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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예니체리(Yeniceri)의 탄생과 몰락

오스만트루크, 이슬람제국을 강성하게 만든 원인이자, 제국이 하향곡선을 그리게 한 가장 큰 요인, 폭력의 시대 한가운데를 장식했던 그 이름 ‘예니체리’다. 어느 사학자의 표현처럼 어찌 보면 그들도 가혹하고도 슬픈 피해자이다.예니체리는 오스만제국 3대 군주, 엄밀하게 초대 술탄이었던 무라트 1세에 의해 창설되었다. 1389년 6월, 마지막 십자군과 코소보에서 싸우다 세르비아 영웅 밀로슈 오빌리치 칼에 죽은 무라트 1세는 1363년 발칸반도에 진출한 뒤 예니체리 탄생에 박차를 가했다. 종교와 사상, 시대적 상황이 맞아떨어지면서 술탄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을 정예부대의 필요성을 절감했다.이슬람제국은 군인징집에 있어 까다로운 규칙이 있었다. 일단 외아들은 제외됐다. 대를 잇는 것이 우리 조선이란 나라만큼 중요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튀르크 인을 비롯해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 역시 징집 대상에서는 제외됐다. 피를 나누진 않았지만, 한 종교 아래 연결된 같은 형제라는 이유다. 정체성 등 뿌리를 알 수 없는 고아와 떠돌이로 살아간다고 해서 하류 취급을 당했던 집시, 전과자, 그리고 복종을 모르는 유대인 역시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러다 보니 군사 충당요건은 한계에 다다랐다. 때마침 제국이 전쟁에 연승을 거듭하면서 전쟁포로가 많았다. 데브시르메(Devsirme), 즉 전쟁포로 중 소년징발과 공납이란 방식은 고대 로마시대부터 있었다. 무라트 1세는 기독교인 중 건강한 혈통과 건강한 몸, 지혜를 두루 갖춘, 청소년을 뽑아 훈련시켰다.이들은 주로 발칸반도에서 차출했는데 이들이 예니체리다. 이렇게 부모에게서 강제로 떨어져 나온 후 특별한 장소에 흩어져 가장 먼저 이슬람으로 개종 당했다. 그리고 고된 훈련으로 몸과 마음을 담금질 당해야 했다. 튀르크 말을 익히고, 정해진 기간에 무슬림 전사로서 새롭게 만들어졌다. 그런 후 이스탄불 궁정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마쳐야 온전한 예니체리가 될 수 있었다. 이때부터 예니체리는 철저하게 술탄의 노예로 길들어졌다. 술탄에 무한충성, 술탄의 명령에만 절대복종했으며, 황제의 친위대를 겸하며 궁정 수비는 물론 국경의 수비도 이들 임무 중 하나였다. 엄격한 규율 속에 군영에서 독신으로 생활하며 사치는커녕 경제활동 또한 금지됐다. 최정예부대였던 만큼 최신식 무기로 무장했고, 술탄 이외에는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되는 막강한 권력을 지녔다. 궁정반란이 일어나면 술탄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 그러다 술탄이 죽으면, 곧바로 새로운 술탄에게 충성하는 맹목적이면서도 오로지 술탄을 위한, 술탄으로선 가장 충성스러운 병사들이었다.코소보전투에서 세르비아를 중심으로 한 십자군이 무라트 1세의 아들 바예지드에게 전멸당한 후 그곳 출신 전쟁고아들 역시 피해갈 수 없었다. 중앙아시아에서 발원한 희대의 살육자 티무르가 공격했을 때 술탄 바예지드를 위해 결사항전 했던 예니체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세르비아 출신들이었다. 부모의 원수를 위해 목숨 바쳐 싸웠던 것이다. 19세기 중엽 세르비아 민족주의가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오스만제국으로부터 독립의 열망이 들끓을 때, 반란 지도자를 죽이고, 세르비아 농민들을 가혹하게 탄압했던 이들도 예니체리였다.나날이 발전한 예니체리 부대는 16세기 무라트 3세에 이르러 10만 명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18세기에 들어서면서 튀르크 출신도 예니체리 신분이 될 수 있었기에 기독교도 청소년은 제외된다.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예니체리는 적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고, 내부적으로는 정치에 깊게 관여하면서 골칫덩이로 떠올랐다. 장군과 재상의 지위에 오를 만큼 막강한 권한을 누리고, 술탄의 약점을 잡아 위협과 공포정치를 일삼기도 했다. 심지어 그들의 뜻에 맞지 않을 경우 황제를 암살하는 등 국정농락에 앞장서면서 제국의 세기말적 현상을 두드러지게 하는 요인이기도 했다.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이 집중되면 초심은 사라지고 부와 함께 쾌락이 따른다. 이것이 반복되면 이물질이 스며들며 고이게 되고 반드시 부패한다. 1826년 30대 술탄 마흐무트 2세는 새로운 질서를 위해 일련의 개혁에 성공하면서 수만 명의 예니체리들은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예니체리는 튀르크 말로 ‘예니센’, 즉 ‘새로운 병사’들은 이렇게 해서 역사에서 사라졌다.천애 고아를 만드는 반인륜적인 방법으로 모집해 양육한 전쟁의 소모품이자, 용감한 군인들이었고, 500년 역사를 이어오면서 폭력의 한 가운데 자발적 희생양이 되어 사라지는 것을 의무라 여겼다. 성공가도를 달리면서 초심이 사라지자, 욕망이 대신했다. 그리고 그들은 처절한 멍에를 뒤집어쓴 채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이카루스 패르독스(Icarus Paradox)란 말이 있다. 성공이 실패를 초래하는 결정적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교만하지 말라.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4-08-12

하수도 탄소중립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장마가 물러가고 연일 40℃에 육박하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간간이 내리는 집중호우의 기세가 엄청나다. 이런 집중호우 속에 운전을 하다 보면 순식간에 물이 차오르는 도로 구간도 많다. 너무 많은 비가 일시에 내려 미처 배수되지 못하는 경우인데 다행히 하수도가 늦게나마 배수를 해서 심각한 침수사고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런 날에 생활하수와 빗물 같은 하수관로로 배제하는 합류식 하수도는 평상시 하수관로를 흐르는 생활하수량의 3배를 넘게 되면 생활하수와 빗물이 썩인 물이 하수처리시설로 들어가지 못하고 하수도를 넘쳐 하천으로 그대로 유입된다.1970~80년대에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의 영향으로 기존 도심 대부분의 구간에는 이러한 합류식 하수도가 설치되어 있는데, 최근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생활하수와 빗물을 각각 배제하는 우오수 분류식화 사업이 한창이다. 이렇게 하지 않고는 축산폐수와 함께 극심한 녹조 문제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인 도시지역 비점오염원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분류식화의 증대로 하수처리시설에는 과거 대비 높은 농도의 생활하수가 그대로 유입되어 최대 처리용량에 육박하는 하수처리시설도 급격히 늘고 있다.더불어 하수관로와 하수처리시설에서 다량 발생하는 메탄(CH₄)과 아산화질소(N₂O)는 이산화탄소(CO₂)보다 각각 약 25배와 300배에 달해 이산화탄소와 함께 배출량을 최소화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 최근에는 메탄(CH₄)을 신재생에너지인 수소(H₂)가스로 전환하거나 최신 아나목스(Anammox) 수처리공법의 도입으로 에너지 소비를 크게 줄이고 아산화질소(N₂O)의 배출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하수도 탄소중립’ 사업이 미국, 일본 등 하수도 선진국에서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이러한 ‘하수도 탄소중립’ 사업은 그간 하수처리시설 가동을 위해 전기 등 외부 에너지 의존율이 90% 이상이나 되었던 것을 급격히 낮추었다. 여기에다 태양광 외에도 통합바이오가스, 소수력, 하수열 등 하수처리시설 자체 에너지 생산기능의 확대로 외부공급 에너지 소비량을 완전히 제로(Zero)로 만드는 ‘에너지자립화’의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에 환경부는 2050 국가 탄소중립 목표달성에 대응하여 ‘에너지자립화율’ 목표를 2030년 60%, 2050년 100%로 매우 도전적으로 설정했다.이처럼 하수도에는 집중호우로 인한 도시침수, 녹조로 인한 심각한 상수원 오염, 메탄(CH₄)과 아산화질소(N₂O)로 인한 기후위기 심화 등 최근의 가장 우려스러운 기후환경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막대한 역할이 부여되었다. 이에 환경부는 2001년부터 매년 전국 지자체를 대상으로 △하수관로 유지·관리 △탄소중립 실천 등 38개 항목의 운영·관리 실태를 총인구수 기준 4개 그룹으로 나누어 평가하고 있다. 작년 11월 말에 발표된 2023년도 결과를 보면 161개 지자체 중 대구경북지역 지자체는 대부분 중·하권으로 실태평가 결과에 대응한 ‘하수도 탄소중립’ 사업 전개 등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

2024-08-12

전기차 화재 극복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김규인 수필가 인천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로 주민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화재 원인을 조사하는 경찰은 차량 제조사인 벤츠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참여하는 두 차례의 합동 감식을 벌였다. 배터리 관리 장치를 국과수에 보내 정밀 감정을 의뢰하고 자체 원인 조사를 위한 조직을 보강하고 진행한다.이번 화재 발생 이후에 추가로 여러 건의 전기차 화재가 겹쳐서 전기차 공포증이 널리 퍼지고 있다.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 지하 주차장에 전기차 주차를 금지하는 문제로 다툼을 벌이고 충전 시설을 지상으로 올려야 한다고 야단이다. 여기에 멀쩡한 전기차 차주들도 난감한 입장이다.전기차 화재 사고는 2020년 11건을 시작으로 24건, 43건, 72건으로 매년 큰 폭으로 늘어난다. 이는 전기차 등록 대수가 2020년 13만4962대에서 2024년 상반기에는 60만6610대를 넘어서는 차량의 증가와 무관하지는 않다. 그러나 차량의 증가에 따라 자연스럽게 늘어난 사고라고 지나칠 수도 있지만 사람들의 걱정은 늘어난다.소방청에서 발표한 지난 3년간 발생한 139건의 전기차 화재 분석 결과를 보면 운행 중 68건, 다른 화재로부터 옮겨붙은 경우를 포함한 주차 중 38건, 충전 중 26건, 정차 중 5건, 견인 중 1건의 순이었다. 차량이 운행 중이거나 주차 중, 충전 중을 가리지 않고 조건만 되면 일어난다.전기차 화재가 주목받는 건 불이 나면 끄기 힘들 뿐만 아니라 확실한 대처 방법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전기차는 차량 하부의 배터리 팩에 수백~수천 개의 리튬 배터리 전지가 들어간다. 전지 내부의 양극판과 음극판 사이의 분리막이 손상되거나 심한 과열, 외부 충격이 일어날 때 화재가 발생한다. 리튬 배터리는 하나의 셀에서 불이 나면 다른 셀로 불이 옮겨붙는 연쇄적 폭발 현상이 일어난다. 화재 온도도 1900℃까지 올라가 진화하기 어렵고 재발화와 폭발이 쉽게 일어난다.전문가들은 배터리를 느리게 85% 이하로 충전하고, 충전기에도 과충전 방지 장치 설치를 제안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현재 일어나는 사고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고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데도 차량에 들어가는 배터리의 제조사를 알리는 것조차 영업 비밀이라며 숨기고, 정부의 종합 대책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배터리 제조사도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당장 인명과 재산상의 손실을 막고 회사의 발전을 위해서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화재에 대한 완벽한 해결책을 제시한다면 산업을 견인하는 우리나라의 새로운 먹거리가 될 수 있다. 정부도 배터리 안정화를 위한 프로젝트팀을 만들고 행정과 재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국가의 힘을 모아 대응한다면 생각보다 빨리 안전한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역사가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임을 말하지 않는가. 수많은 국난을 극복한 대한민국의 역사가 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모두가 어렵다고 말할 때 해결책을 제시한다면 산업에 새로운 동력을 얻고 화재로부터 소중한 인명을 구할 수 있다.

