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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봄은 가고 여름이 오건만…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조선의 농부들은 24개의 절기(節氣)로 계절을 구분하며 살았다. 국가 경제의 중심이자 핵심축이던 농사 준비도 그에 따랐다.풍부하고 넉넉한 햇살 아래 세상 만물이 무럭무럭 자란다는 소만(小滿·음력 4월)은 이미 지났고, 벼 같이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 곡식의 종자를 뿌리기에 적당한 시기라는 의미를 가진 망종(芒種·음력 5월)이 바로 눈앞으로 닥쳤다.동서양 불문 시간의 흐름과 계절의 변화를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지구 위에 없다. 지난 수천 년간이 그랬고, 앞으로의 수천 년 또한 그럴 터.소만과 망종이 있는 양력 5월 말과 6월 초 사이는 갖가지 나물 맛있고 나들이하기 더없이 좋은 봄이 서서히 막을 내리고, 황경 75도에 다다른 뜨거운 태양 아래 푸른 바다가 청춘들을 유혹하는 여름의 들머리다. 춥지도 않고 크게 덥지도 않기에 옛사람들은 이 시기를 ‘계절의 여왕’이라 부르곤 했다.헌데 세상사는 ‘여왕’이라 불러도 좋은 이 시절과는 무관한 모양이다. 2024년 망종 직전의 이 나라 정치·경제·사회적 풍경은 여왕이 아닌 ‘여비(女婢)’라 불러야 할 지경이다.온갖 특검법을 ‘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로 정치권이 악머구리처럼 시끄럽고, 월급쟁이와 소상공인 모두가 ‘IMF 때보다 더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진보와 보수로 갈라져 서로를 철천지원수인양 헐뜯는 세태도 지난 정권과 크게 다를 바 없고.망종 다음의 절기는 하지(夏至)다. 지구의 가장 북쪽에서 내려쬐는 햇볕이 세상을 환하고 뜨겁게 밝히는 시절이 목전인 것. 한국의 모든 갈등과 반목이 그 햇볕에 아이스크림처럼 스르르 녹아 화해와 화합으로 양질전화(量質轉化)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5-29

아이들 건강관리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어른들과 달리 대부분의 아이들은 큰 병이 없다. 선천적인 질병만 없다면 태어나고 자라는 시기라 오장육부와 정신이 깨끗하다. 오염되지 않은 물과 같다고 보면 된다. 어른들처럼 술과 담배 안 좋은 음식과 과식 스트레스 등으로 몸이 혹사당하지 않은 상태라 대부분의 아이는 큰 병이 없이 자란다. 병이 없다고 해서 건강하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요즘 아이들은 뛰어 놀아야 할 시기에 뛰어 놀지 못하고 학업 스트레스와 고열량의 음식 섭취로 예전 보다 건강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한의원에 오는 아이들은 밥을 먹지 않는 아이, 감기에 자주 걸리고 낫지 않는 아이, 알러지가 있는 아이 등이 있다. 이 모두 동시에 가진 경우도 있고 하나만 있는 경우도 있으나 보통은 위의 증상과 또 다른 여러 가지 증상이 겹쳐 있다. 그렇다고 이런 경우를 병이 있다고 표현하진 않고 아이가 약하다라고 많이 한다.아이들은 쉬지 않고 움직여야 건강하다. 매일 에너지가 넘쳐나야 건강하고 그 에너지를 방출을 시켜야 한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밖에서 노는게 줄어들어 활동량이 부족하다. 에너지를 방출을 못하고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스트레스가 누적된다. 다들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한다고 앉아 있어 봤을 때의 생각을 하면 된다. 어른이든 아이든 스트레스를 받으면 밖으로 풀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풀지 못한 에너지와 스트레스 누적은 아이에 따라 입맛 저하와 면역력 저하로 이어진다.잘 먹지 않는 아이는 잘 먹게 만들어 줘야 한다. 운동을 시키고 바깥 활동을 늘려야 한다. 학업 스트레스가 심하다 싶으면 공부를 하는 학원 한 두개를 줄이고 집에서 쉬게 하거나 음악이나 미술 관련 혹은 본인이 좋아하는 취미 활동으로 한 두개 바꾸는 것이 좋다. 잘 먹지 않는 아이는 한의원에서 쓰는 한약이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대부분 한약을 먹으면 입맛도 돌고 힘이 나서 전보단 활동적이 된다. 이때 쓰는 한약은 우리가 먹는 음식과 다르지 않을 정도로 순한 약재들만 들어가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 건강기능식품보다 효과도 좋고 안전하다.감기에 자주 걸리고 잘 낫지 않는 아이는 면역력이 저하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원래 아이가 약하게 태어난 경우가 있고 다른 하나는 아이가 아플 때마다 병원에 데려가서 약과 항생제를 먹인 경우가 있다. 아이가 아프면 병원에 가고 상태에 따라 약을 써야 하나 심하지 않은 경우는 집에서 관리를 하는 것이 아이 건강과 면역엔 더 도움이 된다. 당장 아이가 힘들어 하는 것을 보기 힘들다고 아플 때마다 바로 약을 써버리면 아이가 싸울 힘을 잃게 만들어 자라면서 면역력이 올라오지 않는다. 한번은 아파야지 다음엔 덜 아프게 자란다. 부모의 걱정이 도리어 아이 건강을 안좋게 하는 경우도 되니 증상에 따라 집에서 관리를 할 수 있으면 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도 마찬가지로 한의원에서 면역을 높이는 한약을 먹이면 감기 횟수가 줄고 감기에 걸려도 심하지 않게 지내는 것을 볼 수 있다. 한약을 먹고 몸이 좋아지면 감기에 걸렸을 때 집에서 하는 관리는 훨씬 수월해진다.

2024-05-29

뿌리와 날개(下)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독일의 문학가 괴테는 식물을 유심히 관찰했다. 식물이 서로 반대인 두 방향으로 성장한다. 한쪽은 중력에 이끌려 땅 속으로 파고들며, 다른 한쪽은 반중력으로 허공으로 치뻗는다는 것을 신비롭다고 했다. 괴테라고 하면 우리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를 쓴 독일의 대문호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의 직업은 이보다 훨씬 더 많고 다양하다. 시인, 극작가, 소설가, 연극감독, 철학자는 물론, 자연 과학자였으며, 바이마르공국의 재상이었으니 정치가이기도 하였다.괴테는 식물들을 세심히 관찰하고 날마다 스케치하면서 꽃과 잎과 뿌리가 변화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 점에서 괴테는 디테일의 끝판왕인 셈이다. 그 결과 자연과학자였으며 미술가이기도 하였다. 세밀하게 식물을 스케치하여 관찰한 결과를 ‘식물변형론’으로 썼고, 이탈리아 여행에서 기행문 ‘이탈리아 여행’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자연의 색을 감탄한 나머지 ‘색채론’을 집필했다. 그런데 이렇게 자연과학자로 끝나면 괴테가 아니다. 식물을 깊이 관찰한 결과를 조상과, 가정과, 아이들의 교육에까지 생각을 확장했다. 그래서 남긴 그의 명언이 있다.‘우리가 아이에게 줄 유산은 단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뿌리이고 다른 하나는 날개이다.’뿌리는 식물의 밑동으로서 보통 땅속에 묻히거나 물체에 박혀 수분과 양분을 줄기를 지탱하는 작용을 하는 기관이다. 사물이나 현상의 근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의미로 쓰는 단어이기도 하다. 괴테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는 ‘뿌리론’이 우리나라 문학작품에도 있었다. 조선 초기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고 집현전 학자들에게 지시하여 창작한 한글시가인 용비어천가의 2장이다.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니 꽃 피고 열매가 많으니라.” 깊은 뿌리를 내린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 기초가 튼튼한 나라여야 꽃 피고 열매 맺듯 안정되고 번창할 것이라는 비유의 절창이다. 영원무궁한 조선의 미래 발전을 위해서는 나무의 깊은 뿌리같이 조선의 초석이 튼튼해야 한다는 노래이다. 뿌리가 튼튼해야 줄기가 힘차고 튼실할 것이고, 꽃이 탐스럽고 향기로울 것이며, 단단하고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이 자명하다. 아이들에게 뿌리는 조상이자, 부모이자, 가정일 터. 그러니 조상과 부모와 가정의 역할은 튼튼한 뿌리가 되어 아이들이 스스로 힘차고 올곧게 자랄 수 있도록 해 줄 뿐이다.그러면 날개는 무엇일까. 날개는 새나 곤충처럼 허공을 나는 동물의 양쪽에 붙어있는 기관이다. 이는 땅 속에서 땅속으로 내리뻗는 뿌리와 다르게 기댈 곳 없는 공중을 날기 위해 생긴 것이다. 또한 날개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면서 돋거나 자라는 것이니, 뿌리와 달리 스스로의 힘으로 생기는 것이다. 조상과 부모가 날개를 준다는 것은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을 때까지 격려와 지원과 응원을 아낌없이 주면 되는 것이다. 괴테는 식물을 깊이 관찰하면서 동시에 성찰하는 교육철학자가 되었다. 역시 괴테는 괴테다.

2024-05-29

저, 고요하디 고요한 태풍 직전의 세계

나쓰메 소세키는 1905년, 대학 시절 친구였던 마사오카 시키가 창간하고, 그의 사후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던 하이쿠 잡지 ‘호토토기스’의 한 구석을 빌려 연재했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의도치 않은 성공으로, 그야말로 당시 문단에 충격을 던지며 데뷔했다. 이전까지 그는 단지 영문학자로 학교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선생에 불과했지만,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예기치 않은 성공 이후, 쉬지 않고 창작에 몰두해서 결코 길다고는 할 수 없는 10년여의 창작 생활을 통해 과거의 소설과는 다른 새로운 근대적 소설의 한 시작점을 열었다.정치소설이나 가정소설 등 굵직한 스토리와 드라마가 주류였던 메이지 시대의 소설계에서 나쓰메 소세키 특유의 관점과 인간 심리에 대한 통찰은 글쓰기가 창조해낸 세계가 독자에게 특정한 감각이나 감정을 일으키고, 나아가 어떤 생각의 변화에까지 이를 수 있도록 한다는 예술로서의 소설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해도 좋다.단지 흥미 있는 읽을거리로서의 의미에서 벗어나 문학이 자연주의나 상징주의 등, 미술의 예술적 사조를 본떠 예술적 창작을 지향하기 시작했던 그 시기 문학계의 가장 중요한 지분을 그가 차지하고 있다.그리 많다고도 적다고도 하기 어려운 작품들 중에서도 ‘태풍’(1907)은 유독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에 해당한다. ‘도련님’의 다음이자, ‘산시로’를 시작으로 한 3부작의 이전이어서 그런지, 언제나 사건보다는 내면을 오가는 미묘한 심리가 주류가 되는 그의 작품들 중에서도 유독 이렇다 할 사건이 존재하지 않아서 그런지, 알 수 없다. 분명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도련님’에서 들려오는 와글거리는 소리가 사그라들고 난 뒤, ‘산시로’와 ‘그후’ 등에서 마음속에서 파문처럼 일어나는 새로운 인상으로 넘어가기 전, 머뭇거림이 읽힌다. 인간이 자신이 영위해왔던 어떤 일관된 태도를 바꾸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기로 결심했는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그때, 어쩔 수 없는 머뭇거림을 읽어낼 때, 나는 한 없는 인간다움을 읽어낸다. 인간이 행하는 일에 확신 같은 것은 가질 수 없다. 반드시 맞을 수밖에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내딛는 발걸음이야말로 우리를 전혀 인간답지 않은 어딘가로 이끈다.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태풍’의 세계는 고요하다. 애초에 그 세계 속에는 도무지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학자인 시라이 도야와 좌충우돌하는 학생 다카바야시는 사실은 별개의 목소리를 가진 존재가 아니라 소세키 자신의 각각 다른 두 개의 자아이다. 본래 하나였던 두 개의 자아가 만나 어떤 스펙터클한 사건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태풍’의 세계는 분열한 두 자아가 아직 각자의 정체성을 갖지 못하고 서로 마주쳐 어색하게 예의를 차리는 세계다.아직은 내면이라고도, 균열된 자아들의 싸움이라고도 할 수 없는 태풍 직전의 고요함이 지배한다. 그리고 그러한 세계 한 가운데를 “현대 청년에게 고함” 같은 사회주의의 구호가 가로지르고 있다. 이는 분명 무정부주의자인 오스기 사카에가 번역했던 크로포트킨의 ‘청년에 고함’을 가리키는 것이리라. ‘사회’를 향한 주의가 어떤 형태여야 하는가 하는 것조차 아직 명확하지 않았던 시대의 풍경화 같은 것이다.글쓰기 같은 새김의 도구나, 서사 같은 언어 나열의 방식이나, 소설 같은 문학의 한 형식들은 본래 하나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 다른 인간에 대해 전달하는 외침이기도 하고, 언어를 통해 타인에게 보여주는 정교한 그림이기도 하고, 타인의 마음속을 해부하는 해부학이기도 하고, 그 모두이기도 하다.새로운 시대에 글쓰기가, 서사가, 소설이 예전과 같은 의미는 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앞을 향해 내디딜 때 머뭇거리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글쓰기는 여전히 의미를 가질 것이라고, 저 고요하디 고요한 ‘태풍’의 세계가 보여주고 있다./송민호 홍익대 교수

