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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러코스터

등록일 2024-05-19 18:25 게재일 2024-05-2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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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러코스터.
롤러코스터.

척, 척, 척

경사진 레일 위를 천천히 올라간다. 50m 이상의 중턱을 헉헉거리지도 않고 하늘을 향해 엉금엉금 기어 올라간다. 잠시 정차. 하늘을 유유히 돌다가 먹이를 낚아채는 매처럼 아찔한 속도로 땅을 향해 내리꽂는다.

양팔을 벌리고 환호하는 사람, 연인의 어깨에 기대어 눈을 감고 차마 세상을 눈 뜨고 볼 수 없는 사람, 혹이나 떨어질까 땀을 쥐고 난간을 꽉 잡은 사람, 다리가 새처럼 덜덜 떨리는 사람, 허벅지가 말 장딴지처럼 잔뜩 긴장해 있는 사람, 공포에 질리면서도 저마다 짜릿한 스릴을 즐긴다. 내 일상은 늘 롤러코스터 위에 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 모든 것이 흔들린다. 가만히 있어도 세상은 나를 빙글빙글 돌려댄다. 진단을 받으니 이석증이란다. 귓속 깊은 곳의 반고리관 안에 이석이라는 물질이 흘러 다녀서 발생한다고 한다. 어떤 이유든 이석이 원래 위치에서 떨어져 나와 반고리관 내부의 액체 속에서 흘러 다니거나 붙어 있게 되면 주위가 돌아가는 듯 어지럼증이 생긴단다.

병원을 다녀온 후, 빙빙 도는 현기증은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빙 돌고 머리가 조여 오는 두통에 시달렸다. 점점 과로나 스트레스와 상관없이 말도 안 되고, 이해할 수도 없는 까닭으로 나를 흔들어댔다. 외출과 과로를 피하고 힘들면 쉬거나 낮잠을 잤다. 하지만 두 달 뒤 친구들과 수다 떠는 중에 갑자기 어지럼증이 왔다.

어떤 자세도 편하지가 않았다. 병원에서 또 이석이 빠졌음을 진단받았다. 이석이 제자리로 돌아가도 증상은 남아 있어 일상생활이 쉽지 않았다. 이렇게 빙빙 도는데 나는 세상을 바로 보고 살 수 있을까. 때때로 귀에서 폭우가 내리는 것 같았다. 맑은 날은 잠시, 비바람이 몰아쳤다가 우박이 내렸다가 가끔 천둥도 치고, 예측할 수 없는 일상을 견뎌내는 일이 점점 힘들어졌다. 알 수 없는 두려움과 회의가 귀를 틀어막고 있는 것 같았다.

어두운 밤 나 홀로 무중력 공간을 떠돈다. 땅을 향해 발을 뻗어 보지만 지구는 저 멀리서 빙빙 돌아간다. 내가 도는 것인지 지구가 도는 것인지 헷갈린다. 그러다가 지구의 중력을 이탈해 칠흑 같은 우주공간으로 빨려가는 꿈을 꾼다.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면 남편의 얼굴이 빙빙 돈다. 나의 이석은 왜 이탈하여 온 우주를 돌려대는 것일까. 그렇지 않아도 어지러운 세상이다. 먼 나라에서는 전쟁으로, 가까운 곳에서는 내 잘났느니 네 잘났느니, 눈을 뜨면 먹어야 하는 약은 한 움큼이나 되고 나의 몸과 생각은 시간과 반대 방향으로 흐르고 있으니 어지러울 수 밖에. 때로는 어질머리 나는 세상을 잊고 싶기도 하다.

중년을 지나 노년으로 갈수록 자연에서 배운 성숙과 풍요를 누리며 살고 싶었다. 중후한 노년은커녕 골방에 갇혀 어지러움과 싸우고 있으니, 세상은 직선으로 가고 있는데 난 마치 게임을 하듯 꽈배기를 틀고 있으니. 환각이라면 차라리 깨어날 희망이라도 있을텐데. 일상이 따분하면 사람들은 번지점프를 하거나 놀이기구를 탄다. 현실이 주지 못하는 공포와 쾌감을 느끼려 롤러코스터를 탄다. 느닷없이 치솟고 사정없이 돌려대는 스릴을 즐긴다. 그리고 흔들리는 몸으로 착지한다. 온몸으로 느끼는 안정감도 공포 이후의 카타르시스이다. 여행과 모험의 목적이 가벼운 마음으로 일상으로의 복귀이듯.

김경아 작가
김경아 작가

살다보면 높은 곳에 오를 때가 많다. 대박을 꿈꾸며 주식에 올라타지만 주가곡선은 너울거리다가 결국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허방이다. 열매가 탐나서 나무를 기어오르다가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는다. 꿈을 따러 허공을 서성이며 수없이 허방을 디디는 우리는 착지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그래야 다치지 않고 바닥에서 바로 일어날 수 있는데, 그렇게 탄력성을 익혔다는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고양이의 가뿐한 착지는 묘기에 가깝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질 때 살기 위한 본능적 몸짓이라고 한다. 나 또한 살기 위한 착지를 꿈꾸지만 고양이 같은 몸짓은 없다.

약으로 감각을 마비시키는 처방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그래서인지 롤러코스터 위에서 비명을 지르는 저들의 몸짓이 부럽다.

가뿐한 착지가 있으니까. 사람들이 롤러코스터에서 내린다. 잠깐 어지러운 몸을 추스르자 다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개운하고 시원한 얼굴이다. 흔들리지 않는 저들의 걸음이 가볍고 경쾌하다. 나는 다시 어지러운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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