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인 수필가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2024년 12월 제조업 취업자 수는 440만1000명이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9만7000명 감소한 수치다. 12월 전체 취업자 수도 5만2000명이 줄어든 2804만1000명이다. 취업자 수는 -7.2%를 나타낸 건설업의 감소가 가장 컸다. 그러나 규모가 큰 제조업에서의 감소는 걱정스럽다. 경제 위기를 극복하려는 정부의 노력에도 고용은 줄어든다. 지난 10여 년간 제조업의 비중은 2011년 30%에 달하던 것이, 2023년에는 25.6%로 줄어들었다. 대한민국 산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제조업체가 줄어들고 사라지면서 전체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제조업의 위축은 근로자들의 수입 감소로 이어지고 소비는 줄어들고 산업은 다시 침체의 늪에 빠진다. 2025년도 트럼프 등장으로 고율 관세 부담으로 세계 경제 전망은 불투명하고 환율은 치솟는다. 관세를 무기로 자국 경제를 살리려다가 세계 경제를 어둡게 한다. 자국 우선주의 앞에 동맹도 우방도 없고, 우리의 수출 주역인 제조업은 거센 풍랑을 맞아 위태로운데 흔들리는 정치는 경제에 부담만 준다. 중국을 향한 미국의 60%에 달하는 고율 관세는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국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판매처를 잃고 세계시장에 제품을 싼값으로 내놓아 우리 제조업을 더 힘들게 할 것이다. 그동안 중국 제품은 우리의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 휴대전화, 조선과 철강, 전기차와 이차전지, 석유화학 제품과 기계제품에서 높은 가격 경쟁력으로 매년 한국 제품을 대체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60%의 고율 관세에 대응하여 중국 위안화의 평가절하마저 이루어진다면 한국 제조업은 설 자리를 잃는다.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국내 기업도 자구책 마련에 바쁘다. 불필요한 비용 지출을 줄이고 보다 값싼 재료를 찾고 인건비를 줄이려고 동남아로 생산 거점을 옮긴다. 그러나 동남아 이전은 산업체의 생명을 잠시 연장할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그러기에 이전하면서도 근심 어린 표정이 가득하다. 대기업이 사활을 걸고 개발하는 첨단 기술은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더디고 기존 제품 시장은 자꾸 줄어든다. 이러한 어려움을 헤치고 확립한 기술은 생명이 짧고 경쟁업체로의 기술 유출도 심각하다. 돌아보면 제조업체가 기술을 개발하며 시장을 확대하며 종사자들에게 월급을 주며 유지하는 것이 기적에 가깝다. 사면초가에 몰린 한국 제조업이 살길은 무엇일까. 현대자동차 대표이사인 호세 무뇨스는 미국 시장에 적극적인 투자를 발표했다. 자동차 최대 시장인 미국에 대한 투자로 시장에서 입지 강화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함이다. 기업뿐 아니라 국가도 미국과의 투자와 경제 협력에 적극 참여하며 살아남아야 한다. 제조업의 위기에 국가의 총력 지원이 필요하다. 때를 놓치면 제조업은 고사 위기에 몰려 무너지고 만다. 기업이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하고 정부와 국회가 나서서 살려야 한다. 위기의 순간을 잘 극복하면 기회는 저절로 찾아올 것이다. 나라의 장래를 살피는데 이념도 사사로운 감정도 버리고 힘을 모아야 한다. 우리를 위해.
2025-01-20
아내는 휴대폰으로 내 모습을 촬영했고... 아내는 일주일에 한 번 미술 레슨을 받으러 간다. 왔다 갔다 하는 시간과 레슨 시간을 합하면 두 시간 반 정도가 걸리는데, 그동안 육아는 온전히 내 몫이 된다. 평소 둘이 함께 하는 육아가 한 사람의 몫이 되면 체감적으로 서너 배 정도 힘이 드는 느낌이 들곤 하지만 그날은 유독 쉽지 않았던 날이었다. 잘 자던 아기가 배가 고파 깨서 분유를 먹였고, 먹자마자 아기는 큰 볼일을 봤고, 아기를 씻기고 바닥에 잠시 눕히고 기저귀를 가지러 간 사이 아기는 거실 바닥에 작은 볼일을 보고 있었고, 다시 아기를 씻겨야 했고, 이번에는 딸꾹질을 시작했고, 그것을 멈추기 위해 또 분유를 먹이는 길고 긴 과정을 수행해야 했다. 이 모든 상황이 종료되고 다시 아이를 안아 재우고 있을 때 아내가 집에 돌아왔다. 