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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출토 금속유물과 보존처리의 역할

금속은 청동기시대·철기시대처럼 역사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언급될 만큼 고대부터 친숙하게 사용된 재료이다. 출토되는 금속유물들은 주로 금·은·동·철·납·주석 등의 재료를 적절하게 이용하여 만든 장식품이나 무기, 생활도구들이다.아주 오래전부터 고대인들이 만들어 사용한 이러한 물건들은 발굴조사를 통해 출토되어 유물이 되고, 관련 역사학자들이 이를 연구함으로써 당시의 금속 제작 기술 수준이나 문화의 발전 등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경주를 예로 들어보면, 신라가 천년 동안 유지되면서 생산한 다양한 문화 유적지들이 즐비한 곳으로 발굴조사를 통해 출토되는 금속유물의 수량 역시도 매우 많고, 다양하다. 이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경주에서는 사람이 생활하던 주거지부터 죽은 자의 무덤, 각종 건물이나 사찰 등 유적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금속유물들이 출토된다.각종 생활도구들 중에는 지금도 사용되는 솥이나 망치와 모양이 크게 다르지 않는 것도 있지만 의례행위 도구나 무기, 장식품들 중에는 어떻게 사용하였는지 궁금증을 유발하는 유물이 상당수를 차지한다.이러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유물의 모양을 되찾아주어야 하는데, 알다시피 금속은 흔히 ‘녹이 슨다.’라고 하듯이 쉽게 부식되고, 깨지거나 변형되는 성질을 갖고 있다. 금속유물은 출토되는 수량은 많지만 온전한 모습이 거의 드물기 때문에 이러한 금속유물들을 연구하기 위해서 반드시 보존처리를 진행하게 된다. 이건 일종의 선결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출토되는 금속유물을 보존처리하는 과정은 크게 보면 ‘기록-처리-기록’의 과정을 거친다. 보존처리 과정 전반에 걸쳐 유물을 가까이 놓고 관찰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확인되는 다양한 정보들을 최대한 기록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록들은 발굴보고서에 반영되고, 전시나 교육, 관련 연구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기초자료가 된다.보존처리 기록에는 보존처리 전과 후의 유물 사진, x-ray 촬영을 통한 보이지 않는 균열과 문양들, 분석 장비를 이용한 유물의 성분분석 결과, 유물의 무게나 크기의 변화, 보존처리에 사용한 약품의 종류 등이 포함된다.이러한 정보를 이용하면 발굴현장에서 출토되는 비슷한 모양이나 상태의 유물을 보존처리하는데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또한 관련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유물을 관리하는 담당자들에게도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는데, 수장고에 보관하면서 금속유물에 손상이 발생하는 것을 억제하면서 안정된 상태로 유지할 수 있는 기초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이처럼 금속유물을 보존하고 처리하는데는 조심스러운 여러 가지 과정이 필요하다.금속유물을 보존처리 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고대 사회의 기술 수준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 인류가 어떤 방식으로 변화와 발전의 과정을 걸어왔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이기도 할 것이다. 금속유물의 보존처리는 단순히 녹이 슨 부분을 제거하고, 지저분한 곳을 닦아주며, 깨진 부위를 붙이거나 복원해주는 것만이 아니다. 단순한 기술적 보존처리에 그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유물의 크기나 상태에 따라 처리기간은 다르지만 짧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1년 이상을 계속해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며, 실체현미경과 전자현미경을 통해 유물을 관찰하다보면 과거의 조상들이 이 유물을 어떻게 만들었고, 어떠한 기술을 적용하였으며, 얼마나 정교한지를 확인하게 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역사는 복원되고 연구되는 것이다.이러한 관찰을 통해 고대 사회의 제철기술, 장식기술과 같은 금속 가공기술부터 금·은·동·철·청동 등의 재료 특성과 같은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이렇게 확보된 정보들은 고고학, 미술사, 공예사 등의 관련 학문에서 더 다듬어져서 고대사회의 모습을 유추하는데 활용된다. 고대 금속유물의 연구 과정은 이처럼 체계적이고 정밀하게 진행된다. 심명보학예연구사 지금은 금속을 생산하고 제품을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 너무나도 익숙하고 편리하며, 더욱 정밀한 물건도 많기 때문에 박물관이나 책에서 보는 낡고 보잘 것 없는 녹슨 철기 유물 한 점을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하지만 고대 사회에서 금속제품은 부의 상징과도 같았다. 그들이 사용했던 화려하면서 섬세하고, 강인하면서도 실용적인 금속제품은 긴 시간이 지나 다소 빛을 바래서 우리 앞에 유물로 나타났지만 그 가치는 여전히 빛나야 하는 소중한 것임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우리 역사의 찬란했던 과거 흔적을 찾아 가고 조상들의 금속공예, 더 나아가 당시의 생활문화가 재조명 받을 수 있도록 연구하고, 공유하는 것이 보존처리의 역할인 것이다.

2021-11-22

감정의 질감, 시선이라는 오브제

사진이 발명되기 전인 18세기 말, ‘정혼자에게 보낼 딸의 초상화를 그릴 것’ 귀족 부인의 지시는 정략 결혼을 거부한 딸의 초상화를 몰래 그려달라는 것이었다. 산책친구로 위장한 화가 마리안느는 프랑스 어느 작은 섬으로 향하고 대저택에 머물면서 귀족 부인의 딸 엘로이즈를 만나게 된다. 마리안느는 산책시간 동안 엘로이즈를 관찰하고 기억을 더듬어 초상화를 완성해 간다.사실성을 중시하던 고전미술은 초상화에 있어서 인물을 사실적으로 그리면서도 돋보이게 해야한다는 이중의 과제를 안고 있었다. 이를 위해 초상화는 법칙이 만들어지고, 법칙 속에서 의뢰자의 만족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그것을 위해 화가는 세심한 관찰력이 필요했다. 대상을 고정화시켜 놓은 상태의 작업이 아니라 한정된 조건 속에서 진행되는 초상화 작업은 고도의 집중과 기억의 형상화가 필요한 것이다.정상적인 초상화 작업이 모델과 화가의 마주보는 시선이라면, 마리안느의 초상화 작업은 일방적이다. 산책의 시간 동안 눈치채지 못하게 대상을 끊임없이 관찰해야하는 마리안느의 일방적인 시선과 풍경을 담으며, 아득한 어느 곳으로 생각과 시선이 머무는 엘로이즈의 자유로운 시선이 산책길을 걷는다.두 여인의 만남과 시선은 이렇게 시작된다. 대저택과 외딴 섬의 풍경 속에 놓인 사람들. 그들 주변을 감싸고 도는 소리와 풍광들이 낮과 밤을 반복하는 사이 의뢰받은 초상화는 완성에 이른다. 관찰이라는 목적성을 가진 시선과 그 시선 속에 묘한 감정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대상자. 이 둘 사이는 완성된 초상화를 엘로이즈가 혹평하면서부터 두 가지 본연의 세계로 들어선다.마리안느가 완성한 초상화는 엘로이즈를 그리고 있지만 그녀를 위한 초상화가 아니다. 그 그림을 통해 신부감을 확인하고 감상할 밀라노에 있는 이름 모를 예비 신랑의 평가를 고려하고 있다. 18세기 후반 당대의 규칙과 관습에 따라 제작된 그림 속에서 엘로이즈는 “당신이 본 내가 이랬나요?”라며 ‘생기’와 존재감’이 없다고 말한다. 화가인 마리안느 조차도 자신의 시선 속에서 느꼈던 알 수 없는 감정을 감춘 채 대상을 일반화해서 작업을 완성했다. “나랑 이 초상화는 비슷하지 않아요. 당신을 닮지도 않아서 슬프네요”라는 엘로이즈의 평가 속에 함유된 의미는 감정의 교감과 진실을 말한다. 생기와 존재감이 없는 초상화 앞에서 “존재감이란 그저 진실되지 않은 순간들로 이루어지는 거”라는 마리안느의 대답에 엘로이즈는 “어떤 감정들은 아주 깊”다고 응수한다. 규칙과 관습에 얽매이지 않으며 진실되게 자신의 감정을 담은 작품일 때 비로소 온전한 작품이 탄생한다는 의미다.초상화의 얼굴을 뭉개버리고 떠나려는 마리안느에게 그동안 화가 앞에서 포즈 취하기를 거부했던 엘로이즈가 기꺼이 마리안느의 모델을 자처한다. 이 순간 화가는 ‘생기’와 ‘존재감’이 담긴 작품을 담아야한다는 작가정신의 각성이라는 첫 번째 본연의 세계로 들어선다.존재감을 위해 진실된 순간, 아주 깊은 곳에 감추어 두었던 ‘사랑’이라는 감정의 본연에 들어선다. 이제 일방적이었던 시선은 마주보는 시선으로 교차된다. 화가와 모델로 다시 마주한 두 사람은 사회적 관습과 위계질서 속에서 존재하는 것을 떠나 ‘협력자’이며, 연인으로 동등한 시선을 주고 받는다.영화의 중심에 남성은 없다. 모든 전개는 여성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아버지의 부재와 밀라노에 존재하는 정혼자와 임신을 하게 된 하녀 소피의 상대가 누구인지 조차도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주체적인 여성과 평등, 귀족과 화가, 하녀라는 신분까지 같은 높이의 시선과 동일한 공간 속에서 한시적이나마 평등하게 놓인다. 그리고 이들이 자유로우며 평등하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들은 주방이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화덕을 배경으로 수평으로 놓인 탁자 앞에서 세 사람은 자유롭고 평화로운 모습으로 자리잡는다.음악을 최대한 배제하고 바람과 파도 소리, 미세한 일상의 소리들로 채워 나간 영화는 딱 세 번 화면 속에 음악을 담는다. 절제된 음악 사용은 감정의 분기점마다 놀라운 효과를 보여준다. 그리고 음악이 흐르는 마지막 장면은 모든 복잡미묘한 감정을 담아 슬프며 장엄하게 폭발시킨다./(주)Engine42 대표 김규형

