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낙률 시인·국악인
‘원시 반 본’이라는 말이 있다. 원불교 사전에 나오는 말로 정확한 한자 해석은 시원을 살펴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간다는 뜻이다. 필자는 이 말에 대하여 종교적 의미와는 별도로 오랜 세월 동안 의식 깊은 곳에 새기며 살아온 것 같다. 예컨대 ‘원시 반 본’이란, 생명의 씨앗이 자라서 또 씨앗이 되는 일이며 모든 생명이나 사물이 이 세상에 생겨나서 결국은 제자리로 되돌아간다는 뜻이니, 이 네 글자로 이루어진 짧은 단어에서 실로 오묘하고도 커다란 순환의 진리를 고스란히 느끼는 것은 오히려 한 시대를 살아가는 생명체로서 당연한 일이 아닐까 생각된다.필자가 생활하는 농촌 환경은 오십여 년 전의 모습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사뭇 다르다. 이는, 앞서 말 한 ‘원시 반 본’의 순환 원리에 따른 자연의 변화된 모습이면서도 바쁜 현대인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대자연의 변화라 할 수 있다. 과거 우리네 부모님께서 금쪽같이 여기시던 비탈밭 하며, 산자락에 붙은 제법 큼지막한 농토까지 점차 산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농촌에서 자랐거나 현재 농촌에 거주하는 사람이 아니면 잘 보이지 않는 변화이다. 그리고 그러한 시각의 차이는 각자의 삶에서 그 의식하는 바의 초점이 다르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자연은 참으로 관대하거니와 그 품이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의 그것과 흡사하다. 먹거리가 곤궁하던 시절에 흔쾌히 제 등짝 같은 산자락의 개간을 허락해주고, 인간이 풍요로울 때를 기다려 묵묵히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니, 인간이 고향 산천에서 느끼는 정은 가히 우리네 어버이에게서 느끼는 그 정과 흡사하다 할 수 있겠다.곡괭이로 일군 ‘때기 밭’ 서너 자리를 합쳐서 밭 한 마지기가 되고, 산골짝 ‘다랑논’ 너덧 자리를 합쳐도 논 한 마지기가 될까 말까 한, 오십여 년 전의 우리네 목숨줄 같은 농토가, 이제는 촘촘히 소나무며 참나무 등이 자라는 건강한 모습의 산자락으로 돌아간 것이다. 흙 쟁기 끌던 늙은 암소가 해 그름에 저 혼자서 제집을 찾아가던 그 꼬부랑 논길도, 천수답 골짝논에서 수확한 볏단을 지게로 져 나르던 논둑길도, 이제는 건강한 산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이다.사람들이 주말이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찾는 산행이 그 시절 산이 인간에게 베풀어준 은혜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위한 발걸음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부모님께서 일구시던 야산 자락이 오랜 농사일에 늙고 탈색한 어머님 아버님의 흑백 사진처럼 쓸쓸하게 느껴지는 것이, 단지 겨울 산을 바라보는 필자만의 생각일까도 싶다.생각해보면,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와 어머니 아버지께서도 태어나신 고향 산천 자락에 묻히셨으니 그 또한 자연으로의 회귀이며 ‘원시 반 본’의 진리를 따르셨음이다. 내 어린 시절 귓전에 머문 산새 소리하며 앞산에 울던 고라니 소리, 그리고 안산 자락을 붉게 물들이던 진달래꽃들도 아마 지금쯤 ‘원시 반 본’에 들어 끝없이 순환하고 있을 것이며 필자 또한 어느 장래에, 내 태어난 고향 산천에 뼈를 묻으며 ‘원시 반 본’하는 순환 원리를 따르게 될 것이다.
2022-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