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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순대가 비록 대순 아니지만

이재현 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세상에는 / 순대라 불리는 종교가 있다. // 그 종교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 맨 먼저, 자신이 / 평생 삼켜 온 내용물 토해내고 / 전신 뒤집어야 한다. …. 세상에는 순대라는 종교가 있다. / 숱한 고난을 이겨낸 / 그를 위해 식탁 앞에는 커다란 칼과 도마가 / 함께 자리 잡고 / 전신 드러낸 그를 경배하기 위하여 / 숟가락과 젓가락 든 사람들 모여들고 / 경건한 마음으로 / 그 앞에 순서를 기다리는 것이다.”문학뉴스 2018년 4월 16일에 게재된 박기영의 시 ‘순대론’의 일부이다. 돼지 창자 안팎을 깨끗이 씻어낸 뒤 당면, 채소, 고기 등 각종 소를 선지에 버무려 그 안에 채워넣고 쪄낸 우리 고유의 음식인 순대. 박기영 시인은 이를 종교로까지 승화시켰다. 수저 들고 ‘경건한’ 마음으로 먹기를 기다린다고 표현한 대로 한국인으로 순대 싫어하는 사람을 거의 만나보지 못했다.서울 관악구에 살던 결혼 초에는 신림동 순대타운을 즐겨 찾았고, 독립기념관을 다녀올 때면 천안 아우내 장터의 병천 순대를 먹고 오기도 했다. 마땅히 당기는 음식이 생각나지 않을 때면 학교 근처 식당으로 동료교수와 함께 순댓국을 먹으러 갔다. 여러 부위의 돼지고기와 순대가 듬뿍 들어있는 순댓국은 서민들의 든든한 한끼 식사이다. 소주 한 잔에 얼큰한 순대술국은 하루 노동의 피로를 풀어주는 훌륭한 ‘소울푸드’도 된다.성경은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 고기를 피째 먹지 말라고 한다. 따라서 순대를 먹는 것은 구약 성경과 유대인의 율법에서 금기를 두 개나 어기는 행위이다. 순대가 비록 대수는 아니지만, 내가 유대교인이 아닌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지난 11월 초에 한 식품업체가 지저분한 환경에서 순대를 만드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보도가 나가자마자 이 업체에는 거래를 끊겠다는 전화가 빗발쳤다고 한다. 며칠 뒤에 업체의 회장은 소비자들에게 사죄문을 올렸다. “가난한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나 맨주먹으로 오늘의 200여 명의 대가족과 400억 매출의 식품회사를 일군 제게 순대는 학교이고 공부이고 생명이고 제 삶의 모든 것”이었다며 다시 일어나 소비자들의 신뢰를 되찾고, ‘K-순대’ 세계화 시대를 개척하겠다는 약속과 다짐도 하였다.식구 모두 순대를 좋아하여 진공포장된 순대를 사서 집에서 쪄 먹곤 한다. 이 보도가 나가기 며칠 전에도 두 묶음짜리 순대를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아니나다를까, 문제의 순대제조업체의 이름이 포장에 찍혀 있었다. 아내는 그 순대를 치워 버렸다. 음식을 남기지도 않고 버리지도 못하는 내가 그 순대를 먹을까 염려해서 나 몰래 버려 버린 것이다. 한동안은 순대를 먹지 못할 것 같다. 순대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트라우마가 생기지나 않을까 걱정도 된다.우연이겠지만 문제의 순대제조업체의 이름이 내 성의 본관과 같다. 회장의 성이 박씨이니 우리 가문과는 관계가 없을 터이지만, 왠지 사죄문에 마음이 짠하다. 부디 이 기업이 약속을 꼭 지키고 다시 일어섰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번 일이 우리 전통 음식과 길거리 음식의 위생 관리를 더 철저히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2021-11-16

철조망 십자가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한 시대의 어둠을 지탱하기 위해 / 저리도 많은 십자가가 필요한 줄은 /오늘에야 처음으로 알았다 / 이천 년 전 한 사내를 / 못박아 세운 것만으로는 / 모자랐던 것일까”오성호 시인이 1994년 실천문학사에서 펴낸 시집 ‘가시나무 그늘 아래서’에 들어있는 시 ‘십자가’의 첫 6연이다. 시인은 도시 곳곳에서 빛을 비추는 교회당 십자가를 보며 시대의 어둠을 그려내고 있다. 그는 또 십자가가 ‘도회지의 거리마다 창부처럼 짙게 화장’을 한 채 내걸리고 ‘사랑과 용서와 화해와 은총이 값싼 만병통치약처럼 팔려나’가고 있다고 비판적으로 노래하였다. 어디 도시뿐이랴. 도시 농어촌 가릴 것 없이 우리나라 교회들은 유독 붉은 십자가를 내건 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알리고 있다.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이다. 목걸이로, 귀고리로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기독교 일각에서는 십자가를 교회의 거룩한 상징으로 여기며 소중히 다루는 행위를 우상 숭배로 치부하며 십자가 형상을 만들어 건물에 붙이거나 장신구로 몸에 거는 것을 부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십자가라는 형상의 물건을 숭배하는 것이 아닌, 십자가에 담긴 예수의 희생을 기억하자는 뜻으로 받아들인다면 굳이 우상 숭배라는 붉은 줄로 동여맬 필요는 없을 듯하다.기독교는 교인 여부를 떠나 한국 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개신교 인구는 총 인구수 대비 2005년 18%, 2015년 20%를 차지했고, 가톨릭을 포함하면 2005년 29%, 2015년 28%로 21세기에 들어 기독교 인구는 총인구 대비 30% 가까운 교세를 보였다. 요즈음 기독교가 이런저런 이유로 비난의 대상이 되고 교세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한국갤럽조사연구소의 지난 5월 보고에 따르면 2021년 현재의 기독교 인구는 23%(개신교 17%, 천주교 6%)로 한국인 네 사람 중 한 명은 기독교인인 셈이다.한국뿐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개신교가, 유럽에서는 가톨릭이 사회와 문화 깊숙이 연결되어 있다. 가톨릭 수장인 교황의 영향력은 비기독교 국가를 포함한 지구촌 전체에 미치고 있다. 10월 28일부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및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참석 등을 위해 유럽을 순방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난 자리에서 ‘철조망 십자가’를 선물하였다. 로마 산티냐시오 성당에서는 ‘철조망, 평화가 되다’라는 이름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이 전시회에는 DMZ의 녹슨 철조망을 녹여 만든 136개의 십자가가 전시되어 있다. 136이라는 숫자는 남과 북이 서로 떨어져 살아온 각각의 68년을 합친 것이다.성경 이사야서에는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라는 구절이 있다.‘철조망 십자가’가 남과 북의 전쟁과 대결을 그치게 하자는 소망의 상징을 넘어서서 열쇠가 되었으면, 우리 사회의 크고 작은 갈등을 풀어나가는 실마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2021-11-02

옛 노래의 추억과 한류의 빛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1920년 6월에 창간된 천도교 청년회의 기관지인 ‘개벽’ 1922년 1월호에 실린 김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의 전문이다. 단 4연으로 된 짧은 이 시는 처음에 작곡가 안성현에 의해 가곡풍의 노래로 만들어졌다. 안성현은 월북하여 북한의 공훈예술가 칭호까지 받았고 2006년 북한에서 세상을 떴다. 안성현의 곡으로 된 ‘엄마야 누나야’는 작곡가의 월북 탓인지 지금은 거의 불려지지 않는다.이 시는 KBS의 초대 악단장이었던 바이올린 연주자 겸 작곡가인 김광수에 의해 다시 노래로 만들어졌다. 지금 불리는 노래는 거의 김광수 작곡의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처음 작곡가의 영향이 컸던지 안성현 곡으로 알고 있는 이들도 꽤 많다. 김광수 작곡의 동요풍 노래인 ‘엄마야 누나야’는 성악가가 부르기도 하고 대중가수가 부르기도 했는데, 나에게는 도쿄국제가요제, 아테네국제가요제, 칠레가요제에서 상을 받은 국제적 가수 정훈희가 부른 대중가요로 기억되고 있다.대중가요의 힘이 큰 때문일까? 서울 한강변의 작은 집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지금은 한강서 좀 떨어진 아파트에 살고 있는 나는 이따금씩 이 노래가 귓가에 맴돌곤 한다. 아들만 주르륵 넷인 집안의 셋째이기에 누나는커녕 누이동생도 없지만, 어린 시절 한강 백사장에서 모래를 만지며 놀던 기억 속에서 있지도 않은 어여쁜 누이가 늘 함께 하는 것은 이 노래 탓이리라.이른바 ‘글로벌 슈퍼밴드’ 구성을 목표로 한 JTBC의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밴드2’가 지난 6월 21일에 시작해 지난 4일에 막을 내렸다. 아들 덕에 보게 된 이 프로그램을 보는 내내 나는 가끔씩 전율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이렇게 노래도 잘하고 연주도 멋들어지게 하는 젊은이들이 많은지. 혼신의 힘을 기울이기도 하고, 제 흥에 푹 빠져 즐겨가면서 노래하고 연주하는 그 열정은 또 얼마나 대단하던지. 옥석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문외한의 눈과 귀여서 그랬나, 최종 수상자는 말할 것도 없고 초반에 탈락한 지원자들까지 기량이 떨어지는 이들을 찾기 힘들었다.비틀즈의 노래를 즐겨들으며 자란 7080세대의 나는 BTS와 블랙핑크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현상을 보며 한국 가요, 한류의 힘에 새삼 놀라고 있다. 이들 아이돌그룹은 연예기획사의 치밀한 기획과 투자와 노력이 만들어낸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결과물, 최고의 상품(또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우리나라 가수가 부른 노래의 세계적 열풍을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나라 구석구석에서 올라온 슈퍼밴드 출연자들의 면면에서 나는 그 열풍의 단초와 빛줄기를 찾을 수 있었다. 우리 겨레의 몸과 혼 속에 스며있는 음주가무의 전통이 한류의 빛의 시발점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해석일까?그나저나 부동산업계에선 김소월을 두고 한강변 아파트의 폭등을 예견한 시인이라는 농담이 떠돈다는데, 젊은 시절에 대중가요만 듣고 있지 말고 일찌감치 한강변에 자그마한 아파트 하나를 마련했어야 하나?

