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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만원

독거 할머니, 할아버지 스무 분께 생일상을 차려 주기로 한 날이다. 복지관에 들어서니 10시였다. 12시까지 오시면 된다고 했는데 어르신들이 벌써 와 계신다. 어르신들께 따뜻한 커피를 한 잔씩 드렸다.“아이구야, 고맙네. 고마워.”흔하고 흔한 게 커피인 것을. 커피 한 잔에 어르신들은 마음을 다 내놓으신다. 할머니들은 나의 손을 붙잡고 고맙다며 연신 인사를 한다. 배가 고파서 일찍 와 계신 것이 아니라 마음이 고파서 일찍 와 계신다는 것을 나는 어르신들의 한마디에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무엇엔가 홀린 듯, 내 부모를 대할 때처럼 온기를 가득 담은 시선을 보내 주었다. 12시가 되기도 전에 어르신들은 모두 도착했다. 음식이 아무리 맛있어도 혼자 먹는 것은 맛이 없다고 하신 어느 어르신의 말씀이 가슴이 찡했다.밥을 먹다가, 나는 빨간 스웨터를 입은 할머니 한 분께 시선이 멈췄다. 할머니는 미역국을 드시다 말고 미역 줄기처럼 긴 눈물을 흘리셨다. 미역귀 같이 갈라진 손으로 눈물을 훔쳤으나, 어느 누구도, 아무도, 말이 없었다. 말은 없었지만, 우리는 모두 그 침묵에 공감하고 있었다. 할머니 곁으로 조용히 다가갔다. 그리고 두텁고 거친 손마디를 꾹, 잡았다. 할머니는 무겁게 입을 여셨다.“내, 시집와서 3년 되던 해, 영감 죽고 50년 만에 처음 받아보는 생일상….”시집오던 첫 해에 남편이 미역국을 끓여 줬는데 미역국을 보니 영감 생각이 너무 나서 넘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늙으니 자식도 소용없다 하시며 영감 보고 싶어서 빨리 영감 곁으로 가고 싶다며 눈물을 훔치신다.“할머니 제가 할머니 영감 해 드릴게요”“진짜가? 진짜가?”할머니는 못 미더운 듯 자꾸 확인을 하셨다. 할 일이 많았지만 할머니의 말동무가 되어 주기로 했다. 할머니의 살아온 안타까운 이야기부터 돌아가신 할아버지 이야기, 한 번도 찾아 주지 않는 자식들 이야기는 몇 번씩 반복되었다. 그 많은 이야기 중에 내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 하나가 있다.“새댁아, 나는 세상에서 나무가 최고 부럽대이.” 할머니는 뜬금없이 나무가 부럽다고 하신다. 출세한 자식도 아니고, 등 긁어줄 영감도 아니고 그저 나무가 되고 싶다고 하신다. “봐래이, 나무는 봄에 꽃 핀다고 사람들이 보러 오제, 여름에는 덥다고 나무 밑에 모이제, 가을에는 늙어도 단풍 본다고 너도나도 찾아 주지 않나?”할머니가 왜 나무가 제일 부럽다고 하는지 알고 나니 나는 스스로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나도 바쁜 일을 핑계 대며 부모님을 찾은 지 오래다. 마음과 몸이 따로 놀고 있으니, 나 또한 빨간 스웨터 할머니 자식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내 얼굴은 할머니의 스웨터에 반사된 듯 붉어지고 있었다. 김경아 작가 “제가 이제 할머니 보러 갈 테니 저의 나무가 되어 주세요. 저는 사시사철 갈게요.”라고 했더니 할머니는 까르르 웃으셨다. 행사가 끝나고 짐을 챙겨 나오는데 빨간 스웨터 할머니가 갑자기 다가와 내 손을 꼭 잡더니 무언가를 건네주고는 부랴부랴 도망치듯 가버렸다. 아무리 불러도 영감님을 만나신 듯 뒤도 보지 않고 달려가셨다. 꼬깃꼬깃 구겨진 만 원짜리 하나가 내 손바닥의 지문을 물고 있었다.‘할머니, 할머니’ 혼자서 열 번도 더 불러보았다. 눈물이 났다. 어쩌면 전 재산 일지도 모르는 만 원에 할머니의 지난 세월이 다 들어있었다. 나는 가로수의 은행잎에 시선을 멈추었다. 어디를 보며 여기까지 왔을까. 앞으로 내가 바라보아야 할 곳이 어디일까. 무관심의 세상에 나도 일조를 하고 있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누가 죽어 나가는지. ‘나 좀 봐 달라’는 가련한 소리를 어쩌면 우리는 돈으로, 옷으로, 음식으로 잠재우거나 아예 무시하지 않았던가. 전 재산일지도 모르는 돈을 쉬이 내게 주었던 할머니의 마음이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내 마음에 오버랩 되었다. 내가 살아오면서 이렇게 큰 재산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2023-11-05