2024-05-28

물에 관한 단상

어릴 적엔 자주 앞 거랑에서 놀았다. 물가에 핀 꽃을 따서 소꿉놀이도 하고 징검다리에 앉아 찰방거리며 물장구를 치기도 했다. 신나게 노느라 신발 한 짝을 떠내려 보내고 쫓아가서 잡으려다 옷만 몽땅 버린 날도 더러 있다. 그런 날은 아버지께 어김없이 혼쭐이 나기도 했지만 거랑은 일급 놀이터에 변함이 없었다. 빨래하는 어머니 옆에서 해진 걸레를 놓고 나무방망이를 두드리는 일도 재미났다. 물수제비뜨기는 좀체 실력이 늘지 않았지만 물풀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버들치는 신기한 구경거리였다.좀 더 자라서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넓은 거랑에서 여름을 났다. 헤엄치는 방법을 배우느라 자갈이 깔린 바닥을 수도 없이 짚어서 손바닥이 얼얼해도 좋았다. 어쩌다 아이들이 놀고 있는 곁으로 풀숲에 쉬고 있던 물뱀이 지나가기도 했다. 혼비백산한 아이들이 괴성을 지르며 흩어졌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물에 들어가 놀았다. 아이들 중 하나가 물뱀은 독이 없다고 말한 때문이었다. 해가 기울 무렵에야 퉁퉁 불어 허옇게 된 손발을 하고 물에서 나왔다. 집으로 오는 길엔 귀속에 들어간 물을 빼느라 머리를 양쪽으로 기울이며 노래를 불렀다.“강물이 많나, 바닷물이 많나”집 뒤 좁은 농수로에서는 주로 물고기를 잡으며 놀았다. 겨우 잡은 미꾸라지가 매끄러운 몸짓을 뽐내며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갈 때의 허전함은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은 아쉬움을 주기도 했다. 운이 좋아 몇 마리의 물고기를 잡은 날은 고무신에 담아 집으로 가져왔다. 물가에 가지 않고도 가까이 두고 바라보고 싶었다. 어항 같은 건 꿈도 꾸기 어려운 시절이었으므로 우물 가까이에 흙구덩이를 파고 거기에 넣었다.희한한 일이었다. 한 두레박의 물을 붓고 얼마 지나지 않으면 물은 까무룩 사라지고 물고기만 남아 팔딱거렸다. 또다시 부어줘도 마찬가지였다. 물은 바짝 마른 마당을 온전히 다 적시고야 고인다는 걸 어릴 적 그때는 알 수 없었다. 논과 밭의 쓰임이 다르다는 걸 알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렸다.한여름 밤이 되면 마을 뒤 거랑은 아낙들 차지였다. 아낙들은 사람들 눈을 피해 캄캄한 밤이 되어서야 땀에 젖은 몸을 씻었다. 달빛도 없는 거랑에서는 아낙들이 서로의 등을 밀어주며 도타운 정을 쌓았다. 낮에 일어난 자잘한 소문도 밤의 거랑에서는 재미난 얘깃거리였다. 물속에서 그들이 나누는 즐거운 수다가 오래오래 여름밤을 적셨다. 그 속엔 어쩌다 우리 어머니도 있었다. 밤 마실 나간 아내를 기다리는 아버지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머니는 모처럼 소리 내어 웃고 있었다. 거랑은 며느리와, 아내와, 엄마로 사느라 지친 아낙들의 마음을 달래기에 마침맞은 곳이었다.열두어 살 될 무렵이었든가. 거랑은 더 이상 아이들의 놀이터도 아낙들의 수다 장소도 아니었다. 윗마을에 염색공장이 대규모로 들어서면서 거랑은 맑은 물 대신 이상한 냄새가 나는 탁한 물이 흘렀다.얼마 지나지 않아 집집마다 있던 맑은 우물마저 뿌옇게 변했고 소독약 냄새 진동하는 수돗물이 식수를 대신했다. 언제든 달려가 안길 수 있는 요람 같은 곳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반짝이는 물가에 철마다 다른 꽃이 피는 꿈결 같은 곳을 잃었을 때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국가의 뜻에 반하는 행위는 그 무엇도 허용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어릴 적 낙원을 잃어버린 나는 추억 속에서만 옛 거랑을 만난다.그 시절에서 멀어진 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나는 논과 밭이 사라지고 모든 거랑은 복개되어 버린 고향을 떠나 산골 깊숙이 들어와 살고 있다. 맑은 거랑물이 흐르는 사철 아름다운 곳이다. 자연이 들려주는 감미로운 노래를 들으며 새로운 낙원에 묻혀 지낸다.하지만 십여 년 전 처음 정착했을 때와 달리 벼농사를 짓던 논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대부분 고소득 작물이라는 사과밭으로 변해서 무논은 찾아보기 힘들다. 논고동이며 소금쟁이, 물방개 따위와 온갖 물풀을 품고 있어 생물의 다양성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던 무논이 사라진다는 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더구나 무논은 공기 중의 습도를 머금고 있어 산불예방에도 적잖은 도움을 준다. 박월수 수필가 주일 미사 시간, 앞들 몇 남지 않은 무논에서 개구리 소리 요란하다. 신부님 강론시간에 왁자하게 끼어들어도 누구 하나 싫은 표정을 짓는 이 없다. 마침 신부님 강론도 생태이야기로 접어든다. 들 가운데 새치처럼 남아있는 무논이 완전히 사라지면 목청껏 울어쌓는 개구리 소리도 따라 없어질까 두렵다.점차 줄어드는 논도 걱정이지만 양서류를 위한 이동통로가 마련되지 않은 것도 개구리를 위협한다. 장마철에 운전을 하다보면 도로를 건너다 죽음을 맞는 개구리를 숱하게 만난다. 성가대 노래 속에 귀한 개구리 합창이 함께 하는데 나는 자꾸 생태계가 무너지는 소리 들리는 것 같다.집으로 오는 길, 논둑에 핀 찔레꽃이 무논에 담긴다. 빠르게 지나던 구름이 그 속에 잠시 머문다. 예전에 앞 거랑 물을 떠다가 장을 담그고 논에서 잡은 미꾸라지로 추어탕을 끓여 몸보신했다는 어르신이 전동차를 세우더니 개구리 소리를 감상한다. 사라질 풍경은 다 아름답다.◇ 박월수 수필가 약력 ·2022년 대구수필가협회 문학상·2022년 경북문협 작가상 등 수상·수필집 ‘숨, 들이다’·청송문인협회장 /박월수 수필가

2024-05-28

수능 6월 모의평가, ‘의대블랙홀’ 序幕 열었다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치러지는 6월 모의평가에 ‘N수생’(재수생 이상)이 대입사상 가장 많이 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입시업계는 27년 만의 대규모 의대정원 확대가 영향을 끼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내년도 의대 정원은 카이스트와 포스텍 등 5개 이공계 특수대학 모집정원 1600명과 비슷한 숫자(1509명)로 늘어난다. 성적이 상위권인 자연계열 출신이면 누구나 의대진학 욕심을 낼 수 있는 인원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따르면, 6월 모의평가에 지원한 수험생은 47만4133명으로 작년보다 1만458명 증가했다. 재학생이 81.3%이며, 검정고시생을 포함한 ‘졸업생 등’이 18.7%를 차지하고 있다. ‘졸업생 등’ 응시자 수는 공식 통계가 있는 2011년 이후 가장 많은 숫자다.대학에 다니면서 다시 입시를 준비하는 ‘반수생’은 1학기 기말고사를 앞둔 시점이라 6월 모의평가에는 보통 응시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9월 모의평가와 본수능에서는 N수생 비율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N수생 급증을 예상한 대형 입시학원들은 이미 대대적인 ‘의대 마케팅’에 들어갔다. 지난 2월 서울 종로학원이 개최(온·오프라인)한 ‘의대 정원 확대 발표에 따른 긴급 재수, 반수 전략 설명회’에는 학부모와 수험생 4120명이 몰렸다. 학원들은 의대 정원이 한꺼번에 늘면서 상위권 대학생뿐 아니라 직장인까지 대거 의대 준비에 뛰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과학·산업계는 인재들이 너도나도 의사가 되기를 희망하면 연구인력을 어디서 구할지 걱정이고, 재학생들의 대규모 자퇴가 예상되는 이공계 대학들도 뒤숭숭하다.지난해 우리나라 초중고 학생들의 사교육비는 27조1000억원에 달하면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올해부터는 ‘의대 광풍’까지 불면서 사교육비는 천문학적으로 늘 조짐이다. 학원들만 신나게 생겼다. 대규모 의대증원이 몰고 올 부작용을 충분히 예측하고도 정책을 강행한 정부가 ‘의대블랙홀’에 어떻게 대처할지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2024-05-28

반도체 인력 완성한 대구, 기업유치에 총력을

산자부가 주관하는 첨단산업 특성화 대학원 공모에서 지역소재 경북대와 포항공대가 선정됨으로써 대구는 비수도권에서는 최대 규모 반도체 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곳이 됐다. 특히 대구가 고교-대학-대학원으로 이어지는 반도체 인력양성 체계를 완성함으로써 타지역과는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게 된 것은 의미있는 결과다. 또 대량의 전문인력을 배출함으로써 반도체 관련 기업의 지역유치에도 청신호가 켜졌다고 할 수 있다.반도체 산업은 세계 경제를 이끌 핵심산업으로 주요국마다 관련산업 육성에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분야다. 한·미정상회담 때 한국을 찾은 바이든 대통령의 첫 방문지가 반도체공장이 있는 평택이었다는 사실만으로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을 잘 알 수 있다.윤석열 정부 정책의 1순위도 반도체 산업 육성이다. 최근 정부가 반도체산업 육성을 위해 26조원을 지원하기로 한 것은 반도체산업 육성에 국가가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는 뜻이다.대구시도 홍준표 시장 취임 후 시스템 반도체 분야를 중심으로 반도체 산업 생태계 구축에 힘쓰고 있다. 특히 이번에 경북대 등이 반도체 특성화대학원 공모에 선정됨으로써 석박사 30명을 포함 대구에서만 1750명의 반도체 인력이 매년 배출되게 된 것은 반도체 기업의 지역 유입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대구시 관계자도 “이를 토대로 반도체 기업 유치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인력양성의 이점을 활용해 반도체 관련기업의 지역유치를 얼마나 성사시키느냐 하는 것이 앞으로의 관건이다. 대구시의 분발이 필요한 때다.홍 시장 취임 후 대구는 첨단산업 도시로 산업구조를 바꾸고 있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국내 반도체 팹리스(설계전문기업) 1위 기업인 텔레칩스 등 팹리스 4곳을 유치했고, 하반기에는 지능형 반도체개발지원센터 개소도 앞두고 있다.반도체 인력의 단계별 양성체계 구축은 지역에 반도체 관련기업을 불러들일 수 있는 절대적 호재다. 대구시 등 관련기관은 대구시 산업의 얼굴을 확실히 바꾼다는 각오로 기업유치에 총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2024-05-28

백해무익의 담배

우정구 논설위원 5월 31일은 세계 금연의 날이다. 세계보건기구가 1987년 흡연의 해로움과 흡연으로 인한 사망 및 질병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제정한 날이다.백해무익(百害無益)하다는 말과 가장 잘 어울리는 것으로는 담배가 으뜸으로 꼽힌다. 담배에는 4000여 가지의 화학물질이 들어있다. 그 중 70가지 이상은 암을 유발할 수 있는 물질로 형성돼 있다고 한다. 담배로 매년 800만명 이상의 사람이 죽는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나쁘고 담배 연기만 맡아도 고혈압, 당뇨병 같은 질병 발생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담배는 처음 고대 마야인들이 종교의식으로 사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유럽 등지로 전파된 것은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면서 부터다. 당시 원주민들 사이 사용되던 담배는 유럽을 통해 전세계로 빠르게 전파됐다.우리나라는 임진왜란 이후 왜군들에 의해 넘어온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시대에는 남령초(南靈草)란 이름으로 불렸다. 남쪽 국가에서 온 신령스런 풀이라는 뜻이다. 이후 남초에서 연초로 바뀌었다고 한다.재미있는 것은 양반은 담배대가 긴 장죽을 물고, 돈 없는 양민과 노비는 담배대가 짧은 곰방대를 물어 담배대를 쥔 모습만 보아도 신분을 구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우리나라에 담배가 들어온 것이 벌써 500년 가깝다. 돌이켜보면 영문도 모르고 기호품으로 즐겼던 시절부터 멋과 낭만으로 담배를 피우던 시절을 지나 지금은 담배가 인류 건강의 적으로 통하는 시대가 됐다.작심삼일에 그치지 말고 이번 금연의 날에는 담배를 끊어보는 것도 해봄직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5-28