2021-10-19

‘착한’ 드라마, ‘나쁜’ 드라마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하늘이라는 무한(無限) 화면에는 / 구름의 드라마, / 늘 실시간으로 생방송으로 진행되네. / 연출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 그는 수줍은지 / 전혀 얼굴을 드러내지 않네…. 누가 염치도 없이 버렸을까. / 휑하니 껍데기만 남은 텔레비전이 / 무슨 면목없는 삐딱한 영정처럼 / 바위투성이 개울 한 구석에 처박혀 있네. / 텅 빈 텔레비전에서는 / 쉬임없이 / 서늘한 가을물이 흘러내리네.”‘세계의 문학’ 2003년 봄호에 실렸고, 그해 미당문학상의 수상작이 된 최승호 시인의 시 ‘텔레비전’의 첫 6행과 마지막 7행이다. 시인은 하늘, 강물, 바위, 개울 등의 자연과 버려진 텔레비전을 대비시키면서 영상 문화의 비감을 ‘개울 한 구석에 처박힌 삐딱한 영정’으로 표현하였다. TV는 사회와 삶의 부도덕성을 그려냄으로써 시청자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고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기도 한다.영화에 비해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라는 점에서 TV의 선정성은 자주 심각한 문제가 되곤 한다.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우리나라를 뛰어넘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단 한 사람의 승리자에게 돌아가는 456억원이라는 상금 앞에서 455명의 사회 부적응자 또는 실패자는 모두 탈락이 되고 제거된다. ‘탈락, 제거’라고 했지만, 실상은 무참한 살육(殺戮)이다. 이 지나친 선정성과 물신주의의 폭력성에 대해 여기서 더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보다 나는 두 개의 드라마에 더 눈길이 간다.‘슬기로운 의사생활 2’(슬의생2)와 ‘펜트하우스 3’(펜하3), ‘슬의생2’는 올해 6월 17일부터 9월 16일까지 매주 목요일 tvN에서 방영되었고, ‘펜하3’은 6월 4일부터 9월 10일까지 방영된 지상파 방송사인 SBS 금요 드라마이다. 우연인 듯 올해 6월에 같이 시작하여 9월에 같이 종영된, 온탕과 냉탕을 하루 차이로 왔다갔다 한 기분이 들게 만든 ‘슬의생2’에 ‘착한’ 드라마, ‘펜하3’에 ‘나쁜’ 드라마라는 모자를 씌워주고 싶다.‘슬의생2’는 닐슨코리아 시청률 기준으로 tvN 역대 드라마 중 최초로 첫 회 시청률이 10%를 기록한 드라마이다. 종편과 케이블 모든 드라마를 통틀어도 첫 회 시청률이 역대 1위이고 마지막 회 시청률도 14%를 넘겨 시청자들의 사랑을 제법 받았다. 이에 비해 ‘펜하3’의 시청률은 첫 회에 19.5%, 마지막 회에 19.1%이었다고 한다. 종편과 지상파라는 차이가 있지만, 첫 회에서는 거의 두 배의 시청률 차이가 나고 마지막 회에서도 5%의 차이를 보였다. 사람들은 ‘나쁜’ 드라마에 매력을 더 느끼나 보다. 카타르시스를 느끼기에는 나쁜 드라마가 더 좋은 것일까?한국 사회의 모습은 TV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다. 드라마가 사회를 그려내고 있기에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 말이 ‘나쁜 펜하’에는 제법 들어맞는데, ‘착한 슬의생’에는 그다지 들어맞지 않는 것 같다. 그래도 슬의생 드라마의 착하고 고운 의사들같은 의사 선생님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많이 있겠지? 코로나19의 퇴치를 위해 분투하고 있는 의료진들이 그 ‘착한’ 이들이 아니런가!

2021-10-05

끓인 라면, 삶은 라면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물을 데운다 / 라면을 끓일 요량으로 / 봉지를 뜯고 /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 이 한때 / 허기진 오후, / 외출 중인 아내의 빈자리가 / 공복처럼 쓰리다. // 멀리 낮기차 지나가는 소리에 맞춰 / 냄비엔 물이 끓고 / 가지런히 누운 대파를 / 숭숭 썰어 넣는다. / 잘 익은 김치를 / 밥상 위에 올리면 / 더 이상 부러울 것 없는 시간”정구찬 시인의 시집 ‘글씨가 사는 집’(뿌리, 2015)에 실린 시 ‘라면을 끓이면서’의 일부이다. 시인의 말처럼 허기진 오후를 때우는 손쉬운 방법의 하나가 라면 끓여 먹기일 게다. 대파 숭숭 썰어 넣고, 달걀 하나 탁! 깨어 풀면 성찬은 못되어도 일용할 한 끼 양식이 된다. 거기에다 ‘잘 익은 김치’(신 김치도 좋겠다) 한 접시를 더한다면 미각과 후각과 시각까지 만족시킬 만한 꽤 괜찮은 식사가 되지 않을까?1963년 9월 15일은 우리나라에서 라면이 처음 판매된 날이다. 어느덧 한국 라면은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아마도 ‘한국인’으로서 라면을 안 먹어 본 사람을 찾기는 어려울 듯하고, 라면에 얽힌 이야기 한두 개쯤은 다들 가지고 있을 것이다.한국 라면이 스무살 되던 해인 1983년 2월에 나는 군에 입대했다. 논산훈련소의 토요일 점심 메뉴는 라면이었다. 꼬들꼬들한 네모꼴이 전혀 흐트러지지 않은, 찐 라면 2개가 군용 식판에 겹쳐 올려져 있었고, 그 위에 스프국물이 부어졌다. 참 낯선 라면이었다. 배가 한창 고플 때니 입안에 욱여넣기는 했으나 이 생각지도 못한 꼴의 라면 먹기가 처음부터 쉬운 것은 아니었다. 한 주 한 주 지나갈수록 적응이 되었고 제법 맛을 느낄 만해지자, 논산에서의 6주 신병 훈련 과정은 끝이 났다. 40년 가까이 지났지만 이따금 그 라면맛이 그립다.용기에 담겨 끓는 물만 부으면 간편히 먹을 수 있게도 되었고 다양한 종류와 조리법으로 라면은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부대찌개에도 들어가고 양푼 돼지고기 김치찌개에도 들어가서 부담 없는 값에 푸짐하게 배를 불려주기도 한다. 달걀 하나로도 감지덕지했던 라면이 영화 기생충의 ‘짜빠구리’처럼 한우고기 채끝살을 살포시 얹은 고급진 요리가 되기도 하고, 떡과 만두 몇 점 들어간 라면에서 커다란 홍게에 랍스터가 들어간 값비싼 해물라면까지, 실로 라면의 변신은 무궁무진하다. 감자와 고구마가 조선 말 춘궁기의 구황식물이었다면 라면은 우리 시대의 구황식물이자 비상식량이면서 많은 사람들의 선호 음식이 되었다.삶은 라면과 같다. 구불구불 말리고 켜켜이 쌓인 면발은 우리네 인생의 질곡을 보여주는 듯하다. 설익으면 밀가루 씹히는 맛에 떨떠름하고, 잘 삶아 제대로 풀어지면 쫄깃한 면발에 군침이 절로 돌고, 오래 놔두면 붇고 퍼져 먹기 싫어지는 라면처럼 우리 삶의 여정은 라면을 참 닮아 있다.시인은 시의 마지막 연에서 “산다는 것은 / 허기를 다스리는 일 / 권력도 富도 / 라면 한 개의 포만감보다 / 못한 것을”이라고 삶을 풀이한다. 대선의 계절이다. 정치가 우리네 삶의 허기를 달래주고, 라면 한 그릇의 포만감만큼이라도 느끼게 해 주면 좋겠다.

