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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를 읽다

정미영 수필가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기형도 작가의 ‘엄마 생각’시를 낭독해 본다. 시인의 어머니는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에 열무를 팔러 다니면서 가족들을 건사했다고 한다. 시인은 어른이 된 훗날, 고단했던 어머니의 삶을 떠올리며 작품을 썼다. 어머니와의 야윈 추억들로 그는 가슴이 자주 먹먹했을 것이다.나 또한 친정어머니의 지난했던 생활을 생각하며 집필할 때가 많았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은 구멍가게를 운영했다. 그 즈음 할머니의 병환이 깊어 어머니는 가만히 있어도 긴 한숨이 새어나오는 답답한 나날 속에 파묻혀 지냈다.어머니는 명치가 뻐근할 정도로 숨이 막힐 때면 가게에서 팔아야 되는 껌 한 통을 뜯어 껌 종이들을 펼쳤다. 껌 종이에는 시가 인쇄되어 있었는데, 어머니가 즐겨 읽던 시는 푸쉬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였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로 시작되는 시를 마음에 담으며, 껌의 단물처럼 달착지근한 희망을 계획했는지도 모른다.어머니의 시 읽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자랐다. 나에게는 하이네의 ‘그대는 꽃인 양’이란 시를 읽어주었다. ‘그대는 한 송이 꽃처럼 귀여이 맑고 아름다워라’로 시작되는 시를 들려주며 딸에 대한 소망을 간절히 기도했다. 어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이 시를 들으면 마음이 한없이 편안했다.어느 덧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였다. 처음 참고서를 사기 위해 서점을 찾았던 곳에서 ‘세계 명시 선집’을 발견하고는 페이지를 넘겼다. 순간 가슴이 찌르르 했다. 선집 안에는 내가 오래도록 껌 종이에서 보았던 낯익은 시들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서슴지 않고 참고서를 제치고 시집을 사버렸다. 시 속의 단어들은 여전히 내 감수성을 일깨우고 채워주었다. 가슴 저미는 시행을 접하면 저절로 눈물이 흘렀고, 맑고 순수함이 느껴지는 시를 읽으면 내 마음 한 자락이 따스하게 덥혀졌다.햇살 눈부신 날이었다. 어머니는 외할아버지 제삿날인데도 가게 일 때문에 집을 나설 수 없었다. 나는 언뜻 어머니의 눈망울이 젖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때 나는 슬픈 현실이 주는 암담함의 크기가 얼마나 깊은지 정확히 가늠할 수 없었다. 다만 파란 하늘을 초점 없는 눈으로 하염없이 올려다보는 어머니의 그늘진 얼굴이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그날 밤, 어머니의 웅크리고 자는 모습이 내 눈에는 달팽이처럼 보였다. 몸을 자신의 껍데기 속에 집어넣고 있는 달팽이처럼, 어머니도 자신의 감정과 언어들을 마음속으로 둘둘 말아 넣고 잠을 청하는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다음 날, 나는 책가방 속에 들어 있던 시집을 꺼내 어머니에게 드렸다. 어머니가 껌 종이를 내게 주었듯이 나는 시집을 어머니에게 드렸다. 어머니는 나와 눈을 맞추고 난 뒤 시집을 넘겼다. 조용히 몇 편의 시를 읽고는 어떤 시가 마음에 들었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익숙한 시도 좋았지만 새롭게 알게 된 시 가운데 한 편을 말했다.우리는 시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나눴다. 중학교에 올라오면서 새로운 생활에 적응한다고 분주했던 나였다. 그런 나를 앉혀 놓고 껌 종이에 적힌 시를 읽어주지 못했던 어머니는 오래간만에 나에게 시를 읽어주었다. 주어진 생활이 고단해 어머니의 마음이 시리고 건조해졌을 것이라 나는 여겼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나를 마주대하는 어머니의 가슴은 다행스럽게도 따뜻했다. 어머니는 조용히 일어나 가게 선반 위에 두었던, 시를 품고 있는 껌 종이를 들고는 시집 속에 책갈피처럼 끼웠다.시집은 시심을 울리게 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딸을 이해하고 딸 역시 어머니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 때 자습서 대신 시선집을 샀던 일을 비롯해 그동안 품었던 생각을 속속들이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이해해 주는 어머니가 있어 고마웠다.기형도 작가의 시집을 다시 펼친다. 향긋한 껌 향기가 퍼지는 것 같아 내 입 안 가득 침이 고인다. 나는 달콤한 시를 곰비임비 읽는다. 단물이 입안에 고이듯 시를 내 가슴에 담는다.

2022-12-28

기축(己丑)

‘겨울육십갑자 중 스물여섯 번째에 해당하는 기축(己丑)이다. 천간(天干)의 기토(己土)는 밭을, 지지(地支)의 축토(丑土)는 계절로 한겨울 일월이다. 얼고 차가운 땅의 형상이다. 동물로는 소다.기축일주의 축토(丑土)는 얼어붙은 동토이므로 소극적이고 활동성이 떨어진다.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고 시키는 것을 좋아해서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경우가 많다. 외로움을 잘 타는 편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과 불우한 이웃에게 인정을 베풀기도 한다. 말주변이 없고 독설을 내뱉기도 한다. 내적인 면만 본다면 편안하고 신뢰를 주는 성격이니 오래 사귈수록 좋다.천간 기(己)와 지지 축(丑)이 같은 흙토이므로 간여지동이라 한다. 간여지동은 성실하고 꼼꼼한 면을 보여주며 자신의 실속을 챙기려는 욕심이 있지만,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힘들게 일해도 그에 맞는 보상을 받지 못하고, 젊은 시절에는 굴곡이 많으나 늙어서는 편하게 산다.기축일주는 겨울 밭에 소처럼 고집스럽게 일해도 풍요로운 결실을 맺지 못하지만, 특유의 성실함으로 고난을 이겨낸다. 특히 따뜻한 화(火)기운이 들어올 때 자신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한다. 조급해 하지 말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프랑스 소설가 장 지오노의 단편소설 ‘나무를 심는 사람’을 살펴보자. 1913년 주인공 ‘나’는 고산지대를 여행하는 중 나무 하나 없는 땅 위로 견디기 어려운 바람이 세차게 부는 황무지를 지나게 되었다. 몇 시간을 걸어도 물을 찾을 수 없는 곳에서 한 사람을 만났다.그의 이름은 엘제아르 부피에, 나이는 55살.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죽고, 아내마저 세상을 떠났다. 오두막집에서 양들과 개와 더불어 고독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곳에는 나무가 없기 때문에 땅이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척박한 환경을 바꾸어 보기로 결심하고 하느님께 30년 후까지 자신을 살게 해주신다면 나무를 심겠다고 기도했다. 그리하여 3년 전 나무를 심기 시작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그와 헤어지고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었다. 부피에가 87세 되던 해 나는 그를 마지막으로 만났다. 황무지였던 마을은 숲속에서 바람이 불고 물소리가 들리는 아름다운 마을로 변했다. 나를 감동시킨 것은 샘 곁에 심겨진 보리수다. 이것은 부활을 상징하기 때문이다.옛 주민들과 새로 이주해온 사람들을 합쳐 만 명이 넘은 사람들이 부피에 덕분에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위대한 정신과 고결한 인격을 지닌 한 사람의 끈질긴 노력과 열정이 없었다면 이러한 결과는 없을 것이다.기축일주는 곡각살(曲脚殺)이 있어 평소에 높은 곳에서 작업을 하거나 과격하고 위험한 운동은 피하는 게 좋다. 특히 무거운 물건을 들 때 엉덩이를 당겨 바른 자세를 취해야 하고, 장시간 TV시청이나 컴퓨터 이용을 자제해야 한다.품행과 인격이 바르나 주변 사람들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도 있다. 의심이 많은 성격이라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가끔 거친 언행도 하니 대인관계에서 조심해야 한다. 외모를 보면 남자는 평균 이상의 얼굴로 이목구비가 뚜렷한 편이고, 여자는 얼굴이 예쁘지만 피부가 어둡거나 약하다.축토(丑土)는 물상이 소이므로 남녀노소 모두 부지런하다. 천간과 지지가 음으로 구성되어 있어 적극성은 부족하나 고집이 세다. 그래서 소는 한 고집한다고 얘기한다. 소는 어릴 적부터 코에 구멍을 내어 엮어둔다. 사실 사나운 면도 많다. 고삐 풀린 망아지라는 말이 있듯이 가만히 내버려두면 아주 가관이다. 큰 덩치와 격한 성격 때문에 코뚜레 꿰이는 처지가 되어 버린다.한비자 ‘화씨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변화(卞和)라는 사람이 초(楚)나라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형산에서 한 덩이의 옥돌을 얻게 되자, 그것을 초나라 임금 여왕(53B2王)에게 갖다 바쳤다. 옥돌을 다듬는 기술자가 옥돌을 감별해 보고는 “이것은 보통 돌덩어리입니다”라고 말했다. 자기를 속였다고 생각한 임금은 화가 나서 형 집행인에게 그의 왼쪽 발을 잘라버리게 하였다.여왕이 죽고 무왕(武王)이 즉위하자, 변화는 또 다시 옥돌을 임금께 가져다 바쳤다. 역시 옥돌을 다듬는 기술자를 불러 감별하게 하였다. 이번에도 “보통 돌덩어리입니다”라고 말하였다. 무왕도 역시 변화가 자기를 속였다고 생각하고 그의 오른발마저 잘라버리게 했다.무왕이 죽고 문왕(文王)이 임금 자리에 올랐다. 변화는 옥돌을 가슴에 앉은 채 형산 기슭에서 슬피 울기 시작하였다. 사흘 밤낮을 울고 나니 눈물이 마르고, 붉은 피가 방울방울 눈에서 흘러내렸다. 그 소식을 들은 문왕은 사람을 보내서 그가 그렇게 슬피 우는 까닭을 물었다. “이 세상에는 발이 잘리는 형벌을 받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건만 유독 당신만 그렇게도 웁니까” 류대창 명리연구자 “저는 결코 발이 잘리는 형벌을 받았다고 슬퍼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 가슴이 아픈 것은 세상에 보기 드문 옥이 오히려 돌덩어리 취급을 당하고, 참으로 성실한 사람이 사기꾼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문왕은 기술자에게 옥돌을 제대로 갈고 닦도록 시켰다. 그랬더니 과연 세상에서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옥으로 빛났다. 그 후 옥돌을 ‘화씨의 벽옥’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변화는 자기의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사물을 관찰하고 가치를 판단했던 것이다. 그것은 잘못된 고집이 아니라 진실에 대한 소신이 있기에 가능했다. 옥돌을 알아보기도 어렵지만 사람을 알아보기는 더욱 어렵다.임인년도 며칠 남지 않았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신념과 목표는 훌륭한 결과로 나타난다. 쓸데없는 고집은 나를 상실케 하고, 주위를 힘들게 만든다. 이런 것은 모아 호랑이와 함께 보내버리자. 어떤 보상도 연연치 않고 세상에 풋풋한 흔적을 남기기 위해 계묘년에는 토끼처럼 활기차게 달려 나가기를 기대한다.

2022-12-28

TK는 여당 당권레이스의 구경꾼인가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 일정이 3월 8일로 확정되면서 당권 레이스가 열기를 더해가고 있지만, 대구·경북(TK) 정치권은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여당의 2024년 총선체제를 이끌고 갈 역량을 갖춘 당권 도전자가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최대주주이면서도 위상에 걸맞는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TK정치인이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TK 현역의원 중 당대표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는 인물은 5선인 주호영(대구 수성갑) 원내대표뿐이다. 하지만 주 대표는 원내사령탑을 맡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당대표 도전 자체가 힘들다. 원외에서는 유승민 전 의원 출마가 거론되고 있긴 하지만 전망은 어둡다. 전당대회 경선룰이 당원투표 100%로 변경된데다 결선투표제까지 도입됐기 때문이다. 결선투표제는 친윤(윤석열)계 후보의 당선을 위한 안전장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유 전 의원은 보수성향의 TK민심과도 거리가 있기 때문에, 출마하더라도 TK주자로 분류하기는 어색하다.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의 권한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다. TK정치권에서 당권 주자가 없다는 사실은 바로 정치적 소외와 연결된다. 차기 총선공천과정에서 당 지도부의 의사결정과정에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면서 변방으로 밀려나는 신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현재로선 친윤계가 당권을 잡을 가능성이 높아서, 그들이 중심이 돼 TK공천을 좌지우지할 가능성이 크다.대구·경북은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되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그러나 중앙정치권에서 대부분 TK정치인이 존재감을 찾아보기도 어려운 것은 실력부족 탓이다. 공천만 되면 당선이 보장되기 때문에 유권자를 상대로 표를 얻기 위한 역량을 키울 필요성이 아예 없었다. 여야 지지자가 팽팽하게 맞서는 수도권 지역 정치인과 비교해 야성(野性)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그러니 온실 속의 화초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국가 모든 분야의 현안이 있을 때 침묵하는 정치인은 존재 가치가 없다.‘TK 국회의원은 임명직’이라는 비아냥이 차기 총선에서는 나오지 않길 바란다.

