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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건 이것 밖에

등록일 2023-07-09 16:37 게재일 2023-07-1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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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통닭.  /네이버 제공
옛날 통닭. /네이버 제공

할아버지와의 끈은 그의 딸과 연결된다. 학부형으로 알게 된 그의 딸과 나는 속 이야기까지 터놓을 만큼 가까운 관계였다. 하지만 그의 딸은 작년 가을 고등학생 아들과 구순이 다 되신 친정 부모님을 두고 먼저 먼 산 노을처럼 져버렸다. 할아버지와 그녀의 아들 그리고 나는 그녀의 마지막 길을 함께한 유일한 남은 자였다.

그녀가 떠난 후 누구도 나에게 강요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가정을 외면하지 못했다. 가끔 반찬을 해서 방문할 때면 눈까지 글썽이면서 나를 반기는 그들의 눈빛이 짙어서 또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걸음은 계절이 여러 번 갈마들 동안 이어졌다.

찬바람이 부는 어느 날이었다. 저녁 무렵 반찬 몇 가지를 들고 할아버지 댁을 찾았다. 깜깜하고 자그마한 공간에 텔레비전 한 대와 노부부가 마주앉았다. 속옷 바람으로 나를 맞던 할아버지는 불을 켜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다리와 몸에 멍이 보였다. 연유를 묻는 나에게 할아버지는 갑자기 눈이 잘 안 보여 자전거를 타고 가다 넘어졌다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할아버지의 눈이 마음에 걸렸다. 다음 날 무작정 할아버지를 모시고 안과로 갔다. 수술비를 걱정하는 듯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염려하는 마음도 동반되어 나의 차에 올라탔다. 할아버지의 눈은 양쪽 모두 백내장이 많이 진행되어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 날짜를 예약하면서 나는 할아버지의 보호자란에 사인을 했다. 가족이라고는 미성년자인 손자와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뿐이라 사인을 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누군가의 울타리가 되어 준다는 것은 그만큼의 넓이를 책임져야 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나는 누군가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자격에 대해 물음표를 던져 보았다.

한 쪽 눈을 먼저 수술하는 날, 이른 아침 들어선 내게 할아버지는 표정으로 할 수 있는 미안함을 다 표현했다. 수술비가 걱정되어 차마 병원에 갈 엄두도 못 냈던 할아버지는 병명을 알게 되고 수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짐을 내려놓은 듯 가벼워 보였다. 몇 번을 머리까지 숙여가며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사흘 후, 다른 한 쪽 눈을 수술했다. 할아버지는 불편한 눈으로 아침 일찍 어딜 다녀왔는지 분주해 보였다. 이미 준비를 마치신 할아버지와 함께 병원으로 갔다. 나는 진짜 보호자처럼 보호자 대기실에서 기다렸고 수술에 대한 설명도 함께 들었다. 수술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은 모두가 홀가분했다. 나는 할아버지를 댁까지 모셔드렸다. 할아버지는 잠깐 들어가 커피 한 잔 하고 가라며 나를 붙잡았다. 그냥 가려다가 잠깐 들어가 앉았다.

종일 애를 태우고 계셨던 할머니가 나를 반겼다. 내가 앉기도 전에 할머니는 밥통을 열었다. 밥통에서 기름기 가득 묻은 봉지를 하나 꺼냈다. 할아버지가 폐지를 팔고 받은 돈으로 아침 일찍 시장까지 가서 사 온 몸통이 드러난 옛날 통닭이었다. “내가 가진 거라곤 나이 밖에 없고 줄 게 없어서…” 할아버지는 말을 흐렸다.

김경아 작가
김경아 작가

할아버지가 주신 통닭은 그저 감사의 표현만은 아니었다. 할아버지 또한 나를 자식만큼이나 의지하고 깊은 마음을 가지고 계셨으리라. 통닭의 온기가 날아갈까 밥통 안에 두고 내가 오기만을 기다렸던 할머니의 마음과 할아버지의 정성에 목이 메어왔다.

나는 이 가정을 통해 돈으로 살 수 없는 삶의 답을 찾았다. 이들은 가진 것이 없어도 움켜쥐는 것에 욕심내지 않았다. 베푸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고 표현할 줄 알았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내가 가진 것이 얼마나 많은지 돌아보게 되었다.

수술을 잘 마친 할아버지는 눈이 잘 보여 이제 다시 자전거를 탈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무슨 인과 연으로 이들을 끊지 못하는지 알 수 없지만 들여다보고 올 때면 언제나 뜨끈한 옛날 통닭의 온기처럼 내 가슴도 뜨거워진다. /김경아 작가

◇ 김경아 작가 프로필 ·수필 오디세이 신인상 ·포항소재 문학상 최우수상(2020) ·포항 스틸에세이 금상(2022) ·청송객주 문학대전 장려상(2022) ·울산 산업문화 축제 최우수상(2014) 외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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