국영화는 점점 좋은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2001년에는 ‘와이키키 브라더스’·‘라이방’·‘나미’·‘고양이를 부탁해’의 앞글자를 딴 ‘와라나고’운동이 일어난다. 이는 상영시장에서 위기에 놓인 한국예술영화를 지키기 위한 관객들의 자발적 관람 운동이었다. 이에 발맞춰 최소한의 상영 기회를 보장한다는 목표로 지원 정책이 이뤄지며, 2007년 서울의 ‘인디스페이스’가 설립된다.이후 지역에서는 최초로 대구의 ‘오오극장’이 들어섰다. 그러나 2014년 이후 지원 정책의 변화와 축소, 코로나19 팬대믹의 영향, OTT 시장의 확장 등으로 인해 독립예술영화관들은 경영 위기로 휘청거리게 된다. 실질적으로 OTT 재택관람이 대세를 이루고,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는 예전에 비해 급격하게 감소했다. 멀티플렉스도 관람객이 줄어드는 상황에 독립예술영화관을 찾는 발걸음은 더욱 뜸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때로는 작은 영화관이기에, 독립예술영화가 주를 이루기에 찾아드는 사람들도 있다. 화려하진 않지만 작은 것에 부여된 의미가 마음에 파장을 일으키고, 독특한 색을 전달하기도 한다. 오오극장은 대구 지역에 기반한 독립영화인과 시민들이 뜻을 모아 만들어진 만큼 처음의 색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관객과의 소통을 위한 홈피와 SNS 운영, 문화적 다양성과 확대라는 극장의 역할, ‘수성못’·‘맥북이면 다 되지요’ 등 대구의 독립영화 상영, 대구영화학교나 다양한 모임 장소 등. 은은한 온기를 품은 오오극장은 방명록으로 남겨진 유리창의 하얀 문장들처럼 오늘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최정화 스토리텔러◇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2024-05-29

22대 국회도 ‘특검정국’으로 얼룩지나

22대 국회가 오늘 개원하지만, 입법폭주와 정쟁으로 일관됐던 21대 국회의 ‘적대적 대치’가 재연될 것으로 예상된다. 의석 192석을 차지한 거대 야권이 윤석열 정부 레임덕을 겨냥해 각종 특검을 남발하며 정국을 아노미 상태로 몰아갈 개연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 탄핵을 겨냥하는 ‘채상병 특검법’은 지난 28일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최종 부결됐다. 국민의힘에서 찬성의사를 밝힌 의원이 5명 있었지만, 재의결 기준을 충족시킬 만큼의 반란표는 나오지 않았다. 야권은 이날 ‘운동권 셀프 특혜법’으로 불리는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과 ‘세월호 참사피해 지원법’ 등 야당 주도로 본회의에 직회부한 법안 4개를 단독 처리했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유도하려는 전략”이라고 반발하며 표결에 불참했다. 민주유공자법은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 이외의 민주화운동 관련자와 가족에게까지 지원을 확대하는 법이고, 세월호지원법은 세월호 피해자의 의료비 지원 기한을 5년 연장하는 법이다.여야의 극심한 정쟁으로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1만6359개의 법안들은 심사도 받지 못한 채 폐기됐다. 이중에는 양육 의무를 다하지 못한 친부모가 자녀유산을 상속하지 못하도록 제한한 ‘구하라법’과 원자력발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의 관리 및 처분 내용을 담은 ‘고준위 특별법’도 포함됐다. 경주 월성원전의 경우, 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임시 저장소가 포화되면 원전 가동을 멈춰야 하는 상황까지 올 수 있다. 국민실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법안까지 정쟁의 도구가 돼 폐기된 것이다.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및 재의결 무산으로 폐기된 채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특검법’의 재추진은 물론,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술자리 회유 의혹 특검법’ 등도 발의할 방침이다. 조국혁신당은 ‘한동훈 특검법’을 오늘 1호 법안으로 발의한다고 한다. 각종 특검을 둘러싼 여야의 전운(戰雲)이 22대 국회 들어 더욱 짙어지는 것 같아 걱정이다.