2022-12-28

기대를 높이 건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2022년이 저문다. 정치가 국민을 편안하게 하지 못하는 가운데 해를 넘긴다. 갈등과 반목이 진행되는 속에서 새해를 맞는다.세대와 지역 간에 격차를 확인하며 달력을 넘긴다. 선진국 문턱에 섰다는데 국민의 일상은 여전히 힘들다. 정치권 언사에 민생은 없다. 국민을 언급하지만 진심은 보이지 않는다. 언론의 담론에 서민의 일상은 찾아보기 힘들다. 언론은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일까. 국민이 안 보이는 정치는 무엇에 목숨을 걸고 있을까. 정치의 진심은 누굴 위해 작동하고 있을까. 새해는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정치와 언론이 유유상종(類類相從)을 극복해야 한다. 우리 편의 목소리만 들어서는 바꿀 방법이 없다. 생각의 지평을 열겠다는 다짐이 있어야 한다. 편견과 고집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생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당장은 힘들어도 차분히 들을 귀를 준비해야 한다. 진영논리에 빠져 하염없이 같은 목소리만 반복하면 국민도 나라도 나아질 방도가 없다. 상대방이 항복하고 돌아올 가능성이 있을 턱이 없다. 반대편이 힘들면 중도진영의 생각에라도 마음을 열어야 한다. 나만 옳다는 고집으로는 국민 가운데 화합의 물꼬가 터지지 않는다.온라인에서조차 차단과 봉쇄로만 응대하면 나라는 하나가 될 방법이 없다. 끼리끼리만 뭉치는 관성을 떨쳐내야 한다. 다른 생각들이 풍성하게 드나드는 담론의 장을 펼쳐야 한다.공격성향(攻擊性向)을 재고해야 한다. 작은 틈을 비집고라도 반박과 공격을 앞세우는 습성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상대도 우리만큼 생각하지 않을까. 변화와 혁신을 바라는 마음은 같지 않을까. 결투와 총성을 바라지 않는다면 지금보다는 부드러워야 한다. 공격하고 돌아서서 사이다 맛을 고소해 해야만 한다면, 발전과 진전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일단 듣고 이성적으로 헤아리며 상대하고 응대하는 토론을 이어가야 한다. 민주주의는 어차피 협상과 타협의 기술을 기대하지 않았을까. 만남과 대화에는 조정과 조율이 필수가 아닌가. 공격과 타도가 아니라 경청과 협력의 묘미를 발휘해야 한다. 공격성향을 극복하지 않고는 협상의 기술을 써먹을 수가 없다.헌법정신(憲法精神)을 다시 헤아려야 한다. 헌법은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하고 있다.권력이 정권이나 금권을 가진 이들에게 있지 않고 ‘국민’에게 있음을 분명히 한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현실적으로 가능해 보이거나 구체적으로 확인되지도 않는 듯 보이지만 굳이 ‘국민’이 권력의 원천임을 왜 적어놓았을까. 어렵더라도 ‘주인의식을 가진 국민’이 생각을 모아 나라를 바르게 운영해 가기를 염원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나라의 주인처럼 일하고 있는가. 보고 듣기도 하겠지만, 답답하고 필요하다면 의사소통의 통로를 살펴 개인적 의견을 개진하고 사회적 연대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사상가 벤담(Jeremy Bentham)의 생각처럼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 민주주의를 통하여 구현되어야 하지 않을까. 새해 2023년에는 국민의 기대가 반영되는 나라가 되기를!

2022-12-28

경북 숙원사업의 잇단 호재, 성장 발판 삼을 때

경북도가 역대 가장 많은 11조원의 내년도 국비 예산을 확보한 가운데 도내 오랜 숙원사업들도 하나둘 매듭을 풀어가고 있어 지역발전의 청신호가 켜졌다는 소식이다.가장 반가운 소식은 포항 영일만대교 사업의 개시다. 2008년 광역경제권 발전선도 프로젝트로 선정된 지 14년만에 설계비가 반영돼 이르면 2025년에는 본격 공사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영일만대교 건설사업이 미뤄져 오면서 경북 동해안고속도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미완성 구간으로 남아 있다. 영일만대교 건설은 동해안 일대의 물류와 관광산업에 획기적 변화를 안겨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보다 앞서 경북 울진 신한울1호기가 공사착공 12년만에 첫가동을 시작해 원전 집결지인 경북도내 원전산업의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신한울 2호기가 내년에 가동을 시작하고 3·4호기까지 서둘러 착공되면 경북은 원전산업의 거점으로 떠오르게 된다.지난 27일 있은 기재부 재정사업평가위원회에서 대구도시철도 1호선 영천 연장과 호미반도 국가해양정원 조성사업이 예비타당성 조사대상에 선정됐다. 내년 상반기 중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해야 하는 부담은 있지만 두 사업 모두 사업추진에 탄력을 받게 돼 기대감이 크다.대구도시철 영천 연장은 대구와 경산, 영천을 잇는 광역교통망으로 주민의 교통편의와 함께 지역발전에도 큰 영향을 준다. 특히 2025년 개장될 영천경마장과 연계되면서 관광인프라 확충의 부차적 효과도 크다. 호미반도 해양정원은 동해안 생태계 보호와 해양과 산림 복합친수공간을 만드는 사업이다. 영일만대교건설과 연관되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몫도 크다. 이밖에도 정부가 국가첨단산업 육성을 목적으로 공모에 나선 반도체 특화단지와 이차전지 특화단지 유치에 구미시와 포항시가 공을 들이고 있다. 특화단지 유치에 성공한다면 구미와 포항뿐 아니라 대구와 경북 전반에 걸쳐 경제적 파급력이 매우 클 것으로 예상이 된다.윤 정부 들어 경북과 대구의 역점 사업들이 비교적 순항을 하고 있다. “물 들어올 때 배를 띄워라”했다. 모처럼의 호기를 잘 잡아 지역발전의 동력으로 삼는 지혜를 발휘할 때다.

2022-12-28

수성못 수상공연장

홍석봉정치에디터 오스트리아의 브레겐츠 페스티벌은 세계 최고의 클래식 음악축제로 꼽힌다. 인구 2만의 소도시 브레겐츠가 보덴호(湖)에 수상무대를 설치, 오페라 축제를 열면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매년 20만~3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이 축제는 1946년 ‘일주일간의 브레겐츠 축제주간’이라는 이름으로 시작, 77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이 축제는 호수 위의 극장이라는 파격적인 무대와 아름다운 연출로 ‘007’영화에도 등장했다. 죽기 전에 봐야 할 야외 오페라로 평가받는다.경주 보문관광단지에도 지난 2010년 50억원을 들여 9천여㎡의 부지에 주차장과 진입로 등을 개설하고 2천70석 규모의 관람석을 갖춘 보문호 수상공연장이 들어섰다. 그간 콘텐츠 부족과 상설 공연단 유치 실패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4월부터 10월까지 각종 상설공연과 뮤직페스티벌 등을 열어 관광객 유치에 단단히 한몫을 하고 있다. 보문 수상공연장은 당초 경북도가 세계적인 공연 관광의 명소가 된 중국 항주와 계림의 수상공연을 벤치마킹해 만들었다. 세계적인 영화감독 장예모 감독이 연출을 맡아 화제를 모았다.대구 수성못에 세계적인 수준의 수상공연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수성구청은 수성못에 2천㎡ 규모의 수상공연장을 만들기로 했다. 1천700석 규모의 관람석도 설치한다. 수성못과 들안길을 연결하는 스카이브리지도 설치할 계획이다. 내년 설계 및 공사에 들어가 2024년 완공 예정이다.수성못 수상공연장과 대구의 국제뮤지컬페스티벌로 우뚝 선 ‘딤프’ 공연이 어우러지면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또 대구의 대표축제로 거듭난 치맥축제도 함께 개최하면 물과 맥주의 만남이 돼 더욱 가치를 높일 터이다./홍석봉(정치에디터)

2022-12-28

2022년을 돌아보며

김규인수필가 2022년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시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항상 빨리 흐르고, 시간만큼이나 많은 일이 일어났고 현재도 일어난다. 때로는 감동으로 다가오고 때로는 우리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그러한 일이 모여 우리네 삶이 된다. 2022년도 우리네 삶과 같이 기쁨과 슬픔으로 아로새겨진다.지난 3월의 대통령 선거와 동시 지방선거는 윤석열 정부를 탄생시켰고 지방 행정부의 장도 바뀐 곳이 많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대통령이 어떤 생각으로 나라를 이끄는가에 따라 국가의 운명은 달라진다. 흩어진 민심을 한곳으로 모아 나라의 발전을 이루기를 바란다.‘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세계무대에 한국문화를 빛내었다. 에미상 6개 부문 수상으로 한국 문화의 저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우리 전통의 놀이문화는 생각과 문화가 다른 이국에서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대단한 문화의 저력을 보았다.그 저력은 축구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12년 만의 월드컵 16강의 쾌거를 이룬 것이다. 중요한 것은 피파 랭킹이 높은 축구 강국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우리의 축구를 한 것이다. 지난 4년간의 땀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났고 우리의 참모습을 보여준 것 같아 기쁘다. 언제나 위기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우리 민족의 혼을 만났다.이러한 한국문화는 지구에서만 그친 게 아니다. 세계 7번째로 실용위성을 우주에 자체 기술로 발사에 성공했다. 실용위성을 우주로 보낼 수 있는 국가는 몇 나라가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명실상부한 우주 강국이 된 것이다. 이번 성공은 단순히 위성 하나를 우주로 보내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의 문화와 자긍심을 우주로 보내는 일이다.수백 명의 젊은 청춘을 죽음으로 내몬 이태원의 참사를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 한구석이 시리다. 한창 젊은 아이를 떠난 보낸 부모의 마음은 어떠할까. 광주의 아파트 외벽 붕괴 사고, 동해안의 산불, 중부지방의 물난리는 그렇지 않아도 힘든 시간을 보내는 서민들의 얼굴에 근심만 드리운다.카카오의 먹통은 디지털의 극과 극을 보여준다. 돈이 있어도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도, 버스를 탈 수도 없는 편리함 뒤에 숨은 절벽 같은 단절감을 맛보았다. 연결되었을 때는 말할 수 없이 편리해도 연결만 끊어지면 지옥 같은 세상이 된다.북한의 탄도 미사일 소나기 발사는 우리나라가 전쟁이 끝나지 않은 분단국가임을 느낀다.고물가, 고환율, 고금리의 3고는 서민들의 삶을 더 팍팍하게 만든다. 여기에 서민을 위한 정책을 편다고 올린 세금은 좀처럼 삶에 지친 서민들의 휘어진 허리를 아예 펴지 못하게 한다. 그런데도 살아내야만 하는 것이 서민들의 삶이 아니던가. 국민 절반의 감염과 약한 사람을 잡아간 코로나도 이겨내는 질긴 삶이 아닌가.2023년은 웃음 가득한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후세 인류학자들이 웃음을 잃어버린 새로운 종족으로 우리를 기록하지 않기를 바라며.

2022-12-28

순교자 김대건의 고귀한 여정

노승욱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죽었던 안타까운 일을 가슴에 품고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지난달 프란치스코 교황이 영화 ‘탄생’의 제작진을 만났다. 교황은 조선의 첫 가톨릭 사제였던 김대건 신부의 삶을 다룬 영화 ‘탄생’의 제작에 대해서 감사를 표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최근 일어났던 이태원 핼러윈 참사를 언급하며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다.바티칸의 뉴 시노드 홀에서는 영화 ‘탄생’의 시사회가 열렸다. 순교 176년 만에 김대건 신부의 이야기가 교황청에서 영화로 상영된 뜻깊은 순간이었다. 영화 포스터를 교황에게 전달했던 주인공 윤시윤 배우는 “배우 윤시윤이 바티칸에 온 것이 아니라 김대건 신부가 온 것 같다”고 소감을 말했다.김대건 신부는 탄생 200주년이었던 작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 선정됐다.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 외벽에는 그의 조각상이 설치될 예정이다. 우리나라 문화재청은 이번 달 20일에 경기도 안성시 미리내 성지에 있는 김대건 신부의 기념성당 및 묘역을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국내외적으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김대건 신부를 영화 ‘탄생’은 어떻게 그려내고 있을까? 이 영화에서는 성직자와 근대적 지식인의 면모를 함께 보여주고 있다. 사제가 되기 위한 수업을 받으면서 김대건은 근대적 세계에 대해서 눈떴다. 외국어와 지리학에 대한 그의 지식은 당시 조선에서는 독보적인 수준이었다.김대건은 불어와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 라틴어 등 5개 외국어를 구사했다. 포교를 위해 그가 그렸던 조선전도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보다 16년이 앞섰다. 천주교 사제임이 드러나 투옥되었을 때는 조선 조정의 요청에 따라 세계 지리 개설서를 편찬해 주고 우리말로 된 세계 지도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조정의 관료 중에는 김대건이 갖고 있는 능력 때문에 그를 살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신분 제도가 붕괴될 것을 우려한 대신들의 목소리가 더 컸다. 결국 최초의 가톨릭 성직자 김대건에게 참수형이 내려졌다. 15세에 유학길에 올라 사제 서품을 받고 귀국해서 구원의 소망을 전하던 김대건은 25세를 일기로 고귀한 여정을 마쳤다.김대건 신부는 당시 조선에서는 허용되지 않던 세상을 꿈꿨다. 신앙과 신념의 자유가 있고 신분이나 남녀의 차별이 없는 평등한 세상을 염원했다. 천주(天主)에 대한 믿음과 사랑은 인간의 존엄성을 깨닫게 해 주었다. 영화 ‘탄생’은 순교자 김대건을 통해 자유와 평등, 인간의 존엄성이 잉태되는 또 다른 탄생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신학생 시절의 김대건이 잠시 머물렀던 필리핀 불라칸에는 김대건 성지가 조성되어 있다. 그곳에는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김대건 신부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성경의 말씀을 실천했다. 그는 희생이라는 씨앗을 통해서만 고귀한 가치가 열매 맺는다는 것을 종교와 시대를 뛰어넘어 보여주고 있다.