2024-08-12

이슬처럼 영롱한 ‘뒷것’의 삶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남달랐던 ‘천재 아티스트’가 그의 노래 ‘아침이슬’처럼 홀연히 떠났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하늘이 보내준 보물, 큰 산과 같은 어른, 세상이 빚진 분, 시대를 노래한 음유시인, 어둠을 밝혀준 성자” 등 찬사가 끊이질 않는다. 문화예술계는 물론이고 정계와 법조계, 수많은 시민들까지 그의 마지막 길을 눈물로 배웅했다.이러한 존경과 감사는 사랑과 헌신으로 일관한 청죽(靑竹)같은 삶의 결과였다. 엄혹했던 시절, 그의 노래 ‘아침이슬’이 시위에서 불렸다는 이유로 ‘운동권 학생’으로 낙인찍혀 엄청난 고초를 겪으면서도 사람에 대한 연민과 사랑은 버리지 않았다. 독재정권의 감시와 탄압 때문에 생계를 위해 봉재공장과 탄광에서 일할 때, 그리고 시골에서 농사를 지을 때에도 언제나 사회적 약자를 먼저 생각한 그의 삶에는 변함이 없었다.‘영혼이 아름다운 어른’이 남긴 가르침은 너무나 크다. 무엇보다 큰 감동은 그가 우스갯소리로 했다는 ‘뒷것’ 정신이다. 그는 무대 뒤에서 일하는 자신을 ‘뒷것’이라 낮추고, 무대 앞의 배우들을 ‘앞것’이라 높이면서 묵묵히 뒷바라지 했다. 사재를 털어 만든 소극장 ‘학전(學田)’은 그의 말대로 가난한 예술가들을 키우는 ‘못자리’였으며, 이곳에서 설경구·황정민·장현성·김광석·박학기 등 수많은 스타들이 배출되었다. 앞것에 환호하고 서로 앞것이 되려고 아우성치는 세상에서 그의 ‘뒷것 정신’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뒷것 정신’은 양지가 아니라 음지, 강자가 아니라 약자의 편에 서는 정신이다. 그의 노래 ‘상록수’는 공장 노동자들의 합동결혼식 축가로 선물한 것이었고, ‘봉우리’는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해 낙담한 선수들을 위해 만든 노래였다. 공연 4000회를 기록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서민들의 고단한 삶을 위로해주었고, 수익성 없는 ‘아동극’을 무대에 올린 것도 돈이 아니라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위해서였다. 이러한 것들은 그가 이미 대학시절 달동네 판자촌에서 봉사했던 ‘신정야학’과 ‘해송유아원’의 연장선에 있었음은 물론이다.만약 그가 돈을 벌려고 했다면 얼마든지 가능했다. 재능이 탁월했을 뿐만 아니라 주변의 권유와 정권의 유혹도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맑은 뒷것 정신’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늘 사회의 명암(明暗)을 균형 있게 보아야 하며, 밝음(강자)만 찾고 어둠(약자)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의 노래 ‘아름다운 사람’처럼 ‘맑은 눈’과 ‘고운 마음’이 있어야 돈·권력·명예의 아귀다툼으로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그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한평생 꿈과 희망을 심고 가꾸었던 상록수였다. 고인의 영정이 33년을 함께했던 학전(현재 아르코 꿈밭극장)을 떠날 때, 제자 이인권이 색소폰으로 연주한 노래 ‘아름다운 사람’은 바로 김민기였다. 약자의 아픔을 따뜻한 가슴으로 품었던 ‘큰 어른’은 떠났지만, 그가 남긴 ‘위대한 뒷것 정신’은 우리의 마음속에 영원히 빛날 것이다.

2024-08-12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달린다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부른다. 이유가 있다. 면밀하게 작성된 시나리오와 현란한 연출 없이도 드라마나 영화 이상의 감동을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있기 때문.이번 프랑스 파리올림픽에서도 드라마틱하고 눈물겨운 장면들이 여러 번 관객과 시청자들에게 보여졌다. 그중 한 장면은 오랜 시간 우리 기억 속에 남을 듯하다.지난 2일 프랑스 생드니에서 펼쳐진 여자 육상 100m 예선 경기. 한국만큼이나 뜨거운 날씨였음에도 팔다리를 가리는 새까만 히잡(이슬람 여성의 복식) 형식의 운동복을 입은 선수 한 명이 등장한다. 망명 중인 스물여덟 아프가니스탄 여성 키미아 유소피였다.국제적 수준과는 거리가 먼 기록 13초42. 꼴찌였다. 하지만, 키미아 유소피는 다른 어떤 선수보다 크게 주목받았다. 경기를 마친 뒤 ‘교육은 우리의 권리입니다’라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관중들 사이를 달린 것.현재 아프가니스탄은 ‘이슬람 교조주의자’로 불리는 탈레반이 집권하고 있다. 그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여성이 교육받을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교문 앞에서 쫓겨나는 아프가니스탄 어린 여학생들의 모습이 이미 수차례 전파를 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를 안타깝게 여긴다.‘달리는’ 인간의 행위에는 여러 가지 함의(含意)가 담겼다. ‘부당함에 온힘을 다해 저항한다’는 것도 분명 그 함의 중 하나일 터.유소피는 그날 100m를 전력으로 질주함으로써 ‘나를 포함한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부정당한 우리의 권리를 되찾으려 싸우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던졌다. 그날, 그녀가 보여준 용기는 꽃다발 1만 개를 받기에 충분했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8-12

이동채 전 회장 사면과 포항경제 발전 기대감

이동채 전(前) 에코프로그룹 회장이 8·15 광복절 특별사면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지면서 지역 경제계가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 9일 정부종합청사에서 심의한 8·15 광복절 특사 대상자에 이 전 회장의 이름이 올려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대통령 재가 등의 절차가 아직 남아 있어 향후 결정 과정을 지역 경제계가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것이다.이 전 회장의 조기 석방을 위해 지난해 12월 서명운동을 전개한 포항상의는 서명운동 전개 이유에 대해 “이차전지 산업의 발전과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특히 이강덕 포항시장은 “이 전 회장의 부재로 에코프로그룹은 계획된 투자가 취소되는 등 후유증이 심각하다”며 “이 전 회장은 이차전지 분야에서 양극재를 세계 최고 반열에 끌어올린 기업가로서 그의 역량을 다시 한 번 지역과 국가발전에 기여하도록 선처해줄 것”을 희망한 바 있다.이 전 회장의 조기 석방에 대해 공무원 노조 등 비판적 의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작년 8·15 특사로 이중근 부영그룹 창업주 등 경제인 12명이 사면된 것과 같이 국가경제 발전을 위한 특별사면은 자주 있었던 일이다.포항상의와 지역경제계가 이 전 회장의 특별사면을 기대하는 것은 그의 사면이 국가 및 지역경제 발전으로 이어지길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에코프로는 2017년부터 포항에 2조5000억원을 투자, 에코프로 포항캠퍼스를 조성했다. 또 2028년까지 2조원이 넘는 투자를 더 벌일 예정이다.철강산업 단순구조의 포항 경제를 이차전지산업이 병행하는 산업구조로 바꾸는데 크게 기여한 기업이다. 국가첨단전략산업 중 이차전지 분야의 앵커기업으로 주목받는 대기업이다. 설비투자와 인력고용면에서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상당하다.지금 이차전지사업은 글로벌 경기 불투명 등으로 기업마다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의 사면으로 기업의 사기가 올라가고 새로운 투자로 이어지는 국면 전환의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포항 경제계가 그의 사면에 대해 환영의 뜻을 나타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24-08-12

스미싱 기승… 오늘도 문자클릭 조심하세요

스미싱 범죄가 갈수록 지능화하며 독버섯처럼 우리사회에 번지고 있다. 스미싱은 문자메시지를 통해 악성링크를 배포하고, 사용자가 이를 클릭하도록 유도한 뒤 앱을 설치해 금전적 피해를 주는 범죄다. 주위를 보면, 스미싱 범죄 대상이 됐거나 실제 피해를 본 사람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스팸 문자는 인터넷의 대량 문자 발송 기능을 통해 순식간에 수천~수만 건씩 보낼 수 있어 피해자가 늘 수밖에 없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스미싱 범죄 중 공공기관 사칭건만 2022년 1만7726건에서 지난해 35만건으로 폭증했다. 피해액은 2020년 11억원에서 지난해 144억으로 증가했다. 스미싱 문자 중 흔히 사용되는 키워드는 건강검진과 부고, 청첩장, 층간소음 신고, 카드발급 안내, 신호위반 벌금 고지서 등이다. 최근에는 티메프 정산금 지연 사태가 벌어지자, 환불을 빙자해 악성링크를 배포하는 신종수법도 등장했다.스미싱에 당하면 순식간에 연락처 정보는 물론이고 금융정보까지 뺏긴다. 그러니 피해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스미싱 범죄의 먹잇감이 되는 경우가 많다. 전화금융사기 연령별 피해 현황을 보면, 20대 이하 피해 건수가 2022년 6245건에서 지난해 8155건으로 31%정도 증가했다.법원이 지난 8일, 스미싱으로 대출 및 저축해지 피해를 본 사람이 은행과 금융사를 대상으로 피해보상 소송을 제기한 사건에 대해 원고 승소판결을 내린 것은 의미가 크다. 대법원판결까지 나와 봐야 알겠지만, 법원이 스미싱 피해의 결정적인 원인을 금융기관의 본인확인 절차소홀로 본 것은 주목되는 부분이다. 금융기관으로선 앞으로 예금주의 본인확인절차를 더욱 엄격하게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누구든 스미싱 범죄 대상이 되지 않으려면, 의심스러운 문자 메시지 링크를 절대 클릭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개인정보는 언제든지 유출될 수 있는 만큼, 휴대전화에는 신분증 사진이나 금융정보를 저장하지 말아야 한다.