2021-11-22

상생의 고리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바다와 인접한 공원 등성이에 특이한 조형물이 등장했다. 멀리서 보면 야트막한 산 위의 무슨 롤러코스트 같기도 한데, 가까이서 보면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도록 계단으로 이뤄진 공중의 길 같은 철구조물이 지난 주 후반에 공개됐다. 시간과 공간의 마법에 걸리게 한다는 이른바 ‘Space Walk’가 포항시 환호공원 산마루에 은빛 위용을 드러낸 것이다. 포스코가 ‘환호공원 명소화’ 계획에 따라 3여년 전부터 다각적인 검토와 설계, 제작, 시공을 거쳐 지난 주에 완공하고 제막과 함께 시민들에게 오픈한 것이다.스페이스 워크라는 작품명은 마치 우주공간을 유영하는 듯한 이색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는 뜻에서 이름이 붙여졌다. ‘클라우드(Cloud·구름)’라는 애칭처럼 예술 위, 구름 위에서 마치 공간과 우주를 걷는 듯 신비로운 경험을 하며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체험형 조형물이다. 이러한 조형물은 포스코의 기획으로 독일의 세계적인 부부작가 하이케 무터와 울리히 겐츠가 디자인하고 포스코건설이 제작, 설치하여 포항시민에게 기부한 국내 최대 크기의 체험형 작품이다. 주 재료는 포스코에서 생산한 탄소강과 스테인리스강으로, 자연재해의 이슈인 태풍과 지진 대비를 위해 구조설계의 기준을 강화해서 조형물의 안정화와 이용자의 안전성을 확보했다고 한다.조형물이 시민들에게 개방된 ‘Space Walk 시민 Open Day’는 그야말로 축제 같은 분위기였다. 축하비행 에어쇼를 비롯하여 노래와 연주, 댄스 등의 공연이 펼쳐지는가 하면, 한 켠에서는 초청된 시민들에게 조형물을 배경으로 인생샷을 찍어 액자로 만들어주고, 용기와 희망을 담은 글귀를 붓글씨나 캘리그래피로 써서 나눠줬다. 또한 풍선아트로 갖가지 모양을 만들어 흥미로운 즐거움을 주기도 하고 따끈한 붕어빵을 구워 출출한 배를 달래주는 한편, 행사장 입구와 주차장 등지에서는 교통안내와 인원통제를 하며 시민들의 첫 조형물투어가 안전한 가운데 흥미롭고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배려했다.이러한 일련의 나눔활동은 포스코 포항제철소 내 7개 재능봉사단이 참여하여 특유의 재능과 기량을 다양하고 특색 있게 펼친 것이다. 포항의 색다른 랜드마크가 될 조형물을 기부하고 오픈하는 자리에 포스코 직원들이 시민들에게 다채로운 이벤트로 즐거움과 기쁨을 안겨준 것 같아 고무적인 일로 여겨진다. 더욱이 2년째 계속되는 코로나19의 위축 속에 이와 같은 조형물투어는 일상의 돌파구 같은 문화적인 단비(?)가 아닐까 싶다. 포항제철소는 현재 총 41개 재능봉사단을 운영하며 임직원들의 특기와 기술을 이용하여 필요로 하는 곳에 맞춤형 재능봉사를 실시하는 등 사회적 배려계층에 대한 베풂과 나눔, 상생협력을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있다.스페이스 워크를 천천히 걸으며 철로 그려진 우아한 트랙의 곡선처럼 포스코의 제반 사회공헌활동이 지역사회 곳곳에 부드럽게 스며드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착실하고 더불어 함께 걷는 기업시민의 발걸음이 지역과 회사를 연결하는 상생의 가교로 작용해 사회공익가치로 온기를 더해가고 생기를 불어넣는 나눔문화의 고리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2021-11-22

보이지 않는 개선의 중요성

엄주선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우리는 살면서 그냥 보이는 것으로 쉽게 사물을 판단하고 보이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람을 처음 만날 때도 그 사람의 옷차림이나 인상, 태도 등 보이는 모습만으로 본인의 경험에 비추어 판단하는 경향이 크며, 그 사람의 성장과정이나 인성 등 내면적인 면을 생각하고 파악하는 것에 소홀해질 수 있다. 우리가 눈(目)을 표현할 때 육안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인 심안, 혜안, 천안 등의 단어도 많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기업(企業)이라는 한자의 어원적인 의미는 ‘사람(人)이 일(業)로 머무른다(止)’는 뜻이다. 기업에 일하는 사람이 머무르기 위해서는 보이는 부분인 이익창출이 이어져 일하는 사람에게 그에 합당한 보수를 지불하고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돼야 하지만, 보이지 않는 부분인 일을 통해 개인의 성장과 발전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본다. 이 두가지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현장의 낭비를 발굴하고 제거하는 개선활동인 것이다. 낭비를 발굴하고 개선하는 직원의 능력이 보이지 않는 부분이며, 이를 통해 원가가 절감되어 이익이 창출되는 부분은 가시적인 성과라 할 수 있다.생산현장에는 고객이 주문하는 품종과 수량이 수시로 변동되므로 재료, 설비, 사람이 투입되고 대응하는 제조과정에서 불필요, 불균일, 불합리 등의 낭비요인이 따르게 된다. 이를테면 과잉생산·재고·운반·가공·동작·불량·대기 등에서 오는 낭비가 손실을 초래하고 원가를 잡아먹는 ‘7대 낭비’로 일컬어진다. 이 중 가장 나쁜 낭비는 ‘과잉생산’이며 고객이나 후공정이 필요로 하지 않는 시간에 제품을 미리 만들어 놓는 것을 말한다. 이로 인해 창고나 저장공간이 필요하게 되며 재고가 쌓이고 대기시간도 길어지게 된다. 또한 저장공간이 부족해져 또 다시 이동과 동작이 발생하며 재취급하는 과정에서 잘못하여 많은 사람이 공들여 만들어 놓은 제품이 재차 불량이 되는 낭비의 악순환이 되기도 한다. 물론 과잉생산을 포함하여 생산과정에서 유발되는 각각의 낭비는 별개적으로 수시 발생하기도 한다.필자가 수년 전 컨설팅한 내화물 생산공장에서는 과잉생산의 낭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집중했었다. 즉, 7개의 품목을 1주일간 1일씩 생산하여 창고에 대량으로 저장하여 출하량에 대응하던 공정을 제품별 준비교체 전담반을 신설하여 획기적으로 품명교체 시간을 줄이고, 일별 출하량에 맞춰 하루에 3~4품목씩 2일 패턴으로 주 3회 생산하도록 종류와 수량을 평준화하여 공정 내 저장공간과 재고를 50% 이상 현저하게 절감하여 낭비를 줄인 사례가 있다.이렇듯 현장의 보이지 않는 낭비를 구분하여 보이도록 하고 지속적으로 공정의 레이아웃과 생산능력을 개선해 나간다면, 불필요한 생산으로 인한 과잉생산의 낭비와 재공, 재고의 낭비가 대폭 줄어 전반적으로 회사의 이윤창출이 가능해진다. 거기에 직원들의 낭비 발굴과 개선하는 역량까지 향상돼 공간적으로는 일하는 직원과 회사가 좋아지고, 시간적으로는 지속발전가능한 영속기업이 될 것이다.

2021-11-22

스윙보터의 표심:공정과 실용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스윙보터(swing voter)’는 선거의 승패를 결정하는 ‘캐스팅보트(casting vote)’를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진영논리에 갇힌 꼴통진보나 꼴통보수와는 달리,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후보의 인품과 정책을 지속적으로 분석, 평가함으로써 합리적 선택을 하는 유권자들이다.내년 대선은 그 어느 때보다 스윙보터, 즉 부동층이 늘어나고 있어서 누구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여당의 이재명은 대장동게이트, 야당의 윤석열은 고발사주 의혹을 받고 있으며, 사생활 문제와 가족의 비리 등으로 지도자로서의 품격이 떨어지고 있다. 문화일보 보도(11월 2일)에 따르면 두 후보에 대한 비호감도가 똑같이 60%를 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부동층도 50%를 초과할 정도로 역대급이다.대선의 승패를 가르는 스윙보터는 누구인가? 그들은 이념적으로 볼 때 ‘중도층’이며, 연령별로는 ‘2030세대’가 그 중심에 있다. 중도층과 2030의 표심이 같을수록 더욱 강력한 캐스팅 보트가 된다. 좌우의 극단층은 자기 진영의 후보를 선택한 후에 그 정당성을 합리화하지만, 중도층은 후보의 인품과 정책을 비교분석한 후에 합리적으로 선택한다. 특히 이념에 구속되지 않는 2030세대는 진영의 경계를 넘나들며 언제든지 표심을 바꿀 수 있다. 빈 수레가 요란하듯이 생각 없는 극단층은 목소리가 커서 지지성향이 드러나지만, 침묵하는 부동층의 마음은 투표일까지 안개속이다. 정국을 냉정하게 주시하고 있는 이들이 바로 대통령을 결정하는 사람들이다.그렇다면 스윙보터들의 표심은 어디에 있는가? 이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공정’과 ‘실용’, 즉 ‘공정한 과정’과 ‘실용적 결과’에 있다. 정의는 진영논리에 갇힌 ‘선택적 정의’가 아니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정의’다. 이들이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이유는 ‘공정과 정의’를 선택적으로 적용함으로써 국민과의 약속을 배신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대장동게이트’이건 ‘고발사주의혹’이건 공정한 수사를 위해서는 특검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살아 있는 권력의 시녀가 된 검찰이나 공수처의 수사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한편 이들이 추구하는 ‘실용’은 특정 이념에 구속되지 않고 실질적 이익을 쫓는 정치행태를 말한다. 2030세대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입시비리나 부동산 폭등처럼 자신의 이해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슈에 대해서는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이슈들을 제대로 해결할 능력이 있다면 보수 또는 진보라는 정치이념은 중요하지 않다는 실용적 입장이다. 이들은 이미 지난 4·7 재보선의 승리를 통해서 실용적 투표가 갖는 위력을 확인한 바 있다.내년 대선은 ‘집토끼’보다 ‘산토끼’의 마음을 얻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경쟁구도이다. 때문에 스윙보터들, 즉 ‘2030세대와 중도층에 대한 확장성’ 여부가 선거의 승패를 가르게 될 것이다. 물론 승자는 이들이 추구하는 ‘공정’과 ‘실용’의 가치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메시지와 정책을 제시하는 후보다.

2021-11-22

안동문화관광단지 애물단지로 방치라니

경북 북부권 관광활성화를 위해 시작한 안동문화관광단지 조성사업이 13년째 답보상태다. 애물단지가 돼 가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 2000년 국책사업으로 확정되면서 안동시 성곡동 165만여㎡ 부지에 2025년까지 총사업비 5천689억원을 투입키로 한 이 사업은 아직까지 58% 정도 개발에 그치고 있다. 총 분양대상 면적 21만㎡ 중 절반도 안 되는 10만4천㎡가 분양됐으나 그나마 관광객이 없다는 이유로 민간개발은 거의 중단 상태다.안동시와 경북관광개발공사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이 사업은 경북 북부권 11개 시군의 중심 숙박휴양거점으로 조성하는 야심 찬 프로젝트다. 경주 보문관광단지를 모델로 개발키로 하고 주변에 골프장까지 조성했지만 민간사업자의 후속 개발이 이뤄지지 않아 개발된 곳보다 빈공터가 더 많다고 한다.2년 가까이 유행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관광객의 발길이 뜸해진 것도 개발 부진의 이유가 된다. 그러나 개발사업을 시작한 지 13년이 지났으나 여전히 절반이 넘는 곳이 빈공터로 방치되고 있다는 것은 개발사업에 허점이 많다고 볼 수밖에 없다.경북도의회가 행정사무감사에서 “혁신적 활성화 대책을 촉구”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경북도의회 김대일 의원의 지적처럼 사업 부진이 추진기관의 경험 부족에서 나온 것인지 사업추진 기관의 업무태만인지 정확한 원인을 따져봐야 한다.11월부터 위드코로나가 시행되면서 관광시장도 조금씩 회복국면에 들었다. 지금부터라도 획기적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다는 사명감으로 책임성 있게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 기획단계부터 철저한 준비가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 분석하고 사업 전반에 걸친 재검토도 해봐야 할 것이다.특히 이 사업을 진행하는 경북관광개발공사의 나태함은 없었는지도 살펴 책임이 있다면 책임소재도 따져야 한다. 국민의 세금이 더 이상 낭비되는 일은 없어야 하는 것이다.포스트 코로나시대를 맞아 경북도는 관광산업 진작에 나서고 있다. 북부권 휴양거점으로 조성할 안동문화관광단지 활성화는 지역관광산업 촉진 차원에서도 조속히 사업이 재개돼야 한다. 공기업이 10여년 전부터 추진한 프로젝트가 아직 방치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2021-11-22

