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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에 들어

등록일 2022-10-26 17:56 게재일 2022-10-2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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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낙률 시인·국악인
오낙률 시인·국악인

숲이라는 단어는 수풀의 준말이다. 수풀이란 나무들이 무성하게 우거지거나 꽉 들어찬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숲이라는 단어를 인간의 도시에 비유하면, 나무의 사회 혹은 나무들의 도시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나무는 크고 작은 숲 하나를 이루기 위해 어떤 협력의 노고를 지출했을까? 아마도 큰 숲 하나를 이루기 위해 소나무는 소나무끼리 참나무는 참나무끼리 서로의 바람막이가 되어주며 서로 의지하며 자랐을 것은 짐작이 어렵지 않다. 그렇게 수풀을 이루며 사는 나무에까지 ‘숲’이라는 그들만의 사회가 분명히 요구되듯, 이 지상에서 사회의 울타리를 벗어나거나 소외되어 살아간다는 것은 그 어떤 생명이건 간에 지극히 어려운 삶이 되지 않을까 싶다.

흔히 울창한 산림을 두고 자연의 보전상태가 좋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숲이라 부른다. 그리고 날로 번잡해지고 규모화되며 빽빽하게 빌딩이 들어선 모습에서 우리는 또 그것을 ‘도시’라 이름 지었다. 그곳은, 깃들어 사는 종속만 다를 뿐 모두 자연 상관물들의 군락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간의 도시는 치열하리만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그 도시가 우리의 삶에 최적화된 도시일까? 하는 물음에는 선뜻 예스라고 대답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반대로 인간의 눈에 비치는 나무들의 도시는 언제나 조용하고 아름답고 평화롭기 그지없어 보인다, 나뭇가지를 비집고 내리쬐는 햇살을 받으며 동박새 한 쌍이 열심히 자연의 언어를 학습하고, 어느새 단풍이 들어버렸다며 낙엽 한 쌍이 쪼르르 소나무 발치 아래로 몸을 숨기며 산다.

숲의 생태를 가만히 보면 산림이 오래되고 울창해질수록 그 산림에 자라는 수목의 개체 수는 반대로 줄어드는 특징이 있다. 숲을 이루는 나무들이 자라면서 점차 숲의 밀도가 올라가게 되고 그 때문에 주변의 나약한 나무가 자연 도태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현상은 나무들의 밀도를 적정하게 조정하기 위한 자연현상에 해당한다. 그러한 자연의 평범한 원리를 생각하면 인간의 삶 또한 자연의 섭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형편인데 점차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류의 숲이 너무 과밀해져 가고 있어 걱정이다. 인류의 숲이 울창할수록 상대적 빈곤감에 허덕이는 극 빈곤층이 더 많이 생기게 되고, 그것은 머지않아 우리 사회가 영원히 안고 가야만 할 가장 큰 딜레마로 다가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극 빈곤에 허덕이다가 가족을 동반하고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의 뉴스를 근래에 들어 자주 접한다. 이러한 현상은 앞서 말한 나무숲의 이야기에서처럼 문명이 발달할수록 점점 더 심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저 숲속의 나무와는 달리 왕성한 의식 활동을 하는 만물의 영장에 해당하는 존재이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일지라도 나누어 마실 줄 아는 지혜를 가진 자연물이다. 이제 그 극 빈곤에 허덕이는 이들을 구출하는 일이 우리 사회의 가장 시급한 과제임을 모든 국민이 분명하게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 확실하고도 안정적인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만 이 사회가 더욱 아름답고 무성한 숲이 되어 자손만대 번영을 누리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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