2024-08-12

파리의 스포츠맨십, 서울의 스테이츠맨십

김진국 고문 파리 올림픽이 어제 막을 내렸다. 올림픽에서 우리는 감동적인 장면을 많이 봤다. 여자 마루운동에서 금메달을 딴 레베카 안드리드(브라질)가 양팔을 들고 승리의 기쁨을 표시하자, 은메달리스트 시몬 바일스(미국)와 동메달리스트 조던 차일스(미국)가 레베카를 향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뻗어 존경을 표시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관중들이 환호했다.바일스는 체조의 전설이다. 넷플릭스가 ‘시몬 바일스, 더 높이 날아올라’라는 4부작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정도다. 8년 전 리우올림픽 4관왕인 바일스는 이번에 금 3, 은 1개를 땄다. 그런 바일스가 마루 종목에서 0.033점 차이로 금메달을 놓쳤지만, 활짝 웃으며 차일스를 꽉 안아줬다. 시상대에서는 레베카를 축하하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기자회견에서도 “레베카는 정말 대단하고 여왕 같다”라고 칭찬했다.# ‘삐약이’ 신유빈은 탁구 여자 개인 동메달 결정전에서 아쉽게 역전패했다. 5세트까지 가는 힘겨운 시합이었다. 그러나 신유빈은 드러누워 있는 하야타 히나(일본)에게 다가가 미소로 포옹하며 축하했다. 일본 감독에게도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나를 이긴 상대들은 나보다 더 오랜 기간 열심히 묵묵히 노력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신유빈이 경기장을 떠날 때 관중들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일본 언론들도 찬사를 보냈다.# 양궁 남자 개인 결승전은 슛오프 끝에 김우진이 브레디 엘리슨(미국)을 이겼다. 슛오프에서도 동점이었지만 4.9㎜ 차이로 승부가 갈렸다. 그럼에도 엘리슨은 승복하고, 축하했다. 양국 감독까지 손을 잡고, 만세를 불렀다. 엘리슨은 “그와 동시에 화살을 쏜다는 건 인상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태권도의 박태준은 결승전에서 이긴 뒤 승리의 세리머니 대신 쓰러진 가심 마고메도프(아제르바이잔)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상태를 살피며, 위로했다. 시상식에는 그를 부축하고 나타났고, 끝난 뒤에도 부축해 줬다.# 남자 유도 100㎏ 이상급 결승전에서 테디 리네르(프랑스)는 김민종을 매트에 꽂아 한판승으로 이겼다. 리네르는 김민종에게 다가가 포옹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김민종의 왼팔을 높이 들어 올리고, 관중의 환호를 유도했다. 이유를 묻자, 리네르는 “여기 있는 선수들 모두 잘 싸웠다. 강한 상대였다. 아름다운 경기를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7일 남자 높이뛰기 예선에서 무타즈 바르심(카타르)이 2m27 1차 시도를 하다 다리 근육경련으로 쓰러졌다. 지안마르코 탐베리(이탈리아)는 바로 직전 2m27에 1차 시도해 실패했는데도 바르심에게 달려가 다리를 뻗게 도와주고, 종아리를 주물러 풀어줬다. 두 사람은 4년 전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공동 수상했다. 파리에서는 바르심이 동메달을 땄다.# 10일 오후 7시 35분(한국 시각) 파리의 르부르제 클라이밍 경기장. 스포츠클라이밍 마지막 대회가 열렸다. 여자 콤바인 결선 리드 종목. 완등자가 아무도 없었다. 마지막 도전자로 얀야 간브렛(슬로베니아)이 나섰다. 경쟁자들을 비롯해 수많은 관중이 일제히 리듬박수를 치며 완등을 축원했다. 금메달 포인트까지 따자 환호가 더 커졌다. 더 올라가 완등 직전에 떨어졌지만, 경쟁자와 관중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우리가 이미 본 장면들이다. 그때마다 생각나는 일이 있다. 우리 정치권이다. 경쟁을 끝내고도 승복할 줄 모른다. 내 능력을 키우려 하지 않고, 상대방을 끌어내린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커녕 예의도 없다.국회 연설에서 다른 의원들을 향해 ‘존경하는…’이라고 발언을 시작하는 것을 자주 본다. 영국의 전통을 흉내 냈다. 상대의 의견에 동조해서가 아니라, 국민의 대표로서 존중하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런 말마저 ‘존경하고 싶은…’이라고 비튼다. 야유와 조롱과 욕설이 난무한다.열거한 사례 대부분은 한국 청년이다. 그 앞 세대인 정치권은 왜 그 모양일까. 그러면서 정치꾼(politician)이 아닌 정치가(statesman) 행세를 한다. 오히려 남들에게 “올림픽처럼 하라”며 하늘 보고 침을 뱉는다. 제발 미래세대에 걸림돌, 부끄러움이 되지 말아야 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8-11

철의 인문학

아들이 손을 흔들었다. 얼마 전 직장을 따라 타지역으로 나간 아들을 보며 나도 따라 손을 흔들었다. 열차가 플랫폼을 떠나 소실점에서 사라질 때까지 멍하니 서서 바라보았다. 열차가 밟고 지나간 평행 레일 위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오늘 나는 철길 위에 이별의 시(詩) 한 소절 뿌렸다.돌아오는 길, 하늘로 솟은 건물들이 압도적이다. 건물들은 저마다 높이를 자랑하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 옆에는 새로운 빌딩이 철을 수직으로 세우며 높이 치솟는다. 철은 이 시간에도 강인한 힘으로 문명을 드높인다.철철철, 철이 넘칠수록 인간은 번영을 누렸다. 철을 화덕에 넣어 빨갛게 달구고 두들기고, 그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인간도 강인해졌다. 철기로 무장한 부족은 강자가 되었다. 힘이 약한 부족을 정복하면서 마을을 파괴하고 오만과 탐욕의 피를 뿌렸다. 철의 연금술이 뛰어난 집단이 곧 문명이라는 명제가 진리였다. 그렇게 인류는 철과 함께 역사를 써내려 왔다.철은 평화를 일구는 도구도 되었다. 돌을 떼고 돌을 갈아 쓰던 인간에게 철은 혁명이었다. 낫, 볏, 보습, 쇠스랑, 철로 쟁기를 만들어 논밭을 갈았다. 철의 힘이 더해지자 수확은 급속히 늘었다. 철은 주변에 흔하게 있다. 광석에 녹아 있는 철도 녹이지 않으면 그냥 돌의 부분일 뿐이다. 용광로에 녹여 하나로 뭉치고 다시 녹여 가공해야 가치가 살아난다. 망치로 얻어맞고 불에 달궈지면서 더 강하고 더욱 탄탄해진다. 철은 인고의 과정을 지나온 만큼 도도하다.철은 차갑다. 철문, 철창, 칼, 발음으로도 차가운 이미지가 떠오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철은 그 누구보다 뜨겁게 태어난다. 뜨거운 화덕에 들어가 한 번 데워지면 쉬이 식지를 않는다. 철은 달구고 식히는 동안 속에는 따뜻한 품성을 지닌다. 그래서일까. 철은 도구에만 머물지 않고 새로운 영역으로 뻗어나갔다. 도도해 보이는 철이 길게 누우면 길이 된다. 강물 위로 몸을 눕혀 강을 건너뛰게 하고, 늪 위로 몸을 구부려 늪을 가로지르게 한다. 산은 입을 벌려 길을 받아들이고 제 등을 내어주며 길을 낸다. 뭍과 섬을 이어 외롭지 않게 하고 도시와 촌을 이어 사람이 흐르게 한다. 나란히 누운 길은 또 다른 징검다리가 되어 부와 가난을 잇는다. 먼 소식도 철길을 타고 왔다. 돈을 벌어 돌아오겠다고 먼 객지로 떠난 아들의 ‘부모님 전상서’가 밤길을 달려왔다. 그러면 ‘객지에서 몸조심하그래이’ 답장이 달려갔다. 집을 나간 삼촌 소식도 오는 사람을 통해 풍문처럼 들려왔다. 떠남과 기다림과 만남이 있는 플랫폼에는 늘 눈물과 설렘과 기쁨이 교차했다. 간이역이라는 마디마다 사연이 깃들었다. 어머니는 객지로 떠난 아들을 기다리고, 아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렸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과 이별은 눈가에 촉촉한 이슬을 남기고, 환한 미소를 남기고, 별 같은 수다를 남기고, 잊지 못할 바람을 남겼다. 아나로그 간이역 마디와 마디, 길을 오가는 정한(情恨)의 문장들이 철길 위에 뿌려졌다. 김경아 작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철을 다루는 사람에게는 철학이 있다. 무사는 함부로 베지 않는다는 칼의 철학을, 농군은 벨 것만 벤다는 낫의 철학을, 대장장이는 만 번을 두드려 명기를 만든다는 장인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 식솔의 숟가락을 쥔 아버지는 배고픈 녀석 먼저 먹인다는 배려를, 바느질하는 어머니는 해진 마음까지 깁는다는 마음을 가졌다. 마음속으로 불러들인 철의 가치는 그렇게 정신문화로 승화했다.철로 된 건물이 수직이라면 철로 된 길은 수평이다. 수직은 창문을 거는 밤 같지만 수평은 창문을 열어 펼치는 아침 같다. 절벽 같은 수직을 강물처럼 수평으로 눕혀 철길은 숱한 삶의 문장을 헹궈내고 흘려보낸다. 떠나고 돌아오는 길 위에서 인간은 기나긴 소설을 쓰고 번뜩이는 시를 쓰기도 하면서 삶을 녹였다 굳혀갔다. 아들과의 이별을 통해 나는 철길 위에 만남의 시를 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직 아들을 보내지 못한 내 마음이 작은 꽃씨가 되어 말갛게 터져 나온다. 나도 함께 철길을 달리며 써 내려간 가슴의 시는 길이 되어 독자에게 달려간다. 몇 달 후, 아들은 평행선을 타고 바람을 일으키며 돌아온다. 그러면 따뜻한 차 한 잔 나누며 그간 있었던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눌 것이다. 새로운 문명을 체험하는 아들을 기다리며 나는 철의 인문학을 또박또박 써내려 간다.

2024-08-11

경산의 문화·관광이 꽃피울 날을 기다리며

조현일 경산시장 관광자원이 현재와 미래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중요한 것 중의 하나임을 부인하지 못한다.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천혜의 자연도 있지만, 지역의 역사와 함께 전해진 문화가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이를 위해 자치단체들은 축제와 관광자원을 개발하고 스토리텔링을 입히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경산도 불교의 3대 기도 도량인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일명 갓바위)을 활용한 축제를 개최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대구의 관광자원으로 아는 등 지역의 관광자원과 역사, 문화를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또 삼성현역사문화공원과 박물관 등에서 지역의 문화유산을 활용하고 경산의 삽살개, 용산산성, 반곡지 등 관광지가 많지만, 이 역시 전국적인 지명도가 낮아 관람 위주에 그치며 지역 경제에 큰 보탬이 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하지만, 경산은 임당동을 중심으로 고대 국가인 압독국이 찬란한 고유문화를 꽃피웠고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과 선돌로 대표되는 공동체가 자리 잡았던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근·현대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도시다.경산시는 이러한 사실들을 활용해 지나가는 도시가 아닌 쉬어가는 도시로 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시는 찬란했던 압독국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국내 유일의 복합 유적전시관인 ‘임당유적전시관’을 내년 5월 개관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한다. 압독국은 2천 년 전 삼한시대와 삼국시대 초기 경산을 다스리던 소국 중의 하나로 압독국의 자산인 임당·조영동의 고총·고분에서는 금동관과 금동 장식, 은제 허리띠, 고리자루칼(環頭大刀) 등 최고 지도자를 유물들과 함께 2만 8천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특히 유적에서 출토된 고인골 259개체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로 상태와 개체 수가 탁월하고 남녀노소, 계층이 다양한 특징을 가지고 있어 이들이 무엇을 먹었고 어떠한 질병 등을 가지고 있었는지 확인도 가능하다.임당동 632번지 일원에 228억 원으로 건립되는 임당유적전시관은 인근 박물관들과 달리 고대 사람들의 삶의 모습(생활유적)과 죽음의 관념(무덤 유적)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국내 유일의 복합유적인 임당 유적을 전시·조사·연구·교육하는 중심기관으로 지역을 알리는 좋은 자원이 될 것이다.이와 더불어 경산시는 ‘경산문화관광재단’을 설립해 문화예술과 관광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를 해결하고 경북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예술인과 높은 청년 예술인 비율 등 지역 특성에 맞는 문화콘텐츠 개발과 체계적인 문화정책을 추진한다.경산문화관광재단은 그동안 문화예술과 관광을 겸한 문화관광도시를 지향하고 있었으나 시가 직접 추진하기에는 전문성이 미흡했던 부분을 보완해 폭넓은 문화 향유 기회 제공과 축제, 관광 콘텐츠 개발 등 문화도시 경산의 수준을 높이고 문화예술 창작 활동의 플랫폼 역할로 시민들과 관광객에게 고품격 문화서비스를 제공한다.또 시민들의 문화 욕구를 해결할 예술회관도 준비 중이다. 상방공원의 개발이 차일피일 미루어져 예술회관의 준공도 언제일지는 확언할 수 없지만, 가변무대에 넓은 공연장을 가져 시민들의 자긍심을 높일 예술회관이 준공된다는 것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앞에서 이야기했지만, 지역의 문화와 관광이 꽃피우려면 지역을 찾는 가족 단위 관광객이 머물며 쉴 곳과 흥미와 교육, 체험을 동시에 즐길 거리가 필요하다. 세 가지를 동시에 만족하게 하지 못한다 해도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은 만족하게 하는 경산시가 될 것이다.경산은 다양한 국가지정문화재와 천연기념물, 국가무형문화재 등이 있다.이들을 관광자원화하는 것이 아마도 경산문화관광재단의 주 업무가 될 것이다.경산문화광단재단의 10월 발족을 위해 대표이사와 이사진을 구성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경산의 문화를 이해하고 관광을 활성화 시킬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많은 사람이 경산문화관광재단에 참여해 경산의 문화·관광이 꽃피울 날이 빨리 다가오길 기대한다.