종부세 폭탄론

종합부동산세(종부세)가 이중과세이며 위헌이라는 주장이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국토교통부가 국회에 제출한 전국 시도별, 주택유형별, 공시가격 구간별 주택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국의 주택 1천834만4천692가구 가운데 1가구 1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 과세 기준인 공시가격 11억 원을 초과하는 주택은 총 34만6천455가구로 전체 주택의 1.9%에 불과하다.지역별로는 서울이 1가구 1주택자 종합부동산세 과세 기준인 공시가격 11억원 초과 주택이 총 30만가구(전체 주택 291만6천535가구 중 10.3%)로 가장 많았다.경기가 3만4천919가구(전체 주택 445만 9천963가구 중 0.8%)로 뒤를 이었다. 부산은 전체 주택 125만8천384가구 가운데 0.5%를 차지하는 6천410가구, 대구가 전체 80만3천305가구 가운데 0.4%를 차지하는 3천201가구, 대전이 전체 주택 49만2천185가구 가운데 0.5%를 차지하는 702가구가 공시가격 11억 원을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문제는 국세청이 올해분 종부세 납부 고지서를 발송하기 시작하자마자, ‘종부세 폭탄’에 대한 아우성이 커지고 있는 것.올해부터 종부세율은 조정대상지역 내 2주택이나 3주택 이상 다주택자의 경우 기존 0.6∼3.2%에서 1.2∼6.0%로 2배 가까이 올랐다. 2주택 이하도 0.5∼2.7%에서 0.6∼3.0%로 상향됐다. 정부가 부담 경감을 강조한 1주택자 역시 세 부담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홍준표 국민의힘 의원도 “단일부동산에 대한 종부세 과세는 약탈이며, 이중과세이고 위헌”이라고 주장해 종부세 폭탄론에 힘을 보탰다.조세저항을 일으킨 종부세의 운명이 어떻게 결말지어질 지 궁금하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11-22

與野 선대위 전쟁…중도층 흡수가 승부의 열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대선 선대위 인사전쟁에 돌입했다. 이 후보는 선대위를 기동성 있는 조직으로 재구성하고, 젊고 참신한 인물을 대거 영입하겠다는 구상이다. ‘친문재인’ 그룹이 주도해 온 민주당을 ‘친이재명계’ 정당으로 변모시키겠다는 의지로 비쳐진다. 이 후보는 “압도적인 의석을 갖고 국민이 원하는 바를 신속하게 해치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되는 것도 없고 배가 부른 것 같다”며 선대위 재구성 배경을 언급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여당의 선대위 원점 재구성에 대응해 과거 민주당 출신 인사들로 선대위 ‘톱3’를 출범시켰다. 윤 후보는 지난 21일 “선대위 총괄위원장을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상임위원장은 김병준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이준석 당 대표가 맡기로 했다”고 밝혔다. 선대위와 별도 조직인 ‘새시대준비위원회’는 김한길 전 민주당 대표가 지휘한다. 대구·경북으로선 경북 고령출신인 김병준 위원장이 선대위 톱3에 포함됐기 때문에 체면을 지켰으며, 공동선대위원장으로 거론됐던 주호영 의원(대구수성갑)은 지역선대위원장으로 임명될 것으로 보인다.정치권에서는 윤 후보가 노련한 선거전문가인 김종인 전 위원장을 전면에 내세워 후보 중심의 야권 재편작업에 들어갔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올드보이’의 귀환이라는 비판도 들리지만, 윤 후보가 세 사람을 앞세워 중도로 외연을 확장하고 집권 후 진보진영까지 아우르는 정치적 기반조성을 한 것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윤 후보의 정치입문 시점을 고려하면 짧은 기간내에 ‘윤석열 중심 국민의힘’을 만든 것이다. 앞으로 선대위 톱3가 어떻게 호흡을 맞추느냐에 따라 윤 후보의 정치 역량이 평가된다. 윤 후보는 “세 분이 서로 가깝다. 얼마든지 소통하는 관계”라고 말했지만, 톱3가 각자 자기목소리를 낼 경우 선대위가 위험에 직면할 수도 있다.이 후보나 윤 후보 모두 중도층 공략이 최대현안이다. 현재 두 후보 모두 대선승부를 가를 중도층 지지율이 낮다. 진보와 보수 진영논리에 갇힌 두 후보로선 절박한 상황이다. 아침, 저녁이 다른 게 민심이라는 말이 있듯이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나라를 선진국반열에 올릴 정책을 많이 개발해 중도층을 끌어안는 후보가 선거에서 승리할 것이다.

2021-11-22

포항과 세계 최고 철강사

김유복전 포항뿌리회 회장 지난 8일과 9일 이틀 동안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제36차 글로벌 철강전략회의(Steel Sucess Strategies)에서 글로벌 철강전문분석기관인 월드 스틸 다이나믹스(WSD)가 발표한 글로벌 철강사 경쟁력 평가 결과, 대한민국 포항에 본사를 둔 포스코가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로 뽑혔다는 내용이 국내 언론사의 주요 기사로 보도됐다. 12년 연속으로 세계 1위 자리에 올랐다는 설명도 덧붙였다.보도에 의하면 포스코는 고부가가치제품, 가공비용, 기술혁신, 인적역량, 신성장사업, 투자환경, 국가위험요소 등 7개 항목에서 2년 연속 만점을 받았다. 특히 올해는 2018년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 취임 이래 강조해온 미래성장동력을 위한 선제적 시재확보, 부채비율 감소 활동 등을 통한 재무건전성 항목 또한 만점을 기록하며 8.54점(10점 만점)으로 종합 1위를 했다.1999년 설립된 WSD는 매년 전 세계 주요 35개 철강사들을 대상으로 23개 항목을 평가하고 이를 종합한 경쟁력 순위를 발표해 오고 있다. 이 순위는 글로벌 주요 철강사들의 경영 실적과 향후 발전가능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참고지표가 된다. WSD는 올해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를 선정하며 포스코의 실적 회복, 친환경 소재 기업으로 변신, 세계 철강업계 탄소중립 추진 리더십 등을 높게 평가했다고 설명했다.포스코는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글로벌 철강 수요산업 침체로 유례없는 경영위기를 겪었으나 지난 3분기 연결기준 매출 20조 6천억 원, 영업이익 3조 1천억 원을 기록하며 1968년 창사 이후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포스코는 올해 친환경 철강 제품 판매 강화, 이차전지소재 및 수소사업 확대 등 친환경 소재 전문 메이커로 사업구조를 전환해 나가고 있다. 지난 10월 철강업계 최초로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논의하는 수소환원제철 국제포럼을 성공적으로 주최하는 등 세계 철강업계의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협력 방안을 주도해 나가고 있는 점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이렇듯 포스코의 괄목할 만한 성장 기저(基底)에는 CEO를 비롯한 전임직원들의 열정적인 헌신과 피땀 흘린 노력의 결과가 자리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임직원들의 헌신, 노력뿐만 아니라 제철보국(製鐵報國)의 창업정신과 함께 53년의 긴 세월동안 굳건한 믿음으로 상생해 온 지역사회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포스코가 세계최고 철강사로 자리매김하는 동안 우리 지역 또한 지속적으로 성장했음은 사실이다. 조국근대화를 이룩하는 산업화의 일등 공신인 포스코가 철강산업을 일구어 온 역사와 함께 포항의 역사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해 50만 대도시 면모를 갖춰 온 것은 틀림이 없다. 12년 연속 세계 최고 철강사로 선정된 포스코의 영광에 박수를 보내며 반세기의 역사를 넘어 100년 기업으로 지속 발전하기를 포항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아울러 세계최고 철강사를 둔 포항도 그에 못지않은 도시로 거듭나기를 소망해 본다.지난 18일 포항 환호공원에 333m 하늘길을 걷는 ‘스페이스 워크(Space Walk)‘가 준공식을 가졌다. 2019년 포스코 창립 50주년 기념사업으로 포스코가 117억 원을 기부해 만들어진 국내 최초. 최대 체험형 조형물이 철강도시 포항의 랜드마크로 멋진 경관을 자랑하며 시민들에게 공개됐다.‘클라우드(Cloud, 구름)’라는 작품명으로 세계적 작가의 설계로 건립된 ‘스페이스 워크’가 포항과 포스코 상생의 상징으로 길이 남을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 같아 고맙다. 포항이 세계 최고 철강사 포스코와 함께 최고 도시가 되고자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이 곳곳에 느껴지고 성숙한 시민의식이 그 어느 때보다 살아나 코로나19로 어려워진 지역경제가 어젯밤 영일만을 훤히 밝힌 포항국제불빛축제의 불꽃처럼 찬연히 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포스코가 기업시민의 기치를 높이 내걸고 ‘With Posco’, ‘With Pohang’으로 함께하며 세계 최고 철강사의 영예를 포항시민과 공유해 포항이 더욱 살기 좋고 행복한 도시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 줬으면 좋겠다.한편으로 세계 최고 철강사를 가진 포항은 철강산업의 굳건한 바탕위에 수소, 이차전지, 바이오, 의료산업, AI 등 첨단산업을 융합하여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역량을 결집해야할 때라고 생각한다. 또한 연구중심 의과대학 설립도 경북도와 포스텍의 전폭적인 지원을 이끌어 적극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이렇듯 포항과 포스코가 동반 성장하기 위한 노력이 지속되고 시민들과 하나 되는 협력정신이 세계 최고 철강사와 최고 도시가 가져야 할 덕목 중의 하나일 것이다.포항 발전이 포스코를 더욱 성장시킬 수 있는 굳건한 발판이 됐음을 공감하고 ‘포스코 사랑, 포항 사랑’의 아름다운 공생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한 번 포스코의 세계 최고 철강사 선정을 축하드린다.

2021-11-21

구미 ‘비밀의 정원’을 깨우다

장세용 구미시장 고즈넉한 가을의 끝자락, 수북이 쌓인 낙엽 위를 걷고 싶은 계절이다. 언제든 찾아갈 자연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코로나19 팬데믹 위기는 우리에게 지속가능한 도시에 대한 보다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현대사회에서 녹지공간은 시민의 삶과 도시의 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특히 코로나19 확산 이후 교통이나 치안보다 공세권과 숲세권(공원과 녹지 주변)을 주거 공간 선택에 있어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최첨단 산업도시라 자부하는 구미시 역시 신성장산업 육성 못지않게 녹지공간 조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 비단 구미뿐 아니라 현재 대다수의 도시들이 도시공간구조를 재편하고 도시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 중이다. 지속가능한 친환경 녹색생태 도시로의 전환 말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질병, 기후, 경제 위기 등 도시와 인류가 직면한 시대적 요구와 무관치 않다.최근 구미시는 산림청과 한국산림복지진흥원이 실시한 녹색자금 지원 ‘치유의 숲’ 전국 공모 사업에 최종 선정되면서 선산 산림 휴양타운 조성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됐다. 320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되는 제법 큰 산림 프로젝트다.이번 사업은 무엇보다 지방정원 조성이 핵심이다. 선산읍 노상리 일원 30ha 부지에 들어설 물소리정원, 시민참여 정원, 빛의정원 등의 6개 테마 정원은 우리 구미의 특성을 반영한 새로운 형태의 숲속 지방정원으로 꾸며질 예정이다. 그동안 사업의 예산 확보를 위해 산림청과 경북도 관련 부서를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모른다.한때 우리는 정원을 집안에 있는 뜰이나 꽃밭 정도로 인식했지만, 2013년 순천만 국제정원 박람회 개최 이후 정원의 위상은 현저히 달라졌다. 정원법이 생기고 관련 정책들이 만들어지는가 하면, 국내 등록 정원도 늘어나 현재 순천만 국가정원과 태화강 국가정원을 비롯한 지방정원 2곳 등 전국에 등록된 정원이 총 44곳이다. 조성 중인 정원도 20여 군데가 넘는다니 정원에 대한 관심과 성장은 가히 폭발적이다. 정원이 개인의 영역에서 공공의 영역으로 진화하는 중이다.구미는 정원도시를 조성하기 위한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다. 산업이 발달한 첨단도시지만 구미의 이면에는 천혜의 자연이 있기 때문이다. 이 자원으로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그 해답을 찾아 정원도시를 향한 첫발을 내디뎠다.현재 구미시는 2007년 사용이 종료된 구포매립장 상부 버려진 공간을 활용해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차별화된 테마정원을 조성하고 있다. 주민참여형 치유정원과 숲을 품은 자연친화 에코정원, 감각적 놀이 활동이 가능한 감성정원은 도시민들에게 생태적 감수성을 일깨우고 지역공동체에 생기를 불어넣어 줄 것이다.다른 한 곳은 천연기념물인 흑두루미와 재두루미가 찾아오는 해평습지다. 비옥한 농경지와 배후습지가 발달돼 다양한 철새들이 찾아오는 해평습지는 경북을 대표하는 생태습지로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필자는 해평습지가 순천만 국가정원이나 태화강 국가정원에 버금가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때문에 지방정원조성을 시작으로 해평습지를 국가정원으로 만들기 위한 큰 그림을 그려나가려 한다. 낙동강 인근에 분포되어 있는 해평습지 일대를 복원해 수변생태공간과 두루미 서식지, 시민들을 위한 생태체험 공간 등 구미의 자연과 문화가 살아 있는 거점 정원을 조성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마침 정부가 추진하는 두 축인 디지털뉴딜과 그린뉴딜의 맥락으로도 정원조성의 경제·사회적 가치는 실로 엄청나다. 구미의 정원조성사업은 이제 막 시작 단계다. 행정의 노력만으로 어려운 일이다. 우리 시민과 경북도민의 협조와 참여가 필요하다. 이제 숨어있는 구미 비밀의 정원을 깨울 때다.

