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지란, ‘개인이 외부의 강제나 내적 필연성 없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위를 하는 능력’을 말한다는 정도로 대충 정의할 수 있겠다. 이러한 정의가 그럴듯하여 보여도 자유의지를 제대로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자유의지는 ‘자유’와 ‘의지’라는 두 단어의 철학적 함의는 물론, 양자의 의미가 결합 된 이후의 뇌과학적 분석까지 필요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부분 자유의지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여왔던 역사 속에서 살아왔다. 범죄를 저지른 자의 범죄 행위는 자유의지로 인한 것이었으므로, 뒤따르는 법적 책임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인간의 행위는 자유의지의 결과물로서 발생한 것’이라는 믿음으로 인한 것이다. 이러한 믿음을 인류는 오랜 기간 신앙처럼 지켜왔다.(슬프게도 자유의지는 종교를 지탱하는 큰 기둥이기도 하다) 자유의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할 때, 그 중요 구성 요소는, ‘선택 가능성, 자기 결정성, 도덕적 책임’이다. 그런데 그 범죄가 범죄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저질러진 것이라면 우리는 범죄자를 어떻게 처벌하여야 할 것인가? 도덕적 비난을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현대 뇌과학계에서 자유의지 긍정론에 반대하는 상당수의 뇌 과학자들이 자유의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제기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자유의지 긍정론과 부정론의 비율이 정확하게 조사되어 보고된 통계는 없지만,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자유의지란 없다’라고 주장하는 뇌과학자들은, 우리가 내린 결정은 우리가 ‘의식하기 전에 이미 결정된 것’이며, ‘자신이 결정하였다고 생각(의식)하는 것은 착각’일 뿐이라고 한다.
자유의지의 존재 여부를 판단할 때, 우리의 행위를 결정하는 마음의 발생 기관인 우리의 신체, 그 중 특히 뇌가 ‘물질로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아주 기본적인 사실을 고려하여야 한다. 행위의 근원인 마음은 물질인 신체(대부분 뇌)에서 발생 되기 때문이다. 현대 뇌 과학에서도, 마음이란 ‘전기적 신호 전달로 인하여 시냅스에서 일어나는 물리 화학적 작용의 결과물’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다수설이다. ‘마음이 물질의 결과물’이라는 선언에 대하여, 우리의 순진하고도 전통적인 영혼 수호자들은 경기를 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사실인 것을 어떡하랴! 물질의 작용이 잘못되면 마음도 잘못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어찌할 것인가! 우리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곳에서 우리가 결정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질(시냅스)에서 발생(창발)한 마음이 물질이든 아니든 그것은 그다음 문제이다.
범죄자의 행위가 자신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면, 이에 대한 법적 처벌은 달라져야 한다. ‘도덕적 비난’보다는 ‘사회 유지와 재범 가능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처벌되어야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창백한 범죄자’에 대하여, ‘바보라고 부르되 죄인이라고 부르지 마라! 생각과 행위, 그리고 그 행위에 대한 표상은 서로 별개의 것이다. 이것들 사이에는 인과의 수레바퀴가 돌지 않는다!’라고 짜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말했다. ‘그냥 처벌하면 될 일’을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서 두 번 죽이지 말라’는 자유의지의 존재에 대한 탁월한 철학적 물음을 던진 것이다. 과연 누가 창백한 범죄자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공봉학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