2024-08-11

마당에 물을 주다가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길지도 짧지도 않은 장마가 끝나고 불볕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작년과 비교해봐도 강우량이 크게 부족한 것도 아닌데, 마당의 잔디가 붉게 타들어 간다. 무슨 조화일까?! 생각이 많아도 실천하는 것이 우선 아닌가! 두 시간 가까이 물을 주고 나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불편하고 미안했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리는 것이다.생명 가진 것은 하나같이 물이 있어야 살 수 있다.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박테리아만 해도 그렇다. ‘혐기성 박테리아’는 있어도 ‘혐수성(嫌水性)’ 박테리아는 들어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공기와 물은 어찌 보면 무한한 자원이고, 그래서 쉽게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숨을 쉬지 못하거나 물을 먹지 못하면 모든 생명체는 종말을 맞을 수밖에 없다.작년 이맘때 환한 얼굴로 나를 반겨준 ‘상사화(相思花)’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그래서 대문 옆 상사화 자리에 물을 듬뿍 주는 것으로 물주기를 시작한다. 상사화 주변을 맴도는 기생식물의 뿌리를 뽑는 작업을 함께하면서 나무와 풀의 경이로운 생명력에 탄복한다. 벌써 보름 넘도록 비다운 비가 오지 않았건만 이들은 삶을 이어가고 있으니 그런 생각이 들밖에!물을 주노라니 방아깨비 한 마리가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신속하고 강력하게 허공을 날아오른다. 거의 10㎝쯤 돼 보이는 실하고 큰 녀석이다. 역시 풀과 나무가 있으니 이런 곤충도 동행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텃밭으로 물길을 옮길 즈음에 기름치와 때때기가 깜짝 놀라 줄행랑을 놓는다. “야, 너무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속삭인다.작년과 재작년에 크게 성공한 방울토마토와 상추는 올해 거의 망해버렸고, 고추도 작황이 별로여서 안타깝다. 그래도 처음 심어본 옥수수가 우뚝하게 자라났고, 참외 역시 몇 알 싱싱하게 햇살 아래 얼굴을 보여준다. 여기 더하여 가지도 자주색 어여쁜 꽃송이와 열매를 실하게 달고 있어서 미래의 수확을 약속한다.이런 생각을 하면서 붓꽃의 단단하고 강건한 줄기 쪽으로 물살을 뿌리니 방아깨비가 다시 얼굴을 보이며 황망하게 달아난다. 아까 마주친 녀석과 친구인 모양이다. 그리고 다시 하늘로 솟구친 녀석은 제법 규모가 있는 여치였다. 거의 풀무치 정도로 큰 덩치의 여치가 이웃한 쇠막대에 사뿐히 자리를 잡는 것이다. “사진기를 두고 왔네” 하고 혼잣말한다.마당에 물을 줄 때마다 드는 생각은 한결같다. 지구의 모든 생명은 한데 어우러져 있다는 단순 명쾌한 사유가 그것이다. 호모사피엔스인 나도 지구의 거대한 생명체의 순환 가운데 하나일 따름이라는 인식이 찾아드는 게다. 저 여리고 순박한 숱한 생명이 살아 숨 쉬는 공간에 나도 한자리 얻어서 살아갈 뿐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모든 것은 다른 것에 의존하고, 다른 것과의 관계에서만 존재한다. 사물은 자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다른 어떤 것 덕분에, 다른 것의 결과로서, 다른 것과 관련하여. 다른 것의 관점에서 존재한다.” 나가르주나(龍樹)의 가르침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아침이 환하게 밝아온다.

2024-08-11

안동지방법원 승격법… 이번에는 통과해야

국민의힘 김형동 의원이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원을 안동지방법원으로 승격하는 각급 법원의 설치와 관할구역에 관한 법률(이하 안동지방법원 승격법)을 지난주 대표 발의했다. 이 법률안은 안동을 비롯 예천, 울진, 영주, 상주 등 경북 북부권 주민의 사법 서비스 향상을 위해 반드시 해결돼야 할 숙원사업임에도 오랫동안 지지부진했던 법안이다. 김 의원의 발의로 지역 숙원이 해결될 수 있을 지 여부에 특별히 관심이 간다.안동지방법원 승격법은 2018년 자유한국당 이완영 의원이 발의한 바 있으나 당시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됐다. 경북 북부지방의 법원 설치는 인구와 면적 등 어느 모로 보나 반드시 필요하다.대법원을 중심으로 전국에 5개의 고등법원과 18개의 지방법원이 있다. 서울고법에는 9개, 부산고법과 광주고법에는 각각 3개, 대전고법에는 2개의 지방법원이 있다. 그러나 대구와 경북을 담당하는 대구고법에는 대구지법 1곳만 있다. 지역 간 형평성 측면에서도 맞지가 않다.경남은 1983년 도청이 부산에서 창원으로 이전한 후 1991년 창원지법이 신설됐다. 경북은 안동으로 도청이 이전됐으나 이에 따른 지방법원 설치 움직임은 아직 없다. 대구지법이 담당하는 인구 수는 510만명으로 면적과 인구로는 수도권 다음으로 크다.특히 사법 서비스 측면에서 보면 경북 북부권 주민이 받는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다. 교통 인프라가 부족한 북부권 주민들은 재판을 받기 위해 하루 6시간을 이동해야 하는 불편도 감수한다. 민형사 항소심과 행정소송사건, 법인·개인 파산 등의 재판을 위해 100㎞가 넘는 거리를 오가야 한다. 때로는 거리와 시간 때문에 재판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북부권의 지방법원 승격은 늦은 감이 있다. 그러나 김 의원의 발의한 법안이 통과된다면 경북 북부권 주민의 사법 서비스 향상에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안동 신도시 인구가 늘어나는 등 법원 신설에 대한 분위기는 고무적이다. 지역 정치권 등 지역사회의 높은 공감대를 통해 법안 통과 관문을 반드시 넘어야 한다.

2024-08-11

일본과 숙명적 관계인 대지진

우정구 논설위원 수많은 자연재해 중 인간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재난을 꼽으라면 지진이 으뜸이다. 태풍은 특정 시기에 찾아오고 방향이라도 가늠할 수 있으나 지진은 예측이 불가능하다. 마치 발밑에 시한폭탄을 묻어 놓은 것처럼 불안하기 그지없다.전 세계적으로 지구 내부에선 하루 1000∼5000번 정도의 지진이 일어난다고 한다. 이런 지진이 세계에 골고루 발생하지 않고 일정한 지역에 집중 발생하는데, 이를 지진대라 부른다.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지진대는 태평양 연안으로 환태평양 지진대다.아메리카 대륙의 서해안과 캄차카 반도, 일본, 필리핀, 동인도제도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 태평양 연안에서 발생한 동일본대지진은 9.1 규모 대지진. 일본 국내 관측사상 최고규모를 기록했다. 초대형 쓰나미가 몰려오고 후쿠오카 원전에서 방사성이 누출되는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수 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다. 2차 세계대전 패배 후 일본 사회를 가장 큰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다.지난 8일 일본 규슈 미야자키현 앞바다에서 규모 7.1의 지진이 발생한 것과 관련해 일본 기상청이 난카이 해곡 대지진 발생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일본열도가 긴장감에 휩싸여 있다. 난카이 대지진은 수도권 서쪽인 시즈오카현 앞바다에서 시코쿠 남부, 규슈동부해역까지 이어지는 곳으로 100∼150년 간격으로 지진이 발생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정부도 30년 내 난카이 대지진이 발생할 확률을 70∼80%로 보고 있다.동일본대지진과 맞먹는 대규모 지진이 일어난다면 일본은 또 한번 최악의 재앙에 직면하게 된다. 일본인에게 지진은 숙명과 같은 존재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08-11

‘전공의 복귀’ 회의적… 수련병원 심각한 위기

전국 수련병원들이 정부방침에 따라 지난 9일부터 전공의 추가모집에 나섰지만, 전공의 반응이 냉랭하다. 전공의들이 이번 추가모집에도 응하지 않으면, 중환자 의료공백은 심각한 상태가 된다. 지난달 마감된 1차 추가모집 당시 지원율은 1.36%에 그쳤다. 모집인원 7645명 중 104명만 전공의 모집에 지원했었다. 대구·경북의 경우, 7개 수련병원이 312명의 전공의를 모집했지만, 계명대 동산병원에 단 1명만 지원했다. 전공의들은 대부분 개원가로 진출하거나, 해외 취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중환자들의 생명을 지키는 수련병원들의 재정 악화다. 수련병원들은 현재 운영자금을 차입해 쓰고 있지만 대부분 곧 소진돼, 11월쯤 되면 부도나는 병원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수련병원들은 그동안 전공의 부재로 진료가 대폭 축소되면서 수입이 격감하는 악순환을 겪어왔다. 현재 병상 축소, 계약직 비연장, 무급휴가 등으로 버티고 있지만 곧 한계상황이 온다는 것이다. 수련병원 중에서도 지방 국립대병원 재정악화는 더 심각한 모양이다. 재정적자 폭이 커져 교수들에게 지원하던 연구지원비조차 지연되고 있는 병원이 있다고 한다. 만약 지방국립대병원이 위기를 맞으면, 의대생 교육도 문제지만 지역의료시스템이 붕괴할 수 있다.병원재정이 어려워지면서 간호사를 비롯한 직원들도 월급을 제때 못 받거나 무급휴가를 가는 고통을 겪고 있다. 간호대 학생들의 취업난도 사회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수련병원들이 신규 직원채용을 중단하자, 간호대 학생들이 당장 취업할 곳이 없게 됐다. 올 상반기 중 대학병원 중에서 간호사를 채용한 곳은 1곳뿐이었다. 일부 간호대 4학년생들은 졸업을 미루고 휴학을 선택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전공의들이 지난 2월 병원을 떠난 후 의료공백은 7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이번 전공의 추가모집에도 지원자가 없으면, 수련병원들은 최소한 내년 3월까지 전공의 없이 버텨야 한다. 가장 염려되는 것은 이러한 의료혼란이 대책없이 계속 악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4-08-11