2022-12-28

서문시장 100년

우정구 논설위원 대구 서문시장은 전국적 명성이 있다. 조선시대부터 시장이 형성돼 대구, 평양, 강경 등과 함께 조선 3대 시장으로 손꼽혔다. 그때는 서문시장이 아닌 대구장이다.서문시장 이름은 조선시대 중반 경상감영이 들어서고 감영의 서문 쪽에 시장이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처음에는 성곽에서 300m 정도 떨어진 지금의 시장북로 오토바이 골목 일대가 시장이었다. 이후 1922년 일제가 공간이 좁다는 이유로 공설시장 허가를 내주면서 지금의 장소로 옮기게 한 것이 오늘에 이른다. 실제는 시장이 좁아서가 아니고 일제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을 막기 위한 구실이었다고 한다.서문시장은 큰장이란 명성 외에 큰불이 자주나 유명세를 탔고, 보수 거물정치인이 자주 찾는 장터로도 유명하다. 서문시장은 1952년 이후 여섯 차례 큰불이 일어났고 1960년에는 화마로 1천800여 개의 점포가 불타버렸다. 6년 전에도 4지구 점포 500개가 불타는 피해를 입었다.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 보수 정치인이 자주 찾아 ‘보수 성지’라는 별명도 있다. 올해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도 후보 자격으로 이곳을 세 번 방문했다. 당선 후에도 다시 한 차례 방문했다.전국 3대 큰장으로서, 화마로 시련의 역사를 이겨온 전통시장으로서, 대중정치의 중심으로 자리를 지켜온 서문시장이 내년이면 이전 100년을 맞는다. 긴 역사만큼 하루에도 아직 수만명의 사람이 이곳을 찾아 전통시장으로서 활력과 매력을 유지하고 있다.재래시장은 비록 물건을 주고 팔지만 사람끼리 부대끼면서 인정을 느끼고, 삶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어 아직도 많은 사람이 발길을 주는 곳이다. 서문시장이 100년 역사를 이어온 것도 이런 휴머니티가 있기 때문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12-27

경북대에 산업단지… 신선한 발상이다

심충택 논설위원 지난주 경북대학교 캠퍼스에 산업단지가 들어선다는 놀라운 뉴스가 나왔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대학에 웬 산업단지’라는 느낌이 퍼뜩 들긴 했지만, 대구도심에 대학과 기업이 공존하는 공간이 처음으로 생긴다는 측면에서 발상의 전환이 기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광역시가 마찬가지지만 대구도심에는 현재 빈땅이 거의 없어 모든 산업단지를 외곽에 조성할 수밖에 없다.이 때문에 접근성이 문제가 돼 구인난을 겪는 공단기업들이 많다. 대학 입장에서도 유휴지에 기업을 유치해 산학협력을 강화하면 예상하지 못한 성과들이 나올 것이다.경북대는 지난해 4월 정부가 2년 전부터 추진해온 ‘캠퍼스 혁신파크’ 공모사업에 선정된 후, 그동안 혁신파크(첨단산업단지)를 조성하기 위한 준비작업을 해 왔으며 최근 정부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캠퍼스 혁신파크 사업은 대학을 지역혁신성장 거점으로 육성하자는 취지에서 법률 제정을 거쳐 지난 2020년부터 시작됐다.경북대는 오는 2026년까지 학내 약 3만㎡ 부지에 전자부품 제조업, 정보서비스업, 컴퓨터 프로그래밍 등 첨단산업 업종을 유치해 ‘인공지능(AI)·정보통신기술(ICT)·창업’ 클러스터를 조성할 계획이다. 정부는 국비와 지방비를 보조해 기업이 입주할 산·학·연 공간을 조성하며, 중소기업도 저렴한 임대료로 업무공간을 마련할 수 있게 할 방침이다. 사업시행자는 대학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다.정부가 캠퍼스 혁신파크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지방소멸위기 때문에 나온 아이디어이긴 하지만, 국가 또는 일반산업단지 성장모델이 시대에 뒤떨어진 탓도 크다. 일부 선진국은 대학캠퍼스를 산업단지로 활용하는 정책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영국은 캠퍼스안에 UEZ(University Enterprise Zone)라는 산학협력 공간을 마련해 두는 대학이 많다.대학들은 이 공간에 첨단 산업이나 스타트업 기업을 입주시켜 학내 연구진과 함께 RD 사업을 추진하며, 지역발전의 구심체 역할을 한다. 미국 뉴욕주의 경우에는 지난 2013년부터 대학 캠퍼스에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인센티브로 세금 면제 특례제도 등을 시행하고 있다.우리나라 대학, 특히 비수도권에 있는 대학들은 앞으로 학생유치 경쟁 등에서 살아남으려면 경북대처럼 ‘산업캠퍼스’로 변신할 필요가 있다. 국가·일반 산업단지도 마찬가지다. 대학분교나 분원, 연구소, 도서관, 문화센터, 쇼핑센터 등을 유치해서 복합적인 기능을 하는 공간으로 바뀌어야 한다. 앞으로 산업단지는 일하러만 가는 곳이 아니라, 공부하고 일하고 즐기는 콘셉트로 가야 청년과 기업을 유인할 수 있다.경북대에 들어설 산업단지는 새로운 산·학협력 패러다임에 적합한 이상적인 대안이 될 가능성이 있다. 기업은 고급인력 유치에 유리한 대구도심에 저렴한 입지공간을 마련할 수 있고, 경북대는 유수기업을 캠퍼스에 유치해 혁신 플랫폼으로 활용할 수 있다. 경북대 혁신파크가 청년 일자리 창출과 창업기업의 확산 역할을 잘 수행해서 비수도권 지역발전의 성공 모델이 되길 기대한다.

2022-12-27

대구시 일자리 정책, 실질 성과로 답해야

대구시가 오는 2026년까지 고용률 70%를 목표로 일자리 정책에 강력 드라이브를 거는 ‘민선 8기 일자리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홍준표 대구시장 임기 내에 고용률은 70%, 청년고용률 45%, 취업자 수 117만명 달성을 목표로 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올해 잠정치보다 고용률 3.2%포인트, 청년고용률 3.4%포인트, 취업자 수 4만9천명이 각각 늘어나는 수치다. 대구시가 일자리 증가 폭을 수치로 구체화한 것은 일자리 창출에 대한 강한 의지와 자신감을 드러낸 것으로 보여 기대감 또한 크다. 대구는 지난주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지역소득’에 따르면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이 29년째 전국 꼴찌로 나타났다.지역내총생산 규모가 61조원으로 전국 비중이 고작 2.9% 수준이며, 1인당 개인소득은 전국 17개 시도 중 10위다. 새삼스럽지 않은 통계지만 대구경제의 취약성이 또한번 드러났다. 오랫동안 섬유산업 중심으로 대구경제를 끌고 왔으나 경제 흐름이 바뀌면서 섬유업이 쇠퇴하고 지금은 대구를 이끌어갈 만한 앵커기업이 사실상 없다. 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대기업 유치를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한번도 실천된 적은 없다. 수도권으로 집중된 국가 정책으로 지방이 소외되는 측면도 많지만 상대적으로 타 도시와 비교해도 대구경제는 앞서 수치에서 나타났듯이 빈약한 게 사실이다.파워풀 대구를 내세운 홍 시장 체제의 출범으로 대구경제 회복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감이 커졌다. 정치적 중량감과 광역단체장 등 다양한 경험 등이 대구경제를 잘 이끌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 대구시 민선 8기 일자리 종합대책은 일자리 창출의 패러다임이 과거와 달라졌다는 점에서 더 큰 기대감을 준다. 일자리 정책이 공공재정에 의존하지 않고 민간산업 중심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바람직하다. UAM(도심항공교통)과 로봇, 헬스케어, ABB 등 5대 신산업 육성과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배후단지 내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은 과거와 다른 신선감이 있다. 홍 시장의 말대로 유망기업과 좋은 일자리들로 대구가 채워져 활력 넘치는 도시가 되길 희망한다.

2022-12-27

동해안시대 열 ‘영일만대교 설계’ 착수된다

포항을 비롯한 경북동해안 지역의 미래를 밝힐 영일만대교 건설사업이 실질적으로 시작된다. 새해 예산에 정부와 국회가 설계비 50억원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영일만대교 건설과 관련해 그동안 국회에서 일방적으로 예산을 책정한 적은 있지만, 정부 주도로 예산이 반영된 것은 처음이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처음으로 정부가 예산을 반영한 것은 사업을 실질적으로 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보면된다”고 밝혔다. 포항시는 새해들어 노선확정과 함께 연말께는 한국도로공사 예산을 포함해서 설계를 발주할 계획이다. 영일만대교 건설 설계비는 약 200억원이 필요하며, 대교의 본격적인 공사는 2025년쯤 들어간다.포항시 남구 동해면에서 북구 흥해읍까지 전체 길이 18㎞의 바다를 가로지르는 영일만대교 건설사업은 동해안 일대 지방자치단체의 해묵은 숙원사업이다. 이 사업은 지난 2008년 광역경제권발전 30대 선도프로젝트에 선정됐지만, 14년째 논의상태만 계속됐다. 영일만대교가 완공되면 포항∼영덕 고속도로(내년 개통예정)와 이미 개통한 울산∼포항 고속도로를 연결해 동해안 일주도로 차량 흐름을 원활하게 하고, 동해안 일대 관광과 물류이동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특히 동해안지역 균형발전에도 크게 공헌할 것으로 보인다. 경북도와 포항시는 새해예산으로 포항∼영덕 고속도로 건설사업비 2천821억원을 확보했다.영일만대교에 들어가는 총사업비는 현재 1조6천189억원 규모로 추정되고 있다. 당초 경북도와 포항시는 기존 고속도로와 연결시키는 영일만 전 구간에 해상교량을 놓을 방침이었으나 군 당국의 반대로 무산됐다. 설계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일부 구간을 해저터널로 건설하거나 우회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이번에 정부 주도로 영일만대교 설계비 예산을 확보한 것은 경북도와 포항시 공직자들의 기획력과 끈질긴 설득 작업, 그리고 포항지역 정치권(김정재·김병욱 국회의원, 시·도의원)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앞으로 영일만대교 건설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돼 경북 동해안의 해양관광시대를 견인하길 바란다.

2022-12-27

계묘년 새해가 기대되는 이유

백인규포항시의회 의장 다사다난했던 2022 임인년 한 해가 저물고 있다.어느 한해 ‘다사다난’이라는 수식이 붙지 않은 해가 없지만 올해는 유독 다사다난이라는 표현을 써야 할 것 같다.지난 7월 제9대 포항시의회가 ‘신뢰받는 의정, 힘이 되는 의회’를 기치로 새롭게 출범했다. 시민들이 열망하는 지역경제 활성화, 지속가능한 지역발전, 그리고 본격적인 지방자치 실현 등 해결해야 할 현안들이 산재해 있는 상황 속에서 제9대 포항시의회는 반드시 하나가 돼야만 했다.상임위원장 선거과정에서 잠깐의 불협화음이 있기도 했지만, 소통과 협치로 포항시의회는 원팀이 되었다. 원구성 이후 취약현장인 장애인재활작업장 방문을 시작으로 다양한 민생현장과 유관기관을 방문해 시민과 소통하며 시민과 지역을 위해 쉼없이 달려왔다.포항시 침수방지시설 설치 지원에 관한 조례안, 포항시 군용비행장·군사격장 소음대책지역 및 인근지역 주민 지원에 관한 조례안 등 시민 중심의 조례를 발의하고 시정질문과 5분 자유발언을 통해 시정에 대한 견제와 제도 개선, 대안 제시에도 앞장섰다. 또한, 포스코지주사·미래기술연구원 포항이전 및 상생협력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포항이전 및 상생협력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하고 쌀값 폭락 극복 및 가격안정 방안 마련 촉구 건의문, 태풍 힌남노 피해 지역산업 정상화를 위한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 지정 촉구 결의안 등을 통해 당면 현안 해결에도 선두에 섰다.특히, 지난 9월 포항을 강타한 태풍 힌남노 피해복구와 일상회복을 위해 총력을 다했다. 사전 긴급안전 대책회의를 통한 조기대응은 물론 임시회 일정 단축, 시정질문 연기, 행정사무감사 취소 등을 통해 태풍 피해복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피해 현장에서 여러 날 복구 활동을 펼쳤고, 공동주택관리 조례안을 개정하는 등 피해 복구와 항구적 대책 마련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예산심사 또한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19와 태풍 피해에 대처하고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예산, 포항시의 미래 100년을 위한 미래 신산업 예산, 재난·재해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안전도시 예산, 사회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복지 예산을 중점적으로 면밀히 살펴 심사했다.계묘년 새해, 우리 포항시의회는 지역발전과 시민복리 증진을 위해 소통과 협치로 활발한 의정활동을 펼치고, 의원 연구단체 구성, 의원연수 등을 통해 정책역량과 전문성 강화를 위한 노력도 해나갈 예정이다. 포스코홀딩스 및 미래기술연구원 포항이전, 영일만대교 건설, 연구중심 의과대학 설립, 배터리 특구 지정 등 현안을 하나하나 극복하며 민생경제를 더욱 활성화시켜 지역발전을 이뤄나갈 계획이다.‘중력이산(衆力移山)’, 모두가 힘을 합하면 태산도 옮길 수 있다고 한다.올 한해 코로나19와 태풍피해, 경기침체 등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다가오는 새해는 포항시의회를 비롯한 50만 포항 시민 모두가 힘과 지혜를 모아나간다면 지역 현안들을 슬기롭게 해결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계묘년 새해가 기대되는 이유이다.

