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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원전 등 한미경제 협약, 경북의 수혜 기대된다

미국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의 배터리 등 첨단산업과 원전, 수소 등 에너지분야에서 23건의 업무협약(MOU)를 체결했다. 또 윤 대통령 방미를 수행 중인 한국수력원자력과 대구 혁신도시내 한국산업평가관리원(KEIT)도 미국 기업과의 전략적 협력을 맺어 지역이 윤 대통령의 방미 성과에 따른 수혜지역으로 손꼽힐 전망이다.특히 최근 경주는 소형모듈원자로(SMR) 국가산단으로 지정된 것과 맞물려 이번 협약으로 경북이 SMR사업의 국내 전진기지는 물론 해외시장 개척에도 큰 힘이 실릴 것으로 전망된다.한수원이 미국의 소형모듈원자로 설계 기업인 테라파워와 전략적 협약 관계를 구축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테라파워가 개발 중인 SMR 나트륨 실증과 상용원자로 개발에 한수원과 협력한다는 것은 미국의 설계 역량과 한국의 제작, 관리운영 능력을 합친다는 것을 뜻한다. SMR 분야에서 한수원이 북미까지 입지를 확보한다는 것은 국내 원자력 산업 발전에도 상당한 의미를 부여한다.또 이차전지 산업이 집중 투자되는 포항도 수혜지역으로 손꼽힌다. 최근 포스코퓨처엠이 포항 영일만산단에 4만6천t 규모의 양극재공장을 추가로 건립키로 하면서 포항은 배터리도시로서 위상을 한층 더 높이게 됐다. 영일만 산단에는 이미 글로벌 기업인 에코프로가 배터리 포항캠퍼스를 조성해 이번 미국과의 협약으로 배터리 산업 전반에 획기적 바람이 일 것으로 예측된다. 산자부도 양국의 협약으로 이차전지 시장 진출과 기업유치 등이 활성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이제는 지역이 새롭게 주어진 기회를 어떻게 잘 활용하고 발전의 동력으로 삼느냐 하는 과제가 남았다.윤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계기로 이뤄진 경제분야 협약은 한미 양국이 군사·안보동맹에서 첨단산업 기술동맹으로 외연을 넓히자는 데 특별한 의미가 있다. 양국 대통령이 만나 협약한 미래 신기술에 대한 상호협력 발전 논의가 국가는 국가대로 지역은 지역대로 실익을 찾는 기회로 삼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원전과 배터리, 로봇 등 지역기업들이 대통령의 성과를 기업의 성과로 이어가는 노력과 준비를 단단히 하여야 할 것이다.

2023-04-27

지방시대위 4월 출범, 또 좌초시킨 민주당

윤석열 정부 ‘지방시대위원회’ 출범 근거가 담긴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 법사위에서 또 제동이 걸렸다. 그동안 지방시대위 출범과 함께 진행될 기회발전특구, 교육자유특구 지정을 준비해온 비수도권 지방정부들의 허탈감이 크다. 국회 법사위는 그저께(26일) 전체회의를 열고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을 심의했지만, 민주당 의원들의 반대로 심사를 보류했다. 이 특별법은 행안위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한 만큼, 법사위 의결이 무난할 것으로 봤지만 지난달 27일 심사에서도 계류됐었다. 이날도 민주당 권인숙 의원이 법안통과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권 의원은 법안 중 교육 자치와 지방자치 통합에 대한 조문을 두고 이의를 제기했다. 행안위에서 여야 의원이 합의했지만, 교육위원회 측과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삼았다. 1991년 제정된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이 아직 시행되고 있는데 현행 법률과 원리를 무시한 채 교육 자치와 일반 자치의 통합을 명시한 것은 심각한 위헌적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은 “어떤 형태로든지 위헌성 자체가 드러나지 않은 상탠데 교육위에서 반대한다는 이유로 통과를 시키지 않는 것은 안타깝다”고 비판했다. 비수도권 지방정부들이 이 특별법에 주목하는 이유는 ‘기회발전특구’와 ‘교육자유특구’를 지정할 수 있는 근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기회발전특구는 비수도권 지자체와 기업이 협의한 후 정부가 지정하는데, 특구로 이전하는 기업과 직원에겐 법인세와 소득세 감면 등의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준다. 교육자유특구는 학생선발·교과과정 개편 분야에서의 규제 완화와 교육 수요자의 선택권 확대, 교육 공급자 간 경쟁을 통해 다양한 명문 학교가 나올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정기국회 때부터 이 법안 통과를 위해 노력해 왔지만, 야당의 반대로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의 눈에는 비수도권 지방정부들이 인구소멸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2023-04-27

음주운전 시동 잠금장치법

우정구 논설위원 얼마 전 대전의 한 스쿨존에서 일어난 대낮 음주운전 사고로 9살 초등생이 숨지면서 음주운전자에 대한 사회적 비난 여론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대법원이 먼저 나서 스쿨존 교통사고에 대한 양형기준을 신설하고, 오는 7월부터 스쿨존에서 음주운전으로 어린이를 숨지게 하면 최대 26년형을 선고토록 하겠다고 밝혔다.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가 날 때마다 관련법을 만들어 처벌기준을 강화했지만 가중처벌을 받는 사례는 그리 많지 않았다. 지난해 헌법재판소는 재범 음주운전자의 처벌을 강화한 이른바 윤창호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시동 잠금장치에 대한 언급을 했다.헌재는 “음주치료나 음주운전 방지장치 도입과 같은 비형벌적 수단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없다”며 “시동 잠금장치 부착을 우선 검토하라”는 의견을 냈던 것이다.음주운전 방지 시동 잠금장치는 술을 마신 운전자가 차량에 시동을 걸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다. 운전자가 시동을 걸기 위해선 잠금 측정부에 숨을 불어넣어 혈중알코올 농도를 측정해 통과해야 시동이 걸린다.1986년 미국이 처음 도입했고 지금은 캐나다, 호주 등에서도 활용된다. 음주운전 전력이 있거나 통근버스 등 특별히 음주운전 시 피해가 큰 차량에 부착토록 한다. 일부 연구결과에 의하면 시동 잠금장치 설치로 음주운전 사망자가 절반가량 줄었다는 보고도 있다.여당이 음주운전 사고를 줄이기 위해 음주운전 방지 시동 잠금장치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 추진에 나서기로 했다. 이와 관련한 법안은 그동안 여러 번 나왔으나 비용과 설치 대상자 선정을 두고 갑론을박이 오가 법제화까지는 못갔다. 이번 국회에서 시동 잠금장치법이 빛을 볼지는 두고볼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4-27

포항시 시내버스 재정지원 투명성 높여라

포항시가 시내버스를 독점 운영하는 특정회사에 보조금을 과다하게 지급한 사실이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나 특혜 논란이 커지고 있다. 포항지역 시민단체 등 2천764명의 공익감사 청구로 시작된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포항시는 차량 감가상각비를 버스회사에 유리하게 중복 계상하는 방법으로 4년간 47억여원을 과다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버스회사가 임의로 감차 운행했음에도 이를 점검하지 않아 14억8천만원의 보조금이 지급된 사실도 확인했고, 그밖에 버스회사가 타이어를 구매하면서 입찰을 통한 경쟁계약을 않고 인근지역 시내버스보다 개당 7만∼18만원 비싸게 수의계약한 사실도 밝혔다.이와 관련, 포항시의회는 임시위원회를 열고 공익감사 결과에 나타난 포항시의 부실한 행정관리를 질타하고 즉각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특히 시민 혈세가 부당하게 사용된 사용처를 알아내고 모두 환수 조치할 것을 요구했다.포항시는 시내버스의 공공성과 시민 불편 최소화를 위해 시내버스에 대한 재정지원을 매년 해오고 있다. 재정지원 규모가 2017년 85억원이었으나 2021년에는 314억원으로 대폭 늘었다. 최근 5년간 모두 972억원의 예산이 시내버스 회사에 지원됐다. 시민이 낸 세금으로 시내버스가 운영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수준이다.세금으로 집행되는 사업은 법에 맞는 엄정한 관리와 규제가 뒤따라야 한다. 감사원 감사 결과를 놓고 보면 포항시가 그간 시내버스 운영과 관련한 예산집행을 하면서 관리 감독을 제대로 했는지 의아심이 든다. 버스노조와 시민단체 등이 공익감사를 청구할 만큼 내부적으로 수차례 문제 제기가 있었음에도 포항시가 방관적 입장을 취한 것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감사원 결과에 따라 시는 부당하게 지출된 예산에 대해 즉각적인 환수조치에 나서고 예산을 줄일 수 있는 부분은 없는지도 세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시민의 발인 시내버스가 공공재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게끔 엄격한 관리를 해야 한다. 특히 예산지원 과정에서 투명성을 높일 수 있도록 공개적이고 합리적인 제도적 장치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

2023-04-26

가짜 미술품 소동

홍석봉 대구지사장 지난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이 10·26 사태 후 김재규의 헌납재산에 들어 있던 고(故)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를 전시회에서 처음 공개하며 진위 논란이 일었다.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위작(僞作) 소동 사례다.‘미인도’는 이후 30년 가까이 진위 논란이 계속됐다. ‘미인도’ 논란은 지난 2016년 검찰이 ‘진품’이라고 결론내리면서 마무리됐다. ‘어떻게 자기 자식을 몰라보느냐’고 말하며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했던 천 화백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미인도’ 논란은 은밀한 거래 과정에서 발생한 소동이라는 것이 미술계의 중론이다. 세금을 피하려다 보니 나타난 부작용이었다. ‘소’작품으로 유명한 이중섭의 경우 한때 진품보다 위작이 더 많았다고 한다.외국에서도 위작 논란은 비일비재하다. 1936년 ‘빛의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작품으로 알려졌던 ‘엠마우스에서의 만찬’을 당대 최고 권위자가 극찬했지만 위작으로 밝혀졌다. 지난 2021년엔 일본의 주요 백화점에서 판매된 유명 화가들의 작품이 가짜로 판명돼 일본 사회가 충격에 휩싸이기도 했다.위작은 미술계의 영원한 숙제다.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은 그 수량이 한정돼 있다. 하지만 구입하려는 사람은 많다. 이 틈을 파고들어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위작이다.위작은 구분이 힘들다. 전문가도 속기 십상이다. 대체로 감정가들은 진품과 위작을 구별할 때 안목감정, 기록감정, 과학감정 과정을 거친다. 웬만하면 이 3단계 과정에서 위작은 대부분 걸러진다고 한다. 대구미술관 소장품 중 일부 작품이 가짜로 드러나 시끄럽다. 작품선정과 가치평가 심의위원회도 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의문이다. 사법당국의 수사가 필요해 보인다. /홍석봉 (대구지사장)

2023-04-26

재해 극복하고 신성장동력 마련한 울진군

지난해 발생한 산불로 역대급 피해를 본 울진군이 재해를 극복하고, 오히려 산림자원을 성장 동력으로 활용해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다. 지난해 3월 4일부터 13일까지 9일간 울진과 인근 삼척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은 산림 2만여 ha를 태우고 213시간 43분 만에야 진화가 되면서 산림청이 관련 통계를 집계한 1986년 이후 ‘가장 오래 지속된 산불’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이 산불로 울진군 327가구 466명의 주민이 삶의 터전을 잃었고, 1만4천140ha의 산림이 잿더미가 됐다.울진군은 현재 경북도 지원을 받아 산림자원의 복원, 산림기능 회복, 산불방지 대비책을 동시에 추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우선 지난 연말 국회에서 국립동해안산불방지센터와 국립산지생태원, 경상권목재자원화센터 건립 예산을 확보해 곧 사업에 착수한다. 국립동해안산불방지센터는 산불피해 복구와 재해 안전망 구축, 국립산지생태원은 불에 탄 산림자원을 복원해 미래세대에게 산림에 대한 비전을 학습시키는 기능을 한다. 경상권목재자원화센터는 산불 피해목을 생산적인 목재로 활용해 국산목재 자급률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한다. 울진군의 산림자원을 활용한 관광루트 개발도 눈길을 끈다. 대표적인 게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경북형 동서트레일(울진~충남 태안군까지 849km 연결)개발과 밀화원특화숲 조성 사업이다. 경북형 동서트레일 코스의 핵심은 울진군의 낙동정맥 트레일과 금강소나무숲길이다. 풍부한 산림자원과 다양한 생태문화를 가진 농촌마을을 트레일 코스로 개발하면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밀화원특화숲은 울진에 적합한 꿀벌 밀원수(蜜源樹)를 심어 산림을 복원하고 주민소득을 올리기 위해 조성된다.울진군이 재해를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지역발전을 도모하는 모습은 박수를 받을 만하다. 특히 울진군은 지난달 원자력수소 국가산업단지 후보지로 확정돼 앞으로 군민들이 먹고살 튼튼한 인프라도 구축했다. 산불 이재민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과 다양한 산림자원 복원을 통해 울진군민들이 하루빨리 편안한 일상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2023-04-26