두 눈이 퀭해진 나를 보고 아내가 힘이 들었는지 물었고, 나는 세상 가장 초췌한 표정으로 짧은 시간동안 우리에게 있었던 일들을 하소연했다. 별 것 아닌 이 장면이 우스웠는지 아내는 휴대폰으로 내 모습을 촬영했고, 이것을 살짝 편집해서 SNS에 숏폼 영상으로 올려 보면 어떨까 제안했다. 나는 휘뚜루마뚜루 편집을 해서 대충 나의 SNS계정에 올려두었는데,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이 영상이 SNS의 알고리즘을 타고 무섭게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영상을 업로드한지 48시간 정도가 지난 현재 이 영상의 조회수는 14만을 돌파했고 지금 현재도 그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일은 당연히 반갑다. 내 본업으로 얼굴을 알리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많은 사람들에게 내 SNS가 노출되는 것은 내 창작물들을 홍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는 일이다. 그런데 조금은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작년 하반기, 나는 내가 그동안 발표했던 음악들과 시편들을 갖고 수십 편의 숏폼 영상을 제작했다. 작품을 고르고, 자막을 달고, 그와 어울리는 영상을 편집해서 업로드 하는 수고로운 과정을 매일 반복했는데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피땀 흘려 노래와 시를 창작한 시간까지 더하면 정말 공을 많이 들인 것인 셈인데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 많이 아쉬웠던 참이다. 그런데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올린 일상 영상이 빵 하고 터져버리다니. 정말 인생은 알 수 없다. 이틀만에 14만이라는 숫자는 그야말로 내게 있어서는 대단한 수치이다. 유튜브에 올려둔 내 뮤직비디오 중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영상은 ‘집에 가고 싶다’라는 곡의 뮤직비디오이다. 이 영상의 현재 조회수는 39만. 그러나 그것은 업로드 한 지 5년 만에 달성한 결과이다. 그냥 육아가 힘들었다고 아내에게 푸념하는 영상이 그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니, 실소를 참기가 어려운 일이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어떤 일이 이런 식으로 예상을 벗어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은 내 삶에 종종 있는 일이었다. 앞서 말한 ‘집에 가고 싶다’라는 곡 역시 아무런 기대감 없이 내어 놓은 곡이다. 이 노래가 알려지게 된 사정이 아주 뜬금없었다. 야근하는 직장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었던 이 노래가 군 복무를 하고 있는 현역 장병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게 되었던 것이다. 요즘 생활관에는 스마트 스피커가 하나씩 있다는데, 장병들이 무심코 ‘집에 가고 싶다’고 외치면 스피커가 내 노래를 재생해주곤 했던 것이 그 시작이었다고 한다. 내가 쓴 일곱 권의 책 중 가장 잘 팔린 것은 ‘사축일기’라는 책이었다. 이 역시 출판사의 제안으로 아무런 기대 없이 쓰기 시작한 것이었다. 앞서 야심차게 내어 놓았던 나의 첫 산문집이 상업적으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해 의기소침했던 터라 받았던 계약금이 민망하지 않을 정도로만 팔려줘도 좋겠다고 생각하며 글을 썼다. 출판사에서 요청한 것은 가벼운 글이었는데, 나는 그 요청에 맞는 글을 쓰면서도 속으로 ‘이런 글이 독자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 책은 내가 쓴 첫 번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짧은 기간 동안 여러 차례 증쇄를 찍으며 유명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 차트에 오르는 결과를 내어 주었다. 매사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맞는 말이고, 성공하기 위해 가져야 하는 아주 기본적인 태도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가 매번 똑같은 야심과 기대감으로 프로젝트를 마주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일은 그야말로 영혼을 갈아 넣었는데 실패하기도 하고, 어떤 일은 가볍게 툭툭 해냈는데 성공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행한 일 앞에서 우쭐해져서도 안되고 함부로 의기소침해져서도 안 된다. 