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길을 가다 보면 야생화 군락을 만날 때가 있다. 그중 가장 흔히 만날 수 있는 야생화 군락이 코스모스 군락이거나 유채꽃 군락이다. 이 꽃들은 본디 야생화의 범주에 들지 않는 꽃임에도 불구하고 하천 변이나 인간의 관리 손길이 닿지 않는 길가 잡초밭에서 뿌리를 내리고 예쁜 야생화 군락을 이룬다.
필자는 가끔 이러한 야생화의 군락을 보며 야생과 야생이 아닌 것의 경계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다. 꽃의 세계에서도 인간 신분의 그것처럼 그 종류에 따라 야생화와 야생화가 아닌 것의 경계가 분명히 구분 지어져 있으니 하천가에서 군락을 이루며 피어있는, 과거에는 야생화로 불리지 않던 그 꽃들이 이제 인간의 보호 손길을 받지 못하고 야생으로 피었다고 필자의 입으로 그들을 야생화라 부르기가 좀 그렇다.
인간 사회에도 야생화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의 군락이 있다. 그들은, 화려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야생화로 전락해가는 코스모스나 유채꽃처럼, 자기 점포 하나 가지지 못하고 오 일 장터를 전전하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재래시장 노점상 상인들이다. 그 살벌했던 코로나 위기에서도 국민 누구 하나 그들에게 마스크 한 장 지원해 주자는 사람이 없었고 정부의 수차례에 걸친 소상공인 지원 대상에서 단 한 번도 거론조차 되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상행위를 정식으로 허가받지 못한 ‘노점상’이라는 이름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그나마 노점상조차 못 하게 될까 봐서 눈치만 살필 뿐, 불만을 입 밖으로 표현하지 못했다. 그리고 또 그들은 지역화폐 발행에서도 깡그리 무시를 당했다. 지역사랑상품권이 대량으로 발행되어 사용되는 과정에서 가맹점 허가를 가지지 못하는 탓에, 시장에서 돈 대신 받은 상품권을 은행에 직접 입금할 수 없었고 고객에게서 받은 상품권을 모아 두었다가 웃돈을 주고 현금으로 교환하여 사용하는 등의 불편을 겪었다. 그들에겐, 어쩌면 지역화폐가 노점상을 퇴출하려는 의도로 발행하는 화폐처럼 느껴지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선거철만 되면 각계의 정치인들은 재래시장으로 몰려가서 장사를 못할 정도의 유세 방송을 그들의 귓가에 칠갑하듯 퍼붓곤 하는데 필자는 그런 그들의 행위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씁쓸한 기분을 느끼곤 했다.
야생화로 전락해가는 코스모스나 유채꽃의 화려했던 과거처럼, 그들도 한때는 우리나라 국가 경제의 한 축을 받치며 살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어쩌다 그 삶이 곤두박질치면서 노점상 상인으로 내몰렸을 뿐인데 국가나 자치 행정에서는 어찌하여 철저히 저들의 존재를 잊어버렸을까 싶다. 잃어버린 국민의 무리가 전국 곳곳의 재래시장에서 엄청난 규모로 야생화 군락처럼 살아가고 있는데, 국가행정은 도무지 그들의 존재조차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그들은 누구처럼 서울역사의 노숙자가 아니었고 나라에서 일일이 그 삶을 보살피느라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사람들의 무리도 아니다. 누구의 부축도 받지 아니하고 자력으로 삶을 회복하려는 의지의 재래시장 상인들이야말로 세상의 주목과 응원을 받아 마땅한 그런 인간의 꽃 무리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