아, 독도는!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2차 세계대전을 실질적으로 마감하면서 연합국들과 일본이 체결한 조약이다. 미국, 영국, 소련 등 48개국이 서명하고 1952년 4월 28일에 공표되었다. 한국전쟁 중이었던 대한민국과 북한은 어느 쪽이 한반도를 대표하는지 불분명하여 초대받지도 못하였다.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비롯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와 소유권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 제2조 이 한 줄에 ‘독도’가 들어있지 않다 하여, 일본은 아직껏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중이다. 독도가 일본 땅으로 ‘남은’ 증거라는 것이다. 저 조항의 해석은 물론 조약이 대한민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우리의 입장을 분명히 해야한다.신한일어업협정. IMF사태 한 가운데였던 1998년에 체결되어 다음해에 발표된 대한민국과 일본 간의 어업협정이다. 양국 간에 ‘중간수역’을 설정하여 두 나라의 국민과 어선이 상대국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문제는, 엄연히 대한민국의 영토여야 할 독도가 중간수역에 포함되어 두 나라가 함께 관리하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영토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배타적경제수역(EEZ)을 설정하지 않고 중간수역에 빠진 꼴이 된 것이다. 이후 일본이 대한민국 영토 독도의 영유권적 지위를 흔들 수 있는 빌미를 남긴 셈이다. 중간수역에 떨어진 독도의 운명은 누가 돌아보는가. 우리가 독도를 생각하며 다분히 정서적이며 감정적인 ‘독도는 우리땅’을 부르고 있을 때, 일본이 조직적인 논리로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들을 모으며 국제적 분쟁거리로 독도문제를 준비하고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한국전쟁의 소용돌이와 IMF사태의 어려움을 기억하는 일에도 몸서리를 치겠지만, 그런 와중에 ‘우리땅 독도’의 운명이 위태로울 움직임들이 있었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뿌리깊은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우리의 섬 독도’의 운명을 흔들 수 없음을 체계적으로 조리있게 세계만방에 고해야 하지 않을까. 신한일어업협정은 그야말로 어업에 관한 나라 간의 약속으로 대한민국 독도의 영토적 지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음도 분명히 해야하지 않겠는가. 대한민국의 목소리가 적절하게 반영되지 않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이나 지극히 지엽적인 어업을 대상으로 하는 신한일어업협정이 대한민국 영토 독도의 영유권적 지위를 침탈할 수 없음을 세계만방에 천명해아 한다.일본과의 관계에 있어 국익의 관점에서 상생과 협력의 정신을 살려가되, 우리의 땅 독도의 지위를 들먹이는 행태는 단호하게 막아야 한다. 중앙정부는 물론, 경북도와 울릉군 등에서 펼칠 다양한 독도 관련 정책과 이벤트도 추후 있을지도 모르는 국제적 갈등에 미리 대비한다는 점에서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분이다. ‘독도는 우리땅!’을 끊임없는 다짐과 구호로 간직하면서 우리는 보다 구체적이며 실증적인 논거와 실효적인 수호논리를 확보해야 한다. 독도는 누가 뭐라 해도 대한민국의 영토가 아닌가.

2023-04-26

대학의 위기와 교육의 목적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지난 4월 10일 교육부의 ‘인문사회 융합인재양성사업’ 보도 자료가 배포되었다. 이 사업은 3~5개 대학으로 연합체를 만들어서 5개 대주제(디지털/환경/위험사회/인구구조/글로벌·문화)에 맞는 융합 교육과정 개발을 목표로 하며, 지역 대학 위기 상황을 고려하여 비수권 대학이 연합체의 40% 이상이 되도록 규정했다. 연합체의 대학에 150억을 지원하는, 인문사회 영역 지원 사업으로는 상당히 큰 규모이다.사업 공고가 나오자 대학 간 눈치 싸움이 시작되었다. 학교 차원의 TF팀이 꾸려지고 단과대학을 중심으로 합종연횡을 위한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다. 4월 10일 공고가 나고 불과 2주 만에 신청을 마감하는 일정이지만, 24시간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던 연구자들의 몸이 즉각적으로 반응한 것이다. 당연히 주제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방향성을 토의할 시간은 없다. 본 신청까지 아직 한 달이 남았다지만, 최소 세 개 대학의 여섯 학과가 충분한 협의를 거쳐서 어떤 결과를 도출하기에는 촉박한 일정이다.지역 대학은 글로컬 사업의 여진이 채 가시기도 전에 던져진 이 사업으로 더욱 분주하다. 글로컬 사업이 추구하는 학과 간 혹은 학교와 지역 간 칸막이를 없애는 문제의식과 연합체를 구성하여 학교 간 전공 간 칸막이를 제거한다는 이 사업의 취지는 동일하다. 정부는 지역 대학의 위기, 나아가 대학의 위기를 다양한 층위에 포진해 있는 칸막이를 치워버리는 방식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융합’의 문제의식이 대학가에 등장한 것은 오래된 일이지만, 100억이 넘는 예산을 가지고 속도전으로 밀고 나오는 경우는 처음이다. 정부는 지역 대학의 위기를 해결해야 한다는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문제가 하나 더 추가되어서 속도를 높이는 것일까. 최근 정부의 교육 정책이 지역 대학의 위기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는 교수·연구자들의 연대와 고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당장은 그 연대체에 힘을 실으며 함께 나가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보이지 않는다.하지만 이번 정부의 정책은 인문사회 분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액수의 돈을 노골적으로 가시화한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 사업을 기획한 정부의 의도가 무엇인지, 사업 이후에 우리 지역과 우리 대학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를 질문하지 않고, 눈앞의 숫자에 몸을 움직이려는 사람들이 있다. 대학의 위기가 일상화된 지금, 유례없는 돈이 투입되는 사업에 작은 과실 하나라도 따 먹으려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이를 일방적으로 비난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생활인으로서 교수, 연구자들의 심리와 이 시대 대학의 존재 이유를 생각하면, 오히려 정부에 고마움을 표시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선택과 집중’이라는 글로컬 사업의 방향성이 암시하듯, 이 제도는 돈 중심의 사고를 더욱 확장하는 것에 기여할 가능성이 크다. 대학이 취업을 위한 기관이듯, 대학의 논리도 돈 중심으로 변하는 것이 큰 문제가 아닌 사회가 이미 도착한 것인가. 이런 시대에 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

2023-04-26

허리가 아파서 꼼짝을 못하겠어요

나선택포항 행복한의원장 “재채기 하다가 허리를 뜨끔했는데 꼼짝을 못하겠어요.” “바닥에 있는 물건 집다가 삐끗했는데 움직일 때마다 허리가 아파요.” 이런 일로 한의원에 내원하는 환자가 많다. 생각해보면 이게 허리를 다칠 만한 일인가 싶은 경우가 많다.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옮기다가 다쳤다면 쉽게 이해라도 될텐데 말이다. 이렇게 별거 아닌 이유로 급성 요통이 오는 것은 평소 허리에 좋지 않은 생활습관 때문에 허리 근육과 인대에 피로가 누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허리의 피로를 줄이기 위해서는 걷거나 누워 있는 것이 좋고 비스듬히 앉아 있는 것이 가장 나쁘다. 등받이가 없는 바닥이나 의자에 오래 앉는 것도 아주 나쁘다. 앉은 자세는 허리 근육에 과도한 긴장을 주고 배의 압력을 증가시켜 디스크 내의 압력을 높이고 디스크의 노화를 촉진한다. 장시간 앉아 있어야 할 경우 허리를 꼿꼿하게 펴야 하는데, 이 자세가 힘들 때는 일어서서 허리를 구부리고 펴기를 수차례 하고 2∼3분간 걸은 후 다시 바른 자세로 앉아야 한다.허리 부상을 막기 위해서는 허리에 무리를 주는 생활습관을 교정하고 평소 꾸준한 허리 운동으로 허리 근육을 단련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허리를 굽히면서 물건을 들어 올릴 때 삐끗하면서 허리 근육을 다치는 경우가 많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한발을 내민 상태에서 무릎과 고관절을 굽혀 물건을 드는데, 이때 물건을 배에 밀착시키는 것이 좋다.평소 허리에 좋지 않은 운동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척추는 전후좌우로 움직일 때보다 회전할 때 더 큰 압박을 받는다. 통쾌한 스윙이 매력적인 골프는 척추에 큰 부담을 주는 운동이다. 가만히 서 있을 때 척추에 가는 부담이 100이라면 스윙할 때의 부담은 220이다. 더구나 중년에는 근육의 탄력이 떨어져 허리 통증이 생기기 쉽다.이렇게 허리 부상을 막기 위한 노력을 했음에도 허리가 아프거나, 하는 일이 바빠서 허리 건강을 돌볼 겨를이 없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한약 처방을 복용하는 것이 상당히 도움이 된다. 동의보감에는 십종요통이라 하여 허리의 통증을 증상과 원인에 따라 10가지로 구분하고 각각에 맞는 효과적인 처방을 제시하고 있다. 그 중에는 스트레스나 긴장이 많아져서 생기는 기요통(氣腰痛), 만성적으로 위장이나 대장 등의 소화기가 나빠서 오는 식적요통(食積腰痛), 노화 또는 신장의 기능이 약해지고 호르몬 분비가 부족해져서 오는 신허요통(腎虛腰痛) 같은 것도 있다. 이 경우는 양방에 가서 검사하면 원인 불명의 만성 요통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한의사의 정확한 변증을 통해 한약을 투여하면 오래 앓던 요통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허리가 아파서 꼼짝 못하는 경우에 디스크가 터진 것이 아닌지 걱정한다. 하지만, 요통 환자의 90프로 이상은 ‘비특이성 요통’ 즉, 디스크와는 상관없이 근육이나 인대에서 오는 통증이다. 가까운 한의원을 내원하여 허리디스크를 가려낼 수 있는 이학적 테스트를 해보고, 만일 문제가 발견되면 양방의 전문병원으로 가는 것이 훨씬 시간이나 비용 면에서 효율적인 방법일 것이다.

2023-04-26

철쭉

정미영 수필가 매년 우리 집 철쭉은 해사하게 웃는 얼굴로 피어났다. 그런데 올해는 감감무소식이었다. 계절을 알리는 전령사였는데, 물기 없는 수피가 까칠하고 버석거렸다. 말라 헐거워진 흙 아래에 묻혀 있는 뿌리에도 물이 사라졌을까, 걱정되었다.꽃이 피었다가 이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한 때 푸른 물 정기를 맘껏 받아들여 연초록 잎을 돋우고 꽃불을 환히 밝혔던 시절을 떠올리니 괜스레 측은했다. 서둘러 화분에 물을 주었다. 몸피 가득 물을 머금어 회생하면 좋으련만.내가 다정한 눈길로 바라보고 아픔을 살폈어야 했다.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웃자란 부분은 가지를 쳐줬어야 했는데, 한 동안 마음을 쓰지 못했다. 더군다나 다른 화분은 거실에 놓았는데 홀로 햇빛이 들지 않는 현관에 두었다. 나는 혹여 집을 방문하는 사람이 환하게 밝혀진 꽃등을 보고 감탄하면 신나게 철쭉을 자랑하려고 했다. 그런데 오히려 꽃의 심기를 건드렸나 보다.수척한 철쭉의 모습에서 예전에 가르쳤던 제자의 얼굴이 겹쳐졌다. 며칠 전, 부모님과 상의를 하지 않고 대학교를 휴학했단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많이 한 것 같았다. 선배나 동창들과 부대끼면서 인생을 가치 있게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상을 해보았다고 했다. 나는 제자의 속사정을 들어보기 위해 만났다. 제자의 안색이 밝지 않았다. 철쭉이 제자리에 놓이지 못해 야윈 것처럼 제자도 사회에서 자신에게 맞는 자리를 찾지 못할까 걱정하느라 나날이 메말라갔나 보다. 가벼운 바람에도 날아갈듯이 흔들리면서 중심을 잃을 것처럼 위태롭게 보였다.제자를 만나고 돌아온 날이었다. 제자의 어머니가 많이 속상하다고 내게 토로했다. 대학 합격만을 바라보며 앞만 보고 성실하게 공부해 왔던 제자가 아니었던가. 원하는 대학에 입학을 했으니 순리대로 학과 공부를 하면 얼마나 좋았을까. 순조로울 것 같던 대학 생활이 삐걱거리자, 그의 어머니는 못마땅하다고 말했다. 나는 제자의 어머니 마음도 헤아려졌다.늦게까지 강의하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기 너머로 군 입대 신청을 했다는 제자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왜 이렇게 성급하게 결정을 했느냐, 부모님과 상의를 하고 내린 결정이었냐, 제자를 향한 내 질문이 쏟아졌다.현재로서는 생활에 대한 긍정적인 해답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학, 자신이 원하는 학과에 들어갔어도, 선배들의 전공 취업률이 낮다는 점에서 좌절을 맛보았다고 했다. 불안감이 여러 날에 걸쳐 제자의 온몸을 휘감고 점점 농도 짙게 물들인 탓인지, 자신감이 점차 약해졌나 보다.어디 제자만의 문제일까?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청년들의 취업 고민이 더욱 가중되었다는 뉴스를 자주 접한다.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밤이 늘수록 그들의 몸안 깊숙이 외로움이 자리 잡았을 것을 생각하니, 내 마음이 아프다.얼마 전부터 철쭉이 새순을 피웠다. 가지 끝에서 손톱만한 연두색 잎들이 돋더니, 어느새 줄기를 다시 내고 꽃대를 밀어 올렸다. 물기 머금은 줄기는 생기가 넘쳤고, 꽃대는 잔뜩 힘이 들어갔다. 애써 담담한 척했으나 철쭉이 끝내 살아나지 못할까봐 그 동안 내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갔다. 힘을 내어 꽃까지 피우라고, 오며가며 말했더니 기특하게도 꽃망울을 맺었다. 하루아침에 꽃불이 일지는 않겠지만 군데군데 꽃망울이 귀엽게 돋아났다.생명 있는 것은 누군가의 관심이 있어야 기운을 낸다. 철쭉의 마음을 헤아려 물을 적당히 주고 볕도 알맞게 쬐어주었더니, 화사함을 유지했다. 우리네 인생에서도 상대방의 관심은 무엇보다 긴요하다. 그것은 삶에서 부단히 만나게 되는 가시밭길을 잘 건너가게 도움을 주는 고갱이가 될 수 있으리라.앞으로는 제자가 소울(疏鬱)할 수 있도록 자주 안부를 물어봐야겠다.