포항시민사회의 ‘담론문화 확산’ 응원한다

심충택 논설위원 포항환경연대가 지난주 수소환원제철소 건립을 어젠다로 하는 지역사회 포럼 결성을 제안한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많이 놀랐다. 포럼 의제에 우선 공감이 갔지만, 토론문화가 거의 실종되다시피한 대구경북(TK) 지역에서 어떻게 이런 담론을 제기할 결정을 했을까라는 생각 때문이다.포항지역, 나아가서는 TK지역 발전에 꼭 필요한 개방성·다양성 확보를 위해서는 포항환경연대 같은 시민단체의 담론문화 확산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포스코그룹의 수소환원제철소 건립문제는 포항제철소가 포항에 남을지 떠날지를 결정하는 중대한 이슈이기 때문에, 포항뿐 아니라 TK지역사회 전체가 적극 나서서 해결해야 할 숙제다. 포항환경연대가 언급한 것처럼, 산·학·연과 시민사회, 노동계, 언론계 등 각계가 참여하는 포럼이 하루빨리 결성돼 수소환원 제철 프로젝트 추진과 관련한 다양한 해법이 나오길 기대한다. 포럼을 통한 시민사회의 제안은 정부나 포스코 그룹의 프로젝트 추진속도, 의사결정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수소환원제철 프로젝트가 로드맵대로 진행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포항지역 일부 시민단체가 “바다를 메우면 해양생태계가 오염된다”며 반대하고 있고, 비용도 큰 부담이다. 해외 주요 철강강국들은 정부차원에서 수소환원제철 프로젝트에 천문학적인 지원을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생색내기용 지원에 그치고 있다. ‘수소환원제철 포럼’은 이런 이슈를 심도 있게 토론하고,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TK지역에서 경험하기 힘든 것들 중의 하나는 토론문화다. 대신 이 지역은 계취문화와 저녁모임이 발달해 있다. 도시는 커졌지만 사회문화는 여전히 전통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도시에서는 보편화된 조찬기도회나 조찬세미나도 이 지역에선 찾아보기가 어렵다. 대신 동창회다 향우회다 해서 끼리끼리 모이는 저녁모임은 많다. 사적모임을 선호하는 이런 경향은 담론문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온라인 속에서도 TK지역은 폐쇄적이다.박한우 영남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는 “대구경북 사람들이 스스로를 강자인 줄 알고 있지만, 온라인 속에서는 약자”라고 진단하고 있다. 온라인 공간을 만들어 낸 인터넷은 수평적이고 진보적이어서 위계적이고 보수적인 TK지역과는 화학적으로 잘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박 교수는 특히 이러한 온라인속의 폐쇄성이 지역경제에도 타격을 준다는 분석을 했다. 정치·사회·경제·문화 모든 분야에서 개방적이지 못한 지역이 외면당하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TK지역이 개방적이고 매력적인 도시가 되려면, 지역 현안을 다루는 ‘수소환원제철 포럼’ 같은 담론문화가 온·오프라인에서 활발하게 꽃을 피워야 한다. 그래야 사회전체가 폐쇄성에서 벗어나 광장처럼 열릴 수 있다. 한 가지 제언하고 싶은 것은 곧 출범할 ‘수소환원제철 포럼’에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참여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들어 포럼 멤버 중에 수소환원제철소 건립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어야 건강한 담론이 형성될 수 있다.

2024-05-28

잊혀져 가는 것들의 되새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5월의 햇살과 바람이 참 좋다. 따사로운 햇볕을 받아 만물이 점차 생장하고, 부드러운 바람 결에 연록의 잎새들이 나날이 짙어가며 녹음을 드리우고 있다. 만물이 생장의 기운으로 가득 찬다는 소만(小滿)이 지나자 본격적인 여름날이 시작된 듯 잎새들은 미풍에 가볍게 흔들리고, 들판의 작물들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고른 햇살과 때 맞춰 내리는 비를 맞아 만물이 성장과 윤기를 더해가듯이, 보살핌과 가르침의 은혜로 사랑과 감사가 녹음처럼 두터워지는 푸른달이 막바지로 향하고 있다.봄인가 싶더니 어느새 여름날이 시작되고 문득문득 시간의 타래는 슬렁슬렁 잘도 감겨지고 있다. 예전에 비해 확연히 짧아진 듯한 봄날의 기온도 여름날 못지않게 불쑥불쑥 오르고 있으니, 세월의 갈퀴 속에 모든 것이 조금씩 변하고 달라지면서 세상이 소리 없이 굴러가고 있다. 시간이 지나가거나 물이 흐른다는 것은 영속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시간의 더께가 쌓이게 되면 만물은 빛이 바래거나 퇴색의 갈피를 면할 수 없고, 물과 바람의 철썩임에 자연물도 마멸과 희석의 과정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사람의 기억이나 생각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시간의 흐름에 반비례하여 차츰 희미해지거나 잊혀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생각이나 경험에서 비롯되는 사상이나 감정, 지식 따위도 어느 경계를 지나게 되면 망각의 강으로 흘러가 버리기에 애써 기록으로 남기고 그림이나 형상 등으로 그려 놓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동굴 속의 그림이나 기호, 바위벽에 새겨진 문자 등의 각인물도 좀 더 뭔가를 표현하고 소통하며 오래도록 남겨서 전하려는 바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리라고 본다.이러한 측면에서 나무나 바위 등에 새겨진 글자나 시문 등도 우리의 선조들이 남긴 소중한 문화유산이기에 서사적(書史的)인 측면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의의를 갖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필적이나 서체연구의 매개가 되어 당대의 풍습이나 문화, 명필의 유행 서체 등을 유추, 분석해볼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자연물에 드러난 대부분의 각자(刻字)는 현재 환경적인 관점에서의 자연 훼손물(?)로 간주돼 일반인들의 관심이나 학계의 연구대상에서 멀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 바위 글자엔 풍상과 세월의 이끼가 더해져 점차 등한시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된다.그럼에도 최근 포항지역의 한 서예단체에서는 서예문화유적 답사를 겸한 학술조사로, 포항시 북구 기북면의 유서 깊은 덕동문화마을의 명승 덕연구곡(德淵九曲)의 제2경인 ‘막애대(邈埃臺)’ 바위에 새겨진 글자의 탁본작업을 실시해 고무적으로 여겨진다. 막애대는 덕동마을 앞을 흐르는 용계천 한켠의 거북 형상을 한 ‘속세를 멀리한 너른 바위’라는 뜻으로, 막애대 위에 앉아서 흐르는 물을 보며 심신수양을 했던 곳이라 한다.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었던 막애대 바위가 이번의 탁본작업으로 재조명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무심해졌던 것들에 대한 따스한 시선으로 전통문화와 필적이 깃든 자연물에 대한 관심과 되새김이 필요해 보인다고 본다.

2024-05-28

상상경영의 남이섬이야기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상상경영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사고를 통해 기존의 틀을 벗어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나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경영 방식을 의미한다. 기업이 경쟁력을 유지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한 중요한 일이다. 전통적인 경영방식에서 벗어나 창의성과 혁신을 중시하는 접근법이다. 상상경영을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성하고 이를 실현 가능한 형태로 변환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기존의 제품, 서비스, 프로세스를 개선하거나 완전히 새로운 것을 도입하여 시장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일이다.필자는 모처럼 서울에서 경춘선을 타고 강원도 가평에 위치한 남이섬을 방문했다. 남이섬은 1990년대 버려진 섬을 가꾼 것이지만 만년 적자에 취객이 흥청거리는 지저분한 유원지였다. 2000년 아들과 놀러 왔다가 연봉 100원에 사장이 된 강우현 CEO는 남이섬을 먹고 마시는 유원지에서 문화예술과 자연생태가 어우러진 대표적 관광지로 탈바꿈시켰다. 성공비결은 상상기술이다. ‘국내외 수많은 관광객이 비좁은 공간에서 웃으며 사진 찍는 모습’을 상상하며 미래를 그리고 실행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돈과 사람이 없었던 섬 동네에 주변 사람들을 취업시켜 환경을 가꾸고 실직 위기에 처한 70대 도자기 공을 도자기를 굽게 하고 체험 학습 공간도 만들어 가족이 참여하는 스토리가 있는 섬으로 즐거움을 더하게 했다. 나이보다 할 수 있는 일을 중시하고 활용한 것이다. 공원 내 차량은 전기차로 친환경체제를 갖추었고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공연과 무슬림교 관광객을 위한 기도실도 꾸려 놓는 등 국내외 손님에게 세심한 배려가 있었다.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기업, 정년이 없는 기업을 추구하며 자부심에서 나오는 밝은 표정과 손끝 서비스로 이어지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다. 응용미술과 디자인을 전공한 강 대표는 그림 미술작가답게 ‘구성원의 상상력 수준에 따라 가정, 회사, 국가의 미래 운명이 달라진다’고 했다.여의도의 5분의 1 정도의 면적에 연간 30만에서 185만이 방문하는 관광지로 만들었던 CEO 생각은 상상에는 불가능이 없고 상상을 현실로 만들면 된다. 안 된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 없고 가능성을 믿으면 상상이 현실이 된다. 상상한 것들을 해보라. 쾌적한 환경을 상상했다면 지저분한 것은 치우고, 없으면 만들고 안 되면 다시 하고’라는 생각으로 상상의 정원을 가꾸어 왔다.기업에서 상상경영은 미래의 바람직한 모습을 그려놓고 현재 수준에서 부족한 영역에 대한 전략을 수립하고 목표와 계획을 실행하는 것에 있다. 상상경영의 조건은 개방적이고 창의적인 기업문화를 조성하고 직원들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실험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이 필요하며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성공을 논하는 이론가나 평론가 보다 역 발상으로 ‘배운 것 버리고 가진 것 뒤집으면 아이디어가 생겨난다’. 상상으로 놀이하고 상상으로 경영하고 남이 안 된다는 사고의 관점을 바꾸어 보면 실패의 늪에서 성공의 길로 거듭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상상력과 리더십이 세상을 바꾼다.

2024-05-28

김준태, 목숨을 걸고 쓴 시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죽음과 죽음 사이에/피눈물을 흘리는/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우리들의 아들은/어디에서 죽어 어디에 파묻혔나…(후략)’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에서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시민군이 계엄군에 의해 진압된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수백 명의 희생자를 남기고 비극적으로 끝났다. 그날 광주 전체엔 숨죽인 울음이 가득했다.당시 32세의 전남고등학교 교사 김준태 시인 역시 평생 안고 갈 트라우마가 생겼다. 동료의 아내가 만삭인 상태에서 계엄군에 의해 죽었고, 며칠 전엔 도청 앞에서 10여 명의 사람이 총에 맞아 피 흘리며 쓰러지는 걸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것.김 시인은 팔척장신에 형형한 눈빛이 범을 닮은 강골이다. 하지만, 인간 보편이 느끼는 공포가 그라고 왜 없었을까? 1980년 한국을 지배하던 신군부 앞에서 ‘5월 광주’에 관해 잘못 말했다간 체포와 투옥, 고문을 각오해야 했다. 그런 시절이었다. 그러나, 김준태는 ‘양심을 가진 지식인으로서의 시인’이 되는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광주 거리 곳곳에 피 냄새가 채 가시기도 전인 1980년 6월 2일 전남매일신문에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라는 109행의 시가 실릴 수 있었다.모든 것을 걸고 하는 인간의 행위는 숭엄하다. 앞서 언급된 시는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목숨까지 걸고 쓴 것이니 더 이상 무슨 말을 보태랴. 이젠 일흔여섯의 할아버지가 된 김준태 시인이 편찮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목숨 걸고’ 시를 쓸 수 있는 몹시 드문 시인인 그가 5월 광주정신과 함께 앞으로도 오래 건재하길 빈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5-27