2021-09-14

통곡과 저항, 그리고 용서와 화해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하늘을 우러러 / 울기는 하여도 / 하늘이 그리워 울음이 아니다 / 두 발을 못 뻗는 이 땅이 애달파 / 하늘을 흘기니 / 울음이 터진다. / 해야 웃지 마라. / 달도 뜨지 마라.”‘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유명한 시인 이상화가 1926년 4월 『개벽』 68호에 실은 시 ‘통곡(慟哭)’의 전문이다. 이상화는 일본을 거쳐 프랑스로 유학을 가기 위해 1923년 초봄에 동경에 갔다가 그해 9월 관동대지진을 만난다. 지진 발생 후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몰려 암살 위협을 겪기도 한 시인은 한동안 일본에 은신해 있다가 인생관이 바뀌면서 프랑스 유학의 뜻을 접고 조선으로 되돌아온다.9월 1일 오늘은 관동대지진 98주년이 되는 날이다. 일본에서는 1923년의 지진으로 인한 피해와 이와 관련된 학살 사건을 통틀어 간토대진재(關東大震災)라고 부르지만, 우리에게는 관동대지진과 관동대학살이 눈과 귀에 더 익다.일본은 지진이 많이 일어나기로 유명한 나라이다. 지질학에서의 판 구조론에 따르면 지각판은 북미판, 남미판, 유라시아판, 태평양판, 아프리카판, 인도-호주판, 남극판 등 커다란 7개의 판과 중간 크기의 6개 판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대규모 지진들은 이 지각판의 경계 부분에서 자주 일어나는데, 일본 동쪽 앞바다는 7개의 판 중에 4개의 판이 접하는 곳이어서 빈번한 일본 지진 발생 이유가 설명이 된다.1923년 관동대지진은 20세기 일본에서 발생한 지진 중에서 9번째로 큰 지진이었지만 해역이 아닌 인구가 많은 동경 가까운 위치에서 발생하였기에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는 10만5천여 명에 이르고 190만 가구가 집을 잃은, 메이지 시대 이후 현재까지의 일본 역사상 가장 큰 피해를 끼친 지진으로 기록되고 있다.지진이야 천재(天災)이고 불가항력적이라고 하겠지만, 그 천재를 빌미로 일본은 조선인(그리고 일부 중국인과 일본인 사회주의자)을 대상으로 한 관동대학살 사건이라는 인재(人災)를 벌였다. 지진의 혼란을 틈타 조선인이 강력 범죄와 폭동을 일으킨다는 소문이 떠돌고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고 불을 지르고 다닌다”와 같은 유언비어가 횡행하자, 일제의 군경과 민간인 자경단은 조선인 대량 학살을 자행하였다. 이로 인한 조선인 사망자의 수는 6천661명(당시 임시정부 발행 독립신문 조사)에서 2만3천58명(2013년 8월 21일자 연합뉴스 기사)에 이른다는 주장까지 있다. 조선총독부의 조사에 따르면 1923년의 재일조선인 숫자가 8만617명이라고 하니 당시 조선인 피학살자 수의 규모를 가히 짐작할 수 있겠다.이상화 시인이 ‘통곡’을 발표한 1926년 4월은 관동대지진이 일어난 지 2년 반이 지난 시점이었다. 조선인의 참상을 목격한 시인의 트라우마는 일제에 대한 강렬한 저항의식으로 전환되었을 것이고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비롯한 저항시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일본은 지금까지 관동대학살 문제에 대해 무책임과 무관심으로 일관해 오고 있다. 시인은 통곡하였지만, 우리는 진상 규명과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받은 다음 용서와 화해의 길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2021-08-31

올림픽과 병역 특례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는 날 / 부모님께 큰절 하고 대문 밖을 나설 때 / 가슴속엔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지만 / 풀 한 포기 친구 얼굴 모든 것이 새롭다 /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김현성이 작사 작곡하고 직접 노래까지 부른 ‘이등병의 편지’ 1절 가사이다. 1986년에 처음 발표됐지만, 우리에게는 김광석의 노래로 더 잘 알려져 있고, 2000년에 개봉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OST로 더욱 유명해진 노래이다. 신체와 정신이 건강한 대한민국의 남성이라면 거의 모두 군대를 가야 하니, 이 노래는 우리에게 범상치 않게 다가온다.국민개병제(國民皆兵制)를 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병역 문제는 첨예한 관심거리이다. 최근 들어 모병제(募兵制) 도입 논의가 들려오기도 하지만 아직은 현실과 상당한 거리가 있는 이야기이다.올림픽이 끝났다. 코로나19는 세계적인 축제인 올림픽마저 1년을 지각 개최하게 만들었다. 2021년에 열렸음에도 공식 명칭은 2020 도쿄 올림픽이다. 명칭과 별개로 근대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홀수년도에 개최된 하계 올림픽이라는 기록을 갖게 됐고 대부분의 경기가 무관중으로 치러지는 기록도 갖게 됐다. 무관중으로 치러졌으니 광고와 중계권료가 많이 붙었다 하더라도 가장 많은 적자를 기록한 올림픽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해 본다.나는 이러한 기록보다 올림픽 참가 선수들의 병역 면제 상황에 더 관심이 간다. 대한체육회 체육포털에 따르면, 선수들에게 병역 면제의 혜택을 처음 도입한 것은 1973년도로 프로레슬링과 프로복싱 외에는 프로 경기가 전무했고 아마추어리즘이 철저하게 강조되던 시절, 선수들에게 최고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당근이 병역 면제였던 것이다. 처음에는 병역 면제의 폭이 매우 커 올림픽 동메달까지, 세계선수권대회, 유니버시아드대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대회 3위까지가 해당됐고 한국체육대학교 졸업성적 상위 10%까지도 병역 면제의 대상이 되었다가 1990년도 들어서 올림픽 3위, 아시안게임 1위로 병역 면제의 폭이 줄었다고 한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의 금메달리스트 양정모 선수 이후 운동선수로서 병역 면제의 혜택을 받은 사람은 2020년 10월까지 976명이었다. 2018년 아시안게임에서는 야구와 축구가 금메달을 받음으로써 대규모의 병역특례자를 양산했다. 이에 비해 남성 구기종목이 메달권에서 비껴간 이번 올림픽에서는 병역특례 대상자가 김제덕(양궁), 안창림(유도), 장준(태권도) 등 3명에 불과해 2000년 대에 들어 가장 적은 병역 특례 기록을 남긴 올림픽이 아닐까 한다.지난 달 말 아들이 18개월 남짓의 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했다. 내가 군대를 다녀온 30개월의 기간과 아들이 군대를 다녀온 18개월의 기간. 길건 짧건 나라의 부름을 받아 나라를 위해 존재하는 그 기간 동안은 ‘이등병의 편지’ 가사처럼 모든 것이 낯설고 모든 것이 새롭다. 국민개병제의 나라에서 ‘특례’가 많다고 하는 것은 그다지 좋아보이지 않는다.더욱이 최근 우리 사회의 묵직한 화두가 ‘공정’이 아니던가.

2021-08-18

폭염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얼마나 더운지 / 그는 속옷마저 벗어던졌다 / 엎드려 자고 있는 그의 엉덩이, / 두 개의 무덤이 하나의 잠을 덮고 있다….그의 벗은 등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 벌거벗은 육체가 아름다운 건 / 주머니가 없어서일 것이다 / 누구도 데려갈 수 없는 그 강을 / 오늘도 건넜다가 돌아올 것이다, 그는”나희덕 시인의 시집 ‘그곳이 멀지 않다’(문학동네, 2004)에 실린 시 ‘열대야’의 1연과 3연이다. 시인은 속옷마저 벗어던지게 만드는 더운 여름 밤의 풍경을 감각적이면서도 깊은 정념을 담아 그려내고 있다. ‘그’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망각의 여신이자 죽음의 신 하데스가 지배하는 저승 세계로 가기 위해 건너야 하는 다섯 개의 강 중 하나인 망각의 강 ‘레테’를 벌거벗은 채 건너갔다 온다.시인의 말처럼 ‘잠은 죽음의 연습’이자 일상의 힘듦을 풀어주고 고뇌를 잊게 해 주는 시간이다. 그러하기에 매일매일 잠을 청하지만 이 무더운 여름밤, 속옷을 땀으로 적셔 가면서 혹은 속옷마저 벗어제치고도 쉬이 잠들지 못하는 것이 이즈음 우리들의 모습이다.바야흐로 8월이다. 여름의 절정이다. 폭염주의보, 폭염경보가 이어지고 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폭염을 ‘매우 심한 더위’라고 간단히 정의하고 있는데, 한자의 뜻으로 보면 사나운 더위가 폭염(暴炎)이니 섭씨 30도 정도로는 폭염이란 명함을 내밀기가 어렵겠다. 실제로도 기상청에서는 최고 기온이 섭씨 33도 이상인 날에 폭염이라는 단어를 붙여준다. 또한 최고기온이 섭씨 33도 이상인 상태가 이틀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폭염주의보를, 최고기온이 섭씨 35도 이상인 상태가 이틀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폭염경보를 발령한다고 한다.1973년부터 자료가 제공되고 있는 기상청 통계에 따르면 가장 오랜 폭염일수를 기록한 해는 2018년으로 31일이었고, 그 다음이 29.6일의 1994년이었다.(폭염일수에 소수점 이하의 숫자가 보이는 까닭은 전국 여러 지점의 폭염일수를 평균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럼 폭염이 가장 긴 해와 장소는 어디였을까? 대구와 경북 지역이 많이, 그리고 오래 덥다는 것이 통념이기도 하고 실제로도 그렇지만 2018년 7월 11일부터 8월 16일까지 37일 동안 이어진 충남 금산의 폭염이 가장 긴 폭염기록이다.통계로만 본다면 아직 더위는 좀 더 참고 견뎌내야 할 것 같다. 더욱이 이 여름에 코로나19가 사나움을 한껏 더 불지르고 있다. 이 폭염에 방역복을 껴 입고 하루종일을 온몸에 땀으로 목욕하듯 보내고 있는 이들을 생각하자. 가게문을 닫고 한숨과 눈물로 이 염천의 긴 여름을 지나고 있는 이들을 생각하자. 눅눅한 1평 남짓 쪽방에 여윈 몸 누이고 더위먹은 이들을 생각하자. 누구 하나 에어콘 ‘빵빵’하게 틀어놓고 내 몸 하나 편하다고 만족해 할 일은 아니지 않을까?사나운 2021년 8월이 지나고 있다. 한 겨울 맹추위를 애써 떠올릴 필요도 없다. 이 여름의 폭염이 사랑과 나눔과 함께함의 뜨거움을 결코 이길 수 없었다고 말할 날이 오리라. 함께 보듬은 우리에게 폭염이 무슨 대수랴.

