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들길을 걷는다. 거의 날마다 들길 산책이 주요 일과였으니, 올해도 들길을 걸어서 여기까지 온 셈이다. 좋게 보면 유유자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허송세월이었다. 하지만 남이야 어떻게 보든 후회나 미련이 남는 행로는 아니었다. 내가 들길을 걸으면서 누린 자유와 여유를 그 무엇과도 바꿀 생각은 없다. 그다지 어려운 길은 아닌데, 아무나 쉽사리 선택할 수 있는 길도 아닌가 보다.
들판은 사철 살아있는 경전이다. 날마다 들길을 걸으면서 시시각각 오관으로 그 경전을 읽는다. 오늘은 이 경전의 개쑥갓에 밑줄을 긋는다. 개쑥갓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식물도감에는 국화과의 한해살이 식물로 봄부터 늦가을까지 성장을 하면서 끊임없이 꽃을 피우는 걸로 나와 있다. 하지만 한반도의 동남쪽인 이 지역에서는 상당수가 산 채로 월동을 하면서 날씨가 조금만 풀려도 꽃을 피운다. 물론 냉이나 봄까치꽃, 광대나물 같은 풀들도 양지쪽에서 월동을 하지만 개쑥갓의 겨울나기는 어느 풀에도 뒤지지 않는 것 같다.
자연 경전에는 우열이나 귀천이 없다. 사람들은 삼라만상의 가치를 따지거나 의미부여를 하고 가격 매기기 좋아하지만, 자연에는 아예 그런 개념도 존재하지 않는다. 냉이는 냉이대로 개쑥갓은 개쑥갓대로 나름의 존재이유가 있고 생명으로서의 역할이 있을 뿐이다. 비교나 경쟁이나 차별 따위가 불필요한 것이다.
월동하는 풀들은 풀잎에 솜털이 나고 갈색으로 변한다. 엽록소를 버린다는 것은 성장을 멈추고 일종의 동면상태에 들어간다는 의미일 터이다. 개쑥갓에게 겨울이 얼마나 혹독한 계절인지, 왜 혹한의 계절에도 악착스레 살아남으려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내가 읽을 수 있는 것은 극한상황 속에서도 포기하거나 좌절하는 기색이 없다는 것이다. 최소한의 조건만 주어지면 최선을 다해 살아있는 것에서 생명의 엄연함을 읽는다. 한편으로, 한 점 생기도 다 소진하고 바싹 마른 잎이나 대궁으로 겨울바람에 쇠락해가는 다른 풀들이라고 나약하거나 소심해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생을 깨끗이 비워버린 허허로운 모습 또한 서늘한 의지로 다가온다.
들판 가운데 멈춰 서서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생각해본다. 내가 걸어온 길은 들길이고 서 있는 곳은 들판이다. 바싹 마른 억새가 같은 키로 서 있고 둑길 양지에는 가까스로 월동을 하는 풀들이 있다. 며칠 전에 도착한 청둥오리들이 무리지어 바삐 날아가고 까치와 비둘기, 참새 같은 텃새들도 먹이를 찾아 내려앉는다. 겹겹이 껴입은 옷의 두께만큼 저들과는 멀지만, 마음만큼은 나도 슬며시 저들의 자유에 끼어들고 싶다. 지나친 욕심을 내려놓고 단순하고 소박해져야 근처라도 갈 수 있을 것이다.
들판이라는 경전에 쓰인 말씀들은 모두가 불립문자(不立文字)다. 개념이나 의미나 가치로 규정되기 이전의 날것이다. 뭐라고 서둘러 규정짓지 말고 단정하지도 말고 아집이나 독선, 고정관념에 빠지지도 않아야 보이고 들리는 우주의 메시지다. 개쑥갓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