2023-04-26

정유(丁酉)

육십갑자 중 서른네 번째는 정유(丁酉)다. 천간(天干)의 정화(丁火)는 촛불이나 별에 비유되며, 지지(地支)의 유금(酉金)은 잘 제련된 금속에 해당된다. 동물로는 닭이다.정유일주는 천을귀인과 문창귀인을 깔고 있어 옛날부터 사랑을 많이 받던 일주다. 다정다감하며 인간미가 넘친다. 심성이 착하고 봉사심이 있어 주변을 밝게 만들기에 인기가 있다. 온순하고 섬세한데다 아름다운 용모도 가졌다. 예술적 재능과 미적 감각이 뛰어나고, 멋쟁이들도 많다. 모방도 잘하고, 아이디어가 풍부한 편이다.단점으로는 분위기에 약하고 귀가 얇은 편이라 잘 속는다. 맑은 기운을 그릇되게 사용하면 오히려 극심하게 추해지는 경향이 있다. 순수하고 고귀한 힘은 고귀하게 쓸 때 그 빛이 제대로 발휘된다. 무엇보다 많은 복을 타고난 정유는 남에게 먼저 베풀 때 그 복이 배로 되돌아온다고 한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말이 적어도 정유에게는 헛말이 아닌 듯하다.남자의 경우는 잘생기고 키가 훤칠한 경우가 많고, 이목구비가 큼직하여 시원한 호남형이다. 배우자 복이 있지만, 바람을 피울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여자는 분위기가 발랄하고 산뜻하여 소년을 연상케 하는 느낌으로 매력적이다. 시댁이 부자이거나, 남편이 사업 수완이 좋아 기본적으로 배우자 복이 많다.문창귀인이 있어 총명한 편이다. 지혜가 있고, 문장에도 일가견이 있으며 귀인 타입으로 만인에게 호감을 준다. 재주만 믿고 남을 불신하는 단점이 있으니 항상 겸손한 자세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특히 모임에 참석하면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며 생기가 넘쳐난다. 미남 미녀에다 말도 잘하고, 호소력이 넘친다. 어디를 가도 이성의 관심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유는 다재다능하고 융통성도 있어서 재능과 수완을 겸비했다.1950년대 박인환(1926∼1956) 시인은 최고의 멋쟁이 댄디보이였다. 큰 키에 미남이었고, 재치와 시적 재능을 겸비했다. 여름에도 정장을 했으며, 많은 여성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또한 책방 마리서사를 열어 한국 모더니즘 시 운동의 발상지 역할을 했다.1956년 이른 봄 탤런트 최불암 모친이 운영하는 명동의 술집 은성에서 박인환은 즉석에서 시를 쓰고, 이진섭은 곡을 붙이고, 나애심은 노래를 불렀다. ‘세월이 가면’이다. 3월 17일 늘 좋아했던 이상 시인의 추모의 밤에 너무 과하게 마신 술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30세였다. ‘목마와 숙녀’란 시는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난다. 그는 한 잔의 술을 마시고 목마를 타고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났다. 그가 평생 심취한 스물일곱에 요절한 천재시인 이상처럼 짧은 생을 살았던 것이다. 그 당시에는 최고의 미남 시인으로 백석, 임화, 박인환을 꼽았다.매끄러운 만남과 대화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유머다. 그러므로 유머를 인간관계를 이어주는 윤활유라고 말한다. 그만큼 요즘은 누구랄 것도 없이 유머 있고 재미있는 사람에게 호감을 나타낸다. 재치 있는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한바탕 웃음을 터트리게 하는 사람, 바로 그런 사람이 요즘 매력적인 사람이다.정유일주의 유금(酉金)은 해가 서산에 저물 때 정화(丁火)의 불빛이 유금 보석에 반사되어 어둠을 밝혀주니 등대 같은 천을귀인이 된다. 유(酉)는 동물로는 닭이다. 닭 중에서도 ‘기유(己酉)’가 덕이 있는 스타일이라면, ‘정유(丁酉)’는 용맹 스타일의 솔선수범형이다. 그래서 ‘거친 세상의 다리’라고도 하고, ‘일몰의 등대 또는 가로등’이라 한다.정유는 그렇게 대범하기에 희생정신이 높다. 자신만의 독특한 내공이 있기에 해가 저물 때 등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나름 한가락 하는 기술이 있어 아랫사람과 주변사람을 잘 챙겨주고픈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자신이 모든 면에서 수준급 이상으로 돋보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노는 것도 엄청 좋아한다.사마천 ‘사기’에 ‘삼년불비우불명(三年不飛又不鳴)’이란 고사가 있다. 춘추오패 중 한 사람이었던 초나라 장왕은 즉위하자, 신하들에게 이렇게 선언했다. “앞으로 과인에게 간하는 자는 누구든지 사형에 처할 것이다!” 장왕은 3년 동안 국정을 돌보지 않고 사치와 향락에 빠져 살았다.마침내 충신 오거는 죽을 각오를 하고 우회적으로 간언을 했다. “신이 수수께끼를 하나 낼까 하는데 어떻습니까?” “해 보시오.” “큰 새가 한 마리 있사온데, 3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사옵니다. 이 새가 어떤 새입니까?” “3년이나 날지도 울지도 않았으나, 한 번 날면 하늘에 오를 것이고, 한 번 울면 온 세상 사람을 놀라게 할 것이오. 그대의 뜻은 잘 알았으니 물러가시오.”그러나 장왕의 주색잡기와 방탕함을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보다 못한 대부 소종이 나섰다. 장왕은 화를 내며 소종을 꾸짖었다. “그대는 내 말을 못 알아들은 모양이요?” “알고 있사옵니다. 국정에 전념하신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나이다.” “알았소. 물러가시오.” 류대창 명리연구자 장왕은 그날부터 주색과 향락을 멈추고 정무를 보기 시작했다. 먼저 한 일은 간신과 탐관오리를 숙청하고, 충신과 뛰어난 인재를 등용하였다. 목숨을 걸고 간언했던 오거와 소종은 높은 관직을 내리고 중책을 맡겼다. 3년간의 방탕한 생활은 옥석을 가려내기 위한 술수였다. 나라는 안정되었고, 백성의 생활도 윤택해졌다. 백성들은 몹시 기뻐하며 장왕과 충신들을 칭송했다.두꺼비나 개구리나 온갖 벌레들이 밤낮없이 울어 입이 마르고 혀가 지칠 지경이 되어도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장닭은 새벽에 길게 한 번 울어 제쳐 온 세상을 잠에서 깨운다. 말을 많이 하면 무엇이 좋아지는가? 중요한 것은 적절한 시기에 그 상황에 맞는 말을 하는 것이다.누구든지 한 가지의 능력은 가지고 있다. 하나의 능력은 오직 그만의 것이다. 그것을 일찌감치 깨닫고 충분히 살려 성공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한 가지 능력이 무엇인지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힘만으로 능력을 찾아내는 사람도 있고, 세상의 반응을 살피며 자신의 능력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모색하는 사람도 있다. 틀림없는 사실은 어떠한 경우라도 주눅 들지 않고 씩씩하고 과감하게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자신만의 한 가지 능력이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2023-04-26

지옥이 된 도시

유튜브에서 펜타닐에 중독된 사람들이 좀비처럼 흐느적대는 필라델피아 켄싱턴 거리를 봤다. 펜타닐은 헤로인보다 50배 이상 강력한 마약인데, 원래 말기 암 환자가 고통을 덜기 위해 쓰는 진통제라고 한다. 몇 해 전부터 미국 사회에 조용히 확산되더니 이제는 심각한 사회 문제가 돼 버렸다. 펜타닐은 강력한 뇌 손상을 일으키고, 중추신경을 파괴한다. 이 마약에 중독되면 허리를 펴지 못하고 방향감각을 상실해 제자리를 맴돈다.생지옥이나 마찬가지인 살풍경 너머로 익숙한 배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2019년 10월, 필라델피아에서 영화 ‘Rocky’의 흔적을 찾아 하루 종일 걸었다. 영화 속 록키의 비좁고 냄새나는 아파트, 트레이너 미키의 체육관, 거리의 아카펠라 싱어들이 노래를 부르던 모퉁이가 모두 켄싱턴에 있다. 그곳이 미국 동부 최대의 마약 시장인 줄도 모르고, 몰라서 용감한 건지 아니면 언뜻 험악해 보이는 거리의 인상에도 객기를 부린 건지 홍대 거리 걷듯 혼자 휘적휘적 걸어 다녔다.며칠 뒤 밴쿠버에 가선 현지 지인 부부로부터 저녁 초대를 받아, 숙소가 있는 웨스트엔드에서 약속 장소까지 한 시간 남짓 걸어가는 동안 이스트 헤이스팅 스트리트와 차이나타운을 관통했다. 걸어서 왔다고 하니 부부가 놀랐다. 밴쿠버에서 가장 위험한 우범지대를 지나왔다는 것이다. 하긴, 지나는 길에 경찰로부터 소지품을 검사 당하는 사람들을 여럿 보긴 했다.필라델피아에서도 밴쿠버에서도 자칫 험한 일을 겪을 뻔했다. 지금 다시 걸어 다니라면 안할 것 같다. 겨우 4년이 지났는데, 나이 든 것이다. 미 동부 최대 마약시장과 살인, 강도, 총기 사고가 빈번한 밴쿠버 우범지대를 쏘다니며 위험하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은 것은 강심장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건장한 체격을 가진 남성이라는 데서 어떤 안정감 같은 걸 얻은 까닭일 테다. 아니면 여행이라는 행위 자체가 사람을 쉽게 낭만과 환상에 취하게 해 현실감각을 둔화시킨 탓인 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다 어리석다. 그저 운이 좋아 아무 일 없었다.그런데 사람이 좀비가 되어 버린 도시는 그냥 우범지대가 아니다. 우범지대나 치안부재 같은 말은 인간 이성이 인간을 통제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나 쓴다. 유튜브 영상 속에 펼쳐진 지옥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고장 난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느릿느릿 경련하는 사람들 모습 아래 ‘참혹한 인간 추락의 거리’라는 자막이 섬뜩하다. 그 자신이 알코올중독에 시달리다 자살한 헤밍웨이의 문장을 생각하는 새벽이다.“인간은 파멸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는다”고. 글쎄, 이제는 파멸과 패배가 다르지 않은 세상인 듯하다. 펜타닐에 중독된 수백 명의 사람들이 노상방뇨를 해 켄싱턴 거리에는 소변 웅덩이가 곳곳에 생길 정도라고 한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나라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유명 연예인들의 마약 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서울 강남의 클럽에서는 암암리에 마약이 거래돼 강간, 강도, 불법촬영 등에 이용되기도 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젊은 세대에서 마약 중독으로 치료를 받은 환자가 5년 사이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얼마 전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학생들에게 ‘마약 음료’가 배포되는 사건이 있었다. 또 며칠 전에는 호텔과 클럽 등에서 필로폰을 투약하고 집단 환각 파티를 벌인 남성 60명이 검거되는 일도 있었다. 더는 마약 청정국이 아닌 것이다. 사회적인 불안감과 시민들의 요구에 비해 마약사범 처벌은 솜방망이처럼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켄싱턴의 악몽이 서울에 펼쳐지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필라델피아는 미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다. 미국인들의 개척정신과 자유의식은 이곳 독립기념관과 ‘자유의 종’을 뿌리로 한다. 뉴욕, 워싱턴, 보스턴과 함께 손꼽히는 교육 도시이기도 하다. 그런 도시가 지금 마약에 취해 비틀거리는 중이다. 4년 전 가을, 미스트 같은 가을비를 맞으며 걸었던 필라델피아 켄싱턴 거리는 신시가지에 비해 쇠락해 스산했지만, 크고 근사한 명소나 세련된 현대식 건물들, 화려한 다운타운에서는 느껴지지 않는 정감과 투박한 온기가 있었다. 마약상들이 판치는 우범지대라지만 그곳에도 사람이 산다. 사람이 사람으로 계속 살 수 있을까? 그 지옥이 우리의 일상으로까지 전염될까 두렵다.