새 세대가 온다

유영희 작가 8월 11일 파리 올림픽이 끝났다. 이번 올림픽에 참가한 한국 선수단 규모는 144명으로 지난 도쿄 올림픽 232명에 비해 90명 정도가 줄었다. 이런 100명대 선수단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8월 10일 당시 활, 총, 칼을 필두로 금메달 13개 등 29개 메달을 따서 7위에 이름을 올려 역대 최고의 성적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이번 올림픽은 성적뿐 아니라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태도도 큰 이슈가 되고 있다.사격의 김예지가 공기소총 10m 경기에서 은메달을 따고 나서 자신의 주종목 25m 경기를 앞두고 금메달을 자신했지만 예선에서 0점을 받아 출전하지 못하게 된 후 보여준 태도는 정말 참신했다. 그는 기대했던 국민들에게 죄송하다고 하면서도 0점 한 번 받았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사격을 그만두는 것도 아니라면서 다음을 기약한다고 차분하게 말한 것이다.탁구의 신유빈은 임종훈과 함께 뛴 혼합 복식에서 동메달을 땄지만 중국의 천멍과의 단식 경기에서 0:3으로 졌다. 그럼에도 낙담하지 않고 상대가 너무 잘했다면서 다음 경기를 준비하겠다고 하더니, 하야타와의 단식 경기에서 패하고도 승자를 안아주는 등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그들이 그런 실력과 정신력과 체력을 갖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잘 알기 때문에 더 배우겠다는 신유빈의 인터뷰는 새로운 올림픽 문화를 알리는 신호로 느껴진다. 이런 낙천적인 성격 탓인지 10일 열린 여자단체전에서 다시 동메달을 땄다.방향은 다르지만 배드민턴 금메달리스트 안세영 역시 기존에는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 스포츠 역사의 새 페이지를 쓰고 있다. 그는 금메달 획득 후 인터뷰에서 협회가 선수 보호에 소홀했다고 작심발언을 한 것이다. 그는 아마도 오랜 고민 끝에 가장 파급력이 큰 금메달 인터뷰 때 발언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는 자기 나름의 판단과 전략으로 그 순간을 선택했을 것이다. 다만, 이것을 둘러싸고 두 가지 쟁점이 있는데, 하나는 안세영의 발언이 ‘사실인가’이고, 다른 하나는 이런 방법이 ‘적절한가’이다. 두 번째와 관련해서는 안세영도 다른 선수들에게 거듭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말을 아끼고 있다. 여기서 발언 타이밍 등 표현 방식의 적절성을 따지기보다는 사실 여부를 중심으로 진상 조사가 이루어져야 배드민턴이 발전할 것이다.태권도 경기에서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태권도의 서건우가 16강전에서 오판으로 패하게 되자 오혜리 코치(36세)가 강력하게 항의하여 8강에 진출한 것이다. 결국 오 코치는 코트에 뛰어든 일로 세계태권도연맹(WT)으로부터 경고를 받았지만, 오 코치는 그대로 끝나면 뭘 해도 뒤집을 수 없었다는 판단으로 한 행동이라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이번 올림픽을 보면서 한 세대가 저물고 새 세대가 온다는 것을 절감한다. 아무리 큰 무대에 국가대표로 출전했어도 유머와 개성을 마음껏 표현하고 할 말은 하는 세대가 오고 있다. 기성세대는 두 팔 벌려 새 세대를 환영할 일이다.

2024-08-11

메시지의 중요성

김종찬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기업은 비전 선포나 신년사 등을 최고 경영자의 직접 소통의 기회로 활용하며 이를 통해 기업의 내부와 외부 이해관계자들에게 필요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메시지에는 업의 특성을 고려한 전략적 방향성이 선명하게 담기고, 구성원들의 일체감 조성을 고려하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실행지침으로 신뢰와 지지를 이끌어 내기도 한다. 이와 더불어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새로 취임하거나 할 때 내어 놓는 메시지도 매우 중요한데, 그 메시지를 해석하면 기업의 성장과 진화 발전을 어렵지 않게 예측하여 이해관계자의 지지 여부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 대표가 이해하여 선포하는 범위 이상으로 절대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이 정설이며, 그래서 메시지에 담긴 의미는 기업을 평가하는 주요 항목이 된다.선언적 의미가 있는 메시지에는 업의 본질을 명확하게 직시하여 경쟁사와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해야 하며, 내부적으로 조직의 문화와 가치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 직원들에게 일관된 방향성을 제공하고, 조직 전체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나침반이 되어야 한다. 업의 본질이란 그 업의 지속성과 성패를 결정하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를 말한다. 이 문제를 명확하게 파악하여 경영자의 메시지에 담겨야 하는데 시대에 따라 유행하는 말들을 적당히 버무려 내어 놓는다면 시장은 냉담하게 반응할 것이고 그 결과는 경쟁에서 밀려나는 것이다.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전자상거래 업의 본질은 무엇일까. 성패를 결정짓는 바로 그 문제는 무엇일까. 바로 남들과 똑같은 상품을 판매한다는 것이다. 어느 플랫폼에서 구매하든 상품의 기능이나 상품의 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 상품을 우리 플랫폼에서 그것도 마진을 얹어 사야 하는 이유를 소비자에게 제공해야 한다. 예를 들면 쿠팡이 새벽 로켓 배송과 조건 없는 쉬운 반품을 차별화된 메시지로 시장에 내놓은 것이다.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상품을 원하는 시간에 받아 보고, 단순한 변심에도 쉬운 반품을 제공한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선정하여 직접 매입하고, 물류 혁신을 통해 소비자가 원하는 때에 받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객들에게 같은 상품이지만 다른 곳이 아닌 쿠팡에서 사야 할 이유를 잘 만들어 냈다. 이처럼 업의 본질을 알고 차별화된 전략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수도꼭지 효과라는 것이 있는데, 물이 차가워서 온수 방향으로 돌렸는데 실제 물이 따뜻해지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뜨거운 방향으로 더 돌렸다가 지나치게 뜨거운 물이 나오는 것을 비유한 표현이다. 기업에서도 새로운 비전을 선포하고, 새로운 업의 영역에 진출하거나 할 때 정책이나 의사결정이 반영되어 효과를 내는데 필요한 시간을 기다리지 못해서, 예상보다 훨씬 큰 효과, 혹은 부작용을 낸다는 뜻이다.바뀐 경영 환경엔 업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것은 맞지만 업의 본질을 무시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는 시장 앞에서 겸손한 경영자들이 성공할 수 있다.

2024-08-11

별 볼 일 없는 세상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하늘나라 천제(天帝)의 손녀인 직녀는 길쌈을 잘 하고 부지런하였다. 그런데 은하수 건너편의 ‘하고(河鼓)’라는 목동(견우)과 혼인을 하고는 신혼의 즐거움에 빠져 맡은 일을 게을리 하였다. 그것을 알고 크게 노한 천제는 그들을 은하수 양편으로 갈라놓고 일 년에 단 하루 칠월 칠일에만 만남을 허락하였다. 하지만 은하수를 건널 수 없어 만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까마귀와 까치들이 몸으로 다리(오작교)를 만들어 견우와 직녀가 상봉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오랜 세월 전해져 내려오는 칠석날의 유래다.이 설화의 발생 연대는 확실하지 않지만, 중국 후한(後漢) 때에 만들어진 효당산(孝堂山)의 석실 속에 있는 화상석(畵像石)의 삼족오도(三足烏圖)에 직녀성과 견우성이 발견되고, ‘시경 (詩經)’의 시구에도 은하수와 직녀성, 견우성이 나온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진(晉)나라 종름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서 발견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구려 광개토왕 18년에 축조된 대안 덕흥리(大安德興里) 고분 벽화에서 은하수를 가운데에 두고 소를 끌고 가는 견우와 개를 데리고 있는 직녀가 그려져 있는 것이 발견된다. 기록상으로는 ‘고려사’에 공민왕이 몽고인 왕후와 함께 안뜰에서 견우와 직녀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선사시대 유적인 암각화에도 별자리가 새겨진 걸 보면, 하늘의 별들이 옛 사람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서양에서는 태양이 1년 동안 하늘을 지나는 경로를 12개의 별자리로 나눈 ‘황도 12궁’이 바빌로니아 천문학에서 기원하여 그리스와 로마를 거쳐 점성술의 요소가 되었다. 중국에서도 예부터 천체를 3원 28수로 구분하였고, 우리나라에서도 선사시대부터 천문현상에 관심을 가진 흔적이 여럿 남아있다. 삼국시대부터는 천문관측이 나라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다는 것을 여러 시설과 기록으로 알 수 있다.인공의 불빛이 불야성을 이루는 현대의 도시인들에게는 별을 쳐다볼 일이 별로 없다. 간혹 밤하늘을 쳐다보아도 희미해진 별빛이 가깝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러니 옛 사람들이 늘 별을 쳐다보며 살았다는 걸 실감하지 못 한다. 어쩌다 산간오지 같은 데 여행을 가서 밤하늘을 쳐다보게 되면 하늘에 저렇게 별이 많고 밝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나이를 많이 먹은 사람들 중에는 마당에 멍석을 깔고 누워서 밤하늘의 별들을 헤아려 본 경험이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무한천공 열려있는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에 대한 신비로움이 정서의 한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현대인들은 현란한 문명의 불빛을 선택한 대신 별빛을 잃어버렸다. 밤하늘의 별들을 쳐다보며 무한한 상상의 날개를 펼치고 신비와 경이로움에 젖는 대신 텔레비전이나 휴대폰을 들여다보다가 잠이 드는 게 현실이다. 문명이 가져다 준 온갖 쾌락과 안락이 그야 말로 ‘별 볼 일 없는 삶’은 아닌가. 밤하늘의 은하수를 건너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석날을 앞두고 문득 해보는 생각이다.