2021-11-21

왕릉 가는 길

늘 지나쳐 가기만 했었다. 경주 산림연구원에서 통일전으로 달려가다 보면 헌강왕릉이란 표지판이 휙 다가왔다 사라진다. 산기슭으로 오르면 능이 있을 거라고 알려주는데 매번 모른 척 지나왔었다. 오늘은 사람 없는 조용한 곳으로 산책가자 하니, 그곳이 떠올랐다.역사 선생이란 이름으로 평생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린 남편에게 헌강왕은 신라 몇 대 왕이냐 물었다. 검색해 보아야 안다고 하니, 역사무지랭이인 나와 다를 바 없네 하고 놀리니,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중요한 업적도 없는 왕까지 어찌 아느냐고 받아친다. 그러고 보니 나 또한 신라의 왕이 몇 명이었는지 배운 기억이 없다. 조선시대는 ‘태정태세문단속 예성연중집단속’ 이러면서 운율까지 넣어 외웠지만, 삼국시대는 먼 나라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그나마 경주 가까이 살아서 그 유명한 선덕여왕이 27대 왕으로 첨성대를 만들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삼국 통일에 힘쓴 이들을 모신 통일전에 차를 세웠다. 지난주 노랗던 은행잎 가로수 길은 겨우살이 준비를 끝낸 듯 빈 가지만으로 손님을 맞는다. 주차장 가에 ‘동남산 가는 길’이라는 안내판이 섰다. 교촌마을에서 시작해 서출지까지 걷는 코스인데, 헌강왕릉을 지나가도록 길을 표시해 두었다.헌강왕릉을 향해 가다 보니, ‘정강왕릉’이란 표지판이 먼저 우리를 반겼다. 표지판의 손짓을 따라 올려다보니 살짝 오르막길이었다. 소나무들이 도열한 병사들처럼 능까지 이어져 시원한 그늘을 만들었다. 걷기에 좋은 산책로였다. 소나무 사이로 아침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오는 곳에 철모르는 진달래 두 송이가 폈다. 늦가을 숲에 봄처녀 진달래가 길을 잃었나 싶어 가까이 가서 눈맞춤을 해줬다. 갈바람에도 떨지 말고 잘 견디라고 속삭여주었다.정강왕릉은 추석에도 벌초를 받지 못한 듯 억새를 머리에 가득 이고 있었다. 둘레에 복원하다 남은 석재들이 누워 제자리를 찾아주길 기다린다. 둘레솔 덕분에 그래도 능이라는 모습을 잃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었다.형의 능으로 가려면 왔던 길을 내려가야 하나 싶었는데, 헌강왕릉으로 가는 길이 옆으로 나 있다. 가을 햇살이 따가운데 소나무 숲으로 이어진 길을 가니 참 좋다. 누런 솔잎이 떨어져 걷는 이에게 푹신한 발걸음을 안겨준다. 소나무 사이로 늦가을 들을 지나오며 서늘해진 바람이 스친다. 마른 잎들이 바스락 몸을 떤다. 길 곳곳에 망개 열매가 빨갛게 익었고, 건너기 상거러운 골짜기에는 나무다리도 놓아 300m 거리에 형이자 선왕인 헌강왕릉까지 숲길이 이어졌다. 숨이 차기도 전에 봉긋한 능이 나타났다. 동생이 누운 자리에 비해 사람의 손길이 더 갔는지 봉분이 멀끔하다. 양식이나 크기는 두 능이 거의 똑같지만 정강왕릉에 경주시의 관심이 덜 미친 것 같다.삼국사기에서는 보리사 동남쪽에 장사 지냈다고 하는데 현재 경주 남산동에 있는 이 능을 현대 학자들의 연구 결과 실제 정강왕의 능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 무덤의 양식은 9세기 말엽에 재위한 정강왕 때보다 좀 더 이전 시기의 양식이기 때문에 제47대 헌안왕의 무덤이 아닐까 했다. 그러면 정강왕이 묻힌 무덤은 어디일까? 진덕여왕릉으로 알려진 고분 뒤에 있는 대형 봉토분을 왕릉으로 본다면 헌강왕과 정강왕의 능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다른 곳이라 해도 형제의 능은 지금처럼 꼭 붙어 있다. 우리의 무관심을 형제애로 이겨내고 있다는 이야기다. 동남산 가는 길로 길을 잡았다면 숲으로 꼭 오르길 바란다. 많이도 말고 5분이면 능에 다다른다. 일타쌍피, 한꺼번에 두 개의 능을 만날 수 있으니까. 날이 좋은 날은 소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주어 좋고, 바람이 많은 날은 숲이 온화하게 감싸주어서 좋다. 여러 날 중에 가장 좋은 날은 사진작가들이 새벽녘에 찾는다는, 비 온 다음 날 아침이다. 안개가 소나무 사이로 거닐다 능 앞에서 하늘로 오르는 멋진 장면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주말에 비가 온다는 소식이다. 안개에 둘러싸인 왕릉을 볼 좋은 기회이다./김순희(수필가)

2021-11-21

포항 과메기

과메기는 11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가 제철이다. 이때가 지나 과메기를 맛보려면 또 한해를 기다려야 한다. 제철 음식이 좋은 것은 싱싱하고 맛있고 영양가도 높기 때문이다.포항은 과메기 집산지다. 전국 과메기 생산의 95%가 이곳에서 이뤄진다. 경북 동해안 일대에서 생산되는 과메기가 전국으로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지금은 어디를 가나 겨울철 밥상이나 식당에 과메기가 등장할 만큼 대중화 단계에 들어섰으니 격세지감이 있다. 주생산지인 포항도 과메기 덕분에 과메기 도시로 유명해졌다. 과메기가 음식으로 고안된 것은 내륙지방 안동에서 간고등어가 만들어진 것과 비슷하다. 냉장시설이 없던 시절에 안동에서 생선 맛을 보려면 소금으로 간을 쳐 잘 보관해야 가능하다. 안동의 고등어 간잡이는 생선을 소금으로 절여 숙성시키는 기술자란 뜻이다. 생선을 주로 먹는 나라마다 간잡이가 있다.과메기도 겨울철에 많이 잡히는 청어나 꽁치를 오래 두고 먹고자 고안한 방법이다. 꽁치를 그늘에 늘려두고 바닷바람에 얼렸다 녹혔다 하며 말린 후 먹는 요리다. 일본 내륙지방 교토에서도 청어의 피와 내장을 제거하고 훈제와 말리는 과정을 거쳐 만든 ‘미가키 니싱’이란 과메기와 비슷한 음식이 있다. 과메기는 말리는 과정에서 맛이 담백해지고 영양가도 높아진다.포항 구룡포과메기 서울홍보 및 체험행사가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에서 열린다. 올해는 ‘과메기 도시락에 날개를 달다’를 주제로 했다. 코로나로 등장한 배달트렌드에 맞춰 언제 어디든 과메기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콘셉트로 삼았다. 지난해는 코로나로 인해 판매가 잠시 주춤했다. 올겨울은 위드 코로나와 함께 포항 과메기가 다시 대박났으면 좋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1-11-21

지방소멸특별법 통과가 균형발전 시발점 되길

지방소멸을 막고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지방소멸 대응특별법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 등 여야 국회의원 89명이 공동발의한 이 법안은 수도권의 인구집중과 심각한 저출산 및 고령화로 인한 인구감소 지역의 급격한 증가 등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따라서 특별법이 통과되면 지방소멸 특별지역에는 각종 세제 혜택과 재정지원이 가능해진다. 특히 대통령 소속의 민관합동 지방소멸대응 국가특별위원회가 설치 운영돼 지방소멸에 대한 국가 차원의 전략이 수립되고, 지방소멸에 대해 보다 효과적 대응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지방소멸 특별법 제정은 수도권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오래전부터 학수고대해 온 법이다. 소멸위기에 빠진 지방을 구할 법적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만시지탄의 감은 있지만 여야의원이 공동 발의함으로써 본회의 통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특히 영호남 8개 시도지사가 이미 수차례 이 문제 해결을 정부에 촉구한 바 있어 지방소멸과 국토균형발전의 문제를 법률적 근거를 갖고 실행할 수 있는 이 법안의 국회 통과에 벌써 지역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우리나라는 합계출산률이 0.84로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0명대다. 2020년 국내 출생아 수는 27만여명으로 사상 처음으로 20만명대로 떨어졌다. 부동산가격 폭등과 높은 청년실업률 등으로 젊은층 사이에는 출산 기피현상도 확산되고 있다. 감사원이 밝힌 자료에 의하면 지금 추세라면 2017년 5천136만명이던 국내 총인구는 100년 후는 1천510만명 수준으로 준다. 인구감소로 전국의 229개 시군 중 105개(45.9%)가 인구소멸위기 지역으로 분류됐으며 경북에만 16개 시군이 이에 해당된다. 인구감소 문제는 지방소멸뿐 아니라 국가의 존립을 흔들 심각한 문제다. 그동안 정부가 추진한 저출산, 고령화, 지방분권 정책 등은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하지 못하고 단편적 대응에 그쳐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번 법안이 통과되면 정부와 정치권은 지방소멸과 국토균형발전의 문제가 실효적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특별법 제정을 계기로 위기의 지방이 살아나고 전국민이 동등하게 행복한 삶을 누리는 획기적 전기가 되었으면 한다.