2022-12-27

생태중심주의와 포스트휴먼 시대

이명균 창원대 명예교수 산업화 이후 인간은 자연을 이용과 지배의 대상으로 여기고 과학기술 가능성을 강조·자랑하면서 자연을 함부로 개발·파괴해왔다. 그 결과 오염과 환경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인간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게 되었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생겨난 생태중심주의(ecocentrism) 관점은, 인간은 자연과 별개 존재가 아닌 자연의 일부분일 뿐이라고 여기며, 인간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보다 전체 자연생태상황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이란 힘든 기간을 맞으면서 인간들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체는, 심지어 바이러스까지도,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전체가 강한 네트워크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현대 환경운동 창시자 레오 폴드는 ‘생태계 전체를 도덕적 고려 대상으로 여기는 관점에서 지구의 도덕공동체 범위를 동식물뿐만 아니라 물과 흙도 포함해야한다’고 주장한다.앞으론 이러한 생태인식에 ‘포스트휴먼’개념이 추가될 전망이다. 포스트휴먼이란 인간 다음 세대의 인간이라는 뜻으로 인간이라는 종(種)이 아닌 새롭게 창조된 인간 형태를 지칭하는 것이다. 이는 몇 백만 년 지속되어온 호모사피엔스라는 생물학적 진화가 아닌 과학과 기술의 힘으로 진화된 형태의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해체되는 상태다. 단순히 자연을 대상으로 했던 인간의 기술영역이 이제는 기술이 인간을 향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미래에 예상되는 ‘슈퍼인공지능(AI)’은, 전문가들에 의하면, 인간을 둘러싼 문제들의 복잡성과 그 복잡성이 야기하는 여러 가지 위협적 사항들을 정확히 인지하고 그 위협을 제거할 목적으로 개발될 것이다. 한편 AI는 인간의 명령에 따라 타율적으로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명령 이전에 인간이 원하거나 필요한 것을 인간보다 먼저 파악하여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이러한 혁명적 변화과정에 따라 기존 인간관의 변화와 함께 새로운 상상력이 요구된다. 앞으로는 AI를 두려워하고 거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며 어떻게 대처·수용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AI가 인간보다 더 창의적으로 구현하기도 하는 한편 거짓말도 천연덕스럽게 한단다. 따라서 AI가 만들어낸 화려한 결과물에 속는 일이 없도록 판단하고, 인간의 뜻에 따라, AI를 도움되게 활용할 수 있는 기획력과 통찰력을 기르는 장치가 필요할 것이며 이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몫이다. 따라서 이제 지구상의 다른 생물들뿐만 아니라 AI도 인간과 동등한 존재자격을 가진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인간이 반드시 세상의 주체가 되어 다스리고 통제하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것은 무익한 고집이며 오만이다. 인간과 AI 사이의 관계정립은 과학자와 철학·윤리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고민해야 할 문제이겠으나, 무작한 필자의 생각엔, 다수의 인류에게 유용하다면 AI로부터 통제받는 부분도 수용하는 새로운 생태주의 감수성으로 나아감이 바람직하다. AI에 대해 나쁜 마음을 품거나 욕심을 내지 않으면 인간이 인간을 해치는 것 이상으로 AI가 인간에게 해를 가하진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여의도 역할이 AI로 대체되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2022-12-27

작고 연약한 것의 힘

세계적인 거장 파보 예르비가 도이치캄머필하모닉을 이끌고 내한했다.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이 협연자로 함께 섰다. 12월 13일 경기아트센터, 12월 15일 서울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을 관람했다. 2022년 나의 마지막 클래식, 30대의 마지막 음악이었다.1부에서 도이치캄머필과 클라라 주미 강은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61번을 협연했다. 그런데 늘 강렬하던 강주미의 광휘가 전처럼 빛나지 않았다. 무대에 입장할 때 표정은 밝고, 몸짓은 풍부하며, 소리는 깊고 섬세했다. 그런데 빛만 차분해졌다.일부러 빛을 줄인 게 아닐까. 클래식 연주자의 이데아는, 자신의 천재성은 사라지고, 작곡가의 위대함만 나타나는 순간일 것이다.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는 바이올리니스트의 화려한 기교보다 전체적인 조화와 서정성을 강조한 작품이다. 베토벤 이후 비르투오소 시대에 카덴차가 만들어져 붙었다고 한다. 모든 예술작품은 완성되는 순간, 소유권이 창작자에서 향유자로 이전되므로 베토벤 역시 불가침의 신화는 아니다. 새로운 해석과 파격이 허용되는 것이 클래식의 역설적인 매력이다. 하지만 연주자가 작곡가 위에 자신을 올려두려 할 때 해석은 탐욕이 되고, 원작의 가치는 훼손된다.‘나’를 지우고 ‘베토벤’을 부조(浮彫)시키는 것. 요하임, 크라이슬러, 이자이 등 위대한 비르투오소들에 의해 카덴차가 붙으며 새로운 해석들이 추가된 곡을 연주하면서도 강주미는 1806년 베토벤이 소망한 ‘조화’를 완성하기 위해 스스로 빛을 줄였다. 그러고 보니 무대 앞이 아닌 오케스트라 안으로 들어가 연주하고 있었다. 현란한 카덴차 중에도 빛은 은은해서 세거나 튀지 않았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1악장 중반 여리디여린 피아니시시모로 총천연색 같이 선명한 음을 내면서 깊은 비브라토까지 아우르며 투티와 합해지는 순간이었다.발레리는 “수단 가운데 가장 손쉬운 것은 강도(剛度)다. 왜냐하면 다른 말보다 강한 말을 쓰는 데 더 많은 힘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 피아노보다 투티나 포르티시모를 쓰는 데, 정원보다 우주를 쓰는 데 더 많은 힘이 드는 건 아니니까”라고 했다.모두들 크게 외치고, 큰소리로 말하는 시대다. 강하고 센 것들만 살아남는 세상이다. 큰 나무들로 울창한 숲에서 풀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를 들어본 적 있나? 캄캄한 그늘에서 침묵과 입 맞추는 작은 빛을 본 적 있나? 강주미의 연주에서 나는 작고 섬세한 것의 힘을 느꼈다. 어깨와 등의 잔근육들마저, 금빛 드레스의 주름들마저 모두 작은 것, 여린 것을 향해 뻗어가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은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아름답고, 연약한 것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주를 이루는 중이다. 나는 가장 여린 음에서 가장 큰 마음을 들었다. 그것은 베토벤 원본의 위대함, 그 조화로움에 대한 존경일 것이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도이치캄머필은 챔버오케스트라다. 교향악과 실내악의 중간 형태라 할 만큼 몸피가 작다. 대형 오케스트라의 절반 정도인 40여 명이 무대에 올랐다. 파보 예르비의 악단 구성 역시 작고 섬세한 힘을 지향하는 듯하다. 이들의 연주에서 나는 어떤 다정함을 느꼈다. 연못에서 물고기를 옮겨올 때 물고기만 꺼내는 게 아니라 물과 부들과 이끼와 연잎과 소금쟁이와 돌까지 함께 ‘떠’ 오는, 그런 류의 다정함이다. 마지막 앵콜인 시벨리우스 ‘축제의 안단테’에는 세상을 둥글게 감싸 안는 숭고하고 선한 힘이 있었다. 현악 파트만으로도 대형 오케스트라의 짙고 웅장한 울림을 만들어냈다. 그 울림을 나는 ‘위로’라고 부르고 싶다.“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소리에 묻혀/ 내 울음 아직은 노래 아니다/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벽 좁은 틈에서/ 숨막힐 듯, 그러나 나 여기 살아 있다/ 지금은 매미 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 그 소리 걷히고 맑은 가을이/ 어린 풀숲 위에 내려와 뒤척이기도 하고/ 계단을 타고 이 땅 밑까지 내려오는 날/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도/ 누군가의 가슴에 실려 가는 노래일 수 있을까” (나희덕, ‘귀뚜라미’)세상이 온통 하얀 별천지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패러디하자면, 음악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새해에도 음악은 계속 흐를 것이다. 우리들의 마음도 그럴 것이다. 작고 연약한 것들을 향해, 흰빛이 되어.

2022-12-27

가을배추와 겨울나기

겨울은 기다림이 있기에 지루하지 않다. /언스플래쉬 겨울 냉장고에 절대 떨어지지 않는 식재료가 있다. 바로 가을,겨울 대표 채소인 배추다. 배추의 어원은 중국에서의 ‘백채’가 변하여 배추가 된 것인데, 추운 겨울을 견뎌내는 소나무의 기운을 닮은 채소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11~12월에 출하되는 가을배추는 잎 부분이 더 달고 아삭하단 특징을 지니고 있다. 한 겹씩 뜯어 생으로 아삭아삭 베어 먹는 맛도 훌륭하지만 찌개나 무침, 전, 볶음 등 다채로운 재료와 함께 무한으로 활용하여 먹을 수 있는 재미가 큰 식재료다.배추는 겹겹이 쌓여 하나의 덩어리 진 둥근 형태를 띠고 있다. 추위로부터 바짝 웅크린 자세나 개어둔 겨울 이불의 모양 같기도 하다. 무게는 잎으로 속이 꽉 차 있기 때문에 한 손으로 들었을 때엔 제법 묵직하다.배추를 칼로 반을 가르면 구수한 향이 퍼지며 숲을 닮은 노란 잎이 빽빽이 드러낸다. 손금 마냥 쭉 뻗어 있는 잎맥은 얇고 가늘수록 맛이 좋다. 노란 잎을 손으로 하나씩 뜯어 물로 씻어낼 때엔 부드럽게 흔들리지만, 반대로 배추의 밑동과 뿌리는 무척 하얗고 단단하다는 점도 재밌다.배추는 따로 손질법이 필요 없을 정도로 손질이 편리하고 요리할 때 손이 적게 가서 좋다. 또한 배추는 뿌리부터 잎까지 버릴 부분 없이 먹을 수 있는 알뜰한 재료다. 칼륨, 칼슘, 철분 등을 풍부히 지니고 있으며 특히 칼슘은 밥이나 고기 등의 산성 식품을 빠르게 중화시키어 혈압을 낮추는 데에 도움을 준다. 바깥 부분의 푸른 잎엔 비타민 C가 풍부히 분포되어 있어, 겨울날 면역력 강화와 감기 예방에도 좋다. 특히 배추의 비타민C는 불을 사용하여 열을 가해도 손실률이 낮기 때문에 끓이거나 튀겨도 충분히 비타민C를 섭취할 수 있단 이점이 있다.찬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배추를 넣은 된장국을 만든다. 멸치 육수와 된장, 두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재료인 배추만 있다면 빠른 시간 안에 간단히 끓여 낼 수 있다.익숙한 된장국에 배추를 넣으면 더 담백하고 시원한 맛이 난다. 배춧국은 입에서 부드럽게 넘어가 속을 금방 편안하고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헛헛한 겨울의 계절을 포근히 감싸는, 수수하면서도 투박한 배추의 맛은 다른 계절보다 특히 겨울에 잘 어울린다.2022년 겨울이 찾아왔다. 갑작스레 추워진 날씨 탓에 잔뜩 몸을 움츠리곤 빠르게 걷고 하지만, 집 근처 나무들을 마주할 때엔 걸음을 멈추고선 가지를 자세히 살펴보곤 한다. 겨울철 나뭇가지를 잘 살펴보면 동그란 봉오리가 작게 맺혀 있는 걸 볼 수 있다. 흔히 겨울눈이라 불리는데 나무가 다음해의 봄의 삶을 대비하여 만들어놓는 일종의 예비 꽃과 잎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나무 종류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의 겨울눈을 만든다는 것인데, 목련나무는 여러 겹의 껍질을 쌓아 튤립 모양 형태고 두르고 바깥 부분엔 털을 이용하여 겨울눈이 상하지 않도록 보호한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칠엽수는 끈적한 진액을 통해 겨울눈을 감싸 매서운 찬바람으로부터 겨울눈을 보호하며 겨울을 보낸다. 얼핏 보면 가지 위로 작은 알배추가 피어난 듯한 모양이다. 이듬해를 바라보는 겨울의 눈이라니, 씩씩하게 맺힌 겨울눈을 마주하다 보면 겨울의 찬바람을 뚫고선 집을 향해 갈 수 있는 굳센 기운을 얻을 수 있다.잔뜩 움츠린 겨울은 생장을 멈추고선 나 자신을 보호하며 잠시 잠들지만, 봄이 오면 기다렸다는 듯 겨울눈 속에 꽁꽁 잠들었던 꽃과 이파리를 크게 펼쳐낼 것이다. 이듬해의 찬란한 봄을 위한 겨울의 기다림은 충분히 유의미하며 가치 있기에 지루하지 않다. 키 큰 나무들이 즐비한 가로수를 걷다보면 나무의 몸통 주위로 뜨개로 만든 겨울옷이 둘러져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래피니 니팅(Graffiti Knitting)’이라는 용어로 털실로 뜨개옷을 짜서 나무나 동상 등에 입히는 작업이다. 그렇게 겨울옷을 입은 나무들은 겨울 내내 얼지 않고 온기를 품고선 살아간다. 형형색색 뜨개 옷을 입은 나무들이 거리를 지키고 서 있을 때, 그 사이를 가로지르며 걸으면 무언가 위로를 받는 기분이 든다.어둡고 추운 막막한 겨울이므로 무언가를 자꾸만 나눌 수 있는 용기가 생기게 되고 나눔과 함께의 가치가 실현되었을 때,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해보게 된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정말 더는 춥지 않다.