지옥에서 극락을 만들라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까마득한 후배 교수와 같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교정을 거닐었다. 봄은 무르익었고, 오가는 사람들은 무심하거나 행복해 보였다.그러나 나는 혼자 근심을 짊어진 사람처럼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세상은 곳곳이 모두 잘못되지 않은 것이 없건만, 제대로 된 쪽으로 미래 삶의 방향을 틀려 할 때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과 싸움을 벌여야 하는 힘든 길을 걸어온 것이다.내가 소설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답함’에서 하루키의 논리에 대항하고자 했던 것이 쓸데없는 만용이었던 것 같은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하루키는 말했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동안 세 가지 네 가지 문제들이 발생할텐데, 왜 하나뿐인 귀중한 인생을 그렇듯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허비한단 말인가.그때 나는 어떻게든 하루키가 옳지 못하다고 말하고 싶었고, 그의 허무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아내고 싶었다. 오죽하면 하와이에서 하루키가 낭독회를 연다는 소식을 접하고 하루키와 주인공이 만나는 한 장면을 쓰기 위해 왕복 250만원이 드는 난생 처음의 하와이 여행을 계획했더란 말인가.이 소설을 쓴 후, 얼추 십년이 흐른 것 같다. 나의 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했고, 나는 더 많은 문제들에 휩쓸려 있다. 나는 하루키가 비난했던, 나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들에 시간을 바쳐 왔다. 남은 것이 없었다.내 이야기를 들은 젊은 후배가 나를 위해 하나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만해 한용운이 삼일운동으로 감옥에 가서 2년 6개월인가를 살았더란다. 수감되었던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하게 듣지 못했다. 검색으로 확인해보고 싶지만 지금 그럴만한 힘도 없다. 아무튼 긴 시간이다. 감옥에서 나오니, 세상은 지옥과도 같았다고 한다. 그때 만해가 깊이 생각한 끝에 얻은 경구가 하나 있다고 한다.“지옥에서 극락을 만들라.”나는 이 말을 듣고 몸에 전류가 흐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고작해야 스물한 살 때 겨우 한 달을 유치장, 구치소, 교도소를 속성으로 졸업한 내가 아니던가. 만해가 겪은 고통의 크기는 실로 헤아릴 수가 없다.그리고 감옥에서 나와서 본 세상은 이광수의 ‘재생’이나 현진건의 ‘적도’에 나오는 현실처럼 끔찍했을 것이 아닌가. 그런데 지옥을 극락으로 만들겠다니, 이런 의지의 정신력은 과연 어디서 솟아나는 것인가.만 하루가 지난 후 나는 하루종일 집에 틀어박혀 외솔 최현배의 시조에 나타난 ‘님’에 대해 쓰고 있었다. 만해에게만 ‘님’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외솔에게도 ‘님’은 있었다.캄캄한 밤이 되었다. 알고리즘 때문인지 내가 일을 하면서 틀어놓은 유튜브에서 어떤 연세드신 선생 한 분이 성경 강의를 하신다. 열왕기였는지 요한계시록이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한마디 말만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고통을 영광으로 만들라.”옛사람들은 인생이 얼마나 힘든지 진정한 것을 구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2024-05-27

대기업 유통업체의 지역상생, 더 확대되길

대구시가 지난 2012년 전국 처음으로 실시한 대기업 유통업체의 지역기여도 조사가 10년 넘게 시행되고 있다.자본력과 대형매장을 앞세운 대기업 유통업체의 지역시장 잠식을 견제하고 지역과의 상생경제를 도모하자는 취지의 이 제도는 이제 어느 정도 정착단계에 접어들었다.특히 대구시는 전국 최초로 대형마트의 의무 휴일을 일요일에서 평일로 전환하는 파격적 조치를 취했고, 이로 인해 전국 최초로 대형마트와 지역경제가 상생 길을 찾는 선도도시로 주목을 받는다.대구에는 백화점, 대형마트 등 8개 대형유통업체에서 26개 점포가 운영되고 있다. 이들 업소는 대구시의 지역기여도 가이드라인에 따라 매년 10개 항목에 걸쳐 심사를 받는다. 주요 내용은 지역제품, 지역금융기관 이용, 물가관리, 지방세 납부 등으로 대기업이 지역과의 상생경제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지난해는 백화점 ‘더 현대 대구’가 지역기여도 부분에서 최고 평가를 받아 2년 연속 베스트업체로 선정됐다. 더 현대 대구는 지역금융 이용, 용역서비스 지역발주, 지역인력 고용, 지역상설매장 설치, 영업이익 환원 등에서 만점을 받았다. 현대는 “앞으로 전통시장과의 상생활동 및 문화예술 분야에도 새로운 사업을 기획한다”고 밝혀 대기업으로서 상생경제에 모범을 보일 예정이다.지금 우리경제는 고물가, 고금리 등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다. 시장상인을 비롯 소상공인 상당수가 점포 문을 닫아야할지 모르는 고민에 빠져 있다. 대기업에서 작은 일감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소중한 기회는 없을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상생경제는 경제가 어려울수록 더 절실하다.수도권 집중으로 야기되는 지방경제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도 지역에 진출한 대기업 유통업체의 지역경제 기여는 매우 중요하다. 국가가 추진하는 지역균형 발전에도 기여하는 방법이다.대구지역에 진출한 대형유통업체들이 지역에서 번 돈을 지역인력 고용이나 지역상품 구매, 지역사회 환원 방식으로 되돌린다면 그것이 곧 지역경제 상생효과다. 대기업 유통업체의 더 많은 분발이 있길 바란다.

2024-05-27

약자 조롱하며 돈버는 유튜브 채널, 퇴출돼야

최근 경북 영양지역을 비하하는 내용을 담은 영상을 올렸다가 논란을 일으킨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인기 순위도가 급하락하고 있다. 피식대학 채널의 구독자 수는 지난 10일 318만명에서 13일만에 17만명가량 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 채널은 지난 18일 논란에 대해 사과를 하고, 현재는 영상을 비공개로 전환했다.구독자 이탈이 일어난 것은 지난 11일 이 채널이 ‘경상도에서 가장 작은 도시 영양에 왓쓰유예’라는 영상을 올리면서다. 영상을 보면 출연진(개그맨 이용주·정재형·김민수)은 영양지역 하천을 두고 “위에서 볼 때는 예뻤는데 밑에서 보니까 똥물”이라고 비하했다. 마트에서 산 블루베리젤리를 가리키고는 “할머니 맛. 할머니 살을 뜯는 것 같다”고 했다. 한 식당에서는 “메뉴가 특색이 없다. 이것만 매일 먹으면 아까 그 햄버거가 꿀맛일 거야”라고 비꼬았다. 버스터미널에선 청기, 상청, 진보, 입암 등 지명을 보고 “여기 중국 아니냐”라고도 조롱했다.이 영상을 본 영양군민이나 출향인의 충격과 분노는 쉽게 짐작이 간다. 이들 코미디언들은 우리나라 농촌 사회전체를 비하하고 조롱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농촌사회는 하루가 다루게 인구소멸이 진행되면서 모든 생활인프라가 빈약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생활터전에 애착을 갖고 생업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조롱거리로 만든 유튜브 채널은 반드시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동료 코미디언인 박명수도 최근 자신이 진행하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웃기기 위해 뭐든 할 수 있지만 남을 폄하하거나 남의 가슴에 못을 박으면 안 된다”고 했다.지상파TV 개그 프로그램 폐지 이후 많은 코미디언이 유튜브를 통해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로 MZ세대가 시청자인 이들 유튜브 상당수는 구독자 수를 늘리기 위해선 모든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고 한다. 수용자를 웃기기 위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발언을 서슴지 않는 피식대학 같은 유튜브 채널은 우리사회에서 퇴출당하는 것이 맞다.

2024-05-27

허림 시인의 강원도 홍천 방언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세상의 온갖 사물과 사람들이 사물과 교감하는 정서들이 스멀스멀 사라지고 있다. 사람들이 손수 만들어 썼던 물건들이 모두 대량 생산으로 흔해졌다. 그것도 도가 넘어선 대량생산의 결과 옛것들은 모조리 우리 주변을 떠나고 있다. 사라져가는 물건들은 정보화 처리로 디지털 속으로 숨어들면서 우리는 빠른 속도로 잊어버리고 있다.삶의 격식과 엄숙함을 가르쳐주었던 제의(祭儀)도 사라져 버렸다. 동네 당산제, 성황당제에서부터 집안의 온갖 가신제와 부모와 조상의 제사마저 단촐해지더니 어느덧 사라져 가고 있다. 또 어린 시절의 구석구석에 도깨비나 귀신들이 숨어 있었다고 믿었던 성령이 어디로 다 숨어버렸다. 어디 그뿐인가. 페미니즘이 강화되면서 에로스 종말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우리들의 우울한 삶을 물리치도록 힘과 용기를 주던 에로스의 증발로 신생아 출생률이 전 세계에서 최하위로 내려앉았다. 시간의 향기라고 할 수 있는 기다림의 미학을 상실한 시대이다.우리는 새로운 삶의 꼴이 만들어낸 디지털의 터널 속에서 점점 더 외로운 혼자가 되고 있다. 잃어버린 옛 물건뿐만 아니라 잃어버린 우리들의 정서와 삶의 품격, 시간의 향기 에로스의 환희를 어떻게 호명할 수 있을까? 사물의 소멸과 함께 덩달아 사라져 가는 언어, 변두리의 방언들을 시로 불러낸 아름다운 시인들이 여기에 있다. 허림 시인은 ‘봄날의 방언’에서 “그려 방언이며 헛것이 보이겠나”라며 넋두리를 한다.방언은 이젠 헛것처럼 눈에 들어오질 않는 세태가 되었다. 그의 시편에 올올이 박혀 있는 강원도 방언은 소리로 이어진다. “아리라앙 아리라앙 아라리이요오 아리라앙 고오개에르을 너머간다” 한글이 표음문자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유장한 강원도 아리랑이 봄이 되니 그리운 꽃이 피듯 목에 걸리는 강원도 사투리 가락을 옆에 끼고 터억 나타난다.시인 허림의 시각에는 흘러간 시간이 보이고 그 흘러간 시간 속에서는 잊혀진 사물들의 생김새와 소리와 모양과 맛의 느낌이 이미지로 전환한다. “다시 돌아올 것처럼 떠난 자리마다/나무들이 죄인처럼 서서 기다리고/나이테며 잎맥마다 숨겨둔 빛빛의 단풍이 붉었다/나무진골에 묻어둔 전설은 조금씩 잊혀져갔고/능이버섯이나 따라 갔다 따온 개복상 먹으며/벌거지처럼 기어나오는 기억을 잇대보다가/흘러간 신간들은 다 어디로 갈까/우두망찰 바라보는 눈시울 너머/잠행했던 이름들 흩어지고”-허림의 ‘흘러간 시간들은 무엇이 되었을까’시인은 ‘개복상’, ‘벌거지’를 방언으로 꽂아 넣으면서 그리운 시간 속으로 회전한다. ‘우두망찰’ 바라보는 그리움이다. ‘조풍냉이’라는 시에서는 메좁쌀로 빚은 강원도 떡을 불러온다. “보실보실 쪄진 조풍냉이/입안에서 몽글몽글 차지다//어른들 밤바치로 잔치 보러 간 눈먼 날들/젖멍이 도톱해지던 여서너 살 섣달 하순 날이 샌다/, ‘조풍냉이’처럼 잊혀진 젖망울이 도도롬해지던 열서넛 그 시절 여자아이들이 지금 다 어디서 무얼하고 있는지 그립다. 외마디 지르듯 생뚱한 방언들을 흩어놓은 어설픈 방언시가 아니라 정겨운 고향의 소리다.가장 오밀조밀한 방언은 지명에 많이 담겨 있다. 허림 시인의 과거 회상법 가운데 고향의 사투리 지명을 아주 적절하게 이용한 시편은 ‘골말 산지당골 대장간에서 제누리 먹다’라는 작품이다. ‘제누리’는 ‘곁두리’의 강원도 방언으로 농경문화시대 일하는 사이사이에 간식처럼 먹는 음식인데 방언 분화형이 매우 다양하다. “골말, 산지당골, 복골, 붉은데이, 버덩말, 섬터, 아랫비랑, 늘원”등의 지명에서부터 입에 착 달라붙는다. 엄씨 대장장이가 시골에 와서 낫이며 괭이며 벼름하는 대장간에서 제누리를 먹는 시절을 회상하고 있다.농경시대 대장장이를 찾아와 농기구 벼름하다 마을 노인들과 함께 나누어먹는 ‘제누리’의 입맛과 추억은 마치 한 폭의 김홍도의 그림같다. 그런데 이 시에 숨겨놓은 서사적 장치는 풀무질하는 풍구를 시루는 새각시와의 인연이다. 풀무질하다 불길에 붉게 익어 올라 볼이 붉어져 수줍어하는 색시의 모습이 눈에 훤하다. 잊혀져가는 사물들과 정감들을 이렇게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잊혀진 사물들이 품었던 이름과 사물들이다. 방언은 그 오래 묵은 불씨를 일으켜준다.