2023-04-25

일상 속 낭만 더하기

낭만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정확히 말하자면 낭만을 지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실은 그 전까진 낭만은 현실적이지 못한 것, 지나치게 감정적이거나 감상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낭만이란 어린이의 허무맹랑한 상상력에 가까우며 오히려 현실을 지나치게 부정하고 외면하는 이들이 꿈꾸는 꿈처럼 보였다고 해야 할까.지난날의 나는 삶을 비관적인 것으로 대했다. 때때로 좋은 일이 생기기도 하지만,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보다 좋지 않은 일이 더 큰 크기로 찾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늘 다가올 불행에 대처하기 위해 겸손한 태도도 생을 대했다. 좋은 운이 찾아와도 차분함을 유지하려 불운 쪽으로 몸을 기울였고, 불운이 찾아올 때는 고통이 지나갈 때까지 슬픔으로 깊게 잠겼다.실은 나는 우울감을 쉽게 느끼는 본성을 지녔지만, 우울에서 금방 빠져 나와 다시금 씩씩하게 살아가는 편이다. 우울 속을 옅게 부유하다 다시 수면 바깥으로 나와 유유자적 수면 위를 헤엄치는 쪽이라고 해야 할까.과연 인간은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지 인간의 이면을 보며 무기력하게 방바닥을 기어 다니다가도 바깥 산책을 하면 금방 눈을 반짝이고 만다. 대가 없는 친절과 배려, 그리고 오랜 기간 묵묵히 선을 지향하는 이들을 마주하면, 그래 세상엔 좋은 사람이 더 많은 것이라고 고갤 끄덕이며 다시금 용기를 얻는다.하지만 작년 한 해의 나는 지나치게 무기력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부터 모든 의욕을 잃었다. 사소한 일 하나하나에도 너무 많은 신경과 노력을 쏟아버린 탓일까. 쓸쓸하게 타 버린 성냥처럼 또 다른 쓸모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망해했다.도피와 외면을 일삼다 결국 아무것도 모르겠는 상황이 와버렸을 땐, 내가 택해버린 건 잠이었다. 하루 온종일 잠의 뿌리를 내리는 동안 나를 질타하는 이도 회피하는 이도 있었으나 나를 깨우기 위해 현관문을 두드리는 이가 있었다. 자주 집에 찾아와 잠을 깨우고 밥을 먹이고 산책을 하며 심심한 농담과 함께 주말 약속을 잡던 고마운 사람이다.나의 우울은 같은 크기를 지닌 우울이 나를 알아보고 진정 나를 이해해줄 수 있으며, 슬픔은 슬픔을 구원할 수 있다 여겼으나 실은 슬픔은 아무것도 구원할 수 없다.외려 깊은 슬픔은 옆에 있는 이를 슬픔의 늪으로 깊게 끌고 들어갈 뿐이다. 슬픔에 처한 타인의 심정을 공감하고 헤아릴 순 있겠으나, 타인이 지닌 슬픔은 온전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관문을 두드려 나를 깨우던 이에게도 타인을 절대 구할 수 없다는 또 다른 외로움만을 안겨줄 뿐, 그렇게 계속 실패로 기록되는 관계는 머지않아 단절된다. 마치 정해진 공식처럼.외로움은 정신적 고통이 지속되는 일이고 깊고 복잡할수록 타인에게 이해 받고 회복될 수 없다는 걸 안 순간 한결 삶이 편해졌다. 외로움은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겪는 고행이자 의무로 여기니 삶을 즐길 수 있는 여유와 낭만에 대해 오히려 시선이 갔다. 삶을 무턱대고 비관하기보단 유연하게 대처하며 세상의 긍정적이고 밝은 면도 궁금해졌다고 해야 할까.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요즘은 일상의 낭만을 더하는 데에 기쁨을 느끼고 있다. 쓸모없을수록 의미 또한 부재할수록 좋다. 꽃 한 다발을 사서 책상 위에 올려두는 것, 작은 꽃의 이름을 익히는 것, 서점에서 즉흥적으로 골라온 시집을 사서 읽는 것,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의 여행 계획을 짜는 것, 계절마다 제철 음식을 먹기 위한 일정을 짜는 것, 프로틴 쿠키나 그릭 요거트 바 만들기 등 크고 작은 이벤트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동안 일상은 더 디테일해졌고 행복으로 가까워졌다.4일 전에 사온 꽃이 금방 머리를 숙여 시든다고 하더라도, 도무지 시를 이해할 수 없더라도, 제철음식을 먹기 위해 많은 시간과 돈, 수고가 들더라도 마음의 결은 더 촘촘해지고 부드러워진다.5월에는 놀이공원을 갈 것이고 6월엔 오사카와 교토 여행을 간다. 주말에는 다시 러닝을 하면서 몸에 좋은 음식을 만들어 먹기 위한 레시피를 뒤적인다. 이 모든 걸 즐기기 위해선 또 일을 해야 한다. 건강히 일하며 일상의 낭만을 계속해서 발견하고 누리는 삶, 이렇게 적어 놓고 나니 현재 나의 모습이 꽤 마음에 드는 것 같다.

2023-04-25

배터리도시 포항, 특화단지 유치에 총력 쏟길

포스코그룹의 광양제철소 집중투자로 포항시민들의 상실감이 큰 가운데, 포항소재 글로벌 배터리 업체들의 공격적 투자가 국내외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다행이다. 포스코퓨처엠(포스코케미칼)은 그저께(24일) 이사회를 열고 오는 2025년까지 포항 영일만 4일반산업단지에 4만6천t 규모의 하이니켈 NCMA 양극재(리튬·니켈·코발트·망간·알루미늄을 원료로 제조) 공장을 추가 건설하는 안건을 승인했다. 올 하반기에 착공해 2025년 공장을 준공한다.포스코퓨처엠은 포항지역에 올 하반기 연산 3만t 규모의 1단계 공장을 준공하며, 이달에는 3만t 규모의 2단계 공장도 착공한다. 이번에 이사회에 승인된 공장까지 준공되면 총 10만 6천t 규모의 포스코퓨처엠 생산단지가 포항에 들어서게 된다.니켈 비중을 80% 이상 높인 하이니켈 NCMA 양극재는 배터리 용량과 출력을 높이고 수명도 늘릴 수 있어, 전기차 고성능화 추세에 맞춰 수요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포스코퓨처엠은 현재 광양공장(연산 9만t)을 비롯해 구미공장(1만t), 중국 저장성 절강포화 공장(5천t) 등에서 10만5천t 규모의 양극재를 생산하고 있다. 영일만산단에 ‘에코배터리 포항캠퍼스’를 조성해둔 에코프로도 국내 양극재 기업으로서는 최초로 지난 21일 헝가리 현지에 생산 공장을 구축해 2차전지 양극소재 세계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굳히고 있다.포항시는 현재 정부에 이차전지 특화단지 지원신청서를 낸 후 지정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정부의 특화단지 지정 기준대로라면, 포항이 단연 최적지다. 포스코퓨처엠과 에코프로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포항을 거점으로 해서 국내외 투자를 해오고 있는데다, 이차전지 산업의 생태계가 튼튼하게 구축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포스텍 등 4개 대학과 마이스터고 2개교에서 매년 5천600여 명의 우수 엔지니어 인력이 배출되는 것은 타지역이 따라잡을 수 없는 강점이다. 포항지역 행정기관이나 정계, 그리고 산·학·연이 모두 나서서 이차전지 특화단지를 반드시 유치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하길 바란다.

2023-04-25

깡통전세도 걱정

우정구 논설위원 세입자의 보증금을 떼어먹는 전세 사기가 전국적으로 기승이다. 인천에서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 사기 피해자가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되면서 정부가 긴급히 특별법 제정에 나섰지만 사회적 파장을 가라앉히기는 쉽지 않은 분위기다.정부의 특별법으로 전세 사기 피해주택을 LH가 매입하고 피해자에게 우선 임대해 주기로 했지만 전세사기 범죄에 대한 예방책이 없는 한 근본 해결책은 아니다. 올 들어 주택도시보증공사에 신고된 전세보증 사고는 역대 최다급으로 집계되고 있다. 전세시장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깡그리 무너질까 우려될 정도다.특히 지금처럼 집값과 전세값이 급락하면 깡통전세라는 또다른 문제로 비화될 소지가 많다. 깡통전세란 집주인의 주택담보 대출금액과 전세금을 합친 금액이 집값에 육박해 시장침체로 집값이 떨어지면 세입자가 전세금을 떼일 우려가 있는 주택을 말한다. 통상 주택담보 대출금액과 전세금을 합친 금액이 집값의 70%를 넘어서면 깡통전세로 본다.2013년 주택산업연구원이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집값은 하락하고 전세금만 오르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향후 2년내 깡통전세로 내몰릴 수 있는 가구가 수도권만 19만 가구로 추정된 바있다.최근 주택금융연구원은 집값이 10∼20% 하락하면 올 하반기부터 경북의 공동주택 40% 이상이, 대구는 30% 이상이 깡통전세로 전락할 수 있다는 예측을 내놓았다.최근 일부에서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 떨어진 전세값 만큼 세입자에게 역월세를 주는 편법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오락가락하면서 전세사기가 양산됐는데, 자칫 깡통전세사태가 나올까 두렵다. 정부의 부동산 안정화 대책이 서둘러 나와야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4-25

대구경찰의 잇단 일탈…경찰 신뢰 추락이다

대구경찰청 소속 경찰관들의 불법·탈선행위가 끊이질 않고 있다. 경찰 간부가 음주운전을 하다 시민의 신고로 적발되는가 하면 범칙금 고지서를 거짓으로 발부하다 들통이 나고, 폭행 등에 연루되는 등 기강해이가 도를 넘고 있다. 특히 음주운전을 단속해야 하는 경찰관이 음주운전으로 적발돼 언론에 알려진 사례가 올 들어서만 네 번이나 발생하면서 시민들을 크게 실망시키고 있다.이 같은 경찰관의 일탈행위는 경찰 조직에 대한 대시민 신뢰를 추락시키는 것은 물론이요,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공무를 수행하는 동료 경찰의 사기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엄격한 기강확립이 있어야 한다.대구남부경찰서 소속 A경정은 24일 오전 3시 54분쯤 수성구 중동과 황금동 일대에서 술에 취해 1.2km가량을 운전하다 시민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 당시 A경정은 혈중알코올 농도가 면허정지 수치를 초과했던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대구성서경찰서 소속 B경감은 어린이 보호구역에 불법주차를 했다가 주정차위반단속 과태료(12만원)를 받게 되자 이를 피하기 위해 스스로 범칙금 고지서를 발부하다 적발, 기소됐다. 또 지난달에는 수성경찰서 소속 경찰 간부가 택시기사를 폭행하다 현행범으로 체포된 일도 벌어졌다.민중의 지팡이로 불리는 경찰이 일부 경찰관의 일탈로 조직 전체가 불명예스러운 집단으로 비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치안을 책임지는 경찰의 위상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일이 없도록 내부기강 확립에 나서야 한다.특히 음주운전은 최근 대전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일어난 음주운전 사망사고가 알려지면서 국민적 거부감이 매우 높다. 경찰관의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 고취와 교육 등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검경수사권 조정과 지방분권 활성화를 위한 자치경찰제 도입 등으로 경찰의 역할은 더 막중해졌다. 시민과 가까워져야 할 경찰이 각종 비리와 탈법으로 이미지를 흐린다면 시민이 믿고 치안을 의존할 수가 없다. 대구경찰은 경찰의 대시민 신뢰 회복과 경찰 위상회복을 위한 강도 높은 쇄신책을 강구해야 한다.