2021-11-21

在중국 울릉군향우회의 독도사랑 돋보인다

중국 상해와 무석, 소주 3개 한국학교 초·중·고교가 지난 16~17일 양일간 독도의 날(10월 25일)을 기념해 실시한 작품(백일장, 해외홍보 포스터캐릭터) 공모전 시상식을 각 학교에서 개최해 주목을 받았다. 3년전인 2018년부터 시작된 공모전은 중국에 있는 울릉향우회가 주관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에는 아름다운 동해가 있습니다. 동해에는 아름다운 울릉도가 있습니다. 울릉도에는 아름다운 독도가 있습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통해 학생들에게 울릉군 독도가 우리 땅임을 각인시키고 있다. 울릉군 향우회 장창관 회장은 “여러 가지 여건상 해외에서 독도사랑 공모전을 열기는 쉽지 않다.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지만, 어린 학생들이 직접 우리영토인 독도를 홍보해 보는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공모전 입상자 중 대상은 경상북도지사상, 최우수상은 울릉군수상, 우수상은 민주평통 상하이협의회장상, 장려상은 독도박물관장상, 입선작은 대한민국독도협회 중국총연합회상이 수여됐다고 한다.한국과 일본은 최근 독도 문제를 놓고 어느 때보다 냉각된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17일에는 한국과 미국, 일본의 외교 차관들이 미국에서 진행하려던 공동기자회견이 김창룡 경찰청장의 독도방문을 문제 삼은 일본의 불참 통보로 미국 측 대표만 홀로 회견하는 일이 발생했다. 경찰청장이 독도경비대를 격려하기 위해 독도를 방문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경찰청장의 임무다.청와대는 지난 18일 한·미·일 외교차관 협의회 뒤 예정된 3국 공동기자회견이 한·일 양국의 독도 문제 충돌로 무산된 것과 관련해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의 영토라는 점을 다시 강조한다”고 밝혔다. 한·일 양국이 독도문제로 감정이 격화돼 있는 상황속에서도 재중국 울릉군 향우회가 ‘독도는 대한민국의 영토’라는 것을 교포학생들에게 꾸준히 각인시켜주는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도 크고, 감동적이다. 정부도 밝혔듯이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명백하게 우리 고유의 영토다. 중국에 있는 우리 교포학생을 비롯해 우리 조상이 혼과 얼을 바쳐 지켜 온 독도를 영원히 대한민국 영토로 지킬 수 있도록 국민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2021-11-21

유력 대선후보들의 ‘열린귀’ 아쉽다

심충택 논설위원 신라 제48대 경문왕 때 경주 도림사 대나무 숲속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들렸다는 삼국유사 설화는 정치권력의 ‘막힌 언로(言路)’를 풍자한 글이다. 현 정권의 메인스트림인 586세대도 대학시절 언론의 자유를 목말라했다. 당시 운동권 학생들에게 거의 유일했던 의사표현의 도구는 신문방송이 아니라 대자보였다. 그러면 그들이 180석 국회의석을 통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장악한 현 정부에서는 언론의 자유가 열려 있는가.지난해 한 대학생이 대학 구내에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였다는 이유로 법원이 유죄(벌금 50만원) 판결을 내린 것은 현 정권의 언론관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당시 법조계에서는 “정부 비판 대자보를 붙인 것에 무단침입 혐의를 씌워 기소를 하고, 법원이 독재 정권에도 없었던 판단을 내렸다”는 비판이 나왔다.더불어민주당이 또다시 언론장악을 위한 언론중재법 개정 카드를 꺼내들었다. 연말까지 가동하는 국회 언론·미디어제도개선 특위에서 언론에 대한 5배 징벌적 손해배상을 골자로 하는 언론중재법을 비롯해 신문법, 방송법 등 언론 관련 법안을 패키지로 논의한다고 한다. 정상적인 언론사의 취재행위를 법으로 차단하고 대자보시대를 열자는 것과 다름없이 생각된다. 문제는 차기 유력 대통령후보들의 언론관도 현 정치권력과 다름없다는 점이다.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최근 자신에 대한 언론보도와 관련 “우리가 언론사가 돼야 한다. 저들의 잘못을 우리의 카톡, 텔레방 댓글로 커뮤니티에 열심히 써서 언론이 묵살하는 진실을 알리자”고 했다. 이 후보는 지난 14일 경남 거창군청 앞에서도 지지자들에게“기울어진 운동장, 나쁜 언론 환경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즉흥연설을 했다. 이 후보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한창 논의 중일 때 이 법안에 대해 “최대 5배 징벌적 손해배상은 약하다. 언론사를 망하게 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도 언로가 막혀 소통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변의 충고를 듣는 것을 꺼려해 중진급 국회의원들도 그의 방을 찾는 것을 어려워한다는 소문이 나오고 있다. 윤 후보가 기자들과의 접촉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소리는 오래전부터 나왔다. 언론 인터뷰 등을 최소화하고 기자들이 캠프사무실에 들락날락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대선 경선기간 동안 그의 캠프는 ‘서초동 캠프’라고 불렸다. 캠프가 마치 검찰청처럼 폐쇄적이고 관료화돼 있다는 의미다.유력 대통령 후보 모두 우호적인 보도를 하는 언론은 가까이하고, 비판언론은 멀리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언론의 근본적 기능이 정치권력에 대한 감시자이자 비판자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의 비판을 감당하는 것은 정치인의 숙명이다. 언론은 권력자들의 홍보도구가 아니다. 이재명·윤석열 후보 모두에게 언론에 대한 거부감이나 적대감을 버리고 언론의 견제 비판 기능을 즐길 줄 아는 철학을 가지길 권한다. 권력자가 비판의 소리를 포용하는 역량이 없으면 부패할 수밖에 없고, 역사적으로도 뒤끝이 좋지 않았다.

2021-11-21

선비가문의 전통, 양동마을

윤영대수필가 경주 양동마을은 500년 전통을 가진 역사 마을로 201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설창산을 업고 넓은 안강 들판의 정기를 안으며 기와집과 초가집 150여 채가 하늘의 별처럼 어울려있는 성라고택촌(星羅古宅村)은 경주 손씨와 여주 이씨를 중심이 되어 처가입향으로 집성촌을 이룬 씨족 마을이며 우재 손중돈(愚齋 孫仲墩)과 회재 이언적(晦齋 李彦迪) 등 많은 유학자를 배출하였다.먼저 이향정(二香亭)에 갔으나 안뜰의 향나무를 보지 못하고 내려와 마을체험관에서 여러 가지 전통문화 체험을 하고 나온 학생들과 섞여서 이 마을에서 가장 큰 정자인 심수정(心水亭)으로 올라갔다. 농재 이언괄(聾齋 李彦适)을 추모하기 위해 지었고 ‘마음을 고요한 물 같이 가져라’는 뜻이다. 우람한 느티나무 숲 정자에서 바라보는 마을 정경 또한 일품이다. 근처 강학당을 보고 큰길을 따라 거림(巨林)까지 올라가서 안골로 들어갔다.큰우물에서 두레박도 올려 보고 능선 바로 아래 지어진 근암고택과 상춘헌, 사호당 등 이씨 집안 고택을 살펴보았다. 전통적 남녀유별 생활상이 엿보이고 사랑채와 화단이 멋있게 배치된 뜰을 기억하며 내려와서 깨끗한 마을 길을 걷는 마음은 평온하다. 서백당(書百堂)이 새겨진 큰 바위 옆 흙담 길을 오르면 경주 손씨의 대종가로 이 마을 입향조인 양민공 손소(襄敏公 孫昭)가 지었다는 송첨종택(松7C37宗宅)이 있다. 대학자 손중돈과 이언적이 태어난 명당 터라기에 사랑채 쪽으로 들어가니 밑둥치부터 세 가지로 자라서 혼자 숲을 이룬 500년 된 향나무가 풍성한 품을 내어준다. 서백당 누마루에서 사진을 찍고 ‘참을 인(忍)’자 백번 쓰며 인내를 기른 선비의 가르침을 되새겨본다. 고택 이름들은 옛날 살았던 주인의 호를 땄단다.옆 언덕의 낙선당을 들렀다가 앞쪽 산길을 올라가니 안계 댐 공사로 이곳까지 옮겨온 경산서당(景山書堂)이 대문을 열어 반긴다. 조용한 안뜰로 들어가면 높은 기단 위 강단의 마루에 걸린 현판들의 가르침이 훌륭하다.안골 언덕에 올라 성주봉을 보면 고즈넉하고 멋스런 기와집 26채를 품은 마을은 아직도 후손들이 살고 있는 ‘정주형 문화유산’이다. 물봉골 대성헌을 보고 양동마을의 대표적 저택인 보물 제411호 무첨당(無5FDD堂)에 갔다. 깨끗하고 커다란 사랑채 마루에 걸린 많은 현판 중에 ‘좌해금서(左海琴書)’란 특이한 글씨체는 ‘영남의 대표 가문’이라는 대원군의 죽필(竹筆)로 쓴 글이다.국화꽃이 고운 큰길 개울가 연못에는 선비들의 마음처럼 수련이 자라고 있다. 보물 제412호 향단(香壇)길은 한양으로 올라간 형을 대신해서 동생 이언괄이 노모를 모셨다는 곳, 독특한 화려함이 돋보이는 고택이다. 마지막으로 앞 언덕에 있는 보물 제442호 관가정(觀稼亭)으로 갔다. 누마루가 멋있는 청백리 손중돈의 간결한 살림집이다. 향나무들이 허리 굽혀 넘보는 담장 밖으로 나와 평화로와 보이는 마을을 나서면 안강 들판을 씻어온 형산강둑엔 하얀 갈대가 하늘대고 있다.

2021-11-21

기억과 망각의 싸움

조현태​​​​​​​수필가 퇴근하여 집에 도착하자 대문 우편함에 눈길이 갔다. 자질구레한 자동납부 통지서와 얇은 책 한 권이 꽂혀있었다. 이미 납부된 요금은 이메일로 확인한 내용이었다. 따로 영수 통지서를 보내지 않아도 되는데 매번 우편으로 발송되니 본척만척하고 휴지통에 던졌다. 이런 통지서를 모두 생략한다면 엄청난 종이와 재원이 절약될 텐데. 책만 가지고 들어와 침대에 벌렁 드러누워 뒤적거렸다.두어 시간 지났을 때, 전화할 일이 있어 휴대폰을 찾으니 없었다. 아차! 자동차 거치대에 두고 왔구나. 그새 부재중 착신이 네 개가 떴다. 차례대로 전화를 했더니 하나같이 전화도 받지 않고 뭐가 그리 바쁘냐고 타박이었다. 여차저차 하였다고 설명하자 정신을 어디다 두고 그러느냐는 핀잔까지 했다. 근래에 깜빡증이 점점 늘어난다.살다보면 이러한 깜빡증이 아니라 영원히 잊어버렸으면 더 좋을 일도 있다. 하지만 그런 기억은 반세기가 지나도 또렷이 남아있으니 오히려 애석하다. 특히 가슴깊이 새겨졌던 아리고 쓰린 생채기에 대한 기억은 왜 잊어버릴 수 없을까. 어쩌면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지워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애꾸눈이라고 놀림 받던 기억, 삼층 옥상에서 추락하여 죽지 않고 발목만 박살났던 사건, 애인 빼앗기고 사기 당해도 대거리 한 번 못하고 풀이 죽어 술만 퍼마시던 아픔…. 차라리 야생동물처럼 몇 초 만에 잊어버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더듬어보면 뼈아픈 추억이 쉽사리 되살아나는 감정은 그 당시에 새겨진 상처가 아직 존재하기 때문이다.불행이 싫어서 얼른 잊고 싶은 반면 행복은 좋아서 오래 기억하고 싶을까. 그러면 행복도 사라지지 않는 상처만큼 평생 동안 잊지 못할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좋았던 행복은 상처만큼 오래 기억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사람은 행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노력하는 만큼 행복이 보장된다면 어떨까. 아마도 아팠던 것만큼 오래 간직하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좀 더 행복하고픈 욕심이 작용하니까. 그래서 더욱 노력해야 할 터이다. 다시 말하자면 행복은 항상 미완성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욕심’을 빼면 ‘미완성’도 없어지는 계산이 된다. 그렇다면 빨리 잊을수록 좋을 것 같은 아픔은 왜 미완성이 없을까. 당연히 더 이상 아프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완전한 행복이 되려면 더 이상 행복하려하지 않아야 하리라.휴대폰을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버리는 사소한 일이든, 생명을 잃을 만큼 엄청난 사건이든 망각했다는 것은 같다. 하찮은 일은 용서되기 때문에 또 잊어버려도 되고, 대단한 일은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니다. 좋았던 것은 기억할수록 좋고, 나빴던 일은 잊을수록 좋지 않은가.기억과 망각이 맞서 싸운다면 어떨까. 싸워서 이긴 자의 쾌감보다 패배한 자의 처절함이 훨씬 더 진할 터이고, 패배는 쉬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싸움에서 이긴다는 보장이 없을 바에는 질 것을 염려해야 할 터이다. 여차하면 시비나 걸고 상대를 깔아뭉개야 내가 살아남는다는 삶의 방식이 너무 식상하다. 기억과 망각이 손잡고 미완성에 도전하는, 그래서 끝없이 노력하고 삶을 경영하면 좋겠다.