모서리

갑자기 비명 소리가 들렸다. 여기저기서 딩동거리던 피아노 소리가 뚝 끊겼다. 수업을 하다 말고 부리나케 달려갔다. 교실 바닥에 의자들이 나뒹굴고 그 옆에서 상진이가 쓰러져 울고 있었다. 상진이의 이마가 지퍼처럼 열려 피가 흐르고 있었다. 구급약품을 꺼내 응급조치를 하는 사이 아이들이 자초지종을 말했다. 상진이가 의자 위에서 장난을 치다가 교실 문 모서리에 이마를 부딪쳤다고. 병원에 데려가려고 지갑을 챙기는데, 상진이가 문 앞에서 모서리를 흘겨보고 있었다. 내가 손을 잡자 씩씩거리며 발로 문설주를 몇 차례 걷어찼다.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냐는 듯 모서리는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다.병원으로 가는 길에 아이는 엄마를 찾았다. 접수하고 기다리는 동안에도 입구만 바라보았다. 상처를 꿰매기로 하고 잠시 대기하는데, 한 여인이 숨을 헐떡이며 뛰어 들어왔다. 당황한 눈빛으로 두리번거리는 것으로 보아 상진이의 엄마가 아닐까 짐작했다.“아녀하태요”어눌한 발음으로 내게 인사를 건넸다. 깡마른 체형에 키가 자그마했다. 피부는 검었으나 인상은 선해보였다. 급하게 달려 온 탓인지 옷차림이 흐트러져 있었다. 그동안 할머니와 통화를 해서 상진이 어머니가 동남아 여성인 줄 몰랐다.상진이의 이름이 호명되고 수술실로 함께 들어갔다. 하지만 의사는 어머니를 내보내려고 했다.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 상진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간호사에게 떠밀려 나온 상진이 어머니가 한마디 던졌다.“한국 사람들은 다 모서리 같아요”무뚝뚝한 경상도 말씨를 두고 하는 말인가 싶었지만 그런 이야기는 아니었다. 상진이가 입학한 후, 일어난 이야기들, 아이들과의 문제, 같은 반 엄마들과의 갈등, 선생님과 의사소통이 원만하지 못해 겪은 해프닝 등을 서툰 한국말로 이야기했다. 상진이의 어휘력은 또래보다 떨어졌다. 수업을 이해하는 속도도 차이가 났다. 상진이는 늘 구석으로 밀려났다. 이른바 ‘왕따’였다. 아이들의 말과 행동은 상진이에게 상처가 되었지만 아이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다문화가정의 아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행여나 불이익을 당할까 싶어서 그동안 학원도 찾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고는 나의 손을 잡고 울음을 터트렸다. 부드러운 피부와 따뜻한 체온 그리고 두 뺨에 흐르는 눈물, 상진이 어머니도 여느 여성과 다르지 않았다. 상진이를 잘 부탁한다며 몇 차례나 당부했다. 어둠 너머로 걸어가는 모자의 뒷모습이 지워지지 않았다. 김경아 작가 두 면을 연결해 주는 곳, 모서리는 한 면이 끝나는 지점이지만 새로운 면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태어나서 살던 세상을 넘어 새로운 세상에서 꿈을 펼치려 왔지만 자꾸만 모서리로 밀리기만 했을 것이다. 그래서 모서리는 상진이 어머니에게 두려운 각이었을 것이다.상진이 어머니에게 한국인의 말투와 행동은 모서리 같았을 것이다. 출생지가 다르고 말이 다를 뿐인데, 그렇다고 남을 해치기 위해 각을 세운 것도 아닌데, 상진이 어머니의 푸념이 내 가슴에 모서리가 되어 박혔다.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엄마는 같은 마음이다. 언어가 다를지라도 엄마의 눈은 내 아이에게 향해 있고 엄마의 귀는 내 아이의 소리에 열려있다. 모 나지 않고, 모서리에 긁히지도 않고 잘 자라주길 바라는 마음은 피부가 검다고 다를까.학원으로 돌아와 상진이에게 상처를 준 문의 모서리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뾰족하고 날카로웠다. 아이가 얼마나 아팠을까, 내 이마가 저리는 것 같았다. 이곳저곳 위험한 모서리를 찾다가 나도 타인을 들이박고 시치미를 떼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렀다.누구나 모서리를 가지고 있다. 퍼즐 맞추기에서 아귀가 잘 맞는 모서리와 모서리가 만나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그림이 이어진다. 어쩌면 우리는 이를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퍼즐이 다 맞춰지면 바라는 세상이 펼쳐지는데 말이다. 아이들과 함께 모서리에 두꺼운 천을 덧댔다. 아이들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상진이의 얼굴도 덩달아 환해졌다.

