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일기 상황을 보면 중부지방엔 비가 너무 와서 난리고 남부지방엔 가뭄이 너무 심해서 난리다. 작다면 아주 작은 우리나라 땅덩어리에서 나타나는 실로 양극화된 기상 상황에 국민은 적잖이 당황하고 있다. 그러나 어쩌랴 이 모두가 자연에서 오는 현상인 것을.
어디 지상에 비를 의지하며 사는 생명이 우리 인간뿐일까, 만약에 하늘에 절대자가 있고 세상이 그분의 농장 혹은 공원이고 지상 모든 생명체가 그분이 가꾸고 키우는 공원에서 그분의 계획하에 개체 수가 조정되면서 살고 있다는 가정하에 최근의 일기 상황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다소 인간 중심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우리는, 공평하지 못한 하늘을 보며 비가 많이 온다든가 가뭄이 너무 심하다는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데, 그게 다 그분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불만으로 생각하면 어떨까 하는 좀 엉뚱한 생각을 가져 본다.
언젠가 바닷물이 짜고 무거운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본 기억이 있다. 그것은 염분의 비중을 이용해서 자꾸만 아래로 침잠하려는 민물을 해수면으로 띄워 올려서 증발 순환케 하려 함이 아닐까 싶다. 지상으로 내린 물은 그곳에서 모두 증발하지 못하고 바다에 흘러들게 되는데 그렇게 바다에 모여든 물은 태양 빛과 낙뢰 등에 의해 일정한 소독과 정화작용을 거쳐서 다시 하늘로 증발하게 된다. 그렇게 순환되어야 할 물이 바다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 버린다면 최소한 그 물은 순환 활동을 중단해야 하는 참상을 면키 어려울 것이니 바닷물이 미리 아래쪽에 위치해서 민물이 아래로 가라앉지 못하게 받치고 있는 셈이다.
높은 산꼭대기에서 삶의 터를 잡은 한그루 소나무 가지와 이파리에 머물던 물도, 어느 양지바른 산골 비탈에서 일생을 마감한 조그만 동물체의 몸속에서 흐르던 물도, 결국엔 제 살던 곳을 벗어나 계곡을 따라 바다까지 이르게 된다.
그렇게 계곡을 따라 흐르던 물이 죽장 계곡에서 아침 안개가 되어 운 좋게 하늘로 오르기도 하고 기북면 손얼벌 들녘에서 논물이 되었다가 하늘로 직행하는 행운의 물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에 해당하지 못하는 대다수의 많은 물은 바다에까지 흘러가서 순환의 대기표를 뽑아 들고 제 순서를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내연산 선일대에 오르면/나는 신선이 되고/진경산수 그림 한 폭/계곡에 그대로인데/아득히 먼 옛사람이 되고만 /겸제만 간 곳이 없네./열두 폭포에 흐르는 물소리 /따라오며 지저귀는 산새소리/신선이 불어주는 젓대 소리 같은데/산 능선 넘어오는 솔바람 소리/이곳을 다녀가신 /시인 묵객들의 탄성 같구나.//연산폭포 수행을 막 끝내고/관음 폭포 수행을 앞두셨을까./시리도록 투명한 물줄기 하나 /고요히 소(<6F05>)에 머무니/아! 그 모습 /입정에 든 수도승 같아라.”-오낙률 시 ‘내연산 12폭포 비경’
언제나 인간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물에 관한 문제이다. 물에 관한 문제를 늘 인간 삶의 본질적 문제에서 분리키 어려운 것은 생명 활동의 본질이 물의 순환 활동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