결과는 알 수 없는 것이니 그저 매번 담담하게 계속 해 나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이야기를 꾸며내는 것에 훨씬 능한 아이였다. 현실과 멀리 떨어진 이야기,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이 사실보다 더 사실 같은 장면으로 다가오곤 했다. 그러니까 어젯밤 무시무시한 괴물이 침대 밑에 숨어 있었다든지 방에 난 창으로 요정이 찾아왔다고 떠드는 것. 어떤 면에서 그것은 거짓말이라기보다 내 안에서 만들어진 왜곡된 형상을 믿는 것에 가까웠다. 간밤에 느꼈던 두려움이나 이질감을 나만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자라면서 나는 거짓말의 무시무시함을 체득하게 되었다. 특히 악의를 가지고 내뱉는 거짓말이 얼마나 사람을 괴롭게 하는지 깨달았다. 상황을 모면하고자 꺼낸 말이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보았으며 그것을 수습하기 위해서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한지도 경험했다. 나를 둘러싼 오해가 커지는 과정, 사실이 아닌 것들이 나의 영혼에 덕지덕지 붙는 순간도 있었다. 거짓말은 짓궂은 악마처럼 나를 괴롭혔으나 동시에 나 자신도 거짓말이라는 무기를 들고 타인을 향해 얼마든지 휘두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거짓말의 세계에서 안온함을 느끼는 경우도 존재했다. 괜찮지 않은 상황에서 괜찮다며 스스로를 속이는 일, 그 사람이 나쁜 의도로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는 일, 누추한 현실을 외면하고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그리는 일이 그러했다. 그럴 때의 거짓말은 한 줌으로 남은 희망이자 미지의 세계를 긍정하는 힘이었다. 거짓말이 있기에 현실을 버틸 수 있었고 헛된 상상의 영역으로 인해 삶의 부피가 한껏 풍부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소설을 좋아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일지도 모른다. 소설은 필연적인 거짓말이니까. 얼마나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늘어놓는가에 따라 이야기의 완성도가 결정된다. 작가와 독자는 서로의 거짓말을 믿기로 합의한 모종의 협력 관계다. 잘 구축된 거짓말을 통해 진실을 드러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애란의 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은 이러한 지점을 유려하게 풀어 놓는다. ‘이중 하나는 거짓말’은 소설 속 선생님이 고안한 자기소개 게임이다. 다섯 문장으로 자기를 소개하는데 그중에는 반드시 거짓말이 들어가야만 한다. 이를 통해 자신의 안에 감추고 있는, 누구에게도 꺼내 보이고 싶지 않은 진실을 거짓말의 형태로 발화할 수 있다. 거짓말이라는 형식 안에서 놀라울 정도로 솔직해지는 순간을 경험하고 자기 자신조차 몰랐던 진실을 확인하게 된다. 소설의 주인공은 청소년들이다. 세상의 모든 인물이 그렇듯 그들 역시 각자의 상황에서 감내해야만 할 것들이 존재한다. 가정 환경이나 좌절된 꿈과 같은. 그들의 시간은 어떤 것보다 뜨겁고 생생하다.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무궁무진한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무언가 발설하고 싶다는 욕구에 시달린다. “누가 들어도 명백한 거짓 같아서 모두 웃어넘길 수 있는 진짜 이야기를.”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그러나 삶은 거짓말처럼 웃어넘길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현실에서 도망치는 법을 상상한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캄캄한 어둠 안에서 숨을 죽이다 보면 고통이 모두 지나가게 될까. 상황이 끔찍하다는 것을 두 눈으로 마주하고 싶지 않다. 결국 우리는 이불 밖으로 나와야만 하고 꼿꼿이 서서 차가운 현실을 통과해야 한다. 외롭고 두려울지라도. 