2023-10-22

거울 밖을 거닐다

거울을 꺼내 나를 비춰본다. 화장이 지워진 여자가 거울 바깥의 나를 보며 피식 웃는다. 여자도 가끔은 거울 바깥의 내가 궁금해서 바깥을 내다볼지도 모른다.스마트 폰을 열어 날씨를 확인한다. 강수 확률 50%다. 바깥을 내다보니 하늘이 새파랗고 단단해 보인다. 저 하늘이 깨져 물방울이 된다는 것은 상상 바깥이다. 짐이 될까 싶어 우산을 내려놓는다.고민은 또 있다. 바다로 갈까. 산으로 갈까. 차를 가져갈까, 버스를 탈까. 캐리어를 들까, 작은 가방을 멜까. 평소에는 하지 않을 고민이 겹겹이다. 일상에 이러한 고민이 많다니, 그냥 하던 대로 하던 것을 막상 작심하니 하나를 선택하기 쉽지 않다.카드 하나를 쥐고 버스를 탄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 내린다. 바다 뒤로 마을들이 촘촘히 박혀 있다. 무작정 걷자니 500년쯤 되어 보이는 느티나무도 보이고, 한없이 바다만 바라보는 등대도 보인다. 눈에 담기는 것들과 한없이 느리게 늑장을 부리고 싶다해변에는 화려한 무대나 환호하는 군중이나 빛나는 조명도 없다. 반겨주는 이도 알아보는 이도 없다. 잘 익은 밀이삭을 닮은 황금빛 모래사장에 앉아 물멍에 들고 지나온 삶의 대본들을 불러 모은다. 주어진 자유에는 내가 주인공이다.혼자만의 놀이에도 배가 출출해진다. 따뜻한 매운탕을 먹을까, 시원한 물회를 먹을까. 바다를 옆에 두고 보니 매운탕과 물회라는 갈림길이 있다. 시원한 물회 한 그릇 먹고 나자 따뜻한 차 한잔 생각난다. 쌉싸래한 커피를 마실까. 달짝지근한 홍차를 마실까.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 마시고 나니 나른한 피로가 몰려든다. 조는 풍경을 연출할까 하다가 마음 내키는 대로 선택하는 자유를 더 누리고 싶어 바닷가를 거닌다갑자기 후둑 후두둑 물방울이 떨어진다. 물방울은 하나, 셋, 열, 점점 굵어지더니 금세 장대비로 바뀐다. 접이식 우산 하나가 무에 그리 무겁다고, 얄팍한 선택을 탓하면서 비를 피할 곳을 찾는다. 허둥대는 사이 이미 마음속까지 축축하게 젖어 든다. 젖은 신발을 벗고 바다에 발을 담근다. 내가 젖는지 바다가 내게 젖는지. 물방울을 발로 차며 뛰는데, 묘한 해방감이 느껴진다. 아이, 청년, 어른, 엄마 역할로 숱한 나날을 살았으면서 한 번도 연출해보지 못했던 이 낯선 역할, 나는 속박에서 탈출한 여인이 비를 맞으며 자유를 만끽하는 영화의 주인공이다. 바쁜 일상과 중년만이 지니는 무게가 다 씻어진 듯 상상하지 못했던 쾌감이다. 만약 우산을 가져왔다면 이러한 혼자만의 낭만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정형화된 틀을 벗어나면 내가 누리지 못한 풍경과 마주친다. 혼자 산길을 걷다가 영문 모르게 눈이 마주친 다람쥐의 눈동자, 따끈한 커피 한 잔 들고 산사 툇마루에 앉아 들어보는 풍경소리,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발 너머로 펼쳐지는 한 폭의 수채화, 도심 골목을 지나다가 어디선가 새어 나오는 옛사랑의 연가, 우연의 길목에서 건진 풍경들이다. 김경아 작가 살면서 늘 이득이 되는 쪽을 선택하며 살았다. 그 길에서 낭패를 보더라도 내 판단이 옳았다며 위안했다. 이 이기적인 생각은 선택받지 못한 일은 무용하다는 확증 편향에 나를 빠트리곤 했다. 거울 바깥에 더 넓고 다채로운 풍경이 펼쳐진다는 사실을 모른 채 거울 안만 보다가 얼마나 많은 것을 놓쳤는지.우리는 때로 관습에 의지하여 삶의 해답을 풀어간다. 홀짝으로 겨루는 구슬 따먹기처럼, 내가 선택하는 것에는 50%가 아니라 100%의 신뢰를 보냈다. 맞춘 쪽은 100이 되고 못 맞춘 쪽은 0이 되는 모순. 하지만 이든 저든 모호할 때, 무작정 하나를 선택해도 오늘처럼 뜻밖의 행복을 누리는 쾌감을 맛볼 수 있다.혼자만의 놀이가 슬슬 따분해진다. 어느새 강수 확률이 낮아지더니 드문드문 햇빛이 내린다. 비에 젖은 몸이 후줄근하다. 따뜻한 홍차를 주문한다. 이 일탈적 선택의 따뜻함도 새롭다.거울을 꺼내 나를 비춰본다. 화장이 지워진 여자가 거울 바깥의 나를 보며 피식 웃는다. 여자도 가끔은 거울 바깥의 내가 궁금해서 또 다른 외출을 꿈꿀지도 모른다.