2024-05-27

니가타의 손창섭

니가타현립대학에서 열린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연구자들이, 본행사를 앞두고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손창섭의 묘입니다. 손창섭(1922~2010)은 장용학과 더불어 대표적인 전후문학 작가로 평가받는 인물입니다. 1950년대는 불구적 인물을 통해 전후의 암울한 시대적 분위기를 탁월하게 형상화했다면, 1960년대에는 당대 사회의 부조리를 드러내는 세태소설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랬던 손창섭은 1973년 돌연 일본인 아내와 일본으로 떠난 뒤, 공식적으로는 한국사회에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손창섭의 일본 내 행적은 최근에 이르러서야 몇몇 연구자들에 의해 조금씩 알려지고 있는 형편입니다.도쿄 인근에 살았던 손창섭의 묘가 니가타현에 있는 이유는, 유일한 혈육인 딸이 이곳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손창섭의 묘는 니가타현의 카쿠타산(角田山) 묘코우지(妙光寺)에 있는 묘원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손창섭의 묘비에는 ‘손창섭’이라는 한국 이름도, ‘우에노 마사루(上野昌涉)’라는 일본 이름도 쓰여 있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곳에는 한자로 ‘道’(도)라는 한 글자만이 새겨져 있었을 뿐인데요. 인기 작가의 온갖 명예를 거부하고, 타국에 가서 은둔자로 살다 죽은 손창섭의 수수께끼 같은 삶과 더불어, ‘道’라는 묘비명은 하나의 화두처럼 제게는 다가왔습니다.묘비에 한국 이름도 일본 이름도 아닌 ‘道’라는 글자만을 남긴, 손창섭의 내면 풍경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요? 이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 우리에게는 다행히 손창섭의 ‘유맹’(한국일보, 1976.1.1.-10.28.)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의 초점화자인 ‘나’는 손창섭이 실제로 그랬던 것처럼 해방 이후 북한 생활까지 경험하였으며, 현재는 남한에 본사를 둔 회사의 일본 연락사무소 소장으로 지냅니다. ‘나’의 관찰을 통해 보여지는 1970년대 ‘유맹’의 재일한국인들은 하나같이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데요. 겉으로 보기에 물질적 풍족함을 누리는 다카무라 고이치(고광일)조차도 정신적으로는 불행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충분한 역사적 개연성을 가진 설정인데요. 식민지 시절 불평등한 다민족 국가였던 일본은 패전 후 새로운 국가를 만들 때, 단일민족 국가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이때 과거에는 같은 ‘국민’이었던 다른 민족은 배제의 대상으로 규정되었으며, 이러한 일본의 태도로 인해 재일한국인은 “일본 사회에서 오랫동안 비가시적인(invisible) 소수자로 존재하기를 강요받아”(권숙인, ‘일본의 ‘다민족·다문화화’와 일본 연구’, 다문화사회 일본과 정체성 정치, 권숙인 엮음,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0, 23면)왔다고 합니다.‘유맹’에서 손창섭의 내면풍경을 보여주는 인물은 ‘유맹’의 초점화자인 ‘나’입니다. ‘나’는 심층심리 차원에서는 한국을 무조건적으로 지향하지만, 표층심리 차원에서 한국을 비판적으로 생각합니다. 반대로 일본문화는 이성적인 차원에서는 긍정적으로 여기지만, 심층 심리나 본능적인 차원에서는 거부의 대상으로 여길 뿐입니다. 그렇기에 ‘나’는 한국과 일본 그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정신적으로 주변화된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나’의 모습에 자꾸만 손창섭이 어른거립니다. 실제로 일본에 건너간 손창섭은 별다른 사회적 활동 없이 그야말로 은둔자로 생을 마감했으니까요. 손창섭 역시 본능 차원에서는 ‘한민족적인 것’에 대한 열렬한 지향을 가졌으나 의식적인 차원에서는 ‘한국적인 것’에 비판적이었으며, 그 사이에서의 분열은 끝까지 해소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요? 이경재 숭실대 교수 이러한 제 생각의 타당성 여부는 손창섭이 말년에 남긴 시조를 통해 어느 정도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얼’(1995.3)이라는 시조에서 손창섭은 “나라꼴 어찌됐던 그 世情 어떠하든/내 비록 故國山川 등지고 살더라도/韓나라 얼이야말로 가실줄이 있으랴”라고 하여, 세태와 인정을 떠난 무조건적인 ‘韓나라 얼’에 대한 지향을 보여줍니다. 이에 반해 ‘은둔(隱遁)’(1993.10)에서는 “이몸은 약삭빠른 재간군이 아니어서/名利에 새고지는 俗世間이 지겨워서/사람과 因緣을 끊고 숨어서만 사옵네”라고 하여, 한국이라고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약삭빠른 재간군’과 ‘명리’를 앞세우는 세상에 대한 염오의 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조들은 손창섭이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이면서도 끝내, “사람과 因緣을 끊고 숨어서만” 살았던 이유를 밝힌 것으로 보입니다.‘유맹’의 ‘나’에게서도 확인되는 것처럼, 손창섭에게는 평생 ‘한민족적인 것’에 대한 본원적인 지향과 ‘한국적인 것’에 대한 조건적인 거부가 공존했습니다. 그렇기에 작가 손창섭은 끝내 어디에도 귀속될 수 없는 영원한 이방인으로 만리타국의 조용한 묘원에 묻힐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길’을 의미하기도 하는 ‘道’라는 묘비명은, 끝내 어느 곳에도 안주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걷기만 해야 했던 손창섭의 ‘인생길’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글·사진=이경재(숭실대 교수)

2024-05-27

어제와 오늘, 내일

강길수 수필가 활짝 웃는 장미꽃들이 금속 담장을 껴안고, 사람을 홀린다. 앞엔 맥주보리가 익는다. 듬성듬성 개보리도 뒤따른다. 5월 하순, 학교녹지의 한 모습이다.올 4월 1일 처음 보리 팬 이삭이 보였다. ‘벌써 보리가 패다니’하고 살펴보았다. 사는 면적도 더 넓어졌다. 보던 보리와 달라 웹을 검색했다. 맥주보리였다. 아마 나무에 거름 줄 때 씨앗이 따라왔겠지. 내 마음엔 맥주보리는 어제, 장미는 오늘, 둘이 함께하여 내일 같다. 문득 옛 고향의 ‘풋보리 디딜방아’가 떠올랐다.그 옛날, 아홉 집이 동기간같이 모여 사는 산골 동네에도 봄이면 어김없이 보릿고개가 닥쳐왔다. 보리가 반쯤 익을 무렵 저녁, 동네 아낙들은 허리춤에 풋보리 두세 됫박씩을 가지고 우리 집 디딜방앗간에 모였다. 저마다 고되게 사는 이야기들을 곡조로 살린 디딜방아 노랫소리는 밤이 이슥토록 흘러나왔다.배고픈 가족들이 보릿고개를 넘을 일용할 풋 보리쌀은 이렇게 마련되었다. 거친 디딜방아 풋 보리쌀로 꽁보리밥을 지어 먹으면, 그야말로 까끄라기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느낌이었다. 밭 있는 집은 풋 꽁보리밥이라도 먹을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집은 송기(松肌)죽, 나물죽 같은 것들로 연명해야 했다.사람은 오늘을 산다. 오늘은 바로 어제에서 왔고, 내일로 이어지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 사람들은 오늘만 있는 듯이 산다. 바보 질문이 저절로 속에서 나온다. ‘오늘은 어디서 왔는가’라고. 오늘이 어제와 닿았다는 진실을 내팽개치고 사는 우리네의 행태가 너무 슬프다.우리의 어제는 어땠는가. 바로, ‘보릿고개’가 온 나라를 짓누르는 때였다. 그 예로, 1961년은 국민소득 82달러란 보릿고개의 해였다. 보릿고개를 넘고야 말겠다는 어제 지도자들의 의지, 결기, 국민의 근면, 자조, 협동이 없었다면 과연 오늘이 있을까. 단연코 없을 터다. 산업화 시기를 학생, 근로자로 살아낸 필자는 감히 장담할 수 있다.저명한 역사가 토인비는 일찍이 ‘문명은 엘리트 지도자들 곧, 창조적 소수의 지도하에 도전에 성공적으로 대응함으로써 등장한다’라고 했다. 나아가 ‘그들이 창조적 대응을 멈추었을 때 쇠퇴하며 민족주의, 군국주의, 전제적(專制的) 소수의 독재정치 등의 죄악에 의해 몰락한다’라고 경고했다.우리 정치꾼들은 나라 곳간 채울 마음은 쪼끔도 없이 퍼낼 궁리만 해 댄다. 권좌에 앉으려는 뻔한 속셈이다. 토인비의 창조적 대응을 훼손하는 소인배 행태다. 솔직히 명절 통행료 면제나 개인당 25만 원 지급 같은 포퓰리즘이 국민 삶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만일 정부가 세금으로 국민을 다 먹여 살린다면 세금은 누가 낼까. 소가 웃을 자가당착이다.우리는 토인비의 ‘창조적 대응’에 주목해야 한다. 어제 나라 엘리트들이 창조적 대응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루어 냈다는 사실을 뜻있는 국민은 다 안다. 기후위기와 전쟁 등 국제 정세 변화는 국민 특히, 정치인에게 어제를 반면교사로 ‘창조적 대응’을 하라고 요구한다. 맥주보리와 장미가 함께하여 아름다운 것처럼….

2024-05-27

교육과 양육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나는 대학 선생이면서 두 딸의 아빠다. 그렇다 보니 아직 아이들이 어리지만, 우리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두 딸의 그림자를 발견하고는 한다. 내 자식의 10년 뒤 모습을 마주하며 어떻게 아이를 양육해야 좋을지 따져보는 식이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 아이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은 보완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요즘 아이들과 소통하기 어렵다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욕망도 포함되어 있다.우리 대학에 와서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로 대학에 입학한 학생을 종종 만났다. 우리 대학에 오기 전까지 나에게 고등학교 자퇴는 공부와 담을 쌓고 술·담배에 익숙한 학생들이나 하는 행동이었다. 몇 년 전 무표정한 얼굴의 자퇴생을 처음 만나던 날의 기억이 선명하다. 표정의 변화는 없었지만 자기가 왜 고등학교를 더 이상 다니고 싶지 않았는지, 또 고등학교 자퇴 후 여행을 다니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 등을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이후에도 수업 시간에 그 어떤 학생보다 멋지기 발표하는 학생의 모습을 보면서 자퇴생에 대한 내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2024학번에도 고등학교 자퇴생이 있었다. 이 학생은 글쓰기 수업의 에세이 쓰기 시간에 자신의 자퇴 경험을 적었다. 고등학교 친구들이 어떤 열정을 가지고 학교에 가는 모습과 그저 급식을 먹으러 학교에 가는 자기의 모습을 비교하며 자퇴를 결심했다고 썼다. 학교생활에 별다른 의욕을 느끼지 못하자, 고등학교 3년이 아깝게 느껴지고, 이는 다시 빨리 대학에 가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간의 시간 동안 몰입했던 그림 그리기가 유일한 즐거움으로 남은 학생이었다.몇 년 사이 별다른 꿈이나 열정이 없는 학생들을 자주 만난다. 어린 시절 자신이 품었던 꿈은 학창 시절을 지나며 각자의 이유로 사라지고 내가 어떤 꿈을 꾸었다는 사실은 아득해진 채 무기력한 상태로 대학에 입학한다. 그렇다고 취업이란 당위명제가 선명한 대학에서 꿈을 발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학생에게 꿈은 직업이 아니라는 간단한 명제를 이해시키는 것에도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반면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조금 다른 경험을 한 친구들은 꿈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아마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고등학생 시절을 자신의 의지로 거부한 경험이 만든 결과일 것이다. 물론 이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했는지 아닌지의 문제가 아니다.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평범한 학생들이 목표와 열의를 가지고 대학에 입학하기 어려운 과정이 문제이다. 여기에는 국가와 가정의 분위기가 큰 원인으로 작용한다.요즘 초등학교 2학년인 첫째가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자주 한다. 평소 국·영·수 과목에 집중하지 못하고 체육과 미술을 좋아하는 성격이 영향을 미친 탓이다. 그럼에도 일단 국어와 영어를 공부해야 한다고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아이가 크면서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학교가 바뀌지 않는다면 의지를 가진 아이로 만들어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게 키워줄 생각이다.