그것은 소설 속 주인공이 종국에 “꿈에서 나는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돌아왔다”는 문장을 떠올린 이유기도 하다. 꿈과 현실을 구분할 힘이 생긴다는 것은 어른이 되어간다는 뜻이다. 더 나은 쪽으로 발을 디디겠다고 마음먹는 것은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이다. 김애란 작가가 ‘작가의 말’에 “삶은 가차없고 우리에게 계속 상처를 입힐 테지만 그럼에도 우리 모두 마지막에 좋은 이야기를 남기고, 의미 있는 이야기 속에 머물다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적은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그러니까 거짓말은 마치 이불 같은 것. 추운 날 다정하게 덮어주면서 마음이 약해지면 꼼짝없이 붙들리는 것. 바람이 차갑게 불수록, 그로 인해 나 자신이 속절없이 흔들릴수록 절실히 생각나는 것. 이불 속으로 숨어드는 것은 어떤 것도 해결해주지 못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확실한 위로로 작동할 수 있다.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이불도 거짓말도.
김경아 작가 태풍경보가 내렸다. 비바람이 다짜고짜 해송의 멱살을 흔들어 댄다. 해송은 흔들리면서 힘겹게 버틴다. 수평선 너머에서 시커먼 너울들이 거침없이 다가온다. 오늘 밤이면 방파제를 훌쩍 뛰어넘은 파도가 배들을 다 삼켜버리겠다. 바닷가로 이사 온 이후로 처음 보는 광경이다. 포구는 전쟁 전야처럼 긴장감이 가득하다. 밀려올 파도에 대비하는 뱃사람들의 몸짓이 분주하다. 배를 계류하기 위해 위치를 옮기고 배마다 육상 비트에 홋줄을 건다. 그래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지 배와 배가 서로 부딪치지 않도록 밧줄로 팽팽히 묶어 스크럼을 짠다. 풍랑이 몰아치면 줄은 배들이 서로를 지탱해 주는 힘이 된다. 홋줄은 굵은 밧줄이다. 성인 남자의 팔뚝만큼 두껍고 길이도 길다. 작은 배는 혼자서도 줄을 걸 수 있지만 큰 배는 어림도 없다. 그러므로 윈치라는 기계를 이용하여 홋줄을 당긴다. 홋줄에 묶이면 배는 고정이 된다. 누군가가 풀어주지 않으면 배는 아무리 요동쳐도 바다로 떠나지 못한다. 더 넓은 바다로 떠나야 할 엄마는 집에 묶여버렸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생계는 외할머니가 떠맡았고 외할머니가 생선을 팔러 나가면 집안일은 모두 엄마가 떠맡았다. 밤이 이슥해지면 잠투정하는 동생들을 다독거리느라 토막잠을 잤다. 입 하나를 덜기 위해 외할머니는 엄마를 시집보냈다. 시집은 친정보다 형편이 조금 나아서 춘궁기에도 배는 곯지 않았고 가끔 웃을 일도 생겼다. 그러나 아버지가 폐결핵에 걸리면서 엄마의 삶은 또 발목이 잡혀 버렸다. 아버지의 병은 외할머니에게 쓰나미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소식이었다.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일만 시키다 어렵사리 시집보냈는데, 또 병 치다꺼리라니, 딸에게 당신의 삶을 고스란히 이어주었다고 생각한 할머니는 깊은 시름에 들었다. 마음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던지 할머니는 정신줄까지 모조리 놓아 버렸다. 그때부터 할머니의 삶은 항해가 아니라 표류였다. 할머니는 밤이면 귀신이 보인다고 울었다. 자다 말고 쫓아간 엄마에게 할머니는 매질을 했다. 심한 욕설도 내뱉었다. 가족의 생계도 고스란히 엄마에게 맡겨졌다. 종일 생선과 씨름하느라 몸에는 비린내가 가실 날이 없었다. 장사를 마치고 돌아오면 집안 곳곳에 일이 널브러져 있었다. 방으로 부엌으로 빨래터로 분주히 몸을 놀리다 보면 밤이 이슥해졌다. 서른도 안 된 엄마의 고운 손은 점점 지문이 닳고 닳아 거칠고 투박해졌다. 엄마를 옭아매는 줄은 하나가 아니었다. 깜깜한 골목길을 들어서면 울고 있는 자식들, 뼈만 앙상히 남은 채 피를 토하며 기침만 해대는 남편, 벽이며 바닥이며 마루며 온 집안을 배설물로 칠하는 할머니, 발목, 허리, 손목에 줄이 매어져 있었다. 엄마도 꽃이 피는 봄날이면 치맛자락 펄럭이며 꽃구경도 가고 싶었고 지천이 울긋불긋 물들어 가는 가을이면 생선 좌판 걷고 단풍을 보러 떠나고 싶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 하루 놀고 나면 내일 끼니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에 마음을 고쳐먹었을 것이다. 엄마에게 이어지는 줄은 동아줄보다 질겼다. 끊으려 해도 끊을 수 없는 줄이었다. 