2021-08-03

국밥집 욕쟁이 할머니의 욕이 구수하다지만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강하고 독하게 자랐어요 아버지 / 부드러운 혀는 독보다 피보다 진해요 / 눈빛보다 강한 무기, 힘세고 강하게 살아남죠 / 무엇이든 욕으로 견디고 / 마음을 찌르는 칼 / E 씨발의 도시 미친 욕을 하거나 욕을 먹거나 / 밥 한술에도 욕을 얹고 / 아이들도 욕을 하고 욕이 욕을 부르는 전염”한 유력 대선 주자가 오래전 형수에게 한 욕설이 두고두고 그의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기고 있다. 논란이 일 때마다 사과했지만 어떻게든 흠집을 내려는 이들은 다시 그 사건을 끄집어 내고 수면 위로 올리고 싶어 한다. 부모와 자녀, 형제자매 등 가족 친척들 사이의 크고 작은 다툼은 어쩌면 보통 가정에서 적잖이 일어나는 일상사가 아닐까. 피붙이의 사랑이 깊고 짙다 해도 한 집안에서 부대끼며 살다 보면 때론 칡처럼, 때론 등나무 가지처럼 얽히고설키게 마련이다. 그 갈등은 몸의 부딪침을 일으키기도 하고 의도치 않은 막말과 욕설을 불쑥 튀어나오게 만들기도 한다.이가을 시인은 ‘슈퍼로 간 늑대들’(책만드는집)에 실린 ‘욕의 칼’이라는 시에서 욕을 ‘마음을 찌르는 칼’이라고 그려냈다. 그렇다. 도처에 혀의 칼이 난무한다. 사람 많은 곳에 잠시 있다 보면 어디선가 불쑥 욕설이 내 귀를 찌른다. 길을 걷다가도 욕의 칼에 베이기도 한다.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아이들의 입에서 ‘씨*’이라는 낱말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나온다. 뭔 뜻인지 알고서 하는 말은 아닐 게다. 멋진 옷에 비싼 차를 운전하고 있는 젊은 남성의 입에서도, 정성스레 아름답게 화장을 한 여인의 입에서도 ‘*나’라는 단어가 아무렇지도 않게 퍼져 나온다. 큰 사람들이니 얼추 그 뜻을 알 게다. 물론 그 혀의 칼, 욕의 날이 나를 향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날아다니는 욕설이 어쩌다 귀를 스칠 때면 마음에 쨍하고 금이 간다.나는 욕을 잘 못한다. 욕설을 내뱉고 싶은 마음이 장작불꽃처럼 이글거리고, 마른 잎 태우는 연기처럼 피어오를 때가 왜 없겠는가마는 막상 욕이 입밖으로는 나오지 않는다. 그나마 나의 입에서 나오는 가장 심한 욕이 ‘새끼’이다. 군대를 가면 욕이 늘어 나온다고도 하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미군부대에서 군 복무를 한 까닭에 한국욕을 배우고 연습(?)할 기회를 놓쳤다. ‘f’나 ‘s’로 시작되는 미국 욕이 잠시 입에 붙었던 적이 있지만, 부대 밖을 나오니 곧 떨어져 나갔다. 말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자주 보고 들으면 그 단어가 입에 붙는다. 욕은 매우 강한 끈끈이를 가진 말이다. 그래서 더 잘 붙는다. 애써 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근엄하신 국밥집 욕쟁이 할머니는 / 날마다 가마솥에 욕을 끓인다 / 가마솥 절절 끓을수록 욕설이 구수하다 / 손님 탁자마다 돌아다니면서 욕으로 안부를 건넨다 / 할머니 욕해주세요∼ / 저, 염병할 놈, 또 왔네 아직도 그 타령이여? / 욕설을 얹어야 국밥이 맛있다”(이가을, ‘이 맛있는 욕’ 일부)라는 시처럼 욕은 ‘국밥집 욕쟁이 할머니’에게만 허용했으면 좋겠다.욕이 필요할 때가 있다고도 하지만 안 했으면 좋겠다. 진심을 말하자면 국밥집 할머니의 욕도 마뜩잖다.

2021-07-20

희망의 청포도 익히는 칠월을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장맛비 그친 하늘 위에 / 구름꽃 둥둥 피어나고 / 풀벌레 소리높여 노래하는 // 할머니 모시저고리보다 / 햇빛이 더 짱짱한 칠월 // 피자두 적포도 청포도 복숭아 / 한입 물면 새콤달콤한 달 /바람이 인색하게 불어도 /넉넉하게 살찌우고 가는 칠월”‘현대 시인 중에서는 흔치 않게 진실하고 순수한 사랑시의 계보를 이어간다고 평가받는’(이 평가는 책소개에서 그대로 인용하였다.) 이수인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그녀 초승달 따다’(2008, 북스토리)에 실린 시 ‘7월’에서는 넉넉한 7월을 풍요롭게 그려주고 있다.한 해의 절반을 보내고 새로운 절반을 시작하며 희망과 소생을 새롭게 다지는 달이 7월이다. 보통은 6월 중하순 경에 시작하는 장마가 7월 중순이면 끝나고 작열하는 뜨거운 태양에 풀들은 더욱 짙은 빛을 띠고, 각종 열매는 영글기를 시작하는 달이 7월이다.그런데, 올해는 예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는 듯하다. 6월에 시작되었어야 할 장마가 7월 2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7월에 시작되는 ‘지각 장마’는 39년 만의 일이라고 한다. 6월에도 비가 잦았지만, 올 6월의 비는 장맛비가 아니라고 하니 문외한인 나로서는 기상 전문가가 말하는 대로 믿을 수밖에 없겠다. 눅눅하고 꿉꿉하게 7월이 시작된 것이다.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친 사람들에게 백신 접종은 희망의 전령사 역할을 하였다. 백신 접종이 원활하게 진행됨에 따라 방역 당국에서는 7월이 되면 사회적 거리두기도 조금 완화할 예정이었는데, 변이 바이러스라는 암초에 걸려 다시 주춤하고 있는 상황이다. 자연을 제맘껏 누리는 것을 넘어 훼손시키고 파괴하였던 인간들에게 자연은 아직 더 깊은 반성과 낮아짐을 요구하는 것이리라.세계적으로도 7월은 많은 나라들에 새로운 희망을 가져다 준 달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160여 개 나라의 독립기념일 또는 건국기념일이 열두 달 중에서 가장 많은 달이 7월이다. 1월에는 네 개 나라에 독립기념일이 있어 가장 적고, 7월과 8월이 각각 23개 나라로 독립기념일이 가장 많은 달이 이 두 달이다. 미국의 독립기념일도 7월에 있고(4일), 베네수엘라(5일), 아르헨티나(9일), 콜롬비아(20일) 등의 남미의 국가나 르완다(1일), 소말리아(1일), 알제리(5일), 라이베리아(26일) 등 아프리카 국가들의 독립기념일이 7월에 있다. 그런데 독립기념일 또는 건국기념일이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실제 독립이나 건국 또는 국가적인 새로운 전환을 기념하는 날인 캐나다의 날(7월 1일), 프랑스 혁명기념일(7월 14일)을 포함하면 7월이 25개 나라로, 열두 달 가운데 가장 많은 나라의 독립기념일이 7월에 있는 셈이다.눅눅하고 축축한 장마로 시작된 7월에 변이종 바이러스가 다시 엄습한대도 꿉꿉한 마음으로 있지는 말자. 희망을 놓지 않을 일이다. 그럴 때에 7월은 이육사 시인이 ‘청포도’에서 노래한 것처럼,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힐 것이다.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하여 알알이 희망의 포도송이 가득 쥐는 7월을 만들어 가자.