2023-09-17

어떤 동행

오랜 시간 등장해도 기억나지 않는 배우가 있는가 하면 단역으로 등장해도 오래도록 장면이 떠나지 않는 배우가 있다. 단역은 극적으로 등장해 선명한 사건을 남기거나, 가슴을 후벼 파는 강한 대사를 던지고 사라질 때 주연 못지않게 기억에 남는다.작년 여름, 마른장마로 지쳐 있을 때 카톡 소리가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과자 몇 조각 욕심에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더 열심히 교회를 나갔던 코흘리개 친구들이 25년 만에 갑자기 연락이 닿았다. SNS 속에서 사십대 중반이 된 자신과 아이들의 사진을 올리면서 빛바랜 흑백사진 속의 어린 시절을 떠 올렸다.어릴 적, 살던 동네가 전부인 양 알았던 우리는 여러 지방으로 흩어져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되었다. 서로 다른 직업으로 각자 자기의 영역에서 열심히 살고 있었다. 8명의 어른들이 자신의 일과를 마치고 설레는 마음으로 자정 무렵에 모였다. 마음과 몸은 자라지 않고 세월의 주름만 깊이 파인 듯 지금의 우리는 예전이나 별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몇 십 년 전으로 돌아 간 것 같다.나이 들어가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하나하나 삶의 숙제를 풀어 놓고 느긋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이제 나 하나만 행복해지면 되겠구나 생각하며 느끼는 홀가분함이 좋다고 우리는 이야기 했다. 추억의 서랍을 활짝 열고 미어터지도록 눌러 담긴 어린 시절을 끄집어내며 마주앉았다. 목 놓아 건배를 나눴다. 대화가 무르익을 무렵, 사진관을 하는 친구 한 명이 자신의 사진관에 가서 기념사진을 찍자고 했다. 열 명이 일자로 서서 한 곳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다.“우리 해마다 찍자. 한 명 남을 때까지”경애가 말하곤 ‘제일 먼저 사라지는 친구와 제일 마지막까지 남는 친구는 누가 될까’라고 보탰다. 아직도 우리에겐 올라 설 무대가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 했기에 까르르 대며 웃었다. 흩어졌던 친구들이 하루 만에 모여 25년을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다음을 약속하며 눈물 나는 만남을 뒤로하고 우리는 헤어졌다.“아내가 중환자실에 있습니다. 오늘이 고비입니다. 기도해 주세요”한 달 후 문자가 날아들었다. 경애의 남편이었다. 경애는 희귀병을 앓았는데 최근 병이 악화되어 염증이 혈관까지 퍼졌다고 한다. 중환자실에서 만난 경애의 얼굴은 벌겋게 열이 올라 있었다. 우리를 보며 와락 눈물을 쏟아냈다. 힘겹게 한 마디 건넬 때마다 산소 호흡기에 뜨거운 김이 서렸다.얼마 후 경애는 떠났다. 장례식장 앞에서 만난 친구들은 말없이 발지도만 끼적거렸다. 친구들의 얼굴만 봐도 뜨거움이 울컥 올라 왔다. 빈소로 내려가는 계단이 25년이라는 시간 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그동안 못 다한 말들이 얼마나 많은데 반갑고 설레던 마음의 여운이 사라지기도 전에 친구 한 명을 보내야 했다. 김경아 작가 경애의 영정사진 옆에는 얼마 전 우리가 함께 찍은 사진이 있었다. 경애는 친구들 옆에서 활짝 웃고 있었다. 가는 길 외롭지 않게 친구들과 함께 찍었던 사진을 올려 달라고 했단다. 아무리 인생이 짧아도 스무 번은 더 찍을 수 있었을 텐데 친구 7명은 차마 ‘친구야 잘 가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경애는 우리의 얼굴과 함께 초행길을 떠났다. 우리는 사진으로나마 경애와 함께 저 세상으로 동행했다. 늘 앞장서서 말하기 좋아했고 우리를 대신해 남자 친구들과 과감히 싸워 주었던 경애는 먼 길에도 앞장을 섰다. 짧은 추억과 사진을 함께 안고 떠난 경애는 외롭지 않을 것이다.한 명 남을 때까지 사진을 찍자던 경애는 제일 먼저 사라진 한 명이 되었다. 내년이면, 경애의 빈자리는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는 한 명씩 사라져 갈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손 맞잡고 찍은 사진이 점점 여백으로 채워질 때 다른 세상에서 우리는 또 다시 만나 여백을 채워가고 있으리라.우리는 모두 엔딩을 준비한다. 그러나 이렇듯 섬뜩한 변주를 예측하지는 못한다. 주연이든 조연이든 내게 주어진 역할에 만족하며 영화의 막을 내릴 수 있기를 바라본다.