암담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줄을 끊고 도망이라도 가고 싶었겠지만, 그렇다고 인연의 줄까지 끊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남편과 며느리라는 줄은 경우에 따라 끊을 수 있지만 자식과 연결된 줄은 누구도 끊을 수 없었다.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먼 길로 떠나셨다. 엄마를 옭아맨 홋줄이 하나씩 끊어지면서 엄마는 자유를 조금이나마 찾았다. 그러나 꽃다운 나날이 이울어버린 뒤였다. 게다가 자식들을 더 보듬어야 했다. 엄마는 더 넓은 바다로 떠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항구가 되었다. 제 마음대로 움직였던 몸의 지체 하나하나가 또 발을 묶었다. 자식들이 성장해 하나씩 항구를 떠났다. 그렇다고 엄마는 쉬지 않는다. 집을 떠난 자식들이 가끔 돌아와 쉬었다 갈 때 바리바리 내어준다. 밥을 먹고 돌아서도 ‘밥 먹을래’하고 묻는다. 인연의 끈이 손주까지 이어져 챙길 입이 많아졌다. 그래도 그것을 천륜의 줄이라 여기고 늘 몸을 놀리지 않는다. 엄마와 나는 탯줄로 이어졌다. 뱃속에서 나와 탯줄이 끊어지면서 핏줄이 되고 그때부터 생긴 인연의 줄이 엄마와 나를 잇고 있다. 엄마라는 항구를 떠난 지 오래지만, 엄마는 이제 휴대폰을 통해 문자를 보내온다. 밥 묵었나, 아픈 데 없나. 엄마는 스스로 자식과 홋줄을 묶는다. / 작가
2024년에 개봉한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가 한국에서 큰 관심을 불러 모았습니다. 도쿄의 청소부 히라야마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영화에는 도쿄의 지역성이 매우 풍부하게 드러나 있는데요. 한강을 중심으로 남북이 크게 나뉘는 서울과 달리, 도쿄는 에도 시대부터 교코(쇼군이 살던 곳)를 중심으로 무사들이 주로 살던 서쪽과 서민들이 주로 살던 동쪽이 나뉘고는 했습니다. 히라야마는 도쿄의 동쪽에 살면서, 도쿄 서쪽의 시부야구로 출근해 화장실 청소를 하며 지냅니다. 그렇기에 히라야마의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도쿄라는 도시의 공간적 특성을 파악하게 됩니다. 히라야마가 사는 곳은 비교적 서민들이 사는 동네로, 저렴한 이자카야나 목욕탕, 낡은 아파트(우리식으로 하자면 연립주택) 등이 남아 있는데요. 이에 반해 히라야마가 화장실 청소를 하는 시부야구는 부촌의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특히 히라야마가 청소하는 화장실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더럽고 칙칙한 느낌의 공중화장실과는 거리가 멉니다. 히라야마가 청소하는 곳은 비영리 단체인 일본재단과 시부야구가 깨끗하고 접근하기 좋은 공중화장실을 목표로 만든 열일곱 개의 화장실이니까요. ‘THE TOKYO TOILET’이란 이름이 붙은 이 프로젝트에는 안도 다다오나 구마 겐고 등의 세계적인 건축가들도 참여했는데요. ‘퍼펙트 데이즈’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현재 도쿄에서는 이 열일곱 개의 화장실 투어를 하는 여행 상품이 있을 정도입니다. 영화는 지루할 정도로 차분하고 정밀하게 히라야마의 하루를 따라갑니다. 그는 아침에 동네 노인의 비질하는 소리에 눈을 뜨면, 이불을 개고 간단한 세면을 한 후에, 집 앞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아 마시고, 청소용 미니 봉고차에 올라 올드팝을 들으며 일터로 갑니다. 점심에는 일터 근처에 있는 신사에 가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코모레비(나뭇잎 사이로 비추는 햇빛)를 필름카메라에 담고, 퇴근 후에는 노인들이 다니는 동네 목욕탕에 몸을 담그며, 아사쿠사 지하에 있는 역시나 오래된 이자카야에서 술을 한 잔 마시고, 집에 와서는 100엔을 주고 산 헌 소설책을 읽으며 잠드는 일상을 보내는데요. 어찌 보면 너무나도 평범한 히라야마의 일상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이유는, 바로 그 평범의 지극함에 있습니다. 히라야마는 우리가 별다른 의식도 없이 행하는 일상의 그 모든 일들에, 마치 엄숙한 의식을 치르듯이 혼신의 힘을 다합니다. 히라야마의 일상에는 동전 하나 열쇠 하나 놓는 위치까지 정확하게 정해져 있을 정도인데요. 그렇기에 히라야마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에서는 신성함마저 느껴집니다. 특히 화장실을 청소할 때, 히라야마의 정성과 집중은 최고조에 이르는데요. 그 결과 관객들은 히라야마가 닦는 것이 공중 화장실의 변기가 아니라, 사당의 제기가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질 정도입니다. 