2021-07-06

조급한 빨리빨리, 역동적인 빨리빨리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슴슴한 겨울무 깎아 먹다가 / 느닷없이 장다리꽃 그리며 / 또다시 마음 바꾸는 마음이여 // 지친 꽃묶음 한 구비마다 내던지고 / 비척비척 일어서는 마음의, / 비천한 관성이여 /비천한 빠름이여.”한영옥 시인의 시 ‘비천한 빠름이여’(문학동네, 2001)의 3연과 4연이다. 시인은 양귀비꽃의 피고 짐(1연)보다 계절의 바뀜(2연)보다 빠른, 사랑 또는 마음의 바뀜을 ‘비천한 관성, 비천한 빠름’이라고 자조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렇지만 누구에게나 사랑이, 마음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빠르게 바뀌는 것은 아닐 것이다.흔히들 한국인의 특성 중 하나로 성급함을 꼽는다. 강준만 교수는 2006년에 인물과사상사에서 펴낸 ‘한국인코드’라는 책에서 10가지 한국인의 속성 또는 코드 중 하나로 ‘빨리빨리’를 들면서 이 속성은 ‘역동성’과 ‘조급성’이라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 그 빨리빨리 정신은 현란하게 드러난다. 엘리베이터가 여러 대 설치된 건물에서는 일단 모든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죄다 누르고 기다렸다가 가장 빨리 온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닫힘버튼을 먼저 누르는 것이 보통의 우리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약간의 거리를 두고 서둘러 다가오는 사람을 받아주는 여유나 배려는 보기 쉽지 않다.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빨리 접하고 익히는 단어 중 하나가 ‘빨리빨리’라고 하니 외국인들에게도 빨리빨리는 전염력이 큰, 우리의 속성인가 보다.‘장밋빛 인생’으로 유명한 프랑스 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샹송 ‘빠담빠담’을 패러디해서 버스커버스커가 노래한 2012년의 KT 기업광고노래 ‘빠름빠름빠름’ 역시 인터넷 속도의 빠름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그 이름을 들을 수 있을까 싶은 로켓 배송이니 새벽 배송이니 하는 택배 서비스가 당연시되는 가운데 택배기사들의 과로로 인한 죽음에 우리들의 조급함은 책임이 없을까? 18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광역시 철거 건물의 붕괴 사고 또한 싼 값에 빨리 철거를 하려다가 벌어진 일이라니 이 또한 ’비천한 빠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작년 한 해 코로나 방역 성공으로 세계 언론의 찬사를 받음으로 우리 국민들의 자긍심은 한껏 올랐다. 그러다가 올해 초에는 백신 접종률이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에 비해 저조하다고 방역당국이 정치권과 언론의 질타를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가. 빨리빨리는 백신 접종의 속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늦게 시작된 접종이었지만 6월 15일 낮 2시30분 현재 1차 접종자의 수가 누적 1천3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전체 인구(작년 12월 기준 5천134만9천116명) 대비 25.3%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2월 26일 시작된 우리나라의 백신 접종은 넉 달도 채 되지 않아 정부의 상반기 접종 목표를 15일 앞당겨 달성했다.짧은 기간에 전쟁의 폐허를 딛고 선진국으로 도약하여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낸 대한민국은 백신접종에서도 역동적인 빨리빨리의 나라임에 분명하다.그래도, 조금 여유 있게 가면 어떨까?

2021-06-15

유월의 노래, 유월의 기도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아무도 오지 않는 산속에 바람과 뻐꾸기만 웁니다 / 바람과 뻐꾸기 소리로 감자꽃만 피어납니다 / 이곳에 오면 수만 마디의 말들은 모두 사라지고 / 사랑한다는 오직 그 한마디만 깃발처럼 나를 흔듭니다 / 세상에 서로 헤어져 사는 많은 이들이 많지만 / 정녕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은 이별이 아니라 그리움입니다”6월이다. ‘유월이 오면’이라는 스무 행짜리 도종환 시인의 시의 첫 여섯 행을 옮겨 본다. 이즈음의 나무들은 더이상 앳된 빛을 띠는 신록이 아니다. 바야흐로 봄은 가고 여름이 왔다. 녹음(綠陰)의 사전 풀이처럼 ‘푸른 잎이 우거진 나무와 수풀’이 성큼 우리 앞에 다가와 있고 이 녹음은 점점 짙어질 것이다. 얼마 더 지나면 장마가 시작되겠고, 장맛비를 피해 들어간 나무 그늘은 적잖은 비가림이 될 터이다. 시간은 이렇게 잘도 가고 온다. 그런데, 계절을 느끼는 마음들은 사뭇 복잡하다.시집 ‘접시꽃 당신’(실천문학사, 1986)에 실린 위 시는 6월을 아프게 그리고 있다. 헤어져 사는 이들이 느끼는 절절한 그리움이 그 아픔의 원천인 것이다. 시인이 노래하는 사랑과 이별, 그리움의 대상이 누구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시인이 이렇게 노래하고 그리지 않아도 우리 겨레 많은 이들에게 아프고 쓰린 흔적을 남기고 드러내 주는 달이 6월이란 사실이다.며칠 뒤 6일은 망종(芒種)이자 현충일이고, 25일은 우리 역사의 가장 아픈 상처로 남은 한국전쟁이 시작된 날이다. 이별의 아픔과 그리움은 남북으로 갈라진 채 70여 년을 살아가고 있는 이산가족들에게 가장 절절하겠지만, 전쟁은 휴전이라는 말로 지금도 진행형의 상황이며. 전쟁의 후유증은 우리 모두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남아 있고, 상처 또한 아물지 않은 상태이다.그렇지만 사랑과 따뜻함으로 이어진 가정의 달 5월이 가자마자 아프고 슬픈 6월을 맞는다고 속상해 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아픔을 극복하고 사랑으로 승화시킬 힘이 우리에게 있지 않은가. 남과 북이 적대적 대치와 긴장을 풀고 사랑과 평화의 시대를 열어가도록 하자고 하면 안이하고 감상적이라는 핀잔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이 길이 우리 겨레가 나아갈 길이 분명한데, 암, 그리로 가야지. 하기야 이래저래 갈라져 진흙탕 싸움을 하는 것이 휴전선 남쪽의 모습인데 남과 북이 하나되는 길이 어디 그리 쉽겠는가.영국의 계관시인 로버트 브리지스(Robert S. Bridges)는 ‘When June is come’이라는 시에서 “아, 삶은 즐거워라, 유월이 오면”이라고 6월을 노래했다. 6월을 즐기는 그가 부럽다. “유월이 오면, 온종일 / 나의 사랑과 향긋한 건초 속에 앉아 / 산들바람 부는 하늘에 흰 구름이 지어 놓은 / 햇빛 찬란히 비치는 높은 궁전들을 바라보리라”라는 흥얼거림은 우리에게는 아직 먼 이야기이다.그래도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라는 성경 이사야서 2장 4절의 말씀이 이 땅에 실현되기를 나는 기도한다.

2021-06-01

아버지의 안경과 가훈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무심코 써 본 아버지의 돋보기 / 그 좋으시던 눈이 / 점점 나빠지더니 / 안경을 쓰게 되신 아버지, / 렌즈 속으로 / 아버지의 주름살이 보인다. // 돋보기 안경을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 아버지의 주름살이 / 자꾸만 자꾸만 / 파도가 되어 밀려온다.”2010년 세상을 떠난 이탄 시인의 마지막 시집 ‘동네 아저씨’(2006, 학이원)에 실린 ‘아버지의 안경’의 첫 연과 마지막 연이다. 시인이 1940년생이었으니 이 시를 지을 무렵에는 그 역시 돋보기 안경을 썼거나 다초점 안경을 썼을 터. 만년의 시인은 안경을 쓰면서 아버지의 안경을 생각하고 아버지의 주름을 읽어내었다. 자신의 노안 안경에 투영된 아버지의 주름은 파도가 되어 그의 가슴 속으로 자꾸 밀려 왔을 것이고, 아버지로부터 자신에게까지 이어진 긴 세월의 자국으로 남았을지도 모르겠다.정희성 시인도 이탄 시인의 시와 같은 제목의 시 ‘아버지의 안경’에서 “돌아가신 아버님이 꿈에 나타나서 / 눈이 침침해 세상일이 안 보인다고 / 내 안경 어디 있냐고 하신다”고 아버지를 노래한다. 아버지의 유품 안경으로 아버지를 기억하고 더듬는 것일 게다.나이가 들면 가장 먼저 그 티를 내는 것이 눈이 아닐까 싶다. 당신의 네 아들은 모두 안경을 썼지만 나의 아버지는 안경을 끼지 않으셨다. 그런데, 50대 중반을 넘기시면서 돋보기 안경을 끼셨다. 많지 않은 연세에 병으로 집에 계셨던 아버지는 늘 책상다리로 앉아 오랜 시간 성경을 읽으셨다. 콧등에 안경을 내려 쓰고 성경을 읽으시는 병약한 모습은 신기하게도 영성과 지성을 함께 풍기기까지 하였다.성경을 늘 옆에 두고 읽으셨던 아버지께서 좋아하는 성경구절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아버지께 가훈을 들은 기억도 없다. 좋아하시는 성경구절도, 가훈도 물려받지 못하였지만, 안경 너머 성경을 보시며 잔잔하게 소리내어 읽으시던 그 모습과 말씀을 좇아 살려 애쓰셨던 그의 삶은 내 눈과 마음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것이 ‘경건한 믿음의 사람, 건강한 생활의 사람’이라는 내 좌우명의 고갱이가 되었다.결혼 후 “서로 돕고 사랑하며 부지런히 배우자.”라는 처가의 가훈을 들었다. 아버님은 당신의 딸들이 어렸을 때부터 이 가훈을 늘 소리내어 말하게 하셨고, 그 말처럼 세 딸들은 어느 집 못지않은 사랑으로 똘똘 뭉쳤고, 열심히 공부했고, 각자 가정을 이룬 지금도 서로 도우며 인생 후반기를 아름답게 보내고 있다. 처가의 가훈은 자연스레 내 좌우명과 더불어 우리 집의 가훈으로 녹아들었다.성경에는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잠언 4장 1절)라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은 다윗왕이 아들 솔로몬에게 한 말이다. 솔로몬이 전무후무한 지혜의 왕이었다는 말을 후세에 듣고 있지만, 아버지의 교훈이 없었더라면 그의 지혜도 없었을 것이다.가정의 달 5월이 절반 가까이 지나가고 있는데 부모의 자녀 학대라는 어두운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부모님, 어른들의 교훈이 새삼 그립다. 설령 ‘라떼는 말이야’ 식이냐고 구닥다리 취급을 받을지언정 가정마다 가훈을 만들어 보자고 나는 말하리라.

