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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시간

등록일 2025-05-18 18:12 게재일 2025-05-1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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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날마다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으로 80억 인류는 오늘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인터넷에 차고 넘치는 지식과 정보가 인간을 자유롭게도 하지만, 확증편향으로 왜곡된 인간을 강철 족쇄로 압박하기도 한다. 남는 문제는 우리가 선택하는 정보와 지식이 얼마나 올바르고 유용한지, 확인할 정도의 지적-정신적 수준을 확보하는 작업이다.

지구 생명체 가운데 인간보다 더 많은 지적 호기심을 가진 존재는 없다. 알고 싶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인간은 심해(深海)를 탐사하고, 에베레스트에 오르고, 목숨 걸고 남극과 북극을 탐험했다. 사랑과 명예, 돈과 권력을 위해서가 아니라, 호기심을 충족하겠다는 이유만으로 목숨을 걸고 장정에 나선 탐험가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언제부턴가 ‘시간의 화살’이라는 자명해 보이는 이론에 대한 회의(懷疑)가 나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138억 년 전 이른바 ‘대폭발(빅뱅)’이 일어나 시공간이 생겨났고, 그 결과 우리은하와 태양계도 존재하기 시작했다는 이론. 그것에 기초하여 시간은 공간과 더불어 과거의 어느 시점에 발생하여 현재를 거쳐 미래로 질주한다는 것이 ‘시간의 화살’이다.

지질학자들은 시간의 화살 이론을 입증하는 유력한 근거로 지층(地層)을 거명한다. 오래된 지층이 아래쪽에 자리하고, 시간 연대기 순서로 층위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도저히 반박할 수 없는 논리 전개다. 실제로 이것은 우리가 맨눈(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결정적인 근거이기도 하다. 사정이 이런데도 나는 정반대되는 생각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달리는 게 아니라, 미래에서 출발한 시간이 현재를 거쳐 과거로 향하는 게 아닐까?! 영원히 사라져 버린 과거는 되부를 수 없이 완전 소멸했지만, 현재를 향해 달려오는 미래는 오늘의 우리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이란 시점은 내일이나 모레의 미래를 보고 느낄 수 있는 간이역이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다.

시간의 뿌리는 과거의 심연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있으며, 그것이 현재라는 중간 정거장을 통과한다는 게 내 생각의 요지다. 이런 생각에 기초한다면, 시간 기계(타임머신)로 갈 수 있는 곳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일 것이다. 영원히 사멸하여 무화(無化)되어 버린 과거가 아니라, 생성되고 있는 미래만이 우리가 도달할 시간대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침저녁으로 대면하는 지나간 역사의 근간도 실상은 미래에 기초한 현재를 만드는 과업이다. 현재의 시공간에서 지나간 시간과 사건과 인과율을 들여다보는 일의 함의(含意)는 오지 않은 미래를 예비하고 기획하는 데 있다. 철면피하고 극악무도한 인간 집단의 무수한 악행을 낱낱이 통찰하고, 그것에 유의함으로써 미래세대의 안녕과 복지를 준비하는 것이 역사다.

1980년 5월 18일 광주가 어언 45년 지나갔다. 지나간 45년은 오늘의 우리뿐 아니라, 다가올 세대까지 구원함으로써 시간의 연속성을 확보한다. 과거와 미래의 교차점인 현재에서 양자를 성찰하고, 건강한 미래로 나아가는 위대한 발걸음의 하나로 5·18 광주항쟁을 예찬(禮讚)한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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