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아 작가
여명이 밝아온다. 바다 밑 대장장이는 밤이 새도록 풀무질로 쇳덩이를 달군다. 때를 맞춰 화로에서 불덩이를 집게로 꺼내 수평선 위로 밀어 올린다. 이글이글 타오르며 솟아오르는 저 불덩이, 해는 내 머리 위에서 떠올라 육지로 간다. 하루를 지나는 동안 저 붉은 해는 세상에 광명을 뿌리고 서해 수평선 아래로 진다.
한 치의 어김없이 동해의 새날이 밝아온다. 바위틈 옆에서 자맥질하던 주름진 파도가 하얗게 웃고, 먼 길 가던 철새들은 인사를 건넨다. 괭이갈매기는 아리랑 춤을 추며 푸른 바다에 하루를 띄운다. 밤새 해풍에 움츠렸던 명아주, 번행초, 해국, 소리쟁이, 땅채송화, 괭이밥, 방가지똥이 생기를 되찾는다. 어둑한 천장굴에 빛이 들면 독립문 바위의 당당한 위엄과 함께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육지의 모든 산은 저마다의 키재기를 한다. 봄이면 앞을 다투어 움튼 새싹들을 키우고, 여름이면 번영하고 가을이면 오색 옷으로 갈아입고 풍요의 축제를 벌인다. 비가 오면 물을 머금었다가 젖줄도 흐르게 한다. 이 산 저 산 제 나름의 멋으로 서로 어깨를 맞대고 등을 기대고 손을 맞잡았으니, 이름하여 금수강산이다.
나는 망망대해 홀로 섰다. 사방을 돌아봐도 보이는 것은 바다뿐이다. 나는 어쩌다 절해고도로 자리를 잡았을까. 왜 홀로 차디찬 외로움을 달래야 하는 것일까. 나의 외로움을 아는 걸까. 먼 길을 떠나는 철새들이 휴게소인양 내게로 와서 쉬어간다. 빗물마저 고이지 않는 열악한 내 봉우리에 바다제비, 슴새, 괭이갈매기가 서식하며 가끔 육지 산 이야기도 건네준다. 전선 줄 건너 건너 유유자적 거닐며 나의 외로움을 달래준다. 고요에 졸기라도 할까 봐 상모솔새, 솔잣새, 매 솔개 무수리는 내 머리 위를 맴돌며 지친 어깨를 쓰다듬어 주기도 한다.
내 외로움의 반경은 넓다. 품이 넓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것을 품을 수 있다는 뜻이다. 괭이갈매기는 초록의 알을 품고 이 곳에서 터를 잡는다. 흰배지빠귀, 검은 딱새, 노랑턱 멧새도 내 머리 위를 맴돌다 한 자락 노래를 뽑는다. 내 뿌리 깊은 곳에서는 돌기해삼, 개볼락, 파랑돔, 도화 새우가 머문다.
나는 동해 한 가운데 있기에 가장 작지만 가장 큰 해양영토를 지녔다. 척박한 환경에서 일궈온 바다의 수려한 경관과 땅의 가치, 육지와 동등한 주권이 미치는 공간 속에 수많은 광물과 자원이 도사리고 있다. 수면 위로 드러난 산봉우리는 비록 작지만 내가 품고 있는 영토의 잠재가치는 어떤 도량형으로도 가늠할 수 없다. 내 고독의 깊이도 동해만큼 깊다.
나의 가치는 무진장이다. 돈으로 환산한 가치는 계량일 뿐이다. 내가 있기에 대한민국의 해양영토가 동해로 뻗는다. 안전한 바닷길이 동북으로 열린다. 국제정세, 전략적 효용, 어느 모로 보나 내 몸값은 여느 섬과 비할 수 없을 만큼 가치가 높다. 그러니 탐욕의 무리가 어찌 호시탐탐 야욕을 드러내지 않겠는가.
나는 칼에 피를 묻히기를 좋아하는 야만족의 땅이 아니다. 대포를 앞세워 위협하길 좋아하는 불곰족의 땅도 아니다.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설계하는 사람들, 일한 만큼 얻고 남으면 남과 나누는 사람들, 남이 어려우면 소매를 걷고 돕는 사람들, 그래도 여유가 생기면 자연을 벗 삼아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 부모형제, 이웃이 서로 아끼는 사람들, 자유, 평등,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역사 앞에 정직한 민족의 땅이다.
나도 한반도와 같은 지정학적 운명을 타고났다. 한반도에 터를 잡고 영토를 지닌 이상 나의 영유권은 백의민족이다. 사람, 영토, 주권이 삼위일체가 되어 주어진 길을 가야 한다. 존재에는 운명처럼 가야하는 길이 있다. 펭귄은 혹독한 남극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뱀은 세상에서 가장 낮은 바닥을 기어야 한다.
나 또한 가야할 길이 있다. 푸르른 초원도 아니고 수풀 우거진 숲도 아니다. 시련 끝에 영광이 있는 길도 아니고 고난 끝에 안식이 있는 길도 아니다. 한반도의 역사를 등에 지고 역사의 사막을 끝없이 가야 한다. 가슴 속에 묵직한 사명 하나 품고 뜨거운 모래사막을 걸어가야 한다. 어둠이 몰려와도 결코 졸지도, 잠들지도 않으며 앞만 보고 가야 할 나의 길이다.
사람들은 내 두 봉우리를 보고 낙타와 닮았다고 말한다. 그렇다. 나는 작은 산봉우리 둘 등에 지고 역사의 사막을 건너고 있다. 하나는 한민족이며 하나는 한반도이다. 역사의 등짐이 가볍지는 않지만, 그것은 내가 지고 가야 할 역사이다.
낙타가 사막을 건너듯, 나는 오늘도 묵묵히 고독한 길을 걷는다.
2024-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