2021-05-11

곡우와 장애인의 날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이 비 그치면 /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 서러운 풀빛이 짙어오것다 // 푸르른 보리밭길 / 맑은 하늘에 / 종달새만 무에라고 지껄이것다”이수복 시인은 ‘봄비’에서 비 그친 자연의 짙어가는 푸르름을 ‘서러운 풀빛’으로 묘사하였다. 만물이 잠을 깨는 이른 봄을 지나면 식물들은 활발한 생장을 위해 영양분은 물론이거니와 많은 물을 요구한다. 이러한 수분 요구의 시기에 내리는 비가 얼마나 반갑고 고맙겠는가.풀도 나무도 봄비를 온몸에 받아들이면 서러울 정도로 짙고 깊은 풀빛 나무빛을 세상에 뿜어내고, 이에 화답하여 비 그친 하늘을 나는 종달새는 맑게 소리로 봄을 노래하고 사람들은 그 봄을 흠뻑 만끽하게 된다. 그래서 시인은 “이 비 그치면 / 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라며 봄빛같은 젊은이를 시에 끼워 넣었으리라.4월 20일 어제는 24절기 중의 여섯 번째 절기인 ‘곡우(穀雨)’였다. 한자 뜻 그대로 곡우 무렵에는 봄비가 자주 내려 곡식뿐 아니라 모든 나무와 풀들이 물이 오르고 윤택해진다. 이 때를 기회 삼아 사람들은 나무가 흠뻑 빨아올린 물과 생기를 훔치고자 한다. 나무에 상처를 내어 수액(樹液)을 마시는 풍속이 그것이다. 경상북도에서는 이를 ‘약물마시기’라고 하고, 전라북도에서는 ‘가자수물마시기’, 전라남도에서는 ‘다래물마시기’라고 한다.봄은 만물이 생동하고 부활하는 때이다. 기독교의 부활절도 봄의 절기이고 그리스 신화 속 포도주와 축제의 신이자 광기의 신인 디오니소스를 섬기는 제전 또한 봄에 열렸다. 만물의 생동하는 시기에 다 함께 모여 앞날의 풍년을 기원하며 포도주를 마시고 즐기면서 욕구를 발산하였던 것이다. 이 제전은 평소에는 숨죽여 지냈던 여성들에게도 활짝 열린 축제가 되고 광기까지 허용되었다 하니 지금의 봄 산행, 벚꽃놀이를 뭐라 할 일은 아닌 듯하다.그런데 또 코로나가 문제다. 자연의 순리를 따라 봄을 즐기려는 인간의 욕구를 코로나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앗아가 버렸다. 하기야 코로나 또한 자연의 일부라고 할 수 있겠다마는….절기상 곡우인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기도 하다. 1981년 4월 20일에 장애인의 날이 선포되었으니 올해로 꼭 40년이 되었다. 기록을 찾아보아도 왜 이 날이 장애인의 날이 되었는지를 알 수 없다. 다만 1981년이 유엔이 정한 ‘세계장애인의 해’이었고,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당시 정권의 정당성과 국민에 대한 사랑의 정신을 표방한다는 구색 맞추기에 장애인의 날 선포는 나름 시의적절한 프로파간다(propaganda·선전, 선동)이자 정책이었을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어떠한 탄생 비화를 가지고 있건, 장애인의 날은 오랜 풍속인 곡우만큼이나 우리 시대에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우리는 모두 잠재적인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아니, 잠재적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우리는 육체적으로건 정신적으로건 모두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이 물오르는 곡우 무렵을 내 속의 장애를 걷어내고 장애로 고통받는 내 주변의 사람들을 돌보는, 생기 도는 봄날로 함께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2021-04-20

독립신문 만세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신문을 펴 본다 / 그 사면에 내 눈을 모을 만한 / 기사가 없다. 그대로 덮어둔다. /그래도 아침저녁으로 신문을 산다. …. 살아가는 것이란 / 차라리 / 신문을 사는 것이다.”황금찬 시인의 ‘신문을 사는 마음’의 첫연과 마지막 연이다. 시인은 눈에 들어오는 기사가 없어도 매일 아침저녁으로 신문을 산다고 하였다. 시인에게 아침저녁 신문을 사는 일은 하루를 시작하고 정리하는 일상의 과정이었다. 어디 시인뿐이랴. 종이에 적힌 글자에 익숙한 50대 이상의 사람들에게 신문은 새소식의 주요한 원천이었다.그런데 사실 새로운 소식이라고 해도 그 소식이 그 소식 아니던가. 이근삼은 이미 1961년에 부조리극 희곡 ‘원고지’에서 이를 간파하였다. 소파 앞에 널부러진 신문을 읽다가 아내가 그 신문은 삼년 전 신문이라고 하며 ‘오늘’자 신문을 건네 주자 새 신문의 기사를 읽지만 3년전 내용의 반복이다. 다음날 아침 장녀가 건네는 신문 역시 3년전 신문이나 어제 신문과 내용이 다를 바 없다. ‘원고지’는 부조리극이라는 갈래로 분류된다. 현대인의 변화 없는 생활, 지루하고 반복되는 일상이 날짜 다른 신문에 그대로 얹혀 있으니, 부조리라는 우스우면서도 슬픈 단어는 우리들 나날의 삶에 그 탓을 돌릴 수밖에 없지 않을까.부조리를 담은 부조리한 신문을 이제는 타박할 여지도 별로 없다. 종이 신문이 점점 사그라들고 있기 때문이다. 여든이 한참 넘으신 어머니는 아직도 보수색 짙은 신문을 받아보고 계신다. 내가 글자를 알던 때부터 그 신문을 보아 오셨으니 어머니는 50년은 족히 넘은 독자이시리라. 가끔씩 어머니 집에 가서 확인해 보면 거의 읽지 않으신 듯 처음 배달될 때 접혀진 그대로 신문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읽지도 않는 신문이 각 가정이나 사무실에 배달되고 쌓여 가는 것이 지금 신문의 실상이다. 집까지 배달이라도 되면 다행이다. 인쇄소를 나온 신문은 신문사 지국을 살짝 들렀다가 비닐 포장에 끈이 그대로 묶인 채로 뭉치째 바로 폐지 수집소로 가는 신세가 되었다. 아직도 가끔 지하철역사 입구에서 상품권이나 자전거 등의 사은품을 제시하며 종이 신문 보기를 강권하는 사람들을 만나지만, 누구 하나 신문에도 사은품에도 눈을 돌리는 이는 없다.이제 신문의 기사는, 뉴스는 종이가 아니라 컴퓨터 화면 안에 그리고 그보다 더 작은 가로 6~7cm, 세로 15cm 안팎의 모바일 화면 안에 들어가 버렸다. 이를 두고 신문의 몰락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터넷 시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에 따르는 당연한 매스미디어의 변화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겠다.125년 전인 1896년 4월 7일 오늘은 독립신문이 창간된 날이다. 독립신문은 우리 역사에서 여러 가지로 뜻깊은 신문이다. 최초의 민간 신문이자 최초의 한글 신문이고 최초로 띄어쓰기를 한 문헌이 바로 독립신문이다. 21세기의 신문도 독립신문의 혁명성을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1백년 하고도 4반세기도 더 된 이른 시기에 실로 혁명적인 시도를 하였던 독립신문에 만세를 불러본다.