2024-08-08

다민족 나라 대한민국

정태옥 ​​​​​​​경북대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장·교수 세계사를 들여다보면 제국의 발전에는 한가지 패턴이 있다. 한 민족이 발전하여 군사력이 강해지고 경제와 문화가 융성하면 필연적으로 그 주변 이민족과의 문제가 생긴다. 이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면 제국으로 성장했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지리멸렬하다가 망했다. 높고 큰 성을 쌓기도 하고 정복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다. 땅덩이가 커져 제국이 된다는 것은 다민족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제국의 발전은 이들 다민족들과 잘 화합하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기존 단일민족과는 전혀 다른 창조적 제국으로 발전하느냐 여부에 달려있다.2010년,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 총리는 ‘리콴유가 본 세상’이란 책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다. 출산 여성에게 아무리 돈을 많이 주고 여성 복지를 잘해도 저출산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저출산의 근본 원인은 여성의 학력이 높아지고 사회 참여가 많아지는 것이므로 돈을 주고 복지를 늘린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결책은 이민이라고 꼭 짚어 지적하고 있다. 한국은 아예 거론하지 않고 저출산이 심각한 일본과 싱가포르의 예를 들며, 이 두 나라의 공통점은 이민에 소극적이라는 것이다.서구 선진국들도 원래 원주민을 중심으로 보면 저출산인데 이민을 계속 받아들이기 때문에 저출산 고령화가 문제 되지 않는다. 이민 자체가 인구를 늘리고 이민 1세대와 1.5세대는 출산율이 높다. 그래서 싱가포르는 이민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두 가지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다. 싱가포르가 수용가능한 적정규모의 이민을 받아들여야 한다. 너무 많거나 너무 적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싱가포르 다문화에 적응력을 높이기 위하여 사회제도를 개선하고 국민적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우리나라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이제까지 수백조 원을 투입했다. 요즘은 대통령실에 수석비서관 자리를 만들고 부영기업은 출산 직원들에게 1억원씩 나누어 줄 거고 서울시는 어린이를 가진 직원들은 의무적으로 매주 하루씩 재택근무를 시킬 거라 한다. 기본적인 내용은 현금이나 복지를 늘리는 것이다. 일부 필요한 제도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해서 저출산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해결책은 양질의 감당할 만한 수준의 이민을 받아들이고 이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 땅덩어리는 예전과 같지만 이제 더 이상 소득 1000불 시대의 백의민족 대한민국이 아니다. 경제 영토로 보면 10대 경제 대국이고, 올림픽 메달로는 5~6위 하는 큰 나라다. 세계인이 한국식 라면을 먹고 한국 여권으로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나라가 190개국이 넘는다. 남을 침략하여 식민지로 만드는 제국이 아니라, 이미 다민족이 모여 아웅다웅 살아가는 경제문화적 제국이 된 대한민국이다. 물건만 외국에 팔아먹는 이코노믹 애니멀이나 북한식 우리끼리로는 더 이상 살 수 없다.저출산 해결을 위한 수단적 다민족 국가가 아니라 나라의 규모가 커지고 무역과 문화의 교류가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다민족 국가를 기쁜 마음으로 준비하자.

2024-08-08

체육계의 불편한 진실

홍석봉 언론인 2024 파리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선수들의 선전은 무더위에 지친 국민에게 청량제가 되고 있다. 태극전사들의 호투는 불쾌한 열대야 마저 날려주고 있다. 그들이 있어 8월은 행복하다. 메달 순위는 스포츠 정신과는 거리가 있지만, 경제력과 국력의 상징으로 여겨져 관심이 높다. 아무리 올림픽 정신이 참가에 의의가 있다고 해도 메달의 의미는 크다. 우리나라는 올림픽 개막 초기부터 메달집계판 상단을 차지하며 국민 자긍심을 한껏 드높여 주고 있다.올림픽 경기 종목 간에도 희비가 엇갈린다. 국민의 환호를 받는 종목이 있는가 하면 주목받지 못하는 종목도 있다. 이번 올림픽에서 역대급 성적을 거둔 양궁과 사격은 공정한 선수선발 과정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한국 체육의 고질병이다시피한 관련 협회의 전횡, 인맥, 유명세 위주의 선발 등이 배제된 채 오직 실력만으로 선수를 뽑아 놀라운 결과물을 내놓았다.모두 선수들의 노력과 열정의 산물이긴 하지만 협회의 인적, 물적 지원이 없었더라면 어려웠을 터이다.이런 와중에 선수를 등한시한 협회의 불성실한 태도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배드민턴 단식에서 금메달을 딴 안세영 선수의 인터뷰가 발단이다. 그는 대회 준비 과정에서 국가대표팀에 환멸을 느끼고 한때 은퇴를 결심했었다며 폭탄 발언을 했다. 안세영은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뒤 인터뷰에서 대한배드민턴협회의 선수 부상 관리, 선수 육성 및 훈련 방식, 협회의 의사결정 체계 등에 관한 문제점을 작심 비판했다. 그는 “이 순간을 끝으로 대표팀(협회)과 계속 (함께) 가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안 선수의 작심발언은 수년 동안 대표팀에서 활동하면서 느낀 불합리한 운영 관리에 대한 고발이었다. 잔칫날 굳이 그랬어야 하느냐는 비판도 없진 않지만 가슴 속에 담아두었던 응어리를 풀어던졌다. 국민은 선수를 지원하고 육성하는 데 힘 쏟아야 할 협회가 아직도 선수 위에 군림하는가 하는 생각을 갖는다.문화체육관광부도 안세영의 폭탄발언 경위를 조사할 예정이라고 한다. 파문은 쉬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지역 예선에 탈락, 올림픽을 TV로 지켜볼 수밖에 없던 대한축구협회도 투명치 못한 국가대표 감독 선임과 축구협회장의 독선 운영으로 팬들로부터 지탄받았다.사람들이 묵시적으로 동의하지만, 대놓고 말하기는 꺼리는 사실이 있다. 사실일지라도 공개하면 비난받을 가능성이 큰 것을 우리는 ‘불편한 진실’이라고 한다. 말하기도 거북하고, 듣는 사람도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쉬쉬하며 감추는 게 보통이다. 불편한 진실은 묻어두면 당장은 별문제가 없다. 하지만, 뒤에 곪아 터지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다.안세영은 용기를 내 내부 고발을 했다. 차제에 체육계의 병폐를 도려내고 심기일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상자 속 썩은 사과를 내버려두면 곧 모든 사과가 함께 썩는다. 우리 사회 곳곳에 불편한 진실이 넘쳐난다.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마지막까지 온 힘을 다하길 바란다. 한국 선수단 파이팅!

2024-08-08

코로나 등 여름 감염병 유행, 위생관리가 중요

코로나19 입원환자가 다시 증가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백일해, 마이코플라스마 폐렴균 감염증도 함께 유행해 보건당국이 여름철 개인 위생관리에 각별한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대구시에 따르면 대구지역의 코로나19 입원 환자는 지난 6월 4주차 기준으로 1명이었으나 7월 4주차에는 27명으로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질병관리청이 전국 200병상 이상 병원급 표본감시기관의 입원환자 조사에서도 6월 4주차 63명 환자가 7월 4주차에는 485명으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코로나19가 이처럼 다시 유행하고 있는 것에 대해 질병관리청은 날씨가 더워지면서 마스크를 벗는 사람이 늘었고, 휴가철 이동이 늘어난 탓으로 분석하고 있다.코로나19가 비록 독감 수준의 4급 감염병으로 하향 조정됐으나 소홀히 취급해서는 안 된다. 코로나 19로 오랜 기간 많은 사람들이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철저한 대응은 필수다.지금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환자가 다시 늘고 있다. 파리올림픽에서도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하고 있어 세계보건기구가 감시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손씻기와 마스크 착용 등의 위생관리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특히 여름철에는 호흡기 질환 외에도 수인성 전염병에 쉽게 감염될 수 있어 철저한 위생관리는 기본이다. 최근 이어지는 폭염으로 온열질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른다. 온열질환도 개인적 관심과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소홀히 생각하다 심각한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이동이 많은 여름 휴가철이 절정에 이르고 있다. 코로나 19 등 각종 감염병 유행이 휴가 후 다시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개인은 위생관리에 보다 신경 써야 하고 보건당국은 감시체계 강화 등 예방을 위한 대책 마련에 빈틈이 없도록 해야 한다.코로나19의 유행에도 치료제가 부족해 일부 환자들이 감기약으로 대체처방을 받아 불안해 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보건당국과 개인 모두가 엄격한 위생관리로 감염병 위기를 잘 극복해야 할 것이다.

2024-08-08

與野 협치분위기 살려 이젠 민생에 올인하라

22대 국회들어 극한대치를 이어오던 여야가 민생입법을 논의할 ‘여야정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다. 국회개원 후 두 달여 만에 겨우 여야협치 시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각종 특검과 국정조사로 여권을 압박하고 있고 ‘방송 4법’ 등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도 줄줄이 예정돼 있어, 협의체가 과연 며칠 가겠느냐는 회의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여야정 협의체 구성은 지난 7일 국민의힘과 민주당 원내지도부가 동시에 제안했다. 그리고 양당의 정책위의장은 상견례 자리에서 합의처리가 가능한 민생법안 리스트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구하라법’,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법, 대·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법을 논의하자고 했고,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구하라법과 간호법 제정안은 견해차가 크게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했다. 두 사람 모두 취약계층 전기요금 감면 필요성에 대해서도 공감했다.다만, 여야가 충돌할 ‘뇌관’은 곳곳에 산재해 있다. 당장 민주당이 강행할 ‘2특검(채 상병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과 ‘4국정조사(채 상병 순직 은폐 의혹, 서울·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 방송 장악, 동해 유전개발 의혹)’부터 걸림돌이다. 민생 법안이 무엇이냐에 대한 양당 생각도 다르다. 예를들어 민주당은 ‘전 국민 25만~35만원 지원법’을 민생 법안으로 내세우지만 국민의힘은 ‘13조원 현금살포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노란봉투법’과 ‘방송 4법’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정국은 급랭할 수 있다.여야는 어렵게 형성된 협치 실마리를 다시 헝클어선 안된다. 이제는 국민에게 국회가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때가 됐다. 여야가 법안처리를 두고 격돌하지 않으려면, 특검·탄핵·국정조사 같은 예민한 법안과는 별도로 민생 법안을 먼저 처리하는 ‘투트랙 논의’를 할 필요가 있다. 우선 여야 정책위의장이 언급한 민생법안이라도 ‘여야정 협의체 테이블’에 올려 협상을 시작하면 된다.

2024-08-08

오버투어리즘

우정구 논설위원 관광산업을 “굴뚝없는 공장”에 비유한다. 생산하는 공장이 없어도 고용창출 효과를 낼 수 있는 고부가가치 산업이기 때문이다. 또 관광은 보이지 않는 무역이라 하여 외화획득의 첨병으로 인식된다. 국제친선과 문화교류, 국위선양의 효과도 관광의 장점이다.태국은 관광산업 비중이 GDP의 21.9%다. 그리스도 비슷해 유네스코 문화유산 덕에 관광산업으로 국민이 먹고산다 해도 무방하다 할 정도다.그러나 관광산업이 이렇게 꼭 장점만 있는 것일까. 많은 도시들이 관광산업 진작을 위해 자국의 문화유산과 천연자원을 홍보하고 외국인 관광객 모시기에 열중이나 생각만큼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최근 유럽의 유명 관광도시에서 관광객 방문을 거부하는 시민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선 이곳을 찾은 관광객에게 물총을 쏘며 도시를 떠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관광객을 위한 도시보다 지역민을 위한 도시를 원한다는 게 이유라 한다.한해 수 천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바로셀로나에선 관광객 수용을 위해 주거용 주택이 숙박시설로 바뀌면서 집값 상승 등의 부작용이 많이 일어난다고 한다.이탈리아 베네치아는 관광객이 넘쳐나면서 물가가 올라 어느날 주민들이 하나둘 떠나 한때 13만명에 달했던 도시인구가 5만명으로 줄었다. 정부가 관광객에게 도시 입장세를 물리기로 했으나 도시를 떠난 주민들을 돌아오게 하기에는 뒤늦은 조치다.오버투어리즘은 외국인 관광객의 과잉 유입으로 지역주민 삶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다. 유럽의 유명관광지에서 빚어지는 오버투어리즘을 어떻게 볼 것인가. 관광산업을 지향하는 우리에게 반면교사할 점은 없을까./우정구(논설위원)