2022-12-27

권력의 위기, 신뢰의 위기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한 해를 마무리하는 세밑에서도 우리의 정치는 여전히 안개 속이다. 정치의 실종은 권력의 위기이고, 권력의 위기는 신뢰의 위기를 의미한다. 집행권력을 가진 여당이나 입법권력을 가진 야당이나 권력이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여야 정치지도자들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약하기 때문이다.정치인들은 ‘권력의 획득·유지·확대’를 위해 수많은 거짓말들을 한다.이 가운데에는 ‘용서받은 거짓말’도 있고, ‘용서받지 못한 거짓말’도 있다. 미국의 트럼프(D. Trump) 전 대통령은 4년 동안 ‘3만573번의 거짓말’(워싱턴포스트)을 하면서도 임기는 채웠으나, 닉슨(R. Nixon) 전 대통령은 워터게이트(Watergate)사건을 은폐, 조작한 거짓말이 탄로나 재임 중에 하야했다.우리의 정치지도자들은 어떤가? 지난 대선 결과가 보여준 윤석열과 이재명의 ‘간발의 득표 차이’는 두 후보가 국민으로부터 평가받은 ‘간발의 신뢰 차이’를 말해준다. 대장동사건으로 최측근들이 연이어 구속되었는데도 자신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처럼 사과 한마디 않는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나, 외교무대에서 불거진 비속어 논란을 덮으려고 말 바꾸기와 우기기로 일관하다가 그 책임을 언론으로 돌린 윤석열 대통령이나 ‘신뢰의 수준은 도토리 키 재기’이다.공자가 “백성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가 바로 설 수 없다(無信不立)”고 한 것처럼, 정치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국민의 신뢰다. 신뢰란 무엇인가? 믿음을 뜻하는 신(信)은 ‘사람(人)+말(言)’로 구성되어 있다.사람이 말한 바를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 즉 ‘언행일치’가 신뢰다. 스스로 ‘무신불립’을 역설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한 것이나, 공정·정의·평등을 약속했던 문재인 정권이 심판받은 것은 모두 국민을 배신했기 때문이었다.윤석열 대통령의 성공 역시 국민의 지지여하에 달려 있고, 국민의 지지율은 신뢰도와 궤를 같이한다. 낮은 지지율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윤 대통령은 당선 인사에서 “공정과 상식을 바로 세우고 통합의 정치를 하라는 간절한 호소를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다.하지만 대통령이 보여준 정치행태는 공정과 상식에 부합되지 않는 것들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적폐청산과 정치보복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과 대립으로 통합의 정치는 말뿐이었다.대통령의 약속이 거짓으로 드러나면 민심은 떠나고 정권은 위기를 맞는다. 정치의 성공은 신뢰로부터 나오는 것이고, 국정의 동력도 역시 국민의 신뢰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내 탓을 남 탓으로 돌려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비겁한 권력, 민심을 외면하는 권력 지상주의 정치로서는 결코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거짓말’이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로 미화되는 탈진실시대의 지도자는 ‘권력과 신뢰의 관계’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정치적 공인의 권력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목적이 된 권력은 국민의 신뢰를 잃음으로써 마침내 권력도 잃게 된다.

2022-12-26

당권경쟁 들어간 여당, ‘세가지 조건’ 명심하길

국민의힘이 최근 차기 전당대회 룰을 확정하면서 당권 레이스가 본격화하고 있다. 현재까지 당 대표 출마선언을 했거나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은 권성동·김기현·안철수·윤상현 의원과 나경원·유승민 전 의원 정도다. 유승민 전 의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친윤(윤석열)계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새로운 후보가 나타나지 않으면 여당은 친윤계가 주도하는 ‘2024 총선’ 체제로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벌써 내년 1월 후보 등록을 전후해서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친윤계가 후보정리를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국민의힘은 이달 초 장제원 의원이 주도하는 ‘국민공감’이 출범하면서 친윤계가 당을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공감에는 여당의원 115명 가운데 7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전당대회 룰 개정에 따라 당 대표는 100% 당원투표로 결정되기 때문에, 돌발변수가 나타나지 않는 한 국민공감이 미는 당권주자 중 한 명이 대표가 될 공산이 크다.국민의힘 지지자들이 우려하는 부분은 현재 거론되는 당권주자 중에서 민심을 두루 얻는 인물이 없다는 점이다. 주호영 원내대표가 지난 3일 차기 전당대회 당 대표 출마 후보군을 일일이 언급하며 “다들 성에 차지 않는다”고 한 말은 핵심을 찌른 것이다. 국민의힘이 ‘2024 총선’에서 야당을 이기려면 주 원내대표가 대안으로 내놓은 당 대표 조건론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가 제시한 세가지 조건은 수도권 민심을 장악할 수 있는 인물, 청년층 지지를 얻는 인물, 안정적인 공천을 할 수 있는 인물이다. 국민의힘 지지자들이면 누구나 수긍하는 조건들이다.만약 현재 예상되는 것처럼, 친윤계가 당권을 잡는다면 국민의힘은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진영논리에 휩싸인 보수지지층에 의존하는 폐쇄적인 정당이 될 수밖에 없다. 여야 진영간의 강대강 대치는 결국 지지층 결집을 더욱 공고히 하고, 2024년 총선판세를 일찌감치 굳힐 가능성이 있다. 여당이 차기 총선에서 승리를 거두려면 지난해 6·11 전당대회 당시와 같은 역동적인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2022-12-26

새해 TK 국비 예산… 미래성장 마중물 돼야

국회가 638조7천276억원 규모의 새해 예산을 우여곡절 끝에 여야합의로 의결했다. 이에 따라 대구시는 7조8천222억원, 경북도는 10조9천514억원의 국비를 확보하게 됐다. 대구는 5천70억원(6.9%), 경북은 9천339억원(9.3%)을 올해보다 더 많이 확보함으로써 국비 확보에 비교적 선방했다는 평가다.집권 여당 최대 지지기반으로써 국비 확보에 선방한 것에 만족하지 말고 대구와 경북은 내년도 국비예산을 지역의 미래성장 동력으로 활용하는 데 본격 준비해야 한다. 이번에 확보된 국비는 앞으로 몇 년간 대구와 경북의 발전을 견인할 주요 사업의 마중물이 되기 때문이다.특히 이번에 확보된 국비예산 가운데는 지역의 숙원사업으로 지목되는 굵직한 사업이 많이 포함돼 있다. 확보된 내년도 국비예산으로 관련사업을 잘만 꾸려간다면 지역의 미래먹거리 확보에도 큰 보탬이 될 것으로 짐작이 된다.대구는 로봇·ABB·반도체·미래모빌리티·의료건강관리 등 미래 5대 첨단산업분야 예산이 많이 반영된 것은 대구를 첨단산업 허브도시로 성장할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의미있는 성과다. 대구시민이 예의주시해도 될만한 변화다. 또 대구산업선 철도와 대구광역권 철도건설 등 인프라 투자와 금호강 르네상스 프로젝트 사업예산이 반영된 것도 주목할만하다.경북은 오랜 숙원인 영일만대교 건설을 위한 설계비 50억원이 반영됐다. 내년부터 이 사업이 본격화되고 멀지 않은 장래에 사업이 완공되면 동해안 일대는 교통물류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새로운 관광명소로 전국적 명성을 얻게 된다.특히 소형모둘원자로(SMR)를 중심으로 하는 경북의 혁신원자력 관련예산이 대거 확보됨으로써 원자력 산업의 본거지로서 경북의 역할이 커진다. 대표적인 것이 국내 원자력 연구의 중추적 역할을 할 혁신원자력기술연구소에 대한 예산 확보다.“구슬이 서말이라도 잘 꿰야 보배”라는 말처럼 국비 확보가 지역의 발전과 미래성장 동력으로 이어질 수 있게 관련기관의 애착과 노력이 필요하다. 대구·경북의 도약을 기약할 예산 운용의 묘를 찾아야 할 때다.

2022-12-26

동장군의 위세

홍석봉정치에디터 동장군은 혹한을 의인화한 말이다. 특히 겨울철에 주기적으로 남하하는 시베리아 차가운 기단을 말한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를 가리키는 ‘동장군(冬將軍)’은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실패에서 유래됐다. 60만 대군과 원정에 나섰던 나폴레옹은 전투에서 이기고도 추위 때문에 후퇴해야 했다.영국 언론은 나폴레옹을 꺾은 러시아의 추위를 ‘제너럴 프로스트(General frost)’라고 했다. ‘후유쇼군(冬將軍)’이라고 번역해 사용한 일본을 거쳐 한국에서도 동장군이라는 용어로 쓰였다.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때도 독일을 상대로 동장군 덕을 단단히 봤다.올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입 전쟁에서도 동장군이 영향을 미쳤다. 전쟁 초기에는 동장군이 우크라이나 편이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다시 겨울을 맞자 러시아가 유리해졌다는 소식이다. 동장군은 소련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동장군이 연말 한국을 덮쳤다. 지난 주말 대구의 아침 최저기온이 연이틀간 영하 10℃ 아래로 떨어졌다. 25일엔 올겨울 들어 처음으로 한강이 결빙됐다. 기상청은 동장군이 내년 초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예보하고 있다.전력 수요도 비상이다. 동장군이 위력을 떨치면서 전기 수요가 급증, 순간 최대 사용량이 연일 사상 최대치를 돌파했다. 예비율이 높아진 때문에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고 있다.호남과 제주에는 동장군과 함께 폭설이 덮쳐 교통망이 마비되다시피 했다. 비닐하우스가 주저앉는 등 피해가 적지 않았다. 미국에도 혹한·폭설·강풍을 동반한 동장군이 강타하면서 사망자가 속출했고 교통도 마비됐다고 한다. 수도관 동파 등과 농축수산물 냉해 방지 등 동장군 피해에 각별히 신경써야 할 때다./홍석봉(정치에디터)

2022-12-26

새로움을 위한 갈무리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어느덧 임인년 한 해도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다. 1년이란 시간이 어쩌면 잎새같고 책장같이 수많은 날들인데 벌써 한 해의 종점으로 치닫고 있다니, 새삼 세월이 빠름을 실감하게 된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아스라한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만감이 교차하고 희비가 엇갈릴 수도 있다.앞만 보고 달리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 보니 아쉽고 미진하거나 괄목할 성과도 있고 실패의 헛발도 디뎠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건재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스럽고 감사한 나날이 아닌가.시간이란 까마득한 옛날에서부터 아주 먼 미래까지 흘러가는 과객(光陰者 百代之過客)으로, 낮과 밤, 달과 해의 시간이 지나감을 하루, 한 달, 일년 등으로 구분해서 세월이라 칭하기도 한다. 즉, 주간이나 월간, 연도가 어떤 기간이나 구분 상 끊어진 듯 보이지만, 실제시간은 변함없이 흘러가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영속성을 가지고 있다. 무한정 계속되고 연결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변하는 것이 세상이고 세월이다. 그래서 시간의 씨줄과 공간의 날줄 속에서 사람들은 어떤 시간의 구획선에 이르러 뭔가를 정리하고 조금씩 변화되는 모습을 추구하게 되는지도 모른다.송구영신의 길목에 서면 누구나가 착잡하면서도 설레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다사다난한 지난날들을 무사히 지내왔다는 안도감과 함께 계획이나 목표에 대한 성취율 등의 상이로 저마다 희비의 쌍곡선이 그려지는가 하면, 새로이 다가올 날들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야심찬 도전과 새 출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해를 보낸다는 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한 해를 정리하고 마감한다는 것은 대나무의 마디처럼 계속적인 성장과 성숙을 위한 매듭이라 할 수 있다. 매듭이 튼실해야 쉽게 쓰러지거나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한 한 해의 매듭을 잘 짓기 위해 사람들은 하루하루 줄기차게(?) 살며 꿈의 도움닫기를 간단없이 해나가는지도 모른다.‘무던히 그어왔던/굽어진 계절마다//사르지 못한 가슴/그림자에 파묻히고//한 묶음 회억의 넋두리만/함성으로 울린다//길게 비낀 햇살지면/밝은 햇살 안겨오듯//산등성이 저 너머엔/흔들리는 꿈이 있지//수묵빛 연륜의 타래만/소리없이 감긴다’ -拙시조 ‘섣달의 황혼 속에’ 전문올해는 유난히 일도 많고 탈도 많았던 격변의 한 해가 아니었나 싶다. 조심스런 가운데 실외 마스크는 벗었지만 대선과 지선을 거치면서 여야의 자리바꿈으로 갈등과 대립의 골이 깊어지고, 힌남노 태풍의 강타로 많은 인명피해와 사상 초유의 제철소 침수라는 불가항력 앞에 아직도 신음하고 있는가 하면, 순식간에 꽃다운 청춘의 넋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 등 실로 어마무시한 일들로 점철되어 우울과 슬픔에 빠지게 하고 불안과 걱정의 소용돌이에 휘감겨온 것 같다.상황과 시간이 주는 교훈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새로움은 옛것을 본받아 만들어 내고(法古創新) 지혜는 성찰과 경험에서 우러나오니, 한 해의 아름다운 갈무리로 보다 새로운 날들을 준비하도록 하자.