저는 히라야마가 혼신을 다하여 닦는 것이 다름 아닌 변기라는 사실이 매우 의미심장하게 여겨집니다. 히라야마가 너무나 열심히 닦고 빛내는 변기란. 후배 타카시의 말처럼 “어차피 더러워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히라야마의 화장실 청소란 그야말로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일에 해당할 텐데요. 이러한 순간에의 몰입은 그가 날마다 코모레비를 카메라에 담는 것에서도 드러납니다. 코모레비는 바람과 햇빛에 의해 늘 변하는 순간의 연속이며, 히라야마는 바로 그 ‘순간’을 카메라에 담을 정도로 소중히 하는 겁니다. 가출한 조카와 나누는 대화에서도 ‘순간’에 대한 강조는 드러납니다. 히라야마는 조카에게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는데요. 나중에는 조카까지 노래를 부르듯 이 말을 따라 합니다. 이 말 속에서도 지금 이 ‘순간’에 대한 가치부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경재 숭실대 교수 이토록 순간에 집중하는 히라야마의 모습에서는, 일본 사회의 심층을 형성하고 있는 불교 특히 선(禅)의 영향이 느껴집니다. 6세기에 불교가 전해진 이래, 일본인의 종교적 심성 한복판에는 늘 불교가 있었습니다.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대개의 일본인들은 불교식으로 장례를 치르고, 사후에는 불교식 이름(戒名)을 받으며, 일본 가정 대부분에는 지금도 불단(仏壇)이 설치되어 있으니까요. 특히 일본의 지배계급이던 무사들은 선(禅)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요. 이러한 선에서 가장 중요시한 것이, 바로 일상을 하나의 수행처럼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선에서는 작은 것에서 위대함을 보고, 속된 것에서 성스러운 것을 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이니까요. 차 한 잔 마시는 것에 온갖 정성을 기울이는 것에도 그 근본을 따지고 들어가면, 바로 이러한 선의 정신이 놓여 있습니다. ‘퍼펙트 데이즈’의 히라야마는 어쩌면 청소부로 변신한 우리 시대의 선승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사진=이경재(숭실대 교수)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종교와 민족적 갈등으로 인해 촉발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전쟁이 자그마치 15개월 이상 이어졌다. 아주 오래전부터 갈등을 거듭했던 두 나라의 다툼은 수많은 여성과 어린이 희생자를 낳았다. 가자 지구를 향해 수시로 날아드는 이스라엘 군대의 폭탄에 공포에 질린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모습은 영상을 통해 가감 없이 세계 사람들에게 전달됐다. 반전과 휴전을 외치는 목소리가 각처에서 터져 나왔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이번 전쟁으로 가자 지구에선 지난 1년3개월 동안 15만70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최근 팔레스타인 정부는 2023년 10월 7일 개전 이후 지난주까지 팔레스타인인 4만6899명이 사망했고, 11만725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발표했다. 부정할 수 없는 ‘학살’ 수준이다. 평화와 인권이 보편적 가치로 자리 잡은 21세기에 벌어진 끔찍한 비극이 언제까지 지속될 지 우려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천만다행으로 19일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휴전 협정이 발효됐다. 전쟁을 걱정스럽게 지켜보던 이들은 누구 할 것 없이 환영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치조직 하마스는 이스라엘 인질 3명을 돌려보냈고, 이스라엘 또한 팔레스타인에서 잡혀온 수감자 90명을 감옥에서 내보냈다. 이른바 ‘포로 맞교환’이다. 이것이 두 나라 간 공존의 신호탄이 됐으면 한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은 향후 6주 동안 교전을 멈춘 후 노약자를 위주로 인질을 석방하고, 감옥 문을 열어 수감자를 풀어주기로 합의했다. 