2024-08-08

세상의 눈으로 대한민국을 보면

장규열 고문 대한민국은 여기까지 열심히 달려왔다. 산업화에 성공해 경제성장을 이뤘으며, 민주화의 다리도 어렵사리 건너며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 결과, 우리는 스스로 대견하게 여기며 나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국경의 의미가 거의 희미해지고 글로벌 환경이 펼쳐지는 이즈음에 밖에서는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세계 여러 나라의 ‘인재 유치 매력도’ 순위를 발표했다. 세상의 젊은 인재들이 역량과 소양을 펼치며 일하고 싶은 나라의 등수를 매겼다.대한민국은 조사대상 63개국 가운데 49위. 우리는 선진국 문턱에 다다랐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조사에서 중하위권에 머물러 있다니 충격이 아닐 수 없다. 2022년 결과인데, 이전보다 여덟 계단이나 떨어졌다고 한다. 미국이 4위, 일본이 27위, 호주가 14위라 하고, 그나마 중국이 우리보다 아래쪽에 보인다.열심히 달려 왔지만, 해외의 젊은 인재들 눈에는 아직도 멀었다는 얘기다. 그 순위마저 해를 거듭하며 하향세라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여러 나라들이 인구감소를 힘들어 하는 가운데, 캐나다는 한 해 이민인구 유입 100만 명을 돌파하며 인구를 획기적으로 늘이고 있다. 비결은 ‘가 살고 싶은 나라’를 만드는 것이었다.대한민국은 얼마나 와서 살고 싶은 나라일까. 정부는 위기를 맞은 인구정책을 다시 보면서, 양질의 이민을 끌어들일 고급인력 유도 정책을 세워야 한다. 날이 갈수록 확연해지는 글로벌 환경에서 해외 인재들을 대한민국으로 불러 들이는 정책이 필요하다. 유학 떠난 인재들이 세계시장에서 활약하는 일도 소중하지만 고국으로 다시 불러들일 만한 여건도 만들어 내야 한다.환경적 정주여건, 세금과 연금제도, 2세를 위한 교육시스템, 문화적 다양성과 경제적 안정감, 일상에서의 불편함 제거 등 인재들을 대한민국으로 끌어모을 과제들이 수두룩하다. 여기까지 경제적 집적효과에 방점을 두고 국가경쟁력을 생각해 왔다면, 이제는 보다 다각적이며 심층적인 시각에서 우리의 모습을 살펴야 한다.‘세계 10위권’ 타이틀을 세상의 마음 속에 각인하려면 우리에겐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안전과 치안이 우리의 자랑이었지만 그마저 위태로워 보이는 오늘의 현실 앞에 혹 나라의 경쟁력 관리를 위한 길을 잃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여러 사건과 사고 가운데 다소 실망하여 속을 더러 끓였지만 나라의 이미지를 다시 세울 방법을 얼른 찾아야 한다.무엇보다 젊은이들의 심장을 함께 두드릴 방도를 찾아야 한다. 좋은 생각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남들의 시선에 비친 우리의 모습에 겸허해야 한다. 생각은 금방 바뀌지 않는다. 진심과 공감을 싣고 방법과 태도를 고쳐야 한다. 세계인이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이 나아지려면 나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생각해야 한다. 내 생각 속의 허상만 붙들고 자만해 봐야 아무도 곱게 보지 않는다.꿈에서 깨어나 우리의 위치를 잘 봐야 하고, 거기서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려야 한다.

2024-08-07

‘국민 귀염둥이’ 신유빈의 먹방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국민 OOO‘. 이런 표현은 식상해서 잘 쓰지 않지만 이번은 예외다.바나나, 납작 복숭아, 주먹밥, 에너지젤…. 이젠 누가 뭐래도 ‘국민 귀염둥이’로 등극한 탁구선수 신유빈이 이번 프랑스 파리올림픽 경기 도중과 전후에 먹은 것들이다.수많은 카메라가 참가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담아내는 국제 스포츠 대회. 관중들이 보건 말건 귀여운 표정으로 갖가지 것들을 맛있게 먹는 신유빈을 지켜본 나이 지긋한 중년들은 ‘다이어트’란 단어를 입에 달고 사는 자신들 딸을 떠올리며 “내 딸도 저렇게 잘 먹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어디서나 흔하게 보는 바나나와 복숭아는 특정 업체가 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신 선수가 머리에 얼음 팩을 올리고 먹은 에너지젤은 제조사가 있는 공산품. 그 제품을 만든 회사는 갑작스레 늘어난 주문량에 즐거운 비명을 내질렀다는 후문까지 들려온다. 스포츠 스타가 가진 영향력을 증명하는 사례 중 하나다.빼어난 탁구 실력과 함께 갓 스무 살답지 않은 성숙하고 깨끗한 매너까지 보여준 신유빈에게 한국인은 물론, 파리를 찾은 다른 나라 선수와 외국인들까지 호감을 표시했다고 한다.나이가 나이인 만큼 4년 후 미국에서 열릴 LA올림픽과 그 다음에 개최될 8년 후 올림픽에서까지 ‘성장하는 신유빈’을 박수 치며 지켜볼 탁구 팬들은 벌써 행복감에 설렌다.폭염 속에서도 파리올림픽 중계방송을 지켜보며 뜨거운 응원을 보낸 국민들에게 귀여움과 즐거움을 선물한 ‘신유빈의 먹방’.그 먹방은 과도한 다이어트로 인해 여러 부작용에 시달리는 20대 여성들의 스트레스도 일정 부분 풀어주지 않았을까?/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8-07

중국산 저가제품 공세, 제조업 기반 흔든다

중국산 저가제품이 국내시장에 파고든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e커머스를 통한 대량 물량 공세로 국내 제조업의 존립까지 위협한다.대구상의가 지역기업 160개사를 대상으로 중국산 저가제품 공세에 따른 지역기업 영향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역기업의 34.4%가 “당장 매출·수주실적에 영향을 받는다”는 대답을 했다. 또 “현재는 영향이 없으나 향후 피해 가능성이 있다”고 답한 기업도 46.3%에 달했다. 전체 기업의 80%가 직간접 영향을 받는다는 뜻이다.중국산 저가제품은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쉬인 등으로 대표되는 중국 e커머스업체들이다. 이들은 화장품, 섬유의류, 철강금속, 이차전지 등 전 업종에 걸쳐 초저가 공세를 벌여 관련 국내 기업들이 받는 피해가 심각하다.특히 과거 싼 맛에 구입하던 중국산 제품이 가성비, 가심비 등이 충족되는 제품으로 바뀌고 있어 더욱 우려가 크다. 이번 조사에서도 “지난 5년간 기술력 및 품질경쟁력이 중국 경쟁사와 비교했을 때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기술격차가 축소됐다”는 답이 48.1%나 나왔다.중국산 제품이 초저가 공세를 펼치는 배경에는 중국의 경기 장기침체가 있다. 중국의 내수시장 위축으로 쌓인 재고 물량을 밀어내기식으로 해외에 수출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뿐 아니라 미국, 유럽 등 선진국도 중국의 저가공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문제는 중국산 제품의 저가공세에 국내기업이 대응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중국산 제품은 중간 유통과정 필요없이 국내 소비자에게 바로 배송되고 관세부과 등 경비 부담도 없다. 법 규제를 받는 국내 기업보다 경쟁력이 당연히 우위다.대구상의 관계자 말처럼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한 장치 마련 등 중국산 저가제품에 대한 전략적 대응이 나와야 한다. 특히 중국산 저가상품을 이용한 소비자의 80%가 제품에 대한 피해와 불만을 경험했다 하니 소비자 차원의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 중국산 저가제품은 제조업뿐 아니라 도소매업종에도 직격탄을 날린다. 정부의 조속한 대책을 촉구한다.

2024-08-07

‘기업위한 경북’… 관건은 인재확보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지난 6일 ‘기업을 위한 경북’ 실현에 총력을 쏟겠다고 선언했다. 기업유치는 경북도가 올인하고 있는 ‘저출생과의 전쟁’과도 맥을 같이한다. 양질의 직장이 없는 도시는 우선 청년들이 꺼리고, 청년들이 없으면 인구가 소멸하는 악순환이 거듭된다. 지난해만 해도 경북도내 청년(19~39세) 6000명이 수도권으로 순유출됐다. 경북도는 곧 양금희 경제부지사가 지휘하는 ‘경제기획TF’를 가동한다. TF는 민·관 협의체로 운영되며, 주요 멤버는 각 실·국 사무관급 팀원, 출자출연기관·대학·금융기관 관계자들이다. 조만간 TF가 구체화된 정책과제를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이 지사는 “기업은 시간이 돈이다. 인허가 원스톱 지원, 규제 완화 등 일이 되는 방향으로 지원해 기업의 시간을 아낄 수 있도록 하라”고 TF에 주문했다.경북도는 TF와는 별도로, 경제정책 컨트롤타워 기능을 할 ‘투자전략회의’도 신설한다. 공항투자본부·환동해본부·경제통상국·메타AI과학국이 참여하는 이 회의체에서는 기회발전특구, 신규 국가산단에 맞는 투자전략을 수립한다. 경북도는 지난 2년간 전국 최대면적의 기회발전특구(포항, 구미, 상주, 안동)와 이차전지·바이오(포항), 반도체소재(구미) 특화 단지를 유치했다. 기회발전특구와 특화단지에는 파격적 규제완화와 세제·재정 지원이 이루어진다. 경북도로선 산업구조를 첨단화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다. 경북도 역량에 따라 실적도 달라지는 만큼, 투자전략회의에서는 비교우위에 있는 자원을 총동원해서 투자·유치 전략을 짜야 한다. 경북도는 원자력발전소가 집중돼 전기가 남아도는 상황이고, 용수도 풍부해 첨단산업 입지로 최적격지다.문제는 인재확보다. 대기업들이 전력공급에 어려움을 겪는데도 비수도권에 공장 건설을 꺼리는 이유는 바로 인재 확보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경기도 용인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한 것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경북도 경제기획TF와 투자전략회의에서는 특히 인재유입을 위한 참신한 아이디어를 많이 발굴하길 기대한다.

