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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자 위에서 스멀거리며 자라나는 공포

등록일 2023-12-11 18:13 게재일 2023-12-12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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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야기는 우리를 끝도 없는 공포의 감정 속으로 밀어 넣기도 한다. 참혹하고 무서운 장면을 담고 있는 영화나 게임은 우리에게 즉각적인 공포를 불러오지만, 무서운 이야기는 그것을 듣는 우리들 마음속에 존재하는 상상의 씨앗을 돋워 올려 좀 더 근원적인 공포와 마주하도록 한다. 어린 시절 누군가가 들려주었던 무서운 이야기가 주는 오싹함에 코 끝이 간질거리는 느낌을 기억하는 분들이 있으리라. 크리스마스 무렵이 되면 따뜻하고 편안한 의자에 앉아 괴담 같은 공포를 주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공포란 언어를 통해 전달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감각인 까닭이다.

헨리 제임스(Henry James· 1843~1916)는 에드거 앨런 포 이후, 미국 문학계에서 글쓰기를 통해 전달하는 공포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던 작가였다. 그가 1898년에 크리스마스 시즌에 적합한 유령 이야기로 쓴 중편의 이야기 ‘나사의 회전(The Turn of the Screw)’은 귀신이나 유령을 직접적으로 다뤘던 흔한 괴담에서 벗어나 언어를 통해 전달되는 공포라는 감각의 본질에 대해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겨울 난롯가에 앉아서 무서운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에서 시작하고 있다. 그들은 저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무서운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나누면서 긴 겨울밤을 채우고 있다. 누군가 어린 아이에게 나타난 유령에 대해 이야기하자, 더글러스라는 남자는 그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듯, 자신이 40년 동안이나 비밀로 해 두었다는 자신의 조카인 두 어린 아이에게 나타난 유령에 대해 이야기하겠다고 한다. 그 이야기는 아이들의 가정교사였던 여자가 죽기 전에 직접 써서 남긴 원고 속에 들어 있다. 더글러스는 크리스마스의 난롯가 앞에서 그 원고를 낭독하기 시작한다. 모두들 일정한 기대를 가지고 그것을 듣는다.

이야기는 한 여성이 블라이라는 시골에 가정교사가 되어 오게 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가 맡게 되는 아이는 마일스라는 남자아이와 플로라라는 여자아이 두 명이다. 그녀에 앞서 가정교사로 있던 제셀이라는 여성이 죽어 새롭게 가정교사를 찾게 된 것이라는 사정을 알게 되지만, 아무도 이전 가정교사가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주려고 하지 않는다. 두 어린 아이는 예쁘고 똑똑해서 나는 그들을 가르치는 일에 만족하게 되지만, 그녀에게는 점점 이상한 일들이 생긴다. 마일스와 친했던 피터 퀸트라는 죽은 하인의 환영을 보기도 하고, 플로라와 유독 친했다던 예전 가정 교사 제셀의 환영을 보기도 한다. 그들은 여전히 살아 있는 인간들처럼 내 앞에 간혹 나타나 무언가 의도를 가지고 있는 시선으로 쳐다본다.

이 작품은 이처럼 낯선 가족에 들어온 가정교사에게 나타난 유령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누군가 진지한 얼굴을 하고, 현실의 가장자리를 매만지면서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를, 있을 법하게 들려주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힘을 갖는다. 하지만, 이 작품이 보여주는 공포는 그것만은 아니다. 헨리 제임스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는 수많은 가능성들의 빈틈이 존재한다. 가정교사는 결국 점점 미쳐가게 되는데, 누구도 그녀가 보는 유령을 보지 못한다. 과연 유령은 실재하는 것인가. 단지 나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기엔 그가 아름다운 필체로 꼼꼼히 적어나간 이 글쓰기가 갖는 존재감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아이들이 가진 순진무구함이자 가끔씩 그들에게서 튀어나오는 사악함이나 잔인함은 유령이 그들을 잠식했다는 징표인가 아닌가. 나사(screw)는 회전할수록 우리의 마음을 조이고, 나선들 사이의 틈 속에서 공포는 자라난다. 귀신이나 유령이 실재해서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그 틈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공포로 조여지는 것이라는 것을 헨리 제임스는 보여준다. /홍익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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