2024-05-29

환경위기, 지구위기, 인간위기

장규열 고문 백년 전, 미국은 기회의 땅이었다. 주로 유럽으로부터 이민자들이 몰려왔으며 그 가운데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인들도 섞여있었다. 거친 바다를 건너 뉴욕에 도착한 이민자들이 처음 만나야 하는 일은 입국심사와 함께 부여된 소독과 방역. 화생방훈련이라도 하듯이 검역관이 쏘아대는 디디티(DDT) 연기를 뒤집어써야 했다. 새로운 삶을 꿈꾸며 도착한 첫날, 화학살충제의 짙은 연기를 만나야 했다. 그런 연기의 폐해를 고발한 사람이 있었다.레이철 카슨(Rachel Carson)이 1962년에 저서 ‘침묵의봄(Silent Spring)’을 발간하였다. 살충제 속에 들어있는 화학물질이 곤충과 조류, 어류와 포유동물에게까지 해로운 영향을 끼치는 점을 고발하였다. 먹이사슬을 통해 동식물체 생태환경에 축적되어 결국은 지구환경과 인간생태계가 무너질 것이라 경고하였다. 그런 결과, 이민국에서 DDT 사용을 방역과정에 사용하지 않게 되었으며, 사회적으로 광범위한 환경의식이 싹트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새들이 사라지고 들판이 황폐하여 동식물은 물론 사람도 살 수 없는 무섭게 삭막한 봄이 찾아올 터이라고 예고하였다. 카슨은 그야말로 선각자(先覺者)였다.오늘 우리는 어떤가. 산업화와 도시화를 겪으며 지구를 해치고 자연을 훼손하는 일은 중단없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위기에 경고음이 떠오른 지도 십수년이 되었지만 뾰족한 해결책은 제시되지 않는다. 일상생활 가운데 플라스틱 제품과 일회용 편의품의 사용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사회경제적 배경을 둔 인구고령화와 저출산현상과 연합하여 인류의 전성기는 지구상에서 저물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현실 정치는 그들만의 리그에 심취하여 정쟁을 반복하느라 지구와 환경 따위는 우선순위에 올라오지 않는다. 60년 전 세상은 그래도 양심바른 저자의 책 한 권에 마음을 돌렸었는데, 21세기 세상은 오늘 코앞의 이익 말고는 생각이 가 닿지 않는다.6월 5일은 유엔이 선포한 ‘세계 환경의 날(World Environment Day)’이다. 올해 주제는 ‘세대회복(Generation Restoration)’이다. 환경을 긍정적으로 돌이켜 무너져 내리는 세대를 회복하자는 게 목표라고 한다. 즉, 환경회복을 통하여 인구위기의 돌파구까지 모색하자는 것이다. 땅의 힘을 회복하게 하고, 지구표면의 사막화를 방지하며 가뭄을 극복하는 데 일차적인 전략목표를 둔다고 한다. 농업을 지속가능한 산업으로 육성하고 식수자원과 해양환경을 보호하며 도시개발에 있어 자연환경을 균형있게 보존하는 데 역점을 둔다고 한다. 지구환경을 위한 경각심을 전 지구적으로 일으키기 위하여 세계 각국이 재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기로 권하겠다고 한다.우리 정부는 어떤가. 자연환경과 지구자원을 보호하여 자연생태계와 인간문명의 균형적인 상호작용을 확보하고 사람이 살기 좋은 환경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새소리와 물소리로 가득하여 자연과 인간이 함께 숨쉬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지구를 만들어야 한다. 지구는 하나 밖에 없다.

2024-05-29

저출생 대책 특별법 제정, 지금 서둘러도 늦다

경북도가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기존의 틀을 뛰어넘는 대책들을 만들기 위해 저출생 대책 특별법의 제정을 정부에 건의했다. 이철우 경북지사는 이와 관련, “저출생은 국가 존립이 걸린 문제로 일반적 대응으로는 안 되고 특별법을 통해 사활을 걸고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북이 먼저 정책을 실험해 모델을 만들고 전국에 확산시킬 수 있도록 정부 지원을 요청했다. 저출생과의 전쟁을 선포한 경북도는 저출생 극복에 여타 도시보다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저출생 대책본부를 신설하고 저출생 극복 100대 과제도 발표했다. 저출생 극복에 1조2000억원의 예산도 쓰겠다고 했다.그러나 경북도가 구상하는 정책들이 구체적으로 실행되기 위해선 법적 뒷받침이 있어야 속도감 있게 추진할 수 있다. 도청 신도시에 설치할 돌봄 특구만 해도 공감하는 정책임에도 법적 근거가 없으면 실행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정부가 15년 동안 280조원의 예산을 붓고도 저출생 문제가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것은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중구난방식의 정책이 펼쳐진 게 큰 원인이다. 법적 근거로 종합적이고 체계적이며 통일된 정책이 시행됐다면 조금이라도 달라졌을지 모른다. 저출생이 국가적 문제로 야기된 것이 20년 가까이 됐다. 지금 특별법을 만들어도 빠르지 않다. 특별법에 담을 내용을 정부와 정치권이 논의해 신속히 법 제정에 나서야 한다.28일 발표된 통계청의 장래인구 추계에 따르면 30년 후 대구 인구는 2022년 대비 24.3%가 감소하고 2045년부터는 200만명 선도 붕괴된다. 30년 후 경북의 고령인구 비중은 49.4%로 전체의 절반이다. 이는 대구경북의 문제가 아니고 전국적 현상이다. 인구문제를 한 세대를 기준으로 본다면 저출생 대책 특별법의 제정이 다음 국회에서 가장 먼저 다뤄져야 할 사안이다. 시간이 없다.민생법안을 뒤로 한 채 정쟁에 몰두하는 정치권을 보면 걱정이 되는 바 크다. 하지만 저출생 문제 대응에 여야가 다툴 이유가 없다. 정부와 정치권은 저출생 특별법 제정 요구에 적극 부응해주길 바란다.

2024-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