이 약속이 반드시 지켜져 종전(終戰)으로 가는 길이 속히 열렸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지난 1월 19일, 대통령의 구속영장 발부에 저항하는 시민들이 공덕동 서부지방법원에서 재동의 헌법재판소까지 긴 행진을 했다. 전날인 18일 오후부터 구속영장이 청구된 서울 서부지방법원에 20~30대 청년들이 중심이 된 시민들이 이렇다할 사전 연락도 없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날은 토요일, 원래 광화문에서 전광훈 목사 교회 쪽이 주최하는 집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예정과 달리 대통령이 영장 실질 심사에 직접 참석하겠다고 하자 사람들은 서부지방법원으로 달려갔고, 그러자 광화문 세력도 서부지방법원으로 합세하기로 한다. 이날 오후부터 한밤까지, 그리고 19일의 새벽까지 날이 아주 길었다. 시민들은 불법적으로 영장을 발부한 이순형, 신한미 전담판사와는 다른 주말 당직판사가 심사를 맡는다는 사실에 큰 기대를 걸었다. 차은경 판사가 어떤 사람인지 어지간히 찾아들 보고 화제에도 올렸다. 이런 저런 판결 이력들을 살펴 이 사람은 혹여 다를지도 모른다고들 했다. 자정을 훨씬 넘겨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심사 결과가 나왔는데, 법원을 둘러싼 사람들이 바라던 것과는 전혀 다른 빛깔의 것이었다. 청년들은 나이든 사람들과도 다르다. 시작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서부지방법원은 그동안 억눌려온 분노의 표적이 되고 말았다. 서부지방 법원 유리창들, 외벽들, 그밖의 시설물들이 파손되고 경찰 바리케이트도 부서졌다. 경찰이 법원 진입을 유도했다고도 하고, JTBC 기자가 유리창을 깨고 조작뉴스를 방영했다고도 하는데, 어떤 의미에서든 폭력과 파괴는 정당화될 수 없다. 날이 새자 한밤의 시위대가 해산되다시피 한 상황에서 헌법재판소까지 행진하기로 한 시민들이 새로 모여 들었다. 거리 행진은 길었고, 사람들은 헌법재판소의 강압적인 심판 진행에 거세게 항의했다. 이 1월 19일의 상황은 필자로 하여금 지나쳐 온 한국현대사를 돌아보게 한다. 4·19혁명은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던 학생 시위대의 한 사람인 김주열 군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 떠오르면서 촉발된 것이었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우리가 오늘 사월혁명이라 부르는 4·19의 새벽이 밝아오게 된다. 1960년의 3·15 부정선거에 대한 항의가 사월혁명으로 일어났다면, 1987년 6월 10일에 시작된 6월항쟁은 1월 14일의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에 의해 촉발되었다. 6월 10일부터 6월 29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시민들은 호헌철폐와 대통령 직선제를 외쳤다. 체육관에서 대통령을 뽑는 국민주권 박탈상태에 국민저항권을 발동한 것이었다. 이번 1·19 사태는 지난 12월 3일 대통령의 계엄 포고가 직접적 배경이라 하겠다. 지금 탄핵 심판에서 대통령 측은 계엄령 포고가 2024년 4월 15일 22대 국회의원 선거의 부정을 밝히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포고 당시에 대다수 국민은 계엄령 포고가 21세기의 번영을 구가하는 한국 민주주의에 어울리지 않는 황당한 도발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르고 대통령이 다수파 야당의 국회에서 탄핵을 당하고 체포, 구속까지 당하게 되면서 국민들 생각과 감정이 아주 달라진 것 같다. 필자만의 판단은 아닐 것이다. 과연 22대 국회는 가짜였던 것이 아니냐. 이것이 지금 국민들이 의혹을 품고 대통령을 심정적으로 동정하는 문제의 핵심일 것이다.
김소현 의원 대한민국은 지금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 정치적 갈등과 사회적 분열이 깊어지는 가운데, 우리는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가치를 재점검하고 미래를 위한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을 맞이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가치는 어떻게 지켜져야 하는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두 가지를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첫째, 자유민주주의의 가치, 둘째,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역사적 기반이다. □ 자유민주주의 : 대한민국의 핵심 토대 대한민국은 1948년 건국 과정에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국가 이념에 두고, 시장경제를 통해 경제적 번영을 이룬 국가이다. 