2023-04-25

수도권 중심론자의 ‘예타면제’ 시비

심충택 논설위원 최근 홍준표 대구시장과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이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두고 설전을 벌이는 것을 지켜보면서, 수도권 중심론자의 이기적인 사고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설전은 지난 14일 윤 전 의원이 CBS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지역에 다 공항을 만들면 어마어마한 투자가 필요하다. 전에 무안공항에서 동네 주민이 고추 말리는 사진도 봤는데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말한데서 비롯됐다. 듣기에 따라서는, 바로 이날 국회 상임위를 통과한 TK신공항 특별법을 비꼬는 투로 해석됐다. 이에 홍 시장은 “국토균형발전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안고 출발하는 신공항을 비아냥대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며 윤 전 의원을 직격했다. 홍 시장은 TK신공항 없이는 대구·경북의 미래가 없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두사람간 설전의 쟁점은 ‘예타’다. 윤 전 의원은 “총선이 다가오면서 예타 기준을 완화하는 여야협치로 전국이 총선 공사판이 될 우려가 있다”며 비아냥댔다. 누가 들어도 대구·경북과 부산, 광주 신공항건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국회 기획재정위는 지난 17일 전체회의에서 대규모 재정사업의 예타면제 기준을 대폭 완화하는 내용의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처리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수도권 보수언론이 중심이 돼 예타면제 기준 완화에 대해 집중적인 비판기사를 쓰자, 국민의힘이 갑자기 법안처리에 제동을 건 상태다.예타는 지난 1999년 예산낭비를 줄이는 차원에서 도입됐다. 예타는 사업의 경제성에 초점이 맞춰진 반면, 본심사인 타당성조사는 기술적인 문제에 중점을 둔다. 경제성 분석에서는 ‘비용 대비 편익(B/C)’을 따진다. 자연적 돈과 사람이 몰려 있는 비수도권이 유리하다.과거에도 수도권언론은 사회간접자본(SOC) 예타면제 논란이 있을 때마다 ’세금 낭비·선심성 사업‘이라며 정부를 압박했다. 예타지수는 그 속성상 인구나 경제력이 집중된 곳일수록 높게 나오게 돼 있다. 수도권에서는 도로나 전철건설 등을 위한 예타가 수월하게 진행되지만, 비수도권 SOC건설은 예타면제 없이는 거의 사업이 불가능하다. 예타가 수도권 일극주의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만드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가 재정법시행령에도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국가 정책적 사업에 대해서는 예타 면제를 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국회가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심사하면서 예타면제의 기준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기준이 분명하지 않을 경우 차별과 특혜 논란으로 지역 간 갈등이 심각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때 명확한 기준 없이 광역단체별로 1개의 SOC사업에 예타를 면제해 주겠다고 발표했다가, 지자체간에 큰 혼란이 발생한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당시 각 지자체가 SOC사업을 따내기 위해 경쟁적으로 권력실세들에게 줄을 대는 사태가 발생했다. 윤희숙 전 의원을 비롯한 수도권 정치인들은 국가균형발전이 시대적 과제임을 꼭 명심해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예타와 상관없이 공기업 지방 이전을 단행해 비수도권 지역민들로부터 두고두고 칭송을 받지 않는가.

2023-04-25

AI 진리전쟁

전재영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 철의 재상 비스마르크는 역사에 대해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역사란 인쇄된 종이 조각에 불과한 것. 중요한 것은 역사를 만드는 일이지, 역사를 쓰는 일이 아니다.”그가 정확하게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역사를 만드는 일 만큼, 역사를 쓰는 일은 예전에도 중요했고, 앞으로 어쩌면 더 중요해질지도 모른다. 우리가 지금껏 불러왔던 역사라는 것이, 이제는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데이터라고 불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데이터는 인간의 단순한 질문에서부터 철학, 종교, 윤리 등 모든 분야의 심오한 질문들에 응답할 수 있는 AI 개발을 위해 사용되어지고 있기 때문이다.지금 ChatGPT에게 낙태나 이민자 문제 등에 관한 질문을 하면, 매우 중립적인 자세를 취한다. 이런 답이 가능한 것은, 사회적 이슈가 될 법한 내용들은 ChatGPT를 만든 OpenAI가 검열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작년 11월 ChatGPT가 처음 나왔을 때의 편향된 답과는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잘된 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여기서 좀 더 깊게 생각해 볼 것은 옳고 그름을 떠나 검열 작업이 누구의 생각을 바탕으로 되었냐는 것이다. 위키피디아의 글들은 전 세계 흩어져 있는 많은 사람들이 협업을 통해 검열을 하지만, ChatGPT에 행해진 검열은 한 조직의 생각에만 기반을 둔 검열이기 때문이다.우리는 구글 검색을 할 때, 일일이 링크를 눌러보며 내가 찾는 것과 가장 가까운 검색결과를 분별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을 전부 건너뛰고, 바로 답을 줄 수 있는 ChatGPT가 구글을 대체할 것이라는 소리가 여기저기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구글의 독점이 딱히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구글 검색을 하는 동안은, 우리가 검색 결과를 추려내는 일종의 검열자 역할을 스스로 한 것이나 다름없기에, 최소한 진리를 강요받지는 않았다. 아니 최소한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비진리인지를 스스로 판단해 볼 수 있는 선택의 여지는 우리에게 주어졌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선택권을 잃어버리는 중이다.OpenAI는 계속 중립을 유지할 것이라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 회사는 인공지능 기술이 어느 한 대기업이나 한 국가에 속하는 것을 원치 않는 몇몇에 의해 세워진 비영리회사로 시작했었는데, 이제는 몇 억 달러를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공급받는 하청업체가 되어 버렸다.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을 생각해보게 된다. 인간을 쫓아내고 공화국을 세운 동물들은 7계명을 작성했고, 그 중 하나는 “동물을 죽이면 안 된다”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동물이 죽임을 당했는데, 원래 계명은 이미 소리 소문 없이 “이유 없이 동물을 죽이면 안 된다”로 수정되어 있었고, 어느 누구도 원래 계명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 했기에, 그 죽임은 이유 있는 죽임으로 합리화 된 채 그냥 그렇게 마무리 된다.위키피디아가 시작한지 20년이 지났다. 이제는 위키피디아에 있는 문서들에 대해 진리를 판가름하려 드는 일반인은 거의 없다. 동물농장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이제 진리전쟁을 준비해야만 하는가?

2023-04-25

포항 수도산을 거닐며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모처럼의 여유로운 휴일 아침, 도심을 가로지르는 철길숲을 따라 걸었다. 폐선된 철도부지에 도시숲을 조성하던 중 분출된 천연가스에 불이 붙어 ‘불의 정원’이 된 불꽃은 6년째 계속 타오르고 있고, 양학동으로 이어지는 비탈진 주말농장 터에는 시민들의 문화·전시·휴양을 만끽할 수 있는 ‘포항철길숲 시민광장’ 조성공사가 한창이다. 줄곧 자전거로만 달리던 철길숲을 한가로이 걸으니 이것저것 보이는 것도 많고, 주변의 상가나 식당 등 달라진 곳도 더러 보인다. 그렇게 한시간여 걸어서 이른 곳은 포항시 북구 덕수·우창·중앙·용흥동 일부지역에 위치한 덕수공원이다.수도산 자락에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인 6·25전몰군경 충혼탑과 반공순국청년동지위령비, 모갈거사(茅葛居士) 순절 사적비 등 호국·보훈시설과 충절·공덕비가 있는 덕수공원은, 관음사 등 3개의 사찰과 포항시 당산(祠堂)을 비롯, 호국감사둘레길·운동시설 등이 조성돼 철길숲과 연결되는 시민들의 행락, 휴식처이다. 산이라기 보다는 78m의 낮은 구릉같이 보이는 수도산을 처음에는 백산(白山)·서산(西山)·모갈산 등으로 불리다가, 일제시대인 1923~1926년에 걸쳐 산마루에 완공된 저수조(貯水槽) 등의 상수도 시설로 인해 현재는 수도산(水道山)이라 불리우고 있다.40년 이상 포항지역에 살면서 차를 타고 서산터널을 통행하거나 수도산 주변을 수없이 지나치면서도 덕수공원과 수도산을 제대로 둘러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긴,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급행열차 같은 일상의 틈바구니에 놓치고 챙기지 못한 일들이 어디 산책이나 산행뿐이랴. 가끔씩 여유롭게 주변을 찾아 문화재나 유적지를 답사하며 자연을 벗삼다 보면, 보이고 느껴지는 것들이 한결 새롭게 깊은 울림으로 스며들텐데 말이다. 그래서 떠남과 스밈은 고금동서와 만나 사유하고 교감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수도산의 중턱쯤에는 회백색의 콘크리트 육각형 구조물로 일제시대의 건물양식을 띤 돔 형태의 뾰족한 지붕으로 마감된 당시의 배수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0여㎞ 정도 떨어진 도음산 학천계곡에서 물을 끌어와 고지대의 상수도 시설에 물을 채운 후 당시 중앙동, 덕수동 일대 300여 가구에 급수를 해줬다 하며, 물의 덕은 커서 그 지경이 없다는 뜻의 ‘수덕무강(水德无疆)’ 글씨가 건물에 새겨져 있지만 글씨를 쓴 사람의 이름자는 훼손된 상태다.초록의 향연이 굽이치고 있는 수도산 일대는 도심 속의 쉼터 같이 아늑하게 다가왔다. 그다지 높지도, 힘겹지도 않은 둘레길을 따라 걸으니 군데군데 아파트 숲과 주택가가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고, 멀리 영일만의 푸른 바다와 포스코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경이 시원스레 펼쳐졌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문화적인 유적이 있고 전망 좋은 경치를 조망할 수 있다니, 공원에서 느껴지는 호젓함보다는 테마가 주는 정겨움으로 위안과 안도감을 주는 편한 곳이 아닐 수 없었다.몇일 간 심했던 미세먼지가 사라지니 개운하기만 하다. 어쩌면 ‘수도산’ 같은 명칭의 일제 잔재가 미세먼지 마냥 찜찜하게 여겨짐은 필자만의 과민일까, 기우일까?

2023-04-25

우리가 책을 볼 때, 책은 우리를 본다

우리 세대에서 가장 통찰력 있는 이미지 비평가 중 하나인 존 버거는 “왜 동물들을 구경하는가?”하는 질문을 통해, 동물원에서 인간이 동물을 관찰하는 것에 담겨 있는 의미에 대해 다룬 적이 있다.인간은 동물원 안에 갇힌 동물들을 보러가지만, 정작 그곳에 진정한 동물의 모습은 존재하지 않는다. 동물원에서 우리는 인간과 친밀한 동물의 모습을 보러가지만, 그것은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동물원 속의 동물과 인간의 구별된 모습에 불과하다. 인간의 시선을 통해 만들어낸 구경이라는 행위의 가치는 제도의 한계를 벗어나 그 근원을 바라보는 것이 될 수는 없다. 인간과 동물을 가르는 동물원의 쇠창살 너머로 우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동물의 이미지를 발견하지만, 그 너머로 우리를 바라보는 동물의 시선은 그야말로 우리가 상상하는 그대로의 것일 뿐이다.우리가 책을 통해 세상을, 그리고 타인을 바라보는 것 역시 어쩌면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한때 인간의 문학은 글쓰기를 통해 세상을 미니어처로 재구성하고, 이를 통해 다시 세상을 바꾸는 도구로 여겨지기까지 했지만, 정작 그 문학 속에 진정한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속에는 이미 우리가 보고 싶어하는 세상이 들어 있는 것뿐이다. 마찬가지로 내 손이 닿는 영역 저 바깥에 존재하는 타인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문학작품을 통해 가끔 진정한 타인을 만난다고 생각하지만, 그 속에는 우리에게 이미 익숙하고 친밀한 타인만 존재한다.우리가 동물원을 벗어나서야 동물의 진짜 동물성을 바라볼 수 있는 것처럼, 진정한 세상이나 낯선 타인이란 책을 덮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의 눈에 들어올 수 있는 대상일지도 모른다. 동물원이 아니고서야 동물을 보기 어려운 것처럼, 문학이나 책이 아니고서야 세계나 타인의 모습을 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그 속에 진정한 그것의 모습은 존재하지 않는다.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 ‘유리동물원’은 과연 인간이 ‘나’를 벗어나 진정한 세계를 발견하고, 저 바깥의 타인과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 하는 가능성을 보여준 가장 고전적인 우화이다. 이 희곡은 오래 전 가족을 떠난 톰이 자기를 소개하고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톰의 어머니인 아만다 윙필드는 먼 나라를 동경하여 떠난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을 꾸려가면서 현실을 부정하고 빛났던 과거를 동경한다. 하지만 아만다는 과거와 현실의 간극 사이에서 아들인 톰과 로라의 삶에 끊임없이 간섭한다. 아만다에게 있어 현실이란 그저 부정의 대상일 뿐이고, 그 시선은 현실 너머의 빛나는 과거를 향해 있을 뿐이다.이 가족 드라마 속에서 ‘유리동물원’이라는 제목은 로라가 집착하듯 모으고 있는 유리로 된 동물들을 가리키는 것이면서, 또 아만다가 가족을 바라보는 방식으로서 그녀가 생각하는 가족의 모습이기도 하다. 로라는 자기가 모으던 ‘유리동물원’을 깨뜨리고 만 짐과의 사랑을 통해 현실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지만, 정작 로라가 마주친 현실은 허위와 거짓으로 가득차 있었다. 유리동물원 속 모든 가족들은 자기들이 만들어낸 환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으며, 환상에서 벗어나 실제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 가족의 환상을 떠나는 방법밖엔 없었던 것이다. 세계대전이 아직 한창이던 1944년 극작가인 테네시 윌리엄스는 당시 미국인들이 갖고 있던 가족에 대한 환상과 실제 사이를 폭로하는 작품을 썼던 것이다.우리는 동물원에서 동물을 보고, 책을 통해 세상을 본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은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우리의 시선이 만들어낸 환상일지도 모른다. 책을 덮고 난 뒤 저기 있는 비어있는 실제의 현실을 만나는 것까지가 독서의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홍익대 교수 송민호