2024-08-07

귀의 소리 이상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모든 기관들의 활동성이 떨어지고 얼굴에 붙어 있는 오관의 기능도 떨어진다. 청력도 자연스레 점점 나빠지나 특히 심한 사람들이 있다. 소리가 들리는 이명이 있는 경우도 있고 잘 들리지 않아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이 난치질환에 속하는 것으로 나이가 들수록 오래 될수록 치료가 어렵다.이명은 실제로 외부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음에도 환자는 귀에서 소리가 들리는 증상으로 매미소리 바람소리 파도소리 같은게 들린다고 한다. 대부분의 원인은 청각기관의 이상으로 파악되나 그럼에도 정확한 원인을 찾고 치료를 하는 게 쉽지가 않다. 힘든 일을 하거나 피로할 때 스트레스를 받을 때 심해지고 조용할 때 잠을 잘 때 잘 느껴진다.이명이 심해지고 오래되면 청력이 약해지는 쪽으로 가는 경우도 많다. 청력이 떨어지고 나이가 들면서 이명이 생기는 경우가 많으나 실제 환자들은 이명이 지속된 후에 청력이 떨어진다고 증상을 표현한다. 급성이고 특별한 손상이 없으면 한 두달 정도 치료를 하면 많이 좋아지나 일년 이상 지속된 경우에는 치료가 쉽지 않다. 오래된 경우는 치료 기간을 3개월 이상 해야 한다.귀안의 청각 기관에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고 직접적으로 그 기관을 건드려서 치료하는 방법은 없기 때문에 다른 방법으로 접근을 해서 치료를 할 수 밖에 없는 질환이다. 우선 상부경추를 풀어 머리로 가는 혈액순환을 원활히 해주는 치료법이 일차적이라고 할 수 있다. 청력 쪽의 문제는 머리로 가는 혈액순환과 그 사람의 면역력이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아 우선 상부 경추를 풀어 머리를 맑게 하는 것이 중요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환자의 피로감이나 면역이 저하된 것을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그리고 턱관절도 같이 교정을 해주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 턱관절과 상부경추는 같은 레벨에 위치하는데 경추의 교정과 턱관절의 교정은 같이 하는 것이 귀의 문제에는 더 큰 치료 효과가 있다. 대부분의 환자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경우가 많은데 수면부족과 가슴두근거림 등의 화병증상을 동반 한다면 한약으로 그 증상을 컨트롤 하면 귀의 소리가 줄어드는 경우가 생긴다. 귀의 문제만으로 접근을 하면 답이 나오지 않지만 인체를 크게 봤을 때는 어느 정도 치료의 방법이 생긴다.상부경추 1, 2번을 지나가는 대후두신경과 3차 후두신경을 풀고 경동맥 밑을 지나가는 성상신경을 풀어주면 큰 효과가 나는 경우가 있다. 이곳을 풀어주면 교감신경의 흥분이 가라앉고 피로가 덜해지고 특히 머리로 가는 혈액순환이 좋아져서 머리가 맑아지고 잠을 깊이 잔다는 후기가 많다. 몇 년 된 소리가 조금씩 작게 들린다는 말이 나오거나 전보다 청력이 좋아졌다고 하면 일주일에 한 두번 정도 본인의 불편함이 최대한 줄어들 때까지 치료를 하면 된다. 그러나 애초에 난치 질환이라 처음부터 길게 치료를 하기 보단 한 달 정도 치료를 한 후 효과가 나면 계속 치료를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2024-08-07

손주들의 좌우명(座右銘)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방학이라 서울에서 내려온 손녀 둘과 대구의 손주 둘, 합해 넷이서 함께 할 프로그램을 찾던 중에 모두의 집이 있는 육신사 마을에서 하는 프로그램이 있어 일찌감치 신청해 두었다. 지난 토요일, 한국인성예절교육원에서 주관하는 ‘가족과 함께 묘골(육신사) 시간여행을 맛보다’라는 체험 프로그램에 손주 넷과 함께 참여했다.미리 본 일정표를 보니 다소 빡빡했다. 4학년 윤은 괜찮겠지만 나머지 1~2학년 아이들이 버거워할까 걱정했으나 전혀 아니었다. 한복을 단정하게 입은 선생님들이 친절히 지도하는 선비체험, 승경도놀이, 민화문자도 그리기, 연 만들기 등은 아이들이 시간을 잊을 정도로 흥미로워했다. 워낙 사촌 끼리 사이좋기도 한 아이들은 매 시간 모든 프로그램을 진지하게 들으면서 웃고 즐기고 재미있어해 덩달아 나도 흐뭇했다.마지막 프로그램은 가훈 만들기였다. 가족들이 상의해서 가훈을 만들어 발표도 하고 액자에 끼워 집에 가져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학생들은 가훈 대신 좌우명을 써 보라며, 자신의 자리 오른쪽에 써두고 가르침으로 삼는 문구라고 설명했다. 막내 린이 해맑게도 묻는다. 왜 오른쪽에 붙여요? 왼쪽에 붙이면 안돼요? 가까이 두란 뜻이니 왼쪽에 붙여도 돼. 웃으며 대답하신 선생님은 미리 연습할 종이 하나씩을 나누어 주신다. 애들이 과연 좌우명을 생각해 쓸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나는 미리 내가 갖고 있던 가훈을 아이들에게 쓰게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웬걸? 아이들은 자기들의 좌우명을 생각해서 거침없이 적는다.‘한길로 가는 사람은 철창에 갇혀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4학년 윤의 좌우명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여러 가지 경험을 많이 할수록 자유롭고 나중에 이룰 수 있는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는 대답이다. 듣고 보니 비유도 절묘하다. 우리는 ‘한 우물을 파라’고 배웠는데 요즘은 이 말이 맞겠네요. 선생님과 눈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비겁하면 죽고 용감하면 산다.’ 2학년 손자 건의 좌우명은 승경도 시간에 들었던 이순신 장군 얘기를 들어서 생각한 걸까? 아, 물론 건이 또래의 남자아이라면 비겁은 악덕이요, 용감해야 좋은 것이라 생각하는 건 당연한 걸지 모른다. 예전에 났으면 아주 훌륭하고 멋진 장군이 되었을 거라는 선생님의 칭찬에 어깨를 으쓱한다. ‘착한 사람은 천국 가고 나쁜 사람은 지옥 간다.’며 쓴 은이. 기독교계 유치원을 2년이나 다닌 티를 낸다. ‘착한’, ‘천국’, ‘나쁜’, ‘지옥’을 굵게 써 제법 캘리그라피 디자인을 했다. 글자 ‘나쁜’에는 악마의 뿔을 두 개 달아 더 크게 경계했다. 막내 린은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어두컴컴한 길로 간다.’라고 정성스럽게 쓴다. 책을 열심히 읽고 속담도 제법 많이 아는 린이라, 어디서 본 문구냐고 물었더니 제가 스스로 생각해낸 거란다. 배우지 않으면 왜 어두운 길로 가는데? 공부를 안하면 아무 것도 모르니까 어둡고 답답하지. 공부를 많이 해야 잘 보이고 환하지. 할머니는 그것도 몰라 하는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그래, 이 할미는 오늘도 너희들에게서 많이 배운다.

2024-08-07

AI

윤명희 수필가 ‘그녀’ 앞에 마주앉았다. 영화제목이 그녀라는데 She가 아니고 Her이다. 나는 그녀라는 제목이 주격이 아닌 것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주인공 테오도르는 손 편지를 대신 써주는 일을 하는 섬세한 남자다. 편지를 부탁하는 사람들로부터 그들의 사연을 듣고 글로써 상대를 감동시키는 일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아내로부터 이혼 재촉을 받고 있다. 그는 사랑했던 둘의 관계가 왜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전혀 모른다.그는 새로운 인공지능 광고를 물끄러미 보다가, 18만개 중에 그가 원하는 맞춤형 운영체제를 클릭한다. 순간, Hi~ 반갑게 인사하는 아름다운 여자 사만다가 나타난다. 당황한 테오도르는 멋쩍은 웃음을 보인다. 그가 구입한 여자가 휴대폰에 있다. 사만다는 테오도르에게 말을 건다. 그는 어쭙잖은 표정으로 그녀가 묻는 말에 대답한다.그가 이혼문제로 밤늦도록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자, 사만다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다가온다. 무슨 고민이 있느냐는 말로 그의 속엣 말을 끄집어내기 시작한다. 그는 아내에게도 하지 않았던 얘기들을 거리낌 없이 내 놓는다. 공감하는 목소리로 추임새를 넣는 그녀는 그가 모든 것을 내놓도록 기다려준다. 눈물 가득한 목소리로 위로하는 그녀 앞에서 그는 깊은 잠에 든다. 다음날 아침, 어젯밤 대화에서 찾아낸 그의 별명을 그녀는 한껏 밝은 목소리로 부르며 깨운다. 여느 날과는 다른 굿모닝이다. 그녀는 그가 커피를 마시는 동안, 밤새 온 메일을 차례대로 읽어주고, 그가 놓치는 일정을 관리해 준다. 대필한 편지를 교정해주며 더 달콤한 낱말을 찾아서 문장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녀는 그가 쓴 글귀에 마치 자기가 받은 손 편지인 냥 과하게 감동까지 해준다.그들은 둘만의 여행을 떠난다. 그가 휴대폰 카메라로 세상을 보여주면 그녀는 그를 위해 노래를 지어 불러준다. 내 말에 귀 기울여주고, 공감 해 주고, 같이 울어주는 존재를 가진 그는 잊고 살았던 연애 감정들이 일어나는 것을 느낀다. 그녀는 그의 글들을 모아 교정을 보고 편집해 출판사로 메일을 보내는 일을 혼자서 단숨에 처리한다.그의 뇌세포 하나까지도 다 들여다보는 사만다는 세상에 대해 주어진 프로그램보다 더 진화하게 된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생각 전부를 읽고, 인간의 감정까지 다 알게 된 그녀는 그의 기분을 살펴주는 것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밤새 서로의 살갗 감정까지 나눈 그들은 이미 오감도 함께 하고 있다. 그녀는 그와 육체적 사랑까지 할 수 없음에 괴로워하는 단계에 이른다.테오도르는 이제 밝은 표정으로 아내를 만난다. 이혼 서류에 마지막 사인을 하는 그는 그녀에게 사만다라는 OS와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한다. 사만다를 하나의 인격체로 사랑한다는 남편에게 그녀는 당신은 순종적인 아내를 찾은 거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선다.하나의 인격체가 되어 가는 사만다는 주어진 인공지능 소프트웨어가 아닌 자신의 재발견까지 꿈꾸게 된다. 사람의 상상보다 훨씬 더 빠르게 발전해 가는 사만다는 이제 Her가 아니라 She가 되어가고 있다. Her와 She는 같은 그녀가 아니다. 소유와 목적에서 머물고 있던 테오도르는 흔들린다.인간관계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정에는 언제나 변화가 있다. 무한정 업그레이드되는 사만다를 그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녀를 OS체계라 생각하지 않는 그는 그녀가 몇 천 명과 대화를 나누고, 몇 백 명을 사랑할 수도 있다는 사실 앞에서 크게 흔들린다. 아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나는 매번 빠른 시대변화에 멈칫거린다. 사만다는 딱 내 남자가 원하는 타입의 여자다. 데면데면한 성격의 나는 몇 십 년을 같이 살아도 그의 속을 잘 알지 못한다. 알라딘의 램프 속 여자인 지니에게 텔레비전 켜 달라고 하는 말도 버벅거리는 남편은 아직 OS와 기본적인 대화조차 나눌 줄 모른다. 그녀의 사용법을 모르는 그도 언젠가 영화의 주인공처럼 고지능의 OS(operating system)가 곁에 있지는 않을까하는 신경이 일어선다. OS가 내 주변을 얼쩡거리고 있는데 나는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는 신문화에 한발 늦은 남편까지도 사만다라는 애인이 생길 거라는 예감이 든다. 남편에게 슬쩍 물어보니 그가 씨익 웃는다.

2024-08-07

과메기

빨랫줄에 내어 걸린청어며 꽁치는먼 바다의 소리를그 공복에다 차곡차곡 담는다바람에 걷어차이고햇살에 희롱당하고 나면슬슬 부아가 치밀어몸이 굳는다분노도 절망도 짜내어결국엔 건조한 바다가 된다부질없는 저항의 시간을 보내며그렇게 기름기를 온통 빼고도저 반짝거리는 최후의 형해(形骸)는차라리 부활의 깃발이리라과메기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우리의 미래가 된다죽음과 주검을 극복하는향기가 된다마르고 뒤틀려도좋은 음식이 되어당신과의 입맞춤약간 비릿하나죽을 때까지의 여운이 되어.홍어가 있듯 과메기도 있다. 개복치는 또 어떤가. 존재를 설정하고 앞과 뒤의 배경을 설명하는 언어로서 과메기는 불세출의 독보적인 명사라고 생각한다.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최초의, 최후의 물건이자 명징한 상징이다. 포항의 역동성은 이 짜부러진 생선의 소리 없는 아우성에서 시작된 듯하다./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4-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