2021-11-21

‘지역대표성’ 무시하는 선거구획정 개선을

여야가 최근 국회 정치개혁특위(정개특위) 구성에 합의하면서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문제가 주요의제로 상정될 전망이다. 그동안 농어촌 지역 기초자치단체의 경우 인구 감소와 행정구역 재편 등으로 총선 때마다 선거구가 조정돼 지역대표성 문제가 현안으로 제기됐었다. 경북도 내 대부분 군지역이 마찬가지지만, 예천군을 예로 들면 2012년 19대 총선때부터 21대 총선(2020년)때까지 매번 선거구가 조정됐다. 19대에는 문경·예천 선거구, 20대에는 영주·문경·예천 선거구, 21대에는 안동·예천 선거구에 속했다. 이 때문에 선거 때마다 예천군민들 사이에서는 ‘정치적 소외감’에 대한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예천군은 오는 2024년 치러지는 22대 총선에서도 군위군의 대구편입이 예고돼 있어 또다시 선거구가 조정될 것으로 점쳐진다. 군위군이 대구시로 편입되면 현재의 군위·의성·청송·영덕 선거구는 인구가 줄어들어 조정이 불가피하다. 인구 하한선 기준을 맞추기 위해 인접 자치단체의 선거구를 편입할 수밖에 없고 그 대상으로 예천군이 지목되고 있다. 총선이든, 지방선거든, 농어촌 지역 선거구의 경우 인구하한선과 함께 선거구 면적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은 국회에서도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국회입법조사처에서는 지난 2012년 제19대 총선을 앞두고 선거구획정의 기본방향과 관련해 인구수가 적은 농어촌 및 산촌지역은 인구수만을 기준으로 하게 되면 지역대표성이 선거구획정에 반영되지 못한다는 보고서를 냈다. 특히, 도시로의 인구유입과 지방의 인구감소가 가속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인구수만을 편향되게 적용한다면 농촌지역의 선거구는 도시지역에 비해 지나치게 확대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미국의 하원 선거구획정 과정을 보면, 대부분 주에서 인구수 외에도 선거구의 지리적 인접성, 지역이익의 대표성 등을 일반적인 획정원칙으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농어촌지역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지역대표성 훼손 문제와 투표가치의 평등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거구획정 개선과 관련한 입법안을 여러차례 국회에 제출했지만 이 의안들이 정개특위에서 한번도 심사받지 못한 채 폐기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에 가동되는 21대 국회 정개특위에서는 선거구 획정 개선문제가 주요의제에 포함되길 기대한다.

2021-11-18

코로나 환자 폭증세, 대구·경북 선제 대응 필요해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이틀 연속 하루 3천명을 넘었다. 11월부터 시작한 일상회복을 위한 위드 코로나 조치로 확진자 증가는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최근 확진자 증가 흐름이 심상치 않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 중심으로 위중증 환자와 사망자 증가세는 모처럼 맞이한 일상회복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전체 신규 확진자 중 수도권에 80%가 몰려 지방은 그런대로 버티고 있다는 평가를 받으나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의 특징으로 보아 언제 어디서 확산세를 키울지 알 수 없다. 대구와 경북도 하루 100명 내외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 잠시도 소홀할 틈이 없다.중앙방역대책본부는 18일 0시 기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3천292명이라 밝혀 전날에 이어 3천 명대가 이어졌다. 이날 확진자는 지난해 1월 20일 국내에서 확진자가 처음 발생한 이후 최대치로 기록됐다. 서울 등 수도권이 2천583명(78.9%)이며, 대구와 경북은 하루 123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특히 위드 코로나 실시와 함께 중점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위중증 환자 수가 또 500명을 넘었다. 정부가 기존의 의료체계로 감당할 수 있다고 밝힌 500명대를 연일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서울지역에서는 중환자 병상 가동률이 80%를 넘어 의료현장에선 입원병상을 못구해 환자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대란도 벌어진다고 한다.정부가 17일 60세 이상은 추가접종 기간을 6개월에서 4개월로 50대는 5개월로 앞당기겠다고 밝혔다. 잘한 결정이지만 아직도 18세 이하에서는 백신접종을 맞지 못한 이들이 많다. 어제는 50만 명의 학생이 수능시험을 치렀다. 공부에 지친 학생들이 해방감으로 거리에 뛰쳐나오면 코로나 방역체계를 크게 흔들 수 있다. 보건당국의 발빠른 대응이 있어야 한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일상회복을 위한 위드 코로나 체계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경고가 곳곳에서 들린다. 전염병의 특성을 감안하면 대구와 경북도 의료체계 준비와 방역망 관리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한다. 유럽에서는 위드 코로나 이후 확진자 폭증으로 다시 봉쇄조치에 들어간 나라도 있다. 자영업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위드 코로나 이전의 상태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대구시와 경북도, 정부가 선제적 대응을 할 때다. 또 국가 방역체계만 믿지 말고 국민 스스로도 해이해진 방역의식을 다시 다잡아야 한다.

2021-11-18

킹메이커

로저 스톤은 부동산 재벌에 불과했던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에 당선시킨 인물로 많은 화제를 모았다.그는 정치인이자 타고난 선거 전략가로 평가를 받았지만 권모술수에 능란해 워싱턴 정가에서는 정치 자문가인 동시에 ‘더러운 사기꾼’으로도 통했다.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데는 로저 스톤의 탁월한 전략이 있었다. 그는 트럼프와 30년 지기로 같이 활동하면서 그의 개인 정치고문 역할을 줄곧 해왔다. 둘은 여러 면에서 궁합도 잘 맞았다고도 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톡톡 튀는 발언 가운데는 로저 스톤의 조언이 상당히 작용한 것으로 짐작이 된다.그의 정치적 신념을 엿보게 하는 말로 그가 자주 쓴 표현 중 “완전 무명보다는 악명이 낫다”는 말이 유명하다. 그는 스스로 스톤의 법칙을 만들어 그 룰에 따라 정치 전략을 구사했다. “잘못을 인정하지 말 것” “모든 것을 부정할 것” “공격당하면 반격할 것” 등이 핵심이다.그의 정치 역정은 미국 넷플릭스에서 ‘킹메이커’라는 제목으로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방영되기도 했다.그는 2019년 러시아 스캔들에 연루돼 40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트럼프는 대통령의 사면권을 이용, 그를 감형한다. 사상 최악의 부패행위라는 비난 여론이 있었지만 트럼프는 그해 11월 실시될 선거에 그의 정치 전략이 필요했었다는 분석이다.우리 정치사에도 킹메이커가 등장한다. 노태우, 김영삼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김윤환 전 의원과 김대중 대통령을 당선시킨 김종필 전 총재 등이 그들이다. 내년 대선을 두고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과 이해찬 전 대표의 킹메이커 역할론이 등장했다. 선거 열기 속에 그들의 대결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1-11-18

아수라 vs 내부자들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내년 3월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치권에 과거 개봉한 영화 두 편이 화제다. 바로 영화 ‘아수라’와 ‘내부자들’이다.두 영화는 모두 국산영화로 정치권력의 부패를 다룬 영화인데, 묘하게도 현재 여야 후보인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를 겨냥한 듯한 설정이어서 공교롭다고 해야할 지, 선견지명이 있다고 해야할 지…. 전여옥 전 국회의원은 최근 SNS에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 1위인 이재명 경기지사의 ‘대장동 특혜 의혹’을 거론하면서 “이름하여 ‘대장동 개발사업’ 아주 이상하기 짝이 없는 ‘아수라’의 악취가 풍긴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영화 ‘아수라’를 빗대어 이재명 후보를 공격한 것이다. 김성수 감독이 연출한 ‘아수라’는 2016년 개봉한 영화다. 가상의 도시 안남시를 배경으로 부패한 박성배(황정민)와 시장의 비리를 캐내려는 검사 김차인(곽도원), 그 사이에 낀 형사 한도경(정우성)의 물고 물리는 정치범죄 스릴러물이다. 영화에서는 안남시의 부동산 개발사업과 이를 통해 시장 박성배가 각종 이권을 챙기고 범죄를 서슴지 않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영화 배경이 된 안남시라는 도시명부터 이재명 후보가 시장으로 재직했던 성남시를 연상시키는 데다 대장동 개발 특혜의혹을 받고 있는 이 후보를 겨냥한 듯한 영화 줄거리다. 야당인 국민의힘이 경선단계부터 시작해 ‘아수라’ 영화를 적극 소환해 이재명 후보를 공격하는 소재로 적극 활용하고 있는 양상이다.민주당에서는 영화 ‘내부자들’을 공격소재로 소환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이 영화에 나오는 부패 정치인 장필우와 겹친다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다. 기동민 민주당 의원은 지난 17일 라디오에 출연해 윤 전 총장을 향해 “영화 ‘내부자’들에 나오는 대선 후보 장필우처럼 ‘X라 고독하구만’ 대사를 반복하며 소주 드실 날이 머지않았다”라고 했다. 우민호 감독의 영화 ‘내부자’들은 2015년 개봉했다.기 의원이 언급한 장필우는 부패 정치인으로 재계, 언론과 결탁해 대권을 넘보는 인물로, 과거 조폭과의 전쟁에서 이름을 날린 검사 출신이기도 하다. 장필우는 결국 각종 비리가 드러나 파멸의 길을 걷는 데, 영화 말미에 쓸쓸하게 소주를 마시며 “X라 고독하구만”이란 대사를 내뱉는다.정치 권력의 부패를 다룬 두 영화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크게 주목받는 현실이 참으로 씁쓸하다. 그동안 정치권의 부패와 해악을 정면으로 다룬 영화가 적지않았지만 유달리 두 영화는 영화배경이나 인물설정이 현 여야 후보와 닮은 꼴이라 공교롭다.이런 영화가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아마 정치에 대한 환멸이나 염증,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게 되지 않을까 싶다. 영화 제작자의 의도야 정치권력의 부패를 정면비판하고, 이런 정치인들을 정치판에서 몰아내야 한다는 생각이었으리라. 하지만 두 영화가 그린 인물이 무작정 비현실적이란 단정을 내리기도 어려웠다.그저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현실이,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영화를 불러들이니 그게 서글플 따름이다.

