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누구의 머리 위에 이글거리나/ (중략) / 우리가 간직함이 옳지 않겠나”
김민기의 곡 ‘내 나라 내 겨레’이다. 혈기가 왕성한 청년기에 자주 들었던 노래다. 가난을 이겨내려 겨레가 땀 흘리던 시절, 이 노래를 부르며 겨레를 알았다.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가슴 깊은 곳에서 불쑥 솟아오르는 무엇이 있다. 동해바다 한가운데 불쑥 솟은 독도처럼.
약 450만 년 전, 바다 밑에서 끓던 열망이 지각을 뚫었다. 쌓고 쌓이기를 수천 년, 탑을 이룬 열망은 마침내 수평선 위로 머리를 내밀었다. 얼마나 뜨거웠길래 열망이 깊은 바다를 관통했을까. 뿔처럼 우뚝 솟은 바위섬, 바위섬은 외로움을 이겨내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날씨가 청명한 날이면 무릉의 두 섬은 우리나라 최동단 바다 가운데에서 벌건 해와 함께 솟아올랐다. 망망대해에서 깊디깊은 바다를 가르고 홀로 솟았기에 그 존재감은 더욱 우뚝했다. 홀로섬은 주변에 독특한 생태계를 이루었다. 괭이갈매기의 춤사위가 촛대바위와 보찰 바위 위에서 펼쳐졌다. 바다제비. 슴새, 물수리, 고니, 흑두루미와 뿔쇠오리가 어미의 자궁처럼 여유롭게 둥지를 틀고 숨을 골랐다. 150여 종의 곤충들도 깃들었다. 바다 밑에도 숱한 생명이 평화로운 일상을 이어갔다.
모든 섬은 태생적으로 외롭다, 홀로섬은 비바람과 파도가 후려쳐도 속으로 울음을 삼켰다. 살이 트고 깎여도 그 틈에 수많은 목숨을 키워냈다. 바람 거센 환경 속에서도 해국, 번행초, 땅채송화, 참나리, 동백나무, 보리밥 나무 등이 바위틈에 뿌리를 내렸다. 홀로섬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숱한 생명을 품었다.
배달겨레는 홀로섬을 우리 호적의 지도에 등재했다. 481년에 만들어진 ‘팔도총도’에는 울릉도 뿐 아니라 우산도도 그려져 있다. ‘동국전도’ ‘조선전도’ ‘해좌전’에도 울릉도와 독도의 모습이 선명히 찍혀있다. 역사가 홀로섬을 우리 땅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홀로섬을 처음 발견한 나라는 아침의 나라이다. 첫 발자국을 찍고 대대로 개척한 사람은 우리 겨레이다. 그것을 국토에 편입하고 영유권을 내외에 선포한 첫 국가도 아침의 나라이다. 우리 겨레는 국호도 깨끗한 아침의 나라라는 조선(朝鮮)으로 정했다. 홀로섬은 이 땅의 맑은 아침을 열었다.
우리가 가난하고 힘없을 때, 일본은 너울 파도를 넘나들며 망발을 일삼고 우리의 가슴에 붉은 물을 들이고 약탈을 일삼았다. 우연히 발견하고 들른 섬을 마치 자기들 땅인 것처럼 우기며 나무를 베고 고기를 잡고 생태계를 유린했다. 더 나아가 홀로섬을 양자로 들여 다케시마(竹島)라고 이름을 지었다.
홀로섬의 잠재적 가치는 무한하다. 주변 해역에는 풍부한 플랑크톤을 노리고 몰려든 물고기가 많아 훌륭한 어장이 형성되었다. 또한 해저 퇴적층에는 미래의 에너지로 여겨지는 하이드레이트라는 메탄 수화물이 다량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것뿐인가. 지정학적으로 전략적 가치까지 지녔으니, 홀로섬은 하늘이 우리 겨레에게 내려준 선물이다.
홀로섬은 이제 영토의 상징이 되고 호국의 얼이 되었다. 목숨을 걸고 지킬 만큼 가치가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부끄러운 선조로 남지 않기 위해 우리는 늘 깨어있는 가슴으로 홀로섬을 품어야 한다.
우리 겨레는 따뜻한 감성을 지녔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 그리워할 줄 아는 사람, 지켜줄 줄 아는 사람, 외로운 사람을 보듬을 줄 아는 심성이 있기에 홀로섬은 홀로지만 혼자가 아니다. 이 땅의 풀포기 하나까지 끌어안고 살아야 할 존재들이다.
저 섬이 그리운 날, 함께 노를 저으며 파도를 헤치자. 밤이면 촛대바위에 기원의 불을 밝히고 강강수월래를 돌아보자. 아침이면 해맑은 햇살 받아 입고 새날을 맞자. 그러고는 함께 겨레의 혼을 담은 노래를 불러보자.
“보라 동해를 지키는 홀로섬/우리의 가슴에서 우뚝 솟았다//피 맺힌 투쟁의 흐름 속에서/우리가 간직함이 옳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