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고속철도특별법’의 연내 본회의 처리가 물 건너 가는 모양새다. 대구와 광주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사업이다. 지난 5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상정됐다. 하지만 결국 국회 소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동서화합과 지역균형발전의 염원을 담은 프로젝트였다. 헌정 사상 최다인 여·야 국회의원 261명이 공동 발의했다. 이례적인 기록이다. 연내 통과를 장담했다가 결국 헛물만 삼켰다. 의원들 스스로 약속을 깼다.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 등 관련 부처가 강력 반대했다.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와 철도 복선화 등 예산조달 방안이 문제였다. 공청회를 열어 전문가 의견을 듣자는 말도 나왔다. 앞뒤 재보지도 않고 성급하게 밀어붙인 것이 화근이었다. 정부부처의 이견은 충분히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공동발의했던 의원들이 뒤늦게 말을 바꾼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졸속 입법을 자인하는 꼴 밖에는 되지 않는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이다. 그는 “자기가 법안 발의해놓고 반대하는 기이한 국회의원도 있다”며 “법안 내용을 알고 반대했다면 그런 이중인격자는 국회의원을 더 이상 해선 안 되고, 법안 내용도 모르고 발의했다면 그런 사람은 동네 의원도 시켜선 안 된다”고 질타했다.
영호남은 소백산맥에 가로막혀 교류가 차단돼 이질적인 문화권이 형성됐다. 소원했던 양 지역에 지역 감정이 싹텄고 정치권이 불 질렀다. 선거때마다 되풀이되는 고질병이 됐다. 1981년 착공, 1984년 개통한 ‘88고속도로’는 동서화합의 상징이었다. 88고속도로는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영호남 상호교류 촉진과 지방 산업 활성화를 목적으로 건설됐다. 2015년엔 4차선으로 확장하고 이름도 ‘광주대구고속도로’로 바꿨다. 양 지역 교류가 활성화됐다.
여기에 더해 광주시와 대구시가 양 지역을 잇는 고속철도를 만들자고 의견 일치를 봤다. 이렇게 11조 원의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당초 달빛철도는 사업성이 떨어져 계획에도 없었다. 그러다가 2021년 6월, 4차 국가철도망 구축 사업에 포함됐다. 이에 양 지자체와 정치권이 합심해 밀어부쳤다. 양 지자체장의 치적 욕심도 불을 당겼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예타통과가 어렵다고 판단한 양 단체장은 정치권을 부추겼다.
특별법을 만들어 해결하자는 것이다. 지역 발전과 동서화합이라는 누구도 거부하기 힘든 명분을 내세웠다. 이 대명제 앞에 여야 국회의원 261명이 참여, 달빛철도특별법을 공동 발의했다. 양 지역 지자체와 지역민들도 쌍수를 들고 반겼다. 연내 국회통과와 내년 예산 반영 등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달빛고속철도특별법은 연내 국회 통과가 무산됐다. 지역민들의 기대가 무너졌다. 장밋빛 희망에 안주했던 것은 아니었나 반성의 소리도 나온다. 한쪽에서는포퓰리즘 지적도 나왔다.
시작은 창대했다. 하지만 결국 국회 벽을 넘지 못했다. 정치인들의 과욕과 무책임이 빚은 참사였다. 다시 시작하면 되겠지만 이미 동력을 잃었다. 정치권의 무책임을 질타하는 여론이 팽배하다. 우리 정치의 현주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