2023-04-24

영천 임고서원, 정몽주의 숨결

영천에 가면 고려말 충신,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년)를 모시는 임고서원(臨皐書院)이 있다. 1600년경 지금의 위치에 자리 잡은 이 서원은 해가 좋은 날, 맑은 공기를 폐부에 녹여가며 한나절 산책하기에 딱 좋은 풍광과 정취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서원의 입구에는 수령이 500년이 넘은 웅장하고 풍성한 은행나무가 반갑게 사람들을 맞이한다. 그 근처에 정몽주의 단심가와 그의 어머니가 지었다는 백로가가 새겨진 독특한 모양의 기념비가 보인다. 그 옆에는 서원으로 들어서는 계단이 있다. 임고서원은 현재 신서원과 구서원으로 나뉜다. 왼쪽에 조금 오래되어 보이는 몇몇의 건물이 구서원이며, 오른쪽에 큰 마당을 중심으로 시원하게 서 있는 건물들이 신서원이다. 근처의 ‘포은이 물고기가 아니라 용을 낚는다’고 이름 붙인 조룡대(조옹대)와 용연, 상징적인 선죽교와 포은박물관, 지역문화와 연계가 높은 충효문화수련원, 산책로가 모두 서원의 영역에 포함되어 있다.임고서원은 1553년 경상도 관찰사 정언각(鄭彦慤·1498∼1556년)이 건의하고, 노수·김응생·정윤량·정거 등이 함께 창설을 계획하여 그 1년 뒤인 명종 9년에 창건되었다. 명확하지는 않지만 소수서원(紹修書院·1543년)의 건립 때처럼 퇴계 이황의 의견이 반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임고서원은 ‘조선왕조실록’에 사액서원이 되는 과정을 5번이나 기록할 정도로 조정의 관심을 받았으며, 소수서원(안향)·문헌서원(최충)·남계서원(정여창)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영남의 대표적인 서원이 되었다.사액서원이 된다는 것은 크나큰 영광이면서 나라가 인정한 위상이다. 왕이 하사한 사서오경과 많은 위전을 보유하여 지방문화의 최전방에 위치하게 되었으며, 직지사·인각사·환성사·운부사 등의 토지에서 세금을 수조할 수 있었으며, 생선과 소금과 노비를 통해 경제적인 안정을 확보할 수 있었다. 수입의 안정은 서원의 운영을 원활하게 하여 그 영향력을 확장시킬 수 있는 발판이 된다. 임고서원의 영남을 아우르는 영향력은 목판이 아닌 목활자를 소유하고 있어 지방의 관공서에 빌려주었다는 기록이나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사액서원이 되었다는 기록이나 ‘심원록(尋院錄)’에 적힌 방대한 방문자 이름만 살펴봐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심원록’에 의하면, 주로 퇴계학파와 남명학파가 많이 방문했으며, 종종 기호학파에서도 방문했다. 퇴계학파와 남명학파 모두 방문 기록이 많은 이유는 기축옥사(己丑獄事·1589년)로 인해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분화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임진왜란 전에는 퇴계학파만의 서원이 아니라 영남 전체를 아우르는 서원이었다. 하지만 임고서원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완전히 화재에 소실되어 8년간 향사도 못 지내고 불타버린 옛터에 겨우 한 칸의 초가집을 마련하고서야 정몽주의 영정을 모시는 수모를 겪는다. 1600년 이원익에 의해 새로 짓게 되면서, 선조 36년(1603년)에 현재의 위치에서 다시 사액을 받는다. 이후 서원철폐령(고종 8년, 1871년)으로 문을 닫았다가 1965년에 이르러서야 정몽주 위패만 모시고 다시 서원을 복원하였다.정몽주와 충은 뗄 수 없는 단어다. 하지만 그는 조선을 위한 충신은 아니었고, 쓰러져 가던 고려의 중흥을 위해 노력한 사람이었다. 그가 조선에서도 ‘만고의 충신’이 되었던 이유는 태종의 추앙과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년)의 극찬이 있어서이다. 정몽주와 죽음의 대척점에 서 있던 태종의 이러한 행위는 성리학을 빠르게 정착시키기는 방편도 되었지만 ‘다른 길을 걷는 자에 대한 존경’이라는 옛 선비들의 기상을 드러낸 부분이기도 하다.포은은 효로서도 유명하다. 19세에 부친상으로 3년 움막 생활을 하고, 24세에 장원급제를 하나 29세에 모친상으로 3년간 시묘살이를 한다. 1389년 그의 효행을 기리며 유허비가 세워졌다. 조선 성종때 경상감사 손순효(孫舜孝·1427~1497년)는 꿈속에서 백발노인의 “내가 이곳에 묻혀있는데 꺼내주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 인근을 수색한다. 그는 유실되었던 포은의 유허비를 찾아 다시 세웠다. 유허비는 복원된 정몽주 생가 인근에서 찾아볼 수 있다.현재의 임고서원은 교육기관이자 의례의 장소이자 지역 문화의 중심이었던 옛 역할을 일부 수행하며, 문화재 보존과 관광으로 인한 지역의 활성에도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소극적인 활동이 주를 이루며 지역 문화의 최전방에 있던 활발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영천만의 콘텐츠로 삼기에는 경기 지역에 포은과 관련된 행사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굳이 각 지역만의 콘텐츠여야만 할까. 포은은 유명인이라 모르는 사람이 없고 그와 관련된 역사적 장소는 전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각 지역이 아니라 전체를 아우르는 관광 상품과 체험형 콘텐츠를 개발한다면, 전국이 연계된 문화상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해가 좋은 봄날, 푸른 새싹이 돋아 싱그러운 임고서원의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포은 정몽주의 숨결을 되짚어본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최정화 스토리텔러

2023-04-24

대구 수출 고공행진…신산업 육성에 박차를

전국적인 수출 부진에도 대구지역 기업의 수출이 2개월 연속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대구시에 따르면 지난 3월 대구지역 수출액은 전년동기 대비 31.8% 증가한 11억5천만 달러로 전월 10억1천만 달러에 이어 2개월 연속 월별 수출액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전국 17개 광역단체 중 가장 높다.같은 기간 전국이 46억3천만 달러의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한 것과 달리 대구는 2억5천만 달러의 흑자까지 기록했다.이같은 호조세는 전기차 배터리소재와 경작기계 등의 미국발 수요가 늘고, 중국의 리오픈닝 영향으로 기계류, 의료용기기의 수출이 증가한 때문이다.무역협 관계자는 이런 수출 증가세에 대해 “친환경 모빌리티와 같은 성장산업에 필수인 중간재를 공급한 때문”으로 원인을 분석했고, 또 대구시는 “시가 추진하는 고부가가치 첨단산업으로의 산업구조 재편 노력이 결실을 거둔 것”으로도 분석했다.대구는 지난해 7월 민선 8기 출범후 UAM, 반도체, 로봇, 헬스케어, ABB 등을 5대 신산업으로 설정하고 산업별 육성 전략을 추진해 왔다. 대구 미래 50년을 이끌 주력 업종을 시대변화 등에 맞게 다듬어 가고 있다. 단기간에 실적이 나오진 않겠지만 첨단 분야에서 성과가 도출된 것은 고무적이다. 특히 전국 수출부진 속에 지역에서 괄목할 성장을 낸 것은 의미있다.최근 대구와 경북은 신공항 특별법이 통과되면서 지역 미래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있다. 또 대구에 국가산단이 추가로 지정되는 등 대구경제에 대한 지역민 기대감도 과거보다 높아졌다.신산업과 유망기업을 잘 유치하면 도시의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 도시간 기업 유치경쟁이 치열한 것도 이런 이유다. 자치단체가 어떤 정책을 펴고 어떻게 기업을 지원하느냐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최근 대구의 수출이 호조를 보인 게 지역의 산업구조 재편 노력과 유관하다면 산업구조 개편에 더 박차를 가해야 한다.지역산업에 대한 정밀분석과 전략을 통해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높여 주어야 한다. 특히 대구시는 유관기관과의 소통의 폭을 더 넓혀 중소기업이 많은 지역의 특성에 맞는 전략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23-04-24

부유한 국가, 불행한 국민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유엔이 최근 발표한 ‘세계행복보고서(WHR) 2023’에 따르면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OECD 38개국 중 35위로서 최하위권이며, 조사대상 137개국 가운데 57위다. 세계 10위의 경제력, 1인당 GDP 3만3천 달러의 부유한 국가에 살고 있는 국민들의 불행이다.행복이란 “일상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심리적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행복은 ‘삶의 질적 만족도’에 대한 개인의 ‘주관적 평가’이다. 행복을 결정하는 요인은 물질적 조건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가치관, 사회적 신뢰도, 정부의 청렴도, 사회적 관계 등 정신적 요인들이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그렇다면 한국인들은 풍요 속에서 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가? 양극화와 빈부격차로 상대적 박탈감이 크고, 소득·교육·기회의 불평등에 따른 빈곤의 대물림이 심각하다.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의 경쟁문화는 동물의 세계와 같다. OECD국가들 가운데 최악의 자살률·우울증·노인빈곤율·사회적 고립도 등은 불행의 증표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 0.78%는 청년들의 삶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음을 반증한다.반면에 행복지수 6년 연속 1위인 핀란드 국민들의 삶은 다르다. 핀란드는 ‘일과 삶의 균형’, 즉 ‘워라밸(work-life balance)’이 제도화된 나라다. 연간 30일의 유급휴가, 출산에 따른 유급육아휴직은 부모 각각 160일이 보장되고, 노인·장애인·신생아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안전망이 완벽하다. 물론 여기에는 엄청난 재정이 필요하고, 그들은 높은 세율을 기꺼이 감내하고 있다.특히 핀란드인들의 행복에 가장 큰 기여를 하는 요인은 ‘신뢰’이다. 정부와 정치에 대한 높은 신뢰, 공동체에 대한 높은 상호신뢰가 행복한 삶을 만들어주었다. 정치인들의 청렴한 삶은 사회적 신뢰를 조성했고, 대화와 타협의 선진정치문화는 국민통합에 기여했다. 우리 정치인들의 행태와는 너무나 대조되는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이제 한국이 가야할 길은 분명하다. 우리의 행복은 ‘정부와 개인’의 차원에서 ‘물질과 정신’이 동시에 개선되어야 제고될 수 있다. 정부차원에서는 국민신뢰 회복, 소득양극화 해소, 사회안전망 확충이 시급하다. 행복한 나라는 구성원들 간 행복격차가 작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지원의 강화와 ‘워라밸’의 제도화 역시 중요하다. 나아가 행복을 위한 올바른 가치관교육, 즉 개인적·물질적 가치 못지않게 사회적·정신적 가치를 중시하는 ‘전인교육’이 절실하다.개인차원에서는 ‘행복할 수 있는 인생관과 가치관’이 요구된다. 행복은 외적·물질적 조건보다는 내적·정신적 성숙에 더욱 좌우된다. 행복은 돈·권력·명예의 크기와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소득이 일정수준을 지나면 더 이상 행복은 증가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 paradox)’이다. 그럼에도 한국인들은 돈·권력·명예와 관련하여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함으로써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고 있다. 행복으로 가는 길은 바로 ‘내 안에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2023-04-24