2023-09-03

우리가 간직함이 옳지 않겠나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누구의 머리 위에 이글거리나/ (중략) / 우리가 간직함이 옳지 않겠나”김민기의 곡 ‘내 나라 내 겨레’이다. 혈기가 왕성한 청년기에 자주 들었던 노래다. 가난을 이겨내려 겨레가 땀 흘리던 시절, 이 노래를 부르며 겨레를 알았다.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가슴 깊은 곳에서 불쑥 솟아오르는 무엇이 있다. 동해바다 한가운데 불쑥 솟은 독도처럼.약 450만 년 전, 바다 밑에서 끓던 열망이 지각을 뚫었다. 쌓고 쌓이기를 수천 년, 탑을 이룬 열망은 마침내 수평선 위로 머리를 내밀었다. 얼마나 뜨거웠길래 열망이 깊은 바다를 관통했을까. 뿔처럼 우뚝 솟은 바위섬, 바위섬은 외로움을 이겨내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날씨가 청명한 날이면 무릉의 두 섬은 우리나라 최동단 바다 가운데에서 벌건 해와 함께 솟아올랐다. 망망대해에서 깊디깊은 바다를 가르고 홀로 솟았기에 그 존재감은 더욱 우뚝했다. 홀로섬은 주변에 독특한 생태계를 이루었다. 괭이갈매기의 춤사위가 촛대바위와 보찰 바위 위에서 펼쳐졌다. 바다제비. 슴새, 물수리, 고니, 흑두루미와 뿔쇠오리가 어미의 자궁처럼 여유롭게 둥지를 틀고 숨을 골랐다. 150여 종의 곤충들도 깃들었다. 바다 밑에도 숱한 생명이 평화로운 일상을 이어갔다.모든 섬은 태생적으로 외롭다, 홀로섬은 비바람과 파도가 후려쳐도 속으로 울음을 삼켰다. 살이 트고 깎여도 그 틈에 수많은 목숨을 키워냈다. 바람 거센 환경 속에서도 해국, 번행초, 땅채송화, 참나리, 동백나무, 보리밥 나무 등이 바위틈에 뿌리를 내렸다. 홀로섬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숱한 생명을 품었다.배달겨레는 홀로섬을 우리 호적의 지도에 등재했다. 481년에 만들어진 ‘팔도총도’에는 울릉도 뿐 아니라 우산도도 그려져 있다. ‘동국전도’ ‘조선전도’ ‘해좌전’에도 울릉도와 독도의 모습이 선명히 찍혀있다. 역사가 홀로섬을 우리 땅임을 증명하는 것이다.홀로섬을 처음 발견한 나라는 아침의 나라이다. 첫 발자국을 찍고 대대로 개척한 사람은 우리 겨레이다. 그것을 국토에 편입하고 영유권을 내외에 선포한 첫 국가도 아침의 나라이다. 우리 겨레는 국호도 깨끗한 아침의 나라라는 조선(朝鮮)으로 정했다. 홀로섬은 이 땅의 맑은 아침을 열었다.우리가 가난하고 힘없을 때, 일본은 너울 파도를 넘나들며 망발을 일삼고 우리의 가슴에 붉은 물을 들이고 약탈을 일삼았다. 우연히 발견하고 들른 섬을 마치 자기들 땅인 것처럼 우기며 나무를 베고 고기를 잡고 생태계를 유린했다. 더 나아가 홀로섬을 양자로 들여 다케시마(竹島)라고 이름을 지었다. 김경아 작가 홀로섬의 잠재적 가치는 무한하다. 주변 해역에는 풍부한 플랑크톤을 노리고 몰려든 물고기가 많아 훌륭한 어장이 형성되었다. 또한 해저 퇴적층에는 미래의 에너지로 여겨지는 하이드레이트라는 메탄 수화물이 다량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것뿐인가. 지정학적으로 전략적 가치까지 지녔으니, 홀로섬은 하늘이 우리 겨레에게 내려준 선물이다.홀로섬은 이제 영토의 상징이 되고 호국의 얼이 되었다. 목숨을 걸고 지킬 만큼 가치가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부끄러운 선조로 남지 않기 위해 우리는 늘 깨어있는 가슴으로 홀로섬을 품어야 한다.우리 겨레는 따뜻한 감성을 지녔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 그리워할 줄 아는 사람, 지켜줄 줄 아는 사람, 외로운 사람을 보듬을 줄 아는 심성이 있기에 홀로섬은 홀로지만 혼자가 아니다. 이 땅의 풀포기 하나까지 끌어안고 살아야 할 존재들이다.저 섬이 그리운 날, 함께 노를 저으며 파도를 헤치자. 밤이면 촛대바위에 기원의 불을 밝히고 강강수월래를 돌아보자. 아침이면 해맑은 햇살 받아 입고 새날을 맞자. 그러고는 함께 겨레의 혼을 담은 노래를 불러보자.“보라 동해를 지키는 홀로섬/우리의 가슴에서 우뚝 솟았다//피 맺힌 투쟁의 흐름 속에서/우리가 간직함이 옳지 않겠나”