2024-05-27

꼰대학 개론

어도어 민희진 대표의 기자회견이 한동안 이슈였다. 인터뷰의 내용부터 그가 입었던 의상까지 화제가 되었지만 단연 화제의 중심에 있었던 것들은 그가 사용한 자유분방한 어휘였다. 비어와 속어를 넘나들며 등장시킨 단어들은 하나하나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지만 그 중 내게 깊은 인상을 남긴 단어는 바로 ‘개저씨’ 였다.그것은 나의 상황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나는 어느덧 30대 후반이 되었고, 곧 아이 아빠도 된다. 이제 형, 오빠 소리 들을 나이는 지났다는 이야기이다. 누군가 “아저씨!”하고 외치면 가던 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봐야 할 나이. 그 아저씨라는 호칭에 적응을 해야 하는 나이이기 때문에 아저씨와 연관된 단어가 더 인상깊게 남아있는 것이다.개저씨. 개와 아저씨의 합성어로 중장년층 남성 중 무례하고 꽉 막힌 이들을 속되게 칭하는 말이다. 사실 해묵은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수년 전부터 국민들 상호간에 온갖 혐오들이 난무하며 생겨난 혐오 표현 중 하나이다. 한동안 유행을 타다가 시들해진 말인데, 민희진 대표의 입을 통해 다시 화제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무례하고 꽉 막힌 어른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하는데 그 대상을 반드시 남성만으로 한정시킬 의도가 없으며, 다소 거친 표현이기에 이 글에서는 기성세대를 지칭하는 오래된 은어인 ‘꼰대’정도로 바꾸어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꼰대란 무엇일까. 이와 같은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다. 몇 해 전,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처음 뵙는 자리에서였다. 처음 만나는 예비 사위와의 대화가 서먹할 것을 우려하신 장인어른께서는 나름 대화를 나눌 만 한 토픽을 하나 생각해 오셨다. “자네는 꼰대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나는 대답했다. “꼰대는 자신이 꼰대일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혹시 장인어른께서 ‘내가 꼰대는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신다면 그것은 이미 장인어른께서 꼰대가 아니라는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장인어른께서는 흡족한 미소를 지어주셨다.꼰대는 이와 같이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며,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자면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사람이다. 이 두 가지 특성이 절묘하게 버무려져 권위의식이라는 결과물을 도출해내기도 한다. 자신이 젊은 세대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그러므로 젊은 세대에 대해 예의를 갖추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들이 바로 꼰대이다.꼰대들에게도 젊은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이들 모두가 그때부터 꼰대였으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꼰대는 어떻게 탄생하는 것일까? 꼰대의 기질은 사실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자기가 옳다는 아집이 있고, 때로 무례해지는 순간도 있다. 그렇지만 그 정도에 차이가 있고, 그것을 얼마나 잘 억누르고 사느냐의 차이도 있다. 젊어서는 깊은 곳에 숨겨 두었던 꼰대 기질이 나이를 먹으며 자연스레 발현된다. 계기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결국은 ‘그래도 된다’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 꼰대 기질 폭발의 시발점이 된다. 무조건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는 이야기를 쏟아냈는데, 그리고 무례한 행동을 했는데 내게 돌아오는 불이익이 없었던 경험들. 그것이 반복되며 ‘아, 나는 이래도 되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이런 것들이 몸에 배며 한 사람의 꼰대가 탄생하는 것이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그렇다면 이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유전적으로 질병 인자를 갖고 있다고 해서 누구나 이른 나이부터 그 질병으로 고통 받으며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앞으로 발현될 질병을 미리부터 검진을 통해 예방하려 노력하고, 또 누군가는 이 질병이 고개를 들기 시작할 무렵부터 미리 다스리며 질병이 생활을 지배하지 않도록 조치하곤 한다. 우리는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미리 스스로에게 ‘내가 혹시 꼰대는 아닐까?’ 하는 질문을 때때로 던져야 한다. 혹시 스스로의 언행을 돌이켜봤을 때, 권위적이었거나 무례했다는 것이 생각난다면 빠르게 사과하고 반성해야 한다.20대와 30대 시절에는 각기 그 시절에 가지게 되는 특성을 지니며 살아가게 된다. 사람들마다 편차는 있지만 대부분 그 특성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런데 40대 이후로는 사람들의 성격이나 라이프스타일이 천차만별이 된다. 누군가는 여전히 20대 못지않게 ‘힙’하고 누군가는 여전히 30대 못지않게 세련된 삶을 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또 누군가는 40대에 벌써 꼰대, 개저씨가 되기도 한다. 어떤 삶을 살지는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2024-05-27

좋은 어른에 대하여

스승의 날을 맞아 학생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애틋한 마음으로 함께 문학을 공부했던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문득 한 친구가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 개인적인 상황 때문에 힘들었는데, 그때 내가 좋은 어른의 역할을 해주어서 고마웠다는 것이었다.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멍해졌다. 나는 오랫동안 좋은 어른을 만나기를 바라왔으나 그것이 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은 보다 크고 본질적인 영역이었다. 연기처럼 피어나는 의문을 곱씹어보았다. 정말 나는 좋은 어른일까. 그러니까 좋은 어른이란 대체 무엇일까.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어른이다. 친구들은 각자 배우자를 찾았고 한 생명의 부모가 되었으며 자기 분야의 전문가로 거듭나는 중이다. 그러나 그건 삶의 모든 부분을 유려하게 운영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있고 내 안의 어떤 부분은 너무나 유치하고 저열해서 차마 글로 쓰지 못할 정도다. 학생들이 보았던 내 모습은 모두 꾸며낸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좋은 사람이라는 가면을 쓰고 어른의 언어를 흉내 내고 있던 것일 수도 있다.돌이켜보면 나는 꽤 요란스러운 사춘기를 보냈다. 내가 어디에 발을 디디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끊임없이 시스템에 의문을 품었다. 그런 내게 만족스러운 답을 건네주는 어른은 없었다. 부모님은 늘 바빴으며 선생님은 돌발적인 질문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교실에 앉은 아이들은 모두 같은 자세로 앉아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러면 나는 비뚤어진 마음이 들어 교실을 박차고 나와 버리곤 했다. 교무실 한복판에서 벌을 받고 엄마에게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지 못했다. 주먹을 꾹 쥐고 생각했다. 학교를 벗어나 넓은 세상으로 가면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이십 대의 내가 들떠있던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당시의 나는 나를 옥죄고 있는 모든 형태의 억압에서 벗어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날이 밝도록 술을 마셨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번 돈을 흥청망청 썼다. 그런 행동이 즐겁기는커녕 우울하고 불쾌한 감정이 더 자주 찾아왔다. 둘러보면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술집에 둘러앉아 세상의 부조리함에 관해 한참 토로하다 보면 날이 밝았고 나는 패배한 장수처럼 어깨를 늘어뜨리고 집에 돌아와야 했다. 문학하는 선생님들을 따라다니며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문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날도 잦았다. 그 안에 삶의 거대한 진실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너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어. 이곳으로 넘어오면 너도 답을 알게 될 거야.시간이 흐르며 나는 내가 제대로 질문하는 법조차 모르는 사람이었단 걸 깨닫게 되었다. 누군가 자신 있게 정답이라고 외쳤던 것이 그의 오만함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고 억지로 움켜쥔다고 해서 내 것이 될 수 없음을 이해하는 순간도 찾아왔다. 기성세대와 대화하면 경험할 수 있는 묘한 장벽 같은 것이 이런 식으로 생성되는 것일까. 정신 차려보니 나는 삶의 한복판에 놓여있었고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위치에 서 있었다. 교실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당차게 삶을 박차고 나오고 싶지만 고개를 젓고 자리에 앉게 된다.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이젠 내가 안다. 도망치는 게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너무 쉽게 타인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 요즘이다. 규칙적인 운동과 철저한 식단으로 건강을 관리하는 이들과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둔 이들, 괴로운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위기를 기회로 만든 이들의 이야기를 클릭 한 번이면 무한으로 시청할 수 있다. 그것들은 너무나 매끈하게 빚어져 있어서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들은 인생의 답을 찾은 듯하고 그를 토대로 젊은이들에게 ‘인생 조언’을 내놓기도 한다. 그토록 원하던 어른들의 이야기가 우르르 쏟아지는 데도 마음이 채워지기는커녕 헛헛하게만 느껴진다.시간은 아이를 어른으로 만든다. 모두가 어른이 되지만 모두가 좋은 어른이 되진 않는다. 어쩌면 좋은 어른이라는 건 허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좋은 어른은 꼭 필요하다. 정신적으로 기댈 곳이 없는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건 믿음이다. 믿음은 타인이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부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자신이 어떤 어른으로 살아갈 것인지에 관해 상상하고 그것을 믿어야 한다. 거기서부터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2024-05-27

진실은 진실이고, 거짓은 거짓이다

김진국 고문 여의도에서는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없다. 옳고, 그르고, 잘잘못을 칼로 가르듯 나누는 서초동과는 다르다. 정치에서는 완승이 아니라 타협과 상생을 도모하고, 지향한다. 그런데 타협과 상생은 사라지고, 진실을 감추는 탈진실만 남았다.고(故) 장자연 씨의 동료로 알려진 윤지오 씨는 거액을 모금해 캐나다로 달아났다. 윤 씨의 말에 권위와 신뢰를 얹어준 건 안민석 민주당 의원이다. 재판 중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총선을 압승으로 이끌고,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최대의 승리를 거뒀다. 민주당의 양문석·김준혁 당선인은 당에서 거들어 줄 수 없을 정도로 논란에 휩싸였지만 너끈하게 당선됐다. 유권자에게도 진실보다 정치적으로 누구 편이냐가 중요하다.정보가 전달되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이런 변화가 가속됐다. 숙고하고, 사실을 확인해 전달하는 전통 미디어는 상대적으로 느리다. 인터넷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만큼 영향력이 줄었다. 사실을 확인하지도, 책임을 지지도 않는 일인 미디어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오죽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퇴임을 앞두고, 기자회견이나, KBS나 MBC 같은 공영 방송도 아니고, 유튜브 개인 방송을 불러 인터뷰하고, 억울함을 호소했겠는가.현직 대통령이 공영 방송보다 유튜브를 찾은 것은 일대 사건이다. 대통령이 국정 장악력을 잃었다는 간접증거고, 전통 미디어가 신뢰는 물론 영향력도 잃어버렸다는 선언이다. 이미 팩트 체크는 의미가 없고, 미디어도 우리 편이냐, 아니냐부터 따진다는 말이다.한국만 그런 게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8년 전 후보로 나왔을 때 뉴욕타임스나 CNN 같은 전통적인 대표 미디어들을 ‘가짜 뉴스’라고 낙인찍었다. 그러고는 트위터(현재 X)를 통해 자기주장을 공개했다. 트럼프의 복잡한 사생활은 지금도 시빗거리가 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모두 가짜 뉴스(fake news)라고 몰아세웠다. 성공했다. 그래서 대통령이 됐다.지지자들은 열광했다. 심지어 2021년 1월에는 트럼프가 대통령 연임에 실패한 뒤, 의회가 이를 인증하지 못하도록 의회를 점령하는 난동까지 부렸다. 미국 같은 민주주의 선진국에서. 군중을 자제시키기는커녕 자극한 트럼프 책임이 크다.진실은 묻혔다. ‘트럼피언’(트럼프 지지자)의 진실과 일반 미국인의 진실이 달랐다. 트럼프의 극렬 지지자들인 ‘MAGA’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는 노골적인 거짓말이 난무했다. 사람들은 그 말을 믿었다. 진실도, 거짓도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의 사회로 변했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이 2016년 올해의 단어로 ‘post-truth(탈진실)’를 선정했다. ‘사실’과 ‘거짓’의 경계가 모호해졌고, 사람들은 추측을 쏟아내지만, 그것을 증명하는 책임은 지지 않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제 다시 재선을 노린다.민주주의 선진국인 미국의 탈진실 상황은 세계 시민을 경악하게 했다. 미국이 저 지경인데, 우리는…. 그해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를 겪었다. 사드 배치와 관련해 민주당 의원들은 “강력한 전자파 밑에서 내 몸이 튀겨질 것 같아, 싫어”라고 노래 부르며 춤을 추었다.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으로 수산물시장이 된서리를 맞았다.조국 대표의 법무부 장관 임명 검증을 계기로 불거진 갈등은 서초동과 광화문에서 각각 촛불 군중집회로 세 대결을 벌였다. 대한민국이 서로 다른 세상으로 쪼개졌음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 분열의 틈바구니에서 ‘공정’이라는 시대 정신이 선택한 사람이다. 그 역시 부인 문제에서는 진실을 마주하기를 두려워한다.정치는 억지를 부린다. 결코 승복하는 법이 없다. 정치권이 논란을 벌이면 끝까지 평행선이다. 언론도 정리하지 못한다. 진실을 알아도 반론권을 줘야 한다. 정치적 적대자들에게 기계적으로 공평한 기회를 준다. 진실이나 거짓이나 꼭 같은 시간과 지면을 준다. 심지어 스스로 어느 한 진영에 서는 미디어도 있다. 이런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허상을 깬다는 게 명분이다. 정말 혼돈의 시대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5-26