주목받는 공유 숙박

홍석봉 대구지사장 에어비앤비(Airbnb)는 200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두 명의 집 주인이 세 명의 숙박객을 맞은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2022년 말 현재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에서 이용하는 세계 최대의 공유 숙박 서비스가 됐다. 자신의 방이나 집, 별장 등 사람이 지낼 수 있는 모든 공간을 빌릴 수 있다.국내에서는 2013년 1월 정식 오픈했다. 한국지사를 설립하고 국내에 숙소 1만3천여 곳을 확보했다.지난해 말 기준, 에어비앤비는 220개국, 10만 개 도시에서 660만 개의 숙소를 갖추고 14억 차례의 체크인 횟수를 기록했다. 15년 만에 달성한 기록이다.최근 서울의 한 에어비앤비 숙박업소에서 중국인 커플이 예약을 취소해주지 않는다며 120t의 수돗물과 평소 5배가 넘는 가스를 사용하고 출국, 민폐 사례로 언론 조명을 받았다.대구시는 최근 민관합동 단속을 벌여 공유 숙박 플랫폼을 이용한 무신고 숙박업소 3곳을 고발했다. 지자체 마다 합동 단속이 한창이다. 현행법상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숙박업은 외국인 관광 도시민박업, 한옥 체험업과 농촌민박업에만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영업 신고를 않고 공유 숙박 플랫폼 등을 통해 빌라 등에서 숙박업을 하다간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에어비앤비는 외국에서 숙소에 몰래카메라가 설치됐다거나 성범죄 피해 등 이용객들의 주의보가 잇따르지만 이미 대세가 됐다.공유 경제를 기반으로 한 시장은 매년 커지고 있다. 학계 등에서 공유 숙박 플랫폼의 법제화가 논의됐지만 법 개정은 감감무소식이다. 공유 숙박과 기존 숙박 업체가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우버에 이어 공유 숙박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4-24

수도권중심 신당론, 與野 반성의 계기 돼야

민주당 출신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도 몸담았던 금태섭 전 의원이 올 9월 추석 전에 신당을 창당하겠다고 밝혔다. “새로운 세력이 나와야 양당의 편 가르기 정치와 교착을 깰 수 있다”는게 창당 이유다. 내년 총선에서 ‘수도권 30석’을 얻는 게 목표다. 금 전 의원의 신당창당 의도는 공감이 가는 측면이 있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더라도 여야가 모두 싫은 무당층 증가세가 심상치 않다. 지난 14일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무당층 비율이 29%로 나타났다. 민주당 36%, 국민의힘 31%와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수치다.우리나라는 지금 양당정치의 폐해로 중병을 앓고 있다. 여당지도부는 잇단 설화로, 야당은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으로 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그저께 페이스북에서 “자진 탈당하고 검찰수사 받겠다는 송영길, 당에 해악을 끼치든 말든 끝까지 자리를 지킨다는 이재명, 전광훈 늪에 빠진 여당 지도부”라고 양당을 비판하면서, “이러다가 정말 제3지대 정당이 탄생하나”라고 말했다.우리나라에서 제3지대가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자리를 잡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지역 기반이 탄탄하거나 대선주자급 인물이 중심이 될 때 힘을 받을 수 있다. 여야 의원 중에는 아직 동조하는 의원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3·8전당대회 이후 조용하던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 등이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안 의원의 경우, 제3지대론에 부정적 입장을 보이지만, 다음달부터 토크콘서트 형식의 대중정치활동에 나선다. 유승민 전 의원은 어제(24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윤석열 대통령의 대중외교에 대해 비판하며, 비주류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신당합류 여부가 주목되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여당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으니 자기만의 노선으로 고쳐보겠다”며 합류에 선을 그었다. 제3지대 신당의 파괴력은 미지수이지만,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왜 수도권 신당론이 주목을 받는지 철저히 분석해보고, 내년 총선을 준비해야 한다.

2023-04-24

인공지능과 조화를 기대하며

김규인 수필가 과학기술의 발달은 휴대전화를 손에 들리고, 인터넷세상은 그들이 올리는 정보의 바다로 만들었다. 기하급수적으로 쏟아지는 정보를 처리하고자 사람들은 더 빠르고 용량이 큰 시스템을 원했다. 이렇게 인공지능(AI)에 대한 요구는 커졌고 이제는 어디서나 ChatGPT에 관한 이야기로 떠들썩하다.ChatGPT는 일상에 관한 단순한 질문에서 전문적인 분야에 관한 질문까지 능숙하게 대답한 답변이 매스컴을 통해 소개된다. 기대 이상의 놀라운 대답에 감탄도 하지만 엉뚱하거나 틀린 대답이 나올 때도 실망하기보다 미래 발전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더 크다. 머지않아 우리 삶의 중심에 우뚝 자리 잡을 것 같다.그도 그럴 것이 책 한 권을 7시간 만에 쓰고, 그가 쓴 글이 문학대회에서 수상하고 인공지능 관련 주식은 실적 관계없이 연일 오름세를 지속한다. 선진국에서는 미래의 먹거리로 인정하여 이에 대한 투자를 늘리며 인공지능 관련 기업체에서는 계획을 세우고 조직을 확대 개편하며 돈을 투자한다. 세계는 지금 인공지능으로 인하여 일어날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찬다.우려의 목소리도 조심스럽게 일어난다. 애플은 어린이와 청소년의 무분별한 사용을 걱정하며 ChatGPT를 17세 이상만 쓰게 하자며 앱 등록을 거부했다. 또한, 전쟁에 이용되는 것을 우려하여 인공지능이 사람 목숨을 결정하는 허용 범위, 인공지능 무기체계에서 자율성의 범위, 그 결과 책임에 대한 고민도 이루어진다. 유럽의회에서는 인공지능 기술을 통제하기 위한 정상회담의 필요성도 제안한다.인공지능의 등장으로 값싼 노동력이 필요한 자본주의로 인해 자신의 밥줄을 걱정하는 일반시민들의 근심도 늘어난다. 나아가 기술 발달이 인공지능을 가진 살상 로봇의 개발을 부추기면 인류의 미래는 암울할 것 같다는 생각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인공지능을 활용하는데 인간을 위해서만 사용한다는 대원칙이 개발에 앞서 필요하다.인공지능이 뛰어나다고 하여도 인간의 속마음은 알 수가 없으며 인터넷이 닿을 수 없는 정보는 답하지 못한다. 우리가 모르는 것은 ChatGPT도 모른다. 인공지능이 만능이 아니라는 말이다. 인공지능이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답을 말하였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자신이 얻은 정보를 기반으로 정리하여 답할 뿐이다.그런데도 인공지능이 현대 산업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로 등장할 가능성은 크다. IDC 등 평가 기관에서 인공지능 시장 전망을 밝게 본다. 매년 급속하게 성장하는 큰 시장은 우리를 유혹한다. 하지만 경제 외적인 면에서 아직 가보지 않은 미래이기에 기대와 불안한 마음이 함께하는 것 또한 숨길 수 없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어느 때보다 신뢰성, 공정성, 안전성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존엄성마저 헤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어떤 일이라도 인공지능이 일의 결정과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없다.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도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할 수는 없다. 생활에 폭넓게 쓰일수록 인간의 역할이 더 중요해진다. 서로 보완하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조화로운 삶을 기대하는 이유이다.

2023-04-24

‘에어 조단’의 추억

홍덕구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6학년이 되자 농구화를 신고 등교하는 친구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당시 아이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스포츠는 단연 농구였다. ‘슬램덩크’와 ‘마지막 승부’, 그리고 기아자동차, 연세대, 고려대 등이 활약하던 농구대잔치의 영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NBA(북미 프로농구 리그)의 인기 때문이었다.학교 앞 문방구에 가면 NBA 스티커와 수집책을 팔았다. 밀봉된 팩에 NBA 선수 스티커가 무작위로 들어 있고, 그것을 수집책에 붙여서 모을 수 있었다. 그 조잡한 인쇄 품질로 미루어 볼 때 정식 발매된 것이 아니라 이문에 밝은 누군가가 해적판으로 만들어 유통시켰던 것 같다. 수집책에는 선수 이름과 빈 칸이 있어서 모든 스티커를 모으면 이동식 농구대를 받을 수 있었다. 농구대를 놓을 만큼 넓은 마당을 가진 아이는 아무도 없었지만 우리는 그 스티커 모으기에 열광했다. 샤킬 오닐, 찰스 바클리, 하킴 올라주원처럼 유명한 선수들의 스티커는 희귀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희귀한 것은 마이클 조던이었다. 마이클 조던 단 한 명을 채우지 못해 매일같이 문방구를 들락거리며 용돈을 탕진하는 아이가 한둘이 아니었고, 나 또한 그중 하나였다.중학생이 된 기념으로 외할머니가 ‘에어 조단’ 농구화를 사 주셨다. 그때는 ‘조던’이 아니라 ‘조단’이라고 불렀다.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아티스’ 운동화를 졸업한지 얼마 되지 않은 나에게 나이키 농구화는 유년기에서 청소년기로 넘어가고 있음을 실감하게 했다. 그렇게 재미있던 미니카와 팽이치기가 점차 시들해지고, 빈 농구대를 찾아 이 학교에서 저 학교로, 이 공원에서 저 공원으로 방황하는 날이 늘어났다. 물론 ‘에어 조단’이 마이클 조던의 농구 실력까지 부여해주는 것은 아니라서 내 슛은 림을 빗나가기 일쑤였다.최근 개봉한 영화 ‘에어’는 나이키의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 농구화인 ‘에어 조던’ 시리즈의 탄생과정을 다룬다. 1984년, 업계 최하위였던 나이키는 브랜드를 대표할 새 모델을 찾는 과정에서 NBA 루키였던 마이클 조던을 주목한다. 예산 부족으로 경쟁 업체들에 밀리는 상황이었지만, 나이키의 스카우터는 조던에게서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하고 단 한 명의 선수를 위한 농구화 라인업을 제안해 계약을 성사시킨다.이 영화를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1980년대 미국발 대중문화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당대의 다채로운 풍경들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울 것이다. 하나의 상품에 불과한 농구화에 스토리를 부여하여 레거시(legacy·유산)로 만들어 내는 미국 문화의 힘이 경이롭기도 하다. 스카우터 소니 바카로(맷 데이먼 분)를 중심으로 한 ‘에어 조던’ 팀의 활약상도 흥미롭다. 영화가 재현하는 나이키의 개방적인 기업 문화는 모든 직장인들의 꿈일 것이다.무엇보다도 나에게 있어 이 영화는 ‘에어 조단’을 신고 뛰어다니던 아이들의 기억을 소환하게 해 주었다. 우리는 나이키 농구화처럼 현대적인 것들이 신화가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독자 여러분의 ‘현대의 신화’는 어떤 것들인지 이야기를 듣고 싶다.