법치주의 토대 아래,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최우선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철학적 기반은 대한민국이 전쟁의 폐허를 딛고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원동력이다. 반면 대한민국 건국의 정당성을 부정하거나,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과소평가하며 이를 대체하려는 좌파적 담론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흔들고, 나아가 국가의 지속가능성까지도 위협하고 있다. 좌파진영은 대중영합주의라 일컫는 감성정치와 집단 선동으로 진보적 이미지를 구축하며 대중적 지지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의 전략은 단순히 정책을 넘어 정체성과 가치를 둘러싼 담론 자체를 지배하려는 데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우파진영은 자유민주주의의 이론적 기반을 충분히 강화하지 못했고 국민과 소통하는 데 실패했다. 우파진영 지도자들의 무거운 책임감과 깊은 숙고(熟考)가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 자유주의 체제를 지키는 우파의 책임 정당정치가 부실하면 절차적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도 흔들리게 된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당정치는 대중의 신뢰를 상실한 상태이며, 우파정당은 분골쇄신(粉骨碎身)하여 자유주의의 이론적 토대 강화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담론을 적극적으로 형성해야 한다. 첫째, 철학적 기초의 강화, 둘째, 법치주의와 절차적 민주주의의 수호, 셋째, 대중과의 소통을 통한 미래지향적 비전 제시. 우파진영은 법치주의와 절차적 민주주의가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핵심요소임을 강조하고, 대한민국의 성장과 번영을 가능하게 한 철학적 기초임을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 또한 자유주의의 철학적 깊이를 대중과 소통하는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 우파진영의 또 다른 과제이다. 좌파진영은 간결하고 매력적인 구호 그리고 시민들의 일상적 삶과 연결짓는 담론으로 대중적 공감을 이끌어 냈다. 반면 우파는 이론적으로 자유주의를 옹호하는 데 그쳤고, 결국 보수정당정치의 사상과 철학의 빈곤함을 드러나게 했다. 이는 단지 우파진영의 사명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가를 지키는 길이기에 좌파의 도전에 맞서서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재확립하고 미래를 이끌어갈 유일한 선택임을 설득하고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역사적 기반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단순히 정치적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국민이 공유하는 가치체계이고 국가를 지탱하는 정신적 기반이다. 자유와 책임이라는 가치가 법치주의와 절차적 민주주의 속에서 균형을 이루고, 시장경제를 통해 국민이 더 나은 삶을 추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 이것이 대한민국이 선택한 길이며, 우리가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이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는 대한민국의 본질이며, 이 체제를 지키는 것이 곧 대한민국의 생존과 미래를 지키는 일이다. 정치적 지도자나 제도만으로는 국가를 지킬 수 없다. 이 나라의 가장 강력한 방패이자 원동력인 깨어있는 국민만이 자유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다. /김소현 경주시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