2022-12-26

바람직한 직장생활, 성공 열쇠

장광일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어느덧 임인년 호랑이 해는 지고 계묘년 토끼 해가 다가오고 있다. 지인이 송년회 때 감사(Thank You)한다고 하면서 건배사로 “2022년 임인년 땡! 2023년 계묘년 큐!”라고 외쳤다. 참 멋진 건배사라고 생각하면서 이를 계기로 시간을 내어 올 한 해를 반성해 보고, 내년 목표를 수립하는 계획을 세워 보았다.이때 고민은 토끼처럼 지혜(智慧)롭고 영민(英敏)하게 직장생활을 할 순 없을까? 바람직한 직장생활은 무엇일까? 또한 컨설팅시 바람직한 모습을 달성하기 위한 개선 활동이었는가? 임기 웅변식의 개선 활동이었는가? 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립한 내용에 대해 연말연시를 맞아 바람직한 직장생활에 대한 소신을 전하고자 한다.바람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이다. 바람직은 ‘바람직하다’의 어근이고, ‘바람직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바랄 만한 가치가 있다’라는 뜻이다.인간의 내면에는 바람과 욕심의 양면성이 존재한다고 한다. 바람은 원하고자 하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그 만큼의 희생과 노력을 들여서 얻고자 하는 무언가를 바라는 상태를 의미하고, 욕심은 희생과 노력은 전혀 없이 얻고자 하는 무언가를 바라는 상태를 의미한다.욕심이 아닌 바람직한 직장생활을 위한 필수 팁(Tip) 3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바람직한 직장생활의 첫번째는 그 직업에 대한 주인의 직업관(職業觀)이다. 일반적으로 직업관의 세계는 마인드에 따라서 달라진다. 같은 일을 해도 하루살이 인생처럼, 먹고 살기 위한 나그네의 직업관이 있는가 하면, 그 직업을 통해 자신을 개발하고 나아가 자아실현을 이루는 주인의 직업관이 있다. 나의 직업을 스스로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직업관이 형성되는 것처럼 본인 스스로 그 직업에 대해 존중과 프라이드(Pride)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두번째는 그 직장의 현장을 보다 안전하고, 쾌적하고, 편리하도록 개선하는 개선혼(改善魂)이다. 개선하려면 현상과 원인을 철저히 알아야 하는 것이고, 개선할 때 자신이 알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즉시 실행하는 정신’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개선이 이루어지면 원복 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유지하는 것이다.세번째는 나부터 실천하는 즉각적 실행력(實行力)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처럼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그것을 쓸모 있게 다듬고 정리해야 가치가 있다. 즉 10초 아침 청소를 꾸준히 하는 작은 실천이 실천하지 않는 거대한 계획보다 더 낳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중국 작가 쑤린은 “당신이 이 직업을, 이 직장을 선택했다면, 당신의 선택의 결과가 가져올 이익이나 즐거움만을 누리려 할 것이 아니라, 당신의 선택에 대한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한 것처럼 그 직장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그곳을 개선하는 주역이 돼야 한다.내가 이 회사의 주인이다라는 생각은 물론 주인의 직업관, 개선혼, 그리고 즉각적 실행력의 3가지 열쇠를 지니고 실천하여 성공하는 삶을 스스로 만들어 가길 바란다.

2022-12-26

세밑 독서기

#1 근대 이후 한국에서 독서의 사유를 처음으로 전개했던 이는 우리가 이른바 해외문학파로 지칭하는 독문학자 김진섭이었다. 물론 조선시대에 학자로서 책과 독서에 대해 논했던 사람은 수도 없이 많지만, 근대적인 의미에서 독서와 서적, 서재와 장서에 대해 본격적으로 말했던 것은 그가 최초였다. 그는 서적의 취미와 독서의 즐거움을 예찬하면서, 독서를 중심으로 한 사유를 자신의 수필에 담아냈다.#2 세밑에는 너무 진지한 책보다는 가벼운 책이 좋다. 2020년에 작고한 존 르 카레의 스파이 소설 몇 권이라면 추운 겨울밤을 지내기 적절할 것이다. 그가 쓴 대부분의 소설은 영화화 돼 있어서 영화와 함께 읽어보기 좋다. 첩보스릴러의 고전이 된 ‘추운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나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등을 추천한다.한 해가 저물고, 다음 해를 맞이할 무렵이 되면, 지난 일 년 사람들과의 만남을 정리하듯, 그간 읽지 못해 아쉬운 책들을 떠올려보곤 한다. 늘 만나고 싶었다가 겨우 시간을 내어 만난 반가운 책들도 있지만, 도서관에서 진작에 빌려두었지만 결국 보지 못하고 기한이 되어 반납한 책들도 있다. 어떤 책들은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에 몇 번이나 넣었다가 끝내 주문하지 못하고 있다가, 이번 새해에는 꼭 읽어야지, 하며 다시 찾아 넣는 책들도 있다. 책이란 문자나 이미지로 만들어진 정보를 담고 있는 물성을 가진 미디어에 불과한데, 가끔은 그것이 사람 사이의 인연처럼 느껴진다. 한 해가 저물 때가 되면, 못다 한 인연의 끈들이 새삼스레 나를 불러 세운다. 세밑의 독서는 늘 그렇게 아쉬웠던 인연을 끄집어낸다.여름과 겨울의 차이가 뚜렷한 나라에 살다 보니, 계절 감각이란 것을 잊고 살기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어느 사이인가 우리는 계절에 점차 둔해지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세밑이라는 것이 어느 때부터 특별한 시기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관계가 계절을 따라 운행하지 않게 된 현상과 관련되어 있다. 빼곡한 수첩에 연락처를 옮겨적던 시절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예전보다 확실히 망년회나 신년회가 줄어든 지금을 보면, 우리의 인간관계들은 확실히 예전보다 계절을 타지 않게 되었다. 지금 우리의 인간 관계는 스마트폰의 단톡방 속에, 인스타나 페이스북의 팔로우 속에 들어 있어서, 그 유통기한은 지나치게 길거나, 혹은 지나치게 짧다. 세밑이라고 특별할 것은 없다. 마찬가지로, 한 해가 저물 무렵, 한 해의 일들을 떠올리고 못다 한 일들을 아쉬워하거나 새로운 일들에 대한 희망을 갖는 일도 조금 새삼스러워졌다. 하물며, 독서라면, 더욱 그렇다.하지만 그럼에도 이번 세밑에는 만나지 못해 아쉬운 인연을 떠올리듯, 읽지 못해 아쉬운 책들을 일부러라도 떠올리려 하고 있다. 우리가 거스르려 해도 우리는 1년을 주기로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지며 살아가고 있고, 우리의 생각과 책읽기도 1년을 주기로 멈추고 나아가기를 반복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다가올 새해에는 조금 더 좋은 책을 읽고, 조금이라도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타인에 대해 관심을 갖기 어려운 시대지만, 그러니까 더욱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한다.세밑의 독서기는 이렇게 늘 얼마간의 반성과 얼마간의 기대와 함께 한다. 지나간 한 해에 대한 아쉬움을 채우기 위해 그간 읽지 못했던 철학서들과 전공이론서를 잔뜩 빌려두고서는, 채 얼마 보지 못하고, 결국 냉전시대 독일에서 활동한 스파이의 활동을 다룬 소설을 읽고 있다.지금 내 앞에 놓인 책들은 문자를 잔뜩 담고 있는 물건이 아니라, 내가 언젠가 인연을 맺었던 사람과 같다. 나라는 존재가 내가 만났던 인연의 총합이듯, 내가 읽었던 책들의 총합이다. 하나, 하나의 점들이 이루고 있는 궤적을 따라 나의 사유가, 나의 존재가 비로소 자리 잡는 것이 아닌가. 가끔은 아쉬운 인연이 있듯, 아쉬운 책들도 있다. 그것이 삶이 아닌가.따뜻한 차를 한 잔 마시면서 늘 그렇듯 이번에는 읽어야지 하며, 아쉬웠던 책들을 주문하고 나서, 읽던 책들을 마저 읽는다. 독서에서 인생을 찾고, 철학을 말했던 이들처럼 거창한 독서의 사유는 아니지만, 동경과 환상, 아쉬움과 만남을 겪으며, 세밑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간다. 삶 역시 그렇게 흘러간다./송민호 홍익대 교수

2022-12-26

북극 한파와 해양생태계

“제트기류의 약화로 북극한파가 남하했다”북반구를 중심으로 한파가 맹위를 떨칠 때마다 기상 전문가들이 내린 진단이다. 특히 올해는 미국에 영하 50℃에 이르는 북극한파가 닥치면서 원인규명에 분주하다. 고립과 인명피해 소식까지 이어지면서 사실상 크리스마스 악몽에 가깝다. 전문가들은 대류권 상층부의 제트기류가 약해져 극도로 차가운 북극의 소용돌이가 남하한 것으로 판단한다. 다만 왜 제트기류가 약해졌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북극 온난화가 원인이라는 주장과 원인을 알 수 없다는 진단, 또 열대 태평양 해수면의 온도 상승이 영향을 끼쳤다는 등 다양하다. 문제는 최근 몇 년 사이 더 자주, 더 센 강도로 한파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기후변화가 아니라, 기후위기라는 말이 적합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당장 우리 바다도 영향을 받고 있다. 정부는 지난 21일 전남 함평만 해역에 ‘저수온경보’를 발령했다. 저수온경보는 수온 4℃ 이하가 3일 이상 지속되고, 전일대비 5℃ 또는 평년대비 2℃ 이상 하강할 때 내려진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서해안이 동해보다 더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충남의 가로림만에도 저수온주의보가 발령된 상태다. 연안의 수온이 낮아지면 당장 양식장의 피해가 예상된다. 양식어류는 저수온 상태에서 사료 섭취량이 감소하고, 면역력과 생리활성도가 저하된다. 한파가 길게 지속될수록 위험도는 더 커진다. 지난해는 저수온주의보가 한 번 발령됐다고 한다. 해를 거듭할수록 반복되는 횟수가 잦고 강도가 세지는 양상이 뚜렷하다.내년에는 또 다른 형태의 위험을 마주한다. 바로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수 방류다. 일본은 2023년부터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 쌓인 오염 원전수를 바다로 방류키로 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발생한 멜트다운(노심이 녹는 것)을 막기 위해 투입된 냉각수가 현재 보관 한계치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원전 오염수를 희석해 방류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여전히 삼중수소 등 피폭의 가능성이 농후하다. 일본 원전수가 방류되면 오염수는 먼저 해류를 타고 태평양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방류 후 대략 200일후 쯤 우리나라에 도달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수산물 오염 뿐만 아니라 바다 전체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 현재로서는 정확히 입증하기 어렵다.이에 우리 정부는 국제적인 협조를 통해 일본을 설득하고 있다. 다만 해양방류 외에 원전 오염수 보관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없어 장기화될 조짐도 보인다. 그 과정에서 일본이 해양방류를 강행할 경우 이를 막을 방도가 없다.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가 실제로 방류될 것을 대비해 해류의 이동통로인 북서태평양 해역 모니터링조사를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또 후쿠시마 인근에서 주입된 선박평형수의 방사능 오염 전수조사에 나선다고 한다. 후쿠시마에서 채운 선박평형수의 오염여부를 조사해 우리 연안 배출을 금지하기 위해서다.원전 오염수와 저수온 현상은 해양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원전 오염수가 해양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지만 피폭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저수온도 마찬가지다. 양식어류만 피해를 입는데 그치지 않는다. 열대와 아열대로 바뀌고 있는 우리 바다 생태계에 어떤 형태로든 흔적을 남길 것이다. 바다의 무한한 가능성이란 말은 역으로 우리가 그만큼 바다를 알지 못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바다를 둘러싼 변화가 극적일수록 그 여파도 급격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지난 33년간(1989년~2021년) 우리나라 해수면이 9.9cm상승했다고 한다. 기간을 넓혀 살펴보면 지난 62년 간 15.4cm가 상승했다. 최근의 기록에서 변동폭이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후변화는 앞으로 더 극적으로 다가올 확률이 높다.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의 상승 뿐만 아니라 연안침식도 이어지고 있어 태풍 등의 자연재해 앞에 바다는 그 어느 때보다 무섭게 변할 수 있다 정현미 작가 바다의 변화는 해양생태계의 변화로, 결국 우리 삶의 변화로 이어진다. 피폭된 수산물을 섭취하고 폐사한 양식어류의 찌꺼기가 가득 쌓인 바다를 마주할 수도 있다. 선제적인 대응과 체계적인 사후 관리가 필요하다.그래서 정부가 발표한 ‘수산물 안전성 조사 추진계획’이 더욱 빛을 발한다. 해수부는 지난 19일 수산물이 생산·저장·출하되기 전 단계부터 유해물질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서 말하는 유해물질은 중금속과 방사능, 동물용의약품, 패류독소 등이다. 즉, 동물용의약품이 수산물에 잔류할 경우를 대비하고. 방사능에 오염됐을 경우를 확인하며, 패류독소 발생지역을 좀 더 꼼꼼히 살펴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고의적이고 반복적으로 유해물질을 사용하는 양식장도 특별 점검으로 관리한다는 방침이다.기후변화는 앞으로 더 자주, 더 강하게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이번 북극한파도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북극한파가 휩쓸고 갈 우리 바다가 덜 다치길, 덜 상처입기를 희망하며 기후변화에 능동적인 대응하는 정부의 집단지성이 계속 이어지길 바라본다.