2023-04-24

‘환동해 중심의 가까운 섬’으로 도약하는 울릉도

남한권 울릉군수 ‘동쪽 먼 심해선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유치환 시인의 시 울릉도의 첫 시행이다. 귀중한 국토의 일부로서 울릉도가 지니고 있는 상징성을 잘 드러내주는 명시이다. 하지만 지금 울릉도는 ‘환동해 중심의 가까운 섬’으로 도약하기 위해 발 빠른 행보를 하고 있다.첫 행보는 울릉도 독도 지원 특별법이다. 울릉도 독도는 지정학적 특수한 위상과 더불어 환동해 중심이자 지역 자원의 보고임에도 불구하고 정책적이고 실질적 지원이 미흡한 상황이다. 일본의 영토 분쟁과 더불어 최근 북한의 무력 도발과 지역민들의 정주여건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경북 시장군수협의회는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결의문까지 채택하고 오늘 9월 입법을 목표로 종횡무진 활약 중에 있어 울진군민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올해 초 눈 축제를 성공적으로 마침으로써 대내외적으로 발전가능성과 겨울 관광거리가 전무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젠 사시사철 관광상품을 발굴하고 기존의 관광상품을 더 발전시켜 나아갈 계기가 마련됐다. 또 제4의 섬의 날 행사는 울릉군에서 열리는 첫 번째 국가 기념행사로 8월 8일부터 15일까지 8일간 진행될 예정이다. 이 행사를 통해 섬 주민들 간 화합의 장을 마련하고, 울릉도 독도의 가치와 중요성을 대외적으로 널리 알릴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또한 지역특산물을 단순히 운송 판매에 그치지 않고 연구 개발해서 고부가 가치의 제품을 개발해서 상품화를 시도하고, 기술을 민간에 이전, 울릉군의 농업경쟁력 강화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기반을 조성하고 있다.지역의 성장 동력이 주민들에게서 나온다고 할 때, 현재 울릉은 인구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위기상황이다. 특히 전반적인 정주여건의 열악함이 인구유출과 연결되는 중요한 문제점이다.정주여건은 관광객들에게는 편의성으로 체감되며, 주민들과 이전을 고민하는 잠재적인 주민들에게는 삶의 터전으로서의 중요조건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인구 증가를 위해서는 정주여건 전반을 향상시켜나가야 한다.우선 의료 분야를 살펴보면, 울릉도 내부의 의료 역량을 높이는 것과 내부에서 해결할 수 없는 상태의 응급 환자 이송 체계를 더욱 상시적이고 신속하게 만드는 것이 핵심 과제이다.이에 지난 1월 보건복지부와 해군본부를 차례로 방문해 도서벽지인 지역사정을 고려해 의사가 없는 진료과목에 공보의를 배정해 줄 것과 울릉도에 주둔하는 해군 118전대에 의무실 설치를 건의했다. 그 일환으로 임시방편이나마 해군1함대 의무대가 울릉군민 대민진료를 발판으로 지속적인 대민진료의 계기가 됐다.하지만 관광수요가 증가하면서 울릉군의 관광객 환자수가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여서 1차 의료 인력의 확보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에 대비해 의료 인력 보충 및 의료원내의 요양시설을 입원시설로 변경해 관광객 및 주민의 간단한 봉합수술이나 입원 시 불편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이뿐만 아니라 대학병원과의 의료 협약 추진을 통해 울릉 내부의 의료 역량을 높여가기 위해 노력중이다. 교육은 울릉군내에서 초·중·고교육은 물론, 대학교육까지 높은 수준까지 받도록 하는 것이 장기적인 목표이다.울릉도 독도 특별법이 제정이 된다면 울릉고등학교에서 서울시내 유수의 대학들에 정원 외 입학이 가능해지고 교육으로 인한 인구 유출 방지는 물론이고 인구 유입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도서지역으로서 물류 문제 해결도 과제이다. 내륙과의 물류 활성화를 위해서는 비용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이 본질적 원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울릉군 차원에서 주민생필품 해상운송비 보조와 농수산물 택배비 무상지원 차량 운송비 지원을 통해 울릉의 물류가 매일 유통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현실적으로 최선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농수산물의 신선도를 위해서 적기에 안정적인 수송이 이뤄지도록 1일 택배사업을 시행 중이다. 주민소득 증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을 다하고 있다.마지막으로 울릉(사동)항과 연계해 바다를 메워 건설 중인 울릉공항건설이 순항 중이며 경북도의 2030년 외국인 관광객 300만 명이 찾도록 한다는 목표에 발맞춰 체류형, 스마트 관광 인프라 강화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 나갈 계획이다.

2023-04-23

다무포를 아시나요

야무진 꿈을 꾸었다. 이십 대였나, 삼십 대였나, 동해안 국도를 걸어서 종단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꿈은 액자 속에 흐릿하게 갇히고 현실은 형광의 도시를 누비느라 바빴다. 어쩌다 한 번씩 답답한 액자를 벗어나 빨주노초파남보 하늘을 그리고 싶다. 이런 날은 무작정 집을 나선다. 서너 시간 혼자 어슬렁거릴 곳을 찾는다.고래가 머무는 곳, 구룡포에서 호미곶으로 이어진 해파랑길 14코스인 다무포 고래마을이다. 골목이 뿜어내는 소리는 낮고 가늘다. 그 소리를 담은 집들은 모두 오수에 빠진 듯하다. 4월의 봄바람도, 방파제에 한 번씩 부딪히는 파도도, 갯바위에 앉아 꾸욱, 꾹 대는 갈매기도 풍경을 이루는 화소이다.하얀 등대가 보이는 의자에 앉는다. 등대는 바닷길에 불 밝히느라 꼿꼿한 채 서 있다. 굵은 비, 가는 비 내려도, 태풍으로 속의 것들을 다 긁어 토해낼 때도 흔들림이 없다. 따뜻해진 봄 바다 그 위로 갈매기 서넛 난다. 그래, 지금쯤 수평선 너머 고래가 떼를 지어 오고 있겠다. 4월과 5월쯤 고래 산란기에는 이곳 먼바다에 고래가 나타난다. 그 종류가 20여 종이 넘는다. 바다 향해 귀를 쭈욱 열자 멀리서 고래 소리가 다양하게 들리는 듯하다.다무포의 맑고 적당한 수온은 고래가 새끼를 낳고 회귀하기 좋은 조건이다. 해마다 이때쯤 수십 마리씩 고래는 다무포 앞바다를 찾는다. 한때 고래잡이로 마을 주민들은 넉넉한 생활을 누렸다. 그런데 1986년 국제협약에 의해 상업적인 포경이 금지되었다. 그 이후 마을 길목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사라지고 활기로 가득했던 집안도 더는 들썩이지 않았다. 이십 년의 시간이 흐른 후, 다행히 2008년 고래생태 마을로 지정되었다. 수평선 저 멀리 고래 떼가 다시 오기를 기다린다.관심이 생겼다는 것은 벌써 행동의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음이다. 다무포 마을의 쇠락이 멈추고 그곳에서 작은 꿈틀거림이 음쑥음쑥 자란다. 2019년 ‘포항시 도시재생 마을공동체 역량강화 사업’에 선정되어 마을은 다시 활기를 찾았다. 따가운 여름 햇볕과 함께 골목이 들썩거렸다. 마을 담벼락 곳곳에 하얀색 페인트를 입히고, 그 위에 미역 그림이 한들거린다. 미역 줄기 사이로 물고기가 춤을 추고, 거북이 한가로이 노닌다. 담벼락마다 다른 그림과 조형물은 이 곳을 찾는 이에게 다채로운 상상의 날개를 펼치게 한다. 이순혜 수필가 바다에서 담벼락으로 옮겨 온 고래가 타일 속에서도 헤엄친다. 여럿이 그린 고래는 그들만의 고래로 골목을 가득 채운다. 가만 들여다보니 유치원생에서 고등학생 그리고 학부모도 참여했다. 하나씩 짚어가며 고래를 불러들인다. 그의 이름들을 부르자 어느 유치원, 어느 초등학교 몇 학년이라 쓴 명찰을 앞세우고 지느러미를 파닥거린다. 이들은 커다란 한 마리 고래가 되어 담벼락을 꽉 채운다. 포항시에 따르면 4월에서 5월 해안선을 따라 헤엄치는 고래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이곳은 동해에서 고래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오늘은 먼바다의 고래가 다무포 마을 골목에서도 만난다.나란히 어깨를 맞춘 파란 지붕 따라 골목을 걷는다. 아까부터 따라온 담벼락의 고래도 숨을 몰아쉬며 잠시 멈춘다. 누구는 이곳의 로맨틱한 풍광이 그리스의 산토리니를 닮았다고 한다. 산토리니에는 고래가 없는데, 고래가 머무는 이곳이 더 아름답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산토리니에 가면 다무포 마을에 가봤니? 라고 물어볼 것이다.한 번쯤 마음을 빼앗길 만한 곳을 찾는다면 이곳에 오시라. 고래가 머무는 파란 지붕과 하얀 담벼락이 있는 다무포에. 마음 한 켠에 잔잔하게 흐르는 여유를 갖고 싶다면. 따스한 봄날의 여기 풍경은 가장 빛나고 반들반들한 마음 한 곳에 저장할 만하다. 곳곳에 쉬어가기에 괜찮은 상상의 의자가 당신을 기다린다. 저 수평선 윤슬이 반짝이는 곳에 고래 한 마리가 튀어 오른다. 나는 고래 등을 타고 동해를 유람하는 꿈을 상상하겠다.

2023-04-23

민심과 함께 가는 방법

김진국 고문 지난 대통령 선거는 비호감 대결이었다. 후보들의 비호감도가 모두 50%를 넘었다. 60%를 넘은 후보도 있다. 비호감 투표를 쉽게 풀어보면 이런 것이다.“A가 되는 꼴은 죽어도 못 보겠다. A만 아니라면 누가 되어도 좋다. A 외에 당선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이 B다. B에게 투표해 A의 당선을 막아야겠다.”비호감 투표에 정책이 끼어들 틈이 없다. 정책 때문에 표를 찍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후보들이 국가의 미래 비전을 그리는 데 힘을 쏟을 이유가 없다. 네거티브 캠페인이 당락을 결정한다. 경쟁 후보의 비호감을 키우기 위해 흑색선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당선 가능성을 따지다 보면 양대 정당 공천이 당선의 보증수표가 된다. 이런 선거를 계속하면 나라가 어떻게 될까.비호감이 늘어난다. 유권자는 정치로부터 멀어진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지지하는 정당이 없는 무당층(無黨層)이 지난해 대선 이후 가장 많은 31%에 이르렀다. 18~29세에서는 무당층이 54%, 30대도 37%나 됐다. 중도층에서는 무당층이 41%에 달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이 바람에 내년 총선에서 제3당이 생기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87년 헌법 체제에서 제3당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알려져 있는데도 말이다. 제3당 시도는 여러 번 있었지만, 매번 양당제로 돌아갔다. 3김 정당과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이 한때 성공했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 오래가지 못했다.20~30대는 탈이념 성향이 뚜렷하다. 이들의 절반가량이 무당층을 형성하고 있는 것도 그런 탓이다. 진영에 얽매이지 않고, 사안별로 자기 의견이 분명하다. 양대 정당이 이들을 품으려 했지만 결국은 갈등을 겪으며 밀어냈다. 결국은 이들이 중심 세대로 커갈 것이다. 이들의 불만이 양대 정당에서 충족되지 못하면 제3의 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더 중요한 것은 선거법이다. 현행 선거법은 고칠 수밖에 없다. 계속 위성정당을 만들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연동형’은 실패했지만, 큰 방향은 지지율과 의석수의 비례성을 높이는 쪽이다. 사표(死票) 심리에 막혀 비호감 정당을 계속 선택할 수는 없다. 선거구별 인구 편차는 2대 1까지 줄였다. 표의 가치를 같게 해야 한다는 이유다. 같은 논리로 늘어난 무당파에게도 선택권을 넓혀줘야 한다.선거법을 아무리 고쳐도 대통령은 어차피 한 사람이다. 당선된 대통령이 국민을 끌어안는 수밖에 없다. 역대 대통령들은 취임할 때마다 자신을 찍지 않은 사람까지 받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점점 더 갈등과 분열의 상징이 되어간다. 대통령은 국민 통합의 상징이다. 다른 누가 그 역할을 하겠는가.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갇혀 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4주째 30% 정도에 정체돼 있다. 취임 직후를 제외하면 내내 30%와 40% 사이에 머물러 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도 지지율만 깎아 먹었다. 잔치가 되어야 할 행사가 혐오만 불러일으켰다. 지도부는 출범하자마자 계속 사고만 치고 있다. ‘윤심’ 논란 탓에 부담을 윤 대통령에게 돌렸다.윤 대통령은 정부와 정치권을 재빨리 장악할 필요를 느꼈을 수 있다. 그러나 검찰과 정치권은 다르다. 검찰은 핵심 요직만 장악하면 전체를 움직일 수 있다. 그러나 정당은 그렇지 않다. 검찰 조직은 일사불란하다. 이견을 틀어막을 수 있다. 그렇지만 정당이 일사불란하면 유권자가 달아난다.정치는 표다.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한 선거를 해야 한다. 이기려면 지지 세력을 넓혀야 한다. 정치는 깎아서 빛이 나는 보석이 아니다. 깎으면 깎을수록 힘이 줄어드는 삼손의 머리카락이다. 민심은 물이다. 잘만 이용하면 땅을 비옥하게 하고, 무역선을 띄울 수도 있다. 물결을 거스르면 배가 뒤집힐 수 있다. 겁을 먹고 물길을 막으면 망조가 들 수도 있다.그렇다고 정치지도자가 민심에 끌려다녀서도 안 된다. 함께 가되 조금은 앞서서 이끌어야 한다. 마음이 앞서 너무 앞서 달리면 민심과 멀어진다. 한 발짝, 아니 반 발짝만 먼저 가야 한다. 목동은 혼자 달려봐야 소용없다. 양 떼와 함께 가야 빨리 간다.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