2023-08-20

선바위 별곡

저 외로움의 깊이는 얼마일까. 선바위가 망부석처럼 흐르는 강물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다. 계절 따라 햇볕은 빛과 그림자를 얼마나 드리웠는지. 주름마다 검푸른 이끼가 박혀있다. 인고의 세월에도 기울지도 아니하며 선바위가 홀로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선바위 옆 가파른 절벽 아래 일제당이 깊은 침묵에 들었다. 구름과 산은 서로 모양을 바꾸는데, 발걸음이 닿기도 힘든 이 깊은 산 속, 선바위와 일제당은 동무처럼 변함없이 지난 시간을 함께했다. 일제당에서 입암서원을 바라본다. 서원 앞쪽으로 흐르는 가사천과 물길을 휘돌게 하는 절벽을 바라보며 많은 가객이 시를 읊었다. 낭낭한 소리들이 귓전에 들리지만 선바위는 내 아버지처럼 침묵했을 것이다.글을 쓰고 싶었던 아버지는 세상의 뒤편에서 폐결핵과 싸웠다. 때때로 피를 토했고 시름시름 야위어 갔다. 학업은 일찌감치 포기했고 가장의 삶도 이어가기가 힘들었다. 자신의 처지는 굵직한 기둥처럼 가슴에 박혀 언제 삶의 마침표를 찍을지 몰랐다.아버지를 대신해 엄마가 세상으로 나갔다. 세상은 만만치 않았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고 가끔 비바람도 몰아쳤다. 여자 혼자 식솔을 먹여 살리려면 너무나 힘에 부쳤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살림은 늘 언제 무너질지 늘 불안했다. 문틈으로 찬바람이 스며들었지만 아버지는 그것을 막을 힘조차 없었다.아버지의 삶은 돌처럼 굳어버렸다. 파도가 길을 내어주지 않으면 갈 수 없었고 바람이 이끌어주지 않으면 한 발도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멈춰버렸다. 그렇게 아버지는 자식들의 삶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가슴 아픈 관조였다. 자식이 학교에 가도 한자리에서 바라보기만 했다. 자식이 글을 익히고 글을 쓰고 글처럼 살아낼 동안 아버지는 오롯이 바라만 볼 뿐이었다. 자식들에게 기대지 않고, 바라지 않고, 그냥 바라보기만 하면서 고독을 받아들였다. 마음속에 묻고 묻어 퇴적되어 온 외로움을 표현하지 않았다. 선바위는 강으로, 바다로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며 자신도 바다로 가고 싶은 꿈을 꾸어 보았으리라. 더 넓은 들판으로 나아가 젊은 기개를 마음껏 펼쳐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선바위는 흘러가는 물을 하염없이 내려다보며 그 속에 비치는 하늘을 보고 구름을 보며 넓은 세상을 동경했을 뿐이다.빈자리보다는 선자리가 나았다. 비록 병든 아버지였지만 우리 자식들에게는 늘 든든한 아버지의 자리였다. 글을 읽어도 허공에 맴도는 소리가 아니었다. 강으로 바다로 고단한 길을 돌고 돌아와도 아버지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를 맞았다. 아버지는 우리들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다.어느 날 구순의 성상의 아버지가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는 ‘클레멘타인’을 피아노로 치고 싶다며 당장 가르쳐 달라고 채근했다. 아버지는 한 쪽 눈이 보이지 않았다. 양쪽 청각을 80% 잃으셔서 장애 판정까지 받으신 아버지가 어떻게 피아노를 칠 수 있을까. 완주한다 한들 그 소리를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방법을 생각하다가 스케치북을 꺼냈다. 색연필로 스케치북 위에 건반을 그렸다. 도부터 옥타브 위의 도까지를 글로 쓰고 솔 위에 숫자 3을 썼다. 아버지의 마음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더듬거리다가 다시 악보를 보고 또 더듬거리기를 반복했다. 김경아 작가 무더운 여름날이 지나고 무수한 나무 이파리가 떨어졌다. 겨울 초입에 들었을 때 아버지는 자식들을 모두를 불렀다. 저녁도 먹기 전에 아버지는 홀로 피아노에 앉아 자세를 가다듬었다.‘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 모르는 딸 있네’아버지의 꿈은 거창하지 않았다. 가장으로서 해가 뜨면 세상에 나가 가족을 위해 열심히 그물을 던지고 싶었다. 오랜 세월 강바닥 저 밑에 깔려 있던 아버지의 소망이었다.아버지는 굳은 손으로 건반을 짚었다. 한 마디 두 마디 세 마디, 자식들은 넓은 바다를 향해 노를 저어가는 아버지를 보았다.