2022-12-26

잘못을 고치는 데 주저하지 마라

김진국 고문 2022년 마지막 주가 시작됐다. 정말 큰 일이 많았다.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가 있었고, 정권이 바뀌었다. 북한은 도발을 계속하며 미국을 사정권에 넣었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국제 정세를 흔들어놓았다. 여기에 코로나 후유증까지 겹쳐 세계 경제가 불안하다.어제는 크리스마스다. 기쁨과 희망의 축제다. 그런데 여느 해보다 침울하다. 천주교에서는 크리스마스 전 4주가 대림 시기다. 회개와 속죄로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기간이다. 종교가 있든 없든, 무엇이든 간에, 해가 가기 전에 한해를 돌아보고 반성할 시간이다.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四字成語)를 ‘과이불개’(過而不改)로 선정했다. 『논어』에 나오는 ‘과이불개 시위과의’(過而不改 是謂過矣)에서 따온 말이라고 한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을 잘못이라고 한다’라는 뜻이다. 같은 책에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라는 말도 있다. ‘잘못을 저질렀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마라’는 말이다.돌아보면 올 한해도 후회투성이다. 잘못인 줄 알면서 저지르고, 같은 잘못을 반복해 저질렀다. 교만해서다. 번번이 후회하면서,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집권당을 돌아봐도 올 한해는 내분으로 얼룩졌다. ‘윤핵관’이란 단어부터 배타적이지만, 윤석열 대통령과 이준석 전 당 대표 사이의 갈등은 집권 세력에 대한 신뢰를 바닥으로 던져버렸다.탐욕이 넘쳤다. 나라도, 국민도 보이지 않는 탐욕스러운 정치인들이 설쳐댔다. 재판까지 해봐야겠지만 쏟아지는 비리 혐의들이 기가 막힌다. 집권당은 야당을 정당한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밀어붙였다. 야당은 허니문 기간도 주지 않고 새 정부 발목을 잡았다. 자신들이 주장한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도 다수 의석을 내세워 예산 배정을 거부했다. 선거 기간 국민의 심판을 받은 소득주도성장이나 탈원전, ‘검수완박’도 낙선자 공약대로 고수했다. 법안도 밀어붙였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머리가 둘 달린 괴물이 됐다. 어느 쪽으로도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표류 국가가 됐다. 권력을 독점하려 하고, 선거가 끝나면 숨 쉴 틈도 없이 다음 선거 전략을 밀어붙이는 타락한 정치다.핼러윈 참사는 고통을 키우고 있다. 민주당은 유족을 위로하고, 재발 방지책을 찾기보다, 집권 세력을 곤경에 몰아넣으려고 안간힘이다. 집권 세력은 정치 역학만 따지며 무엇이 무서운지 방어적으로 움직인다. 법적 책임만 주장하고, 사과 한번 제대로 하지 않았다. 진심 어린 사과가 그렇게 어렵나. 법의 한계를 뛰어넘은 틈새까지 책임지는 것이 정치인이다. 정무직은 법적 책임만 지는 게 아니다. 정치적 책임도 져야 한다.공자는 ‘신독’(愼獨·홀로 있을 때도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고 삼감) 하라고 가르쳤다. 혼자 있을 때마저 긴장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말이 편해지고, 수위를 넘나들 수 있다. 그렇더라도 대통령이 외교 행사 직후 공개 장소에서 품위를 잃은 말을 뱉은 건 분명히 실수다. 사과하고 넘어가면 된다. 다른 나라에서도 그런 일이 비일비재다. 자신의 실수에는 입을 다물고, 언론의 책임 문제만 따지는 것은 옹졸하다.장관은 행정부의 일원이다. 국회의원이 질의하는 것은 국민을 대신해 정부 권력을 견제하는 일이다. 의원의 질의를 본질은 외면하고, 말꼬투리만 잡고 반격하는 것은 정부와 국회의 관계 설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김의겸 민주당 대변인이 번번이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반성하지 않는 것 역시 ‘과이불개’다.올해 대통령 선거 결과는 지난 정부의 ‘내로남불’에 대한 반성이다. 그런데 국민만 후회하고, 반성했을 뿐, 정치권은 오히려 상대를 공격하는 칼날로만 이용한다. 집권당은 ‘너희 정권 때는 더 심했다’라며 자기 잘못을 변명하고, 야당은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표를 달라고 하지 않았느냐’며 반박한다. 대화도 타협도 없다. 어정쩡하게 합의한 예산안은 시간에 쫓겨 양쪽 주장을 한 조각씩 떼어 붙여 던져놓았다. 나라 살림인데 철학도, 비전도, 희망도 없다. 며칠 남은 시간만이라도 되돌아보자. 그리고 새해에는 다시 희망을 그려보자./본사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12-25

군민 건강검진비 지원으로 활기차고 건강한 영양 만들다

오도창 영양군수 주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이다.고혈압, 당뇨, 암 등 질병을 예방하는 일은 공공영역의 노력만으론 어렵다.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서구화된 식단, 달고 짜게 먹는 식습관을 비롯해 음주·흡연으로 다양하게 증가하는 질병을 피해가기 어려운 실정이다.이런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건강상태를 확인하는 건강검진이 중요하다.이제 100세 시대가 되면서 단순히 오래 사는 것보다 얼마나 건강하게 사는지의 개념이 중요해졌다.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규칙적인 운동과 균형 잡힌 식습관 등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방법은 바로 정기적인 건강검진이다.평소 생활하다가 특별한 증상이 없더라도 자신의 건강을 미리 점검하는 습관을 가질 필요가 있다.이제 건강검진은 선택 아닌 필수인 시대가 되었다.치료보다 예방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며 건강검진을 통해 질병 발생의 예방도 중요하지만 조기 발견이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일단 질병이 발생하면 당사자는 물리적인 통증을 견뎌야 할 것이며 치료가 어려운 중증 질환의 경우에 걷잡을 수 없이 병이 진행된다.또 환자의 가족들은 엄청난 치료비를 감당해야 되기 때문에 경제적인 고통도 따르게 된다.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급속하게 초고속 인구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어 질병 또한 급속도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이에 영양군에서는 다양한 정책을 발굴해 의료복지를 강화하고 있으나 기하급수적으로 발생하는 질병을 모두 대비하기는 어렵다.그렇기 때문에 질병의 예방체계를 사전에 강화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평소 건강상태를 미리 체크하는 건강검진을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대비책이라고 생각한다.따라서 우리 군에서는 군민들의 건강검진 실시를 유도하기 위해서 2023년부터 2026년까지 영양군에 주소를 둔 50세 이상 약 1만여명의 군민을 대상으로 군민 건강검진비를 지원한다.건강검진비는 2년에 1회 지원하며 1인당 30만원까지 지원되며 치료의 목적이 아닌 순수 검진에 해당되는 부분만 지원된다.특히 2022년까지 사업 추진을 위해서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건강보험공단과 연계하여 검진대상자 명단을 확보하며 지원계획 수립 등의 절차를 꼼꼼히 챙겨 사업을 준비해 왔으며 주민들에게 대대적으로 홍보함으로써 대상 군민 한 사람도 빠짐없이 검진비를 지원 받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이로써 기존의 의료비 부담으로 건강검진을 차일피일 이뤄왔던 군민들이 적기에 검진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질병의 조기발견으로 큰 병으로 악화되지 않고 완치로 이어져 군민들이 건강한 생활을 누릴 것으로 기대된다.나아가 건강하고 활기찬 도시의 모습으로 변화할 것을 확신한다.또한 많은 사람들이 ‘나는 아니겠지, 아직은 받을 시기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며 건강에 대한 자신감을 가진다. 그러나 질병은 젊다고 발생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건강할 때 미리 검진을 통해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시간이 없다고 검진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많고 귀찮다고 병원을 방문하지 않는 등 건강검진을 미루다 연말에 몰리는 경우가 매년 반복되고 있다.질병 예방과 건강관리는 국가와 지역사회는 물론 가정 및 개인이 모두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부분이다.영양군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사전에 대비하기 위해서 2023년 시행되는 군민 건강검진비 지원을 계기로 전 군민들이 건강검진은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무라 생각하고 건강검진을 꼭 제때 받아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22-12-25

그리스 영웅… 페르세우스자리

고대 그리스 티린스 왕 아크리시우스에게는 다나에라는 외동딸뿐이었다. 왕은 아들을 얻고자 신탁을 청했다. 그런데 내용이 충격적이었다.“너는 아들을 얻지 못할 것이다. 대신 딸 다나에가 사내아이를 낳을 터인데, 그 아들이 할아버지를 죽이게 될 것이다.”차라리 듣지 않는 것이 나았을 신탁이었다. 운명을 바꿔야 했다. 왕은 다나에를 청동으로 꼭꼭 둘러싼 탑 꼭대기에 가둔다.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제우스가 황금비로 변신해 탑 속으로 흘러 들어가 다나에에게 접근했고, 다나에는 얼마 후 페르세우스를 낳았다.왕은 신탁대로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충격에 빠졌다. 고민 끝에 나무상자에 딸 다나에와 젖먹이 아들 페르세우스를 넣어 바다에 던져버린다. 그리고 이렇게 외쳤다.“운명을 바다에 맡겼을 뿐, 딸과 손자를 내가 죽인 것이 아니다. 저들이 죽는다면, 바다와 파도 때문이다.”파도에 휩쓸린 두 모자는 길고 긴 표류 끝에 세리포스라는 섬에 닿을 수 있었고, 그 나라 왕의 동생 딕툭스 도움으로 한동안 행복하게 살았다. 페르세우스도 어느덧 늠름한 청년이 되었다. 그런데 세리포스 왕 폴리데크테스가 다나에에게 흑심을 품었다. 하지만 그녀 곁에는 항상 페르세우스가 있었기 때문에 여의찮았다. 왕은 고심 끝에 계획 하나를 세운다.왕은 젊은이들을 초대하는 잔치를 벌였다. 초대받은 젊은이 모두 선물을 하나씩 들고 왔다. 하지만 가난했던 페르세우스는 아무것도 준비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왕이 선물로 괴물 고르곤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했다. 고르곤은 머리카락이 수백 마리 뱀으로 이루어진 세 자매를 통칭해 부르는 이름인데, 눈과 마주치면 돌로 변해버리는 무서운 자매였다. 그중 막내가 메두사다. 페르세우스는 자신 있게 그러겠노라 장담했다.하늘에서 이를 지켜보던 제우스는 화들짝 놀라 전령의 신 헤르메스와 전쟁의 여신 아테나 물의 정령 나이아데스를 보내 페르세우스를 돕게 했다. 페르세우스는 이들의 도움으로 메두사 머리를 자르는 데 성공한다.돌아온 페르세우스는 폭정을 일삼던 폴리데크테스를 궁으로 찾아가 메두사 머리를 왕 앞에 던지자 왕은 돌로 변하고 말았다.그런 후 페르세우스는 아내 안드로메다와 함께 고향 티린스로 향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테살리아 라릿사 지방을 들리게 되었다. 마침 그곳에서 원반던지기 경기가 열렸고, 페르세우스도 경기에 참가하였다. 그런데 그가 원반을 던지던 순간 태풍이 몰아치는 바람에 원반이 구경하고 있던 관중 속으로 날아가 어떤 노인 머리를 명중시켜 버렸다. 그가 바로 티린스의 왕 아크리시우스였다. 페르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두려운 나머지 라릿사에 몸을 숨겼다가 원반던지기를 구경하던 중 원반에 머리를 맞고 숨을 거둔 것이다. 결국 신탁의 예언대로 비극적인 결말이 이루어졌다.미래를 미리 안다는 것은 불행을 피해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일면 다행이지만, 더한 불행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일을 걱정하고, 미래를 알고 싶어 한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된다는 오이디푸스 신화도 미래를 알게 되면서 불행을 맞은 경우다.거대한 자석에 딸려가듯 언젠가 죽을 운명이지만, 오늘을 열심히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훈이 아닐까. /박필우 스토리텔러 끝