2021-11-18

지방대가 어때서?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최근 모 국회의원이 자기가 나온 대학을 “지방대”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세간의 비판을 받고 있다. 해당 대학 학생과 졸업생들은 모 의원의 사과를 요구하고 의원실로 연일 항의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그 대학은 사실 수도권에 있어서 지방이라고 말할 수 없는데도 소위 세간의 ‘인서울’에 대한 우열감으로 지방대로 분류하고 있는 모양새이다.해당 의원은 과거에도 ‘지방대 출신임에도 KBS 아나운서에 합격할 수 있었다’는 취지의 표현을 사용한 사실이 있는데 이번에는 자신의 SNS를 통해 ‘블라인드 채용법’ 발의를 예고하며 지방대를 졸업했지만 블라인드 채용 덕분에 이 자리까지 오게 됐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선의로 해석하면 ‘블라인드 채용법’의 취지를 강조하여 국회를 통과하기 위한 열성에서 나온 이야기이지만, 자신의 출신 대학을 낮추고 자신의 성취를 돋보이게 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해당 의원의 지방대 차별화는 그것이 현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을 당연시 받아들여져서도 안 되고 공개석상에서 비하 발언을 해서도 안 된다. 그러한 비하 발언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다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과거 모 대학 교수님도 국회 증언에서 “지잡대”라는 단어를 사용한 적이 있어 큰 파문을 일으켰던 기억이 있다. 국회에서 이러한 단어가 나왔다는 사실이 큰 충격이었다. 우리는 사실 지방대는 물론 지방이란 단어 자체를 쓰지 않아야 한다. 한국에서 지방이란 단어는 열등하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지방’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지방정부, 지방공무원, 지방대학, 지방신문…. 지방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무척 익숙한 단어이다. 서울이라는 중앙에 대응하는 단어로서의 지방은 그 본래의 의미는 잘못된 건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지방이란 단어가 한국에서 중앙에 대한 대등한 개념이 아닌, 열등의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방대’란 단어다.세계화 시대에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한국은 더 이상 서울과 지방으로 나눠져야 할 필요가 없는 나라이다. 고속도로를 달려보면 거의 공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전 국토에 걸쳐 사람들이 퍼져 살고 있다. 그만큼 좁은 나라다.좁은 나라의 미래의 번영은 세계화에 있다. 우리는 일체 ‘지방대’는 물론 ‘지방’이라는 단어 자체를 쓰지 말아야 한다.지방에 있다고 열등한 것도 아니고 중앙에 있다고 우수한 것도 아니다. 각 지역의 객체들은 세계로 도약하며 각개 약진을 해야 한다.지방대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한 단어는 스스로의 자존감을 파괴시키고 한국의 고절적인 이분법을 고착시킨다.한마디 묻고 싶다. 도대체 “지방대가 어때서?”

2021-11-18

합리적 추론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인생에는 합리적 추론이 필요할 때가 많다. 사람의 심리는 복잡 미묘하고 안팎이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리학이나 논리학, 정신의학 등에서 합리적 추론에 관련된 연구를 해왔다. 물론 학문적이고 전문적인 영역 말고도 상식적 수준에서의 합리적 추론은 일상생활에서 다반사로 있는 일이다. 사람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시시각각 분별하고 판단해서 삶을 영위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합리적 추론이 필수적인 요건이 아닐 수 없다.추론(推論)이란 이미 알고 있거나 확인된 정보로부터 논리적 결론을 도출하는 행위나 과정을 말한다. 즉 어떤 판단을 근거로 다른 판단을 이끌어 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때 그 판단의 근거가 되는 정보나 자료가 이치에 맞는 것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올바른 판단을 위해서는 합리적 추론의 과정이 필요하고, 합리적 추론을 위해서는 기왕의 사실이나 정보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개인적 호불호나 이념적 편향에 등에 따른 편견이나 고정관념으로 정보의 수용에서부터 왜곡이나 오류가 발생할 소지가 있는 것이다.여당 대선 후보 배우자가 한밤중에 낙상(?)을 해서 119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된 사건을 두고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여당에서는 가짜뉴스에 강력 대처하겠다며 유포자 두 명을 고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가짜뉴스의 확산에 빌미를 준 것은 사고경위에 대한 설명이 명확하지 못 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는 낙상사고라고만 했다가 나중에는 구토 설사 후 의식을 잃고 쓰러져 열상을 입었다는 해명이 뭔가 미심쩍은 뉘앙스로 받아들여진 거였다. 병원 진료기록에는 오심 구토 설사 의식소실이라고 적혀있다니 일단은 그것을 판단의 근거로 삼아야 할 것이다.그런데 그날 출동한 구급대원들이 야근을 마치고 퇴근했다가 다시 불려나가 질책을 당했다고 한다. VIP의 사건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은 이유란다. 누가 시청의 익명게시판에 올린 그 사실이 일파만파로 퍼져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사고 당사자가 VIP일 경우 상부에 보고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는데다, 그게 어찌 퇴근한 사람을 불러내어 문책할 만큼 다급하고 중대한 일인가. 다음날 출근을 하면 불러도 충분한 일인데,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퇴근한 구급대원을 서둘러 불러낸 것에는 필시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하게 된다. 아마도 그 상급자는 어디로부터 무슨 지시(?)를 받지 않았을까, VIP의 사건을 보고하지 않은 것에 대한 문책이란 구실일 뿐이고, 그날 그 사고현장에서 구급대원들이 보고들은 일체의 사실에 대한 함구령을 내리려는 것이 화급히 불러낸 진짜 이유가 아닐까.대선정국에는 온갖 가짜뉴스가 난무하기 마련이다. 거짓으로 꾸며서라도 자기 편 후보는 미화하고, 상대편 후보는 어떻게든 흠집을 내기 위해 흑색선전에 혈안이 된다. 이럴 때일수록 국민들이 합리적 추론에 따른 올바른 판단으로 가짜뉴스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더구나 이번 선거는 나라의 명운을 좌우하는 한판 승부다. 기울어진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이 오로지 국민들의 판단과 결정에 달렸다.

2021-11-18

존재의 용기

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 랍비이며 사회 운동가인 마커스는 부켄발트 강제수용소에 숨겨져 있던 904명의 아이들을 발견하고 이들을 구출하는데 힘썼다. 그때 구출 받은 아이 중에 노벨 평화상을 받은 엘리 위젤이 있었다. 위젤은 유대인들이 교수대에서 죽어갈 때마다 “하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라고 탄식소리를 듣는다. 신의 부재는 위젤이 수용소에 있는 동안 내내 던진 질문이었다. 그 순간 그는 “나는 교수대에 죽어가는 저들과 함께 있다”는 내면의 소리를 듣고 신이 부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의 부재를 깨닫고 용기를 얻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를 구출하는데 힘쓴 마커스는 아들이 소아마비로 죽자 절망 가운데 아인슈타인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때 아인슈타인은 “아들이 더 이상 내 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의식이 불러오는 ‘착시적 망상’에 불과하며 존재의 방식을 달리할 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고 했다. 틸리히는 죽음이 가져오는 절망은 존재하던 것이 없어지는 ‘비존재의 충격’때문이며 만일 죽음이 비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을 달리하는 것으로 여전히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다고 하면서 이를 ‘존재의 용기’라 했다. 비존재는 절망을 가져오지만 존재는 희망과 용기를 불러온다는 공통된 생각이었다.

2021-11-17

모성의 순례지

백후자수필가 가을이 만든 하늘·바람·빛을 먹은 이파리에 물이 든다. 초록이 빛을 잃으며 노란 물이 오른다. 노랑이면 단연 은행나무다. 은행나무를 찾아 떠난 길, 바알간 홍시가 주렁주렁 매달린 감나무 밭을 지난다. 나지막한 산길을 따라가서 다다른 곳은 청도 적천사다.일주문 대신 은행나무가 마중을 한다. 천왕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선다. 바람소리만 스칠 뿐 고요하다. 발소리를 죽이며 둘러본다. 젊은 부부 한 쌍이 공양미를 올린다. 둘은 부처님 앞에 공손하게 삼배를 올리고 한참 머물다 나간다. 어느 한때 내 모습을 보는 듯하여 저절로 눈길이 따라간다. 법당을 나선 부부는 천왕문을 나서서 은행나무가 있는 곳으로 나란히 걷는다.적천사 은행나무는 수령이 천년에 가깝다. 고려 명종 5년, 보조국사 지눌이 오백 명의 수도승을 머물게 할 수 있는 큰 규모의 절을 중건할 당시, 절 부근 숲속에 도적이 들끓었다고 한다. 그래서 보조국사가 가랑잎에 범 호(虎)자를 써서 신통력으로 호랑이를 만들어 풀어 놓으니, 도적이 겁을 먹고 도망쳤다고 한다. 당시 보조국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은 곳에 은행나무가 자랐으니 천연기념물 제402호, 적천사 은행나무다.적천사 은행나무는 삼 미터까지는 하나의 줄기이다. 그 위로 세 개의 가지로 나뉘어 자란다. 높이 이십팔 미터에 둘레가 십일 미터 가량으로 암나무이다. 바로 옆에 또 한 그루의 은행나무가 있는데 수령은 다르나 비슷한 키 높이로 견준다. 두 나무는 수양버들처럼 가지를 늘어뜨려 맞잡으며 나란히 서 있다. 두 은행나무의 다정한 모습에 부부 은행나무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둘 다 열매가 맺히는 걸로 봐서 암나무이다.적천사 은행나무의 특별함은 유주(乳柱)이다. 유주는 오래된 은행나무에 생긴다. 은행나무의 줄기에 상처를 입으면 은행나무는 스스로 치유하는데, 그것이 바로 유주이다. 특정의 방어물질이다. 대체로 동글동글하게 생긴 것이 모유의 줄기인 유두와 흡사하다. 그런데 적천사 은행나무의 유주는 모양새가 독특하다. 굵직하고 기다란 고드름처럼 생긴 것, 짧고 뭉뚝한 방망이처럼 생긴 것, 둥근 혹처럼 생긴 것도 보인다.유주는 여인네의 젖가슴과 닮았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글자 그대로 ‘젖기둥’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남근과 더 닮은 이유로 예로부터 아들을 낳고자 하는 여인네들의 등살에 도려져 나가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적천사의 은행나무 유주는 길쭉한 생김새가 남근에 더 가깝다. 그래서 남아를 잉태하고자 하는 이들의 순례지가 되었다.법당에서 보았던 젊은 부부가 은행나무 밑으로 간다. 두 손을 꼭 모으고 머리를 숙인다. 그리고 가만히 유주를 쓰다듬는다. 아이를 간절히 바랐던 때가 있다.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알기에 젊은 부부를 가만히 지켜본다.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간절한 마음이 원하는 곳에 가닿기를 바란다.불투명한 일, 내가 가진 힘으로는 이룰 수 없는 일이 있다. 마치 막다른 골목에 선 것 같을 때 인간은 신앙을 찾는다. 전해오는 이야기일 뿐일지라도 내가 믿으면 신앙이다. 내 안의 울분을 토해낼 수 있는 곳, 내 안의 답답함을 기탄없이 다 들어주는 곳. 있는 자 없는 자 차별하지 않고 공정하게 대해주는 곳, 그것이 바로 신앙이다.모든 건 마음에 있다. 내 마음이 어디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은행나무 아래 서서 유주를 바라보며 간절히 바란다면 그것 또한 신앙이다. 토테미즘이면 어떻고 샤머니즘이면 또 어떤가. 그 또한 마음이 가는 곳이다. 간절함의 끝에 닿으면 통한다고 했다.백 년도 채 못사는 인간이 천년 은행나무 아래에 선다. 울룩불룩 올라온 유주가 눈에 들어온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은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두 손이 저절로 모아진다.