2023-08-06

페이지터너

오랜만에 친구와 앉았다. 귀국 음악회에서 도와달라고 했다. 무대를 떠난 지 오래라서 감각이 무뎌진 상태인 내게 친구는 가볍게 대답했다.“페이지터너야.”악보를 넘겨주는 사람이 페이지터너(Pageturner)이다. 몸은 무대 위에 있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로 설정된 투명인간이다. 하지만 연주와 관객을 잘 이어주는 레가토(legato)로 연주자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다. 친구의 요청으로 연습에 들어갔다. 상대의 결에 맞춰 호흡을 늘이고 줄여갔다. 구름 같은 청중 앞에서 연주했던 나인데, 까짓것 악보를 넘기는 일쯤이야, 그런데 막상 공연에 닥치자 마음과는 달리 심장이 두근거렸다. 작은 실수도 없도록 악보 밑을 예쁘게 접어 손가락에 잘 잡히게 했다. 친구가 박수를 받으며 무대로 나갔다. 조명이 친구만 비추는 사이 나는 단상에 악보를 올렸다. 친구의 손가락이 날래게 한 음절 찍었다. 리스트의 ‘파가니니 에튀드 6번’이었다. 손가락이 탄력 있게 움직이자 음표들이 허공에 튀어올랐다. 묵직하면서도 경쾌한 음이 세게 또는 여리게 흘러나왔다. 음표들이 춤을 춰도 나는 로봇처럼 발을 움직이지 않았다. 얌전히 일어났다 앉았다만 되풀이하며 악보만 넘겼다. 한 장 두 장 세 장…, 친구는 음표와 쉼표를 몸짓으로 표현했다. 손가락이 춤을 추는 사이둘은 관객에게는 보이지 않는 언어로 서로의 몸짓을 조율했다.다음은 쇼팽의 ‘녹턴’이었다. 흐름이 느리므로 몸짓이 커 보이고 음정이 고요하므로 숨소리도 들린다. 연주자의 눈길이나 동선에 내가 있으면 안 된다. 이 무대의 주인공은 오롯이 연주자 한 명이다. 연주자가 끝까지 악보를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박수가 터질 때마다 나는 더 보이지 않도록 몸을 움츠렸다.나도 주인공인 적이 있었다. 동문들과 음악회를 열었을 때였다. 나는 친구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눈과 귀, 몸짓까지 놓치지 않고 오직 나를 위해 움직였다. 재빨랐지만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있기에 나의 연주는 다뉴브강을 미끄러지는 돛단배처럼 순항했다. 내가 주인공이 되게 해주려고 무대 뒤의 사람이기를 자처한 친구가 고마워 눈물이 났다. 다시 친구의 몸짓이 빨라졌다. 흐름이 서서히 느려지면서 친구가 힘을 모아 마지막 음을 찍었다. 정적이 몇 초 흐른 뒤 함성과 함께 박수가 터졌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친구가 연거푸 허리를 숙여 답례했다. 꽃송이와 꽃다발이 한 아름 날아들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다시 갈채가 쏟아졌다. 감동이 밀려왔지만 나는 무엇도 할 수 없었다.지금 이 자리에서는 박수 한 조각도 나의 것이 아니다. 꽃송이 하나까지 모두 친구의 것이다. 지금은 친구가 빛나는 시간이다. 친구에게 눈길이 쏠린 사이에 나는 소리 없이 무대를 벗어났다. 내가 무대 뒤에서 안도의 숨을 쉬는 사이 무대 위에는 여운이 한참 더 이어졌다. 화려한 무대 뒤에는 숨은 사람이 존재한다. 혼자만 빛나며 세상을 지배하던 태양도 서쪽으로 이울면 달에게 자리를 비켜준다. 밤하늘은 짙고 망망한 어둠을 무대로 깔고 그 위에 별자리가 뛰어놀 마당을 펼친다. 카시오페아, 쌍둥이자리, 큰곰자리…. 별들이 초롱초롱 뛰어놀기에 밤하늘은 아름답다. 김경아 작가 바람은 계절의 악보를 한 장 한 장 넘긴다. 해오름달, 시샘달, 물오름달…, 열매달, 초목은 바람의 리듬에 맞춰 자신만의 삶을 연주한다. 흔들리면서도 대궁 끝에 꽃을 밀어 올리고 따가운 뙤약볕을 쬐어 열매를 익힌다. 들판에서 곡식이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 뒤에 바람이라는 페이지터너가 있다고 믿어도 좋다. 우리는 누군가의 어둠이고 바람이다. 네가 빛날 때 나는 어둠이 되고 내가 춤을 출 때 너는 음악이 된다. 네가 바람일 때 나는 잎새가 된다. 너를 빛내려고 내가 숨어서 도울 때 우리의 협주는 아름다운 진행형 소나타이다.◇ 김경아 작가 프로필 ·수필 오디세이 신인상 ·포항소재 문학상 최우수상(2020) ·포항 스틸에세이 금상(2022) ·청송객주 문학대전 장려상(2022) ·울산 산업문화 축제 최우수상(2014) 외 다수 수상