2022-12-25

‘에너지 효율화’ 시민 모두가 나서야 한다

위현복 (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얼마 전 매출 1조원이 넘는 대구지역 기업 대표와 통화를 했다. 그 기업의 에너지 절감에 대해 조언을 할 겸해서 만나자고 했더니 본인은 에너지 절감 분야는 별 관심이 없다면서 간단히 거절했다.그리고 며칠 전에는 오랫동안 에너지 절감에 대한 대표적 사례로 들 만큼 많은 양의 절감이 가능한 대학에 에너지 효율화에 대한 제안을 한 것이 보류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최근 대구의 상위 몇%만 산다는 아파트 관리소장과 아파트 에너지 절감에 대해 협의한 적이 있다. 그 소장은 한마디로 손사래를 쳤다. “전기요금 한 달에 100만 원, 200만 원도 괜찮으니 성가시게만 하지 말아 달라는 게 이 아파트 주민들입니다. 몇 푼 요금 절감을 위해 괜히 소란을 피울 수 없습니다.” 에너지 절감에 대해 이야기조차 꺼내지 말라는 얘기다.연말에 있었던 몇 가지 일들을 떠올리며 생각들을 정리해 보았다. 경북매일신문 4월 17일 자에 “어디서든 전기 30% 절감 가능하다”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그리고 IEA(국제에너지기구)는 “에너지를 아끼고 제대로 쓰는 것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첫 번째 연료(the First Fuel)’”라고 정의한 것을 되살려 본다. 우리가 관심만 갖고 노력만 기울이면 에너지 효율화야말로 가장 싸고 가장 친환경적인 에너지원이라는 것이다.‘에너지 효율화’는 에너지 안보, 친환경, 경제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유일한 에너지로 지금과 같은 에너지 위기에서 가장 효과적인 대책이다.‘에너지 효율화’를 위해서는 1KW당 29원의 비용이 들어가는데 원자력 65원, 석탄발전 79원, 신재생에너지 125원이 드는 발전단가와 비교하면 엄청 값싸다.IEA는 에너지 효율화를 두고 탄소중립 측면에서도 신재생에너지나 다른 어떤 청정에너지보다 친환경적이고 효율적이라고 했다. 특히 원자력 발전을 제외한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90%를 훌쩍 넘는 ‘에너지 빈국’인 우리나라 현실에서 에너지 효율화의 중요성은 더욱 절실하다.필자가 ‘RE100 실천 중소기업도 예외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지난 8월 1일자에 쓴 칼럼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공장에서 RE100을 달성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낭비되고 과소비되는 30% 정도의 에너지 절감부터 하면 RE100 달성이 크게 어렵지 않다.지난 5월 29일자에 쓴 “왜 선진국형 절전이 어려운지”에 대한 칼럼을 다시 읽어보았다. 에너지 절감문제를 정리해 보면, 첫째 에너지 과소비와 에너지 낭비는 후진국형 증상이며, 국제적 현상이다. 후진국 어디에도 일어나는 일이다.에너지를 물 쓰듯 하는 것이 후진국에서는 흉이 아니고 자기 과시이기조차 하다. 그래서 ‘에너지 절감’과 ‘에너지 효율화’는 선진국형이며 일류국가 여부의 척도이기도 하다.우리가 이제 소득은 비록 3만 달러가 넘었으나 에너지 절감은 아직 힘들다. 연 매출 1조원이 넘는 기업의 대표가 에너지 절감은 관심 밖의 일이고, 자금에 쪼달린다는 지방 대학이 2억 원이 넘는 돈이 절감된다는데 고려조차도 하지 않으려 하고 초고층 아파트에 사는 일부 시민들은 에너지 절감을 남의 나라 일 보듯이 하는 실정이다.에너지 효율화 사업이 힘든 두번째 이유는 전기 전공자들의 편협한 아집 때문이다. 각종 전기, 전자제품들은 점점 더 고효율, 초절전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무한 경쟁을 하는 시대다. 그런데 건축설계시 전기설계는 점점 더 과도하게 설계를 한다. 에너지 낭비요소가 많으니 효율화를 하자고 하면 전기를 담당하는 전기공학전공 전기기사들은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데?”라는 반응을 보인다. 잘잘못을 떠나 어쨌든 과도하게 설비가 되어있으니 적절하게 조정해서 합리적으로 고치자는 제안조차도 전기 담당자들에게 부딪히면 넘지 못할 절벽이 된다.에너지 효율화는 곧 학교나 공장, 아파트, 빌딩 등에 ‘무형의 발전소’를 하나 갖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벽에 부딪히고 만다. 따라서 에너지 효율화야말로 일류국가로 가는 국민 의식 개혁 실천운동이라고까지 말하고 싶다.최근 조선일보에서 7~8회에 걸쳐 에너지 낭비 사례를 고발하고 에너지 효율화를 위한 특집기사를 연재한 바 있다. 선진국인 영국의 런던, 일본의 도쿄, 독일 등과 한국의 서울을 비교하는 기사를 읽으면서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졌다.미국이 선진국이 되었을 때 가장 먼저 생겨난 새로운 직종이 ‘절감(saving) 분야’라는 얘기를 지난 4월 17일 자 칼럼에 쓴 바 있다.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었다면 이제 국민 모두가 자기 자신을 성찰하면서 앞과 뒤를 돌아보아야 한다. 만약 일상에서 불요불급한 것을 추구하거나 낭비요소가 있다면 바로 개선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내게는 비록 넘치지만 공동체를 위해서는 더 줄이고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면 그렇게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가 일류국가로 나아갈 수 있다.필자는 가끔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우리나라가 과연 선진국이 될 자격이 있는가?’, ‘풍요롭다고 풍요를 누릴 자격이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2022-12-25

당원 100% 경선 룰 개정만이 능사일까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국민의힘 당대표 선출 규정이 개정되었다. 당원과 여론반영 비율 70대 30이던 당규가 당원 100%의 선출 규정으로 바뀐 것이다. 국민의 힘 비대위가 전격 발의하고 중앙위를 거쳐 당 전국 위원회가 최종 인준하였다. 내년 3월 초 당대표 선출은 80만 당원만으로 선거하고 그 결과 과반 미달인 경우 결선투표제를 첨가하였다.이를 두고 당의 비주류인 유승민 후보는 ‘경기를 앞두고 골대를 옮기는 꼴’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당내 보수 개혁세력들은 당대표 선출방식의 급작스런 개정은 당의 퇴행적 역사가 될 것으로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친윤’ 세력은 이를 무시하고 당원 100%의 경선 룰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양쪽 주장이 일견 타당성이 있지만 100% 당원 당 대표 선출 방식은 아래와 같은 문제점이 내포되어 있다.먼저 당원만의 당대표 선출 방식은 당원들의 선택문제이지만 현대 정당의 본질에 부합하지 않는 선택이다.오늘날 민주적 정당은 대중 정당(mass party)을 표방하고 국민들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 가능한 다중 정당(catch all party)을 지향한다. 국민의 여론을 배제한 이번 당 대표의 선출 방식은 국민의힘 당의 ‘국민’이 빠져 있는 셈이다. 당 대표는 당원들만이 직접 선출하는 것이 타당해 보일 수도 있지만 당심이 민심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볼 수 없다.더욱이 보수를 표방하는 집권 여당이 당원만으로 대표를 선출하는 방식은 보수 개혁보다는 자칫 강경보수 당 노선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높다. 서구 선진국에서 당 대표의 선출은 당원들에 의해 선출한다고들 하지만 대체로 당 원내 대표는 당대표를 겸하고 있는 실정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대선 후보 선출과정에서 국민 여론이 반영되어 확정되었다. 국민 여론을 반영치 않는 당 대표 선출방식이 반드시 정당하다는 이론은 어디에도 찾기 어렵다. 정당정치가 국민의 의사를 집결하여 정책에 반영하는 정치 결사체라면 국민 여론 배제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이번 당원 100% 당대표 선출방식의 채택과정은 당내 민주주의를 철저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당내에서는 70:30의 기존 당 대표 선출 규정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 만만치 않게 제기되었다. 선거를 몇 달 앞둔 시점의 선출 규정 개정이 정당의 민주적 역사를 퇴행시킨다는 비판과 함께 ‘친윤’ 세력의 폭거로 비난하기도 했다.안철수 의원 역시 당원만의 당대표 선출은 ‘골목대장 선거’라고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당내 비주류 개혁 보수성향 인사들이 이러한 입장에 동조하고 있다. 그러나 ‘윤핵’, ‘친윤’, ‘범윤’ 등 신 주류세력은 이를 무시하고 윤석열 정부의 국정 뒷받침이라는 명분으로 당원 100% 당대표 선출방식을 밀어붙였다. 차기 공천이 자신의 정치 생명인 의원들은 대체적 침묵하고 묵인하였던 결과이다. 결국 당원이나 국민 의견 수렴 없이 속전속결로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당내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되지 못한 결과이다. 다수결이 결코 만능이 아님은 우리는 지난 정치사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과오이다.어느 정당이나 국민 여론을 잘 수렴하여 선거를 통한 정권 장악이 궁극적 목표이다. 보수 진보 어느 정당이나 중도층의 지지를 보다 많이 확보해야 선거에 승리할 수 있다.국민 여론을 배제한 당원만의 대표 선출방식은 보수 집권당의 중도층 확산 전략에도 지장을 초래할 수도 있다. 현재 국민의 힘 80만 당원들의 분포는 영남(40%), 장년층(67%)에 집중 분포되어 있다. 이번 당대표 후보들이 우선적으로 영남을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역선택의 방지 명목으로 당원만의 대표 선출은 당의 진로와 정체성 문제에 영향을 미치고 당내의 주류와 비주류의 갈등을 초래할 수도 있다.결국 집권 여당은 앞으로 ‘윤핵관’뿐 아니라 ‘친윤’, ‘범윤’, ‘비윤’, ‘반윤’간 당 노선과 정체성 논쟁을 유발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러다 보면 차기 총선이나 지방 선거에서도 중도층의 실망에 따른 총선실패의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내년 3월 초 집권 여당의 당 대표로 누가 선출될지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친윤’이나 ‘범친윤’ 또는 그 연합세력이 당선될 것은 거의 확실시 된다. 이러한 당 대표의 선출이 당내 기반이 취약한 윤석열 정부의 국정 수행의 뒷받침이 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여소 야대라는 현 정국 하에서 정부는 거대 야당과의 협치 없이는 원활한 국정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윤 대통령의 노동, 교육, 연금개혁도 거야의 협력 없이는 현실적으로 추진하기 어렵다. 집권 여당은 앞으로 현대 대중 정당의 역할 복원, 당내 민주주의 정착, 중도층 흡수 없이는 국정의 효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공정, 상식, 원칙이라는 윤 대통령의 국정지표에 맞는 당의 체질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 올해 전국교수회가 선정한 ‘잘못이 있으면 반드시 고쳐야 한다’는 ‘과이불개(過而不改)’를 여야 모두 되새겨 보길 바란다.

2022-12-25

‘경북메세나협회’ 창립과 예술인의 삶

류영재 포항예총 회장 며칠 전 경북도청 화랑실에서 도내의 여러 기업체 대표와 예술단체 대표들이 모여 경북메세나협회를 설립하고 창립총회를 열었다. ‘기업과 문화예술의 아름다운 만남’을 표방하며 출범한 이 협회의 창립은 경북도가 적극적인 지원 의지를 보였고, 지역상공회의소와 경북문화재단 간 협의를 통해 설립의 뜻을 모았다. 경북문화재단 대표는 인사말에서 “도내의 기업과 문화예술이 상생협력 발전 및 글로벌화를 위한 긴 여정의 첫걸음을 떼는데 큰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이날 창립총회에서 상주시에 사업장을 두고 환경사업을 하는 기업체의 대표가 초대 회장으로 선출됐다.그는 “경북메세나협회 설립을 통해 경북이 문화예술의 도시로 거듭나는데 기업이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라며 적극적인 활동을 약속했다.메세나는 문화예술 활동에 자금이나 시설을 지원하는 것이다. 수익의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투자’와 달리 이타적인 성격의 ‘지원’이므로 자선사업이나 공공사업의 기부와 결이 비슷한 숭고한 행위이다. 특별히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지원이 절실한 까닭은 예술 활동이 행복한 삶의 영위를 위하여 꼭 필요한 분야이긴 하지만 그 활동이 소득과 직접 연결되는 고리는 매우 허약한 것이 현실이라 예술가들의 삶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예술 활동은 장르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많은 비용이 발생하기도 하고 예술적인 기량의 연마를 위하여 긴 시간,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므로 활성화를 위해서는 각별한 지원이 필요한 것이다.그렇지만 메세나가 단순히 어려운 예술인들에게 도움을 주는 선행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축적된 문화예술의 힘은 엄청난 폭발력을 가진다는 사실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니 말이다. 메세나의 원조가 된 마에케나스의 후원이 라틴문학의 황금기를 일구었고, 메디치 가문의 지원으로 르네상스의 꽃이 피렌체에서 만개할 수 있었던 역사적 사실이 이를 웅변해주고 있다. 당시의 유물인 궁전과 교회 등의 건축물과 이를 장식하기 위해 제작된 미술품의 존재가 오늘날 유럽이 자랑하는 문화유산이며 소중한 경제적 자산이니.우리나라는 1994년에 한국메세나협회가 발족하였고, 현재까지 경남, 제주, 세종, 부산, 대구 등의 지자체에서 메세나협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경북은 일곱 번째라 한다. 몇 번째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제대로 기능하여 지역예술인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지고 수준 높은 예술문화의 향유 기회가 확대되어야 한다. 기업의 아름다운 후원, 세제 혜택 등 행정지원시스템의 구축, 예술가들의 뼈를 깎는 노력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기업이 문화예술을 지원함으로써 기업의 이미지 제고에 보탬이 되고 예술가의 창의적 상상력이 기업의 홍보나 경영에 접목될 수 있다면 ‘기업과 문화예술의 아름다운 동행’이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 이상 기온으로 더위도 추위도 예측이 어려운 요즘, 올겨울 최강의 한파가 길게 이어지고 있다. 사계절이 늘 추운 예술인들의 시린 가슴에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는 진정한 메세나를 기대해 본다.

2022-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