2021-11-17

눈 내린 날 우리는

우리네 강산은 아름답다. 봄에는 새파란 잎과 들꽃, 여름에는 짙은 녹음과 바다가 펼쳐진다. 가을에는 온 산에 단풍, 겨울이면 하얀 눈이 세상을 덮는다. 사계절이 순환하고 계절마다 자기 풍경을 펼치는 자연이 있어 우리네 삶도 다채롭다.함박눈 : 함박꽃 송이처럼 굵고 탐스럽게 내리는 눈. 가루눈.싸라기눈 : 빗방울이 갑자기 찬바람을 만나 얼어서 떨어지는 쌀알 같은 눈.가랑눈 : 조금씩 잘게 내리는 눈.눈설레 : 눈과 함께 찬바람이 몰아치는 현상.도둑눈 : 밤에 사람이 모르는 사이에 살그머니 내린 눈.떡눈 : 물기를 머금어 떡처럼 척척 달라붙는 눈송이.살눈 : 얇게 내리는 눈.설밥 : 설날에 오는 눈.숫눈 : 눈이 와서 덮인 뒤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눈.길눈 : 한 길이 되도록 쌓인 눈.눈석임 : 쌓인 눈이 속으로 녹아 스러짐.소나기눈 : 폭설.자국눈 : 발자국이 겨우 날 정도로 적게 온 눈.잣눈 : 잔 자쯤 온 눈.풋눈 : 초겨울에 약간 내리는 눈.우리에게는 눈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첫눈 내리는 날 어디서 만나자. 손톱에 들인 봉숭아 꽃물이 첫눈 오는 날까지 남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꿈은 눈처럼 순수했다. 꿈은 눈 녹듯 눈석임이 되었지만, 그래도 그날까지 기다리는 설렘이 있었다.‘첫눈 오는 날 만나자’/ 정호승“첫눈 오는 날 만나자/어머니가 싸리빗자루로 쓸어 놓은 눈길을 걸어/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새들의 발자국 같은 흰 발자국을 남기며/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팔짱을 끼고/더러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 앞에 쭈그리고 앉아/목장갑 낀 손으로 구워놓은 군밤을/더러 사먹기도 하면서/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길을 걸어가자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첫눈 오는 날 만나자/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약속한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리자”아침에 일어나면 창문에 성에가 하얗게 끼어 있었다. 뙤창문을 입김 호호 불어 닦아, 바깥을 내다보면 밤새 도둑눈이 함박 내려 마당이 온통 하얬다. 문을 열면 낯설고 환한 세상이 펼쳐졌다. 바깥으로 나가 신발을 신고 처마를 나설 때, 숫눈 위에 차마 첫발을 내디딜 수 없었다. 뽀드득 한 발 뽀드득 두 발, 발자국을 찍는 감촉이 참 좋았다. 그렇게 첫 발자국은 길이 되었다. 발자국은 사립문을 지나 고샅으로 나가 이웃과 이웃을 이었다.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공터에 모였다. 눈을 수박만하게 뭉쳐 굴렸다. 이쪽으로 굴리고 저쪽으로 굴리고, 눈덩이는 점점 커졌다. 힘에 부쳐 더 굴릴 수 없을 때, 다시 눈을 뭉쳐 굴렸다. 굴린 눈덩이가 적당히 커지면 큰 눈덩이 위에 올렸다. 헌 양은 대야를 씌우고 숯덩이로 눈코입을 만들고 솔가지를 꺾어 수염으로 붙였다.집집마다 골목마다 눈사람이 섰다. 곰방대를 물고 담배 피는 할아버지 눈사람, 큰 냄비를 쓰고 나무 창을 든 병정 눈사람, 이제 걸음마를 뗀 자식 같은 눈사람, 자기 멋대로 생긴 눈사람, 참말이지, 할머니 같고 동생 같고 가족 같았다. 밤새 추위에 떨까 봐 목도리를 둘러주기도 했다.서너 명씩 패를 짜서 눈싸움을 했다. 눈을 뭉치고 던지고 날아오는 눈뭉치를 피하다가 눈 위에 나동그라졌다. 그렇게 뒤섞여 뛰어놀면 어느새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평소 쌓인 감정을 실어 눈덩이를 던지기도 했다. 눈싸움, 눈사람, 눈썰매, 눈미끄럼틀, 함께 뛰어놀면 묵은 감정은 다 날아가고 개운한 웃음만 남았다.눈 오는 날에는 아이고 어른이고 다 순수해졌다. 눈밭에서 뒹구느라 옷을 다 버려도 어른들은 나무라지 않았다. 마음껏 뛰어놀아야 크고 또 그렇게 저절로 커야 사람이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추위를 이기고 체력을 키우는 데 그만한 놀이가 없었다.종일 뛰어놀았으니 몸이 나른했다. 아랫목에 누워도 눈밭에서 뛰어놀던 그림이 지워지지 않았다. 잠자리에 들면 잠도 꿈도 눈송이처럼 포근했다. /수필가·문학평론가

2021-11-17

대구국가산단, 첨단 유망기업으로 넘쳐 나길

대구시가 달성군 구지면에 위치한 대구국가산업단지 2단계 구역에 대한 분양에 나선다. 이번에 분양되는 2단계 용지는 1단계 산업용지가 거의 분양됨에 따른 것으로 1차로 15필지 14만2천㎡ 규모다. 대구시는 첨단기계업종 4필지와 기초산업업종 11필지를 분양하며 필지별로는 최소 3천800㎡에서 최대 1만2천700㎡를 분양한다. 분양가격은 도심권 산업단지로는 비교적 저렴한 3.3㎡당 약 125만3천원 수준이라고 밝혔다.대구국가산단은 전국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늦게 건립된 국가산업단지다. 낙동강 페놀유출 사건으로 1991년 위천국가산업단지 조성이 무산된 지 거의 20년만에 조성된 국가산업단지다. 1단계는 현재 85% 정도가 분양되고 물산업 클러스트와 물기업, 로봇기업 등 140여 업체들이 입주해 비교적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이곳은 테크노폴리스와 바로 인접해 있으며 자율주행자동차 시험센터, 국가로봇테스트필드, 물기술 인증원, 전기차 등 대구의 미래먹거리 산업과 4차 산업이 집합하는 곳이라 비전도 좋은 곳이다. 교통도 중부내륙고속도로 현풍 IC와 가깝고 대구도심으로 연결되는 4차선 도로가 있어 편리하다. 구미의 IT산업과 창원의 기계산업과도 연결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대구는 전기차와 로봇산업 등 미래먹거리 산업 발굴을 통해 산업구조 개편을 시도하고 있다. 시대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면 도시의 쇠락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전체 855만9천㎡의 대구국가산단에 첨단산업을 유치하는 것은 대구경제에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이다. 대구시도 이런 점을 감안, 경제적 파급효과가 큰 중견기업의 유치에도 신경을 쓴다고 한다.달성국가산단은 1단계에 이어 2단계도 첨단 유망기업이 많이 입주해 경제 파급효과를 이끌어 내도록 해야 한다. 경제적 파급력이 큰 기업일수록 더 좋고, 외지업체도 유망하다면 적극 유치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입주 조건을 더 좋게 해주더라도 영향력 있는 업체가 유치되면 좋겠다. 지방도시의 쇠퇴를 재촉하는 수도권 집중에 대응할 지역차원의 유일한 방법은 대기업 유치와 같은 경제수요 개발이다. 일자리창출과 지속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들의 대구국가산단 유치에 더 박차를 가해 주길 바란다. 대구국가산단이 유망기업들로 가득찰 날을 기다린다.

2021-11-17

국민의힘 선대위는 윤석열 인사역량의 시험대

그동안 진통이 심했던 국민의힘 대선후보 선대위 체제가 조만간 발표될 것 같다.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을 원톱 총괄선대위원장으로 하는 ‘통합형 선대위’가 꾸려질 것으로 보인다. 이준석 당 대표는 총괄선대위원장의 지휘를 받는 상임선대위원장을 맡고, 선거비용을 총책임지는 당 사무총장에는 권성동 의원이 내정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선대위와는 별도로 후보직속으로 국민통합위와 미래비전위를 설치한다는 방침이다. 국민통합위는 야권통합과 외연확장, 집권후 지지기반확대 역할을 맡고, 위원장은 김한길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거론되고 있다. 그리고 국가비전과 정책입안 등의 청사진을 그릴 미래비전위원장 후보로는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검토된다고 한다. 국민의힘은 그동안 윤석열 후보 선대위 구성을 두고 이준석 대표와의 갈등설 등 듣기에도 거북한 불협화음이 이어져 왔다. 이와 관련해 윤 후보가 그저께 “이준석 대표가 역할을 100% 할 수 있게 선대위를 꾸리고 싶고, 이 대표도 무리를 하지 않아 갈등설은 다들 소설 쓰는 것”이라며 정리를 한 것은 잘한 일이다.선대위 구성을 어떻게 하느냐는 윤 후보의 인사역량을 가늠하는 1차 시험대다. 선대위는 후보의 의중이 즉각 실무선까지 전달되고, 빠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민주당이 ‘용광로 선대위’라는 명분 아래 당과 캠프인사 대부분에게 직책을 줘 ‘관료화된 선대위’라는 소리를 듣는 것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 후보가 이리저리 휘둘리며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모습은 최악이다. 윤 후보가 또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최근 원희룡 전 제주지사가 윤 후보를 만났을 때 “선대위 구성도 중요하지만 홍준표 의원, 유승민 전 의원에 대해서도 최대한 마음을 돌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한 말이다.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경선주자들을 선대위에 합류시키는 포용적 리더십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대선은 아직 4개월이나 남았다. 윤 후보는 그동안 컨벤션 효과에 힘입어 여당 후보에게 지지율이 앞서고 있지만, 선거 판세는 여러 번 요동칠 것이다. 윤 후보가 정권교체에 대한 비전과 국정운영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할 경우 여론의 지지가 썰물처럼 빠질 수 있다.

2021-11-17

남극의 ‘인천빙하’

남극에 ‘인천 빙하’가 생겼다.영국 남극지명위원회가 최근 서남극 갯츠 빙붕(Gets Ice Shelf)에 연결된 빙하 9개 중 1개의 이름을 ‘인천 빙하(Incheon Glacier)’로 지었다고 인천시가 밝혔다.위원회는 서남극에서 아직 이름이 없었던 빙하 9개에 주요 기후 회의를 개최했던 전 세계 도시 9곳의 이름을 붙였다.인천시는 2018년 10월 제48차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총회를 개최한 인연으로 빙하 이름을 부여받게 됐다.남극지명위는 인천 외에 제네바·리오·베를린·교토·발리·스톡홀름·파리·글래스고 등 총 9개 도시 이름을 서남극 빙하 9개의 새 이름으로 명명했다.빙하에 도시 이름을 붙인 것은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빠른 속도로 녹고 있다는 점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조치다.올 2월 한국 극지연구소와 영국 리즈대, 스완지대 등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이번에 이름이 새로 붙은 9개 빙하 등 서남극의 14개 빙하는 빠른 속도로 녹고 있다.14개 빙하가 녹으면서 남극 바다로 떠내려가는 속도가 1994년과 비교했을 때 25년 만에 23.8% 빨라진 것으로 조사됐다. 그나마 ‘인천 빙하’의 이동 속도는 25년간 2.9% 빨라지는 데 그쳐 14개 빙하 중 변화 폭이 가장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논문에 따르면 인공위성 관측 결과 1994년부터 2018년까지 약 3천150억t의 얼음이 이 지역에서 사라졌다. 이는 전 세계 해수면을 약 0.9mm 높일 수 있는 양이다.인천시는 ‘인천 빙하’이름이 생긴 것을 계기로 더 적극적으로 탄소 중립 정책을 펴겠다고 밝혔다. 지구온난화, 이제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