2023-07-23

가진 건 이것 밖에

할아버지와의 끈은 그의 딸과 연결된다. 학부형으로 알게 된 그의 딸과 나는 속 이야기까지 터놓을 만큼 가까운 관계였다. 하지만 그의 딸은 작년 가을 고등학생 아들과 구순이 다 되신 친정 부모님을 두고 먼저 먼 산 노을처럼 져버렸다. 할아버지와 그녀의 아들 그리고 나는 그녀의 마지막 길을 함께한 유일한 남은 자였다.그녀가 떠난 후 누구도 나에게 강요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가정을 외면하지 못했다. 가끔 반찬을 해서 방문할 때면 눈까지 글썽이면서 나를 반기는 그들의 눈빛이 짙어서 또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걸음은 계절이 여러 번 갈마들 동안 이어졌다.찬바람이 부는 어느 날이었다. 저녁 무렵 반찬 몇 가지를 들고 할아버지 댁을 찾았다. 깜깜하고 자그마한 공간에 텔레비전 한 대와 노부부가 마주앉았다. 속옷 바람으로 나를 맞던 할아버지는 불을 켜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다리와 몸에 멍이 보였다. 연유를 묻는 나에게 할아버지는 갑자기 눈이 잘 안 보여 자전거를 타고 가다 넘어졌다는 것이다.집으로 돌아온 나는 할아버지의 눈이 마음에 걸렸다. 다음 날 무작정 할아버지를 모시고 안과로 갔다. 수술비를 걱정하는 듯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염려하는 마음도 동반되어 나의 차에 올라탔다. 할아버지의 눈은 양쪽 모두 백내장이 많이 진행되어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수술 날짜를 예약하면서 나는 할아버지의 보호자란에 사인을 했다. 가족이라고는 미성년자인 손자와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뿐이라 사인을 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누군가의 울타리가 되어 준다는 것은 그만큼의 넓이를 책임져야 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나는 누군가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자격에 대해 물음표를 던져 보았다.한 쪽 눈을 먼저 수술하는 날, 이른 아침 들어선 내게 할아버지는 표정으로 할 수 있는 미안함을 다 표현했다. 수술비가 걱정되어 차마 병원에 갈 엄두도 못 냈던 할아버지는 병명을 알게 되고 수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짐을 내려놓은 듯 가벼워 보였다. 몇 번을 머리까지 숙여가며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사흘 후, 다른 한 쪽 눈을 수술했다. 할아버지는 불편한 눈으로 아침 일찍 어딜 다녀왔는지 분주해 보였다. 이미 준비를 마치신 할아버지와 함께 병원으로 갔다. 나는 진짜 보호자처럼 보호자 대기실에서 기다렸고 수술에 대한 설명도 함께 들었다. 수술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은 모두가 홀가분했다. 나는 할아버지를 댁까지 모셔드렸다. 할아버지는 잠깐 들어가 커피 한 잔 하고 가라며 나를 붙잡았다. 그냥 가려다가 잠깐 들어가 앉았다.종일 애를 태우고 계셨던 할머니가 나를 반겼다. 내가 앉기도 전에 할머니는 밥통을 열었다. 밥통에서 기름기 가득 묻은 봉지를 하나 꺼냈다. 할아버지가 폐지를 팔고 받은 돈으로 아침 일찍 시장까지 가서 사 온 몸통이 드러난 옛날 통닭이었다. “내가 가진 거라곤 나이 밖에 없고 줄 게 없어서…” 할아버지는 말을 흐렸다. 김경아 작가 할아버지가 주신 통닭은 그저 감사의 표현만은 아니었다. 할아버지 또한 나를 자식만큼이나 의지하고 깊은 마음을 가지고 계셨으리라. 통닭의 온기가 날아갈까 밥통 안에 두고 내가 오기만을 기다렸던 할머니의 마음과 할아버지의 정성에 목이 메어왔다.나는 이 가정을 통해 돈으로 살 수 없는 삶의 답을 찾았다. 이들은 가진 것이 없어도 움켜쥐는 것에 욕심내지 않았다. 베푸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고 표현할 줄 알았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내가 가진 것이 얼마나 많은지 돌아보게 되었다.수술을 잘 마친 할아버지는 눈이 잘 보여 이제 다시 자전거를 탈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무슨 인과 연으로 이들을 끊지 못하는지 알 수 없지만 들여다보고 올 때면 언제나 뜨끈한 옛날 통닭의 온기처럼 내 가슴도 뜨거워진다. /김경아 작가◇ 김경아 작가 프로필 ·수필 오디세이 신인상 ·포항소재 문학상 최우수상(2020) ·포항 스틸에세이 금상(2022) ·청송객주 문학대전 장려상(2022) ·울산 산업문화 축제 최우수상(2014) 외 다수 수상

2023-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