지속가능한 아름다운 삶의 지혜

신일철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매년 식용으로 생산되는 모든 식품의 약 3분의 1이 처리과정에서 손실되거나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낭비된다. 특히 음식물 쓰레기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8%를 차지한다. 세계적으로 음식물 쓰레기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 비용은 연간 약 1조 달러에 달한다. 이런 낭비가 왜 발생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이제는 던져 보아야 한다. 의식주는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것으로 생존을 위해 먹거리가 특히 중요하다.그러나 이를 만들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인류의 생존에 오히려 위협을 주는 자원의 낭비와 각종 폐기물이 발생되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환경이 심각하게 오염되는 모순적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이제 이러한 위협에 정면으로 맞서는 지혜를 발현하고 상응하는 해결책을 만들어야 한다. 낭비는 도대체 왜 발생하는가? 낭비 발생의 근본적인 원인과 이를 줄이거나 없애는 아이디어에 대한 접근을 해야 할 시점이다.쌀이 따뜻한 한 그릇의 밥으로 식탁에 오르기까지는 모내기에서부터 도정 그리고 도소매유통과정 등 약 15단계를 거친다. 농부의 정성과 자연의 배려가 함께 하고 어머니의 정성으로 식탁에 오르는 것이다. 다른 곡류나 채소도 유사한 생산 제조와 보관 및 유통의 단계를 거친다고 판단된다. 낭비는 이러한 전 단계를 세부적으로 구분하고 관찰해야 도출이 가능하며 다양한 해법을 연구하여 사회적 협의와 합의과정을 거쳐 개선방안을 시행하여야 한다. 식당에서도 반찬 류는 적당한 종류와 필요량으로 변화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버리는 음식물의 양에 따라 처리비용을 부과하고 가정에서도 버리는 양을 줄이는 노력이 한창이다. 모든 변화는 나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필자는 만들기 전과 만드는 과정 그리고 만들고 난 후로 시점을 구분하고자 한다. 만들기 전에 꼭 필요한 것인가? 고객은 누구인가를 생각해보는 습관이 주효하다. 만드는 과정에서는 필요한 때에 필요한 양만큼 낭비없이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만들고 난 후에는 필요로 하는 고객에게 납품하거나 판매한 후 잔여분을 처분하거나 버릴 때 3R활동 즉 Reuse(재사용), Recycle(재활용), Remove(폐기)를 철저하게 실시하여야 한다. 재사용할 때 효율적 방법과 자원으로 재활용할 때 아이디어를 최대한 발현하고 최후의 방법으로 폐기처분하여야한다.개인과 가정 그리고 기업과 국가적 차원에서 ‘올바른 것을 제대로 하자’의 원칙을 지켜나가야 겠다. 처음부터 불필요한 것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야한다. 만드는 과정에서 오류와 실수를 제거해서 불필요한 것이 발생되지 않도록 한다. 부득불 발생하는 잉여품과 부산물 그리고 폐기물은 최대한 재활용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폐기하여야 한다. 시작과 과정 그리고 결과에서 낭비가 발생하지 않도록 고민하고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상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1:10:100의 원칙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모든 일을 시작부터 올바르게 하면 과정에서 발생하는 10배의 비용과 결과에서 발생하는 100배의 비용을 아낄 수 있다. 낭비로 인한 막대한 처리비용을 후손에게 전가하지 말고 지속 가능한 아름다운 삶의 환경을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2024-05-26

문제는 바로 팩트야

유영희 작가 한 달 전, 메일 한 통을 받았다. 시민팩트체커 활동을 권유하는 메일이었다. 알아보니, 한국팩트체커커뮤니티(Korean Factcheckers’ Commu nity·K.F.C.)라는 단체가 있었다. 그뿐 아니라 이미 2015년 미국에서 국제팩트체킹네트워크(International Fact Checking Network, IFCN)가 창설되어 국제적으로 많은 팩트체커들이 활약하고 있었다. IFCN은 매년 글로벌 팩트(Global Fact)를 여는데, 작년에는 서울대언론정보연구소 SNU팩트체크센터가 공동주관하여 한국에서 열렸다고 한다. 2014년 50명에서 시작했던 글로벌 팩트가 작년에는 대면 506명, 온라인 1,032명이 참여했다고 하니, 그만큼 팩트체크의 필요성이 절실해진다는 증거일 것이다.K.F.C.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최다선 의원이 국회의장이 된다는 관례에 대해서도 팩트체크되어 있었다.역대 국회의장의 국회의원 당선 횟수를 보면, 6선 의원이 11번으로 가장 많았고, 초선 의원이 맡은 적도 4번 있다. 다수당 최다선 의원이 국회의장을 역임한 사례는 의회 역사를 통틀어서 6번이었다. 이런 검증 결과, 관례적으로 최다선 의원이 국회의장을 맡았다는 진술은 사실이 아니었다.이 사례를 보면서 나도 국회의장이 권력 서열 2위라는 우상호 의원의 말을 검증해보았다. 찾아보니, 권력 서열이라는 용어는 없고 의전 서열만 있다. 다만, 아쉽게도 이미 4년 전에 YTN에서 팩트체크해놓은 것이 있었다. 의전 서열은 관례로만 있을 뿐 문서화된 공식적 의전 서열은 없다고 한다. 이렇게 확인하고 나니 의문이 풀렸다.IFCN에서는 팩트체크를 할 때 지켜야 할 다섯 가지 준칙을 만들었는데, 첫째가 비정파성과 공정성이다. 어느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진실을 알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야 한다. 둘째는 취재원을 밝혀야 하고, 셋째는 팩트체크하는 기관의 재정과 조직이 투명해야 한다. 넷째 검증 방법도 투명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팩트체크는 한 번에 끝내는 것이 아니라 공개적이고 정직하게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잘 수행하면 팩트체크 인증기관이 된다고 한다.팩트 인식의 중요성은 몇 년 전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던 한스 로슬링 등의 저서 ‘팩트풀니스’에서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의 서문에는 저자가 출제한 문제 13개가 있는데, 맞히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한다. 나도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이 많았다.이렇게 잘못 알고 있는 이유는 사람들은 ‘사실이 아닌 느낌’과 ‘현실이 아닌 환상’에 근거하여 세상을 보기 때문이라면서, 사실에 근거하면 스트레스와 절망감이 줄어든다고 저자는 강조한다.정치 경제뿐 아니라 일반 사회 분야에서도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거짓 정보가 너무 많다. 한쪽 입장만 듣고 쉽게 격앙하지 말고, 정보의 진위를 검증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다양한 미디어를 검색하는 것만으로도 거짓 정보에 휩쓸릴 가능성은 많이 줄어든다. 스트레스와 절망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시민의 팩트체크 활동은 정말 필요하다.

2024-05-26

대구서 판다를 본다?

우정구 논설위원 판다는 중국을 상징하는 대표동물이다. 멸종 위기에 놓여있는 만큼 국가서도 국보급 대접을 한다. 최근 청두시를 방문한 홍준표 대구시장이 최고급 빌라에서 먹고 자는 판다의 모습을 보고 “사람 팔자보다 더 낫다”고 한 말은 판다에 대한 중국 정부의 예우를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중국은 과거부터 다른 나라와 우호관계를 표시할 때 판다를 선물로 했다. 귀엽고 친근한 이미지를 이용한다고 해 판다외교라 부른다. 당 태종 때는 판다 2마리를 일본에 기증했다는 설도 있다.2000년 전 한 문제 무덤에서는 순장한 것으로 보이는 대왕판다의 뼈가 출토돼 고대부터 중국은 판다를 특별한 동물로 여겨왔던 것으로 짐작이 된다.중국 쓰촨성과 산시성, 허난성에 걸쳐 있는 진령산맥은 판다의 주 서식처다. 고대에는 중국 남부지역과 베트남 등지에도 자생했으나 기후변화와 서식지 파괴로 지금은 개체가 크게 줄었다.판다의 수명은 야생에서는 약 14∼20년 정도이나 동물원에서는 30년 정도 산다고 한다. 지능은 약 60∼70 정도로 다른 동물에 비해 우수해 필요한 것이 있으면 사람을 부릴 줄 안다.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으면 구르거나 나무들을 파헤치는 등 떼를 부린다.다만 사육비가 한해 수십억원이 들고 중국 정부가 허용해야 데려올 수 있는 등 까다로운 조건이 문제다.판다가 대구에 올 수 있을지 많은 시민이 궁금해한다. 청두시를 다녀온 홍 시장이 “중국 정부와 협의해 대구에 판다를 데려오도록 하겠다”고 말한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이달 말 홍 시장이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를 대구청사에서 만난다. 판다 관련해 어떤 얘기가 오갈지 관심이 쏠린다. 과연 판다는 대구와 연을 맺을까?/우정구(논설위원)

2024-05-26

어떤 화면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컴퓨터를 켤 때마다 바탕화면에 등장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근경에 초록색으로 빛나는 텐트가 자리하고, 멀지 않은 곳에 침엽수 한 그루 삐죽이 솟아 있다. 날카로운 선(線)으로 무장한 산맥이 흐르고, 원경에는 한결 부드러워진 산이 붉은색 아래 침묵한다. 하늘에는 우유를 쏟아부은 것처럼 별들이 무리 지어 하얗게 빛난다. 은하수가 고요를 지배한다.게오르크 루카치(1885∼1971)가 ‘소설의 이론’(1916)에서 묘사한 고대의 나그네 행장을 밝히는 그 은하수일 것이다. “별이 총총한 하늘이 갈 수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인 시대,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는 시대는 복되도다”로 시작하는 ‘소설의 이론’ 첫 번째 문장은 압권이다. 고대의 나그네는 외롭지도 두렵지도 않았을 것이었다.하지만 초록색 텐트 안에 누가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가 단수인지 복수인지, 복수라면 몇인지, 단수라면 성별은 어찌 되는지 알 수 없다. 더욱이 그나 그녀 혹은 그들의 행선지(行先地)에 관한 정보도 전연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텐트 안에는 불빛이 환하지만, 사람의 그림자는 흔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등장인물에 관한 궁금증은 커져만 간다.21세기 현재의 차고 넘치는 인위적인 조명 하나 존재하지 않는 태곳적의 어둠을 밝히는 저녁놀과 일찍 떠올라 지상을 비추는 별들의 무리. 일몰로 검게 어두워진 근경의 사위와 여전히 붉은색을 유지하는 원경의 서녘 하늘이 대조를 이루는 가운데 쏟아져 내리는 것처럼 하늘을 하얗게 뒤덮고 있는 수많은 별의 군집 아래 홀로 빛나는 초록색 텐트!나그네는 거기서 어떤 상념에 젖어 있을까. 지나온 길을 반추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일이나 모레 그 어느 즐거운 날에” (윤동주 ‘참회록’에서 인용) 가야 할 길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만 24년 1개월을 살아온 청춘의 참회는 역시 낯설고 희유(稀有)한 것으로 다가온다. 그에게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가 원동력으로 작용해야 했기 때문이다.그런 까닭에 바탕화면을 보는 나는 양가감정에 빠져든다. 나고 자란 시간대를 생각하면 분명 지나온 길을 돌아봐야 할 텐데, 실상 내다보는 사유에도 인색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래학자들이 말하는 ‘특이점’의 원년이 2045년으로 앞당겨져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면, 왕가위(王家衛)가 연출한 ‘2046’(2004)이 구현될 해가 20년 남짓 남았기 때문이리라.“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고 박인환(1926∼1956)은 ‘목마와 숙녀’(1955)에서 쓴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인환을 이해할 수 없다. 어째서 그는 세월이 오고 간다고 썼을까?! 시간이 직선운동이 아니라 왕복 운동한다는 것일까?! 시간의 화살 대신 시계추의 진자운동을 세월로 치환한 까닭은 무엇인가?!글을 쓰는 동안 사위가 어둡고 무거워지고 있다. 어둠은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서 천상으로 올라간다. 인간의 시간이 천상의 시간을 앞지르기 때문이다. 하늘보다 먼저 희망하고 하늘보다 먼저 절망하는 인간의 시간이 깊어가는 봄날 저녁이다.