2021-04-06

이사

이재현동덕여대 교수“낡은 재건축 아파트 철거작업이 끝나자 / 마지막으로 나무들이 철거되기 시작한다 / 아직 봄은 오지 않았는데 / 뿌리를 꼭 껴안고 있던 흙을 새끼줄로 동여매고 / 하늘을 우러러보던 나뭇가지를 땅바닥에 질질 끌고 / 이삿짐 트럭에 실려가는 힘없는 나무 뒤를 / 까치들이 따라간다 / 울지도 않고 / 아슬아슬 아직 까치집이 그대로 남아 있는 나무 뒤를 / 울지도 않고”2004년에 창작과 비평사에서 정호승 시인이 펴낸 시집 ‘이 짧은 시간 동안’에 실린 시 ‘이사’의 전문(全文)이다. 시인은 아파트 단지의 철거로 까치집을 그대로 얹은 채 뿌리째 뽑혀나간 나무들에 대한 아릿한 심사를 이렇게 그렸다.내가 사는 동네 근처의 아파트가 재건축이 되면서 지난 가을부터 집들이 하나둘 비워지기 시작했다. 가을 끝 무렵에는 주민들의 이주로 텅 빈 아파트 건물들만이 괴이한 모습으로 줄지어 겨울을 맞이했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건물 사이사이에 꿋꿋이 버티고 을씨년스러움을 가려줘 그나마 다행인 듯 보였다. 아파트가 들어설 때 심어졌을 테니 못해도 삼사십 년은 된 나무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얼마 뒤 나무들이 댕강댕강 잘린 채 차량 빠진 아파트 주차장에 널부러져 있는 모습을 보게 됐다.정호승 시인은 아파트가 철거되고 마지막으로 나무가 철거됐다고 했는데 내가 본 재건축 아파트 단지의 철거 모습은 사뭇 달랐다. 가가호호 집들이 비워지자 맨 먼저 철거된 것은 건물이 아니라 나무들이었다. 재건축 단지의 나무들은 뿌리에 흙을 새끼줄로 동여매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 것이 아니고 까치 둥지를 가지에 건 채로 토막토막 잘려 자기의 천명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안전진단에서 위험 판정을 받지 않은 아파트 건물이지만 사람들의 재산가치 증식을 위해 재건축 결정이 나고 철거가 시작되면서 아파트 주민들에게 맑은 공기를 베풀고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 주던 나무들의 수십 년 길지 않은 삶은 사람들의 욕망에 스러져 갔다.재건축으로 못해도 몇 억의 재산가치가 상승할 터인데 그깟 나무들이 잘려나가는 것이 무슨 대수랴. 까치 둥지가 허물어지는 것, 까치가 집을 잃고 헤매는 것은 내 알 바 아니다. 과연 그럴까? 김광섭 시인은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성북동 비둘기만 번지가 없어졌다고 했다. 비둘기에겐 애초부터 번지라는 것은 없었으려니와, 있고 없고는 둘째 문제이고 살아온 터전을 잃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야 하는 새들의 삶이 애처롭다.성북동 골짜기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와 도시 한복판 아파트 단지의 길조 까치가 집을 잃고, 나무들이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잘려나가는 일은 이 땅에 인간이 존재하는 한, 사람들의 욕심이 끝모르게 이어지는 한 계속돼야 하는 운명일까. 더욱이 재건축, 재개발로 점점 외곽으로 밀려나는 서민들의 아픔과 슬픔은 이루 말하기조차 어렵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까치는 울지 않아도 가슴 속에 한 줄기 뜨겁고 검은 물이 흐른다. 우리들 이사가 몸과 물질의 안녕만을 위한 이사가 아니라 정서의 안녕과 사랑도 함께 도모할 수 있는 이사가 됐으면 좋겠다.

2021-03-23

어머, 어메이징, 어머니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산이 저문다 / 노을이 잠긴다 / 저녁 밥상에 애기가 없다 / 애기 앉던 방석에 한 쌍의 은수저 /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어린 아들을 잃은 슬픔을 주인 잃은 은수저로 그려내 주고 있는 김광균의 시 ‘은수저’의 첫 연이다. 옛 어른들은 ‘부모가 돌아가시면 청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하였다. 시인은 아들의 부재에 목놓아 울 수 없기에 그 끝모를 슬픔을 은수저에 눈물을 고이게 하는 것으로만 그려내었다.부모님이 돌아가시는 슬픔을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힘들다 하여 ‘천붕’(天崩)이라고 한다. 나는 두 분의 아버님을 보내면서 하늘이 두 번 무너졌다. 그러나 두 분 아버님께서 이 땅에서의 오랜 투병을 끝내고 하늘에서 평안히 쉬실 것을 생각하니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까지는 느껴지지 않았다.자식의 죽음은 또 다를 것 같다. 천붕보다 덜 알려진 ‘참척’(慘慽)이라는 말이 있다. 자손이 부모나 조부모보다 먼저 죽은 일을 이르는 말이다. 먼저 오면 먼저 가는 것이 순리라 하지만, 어디 삶이 순리대로만 흘러가던가. 죽음의 순서 또한 나이순이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무래도 연세 드신 분들이 먼저 세상을 뜨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참척은 아무래도 우리 귀에 익숙치 않을 것이다. 사고나 병이 아니면 부모보다 자식이 먼저 가는 일은 좀체로 일어나지 않는다. 자식의 죽음은 변고(變故)다. 참혹한(慘) 일이고 설령 참혹하기까지는 않을지라도 근심스러운(慽) 일이다. 자식 잃은 침혹한 변고에 김광균 시인처럼 담담히 은수저에 눈물을 담아낼 수 있는 이가 몇이나 있을까. 부모의 마음이란 이런 것이다. 부모 마음이라고 했지만 아버지의 마음과 어머니의 심정이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열 달 동안 자식을 자신의 몸 안에 품고 사랑과 영양분을 주며 함께 있다가 이백 여개의 뼈마디가 다 벌어지고 무른다는 출산의 고통을 겪고 세상에 내놓은 어머니이다. 제왕절개로 출산을 한다 해도 어머니의 고통과 수고는 자연분만과 다를 게 없다. 그래서인가. 어머니의 삶은, 어머니의 사랑은 우리가 ‘어머!’라는 감탄사로 반응하고 ‘어메이징’(amazing) 하며 놀란 적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렇기에 자식 또한 어머니를 대하는 마음이 아버지를 대하는 마음과 같지 않을 게다. 나도 아버지이지만 자식으로서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할 듯하다. 세상에 나온 아이가 가장 처음 배우고 하는 말이 ‘엄마’라고 한다. 이건 세계 공통 현상이다. 어머니는 엄마이자 밥이다. 엄마와 맘마는 같은 말이다. ‘ㅁ, ㅂ, ㅃ’과 같은 입술소리를 가장 먼저 낸다는 유아의 언어 발달 단계에 관한 언어학의 지식에 기댈 것도 없이 이는 상식에 가깝다.그런데, 세상이 변해가고 있는 것인지 양부모뿐 아니라 친부모의 자녀 학대 이야기가 자주 들려온다. 어머니가 자식을 죽이는 사건이 잊을 만하면 귀를 울린다. 세상이 변해도 어머니는 그대로이고 모성(母性)은 변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가 보다.어머니를 향한 밝은 놀람의 ‘어메이징’, 긍정적 감탄의 ‘어머!’가 다시 우리들 입에서 많이 퍼져나가기를 소망한다.