2024-05-26

야권의 입법 폭주… ‘민심의 逆風’ 맞는다

범야권 정당들이 그저께 서울에서 ‘채상병 특검법’ 재의결을 촉구하는 장외집회를 열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국회에 되돌아온 특검법을 재의결하기 위한 여론전이었다. 집회에서는 예상한대로 ‘대통령 탄핵’이 공공연히 거론됐다. 조국 대표는 2016년 12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의결된 것을 상기시키며, “국민의힘이 재의결에 찬성표를 던지지 않으면 8년 전 겪었던 일을 다시 겪을 것”이라고 했다. 과거 촛불집회의 ‘추억과 단맛’을 되새기는 듯한 모습이었다.채상병 특검법은 내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다. 만약 여권에서 17명의 이탈표가 나오면 통과된다. 현재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공개한 여당 의원은 안철수·유의동·김웅·최재형 4명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들을 향해, “감성여론에 휩쓸린 정치인들이 딱하다”고 비판했다. 야권에선 공천탈락 여당 의원 중에서 이탈표가 다수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오산(誤算)인 것 같다. 집권당 전직 의원들은 차후 공직 자리를 보전받을 기회가 많다.채상병 특검법을 둘러싼 여야 정쟁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당장 22대 국회 원 구성 현안이 코앞에 다가왔다. 민주당은 상임위 18곳 중 법사위와 운영위를 포함해 11곳의 위원장을 차지하겠다는 주장이어서, 여당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민주당이 예고한 ‘25만원 민생지원금 지급법’과 ‘검찰개혁법’, 그리고 민주당이 재발의를 추진하는 각종 특검법도 뇌관이다.민주당의 국회장악과 입법폭주는 민심의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총선에서 이겼다고 정부를 무력화하고, 입맛에 맞는 문제성 법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협박행위나 다름없다. 현재 21대 국회 종료를 앞두고 여야가 처리해야 할 민생법안은 산적해 있다.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유예, 고준위방사성 폐기물법 등은 반드시 처리해야 할 법안이다. 민주당이 22대 국회에서도 지금처럼 민심을 빙자해서, 대통령 탄핵과 입법폭주를 일상화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2024-05-26

교묘해지는 피싱범죄, 안전수칙 꼭 지켜야

보이스 피싱(전화 금융사기)에 이어 문자 메시지를 활용해 개인 정보를 빼내거나 악성코드를 유포하는 스미싱(Smi shing) 사기 수법이 활개쳐 주의가 요망된다. 스미싱이란 문자메시지(SMS)와 피싱의 합성어다. 신뢰할 수 없는 사람 또는 기업으로부터 온 것처럼 가장해 개인 비밀번호 및 금전을 탈취하는 신종사기 수법을 이르는 말한다. 최근 포항 등 경북지역에서도 쓰레기 불법투기, 폐기물 관리법 위반 등 관공서 과태료 고지서를 사칭한 신종 스미싱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포항에 사는 30대 직장인은 쓰레기 분리수거 위반 신고가 됐다는 문자를 받고 미심쩍어 알아봤더니 신종 피싱범죄란 걸 알고 다행히 피해는 피했으나 누구나 쉽게 당할 수 있는 수법에 놀랐다고 한다.금융당국과 경찰의 지속적 단속에도 피싱범죄는 줄지 않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의하면 작년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1900억원으로 전년보다 35%가 증가했다. 1억원 이상 피해자만 200여 명에 이른다. 과거에는 주로 고령층을 타깃으로 삼았으나 요즘은 20대 청년층의 피해가 더 늘고 있다고 한다. 특히 피싱의 수법이 날로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어 자칫 방심하면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한번 걸려들면 개인이 받는 심리적 충격과 피해도 커 각별한 경각심이 필요하다.스미싱 피해를 예방하려면 예방안전수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출처가 불분명한 URL 주소는 절대 클릭하지 말아야 하며, 개인정보 요구 문자는 철저히 무시해야 한다. 또 백신 프로그램을 설치해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를 하고 소액결제 금액제한 설정을 해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경북경찰청에 의하면 경북도내서도 전화사기 피해가 매년 100억원 이상 발생하고 있다. 나와 우리 가족도 언제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철저한 경계심으로 피해를 막아야 한다. 우리는 정보 홍수시대를 맞아 스마트폰 만능주의에 빠져있다. 날로 교묘해지는 피싱범죄의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당국의 고단위 대응도 필요하겠지만 스스로 예방수칙을 잘 지키는 것이 최상책이다.

2024-05-26

나의 월든은 어디에

이희정 시인 고속도로로 가면 아주 멀진 않아.그곳의 거친 소나무들과 돌들, 맑은 물을 보고해 지기 전에 돌아올 수 있을 거야.친구들은 그러면 내가 더 현명해질 거라고 말하지.그들은 머나먼 양키의 속삭임을 듣지 않아여기저기 바삐 뛰어다니다 보면 우리는 얼마나 둔해지는가!많은 사람이 떠났고, 시원한 시골에서의 하루를그리워만 하는 나를 바보 같다고 생각하지.그럴지도 몰라. 하지만 내가 소중히 여기는 책에서월든에 가는 건 단순한 초록 나들이처럼 간단한 일은아니지. 그건 느리고 힘든 삶의 비결이고,자신이 있는 곳에서 월든을 발견하는 것이지.―메리 올리버, ‘월든에 가기’ 전문 (‘기러기’, 마음산책) 여기 두 개의 월든이 있다. 최초의 녹색 서적으로 일컬어지는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에게는 숲과 호수가, 메리 올리버 시인에게는 숲과 바다가, 그들 사이에는 “거친 소나무들과 돌들, 맑은 물”과 같은 자연의 선물이 있다. 메리 올리버 이전의 내가 아는 월든은 세련되고 까다로운 사상가 에머슨(1803년~1882)과 투박한 고집불통의 자연주의자 소로(1817~1862)의 불멸의 우정이었지만, 그들과 더불어 미국의 시인 메리 올리버(Mary Oliver·1935~2019)가 있다.미국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난 시인은 자연 속에서 자란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자연과의 친화적이고 동반적인 관계 형성이 가능했다. 자연 속을 산책하고, 세밀히 관찰하고 동식물과 교감하며 그 경험과 자신의 지혜를 언어로 재현하는 이른바 생태 시인이다. 그녀의 시는 이 세상의 모든 존재 심지어 무생물인 돌도 살아 있다고 사유하며 소로가 다루고 있는 월든의 의미를 삶으로 체득하고 있다.지혜란 어디에서 오는가. 근원적인 아름다움이 자연에 있듯 우리가 만들지 않은 생명의 순수한 세계가 아니겠는가. 그녀는 자연을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겸허하게 한다. 시적인 마음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그녀의 관점은 오래 남을 자연과 인간의 공감어린 우애로 가득하다. 그렇다면 시 ‘월든에 가기’에서 양키의 속삭임은 무엇이고, 월든은 어디일까?양키(Yankee)는 과거 영국인들이 미국인들을 촌뜨기로 조롱하는 표현이었지만 시인이 말하는 양키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내면의 소리, 이를테면 반짝이는 공기나 나무의 이끼 등 고요가 들려주는 깊은 속삭임일 것이다. 친구들은 고속도로를 권한다. 그들은 월든을 “초록 나들이처럼”간단히 인식하지만 숲은 그런 곳이 아니다. 풍경이 아름답다는 건 환경이 열악하다는 뜻이기도 할테니까. 귀농하지 않아도 자연인이 되지 않아도 도시 속에서도 세상의 명령에 길들지 않을 수 있다. 단 한 평만이라도 내면의 월든을 만난다면 말이다.철학교수가 될 것인가. 철학자가 될 것인가. 많은 책에서 ‘나’라는 제일인칭은 생략하지만, 소로는 월든에서 진정한 자신의 삶을 사는 것에 관해 말했다. 시인 메리 올리버 또한 ‘사람들’이란 말에 힘을 주지 않고 진정한 ‘나 자신’에 대해 말한다.“많은 사람이 떠났고, 시원한 시골에서의 하루를/ 그리워만 하는 나를 바보 같다고 생각하지” 대개의 문명인들이 조롱하듯 월든에 가는 일은 단순하지 않다. “단순한 초록 나들이처럼 간단한 일은 아니지.” 그것은 “느리고 힘든 삶의 비결이고,/ 자신이 있는 곳에서 월든을 발견하는 것”이라고.우리 옛글에도 월든이 있다. “연못, 늪에서 물고기를 잡아먹는 도하는 물속의 찌꺼기를 쪼고 마름풀 속에 물고기 잡는 데만 신경을 쓰느라 깃털과 부리에까지 오물을 뒤집어 쓰고 하루종일 허둥대어도 물고기 한 마리를 잡지 못한다. 그런가 하면 청장이라는 새는 맑고 시원한 연못에 서서 편한 자세로 날개를 접고 장소를 옮기지 않는다. 그 고요한 것은 노래를 듣는 듯 편하게 지내면서도 항상 배가 부르고, 도하는 수고롭지만 항상 굶주린다. 세상의 부유함과 귀함, 명예와 이익을 구하는 사람에 비유하여 청장을 신천옹이라고 불렀다.”(‘맑은 바람이 그대를 깨우거든’ 중 박지원 ‘담연정의 기문’, 이덕무 지음, 이강엽 편역)진정한 월든은 어디에 있을까. 하루종일 허둥대는 도하인가. 고요한 청장인가.“여기저기 바삐 뛰어다니다 보면 우리는 얼마나 둔해지는가!”

2024-05-26

안동시 소멸 위기 맞아 새로운 도전과 혁신

권기창 안동시장 최근 가장 큰 이슈라고 한다면 인구소멸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출산율이 0.72명으로 떨어졌고, 20년 후에는 모든 도시가 소멸 위기에 직면한다고 한다. 안동시 또한 소멸 위기를 맞은 도시 중 하나다.안동시는 1974년 27만 명을 정점으로 1976년 안동댐, 1992년 임하댐이 건설되며 매년 2000여 명씩 감소하던 인구가, 2008년 경북도청이 안동·예천으로 결정되며 7년 연속 상승곡선을 이어갔다.그러나 2014년부터 시작된 데드크로스와 2016년 경북도청 이전에 따른 예천지역 1단계 주거지역 조성, 수도권으로의 청년인구 유출로 지난 8년간 1만6000여 명이 감소했다. 더욱이 장래인구 추계결과, 2040년 13만 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다행인 점은 계속 감소하던 안동시 인구가 2016년 이후 8년 만에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4월 말 기준 안동시 인구는 15만2981명으로 지난 3월 76명이 증가한 데 이어 4월에는 248명이 증가했다.인구증가의 배경에는 올해부터 시행되는 지역대학생에 대한 지원정책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4월에만 409명의 청년인구가 증가했고, 누적 858명의 청년인구가 늘어났다.그동안 안동시는 전입한 지역 내 대학생에게 주택임차료(기숙사비)를 연간 60만 원 지원했으며, 올해부터는 학비 부담을 덜고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학년당 100만 원의 ‘학업장려금’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지원사업으로 청년 이탈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여기에 지난해 ‘안동 바이오생명 국가산업단지’가 신규 국가산업단지 후보에 선정되며, 기업유치와 일자리 창출, 인구 유입 등 현안을 한 번에 해결할 기회를 만들었다.풍산읍 노리 일대에 2030년까지 3579억 원을 투자해 132만㎡ 규모로 건설하는 ‘안동 바이오생명 국가산업단지’에는 76개 기업이 입주해 4조2800억 원이 투자되고, 8조6200억 원의 생산유발효과와 3만 명의 고용유발효과가 기대된다.이는 일자리부족으로 발생하는 지역 청년들의 이탈을 막고 오히려 청년들의 유입을 늘일 수 있는 기회다. 이에 안동시는 기업 유치와 일자리 창출에 집중하고 있다.올해로 4년 차를 맞이하는 안동형일자리사업은 지자체와 기업, 대학이 협력해 지역 산업을 육성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며 인재를 양성하는 일자리 창출 사업이다.지난해에는 지역 일자리 창출 대책 수립을 통해 7995개의 일자리를 창출, 이를 통해 안동시의 고용률은 63.2%, 실업률은 1.7%로 전국 시 지역 평균 고용률 62.5%, 실업률 2.7%에 비해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안동시는 투자유치자문회 운영 등을 통해 앞으로도 우량기업 유치와 일자리 창출에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또한 안동시는 결혼, 출산, 양육이 행복한 선택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저출생 대응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안동시는 행정안전부가 실시한 지방소멸대응 투자 기금을 확보해 ‘안동시 공공산후조리원 건립’을 본격 추진한다. 2023년 안동시 민간산후조리원을 이용한 산모 수는 114명으로, 산후조리원이 부족해 타지역 시설을 이용한 경우가 30% 이상이다.이에 안동시는 공공산후조리원과 육아거점인 은하수랜드 건립에 박차를 가해 출산가정의 경제적 부담을 경감시키고 안정적인 산후조리를 지원한다.이외에도 첫만남이용권 지원 상향, 어린이집 교사 대 아동 비율 축소, 경로당 연계 아동돌봄터 설치, 다함께돌봄센터 운영 등을 통해 지역사회가 함께 아이를 키우고 보살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는 등 끊임없이 창의와 혁신의 자세로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고 있다.여기에다 지역발전의 주춧돌이 될 공약사업과 역점사업의 결실을 하나하나 거둬 시민의 열망과 기대에 부응하는 최선의 노력으로, 위대한 시민과 함께 도전과 혁신의 안동을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2024-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