2021-03-09

연탄보릿고개 넘어가기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 삶이란 / 나 아닌 그 누구에게 /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많은 사람들 입에 회자되는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 너는 /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시 ‘너에게 묻는다’)라는 구절로 유명한 ‘연탄시인’ 안도현은 또 다른 시 ‘연탄 한 장’에서 특정한 사람을 지칭함이 없이 사람의 삶 자체를 누구에겐가 연탄 한 장이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다. 사람은 나남 없이 그 어떤 이에게는 따스한 존재이고 존재이어야만 한다.그런데, 코로나는 사람 사이의 거리를 강제로 벌려 놓았고, 온기를 나누기 어렵게 만들었다. 우리는 계절 감각조차 심드렁하게 두 번째 겨울을 보내고 있다. 머잖아 코로나 이후 두 번째 봄이 다시 찾아 올 것이고 꽃샘추위도 한바탕 위세를 부릴 것이다. 점쟁이는 아니지만 웬만큼 나이가 들다 보니 어느 시기가 되면 또 어떤 고만고만한 소식이 있겠다고 얼추 짐작하게 된다. 꽃샘추위도 지나고 봄이 무르익는 5월쯤이면 슬금슬금 ‘보릿고개’라는 말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것이다. 그러나 다들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하게 된 지금, 꽃샘추위는 여상히 찾아오는데도 보릿고개, 춘궁기는 우리 머릿속에서 점차 뒷방늙은이처럼 물러나 앉는 듯하다.11월 말이나 12월 초에 김장을 담그고, 광에 연탄 2~3백 장을 들여 놓으면 그 해 겨울나기 채비는 다 끝났다고 했다. 겨울나기가 지쳐갈 무렵인 2월 말쯤 되어 김장 김치가 슬슬 시어질 때가 되면 쌓아 놓은 연탄도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형편 넉넉한 집에서는 참기름 들기름에 봄나물 무치고 생김치 버무려 먹고, 꽉 채워 더 이상 들일 수 없었던 연탄을 겨우내 비워냈던 광안에 다시 채워놓으면 별 문제 없이 이 계절을 느끼고 즐기며 지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여유 있는 집이 또 얼마나 되었을까, 다들 어렵게 살았으니 그냥저냥 아쉬운 대로 자족하며 넘어갈 수밖에.이런 이야기들이 모두 지난 날의 ‘이바구’, 추억 속의 광경이 됐는가 했는데 보릿고개, 춘궁기라는 단어를 나는 서울 변두리 동네 언덕길에서 다시 듣는다. 연탄이라는 모자를 쓴 ‘연탄보릿고개, 연탄춘궁기’라는 단어로 말이다. 이 겨울의 언저리에서 힘들어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지난해 12월 현재의 조사에 따르면 연탄을 난방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가구가 15만여 호 정도 된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전체 세대 수 약 2천260여만 가구(2020년 4월, 행정안전부의 통계 자료)에 비하면 0.7%도 안 되는 숫자이지만, 사람 수가 아닌 세대 수로만 본다면 구미시보다는 2만여 호 적고 경주시보다는 3만여 호 많은, 무시 못할 수의 집들이 아직도 연탄에 의지하여 겨울을 나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연탄을 때며 산다는 건 연탄가스 마신 것처럼 삶이 위태롭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삶 팍팍한 어르신들이 연탄보릿고개를 잘 넘어가시도록 나는 이번 주말에 연탄으로 검은 화장을 하러 갈 예정이다. 연탄 지고 언덕을 오르내리지 않더라도 함께 따스한 연탄 시선으로 주변을 돌아봄이 어떨지.

2021-02-23

손때와 설 명절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동네 집 사이로 난/좁은 계단 길에/부러진 목발 기대앉아 있네요/외로운 얼굴로 기대앉아 있네요//작은 목발이에요/손잡이에 감긴 하얀 헝겊에/뽀얗게 손때가 묻어 있어요/참 작은 목발이에요/부러졌네요”황인숙 시인의 시 ‘골목길’ 일부이다. 시인은 골목길,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서울 용산 해방촌의 골목길에 관심과 애정이 많다. 이 좁은 골목길 한 귀퉁이에 용도가 다했거나 과도한 사용으로 부러진 채 목발이 버려져 있고, 시인의 눈길은 목발의 손때 묻은 손잡이 헝겊에 머문다. 손잡이 헝겊에 묻은 손때가 눈에 띌 정도면 엔간히 사용된 목발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손때는 목발을 사용했던 이의 회복하고자 하는 의지와 애씀이 고스란히 드러난 자국이리라.사전은 손때를 ‘오랫동안 쓰고 매만져서 길이 든 흔적’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다른 단어보다는 그래도 비교적 건조하지 않고 담담하게 풀이된 듯 보인다. 하지만 우리에게 손때라는 단어는 이보다 더 애잔하게 다가온다. 따뜻함과 애틋함 그리고 세월의 눅진한 흔적을 담고 있는 말이 손때가 아닐까.지난 토요일 영등포 쪽방촌 봉사를 가면서 딸과 조카딸이 품고 놀던 인형들을 거둬 큰 비닐 봉투에 한가득 담아 갔다. 인형 나눔을 할 것이라고 진작에 이야기는 해뒀다. 그런데 늘 품고 있던 인형들 몇 개는 기념으로 간직하겠다는 조카의 말을 깜빡 잊고 몽땅 가져가서 기증을 해 버렸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다음날 때마침 조카는 인형이야기를 꺼냈고,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기증하였다는 소식에 그는 몹시 서운해 했다.혹시라도 남은 인형이 있는가 해서 기증한 곳에 전화했더니 거의 다 가져가고 몇 개만 남아있다고 한다. 그것이라도 챙겨보려고 부리나케 달려갔다. 깨끗하고 비싸고 좋아보이고 비교적 새 것같은 인형들은 이미 다른 이의 손에 넘어가고 없었다. 남의 손이 많이 탄 더러운 인형을 가져가고 싶지 않은 마음은 누구나 같았던 듯, 때가 묻어 꼬질꼬질하고 지저분해 보이는 인형 몇 개만 남아 있었다.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기에 하릴없이 남은 인형들을 가지고 돌아와 조카에게 보여주었다. 웬걸, 아이의 얼굴에는 대번에 화색이 돌고 기쁨의 미소가 번졌다. 자기가 간직하고 싶었던 인형이 그 중에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의 어릴 때부터 가슴에 품고 안고 주무르고 매만져서 더러워진 인형은 다른 사람에게는 쓰레기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손때 묻힌 당사자에게는 애틋한 사랑과 추억의 덩어리이고 고갱이이고 ‘아카이브’(기록 보관소, 자료 저장고)였던 것이다. 아, 손때가 가져온 이 기쁨의 반전이자 역설이라니!곧 설이다. 아무리 모든 것들이 양력 시간으로 흘러간다 하여도, 설은 겨레의 손때 짙게 밴 새해 첫날이다. 한때는 이중과세 논란도 있었지만, 이제는 구정이라는 말도 사라지고 설이라는 이름으로 온전히 자리잡았다. 온 겨레의 손때 가득 묻은 설 명절을 뉘라서 버리자고 하겠는가.단지 이번 설은 또 한 번의 손때를 배게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고향에 두루두루 손때 묻히기는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음이 아쉬울 뿐이다.

2021-02-09

재갈 물리기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나는 좀 어리석어 보이더라도 / 침묵하는 연습을 하고 싶다. // 그 이유는 많은 말을 하고 난 뒤일수록 / 더욱 공허를 느끼기 때문이다.”유안진 시인의 ‘침묵하는 연습’이라는 시의 첫 두 구절이다. 말의 양과 공허의 깊이가 비례하는가 보다. 그런데, 말을 많이 해야 뭔가 뿌듯하고 채워지는 느낌을 받는 이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 정치판이 대표적 다변의 마당이리라. 서울 시장, 부산 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딱히 정치판이 아니더라도 지금은 눌변의 시대가 아닌 다변의 시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아무말’에 다변이기까지 한 정치인 한 사람이 해가 바뀌면서 퇴장하였다. 집권 기간 내내 자기 나라뿐 아니라 세계를 온통 말과 글로 들쑤셔 놓았던 미국의 45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그는 재선에 실패하고 백악관을 떠나면서도 “안녕, 우리는 여러분을 사랑한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돌아온다.”라며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듯한, 대통령직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한 말을 하고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자신의 개인 리조트가 있는 플로리다 주 팜비치로 돌아갔다. 대통령으로서의 마지막 연설에서까지 ‘아무말’을 멈추지 않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철저하게 대통령으로서의 특권을 찾아 누렸다.우리 속담에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다’라는 말이 있는데, 트럼프는 뒷걸음질도 옆걸음질도 아닌 마구잡이 행보로 쥐를 잡기는커녕 미국의 정치마당을 끝까지 들쑤셔 놓았다. 결과는 재갈 물리기로 돌아왔다. 트위터는 퇴임을 2주도 남기지 않은 1월 8일에 8천900만명의 팔로워를 갖고 있는 현직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계정을 영구 정지시켰다, 같은 날 구글과 애플은 보수 성향의 미국인들이 많이 이용한다는 SNS ‘팔러’(Parler) 앱을 플레이스토어와 앱스토어에서 각각 퇴출시켰다. 트럼프가 트위터의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었을 앱까지도 막아버린 셈이다. 다른 그 누구도 배려하거나 신경쓰지 않는 거침 없는 언사, 함부로 된 말들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자승자박이라고나 할까.공자는 논어 이인(里仁) 편에서 ‘군자욕눌어언이민어행(君子欲訥於言而敏於行)’이라 하였다. ‘더듬거리는 말’이란 뜻의 ‘눌언’을 여기서는 더디고 신중하게 하는 말 정도로 풀어 ‘말은 신중하게, 행동은 민첩하게 하라’라고 해석하면 되겠다. 군자로서의 사람됨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하더라도,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좀더 말과 글에 신중하였더라면 좋았을 것을. 좀 심한 언사를 일삼던 남의 나라 사람 이야기이지만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리라.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개인의 사회적 소통 계정을 영구히 막아버리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침묵하지 않고, 경청하지 않음으로 자초한 것이기는 하지만, 언론의 자유를 지고지선의 가치로 여긴다는 미국 기업의 재갈 물리기 앞에서 생각이 잠시 멈추어 버렸다. 그 틈을 정현종 시인의 시 ‘경청’의 한 구절이 들어와 앉는다.“불행의 대부분은 / 경청할 줄 몰라서 그렇게 되는 듯. / 비극의 대부분은 / 경청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는 듯.”

2021-01-26